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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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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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1.11
    유럽 근세사 훑어보기 V : 근대 철학
  2. 2018.11.05
    유럽 근세사 훑어보기 IV : 과학 혁명




History of Europe in Early Modern Times V

Rise of Western Modern Philosophers




오늘날 정치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압도적으로 유럽 출신

백인들의 시각과 사고를 반영하고 있는 것은 다들 아실테죠.


그래서 서유럽 주요 국가의 근세사를 따라가보는 것이 종종

큰 의미가 있답니다. 하여 근세를 열어젖힌 몇 가지 트렌드를

시리즈처럼 훑어보는 시간을 마련해 볼까요.




V. 근대 철학 Modern Philosophy 



모든 학문은 철학으로부터 파생되어 가지를 치고 생장합니다.

철학은 정치경제 등 사회 현상 전반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고요.

유럽 역사에서 근대 철학의 태동이란 현상은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현대 문화의 바탕을 형성하죠.


인문주의의 부활, 무역 항로의 개척, 프로테스탄트의 발호,

자연 철학의 과학화 등 지금까지 상술한 각 현상들이 서로

밀접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점차 사회가 생동하고 변화하는데,

이를 설명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철학자들이 맡은 거죠.


16~17세기를 살며 새로운 움직임을 포착한 초기 철학자들이

선각자로서의 사명을 찾았습니다. 중세를 지배한 스콜라 철학

극복하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정신을 되살려 그네들이 살던

현재의 시간에 적합한 시대적 사상 체계를 완성하는 것이죠.


초기 선구자들을 지역과 성향에 따라 분류할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를 아우르는 서유럽 대륙에선 합리주의,

rationalism으로, 영국에선 경험주의, empiricism으로 부르며

각자 독자적 체계를 조성했어요.


이성과 경험으로 나뉘는 흐름을 당시에 인지한 건 아니고 정작

후대에 이 일을 한 사람은 칸트입니다. 현대 철학의 하위 분과를

구분하면 인식론, 형이상학, 존재론, 윤리학, 논리학, 미학, 정치

철학 등인데 대륙과 영국의 논쟁은 인식론에서 출발하였죠.


합리주의는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초월적 절대 진리를 찾아 인식의

근본으로 삼자는 생각입니다. 30년 전쟁 참전 중 신비한 꿈을 꾸고

학문의 길에 들어선 르네 데카르트가 선구자로서, 그는 철학, 수학,

광학, 천문학 등 방대한 연구를 한 대학자이자 철학의 아버지에요.


1637년에 출간한 방법서설에서 그는 이른바 방법적 회의

반복하여 종국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를

의심할 수 없는 제1원리로 제시했어요. 이로부터 시작하는

연역적 추론을 통해 신과 사물의 존재를 증명하자는 거죠.


경험주의는 사물의 현상에 대한 인식의 출발점을 사유자가

직접 경험한 지점으로 잡자는 생각으로서, 평생 법관으로 산

프란시스 베이컨이 데카르트보다 수십 년 앞서 늘그막에

실험과 저작에 몰두하며 새로운 생각을 집대성했어요.


그가 죽기 여섯 해 전 1620년에 집필한 신기관은 그리스

이래 과학 연구론의 체계를 장악한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에

의문을 품고 귀납적 실증으로 진리에 접근할 것을 주문했고

(아는 것이 힘이다..란 명제) 우상론에서 - 종족, 동굴, 시장,

극장 - 인간의 보편적 편견을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대륙의 합리론을 계승한 이는 네덜란드의 바뤼흐 스피노자와 독일의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였어요. 둘은 데카르트와 함께 3대 거장으로

꼽힙니다. 스피노자는 1674년 에티카를, 라이프니츠는 1710년

신정론을 출간하여 인간 이성의 탐구를 이어갑니다.


에티카는 스피노자 필생의 역작으로서 살려는 본능적 의지,

코나투스가 지배하는 감정을 통제하려면 오직 이성에 기댈 수

있을 뿐이라 썼죠. 라이프니츠는 신정론에서 철학과 신학이

서로 모순되지 않아 양자 모두 신의 섭리일 뿐이라고 설파해요.


