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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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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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프 나이, 그리고 킨들버거 및 투키디데스의 함정
  2. 2018.05.17
    고대 그리스의 복잡한 역사 한 판에 요약



The Kindleberger Trap and Joseph Nye, PhD. :

An In-Depth View Over New Superpowers Age







킨들버거의 함정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개념이 더 먼저 널리 알려졌죠.



21세기 기준 오늘날의 국제 정치학에서 슈퍼파워, 즉

강대국 파트 각론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강의실에서도 반드시 가르치는 필수 요소에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더 먼저 널리 알려지지 않았나

본 블로거의 인지 기억으로는 그러한데, 틀릴 수도 있어요.

사실 연원을 따지면 킨들버거의 함정이 먼저 나온 거긴 하죠.




(Charles Kindleberger)




찰스 킨들버거란 사람은 20세기 전반기에 활약한 미국인

관료이자 경제사학자에요. 30~40년대에 걸쳐 재무성, 연방

준비 위원회, 중앙 정보국, 국무성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2차 대전으로 황폐화한 서유럽 각국에 대한 미국의 원조

정책으로 마셜 플랜을 기획한 핵심 관료 중 하나였어요.



이후엔 공직을 청산하고 정년까지 MIT에서 교편을 잡아

국제 경제학 및 경제사 분야에서 굵직한 연구 성과를 냈죠.

70~80년대에 걸쳐 대공황의 원인을 분석하며 발표한 소위

패권 안정론, hegemonic stability theory란 사상 체계는

신현실주의 국제 정치경제학파에 깊은 영향을 끼치죠.



아래 기고문에서 주로 인용하고 있는 함정 개념이 바로 이

패권 안정론의 주요 골자를 거론하고 있는 거에요. 전간기

영국의 패권이 무너지고 미국이 새로운 슈퍼파워로서 세계

경제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리더쉽을 보였어야 했건만

그걸 못했기 때문에 대공황에 2차 대전이 왔다는 요지에요.



이 이론 구조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간에 한 번쯤은 귀담아

들어볼 만한 이론 체계라 할 수 있어요. 국제 정치학자들의

사상 세계가 실제로 오랫동안 강대국 외교 정책에 영향을

미쳐온 것이 사실이니까요. 헨리 키신저를 보세요.



또한 최근 미중간 무역 전쟁의 여파를 분석할 때 많은 이론가들이

낡은 책장에서 이 이론을 다시 끄집어내 해석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어요. 2000년대 이후 세계 질서는 미국 유일 파워의 시대가

지고 미중 G2의 새로운 태양이 떴다고 보는 편이 일반적인

시각이니까요.



(Thucydides)




(Joseph S. Nye, Jr. PhD.)



기고문을 게재한 곳은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정치대학원 산하

벨퍼 연구원의 공식 홈페이지입니다. 17년 1월 초였더랬죠.

조지프 나이라는, 20세기 최고의 국제 정치학계 스타 석학께서

쓰셨어요. 잘 아시죠? 클린턴 행정부 시절 '수상급' 차관보를

역임하여 관료로서 이름도 익히 알려진 분입니다.



분류 계통상으로 이 분은 로버트 커헤인과 함께 신자유주의*

국제 관계학의 계보를 형성하는 대학자이십니다. 소프트파워

참신한 개념을 학계에 유행시켜 스타로 발돋움하셨죠. 관료로나

학자로서 80~90년대의 세계 정세 및 사상계를 멱살잡고 이끈

리더로 평가합니다. 현재는 하버드대 석좌 교수이시고요.



*오해하지 마세요. 국제 정치학에서 논하는 신자유주의와 흔히

공중 일반에 널리 퍼진 신자유주의는 서로 같은 개념이 아닙니다.

일반적 신자유주의프리드리히 하이에크밀턴 프리드먼

필두로 한 경제학 사조 및 제도 체계를 가리키죠. 리버테리언,

작은 정부, 공기업 민영화, 레이거노믹스, 대처리즘.. 뭐 이런 거.



나이 석좌 교수께서 일목요연하게 짚어낸 본 기고문에서는,

킨들버거투키디데스 두 함정의 간략한 내용을 요약하고,

아울러 대중에 약간 더 알려진 투키디데스 측의 이론적 맹점을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유명하긴 한데 약점이 있으니

알아둘 건 알아두라는 메세지인 거죠. 이분은 평생 현실주의

사조에 반하는 입장이셨으니까.. 이해할 만하죠?



