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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Japanese Days of Abe-Sontaku Politics:
How They Unintentionally Oppress Journalism
한국의 언론은 자유도보다 신뢰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어
사회 전반적인 반동 기류가 끓어오르고 있는 상황이며, 중국
언론은 공산당 선전 선동과 구분이 안 되는 수준인 것이 작금의
현주소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일본 이야기 해볼까요.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신뢰성은 어쩔 수 없을지언정 그래도 언론
자유도는 어느 정도 선을 회복시킨 한국과 비교하여, 일본은 12년
아베 신조 내각 집권 이후 오히려 기본적인 언론 자유도마저 점차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지경에 이르고 있답니다.
2010~12년에 걸쳐 국경없는 기자회 언론 자유도 랭킹에서 무려
17위, 11위, 22위를 기록하며 탈아시아 세계 정상급의 선진상을
구가하던 일본. 아베 내각 집권 후에는요? 2013~19 7년간 각각
53위 — 59위 — 61위 — 72위 — 72위 — 67위 — 67위를
기록... 정말 완벽하게 나락으로 떨어졌어요. 한국은 이미 일본을
저만치 따돌려 버렸어요. (현재 한국은 40위권)
https://en.wikipedia.org/wiki/Press_Freedom_Index
현대의 일본이라는 나라를 정치학적으로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요.
일본의 정치라는 이면은 평범한 일본 시민이 꾸려온 살림살이 경제의
문제를 들춰보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들어요. 1945년 추축국 패망
이후의 일본 경제사를 대략적으로나마 눈여겨봐야 하는 거죠.
전후 기간 산업의 폭망, 6.25 전쟁으로 인한 기적적 부활, 60~70년대
폭풍 성장의 시대, 80년대의 버블 호황, 90년대 버블의 붕괴, 잃어버린
10년과 20년의 시절, 고령화와 부동산 경제의 붕괴 그리고 우경화의
그늘 등… 일본 경제의 주요한 곡절과 변곡점 사이 사이마다 정치적
변화의 동인이 작용해왔다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어요.
한때 동아시아 아니 세계 최고 수준의 활기찬 발전 동력을 세상에
제공한 일본 경제계의 활력과 비교하여, 일본의 정치가 놀라우리만치
천편일률적인 획일성을 유지해온 사실을 발견한다면 그 이질감에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에요. 68혁명과 전공투의 아스라한 추억의 시절을 제외하고
현대 일본의 정치사는 잽-리브뎀, 일본 자민당 일당 독재에 가까우니까요.
현대 일본의 정치사에선 90년대의 정권 교체 한 번을 제외하고 수평적으로
정권 변동이 이루어진 적이 없습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2천년대 초반에는
일본이야말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사회주의 국가란 평가가 대두했을
정도에요. 실질적인 자민당 일당 독재에 가까웠죠.
이는 현대 일본 경제사가 산업화 버블의 성장세와 안락함이 가져다준
역설적인 함정이라 봅니다. 풍요의 나락에 빠진 일본 시민 사회로서는
스스로 각성하여 봉인을 풀고 정치적으로 각성할 기회를 찾을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고 봐야죠.
그리고 현대 일본의 이런 복합 현상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군국주의
정치 전통이 사회 전체를 억압하고 시민 개인의 의지를 박약하게 만든
역사와 깊은 연관이 없다고 할 수 없죠.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76년
작품 감각의 제국 같은 시대의 문제작이 이런 현실을 냉정하게 그린
바 있어요.
아베 신조의 12년 집권 이전 일본 정치는 대체적으로 그냥 보수적인
정통성을 유지했어요. 그러나 아베 집권 이후 일본 정치의 엘리트들은
급격하게 극우로 변모해 버립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정치 활동 목적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개헌입니다.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정상’ 국가로
변화하고 싶다는 것이죠.
전통적으로 일본의 정관계를 이끌어온 관료 공무원 집단은 그래도 상당한
정도의 객관성과 전문성을 가진 그룹으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베 집권 이후로 이런 전문가 집단의 성향조차도 부정적인 변화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아베 손타쿠라는 현상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そんたく(忖度), sontaku..
알아서 기어다닌다는 뜻의 일본어 표현인데 뭔가 압박적인 구조 하에서
개개인의 합리적 의사를 스스로 검열 내지 묵살하고 권력층의 요구에
순응해야 한다는 억압적 메세지를 읽을 수 있죠.
(TBS) 日 정부, 언론까지 장악한 우경화 실태 (호사카 유지)
https://www.youtube.com/watch?v=tElde9QSzKA=634s
(JTBC) 다시 등장한 '손타쿠'…궁지 몰린 아베, 책임 떠넘기기?
https://www.youtube.com/watch?v=2mPFR84M2wU
(KBS) 알아서 긴다? 알아서 모신다?…“아베 손타쿠” 파문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4174007
이렇게 억압받는 집단은 관료 뿐이 아닙니다. 언론계도 마찬가지이죠.
한국과 비슷하게 출입처 제도를 유지하는 일본의 언론 지형에서 특정
출입처 권력자에게 찍히지 않기 위해 심도깊은 취재를 의도적으로
기피하는 현상이 최근에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언론 자유도가
하락하는 데는 다 원인이 있겠죠.
지난 7월에 인디펜던트 지를 통해 소개된 사례도 이런 현상을 꼬집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언론의 이런 손타쿠 관행을 따르지 않는, 이소코
모치즈키라는 열혈 여기자를 칭송하는 형태이긴 합니다만. 사실 일본
정관계와 언론계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셈이죠.
모치즈키 기자는 요시히데 스가 관방 장관에게 직격탄 질문을 날리는
장면이 알려지며 일약 일본 언론의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정부 관료에게
쓰잘데기 없는 질문이나 날리는 게 고작이던 다른 남성 기자들에 비해
그는 기자로서의 본분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었죠.
문제는 일본의 언론 지형도에서 이런 현상을 일반적인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겁니다. 보통 아마요산이라고, 아사히 > 마이니치 > 요미우리 >
산케이 순으로 일본 언론의 진보-보수 구도를 얘기하죠. 아사히 계열이나
도쿄 신문의 모치즈키 같은 예외적인 경우만이 두드러질 뿐, 아직도 대부분
일본 기자는 보수적이고 눈치보기에 바쁩니다.
KBS 시사직격 출연시 발언으로 대차게 욕먹고 있는 산케이 기자 구보타
루리코 정도의 시각을 평균보다 약간 오른쪽으로 생각할 수 있을 정도에요.
결국 언론 기관의 자정 노력에 기댈 만한 건덕지는 그닥 남아있지 않다
하는 점이, 오늘날 한국 및 일본 양국 언론계의 공통점이 아닐까요.
일본에서도 건강한 시민 사회의 여론이 형성될 수 있도록 = 비록 이럴
가능성이 일본에서 정치 혁명이 일어나길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엄청나게
확률이 낮습니다만, 한일 양국의 시민 사회가 조금씩 연대의 폭을 넓혀
나가는데 답이 있지 않을까... 이런 모호한 결론 밖에는 못 내겠어요.
능력 부족이네요.ㅠ
인디펜던트 지에 기사를 송고한 특파원이 본래 뉴욕 타임스 소속이신지라
이 7월 기사의 저작권은 NYT가 갖고 있어요. 그래서 이 편도 전문 번역을
공개할 수는 없는 점 양해 바랍니다. 비교적 쉬운 영어이니 링크 들어가서
직접 읽어보시길 권유합니다.
THE JAPANESE REPORTER ASKING MORE QUESTIONS THAN SHE IS ‘SUPPOSED’ TO
할당 분량보다 더 질문하려 덤비는 일본의 이 언론인을 주목하라
Her interrogations of Japanese officials have made her something of a celebrity and, as Motoko Rich discovers, Isoko Mochizuki won’t take no for an answer
일본 관료들을 향해 아니라는 답변은 사양하겠다며 담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소코 모치즈키 기자... 일약 스타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모토코 리치 특파원이 전하다
이상…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언론계를 짚어보는 연작 형식 포스트를
이제 끝마칩니다. 그닥 영양가 높지 않는 졸고를 열심히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앞으로 포스팅 작업에 그다지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아
미리 양해의 말씀을 전합니다. 계속 뭔가 올라오긴 하겠으나 어느 시점이
되면 중단될 예정이오니 너무 놀라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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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es Chinese Despotism Ever Understand
What the Press Is Supposed to Be About?
중국은 공식적으로 집단 지도 체제의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란 문제를 민주 정치 국가에서 상정할 수 있는 만큼
궁극적인 사회 통합의 가치로 취급할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먼저 봉착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 중국 헌법에도 언론의 자유란 항목이 있기는 한 건가...
하는 의문이 들죠. 예, 있기는 있어요. 어디 그것 뿐인가요.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 오늘날 민주 국가의 기본 덕목으로 꼽는
요소는 다 갖고 있어요.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또 축자적으로는.
그러나 — 헌법학이나 정치학 일반 이론을 한 번이라도 공부해본
분들은 다 알겠지만 — 현대 헌법의 가치에서 중요한 것은 형식적
규정이 아니라 실질적 준수 여부와 그 온존의 수준입니다.
헌법전이 문자 몇 마디 박아놓는 것 정도는 사실 일도 아니에요.
그냥 좋은 말 갖다가 잘 써놓으면 그뿐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문자로 써놓은 내용이 가리키는 무형의 정신적 가치가 그 나라
정치 문화에 깊게 배어 생활의 수준에까지 다다를 정도로 눈에
보일 만큼 현실적 의의를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일 거에요.
최근의 홍콩 소요 사태를 관찰하신 분들은 이미 느끼시겠지만..
그런 관점에서 중국적 사회주의 정체가 인민의 대의를 반영하는
진정성을 가진 정치 이데올로기인가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현대 중국의 헌법 구조 및 구체적인 헌법
가치에 관해 홍콩 문제와 중국식 정치 이데올로기, 언론의
기능이란 면으로 고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편으로 관점을 돌려보면 근본적으로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하고 깨달을지 모릅니다. 중화 인민 공화국의 현대적 정체를
완성한 82년 덩샤오핑 헌법 이후, 현대 중국의 정치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개념으로서 일당제 집단 지도 체제에 의한 사회주의
공화국이란 것을 끄집어낼 수 있는데요.
근본이 사회주의에 있는데 인민의 풀뿌리 의사를 억압하고
박해한다..? 모름지기 폭력 혁명에 의해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세상에 태어난 이데올로기가 사회주의 아니었던가요? 우리가
역사를 거꾸로 알고 있는 겁니까?
물론 중국 공산당 당국은 여기에 일당 지도 체제의 단일 국가
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란 정치적 명분을 언제나
간편하게 대입해 왔습니다. 언뜻 넓은 영토에 연방적 자치를
추구하는 나라처럼 보이지만 사실 중국은 중앙 집권적 정치
논리에 충실한 사실상의 독재 국가이거든요.
자유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입장에서 매우 의아한 지점이지만,
사회주의 국가의 언론 기능이란 것도 양상이 참 기형적입니다.
권력을 통제하여 삼권 분립과 다른 제4의 견제균형을 제공하는
민주적 언론 기능과는 큰 차이가 있어요.
지난 3월에 독일 언론 DW(Deutsche Welle; 도이체 벨레)가
대만 주재 특파원을 통해 기술한 현대 중국의 언론 양상에 관한
기사도 바로 이런 맹점을 짚었어요. 국경없는 기자회로부터
매년 언론 자유도 하위권을 기록하는 중국 언론의 사회적
효용이 중국을 넘어서서 세계 언론 지형을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한탄이었지요.
이 특파원 보도의 주요 골자는 이거에요. 중국의 언론이 과연
언론 기관인가, 아니면 공산당 선전 매체인가 구분이 안 가는
행태를 보여준다는 것이지요. 마치 히틀러 시절 괴벨스 정책에
버금가는 파시즘 독재 수단의 현대 버젼을 보고 있는 것 아냐,
하는 생각이 들 거란 말이에요. — 아, 괴벨스-파시즘 표현은
본 블로거의 주관적 해석입니다. 오해는 마시고.
공산 국가의 선전 선동 방책에 대해, 나이가 어느 정도 되는
시민들은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기에, 감이 오실
겁니다. 북한, 소련, 중공, 동독 등 과거의 사회주의 세력들
모두 이런 정책을 썼고 (일부는 지금도 쓰고 있으며) 현대적
관점에서 이런 것들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이고 구태의연한
인상을 주는지 능히 상상이 가능할 거에요.
그런데 21세기까지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사회주의 국가로서
중국의 현대적 정책상은 매우 기이한 모습입니다. 언론이란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거든요. 언론이라 쓰고 선전이라
읽는 식인 거죠.
냉전이 종식한 상황에서 과거처럼 자본주의보다 우월하다느니
하는 일차원적 노선을 걷진 않습니다. 덩샤오핑 이후 중국은
이미 자본주의로의 개방을 받아들인 수정 사회주의의 길을
걸어왔어요. 78년 이후 벌써 40년이 넘었네요.
대신 지금의 중국은 일대일로 같은 대외 슬로건을 표방하며
‘하나 된 중국’의 통일된 중앙집권적 국력을 광고하는 데에
집중하는 형국입니다. 즉, 시진핑 시대 G2 중국의 정치 노선
일체는 일대일로 하나의 개념으로 통일하여 설명할 수 있어요.
현대판 실크로드를 표방하며 중국 경제권의 해외 시장 정복을
목적으로 시진핑 리더쉽 시스템이 추진하는 정책적 전략 체계를
가리켜 일대일로, 一带一路 = Belt and Road Initiative /
One Belt One Road(OBOR) ..로 칭합니다. Yídài Yílù..
주로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를 표적으로 삼아
그 나라 산업 인프라 시설의 대규모 기간 공사를 수주해 중국
기업에 몰아주고, 건설 자금의 융통은 AIIB,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 같은 중국 중심 금융 인프라와 그 나라 정부를 이어주는
식으로 사업이 이루어지고요. 표적이 되는 국가들이 주로 예전
실크로드 비슷한 모양새로 군집을 형성하는 특징이 있죠.
쉬운 말로요? 중국 기업이 미국 등 서방 제치고 세계를 양분해
먹어 치우게끔 이끄는 시진핑 황제의 전략인 거에요. G2로서
기득권을 철저하게 보전하고 2049년(중국 건국 100주년)까지
중국의 먹고 살 길을 확보하고자 하는 초국가적 범지역적 경제
계획인 셈이에요, 시진핑 정치 집단이 구상하고 시행하는…
사실 실상을 까보면 오로지 중국이 먹고 살기 위한 방편에
불과해요. 과거에 미국이나 소련이 주도했듯이 우호 진영을
위해 호혜적 성격으로 펼치는 경제 구호책.. 마셜 플랜 같은
것..? — 이런 거 아니에요. 착각하면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반중파들이 있죠.
문제는 중국이 일대일로를 현대적 마셜 플랜인 듯이 둔갑하여
선전하고 있다는 거에요. 그리고 거기에 자본주의 언론 시장의
복잡성 지형도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 또 다른 문제이죠.
예의 도이체 벨레 기사가 잘 분석해 주었는데요.
중국은 대부분 국영인 그네들 언론사를 서방 자본주의 시장에
꽤나 전략적으로 풀어 놓았어요, 서구 광고 수익 시장에서의
엄청난 큰손으로 활약하는 새로운 위상과 함께. 뭔 말이냐고요?
현재 세계 언론계 광고 시장의 가장 큰손 중 하나가 바로 중국
공산당이란 말이에요.
서방의 언론사 중 상당 지분이 중국 광고주의 영향 하에 있다고,
많은 비평가와 연구자들이 나름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어요.
물론 기사의 내용을 입맛대로 좌지우지 한다거나 중국 국내에서
하듯이 장난치는 구도를 만들 수는 없어요. 하지만 여러 변수를
통해서 중국의 중앙 정책에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게 진실에 가깝다는 주장인 거죠.
중국이 취하고 있는 방법은 다양한데 특기할 만한 양태 두 가지를
거론하자면... 첫째, 세미나 같은 국제 규모의 이벤트를 활용하고
있어요. 이동 및 체류 비용 전액을 공산당이 부담하여 전 세계의
언론인을 중국으로 초청하고 호화로운 접대와 교류, 취재의 환경을
제공하는 거죠. 물량 공세인 셈이에요.
둘째, 중국 국영 방송 중 가장 유명한 CGTN 같은 곳에서 현재도
지속 제작 중인 콘텐츠 중에 '차이나 워치'라고 있어요. 유튜브만
검색해봐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일종의 짧은 단편 꼭지용 TV포맷
콘텐츠인데요. 중국이 벌이고 있는 대내외 사업이나 경제 개발
현황을 철저하게 중국적 관점에서 묘사하고 설명하는 동영상
단편물 시리즈 정도로 보면 되요. China Watch..