영국의 경험론은 존 로크가 계승하고 데이빗 흄이 발전시켜

후대로 넘어갑니다. 1690년에 로크가 출간한 인간오성론

백지 상태의 인간이 경험으로 지식을 축적한다고 봤지요.

(빈 서판 같은 백지 상태, 라틴어로 타뷸라 라사라고..)


한편 계몽주의가 발전한 사회계약론이 주류를 형성하여 공화주의

정치 사상으로 또 하나의 줄거리를 이룹니다. 토머스 홉스가 단초를

풀기 시작하죠. 1651년 명저 리바이어던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과 같은 자연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계약을 맺고

국가를 세운다는, 현대적 이데올로기의 출발점을 제시합니다.


존 로크는 왕당파가 왕권신수설을 부활하려는데 반발해 1688년

통치론에서 그해에 일어난 명예혁명을 옹호하고 인간의 자연권,

피치자로서의 저항권, 선거제와 권력 분립의 원리, 노동 가치설

등의 주제로 미국과 프랑스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어요.


장 자크 루소는 1762년 출간한 동명의 저서로 아예 사회계약론

완성한 사람이죠. 양도할 수 없는 국가의 주권은 오직 인민에게서만

나오며 자유의지와 사회계약으로 공공선을 추구한다고. 익숙하죠?

자유-평등-박애의 정신을 정립함으로써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

기반을 완성하지만… 본인은 혁명 발발 11년 전에 사망…ㅜ


이렇게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영국을 중심으로 맹렬하게 발전한

세 줄거리가 합하여 근대 철학이 집대성되는 전기를 맞습니다.

네, 이마누엘 칸트.. 지구상 역대 최고의 지성이 등장해요. 짠.


칸트가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에요. 첫째, 합리든 경험이든 계몽이든

그때까지 발전한 유럽의 모든 철학을 종합하여 인식론, 형이상학,

윤리학, 신학, 미학, 존재론, 정치학 등 전 영역을 집대성한 체계를

완성하고 수백 년 후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에요.


둘째, 이렇게 완성한 독일 관념론의 비판 철학이 제시한 모든 논제가

결국 선험적 이성이 주재하는 사상의 중심에 인간을 주체로 놓았고

이는 르네상스 이후 수백 년만에 유럽이 신의 그늘을 드디어 완전히

벗어나 인류가 최상위 존재로 올라섰음을 의미하는 거란 점이죠.


1781년 순수이성비판, 1788년 실천이성비판, 1790년 판단력비판

차례로 출간하며 그는 인류의 철학을 종합합니다. 전 영역에 걸쳐서요.

이성을 중시하나 경험론을 끌어와 a priori, 선험적 관념론을 세웠죠.


칸트 이후의 철학은 어떻게 그를 계승하여 발전시킬지가 관건이었죠.

게오르크 헤겔이 독일 관념론의 적통을 계승했습니다. 칸트 만큼이나

철학의 전 영역을 통찰하며 절대적 관념론변증법, 역사 철학

종합하여 수많은 헤겔주의 추종자를 낳았습니다.


18세기 공화주의를 일단락짓고 맞은 혁명의 시대에 사상의 조류는

자유주의로 흘러갑니다. 제레미 벤담은 1789년 저서 도덕입법원리

통해 공리주의를 확립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창했고

후대의 자유주의자에게 영감을 줬어요.


존 스튜어트 밀은 1859년 자유론으로 19세기 자유주의 정치 사상을

종합한 대가입니다. 이미 벌어진 정치 현상의 사변을 세운 것이 밀의

역할이었다면 카를 마르크스는 1867년 자본론으로 미래에 등장할

사회주의 정치 체제의 철학 기반을 제공하는데 앞장섰죠. 18세기

말엔 에드먼드 버크가 보수주의의 근간을 다진 적도 있었어요.




영화의 소재로는 철학자 자신보다 철학책 속 논쟁 주제가 더

알맞을 겁니다. 인식론이 와닿지 않는다면 매트릭스

숟가락 씬을 다시 한번 음미하는 것이 좋겠고요.



리들리 스코트해리슨 포드와 작업한 블레이드 러너

인간이란 누구인가에 대한 존재론을 탐구했었죠. 같은

감독의 프로메테우스는 신의 존재를 파고 들었고요.



