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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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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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상스의 길을 열어준 중세 시대 세계 최고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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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동설과 지동설, 요하네스 케플러와 천문학자들
  3. 2018.10.10
    정치학과에서는 뭘 배우나.. 서브 장르는 무엇무엇




The House of Wisdom, the Greatest Library of Baghdad

During Islamic Golden Age in Medieval Times










세계 어디를 가든 그 나라 역사 최고의 전성기를 꼽을 수 있어요.

정치의 양상이야 각기 제각각이지만 한 국가가 전성기를 달리고

있을 때 역사와 문화에서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지요.



현명한 통치자가 신분에 상관 없이 능력에 따라 사람을 끌어모으고

그들의 능력을 바탕으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운다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조선 세종 및 영정조, 잉글랜드 엘리자베스 1세,

프랑스 루이 14세 등… 쉽게 감이 오시죠?



5~15세기 유럽이 암흑기를 맞고 있을 때 세계사의 전성기는

어느 지역 어느 나라에서 꽃피고 있었을까요. 즉 중세 시대

정치 문화적 최강국을 어디로 볼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죠.



(일단 중국의 거대한 경제 규모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이슬람 제국을 상정하고 싶습니다. 서로마 제국의 패러다임이

붕괴하고 동로마와 인도, 중국을 잇는 허브로서 교역과 치세의

정점을 찍었거든요. 배경에는 종교의 뒷받침이 있었고요.



이슬람 제국의 황금 시대는 우리가 주로 관심을 갖는 유럽의

근대사와 간접적 연속성이 성립하기 때문에 또한 중요해요.

르네상스의 개혁은 사실 이슬람으로부터 온 것이었거든요.



이 주장의 근거 중 하나를 여기에 제시할 수 있어요.

중세 당시 세계 최고의 학술원이자 도서관이 바로

이슬람 제국의 수도 바그다드에 있었거든요.



House of Wisdom, Bayt al-Hikma, بيت الحكمة …

지혜의 집 또는 지혜의 전당으로 불리던 바로 그곳이에요.










이슬람 제국의 전성기는 아바스 왕조의 흥망성쇠와 운명을

같이 합니다. 8세기 중반 우마이야 왕조를 전복하고 성립한

두번째 칼리파 왕조로서 아랍인 중심 정치에 치중했던 전대에

비해 출신 배경을 초월해 보편적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흔히

이슬람의 황금 시대라 하면 아바스 왕조 치세를 가리키죠.



칼리파란 기독교의 교황과 황제를 합한 위치입니다. 종교와

정치를 통합한 최고 통치자를 뜻하죠. 이슬람교 발흥 초기만

하더라도 제정 일치를 이루어내지만 아바스 조 후반에

가서 정치 실권의 힘이 빠지게 되죠.



아바스 조 2대 군주 알 만수르는 바그다드로 천도한 후

7세기 초에 망한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요. 엄청난 양의 중세 서적이 쏟아져 들어오자

사산 조의 전례를 본따 궁정 도서관을 설립해요.



도서관만으로는 충분치 않았고 지식의 보고가 대중에게 널리

퍼질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필요했어요. (인쇄술..은 훨씬

나중 시대 얘기고) 도서를 필사해서 보급할 수 있을 텐데

종이가 충분했을까요..



8세기 중반까지 서아시아의 기록 매체는 양피지였어요.

(유럽은 11~12세기까지도..) 종이보다 더 두껍고 잘

찢기고.. 당시 제지 기술은 전 세계에서 중국 등

동아시아 권역에서만 보유하고 있었거든요.



751년에 호재가 있었어요. 탈라스 전투… 역사상 최초로

이슬람 제국과 중국 정권이 전쟁을 벌였어요. 문명의 충돌!

당나라가 약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팽창하고 있었고

이슬람이 이에 적정한 제동을 건 거에요.



지금의 카자흐스탄 쪽에서 양국 지방 장군들끼리 맞붙었는데

이슬람이 이기고…는 별 의미없고, 중요한 건 이때 당군 포로

중에 제지 기술자가 섞여 드디어 이슬람으로 넘어온 거에요.



(이 과정을 확인할 수는 없으니 이슬람으로 전승된 계기가

탈라스 전투가 아닐 수도 있다는 반대 학설도 물론 있어요.)



