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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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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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북미 정상 회담, 원인과 전망
  2. 2019.01.15
    NBC 전문가: 북미 회담이 꼭 그렇게 못할 짓인가
  3. 2018.10.15
    유럽 국제관계 및 근현대 외교사의 주요 사건들




Hanoi Summit 2019 :

Why Did It Hold? Is the Game Over?




사실 다들 너무 들떠 있지 않나 싶기도 했어요.

보통 언론들이 이렇게 분위기 띄울 리가 없는데..

심지어 외신에서까지 방방 떠서 마음들이 다 콩밭에

벌써 가 있는 듯 했으며 Vox 보도가 정점을 찍었죠.


https://www.vox.com/world/2019/2/26/18239694/trump-north-korea-kim-jong-un-vietnam-summit




냉정하게 다시 상황을 복기해보면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입장에서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음을 깨달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그렇쟎아요. 민족적 감응도가 없는 양반이 반드시 19년 삼일절 전날

극적인 딜을 성사시켜줘야 할 이유가 없죠. 너무 감상적 접근입니다.



19년 상반기란 시간은 도널드 트럼프에게 좋은 타이밍이 아닙니다.

그에게 의미가 있는 최상의 타이밍은 20년 11월 재선이잖아요.

모두가 그것을 모르고 있지는 않쟎아요. 잠시 잊었을 뿐.



더군다나 다소간의 임팩트 있는 변수로서 코언 사태가 터졌어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지구 반대편에서 한창 뭐 하고 있던 중에.


https://www.theguardian.com/us-news/video/2019/feb/27/key-moments-from-michael-cohens-explosive-testimony-video




2월 27일 최대의 뉴스가 하노이였다고요? 한반도에 사는 사람

입장에서나 그러할 뿐, 적어도 미국민 입장에서는 결코 그러하지

못했답니다. 현직 대통령을 저격하는 엄청난 의회 청문회가 벌어지고

있었거든요. 탄핵까지 염두에 둘 만한 핵폭탄급 이벤트였던 거지요.

진짜 핵폭발은 정작 미국에 있었구먼..



그나마 급하지 않은 19년 상반기의 시간대를 의미있게 관리해온

공은 물론 문재인 정부에게 있을 겁니다. 북한 입장에서도 상당히

급한 것은 사실이에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1회차가 이미 18년에

종료했는데 아직 경제 제재조차도 풀지 못한 상황이니까요.



2월 27~28일로 날짜가 급확정되어 물밀듯이 스케줄이 잡혀 나가니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어요. 남북한 입장에서나 급할 뿐 이런 타이밍에서

살짝 비켜나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왜 이런 속도에 호응해줄까 살짝

의심이 들긴 했죠. 결국 작은 의심의 단초가 어제의 결과로 나온 것이

아닌가 하긴 하여 씁쓸하긴 하고요.



어제 오후 회담장 멤버로 존 볼턴이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아 뭔가

있겠다 싶은 불안한 마음이 있기도 했어요. 대북 대화 국면에서 볼턴이

그동안 옆으로 제쳐져 있는 포지션을 차지해온 것은 그의 강경 노선이

필요한 때가 아니라는 트럼프 본인의 전략이 항상 작용하고 있는 건데요.



그런 상황에서 왜 뜬금없이 볼턴이 재등장..? 그것도 실무자 협상이나

언플 인터뷰도 아니고 가장 중요한 정상 회담장에…? 아, 이번엔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실려 있구나 하는 의심이 들었죠. 트럼프의

전략에 의해 볼턴이 복귀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일 겁니다.



트럼프의 전략이란…? 이미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그대로에요. Vox

보도한 합의문 초안을 준비했으나 이번에는 서명하지 않았다..는 거죠.

(알고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의외로 솔직하고 거짓말 안 하는 성격이

강해요.) 그렇다면 왜? 왜 중단했는가가 중요하겠죠. — 합의 결렬이니

파토났다느니 극단적 표현은 좀 삼가면 안 될까요. 제안합니다.



북미 외교 전선에 급속한 냉각 기류가 생성한 것일까요? 그런 악재를

학수고대하는 정치 세력이 한반도 주변 도처에 암약하고 있겠죠. 허나

하노이에서 작별하며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 마지막 악수를 찍은 사진에서

엿본 밝은 표정을 보면 그런 시각에 결코 동의해줄 수 없어요.










27일 터진 코언 사태의 국내 정치 공학이 결정적 원인이라는 데에 많은

전문가의 의견이 모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천조국의 대통령도 결코 신이

아니에요. 국내 지지도와 여론 동향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트럼프가 오바마보다 천사라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대신 싸워주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는 힐러리나 오바마보다 외교 능력이 탁월한

지도자란 미국 내 평가에 굶주린 정치인이며 북핵 문제를 그 지렛대로

삼아 노벨상재선이란 목표를 향해 무섭도록 냉정하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에요.



