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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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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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use of Wisdom, the Greatest Library of Baghdad

During Islamic Golden Age in Medieval Times










세계 어디를 가든 그 나라 역사 최고의 전성기를 꼽을 수 있어요.

정치의 양상이야 각기 제각각이지만 한 국가가 전성기를 달리고

있을 때 역사와 문화에서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지요.



현명한 통치자가 신분에 상관 없이 능력에 따라 사람을 끌어모으고

그들의 능력을 바탕으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운다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조선 세종 및 영정조, 잉글랜드 엘리자베스 1세,

프랑스 루이 14세 등… 쉽게 감이 오시죠?



5~15세기 유럽이 암흑기를 맞고 있을 때 세계사의 전성기는

어느 지역 어느 나라에서 꽃피고 있었을까요. 즉 중세 시대

정치 문화적 최강국을 어디로 볼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죠.



(일단 중국의 거대한 경제 규모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이슬람 제국을 상정하고 싶습니다. 서로마 제국의 패러다임이

붕괴하고 동로마와 인도, 중국을 잇는 허브로서 교역과 치세의

정점을 찍었거든요. 배경에는 종교의 뒷받침이 있었고요.



이슬람 제국의 황금 시대는 우리가 주로 관심을 갖는 유럽의

근대사와 간접적 연속성이 성립하기 때문에 또한 중요해요.

르네상스의 개혁은 사실 이슬람으로부터 온 것이었거든요.



이 주장의 근거 중 하나를 여기에 제시할 수 있어요.

중세 당시 세계 최고의 학술원이자 도서관이 바로

이슬람 제국의 수도 바그다드에 있었거든요.



House of Wisdom, Bayt al-Hikma, بيت الحكمة …

지혜의 집 또는 지혜의 전당으로 불리던 바로 그곳이에요.










이슬람 제국의 전성기는 아바스 왕조의 흥망성쇠와 운명을

같이 합니다. 8세기 중반 우마이야 왕조를 전복하고 성립한

두번째 칼리파 왕조로서 아랍인 중심 정치에 치중했던 전대에

비해 출신 배경을 초월해 보편적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흔히

이슬람의 황금 시대라 하면 아바스 왕조 치세를 가리키죠.



칼리파란 기독교의 교황과 황제를 합한 위치입니다. 종교와

정치를 통합한 최고 통치자를 뜻하죠. 이슬람교 발흥 초기만

하더라도 제정 일치를 이루어내지만 아바스 조 후반에

가서 정치 실권의 힘이 빠지게 되죠.



아바스 조 2대 군주 알 만수르는 바그다드로 천도한 후

7세기 초에 망한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요. 엄청난 양의 중세 서적이 쏟아져 들어오자

사산 조의 전례를 본따 궁정 도서관을 설립해요.



도서관만으로는 충분치 않았고 지식의 보고가 대중에게 널리

퍼질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필요했어요. (인쇄술..은 훨씬

나중 시대 얘기고) 도서를 필사해서 보급할 수 있을 텐데

종이가 충분했을까요..



8세기 중반까지 서아시아의 기록 매체는 양피지였어요.

(유럽은 11~12세기까지도..) 종이보다 더 두껍고 잘

찢기고.. 당시 제지 기술은 전 세계에서 중국 등

동아시아 권역에서만 보유하고 있었거든요.



751년에 호재가 있었어요. 탈라스 전투… 역사상 최초로

이슬람 제국과 중국 정권이 전쟁을 벌였어요. 문명의 충돌!

당나라가 약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팽창하고 있었고

이슬람이 이에 적정한 제동을 건 거에요.



지금의 카자흐스탄 쪽에서 양국 지방 장군들끼리 맞붙었는데

이슬람이 이기고…는 별 의미없고, 중요한 건 이때 당군 포로

중에 제지 기술자가 섞여 드디어 이슬람으로 넘어온 거에요.



(이 과정을 확인할 수는 없으니 이슬람으로 전승된 계기가

탈라스 전투가 아닐 수도 있다는 반대 학설도 물론 있어요.)



사산 조가 망하면서 이슬람으로 넘어온 페르시아인 출신

유력 가문이 이슬람 최초의 제지소를 차렸다고 해요. 전문

필사가들이 고용되어 열심히 도서를 보급했고요.










아바스 조의 전성기는 5대 칼리프 하룬 알라시드가 다스린

8세기 말 ~ 9세기 초인데 천일야화에도 등장하는 왕이에요.

이 사람의 아들로 7대 칼리프 알 마문이 즉위하는데 궁정

도서관의 위용은 이 시기에 정점을 찍게 됩니다.



군주 입장에서 중요한 점은 자국어인 아랍어로 보편적 지식을

최대한 널리 보급하는 것이었어요. 번역가, 문필가, 필사가,

제지업자, 제책업자, 문구업자 등등의 직역이 필요한 일이죠.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 페르시아어, 산스크리트어로 된

철학, 수학, 천문학, 의학, 화학, 물리학, 지구과학, 약학, 생물학,

지리학의 서적들이 저 다양한 사람들 앞에 펼쳐졌어요. 그리스,

로마, 소아시아, 이집트, 아프리카, 페르시아, 중앙 아시아, 인도

등 당시 기준으로 온 세상에서 다 모인 지식의 총량인 거죠.