사산 조가 망하면서 이슬람으로 넘어온 페르시아인 출신

유력 가문이 이슬람 최초의 제지소를 차렸다고 해요. 전문

필사가들이 고용되어 열심히 도서를 보급했고요.










아바스 조의 전성기는 5대 칼리프 하룬 알라시드가 다스린

8세기 말 ~ 9세기 초인데 천일야화에도 등장하는 왕이에요.

이 사람의 아들로 7대 칼리프 알 마문이 즉위하는데 궁정

도서관의 위용은 이 시기에 정점을 찍게 됩니다.



군주 입장에서 중요한 점은 자국어인 아랍어로 보편적 지식을

최대한 널리 보급하는 것이었어요. 번역가, 문필가, 필사가,

제지업자, 제책업자, 문구업자 등등의 직역이 필요한 일이죠.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 페르시아어, 산스크리트어로 된

철학, 수학, 천문학, 의학, 화학, 물리학, 지구과학, 약학, 생물학,

지리학의 서적들이 저 다양한 사람들 앞에 펼쳐졌어요. 그리스,

로마, 소아시아, 이집트, 아프리카, 페르시아, 중앙 아시아, 인도

등 당시 기준으로 온 세상에서 다 모인 지식의 총량인 거죠.



알 마문은 번역 작업한 종이 묶음의 무게를 달아 그만큼의 금화를

하사했다고 해요. 이 소문이 아라비아 전역에 퍼지니 어떤 일이

벌어졌겠어요? 아랍인, 시리아인, 유대인, 페르시아인, 터키인,

쿠르드인, 인도인 가릴 것 없이 구름떼처럼 인재가 모여든 거죠.

(나중에 가면 일부 동로마인이나 유럽인들까지 가세했죠.)



치사하게 아랍인만 우대한 전대 우마이야 조와 달리 아바스 조는

민족이나 배경으로 차별하지 않고 철저하게 능력을 중시했어요.

번역 결과만 있으면 보상한다는 원칙이 지켜졌죠.



번역… 이란 작업을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단순히 말대 말을

기계적으로 치환하는 작업이 아니에요. 언어에는 문화 배경이

녹아들게 마련이므로 상당수 작업에서는 어문의 학술 배경을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해졌어요. 곧 전문 번역이 가능한 각

분야의 학자 집단이 모여들고 양성될 조건이 형성된 거죠.



학자들이 모여 뭘 하겠어요. 아무 때나 그곳에 가면 누구도

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토론, 실험, 저술, 연구를 할 수 있는

거에요. 학회가 형성되고 도서관은 학술원이 되었죠. 나중엔

천문 관측대도 만들어줘요. 전쟁으로 갈 곳 잃은 학자들을

받아 피난처도 제공했다고 해요. 대단하죠?



이곳을 체험한 많지 않은 유럽인 학자의 기록에 따르면 오늘날

도서관과 유사하게 수학, 천문학, 의학 등 분야별로 각기 다른

방마다 수많은 책을 분류해 보관했다고 해요. 당시 유럽엔

그런 거 없었죠. 유럽인 학자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나요.

듣도 보도 못한 고금의 명저가 거기만 가면 다 있었으니..










이곳이 바로… 이슬람 제국 문화의 꽃, 지혜의 집이에요!

고대사의 불가사의 중 하나로 알렉산드리아도서관

꼽힌다는 것 아시죠. 고대에 알렉산드리아가 첨단 지식의

전당이었다면 중세엔 바그다드에 이곳이 있었던 거죠.

(알렉산드리아는 지금의 이집트 해안에 면한 곳..)



하지만 참으로 슬프게도 바그다드 지혜의 집은 지금 남아

있지 않아요. 1258년 원나라 몽골 군과 벌인 바그다드

공방전 때 불타 없어져요.ㅠ 아, 왜 저절로 탄식이…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로마 침입으로 없어졌다는 설이..)



유형의 문화재는 사라졌지만 무형의 지식은 형태를 달리 하여

영원히 살아남아요. 특히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서적이 정작

본고장 유럽에선 실전된지 오래였어요. 지혜의 집에는 남아

있었어요. 아랍어 번역본이 다시 라틴어로 재번역되어 다시

유럽으로 넘어가니, 르네상스의 지적 원동력이 바로 이거에요.