세계 방송 네트워크에 이 시리즈를 대량으로 배포하며 무의식 중에
중국적 사고 방식이 공산당 수뇌부에서 서방 가정의 시청자 층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치밀한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는 거에요. 서구권
방송사 입장에서도 꽤 그림이 좋은 단편 꼭지 시리즈가 안정적으로
공급될 경우 마다할 이유는 없거든요. (정규 프로그램 사이 사이에
끼워 편성 메꾸기 딱 좋으니까) 아울러 적정하게 광고 수익도 올릴
수 있을 테고요. 바로 이 빈틈을 노린다는 거죠.
G1인 미국도 이런 작태를 보이지는 않아요. 미국이 취하는 소프트
파워 전략은 훨씬 덜 노골적이죠. 헐리우드 영화나 각종 씽크탱크
연구소의 리포트 같은 방법을 주로 쓰잖아요. (지난 반세기 동안
여기에 열심히 투자한 나라가 일본이고요.) 바야흐로 중국도 자기
나름의 소프트 파워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셈인데 그 양상이 훨씬
저열하고 노골적인지라, 뭐라 반응을 보여야 할지 난감하네요.
기사는 차이나 워치를 일종의 현대판 트로이 목마 같은 거라고
표현해요. 은연중에 중국 공산당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자본주의 국가 백인 주류 사회에 퍼질 거라는.. 뭐 그런
얘기이죠. 쉽게 수긍하긴 어렵지만.
과연 이런 전략이 먹힐까요? 한국의 주류 시민 사회만 하더라도
수천 년간 중국의 역사와 얽히고 부대낀 역사적 DNA로 인하여
일본 만큼이나 가깝고도 먼 나라처럼 느끼기에, 북미와 유럽이
우리가 느끼는 정도로 깊이있는 식견을 가질 수 있을까, 쉽사리
감이 오지는 않아요.
한국인은 중국의 생각에 동화되기에는 지나치게 중국을 잘 안다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죠. 오히려 우리와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나라는
베트남 정도에요. 북미나 유럽은 한국이나 베트남에 견줄 만치
역사적 경험의 깊이가 부족하고 되려 오리엔탈리즘 같은 편견성
동인으로 인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집단 의식이 변화할
변수가 크지 않을까, 하고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에요.
헐리우드 영화에 차이나 머니를 무식하게 투입해 되레 대중적인
역효과를 일으키고 다니는 것이 현재 중국 공산당식 소프트 파워
정책의 현주소이니, 또한 사회주의식 프로파간다의 한계가 너무
뚜렷하다는 점이 이미 역사의 반면교사 사례를 통해 입증이 되고도
남았으니, 괜한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도 듭니다만.
다만 가뜩이나 위축되어 가고 있는 기성 언론 시장의 지형에 중국
자본이 위력을 떨치고 있다는 점만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사에 취재원으로 나선 멜버른 대학교 루이자 림 교수 역시, —
프로파간다의 효과성이 입증된 것인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 광고
수익 자체에서 오는 중량감이 현장 언론인의 재갈을 물리는 암묵적
검열 수단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했어요.
기사의 내용을 요약 정리하여 논평하자면 이와 같고요. 전문 해석을
게재하면 좋겠습니다만, 이 기사 역시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이 정도 선에서 에둘러 인용하고 마는 점을 양해해주기 바랍니다.
도이체 벨레 기사 전체에 제한이 걸린 것은 아직 아닙니다. 나머진
원문 기사를 그대로 정독하시길 권장합니다.
*DW: original link
https://www.dw.com/en/how-chinas-new-media-offensive-threatens-democracy-worldwide/a-48063437
How China's new media offensive threatens democracy worldwide
중국의 언론 공격은 어떤 방식으로 세계 민주 정치를 위협하고 있는가
덧붙여서, 중국 언론의 한심한 한계를 목도하며 홍콩의 현재 모습이
슬프게 오버랩되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정부 차원에서야 쉽사리
나설 수 없는 공식적 명분이 있지만, 개인과 시민 사회 차원에서야
어디 그러합니까, 사람 사는 세상인데. 특히 우리 80년과 87년 등
시절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는 시민들 반응이 많은 듯해요.
연대의 감성을 떠올려 보시길 조심스럽게 권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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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Club, A Starting Point Where Corruption
Erodes The Reliability of South Korean Press
...진짜 vs 가짜?!
지난 여름 이래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싼 미친 질풍을 겪으며 다들
몸소 체험하셨을 겁니다. 권언 유착에 길들여진 한국 언론의 저열한
수준과 싸구려 기득권적인 극보수 진영 논리를요. 질리죠?
전후 한국의 현대사에서 대개는 이러한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요즘처럼 광고주에 영혼을 팔아가며 저렴하게 군 적이 최근에
잘 없었던 듯해요. 세월호 때는 정권이 박해하니까 그런가 보다
이해해줄 구석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대체 왜 그런답디까?
현재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본 블로그는, 언론의 신뢰성이 추락한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며
이렇게 신뢰를 잃은 주범이 바로 언론계 자신이라고 주장합니다.
언론의 신뢰성이란 언론의 자유라는 관점과는 또 다른 것입니다.
Freedom of the Press, 언론의 자유는 헌법적 가치인지라 법률
및 제도가 보장하는 형이상학적 개념이자 거기서 파생하는 각종
행정 제도적 구현 수단으로 완성되는 영역입니다.
영국의 명예 혁명과 프랑스 대혁명, 미국 독립 선언, 독일 바이마르
헌법, 1948년 유엔의 세계 인권 선언 등 민주 정치의 발전사에 중요한
철학 기초를 쌓은 주요 길목마다 언론의 자유는 반드시 보장하는
기본권 조항으로 꼭 포함시켜 왔습니다. 현대 민주 정치에 있어서
필수 요소란 뜻이죠.
그에 반해 언론의 신뢰성은 주어지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언론계 스스로의 성과로 시장에서 평가받는 능동적인 결과물에
더 가깝습니다. 언론의 보도가 과연 믿을 만한가 하는 근본적
질문에 관한 것이고, 언론이 스스로 진실 추구라는 사명에
충실하다면 당연히 걱정할 필요 없는 질문일 겁니다.
세계적으로 언론 자유도를 평가할 때에는 비영리 기관 NGO인
국경없는 기자회, RSF = Reporters Sans Frontières, Reporters
Without Borders가 매년 발표하는 연구 보고서를 가장 정직한
판단 기준으로 삼습니다.
올해 19년 결과는 아래의 링크에 들어가면 보실 수 있고요. 암울한
이명박근혜 시대에 70~80위 수준까지 떨어졌으나 한국의 언론
자유 지수는 현재 아시아 최상위권 수준입니다.
**언론 자유 지수 2019년 연례 보고 (국경없는 기자회)
https://rsf.org/en/ranking/2019
올해는 한국이 41위에 선정되어 있고 이에 육박하는 국가는 42위
타이완 정도에 불과합니다. 일본이 67위, 중국이 177위입니다. 일본
및 홍콩이 최근 2~3년 간처럼 암울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아시아 수위는 당분간 한국과 타이완이 다툴 겁니다. 놀랍게도 이는
(가짜 뉴스 봇들의 천국) 미국과도 비슷한 순위랍니다.
불과 2년 전 17년에만 해도 한국은 겨우 60위권을 맴돌고
있었으나 현 정부와 촛불 시민 사회의 건강한 자정 움직임으로
이 정도 수준을 회복한 모양입니다.
이에 반해 언론 신뢰성의 평가는 이런 식으로 측정되지는 않습니다.
보통 언론학 및 저널리즘을 연구하는 저명 대학교의 공공 연구소에서
학술적인 수준으로 여론 조사 통계 분석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명한 옥스퍼드 대학교의 로이터 언론 연구소가 매년 발표하는
디지털 뉴스 리포트란 연차 보고서가 이 분야에서 객관적인 지표의
하나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올해 19년 보고서는 아래 링크에서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142~143 페이지에요.)
**언론 신뢰성 2019년 연례 보고 (옥스퍼드 대학교)
https://reutersinstitute.politics.ox.ac.uk/risj-review/digital-news-report-2019-out-now
자유도에서 비교적 만족할 만한 수준이던 한국의 상황이 정작 언론사가
제공하는 보도 기사 정보의 신뢰성 면에서는 매우 부정적인 수준임을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올해 개별 조사한 38개 나라 중 꼴찌인 38위를
차지했고 신뢰성은 22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나마 계량화 연구가 가능하도록 객관적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는
자유도 상위권인 나라의 언론 환경을 조사한 셈이라고 볼 수 있으니
고만고만한 언론 선진국 가운데에서 신뢰성은 최하위 수준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언론 신뢰성은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2백여 개 모든 나라를 다
조사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매년 30~40개 정도 국가를 골라서 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형편이 나은 나라로 볼 수 있겠죠.
자유도 역시 고만고만한 언론 선진국만을 상정해 보자면 아시아로선
높지만 유럽 등 최상위권 선진국에는 여러 모로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닌가 의심해볼 만도 합니다.
종합하자면, 헌법 가치의 사회적 실현을 측정할 기준으로 언론 자유도
측면을 보면 한국의 환경이 유럽 선진국에는 못 미치는 대신 아시아에선
19년 기준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고, 언론사 성과물의 질적
우수성을 측정할 기준으로 언론 신뢰성을 보면 한국의 기자들이 왠만큼
사는 나라들의 기자들보다 꽤 많이 뒤떨어지는 수준의 기사를 현재 양산
중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즉 한 마디로, 작금의 한국 언론 지형인즉슨... 정부와 시민의 노력으로
한껏 좋은 환경은 만들어 놓았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기자와 언론인 본인들이 여전히 문제라는 것입니다.
...외신 번역도 일부러 오독하는 기레기들
자, 기레기 이슈가 이 지점에서 튀어 나오는 것입니다.
시민의 희생으로 (물론 아직 최상위 레벨은 아닐지언정) 기껏 언론
자유를 구현해 놓았더니 어느새 광고 수익과 자본의 노예가 되어 버린
기자와 PD, 언론인들은 신뢰성 바닥의 쓰레기 같은 기사를 생산하는
부실 공장으로 돌아온 거에요.
그 숱한 세월, 국민이 인고와 희생을 치른 대가가 고작 이런 것입니까.
장준하 선생을 위시하여 수많은 애국 지사들이 독재와 압제에 항거한
결과가 겨우 이런 것...? 이건 좀 아니잖아요.
이제 원인을 고찰해 봐야겠죠? 복잡다기한 여러 요소가 유기적으로
뒤섞여 작용한 것이므로 첫 술에 모든 원인을 다 따질 수 없겠지만요.
이번 포스팅에서 그 원인 중 결정적인 하나를 들춰내어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방점을 찍고 싶어요. 바로 출입처 기자실의 존재입니다.
...기자실이란 곳의 가장 일반적인 그림
많은 시민들이 관공서 체계에 조응하며 삶을 영위할 기회를 가질
수 없기에 권언 유착의 배양 공간이 되는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잘 모르시는데요. 한국 언론은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유래한 매우
흉악하고 썩은내 풀풀 나는 기득권 제도에 기대어 기자질을 하고
있어요. 작게나마 이 자리에서 밝혀 보려 합니다.
각급 관공서 출입처에 마련된 기자실이라는 곳이 있답니다. 이런
기자실은 관공서 및 공공 기관 뿐만 아니라 각급 재벌 대기업 및
공기업 집단 역시 출입처로 취급하여 따로 설치해 놓기까지 합니다.
무슨무슨 협회, 연합, 연맹, 사단 등 관변 단체 성격을 갖는 각
공공성 단체 역시 마찬가지라고 보면 되요.
물론 물리적 공간과 제도적 장치가 항상 상근상존하는 체제인지
그때그때 사안별로 운영했다가 없앴다가 하는 체제인지는 기관에
따라 케바케로 따져야 할 수 있어 현실에서의 양상은 훨씬 복잡할
수 있습니다만.
공식적으로야 — 아래 링크 달린 기사에도 있지만 — 노무현 정부
때부터 없어지기 시작했다고 말은, 합니다만... 이런 시스템에 의존해
길들여진 언론인의 관행이 실제 존재하는지 여부가 더 중요한 것
아닐까요? 기레기로 불리우는, 기존 관행에만 의존하는 게으르고
무능한 기자들의 취재 관행의 사례는 차고도 넘칩니다.
또, 소수의 중앙 기관 몇 군데 바뀌었다고 나라 전체가 바뀐 것은
아니잖아요. 우리 생활에 더 밀접한 기초 지방 자치 단체 수준에선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음을, 다른 무엇보다 본 블로거
본인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판타지 소설 쓰는 것
아니고 아직도 실재하는 현상임이 맞다고 주장합니다. 법무부 장관
청문회 소동을 보며 많은 시민이 공감하시리라 확신하고요.
...원래 일본 꺼라서 서양에선 (경멸조로) 신기하게 생각하는 편
KBS 최경영 기자의 모 인터넷 방송 인터뷰를 찾아 보셔도 감을
잡을 수 있겠습니다만. 기자실은 어떻게 생긴 곳일까요. 머리 속에
간단한 그림부터 그려 보시죠.
**딴지방송국 다스뵈이다 제46회
https://www.youtube.com/watch?v=2UI1oE_qMB8&t=4539s
**노무현재단 알릴레오 라이브뷰 김PB 인터뷰
**TBS FM 뉴스공장 19년 10월 14일 3부: 우상호 의원 출연분
https://www.youtube.com/watch?v=-cdsHx0sPoc&t=789s
각 언론사에 자기 책상이 마련되어 있듯이 출입처 기자실에는
기자들에게 책상을 마련해 줍니다. 지원의 수준은 상이하겠으나
일반적으로 전화와 인터넷 통신선, 전력 서비스 정도는 지원해
준다고 합디다. 핸드폰과 와이파이로 대체한 곳도 종종 있다곤
하더군요.
출입처에 따라 차이가 큰데 행정 지원 업무도 서비스로 내놓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뭔 말이냐면, 기자실 담당 직원을 배치해주고
각종 업무 지원을 제공한다는 뜻이에요. 일종의 비서직인 거죠.
팩스, 복사기, 커피 등 음료 제공.. 이런 건 옵션으로 딸려 오는 것
같습니다. 물론 거기가 어디냐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기초 지자체 수준에서 지방 유지 역할을 자처하는 지역 언론
기자들 중 상당수는 — 어디 수형될 만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은
— 왠만해서 멤버가 교체되지 않습니다. 이른바 기자실의 ‘고인물’이
되어가는 거죠. 이들 자리는 거의 지정석으로 건드리지 않는다고도
하네요.
반면 삼성전자 등 주요 대기업을 출입처로 배당받는 기자들은
각 언론사에서 승승장구하는 출세 가도에 오르는 셈이죠. 이들은
경제통, 경제면 담당, 경제부장 등 그들 직역 내에서 다양한 위상을
선점하고 해당 분야의 여론을 주도할 ‘고인물’ 전문가로 성장할
기회를 얻는 겁니다.
대기업의 출입처가 경제 분야의 주류로 가는 지름길이라면 청와대,
국회, 법원, 검찰 등 기관의 담당 기자들은 정관계 분야에서 똑같은
기능을 자임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되겠죠. 사실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유명 정치인들 중 언론인 출신 인사 중에 이런 루트를 통해
정치로 들어선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를 기레기로
규정할 수는 없겠지만요.
...풀빵 찍어내듯 천편일률적 기사.. 광고주가 짖으라면 짖어주고..
전국에 산재하는 수백 군데 기자실의 사례를 여기서 단순화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압니다만, 그냥 소설 쓰는 셈 치고 가상의 썰을
풀어 볼께요. 소설입니다.. 기레기들 흥분하지 마세요.
문제는 기사를 생산하여 유통하는 일반적인 프로세스입니다.
이렇게 일하는 환경이 갖추어진 구조 하에서 어떤 기사가 나올까요.
출입처 기자실을 관리하는 해당 기관이나 기업의 실무 담당자가
있습니다. 홍보팀장 또는 언론대응 담당 정도 직함이 있겠죠. 이
사람은 기자실 소속 모든 기자들과 밀접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의 직분입니다.
이 사람을 통해서 사안이 있을 때마다 보도 자료라는 것이 배포되요.
보도 자료란, 일종의 기사 표준안입니다. 실무 현장 개념에 가깝게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게으른 기자들에게 살짝 고쳐 베껴 쓰라고 휙
던져주는 시험 족보 내지 컨닝 페이퍼인 거에요. 그 기관의 입장을
십분 반영하여 입맛에 맞는 언어로 다듬은 완벽하게 기사문 형식을
갖춘 모범 답안 같은 거죠.