17년 1월 초는 미국 대선이 끝나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을 눈 앞에

둔 변혁의 시기였고, 한반도에서는 한창 북핵 위기가 고조되던

추억의 시절이었더랬죠.. (요즘 가열찬 평화 무드에 힘입어 벌써

아련한 기억의 저 뒷켠으로 밀려나 버렸네요. 이문덕입니다.)



일반적인 정서상으로 나이가 트럼프를 마음에 들어할 것 같진

않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성격도 대단히 친절하고 사려깊기로

유명하신 나이 교수께서는 이제 막 출범을 앞둔 새 행정부에

따뜻한 우려의 시각을 비추며 뭔가 도움될 만한 조언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시종일관 문체가 따사롭네요.



트럼프 대통령께서 이런 대학자들의 조언을 대차게 씹는 강성

캐릭터이신 건 이제 꽤 알려져 있긴 하나, 어느 순간에 대외

정책에 갑자기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는 노릇이긴 하죠.

지식으로 알아 두시고 안목을 넓혀보기를 권합니다.






원저자의 동의를 구한 건지 모르겠지만 기존 언론사에서

번역해 놓은 버젼이 아래 링크처럼 있긴 한데,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번역상 오류가 몇 군데 눈에 띄어 본 블로거가

작업을 다시 하였습니다. 번역본 보여 드리고 원저자의

동의도 물론 구했고요.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701152054182720




여담이지만, 정말 답장이 올 줄은 몰랐네요. 지금까지

포스팅을 위해 번역 작업을 하며 원저자들께 이메일을

보내도 답장 안 오는 경우가 허다했거든요. 더군다나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의 대학자이자 스타 외교관

쪽에서 손수 답장을… 가문의 영광이었습니다.



오늘부터 조지프 나이 교수님 팬 하려고 합니다.

짧고 쉬운 문장으로 쓰여 있으니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합니다.














https://www.belfercenter.org/publication/kindleberger-trap






The Kindleberger Trap

킨들버거의 함정이란




Joseph S. Nye

조지프 S. 나이




January 9, 2017

2017년 1월 9일






마셜 플랜의 지적 설계자 중 한 명인 찰스 킨들버거는 재앙과 같았던 1930년대 대공황의 근본 원인이 대영 제국의 패권을 넘겨받고도 세계 경제에 공공재를 공급하는데 실패한 미국의 역량에 있었다고 일찍이 분석한 바 있다. 바야흐로 중국의 급부상에 즈음한 작금에 이르러 과연 미국이 똑같은 실수를 자행하지는 않을 것인가?






새 대통령 당선인의 대중국 정책 노선이 당면 과제로 떠오른 시점에서, 도널트 트럼프는 과거 역사가 가르쳐준 두 가지 함정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앞서 시진핑 주석이 인용한 바 있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고대 그리스의 사례를 통해 (미국과 같은) 기존 강대국이 (중국과 같은) 신흥 강대국에 대해 지나치게 공포 심리를 가질 경우 우발적인 무력 충돌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을 가리킨다. 반면 트럼프 당선인 입장에선 중국의 국력이 너무 강하지 않고 의외로 약할 경우 맞닥뜨릴지 모를 "킨들버거의 함정" 역시 아울러 걱정해야 한다.




마셜 플랜의 지적 설계자 중 한 명이며 말년에 MIT에서 교편을 잡은 찰스 킨들버거는 일찍이 재앙과 같았던 1930년대 대공황의 근본 원인으로서, 대영 제국에 이은 패권국의 차기 주자로 부상한 후에도 세계 경제에 공공재를 공급하는데 실패한 당시 미국의 역량을 꼬집어 분석한 바 있다. 이런 실패의 결과는 지극히 참혹하여 국제 정세가 붕괴하고 경기 침체와 대학살의 자행, 급기야 세계 대전으로 이어지고 만 것이다. 과연 중국의 국력이 급성장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 세계 공공재 경제의 성장이란 결실로 맺어질 수 있겠는가?




