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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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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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락 보컬은 이 분이 등장하기 전과 등장한 후로 나뉜다.

그리고 모든 락 음악은 이들 이전과 이후로 나뉘기도 하고.

오늘날 락 음악에 종사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예술 세계에

영향을 주고 10년 여의 활동 기간을 뒤로 한 채 활활 불태우고

홀연히 떠나간 비행선 같은 전설의 뮤지션들...



락 보컬의 원형을 제시한 로버트 플랜트 Robert Plant

(1948~).. 그리고 여기에 레드 제플린에 대한 이야기이다.









객관적 평가의 이야기를 해볼까. 프레디 머큐리를 18위에

올려놓은 롤링 스톤 지의 시대를 초월하는 위대한 가수들

100명 랭킹에서 플랜트는 15위를 차지했다. 영국 방송사

플래닛 락의 2009년 조사에서 그는 락 음악계 가장 위대한

보이스로 선정되었고, 미국 방송사 NPR의 2010년

조사에선 50명의 위대한 목소리 중 하나로 뽑혔다.



헤비메탈 전문 매거진 히트 퍼레이더가 2006년에 발표한

100명의 위대한 남성 메탈 보컬리스트 랭킹에서 그는 당당히

1위이다. 재미있는 건 그에게 영향을 받은 동료와 후배들이 이

랭킹의 하단에 줄줄이 위치한다는 점. 2위의 롭 핼포드, 3위의

스티븐 타일러, 6위의 프레디 머큐리, 13위의 게디 리 등등.



여러분들이 인식하고 있을 법한 명가수나 보컬리스트들이

자신들이 영향을 받았다고 한 번 쯤은 언급한 전설이 바로

이 분인 것. 그 프레디 머큐리마저도. (데뷔와 히트 연도로

치면 5년 정도 앞서니 선배 맞다.) 멀리 갈 거 없이 이 분

그냥 별명이 락앤롤의 신이란다. 뭐 더 설명이 필요한지.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singers-of-all-time-147019/robert-plant-5-225584/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은 락 음악과 하드락 역사에

분수령이자 분기점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60년대말 락앤롤

장르가 블루스사이키델릭에서 변화하는 시점이 늦춰졌을

것이고 70년대에 헤비메탈이 분화하는 데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심지어 프로그레시브 장르에도 여파가 미쳤을 거다.

포크에도 어느 정도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거다. 한

마디로 비틀즈와 작별한 음악계의 다음 정착지였던 셈이다.



리더이자 구심점은 흔히 바보들의 3대 기타리스트로 꼽히는

지미 페이지. 그 셋을 배출했다는 야드버즈가 사실상 와해된

야드버즈를 결성하려고 멤버를 끌어모으던 중 가장

먼저 리쿠르트한 인물이 보컬리스트 로버트 플랜트였다.

'이렇게 뛰어난데 왜 아직 묻혀 있었지' 라고 생각했단다.



밴드 오브 조이란 데서 노래하던 플랜트야드버즈 후신

성격의 프로젝트를 수락하고 동료인 존 본햄을 드러머로

추천한다. 제프 벡과의 레코딩 협업을 통해 페이지가 원래

알고 지내던 존 폴 존스를 영입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전설의 진용은 이렇게 완성된다. 1968년 8월쯤. 처음

잼을 맞추며 서로 불꽃이 튀었고 성공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겠다는 확신이 섰다고...



신인이면서도 이미 음악계의 주목을 받고 있던 이들은

68년 9월초 당장 덴마크 클럽에 섰고 그 달 말엔 9일간

후다닥 첫 앨범을 녹음해 버린다. 즉 69년 1월 발매로

알려진 역사적 데뷔 앨범은 사실 전년도에 이미 만들어

놓은 것. 젊고 뜨기 전이지만 이미 음악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로 소문이 자자했던 그들. 만나자 마자

서로를 알아보고 화학 반응을 일으킨 것 아니겠는가.



 (Led Zeppelin)



 (Led Zeppelin)




역사상 가장 위대한 데뷔 앨범으로 꼽히는 Led Zeppelin.

이렇게 나온 결실이다. 밴드 이름을 정하는 데는 더 후

키스 문이 팁을 줬다는 소문도 있었다. - 페이지 친구. 앨범

커버에는 1937년에 미국 뉴저지에서 폭발한 독일식 LZ

129 힌덴부르크 비행선의 사고 사진을 실었다. 그리고

비행선이 폭발했듯이, 앨범은 대박으로 폭발해버린다.



I의 전반적 장르는 블루스락 또는 헤비블루로 요약된다.

