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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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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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4.30
    쉽고 가볍게 알아보는 불교의 역사 이야기
  2. 2019.04.10
    브렉시트, 그게 도대체 뭔데




History of Buddhism :

How the Religion Has Prevailed over Asia






정치와 역사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오랫동안 중세 유럽의 로마 가톨릭만 집중적으로

비판한 모양새를 연출한 것 같아 못내 찜찜했네요.



개인적인 종교 취향과는 전혀 관계가 없음을 거듭

밝히고요. 수백 년 전 유럽에서 일어난 일을 풀어가는

것에서부터 현대 민주 정치의 해답이 있기 때문에

이에 집중하여 논한 것 뿐입니다요.



간단하게 다른 종교와 얽힌 역사도 언급하며

쉬어가는 포스팅을 마련할까 해요.



본 블로거가 절에 다녀서 불교의 전파 과정 및

역사 이야기는 소상하게 풀어볼 수 있거든요.



불교의 변천사에서 신기하게도 기독교와 묘하게

닮은 지점도 발견할 수 있어 흥미로울지 모르고요.



희한하게 요즘 교실에선 잘 안 가르치고

보통 현대 한국인들의 관심 밖 세상이기도 해서

뭔가 특이 영역을 찾으시는 분들께 맞을 듯도 해요.




 불교 팔정도의 상징물, 법륜





석가모니, 釋迦牟尼 ..란 Śākyamuni라고 영문

표기할 수 있는 데바나가리 문자 단어 शाक्यमुनि ..를

한자로 음역한 별칭이고요. 샤카 민족의 성자란

뜻을 갖고 있는 말이에요.



칭호가 가리키는 실존 인물의 본명으로 싯다르타 고타마

..라는 출생시 속명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영어권에서는

고타마 붓다, Gautama Buddha ..로 보통 불러요.

붓다 역시 깨달음에 이른 존재란 뜻을 가지죠.



석존의 출생과 사망 시기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여러 가설이

분분하는데 한국 불교의 지배적 종파인 조계종에서는 기원전

623년 출생에 기원전 544년 사망을 일단은 정설로 믿어요.



석존이 태어나 활동한 곳은 오늘날 인도 동북부와 네팔에 걸쳐

있는 넓은 지역입니다. 샤카 민족의 카필라 왕국 왕자로서

태어난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죠.



고타마가 태어난 룸비니, 35세에 깨달음을 얻은 곳 부다가야,

깨달음을 처음 설법으로 펼친 곳 사르나트(녹야원), 80세를

일기로 입멸한 곳 쿠시나가는 흔히 불교 4대 성지로 묶이며

오늘날 네팔과 인도 북동부에 걸친 지역들이에요.




드라마에서 표현한 싯다르타 고타마




인도 아대륙에 위치한 불교 4대 성지




*미칠 듯이 광활한 사상을 고작 몇 마디 말로 요약할

뿐이니, 다음 내용의 깊이가 부족함은 양해해 주세요.




석존이 생전에 손수 남긴 사상의 줄기는 보통 사성제,

팔정도, 삼법인 등으로 요약할 수 있어요. 인생이 일체의

고통이니 이를 떨쳐내 해탈에 이르러야 한다는 사성제

근본이 수행 방법인 팔정도나 중심 철학인 삼법인

통하여 발전해 나가는 구조라 볼 수 있고요.



특히 삼법인에서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의 명제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여 영원불멸하는

자아가 없음을 깨닫는 것이 해탈의 길이란 점인데요.



이는 당시에 인도 아대륙에 유행하던 브라만교의 범아 사상이

추구한 절대성을 비판하고 세계 운행의 상대성이 진실임을

설파한 거에요. 즉 고대 힌두교인 브라만교의 안티 테제

등장한 것이 석존의 불교임을 여기서 간파할 수 있죠.



또 이 부분은 아브라함 계열 종교에서, 유대교의 발전적

비판으로 등장한 예수 그리스도의 기독교나 그 기독교에서

독립적인 체계를 정립한 무함마드의 이슬람교 등으로

유사한 분화 및 비교 사례를 찾을 수 있기도 해요.



오늘날 현대의 모든 종교가 고대 신앙 체계를 기반으로 발전적

해체를 통해 성립해온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인 것이지요.




경주 석굴암 본존불





그러나 다른 신앙과 뚜렷하게 다른 점도 얼마든지 있어요.

불교의 부처님과 아브라함 종교의 유일신 하느님은 전혀

본질이 다른 존재에요.



기독교는 세상의 유일한 신적 존재를 추종하라고 가르치지만

불교의 석존은 믿고 숭배하라고 만들어놓은 대상이 아니에요.



불교 활동의 최종 목적은 유일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수행을 통해 스스로 부처가 되는 거에요. 석가모니는 그런

방법으로 부처가 된 대선배 같은 존재이죠. 그가 그리 했듯이

평범한 중생들도 수행을 할 수 있으니 벤치마킹하란 말이죠.



즉 석존은 신성을 가진 존재가 아닙니다. 불법을 깨달았기에

인간인 수행자 중 가장 앞선, 존귀한 사람이라 볼 수 있죠.








인도 아대륙은 현대에 통합된 국가로 운영되는데 반해

과거엔 그 넓은 지역이 통일된 역사가 별로 없어요.



역사상 인도 북부와 남부를 통일한 최초의 시기는 기원전 4세기

마우리아 왕조가 등장했을 때에요. 사실 역사에서 남북이 모두

통합된 시기는 현대를 제외하고 이 때가 유일하다고 하고요.



기원전 3세기 아소카 대 때 마우리아 왕조가 가장 융성했고

이 왕은 불교를 적극적으로 장려하여 국가 경영의 기반으로 삼은

통치자에요. 불교계의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해당한다 하겠죠.



