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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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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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7.01
    국가 채무 비율 뒤에 도사린 기득권의 경제 논리
  2. 2018.10.15
    유럽 국제관계 및 근현대 외교사의 주요 사건들




Debt-to-GDP Ratio : Myths and Misconception

Plus How to Deceive Those Governed in Korea






재벌언론모피아가 빚은 사기 합작품 중에

대표적인 것은 국가 채무 비율에 대한 거에요.

기성 경제학자들은 방조범 정도에 해당하겠죠.

도대체 이게 뭔지 알아볼까요.



원래 정부 채무, government debt라는 개념이 있긴

있어요. 간단해요. 거시 경제에서 가계, 기업, 정부 중

정부 파트의 1년 재정 농사 중 전체 수입에서 지출, 즉

세입에서 세출을 뺀 차액을 가리키는 거죠. 더 정확하게

하려면 통합 재정 수지라고 불러야 마땅하겠지만요.



회계학에서 보통 부채, liability라 할 때는 특정 시점의

측정량인 저량, stock 개념인데 반해... 이 정부 채무란 건

정부 회계상 1년 손익 계산서에 표시된 차액이니까 일반

기업 회계의 당기 순이익(순손실)에 더 가까운 유량, flow

개념이에요. 저량이 아니라 유량이다, 이게 포인트...



요즘 미디어에서 패널로 나오는 전문가들조차 정부 채무와

국가 채무, 둘 사이를 모호하게 하거나 스스로 혼동하여

설명하는 사람도 꽤 있는지라 이 둘을 비교하는 지점부터

시작하는 것이고요. ㅡ 단, 둘을 분별해야 할 실익이 과연

있긴 한 걸까 하는 비판도 있긴 해요. 그만큼 관념적인

어프로치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봐요.



(How do you conventionally define the Debt-to-GDP Ratio?)

https://www.investopedia.com/terms/d/debtgdpratio.asp




국가 채무라는 개념은 위와는 약간 달라요. ㅡ 사실 문두에서

사기라고 공격한 이유인즉슨... 입증 가능한 학술적 탄생 배경

혹은 어떠한 시장 관습에서 기인했다는.. 근본 연원이 불분명한

관념적 기준에 (아직은 더) 가까운데도, 마치 전가의 보도인양

분석의 잣대로 마구 휘두르는 사람들이 늘 있기 때문이에요.

그것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이 한국 땅에서만.



의외로 짧은 역사적 연원도 있긴 있어요. 2010년에 하버드대

경제학자 듀오인 카멘 라인하트케네스 로고프가 '부채 경기

국면상의 성장 이론(Growth in a Time of Debt)'을 발표해

제법 유명해졌어요. 근데 연구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음이

뒤늦게 밝혀지는 일대 쪽팔린 해프닝이...ㅠ**



**국가 채무가 일정 비율을 넘어서면 거시 경제 성장률이

지체하는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저 두 분의 연구 결과...

= 국가 채무가 늘어나면 성장률이 마이너스 된다는 뜻.

불과 몇 해 지나지 않아 어느 '대학원생(!)'이 오류를 간파해

연구가 잘못되었음을 잡아낸 흑역사가 있다능..ㅠ



(Regarding the work, 'Growth in a Time of Debt')

https://en.wikipedia.org/wiki/Growth_in_a_Time_of_Debt




국가 전체의 총생산량, 즉 GDP 총량에 대비하여 경제

주체로서 정부가 1년간 부담한 채무의 비율... 이렇게

정의할 수 있긴 한데요. 문제는 이게 대체 뭐냐는 거겠죠?