인과론의 비극적 참상은 2004년작 나비효과

처절하리만치 극적으로 묘사했었고요.



욕망에 빠진 인간의 윤리적 모순에 대해선 작고하신 앨런 파큘라

감독이 노년에 작업한 1990년작 의혹(무죄추정)을 추천해요.

해리슨 포드가 여기에도… 출연진 면모와 연기가 엄청나죠.

(원제는 Presumed Innocent.. 미성년자 특히 주의)



자유-평등-박애의 정신은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이

돌아가시기 전 블루-화이트-레드 시리즈에서 다루었는데요.

이 연작의 프로토타입 작품을 잘 모르시더라고요.

1991년작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이렌느 야콥이 여기서 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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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of Europe in Early Modern Times IV

Super Troupers of Modern Sciences




오늘날 정치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압도적으로 유럽 출신

백인들의 시각과 사고를 반영하고 있는 것은 다들 아실테죠.


그래서 서유럽 주요 국가의 근세사를 따라가보는 것이 종종

큰 의미가 있답니다. 하여 근세를 열어젖힌 몇 가지 트렌드를

시리즈처럼 훑어보는 시간을 마련해 볼까요.




IV. 과학 혁명 Scientific Revolution 



16~18세기 유럽의 자연 과학이 혁명적이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사회 문물을 다양하게 변화시키고 민중의 사상과 생활에

영향을 끼친 광의적 현상을 과학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자연 과학’이라고 분류하는 영역의 학술 기반과 초창기

혁신적 진보를 바로 이 시기에 다진 것입니다. 또한 서양 유럽의

백인계 국가가 현대의 사회 변화를 장악하고 주도하게 만든 가장

실천적인 원동력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근세의 영국과 프랑스 등지에선 과학이 발흥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었죠. 크게 세 가지를 꼽아보면요.


첫째, 르네상스 시기에 새롭게 발견한 고대 그리스와 로마

학술 문헌을 연구하며 자연 현상을 바라보는 철학 기초와 태세를

일신하여 재정립할 수 있었어요. 흔히 일컫는 신플라톤주의에요.

즉, 인문주의 기반이 없었다면 과학 발전은 요원했다는 뜻이죠.


둘째, 학술적 동기와 지적 수준을 가진 기술자 직업군이 때마침

대거 양성되어 사회 문물 곳곳의 필요와 갈증을 채워주고 있었어요.

갈릴레이나 데카르트 같은 사람들입니다. 영국과 프랑스엔 이들을

대거 수용하여 학회한림원 형태로 양성하는 체계도 있었지요.

대항해포병전 같은 사회적 변동의 영향도 분명 있었겠고요.


셋째, 금속 활자 인쇄술이 급진보하여 서적 출판물 형태로 지식이

퍼져 나가는데 일조했습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지식을 얻으려고

수도원 같은 데서 일일이 필사하는 방법으로만 가능했던 일이에요.

지식 보급이 기득권인 사회였다가 이제 평민에게도 열려가는 거죠.


급진적 과학으로 중세의 벽이 가장 먼저 허물어진 곳은 자연 과학 중

천문학였어요. 하늘에 깃든 신의 섭리를 제고해야 했으니까. 폴란드

신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고대 학자 프톨레마이오스 이론과

실측 자료가 일치하지 않음을 발견하고 새로운 세계를 열었어요.


지동설의 생각을 1530년대에 미리 집필해뒀으나 급진적 내용을

발표하기에 신분의 제약이 컸죠. 십여 년 후 죽기 직전에 출판됐고

유럽 지식인 사회에 충격을 선사합니다.


지동설을 천체 역학으로 발전시킨 인물은 케플러의 법칙으로 유명한

독일의 요하네스 케플러였어요. 지구를 포함한 행성이 공전한다는

데에서 더 나아가 그 궤적이 타원형이란 케플러 제1법칙을 1609년

신천문학을 통해 발표합니다.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수석 수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당시

최신 발명품 망원경을 개량하여 목성의 위성을 발견합니다. 1632년

천문대화에서 케플러 이론을 바탕으로 지동설을 역설했는데 이로

인해 죽기 9년 전 종교 재판까지 받습니다. 종교 전쟁이 극에

달하던 때인지라 로마 교황청은 민감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새로운 시대를 몰고 올 철학자들도 과학 연구의 방향성을 논합니다.

