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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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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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3.02
    2차 북미 정상 회담, 원인과 전망
  2. 2018.09.30
    NEP: 소련 수립 초기 레닌의 신경제 정책이란




Hanoi Summit 2019 :

Why Did It Hold? Is the Game Over?




사실 다들 너무 들떠 있지 않나 싶기도 했어요.

보통 언론들이 이렇게 분위기 띄울 리가 없는데..

심지어 외신에서까지 방방 떠서 마음들이 다 콩밭에

벌써 가 있는 듯 했으며 Vox 보도가 정점을 찍었죠.


https://www.vox.com/world/2019/2/26/18239694/trump-north-korea-kim-jong-un-vietnam-summit




냉정하게 다시 상황을 복기해보면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입장에서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음을 깨달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그렇쟎아요. 민족적 감응도가 없는 양반이 반드시 19년 삼일절 전날

극적인 딜을 성사시켜줘야 할 이유가 없죠. 너무 감상적 접근입니다.



19년 상반기란 시간은 도널드 트럼프에게 좋은 타이밍이 아닙니다.

그에게 의미가 있는 최상의 타이밍은 20년 11월 재선이잖아요.

모두가 그것을 모르고 있지는 않쟎아요. 잠시 잊었을 뿐.



더군다나 다소간의 임팩트 있는 변수로서 코언 사태가 터졌어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지구 반대편에서 한창 뭐 하고 있던 중에.


https://www.theguardian.com/us-news/video/2019/feb/27/key-moments-from-michael-cohens-explosive-testimony-video




2월 27일 최대의 뉴스가 하노이였다고요? 한반도에 사는 사람

입장에서나 그러할 뿐, 적어도 미국민 입장에서는 결코 그러하지

못했답니다. 현직 대통령을 저격하는 엄청난 의회 청문회가 벌어지고

있었거든요. 탄핵까지 염두에 둘 만한 핵폭탄급 이벤트였던 거지요.

진짜 핵폭발은 정작 미국에 있었구먼..



그나마 급하지 않은 19년 상반기의 시간대를 의미있게 관리해온

공은 물론 문재인 정부에게 있을 겁니다. 북한 입장에서도 상당히

급한 것은 사실이에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1회차가 이미 18년에

종료했는데 아직 경제 제재조차도 풀지 못한 상황이니까요.



2월 27~28일로 날짜가 급확정되어 물밀듯이 스케줄이 잡혀 나가니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어요. 남북한 입장에서나 급할 뿐 이런 타이밍에서

살짝 비켜나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왜 이런 속도에 호응해줄까 살짝

의심이 들긴 했죠. 결국 작은 의심의 단초가 어제의 결과로 나온 것이

아닌가 하긴 하여 씁쓸하긴 하고요.



어제 오후 회담장 멤버로 존 볼턴이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아 뭔가

있겠다 싶은 불안한 마음이 있기도 했어요. 대북 대화 국면에서 볼턴이

그동안 옆으로 제쳐져 있는 포지션을 차지해온 것은 그의 강경 노선이

필요한 때가 아니라는 트럼프 본인의 전략이 항상 작용하고 있는 건데요.



그런 상황에서 왜 뜬금없이 볼턴이 재등장..? 그것도 실무자 협상이나

언플 인터뷰도 아니고 가장 중요한 정상 회담장에…? 아, 이번엔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실려 있구나 하는 의심이 들었죠. 트럼프의

전략에 의해 볼턴이 복귀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일 겁니다.



트럼프의 전략이란…? 이미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그대로에요. Vox

보도한 합의문 초안을 준비했으나 이번에는 서명하지 않았다..는 거죠.

(알고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의외로 솔직하고 거짓말 안 하는 성격이

강해요.) 그렇다면 왜? 왜 중단했는가가 중요하겠죠. — 합의 결렬이니

파토났다느니 극단적 표현은 좀 삼가면 안 될까요. 제안합니다.



북미 외교 전선에 급속한 냉각 기류가 생성한 것일까요? 그런 악재를

학수고대하는 정치 세력이 한반도 주변 도처에 암약하고 있겠죠. 허나

하노이에서 작별하며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 마지막 악수를 찍은 사진에서

엿본 밝은 표정을 보면 그런 시각에 결코 동의해줄 수 없어요.