발표 후 세상을 놀래킨 대곡 Dazed and Confused

보여준 끈적한 중량감이 입증한다. (69년 기준) 일찍이

블루스가 이토록 무거운 공격성을 보여준 적이 있었던가.

플랜트의 야성적 팔세토와 페이지의 창조적 솔로잉, 이

한 세트가 음악사의 브랜드가 될 것임은 앨범 하나로도

충분히 알 만한 일이었다. 페이지가 현악기 활로 기타에

보윙을 시도하는데 즐거운 해프닝 같은 것이었



Good Times Bad Times Communication

Breakdown 같은 곡에서 페이지의 프로듀싱 능력과

밴드의 상업적 표현성이 심상치 않음을 드러내기도.

히트할 튠을 조율하는 감각에 있어 당시 일정한 절정에

근접하고 있는 네 사람의 발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

Babe I'm Gonna Leave You는 이후 앨범에서

계속 등장할 서정적 작품군의 프렐류드 같기도.





('Dazed and Confused' from Led Zeppelin, 1969)



('Communication Breakdown' from Led Zeppelin, 1969)


('Good Times Bad Times' from Led Zeppelin, 1969)



 (Led Zeppelin II)




음악을 듣다 보면 그런 게 있다. 이 앨범, 도대체 버릴 노래가

있긴 한 건가. 그때 우린 명반이란 말을 떠올린다. 모든 트랙이

필청이란 말씀. 투어와 스튜디오를 왕복하며 1년쯤 준비해

10월에 낸 Led Zeppelin II가 딱 그런 경우였다. 아니, 솔직히

I은 블루스 안 내키는 사람도 있을 테니 그렇다 치자. 이제부터

나오는 그들의 앨범은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음악사를 새로

쓰기 시작한 것. 비틀즈스톤즈 이후 이런 일이 있었던가.



아 물론, 저작권 개념이 흐릿한 페이지의 표절 시비가 있긴

하다. 허나 하나의 완성된 트랙을 만들어 앨범 전체의 일관된

톤을 프로듀싱하는 능력에 있어, 레드 제플린을 폄하할 수

있겠는가 싶다. 평론가와 언론이 종종 이들의 최고 작품으로

꼽으며 가장 유명한 기타 리프를 가진 Whole Lotta Love

들으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게 마련. 2012년에 롤링 스톤 지가

들 최고의 명곡 40곡을 엄선한 때도 이 곡이 '당연히' 1위..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도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the-40-greatest-led-zeppelin-songs-of-all-time-154694/whole-lotta-love-1969-170042/



본작에선 역대급의 세션으로서 리듬 파트를 탄탄하게 받쳐

라이브를 살아있는 활어로 만드는 존스본햄의 진가가 특히

두드러진다. 톨킨반지의 제왕 노래한 Ramble On

리드밍 커플 조화가 매력적으로 두드러지는 트랙이며

특히 팬덤에서 인기가 높다.



섹드립 가사로 알려진 The Lemon Song에서 존스의 베이스

라인과 진저 베이커에 영향받은 Moby Dick의 본조 드러밍은

절정감을 선사할 게다. (본조본햄의 별명) Heartbreaker

흔히 헤비메탈 장르의 효시를 논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작품이고

플랜트의 불륜을 소재로 한 What Is and What Should

Never Be 역시 필청의 트랙이다.



물론 이미 수많은 음악이 나와 다양한 장르가 발전한 지금의

기준으로 본작이 대단하게 들리지 않을 수도. 하지만 한때는

락 음악과 헤비메탈이 음악의 대세였던 적도 있고 수많은 후배

음악가들의 작곡에 기준점을 제시한 앨범이란 점을 명심하시라.

앨범 차트 1위 및 플래티넘 기록 등 상업적인 성공도 전작보다

더 대단했고 여러 모로 레드 제플린 전체 디스코그래피에서

II는 복기할 만한 중요도를 가지는 걸작 앨범임에 틀림없다.



('Whole Lotta Love' from Led Zeppelin II, 1969)



('Ramble On' from Led Zeppelin II, 1969)



('Heartbreaker' from Led Zeppelin II, 1969)




 (Led Zeppelin III)




강렬한 Immigrant Song을 내세워 1년 후 70년 10월에

낸 Led Zeppelin III는 그들 음악의 또 다른 뿌리브리티쉬

포크의 색채가 강해 락 키즈를 적잖이 당황케 했다. 최근에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쓰여 슈퍼히어로와의 엄청난

싱크로를 자랑한 이 곡플랜트 보이스의 야수적 매력을

초극강으로 끌어올려 밴드메이트들에게 인기가 높......지만

샤우팅 난이도 땜에 아마추어들에겐 언감생심이기도.ㅋㅠ



전체적 평가가 초월적 완성도를 지닌 다른 앨범에 비해 약간

박한 편이지만 차트 1위 같은 상업적 성공은 여전했다. 헤비

블루스의 미학이란 면에서 Since I've Been Loving You

엄청난 트랙이 실려 아시아 등지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블루스

고전을 모던한 어쿠스틱 감성으로 뒤살린 Gallows Pole,

무그 이펙트에 연결한 기타 인트로가 인상적인 Celebration

Day도 팬덤의 성원을 얻기에는 충분했다.



