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ty Years’ War: How Battles Began and Ended
한국에서 의외로 잘 모르는 채로 학교를 졸업하는 분들이 많아
서양사나 국제 관계를 이해할 때 애먹게 만드는 사건입니다.
유럽의 역사가 30년 전쟁 전후로 나뉜다는 관점도 있고 실제로
현대 세계사에도 끼친 영향이 적지 않아요. 동양 역사와 굳이
비교하면 아편 전쟁급…? 수당 시대를 무너뜨린 안사의 난,
한족 마지막 통일 국가를 무너뜨린 청조 건국에 견줄 수도..
동학 농민 전쟁이나 실학 운동을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지만
외국인에게 이해시키려면 어렵잖습니까. 서양 유럽계 백인들에겐
이와 비슷한 정도로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온 일대 사건이에요.
근대 철학의 아버지 르네 데카르트의 원래 직업이 군인인데
그가 젊은 시절 30년 전쟁에 참전해 야영하며 인생을 바꾼
꿈을 꾸고 철학자가 되었다죠.
천체 역학의 창시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말년에 30년 전쟁으로
삶의 터전이 폐허가 되어 버려 극심한 가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어요. 수많은 사람이 이런 피해에 시달렸을 거에요.
1618년에서 1648년까지 30년 내내 전쟁을 한 건 아니고
보헤미아, 덴마크, 스웨덴, 프랑스-스웨덴 등 대략 네 개의
시기로 나누어 관찰할 수 있어요.
1618년경은 이미 네덜란드에서 80년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이었고요.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랜 영지였던
네덜란드가 독립 전쟁을 벌였다는 뜻이죠.
이는 곧 15~16세기 최강국이던 에스파냐의 위세가 점점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다는 뜻이에요. 제국 곳곳에서 균열이
커지고 네덜란드 독립 전쟁은 그 신호탄이며 30년 전쟁이
결정타를 먹였다고 볼 수 있죠.
16세기 바다에서 먼저 하향세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1571년
레판토 해전은 스페인이 이겨 오스만 세력을 저지하였으나
1588년 칼레 해전에선 영국-네덜란드에게 한방 먹었죠.
스페인 아르마다의 힘이 빠지고 있었어요.
16~17세기 유럽의 최강자는 지금의 스페인,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이탈리아 남부를 장악한 합스부르크 왕가에요.
16세기 중반 카를 5세 황제 때가 합스부르크의 최대 판도였죠.
퇴위할 때 카를은 스페인을 아들 펠리페 2세에게, 현 독일권
신성 로마 제국을 동생 페르디난트 1세에게 물려줬는데요.
당시 종교 전쟁을 스스로 잘 봉합하지 못해 독일 제후들의 반발을
사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에서 루터교를 공인하지만
이걸로 분열이 일단락된 것은 결코 아니었어요.
17세기초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2세가 가톨릭으로
회귀하려는 반동 정책을 펼쳐 다시 전쟁의 불씨를 피우고 맙니다.
결국 직접적 동기는 종교 전쟁인 거죠. 보헤미아 왕국
(지금 체코)이 먼저 개전하여 북독일이 호응하지만
남독일은 반발하는 상태가 되고요.
현재 루마니아인 트란실바니아 공국이 오스만 제국의 지원을
받아 헝가리로 진격해요. 여기엔 사보이 공국(이탈리아 북부,
프랑스, 스위스에 걸치던 나라)도 조력하게 되요.
이 반란을 일시에 잠재우긴 하는데 합스부르크 안에서 여전히
문제가 곪고 있었죠. 스페인 황제 펠리페 3세가 페르디난트로부터
알자스 지방을 할양받기로 했는데 이는 네덜란드 독립에다가
프랑스 북동부 본토의 위협과 직결되는 사안이거든요.
이에 프랑스를 통치하던 리슐리외 추기경이 네덜란드, 영국, 스웨덴,
사보이, 베네치아를 결속하여 동맹을 맺고 네덜란드를 은밀하게
지원하는 방향으로 선회해요. (프랑스는 가톨릭임에도..)
여기에 페르디난트와 사소한 원한이 있던 덴마크 크리스티안 4세
국왕이 개신교 동맹에 붙어 참전해요. 이로 인해 전장이 확대되고
군비가 확 늘어나 페르디난트에게 불리해지죠.
그런데 전투에서 덴마크가 밀리니 북해 패권을 놓고 다투던 스웨덴
구스타프 2세 아돌프 국왕까지 독일 땅으로 침공하죠. 우수한 전술로
1631년 브라이텐펠트 전투에서 황제의 테르시오를 박살냅니다.
*테르시오 = 화승총과 장창이 짝을 이루는 스페인식 육군 전술..
에스파냐 합스부르크의 전성기 병법으로 16세기에 절정을 찍고
보시다시피 17세기에 총기와 대포의 발달로 무너져가고 있음..