27일 터진 코언 사태의 국내 정치 공학이 결정적 원인이라는 데에 많은

전문가의 의견이 모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천조국의 대통령도 결코 신이

아니에요. 국내 지지도와 여론 동향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트럼프가 오바마보다 천사라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대신 싸워주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는 힐러리나 오바마보다 외교 능력이 탁월한

지도자란 미국 내 평가에 굶주린 정치인이며 북핵 문제를 그 지렛대로

삼아 노벨상재선이란 목표를 향해 무섭도록 냉정하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에요.



국내외 기레기들이 프레임 짜놓았듯이, (비건과 김혁철 둘이서 기초한)

‘스몰딜’ 합의문을 그대로 갖고 미국으로 돌아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코언 사태를 파묻어 버리고 국면을 전환하여 지지율 상승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요? 스몰딜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조차 벌써 ‘스몰’

운운하며 온갖 디스가 터져 나오는 이런 판국에서 그게 가능했겠냐고요.



트럼프가 무서운 승부사라는 점이 여기서 입증이 되는 것 같습니다.

소소한 전공으로 난국을 뚫고 나가지 못할 바에야 아예 판을 깨버리고

강경한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코언이니 뭐니 하는 지저분한

국내 정치 판도를 확 뒤집어 버리겠다는 계산을 한 거에요.



정말로 그 계산대로 되었냐고요? 예, 지금 미국의 헤드라인은 코언

청문회에서 하노이 스탑으로 다시 180도 바뀌었답니다. 정말…

미국 대통령을 아무나 하는 건 아닌 것 같긴 해요.


https://edition.cnn.com/2019/02/28/politics/trump-kim-hanoi-summit-takeaways/index.html




그렇다면 이제 비핵화 대화는 물 건너 갔나요? 김정은 위원장의

작별 표정, 기자회견서 ‘수 주 후 다시’를 언급한 폼페이오 장관,

제재를 더 강화하지도 낮추지도 않고 현상을 유지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등등을 종합하면 여전히 협상의 현상 유지는 잠깐

중단했을 뿐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죠.



아직 미국 발언만 나왔고 북한 공식 의견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속단하긴 이릅니다만, 북한 입장에서 19년 상반기를 실기할 수 없다는

심리가 있겠고 한반도 신경제 구상의 조기 정착을 임기 내에 진행하고픈

우리 입장이 서로 맞물려 한두 달 이내로 다시 재개의 움직임이 있을

걸로 예상합니다. ‘수 주 후’ 멘트에 마음이 쓰이네요. 인지상정.



고로 한반도 운전자론의 위상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러니 상황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끈기있게 지켜보면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인내와 용기를 갖고 100주년의 의미를 조용하게 되새기며 말이죠.






포스팅하고 한숨 돌리는 사이에 간밤에 북한의 첫 기자회견이...ㅎ

이에 대한 반박 인터뷰도 미국에서 나왔죠. 뭔가 진실 공방 비슷하게

흐르는 모양새인데 어느 쪽이 옳은가는 부질없는 논쟁입니다.

거기에 힘빼지 마세요.



북한 발언은 대외 선전용, 미국의 반박은 철저하게 국내 정치용이니

애시당초 목적이 다른 두 가지 말잔치에 불과해요. 내용을 봐야죠.

11개 중 5개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을 보면 — 북한의 전통적인

대외 선전 전략하고는 크게 다른데 — 꽤 솔직하고 정확하게 들립니다.



lifting the sanctions라고 어디서부터 미국이 해석하기 시작했는지

진실 규명이 필요할 것 같기는 한데, 아마도 4대 3으로 불균형스러운

회담장에서 볼턴이 끼는 순간부터 해석과 주장에 대한 균열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정도야 누구나 다 쉽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봐야 할 큰 그림은, 오리발 내밀며 북한의 전통적 벼랑끝 전술

차용하는 미국의 새로운 외교 책략과, 의외로 전통적 자세를 버리고 꽤

솔직하게 다급하고 초조한 심경을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는 북한의

태도. 양자의 배경에 무엇이 있을까, 그림 그려봐야겠죠.