서양 역사에서 기독교의 공인이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이루어진 걸로 비교하면 불교와 기독교의 역사가 대략

6~7백 년쯤 간격을 두고 흥망성쇠의 패턴 그래프를

각각 그리며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죠.




스리랑카에 위치한 십대 제자상





예수님께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열두 제자가 있었듯이

석존께는 십대 제자라고 불리는 수행자들이 있어 초기

불교의 보존에 혁혁한 공을 세웠답니다.



이 제자들이 석존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종교 절차는

과학 기술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던 고대였던지라

매우 원시적인 방법에 의존했다고 해요. 구전이죠.



아소카 왕의 가장 큰 공로 중 하나가 경전의 결집이었어요.

결집이란 석존의 가르침을 구전에서 기록으로 남기는 절차를

말하는데요. 초기 제자나 종파 지도자들이 구전으로 교리를

구술하면 이를 나뭇잎이나 식물성 재질 등 당대 가장 흔한

매체에 기록해 두루마리 형태로 보관했다고 해요.



상상이 되시겠지만 당연히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많은 인력이

소요되는 번거로운 과정인 거죠. 아소카 왕과 같은 권력자가

초기 제자들과 단단히 영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고대 불교의 전승 경로 - 상좌부 불교의 대승 불교화





시간이 오래 지나 사람의 기억에 의존하는 방법에 한계가

있을 테니 교리의 해석에 차이와 논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석존이 사망한 후 100여 년이 흐른 시점에

상좌부대중부로 종파가 분열하게 되었다고 해요.



교리 해석에 있어 상좌부는 보수적 성향, 대중부는 진보적

성향을 각각 보였다고 하고요. 이로부터 수백 년간, 서력

기원 정도까지 수많은 종파(부파)들이 격렬하게 분화하고

발전하여 인도 불교가 가장 융성했던 때라 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이 시기 인도 불교를 부파 불교라고 따로 시대

구분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동아시아와 남아시아로

국경을 넘어 활발하게 불교가 전파된 때이기도 했어요.

티벳을 넘어 중국에 처음 당도한 것도 대략 이 시기..



상좌부와 대중부의 수십 개 세부 종파는 중세까지 존속하다가

오늘날엔 명맥이 끊긴 경우가 많아요. 기원전 1세기 경 이후

대승 불교가 대세로 발전해가면서 이런 기존 종파를 싸잡아

소승 불교라고 폄하해서 부르기도 했습니다만.




동남아의 일반적인 불상





인도 종파를 원류로 하여 오늘날 동남아시아에서 존속하는

불교가, 소승 불교라는 멸칭보다 상좌부 불교라는 원래의

명칭을 되찾아가고 있는 것이 최근 경향이기도 합니다.

영어로는 Theravada, 테라바다란 용어를 쓰죠.



상좌부 불교가 고대의 불교라면 대승 불교는 중세의

불교 정도로 구분을 할 수 있고, 새로운 시대 정신의

바탕에서 탄생한 종교 문화의 신체계인 셈이에요.

영어로는 Mahāyāna, 마하야나란 용어를 써요.



대승 불교가 순전히 중국 문화의 산물이라고 오해하는 분도

가끔 계시는데요. 어느 정도는 인도와 티벳과 중국 간 상호

교류와 교차적 협업을 근간으로 발전한 것은 맞습니다만.



본래 대승 불교의 원류는 엄연히 인도 문화가 창조한 것이고

수백 년간 중국 문화권과 병행하여 발전시키다가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면서 그 명맥을 실전하였다고 봄이 타당해요.

여기서 말한 중국 문화권에는 한국과 일본도 들어가고요.



대승 불교는 특히 쿠샨 왕조의 흥망성쇠와 깊이 연관이 있어요.

1~4세기 북인도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지를 평정했고

3대 카니슈카 국왕 때 대대적으로 경전을 결집했다고 하죠.

쿠샨 제국은 간다라 미술이 발흥한 걸로 유명한 곳이고요.




간다라 미술 양식의 조상





상좌부 불교가 석존 교리의 축자적 해석에 집착하는

훈고적 성향을 보이는데 반발하여 중생을 교화해야 할

사회적 사명을 새롭게 인식하여 탄생한 불교 버젼 2.0

정도라고… 대승 불교를 정의할 수 있겠죠.



이말인즉슨 석존 본인이 설법한 교리에만 매달리지 않고

이제부터는 새 시대의 성직자들이 새롭게 교리를 창조해갈

길이 열렸다는 뜻이에요. 즉 이제부터 현대인이 익히

들어본 불교 경전들이 창작되는 세상이란 말이죠.



어떤 경전들인가요? 반야경, 화엄경, 금강경, 법화경

많이들 들어보셨죠? 한국이 전통적 중국 문화권으로서

대승이 융성한 지역에 속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이미 역사적으로 간접 체험을 한 거죠.



최근 21세기 한국 불교계에서 부파 불교의 초기 경전을

탐구하려는 운동도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어 늦었지만

고무적이라고 봐요.




한국식 불교 사찰의 상징인 원이삼점

- 흔히 삼법인을 뜻한다고 해석하기도





이 초기 경전들이란 숫타니파타, 아함경, 법구경 등 전승과

구전의 방법으로 석존 시절부터 보존된 오래 된 교리서들인데

현대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중국식 대승 불교에 익숙한지라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부파 불교의 초기 경전들은 석존 활동기 평민들의 방언인

팔리어로 보존되어 왔고 동남아시아 상좌부 불교계에서는

크리스찬 바이블과 같은 역할을 하는 표준 불경이랍니다.