국내외 기레기들이 프레임 짜놓았듯이, (비건과 김혁철 둘이서 기초한)

‘스몰딜’ 합의문을 그대로 갖고 미국으로 돌아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코언 사태를 파묻어 버리고 국면을 전환하여 지지율 상승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요? 스몰딜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조차 벌써 ‘스몰’

운운하며 온갖 디스가 터져 나오는 이런 판국에서 그게 가능했겠냐고요.



트럼프가 무서운 승부사라는 점이 여기서 입증이 되는 것 같습니다.

소소한 전공으로 난국을 뚫고 나가지 못할 바에야 아예 판을 깨버리고

강경한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코언이니 뭐니 하는 지저분한

국내 정치 판도를 확 뒤집어 버리겠다는 계산을 한 거에요.



정말로 그 계산대로 되었냐고요? 예, 지금 미국의 헤드라인은 코언

청문회에서 하노이 스탑으로 다시 180도 바뀌었답니다. 정말…

미국 대통령을 아무나 하는 건 아닌 것 같긴 해요.


https://edition.cnn.com/2019/02/28/politics/trump-kim-hanoi-summit-takeaways/index.html




그렇다면 이제 비핵화 대화는 물 건너 갔나요? 김정은 위원장의

작별 표정, 기자회견서 ‘수 주 후 다시’를 언급한 폼페이오 장관,

제재를 더 강화하지도 낮추지도 않고 현상을 유지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등등을 종합하면 여전히 협상의 현상 유지는 잠깐

중단했을 뿐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죠.



아직 미국 발언만 나왔고 북한 공식 의견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속단하긴 이릅니다만, 북한 입장에서 19년 상반기를 실기할 수 없다는

심리가 있겠고 한반도 신경제 구상의 조기 정착을 임기 내에 진행하고픈

우리 입장이 서로 맞물려 한두 달 이내로 다시 재개의 움직임이 있을

걸로 예상합니다. ‘수 주 후’ 멘트에 마음이 쓰이네요. 인지상정.



고로 한반도 운전자론의 위상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러니 상황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끈기있게 지켜보면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인내와 용기를 갖고 100주년의 의미를 조용하게 되새기며 말이죠.






포스팅하고 한숨 돌리는 사이에 간밤에 북한의 첫 기자회견이...ㅎ

이에 대한 반박 인터뷰도 미국에서 나왔죠. 뭔가 진실 공방 비슷하게

흐르는 모양새인데 어느 쪽이 옳은가는 부질없는 논쟁입니다.

거기에 힘빼지 마세요.



북한 발언은 대외 선전용, 미국의 반박은 철저하게 국내 정치용이니

애시당초 목적이 다른 두 가지 말잔치에 불과해요. 내용을 봐야죠.

11개 중 5개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을 보면 — 북한의 전통적인

대외 선전 전략하고는 크게 다른데 — 꽤 솔직하고 정확하게 들립니다.



lifting the sanctions라고 어디서부터 미국이 해석하기 시작했는지

진실 규명이 필요할 것 같기는 한데, 아마도 4대 3으로 불균형스러운

회담장에서 볼턴이 끼는 순간부터 해석과 주장에 대한 균열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정도야 누구나 다 쉽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봐야 할 큰 그림은, 오리발 내밀며 북한의 전통적 벼랑끝 전술

차용하는 미국의 새로운 외교 책략과, 의외로 전통적 자세를 버리고 꽤

솔직하게 다급하고 초조한 심경을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는 북한의

태도. 양자의 배경에 무엇이 있을까, 그림 그려봐야겠죠.



트럼프의 당면한 과제의 수순은 1) 코언 사태를 진정시키고, 2) 자신의

유일한 치적이자 이전 민주당계 정부와의 뚜렷한 차별점인 북핵 문제

해결을 통해, 3) (노벨상은 받으면 좋고 아니면 그만) 재선이라는 목표를

향해 걸어갈 타임라인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일 거에요. 지금이 1번 단계

초입이니 결국 중요한 발언은 국내 국면 전환용일 거라 추측할 수 있죠.



북한의 목표는 뚜렷합니다. 1) 비핵화에 회의적인 군부 강경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2) 18년 1회차가 끝난 국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시동을

뒤늦게라도 걸어야 하며, 3) 정상적인 외자 유치를 위한 최대의 걸림돌로

UN 제재를 일부 완화 또는 전부 해제하여 각 경제 특구의 총생산 증대란

성과를 거양하는 것이죠.



갈 길은 뻔히 정해져 있고 양자 모두 프로들이니 각자가 해야 할 역할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양쪽과 한국, 중국까지 — 때로는 일본

러시아까지도 — 너댓 개의 톱니바퀴를 이를 맞추는 운영의 묘이겠죠.