('Immigrant Song' from Led Zeppelin III, 1970)



('Since I've Been Loving You' from Led Zeppelin III, 1970)

(흡사 레이 만자렉을 연상시키는 존스의 세션..)




 (Led Zeppelin IV) (untitled)




도대체 버릴 노래가 있긴 하나 싶은 앨범. 이런 작업을 해낼

기회는 절대 자주 오지 않는 법. 락 음악의 시대 70년대에

뮤지션 커리어의 전성기를 보낸 레드 제플린은 그런 기회가

몇 번씩이나 찾아온, 달란트와 행운이 넘치는 밴드였는데...



Led Zeppelin IV - 사실 제목이 없는 untitled라 칭해야

옳긴 한데 - 는 그런 앨범이면서 동시에 음악사상 가장

성공한 앨범이기도 하다. 때는 III가 나온 후 약 1년 지난

71년 11월쯤. Stairway to Heaven이 수록된 앨범이다. 뭘

모르는 사람은 이 곡 하나만의 인기로 잘 나갔다고 착각하기도.



I - 사이키델릭, II - 하드락, III - 포크, 그리고 전체 세계관에

공통 기반이 되는 블루스로서, 자신들 음악의 바탕을 규명한

거라면 IV는 세 가지 뿌리를 통합한 완전체라고나 할까.

프로그레시브에 가까운 스테어웨이 투헤븐만 들어봐도 여러

장르의 색깔이 드러나지 않는가. A마이너 키의 어쿠스틱

아르페지오가 오버더빙된 Mellotron M400과 어우러진

인트로.. 디스토션 걸린 기타와 본조의 드러밍 템포를

올리고 플랜트의 팔세토가 텐션의 정점을 찍는 구도.. 풍자에

신비주의가 배합된 가사까지.. 당대 락 음악의 정수인 것이다.



Gibson의 상징과도 같은 페이지는 다양한 톤을 동시에

구사하기 위해 라이브에선 더블넥 기타를 자주 사용했다.

보통 12현과 6현 넥이 결합한 EDS-1275를 썼다. 존스

샘플러는 주로 Mellotron이었다가 Yamaha GX-1 나오니

유행을 따라 엘렉톤을 차용하기도.



(Gibson EDS-1275)



(Mellotron M400)



('Stairway to Heaven' from Led Zeppelin IV, 1971)



(가장 유명한 73년 매디슨 스퀘어 가든 버젼)




근데 본작의 명곡이 이게 다가 아니란 것. 영원한 락 앤썸

Rock and Roll은 뭐 워낙 유명하니 그렇다 치자고. 진짜

놀라운 건 Black Dog 아니던가. 페이지의 리프가 아무리

날뛰고 놀아도 꿋꿋하게 rock-steady한 본햄의 드러밍이란.

이 곡의 하이노트는 난이도가 너무 높아 플랜트 본인도 녹음

때 말고 라이브에서 왠만해선 시도 안 한다며.



평단이 입이 마르도록 칭송하When the Levee Breaks.

(1927년 미시시피강 대홍수둑이 무너진 일이 배경이란다.)

컨트리와 블루스가 적정 배합하여 오묘한 이 분위기는 도대체

뭐란 말인지. 포크 미학의 함수 같은 Going to California

까지.. 가만 보면 숨어 있는 포크풍 트랙의 아름다움도 도무지

만만치가 않다.



IV.. 전 세계에서 3700만 장이 팔렸고 역대 미국 음악 시장

최고의 성공작 중 하나이다. 락 밴드의 디스코그래피에서 4집

쯤 와서 정점을 찍는다는 징크스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카더라.