— 보통 경제학자들이나 현장의 경제 분석가들이 국가 채무

비율을 논할 때 핵심인즉슨, 총생산 GDP가 이만큼 벌어들이고

있는데 당해 시점에서 정부가 재정으로 감당할 수 있는 부채를

어느 정도 한도로 봐야 할까 하는 관점을 다각도에서 관찰할 때

쓰여요. 70년대 미국의 채무 비율이 70%선이었는데 약 50년

지난 지금은 100%를 넘어서니 미국이 버는 돈보다 갚아야

하는 돈의 비중이 그만큼 높아졌다.. 하는 식으로 장기 시계열

분석에 용이하게 쓰곤 하는 지표인 거죠. (아래 동영상 참조)





(Dan Langworthy, financial consultant MN)






정부가 채무를 질 때 경우의 수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국내 경제 요인과 해외 경제 요인. 해외 요인이라 함은

IMF 외환 위기 생각하시면 딱 들어맞아요. 이러저러한

원인으로 정부 재정이나 국가 경제에 위기 상황이 왔을

때 해외에서 차관을 융통하여 채무를 지는 것. ㅡ 이런

국가적 채무 상환이 불가능함을 선언하는 경우를 가리켜

모라토리엄 내지 디폴트라고 부르는 것, 아시죠?



영국이 1976년에, 한국이 1997년에 맞았던 바로 그

IMF 구제 금융 크리..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정부 재정의

마이너스 비율이 급증해요. 한국은 이전까지 13퍼센트

유지하던 채무 비율이 40퍼센트 대까지 급상승하였고

21세기 들어서는 줄곧 40을 약간 밑도는 채무 비율을

유지해왔어요. 아찔한 트라우마의 기억이죠...





(How much government debt does each state hold?)




https://www.visualcapitalist.com/much-government-debt-rests-upon-shoulders/






국내 경제 요인으로 채무 비율이 변화하는 경우는 주로

국공채, 즉 정부 발행 채권을 통해서입니다. 정부가 장기

금리로 민간 부문에 채권을 팔아 자금을 조달하는 겁니다.

전쟁 등 대규모 국가 단위 사업을 벌일 때 대량으로

국공채를 민간에 유통시키는 거에요.



미국이 2차 대전 참전을 위해 대규모의 전쟁 채권

발행한 일이 가장 유명할 거에요. 캡틴 아메리카 같은

영화에서 제법 비중있게 묘사했었쟎아요? 당시에

케인스는 증세와 강제 저축을 처방으로 내놓았는데

루스벨트 대통령이 모겐소가 내놓은 전쟁 채권 안의

손을 들어줬다 하죠. 경제 정책 대결로 경제학자와

맞짱 떠 승리한 정치학자인 셈.. 역사가 재밌죠?



하지만 전쟁처럼 큰 일 있을 때만 국공채를 발행하는 건

결코 아니라는 것 다들 잘 알 거에요. 평소에도 국공채는

늘 발행하고 있고 통화량 조절, 인플레이션 대처, 환율

안정 등의 목적을 위해 다양하게 융통하며 매일 뉴스를

통해 국공채 금리를 공표하고 있어요. 해외 투자자와

국민 연금이 싹쓸이하기 때문에 일반 시민이 구경하기

어려울 따름이지만서두...





(Captain America and War Bonds WWII)






Ok, 좋아요. GDP 대비 채무 비율이 그런 거고 해외에서

차관 받든가 국공채 발행하든가 하는 방법으로 부채성

자금을 조달한다는 것... 대충 그런 게 있다고 치자고요.

그 비율이란 것이 얼마가 되어야 정상인 건데요? 아니 더

정확하게, 얼마면 정상이라는 기준이 있기는 한 건가요?

그거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존재하는 겁니까?



주류 경제학이 신봉하는 개념과 관습 중에는 학자들 간의

peer review를 통해 확실하게 객관성을 획득한 것으로

입증된 것도 있고 보통 그런 것들이 모여 우리가 흔히

경제학 교과서라고 일컫는 책에 담기는 법이랍니다.

(케네스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 같은 것들이죠. 이런

업적을 세운 학자가 보통 노벨상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입증이 채 이루어지지 못하고 관습적 혹은

관성적으로 쓰이는 것도 많다는 것이 실상이에요. 문제는

그런 것들까지 입증된 개념들과 모호하게 섞여 버리고

혼란스런 경제학 덩어리를 형성한 나머지, 일종의

공고한 종교화의 성을 쌓는 점이란 말이죠.