추측성 보도가 몇몇 나왔지만 이번에 깽판 친 장본인 트럼프 대통령께서

먼저 해법의 실마리를 제시할 것 같습니다. 시기는 ‘수 주 후’ 멘트를 계속

신뢰하여 한두 달 내로 예상하고 방법은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을

활용하는 식일 겁니다.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은 이전에도 충분히 작용했습니다만, 이번엔 다소

차이가 있을 겁니다. 전에는 한국 정부의 필요에 의해 트럼프를 살살 달랜

양태였죠. 이젠 파탄을 낸 트럼프 본인이 중재역을 필요로 하는 단계로

들어갔어요. 어쩌면 곧 있을 한미 정상 회담의 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방미할 수도 있어요. 깽판의 대가겠죠.



어찌 되었든 국면이 종료한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고 정상 회담은

결렬이 아니라 잠정 중단입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멘트를 종합해볼 때

대화 재개 시기는 곧 다가옵니다. 현재로서 분석 결론은 그러하네요.



일본과 민주당 등 친일 미국 정치인들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참고할 만한 의견인 듯합니다. 하지만 결국 일본

사주를 받은 인물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주도권은 결국 트럼프 본인이

쥐고 있고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재선으로

가는 국내 정치 상황의 전개 양상입니다.



걱정이 많이 되는 분들은, 고로 앞으로 한두 달 동안의 미국 국내 정치

뉴스에 끊임없이 주목하시길 바랍니다. 정말 중요한 뉴스인데 국내

기레기들이 절대 다루지 않는 내용이 있다면 포스팅을 추가로 올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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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윌리엄 아킨 NBC 군사안보 전문 논평인의

퇴직 기념 기고문 중에서; 의외로 트럼프 잘 한다?

https://medium.com/@ggreenwald/full-email-from-william-arkin-leaving-nbc-and-msnbc-1fb0d1dc692b




미 지상파 주요 언론 중 폭스 빼고 가장 보수적인

NBC에서 수십 년간 군사안보 전문 논평을 해오신

William Arkin이란 대기자가 퇴직하면서 기고를

했는데 그 안에서 트럼프 북핵 정책을 살짝 고평가..



…하는 듯한 뉘앙스의 문장이 섞여 있지만 사실

읽어보면 큰 건 없고 오히려 트럼프 까는 얘기가 더

많다는 내용이 지난 주 화제가 되었죠. 아주 반짝.



그래서 직접 읽고 판단하시라고 긁어와 번역 답니다.

번역을 잘 했나 좀 어렵긴 하네요. 원문과 같이 읽으세요.








Full email from William Arkin,

leaving NBC and MSNBC


NBC 및 MSNBC를 떠나며


윌리엄 아킨 대기자


2019년 1월 2일




1월 4일은 NBC뉴스와 함께 한 본 기자 경력의 마지막 날짜라서 동료들에게 (영원히는 아니겠지만서도) 작별의 인사를 고하려 한다. NBC를 떠난 적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엔 좀 더 달콤씁쓸할 수밖에 없다. 세계 정세와 저널리즘 양쪽에서 동시에 위기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엔 사람들이 맞닥뜨리는 도전이나 위험을 해설하는데 최적화한 본 기자의 전문성이 지금 이 순간엔 다소 거추장스러워진다는 느낌도 든다. 매일매일의 사건을 보도하는 기자 정신이나 트럼프 정부의 서커스를 바라보는 흥미 어느 쪽에서든, 방송사의 흥분한 정서에서 이제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30년 전에 로버트 윈드렘 및 프레드 프랜시스 밑에서 펜타곤의 냉전 관련 뉴스를 공급하면서 기자와 NBC와의 관계는 시작되었다. 1999년 코소보 내전 중 생방송 애널리스트로 데뷔한 이래 NBC 심야 뉴스와 인연을 이어왔고, 올스타 장성들과 정부 고위 관리가 가득한 난리통에 홀로 선 민간인으로서의 유니크한 위치를 때로 짓궂게 즐기기도 하며 버텨온 것 같다. 한편으론 학자로서 반핵 및 반군사 메세지를 혼자서 고집불통의 지식을 뽐내며 설파하기도, 기자만의 개인 영역에 탐닉하는 영화 평론가로서 온갖 저주받은 걸작들에 대한 비평을 숨김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9.11이 터졌을 때 다시 NBC로부터 호출이 왔었다. 수 주 동안 방송 안팎에서 알 카에다 정보를 제공하고 보병 전력보다 드론을 활용한 공중 타격이 더 효과적이라는 등 시급한 현안을 논했던 것 같다. 거의 계엄령에 준하는 무력 제재 일변도의 긴박한 국가 상황에서는 자기 자신을 주변 정황에 감정이입하는데 참으로 애를 먹었다. 다소간의 퇴각 취지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컬럼 논평인으로 물러앉았을 때조차 이라크 전쟁 발발이 임박하고 있다는 예측에 길길이 뛰던 데스크와 격론을 벌여야 할 정도였다. 항구적 전비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믿던 강경파들에게 그렇게 테러를 막고 싶다면서 왜 정작 전략은 부재한 것인지 태클 걸던 때도 기억이 난다.