...류승완 감독, 박훈정 작가 '부당거래' 중
물론 취재라는 과정이 있죠. 문제는 어디서, 냐는 거겠죠. 보도 자료가
배포될 때마다 그날 저녁에 이루어지는 거나한 회식 자리,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2차의 술자리, 3차 접대업소, 그리고 성접대까지...?
이렇게 내밀한 사적 공간을 기관의 담당자와 기자실 기자가 공유하며
이른바 ‘끈끈하고 숨김없는’ 관계를 형성하죠. 그 자리에서 술잔을
돌리며 맨정신인지 아닌지 알 수도 없는 상태에서 술안주처럼 입으로
질겅질겅 씹으며 진실이라고 포장한 ‘고급’ 정보를 교환하며 말 잔치가
벌어지는 곳... 출입처 기자들의 취재라는 과정은 보통 이런 식이죠.
일반 대중은 명작 영화를 통해서 이미 이런 면을 자주 접해왔습니다.
부당거래에서 검새 류승범과 기레기 오정세가 ‘열과 성을 다해 두 번
해드려’ 대사를 터뜨린 요정 내실 씬을 다시 한 번 보세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소설이고 상상으로 가정해 보는 것에 불과하니
모든 출입처 기사를 이런 식으로 매도하는 것은 부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지금까지 매체를 통해 접하며 고개를 갸우뚱하고
의아해한 기사의 상당수는 이와 유사한 형식으로 생산한 거라고 보면
크게 진실과 다르지 않다고 확신해요.
...그들이 잊고 사는 '진짜' 기자의 모습
아래에 링크를 단 외신 기사에서 인용이 나옵니다만, 가만히 앉아
있는 기자에게 기사가 오는 구조인 거에요. 기자가 기사를 찾아서
뛰어다니는 구조가 아니라요. 본질은 이겁니다.
세계 어디에도 이런 구조로 기사를 생산하는 나라는 없어요.*
뉴스의 소스가 되는 어떤 기관이 뭔가를 공식 발표하고 브리핑하면
기자가 용감하게 질문을 던지며 이에 대한 답변으로 충족하지 못한
영역을 기자가 발로 뛰어다니며 미진한 소재에 관해 추가 보도하고...
— 이것이 정상적인 통상의 저널리즘 프로세스입니다.
*아, 미안합니다. 사실은 두 군데 정도 더 있어요. 그것도 우리가
살고 있는 아시아에. 일본과 중국. — 그래서 동아시아 3대국의
언론 현황을 짚는 포스팅을 지금 펼치고 있는 건데요.
세상의 저널리즘은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 원칙입니다.
굳이 미국이나 선진국에서 이렇게 하고 있다, 지지부진하게
토달지 않아도 통상적 시민이라면 그렇게 인식하고 있어요.
그렇죠?
...유리천장이 가장 두꺼운 곳이 언론계 아닐까?
더군다나 사족이긴 하지만, 이런 구조는 지극히 성차별적입니다.
극도로 마초적이고 남성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뛰어 경력을 일구고 싶은 여성 언론인들에게 좀처럼
기회를 부여할 수가 없다는 부수적인 문제점까지 있어요.
— 정보 교류 자체가 아가씨 나오는 룸살롱에서 술잔 돌리며
이루어지고 2차를 가네 마네 이 수작들을 벌이고 있는 바로 그
옆에서, 여기자가 정상적인 취재로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반응이
돌아오겠어요? ‘저거 또라이 아냐?’라고... 능히 상상이 되시죠?
— 지상파 방송 및 주요 언론사의 부장급 이상 간부진 중에 왜
그렇게 여성 언론인이 드문지 이제는 이해가 되시죠?
...노무현 정부를 회상하는 김종민 국회의원
과거부터 민주당계 정치권에서는 이런 현상을 개선하려 무던히
노력해 왔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부터 언론 개혁에 손을 대기 위해
뭔가 해보려 했지만 IMF 똥치우느라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었고
본격적인 조처는 노무현 대통령께서 시작했어요.
04년에 청와대부터 시작하여 기자실을 없애고 브리핑룸 시스템을
도입했어요. 우리가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 하면 으례히 떠올리는
그림을 이때부터 만든 거죠. 2004년 당시 중립적인 입장의 뉴욕
타임스 일본계 민완 기자 오니쉬 노리미츠는 일본에서 물건너간
인습인데 한국이 일본보다 더 앞서 간다며 높게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에 반발한 것은 한국의 기성 거대 언론사였어요.
허 참, 아이러니하죠. 기자의 본분이 권력 견제라고 하니 권력의
고리를 끊고 이제부터 본분에 충실하라고 터전을 만들어주니
되려 언론 탄압이라고 되지도 않는 논조로 정부를 비난했어요.
한국 언론의 심각한 양태는 이때부터 일찌감치 예견할 수 있었던
일인 거에요. 발로 뛰며 땀내 나는 탐사가 아니라, 룸살롱 접대와
떡값과 명절 선물에 익숙한 거대 언론사의 거미줄처럼 찐득하고
더러운 카르텔. 오늘날 검찰 쿠데타에 편승한 쓰레기 언론의
연원인 썩은 동앗줄인 거에요.
해외에서는 당시에도 그랬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개선 노력을
오히려 대단히 높게 평가합니다. 아래에 그 뉴욕 타임스 기사의
예전 아카이브 링크를 다오니 직접 읽어보시길 권유합니다.
뉴욕 타임스와는 저작권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아 번역문을
달 수 없는 점을 양해하기 바랍니다. — 제목과 저자만 공개..
South Korea Dissolves Ties That Once Bound the Press to the Powerful
한국, 권언 유착의 고리를 끊어 버리다
By Norimitsu Onishi
오니쉬 노리미츠 특파원
...언론 자유도 공표 행사
...시민의 검색어 지령
...언론과 신경전 벌인 이재정 국회의원
...법무부 장관 사태 때 시민이 선택한 인기 검색어
**비슷한 논조의 모 지상파 언론 비평 교양 프로그램의 축약 편집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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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ndleberger Trap and Joseph Nye, PhD. :
An In-Depth View Over New Superpowers Age
킨들버거의 함정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개념이 더 먼저 널리 알려졌죠.
21세기 기준 오늘날의 국제 정치학에서 슈퍼파워, 즉
강대국 파트 각론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강의실에서도 반드시 가르치는 필수 요소에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더 먼저 널리 알려지지 않았나
본 블로거의 인지 기억으로는 그러한데, 틀릴 수도 있어요.
사실 연원을 따지면 킨들버거의 함정이 먼저 나온 거긴 하죠.
(Charles Kindleberger)
찰스 킨들버거란 사람은 20세기 전반기에 활약한 미국인
관료이자 경제사학자에요. 30~40년대에 걸쳐 재무성, 연방
준비 위원회, 중앙 정보국, 국무성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2차 대전으로 황폐화한 서유럽 각국에 대한 미국의 원조
정책으로 마셜 플랜을 기획한 핵심 관료 중 하나였어요.
이후엔 공직을 청산하고 정년까지 MIT에서 교편을 잡아
국제 경제학 및 경제사 분야에서 굵직한 연구 성과를 냈죠.
70~80년대에 걸쳐 대공황의 원인을 분석하며 발표한 소위
패권 안정론, hegemonic stability theory란 사상 체계는
신현실주의 국제 정치경제학파에 깊은 영향을 끼치죠.
아래 기고문에서 주로 인용하고 있는 함정 개념이 바로 이
패권 안정론의 주요 골자를 거론하고 있는 거에요. 전간기에
영국의 패권이 무너지고 미국이 새로운 슈퍼파워로서 세계
경제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리더쉽을 보였어야 했건만
그걸 못했기 때문에 대공황에 2차 대전이 왔다는 요지에요.
이 이론 구조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간에 한 번쯤은 귀담아
들어볼 만한 이론 체계라 할 수 있어요. 국제 정치학자들의
사상 세계가 실제로 오랫동안 강대국 외교 정책에 영향을
미쳐온 것이 사실이니까요. 헨리 키신저를 보세요.
또한 최근 미중간 무역 전쟁의 여파를 분석할 때 많은 이론가들이
낡은 책장에서 이 이론을 다시 끄집어내 해석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어요. 2000년대 이후 세계 질서는 미국 유일 파워의 시대가
지고 미중 G2의 새로운 태양이 떴다고 보는 편이 일반적인
시각이니까요.
(Thucydides)
(Joseph S. Nye, Jr. PhD.)
기고문을 게재한 곳은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정치대학원 산하
벨퍼 연구원의 공식 홈페이지입니다. 17년 1월 초였더랬죠.
조지프 나이라는, 20세기 최고의 국제 정치학계 스타 석학께서
쓰셨어요. 잘 아시죠? 클린턴 행정부 시절 '수상급' 차관보를
역임하여 관료로서 이름도 익히 알려진 분입니다.
분류 계통상으로 이 분은 로버트 커헤인과 함께 신자유주의*
국제 관계학의 계보를 형성하는 대학자이십니다. 소프트파워란
참신한 개념을 학계에 유행시켜 스타로 발돋움하셨죠. 관료로나
학자로서 80~90년대의 세계 정세 및 사상계를 멱살잡고 이끈
리더로 평가합니다. 현재는 하버드대 석좌 교수이시고요.
*오해하지 마세요. 국제 정치학에서 논하는 신자유주의와 흔히
공중 일반에 널리 퍼진 신자유주의는 서로 같은 개념이 아닙니다.
일반적 신자유주의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및 밀턴 프리드먼을
필두로 한 경제학 사조 및 제도 체계를 가리키죠. 리버테리언,
작은 정부, 공기업 민영화, 레이거노믹스, 대처리즘.. 뭐 이런 거.
나이 석좌 교수께서 일목요연하게 짚어낸 본 기고문에서는,
킨들버거 및 투키디데스 두 함정의 간략한 내용을 요약하고,
아울러 대중에 약간 더 알려진 투키디데스 측의 이론적 맹점을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유명하긴 한데 약점이 있으니
알아둘 건 알아두라는 메세지인 거죠. 이분은 평생 현실주의
사조에 반하는 입장이셨으니까.. 이해할 만하죠?
17년 1월 초는 미국 대선이 끝나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을 눈 앞에
둔 변혁의 시기였고, 한반도에서는 한창 북핵 위기가 고조되던
추억의 시절이었더랬죠.. (요즘 가열찬 평화 무드에 힘입어 벌써
아련한 기억의 저 뒷켠으로 밀려나 버렸네요. 이문덕입니다.)
일반적인 정서상으로 나이가 트럼프를 마음에 들어할 것 같진
않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성격도 대단히 친절하고 사려깊기로
유명하신 나이 교수께서는 이제 막 출범을 앞둔 새 행정부에
따뜻한 우려의 시각을 비추며 뭔가 도움될 만한 조언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시종일관 문체가 따사롭네요.
트럼프 대통령께서 이런 대학자들의 조언을 대차게 씹는 강성
캐릭터이신 건 이제 꽤 알려져 있긴 하나, 어느 순간에 대외
정책에 갑자기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는 노릇이긴 하죠.
지식으로 알아 두시고 안목을 넓혀보기를 권합니다.
원저자의 동의를 구한 건지 모르겠지만 기존 언론사에서
번역해 놓은 버젼이 아래 링크처럼 있긴 한데,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번역상 오류가 몇 군데 눈에 띄어 본 블로거가
작업을 다시 하였습니다. 번역본 보여 드리고 원저자의
동의도 물론 구했고요.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701152054182720
여담이지만, 정말 답장이 올 줄은 몰랐네요. 지금까지
포스팅을 위해 번역 작업을 하며 원저자들께 이메일을
보내도 답장 안 오는 경우가 허다했거든요. 더군다나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의 대학자이자 스타 외교관
쪽에서 손수 답장을… 가문의 영광이었습니다.
오늘부터 조지프 나이 교수님 팬 하려고 합니다.
짧고 쉬운 문장으로 쓰여 있으니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합니다.
https://www.belfercenter.org/publication/kindleberger-trap
The Kindleberger Trap
킨들버거의 함정이란
Joseph S. Nye
조지프 S. 나이
January 9, 2017
2017년 1월 9일
마셜 플랜의 지적 설계자 중 한 명인 찰스 킨들버거는 재앙과 같았던 1930년대 대공황의 근본 원인이 대영 제국의 패권을 넘겨받고도 세계 경제에 공공재를 공급하는데 실패한 미국의 역량에 있었다고 일찍이 분석한 바 있다. 바야흐로 중국의 급부상에 즈음한 작금에 이르러 과연 미국이 똑같은 실수를 자행하지는 않을 것인가?
새 대통령 당선인의 대중국 정책 노선이 당면 과제로 떠오른 시점에서, 도널트 트럼프는 과거 역사가 가르쳐준 두 가지 함정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앞서 시진핑 주석이 인용한 바 있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고대 그리스의 사례를 통해 (미국과 같은) 기존 강대국이 (중국과 같은) 신흥 강대국에 대해 지나치게 공포 심리를 가질 경우 우발적인 무력 충돌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을 가리킨다. 반면 트럼프 당선인 입장에선 중국의 국력이 너무 강하지 않고 의외로 약할 경우 맞닥뜨릴지 모를 "킨들버거의 함정" 역시 아울러 걱정해야 한다.
마셜 플랜의 지적 설계자 중 한 명이며 말년에 MIT에서 교편을 잡은 찰스 킨들버거는 일찍이 재앙과 같았던 1930년대 대공황의 근본 원인으로서, 대영 제국에 이은 패권국의 차기 주자로 부상한 후에도 세계 경제에 공공재를 공급하는데 실패한 당시 미국의 역량을 꼬집어 분석한 바 있다. 이런 실패의 결과는 지극히 참혹하여 국제 정세가 붕괴하고 경기 침체와 대학살의 자행, 급기야 세계 대전으로 이어지고 만 것이다. 과연 중국의 국력이 급성장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 세계 공공재 경제의 성장이란 결실로 맺어질 수 있겠는가?
국내 정치 하에선 경찰 서비스나 환경 행정 같은 공공재를 정부가 공급하여 소외되는 사람 없이 모든 시민이 그 혜택을 누린다고 가정할 수 있다. 반면 국제 정치 무대에서 기후 안정화나 재정 건전성, 공해 이용의 자유 같은 공공재적 사안들은 강대국 간의 연대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을 따름이다.
약소국에겐 그런 세계적 공공재에 할애할 유인이나 여유가 거의 없다. 작은 나라들이 그 혜택을 얻든 못 얻든간에 공공재에 쥐꼬리만큼 할애하는 정도만으로 대세에 큰 영향을 주기가 어렵기 때문에, 무임 승차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수순인 셈이다. 하지만 강대국은 자신들의 개입으로 인한 효과를 예측할 수 있고 공공재 할애에 따른 혜택이 어느 정도인지 능히 체감할 수 있다. 강대국들이 공공재 정세를 주도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인 셈이다. 오히려 강대국이 공공재에 국력을 쏟아붓지 않으면 세계 경제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이 닥친다. 1차 세계 대전 직후 대영 제국의 국력이 급락하여 공공재 공급의 역할 수행이 어려워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립주의를 선택한 미국이 여전히 무임 승차 노선을 지속했기에 결국 참담한 결과에 직면한 것이라 하겠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의 국력이 성장하면서 지금의 국제 질서를 자신들이 창조한 것이 아니기에 이에 기여하기보다는 무임 승차할 가능성이 높지 않나 하는 우려를 표명한다. 현재까지의 경과로는 반반이 아닐까 싶다. 거부권을 가진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의 상임 이사국으로서 중국은 일정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 현재 유엔 평화유지군에 두번째로 큰 규모의 재원을 조달하는 국가인 데다가, 에볼라 바이러스나 기후 변화 관련한 각종 프로그램에도 참여해왔다.
중국은 세계 무역 기구, 세계 은행, 국제 통화 기금 등 다양한 경제 기구로부터 역시 상당한 정도의 혜택을 얻어왔다. 2015년에 중국이 출범시킨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에 관해서는, 세계 은행의 대체재가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었으나 국제 규범을 준수하면서도 세계 은행과 협력하는 새로운 기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헤이그 상설 중재 재판소 판결에 대한 중국의 불복 조치는 골치아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찌 되었든 종합해보자면, 현실적으로 이득을 안겨다주고 있는 자유 세계 질서를 놓고 중국이 이를 확 뒤집어 엎겠다는 전복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근거가 희박하고 오히려 그 안에서 자국의 영향력 증대를 꾀하고 있다는 해석이 더 타당하다. 그런데 만약 트럼프 정책 노선이 대중국 압박이나 고립 일변도로 변모한다고 가정한다면, 중국이 킨들버거 함정을 앞세워 국제 정세에 훼방을 놓는 무임 승차 국가로 변할 가능성이 혹시 있지는 않겠는가?