한국 땅에선 국가 채무 비율 40%의 신화가 IMF 무렵부터

형성되었습니다. 전술했지만 IMF가 오기 전 한국의 비율은

13% 수준에 불과했어요. 외환 보유고가 바닥나고 금융권이

기업을 대상으로 열어준 방만한 대출 관행으로 펀더멘탈에

타격을 받아 발생한, 바로 그 IMF 위기의 원인 진단에 대해,

난데없이 정부 재정이 부채 관리를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끌어다 붙인 격이에요. 쉽게 납득이 되나요?



(40%의 기준은 도대체 뭐냐?)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19051918411




왜 하필 IMF 이야기를? 그야 전 국민의 트라우마를 자극해

공포심 마케팅을 조장하려는 것, 그 이외에 무슨 이유가

있겠어요. 신자유주의 낙수 효과의 허상을 극복하기 위해

반대 방향으로 거시 경제의 틀을 수술해보려는 진보적인

경제 노선을 흠집내는 데에 이만한 도구가 또 어디 있겠어요.



이렇게 객관성 입증이 채 끝나지 않은 이론이나 관념을 놓고

검증을 할 때 주류 거시 경제학에서는 보통 데이터를 끌고

와서 비교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좀 사는 나라들의 집합이라

통칭할 만한 OECD가 발표하는 연간 통계량들이 대표적인

도구인 거죠.



링크를 클릭해 들어가서 직접 확인할 수 있죠? 우리가 흔히

아는 잘 사는 나라들의 비율이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40%는

커녕 60~70%를 훌쩍 넘기고 100%를 넘기는 나라들이

많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죠?



(국가 채무 비율 - 경제 협력 개발 기구 2015년 공식 지표)

https://data.oecd.org/gga/general-government-debt.htm




제법 산다는 나라들의 국가 채무 비율이란 것이 이 정도라고?

그런데 한국이 고작 40%인데 대해 저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현상이 객관적으로 이해가 되나요?



물론 딴지를 걸라면 걸 수는 있어요. 정부 부채만 따지면 40%고

공기업들 부채까지 다 따지면 60% 넘는다고, 그래서 대한민국

부채 상황 장난 아니라고... 경제 담당 기레기들이 숫자 장난해서

현혹시키는 흔한 수사법이에요. 그놈의 수사는 좀 바꾸든가,

세월이 지나도 레퍼토리가 변하질 않는다능.



보통 주류 경제학자나 기재부 모피아란 사람들, 즉 소위 경제학

깔짝거려 먹고 산다고 하는 이들이 국민들 머리를 복잡하게

(또는 헷갈리게) 만드는 주범들이에요. 경제 기자들이 이를

그대로 따와서 기레기 기사를 레퍼토리만 살짝살짝 바꿔서

수시로 내놓는 셈..



정부 부채와 공기업 부채 60% 어쩌구 스토리가 말이 안 되는

이유가... 한국의 행정 체제는 중앙 정부와 지자체와 공기업이

구분되는 거쟎아요. 근데 다른 나라도 이렇게 되어 있냐고요.

전 세계, 아니 OECD만 따져봐도 왠만한 나라들의 행정 체제가

한국식은 절대 아니걸랑요. 회계 구분이 딱딱 엄격하게 되요?



한국에서 공기업인 영역이 어느 나라에선 중앙 부처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그 반대인 경우도 셀 수 없이 많은데.. 그 많은

영역 그 많은 국영 기업의 회계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나라도

많거늘... 좀만 깊게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지 않나요? 뭔

공기업 부채 타령이람, 십수 년째...





