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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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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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War China:

Great Leap Forward & Cultural Revolution




오늘날 중국은 미국에 이은 제2의 강대국이죠.

또 중국은 동아시아 역사에서 항상 강대국이었습니다.


한번쯤은 들어봤을 ‘조공’이라는 봉건적 외교 원리가

중국의 이런 지역적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요.


중화 국력의 대외 신인도에 의문이 생긴 기간은

수천 년 역사에서 그리 길지는 않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아편 전쟁부터 덩 샤오핑 집권 전까지 시기이겠죠.


현대 중국의 정통성은 1949년 건국한 중화인민공화국이

계승하는데요. 오늘날과 같은 경제력의 기반은 1978년

집권한 덩 샤오핑으로부터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49~78년까지 중공은 국정의 역대급 저점을 찍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들의 50~60년대를 지배한 정책 실패는 처참했죠.


두 가지 사례가 있었습니다.

대약진 운동과 문화 대혁명이 그것인데요.

마오이즘의 속빈 민낯을 드러낸 사건이었어요.




대약진 운동, 마오의 경제 공산화 실책



마오 쩌둥이 실시한 대표적 병크 정책들입니다.

굳이 한줄 요약하자면 대약진 운동은 공산주의 경제 정책,

문화 대혁명은 대중 공산주의 운동인데요. 둘다 대실패했죠.


대약진 운동은 소련처럼 산업 노동자 계급이 중심이 아니라

농경제 중심의 체제 구도를 들고 나온 초기 중공의 구조적

특징을 보여줍니다. 농촌 중심의 변혁을 일으키려는 시도였죠.


일종의 집산화 체제 구축이라고 보면 됩니다. 부농이나 자영농의

존재를 부정하고 지역 촌락 단위로 생산 공동체를 인위적으로

만들고 이 안에서 농업 및 공업 생산을 주도하게 한 거에요.


마을 단위로 생산 수단을 철저하게 공유하여 다 함께 경작하고

밥을 지어먹는 것도 다 함께 한다는 발상이에요. 흔히 시체말로

원시적 공산주의라고 하는 것을 현대에 재현한 거에요.


언뜻 그럴 듯하게 들리긴 하죠? 하지만 이게 가능하겠어요?

‘철저하게 생산 수단을 공유한다’고 했는데 그 실상이…ㅠ


개인 단위로는 숟가락 하나도 가질 수가 없는 구조였어요.

커다란 농경기에서 사소한 잡기까지 모든 것을 공유한다는

발상이니 인간 행위의 미세한 프로세스를 모두 통제한 거죠.


이런 상황에서 사회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어떻게 나오겠어요.

자기 것을 가질 수가 없는 상황이니 생산량 따위 개나 줘버려..

이런 형국이 되어 버린 거에요.


생산 목표를 달성할 수가 없는 거죠. 그 목표량을

달성해야 그 공동체의 인구를 먹여 살릴 텐데 각자

자기 앞가림 하기도 바쁜 거에요.


이기적인 사람들이군, 하고 비판하지 마세요. 원래 인간의

본성이 그런 거에요. 현대의 이성적인 한국인이라 한들 이런

상황이라면 같은 행동 패턴을 보일 수밖에 없어요.


인간 본성에 대한 기본적 이해도 없이 이념에 휩쓸려

정책을 개발한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죠.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수천만 명이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공식적인 통계로는 아사자 4천만 명 정도라고..ㅠ

58년에서 62년까지 밀어붙인 결과였죠.




문화 대혁명, 마오이즘식 보수 반동 쿠데타



문화 대혁명은 사실 대약진 운동의 결과입니다.

마오에 대한 지지도가 급감하니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일종의 마오 신격화 운동을 벌인 것이 문혁입니다.


반동 쿠데타를 민중 운동화한 것이라고 보면 되요.

홍위병이라고 하는 청년(또는 청소년) 집단이 등장합니다.


10대 후반에서 20대까지 젊은 사람들이 마오의 사주를 받아

몰려다니며 우파 인사들을 때려잡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때려잡는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생긴 일입니다.

피해자를 조롱하는 두건을 씌우고 때려죽였다고 해요. 헐.


직접 때려잡은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시기 미국에선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어 사람을 ‘사회적으로’ 때려잡았죠.


인명을 살상하는 것으로 끝났으면 또 모르겠는데

오늘날 중국사에 더 치명적인 병크가 또 있었죠.

반달리즘이라고.


홍위병들이 유무형 문화재를 파괴한 거에요.

공자의 사당을 부숴 버리거나 전통 예술 장인들을

때려잡거나 하는… 더 끔찍하죠.


패왕별희라는 영화를 보신 분들 많을 거에요.

후반부에 세 명의 주인공이 홍위병에 둘러싸여 서로

자아비판을 하는 장면이 바로 이 상황인 거에요.


덕분에 오늘날 중국은 자국 문화재가 자국에 있지 않고

그들이 인정하지 않는 타이완에 더 많은, 웃기지도 않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하네요.




대체 왜 이런 일이



한국의 보수 기성 언론은 이런 역사를 보통 공산주의

체제의 폐해 운운하며 단편적으로만 전하는 것 같아요.

의외로 그다지 정확하게 분석은 하지 않는데요.


물론 공산주의의 한계로 볼 수도 있어요.

공산당 정권이 빚어낸 역사 자체가 커다른 모순 덩어리죠.


공산주의 국가에게만 특징적인 현상이었다기보다

마오이즘 독재가 극에 달한 시기의 정책 실패에 가깝겠죠.

독재 정치의 일반적 현상 중 일부라고 해석할 수 있을 거에요.


독재 체제가 경제를 그르치고 대중 프로파간다를 통해

역사를 왜곡하는 일은, 오늘날 제3세계 국가들을 둘러봐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니까요.


이승만 정권이나 박정희 정권의 프로파간다도 비슷했어요.

이승만은 소위 말하는 ‘국부’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려고

애썼죠. 국부주체나.. 뭐가 다르죠.


박정희 정권은 프로파간다를 발전시켜 법제화해 버렸어요.

그래서 유신 체제가 탄생했죠. 김일성이 북에서 주체 사상을

푸쉬한 바로 그 순간에 말이에요.


대약진, 문혁, 국부, 유신, 주체, 매카시즘…

어쩌면 전후 봉건적 근대성이 아직 종식되지 않은 세계의

마지막 보수 반동적 사건들인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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