국내 정치 하에선 경찰 서비스나 환경 행정 같은 공공재를 정부가 공급하여 소외되는 사람 없이 모든 시민이 그 혜택을 누린다고 가정할 수 있다. 반면 국제 정치 무대에서 기후 안정화나 재정 건전성, 공해 이용의 자유 같은 공공재적 사안들은 강대국 간의 연대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을 따름이다.




약소국에겐 그런 세계적 공공재에 할애할 유인이나 여유가 거의 없다. 작은 나라들이 그 혜택을 얻든 못 얻든간에 공공재에 쥐꼬리만큼 할애하는 정도만으로 대세에 큰 영향을 주기가 어렵기 때문에, 무임 승차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수순인 셈이다. 하지만 강대국은 자신들의 개입으로 인한 효과를 예측할 수 있고 공공재 할애에 따른 혜택이 어느 정도인지 능히 체감할 수 있다. 강대국들이 공공재 정세를 주도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인 셈이다. 오히려 강대국이 공공재에 국력을 쏟아붓지 않으면 세계 경제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이 닥친다. 1차 세계 대전 직후 대영 제국의 국력이 급락하여 공공재 공급의 역할 수행이 어려워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립주의를 선택한 미국이 여전히 무임 승차 노선을 지속했기에 결국 참담한 결과에 직면한 것이라 하겠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의 국력이 성장하면서 지금의 국제 질서를 자신들이 창조한 것이 아니기에 이에 기여하기보다는 무임 승차할 가능성이 높지 않나 하는 우려를 표명한다. 현재까지의 경과로는 반반이 아닐까 싶다. 거부권을 가진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의 상임 이사국으로서 중국은 일정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 현재 유엔 평화유지군에 두번째로 큰 규모의 재원을 조달하는 국가인 데다가, 에볼라 바이러스나 기후 변화 관련한 각종 프로그램에도 참여해왔다.




중국은 세계 무역 기구, 세계 은행, 국제 통화 기금 등 다양한 경제 기구로부터 역시 상당한 정도의 혜택을 얻어왔다. 2015년에 중국이 출범시킨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에 관해서는, 세계 은행의 대체재가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었으나 국제 규범을 준수하면서도 세계 은행과 협력하는 새로운 기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헤이그 상설 중재 재판소 판결에 대한 중국의 불복 조치는 골치아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찌 되었든 종합해보자면, 현실적으로 이득을 안겨다주고 있는 자유 세계 질서를 놓고 중국이 이를 확 뒤집어 엎겠다는 전복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근거가 희박하고 오히려 그 안에서 자국의 영향력 증대를 꾀하고 있다는 해석이 더 타당하다. 그런데 만약 트럼프 정책 노선이 대중국 압박이나 고립 일변도로 변모한다고 가정한다면, 중국이 킨들버거 함정을 앞세워 국제 정세에 훼방을 놓는 무임 승차 국가로 변할 가능성이 혹시 있지는 않겠는가?




물론 트럼프 당선인은 더 잘 알려진 투키디데스의 함정 역시 경계해야 한다. 중국의 국력이 너무 약하지 않고 의외로 강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강대국 간의 이런 대결 구도가 마치 불가피한 것인양 착각할 수도 있으며 대립으로 입을지 모를 피해도 종종 과장되곤 한다. 이를 실증하기 위해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이 기존 패권이 신흥 패권의 도전을 받은 1500년 이후의 16가지 역사 사례를 연구하였고 이 중 12가지 경우가 대규모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규명한 바 있다.




단, 그 개별적 "사례"란 것을 어떻게 엄밀하게 규정하는가의 문제가 있기에 전술한 사례의 숫자는 명확치 않을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할 뚜렷한 예로, 대영 제국이 19세기 중반의 최강 패권국이었음에도 프러시아가 유럽의 정중앙에 독일 제국을 건국하도록 놓아둔 일이 있다. 영국이 반세기가 지나 1914년경엔 독일을 적대하는 입장으로 선회하였는데 이 경우를 하나의 사례로 칠 것인가, 둘로 볼 것인가? 더구나 제1차 세계 대전을 대영 제국의 기존 패권에 도전하는 독일의 신흥 패권 구도로 단순화하여 해석하기도 매우 애매하다. 독일의 발호는 하나의 구성 요인일 뿐, 러시아의 신흥 패권을 경계하는 독일의 기저 심리란 요인도 있었고, 기울어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에서 범슬라브 민족주의에 대한 경계 심리도 있었으니, 고대 그리스 시절의 단순 구도보다는 훨씬 더 다채로운 양상이었던 것이다.




