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of Buddhism :
How the Religion Has Prevailed over Asia
정치와 역사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오랫동안 중세 유럽의 로마 가톨릭만 집중적으로
비판한 모양새를 연출한 것 같아 못내 찜찜했네요.
개인적인 종교 취향과는 전혀 관계가 없음을 거듭
밝히고요. 수백 년 전 유럽에서 일어난 일을 풀어가는
것에서부터 현대 민주 정치의 해답이 있기 때문에
이에 집중하여 논한 것 뿐입니다요.
간단하게 다른 종교와 얽힌 역사도 언급하며
쉬어가는 포스팅을 마련할까 해요.
본 블로거가 절에 다녀서 불교의 전파 과정 및
역사 이야기는 소상하게 풀어볼 수 있거든요.
불교의 변천사에서 신기하게도 기독교와 묘하게
닮은 지점도 발견할 수 있어 흥미로울지 모르고요.
희한하게 요즘 교실에선 잘 안 가르치고
보통 현대 한국인들의 관심 밖 세상이기도 해서
뭔가 특이 영역을 찾으시는 분들께 맞을 듯도 해요.
불교 팔정도의 상징물, 법륜
석가모니, 釋迦牟尼 ..란 Śākyamuni라고 영문
표기할 수 있는 데바나가리 문자 단어 शाक्यमुनि ..를
한자로 음역한 별칭이고요. 샤카 민족의 성자란
뜻을 갖고 있는 말이에요.
칭호가 가리키는 실존 인물의 본명으로 싯다르타 고타마
..라는 출생시 속명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영어권에서는
고타마 붓다, Gautama Buddha ..로 보통 불러요.
붓다 역시 깨달음에 이른 존재란 뜻을 가지죠.
석존의 출생과 사망 시기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여러 가설이
분분하는데 한국 불교의 지배적 종파인 조계종에서는 기원전
623년 출생에 기원전 544년 사망을 일단은 정설로 믿어요.
석존이 태어나 활동한 곳은 오늘날 인도 동북부와 네팔에 걸쳐
있는 넓은 지역입니다. 샤카 민족의 카필라 왕국 왕자로서
태어난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죠.
고타마가 태어난 룸비니, 35세에 깨달음을 얻은 곳 부다가야,
깨달음을 처음 설법으로 펼친 곳 사르나트(녹야원), 80세를
일기로 입멸한 곳 쿠시나가는 흔히 불교 4대 성지로 묶이며
오늘날 네팔과 인도 북동부에 걸친 지역들이에요.
드라마에서 표현한 싯다르타 고타마
인도 아대륙에 위치한 불교 4대 성지
*미칠 듯이 광활한 사상을 고작 몇 마디 말로 요약할
뿐이니, 다음 내용의 깊이가 부족함은 양해해 주세요.
석존이 생전에 손수 남긴 사상의 줄기는 보통 사성제,
팔정도, 삼법인 등으로 요약할 수 있어요. 인생이 일체의
고통이니 이를 떨쳐내 해탈에 이르러야 한다는 사성제의
근본이 수행 방법인 팔정도나 중심 철학인 삼법인을
통하여 발전해 나가는 구조라 볼 수 있고요.
특히 삼법인에서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의 명제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여 영원불멸하는
자아가 없음을 깨닫는 것이 해탈의 길이란 점인데요.
이는 당시에 인도 아대륙에 유행하던 브라만교의 범아 사상이
추구한 절대성을 비판하고 세계 운행의 상대성이 진실임을
설파한 거에요. 즉 고대 힌두교인 브라만교의 안티 테제로
등장한 것이 석존의 불교임을 여기서 간파할 수 있죠.
또 이 부분은 아브라함 계열 종교에서, 유대교의 발전적
비판으로 등장한 예수 그리스도의 기독교나 그 기독교에서
독립적인 체계를 정립한 무함마드의 이슬람교 등으로
유사한 분화 및 비교 사례를 찾을 수 있기도 해요.
오늘날 현대의 모든 종교가 고대 신앙 체계를 기반으로 발전적
해체를 통해 성립해온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인 것이지요.
경주 석굴암 본존불
그러나 다른 신앙과 뚜렷하게 다른 점도 얼마든지 있어요.
불교의 부처님과 아브라함 종교의 유일신 하느님은 전혀
본질이 다른 존재에요.
기독교는 세상의 유일한 신적 존재를 추종하라고 가르치지만
불교의 석존은 믿고 숭배하라고 만들어놓은 대상이 아니에요.