('Black Dog' from Led Zeppelin IV, 1971)



('When the Levee Breaks' from Led Zeppelin IV, 1971)



('Rock and Roll' from Led Zeppelin IV, 1971)




 (Houses of the Holy)




IV에서 세계적 대폭발을 일으킨 레드 제플린 그들 커리어

최절정의 정점을 찍은 것은 사실이었다. 이제 하강할 일만

남았겠지만 실력있는 음악가의 저력은 하락 곡선의 낙폭을

얼마나 완만하게 조율해낼 수 있는가 여부에 달린 것. 73년

3월에 발표한 새 앨범은 신기하게 넘버링하던 패턴을 깨고

Houses of the Holy, 성스러운 행위의 장소란 제목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네 명의 전설이 적어도 음악적 완성도에선

아직도 할 이야기가 많음을 입증하는데 충분했다.



어찌 보면 전작의 몇 곡처럼 강렬한 임팩트가 부족해 보일진

모르나 그만큼 전작이 엄청났다는 것일 뿐. 곱씹어 감상한다면

한 곡 한 곡 충만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완성작임을 알 수

있을 터이다. 산뜻하고 강한 오프닝 트랙을 배치하는 전통을

좇는 The Song Remains the Same이나 어쿠스틱에

적당히 하드함을 섞은 Over the Hills and Far Away 등,

빈틈을 찾아볼 수 없는 트랙들이 지금까지 표현하지 않은

빈틈을 찾아들어와 팬덤을 만나고 있었다.



처음으로 레게를 끌어온 D'yer Mak'er(자메이카를 영국식

영어로 음차한 말)나 EMS VCS3Moog Taurus 다루는

존스의 영향력이 돋보인 No Quarter를 들으면, 팬덤 스스로

능동적으로 곡의 매력을 찾아 탐험할 필요가 있다고 호소하는

듯하다. 아마도 멤버들이 생각한 본작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The Ocean 아닐까 하는데, 치기어린 8분의 15박자 (15/8)

메인 리프가 안기는 청량감이 후대 아마추어 기타리스트 팬덤의

열광적 지지를 지금까지도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존 폴 존스의 장비에 관한 해설)

http://www.mixdownmag.com.au/gear-rundown-john-paul-jones



(EMS VCS3)



(Moog Taurus)




상업적 성공은 더 이상 관심거리도 아닌 거물이 되어버린지

오래. 본작도 판매 성과는 여전히 고공 행진이었고 발매 직후

단행한 북미 투어도 성공적이어서 그 기록을 훗날 라이브

앨범으로 남길 정도였다. 74년엔 스완송이란 자체 레이블을

설립한다. 본작 트랙에 대한 평가가 평단은 오버더힐스~,

팬덤은 오션 쪽으로 갈리는 듯하나 사실 두 곡 다 고른 지지

받는다. 완성도 충만한 트랙들로 전곡을 꽉꽉 채운, 오랜만에

감상한 거장의 수작이랄까... 한 마디로 본작을 정의한다면.



('The Song Remains the Same' from Houses of the Holy, 1973)



('Over the Hills and Far Away' from Houses of the Holy, 1973)



('The Ocean' from Houses of the Holy, 1973)




 (Physical Graffiti)




2년쯤 시간이 흐른 75년 2월 Physical Graffiti란 또다른

명반이 나온다. 무려 더블 앨범으로서 스완송 레이블 설립

직후 의욕으로 충만했던 듯하다. 준수한 완성도를 가진 곡을

두 배로 선물한 것. 일반 대중에게 명곡 Kashmir를 수록한

앨범으로 유명한 바로 그 작품. 흔히 그들식프로그레시브

불리는 대곡이고 아랍풍 음률을 차용한 폴리리듬의 리프가

대단히 유명하며 존스본햄의 탄탄한 백업이 다른 어떤

곡에서보다 더 두드러져 음악사에 길이 남을 걸작 트랙이다.



(백인의 락에 관심 두지 않는 자존심 강한 흑인 랩퍼들마저

샘플링하여 사용한 이야기.. 이젠 다들 아실 거다.)

*캐쉬미어의 폴리리듬에 대해선 아래 링크 동영상의

4분 50초경부터 보면 알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vOm2oZRQIk



점입가경은 본작의 대작이 하나가 아니란 것. 11분짜리 대곡

블루스 In My Time of Dying이나 9분에 약간 못 미치는

프로그레시브 In the Light에 이르면, 초창기 느린 대곡을

실험하던 정신으로 돌아가려는 이들의 초심을 읽을 수 있다.

The Rover, Houses of the Holy, The Wanton Song

등에선 페이지가 얼마나 빼어난 리프를 만드는 장인이었는지

깨닫고 다시 장탄식하게 될 거다. 기타 트랙 14개를 중첩한

오버더빙으로 촘촘하게 리프를 엮어낸 Ten Years Gone,

본조의 베이스 파운딩이 작렬하는 Sick Again.. 쉴 틈이 없네.