물론 트럼프 당선인은 더 잘 알려진 투키디데스의 함정 역시 경계해야 한다. 중국의 국력이 너무 약하지 않고 의외로 강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강대국 간의 이런 대결 구도가 마치 불가피한 것인양 착각할 수도 있으며 대립으로 입을지 모를 피해도 종종 과장되곤 한다. 이를 실증하기 위해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이 기존 패권이 신흥 패권의 도전을 받은 1500년 이후의 16가지 역사 사례를 연구하였고 이 중 12가지 경우가 대규모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규명한 바 있다.
단, 그 개별적 "사례"란 것을 어떻게 엄밀하게 규정하는가의 문제가 있기에 전술한 사례의 숫자는 명확치 않을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할 뚜렷한 예로, 대영 제국이 19세기 중반의 최강 패권국이었음에도 프러시아가 유럽의 정중앙에 독일 제국을 건국하도록 놓아둔 일이 있다. 영국이 반세기가 지나 1914년경엔 독일을 적대하는 입장으로 선회하였는데 이 경우를 하나의 사례로 칠 것인가, 둘로 볼 것인가? 더구나 제1차 세계 대전을 대영 제국의 기존 패권에 도전하는 독일의 신흥 패권 구도로 단순화하여 해석하기도 매우 애매하다. 독일의 발호는 하나의 구성 요인일 뿐, 러시아의 신흥 패권을 경계하는 독일의 기저 심리란 요인도 있었고, 기울어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에서 범슬라브 민족주의에 대한 경계 심리도 있었으니, 고대 그리스 시절의 단순 구도보다는 훨씬 더 다채로운 양상이었던 것이다.
또한 단순 비교로만 보아도 현대의 미국과 중국 간 세력 격차는 1914년 독일과 영국 간 격차보다 훨씬 심대하다. 일반 예방 차원에서야 수사법의 일종으로 비교 사례를 거론할 수는 있겠으나 냉혹한 역사의 이면에 숨은 정서를 전달할 때 그런 수사란 매우 위험해지는 법이다.
고대 그리스의 사례가 역사가가 의도한 만큼 직설적으로 명확하다고 볼 수도 없다. 애초에 투키디데스는 제2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이 발호하는 신흥 강국 아테네에 대한 스파르타의 경계 심리에서 비롯되었다고 저술하였다. 그런데 예일 대학의 역사학자 도널드 케이건의 최근 연구는 당시 아테네의 국력이 성장세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기원전 431년 전쟁 발발 직전까지 양국간 세력 균형은 어느 정도 안정화 국면에 접어든 상태였다는 것이다. 스파르타로 하여금 전쟁의 위험을 감수할 만하다고 결단하게 만든 요인은 당시 아테네의 정책 노선상 실수였다고 한다.
기원전 5세기 초 아테네 국력의 성장세가 제1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촉발한 것은 사실이고 이후 30년의 휴전 기간으로 급한 불은 끈 상황이었다. 이때 채 끄지 못한 잔불의 불씨가 남아 참혹했던 2차 전쟁을 촉발한 스파크를 일으킨 셈인데, 케이건의 연구에 따르면 그 불씨에 맹렬하게 부채질을 가해 스파크로 키운 결정적 요인이 바로 정책 결정상의 오판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불가항력적 상황 요인에 의해 전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서 내린 잘못된 판단이 결정타였던 셈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현대의 중국을 앞에 두고 당면한 위험이 바로 이런 것이다. 지나치게 약할 수도 있고 너무 강할지도 모를 두 경우의 중국을 동시에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투키디데스의 함정 뿐만 아니라 킨들버거의 함정 역시 피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인즉슨 계산 착오나 몰이해 등 인간의 역사를 끊임없이 괴롭힌 경솔한 오판의 가능성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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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xit : What the Hell’s That?
자, 21세기 국제관계학 역사에서 이만한 떡밥도 없어요.
스코틀랜드 및 카탈루냐 독립도 있고 팍스 G2 체제도 있고
북핵 관계를 둘러싼 북미의 기싸움도 있겠고,
강대국의 재미있는 떡밥은 여럿 있지만…
아니, 도대체 제국주의 2백주년을 향해 가고 있는 (1830년 기준)
작금의 인터넷과 AI의 시대에 도대체, 대영제국 씩이나 하는
그 나라가 저런 바보 같은 덫에 걸릴 거라고 그 누가 상상을..?
희생양
영국민은 EU에 왜 이질감을 느낄까요?
아니, 질문이 잘못 된 건지도. 영국인은 도대체가
왜 항상 유럽 대륙에 묘한 반감을 갖고 있냐고요?
일전에 백년 전쟁 얘기도 했거니와 영국이란 나라가
대륙인들의 기싸움에 휘말리지 않으려 용쓰는 기질이 있다는
점이야 굳이 영국 역사를 논문 쓸 듯이 달려들어 파대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인지하고 있잖아요.
브리튼 섬은 세계사의 중심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적어도 1776년 경 무렵까지는. 애덤스가 국부론을 출간한 해죠.
그리고 이 즈음에 증기 기관이란 것이 튀어나왔고 산업 혁명이란
것이 출범하야… 그 장구한 역사가 시작했어요.
산업 혁명과 산업 자본주의의 발흥. 하필 브리튼 땅에서 시작했죠.
그들의 총생산 능력이 그들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세상을 압도하는
경험을 대략 1830년대부터 겪게 된 영국인들.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앵글로 색슨계 백인종들의 편협하고 저급한 인류관이 이 지점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얻어 무소불위의 폭력적 양상으로 치닫게 되요.
결국 제국주의란 미성숙한 정치 의식이 폭발적 경제 생산력을 만나
잉태한 화학적 기형아라고나 할까. 나머지 세상을 집어삼켜 버렸죠.
정말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는 것은 아시죠?
그 중 상당수는 우리나라와 같은 제3세계 민족 국가의 백성들이었어요.
1840년 아편전쟁, 1876년 조일수호조규 이후… 불행의 역사였어요.
이백 해 가까운 세월 동안 수억의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겠죠?
그 중엔 이 포스팅을 읽고 계신 분들의 선친과 조상들도 많을 거에요.
요즘엔, 그 원혼들이 빚어 쌓아온 원한의 두께가 얼마나 겹겹이 축적해
지금 이 세상을 떠돌고 있을까, 하는 다소 종교적인 생각을 자주 해요.
(물론 개인적인 존중입니다. 취향해 주시죠.)
실로 사필귀정이라고나 할까.. 종교적인 신비주의적 체험이
정말로 현실에서 현현한 것일까.. 21세기가 되어 제국주의의 원흉이
된 나라에서 국제 관계의 지형을 뒤흔드는 일대 사변이 발생하죠.
정말 뜬금없는 낭설 같은 관점이지만, 본 블로거가 바라보는
브렉시트는 이러해요. 세상의 모든 일이 결국 쌓은 업보대로 가는구나.
무섭지만 냉엄한 현실이다, 누군가에게 부지불식 중에 죄를 짓지
않았는지 우리 자신도 뒤돌아보면서 살아야 하겠다.. 하는.
영국의 이 지경
시작은 가짜 뉴스와 포퓰리즘이라고 하죠.
하지만 순전히 거기에만 원인을 두는 관점에 동의하긴 힘들어요.
결국 병신 인증 투표를 한 누군가 수천만의 영국인은 존재한 거고
(12년 대선의 한국인들 51.6 퍼센트를 떠올려보면 공감하시죠.)
저학력 고연령 핑계 댈 것 없이, 개방 구조의 현대 자본주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대체가 아주 기본적인 사회적 이해도 없는
개돼지 그 자체의 집단 무식, 아니 집단 무의식이 있었던 거에요.
이민자를 배척하는 보수 정치인들의 몰아가기는 촉매제일 뿐
작금의 이 사태를 몰고 온 연료는 아닌 겁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왠지 그런가보다 싶잖아요. 아니 왜..
영국 여행해보신 분들, 니들 콜로니에서 왔니 운운하는 호호백발의
할배 할매들 가끔 마주치면서, 이건 뭐지 했던 경험들 있잖아요?
이 사람들 아직도 대영제국인 줄 안단 말인가, 경악했던…
돌이켜보면 제국주의의 악령에 휩싸여 희한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만의 집단 광기가 분명히 있었던 거에요. 그들의
조상이 오래 전 희생양으로 삼은 제3세계 백성들의 원혼이 곁에서
맴돌고 있었다고 상상해볼 수 있지 않나요. 강요는 안 해요.
저임금 이민 노동자 문제가 무의식의 기저에 깔린 근본 원인이라고
가정할 때 이 사안은 분명히 경제 문제라고 봐요. 저학력 저임금
영국 노동자 계층과 트럼프 시대 러스트 벨트의 상관 관계를
엮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다소 뜬금없지만 사실 문화 인류학적으로 이들 계층은 리버풀에서
비틀즈를 배출한 빌리 엘리어트류 문화와도 깊은 연관이 있긴 해요.)
이런 겉핥기 인식이 사회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을 외면하고
자기 인생의 비참함을 편의적으로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이
결국 문제인 거겠죠.
그리고 경제 문제가 본질이면서도 자신들이 소속한 경제 권역의
개방적 시장 구조가 어떤 거시 메커니즘으로 엮여 돌아가는지
이해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또 다른 문제일 거고요.
EU를 탈퇴한다고 대영제국이 부활하는 것 아니잖아요. 산업 혁명과
제국주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 아니고. 눈앞에 알짱거리는 재수없는
이민 노동자들이 투표와 함께 버튼 누르듯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거고.
한국 사회에서 가끔씩 터져 나오는 이주 노동자 처우와 관련한
왜곡된 일베식 사고와도 깊은 관련성을 연구해볼 수 있을 거에요.
동남아 등 개발 도상국 출신 이주민들, 재중 동포들, 난민들,
새터민들까지 논의를 확장할 수 있을지 모르고요.
예, 우리도 항상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문제입니다.
극우 쓰레기 사이트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소수 집단을 타겟으로 해
배설하듯이 토해내는 경향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이 문제와
브렉시트는 기저에 깊은 관계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거시 경제 구조의 성장 정체와 이에 복합적으로 연결된 개인의
삶의 질 개선의 사회적 문제를 우경화한 정치 의식에 위험하게
결합하면 영국이나 한국 아니라 세상 어디를 가도 이런 병신
인증 사태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요.
보수 정치 세력
영국민의 의식에 이런 위험 요소가 애초부터 있었고
이를 더욱 부추긴 것은 가짜 뉴스를 양산한 기레기 언론과
제국주의 부심 망령에 쩔어 살던 극보수적 정치 세력이었어요.
흔히 황색 언론으로 불리는 영국의 기레기 언론사로
더 선과 데일리 메일을 꼽을 수 있어요. 폴 데이커 같은
언론인이 탈퇴 여론을 주도했다고 하죠.
영국 보수당 배경의 정치가들로서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총리,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 나이젤 패라지 영국 독립당 당수 등을
꼽을 수 있어요. 브렉시트 5적이니 하는 악의적 표현도 심심찮게
유럽의 인터넷 게시판을 달구고 있죠.
그 중 도미닉 커밍스라고 정치 컨설턴트로 먹고 사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치밀하게 설계한 홍보 전략이 저소득 저학력 영국인
유권자를 자극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이야기 아실 거에요.
요사이 흔히 들어보셨을 Vote Leave라는 단순명료한 구호가
이 사람 작품이에요. 복잡하지 않은 메세지가 먹히는 법이죠.
지금은 이 사람이 일종의 만악의 근원으로 여러 밈의 소재로
쓰이고 있기는 해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이 사람 역할로 주연한
영국의 TV영화도 얼마 전 지상파에서 방영된 바 있고요.
일종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해요. 개돼지처럼 무식한 민중을 천재
한 사람의 전략이 이끌어 파국에 이르렀다고 하는 프레임을 덮어
전체 그림을 흐릿하게 만드는 거에요. 진짜 주범은 컨설턴트 한
사람이 아니라 구시대 의식에 사로잡힌 영국민과 극우 정치가
몇몇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Brexit란
그래서 브렉시트가 뭐냐고요? 간단해요.
영국이 EU에서 회원국으로서 자격을 스스로 탈퇴한다는 거에요.
그것이 영국에 좋은 거냐고요? 그렇게 좋은 거면 전 세계가 호들갑 떨며
이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겠어요? 영국의 총생산 중 수출입의 과반 비율이
EU와 직간접 연결되어 돌아가고 있는데 나라 경제의 절반을 걷어내
버린다는 극단적 결정이 걔네 살림에 도움이 되겠냐고요.
누가 내게 경제학을 가르친 적이 없어요, 이 핑계를 누구나 댈지는
모르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나라 살림이 어떤 구조로 돌아가는지
이해하는 영국민의 기본 상식이 그 정도 수준인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이쯤 되면 영국 교육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실측 연구
정도 나와야 하지 않남..
https://www.ons.gov.uk/economy/nationalaccounts/balanceofpayments/bulletins/uktrade/january2016
EU란
그럼 EU 입장에선 영국 나가는 게 좋아요? EU의 격앙된 반응을
보고 EU는 좋아하나보다 오해하시는 분들 있는데, 절대 아니에요.
작금의 EU에서 GDP 크기로 빅쓰리가 독영불이고 그 중 하나가
떨어져 나가면 EU 전체의 크기가 쪼그라드는데 이걸 왜 좋아해요?
팍스 브리태니카의 시대가 끝난 것은 1차 대전 종전과 함께였고
이젠 영연방 연합체의 종이 호랑이 신세지만 그래도 아직 유럽에선
영국 정도의 크기가 먹어줘요. 충분히 대국으로 대접받을 만큼.
EU의 궁극적인 목표는 북미 = 즉 미국에 대항하는 독자적인
덩어리를 구축하는 거에요. 통합이란 방법을 통해서. 대체 왜?
똘똘 뭉쳐 전체 파이의 크기가 커지면 일종의 단체 교섭 협상력이
커지기 때문이죠. 정치든 경제든 군사든 몸집을 늘리는 데서
오는 이점이 분명히 있음은 직관적으로 이해하시죠?
아, 물론 미국 대신 러시아를 대입하여 이 말을 다시 써도 충분히
성립해요. 어차피 지금은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이긴 하지만서두.
경제적으로는 미국에 대항하여, 군사적으로는 러시아에 대항하여,
EU의 정치적 동력이 발동하고 있다고 보면 대체로 맞겠죠.
참고적으로 어디서 EU에 관해 아는 척 하시려면
마스트리히트 조약 정도는 언급하세요. 92년이죠.
이때 지금의 유럽 연합이 탄생했어요. Maastricht Treaty.
국경을 없애고 여권 검사와 통관을 배제하기 시작한
솅겐 조약은 85년부터 일찌감치 시작했어요. 영국은 애초부터
여기 가입 안 했으니 해당 없지만. Schengen Agreement.
유로존이라는 단일 통화 지역의 출범은 EU 결성 후 99년부터
시작했죠. 유로라는 지폐가 99년부터 세상에서 쓰였다는 말.
아시다시피 영국, 스위스, 스웨덴, 덴마크 등과 폴란드, 체코 등
동유럽권 많은 나라가 통화 통합까지는 참여하지 않고 있어요.
(EU의 실체를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정리하여 비판하는 분이
많겠습니다만, 상세한 논설은 추후 한가할 때 하는 걸로 하고
오늘은 이 정도로만… 사실 EU 하나만 논해도 수백 개 포스팅에
논문만 해도 수만 편이 나올 테죠. 양해해 주세요.)
북아일랜드?
백스톱이란 것이 있어요. 백스톱을 이해해야 브렉시트를
영국인처럼 이해하는 건데요. backstop. 사전에서 찾아 보셨나요.
우리말에 가장 가깝게 번역한다면 안전 그물 정도에요.
높이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추락 사고 방지한다고 설치한 거..
브리튼 — 유럽 관계에서 지그시 지도를 응시했을 때 이 안전망이
어디를 가리키는 것일까, 직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요. 바로
북아일랜드이죠.
북아일랜드 하면 무엇이 떠오르세요. 70~90년대 할리우드
첩보 액션 영화에서 영미 정보 당국과 IRA 간 암투 소재물이
많이 떠오른다면 정확하게 접근한 거에요.
아일랜드 섬에서 북쪽만 영국 땅이고 아일랜드와의 사이에
국경 검문이 존재하는 현상은 거북하고 부자연스러운 일였어요.