불교 활동의 최종 목적은 유일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수행을 통해 스스로 부처가 되는 거에요. 석가모니는 그런
방법으로 부처가 된 대선배 같은 존재이죠. 그가 그리 했듯이
평범한 중생들도 수행을 할 수 있으니 벤치마킹하란 말이죠.
즉 석존은 신성을 가진 존재가 아닙니다. 불법을 깨달았기에
인간인 수행자 중 가장 앞선, 존귀한 사람이라 볼 수 있죠.
인도 아대륙은 현대에 통합된 국가로 운영되는데 반해
과거엔 그 넓은 지역이 통일된 역사가 별로 없어요.
역사상 인도 북부와 남부를 통일한 최초의 시기는 기원전 4세기
마우리아 왕조가 등장했을 때에요. 사실 역사에서 남북이 모두
통합된 시기는 현대를 제외하고 이 때가 유일하다고 하고요.
기원전 3세기 아소카 대왕 때 마우리아 왕조가 가장 융성했고
이 왕은 불교를 적극적으로 장려하여 국가 경영의 기반으로 삼은
통치자에요. 불교계의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해당한다 하겠죠.
서양 역사에서 기독교의 공인이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이루어진 걸로 비교하면 불교와 기독교의 역사가 대략
6~7백 년쯤 간격을 두고 흥망성쇠의 패턴 그래프를
각각 그리며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죠.
스리랑카에 위치한 십대 제자상
예수님께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열두 제자가 있었듯이
석존께는 십대 제자라고 불리는 수행자들이 있어 초기
불교의 보존에 혁혁한 공을 세웠답니다.
이 제자들이 석존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종교 절차는
과학 기술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던 고대였던지라
매우 원시적인 방법에 의존했다고 해요. 구전이죠.
아소카 왕의 가장 큰 공로 중 하나가 경전의 결집이었어요.
결집이란 석존의 가르침을 구전에서 기록으로 남기는 절차를
말하는데요. 초기 제자나 종파 지도자들이 구전으로 교리를
구술하면 이를 나뭇잎이나 식물성 재질 등 당대 가장 흔한
매체에 기록해 두루마리 형태로 보관했다고 해요.
상상이 되시겠지만 당연히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많은 인력이
소요되는 번거로운 과정인 거죠. 아소카 왕과 같은 권력자가
초기 제자들과 단단히 영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고대 불교의 전승 경로 - 상좌부 불교의 대승 불교화
시간이 오래 지나 사람의 기억에 의존하는 방법에 한계가
있을 테니 교리의 해석에 차이와 논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석존이 사망한 후 100여 년이 흐른 시점에
상좌부와 대중부로 종파가 분열하게 되었다고 해요.
교리 해석에 있어 상좌부는 보수적 성향, 대중부는 진보적
성향을 각각 보였다고 하고요. 이로부터 수백 년간, 서력
기원 정도까지 수많은 종파(부파)들이 격렬하게 분화하고
발전하여 인도 불교가 가장 융성했던 때라 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이 시기 인도 불교를 부파 불교라고 따로 시대
구분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동아시아와 남아시아로
국경을 넘어 활발하게 불교가 전파된 때이기도 했어요.
티벳을 넘어 중국에 처음 당도한 것도 대략 이 시기..
상좌부와 대중부의 수십 개 세부 종파는 중세까지 존속하다가
오늘날엔 명맥이 끊긴 경우가 많아요. 기원전 1세기 경 이후
대승 불교가 대세로 발전해가면서 이런 기존 종파를 싸잡아
소승 불교라고 폄하해서 부르기도 했습니다만.
동남아의 일반적인 불상
인도 종파를 원류로 하여 오늘날 동남아시아에서 존속하는
불교가, 소승 불교라는 멸칭보다 상좌부 불교라는 원래의
명칭을 되찾아가고 있는 것이 최근 경향이기도 합니다.
영어로는 Theravada, 테라바다란 용어를 쓰죠.
상좌부 불교가 고대의 불교라면 대승 불교는 중세의
불교 정도로 구분을 할 수 있고, 새로운 시대 정신의
바탕에서 탄생한 종교 문화의 신체계인 셈이에요.
영어로는 Mahāyāna, 마하야나란 용어를 써요.
대승 불교가 순전히 중국 문화의 산물이라고 오해하는 분도
가끔 계시는데요. 어느 정도는 인도와 티벳과 중국 간 상호
교류와 교차적 협업을 근간으로 발전한 것은 맞습니다만.