개인적으로 존 폴 존스가 가장 이상향의 뮤지션인데 그가 연신

Hohner Clavinet을 그루브하게 때려대는 미칠 듯한 매력의

트랙이 Trampled Under Foot이다. 72년에 크게 히트한

스티비 원더Superstition에서 영향받았다 하며 안 그래도

모타운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여기서 존스부커 T. 존스

빌리 프레스턴 같네. 이들이 선보인 흔치 않은 funk 곡이다.

75년 5월엔 본작의 엄청난 흥행에 힘입어 런던의 얼스코트

아레나에서 전석매진 공연을 5일간 벌여 인기를 입증하였다.



(Hohner Clavinet D6)



('Kashmir' from Physical Graffiti, 1975)



('The Wanton Song' from Physical Graffiti, 1975)

(앞부분에 다른 곡의 리프가 섞여 있다.)



('Trampled Under Foot' from Physical Graffiti, 1975)




 (Presence)




76년 3월에 발매한 Presence 앨범은 그들의 하락세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증거 같기도 하다. 존스-본햄 듀오의

리드미컬한 백킹이 10분 이상 이어지는 인상적 오프닝

Archilles Last Stand가 매력적이며, 오버더빙으로

겹겹이 쌓아올린 페이지의 차랑차랑한 리프가 여전히

독창적이지만, 약간의 자기 복제가 느껴져 예전 만큼의

파괴력이 두드러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세션 셋에 비해 플랜트의 역량이 뭔가 허전하다고

느꼈다면 정확히 들은 거다. 이때 교통사고로 약 1년간

휠체어 신세를 면치 못했고 앨범 녹음도 앉아서 진행했던

것. 이 덕에 전작처럼 진하게 블루지하게 는 진지함도,

5집의 Song Remains~처럼 날카롭게 찌르는 스킬

2프로쯤 부족해 보인다.



Song Remains~ 끝나기 직전에 선보인 찌르는 샤우팅

플랜트가 전성기에 선보인 초고음 중 거의 마지막이라고

보는 것이 보통 통설인 듯하다. 사고를 당했다고는 하나

아직 젊은 나이인데 몸 상태에 무리가 있다기보단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플랜트의 음악 성향이 중저음을 개발하는

쪽으로 변화해가고 있음을 읽을 수 있겠다.



밴드의 공연 투어는 여전히 잘 나가고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내외부의 음악 환경이 변화하고 있었다. 그래도 Nobody's

Fault But Mine 같은 트랙은 여전히 강하고 광채가 난다.

77년 4월의 미시간주 폰티악 실버돔 공연은 7만 6천이 넘는

유료 관객을 기록하여 기네스북에 올랐다. 지속된 성공 속에

악재가 끼기 시작했는데 본햄과 공연 스탭들이 폭행건으로

체포되기도 했고 77년 7월엔 플랜트의 다섯 살 된 아들이

질환으로 유명을 달리 하여 충격을 주기도 했다.



('Achilles Last Stand' from Presence, 1976)



('Nobody's Fault but Mine' from Presence, 1976)




 (The Song Remains the Same)




정규 앨범이 아님에도 76년 10월 현역 시기에 낸 유일한

라이브란 의의 때문에 The Song Remains the Same

레드 제플린을 탐구하는 사람들에게 필청의 음반이다. 녹음은

73년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을 담은 것이기 때문에

정말 전성기의 따끈따끈한 활동상을 거의 유일하게 저장한

앨범이다. 동명의 콘서트 영화도 있으니 플랜트의 전성기가

궁금한 분들은 반드시 참조할 만하다.



사실 라이브 발매 당시인 70년대의 평가는 좋지 않았다. 특히

3년쯤 전에 발매된 딥 퍼플의 라이브 Made in Japan이 워낙

출중한 완성도로 명성이 자자했던지라 여러 모로 비교질을

당한 셈. 두 밴드의 합주 스타일에도 차이가 있었던 것이, 각자

개인 연습을 충실히 해서 서로 완벽하게 합을 맞추는 전략으로

임한 딥 퍼플에 비해 - 존 로드리치 블랙모어가 클래식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전통적인 어법으로 음악에 접근한 것 -,

개개인의 자유도를 중시하며 페이지의 리딩에 충실하게 따른

레드 제플린은 라이브에서 미스 노트가 잦다거나 레코딩과

너무 동떨어진 애드립으로 노는 경우가 꽤나 발견된 것이다.



이 라이브에서 백미는 역시 Dazed and Confused듯.

