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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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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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Calvin, the Church Reformer and

A Man against the World










보헤미아의 얀 후스, 신성 로마 제국의 마르틴 루터,

취리히의 울리히 츠빙글리 등 개혁 교회 운동의 양상은

15~16세기에 매우 다양한 방면에서 전개되었습니다.



루터의 활동이 현대에까지 가장 유명하지만 가톨릭 교회의

보수적 교리와 부패 현상에 반대했을 뿐 정작 그 자신은

독일 농민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이었어요.



사회의 근본적 개혁을 바라는 민중의 바람과는 거리가 멀고

로마 가톨릭과 신성 로마 황제의 간섭을 배격하고픈 독일권

선제후들의 입김에 더 부합하는 지도자가 루터인 거죠.

루터교는 태생적으로 꽤 보수적 성향이었던 거에요.



*선제후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선거로 추대할 권한을

가진 제국의 대공들을 말합니다. 보통은 오늘날 독일

지역 영지를 관할하는 제후들 중 선도적인 입장의

유력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라 보면 될 듯해요.



교리 문제에만 그치고 정치 활동으로 발전하지 않는 종교 개혁은

현대적 공화정 역사와 아무런 연속성도 없고 시대사적 의의도

찾을 수 없는 공허한 해프닝에 불과하다고 하겠습니다.



종교 전쟁의 정점을 찍은 30년 전쟁이 기독교 문제에서 시작하여

종국에 국제 정치로 대단원을 마친 사례에서 증명이 되쟎아요.

교회 개혁의 본질은 정치 구조를 건드려야 하는 거였어요.










개혁 교회 운동을 자치 정치체로까지 확대 발전시킨 장 칼뱅

그래서 정말 중요한 인물인 겁니다. 근현대 인류 역사에 가장

중요한 인물 한 사람만 꼽는다면 — 케플러나 뉴턴, 칸트,

나폴레옹, 마르크스 다 제치고 — 바로 칼뱅일지도 몰라요.



칼뱅이 역사에 끼친 영향을 논한다면야 고작 포스팅 수백 개나

논문 수십 편으로도 모자랄 지경이겠습니다만.



아주 심하게 간소화하여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영향

한 가지 정도씩만 썰을 풀어본다면요...



칼뱅의 예정설은 인간의 구원을 사회적 신분이나 인간의 의지와

상관 없이 오직 신의 은총이 정할 뿐이라는 내용으로서 일찍이

5세기에 아우누스티누스가 기초하여 칼뱅이 정립했답니다.



칼뱅의 정치적 가치관에 있어 급진성은 이렇게 인간의 운명이

사회 정치 계급을 초월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해요. 현대적 민주

시민에겐 낯설지 않겠지만 중세의 평민들이 받은 충격은 실로

엄청났죠. 칼뱅교가 급속도로 퍼진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고요.



칼뱅은 사치와 쾌락을 끊고 근면하고 검소한 생활에 충실하면

이를 통해 얻은 부를 죄악시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전하여

청교도적 자본주의 사상의 씨앗을 낳았다…고 19세기에

막스 베버가 정리한 바 있습니다.



즉 신의 섭리란 것이 인간의 하챦은 의지와 무관하니 사회 계급

같은 제도는 가볍게 초월할 수 있음을 보여준 점, 바로 이것이

칼뱅 사상의 핵심이에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기존 사회 계급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신학적 가능성을 열어준 점이야말로 다른 어떤 개혁 종파보다

칼뱅교가 이후 대세로 자리잡은 본질적 원인이겠지요.



당시 로마 가톨릭이 평범한 생활인들에게 끼친 가장 큰 병폐가

무엇이었을까요? 사상의 문을 걸어잠가 암흑기가 지속된 것?

면죄부를 판매해 부정한 재산을 축적한 것?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권과 정면으로 대립한 것?



평민의 일상적 삶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고 각성할 만큼

종교 체제와 정치 구도 양쪽 지배자의 결탁 극심한 나머지

그 폐해가 어느 순간 둑이 무너지듯이 폭발했다 보면 어떨까요.



다른 그 어떤 병폐보다도 일상의 안정이 무너진 점이 가장 큰

거에요. 흑사병이나 계속된 대규모 전쟁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죽고 병들거나 못 살게 된 일이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에겐 가장 커다란 고통이었음에 틀림없어요.