트럼프의 당면한 과제의 수순은 1) 코언 사태를 진정시키고, 2) 자신의

유일한 치적이자 이전 민주당계 정부와의 뚜렷한 차별점인 북핵 문제

해결을 통해, 3) (노벨상은 받으면 좋고 아니면 그만) 재선이라는 목표를

향해 걸어갈 타임라인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일 거에요. 지금이 1번 단계

초입이니 결국 중요한 발언은 국내 국면 전환용일 거라 추측할 수 있죠.



북한의 목표는 뚜렷합니다. 1) 비핵화에 회의적인 군부 강경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2) 18년 1회차가 끝난 국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시동을

뒤늦게라도 걸어야 하며, 3) 정상적인 외자 유치를 위한 최대의 걸림돌로

UN 제재를 일부 완화 또는 전부 해제하여 각 경제 특구의 총생산 증대란

성과를 거양하는 것이죠.



갈 길은 뻔히 정해져 있고 양자 모두 프로들이니 각자가 해야 할 역할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양쪽과 한국, 중국까지 — 때로는 일본

러시아까지도 — 너댓 개의 톱니바퀴를 이를 맞추는 운영의 묘이겠죠.



추측성 보도가 몇몇 나왔지만 이번에 깽판 친 장본인 트럼프 대통령께서

먼저 해법의 실마리를 제시할 것 같습니다. 시기는 ‘수 주 후’ 멘트를 계속

신뢰하여 한두 달 내로 예상하고 방법은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을

활용하는 식일 겁니다.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은 이전에도 충분히 작용했습니다만, 이번엔 다소

차이가 있을 겁니다. 전에는 한국 정부의 필요에 의해 트럼프를 살살 달랜

양태였죠. 이젠 파탄을 낸 트럼프 본인이 중재역을 필요로 하는 단계로

들어갔어요. 어쩌면 곧 있을 한미 정상 회담의 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방미할 수도 있어요. 깽판의 대가겠죠.



어찌 되었든 국면이 종료한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고 정상 회담은

결렬이 아니라 잠정 중단입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멘트를 종합해볼 때

대화 재개 시기는 곧 다가옵니다. 현재로서 분석 결론은 그러하네요.



일본과 민주당 등 친일 미국 정치인들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참고할 만한 의견인 듯합니다. 하지만 결국 일본

사주를 받은 인물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주도권은 결국 트럼프 본인이

쥐고 있고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재선으로

가는 국내 정치 상황의 전개 양상입니다.



걱정이 많이 되는 분들은, 고로 앞으로 한두 달 동안의 미국 국내 정치

뉴스에 끊임없이 주목하시길 바랍니다. 정말 중요한 뉴스인데 국내

기레기들이 절대 다루지 않는 내용이 있다면 포스팅을 추가로 올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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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P, the New Economic Policy

During Early Years of Lenin-Soviet Regime





소련 얘기에요. 없어진 국체의 나라이죠.

물론 정통성은 러시아 연방국이 잇습니다.

차르 푸틴두마의 나라…


1917년에 10월 혁명으로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집니다.

무능과 비효율과 선민 의식에 쩔던 러시아 제국이 사라지죠.


블라디미르 레닌(과 레프 트로츠키이오시프 스탈린)은

혁명 직후 국가의 기반 시설을 점령했지만 이에 반발한

왕조 추종 세력과 귀족 집단이 전쟁으로 대항합니다.


1921년까지 러시아 땅을 휩쓴 적백 내전의 광풍이 바야흐로

불어제끼기 시작한 거죠. (요즘은 러시아 내전으로 부른다죠.)


볼셰비키 적군에게 초기 전세는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나

지휘 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던 귀족 반동파 백군을

몰아붙여 전세를 뒤집어갑니다.


이기는 전쟁의 기본은 뭘까요. 딱 두 가지.

잘 훈련된 전투력, 그리고 군수 물자의 보급입니다.


레닌의 고민이 군량 조달에 있었기에 내전 초창기부터

할당량 징발을 근간으로 하는 정책으로 농민을 밀어붙여요.


그러나 계속된 전쟁과 징발식 경제 운용으로

나라의 총생산이 눈에 띄게 떨어집니다.

태세를 전환할 때가 되었구나, 결심하죠.


1921년쯤 되면 전황이 정리되는 단계였죠.

레닌이 오늘날 NEP라고 널리 불리는 유명한

신경제 정책 카드를 가지고 나옵니다.