또한 단순 비교로만 보아도 현대의 미국과 중국 간 세력 격차는 1914년 독일과 영국 간 격차보다 훨씬 심대하다. 일반 예방 차원에서야 수사법의 일종으로 비교 사례를 거론할 수는 있겠으나 냉혹한 역사의 이면에 숨은 정서를 전달할 때 그런 수사란 매우 위험해지는 법이다.




고대 그리스의 사례가 역사가가 의도한 만큼 직설적으로 명확하다고 볼 수도 없다. 애초에 투키디데스제2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이 발호하는 신흥 강국 아테네에 대한 스파르타의 경계 심리에서 비롯되었다고 저술하였다. 그런데 예일 대학의 역사학자 도널드 케이건의 최근 연구는 당시 아테네의 국력이 성장세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기원전 431년 전쟁 발발 직전까지 양국간 세력 균형은 어느 정도 안정화 국면에 접어든 상태였다는 것이다. 스파르타로 하여금 전쟁의 위험을 감수할 만하다고 결단하게 만든 요인은 당시 아테네의 정책 노선상 실수였다고 한다.




기원전 5세기 초 아테네 국력의 성장세가 제1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촉발한 것은 사실이고 이후 30년의 휴전 기간으로 급한 불은 끈 상황이었다. 이때 채 끄지 못한 잔불의 불씨가 남아 참혹했던 2차 전쟁을 촉발한 스파크를 일으킨 셈인데, 케이건의 연구에 따르면 그 불씨에 맹렬하게 부채질을 가해 스파크로 키운 결정적 요인이 바로 정책 결정상의 오판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불가항력적 상황 요인에 의해 전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서 내린 잘못된 판단이 결정타였던 셈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현대의 중국을 앞에 두고 당면한 위험이 바로 이런 것이다. 지나치게 약할 수도 있고 너무 강할지도 모를 두 경우의 중국을 동시에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투키디데스의 함정 뿐만 아니라 킨들버거의 함정 역시 피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인즉슨 계산 착오나 몰이해 등 인간의 역사를 끊임없이 괴롭힌 경솔한 오판의 가능성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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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briefing History of Ancient Greece




고대 그리스의 역사는 참 복잡하네요.

쉽게 한 판에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고대 그리스는 기원전 7~8세기를 시발점으로 보통 잡습니다.

7~8세기까지는 사람이 안 살다가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났다는 말? 아니죠.

남아 있는 기록이 이때까지 것밖에 안 남아 있다는 뜻이겠습죠.





트로이 전쟁 시기


신들의 전쟁에 신화의 영역으로만 남아 있다가

갑자기 유물과 유적이 갑툭튀하여 사람 당황시키는

트로이 전쟁 같은 사건도 있었지만요. (기원전 12세기)


트로이 전쟁은 신화였었었었었습니다.

(브래드 피트 주연 영화에 나온 그 스토리요.)

하인리히 슐리만이 등장하기 전까지는요.


트로이 유적 찾기를 평생의 사명으로 삼은 아주 특이한 인간이

바로 슐리만이었는데 이 사람이 결국 찾아낸 겁니다. 19세기 후반에.

그때부터 트로이는 역사의 영역으로 편입되었죠. 두둥. 학자들 충공깽.


이것만 알면 되요. 굳이 선을 긋은 이유가 엄연히 있어요.

트로이 전쟁 때 그 민족이 오늘날 고대 그리스라고 분류하는 시대의

그 민족과 같은 사람들인가.. 근거가 아직 약하다는 거에요. (현재 다수설)


심지어 트로이 전쟁 때 납치된 미녀의 남편인 메넬라오스가 바로바로

스파르타 왕이었는데 흔히 알려진 스파르타와 다른 사람들이었을지도..

뭐 이런 얘기가 있을 정도니까요.


영화 ‘트로이’에 배나온 브라이언 콕스 할배와 ‘300’의 식스팩

제라드 버틀러가 같은 민족.. 누가 봐도 말이 안 되죠.ㅎ

(물론 농담.. 다수설은 사실이고요.)





드디어 역사 시대, 아테네와 스파르타


이런 판타지 영화 같은 껀들은 제쳐두고

기원전 7~8세기 이후만 시작점으로 놓고 보는 거죠.