그때는 고위 관료 집단이 국가의 가치와 공공의 안녕을 추구하는 절차에 있어 심각한 하자가 있다는 일념 하에 주로 국방 안보 카르텔의 비대해지는 권한에 대해 일필휘지로 펜을 휘둘러댔다.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기사를 편집해 ‘미국의 특급 기밀’이란 엄청난 책을, 국토 안보 기능에 번지는 더러운 파시즘에 관해 ‘미국적 쿠데타’란 책을 펴냈고, 놀랍게도 이것은 트럼프와 ‘딥쓰로트’ 행정부가 출범하기도 훨씬 전의 일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오바마 대통령이 (이후엔 트럼프 대통령이) 구축하는데 실패한 지속적인 변화 체제의 전조적 징후를 논한 책들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SNS 언론 시대의 새로운 물결이 도래하는 와중에 NBC(를 비롯한 주류 언론사들)가 세상의 뉴스를 다 따라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은 어느 정도 명백한 사실이었다. 이에 덧붙여 더 이상 전선도 구체적 승리도 규정할 수 없는 새로운 유형의 전쟁을 과연 어떻게 기사로 전달할 것인가에 관해 지적인 도전 과제도 주어졌다. 본 기자의 눈에는 더 중대한 문제도 있었으니, 확실한 안전이나 안보를 장담할 능력도 안 되는 국가 안보의 지도자들과 장성들에게 이상하게도 새로운 시대에는 오히려 더 무제한적인 권한이 주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새로운 전쟁”에 임전하고 있음이 명약관화하지만, 전쟁을 승리로 이끌 위대한 지도자나 전략가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승전했다거나 갈등을 종식시켰다고 당당하게 선언할 존재가 워싱턴 정가에도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데이빗 퍼트레이어스, 웨슬리 클라크, 제임스 매티스, 허버트 맥매스터 등 향수 냄새 풀풀 날리는 군복 스타들이야 많겠지만 아쉽게도 결과에 책임질 수 있는 진정한 군사 안보의 리더는 찾아보기 힘들다. 상황이 이럴진데 소위 “전문 논평인”이랍시고 뉴스쇼에 등장하는 언론 패널들은 쿵짝을 맞춰줄 밖에 도리가 없다. 그 대단하다는 미국의 안보 리더들이 지금까지 거양한 결과를 적당히 무시할 배짱만 있다면야 쿵짝 맞추기는 쉽다. 불과 18년 전보다도 더 안전해진 중동 국가가 하나도 없고 세계 정치는 더 다극화해 버려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그 결과 말이다.



테러와의 영원한 전쟁이 일상이 된 이후 NBC(또는 다른 신문)에서 가진 토론에서 한 번도 본 기자의 소신과 논지를 벗어난 적은 없다는 데에 자부심을 가진다. 그 논지인즉슨 테러리스트들이 왜 싸움에 개입하는지 근본 원인을 이해하지 않고 테러는 절대로 뿌리 뽑을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우주와 사이버 체계를 포함한) 방공망 전력이 단순히 국방의 미래가 아니고 현재 진행형 전쟁 자산이란 점도 본 기자가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점이겠다.



NBC(등 주요 언론)가 전쟁을 보도해온 태도는 흡사 경마 중계와 유사하다. 도널드 럼즈펠드 대 군 장성, 폴 월포위츠 대 에릭 신세키, 중앙 정보국 대 딕 체니, 악질 고문관 대 세련된 세력 - 파견군 규모와 사상자 숫자는 뒤로 하고 -, 심지어 오바마 대 의회 - 그저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라서 관타나모 기지 폐쇄도, 핵 군축도, 푸틴 대응도 못하는 불쌍한 오바마 이야기는 덤으로 - 구도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국가 안보 관점을 이런 정치 소설로 둔갑시키는데 힘써온 셈이다. 미군 장성들과 안보 지도자들의 무능함에 관해 보도할 수 없는 현실에 낙담할 수밖에 없음이다. 미국이 중동에서 또 지금은 아프리카에서 저지르는 삽질이 언론의 일상적인 보도로 묻혀 눈감고 지나가 버리게 만듦에 충격과 공포를 느낌이다.