물론 역병이 교황 탓이냐 하여 직접 연관성을 따질 수는

없겠습니다만… 천재지변은 논외로 하고 사람이 벌이는

대부분 전쟁은 직간접적으로 교황권 및 가톨릭의

체제 병폐와 연관이 없다곤 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 불합리한 폭력적 역사의 중심에 십자군 전쟁이란 희대의

병크가 도사리고 있어요. 서울대 외교학과 김용구 교수님은

유럽 역사의 특성이 폭력성 및 전쟁에 있다고 하신 바 있죠.



세상의 근본을 구성하는 평범한 농노들의 삶이 인간적 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만큼 위협받는 상황이 되니, 그들도 본능적으로

모순의 구심점이 구교 가톨릭 체제의 비효율과 무능에 있음

직감하게 되는 날이 온 거에요.



중세 말엽의 사람들 의식이 어느 순간 그런 변화에 직면한 거죠.

인문 부흥이니 종교 전쟁이니 하는 피상적 현상은 그렇게 안으로

끙끙 앓고 있던 유럽인의 무의식이 폭발해버린 역사적 외관에

불과한 겁니다.



농노들의 자의식 각성이 유전자나 면역 체계라면, 종교 전쟁은

피나고 고름 터지는 자각 증상인 셈… 칼뱅과 같은 개혁가들은

증상을 유도하는 외부 기제, 바이러스 같은 것…?

굳이 비유하자면 뭐 이런 식?



이미 드러난 체제의 모순점을 교리로 확진하여 확인 사살시켜

주는 진단의 같은 역할… 중세사에서 장 칼뱅 역할론

그렇게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칼뱅이 설교한 교리가 정치 체제의 본질을 꿰뚫고 시대를

관통하여 현대에까지 명맥이 이어진다는 점이 중요하고요.

그가 이렇게 중차대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든 제도적

기제는 교회법교회법정이었습니다.



*교회법은 그렇다 치고 교회법정이란 번역어를 용감하게

선택한 데에 비판이 있을 줄 압니다. 컨시스토리가 용어

통일이 안 되어 있음도 알고 있고요. 신학 논쟁이 목적이

아니라 비신도들에게 쉽고 빠른 이해를 돕는 것이 포스팅의

목적이니 그런 취지에서 널리 양해해 주시면 좋겠네요.



개혁 교회의 가치관이 어떻게 가톨릭 체제를 대체하여 새로운

사회를 구현할 수 있는지 입증하는 공동체 신앙 시스템이

교회법입니다. 교회법정은 교회법을 민간에 해석 적용할

자치 기구를 뜻하고요.



칼뱅이 두번째로 제네바로 청빙되어 남은 평생을 머물게

된 때로 거슬러 올라가요. 시의회의 약속대로 1541년 11월

칼뱅식 교회법이 가결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칼뱅식

엄격주의 통치의 공식적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에요.



예장 교회를 다니시는 분은 알겠지만 장로교의 직제는

목사, pastor — 교사, doctor — 장로, elder —

집사, deacon ..의 분업적 체계로 구성되요.



각각의 직분과 역할도 다르죠. 목사는 성직, 교사는 교육,

장로는 운영, 집사는 복지를 각각 맡는 식으로 효율성을

기하여 공동체에 봉사하는 구조에요.



바로 이 구조가 칼뱅의 1541년 교회법에서 비롯된 거에요.

로마 가톨릭에 대항하여 장기간 자생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근간 시스템을 창안한 셈이죠.










교회법정, consistory.. 라고 부르던 심판 기구도 창설해요.

아직까지 교회법이 공동체 생활의 가치관을 대표하던 중세

시절이므로 민간의 관습을 해석할 기관이 필요했어요.

(로마 가톨릭도 똑같은 역할을 했는데 그 경향이

너무 보수 반동화하여 민심을 잃은 거죠.)



사실 우리가 현재 이미지로 떠올리는 독단적 통치자 칼뱅의

행적은 이 교회법정을 통해 이루어진 판결의 결과였어요.

특히 그가 춤이나 카드 놀이 같은 유흥 및 쾌락 행위까지

금지하는 급진적 교리를 내세웠기 때문에 제네바 유력

가문 중 일부는 꽤 오랫동안 저항하며 그와 맞선 거죠.



칼뱅 본인이 한동안 외국인 목사 신분이어서 제네바 시민권이

없었거든요. 교회법정 위원으로서 신학적 견해를 밝히는 식으로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거에요. 시민권은 죽기 몇 해 전

가서야 획득할 수 있게 되요.