알 마문은 번역 작업한 종이 묶음의 무게를 달아 그만큼의 금화를

하사했다고 해요. 이 소문이 아라비아 전역에 퍼지니 어떤 일이

벌어졌겠어요? 아랍인, 시리아인, 유대인, 페르시아인, 터키인,

쿠르드인, 인도인 가릴 것 없이 구름떼처럼 인재가 모여든 거죠.

(나중에 가면 일부 동로마인이나 유럽인들까지 가세했죠.)



치사하게 아랍인만 우대한 전대 우마이야 조와 달리 아바스 조는

민족이나 배경으로 차별하지 않고 철저하게 능력을 중시했어요.

번역 결과만 있으면 보상한다는 원칙이 지켜졌죠.



번역… 이란 작업을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단순히 말대 말을

기계적으로 치환하는 작업이 아니에요. 언어에는 문화 배경이

녹아들게 마련이므로 상당수 작업에서는 어문의 학술 배경을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해졌어요. 곧 전문 번역이 가능한 각

분야의 학자 집단이 모여들고 양성될 조건이 형성된 거죠.



학자들이 모여 뭘 하겠어요. 아무 때나 그곳에 가면 누구도

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토론, 실험, 저술, 연구를 할 수 있는

거에요. 학회가 형성되고 도서관은 학술원이 되었죠. 나중엔

천문 관측대도 만들어줘요. 전쟁으로 갈 곳 잃은 학자들을

받아 피난처도 제공했다고 해요. 대단하죠?



이곳을 체험한 많지 않은 유럽인 학자의 기록에 따르면 오늘날

도서관과 유사하게 수학, 천문학, 의학 등 분야별로 각기 다른

방마다 수많은 책을 분류해 보관했다고 해요. 당시 유럽엔

그런 거 없었죠. 유럽인 학자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나요.

듣도 보도 못한 고금의 명저가 거기만 가면 다 있었으니..










이곳이 바로… 이슬람 제국 문화의 꽃, 지혜의 집이에요!

고대사의 불가사의 중 하나로 알렉산드리아도서관

꼽힌다는 것 아시죠. 고대에 알렉산드리아가 첨단 지식의

전당이었다면 중세엔 바그다드에 이곳이 있었던 거죠.

(알렉산드리아는 지금의 이집트 해안에 면한 곳..)



하지만 참으로 슬프게도 바그다드 지혜의 집은 지금 남아

있지 않아요. 1258년 원나라 몽골 군과 벌인 바그다드

공방전 때 불타 없어져요.ㅠ 아, 왜 저절로 탄식이…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로마 침입으로 없어졌다는 설이..)



유형의 문화재는 사라졌지만 무형의 지식은 형태를 달리 하여

영원히 살아남아요. 특히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서적이 정작

본고장 유럽에선 실전된지 오래였어요. 지혜의 집에는 남아

있었어요. 아랍어 번역본이 다시 라틴어로 재번역되어 다시

유럽으로 넘어가니, 르네상스의 지적 원동력이 바로 이거에요.



지혜의 집에서 형성된 담대한 학풍은 역사에 이름을 떨친 많은

대학자를 길러내기도 했어요. 너무나 많지만 대표적 인물들은…



페르시아, 바빌로니아, 그리스, 인도의 수학을 집대성한 9세기

대수학의 아버지 알 콰리즈미, 그리스와 아랍의 철학과 의학을

종합해 유럽 중세 의학의 기초를 세운 11세기의 이븐 시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서에 주해를 제공해 르네상스 사상에

다리를 놓은 12세기 이베리아의 철학자 이븐 루시드 등이죠.



이븐 루시드가 정립한 사상은 단테 알리기에리에게도 영향을

미쳤어요. 신곡에 그를 회상하며 극찬한 구절도 등장하죠.










르네상스의 역사를 피상적으로만 훑으며 유럽 중심 사관을

벗어나지 못한 채 단테나 다 빈치 정도 끄적거리는 것으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한 듯이 만족해 하는 실수를,

우리가 흔히 저지르고는 하쟎아요.



조금만 시각을 넓혀 시간과 공간을 확장하여 애정을 갖고 역사를

바라보면 현대사의 흐름을 결정 지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어느

특정 지역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권 모든

사람들이 전 지구적으로 노력하고 영향을 주고 받은 끝에

이루어낸 결과임을 깨달을 수 있답니다.



지혜의 집에 보존된 고대 철학의 보고가 유럽으로 전달되어

중세 후반 스콜라 철학의 마지막 불을 활활 태웠듯이, 단테는

루시드의 철학서로 소양을 쌓고 코페르니쿠스가 바그다드에서

넘어온 천문서로 지동설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



현대인들이 흔히 접하고 있는 동서양 문화의 증폭 합성은 이미

천 년도 더 전에 바그다드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일이랍니다.



아래는 지혜의 집에 대해서 더 알아볼 수 있는 동영상이에요.

아랍 역사 문화를 잘 아는 사람이 만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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