이에 반해 반야경, 화엄경, 금강경, 법화경 등 대승의 수많은

불경들은 남인도 승려들이 고대 지배 계급 특유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보존하고 이를 중국에서 한역하여 한국과

일본으로 전해진 경로를 보여주고 있죠.



결국 우리가 현재 아는 대승 불교의 초창기 정립은 인도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는 경로에서 불경을 번역하는데 전력을 다한

최고의 고승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알 수 있는 거죠.




쿠마라지바 조상 -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위치





역경승이라고, 이런 번역가 역할의 고승 중 가장

저명한 두 분은 쿠마라지바와 현장입니다.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까지 혼란했던 오호 십육국 시대의

장안에서 삼백 여권의 불경을 번역한 쿠마라지바, 한자 표기로

구마라습은 오늘날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후진으로

옮겨가 십여 년을 불경 번역에 매진했다고 해요. 극락, 지옥,

색즉시공 같은 말이 이 분이 처음 조어한 용례들이랍니다.



중국 고전 서유기의 모티브를 제공한 현장은 7세기 초 출가하여

스무 해 가까이 인도에서 유학하다가 금의환향한 후 당 태종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수많은 불경을 번역했어요. 그가 저술한

대당서역기는 중세 초반 아시아 전역의 문물을 소상하게 밝힌

귀중한 사료이기도 하답니다.



두 분을 묶어 양대 대역성이라 부르기도 하며 쿠마라지바의

번역을 구역, 현장의 번역을 신역이라 따로 칭해 대별하기도

해요. 보통 구역은 구어체에 최적화한 의역, 신역은 원전에

충실한 직역으로서 그 성격을 각각 구분할 수 있어요.




현장과 대당서역기, 그리고 서유기





대승 불교의 종파는 수십 수백 문파가 명멸했습니다. 일일이

다 거론할 수도 없죠. 서력 기원 전후 인도에서 9~10세기

중국 당송 시대까지, 시공간의 범위도 크게 확장되요.

티벳과 한국, 일본, 베트남도 발전에 기여했죠.



발흥한 대략적 시기와 중심 인물인 고승들, 거기에

소의경전이라고.. 해당 종파의 기준이 되는 중심

불경을 살펴보며 주요한 종파만 짚어보자면요.




*대승 불교 종파의 변천 역사는 상세하게 분석하기

시작하면 장장 수백 페이지 분량인지라 아래 서술은

정말 수박 겉핥기입니다. 급한 대로 맛만 보시라고…




인도의 양대 종파로 현대에도 연구되는 곳은 중관학파와

유가행파로서, 4세기 무렵까지 융성했고요. 이후 대승의

중심이 중국으로 넘어와 5~9세기에 천태종, 화엄종,

선종 등이 성립하여 흥하였습니다.



중관학파는 2~3세기 인도에서 활약한 고승 나가르주나..

한자 표기 용수의 사상을 잇는 종파이고 그가 남긴 저작

중론송을 중심으로 사상을 탐구했어요. 중국으로

넘어와서는 삼론종이란 이름으로 번성했고요.



유가행파는 4세기에 활동한 아상가.. 한자 표기 무착

종조로 하여 해심밀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종파에요.



천태종은 6세기말 지의라는 고승을 중심으로 발흥했고

소의경전은 법화경입니다. 이름이 익숙하실텐데 고려 때

11세기말 대각국사 의천해동 천태종을 개창하여

우리만의 종파를 발전시킨 사실로 유명하죠.



화엄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화엄종은 중국에서는 7세기말

법장이 일으켰고, 신라 중대 때 이보다 더 일찍 의상 대사

해동 화엄종을 개창하기도 했습니다. (‘해동’이란 말이

앞에 붙으면 한국 문화권의 주체적 종파란 뜻이에요.)




달마도 - 조선 중기 김명국





사실 여기까지 거론한 종파는 오늘날엔 단지 불교 역사의 한

페이지일 뿐 이젠 승통이 끊겨서… = 스승 스님의 대를 이어

종파를 이어가는 제자 스님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관계로,

현대 불교에서 의미는 그리 크다고 할 수 없고요.



오늘날에도 승통이 이어질 뿐만 아니라 현대의 한국 및 일본

불교의 지배적 종파인 선종은 전혀 차원이 다른 이야기에요.

선종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현대 불교입니다.



실존했는지 기록이 불분명한 5세기 말의 인물로 보리달마,

달마 대사란 분이 있었어요. 전설상 인물이긴 해도 절에서

선종의 대시조 종정을 말할 때는 보통 달마로부터 시작하고요.



인도에서 남북조 시대의 중국으로 건너와 선법을 전파했다는

달마의 행적이 정사가 아닌 전설 야사 수준의 기록에만 나오는

관계로 역사학자들은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지만 민간 종교

차원에서는 (인기가 좋아서) 꾸준히 믿음이 유지되긴 해요.




순천 송광사 보조국사 지눌 진영





정사 차원의 선종은 7세기 말에 북종선남종선의 두 종파로

분화한 사건부터 보통 시점을 잡습니다. 둘 중 신수가 이끌던

북종선이 혜능이 이끌던 남종선보다 먼저 승통이 끊겨버렸고

남종선은 임제종 등 다양한 종파로 융성 발전했어요.



북종선이 일찍 사멸한데 반해 남종선은 8~11세기에 걸쳐

오가칠종으로 분화 발전하여 당송 시대 이후 중국 불교의

주류로 자리잡았다고 하네요.



남종선 계보 중 9세기 중반에 등장한 임제종간화선이란

선문답 수행을 핵심으로 내세우던 종파고요. 이 교리 전통이

한반도로 넘어와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눌정혜결사

운동으로 로컬라이징하는데 성공했고요.