(물론 무려 헨리 8세 시절부터 깊은 역사의 배경이 있지만
여기서는 과감하게 생략하죠.)
그래서 대전 후 현대사에서 북아일랜드 사람들은 줄기차게
영국에 저항했어요. 그러다 80년 광주와 매우 흡사한 민중 저항
비극, 72년 블러디 선데이 사건이 북아일랜드에서 발생하죠.
간단히 말해 영국 공권력에 의해 수많은 아일랜드계 사람들이
희생 당한 사건이에요. 폭력 테러의 단초를 제공한 병크였죠.
누르면 꿈틀하는 것, 당연하지 않겠어요.
본래 20세기 초반부터 존재한 단체 IRA의 폭력 활동이
정당성을 획득하고 90년대 말까지 꾸준히 계속되었으며
98년 토니 블레어 재임 기간 중 역사적인 굿 프라이데이
협약으로 30년의 투쟁이 공식 종료합니다.
영국와 아일랜드계 간의 상호 폭력은 정말 지긋지긋한
사건의 연속이었어요. 영국의 현대사에서 다시 떠올리기
싫어할 과거의 오점인 거죠. 우리 광주나 세월호처럼.
Backstop Proposal
자, 이렇게 현대 영국 문제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북아일랜드입니다. 지금은 북아일랜드와 남쪽의 아일랜드
공화국 사이에 국경이나 검문, 검역이 없이 자유 시장 체제에
의한 교역 구조를 갖고 있어요. 근데 영국이 나가 버리면?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필요 없던 국경선이 생겨 버려요.
울타리 몇 개 두르는 문제 아니겠죠? 경제 사회 구조 전체에
소용돌이 같은 파문이 연쇄적으로 꼬이고 꼬이는 거에요.
맙. 소. 사.
영국 현대사의 부자연스러운 맹장염 같았던 북아일랜드를
브렉시트 구조에서 어떻게 다룰 것인가 관련한 과도기적
연착륙 절차로 한창 논의 주제로 떠오른 대안이 바로
백스톱인 겁니다.
안전망인데요. 영국이 정치경제의 카오스에 빠지지 않게끔
한 다리 안전하게 거쳐서 가라고 하는 안전 그물인 거에요.
북아일랜드를 일종의 중간 지대처럼 활용하고자 하는.
EU가 제안한 건데 그나마도 영국인들이 상황을
더 배배 꼬게 만들고 있어요.
그런데 웃긴 건요. 중간 안전망처럼 쓰여야 할 북아일랜드가
되레 걸림돌처럼 변질되는 상황이 되는 거죠. 빼버릴 수도 없고
딱히 도움도 안 되고, 도대체 이걸 어떻게 취급해야 하지 하는. 풋.
북아일랜드를 둘러싼 백스톱을 실현할 대안으로서 어떠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가정할 수 있는 상황을 한번 나열해 볼까요.
1번, 영국과 북아일랜드가 관세 동맹을 맺는 것. 소프트 보더.
2번, 북아일랜드와 EU가 독자적인 관세 동맹을 맺는 것.
3번, 영국과 북아일랜드가 관세 동맹을 맺는 것. 하드 보더.
4번,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되 다시 EU와 관세 동맹을 맺는 것.
영국이 추구하고 싶어하는 타협안이 1번이에요.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 사이에 느슨한 국경이 새로 생기는 거죠. 영국이 원하는 이유는
교역의 이익을 기존 그대로 놔둘 수 있기 때문이고, 역으로 하면 EU가
이 안을 받아줄 이유가 전혀 없는 거에요. 자신들이 저질러 놓고 영국의
국익을 뭐하러 보존해 주겠어요. 실현 가능성도 낮아지고 있고요.
1번보다 영국의 국익을 깎아내는 안이 2번이에요. 해협을 사이에
두고 브리튼 섬과 북아일랜드 사이에 자연적인 국경이 새로 생기죠.
북아일랜드는 본국의 병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게 독립의
계기가 생기는 거에요. 영연방 연합을 부르짖는 보수적인 세력이
당연히 싫어하는 안이고 현실적으로도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가만히 놓아 두면 노딜 브렉시트가 되고 그럼 3번의 하드 보더 상황이
느닷없이 들이닥치게 되요.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 사이에 강력한
국경이 새로 생깁니다. 본래 경제 공동체 상태인 하나의 섬이므로 이렇게
갑작스런 안엔 아일랜드 공화국이 반대합니다. 문제는 아무 타협 없이
브렉시트가 이루어질 경우 실제 이렇게 될 확률이 가장 높다는 거죠.
EU가 가장 원하는 안이 4번이에요. 그말인즉슨 영국의 국익을 가장
해치는 안이란 뜻. 기존의 경제 교역 관계는 그대로 두고 회원국으로서
정치적 발언권은 싹 제거하는 안이거든요. 탈퇴하면 더 이상 회원국이
아니니까요. 당연히 영국이 가장 피하고 싶은 안이겠죠. — 참고로 현재
노르웨이가 EU 관계에서 취하고 있는 스탠스와 유사한 안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1번 소프트 보더 < 3번 하드 보더 < 4번 관세 동맹
순으로 EU의 입장이 나아지고 영국의 국익이 점점 줄어드는 거에요. 2번
안은 중간에 이론으로만 가정해볼 수 있는 건데 실제로는 일어날 상황이
전혀 아니니 2번은 거의 제껴두어도 무방할 듯해요.
현재 영국이 관세 동맹 새로 체결하겠다고 움직이고 있지도 않고, 사실
관세 동맹이고 자시고 간에 자기들 내부 상황도 정리 못하고 허둥대고
있으니 현실적으로 양 극단의 4번과 1번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낮은 것
아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예상해요. 실제로는 3번 언저리의 엄청나게
어정쩡한 형태로 유럽 경제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라고 보고 있죠.
결국 현재 스코어로 볼 때 아일랜드 공화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노딜
브렉시트로 백스톱이 무산되고 이는 곧 기이한 형태의 하드 보더가
생길 것이다…는 예상이 가능해요. 어디까지나 현재 스코어로.
아일랜드 공화국은 EU의 기존 회원국이므로 이들의 반대를 무마하고
손해를 보상할 방안이 필요할 텐데… 머리 아파요. 우리 문제도 아니고
유럽 사람들이 생각해 내겠죠 뭐.
https://www.msn.com/ko-kr/news/national/eu-노딜-브렉시트는-하드보더-첫-유권-해석/ar-BBSBWCS
Indicative Votes
16년 6월 23일의 국민 투표 이래 지난한 과정을 거쳐 아직도 노답
고구마의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바, 지난 19년 3월 27일에 영국
하원에서 ‘좋아, 그럼 갖고 있는 모든 대안 늘어놓고 표결 한 번
해보자’ 하는 의향 투표, indicative votes가 실시되었어요.
물론 이건 국민 투표 아니고 의회 본회의 표결.
아래의 여덟 가지 대안이 의안으로 나왔죠.
A. (존 배런) 노딜 브렉시트 가자
B. (닉 볼스) 커먼 마켓 2.0 - 노르웨이 모델로 가자
C. (조지 유스티스) 브렉시트 이후 EFTA 가자
D. (켄 클라크) EU 관세 동맹은 잔류하자
E. (노동당, 제레미 코빈) 4번 안 + EU 발언권 얻어낼 수 있다
F. (조애너 체리) 리스본 조약 50조 - 협상 시계 되돌리자
G. (마가렛 베켓) 국민 투표 한 번 더 하자
H. (마커스 피쉬) 기존 체제 유지 협상으로 가자
한껏 복잡한데, 그래서 결과는? 모조리 부결되었어요.
이제는 정말… 웃픈 것이 아니라 슬퍼지네요.
https://www.bbc.com/news/uk-politics-47726787
https://www.bbc.com/news/uk-politics-47671056
propaganda + fake
이 모든 병신 짓의 시작은 어느 지점이었을까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국민 투표에 부친 순간, 그리고
vote leave란 심플한 캐치 프레이즈가 확장된 기간이라고 봐요.
캐머런 자신은 잔류파였어요. 대 영국의 총리라는 사람이
거시 경제 구조를 이해 못할 정도의 바보는 아니지 않겠어요.
다만 사람들이 그렇게 현혹될 줄 예상 못한 것이 패착 요인이겠죠.
혹자는 영국이 파운드 대신 유로 쓰는 나라였다면 이렇게
바보 같은 투표는 하지 않았을 게다, 예측도 해요. 하긴 평범한
일반인들이 매일 쓰는 돈 하나 보고 겨우 경제를 파악하는 것이
당연하겠다 싶으면서도…
저 위에 농담처럼 싸질러 썼지만 국가의 교육이 정말 제대로
가고 있었을까 고민해 보십사 제안한다니까요. 유럽인들께.
평범한 사람들의 무사안일한 현실 인식이 포퓰리즘 같은
정치 프로파간다와 화학 결합할 때, 영광스러웠던 한 나라의
체제를 얼마나 무너뜨릴 수 있는가.
브렉시트의 핵심은 한 마디로 이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제국주의 희생자들의 원혼이 여전히 살아 숨쉬고 계신 거죠.
또한 백년 전 두 번에 걸친 영일 동맹이 경술국치의
간접적 동인이었음을 언제나 잊지 맙시다.
가짜 뉴스 조심하세요~
한국인 입장에서 이해할 때 간결한 이해는 영국에서 공부하신
김흥종 연구원 설명이 가장 적당한 듯해서 링크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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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manuel Kant: the Highest-Esteemed
Intellectual Ever in Mankind History
어렵지만 이마누엘 칸트 이야기를 해봅시다.
얘기를 풀기도 어렵고 받아들이기도 어렵겠지만요.
고매한 철학의 언어로만 풀지 말고 이 분이 대중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고 싶어졌어요.
문득. 여러 모로 매력이 있는 삶이었거든요.
칸트가 태어난 곳은 당시엔 쾨닉스베르크였고 프러시아 땅인데
독일이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훗날 러시아로 넘긴 지역인지라
지금은 러시아 땅의 칼리닌그라드로 불려요.
칸트가 평생을 쾨닉스베르크 대학에서 강의하고 연구하며
지냈는데 이 대학은 지금도 있습니다. 러시아 발틱연방대학이죠.
‘이마누엘 칸트’의 이름을 딴 별칭으로 운영 중이에요.
좋은 학교입니다.
1724년에 당시 전형적인 상업 도시에서 마구 수공업자인
부친 밑에서 태어나요. 놀랍게도 할아버지 대까진 프러시아
아닌 스코틀랜드 사람이었다 해요. 이민 3세대인 셈..
원래 독일어식으로 에마누엘이란 이름이었는데 히브리어를
공부한 후 이마누엘로 스스로 개명했다고 해요.
그의 가정은 경건한 청교도 가풍으로 엄격하고 검소했다네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칸트의 이미지와 왠지 어울리죠.
가정 환경이 중요합니다.
16세에 쾨닉스베르크 대학에 입학했고 6년 후엔 석사 논문과
함께 졸업했는데 이때 부친이 돌아가셔서 생계가 어려워졌대요.
그래서 지방 귀족의 가정 교사 노릇으로 생활하며 꾸준히
학문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평생 자기 동네를
떠나지 않았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대체로 옳지만 이 시기
만큼은 교사 일 때문에 인근 지역을 여행했다고 하네요.
그의 평생 삶은 가르치고 연구하고 토론하고.. 의 규칙성을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그의 일과를 보고 시계를 맞추었다는
이야기는 진짜로 전해지는 사실이래요.
그는 철학의 전 영역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둔 대철학자이지만
정치학, 신학, 물리학, 천문학, 수학, 지질학, 지리학, 교육학,
인류학, 역사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괴물급 학자였어요.
1754년엔 천문학 연구 성과로 베를린 학회장상 1등상을
받았고 이듬해 4월에 논문 ‘일반 자연사와 천체 이론’을
발표했는데 놀랍게도 우주 기원론을 밝힌 내용이에요.
우주와 태양계가 성운의 분자 덩어리로 생겨났다는 오늘날의
가설을 처음 제시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세요? 바로
칸트입니다. 바로 이 논문에서요.
55년 9월에 ‘형이상학적 인식의 으뜸가는 명제의 새로운
해명’이란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 강사 자격을
얻었다 해요. 논리학, 물리학, 자연법, 자연 신학, 윤리학
등 강의 과목은 실로 방대했다고 전합니다.
이듬해 은사님이 돌아가시며 그 자리로 교수직을 노렸지만
좌절되었다 하고 몇 해 후 문학 교수 자리를 제안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해요. 철학 교수직을 꼭 원했기 때문에요.
1764년에 미학 논문으로 베를린 학회장상 2등상을 받는데
1등상은 역시 당시 출중한 학자였던 모제스 멘델스존에게
돌아갔다고 해요. (이 사람도 꽤 유명한 유대교 철학자..)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왕립 도서관 사서로 몇 년 일한 적도
있지만, 1770년에는 드디어 바라던 철학 교수로 임용되요.
칸트가 박사를 딴 지 너무 오래 되어 이때 논문을 하나 더
심사 받아야 했는데 ‘감성계와 지성계의 형식과 원리들’이라고..
향후 전개되는 비판 철학의 골격을 엿볼 수 있는 저작이래요.
이후 칸트는 소위 일컫는 침잠 기간에 들어가요. 그때까지
왕성하게 발표하던 논문도 끊고 대외 활동이 없었다고 하는데,
이런 분이 설마 놀았겠어요.
학자들의 유추 연구에 따르면 이때 영국에서 데이빗 흄이
출간한 '인간본성론'을 입수해서 읽고 큰 충격을 받아 사상
체계를 완전히 뜯어 고치는 작업을 하느라고 늦어졌다고 해요.
점포 인테리어 공사 하느라 개점 휴업을 오래 한 거죠.
그러나 그 사이 엄청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에 몰두하여
침묵을 완전히 만회할 눈부신 저작이 십여 년 후 탄생해요.
근대 철학의 흐름을 바꾸고 인간 역사 최고의 철학서로 부른다는
‘순수이성비판’이 1781년에 출간되어요. 두두둥.
희한하게도 초판 반응은 대단히 싸늘했다고 해요. (사람들이
이해를 못한 건가..) 하도 썰렁해서 칸트 자신이 친절하게
요약서를 2년 후 추가 출간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추종자인 카를 라인홀트가 1780년대 후반 철학계에
유행하던 치열한 범신론 논쟁에 순수이성비판을 거론하며
‘이 책 읽어보면 답이 다 나옴’ 하면서 사람들 반응이
180도 바뀌었다고 해요. 역주행한 거죠.
순수이성비판이 놀라운 저작인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한 인간의 인생을 놓고 볼 때 그 전까지 유지했던 생각을
완전히 다 뜯어 고치고 새로 만들어낸 생각을 담았다는
그 하나 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고 봐요.
칸트주의 철학 체계, 즉 독일 관념론의 비판 철학은
‘순수이성비판’을 기점으로 1788년 ‘실천이상비판’,
1790년 ‘판단력비판’을 차례로 출간하며 완성되어가요.
철학의 각론 가운데 순수이성비판이 형이상학과 인식론,
실천이성비판이 윤리학, 판단력비판이 미학의 내용을
각각 담은 건데, 철학의 전 영역을 탐구했다는 것은
여기서 알 수 있답니다.
여기에 1786년의 과학 철학서, 1793년의 종교 철학서,
1795년의 정치 철학서까지 합하여 전 영역에 걸친
칸트 비판 철학이 완성되는 거에요. 맙소사.
논리학 책이 없는데 그건 1800년에 제자가 쓰는 책을
지도하며 하나 내요. 일종의 논리 교과서인데 난해한
칸트 책을 읽을 때 많은 도움이 된답니다.
고틀로프 예쉐라는 사람의 ‘논리학’..
1804년에 평소의 삶처럼 정확히 여든 살을 살고
‘그만하면 괜찮다’는 유언을 남기며, 역사상 최고의
지성인이 돌아가셨습니다.
쾨닉스베르크 시민 전체가 휴업하고 애도를 표하며
동향의 거인이 가는 길을 배웅했다고 해요.
Immanuel Kant (1724~1804, Prussia)
칸트의 철학이 난해하지만 순수이성비판부터 출발하면 되요.
지식을 받아들이는 방법론에 대한 인식론과 세계를 구성하는
원리를 논한 형이상학에서 큰 논제를 던지고 있어요.
그도 대륙에 속한 사람이었기에 합리론에 기반한 이성 중심의
인식론에 경도되어 있었는데 흄의 책을 읽고 경험의 요소를
일부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거에요.
그를 가리켜 합리론과 경험론을 결합하여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을 한 대학자라고 칭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인 거죠.