6분 30초 곡을 무려 27분 길이로 만들어 놓았다. 동명의

영화 사운드트랙이란 형식인지라 약간 생뚱맞은 연기 씬도

들어가 있어 나름 재미를 느낄 수도. 한창 전성기 젊고 고운

멤버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가치도 있다. (또한 보고 싶은

본조의 생전 모습 역시...) 스테어웨이 투헤븐의 가장 유명한

라이브 버젼이 수록되어 있단 이유로도 들어볼 만하겠다.

마지막 사이키델릭이라는 Whole Lotta Love도 스튜디오

버젼과 상당히 다른 이펙트가 있어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다.



(왜 들어갔는지 이해가 잘 안 되는 콘서트 영화의 초반 스토리 씬)





(앞부분Heartbreaker. 4분께부턴 Whole Lotta Love.)



(이건 동명의 트랙을 노년의 라이브에서 연주한 비디오)

(노년에 키를 낮춰 부르는지라 찌르는 샤우팅은 자제하신다는..)




 (In Through the Out Door)




78년 11월경 이들이 아바의 작업으로 유명한 스톡홀름의

폴라 스튜디오에 다시 모여 다음 앨범을 녹음하였고 이는

이듬해 8월에 발매된다. 레드 제플린 최후반 정규 앨범

In Through the Out Door. 디스코, 펑크, 뉴웨이브

등 대외 환경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감각을 받아들이려

노력했으나 역대 앨범 중 결과가 가장 좋지 못했다. 대체로

페이지보다 존스가 전면적으로 부각되어 작업을 진행했고

신디사이저 사용이 확대되며 블루스 일변도를 줄였지만

이채로울 뿐 생경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



멤버들 개개인이 겪은 인생의 부침과도 깊은 연관이 있었다.

특히 플랜트는 교통사고 당시 자신보다 아내가 더 큰 부상을

입었고 이후 어린 아들의 죽음을 겪으며 심리적으로 상당히

큰 변화를 겪은 것 같다. 그래도 그루브 넘치는 Fool in the

Rain아버지 플랜트로서의 따뜻한 목소리를 담은 발라드

All My Love는 체 디스코그래피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걸작이다. (이 곡은 특히 절대 흔치 않은 존스신스 솔로

파트가 압권이다.) 존스의 신디사이저가 시종일관 압도하는

Carouselambra 역시 취향과 기호에 따라...



('Fool in the Rain' from In Through the Out Door, 1979)



('All My Love' from In Through the Out Door, 1979)




 (Coda)




한편 존 본햄에겐 알콜이라는 오래 된 나쁜 친구가 있었다.

80년 9월 24일 공연 리허설 전 아침식사로 햄롤과 보드카를

들이킨 그는 오후 내내 술을 달고 있었고 그날 밤 페이지의

집에서 잠들었다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사인은 구토에

의한 질식사. 알콜 의존증이 의심되는 정황이었다.



70년대의 또 다른 전설 드러머들인 코지 파웰이나 카마인

어피스가 대체 멤버로 리쿠르트된다는 소문이 난무했으나,

80년 12월 4일 결국 나머지 셋은 밴드의 해체를 발표한다.

이로서 네 명의 전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다.



Coda는 해체 후 몇몇 라이브와 미발표 트랙을 긁어모아

82년 11월에 발표한 마지막 앨범이다. 락 역사상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준 전설적 드러머 본조를 기억하며 넣은

Bonzo's Montreux의 76년 라이브 아카이브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사모곡이라고 하겠다.



('Bonzo's Montreux' from Coda, 1980)




본햄과 밴드가 사라졌지만 나머지 셋, 특히 플랜트페이지

중심의 재결성 소식은 이후 수십 년간 팬덤에 희망 고문을

선사한 오래 된 떡밥이었다. 존스는 존스대로 두 사람에게

약간은 소외된 관계를 서운해 하기도 그리워 하기도 했고.

해체 후 그들이 다시 뭉친 건 85, 88, 94, 95, 07년으로

대략 다섯 차례 정도. 85년엔 라이브 에이드로 해체 후 처음

셋이 뭉쳤는데 컨디션 안 좋고 튜닝 안 맞는 기술적 사유로

인해 이래저래 욕먹은 결합이었다. 88년 회합도 마찬가지.



(대체로 상했던 라이브. 드럼 중 한 분은 무려 필 콜린스..)




94년엔 당시 유행하던 언플러그드 열풍을 좇아 페이지

플랜트 둘만 뭉쳐 No Quarter: Jimmy Page and Robert

Plant Unledded를 발표하는데 반응이나 평가도 좋았다...