(국가 채무 비율 - 정부 공표 공식 통계 지표)

http://www.index.go.kr/potal/stts/idxMain/selectPoSttsIdxMainPrint.do?idx_cd=4010&board_cd=INDX_001








단, 60% 가이드라인이란 것이 공식화한 적이 역사에 없던

일은 아니긴 해요. 90년대 마스트리히트 조약으로 유로존

공식 출범할 때 유로화 통합을 희망하는 유럽 국가들 중 어떤

자격을 충족해야 가입이 가능한가 다섯 가지 기준을 제시한

적이 있어요.



이때 국가 채무 비율을 60% 넘지 않도록 관리 잘 하라는

권고 사항이 있긴 하지만... 현재 웬만한 유로존 국가들이

60%는 가뿐히 넘긴다는 것이 함정.. 문제는, 기재부 모피아들이

40%니 60%니 핑계 댈 때 애꿎은 유럽 연합을 들먹이며

황금률인양 포장한다는 데에 있겠죠. 대통령이 최근 관료들

상대로 일갈한 데엔 이런 배경이 있다는 것..



(Maastricht Treaty, 1992 EU)

https://europa.eu/european-union/sites/europaeu/files/docs/body/treaty_on_european_union_en.pdf

EU-MaastrichtTreaty_1992en.pdf



(Amsterdam Treaty, 1997 EU)

http://www.europarl.europa.eu/topics/treaty/pdf/amst-en.pdf

EU-AmsterdamTreaty_1997en.pdf




한 나라의 살림... 정부의 재정이란 것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요.

어떤 전략이나 방향성을 갖고 운영하는 재정을 잘한 재정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우리는 이 점에 대해 굳건한 기준이나 잣대를

가지고 국가 운영에 참정하고 있는 건가요, 도대체?



주류 경제학이 경제계를 논할 때 경제 주체로 가계와 기업과

정부를 따지잖아요. 좋아요, 가계나 기업과 비교해보면 퍽

명확해지는데.. 가계 살림의 최고의 목표는 뭐죠? 쓰는 돈보다

버는 돈을 늘려 적당한 여유 자금을 갖고 사는 거겠죠? 기업

회계의 궁극적 목표는요? 수입보다 지출을 줄여 뭔가 남기는

거죠? 그 남기는 몫을 보통 이윤이라고 불러요. 결국 가계나

기업은 일정한 몫을 남기는 것이 미덕인 주체들이죠.



하지만 정부의 미덕이 남기는 건가요? 거둔 세금을 다 쓰지

않고 차년도로 이월하거나 국고에 차곡차곡 쟁여 두면 나라

살림 참 잘했네 하고 칭찬할 수 있는 거에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거죠. 정부 재정의 궁극적 목표는

플러스냐 마이너스냐의 단순한 차원이 아니에요. 해외에서

차관을 대규모로 빌려 30년 안에 다 갚아야 하는 것이 지상

과제인 나라라면 남기는 것이 미덕인 거고, 거시 경제에 뭔가

성장 동인을 제공하기 위해 대규모 국가 사업을 벌이거나

대다수 국민에게 소득을 재분배할 필요가 있는 나라라면

세입보다 더 쓰는 것이 미덕인 거에요. 대공황뉴딜

후자 정책의 대명사이고 케인스가 시작한 지론이죠.



다시 말해, 국가 부채의 일정한 비율을 꽁꽁 묶어두고

싸매야 한다는 생각을 지나치게 고수하는 것은 거시 경제

전체를 넓게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 장기적으로 국가와

국민에게 도움될 일도 없다는 말이에요. 미국의 주류

경제학계가 하듯이 그때그때 행정부의 노선에 따라

긴축 재정과 확대 재정을 번갈아 주장하여 밸런스를

맞춰가는 태세가 정상적일 겁니다.



IMF 이후 한국 주류 경제계의 문제는 거시를 바라보는

시각의 밸런스를 무너뜨린 채로 기울어진 운동장의

경제 버젼을 오랫동안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라는 것.

통화론자와 케인스주의 양쪽이 반반씩 나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한쪽의 주장 밖에 없어 건강한

토론을 허용하지 않는 꽉 막힌 경제학... 언제까지

참고 바라봐야 하는 거냐고요.