숭유억불을 내세운 조선조 땐 겨우겨우 맥을 이어나갔고

현대 한국 불교의 지배적 종파인 대한불교 조계종 설립시

그 정통성을 혜능과 임제종, 지눌에 두는 걸로 선언하면서

오늘날까지 선 수행의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답니다.



임제종과 간화선을 받아들인 한국에 비해 일본의 불교는

조동종이란 종파와 묵조선이란 수행 방법을 현재까지 줄곧

계승해오고 있어요. 일본의 선 불교가 서구에 진출하면서

조동종도 함께 서양 세계에 전파되는 결과를 빚기도…



만다라 - 힌두교에서 유래한 불교 밀교식 미술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 이렇게 대승 불교가 꽃피우고 있을

때 정작 인도의 불교는 브라만교와 결합하여 신비주의 요소를

융합한 밀교로 변화하였고요. (그 결과 불교와 힌두교의 경계가

흐릿하게 희석해 버리고 인도에선 불교가 실전되고 말아요.)



이 밀교적 교리가 7세기 이후 티벳 불교의 강한 전통으로

자리잡아 오늘날 달라이 라마를 내세운 신비주의 속성을

서양 세계에서 꾸준히 어필하고 있어요.



신비주의 요소라 하면 점을 친다거나 사람이

환생한다거나 하는 비과학적, 반철학적 성격의

교리가 포함되어 갔다는 뜻입니다.



현대 티벳 불교의 지도자가 환생하여 존속한다는 신앙 논리가

이런 데에서 비롯된 거에요. 사실이냐고요? 글쎄요.. 교회에서

흔히 말하듯이 사실이냐가 아니라 믿느냐의 문제겠죠.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면 달라이 라마 역시 뭐...





전쟁과 선 -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 저서





서양 얘기 나왔으니 말인데 현재 북미 등지에서 불교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것은 맞는데, 주로 일본 선종, zen buddhism

이나 티벳 불교로 지나치게 치우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과거 60~80년대엔 서양 문화와 접근성이 있던 일본의 승려들이

건너가 선 불교를 유행시키는데 공을 세웠고요. 그 덕에 불교

개념이 서구 대중의 무의식에 자리잡는 성과도 거두었죠.


그러나 일본 불교의 고승과 선사들이 과거 제국주의 정국에 협조하며

중일 전쟁태평양 전쟁의 폭력상을 말리기는 커녕 공조한 책임도

분명하고 현재 이를 제대로 인정도 하지 않고 있어 여러 모로 욕먹을

상황이기도 해요. 불교가 평화의 종교란 대중의 선입견도 여기 와선

여지없이 무너지는 거에요.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00898#09T0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305140956251&code=116




티벳 불교의 제14대 달라이 라마





21세기 들어서는 198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제14대 달라이 라마

눈부신 활약으로 티벳 불교에 대한 장벽이 허물어지고 많은 사람이

관심과 성원을 보내고 있는 실정이에요.



달라이 라마란 인명이 아닙니다. 환생한다는 티벳 불교의 지도자를

가리키고 교황 비슷한 용어에요. 바티칸의 그분과 가끔 혼동하시는데 

전체 불교의 교황이란 뜻이 절대 아니고요. 한국, 일본, 중국, 태국,

베트남 등 나라의 다른 불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현존하는 14대 달라이 라마가 망명 정부를 이끌며 열심히 활동하는

덕에 서구 사회 유명인이나 지식인 중심으로 티벳 불교의 교세가

확장하는 추세라 하고요. 사실, 이 분을 스타로 만들어주는 쪽은

안티 극딜 활동에 여념이 없는 현대 중국 정부라 하겠죠.

까가 빠를 만든다, 빠를 만드는 것은 까라고나 할까.




원효대사 표준 영정





한국 불교사 최고의 인물은 원효 대사입니다. 해골물 에피소드만

널리 알려진 땡중 비슷하게 이미지가 굳은 느낌도 있는데 실재한

원효는 그리 만만히 볼 만한 사상가가 절대로 아니에요.



7세기 삼국 통일과 신라 중대 초기 원효 사상의 영향력은 한반도

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일본과 아시아 전역에 걸쳐 막강했어요.

대승기신론소는 당시 아시아 대승 불교 사상 전체를 통합한

7세기 불교학 최고의 논문이자 철학서라고 하죠.



조선 중기 퇴계학이 동아시아 성리학 최고의 정수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배우셨을 텐데, 대략 천 년 전 불교학계에선 원효

인물의 존재감이 드높았다고.. 평행 비교하면 될 듯해요.



따지고 보면 이렇게 유구한 전통을 갖고 있는 한국 불교인데도

세계화 부문에서 그다지 경쟁력이 없는 실정이고요.



세계화고 자시고 전에 가끔씩 쉴드를 쳐줄 수도 없는 심각한

사회 문제를 조계종 승려들이 열심히 터뜨리고 계셔서 일단

내부 정화가 훨씬 시급한 사안일 거라고… 본 블로거처럼

대부분의 조용한 불자들은 그렇게 믿고 살아간답니다.



어차피 다 죽으면 부질없는 걸, 뭐하는 짓들일까요 정말..

https://www.youtube.com/watch?v=jXFsbMYv4IA

https://www.youtube.com/watch?v=4wb6j-qvP1c



너무 비교되죠..? (미성년자, 심신 미약자 주의)

베트남 틱꽝득 스님의 1963년 소신공양



이외에도 할 이야기는 참 많지만 이만 줄이고요.

서구식 사고 체계에 젖어 있을 현대인들이 불교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오랜 편견이 아래에 정리되어 있사오니

점검 한 번 받아보십사 해서 링크 걸어요.









"공감을 눌러 주시면 큰 힘을 얻습니다"


and



Brexit : What the Hell’s That?