몸소 과학 실험을 즐기던 프란시스 베이컨은 1620년에 신기관

통해, 군인 출신 수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1637년에 방법서설로 각각

자신들의 자연 철학 지론을 펴 후대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그땐 지금의 과학을 자연 철학이라고 불렀답니다.)


영국의 명의 윌리엄 하비는 심장의 펌프질로 동맥, 정맥 및 순환계가

혈액을 공급 받는다는, 지금은 지극히 상식인 원리를 처음 내놓아

생리학 분야에서 시대를 앞서간 인물입니다. 1628년 일이고요.


아일랜드 출신 로버트 보일은 지금 화학의 기본 원리, 보일의 법칙

1662년에 발표했어요. 일정 온도와 일정 질량인 기체의 부피는

압력에 반비례한다는.. 이분은 리트머스 시험지도 발명했어요.


17세기 후반 보일과 같은 시대 영국에서 아이작 뉴턴에 이르러

과학 혁명의 정점이 찍혔다고 보면 됩니다. 과학사상 최고의 명저로

꼽히는 프린키피아,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1687년에 발표해

고전 물리학뉴턴 역학의 시대를 활짝 열어 젖혔어요.


운동하는 물체에 가한 힘이 질량 및 가속도에 비례한다는, 이른바

뉴턴의 운동 법칙은 지구 중력의 비밀을 밝혔고 나아가 모든 우주

천체에 공통적으로 만유인력이 존재함을 인류에 알려줬어요.


뉴턴의 공적은 수학에도 미칩니다. 일찍이 갈릴레이도 한 연구했던

미적분 기법을 개발하여 물리 역학 연구를 진일보 시켰어요. 같은

시기 독일에서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역시 미적분을 완성했고요.


이 시기는 영국과 프랑스가 국가적으로 과학자를 양성하고 독려한

때입니다. 유서깊은 영국 왕립 학회가 1660년에 찰스 2세의 재가로

설립되었고 프랑스 과학 한림원은 1667년에 루이 14세가 만듭니다.


양국의 아카데미를 오가며 가장 활발하게 연구한 사람은 네덜란드

출신의 과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였어요. 토성의 고리와 타이탄

위성을 관측하고, 진자 시계를 발명했으며, 하위헌스의 원리

알려진 빛의 파동설을 1690년 논문을 통해 정립하였죠.

(종전에는 독일식 ‘호이겐스’로 불린 인물)


앙시앵 레짐 프랑스의 공직자인 앙투안 라부아지에는 1785년

학자들 입회 하에 행한 실험에서 물의 조성이 수소와 산소임을

알아내고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소라는 개념을 창안하여

근대 화학의 아버지로 우뚝 섭니다. (악덕 세금 징수원 전력

때문에 몇 년 후 혁명군에 의해 참수되는 비운도..)


19세기 인류를 미몽에서 일깨운 최고의 연구는 진화론일테죠.

찰스 다윈이 1859년에 출간한 ‘종의 기원’은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켜 사회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어요.


세기말의 마지막 충격은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을

1899년에 출간하면서… 정신 분석학의 과학성 논란은 그렇다

쳐도 인간 내면의 무의식 탐구는 모든 학문에 영향을 줬죠.


이렇게 장구한 역사와 노력 끝에 흘러간 과학 혁명의 최정점을

중세말 기준으로 꼽는다면 뉴턴 역학이 완성된 순간일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191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으로

고전 역학을 파훼한 때를 현대사의 모멘텀으로 꼽을 테고요.




미국의 현대 작곡가 필립 글래스는 음악사적 중요도도 크거니와

과학자를 소재로 완성도 높은 오페라를 발표하여 종종 화제이죠.

이미 갈릴레이, 케플러, 아인슈타인을 주제로 작품을 발표했답니다.


가장 최신 2009년작 케플러를 맛보시고..



2002년작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대략 이렇구나..



가장 유명하고 오래 된 1976년작 해변의 아인슈타인.. 느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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