이런 현상을 밀어붙이는 세력이 있을 수 있고 일정한

동기와 의도를 갖고 움직인다고 본다면... 그 숨은 의도를

무력화하는 논리를 세워 대응하는 슬기가 필요할 겁니다.



이들 의도로 추정해볼 수 있는 것들인즉슨.. 첫째 정부

노선에 대해 경제 무능 프레임 씌우는 것, 둘째 국민들에게

IMF 트라우마를 자극하여 공포 마케팅 전개하는 것, 셋째

소득 주도 성장론을 좌절시켜 이전에 실패한 신자유주의

낙수 효과로 복귀하게끔 유도하는 것이겠지요.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국민들 스스로 경제

지표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판단의 잣대를 이런 세력에게 함부로 위임하지 말고

자발적인 집단 지성의 힘으로 거시 경제의 트렌드를

분별하는 실력을 키우셔야 해요.



경제 현상의 본질은 사람이 잘 살 수 있도록 균형 잡힌

살림을 꾸리는 데 있고 더 많은 사람에게 성장의 과실을

고루 분배하는 문제는 경제의 영역을 아득히 초월하여

정치적 고려나 의도, 목적, 방향성을 종합하여 따져야

하는 일입니다. 경제를 경제학에만 맡길 수 없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이겠지요. 경제는 모든 사람의 이해 득실이

걸려 있는 정치의 영역이랍니다.



사람들을 현혹시킬 만한 나쁜 경제학 도구가 또 무엇이

있을지, 계속해서 찾아 보겠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선

국가 채무 비율 한 가지에만 집중하여 성토해봤고요.

지금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다 함께 슬기를 모아볼

것을 제안해 마지않아요.



(소득 주도 성장론에 대한 단상 - 한국의 대표적 경제학 스승의 멘션)

http://jkl123.com/sub5_1.htm?table=board1&st=view&id=18353&vote=ok




(국가 채무 비율을 바라보는 주류 경제계의 평균적 시각, 현 정부 출범 직전)




(국가 채무 비율 뼈때리기 - 요즘 가장 핫한 경제학자가 등장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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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Major Incidents from European History over

International Relations Realm




국제 관계학의 역사에서 시대별 맥락을 짚을 때 반드시

검토하고 분석하는 몇 가지 역사적 사건이 있어요.


그 역사와 시기를 보면 15세기에서 20세기까지 백여 년

언저리의 간격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여 매우 흥미롭죠.


오늘은 이런 국제적 사건과 국가간 조약

역사를 요약하여 정리해 볼까요.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Fall of Constantinople 



1453년이 중세를 끝장 낸 연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해 서양 중세사 최고의 사건인즉슨.. 비잔틴 제국, 즉

(동)로마 제국이 오스만 제국의 공격으로 멸망한 일일테죠.

무려 2200년을 이어온 제국이 멸망한 사건이니까요.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 통치의 절정을 찍고 6백 년 넘게

존속한데다 폐쇄적 기독교 문화 속에 골골하던 유럽을

아득히 초월했던 14~17세기 세계의 패권국이자

동시대 유럽 군주들 공공의 적이었습니다.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의 나비 효과로 지중해 동쪽 항로가

막혀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대서양 일주 항로를 개척했으니

역사의 거대한 새옹지마이자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죠.

(동양의 신비… 후추를 어디서 수입하냐고?!)


이베리아 반도의 대항해 시대, 피렌체 등 도시 국가들의

르네상스 인문 혁명, 거기에 북독일의 종교 개혁이 바야흐로

적정 혼배합하여 유럽의 근대를 열어 젖히는 찰나였어요.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 Peace of Augsburg 



1517년에 95개조 반박문으로 촉발된 종교 개혁

일단락된 사건이자 루터교를 공인하여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신교를 인정한 계기의 바로 그 사건입니다.


16세기 중반 합스부르크 황제 카를 5세에 맞서 전쟁하던

신교 영방국들이 페르디난트 1세와의 극적인 합의를 통해

루터교 종파를 공인한 군주간 합의 사건이라 볼 수 있어요.