본 기자가 원체 까다롭고 격식이나 절차에 익숙치 않아 그간 싸지른 뒷처리 때문에 NBC가 얼마나 고생했을지 잘 알고 있다. 그저 핵 무기, 공군력, 알 카에다에 대해 알고 있는 기자의 자그마한 전문성으로 톰 브로코우 앵커와 방송사가 조금은 더 똑똑해지는데 기여하였기를 바랄 뿐이다. 또 결국 이라크에 대량 학살 무기가 존재하지 않았고 이를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던 NBC 이사진에 당당하게 납득시키려 한 소수의 몇 사람 중 하나가 본 기자였다는 사실에도 위안을 얻는다. 수 년 간 국가 안보 주제로 MSNBC 본사 제작진과 끊임없는 격론을 벌였고 크리스 매튜스에서 존 호켄베리까지 현명한 언론인들께 주제넘은 참견질을 일삼았다. 하지만 NBC를 포함한 주류 언론이 워싱턴 정가의 대변인으로 작용하는 듯한 최근 분위기를 접하며 언론의 사회적 사명이란 대의와 진실을 전달하는데 실패한 것은 아니었나 하고 무기력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로버트 윈드렘 선배가 2016년 대선 때 신설 탐사 보도팀을 맡아 복귀를 종용한 적이 있었다. 테러와의 영원한 전쟁이나 힐러리 클린턴의 호전적 매파 성향을 꿰뚫어 통찰하는 것이 기자에게 주어진 미션이라고 그땐 그렇게 여겼었다. NBC의 모든 임직원이 어깨 너머로 벼락 스타로 주류에 갓 입성한 이들을 예의주시하던 때였던지라 흥미롭기도 했다. 그런데 별안간 트럼프가 당선되어 모든 탐사 보도가 느닷없는 트위터 봇물에 휩쓸렸고, 국가 안보와 정치 보도 전면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격랑의 광경이 연출된 것이다. NBC가 안보 사안을 손익 계산의 문제에 연결지어 기사를 양산하기 시작했음을 기억한다. 아무도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는데 게임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던 것이다.



본 기자는 트럼프 행정부 하의 국가 안보 확립이란 것이 (세계 정세에서) 각광을 받지 못한 것은 고사하고 위험한 권세가 축조된 양상이라고 늘 주장해왔다. 지금은 더욱 제멋대로인지라 실질적 비판을 허용하지도 않고 있다. NBC조차 일정한 생기를 잃고 지리한 중재 역할이나 인습적인 수사에나 집중하여 정부를 옹호하거나 미묘하게 위기를 조장하고 있는데, 이는 정책의 결과보다 격식이나 절차에나 치중하는 꼴인 셈이다. 이 시점에서 뒤따르는 후속 보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미국민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부분에 관해 더 큰 우려가 생긴다. 이에 한 발 물러나서 미국이 벌여온 전쟁에 왜 좀처럼 변화가 없는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직장을 떠나며 고용주를 욕하고 비방하는 것이야 인지상정이겠으나 갖가지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NBC에서 함께 한 지난 세월은 보람찬 일이었다. 신시아 맥파든 기자 같은 사람과 일한 경험은 평생의 영예이다. 맥파든이나 케빈 모나한 기자로부터 방송에 관한 많은 것, 즉 내부 제보자의 시선을 제공한다거나 하나의 독창적 아이템이 얼마나 파워를 얻어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가 하는 점을 배웠다. NBC의 젊은 신진 기자들 역시 매우 탁월하다. 공격성 반론을 일삼아온 본 기자를 늘 지지해준 노아 오펜하임 PD에게 감사한다. 탁월한 전문 능력을 발휘해준 자넬 로드리게즈에게도 감사한다. 심야 뉴스 제작 스탭 모두 길고 지루한 본 기자의 보도에 늘 지지를 보내주었다. 방송 네트워크가 세상을 떠안을 것이라며 야심찬 계획을 묵묵히 밀고 나가는 필 그리핀 대표이사에는 늘 경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



동료들과 함께 이룬 성과에 보람을 느끼지만 더 할 일이 많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지금은 휴식을 취해야 할 순간이리라. 데스크의 독재적 간섭과 회사 내규의 지원 없이 다시 사색과 집필로 돌아오게 되어 만족스럽다. 물론 늘 내 필생의 과업이라 여겨온 일, — 비밀스런 사안을 찾아내 지루한 기사를 쓰는 일로 복귀할 것이고 미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기사 소스를 제공해주는데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세계 정세가 대단히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기에 기자가 주력해온 안보 분야에 관해서도 가만히 앉아 생각하고 보충할 시간이 필요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국가가 포로로 잡힌 작금의 정황이라면, 모든 사람이 느끼듯이 기자 또한 미국이 잃은 것들이 참으로 많다고 생각한다. 언론 보도를 이해 못하거나 정권의 압력을 못 느끼는 사람들은 제도권의 통제나 심지어 당파적 이익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들이 말하는 당파란 것이 뉴욕 경제계나 워싱턴 정가를 나머지 미국민들과 분리하여 지칭한 것이라면 그들이 옳을지 모르겠다고, 외부자들과 정부 내 제보자들을 향해 신랄하게 응답하련다.