사회주의 국가 경영의 기본 강령은 완전 국유화입니다.

사유 재산시장 기능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것이죠.

정부계획한 정책을 통해서만 자원을 분배합니다.


그런데 이 핵심을 건드리지 않고 경제가 도저히

살아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은 거에요.


그래서 기존 이데올로기를 수정한 뉴 버젼을 주창합니다.

국가 자본주의’라는 신제품이었죠. 사회주의 정부가 잘

통제할 수만 있다면 시장 일부를 도입해도 된다는 거에요.


극좌적 사상에 경도된 사회주의자들의 반발도 컸습니다.

그들 중 우두머리가 트로츠키였죠. 트로츠키와의 균열은

이 지점부터 조짐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거에요.


내부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레닌은 마르크스 자본론

기본 논리로 돌아간다는 방어 논리를 구축하는 방법으로

국가 자본주의의 정통성을 옹호하고 나섰어요.


무슨 말이냐면 원래 자본론이란 것이 자본주의를 무정부

상태처럼 부인하는 것은 아니에요. 자본주의가 극에 달하다가

어느 순간에 무너져 공산주의 세상이 된다는 판타지이죠.


그러니까 체제 과도기에는 어느 정도 자본주의 성향을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시장 기능을 일부 용인하고 있지만

나중에 결국 완전한 사회주의로 갈 거니까 걱정 없단 말에요..


어째 논리에 오류가 가득한 게 현대인들의 눈에 어쩔 수 없이

보이지만 논리의 과학성보다 권력 관계의 현실이 실제 정치에선

더 중요하쟎아요. 레닌이 권력자였으니 누가 뭐라 했겠어요.




그래서 21년부터 28년까지 신경제 정책으로 NEP의 시대가

도래한 겁니다. 당시 소련 경제의 주축 세력은 농민이에요.


할당량에 따라 무조건 징발 당하던 농민들이 이제 일정하게

고시한 비율에 따라 현물세금납부하는 때가 된 거죠.


왜 현물 납부였냐 하면 이때 제국 멸망과 전쟁으로 엄청난

초초초 인플레를 겪고 있었거든요. 화폐 가치가 휴지 조각이니

돈으로 세금을 낼 수 없었죠. (24년부턴 현금 납부 시작합니다.)


정책의 성과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죠.


첫째, 1차 대전과 적백 내전 등 전쟁의 상흔을 딛고

빠른 시간 안에 국가 체제를 회복할 수 있었어요.


둘째, GDP 상승에 즉효를 보여 농민의 삶이 안정되었어요.

NEP-men이라고 이때 부유해진 사회 계층을 가리키는

용어가 따로 존재할 정도이니 상상이 가죠.


셋째, 통화 가치가 안정화하여 하이퍼 인플레이션

극복하고 정상적인 금융 경제로 복귀하였어요.




28년까지 정책이 시행되다 끝났는데 실제로는 1924년쯤에

이미 정책 효과가 시들시들해지고 있었어요. 왜냐고요?


1924년은 소련 및 러시아인들에게는 중요한 해였거든요.

국부 레닌이 사망한 해랍니다. 이후 스탈린이 집권했어요.


트로츠키의 반대 입장을 전술했쟎아요. 스탈린은 오히려

우파적이어서 수정 자본주의적 정책 도입에 적극적이었어요.

결국 정책 성과에 힘입어 집권할 수 있었다고 보기도 하죠.


그리고 집권과 동시에 스탈린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스타트..! 개시하게 됩니다. 이후 역사에서 등장한 수많은

나라들이 이 패턴을 모방하게 된 거죠. 한국도 역시.


사실 현대 한국사에 큰 영향을 준 소련의 집권기는 스탈린

체제였죠. 레닌보다 집권기가 더 길었으니까. 오래 사셨음.


스탈린 체제 이전 소련은 참 답이 안 나오는 저개발 국가에다

안팎으로 외세의 개입으로 누란지위의 형국이었어요.

20세기 초 대한 제국이나 비슷했을 걸요.


하지만 인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먼저 해결한 정책 수정

효과에 힘입어 국가 초창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고

그 중심에는 바로 NEP이라는 역사가 있었답니다.


소련의 뉴딜 정책이라고 볼 수 있겠죠.

레닌 죽고 스탈린이 집산화로 말아먹기 전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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