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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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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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 회담 사태, 새로운 전환점?
  2. 2018.05.20
    엘리자베스 스탠리: 이제야 한반도의 주인공이 된 두 코리아




A New Point of No Return?




간밤에 전쟁 한 번 났다가

평화 협정까지 갔다 온 기분입니다.


사안의 결과에 따라 운명이 왔다갔다 할 처지에 있으면서도

기밀 정보에서는 소외되어 있는 한반도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좋을 만한 논점을 몇 개 적어 볼께요.


번째, 이번 일은 북미 양국의 수뇌부, 즉 정상이 아니라

서로를 혐오하는 강경파들이 한 번 붙은 사건인 것 같습니다.


트럼프와 김정은 두 사람이 맞붙은 일이 아니고요. (다행이죠?)

존 볼턴, 김계관, 최선희 모두 기존 외교 문법에 익숙한

구시대적 인물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수뇌부가 직접 나서서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여지가 아직 충분히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번째, 이번 일로 한 가지가 너무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정치권 내 입지가 엄청나게 좁다는 거죠.

좁은 정도가 사람들이 늘상 상상하는 범위를 초월할 정도로요.


특히 볼턴의 뒤에 도사리는 네오콘, 또한 공화당 주류로부터 오는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가 트럼프를 옥죄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 정도 선에서 저들의 원성을 한 번 들어주지 않으면 다음에

무슨 일이 터질지 알 수 없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나 해요.


또한 북한 내 기득권 강경파의 반발도 꽤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얼핏 지나가는 자막으로 비슷한 뉴스가 최근에 있었죠.

강경파가 김정은을 공격했다고… 설전이 있었던 모양이죠.


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를 믿고 갈 수 있겠는가…

공개 서한이 이례적으로 정중하게 톤 다운을 유지한 점을 볼 때

아직은 믿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거에요.


회담을 취소하는 것까지는 강경파의 손을 들어줄 수 있었지만

취소의 형식인 서한의 톤은 철저한 트럼프 어법이었다고 봅니다.


의외로 정중한 어법을 세심하게 배치한 것을 보고 솔직히 놀랬습니다.

편지의 어법만 놓고 보면 19세기 연애 편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간밤의 사건에서 놀랄 만한 지점은 실은 두 가지였죠.

갑자기 취소를 했고 그 형식으로 편지를 보냈다는 것,

또 하나, 그 편지의 어조가 엄청나게 정중했다는 것..


번째, 가장 논란 거리일 수도 있는데.. 조심스러운데요.

이런 충격 요법을 쓰기 직전에 만난 우리 대통령과

어떤 식으로든 의견 교환이 있지 않았겠는가… 예측합니다.


갑자기 취소 통보를 하면 어때요.. 이렇게 대놓고 묻진 않았겠죠.

그러나 북한을 대화 마당으로 끌어내는 큰 액션이 하나 필요하다는

기본적인 줄거리에는 우리 대통령이 합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왜냐하면 간밤 브리핑에서 폼페오 장관이 분명히 밝혔거든요.

북한이 싱가폴 회담 사전 소통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회담을 이행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당연히 국제 관례상

이런 절차에 응했어야 마땅한 건데 북한이 안 했다는 거죠.


이 불소통의 배경에 북한 강경파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나 하고

미국을 상대로 자존심 세우기 일변도의 기존 문법만 고집한

북한 기존 외교 라인이 오판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몰랐을까요. 천만에..

이에 대한 대응책을 의논하는 것이 엊그제 한미 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였을 것이고요.


다섯번째, 언론 보도로 드러나지 않은 의외의 걸림돌이 있는 듯하고

단둥 회담으로 드러난 새로운 북중 관계가 바로 그 복병인 것 같아요.


한미 회담 전 이례적인 기자 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맥락과 크게 상관 없는 몇 개의 언급을 해서 의아했어요.


이를테면 교역 문제를 언급했다는 거죠.

한미 관계에서는 교역 문제가 이미 일단락된 상황인데..

아, 저건 지금 진행 중인 미중 무역 전쟁을 뜻하는구나.. 생각했죠.


일반인에게 아직 드러나지 않은 정황일텐데

시진핑이 미국과의 무역 전쟁 구도를 한반도 문제에 끌어다

연결짓는 모종의 시도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추정합니다.


단둥에서 이와 관련한 제안을 북한에 했거나

아니면 미국이 그렇게 오해할 만한 정황을 연출했거나..


어쨌든 트럼프의 머리 속에는 지금 중국이라는 변수가

새롭게 등장하여 지끈지끈 두통을 일으키는 중인 듯합니다.