자, 21세기 국제관계학 역사에서 이만한 떡밥도 없어요.



스코틀랜드 및 카탈루냐 독립도 있고 팍스 G2 체제도 있고

북핵 관계를 둘러싼 북미의 기싸움도 있겠고,

강대국의 재미있는 떡밥은 여럿 있지만…



아니, 도대체 제국주의 2백주년을 향해 가고 있는 (1830년 기준)

작금의 인터넷과 AI의 시대에 도대체, 대영제국 씩이나 하는

그 나라가 저런 바보 같은 덫에 걸릴 거라고 그 누가 상상을..?






희생양




영국민은 EU에 왜 이질감을 느낄까요?

아니, 질문이 잘못 된 건지도. 영국인은 도대체가

왜 항상 유럽 대륙에 묘한 반감을 갖고 있냐고요?



일전에 백년 전쟁 얘기도 했거니와 영국이란 나라가

대륙인들의 기싸움에 휘말리지 않으려 용쓰는 기질이 있다는

점이야 굳이 영국 역사를 논문 쓸 듯이 달려들어 파대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인지하고 있잖아요.



브리튼 섬은 세계사의 중심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적어도 1776년 경 무렵까지는. 애덤스국부론을 출간한 해죠.

그리고 이 즈음에 증기 기관이란 것이 튀어나왔고 산업 혁명이란

것이 출범하야… 그 장구한 역사가 시작했어요.



산업 혁명과 산업 자본주의의 발흥. 하필 브리튼 땅에서 시작했죠.

그들의 총생산 능력이 그들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세상을 압도하는

경험을 대략 1830년대부터 겪게 된 영국인들.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앵글로 색슨계 백인종들의 편협하고 저급한 인류관이 이 지점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얻어 무소불위의 폭력적 양상으로 치닫게 되요.



결국 제국주의란 미성숙한 정치 의식이 폭발적 경제 생산력을 만나

잉태한 화학적 기형아라고나 할까. 나머지 세상을 집어삼켜 버렸죠.



정말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는 것은 아시죠?

그 중 상당수는 우리나라와 같은 제3세계 민족 국가의 백성들이었어요.

1840년 아편전쟁, 1876년 조일수호조규 이후… 불행의 역사였어요.



이백 해 가까운 세월 동안 수억의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겠죠?

그 중엔 이 포스팅을 읽고 계신 분들의 선친과 조상들도 많을 거에요.



요즘엔, 그 원혼들이 빚어 쌓아온 원한의 두께가 얼마나 겹겹이 축적해

지금 이 세상을 떠돌고 있을까, 하는 다소 종교적인 생각을 자주 해요.

(물론 개인적인 존중입니다. 취향해 주시죠.)



실로 사필귀정이라고나 할까.. 종교적인 신비주의적 체험이

정말로 현실에서 현현한 것일까.. 21세기가 되어 제국주의의 원흉이

된 나라에서 국제 관계의 지형을 뒤흔드는 일대 사변이 발생하죠.



정말 뜬금없는 낭설 같은 관점이지만, 본 블로거가 바라보는

브렉시트는 이러해요. 세상의 모든 일이 결국 쌓은 업보대로 가는구나.

무섭지만 냉엄한 현실이다, 누군가에게 부지불식 중에 죄를 짓지

않았는지 우리 자신도 뒤돌아보면서 살아야 하겠다.. 하는.





영국의 이 지경




시작은 가짜 뉴스포퓰리즘이라고 하죠.

하지만 순전히 거기에만 원인을 두는 관점에 동의하긴 힘들어요.



결국 병신 인증 투표를 한 누군가 수천만의 영국인은 존재한 거고

(12년 대선의 한국인들 51.6 퍼센트를 떠올려보면 공감하시죠.)

저학력 고연령 핑계 댈 것 없이, 개방 구조의 현대 자본주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대체가 아주 기본적인 사회적 이해도 없는

개돼지 그 자체의 집단 무식, 아니 집단 무의식이 있었던 거에요.



이민자를 배척하는 보수 정치인들의 몰아가기는 촉매제일 뿐

작금의 이 사태를 몰고 온 연료는 아닌 겁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왠지 그런가보다 싶잖아요. 아니 왜..

영국 여행해보신 분들, 니들 콜로니에서 왔니 운운하는 호호백발의

할배 할매들 가끔 마주치면서, 이건 뭐지 했던 경험들 있잖아요?

이 사람들 아직도 대영제국인 줄 안단 말인가, 경악했던…



돌이켜보면 제국주의의 악령에 휩싸여 희한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만의 집단 광기가 분명히 있었던 거에요. 그들의

조상이 오래 전 희생양으로 삼은 제3세계 백성들의 원혼이 곁에서

맴돌고 있었다고 상상해볼 수 있지 않나요. 강요는 안 해요.



저임금 이민 노동자 문제가 무의식의 기저에 깔린 근본 원인이라고

가정할 때 이 사안은 분명히 경제 문제라고 봐요. 저학력 저임금

영국 노동자 계층과 트럼프 시대 러스트 벨트의 상관 관계를

엮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다소 뜬금없지만 사실 문화 인류학적으로 이들 계층은 리버풀에서

비틀즈를 배출한 빌리 엘리어트류 문화와도 깊은 연관이 있긴 해요.)



이런 겉핥기 인식이 사회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을 외면하고

자기 인생의 비참함을 편의적으로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이

결국 문제인 거겠죠.



그리고 경제 문제가 본질이면서도 자신들이 소속한 경제 권역의

개방적 시장 구조가 어떤 거시 메커니즘으로 엮여 돌아가는지

이해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또 다른 문제일 거고요.