본래 대승 불교의 원류는 엄연히 인도 문화가 창조한 것이고
수백 년간 중국 문화권과 병행하여 발전시키다가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면서 그 명맥을 실전하였다고 봄이 타당해요.
여기서 말한 중국 문화권에는 한국과 일본도 들어가고요.
대승 불교는 특히 쿠샨 왕조의 흥망성쇠와 깊이 연관이 있어요.
1~4세기 북인도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지를 평정했고
3대 카니슈카 국왕 때 대대적으로 경전을 결집했다고 하죠.
쿠샨 제국은 간다라 미술이 발흥한 걸로 유명한 곳이고요.
간다라 미술 양식의 조상
상좌부 불교가 석존 교리의 축자적 해석에 집착하는
훈고적 성향을 보이는데 반발하여 중생을 교화해야 할
사회적 사명을 새롭게 인식하여 탄생한 불교 버젼 2.0
정도라고… 대승 불교를 정의할 수 있겠죠.
이말인즉슨 석존 본인이 설법한 교리에만 매달리지 않고
이제부터는 새 시대의 성직자들이 새롭게 교리를 창조해갈
길이 열렸다는 뜻이에요. 즉 이제부터 현대인이 익히
들어본 불교 경전들이 창작되는 세상이란 말이죠.
어떤 경전들인가요? 반야경, 화엄경, 금강경, 법화경…
많이들 들어보셨죠? 한국이 전통적 중국 문화권으로서
대승이 융성한 지역에 속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이미 역사적으로 간접 체험을 한 거죠.
최근 21세기 한국 불교계에서 부파 불교의 초기 경전을
탐구하려는 운동도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어 늦었지만
고무적이라고 봐요.
한국식 불교 사찰의 상징인 원이삼점
- 흔히 삼법인을 뜻한다고 해석하기도
이 초기 경전들이란 숫타니파타, 아함경, 법구경 등 전승과
구전의 방법으로 석존 시절부터 보존된 오래 된 교리서들인데
현대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중국식 대승 불교에 익숙한지라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부파 불교의 초기 경전들은 석존 활동기 평민들의 방언인
팔리어로 보존되어 왔고 동남아시아 상좌부 불교계에서는
크리스찬 바이블과 같은 역할을 하는 표준 불경이랍니다.
이에 반해 반야경, 화엄경, 금강경, 법화경 등 대승의 수많은
불경들은 남인도 승려들이 고대 지배 계급 특유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보존하고 이를 중국에서 한역하여 한국과
일본으로 전해진 경로를 보여주고 있죠.
결국 우리가 현재 아는 대승 불교의 초창기 정립은 인도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는 경로에서 불경을 번역하는데 전력을 다한
최고의 고승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알 수 있는 거죠.
쿠마라지바 조상 -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위치
역경승이라고, 이런 번역가 역할의 고승 중 가장
저명한 두 분은 쿠마라지바와 현장입니다.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까지 혼란했던 오호 십육국 시대의
장안에서 삼백 여권의 불경을 번역한 쿠마라지바, 한자 표기로
구마라습은 오늘날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후진으로
옮겨가 십여 년을 불경 번역에 매진했다고 해요. 극락, 지옥,
색즉시공 같은 말이 이 분이 처음 조어한 용례들이랍니다.
중국 고전 서유기의 모티브를 제공한 현장은 7세기 초 출가하여
스무 해 가까이 인도에서 유학하다가 금의환향한 후 당 태종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수많은 불경을 번역했어요. 그가 저술한
대당서역기는 중세 초반 아시아 전역의 문물을 소상하게 밝힌
귀중한 사료이기도 하답니다.
두 분을 묶어 양대 대역성이라 부르기도 하며 쿠마라지바의
번역을 구역, 현장의 번역을 신역이라 따로 칭해 대별하기도
해요. 보통 구역은 구어체에 최적화한 의역, 신역은 원전에
충실한 직역으로서 그 성격을 각각 구분할 수 있어요.
현장과 대당서역기, 그리고 서유기
대승 불교의 종파는 수십 수백 문파가 명멸했습니다. 일일이
다 거론할 수도 없죠. 서력 기원 전후 인도에서 9~10세기
중국 당송 시대까지, 시공간의 범위도 크게 확장되요.
티벳과 한국, 일본, 베트남도 발전에 기여했죠.
발흥한 대략적 시기와 중심 인물인 고승들, 거기에
소의경전이라고.. 해당 종파의 기준이 되는 중심
불경을 살펴보며 주요한 종파만 짚어보자면요.