앞에 전제했듯이 기록의 맨 앞 지점이 이 시기이거든요.

우리가 아는 고대 그리스는 이때부터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고대의 대부분 국가가 그러했듯이 이들도 도시형 영토가 기반이었습니다.

도시 국가, 곧 폴리스라고 불렀죠. 많이 들어 보셨을 듯.

아테네, 스파르타, 테베 같은 폴리스가 있었습니다.

이들 중 중심 국가는 아테네스파르타.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서로 많이 달랐습니다.

아테네는 해상 무역, 스파르타는 농업이 밥벌이 산업이었어요.

아테네에선 상인들이 중상급 계층으로 두텁게 사회를 형성했고

스파르타는 계급 사회로 귀족을 중심으로 피라미드형이었죠.


평민 중에서 무역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목소리가 커지니까

공화정 같은 당시로서 아주 희한한 체제가 발전하기도 했던

나라가 아테네였던 셈이죠. 하필 왜 아테네에서 민주주의가 나왔지란

본질적 질문의 대답을 여기서 발견할 수 있겠어요.


스파르타는 발해 같은 나라를 떠올리면 비슷해요.

소수의 그리스계 귀족이 대부분의 피치자를 노예로 부리며

농업을 관장하여 살림을 이끌고 정치를 장악했습니다.

지배층이 소수였죠. 노예는 이민족이 많았어요.

그래서 위계 질서가 중요한 군벌적 문화가 필요했어요.





민주정의 시작, 아테네와 클레이스테네스


여차저차한 차이점이 있기에 그들의 정치는 많이 달랐네요.

인류 최초의 공화정이 아테네에서 출범한 이유가 있었던 거고요.

이때 민주정은 오늘날과 많이 다릅니다. 추후 얘기할 기회 있을 겁니다.


정치보다 선행해야 할 문제가 경제 기반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정치가 발전하죠.

기원전 6세기 초에 이를 해결한 사람이 유명한 집정관 솔론이었죠.

그저 그런 농업국에서 무역국으로 변화한 것이 이 시기.


민주정이 자리잡은 아테네의 시기를 보통 기원전 6세기 말로 잡아요.

이때 기틀을 마련한 지도자가 바로 클레이스테네스.

얘기하자면 복잡하지만 나중에 또 포스팅하는 걸로.


클레이스테네스란.. (엄청 중요한데 한국선 의외로 듣보잡)

https://en.wikipedia.org/wiki/Cleisthenes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


기원전 5세기가 되었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이 시기 가장 중요한 사건은

페르시아 전쟁 아니겠어요. 300의 시대가 왔어요.


300 영화 두 편 보시면 나오죠.

육상전은 스파르타, 해상전은 아테네가 활약했습니다.

스파르타에 레오니다스, 아테네에 테미스토클레스가 있었죠.

각각 지도자였습니다. 제라드 버틀러와 설리반 스테이플턴.


페르시아 전쟁이란 페르시아가 그리스에 쳐들어 왔다는 뜻입니다.

당시 페르시아는 아케메네스 왕조입니다. (이후 왕조가 교체)


키루스, 캄비세스, 다리우스, 크세르크세스 같은 황제가 나온 시기.

300 2편에 죽은 사람이 다리우스, 나는 관대하다는 분이 크세르크세스에요.

(실제로는 영화와 다릅니다. 헐리우드 믿지 마요 제발.)


그리스를 왜 쳐들어 왔을까요? 그야 강대국이니까요.

페르시아는, 즉 오늘날의 이란은 당시 중근동의 최강대국입니다.

오늘날 보면 상상이 안 되나요? 그것이야말로 현대인의 편견.


통상 루트를 통합하여 경제권을 확장할 필요가 있었죠.

에게 해 인근 올망졸망 중소국들이 못내 걸린 겁니다.

그래서 병합하여 세금도 받고 겸사겸사 이유로 침공한 거에요. 단순하죠.


굳이 건드릴 필요 없었어요. 그리스 국가들까지 통합 안 해도

페르시아 같은 큰 나라가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 없었죠.

실제로도 전쟁에서 졌다 하여 페르시아 망한 거 아니랍니다.


한 번 건드려본 중소 국가들의 단합이 의외로 단단했던 거죠.