EU를 탈퇴한다고 대영제국이 부활하는 것 아니잖아요. 산업 혁명과

제국주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 아니고. 눈앞에 알짱거리는 재수없는

이민 노동자들이 투표와 함께 버튼 누르듯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거고.



한국 사회에서 가끔씩 터져 나오는 이주 노동자 처우와 관련한

왜곡된 일베식 사고와도 깊은 관련성을 연구해볼 수 있을 거에요.

동남아 등 개발 도상국 출신 이주민들, 재중 동포들, 난민들,

새터민들까지 논의를 확장할 수 있을지 모르고요.



예, 우리도 항상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문제입니다.

극우 쓰레기 사이트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소수 집단을 타겟으로 해

배설하듯이 토해내는 경향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이 문제와

브렉시트는 기저에 깊은 관계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거시 경제 구조의 성장 정체와 이에 복합적으로 연결된 개인의

삶의 질 개선의 사회적 문제를 우경화한 정치 의식에 위험하게

결합하면 영국이나 한국 아니라 세상 어디를 가도 이런 병신

인증 사태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요.



https://www.politico.eu/article/12-people-who-brought-about-brexit-leave-remain-referendum-campaign-euroskeptics-tension/





보수 정치 세력




영국민의 의식에 이런 위험 요소가 애초부터 있었고

이를 더욱 부추긴 것은 가짜 뉴스를 양산한 기레기 언론과

제국주의 부심 망령에 쩔어 살던 극보수적 정치 세력이었어요.



흔히 황색 언론으로 불리는 영국의 기레기 언론사로

더 선데일리 메일을 꼽을 수 있어요. 폴 데이커 같은

언론인이 탈퇴 여론을 주도했다고 하죠.



영국 보수당 배경의 정치가들로서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총리,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 나이젤 패라지 영국 독립당 당수 등을

꼽을 수 있어요. 브렉시트 5적이니 하는 악의적 표현도 심심찮게

유럽의 인터넷 게시판을 달구고 있죠.



그 중 도미닉 커밍스라고 정치 컨설턴트로 먹고 사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치밀하게 설계한 홍보 전략이 저소득 저학력 영국인

유권자를 자극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이야기 아실 거에요.

요사이 흔히 들어보셨을 Vote Leave라는 단순명료한 구호가

이 사람 작품이에요. 복잡하지 않은 메세지가 먹히는 법이죠.



지금은 이 사람이 일종의 만악의 근원으로 여러 밈의 소재로

쓰이고 있기는 해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이 사람 역할로 주연한

영국의 TV영화도 얼마 전 지상파에서 방영된 바 있고요.



일종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해요. 개돼지처럼 무식한 민중을 천재

한 사람의 전략이 이끌어 파국에 이르렀다고 하는 프레임을 덮어

전체 그림을 흐릿하게 만드는 거에요. 진짜 주범은 컨설턴트 한

사람이 아니라 구시대 의식에 사로잡힌 영국민과 극우 정치가

몇몇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Brexit란




그래서 브렉시트가 뭐냐고요? 간단해요.

영국이 EU에서 회원국으로서 자격을 스스로 탈퇴한다는 거에요.



그것이 영국에 좋은 거냐고요? 그렇게 좋은 거면 전 세계가 호들갑 떨며

이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겠어요? 영국의 총생산 중 수출입의 과반 비율이

EU와 직간접 연결되어 돌아가고 있는데 나라 경제의 절반을 걷어내

버린다는 극단적 결정이 걔네 살림에 도움이 되겠냐고요.



누가 내게 경제학을 가르친 적이 없어요, 이 핑계를 누구나 댈지는

모르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나라 살림이 어떤 구조로 돌아가는지

이해하는 영국민의 기본 상식이 그 정도 수준인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이쯤 되면 영국 교육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실측 연구

정도 나와야 하지 않남..



https://www.ons.gov.uk/economy/nationalaccounts/balanceofpayments/bulletins/uktrade/january2016





EU란




그럼 EU 입장에선 영국 나가는 게 좋아요? EU의 격앙된 반응을

보고 EU는 좋아하나보다 오해하시는 분들 있는데, 절대 아니에요.

작금의 EU에서 GDP 크기로 빅쓰리가 독영불이고 그 중 하나가

떨어져 나가면 EU 전체의 크기가 쪼그라드는데 이걸 왜 좋아해요?



팍스 브리태니카의 시대가 끝난 것은 1차 대전 종전과 함께였고

이젠 영연방 연합체의 종이 호랑이 신세지만 그래도 아직 유럽에선

영국 정도의 크기가 먹어줘요. 충분히 대국으로 대접받을 만큼.



EU의 궁극적인 목표는 북미 = 즉 미국에 대항하는 독자적인

덩어리를 구축하는 거에요. 통합이란 방법을 통해서. 대체 왜?

똘똘 뭉쳐 전체 파이의 크기가 커지면 일종의 단체 교섭 협상력이

커지기 때문이죠. 정치든 경제든 군사든 몸집을 늘리는 데서

오는 이점이 분명히 있음은 직관적으로 이해하시죠?



아, 물론 미국 대신 러시아를 대입하여 이 말을 다시 써도 충분히

성립해요. 어차피 지금은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이긴 하지만서두.

경제적으로는 미국에 대항하여, 군사적으로는 러시아에 대항하여,

EU의 정치적 동력이 발동하고 있다고 보면 대체로 맞겠죠.



참고적으로 어디서 EU에 관해 아는 척 하시려면

마스트리히트 조약 정도는 언급하세요. 92년이죠.

이때 지금의 유럽 연합이 탄생했어요. Maastricht Treaty.