시진핑의 공작이 무엇인지 정보가 전혀 없어 모르겠는데요.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남북미 3자 관계로 종전 선언까지 극적으로 갈 수 있는

드라마틱한 그림을 깨버릴 정도로 파급 효과가 큰 무엇이라는 것.


시진핑의 머리 속에는, 트럼프 주도 하의 남북미 3자 구도를

깨버리지 않으면 향후 수십 년간 한반도 문제에 중국이 끼어들

여지가 사라져버린다..는 다급함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많은 전문가들이 지금까지 자제해왔던 대북 경제 원조일 거라고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만.. 글쎄요, 잘은 모르겠네요.


이상… 써놓고 보니 소설이 너무 많긴 하네요.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아,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듯이

이것이 트럼프 식 벼랑 끝 협상 전술이라고 본다면

이런 충격 요법으로 얻을 만한 대가가 있을 것인가.


있습니다. 6월 12일 판문점으로 바뀐다면

이보다 더 극적으로 미디어의 조명을 받을 수가 없는 거죠.

소설입니다.






and




판문점 선언을 바라보는 주한 미군 출신 정치학자의 최근 뉴욕 타임스 기고

https://www.nytimes.com/2018/05/10/opinion/end-korean-war.html



미국의 대표적 진보 언론 뉴욕 타임스의 노선은

가끔 한반도 평화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주한 미군 경험도 있다는 어느 정치학 교수님의 기고는

비교적 기계적 중립을 지키고 있고 때때로 한반도에 대한

애정도 살짝 엿볼 수 있어서 본인 허락을 얻어 번역본을 포스팅해요.






What It Would Mean to End the Korean War

한국 전쟁 종전이 의미하는 것


  Elizabeth A. Stanley


  엘리자베스 스탠리는 조지타운 대학교 우드로 윌슨 연구센터 선임 연구원이자 안보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육군 정보 장교 출신으로 주한 미군 재직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전을 포함한 국내 정치 갈등의 양상에 대한 저서 ‘평화로 가는 길: 국내 연대의 이동, 종전과 한국전’을 쓴 저자이기도 하다.


2018년 5월 10일




미안하지만 한국 전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1953년 휴전 협정으로 전쟁 행위는 끝났을지 몰라도 평화 협정으로 옮겨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 남한 대통령 문재인이 지난 정상 회담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뿐만 아니라 종전 선언을 공식 천명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이 천명한 내용의 이행을 위해 정확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상당히 모호한 채로 남겨져 있고, 과거에도 뭔가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었다가 용두사미가 된 적이 있기에 이 외교사의 서막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는 분석 전문가도 많다. 하지만 분명 이번만은 다른 것 같다. 최소한 한 가지 점에서는.


두 정상의 지난 달 공동 선언에는 비교적 주목받지 못한 의미심장한 문구가 들어가 있는데,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다’는 부분이 그것이다. 2000년 공동 선언에도 비슷한 문구가 있었으니 완전히 새로운 문장은 아니다. 그러나 남북간 화해 뿐만 아니라 미중 양국처럼 한국전에 직접 관여한 당사자 국가, 여기에 광역 안보 차원에서 나머지 전 세계까지 함께 포괄하는 함의를 강조하고 있다. 한반도의 문제가 곧 남북 양국이 주인공으로 떠올라야 하는 사안임이 중요한 대목이다.


한국전이라는 신기한 역사를 이해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분인데, 남북한 모두 냉전 시대 양 진영 강대국에 휘둘려 협상의 단역으로 물러난 경험을 공유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회담이 몇 주 후에 예정된 가운데 미 행정부 관료들이 이 점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어제 5월 9일자로 북한 정부가 억류된 미국인 세 명을 석방하기로 공표한 바 있으니 북한이 미국을 향해 직접 제스처를 취하는 단계까지 다다랐음이 중요하다.


1950년 6월 남한을 침공한 북한은 유엔의 다국적 연합군을 밀어붙이며 거의 반도에서 몰아내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그해 11월에 연합군은 거의 북중 국경선까지 밀려났다. 1951년 1월 극적으로 중공군이 개입하며 공산당이 다시 서울을 탈환하였다. 그 해 6월에 전선은 38도선 인근에서 고착 상황을 맞고 있었다. 휴전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 시점에서 남과 북 어느 쪽도 전쟁 중지를 원치 않았지만 냉전기 후원국의 등쌀에 떠밀려 억지로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했던 것이다. 미국이 유엔 연합군을 대표했고 중국이 공산 세력을 대표했다. 남북한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장신구 처지에 불과했다.


