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undred Years’ War, England and France
백년 전쟁 이야기에요. 1337~1453년 사이 116년 동안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전쟁입니다. 영국 아님.
월드컵이나 유로에서 봤죠? 오늘날 잉글랜드인과 프랑스인 사이에
남아 있는 묘한 경쟁심은 이 시기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이 때 죽어라고 싸워댔으니까요.
왜 싸웠남. 샤를 4세가 죽고 나서 왕위 계승 문제가 대두합니다.
원래는 플랜태저넷 왕가의 에드워드 3세에게 우선권이 있는데
발루아 왕가의 필리프 6세와 대립하게 됩니다.
또한 이때까지 잉글랜드 왕이 프랑스 왕의 제후로서
프랑스 일부를 봉토로 가지고 있었는데 프랑스 왕 입장에서
이를 쫓아내고 영토 지배를 확장하려는 의도도 있었고요.
더 복잡하게 하자면 할 순 있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면
왕가 사이의 헤게모니 쟁탈전입니다. 여기에 가스코뉴나
플랑드르 같은 봉토의 실효 지배권 문제가 걸렸고요.
가스코뉴는 지금의 프랑스 남서부 지방.
포도와 와이너리가 넘쳐나는 곳이고 이 지역 세금 수입만
당시 잉글랜드 전체 세수와 맞먹었다고 하죠.
당시 국력은 프랑스가 잉글랜드의 서너 배 정도..?
객관적 전력은 프랑스가 앞설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전쟁 전반기 전세에선 잉글랜드가 의외로 앞섭니다.
특히 아쟁쿠르 전투 등에서 엄청난 전과를 올리죠.
전쟁 후반기에 잔 다르크 같은 인물이 사기를 올리며
결국 프랑스가 승리합니다. 잉글랜드는 프랑스 봉토 대부분을
상실하고 브리튼 섬에만 머물게 되는 시기가 시작하는 거죠.
(즉, 이 전쟁에서 프랑스가 졌다고 가정해보면 오늘날
프랑스 영토 중간에 영국 땅이 드문드문 섞여 있는
현상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였을 것이란 말씀..)
백년 전쟁이 유럽사에서 중요한 의의가 몇 가지 있어요.
귀족의 기병전에서 시작하였으나 애초에 양국 국민에게 없던
민족 개념이란 것이 싹트는 계기가 되죠. (민족주의는 아님)
출발은 왕가의 헤게모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고 평민이나
농노들이야 심정적으로 딱히 감정이입할 필요가 없었는데
어느 순간에 국민 전쟁으로 발전했다는 뜻입니다.
(아 물론, 아직 민족 국가 개념이 나오려면 멀었어요.
30년 전쟁, 베스트팔렌 조약은 이삼백 년 쯤 지나야…)
또한 전쟁의 패배로 인한 나비 효과가 잉글랜드 왕가 간
알력 다툼으로 이어져 30년간 장미 전쟁이 터졌습니다.
장미 전쟁의 여파로 튜더 왕조가 개창하고
잉글랜드의 계급 및 권력 구조가 변동하는 등…
이후 청교도 혁명과 명예 혁명까지 이어지죠.
군사적으로는 귀족, 영주, 기사, 향사 등 지배 계급이
전쟁을 주도하는 양상이 퇴화하고 평민과 농노 중심으로
급료를 받는 용병 및 상비군 개념이 새롭게 대두됩니다.
전술 측면에서 궁병의 중요성이 기술적으로 극대화하기도.
석궁과 장궁이 역사상 가장 중요한 무기로 떠오른 시대이죠.
크레시 전투, 푸아티에 전투, 아쟁쿠르 전투까지..
군사 및 병기 이야기는 시작하면 길어지니
나중에 주요 전투를 중심으로 논해보죠.
"공감을 눌러 주시면 큰 힘을 얻습니다"
'political economic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한 미군 철수를 언급한 미국 대통령에 발끈하는 그들 (0) | 2018.06.13 |
---|---|
스파이이자 협상가, 평화를 불러오다 (0) | 2018.06.12 |
에드워드 코크: 니들이 사법부 독립을 알긴 아느냐 (0) | 2018.06.07 |
CNN 특종: 존 볼턴이 북미 회담을 방해했다 (1) | 2018.06.06 |
왜 경제학을 알아야 하냐고? : 장하준 짤막 강의 전문 (0) | 2018.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