국경을 없애고 여권 검사와 통관을 배제하기 시작한

솅겐 조약은 85년부터 일찌감치 시작했어요. 영국은 애초부터

여기 가입 안 했으니 해당 없지만. Schengen Agreement.



유로존이라는 단일 통화 지역의 출범은 EU 결성 후 99년부터

시작했죠. 유로라는 지폐가 99년부터 세상에서 쓰였다는 말.

아시다시피 영국, 스위스, 스웨덴, 덴마크 등과 폴란드, 체코 등

동유럽권 많은 나라가 통화 통합까지는 참여하지 않고 있어요.



(EU의 실체를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정리하여 비판하는 분이

많겠습니다만, 상세한 논설은 추후 한가할 때 하는 걸로 하고

오늘은 이 정도로만… 사실 EU 하나만 논해도 수백 개 포스팅에

논문만 해도 수만 편이 나올 테죠. 양해해 주세요.)





북아일랜드?




백스톱이란 것이 있어요. 백스톱을 이해해야 브렉시트를

영국인처럼 이해하는 건데요. backstop. 사전에서 찾아 보셨나요.

우리말에 가장 가깝게 번역한다면 안전 그물 정도에요.

높이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추락 사고 방지한다고 설치한 거..



브리튼 — 유럽 관계에서 지그시 지도를 응시했을 때 이 안전망이

어디를 가리키는 것일까, 직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요. 바로

북아일랜드이죠.



북아일랜드 하면 무엇이 떠오르세요. 70~90년대 할리우드

첩보 액션 영화에서 영미 정보 당국과 IRA 간 암투 소재물이

많이 떠오른다면 정확하게 접근한 거에요.



아일랜드 섬에서 북쪽만 영국 땅이고 아일랜드와의 사이에

국경 검문이 존재하는 현상은 거북하고 부자연스러운 일였어요.

(물론 무려 헨리 8세 시절부터 깊은 역사의 배경이 있지만

여기서는 과감하게 생략하죠.)



그래서 대전 후 현대사에서 북아일랜드 사람들은 줄기차게

영국에 저항했어요. 그러다 80년 광주와 매우 흡사한 민중 저항

비극, 72년 블러디 선데이 사건이 북아일랜드에서 발생하죠.



간단히 말해 영국 공권력에 의해 수많은 아일랜드계 사람들이

희생 당한 사건이에요. 폭력 테러의 단초를 제공한 병크였죠.

누르면 꿈틀하는 것, 당연하지 않겠어요.



본래 20세기 초반부터 존재한 단체 IRA의 폭력 활동이

정당성을 획득하고 90년대 말까지 꾸준히 계속되었으며

98년 토니 블레어 재임 기간 중 역사적인 굿 프라이데이

협약으로 30년의 투쟁이 공식 종료합니다.



영국와 아일랜드계 간의 상호 폭력은 정말 지긋지긋한

사건의 연속이었어요. 영국의 현대사에서 다시 떠올리기

싫어할 과거의 오점인 거죠. 우리 광주나 세월호처럼.





Backstop Proposal




자, 이렇게 현대 영국 문제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북아일랜드입니다. 지금은 북아일랜드와 남쪽의 아일랜드

공화국 사이에 국경이나 검문, 검역이 없이 자유 시장 체제에

의한 교역 구조를 갖고 있어요. 근데 영국이 나가 버리면?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필요 없던 국경선이 생겨 버려요.

울타리 몇 개 두르는 문제 아니겠죠? 경제 사회 구조 전체에

소용돌이 같은 파문이 연쇄적으로 꼬이고 꼬이는 거에요.

맙. 소. 사.



영국 현대사의 부자연스러운 맹장염 같았던 북아일랜드를

브렉시트 구조에서 어떻게 다룰 것인가 관련한 과도기적

연착륙 절차로 한창 논의 주제로 떠오른 대안이 바로

백스톱인 겁니다.



안전망인데요. 영국이 정치경제의 카오스에 빠지지 않게끔

한 다리 안전하게 거쳐서 가라고 하는 안전 그물인 거에요.

북아일랜드를 일종의 중간 지대처럼 활용하고자 하는.

EU가 제안한 건데 그나마도 영국인들이 상황을

더 배배 꼬게 만들고 있어요.



그런데 웃긴 건요. 중간 안전망처럼 쓰여야 할 북아일랜드가

되레 걸림돌처럼 변질되는 상황이 되는 거죠. 빼버릴 수도 없고

딱히 도움도 안 되고, 도대체 이걸 어떻게 취급해야 하지 하는. 풋.



북아일랜드를 둘러싼 백스톱을 실현할 대안으로서 어떠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가정할 수 있는 상황을 한번 나열해 볼까요.




1번, 영국과 북아일랜드가 관세 동맹을 맺는 것. 소프트 보더.

2번, 북아일랜드와 EU가 독자적인 관세 동맹을 맺는 것.

3번, 영국과 북아일랜드가 관세 동맹을 맺는 것. 하드 보더.

4번,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되 다시 EU와 관세 동맹을 맺는 것.




영국이 추구하고 싶어하는 타협안이 1번이에요.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 사이에 느슨한 국경이 새로 생기는 거죠. 영국이 원하는 이유는

교역의 이익을 기존 그대로 놔둘 수 있기 때문이고, 역으로 하면 EU가

이 안을 받아줄 이유가 전혀 없는 거에요. 자신들이 저질러 놓고 영국의

국익을 뭐하러 보존해 주겠어요. 실현 가능성도 낮아지고 있고요.



1번보다 영국의 국익을 깎아내는 안이 2번이에요. 해협을 사이에

두고 브리튼 섬과 북아일랜드 사이에 자연적인 국경이 새로 생기죠.