(페르디난트는 카를의 동생이자 독일 대리 통치자..)


페르디난트는 당시 선제후와 농민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져간 교세를 꺾기보다 상호 협력하여 자치를 인정하는

개혁 성향으로 독일권 제후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사람..


화의 내용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개별 제후의 종교 통치권을

황제나 교황과 분리하여 최초로 인정했다는 바로 그 점입니다.

해당 영지의 종교를 제후가 택한 종파로 정한다는 내용이죠.


허나 루터교는 인정 받았는데 당시 더 진보적 성향이던 칼뱅

장로교 제후국들이 제외된 문제가 여전히 잔존한 상황이었죠.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Peace of Westphalia 



상호 경쟁하던 국가의 군주들이 독일 뮌스터와

오스나브뤼크에 모여 30년 전쟁의 종식을 선언한

바로 그 조약입니다. 오늘날 국제법의 효시라 하죠.

(요샌 웨스트팔리아로 부르기 시작하기도..)


1618년에 시작한 종교 전쟁 후반부 중요한 변곡점이자

네덜란드 독립 전쟁과도 맞물린 17세기 최대의 사건이

바로 30년 전쟁입니다. 근대 최초의 국제전이라고 하죠.


루터와 칼뱅에서 시작한 투쟁이 130년 만에 여기까지 이른

겁니다만, 프로테스탄트 전쟁을 단순한 종교 문제로 보면

부족하고 교황과 황제 중심 거대한 국정 체계 패러다임이

새로운 시대로 전환하는 용트림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신교 투쟁의 결과물이 결국 개별 제후가 다스리는 봉토의

자치 주권을 인정하는 내용인 것에서 알 수 있죠. 이제 황제의

통치를 받는 제후의 시대가 아니라 독자적 군주가 된 겁니다.


주권, sovereignty의 개념이 본격화하고 이로 인해 절대

왕정 및 왕권 신수설이 대두되는 발판을 마련하지만 동시에

자유주의의 맹아가 싹트는 동인도 마련되기 시작하는 거죠.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 Peace of Utrecht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끝내고 체결한 조약입니다.

생소한 전쟁일텐데 유럽 왕가 간 세력 균형전으로 이해해요..


스페인과 오스트리아를 다스리던 ‘지는 해’ 합스부르크

프랑스를 다스리는 ‘뜨는 해’ 부르봉 왕가가 주인공인데요.

(부르봉 킹이 바로 ‘태양왕’ 루이 14세. 확장욕 쩌는 분..)


스페인 왕위 계승전에 루이 14세 손자인 앙주 공 필리프가

선순위로 떠오르는 상황을 오스트리아와 영국과 네덜란드가

막아서며 발발한 전쟁입니다. 부르봉이 스페인과 프랑스를

병합하면 견제 불가능한 거대 국가가 탄생하기 때문이죠.


의외로 (그때까지 약체로 분류되던) 영국의 견제가 제대로

먹혀 부르봉이 스페인을 계승하되 프랑스 왕위는 포기하는

조건으로 협상이 타결됩니다. — 루이 14세, 야욕 좌절…


유럽 영토에서 어느 한 나라가 잘 나가 바보짓을 벌이면

엇비슷한 국력의 나라들이 합심하여 다구리를 먹이는…

현재도 이어지는 불문률이 여기서부터 시작된 겁니다.

주권에 영토 개념을 넣는 법리도 형성되었고요.




1815년, 빈 회의 Congress of Vienna 



나폴레옹 전쟁을 끝내고 프랑스를 패자로 공인하며

이후 전 유럽에 불어닥칠 자유주의 바람에 제동을 걸고

왕정 복귀를 천명한, 보수 반동의 대명사격 사건입니다.

오스트리아 재상 메테르니히가 주재한 걸로 유명하죠.