인간의 이성이 한계가 있으므로 인식의 과정에는
선험적 형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요지에요.
그는 감각이 수용한 지식이 이성의 작용을 통해 인식되므로
감성과 지성의 연합에 의해서만 중심의 자아가 주체적으로
지식을 형성할 수 있다고 설파했어요.
이런 관점에서 감각이 수용할 수 없는 대상(신, 불사, 자유)을
사유하려 한 기존 형이상학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며 이런
대상은 도덕적 실천의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고 했죠.
‘순수이성’이 도대체 뭔데? 하시는 분도 있을 텐데, 말하자면
작가의 캐릭터 설정 같은 거에요. 인간 이성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칸트 책 안에서만 가정하는 철학 주체인 거죠.
*슈퍼맨의 팬티는 절대 찢어지거나 불타지 않쟎아요..
트레키 세계에서 클링온 언어는 실재하는 거고.. 뭐 이런 거.
순수이성비판의 말미에는 칸트 비판 철학의 3대 질문이
등장하는데 칸트 세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요.
순수이성이 골몰해야 할 세 가지 질문인즉슨...
첫째,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What Can I Know?
둘째,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What Should I Do?
셋째,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What May I Hope?
첫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둘째는 실천이성비판에서,
셋째는 1793년에 나온 종교 철학서 ‘순수이성 한계
안에서의 종교’에서 각각 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죠?
3대 비판서와 달리 이 책도 상당한 문제작이에요.
얌전한 칸트에게 생애 최초로 검열과 제재를 받게 한
책이거든요. 당시가 프랑스 대혁명 직후인지라 군주제
집권층에서는 상당히 긴장할 수밖에 없었대요.
실천이성비판 1장에는 가장 유명한 칸트의 다음
경구가 정언 명령의 제1 수칙으로서 소개됩니다.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 Act in such a way that the maxim of
your will could always hold at the same time as
a principle of a universal legislation… 멋지죠?
1786년의 과학 철학서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기초’는
19세기 독일어권 과학자들에게 성경처럼 영향을 미친
책이라고 하고요.
1795년에 나온 정치 철학서 ‘영구평화론’에 등장한, 시대를
수백 년 앞선 선견지명 앞에서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요.
국제법과 평화 조약, 전쟁과 군비 감축, 국제 연맹 체계 구축,
국가간 상호 독립성과 내정 간섭 배제… 자그마치 이런 내용이.
20세기에 나온 국제 정치학 책이라 해도 믿겠는데요.
왠지 우드로 윌슨이 되게 좋아할 것 같은… 쿨럭.
능력의 한계로 본 블로거가 할 수 있는 요약 설명에 한계가 있으니
칸트나 다른 철학의 최신 상세 설명을 이후에도 접하고 싶다면
스탠포드 철학 백과사전도 좋겠고...
테네시 대학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철학 백과사전도
좋아요. 개인적으론 여기서 많은 도움을 얻었어요.
엄청 쉬운 영어로 어려운 뜻을 풀어주니 놀랍더라고요.
이 포스팅을 읽는 (특히 청소년) 네티즌에게 강조하고픈
이마누엘 칸트의 일생 중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처음부터 천재가 아닌 대기만성형의 대학자란 점이죠.
날 때부터 천재라던 데이빗 흄과 참 비교되죠.
칸트가 흄의 책을 읽고 좌절하기도 했거니와..
대략 40대 중반까지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살던 시간 강사는
정교수 자리에 올라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만끽하나, 정작
그때까지 자신이 해오던 방향이 틀렸음을 깨닫게 되요.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십여 년을 침묵하며 방향을 수정한 후
인생의 후반기를 인류 최고의 지성으로서 칭송받으며 산 거죠.
범접하기 힘든 철학자 칸트보다 굽힐 줄 모르는 의지와
산처럼 묵묵한 성실성을 가진 인간 이마누엘에 주목한다면…
여러분도 철학의 길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아래 개인 동영상은 쓸데없이 현학적이지 않아 퍼와요.
주로 의무론적 정언 명령을 설명하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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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oi Summit 2019 :
Why Did It Hold? Is the Game Over?
사실 다들 너무 들떠 있지 않나 싶기도 했어요.
보통 언론들이 이렇게 분위기 띄울 리가 없는데..
심지어 외신에서까지 방방 떠서 마음들이 다 콩밭에
벌써 가 있는 듯 했으며 Vox 보도가 정점을 찍었죠.
https://www.vox.com/world/2019/2/26/18239694/trump-north-korea-kim-jong-un-vietnam-summit
냉정하게 다시 상황을 복기해보면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입장에서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음을 깨달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그렇쟎아요. 민족적 감응도가 없는 양반이 반드시 19년 삼일절 전날
극적인 딜을 성사시켜줘야 할 이유가 없죠. 너무 감상적 접근입니다.
19년 상반기란 시간은 도널드 트럼프에게 좋은 타이밍이 아닙니다.
그에게 의미가 있는 최상의 타이밍은 20년 11월 재선이잖아요.
모두가 그것을 모르고 있지는 않쟎아요. 잠시 잊었을 뿐.
더군다나 다소간의 임팩트 있는 변수로서 코언 사태가 터졌어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지구 반대편에서 한창 뭐 하고 있던 중에.
2월 27일 최대의 뉴스가 하노이였다고요? 한반도에 사는 사람
입장에서나 그러할 뿐, 적어도 미국민 입장에서는 결코 그러하지
못했답니다. 현직 대통령을 저격하는 엄청난 의회 청문회가 벌어지고
있었거든요. 탄핵까지 염두에 둘 만한 핵폭탄급 이벤트였던 거지요.
진짜 핵폭발은 정작 미국에 있었구먼..
그나마 급하지 않은 19년 상반기의 시간대를 의미있게 관리해온
공은 물론 문재인 정부에게 있을 겁니다. 북한 입장에서도 상당히
급한 것은 사실이에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1회차가 이미 18년에
종료했는데 아직 경제 제재조차도 풀지 못한 상황이니까요.
2월 27~28일로 날짜가 급확정되어 물밀듯이 스케줄이 잡혀 나가니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어요. 남북한 입장에서나 급할 뿐 이런 타이밍에서
살짝 비켜나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왜 이런 속도에 호응해줄까 살짝
의심이 들긴 했죠. 결국 작은 의심의 단초가 어제의 결과로 나온 것이
아닌가 하긴 하여 씁쓸하긴 하고요.
어제 오후 회담장 멤버로 존 볼턴이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아 뭔가
있겠다 싶은 불안한 마음이 있기도 했어요. 대북 대화 국면에서 볼턴이
그동안 옆으로 제쳐져 있는 포지션을 차지해온 것은 그의 강경 노선이
필요한 때가 아니라는 트럼프 본인의 전략이 항상 작용하고 있는 건데요.
그런 상황에서 왜 뜬금없이 볼턴이 재등장..? 그것도 실무자 협상이나
언플 인터뷰도 아니고 가장 중요한 정상 회담장에…? 아, 이번엔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실려 있구나 하는 의심이 들었죠. 트럼프의
전략에 의해 볼턴이 복귀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일 겁니다.
트럼프의 전략이란…? 이미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그대로에요. Vox가
보도한 합의문 초안을 준비했으나 이번에는 서명하지 않았다..는 거죠.
(알고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의외로 솔직하고 거짓말 안 하는 성격이
강해요.) 그렇다면 왜? 왜 중단했는가가 중요하겠죠. — 합의 결렬이니
파토났다느니 극단적 표현은 좀 삼가면 안 될까요. 제안합니다.
북미 외교 전선에 급속한 냉각 기류가 생성한 것일까요? 그런 악재를
학수고대하는 정치 세력이 한반도 주변 도처에 암약하고 있겠죠. 허나
하노이에서 작별하며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 마지막 악수를 찍은 사진에서
엿본 밝은 표정을 보면 그런 시각에 결코 동의해줄 수 없어요.
27일 터진 코언 사태의 국내 정치 공학이 결정적 원인이라는 데에 많은
전문가의 의견이 모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천조국의 대통령도 결코 신이
아니에요. 국내 지지도와 여론 동향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트럼프가 오바마보다 천사라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대신 싸워주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는 힐러리나 오바마보다 외교 능력이 탁월한
지도자란 미국 내 평가에 굶주린 정치인이며 북핵 문제를 그 지렛대로
삼아 노벨상과 재선이란 목표를 향해 무섭도록 냉정하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에요.
국내외 기레기들이 프레임 짜놓았듯이, (비건과 김혁철 둘이서 기초한)
‘스몰딜’ 합의문을 그대로 갖고 미국으로 돌아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코언 사태를 파묻어 버리고 국면을 전환하여 지지율 상승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요? 스몰딜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조차 벌써 ‘스몰’
운운하며 온갖 디스가 터져 나오는 이런 판국에서 그게 가능했겠냐고요.
트럼프가 무서운 승부사라는 점이 여기서 입증이 되는 것 같습니다.
소소한 전공으로 난국을 뚫고 나가지 못할 바에야 아예 판을 깨버리고
강경한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코언이니 뭐니 하는 지저분한
국내 정치 판도를 확 뒤집어 버리겠다는 계산을 한 거에요.
정말로 그 계산대로 되었냐고요? 예, 지금 미국의 헤드라인은 코언
청문회에서 하노이 스탑으로 다시 180도 바뀌었답니다. 정말…
미국 대통령을 아무나 하는 건 아닌 것 같긴 해요.
https://edition.cnn.com/2019/02/28/politics/trump-kim-hanoi-summit-takeaways/index.html
그렇다면 이제 비핵화 대화는 물 건너 갔나요? 김정은 위원장의
작별 표정, 기자회견서 ‘수 주 후 다시’를 언급한 폼페이오 장관,
제재를 더 강화하지도 낮추지도 않고 현상을 유지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등등을 종합하면 여전히 협상의 현상 유지는 잠깐
중단했을 뿐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죠.
아직 미국 발언만 나왔고 북한 공식 의견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속단하긴 이릅니다만, 북한 입장에서 19년 상반기를 실기할 수 없다는
심리가 있겠고 한반도 신경제 구상의 조기 정착을 임기 내에 진행하고픈
우리 입장이 서로 맞물려 한두 달 이내로 다시 재개의 움직임이 있을
걸로 예상합니다. ‘수 주 후’ 멘트에 마음이 쓰이네요. 인지상정.
고로 한반도 운전자론의 위상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러니 상황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끈기있게 지켜보면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인내와 용기를 갖고 100주년의 의미를 조용하게 되새기며 말이죠.
포스팅하고 한숨 돌리는 사이에 간밤에 북한의 첫 기자회견이...ㅎ
이에 대한 반박 인터뷰도 미국에서 나왔죠. 뭔가 진실 공방 비슷하게
흐르는 모양새인데 어느 쪽이 옳은가는 부질없는 논쟁입니다.
거기에 힘빼지 마세요.
북한 발언은 대외 선전용, 미국의 반박은 철저하게 국내 정치용이니
애시당초 목적이 다른 두 가지 말잔치에 불과해요. 내용을 봐야죠.
11개 중 5개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을 보면 — 북한의 전통적인
대외 선전 전략하고는 크게 다른데 — 꽤 솔직하고 정확하게 들립니다.
lifting the sanctions라고 어디서부터 미국이 해석하기 시작했는지
진실 규명이 필요할 것 같기는 한데, 아마도 4대 3으로 불균형스러운
회담장에서 볼턴이 끼는 순간부터 해석과 주장에 대한 균열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정도야 누구나 다 쉽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봐야 할 큰 그림은, 오리발 내밀며 북한의 전통적 벼랑끝 전술을
차용하는 미국의 새로운 외교 책략과, 의외로 전통적 자세를 버리고 꽤
솔직하게 다급하고 초조한 심경을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는 북한의
태도. 양자의 배경에 무엇이 있을까, 그림 그려봐야겠죠.
트럼프의 당면한 과제의 수순은 1) 코언 사태를 진정시키고, 2) 자신의
유일한 치적이자 이전 민주당계 정부와의 뚜렷한 차별점인 북핵 문제
해결을 통해, 3) (노벨상은 받으면 좋고 아니면 그만) 재선이라는 목표를
향해 걸어갈 타임라인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일 거에요. 지금이 1번 단계
초입이니 결국 중요한 발언은 국내 국면 전환용일 거라 추측할 수 있죠.
북한의 목표는 뚜렷합니다. 1) 비핵화에 회의적인 군부 강경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2) 18년 1회차가 끝난 국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시동을
뒤늦게라도 걸어야 하며, 3) 정상적인 외자 유치를 위한 최대의 걸림돌로
UN 제재를 일부 완화 또는 전부 해제하여 각 경제 특구의 총생산 증대란
성과를 거양하는 것이죠.
갈 길은 뻔히 정해져 있고 양자 모두 프로들이니 각자가 해야 할 역할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양쪽과 한국, 중국까지 — 때로는 일본과
러시아까지도 — 너댓 개의 톱니바퀴를 이를 맞추는 운영의 묘이겠죠.
추측성 보도가 몇몇 나왔지만 이번에 깽판 친 장본인 트럼프 대통령께서
먼저 해법의 실마리를 제시할 것 같습니다. 시기는 ‘수 주 후’ 멘트를 계속
신뢰하여 한두 달 내로 예상하고 방법은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을
활용하는 식일 겁니다.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은 이전에도 충분히 작용했습니다만, 이번엔 다소
차이가 있을 겁니다. 전에는 한국 정부의 필요에 의해 트럼프를 살살 달랜
양태였죠. 이젠 파탄을 낸 트럼프 본인이 중재역을 필요로 하는 단계로
들어갔어요. 어쩌면 곧 있을 한미 정상 회담의 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방미할 수도 있어요. 깽판의 대가겠죠.
어찌 되었든 국면이 종료한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고 정상 회담은
결렬이 아니라 잠정 중단입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멘트를 종합해볼 때
대화 재개 시기는 곧 다가옵니다. 현재로서 분석 결론은 그러하네요.
일본과 민주당 등 친일 미국 정치인들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참고할 만한 의견인 듯합니다. 하지만 결국 일본
사주를 받은 인물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주도권은 결국 트럼프 본인이
쥐고 있고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재선으로
가는 국내 정치 상황의 전개 양상입니다.
걱정이 많이 되는 분들은, 고로 앞으로 한두 달 동안의 미국 국내 정치
뉴스에 끊임없이 주목하시길 바랍니다. 정말 중요한 뉴스인데 국내
기레기들이 절대 다루지 않는 내용이 있다면 포스팅을 추가로 올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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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아킨 NBC 군사안보 전문 논평인의
퇴직 기념 기고문 중에서; 의외로 트럼프 잘 한다?
https://medium.com/@ggreenwald/full-email-from-william-arkin-leaving-nbc-and-msnbc-1fb0d1dc692b
미 지상파 주요 언론 중 폭스 빼고 가장 보수적인
NBC에서 수십 년간 군사안보 전문 논평을 해오신
William Arkin이란 대기자가 퇴직하면서 기고를
했는데 그 안에서 트럼프 북핵 정책을 살짝 고평가..
…하는 듯한 뉘앙스의 문장이 섞여 있지만 사실
읽어보면 큰 건 없고 오히려 트럼프 까는 얘기가 더
많다는 내용이 지난 주 화제가 되었죠. 아주 반짝.
그래서 직접 읽고 판단하시라고 긁어와 번역 답니다.
번역을 잘 했나 좀 어렵긴 하네요. 원문과 같이 읽으세요.