*대승 불교 종파의 변천 역사는 상세하게 분석하기
시작하면 장장 수백 페이지 분량인지라 아래 서술은
정말 수박 겉핥기입니다. 급한 대로 맛만 보시라고…
인도의 양대 종파로 현대에도 연구되는 곳은 중관학파와
유가행파로서, 4세기 무렵까지 융성했고요. 이후 대승의
중심이 중국으로 넘어와 5~9세기에 천태종, 화엄종,
선종 등이 성립하여 흥하였습니다.
중관학파는 2~3세기 인도에서 활약한 고승 나가르주나..
한자 표기 용수의 사상을 잇는 종파이고 그가 남긴 저작
중론송을 중심으로 사상을 탐구했어요. 중국으로
넘어와서는 삼론종이란 이름으로 번성했고요.
유가행파는 4세기에 활동한 아상가.. 한자 표기 무착을
종조로 하여 해심밀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종파에요.
천태종은 6세기말 지의라는 고승을 중심으로 발흥했고
소의경전은 법화경입니다. 이름이 익숙하실텐데 고려 때
11세기말 대각국사 의천이 해동 천태종을 개창하여
우리만의 종파를 발전시킨 사실로 유명하죠.
화엄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화엄종은 중국에서는 7세기말
법장이 일으켰고, 신라 중대 때 이보다 더 일찍 의상 대사가
해동 화엄종을 개창하기도 했습니다. (‘해동’이란 말이
앞에 붙으면 한국 문화권의 주체적 종파란 뜻이에요.)
달마도 - 조선 중기 김명국
사실 여기까지 거론한 종파는 오늘날엔 단지 불교 역사의 한
페이지일 뿐 이젠 승통이 끊겨서… = 스승 스님의 대를 이어
종파를 이어가는 제자 스님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관계로,
현대 불교에서 의미는 그리 크다고 할 수 없고요.
오늘날에도 승통이 이어질 뿐만 아니라 현대의 한국 및 일본
불교의 지배적 종파인 선종은 전혀 차원이 다른 이야기에요.
즉 선종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현대 불교입니다.
실존했는지 기록이 불분명한 5세기 말의 인물로 보리달마,
곧 달마 대사란 분이 있었어요. 전설상 인물이긴 해도 절에서
선종의 대시조 종정을 말할 때는 보통 달마로부터 시작하고요.
인도에서 남북조 시대의 중국으로 건너와 선법을 전파했다는
달마의 행적이 정사가 아닌 전설 야사 수준의 기록에만 나오는
관계로 역사학자들은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지만 민간 종교
차원에서는 (인기가 좋아서) 꾸준히 믿음이 유지되긴 해요.
순천 송광사 보조국사 지눌 진영
정사 차원의 선종은 7세기 말에 북종선과 남종선의 두 종파로
분화한 사건부터 보통 시점을 잡습니다. 둘 중 신수가 이끌던
북종선이 혜능이 이끌던 남종선보다 먼저 승통이 끊겨버렸고
남종선은 임제종 등 다양한 종파로 융성 발전했어요.
북종선이 일찍 사멸한데 반해 남종선은 8~11세기에 걸쳐
오가칠종으로 분화 발전하여 당송 시대 이후 중국 불교의
주류로 자리잡았다고 하네요.
남종선 계보 중 9세기 중반에 등장한 임제종은 간화선이란
선문답 수행을 핵심으로 내세우던 종파고요. 이 교리 전통이
한반도로 넘어와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결사
운동으로 로컬라이징하는데 성공했고요.
숭유억불을 내세운 조선조 땐 겨우겨우 맥을 이어나갔고
현대 한국 불교의 지배적 종파인 대한불교 조계종 설립시
그 정통성을 혜능과 임제종, 지눌에 두는 걸로 선언하면서
오늘날까지 선 수행의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답니다.
임제종과 간화선을 받아들인 한국에 비해 일본의 불교는
조동종이란 종파와 묵조선이란 수행 방법을 현재까지 줄곧
계승해오고 있어요. 일본의 선 불교가 서구에 진출하면서
조동종도 함께 서양 세계에 전파되는 결과를 빚기도…
만다라 - 힌두교에서 유래한 불교 밀교식 미술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 이렇게 대승 불교가 꽃피우고 있을
때 정작 인도의 불교는 브라만교와 결합하여 신비주의 요소를
융합한 밀교로 변화하였고요. (그 결과 불교와 힌두교의 경계가
흐릿하게 희석해 버리고 인도에선 불교가 실전되고 말아요.)
