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Economists Reacted to Recurring Depressions
경제학의 나이는 참 짧습니다.
국부론이 나온 1776년을 기준으로
이제 겨우 240살을 넘겼을 뿐이죠.
처음 나왔을 때 경제학은 고전파라고 불렀고
스미스는 경제학이라고 하지도 않았어요. 도덕 철학이라고 했죠.
마르크스 때만 해도 정치 경제학이었습니다.
240여 년을 숨가쁘게 달려왔지만
다른 학문에 비해선 엄청 짧은 역사이기에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역량이 있다고 속단할 순 없네요.
온 세상을 뒤흔드는 경제 문제가 불거질 때
갑론을박하는 경제학자들의 모습을 흔히 역사에서 볼 수 있어요.
경기 침체나 불황, 공황 같은 지구적 재앙일 경우 말이죠.
19세기 후반 장기 불황
1920년대까지 경제학이란 그랬어요.
이미 한 번의 장기 불황이란 것을 겪었더랬죠.
이른바 Long Depression.
1873년에서 1897년까지 장장 20여 년을 끌었었죠.
장기 불황의 시기는 크게 둘로 나뉩니다.
1873~1879년에 첫 불황이 영국 등 서유럽을 타격했고
1893~1897년에 두번째 불황은 미국과 남미를 타격했죠.
불황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서는 아직도 썰이 난무하는데
19세기 후반 2차 산업 혁명과 얽혀 철도 인프라의 과잉 공급에다가
독일 제국 대두 등 정치 지형 변화로 인해 통화량 변동에
유인이 발생한 점이 결정타인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 되었든. (장기 불황은 나중에 더 들이파보죠.)
고전학파 경제학이 뭐했냐 하는 자성과 비판이 일어났겠죠.
대공황과 1920년대 고전파
급기야 대공황이 터집니다. 곧 Great Depression.
저것들 도대체 뭐하는 거지? 이런 비판이 안 나올 수 없겠죠.
내 기억으로는 적어도 1920년대에 고전 경제학계 내에서
이래갖고는 안 되겠다 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많이 나왔어요.
1923년에 존 모리스 클라크가 발표한 논문은
케인스가 승수 효과를 끌고 오는 데 직접 영향을 줬고요.
1931년 저서는 직접 승수 개념을 공표한 바 있어요.
1926년에는 독점 기업을 사회적으로 통제 안 할 거냐,
이런 논문을 발표했죠. 요즘 시점으로 지극히 당연한..
어빙 피셔 같은 스타 경제학자가 뻘짓을 저질렀기에 더욱 돋보였죠.
피셔의 뻘짓이란… 1929년 대공황 9일 전 인터뷰에서 그랬대요.
“주가? 고원(high plateau)처럼 호황세를 지속할 걸.” 맙소사 이 양반아.
여전히 피셔 방정식을 쓰고 있지만
경제학자의 한줌 지식이 세상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음은 자명하지 않은가 조심스럽게 주장해요.
피셔의 평생 라이벌이었던 스웨덴 경제학자
크누트 빅셀은 케인스 등판 훨씬 전부터
재정 지출이 균등 분배에 기여해야 한다는
1세기 쯤 시대를 앞선 주장을 펼치기까지 했어요.
스웨덴식 복지, 북유럽식 경제..
말은 많이 하는데 사실 기원은 빅셀이었던 겁니다.
이후 군나르 뮈르달 같은 학자가 뒤를 잇게 되요. 장하준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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