트루먼 행정부는 문제 해결의 양상을 과시하고도 싶었지만 동시에 유럽에서 나토군이 소련과의 전면전을 위해 체재 정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즉각적인 정전이 필요하기도 했다. 중국과 소련은 3차 대전 발발을 원치 않으면서도 의도적으로 협상을 질질 끌고 싶어했다. 마오 쩌 둥 말대로 ‘전쟁과 협상을 병행하는’ 전략이야말로 이 목표의 달성을 위해 가장 값싼 방법으로 보였다. 공산권이 원한 것은 스스로 산업화와 방어 체제를 구축하는 동안 미국의 시야를 한반도에 묶어두고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개전 아이디어 자체는 북한이 기획한 것이지만 이후 공산권 군사외교 전략 체제에서 그들은 철저하게 소외되어 갔다. 기밀 인가가 해제된 당시 공산국 전문 기록을 보면 1952년 초반까지 적화 전쟁을 완수할 자신이 있었던 북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의 피해와 기록적인 홍수로 인해 지방이 황폐화하고 지독한 기근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련과 중국은 평양의 요구를 끝내 일축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하여 전선 장기화라는 옵션을 선택하고 만다.


1952년 여름에 있던 정권 연대가 변화를 겪으면서 중국의 입장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새 지도부가 자국 경제의 재건 및 산업화를 목표로 설정함에 따라 중국이 한반도에서 치르고 있는 막대한 비용을 절감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 해 8월까지 전쟁을 해결할 의사가 중국에게는 있었지만 그들이 의존하던 소련 역시 이를 원하는지 알 수 없는 딜레마에 봉착하였다. 당시까지 휴전 협상을 지지부진하게 했던 지독한 악재에 대한 공산권의 양보가 1953년 3월 5일 스탈린 서거 후 3주가 지나서야 정체를 드러냈다. 바로 전쟁 포로의 본국 송환 문제였다.


전쟁 완결을 바라는 북한의 간청이 공산권에선 무시 당한 데 반해, 전쟁 재개를 원한 남한의 노력은 미국이 거듭 고삐를 틀어쥐고 있었다. 대한민국 당국은 한반도 재통일을 가시화하지 않고 섣불리 갈등이 종식되는 상황을 원치 않았으며 다양한 대중 시위를 통해 휴전 협상을 반대하였다. 한국 국회가 몇 차례 만장일치의 결의안을 통과시킬 정도였다. 1951년에 ‘해방된 통일 조국’을 위한 전쟁 재개 결의안이, 1953년 4월에는 한반도 통일을 전제로 하지 않는 휴전을 반대하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미국과 중국의 협상 관료들은 비무장 지대 주변으로 반도의 분단을 유지존속하기로 이미 1951년 말에 합의한 바 있었다. 이런 이유로 1953년 5월 미국이 연합군 측의 최종안을 제시할 때 이승만의 반대를 우려하여 남한 당국에는 이를 공개하지 않는다. 이를 간파한 이승만 대통령은 귀환을 원치 않는 2만 5천 명 북측 포로의 석방 조처를 취해 버렸다. 싸움이 다시 시작되고 수만 명의 다른 희생자가 양산되어 휴전 협상은 연기되고 만다.


575회나 대표단 회담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1953년 7월에 체결한 휴전 협정은 이미 연합군이 제시한 1951년 7월 안과 근본적인 차이가 없었다. 또한 이승만의 마지막 책략이 종전 합의를 포기하는 대가로 한국에 상당한 혜택을 허용하였던 바, 미국으로부터 한미 상호 방위 조약, 장기 경제 원조, 한국군 군비 증강 지원이라는 카드를 얻어낸 것이다. 불편한 진실은 여전히 남은 셈이다.


모든 갈등은 한반도 땅에서 벌어진 싸움의 결과였다.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하여 도합 570만 명의 사상자와 실종자가 발생했고 대부분은 남과 북의 동족들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어떻게 전개되고 어떻게 끝났는지, 그 처음부터 끝까지 남과 북 어느 당국도 주도적인 결정의 당사자가 아니었다. 요컨대 두 코리아는 그들 자신의 전쟁에서 철저하게 장기 말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모든 역사적 맥락을 고려할 때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 간 회담이 상징하는 바는 중차대하다. 두 지도자가 바로 대한민국 영토의 판문점에서 동맹국의 참석을 배제하고 만난 것이다. 대부분의 휴전 협상 회담이 열렸던 그 판문점에서 말이다.


두 코리아는 더 이상 냉전의 거미줄에 얽혀 찢기고 상처입은 손님들이 아니다. 오늘날 남한은 생동하는 민주 국가이며 세계 정상권의 경제를 구가한다. 북한이 여전히 고립되고 궁핍할지 모르지만 이미 핵 무력을 완성한 주요국이 되었다. 과거 둘의 전쟁이 스스로의 통제를 벗어나 벌어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부터 전개할 평화는 완벽하게 그들 자신이 만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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