Full email from William Arkin,
leaving NBC and MSNBC
NBC 및 MSNBC를 떠나며
윌리엄 아킨 대기자
2019년 1월 2일
1월 4일은 NBC뉴스와 함께 한 본 기자 경력의 마지막 날짜라서 동료들에게 (영원히는 아니겠지만서도) 작별의 인사를 고하려 한다. NBC를 떠난 적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엔 좀 더 달콤씁쓸할 수밖에 없다. 세계 정세와 저널리즘 양쪽에서 동시에 위기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엔 사람들이 맞닥뜨리는 도전이나 위험을 해설하는데 최적화한 본 기자의 전문성이 지금 이 순간엔 다소 거추장스러워진다는 느낌도 든다. 매일매일의 사건을 보도하는 기자 정신이나 트럼프 정부의 서커스를 바라보는 흥미 어느 쪽에서든, 방송사의 흥분한 정서에서 이제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30년 전에 로버트 윈드렘 및 프레드 프랜시스 밑에서 펜타곤의 냉전 관련 뉴스를 공급하면서 기자와 NBC와의 관계는 시작되었다. 1999년 코소보 내전 중 생방송 애널리스트로 데뷔한 이래 NBC 심야 뉴스와 인연을 이어왔고, 올스타 장성들과 정부 고위 관리가 가득한 난리통에 홀로 선 민간인으로서의 유니크한 위치를 때로 짓궂게 즐기기도 하며 버텨온 것 같다. 한편으론 학자로서 반핵 및 반군사 메세지를 혼자서 고집불통의 지식을 뽐내며 설파하기도, 기자만의 개인 영역에 탐닉하는 영화 평론가로서 온갖 저주받은 걸작들에 대한 비평을 숨김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9.11이 터졌을 때 다시 NBC로부터 호출이 왔었다. 수 주 동안 방송 안팎에서 알 카에다 정보를 제공하고 보병 전력보다 드론을 활용한 공중 타격이 더 효과적이라는 등 시급한 현안을 논했던 것 같다. 거의 계엄령에 준하는 무력 제재 일변도의 긴박한 국가 상황에서는 자기 자신을 주변 정황에 감정이입하는데 참으로 애를 먹었다. 다소간의 퇴각 취지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컬럼 논평인으로 물러앉았을 때조차 이라크 전쟁 발발이 임박하고 있다는 예측에 길길이 뛰던 데스크와 격론을 벌여야 할 정도였다. 항구적 전비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믿던 강경파들에게 그렇게 테러를 막고 싶다면서 왜 정작 전략은 부재한 것인지 태클 걸던 때도 기억이 난다.
그때는 고위 관료 집단이 국가의 가치와 공공의 안녕을 추구하는 절차에 있어 심각한 하자가 있다는 일념 하에 주로 국방 안보 카르텔의 비대해지는 권한에 대해 일필휘지로 펜을 휘둘러댔다.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기사를 편집해 ‘미국의 특급 기밀’이란 엄청난 책을, 국토 안보 기능에 번지는 더러운 파시즘에 관해 ‘미국적 쿠데타’란 책을 펴냈고, 놀랍게도 이것은 트럼프와 ‘딥쓰로트’ 행정부가 출범하기도 훨씬 전의 일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오바마 대통령이 (이후엔 트럼프 대통령이) 구축하는데 실패한 지속적인 변화 체제의 전조적 징후를 논한 책들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SNS 언론 시대의 새로운 물결이 도래하는 와중에 NBC(를 비롯한 주류 언론사들)가 세상의 뉴스를 다 따라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은 어느 정도 명백한 사실이었다. 이에 덧붙여 더 이상 전선도 구체적 승리도 규정할 수 없는 새로운 유형의 전쟁을 과연 어떻게 기사로 전달할 것인가에 관해 지적인 도전 과제도 주어졌다. 본 기자의 눈에는 더 중대한 문제도 있었으니, 확실한 안전이나 안보를 장담할 능력도 안 되는 국가 안보의 지도자들과 장성들에게 이상하게도 새로운 시대에는 오히려 더 무제한적인 권한이 주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새로운 전쟁”에 임전하고 있음이 명약관화하지만, 전쟁을 승리로 이끌 위대한 지도자나 전략가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승전했다거나 갈등을 종식시켰다고 당당하게 선언할 존재가 워싱턴 정가에도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데이빗 퍼트레이어스, 웨슬리 클라크, 제임스 매티스, 허버트 맥매스터 등 향수 냄새 풀풀 날리는 군복 스타들이야 많겠지만 아쉽게도 결과에 책임질 수 있는 진정한 군사 안보의 리더는 찾아보기 힘들다. 상황이 이럴진데 소위 “전문 논평인”이랍시고 뉴스쇼에 등장하는 언론 패널들은 쿵짝을 맞춰줄 밖에 도리가 없다. 그 대단하다는 미국의 안보 리더들이 지금까지 거양한 결과를 적당히 무시할 배짱만 있다면야 쿵짝 맞추기는 쉽다. 불과 18년 전보다도 더 안전해진 중동 국가가 하나도 없고 세계 정치는 더 다극화해 버려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그 결과 말이다.
테러와의 영원한 전쟁이 일상이 된 이후 NBC(또는 다른 신문)에서 가진 토론에서 한 번도 본 기자의 소신과 논지를 벗어난 적은 없다는 데에 자부심을 가진다. 그 논지인즉슨 테러리스트들이 왜 싸움에 개입하는지 근본 원인을 이해하지 않고 테러는 절대로 뿌리 뽑을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우주와 사이버 체계를 포함한) 방공망 전력이 단순히 국방의 미래가 아니고 현재 진행형 전쟁 자산이란 점도 본 기자가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점이겠다.
NBC(등 주요 언론)가 전쟁을 보도해온 태도는 흡사 경마 중계와 유사하다. 도널드 럼즈펠드 대 군 장성, 폴 월포위츠 대 에릭 신세키, 중앙 정보국 대 딕 체니, 악질 고문관 대 세련된 세력 - 파견군 규모와 사상자 숫자는 뒤로 하고 -, 심지어 오바마 대 의회 - 그저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라서 관타나모 기지 폐쇄도, 핵 군축도, 푸틴 대응도 못하는 불쌍한 오바마 이야기는 덤으로 - 구도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국가 안보 관점을 이런 정치 소설로 둔갑시키는데 힘써온 셈이다. 미군 장성들과 안보 지도자들의 무능함에 관해 보도할 수 없는 현실에 낙담할 수밖에 없음이다. 미국이 중동에서 또 지금은 아프리카에서 저지르는 삽질이 언론의 일상적인 보도로 묻혀 눈감고 지나가 버리게 만듦에 충격과 공포를 느낌이다.
본 기자가 원체 까다롭고 격식이나 절차에 익숙치 않아 그간 싸지른 뒷처리 때문에 NBC가 얼마나 고생했을지 잘 알고 있다. 그저 핵 무기, 공군력, 알 카에다에 대해 알고 있는 기자의 자그마한 전문성으로 톰 브로코우 앵커와 방송사가 조금은 더 똑똑해지는데 기여하였기를 바랄 뿐이다. 또 결국 이라크에 대량 학살 무기가 존재하지 않았고 이를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던 NBC 이사진에 당당하게 납득시키려 한 소수의 몇 사람 중 하나가 본 기자였다는 사실에도 위안을 얻는다. 수 년 간 국가 안보 주제로 MSNBC 본사 제작진과 끊임없는 격론을 벌였고 크리스 매튜스에서 존 호켄베리까지 현명한 언론인들께 주제넘은 참견질을 일삼았다. 하지만 NBC를 포함한 주류 언론이 워싱턴 정가의 대변인으로 작용하는 듯한 최근 분위기를 접하며 언론의 사회적 사명이란 대의와 진실을 전달하는데 실패한 것은 아니었나 하고 무기력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로버트 윈드렘 선배가 2016년 대선 때 신설 탐사 보도팀을 맡아 복귀를 종용한 적이 있었다. 테러와의 영원한 전쟁이나 힐러리 클린턴의 호전적 매파 성향을 꿰뚫어 통찰하는 것이 기자에게 주어진 미션이라고 그땐 그렇게 여겼었다. NBC의 모든 임직원이 어깨 너머로 벼락 스타로 주류에 갓 입성한 이들을 예의주시하던 때였던지라 흥미롭기도 했다. 그런데 별안간 트럼프가 당선되어 모든 탐사 보도가 느닷없는 트위터 봇물에 휩쓸렸고, 국가 안보와 정치 보도 전면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격랑의 광경이 연출된 것이다. NBC가 안보 사안을 손익 계산의 문제에 연결지어 기사를 양산하기 시작했음을 기억한다. 아무도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는데 게임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던 것이다.
본 기자는 트럼프 행정부 하의 국가 안보 확립이란 것이 (세계 정세에서) 각광을 받지 못한 것은 고사하고 위험한 권세가 축조된 양상이라고 늘 주장해왔다. 지금은 더욱 제멋대로인지라 실질적 비판을 허용하지도 않고 있다. NBC조차 일정한 생기를 잃고 지리한 중재 역할이나 인습적인 수사에나 집중하여 정부를 옹호하거나 미묘하게 위기를 조장하고 있는데, 이는 정책의 결과보다 격식이나 절차에나 치중하는 꼴인 셈이다. 이 시점에서 뒤따르는 후속 보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미국민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부분에 관해 더 큰 우려가 생긴다. 이에 한 발 물러나서 미국이 벌여온 전쟁에 왜 좀처럼 변화가 없는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직장을 떠나며 고용주를 욕하고 비방하는 것이야 인지상정이겠으나 갖가지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NBC에서 함께 한 지난 세월은 보람찬 일이었다. 신시아 맥파든 기자 같은 사람과 일한 경험은 평생의 영예이다. 맥파든이나 케빈 모나한 기자로부터 방송에 관한 많은 것, 즉 내부 제보자의 시선을 제공한다거나 하나의 독창적 아이템이 얼마나 파워를 얻어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가 하는 점을 배웠다. NBC의 젊은 신진 기자들 역시 매우 탁월하다. 공격성 반론을 일삼아온 본 기자를 늘 지지해준 노아 오펜하임 PD에게 감사한다. 탁월한 전문 능력을 발휘해준 자넬 로드리게즈에게도 감사한다. 심야 뉴스 제작 스탭 모두 길고 지루한 본 기자의 보도에 늘 지지를 보내주었다. 방송 네트워크가 세상을 떠안을 것이라며 야심찬 계획을 묵묵히 밀고 나가는 필 그리핀 대표이사에는 늘 경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
동료들과 함께 이룬 성과에 보람을 느끼지만 더 할 일이 많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지금은 휴식을 취해야 할 순간이리라. 데스크의 독재적 간섭과 회사 내규의 지원 없이 다시 사색과 집필로 돌아오게 되어 만족스럽다. 물론 늘 내 필생의 과업이라 여겨온 일, — 비밀스런 사안을 찾아내 지루한 기사를 쓰는 일로 복귀할 것이고 미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기사 소스를 제공해주는데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세계 정세가 대단히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기에 기자가 주력해온 안보 분야에 관해서도 가만히 앉아 생각하고 보충할 시간이 필요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국가가 포로로 잡힌 작금의 정황이라면, 모든 사람이 느끼듯이 기자 또한 미국이 잃은 것들이 참으로 많다고 생각한다. 언론 보도를 이해 못하거나 정권의 압력을 못 느끼는 사람들은 제도권의 통제나 심지어 당파적 이익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들이 말하는 당파란 것이 뉴욕 경제계나 워싱턴 정가를 나머지 미국민들과 분리하여 지칭한 것이라면 그들이 옳을지 모르겠다고, 외부자들과 정부 내 제보자들을 향해 신랄하게 응답하련다.
트럼프 대통령의 통렬한 삽질들을 바라보면서 기자가 처음부터 스텝이 꼬였었구나 하는 점을 깨닫는다. — 대러시아 관계를 풀어보려 한다거나, 북한 비핵화에 주력한다거나, 시리아 주둔 미군을 철수시킨다거나, 아프리카 파견에 의문을 표시한다거나, 정보 기관 및 연방 수사국과 각을 세운다거나 하는 삽질 말이다. 물론 대통령은 무식하고 무능한 사기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NBC가 거의 기계적인 논조로 반대 의견을 내세우며 어쩌면 더 큰 갈등이나 전쟁을 불러올지 모를 정책을 재빠르게 옹호하며 나선 데에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미국은 시리아에서 철수하면 안 되는 것인가?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대담한 액션이 그렇게 못할 짓이란 말인가? 러시아 관련해서도 — 미국 민주 정치의 토대가 그토록 조작에 취약한 것이었나 새삼 통탄하고 근심할 일이지만서도 — 아니 그럼 다들 냉전 시대로 돌아갈 작정인가? FBI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 그간 그토록 나쁜 일을 벌여온 집단이 하루 아침에 영웅이 되는 것인가?
트럼프 아니더라도, 현대 정치의 새로운 지형에서 유치한 소셜 미디어 놀이에는 이미 진력이 나 있던 차이다. 그리고 그 “사이클”이란 것 때문에 NBC(뿐만 아니라 모든 주류 언론)의 현직 언론인들도 숨조차 제대로 고르기 힘든 아픔을 겪고 있긴 하다. 개인의 삶에 대한 것이든 강경한 뉴스에 관한 것이든, 현재 우리 시대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이 너무 먼 길을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오늘날 정보의 홍수라는 현상이 국가의 민주화와 사회의 통합을 촉진하는 만능 열쇠라거나 디지털 열반의 신세계가 될 수는 없음에 기자 또한 동의한다. 이미 국민들 사이에 스마트폰 및 소셜 미디어에 대한 피로증이 생겨나고 있다고 생각하며, 정보 과다의 역효과나 저널리즘의 사회적 역할이 간편 클릭이나 채팅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추정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계에서 물러나는 즉시 사회 전체가 엄청난 SNS 후유증을 겪을 것이라 장담한다. 그러하기에 NBC와 모든 주류 언론의 앞에는, 새로운 도전과 기회가 여전히 잔존하는 것이다. 이런 내용에 대해선 앞으로 더 깊게 생각하여 글로 남기고자 한다.
컨설턴트란 직종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해, 컨설팅 외주 계약을 통해 모든 회사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쏙 듣고 싶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기자가 회고하기에 NBC는 적어도 그런 뻔한 컨설팅 짓거리 하는 언론사는 아니었다. 당연한 소리이지만 기자 자신도 데스크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쏙쏙 고분고분 갖다준 역사가 없어 이에 보람을 느낀다. 모든 회사와 기관이 두려워하는 가치 — 변화, 리스크, 차별화 같은 것들(사실 역설적으로 그들 기업의 창의성을 돋구는 동력 아니겠는가.) — 지금까지 기자의 보도 지침에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들이다.
집필과 논평의 주업으로 복귀하게 되어 기쁘다. 올 겨울엔 지난 십여 년을 몰두한 9.11 음모론 관련 소설의 탈고 작업을 끝마칠 예정인지라 들떠 있다. 이 작품은 소설이긴 하지만 테러분자들을 색다른 시각에서 이해하려는 저작의 일환이다. 또한 새로운 책 두 권에 관한 프로젝트도 착수할 예정인데, 방송사 주변을 배경으로 기밀 정보를 취급하는 매력적 제보자와 외톨이 기자에 관한 픽션이 그중 하나이다. 지금까지 읽었다면 눈치 채셨겠지만, 왜 미국은 항구적 전쟁 수행 정책에서 좀처럼 손을 뗄 수 없는가를 다룰 논픽션 책도 하나 준비하고 있다. 대통령제와 리더쉽에 관한 분석을 다룬 미디어 비평이야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미국의 국가 안보와 관련한 비평서는 많은가? 그렇지 않다. 현재의 화염과 분노 정책을 넘어서서 실천가능한 다른 대안을 찾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행운을 빌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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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jor Incidents from European History over
International Relations Realm
국제 관계학의 역사에서 시대별 맥락을 짚을 때 반드시
검토하고 분석하는 몇 가지 역사적 사건이 있어요.
그 역사와 시기를 보면 15세기에서 20세기까지 백여 년
언저리의 간격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여 매우 흥미롭죠.
오늘은 이런 국제적 사건과 국가간 조약의
역사를 요약하여 정리해 볼까요.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Fall of Constantinople
1453년이 중세를 끝장 낸 연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해 서양 중세사 최고의 사건인즉슨.. 비잔틴 제국, 즉
(동)로마 제국이 오스만 제국의 공격으로 멸망한 일일테죠.
무려 2200년을 이어온 제국이 멸망한 사건이니까요.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 통치의 절정을 찍고 6백 년 넘게
존속한데다 폐쇄적 기독교 문화 속에 골골하던 유럽을
아득히 초월했던 14~17세기 세계의 패권국이자
동시대 유럽 군주들 공공의 적이었습니다.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의 나비 효과로 지중해 동쪽 항로가
막혀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대서양 일주 항로를 개척했으니
역사의 거대한 새옹지마이자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죠.
(동양의 신비… 후추를 어디서 수입하냐고?!)
이베리아 반도의 대항해 시대, 피렌체 등 도시 국가들의
르네상스 인문 혁명, 거기에 북독일의 종교 개혁이 바야흐로
적정 혼배합하여 유럽의 근대를 열어 젖히는 찰나였어요.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 Peace of Augsburg
1517년에 95개조 반박문으로 촉발된 종교 개혁이
일단락된 사건이자 루터교를 공인하여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신교를 인정한 계기의 바로 그 사건입니다.
16세기 중반 합스부르크 황제 카를 5세에 맞서 전쟁하던
신교 영방국들이 페르디난트 1세와의 극적인 합의를 통해
루터교 종파를 공인한 군주간 합의 사건이라 볼 수 있어요.
(페르디난트는 카를의 동생이자 독일 대리 통치자..)
페르디난트는 당시 선제후와 농민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져간 교세를 꺾기보다 상호 협력하여 자치를 인정하는
개혁 성향으로 독일권 제후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사람..