테르모필레 협곡에서는 이겼고 (제라드 버틀러가 죽고)

아테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으로 깨집니다. 의외였죠. 엄청.





펠로폰네소스 전쟁, 그리스가 양분


페르시아 전투의 의외의 결과가 가져다준 나비 효과는?

그리스 국가들의 간땡이가 부어 오르게 됩니다.

(페르시아는 자기들끼리 잘 살아갑니다. 까짓 교역 안 하면 되죠 뭐.)


어느 나라나 간이 부으면 지들끼리 싸우게 되죠. 내분.

내분 구도의 중심에는 그리스의 양대 강국이 있습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두둥. 짜잔.


앞에서부터 차이점을 가져 발전해온 두 나라가 드디어 반목합니다.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중심으로.

두 나라 옆에 다른 폴리스들이 더덕더덕 붙어 세력을 형성하죠.


뭔가 연상되는 비슷한 역사의 페이지가 있지 않나요?

딱 냉전 시기와 비슷하죠. 미소를 중심으로 세계가 반으로 갈렸잖아요.


펠로폰네소스 전쟁기 그리스의 역사를 써내려간 사가가 있었어요.

그 이름 투키디데스. 오늘날 현실주의 정치 사관의 원조라는 분입니다.


(역사상 최초의 사가인 헤로도토스는 ‘역사’를 썼는데

페르시아 전쟁을 소재로 했습니다. 약 1세기 전의 일이죠.)

https://en.wikipedia.org/wiki/Herodotus

https://en.wikipedia.org/wiki/Histories_(Herodotus)


투키디데스는 델로스와 펠로폰네소스,

두 진영이 서로에 대한 공포와 경쟁심, 이해 관계가 얽혀

엄청나게 폭주하여 결국 전쟁에 이르게 되었다고 분석했죠.


이런 양상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부릅니다.

Thucydides’ trap. 그래험 앨리슨이라고 40년생인 하버드

정치학자가 계세요. 이 분이 만들어낸 개념입니다. 작년이었나..

https://en.wikipedia.org/wiki/Thucydides

https://en.wikipedia.org/wiki/Graham_T._Allison


냉전은 결국 전쟁으로 치닫지 않았지만

그리스는 전쟁에 이르렀고 스파르타가 이겼습니다.


잘들 싸우더니만.

그리고 우둔한 군중이 소크라테스를 죽였습니다. 플라톤 지못미.





그리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헬레니즘


내분으로 시작한 전쟁이었으므로 그 끝이 찝찝했습니다.

스파르타가 완장을 차긴 했는데 우왕좌왕하다

테베에게 완장을 또 빼앗겼죠.


같은 시기에 마케도니아에서 무시무시한 세력이

스멀스멀 태세를 정비하고 있었습니다.


마케도니아 왕국을 그리스의 동족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선

상당히 설왕설래하는 모양인데요. 현재는 앞의 스파르타처럼

지배층이 그리스계인 것으로 정리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케도니아를 반열에 올린 것은 필리포스 2세였고

그리고 이어 그 아들 알렉산드로스 3세가 왕위에 오릅니다.

그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그리스 통합, 페르시아 폐퇴, 이집트 무혈입성…

아프가니스탄 진격, 파키스탄까지 진출. 대단하죠?

(그러나 실상은 페르시아 전성기보다 못하다는 의견도..)


알렉산드로스의 가장 큰 업적은 헬레니즘 전파입니다.

즉 고대 그리스 국가 체제가 각국에 이식이 되었단 말이죠.


그가 후계자 없이 죽어버려 휘하 장군들이 제국을 나눠갖고

각각의 방계 왕조를 발전시켜 2백년 가까이 발전합니다.

이것이 곧 헬레니즘 제국이죠.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바로 이들 중 하나입니다.

지배층을 장악하고 원주민의 통치 체제를 인정했다 하죠.





고대 그리스 역사란


고대 그리스를 몇 줄로 정리해 볼까요.


페르시아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 알렉산더 대왕..

이 순서를 꿰고 있으면 됩니다.


중심에 아테네와 스파르타 양대 폴리스가 있었다는 거죠.

양자의 차이를 이해하면 접근이 빠를 겁니다.


그리고 아테네가 발전시킨 원시적 공화정.

최초의 희한한 정체였다, 이런 정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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