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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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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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of Europe in Early Modern Times I

Renaissance, the Rebirth of Humanities




오늘날 정치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압도적으로 유럽 출신

백인들의 시각과 사고를 반영하고 있는 것은 다들 아실테죠.


그래서 서유럽 주요 국가의 근세사를 따라가보는 것이 종종

큰 의미가 있답니다. 하여 근세를 열어젖힌 몇 가지 트렌드를

시리즈처럼 훑어보는 시간을 마련해 볼까요.




I. 문예 부흥 Renaissance 



르네상스, 재생(부흥), rebirth 이야기에요. 14~17세기 유럽인의

생각과 감정을 열어젖힌 광범위한 수준의 문화예술 운동입니다.


북부 이탈리아 도시 국가인 피렌체 공화국에서 시작하여 인근

베네치아제노바로 옮겨갔고 신성 로마 제국, 스페인, 프랑스,

제네바를 거쳐 네덜란드, 영국, 폴란드까지 퍼져 갔다고 합니다.


주로 문학과 회화, 조각, 건축을 중심으로 기독교 유일신 교리의

성상화에 치중했던 중세 성향을 탈출하여 철학적 사고와 예술적

표현의 중심에 인간이란 존재를 대체한 광역 거시적 사조랍니다.


문예를 ‘부흥한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예술

성향을 되살리고 고전으로 돌아간다는 정신을 공유했기 때문이에요.


장장 19세기까지 통일 군주 없이 공화국이나 공국으로 찢어 살아야

했던 북부 이탈리아 사람들로서는 그네들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고대 시절 화려했던 문화의 향수거든요.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르네상스가 본래는 이태리어인 rinascimento

라고 불려야 정상이지만 19세기 중반 프랑스 역사가 쥘 미슐레가

불어로 규정하며 대히트를 친 바람에 그렇게 고착해 버렸다죠.


피렌체나 베네치아, 제노바 같은 북부 이탈리아 도시 국가에서

발발한 이유는 말이죠.. 중세 후반에 지중해 해상 무역을 장악한

사람들이 이런 해양 국가의 중추 계급인 상인 집단이었거든요.


이 나라들은 해양 중개 무역으로 성장한 상인들이 사회의 중추를

형성하고 과두 공화정 형태의 정치 체제로 빽과 돈줄과 문화

예술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는 공통점을 공유한답니다.


이들이 중개한 무역 루트는 보스포루스 해협 너머 소아시아와

중동, 인도, 중국으로 이어지는 유럽의 동방이었는데 보통 이슬람

상단을 통해 향신료, 도자기, 차 등 사치재를 구해 이문을 챙겼어요.


이렇게 넘어오는 과정에서 물자 뿐만 아니라 이슬람과 비잔티움의

제국이 잘 보존해온 (정작 자신들은 오래 전에 잃어버린) 고대 문물이

역수입되어 사람들을 일깨우고 르네상스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죠.


문화적 변동이란 것이 이렇게 정치와 경제의 기반이 없으면 생존할

수가 없는지라 15세기 중반 오스만 제국이 발호하며 동방 루트를

막아버리자 어쩔 수 없이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쇠퇴하고 맙니다.


14세기 초를 시점으로 잡는 것이 통설인데 이는 이탈리아 문학

최고의 시인으로 꼽히는 단테 알리기에리의 활동 기간이 대략

1308년 무렵부터 사망하는 1321년까지 이어지기 때문이죠.


단테가 정계에서 축출된 후 망명 생활을 하며 창작한 신곡

이태리어를 처음으로 문학의 언어로 끌어올린 명작입니다.

중세 유럽인의 내세적 종교관을 엿볼 수 있기도 하죠.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는 계관 시인으로 임명되어 국가 대소사를

라틴어 시문으로 남겼고 로마 시대의 역사를 시로 썼으며 고대

문헌을 발굴 연구하여 후대에 영향을 준 인문주의자였습니다.


그와 교류했던 지오반니 보카치오는 열흘이란 속뜻을 지닌

이야기식 서사시 데카메론을 통해 당대 유럽인의 다채로운

생활상을 묘사하고 사회상을 우회적으로 비꼬기도 했죠. 서사

구조는 영국의 제프리 초서캔터베리 이야기로 계승해요.


이탈리아 문학의 태동은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쳐요.

네덜란드의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우신예찬을 썼고

스페인에서 미겔 데 세르반테스돈키호테를 창작하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라파엘로 산치오

16세기 초를 화려하게 수놓은 예술가들이야 더 말할 나위 있나요.


이들은 교황령을 비롯하여 유력 가문의 후원을 받아 오늘날까지

인류적 자산으로 분류되는 초월적 걸작들을 창작해냈습니다.

한두 번 곁눈질 만으로도 거장의 자취가 느껴지실 겁니다.


다 빈치의 모나 리자라든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라든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라든가…



르네상스는 순수 문예작의 범위를 초월해서 영향을 미치기도

했는데요. 이전 시대 거장의 스타일과 작풍이 한창 정치적 격변을

겪던 북부 공화국 인민의 의식 성장을 반영하기도 했지요.


대표적인 사람이 군주론로마사 논고를 저작하고 폭풍처럼

일생을 살다 간 니콜로 마키아벨리이며, 그가 남긴 충격적 사상은

이후 고전적 현실주의로 분류되는 정치학 연구에도 영향을 줍니다.


그와 동시대에 영국에서는 헨리 8세 시대를 뜨겁게 살았던

토머스 모어유토피아를 통해 민중을 배격하는 위정자의

위선을 한껏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모어의 실제 삶도 참

극적이었죠. 헨리 8세에게 직언하다가 참수되었답니다.)


영국의 르네상스는 엘리자베스 1세와 제임스 1세가 집권한 17세기

윌리엄 셰익스피어에 이르러 뒤늦게 꽃을 피웠다고 봅니다.

현대 영문학의 효시인 인물이라 할 수 있겠죠.




현대 대중 문화에서도 르네상스는 아주 자주 언급됩니다. 재작년에

개봉한 다빈치 코드 3부작 중 최졸작인 인페르노에서는 시종일관

산드로 보티첼리가 15세기 말에 그린 단테 신곡의 삽화가 삽입되요.



물론 레오나르도를 상업적으로 폭발시킨 건 댄 브라운론 하워드죠.

재미는 있는데.. 이 얘기 아직도 믿는 분들 계시려나요.



또한 데이빗 핀처가 모건 프리먼 및 브래드 피트와 작업하여 1995년에

내놓은 히트작 세븐에서는 단테의 신곡에 언급되는 인류의 일곱 가지

죄악이 직접적인 내러티브의 소재로 언급되죠. (미성년자는 주의)



세르반테스는 작품과 함께 영원히 사실 겁니다.

심지어는 뮤지컬로도 살아남을 거에요.

아랜 72년 토니상 공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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