화의 내용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개별 제후의 종교 통치권을
황제나 교황과 분리하여 최초로 인정했다는 바로 그 점입니다.
해당 영지의 종교를 제후가 택한 종파로 정한다는 내용이죠.
허나 루터교는 인정 받았는데 당시 더 진보적 성향이던 칼뱅
장로교 제후국들이 제외된 문제가 여전히 잔존한 상황이었죠.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Peace of Westphalia
상호 경쟁하던 국가의 군주들이 독일 뮌스터와
오스나브뤼크에 모여 30년 전쟁의 종식을 선언한
바로 그 조약입니다. 오늘날 국제법의 효시라 하죠.
(요샌 웨스트팔리아로 부르기 시작하기도..)
1618년에 시작한 종교 전쟁 후반부 중요한 변곡점이자
네덜란드 독립 전쟁과도 맞물린 17세기 최대의 사건이
바로 30년 전쟁입니다. 근대 최초의 국제전이라고 하죠.
루터와 칼뱅에서 시작한 투쟁이 130년 만에 여기까지 이른
겁니다만, 프로테스탄트 전쟁을 단순한 종교 문제로 보면
부족하고 교황과 황제 중심 거대한 국정 체계 패러다임이
새로운 시대로 전환하는 용트림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신교 투쟁의 결과물이 결국 개별 제후가 다스리는 봉토의
자치 주권을 인정하는 내용인 것에서 알 수 있죠. 이제 황제의
통치를 받는 제후의 시대가 아니라 독자적 군주가 된 겁니다.
주권, sovereignty의 개념이 본격화하고 이로 인해 절대
왕정 및 왕권 신수설이 대두되는 발판을 마련하지만 동시에
자유주의의 맹아가 싹트는 동인도 마련되기 시작하는 거죠.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 Peace of Utrecht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끝내고 체결한 조약입니다.
생소한 전쟁일텐데 유럽 왕가 간 세력 균형전으로 이해해요..
스페인과 오스트리아를 다스리던 ‘지는 해’ 합스부르크와
프랑스를 다스리는 ‘뜨는 해’ 부르봉 왕가가 주인공인데요.
(부르봉 킹이 바로 ‘태양왕’ 루이 14세. 확장욕 쩌는 분..)
스페인 왕위 계승전에 루이 14세 손자인 앙주 공 필리프가
선순위로 떠오르는 상황을 오스트리아와 영국과 네덜란드가
막아서며 발발한 전쟁입니다. 부르봉이 스페인과 프랑스를
병합하면 견제 불가능한 거대 국가가 탄생하기 때문이죠.
의외로 (그때까지 약체로 분류되던) 영국의 견제가 제대로
먹혀 부르봉이 스페인을 계승하되 프랑스 왕위는 포기하는
조건으로 협상이 타결됩니다. — 루이 14세, 야욕 좌절…
유럽 영토에서 어느 한 나라가 잘 나가 바보짓을 벌이면
엇비슷한 국력의 나라들이 합심하여 다구리를 먹이는…
현재도 이어지는 불문률이 여기서부터 시작된 겁니다.
주권에 영토 개념을 넣는 법리도 형성되었고요.
1815년, 빈 회의 Congress of Vienna
나폴레옹 전쟁을 끝내고 프랑스를 패자로 공인하며
이후 전 유럽에 불어닥칠 자유주의 바람에 제동을 걸고
왕정 복귀를 천명한, 보수 반동의 대명사격 사건입니다.
오스트리아 재상 메테르니히가 주재한 걸로 유명하죠.
프랑스 대혁명 후 집권한 나폴레옹은 황제로서(!) 유럽
각국에 전쟁을 벌였는데요. 역설적으로 유럽 전역에 퍼진
것은 혁명이 낳은 프랑스의 정신이었어요. 자유, 평등, 박애.
회의 대표자는 힘센 나라의 왕과 귀족이었죠.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그리고 프랑스. 자국에 혁명이 수입되면
꼼짝없이 목이 날아가는 분들.. 국경선과 전리품 배당을 놓고
혈안이 되어 똥고집을 부리며 진척이 더디던 중이었는데요.
보나파르트가 유배지를 탈출해 파리로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에
다들 화들짝 놀라 협정서에 조인을 했다고 해요. 쌩 코메디..
(메테르니히의 댄스 파티도 찾아 보세요. 배꼽을 잡을 듯..)
이른바 유럽 협조 체제, Concert of Europe이란 국가간
공조가 명문화하여 등장한 거에요. 핵심은 위 위트레흐트 때
다구리.. 와 대동소이하고 이 시스템이 40여 년을 유지했죠.
그러나 한번 불씨를 당긴 자유주의의 대세는 거스를 수 없어요.
30년 7월 혁명(‘레미제라블’ 배경), 32년 영국 선거법 대개혁,
1848 연쇄 혁명과 공산당 선언… 이미 불길은 타오른 거죠.
1919년, 베르사유 조약 Treaty of Versailles
제1차 세계 대전을 종식하고 독일의 패배를 선언하며
막대한 배상금 조건으로 두번째 전쟁의 빌미를 제공한,
독일 제국과 연합군 승전국들 사이의 조약입니다.
빈 회의로 패전국 프랑스가 실질적으로 잃은 것이 없던 데 비해
베르사유 조약의 결과는 독일인들에게 참담한 치욕이었어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배상금으로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닥쳤고
바이마르 공화국은 몰락했으며 히틀러 집권의 계기가 되었죠.
일찍이 경제학자 케인스가 이 비극을 예견했다는 거 아시죠.
(이때 협상 대표단 중 일원이었다가 참다 못해 사퇴..)
특히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뻘짓은 어마어마했어요. 그의
하이라이트는 이렇다 할 강제력을 갖지 못한 국제 연맹 창설로
‘마치 무언가 해결된 듯한’ 국제 관계의 판타지를 조장한 점이죠.
장렬한 뻘짓의 대행진이 전간기 20년의 나날을 채워요.
바야흐로 한스 모겐소가 현실주의로 스타가 될 조건이 형성..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는 시대로 흘러가고 있었죠.
거기에 세상은 대공황의 광풍에 휩싸이고 있었고요.
이런 악조건에 어떻게 전쟁이 또 안 날 수 있겠어요.
1945년, 얄타 회담 Yalta Conference
제2차 세계 대전을 끝내고 루스벨트와 스탈린과 처칠이
모여 깡패처럼 전후 국제 질서를 결정지은 그 회담입니다.
우리나라는 여기 놀아난 직접 피해 당사자국… 아시죠?
베르사유 조약이 종전 직후 전쟁 문제를 처리하는 성격인데
반해 얄타 회담은 종전이 임박한 시점에 전후 문제를 미리
조율하는 강대국 슈퍼 파워들의 미래 회의 같은 거였죠.
이 사건의 가장 큰 상징성은 팍스 브리태니카의 레짐이 이미
저물었다는 것, 그리고 미국의 대항마로 소련이 등장하여
냉전 시대의 시작을 알린 실질적 계기라는 점이에요.
(실제 미국은 소련의 태평양 전쟁 참전을 이끌어냄.)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한반도가 둘로 갈라져 지금까지도
폐해를 입어야 하는 원인을 만들었죠. 도대체 왜 때문에?!
패전국 일제가 아닌 우리가 분단되어야 하는 거죠?!
그렇게 냉전이 시작하여 1989년 동유럽 혁명까지 존속해요.
하지만 이 땅의 냉전 파편은 아직도 진행 중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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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Categories of the Political Science
What Do They Study Mostly Today?
정치학은 political science라고 하고요.
왜 사이언스가 붙냐면 현대 정치학 연구물이 숫자와
통계를 써대며 거의 계량화해 버렸기 때문이에요.
(미국의 정치학 연구 문화이죠. 미국은 정치도
주도하고 정치학도 주도하고 있답니다. 참 쉽죠?)
유럽은 아직도 politics라는 단어를 쓰기도 합니다.
특히 영국. 옥스브릿지나 LSE, UoL을 보면 알 수 있죠.
경제학을 미시와 거시, 계량으로…
법학을 민사, 형사, 공법, 소송으로 나눌 수 있듯이
정치학의 서브 장르, 하위 분과 학문을 나눠보면요.
학교의 전통에 따라 여러 관점이 혼재하여
살짝 머리 아프지만 본 블로거의 주관으로는..
정치 사상사, 정치 이론, 비교 정치, 공법, 행정,
정치 경제, 국제 정치의 일곱 분과가 맞다고 봅니다.
원래는요. 원래는, 오리지널리.
그러나 한국의 정외과 교육 풍토에서는 보통
공법과 행정과 정치경제는 과감하게 생략하는,
무겁도록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그도 그럴 것이 각각 법학과, 행정학과, 경제학과에서
열심히들 가르치고 있으니 정치외교학과가 저거 다 가르치면
딴 과는 뭐 먹고 사냐는 논리가 굳어온 때문인 듯해요.
그런데 근대 학문의 발전 역사를 주욱 살펴보면 나오지만
철학의 정치 사상이 굵은 줄거리를 형성하고 거기에서
우리가 아는 사회과학이 모두 갈라져 나왔지요.
철학에서 자유주의와 민주 정치의 연구가 터져 나왔고
중간에 경제학이 나왔는데 원래는 정치 경제, political
economy라는 서브 장르의 외양으로 등장한 거죠.
정치학이 독립 학문으로 인식된 시점은 대략 19세기
후반이고, 20세기 전반기에 행정학이, 20세기 중반에
정책학이 갈라져 나왔어요.
사실 오늘날 주류로 인식되는 사회과학이 죄다
철학과 정치학의 본류에서 새어나온 지류들인 셈이죠.
우리 식의 교육 풍토가 주류라고 볼 수는 없을 듯하고요.
미국의 정치학 전공자들은 앞에서 분류한 일곱 가지를
그래도 조금씩은 훑는다고 해요. 아예 생까진 않고.
미국 학제에서 politics라고 하면 미국식 민주주의와 헌법론,
정부 이론(즉 행정학), IR, 국제경제, 국제법을 다 조금씩
커버하는 편이죠. 한국식 정외과 커리큘럼과 차이가 있음..
우리는 또 정치’외교’학이라고, 외교를 강조하쟎아요.
근데 이건 솔직히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현상이에요.
외교학이란 것이 사실 별다르게 존재하는지 의문이죠. 저 위
일곱 가지 중 국제 정치학, 즉 국제 관계학 밑에 또 세부적인
여러 각론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외교 이론일 뿐이에요.
*미국 4년제 대학교 학부 수준에서 제공하는 커리큘럼 훑기
(Harvard MA)
https://gov.harvard.edu/gov-courses
(Northridge CSU CA)
https://catalog.csun.edu/academics/pols/programs/ba-political-science-i/politics-and-government/
(Grambling State LA)
http://www.gram.edu/academics/majors/arts-and-sciences/poli-sci/curriculum/political%20science.php
(Hampton VA)
http://libarts.hamptonu.edu/page/Curriculum-7
(Jackson State MS)
http://www.jsums.edu/polisci/undergraduate-courses-offered/
정치 사상사는 철학사에서 정치 파트를 빼온 식이에요.
보통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공맹, 카우틸랴에서부터
고대 정치 사상을 풀어나가죠.
그리고 민주 정치 역사에서 많이 들어본 마키아벨리,
홉스, 루소, 몽테스키외, 밀, 마르크스의 이야기가…
현대에 정치학이 독립한 이후의 사상가로는 모겐소,
아렌트, 달, 사이먼, 롤스, 애로우, 키신저, 헌팅턴, 나이
등등이 등장하여 어려운 이야기를 풀어가는 거죠.
(이 중 로버트 달은 민주 정치의 이론화에 공이 크고
본 블로그 좌상단 작은 이미지로 등장한 할아버지가
바로 이분이랍니다. 좋아해서요.)
정치 이론 파트는 추상적 개념을 파고드는 난해한 분야고
보수, 자유, 사회 등 이데올로기와 권력론, 국가론 같은
현대 정치 현상의 구성 요소를 철학적으로 푸는 겁니다.
여기까지 분야는 오늘날 정치학에서도 종사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고 극소수 철학적 천재들만이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해요. 비주류란 말이죠.
현대 정치학의 주류 분야는 크게 비교 정치와 국제 관계,
이 둘로 나뉩니다. 대학원 이상의 정치학 전공자가 다들
뭐 연구해서 먹고 사냐 할 때 죄다 이 둘에 몰려 있지요.
비교 정치 파트에서 본격적인 민주 정치의 제도가 나와요.
대의제부터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등..
삼권 분립에서 입법, 행정, 사법의 역할.. 정당과 이익
단체, NGO, 커뮤니케이션 같은 사회 집단까지..
하지만 오늘날 비교 정치 연구 소재 중 정수는 바로 선거죠.
선거를 통해 권력이 창출되기도 하고 통계 분석을 도입하여
논문 뽑아내기 좋기 때문에 정말 많은 사람이 연구합니다.
요즘 핫한 선호 투표제, 비례 대표제, 연동형/권역별 등등
주제가 최근에 가장 빈번한 연구 사례들입니다. 정말
다양한 연구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요.
공법 연구의 핵심이자 출발점은 헌법입니다. 연구 대상이나
소재를 보면 법대의 헌법학과 사실상 큰 차이가 없어요.
하지만 (본 블로거 개인 감상인지는 몰라도) 법학 전공자가
쓴 헌법학 연구물과 정치학 전공자의 공법 연구물은 많이
달라요.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 논조, 어법 등등에서…
원래 헌법학을 먼저 공부하고 정치학으로 빠졌는데
법대생 세계에서 관용적으로 쓰는 공통 어구를 잘 쓰지
않아 정치학 이론서를 읽는데 고생했던 적이 있어요.
법학 전공자의 어법이 다소 딱딱하고 정형화되어 있다면
정치학 전공자는 꽤 리버럴한 철학적 사유의 방식으로
정치와 헌법의 소재를 풀어간다고 할까…
설명하긴 어렵지만 정외과에서 공법 연구를 배제해온
수십년 한국 풍토만의 특유한 문화가 아닐까 합니다.
행정 이론은 행정학과에서 배우는 그대로입니다.
개론, 조직, 인사, 재무 등을 거쳐 정책학까지 연결되는
구조를 가지죠. 일부 각론은 경영학과 많이 겹칩니다.
인사 행정은 그대로 경영학의 인사 관리와 유사합니다.
공공의 경영이 행정이고 사기업 행정이 경영이니까요.
정책학이란 분야가 따로 떨어져 나왔으니 행정학에서
다소 이질적인 분야처럼 보이기도 해요. 어떤 정책의 성과를
과학적으로 측정하자고 달려드는 실증 중심 분야랍니다.
경제학이 원래 18세기 정치 경제학에서 출발했다고 했죠.
그래서 지금도 정치학과 경제학은 겹치는 영역이 꽤 크고
때로 오버랩되어 콜라보하는 연구를 많이 합니다.
경제학에서 산업 조직론과 게임 이론을 공부하던 분들은
모든 이론이 정치학 교과서 속에서 동어 반복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거에요.
국내에 개론서로 나온 책 중에 ‘세계 정치론’을 읽어 보시면
특히 경제학 이론이 정치학자의 변주를 거쳐 해석된 글을
경험하실 수 있어요. 로체스터 학파의 특징이라네요.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교수 원저의 세계 정치론)
선거나 투표, 정책 결정 과정에서 행위자 간의 머리 싸움을
어떻게 과학적인 방법으로 실증할 수 있을 것인가…
주로 이런 연구라고 보시면 됩니다.
국제 정치학, 즉 국제 관계학, 곧 IR은 정치학의 하위
분과이기도 하면서 약간은 독립 학문처럼 분화하고
있기도 해요. 국제학이란 학제 분야로 발전한다고도 하죠.
국제 외교와 파워 게임, 교류 관계 형성 같은 것들이
주요 연구 소재입니다. 해외 토픽 시사 뉴스 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국제 관계학의 서브 장르로 공부해야 할 필수 각론을
역사, 사상, 한반도, 강대국, 외교, UN, EU, 안보, 국제법,
국제경제, 민족, 인권, 젠더, 환경, 종교/테러의 열 다섯
분야 정도라고 보면 대략 틀리지 않을 거에요.
앞에 얘기했듯이 오늘날 정치학 연구를 둘로 나눠
반은 비교 정치의 선거, 나머지 반은 IR의 지역학..
양적으로 대략 이렇게 보면 거의 맞습니다.
오늘날 정치학의 트렌드라고 보시면 되겠고요.
여기에 한국의 특성을 고려하여 통일 이론이나
한국형 IR이 독자적으로 연구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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