단 오해하면 안 되는데 기존 정무 당국인 시의회가 담당하는

사법 집행의 기능은 엄연히 양립하는 구조였어요. 예를 들어

교회법정이 내릴 수 있는 최고 형벌은 파문이었고 이에 따라

사형 등 형벌이 필요할 경우 집행을 의회가 맡는 구조인 거죠.



정교 일치의 신정 정치 체제를 구축했다는 것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인 거에요. 비록 당대에도 매우 엄격하게 기준을 세워 일부

시민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개혁 초기에 칼뱅주의 노선이

빠른 시일 내 자리잡은 원동력 또한 이런 시스템에 있었죠.



이런 교회법정이 자리잡기까지 칼뱅의 삶은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어요. 엄격주의의 반대파들이 칼뱅 신학을 계속해서

공격했고 (다른 개종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자칫

개혁가들은 언제라도 목숨이 달아날 수 있었어요.










미카엘 세르베투스 논란은 바로 그렇게 칼뱅의 입지가 위태로운

때 벌어진 일이에요. 삼위일체를 부정한 극단론자 세르베투스를

끌어들여 교회법정 자체가 진흙탕 싸움이 될 뻔 했죠.



세르베투스는 스페인의 의학자로서 업적도 남겼지만

신학자로서는 싸움닭처럼 논란을 몰고 다니는 요주의

인물이었어요. 삼위일체를 부정하여 유럽 전역을 들쑤셔

놓다가 제네바에 와서 결국 교회법정에 섰던 거죠.



칼뱅은 교회법정에서 세르베투스와 한바탕 설전을 벌였어요.

삼위일체 부정은 구교와 신교를 막론하고 기독교 사회에서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선을 넘은 일이긴 하쟎아요.



답정너의 심판처럼 보이긴 하나 과연 형벌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같은 애매한 문제도 있어 쉽지 않은 사건이었어요.

판결을 주도해야 할 칼뱅의 입지가 그리 탄탄하지도 않았고..



시의회는 인근 스위스 자치주들에도 법리 해석에 대한

의견을 회람했고 그들 역시 ‘우리 심판이라도 마찬가지일 것’

이라 견해를 모으니 화형 판결을 내릴 수 있었다 해요.



요점은 이러한데 세르베투스 건은 현재의 신학자와 역사가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떡밥인 것 또한 사실이에요.



논란의 본질인즉슨, ‘칼뱅이 시민권자 신분도 아닌데 뭐 얼마나

독단적이었겠냐’는 옹호론과 ‘칼뱅이 얼마나 독재자였는지 이

판결 하나 보면 알 수 있지 않냐’는 비판론으로 대립하는 거죠.



어떻게 보이시나요? 본 포스팅은 주인공이 칼뱅이니까

어느 정도는 비호하고 편애하는 쪽으로 서술했어요.



이에 반대하신다면 다른 저작들을 참조하기 바래요.

(그리고 거듭 밝히지만 기독교 신자 아니에요.)










세르베투스 논란을 슬기롭게 해결하고 그의 정적인 유력

가문이 가톨릭과 내통한 혐의로 된통 걸리는 일이 생기니

그때부터 칼뱅의 정치 세계는 평화로워져요. 1555년이죠.



때마침 몇 달 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로 루터교가 공인된

해이기도 해요. 이때 칼뱅교는 공인을 못 받았고.

(칼뱅교 공인은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1648년)



칼뱅주의 신학이 자리잡기까지 과정은 이렇게 험난했어요.

그리고 이후엔 다른 어떤 개신교 종파에 비교해도 훨씬 더

급속도로 유럽 전체에 교세를 뻗어 나갔고요.



영국으로 건너간 칼뱅교는 스코틀랜드를 중심으로

정착해요. 영국 칼뱅교도를 청교도로 부르는 건 아시죠.

이후 세계사의 중심 세력으로 쑥쑥 성장하죠.



사실 오늘날 최강대국을 건국한 사람들이 칼뱅교의 분파인

청교도들이고 미국의 현대 정치에서도 곳곳에서 청교도식

엄격주의 윤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기에 장 칼뱅의

영향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볼 수 있어요.



특히 우리는 개신교도 중 가장 많은 숫자가 장로교 계열인

전 세계 유일한 나라에요. 예장 계열이란 종파이죠.

가끔 사회적 문제도 일으키긴 하는데 모든

신자가 다 그렇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아래 남자분은 다소 장황하게 변을 늘어놓는 듯도 보이지만

칼뱅주의 신학의 핵심을 경쾌하게 설명하는지라 링크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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