트럼프 대통령의 통렬한 삽질들을 바라보면서 기자가 처음부터 스텝이 꼬였었구나 하는 점을 깨닫는다. — 대러시아 관계를 풀어보려 한다거나, 북한 비핵화에 주력한다거나, 시리아 주둔 미군을 철수시킨다거나, 아프리카 파견에 의문을 표시한다거나, 정보 기관 및 연방 수사국과 각을 세운다거나 하는 삽질 말이다. 물론 대통령은 무식하고 무능한 사기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NBC가 거의 기계적인 논조로 반대 의견을 내세우며 어쩌면 더 큰 갈등이나 전쟁을 불러올지 모를 정책을 재빠르게 옹호하며 나선 데에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미국은 시리아에서 철수하면 안 되는 것인가?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대담한 액션이 그렇게 못할 짓이란 말인가? 러시아 관련해서도 — 미국 민주 정치의 토대가 그토록 조작에 취약한 것이었나 새삼 통탄하고 근심할 일이지만서도 — 아니 그럼 다들 냉전 시대로 돌아갈 작정인가? FBI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 그간 그토록 나쁜 일을 벌여온 집단이 하루 아침에 영웅이 되는 것인가?



트럼프 아니더라도, 현대 정치의 새로운 지형에서 유치한 소셜 미디어 놀이에는 이미 진력이 나 있던 차이다. 그리고 그 “사이클”이란 것 때문에 NBC(뿐만 아니라 모든 주류 언론)의 현직 언론인들도 숨조차 제대로 고르기 힘든 아픔을 겪고 있긴 하다. 개인의 삶에 대한 것이든 강경한 뉴스에 관한 것이든, 현재 우리 시대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이 너무 먼 길을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오늘날 정보의 홍수라는 현상이 국가의 민주화와 사회의 통합을 촉진하는 만능 열쇠라거나 디지털 열반의 신세계가 될 수는 없음에 기자 또한 동의한다. 이미 국민들 사이에 스마트폰 및 소셜 미디어에 대한 피로증이 생겨나고 있다고 생각하며, 정보 과다의 역효과나 저널리즘의 사회적 역할이 간편 클릭이나 채팅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추정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계에서 물러나는 즉시 사회 전체가 엄청난 SNS 후유증을 겪을 것이라 장담한다. 그러하기에 NBC와 모든 주류 언론의 앞에는, 새로운 도전과 기회가 여전히 잔존하는 것이다. 이런 내용에 대해선 앞으로 더 깊게 생각하여 글로 남기고자 한다.



컨설턴트란 직종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해, 컨설팅 외주 계약을 통해 모든 회사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쏙 듣고 싶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기자가 회고하기에 NBC는 적어도 그런 뻔한 컨설팅 짓거리 하는 언론사는 아니었다. 당연한 소리이지만 기자 자신도 데스크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쏙쏙 고분고분 갖다준 역사가 없어 이에 보람을 느낀다. 모든 회사와 기관이 두려워하는 가치 — 변화, 리스크, 차별화 같은 것들(사실 역설적으로 그들 기업의 창의성을 돋구는 동력 아니겠는가.) — 지금까지 기자의 보도 지침에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들이다.



집필과 논평의 주업으로 복귀하게 되어 기쁘다. 올 겨울엔 지난 십여 년을 몰두한 9.11 음모론 관련 소설의 탈고 작업을 끝마칠 예정인지라 들떠 있다. 이 작품은 소설이긴 하지만 테러분자들을 색다른 시각에서 이해하려는 저작의 일환이다. 또한 새로운 책 두 권에 관한 프로젝트도 착수할 예정인데, 방송사 주변을 배경으로 기밀 정보를 취급하는 매력적 제보자와 외톨이 기자에 관한 픽션이 그중 하나이다. 지금까지 읽었다면 눈치 채셨겠지만, 왜 미국은 항구적 전쟁 수행 정책에서 좀처럼 손을 뗄 수 없는가를 다룰 논픽션 책도 하나 준비하고 있다. 대통령제와 리더쉽에 관한 분석을 다룬 미디어 비평이야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미국의 국가 안보와 관련한 비평서는 많은가? 그렇지 않다. 현재의 화염과 분노 정책을 넘어서서 실천가능한 다른 대안을 찾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행운을 빌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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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jor Incidents from European History over

International Relations Realm




국제 관계학의 역사에서 시대별 맥락을 짚을 때 반드시

검토하고 분석하는 몇 가지 역사적 사건이 있어요.