프랑스 대혁명 후 집권한 나폴레옹은 황제로서(!) 유럽

각국에 전쟁을 벌였는데요. 역설적으로 유럽 전역에 퍼진

것은 혁명이 낳은 프랑스의 정신이었어요. 자유, 평등, 박애.


회의 대표자는 힘센 나라의 왕과 귀족이었죠.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그리고 프랑스. 자국에 혁명이 수입되면

꼼짝없이 목이 날아가는 분들.. 국경선과 전리품 배당을 놓고

혈안이 되어 똥고집을 부리며 진척이 더디던 중이었는데요.


보나파르트가 유배지를 탈출해 파리로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에

다들 화들짝 놀라 협정서에 조인을 했다고 해요. 쌩 코메디..

(메테르니히의 댄스 파티도 찾아 보세요. 배꼽을 잡을 듯..)


이른바 유럽 협조 체제, Concert of Europe이란 국가간

공조가 명문화하여 등장한 거에요. 핵심은 위 위트레흐트 때

다구리.. 와 대동소이하고 이 시스템이 40여 년을 유지했죠.


그러나 한번 불씨를 당긴 자유주의의 대세는 거스를 수 없어요.

30년 7월 혁명(‘레미제라블’ 배경), 32년 영국 선거법 대개혁,

1848 연쇄 혁명과 공산당 선언… 이미 불길은 타오른 거죠.




1919년, 베르사유 조약 Treaty of Versailles 



제1차 세계 대전을 종식하고 독일의 패배를 선언하며

막대한 배상금 조건으로 두번째 전쟁의 빌미를 제공한,

독일 제국과 연합군 승전국들 사이의 조약입니다.


빈 회의로 패전국 프랑스가 실질적으로 잃은 것이 없던 데 비해

베르사유 조약의 결과는 독일인들에게 참담한 치욕이었어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배상금으로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닥쳤고

바이마르 공화국은 몰락했으며 히틀러 집권의 계기가 되었죠.

일찍이 경제학자 케인스가 이 비극을 예견했다는 거 아시죠.

(이때 협상 대표단 중 일원이었다가 참다 못해 사퇴..)


특히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뻘짓은 어마어마했어요. 그의

하이라이트는 이렇다 할 강제력을 갖지 못한 국제 연맹 창설로

‘마치 무언가 해결된 듯한’ 국제 관계의 판타지를 조장한 점이죠.


장렬한 뻘짓의 대행진이 전간기 20년의 나날을 채워요.

바야흐로 한스 모겐소가 현실주의로 스타가 될 조건이 형성..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는 시대로 흘러가고 있었죠.


거기에 세상은 대공황의 광풍에 휩싸이고 있었고요.

이런 악조건에 어떻게 전쟁이 또 안 날 수 있겠어요.




1945년, 얄타 회담 Yalta Conference 



제2차 세계 대전을 끝내고 루스벨트와 스탈린과 처칠이

모여 깡패처럼 전후 국제 질서를 결정지은 그 회담입니다.

우리나라는 여기 놀아난 직접 피해 당사자국… 아시죠?


베르사유 조약이 종전 직후 전쟁 문제를 처리하는 성격인데

반해 얄타 회담은 종전이 임박한 시점에 전후 문제를 미리

조율하는 강대국 슈퍼 파워들의 미래 회의 같은 거였죠.


이 사건의 가장 큰 상징성은 팍스 브리태니카의 레짐이 이미

저물었다는 것, 그리고 미국의 대항마로 소련이 등장하여

냉전 시대의 시작을 알린 실질적 계기라는 점이에요.

(실제 미국은 소련의 태평양 전쟁 참전을 이끌어냄.)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한반도가 둘로 갈라져 지금까지도

폐해를 입어야 하는 원인을 만들었죠. 도대체 왜 때문에?!

패전국 일제가 아닌 우리가 분단되어야 하는 거죠?!


그렇게 냉전이 시작하여 1989년 동유럽 혁명까지 존속해요.

하지만 이 땅의 냉전 파편은 아직도 진행 중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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