존스가 소외되었단 점만 빼고. Gallows Pole은 중년이 된

플랜트가 더 원숙한 색채를 보여줬다고 인기도 있었으니

관심있으면 들어보시길. (Page and Plant는 98년에 아예

신곡으로 채워 신보를 냈으나 반응이 예전 같진 않았다고...)



('Gallows Pole' from No Quarter, 1994)




철저하게 소외되신 존스. 95년 로큰롤 명예의전당 헌액식

두 사람을 옆에 두고 '그래도 전화번호 안 까먹었다니 고맙네'

드립을 쳤그대로 전파를 타면서 소위 JPJ왕따설을 확정.ㅜ

사실 존스는 70년대에도 두 사람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도에

빈정 상해서 두어 차례 가출, 아니 탈퇴했다 돌아갔을 정도.

모두를 포용하지 못하고 소외되는 부분이 생기는 현상

결국 페이지리딩이나 플랜트의 엘리트주의가 애초부터

치명적 한계를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방증일 것.



(존스의 씁쓸한 멘트는 6분 20초 경부터..)



(연주한 곡은 IV의 When the Levee Breaks.. 드럼엔 제이슨 본햄!)




97년엔 레드 제플린 디스코그래피에서 두번째로 중요한

라이브 BBC Sessions가 발매된다. 69년과 71년, 한창

시절에 거침없이 불러제낀 내용의 아카이브인지라 해체

후 발매 앨범 중 첫손에 꼽을 만한 컬렉터블일 터. 이때만

해도 초창기 블루스 잼에도 주력할 때라 특히 30년대 델타

블루스의 기초를 세운 거장 로버트 존슨의 곡을 재해석한

Travelling Riverside Blues는 팬덤에서 꼽는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할 트랙임을 아셔야 한다. 이 밖에도 귀담아

들어볼 만한 고전이 많아 블루스에 탐닉하는 팬층은 훨씬

더 높게 평가하는 숨은 진주 앨범이라 하겠다.



('Travelling Riverside Blues' from BBC Sessions, 1997)




03년엔 72년의 LA실황을 담은 또 하나의 전성기 라이브 앨범

How the West Was Won이 발매되어 팬덤의 지갑을 털...

아니 지지를 받았고, 07년엔 24개 대표곡을 모은 컴필레이션

Mothership이 발매되어 최근 나온 앨범 중 가장 각광을 받은

컬렉션이 되었다. 마더쉽엔 본 포스팅이 추천하는 왠만한 걸작

트랙들이 거의 실려 있으니 입문용으로 꼭 하나의 앨범을

골라야 한다면 이 앨범부터 시작하는 것이 무난하다. LA실황

앨범은 페이지 스스로 추천사를 썼듯이 그들 활동 최절정기를

온전히 담은 사운드보드 레코딩이란 의미가 있을 것이다.



(How the West Was Won)



 (Mothership)




팬덤에서 경천동지할 일이 07년 12월에 일어나는데 노년에

접어든 세 멤버의 공연이 성사된 것이다. 런던 O2 아레나

공연으로 팬덤 사이에서 통칭되는 이벤트를 통해 어쩌면

그들이 죽기 전 마지막일지 모를 회합으로 노병들의 화려한

말년을 장식할 기념비적 아카이브가 남겨진 것이다. 95년

명예의전당 헌액 공연처럼 이번에도 제이슨 본햄이 스틱을

잡고 아버지의 혼을 담아 열정적으로 합을 맞추었다. (아들

제이슨도 이젠 알아주는 백전노장 드러머이다.) 본 라이브는

12년에 Celebration Day라는 앨범으로 발매되었다.



 (Celebration Day)



(명기와 명연주자. Korg Oasys를 연주하시는 존스 옹..)


(할로우바디 Les Paul의 둔중한 톤이인상적이다.)




솔로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역시 프론트맨이었던

플랜트. 해체 전부터 공격적인 튠보다 락앤롤 이전 원형적인

음악 형태에 관심을 보이던 그는 80년대 초반 솔로 음반에선

그가 청소년기에 동경하던 초기 락앤롤 가수들의 편곡에 꽤

가까운 중저음 팝락으로 각광을 받았다. Honeydrippers

프로젝트성 밴드에서 그는 지미 페이지제프 벡이란 양대

거성을 세션으로 초청하기도. 50년대 필 필립스의 히트곡

Sea of Love를 농담처럼 녹음하기도 했는데.. 왠걸 이 곡이

덜컥 싱글 차트 대박을 쳐버린다. 84~85년경.