그 역사와 시기를 보면 15세기에서 20세기까지 백여 년

언저리의 간격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여 매우 흥미롭죠.


오늘은 이런 국제적 사건과 국가간 조약

역사를 요약하여 정리해 볼까요.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Fall of Constantinople 



1453년이 중세를 끝장 낸 연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해 서양 중세사 최고의 사건인즉슨.. 비잔틴 제국, 즉

(동)로마 제국이 오스만 제국의 공격으로 멸망한 일일테죠.

무려 2200년을 이어온 제국이 멸망한 사건이니까요.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 통치의 절정을 찍고 6백 년 넘게

존속한데다 폐쇄적 기독교 문화 속에 골골하던 유럽을

아득히 초월했던 14~17세기 세계의 패권국이자

동시대 유럽 군주들 공공의 적이었습니다.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의 나비 효과로 지중해 동쪽 항로가

막혀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대서양 일주 항로를 개척했으니

역사의 거대한 새옹지마이자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죠.

(동양의 신비… 후추를 어디서 수입하냐고?!)


이베리아 반도의 대항해 시대, 피렌체 등 도시 국가들의

르네상스 인문 혁명, 거기에 북독일의 종교 개혁이 바야흐로

적정 혼배합하여 유럽의 근대를 열어 젖히는 찰나였어요.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 Peace of Augsburg 



1517년에 95개조 반박문으로 촉발된 종교 개혁

일단락된 사건이자 루터교를 공인하여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신교를 인정한 계기의 바로 그 사건입니다.


16세기 중반 합스부르크 황제 카를 5세에 맞서 전쟁하던

신교 영방국들이 페르디난트 1세와의 극적인 합의를 통해

루터교 종파를 공인한 군주간 합의 사건이라 볼 수 있어요.

(페르디난트는 카를의 동생이자 독일 대리 통치자..)


페르디난트는 당시 선제후와 농민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져간 교세를 꺾기보다 상호 협력하여 자치를 인정하는

개혁 성향으로 독일권 제후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사람..


화의 내용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개별 제후의 종교 통치권을

황제나 교황과 분리하여 최초로 인정했다는 바로 그 점입니다.

해당 영지의 종교를 제후가 택한 종파로 정한다는 내용이죠.


허나 루터교는 인정 받았는데 당시 더 진보적 성향이던 칼뱅

장로교 제후국들이 제외된 문제가 여전히 잔존한 상황이었죠.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Peace of Westphalia 



상호 경쟁하던 국가의 군주들이 독일 뮌스터와

오스나브뤼크에 모여 30년 전쟁의 종식을 선언한

바로 그 조약입니다. 오늘날 국제법의 효시라 하죠.

(요샌 웨스트팔리아로 부르기 시작하기도..)


1618년에 시작한 종교 전쟁 후반부 중요한 변곡점이자

네덜란드 독립 전쟁과도 맞물린 17세기 최대의 사건이

바로 30년 전쟁입니다. 근대 최초의 국제전이라고 하죠.


루터와 칼뱅에서 시작한 투쟁이 130년 만에 여기까지 이른

겁니다만, 프로테스탄트 전쟁을 단순한 종교 문제로 보면

부족하고 교황과 황제 중심 거대한 국정 체계 패러다임이

새로운 시대로 전환하는 용트림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신교 투쟁의 결과물이 결국 개별 제후가 다스리는 봉토의

자치 주권을 인정하는 내용인 것에서 알 수 있죠. 이제 황제의

통치를 받는 제후의 시대가 아니라 독자적 군주가 된 겁니다.


주권, sovereignty의 개념이 본격화하고 이로 인해 절대

왕정 및 왕권 신수설이 대두되는 발판을 마련하지만 동시에

자유주의의 맹아가 싹트는 동인도 마련되기 시작하는 거죠.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 Peace of Utrecht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끝내고 체결한 조약입니다.

생소한 전쟁일텐데 유럽 왕가 간 세력 균형전으로 이해해요..


스페인과 오스트리아를 다스리던 ‘지는 해’ 합스부르크

프랑스를 다스리는 ‘뜨는 해’ 부르봉 왕가가 주인공인데요.

(부르봉 킹이 바로 ‘태양왕’ 루이 14세. 확장욕 쩌는 분..)


스페인 왕위 계승전에 루이 14세 손자인 앙주 공 필리프가

선순위로 떠오르는 상황을 오스트리아와 영국과 네덜란드가

막아서며 발발한 전쟁입니다. 부르봉이 스페인과 프랑스를

병합하면 견제 불가능한 거대 국가가 탄생하기 때문이죠.