북아일랜드는 본국의 병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게 독립의

계기가 생기는 거에요. 영연방 연합을 부르짖는 보수적인 세력이

당연히 싫어하는 안이고 현실적으로도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가만히 놓아 두면 노딜 브렉시트가 되고 그럼 3번의 하드 보더 상황이

느닷없이 들이닥치게 되요.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 사이에 강력한

국경이 새로 생깁니다. 본래 경제 공동체 상태인 하나의 섬이므로 이렇게

갑작스런 안엔 아일랜드 공화국이 반대합니다. 문제는 아무 타협 없이

브렉시트가 이루어질 경우 실제 이렇게 될 확률이 가장 높다는 거죠.



EU가 가장 원하는 안이 4번이에요. 그말인즉슨 영국의 국익을 가장

해치는 안이란 뜻. 기존의 경제 교역 관계는 그대로 두고 회원국으로서

정치적 발언권은 싹 제거하는 안이거든요. 탈퇴하면 더 이상 회원국이

아니니까요. 당연히 영국이 가장 피하고 싶은 안이겠죠. — 참고로 현재

노르웨이가 EU 관계에서 취하고 있는 스탠스와 유사한 안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1번 소프트 보더 < 3번 하드 보더 < 4번 관세 동맹

순으로 EU의 입장이 나아지고 영국의 국익이 점점 줄어드는 거에요. 2번

안은 중간에 이론으로만 가정해볼 수 있는 건데 실제로는 일어날 상황이

전혀 아니니 2번은 거의 제껴두어도 무방할 듯해요.



현재 영국이 관세 동맹 새로 체결하겠다고 움직이고 있지도 않고, 사실

관세 동맹이고 자시고 간에 자기들 내부 상황도 정리 못하고 허둥대고

있으니 현실적으로 양 극단의 4번과 1번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낮은 것

아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예상해요. 실제로는 3번 언저리의 엄청나게

어정쩡한 형태로 유럽 경제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라고 보고 있죠.



결국 현재 스코어로 볼 때 아일랜드 공화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노딜

브렉시트로 백스톱이 무산되고 이는 곧 기이한 형태의 하드 보더

생길 것이다…는 예상이 가능해요. 어디까지나 현재 스코어로.



아일랜드 공화국은 EU의 기존 회원국이므로 이들의 반대를 무마하고

손해를 보상할 방안이 필요할 텐데… 머리 아파요. 우리 문제도 아니고

유럽 사람들이 생각해 내겠죠 뭐.



https://www.msn.com/ko-kr/news/national/eu-노딜-브렉시트는-하드보더-첫-유권-해석/ar-BBSBWCS





Indicative Votes




16년 6월 23일의 국민 투표 이래 지난한 과정을 거쳐 아직도 노답

고구마의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바, 지난 19년 3월 27일에 영국

하원에서 ‘좋아, 그럼 갖고 있는 모든 대안 늘어놓고 표결 한 번

해보자’ 하는 의향 투표, indicative votes가 실시되었어요.

물론 이건 국민 투표 아니고 의회 본회의 표결.



아래의 여덟 가지 대안이 의안으로 나왔죠.

A. (존 배런) 노딜 브렉시트 가자

B. (닉 볼스) 커먼 마켓 2.0 - 노르웨이 모델로 가자

C. (조지 유스티스) 브렉시트 이후 EFTA 가자

D. (켄 클라크) EU 관세 동맹은 잔류하자

E. (노동당, 제레미 코빈) 4번 안 + EU 발언권 얻어낼 수 있다

F. (조애너 체리) 리스본 조약 50조 - 협상 시계 되돌리자

G. (마가렛 베켓) 국민 투표 한 번 더 하자

H. (마커스 피쉬) 기존 체제 유지 협상으로 가자



한껏 복잡한데, 그래서 결과는? 모조리 부결되었어요.

이제는 정말… 웃픈 것이 아니라 슬퍼지네요.



https://www.bbc.com/news/uk-politics-47726787

https://www.bbc.com/news/uk-politics-47671056

https://www.theguardian.com/politics/2019/apr/01/brexit-what-are-the-indicative-votes-mps-will-vote-on





propaganda + fake




이 모든 병신 짓의 시작은 어느 지점이었을까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국민 투표에 부친 순간, 그리고

vote leave란 심플한 캐치 프레이즈가 확장된 기간이라고 봐요.



캐머런 자신은 잔류파였어요. 대 영국의 총리라는 사람이

거시 경제 구조를 이해 못할 정도의 바보는 아니지 않겠어요.

다만 사람들이 그렇게 현혹될 줄 예상 못한 것이 패착 요인이겠죠.



혹자는 영국이 파운드 대신 유로 쓰는 나라였다면 이렇게

바보 같은 투표는 하지 않았을 게다, 예측도 해요. 하긴 평범한

일반인들이 매일 쓰는 돈 하나 보고 겨우 경제를 파악하는 것이

당연하겠다 싶으면서도…



저 위에 농담처럼 싸질러 썼지만 국가의 교육이 정말 제대로

가고 있었을까 고민해 보십사 제안한다니까요. 유럽인들께.



평범한 사람들의 무사안일한 현실 인식이 포퓰리즘 같은

정치 프로파간다와 화학 결합할 때, 영광스러웠던 한 나라의

체제를 얼마나 무너뜨릴 수 있는가.



브렉시트의 핵심은 한 마디로 이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제국주의 희생자들의 원혼이 여전히 살아 숨쉬고 계신 거죠.



또한 백년 전 두 번에 걸친 영일 동맹경술국치

간접적 동인이었음을 언제나 잊지 맙시다.

가짜 뉴스 조심하세요~








한국인 입장에서 이해할 때 간결한 이해는 영국에서 공부하신

김흥종 연구원 설명이 가장 적당한 듯해서 링크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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