스웨덴이 매우 강력하게 버텼으나 그 와중에 구스타프가 전사하자
개신교 세력이 크게 동요하고, 지금까지 뒤에서 돕던 리슐리외는
동맹 초기 프랑스의 영향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급기야…
1635년 프랑스까지 드러내놓고 선전포고하고…
바야흐로 부르봉 대 합스부르크…! 두 라이벌
왕가 간의 명운을 건 전쟁으로 커져 버립니다.
부르봉은 낭트 칙령 이후 프랑스를 이어받아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었고 합스부르크는 여기 보시다시피.. 점점
내리막길로 가는 중.. 두 가문의 골든 크로스 진행 중..
프랑스가 가세하여 동맹군이 조금씩 황제군을 밀어붙이고
네덜란드에서는 독립군이 스페인을 격파하는 전공을 세워요.
이 와중에 페르디난트 2세는 승하.. 아들 3세가 즉위해요.
페르디난트 3세가 고압적인 자세로 화평을 타진하니 더더욱
열받은 동맹군이 황제군을 압박해요. 연전연패하는 합스부르크..
이때 리슐리외도 죽고 아직 어려 암것두 모르는 루이 14세 즉위.
종전 교섭 회의가 열리려던 즈음 로크루아 전투에서 프랑스 군이
스페인 군을 작살내 버리면서 동맹군은 확실한 승기를 잡아요.
막판에 황제군과 바이에른 선제후국이 연합하자 동맹 주도권을
다투던 스웨덴과 프랑스가 연합군으로 응수, 전투가 끝나요.
1648년 11월 2일, 마지막까지 항전하던 가톨릭 진영의 보루
프라하가 항복하고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며 전 유럽을
전쟁으로 몰고 간 광풍이 사그라듭니다.
복잡하죠? 최대한 요약해볼까요. 페르디난트 2세가 (할아버지처럼)
현명하게 처신했다면 영지 반란 정도로 끝날 수 있었던 보헤미아
전쟁 문제에 알자스 할양건이 겹쳐 프랑스를 자극해요.
반황제 동맹이 결성되고 황제에 원한이 있던 덴마크가 참전하며
전장이 독일로 번져요. 덴마크가 유틀란트까지 밀리니 스웨덴이
참전하고 리슐리외와 함께 구스타프는 동맹의 중심이 되요.
브라이텐펠트에서 합스부르크가 박살나죠.
구스타프가 전사하여 동맹이 흔들리자 프랑스가 참전하며
전황은 최대한도로 확장되죠. 처음부터 그랬지만 본격적인
부르봉 대 합스부르크 싸움이 되버렸고요.
네덜란드가 스페인을 격파하고 페르디난트와 리슐리외가
차례로 죽었으며 결국 로크루아에서 스페인이 프랑스에게
참담하게 무너집니다. 막판에 스웨덴-프랑스 연합군이
다시 한 번 승부에 쐐기를 박고요.
독일 — 덴마크 — 스웨덴 — 프랑스로 참전 양상이 확대했고요.
신교 동맹군의 구심점은 구스타프의 스웨덴과 리슐리외의 프랑스.
체코와 북독일에서 시작한 전쟁이 덴마크로 번지고 스웨덴과
프랑스의 참전에 따라 독일 전역이 전장에 휩싸인 겁니다.
결국 힘있는 나라들이 들어와 싸우는 통에 죽어나는 건 독일의
평민들이었어요. 동학전 명목으로 청과 일본이 싸워 구한말
조선 백성이 나가 죽은 사실과 묘한 기시감을 형성하죠.
독일인만 8백만 명이 죽었다고 해요. 1차 대전으로 1천만
가까이, 2차 대전으로 7천만이 넘게 죽었는데 이건 그나마
세계적 분포지만.. 이는 독일 인구 세 명 중 하나가 사라진
결과죠. 나머지 둘도 죽지 못해 살아야 하는 지옥이고…ㅜ
이렇게 민간인이 학살된 배경은 약탈 때문이에요. 군 편제의
상당수를 용병이 채우고 있었는데 제때 급료를 받지 못하니
전리품 약탈 경제에 의존했다고 하죠.
이로써 길고 넓었던 최초의 국제전이 끝납니다. 30년이나 되는
지난한 세월, 유럽의 모든 국가와 정권이 직접 참전하거나
간접 관여한 최초의 국가간, international 전쟁이었죠.
폭력의 경과는 이러했고요. 이 여파로 인해 유럽사의 체계를
바꿔버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다음 포스팅에선
이 결과와 영향을 상세하게 다루어 볼까요.
아래 동영상은 당시 전장 상황을 재연한 것…
보병, 기병, 창병, 총병, 포병 등 기능별 군제가 정착하고 있죠.
머스킷이 선형진을 이루고 아직 장창이 쓰이고 있으며 중세식
기마 돌격용 창병기, 랜스가 사라졌음을 확인하면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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