의외로 (그때까지 약체로 분류되던) 영국의 견제가 제대로

먹혀 부르봉이 스페인을 계승하되 프랑스 왕위는 포기하는

조건으로 협상이 타결됩니다. — 루이 14세, 야욕 좌절…


유럽 영토에서 어느 한 나라가 잘 나가 바보짓을 벌이면

엇비슷한 국력의 나라들이 합심하여 다구리를 먹이는…

현재도 이어지는 불문률이 여기서부터 시작된 겁니다.

주권에 영토 개념을 넣는 법리도 형성되었고요.




1815년, 빈 회의 Congress of Vienna 



나폴레옹 전쟁을 끝내고 프랑스를 패자로 공인하며

이후 전 유럽에 불어닥칠 자유주의 바람에 제동을 걸고

왕정 복귀를 천명한, 보수 반동의 대명사격 사건입니다.

오스트리아 재상 메테르니히가 주재한 걸로 유명하죠.


프랑스 대혁명 후 집권한 나폴레옹은 황제로서(!) 유럽

각국에 전쟁을 벌였는데요. 역설적으로 유럽 전역에 퍼진

것은 혁명이 낳은 프랑스의 정신이었어요. 자유, 평등, 박애.


회의 대표자는 힘센 나라의 왕과 귀족이었죠.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그리고 프랑스. 자국에 혁명이 수입되면

꼼짝없이 목이 날아가는 분들.. 국경선과 전리품 배당을 놓고

혈안이 되어 똥고집을 부리며 진척이 더디던 중이었는데요.


보나파르트가 유배지를 탈출해 파리로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에

다들 화들짝 놀라 협정서에 조인을 했다고 해요. 쌩 코메디..

(메테르니히의 댄스 파티도 찾아 보세요. 배꼽을 잡을 듯..)


이른바 유럽 협조 체제, Concert of Europe이란 국가간

공조가 명문화하여 등장한 거에요. 핵심은 위 위트레흐트 때

다구리.. 와 대동소이하고 이 시스템이 40여 년을 유지했죠.


그러나 한번 불씨를 당긴 자유주의의 대세는 거스를 수 없어요.

30년 7월 혁명(‘레미제라블’ 배경), 32년 영국 선거법 대개혁,

1848 연쇄 혁명과 공산당 선언… 이미 불길은 타오른 거죠.




1919년, 베르사유 조약 Treaty of Versailles 



제1차 세계 대전을 종식하고 독일의 패배를 선언하며

막대한 배상금 조건으로 두번째 전쟁의 빌미를 제공한,

독일 제국과 연합군 승전국들 사이의 조약입니다.


빈 회의로 패전국 프랑스가 실질적으로 잃은 것이 없던 데 비해

베르사유 조약의 결과는 독일인들에게 참담한 치욕이었어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배상금으로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닥쳤고

바이마르 공화국은 몰락했으며 히틀러 집권의 계기가 되었죠.

일찍이 경제학자 케인스가 이 비극을 예견했다는 거 아시죠.

(이때 협상 대표단 중 일원이었다가 참다 못해 사퇴..)


특히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뻘짓은 어마어마했어요. 그의

하이라이트는 이렇다 할 강제력을 갖지 못한 국제 연맹 창설로

‘마치 무언가 해결된 듯한’ 국제 관계의 판타지를 조장한 점이죠.


장렬한 뻘짓의 대행진이 전간기 20년의 나날을 채워요.

바야흐로 한스 모겐소가 현실주의로 스타가 될 조건이 형성..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는 시대로 흘러가고 있었죠.


거기에 세상은 대공황의 광풍에 휩싸이고 있었고요.

이런 악조건에 어떻게 전쟁이 또 안 날 수 있겠어요.




1945년, 얄타 회담 Yalta Conference 



제2차 세계 대전을 끝내고 루스벨트와 스탈린과 처칠이

모여 깡패처럼 전후 국제 질서를 결정지은 그 회담입니다.

우리나라는 여기 놀아난 직접 피해 당사자국… 아시죠?


베르사유 조약이 종전 직후 전쟁 문제를 처리하는 성격인데

반해 얄타 회담은 종전이 임박한 시점에 전후 문제를 미리

조율하는 강대국 슈퍼 파워들의 미래 회의 같은 거였죠.


이 사건의 가장 큰 상징성은 팍스 브리태니카의 레짐이 이미

저물었다는 것, 그리고 미국의 대항마로 소련이 등장하여

냉전 시대의 시작을 알린 실질적 계기라는 점이에요.

(실제 미국은 소련의 태평양 전쟁 참전을 이끌어냄.)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한반도가 둘로 갈라져 지금까지도

폐해를 입어야 하는 원인을 만들었죠. 도대체 왜 때문에?!

패전국 일제가 아닌 우리가 분단되어야 하는 거죠?!


그렇게 냉전이 시작하여 1989년 동유럽 혁명까지 존속해요.

하지만 이 땅의 냉전 파편은 아직도 진행 중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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