이 밀교적 교리가 7세기 이후 티벳 불교의 강한 전통으로
자리잡아 오늘날 달라이 라마를 내세운 신비주의 속성을
서양 세계에서 꾸준히 어필하고 있어요.
신비주의 요소라 하면 점을 친다거나 사람이
환생한다거나 하는 비과학적, 반철학적 성격의
교리가 포함되어 갔다는 뜻입니다.
현대 티벳 불교의 지도자가 환생하여 존속한다는 신앙 논리가
이런 데에서 비롯된 거에요. 사실이냐고요? 글쎄요.. 교회에서
흔히 말하듯이 사실이냐가 아니라 믿느냐의 문제겠죠.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면 달라이 라마 역시 뭐...
전쟁과 선 -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 저서
서양 얘기 나왔으니 말인데 현재 북미 등지에서 불교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것은 맞는데, 주로 일본 선종, zen buddhism
이나 티벳 불교로 지나치게 치우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과거 60~80년대엔 서양 문화와 접근성이 있던 일본의 승려들이
건너가 선 불교를 유행시키는데 공을 세웠고요. 그 덕에 불교
개념이 서구 대중의 무의식에 자리잡는 성과도 거두었죠.
그러나 일본 불교의 고승과 선사들이 과거 제국주의 정국에 협조하며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의 폭력상을 말리기는 커녕 공조한 책임도
분명하고 현재 이를 제대로 인정도 하지 않고 있어 여러 모로 욕먹을
상황이기도 해요. 불교가 평화의 종교란 대중의 선입견도 여기 와선
여지없이 무너지는 거에요.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00898#09T0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305140956251&code=116
티벳 불교의 제14대 달라이 라마
21세기 들어서는 198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눈부신 활약으로 티벳 불교에 대한 장벽이 허물어지고 많은 사람이
관심과 성원을 보내고 있는 실정이에요.
달라이 라마란 인명이 아닙니다. 환생한다는 티벳 불교의 지도자를
가리키고 교황 비슷한 용어에요. 바티칸의 그분과 가끔 혼동하시는데
전체 불교의 교황이란 뜻이 절대 아니고요. 한국, 일본, 중국, 태국,
베트남 등 나라의 다른 불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현존하는 14대 달라이 라마가 망명 정부를 이끌며 열심히 활동하는
덕에 서구 사회 유명인이나 지식인 중심으로 티벳 불교의 교세가
확장하는 추세라 하고요. 사실, 이 분을 스타로 만들어주는 쪽은
안티 극딜 활동에 여념이 없는 현대 중국 정부라 하겠죠.
까가 빠를 만든다, 빠를 만드는 것은 까라고나 할까.
원효대사 표준 영정
한국 불교사 최고의 인물은 원효 대사입니다. 해골물 에피소드만
널리 알려진 땡중 비슷하게 이미지가 굳은 느낌도 있는데 실재한
원효는 그리 만만히 볼 만한 사상가가 절대로 아니에요.
7세기 삼국 통일과 신라 중대 초기 원효 사상의 영향력은 한반도
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일본과 아시아 전역에 걸쳐 막강했어요.
대승기신론소는 당시 아시아 대승 불교 사상 전체를 통합한
7세기 불교학 최고의 논문이자 철학서라고 하죠.
조선 중기 퇴계학이 동아시아 성리학 최고의 정수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배우셨을 텐데, 대략 천 년 전 불교학계에선 원효란
인물의 존재감이 드높았다고.. 평행 비교하면 될 듯해요.
따지고 보면 이렇게 유구한 전통을 갖고 있는 한국 불교인데도
세계화 부문에서 그다지 경쟁력이 없는 실정이고요.
세계화고 자시고 전에 가끔씩 쉴드를 쳐줄 수도 없는 심각한
사회 문제를 조계종 승려들이 열심히 터뜨리고 계셔서 일단
내부 정화가 훨씬 시급한 사안일 거라고… 본 블로거처럼
대부분의 조용한 불자들은 그렇게 믿고 살아간답니다.
어차피 다 죽으면 부질없는 걸, 뭐하는 짓들일까요 정말..
https://www.youtube.com/watch?v=jXFsbMYv4IA
https://www.youtube.com/watch?v=4wb6j-qvP1c
너무 비교되죠..? (미성년자, 심신 미약자 주의)
베트남 틱꽝득 스님의 1963년 소신공양
이외에도 할 이야기는 참 많지만 이만 줄이고요.
서구식 사고 체계에 젖어 있을 현대인들이 불교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오랜 편견이 아래에 정리되어 있사오니
점검 한 번 받아보십사 해서 링크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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