사실 플랜트는 진지하게 녹음할 생각은 없었고 - 그 자신도

50년대 R&B를 좋아했지만 - 프로젝트를 주도한 애틀랜틱

레코드 사장 아흐메트 에르테군이 좋아하는 노래라고 약간은

선심성으로 녹음해줬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ㅎ 참고로

에르테군은 여러 뮤지션과 두루 친분이 있어서 07년 재결합

공연이 사실은 이 분 추모 이벤트 형식으로 뭉친 것이었다.



노년의 플랜트는 컨트리 블루스 계열의 루츠 장르로 돌아왔다.

한때 블루그래스 계열 음악을 하는 앨리슨 크라우스와 듀오로

공연을 자주 하셨다고.



('Sea of Love' by the Honeydrippers, 1984)




밴드 뮤지션으로서의 로버트 플랜트는 리더와 멤버들의

백킹에 완벽하게 조응하여 팔세토 테크닉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능력을 갖춘 보컬리스트이면서 마지막 히피로서

사이키델릭과 판타지를 결합하여 섹드립을 예술로 승화한

가사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줄 안 작사가였다.



개별 멤버들이 자신이 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책임지는 같은 밴드의 송라이팅 구조와 비교하여,

레드 제플린지미 페이지의 음악적 리딩을 철저하게

존중하는 구조였으므로 플랜트 같은 멤버들의 창작적

기여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하지만 프로듀싱 만렙의 기타리스트 페이지가 싸고 돌며

플랜트 중심으로 밴드를 운영한 것을 보면 단순히 몇 개의

노트를 창작했는가 수준을 초월하여 플랜트가 가진 유쾌한

상상력의 세계가 리더와 멤버들 전체에 상생하는 시너지를

제공했다고 능히 상상할 수 있겠다. 대체로 레논-맥카트니,

재거-리차드에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음악사상 완벽한 듀오

궁합을 자랑한 페이지-플랜트 조합이라고 하겠으나...



랜트페이지 사이도 사실 그리 원만하지는 못했다.

플랜트는 본래 유쾌하고 유머에 능하면서 낯가리지 않는

개방적 성격이고 약간 잘난 척하는 맛도 있는 인간성의

소유자라고 전한다. 잘난 맛에 살기는 페이지 자신도

만만치 않다고. (실제로 음악사에서 잘난 분들이시고.)



해체 전에야 서로 죽이 잘 맞았는데 중년과 노년 시절을

거치며 뭐가 그렇게 안 맞는지, 재결성을 막는 원인이라

말이 많았다. 전술하였듯이 이렇게 두 사람 중심으로만

흘러가는 밴드 구조가 다른 두 사람을 약간은 소외하는

방향으로 흐른 것 같아, 이런 점 역시 팬덤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지미 페이지는 표절 등

저작권 시비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고

여기에 로버트 플랜트 자신과 레드 제플린 전체꺼정

밀접하게 얽혀 있음이 사실이다. 비록 발빠른 대응으로

극단적 법정 소송은 대부분 회피하였다지만 창작의

정신이란 것이 소송 막았다고 다 끝나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70년대라는 음악사의 변환기를 거치면서 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음악 연출의 이상향을 종합적으로

전개하여 제시한 밴드 음악의 교과서인 동시에, 3억 장에

달하는 전 세계 판매고를 세운 음악 산업계 베스트 스테디

셀러로서, 레드 제플린의 가치를 결코 폄하할 수 없을 것이고

그 안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낸 로버트 플랜트는 영원히

위대한 보컬리스트로 남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바이다.




(Korg Oasys)



(Bonham)






개인적으로 본 블로거가 최애하는 그들의 작품은 바로

5집에 등장한 애절한 발라드 The Rain Song이다. 이

양반들이 레몬송에서 섹드립 날리던 그자들 맞나 싶을

정도로 일순간 돌변하여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오후의

햇살처럼 아련한 아른거림으로 노래하는 걸 듣고 있자면,

또 존경하는 뮤지션 존 폴 존스께서 그토록 아름다운

멜로트론 음률을 빚어내는 것을 듣자면, 표절 때문에

열받은 마음을 눈 녹이듯이 스르르 녹여내는 것만 같다.



끝으로 레드 제플린 디스코그래피 전체 중 슬픈 아름다움을

노래한 비장미로서의 절정을 갈구한 명곡, 레인송을 강력

추천하며 길었던 포스팅을 마친다. 본조의 육중한 베이스

파운딩 오늘도 성가마냥 천국에 울려 퍼져 저승길 가는

망자들의 가슴을 안온하게 감싸 두드리고 있으리라.



('The Rain Song' from Houses of the Holy, 1973)

- studio album version


- lyrics




*키를 한껏 높인 79년 라이브. 존스 옹의 악기는 Yamaha G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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