지혜의 집에서 형성된 담대한 학풍은 역사에 이름을 떨친 많은

대학자를 길러내기도 했어요. 너무나 많지만 대표적 인물들은…



페르시아, 바빌로니아, 그리스, 인도의 수학을 집대성한 9세기

대수학의 아버지 알 콰리즈미, 그리스와 아랍의 철학과 의학을

종합해 유럽 중세 의학의 기초를 세운 11세기의 이븐 시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서에 주해를 제공해 르네상스 사상에

다리를 놓은 12세기 이베리아의 철학자 이븐 루시드 등이죠.



이븐 루시드가 정립한 사상은 단테 알리기에리에게도 영향을

미쳤어요. 신곡에 그를 회상하며 극찬한 구절도 등장하죠.










르네상스의 역사를 피상적으로만 훑으며 유럽 중심 사관을

벗어나지 못한 채 단테나 다 빈치 정도 끄적거리는 것으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한 듯이 만족해 하는 실수를,

우리가 흔히 저지르고는 하쟎아요.



조금만 시각을 넓혀 시간과 공간을 확장하여 애정을 갖고 역사를

바라보면 현대사의 흐름을 결정 지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어느

특정 지역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권 모든

사람들이 전 지구적으로 노력하고 영향을 주고 받은 끝에

이루어낸 결과임을 깨달을 수 있답니다.



지혜의 집에 보존된 고대 철학의 보고가 유럽으로 전달되어

중세 후반 스콜라 철학의 마지막 불을 활활 태웠듯이, 단테는

루시드의 철학서로 소양을 쌓고 코페르니쿠스가 바그다드에서

넘어온 천문서로 지동설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



현대인들이 흔히 접하고 있는 동서양 문화의 증폭 합성은 이미

천 년도 더 전에 바그다드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일이랍니다.



아래는 지혜의 집에 대해서 더 알아볼 수 있는 동영상이에요.

아랍 역사 문화를 잘 아는 사람이 만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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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Johannes Kepler: The First Astronomer and

The Last Astrologer with Laws of Planetary Motion






천동설, geocentrism.. 지구 중심설은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원의 궤적으로 공전한다는 가설이고 고대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가

먼저 제시하여 프톨레마이오스가 정립하지만 현재는 폐기됐어요.



지동설, heliocentrism.. 태양 중심설은 지구를 포함한 천체의

운동이 태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므로 지구도 공전하는 천체에

불과하다는 가설이고 오늘날 널리 실증된 정설이고 진리에요.



지동설이 진실이 된 데에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부터

갈릴레오 갈릴레이, 요하네스 케플러, 아이작 뉴턴까지

현대인이 흔히 아는 학자들의 계보가 뒷받침이 되었어요.



의외로 프톨레마이오스 전에 지동설을 주장한 아리스타코스

Aristarchus of Samos.. 란 학자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가 얻은

계산치가 요즘엔 말할 것도 없고 당시 기준에도 오차가 너무 크단

판단이 다수였던지라 인정 못 받고 오랫동안 묻힐 수밖에 없었죠.










현대인 여러분, 천동설을 만만하게 보면 곤란해요. 중세 유럽

지식인들의 과학 상식에 관해 쓸데없는 현대적 미신이 넓게 퍼져

있죠. 그들 대부분 지구가 평면이라고 믿었다느니, 성경 말씀에

반한다는 이유로 교회가 지동설을 무조건 박해했다느니, 천동설은

과학과 상관없는 성직자들만이 맹신하였다느니 등등…



역사의 진실은 이와 달라요. 생활하느라 고단한 평민이면 몰라도

대부분의 교회 지식인들에게 지구가 구체임은 상식이었고, 성직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앞뒤 재지 않고 무식하게 지동설을 몰아붙이지

않았으며, 지동설을 맹렬히 공격한 쪽은 가톨릭 성직자보다는

기존 천동설을 신봉한 당시 반대편 과학자 집단이었어요.



중세 사회에 행정, 교육, 연구, 복지 기능을 제공한 국정 관리

대행 시스템으로서의 가톨릭 교회는 천동설을 정설로 가르치되

지동설의 가능성도 열어두는 등 의외로 개방적이었어요.

오늘날 현대인의 일반적 편견과는 몇 광년쯤 차이나죠.



중세 유럽의 성직자들에게도 종교는 종교인의 문제, 과학은

과학자의 문제로 엄격하게 구별되니 자신들이 과학의 문제를

함부로 재단할 자격이 안 된다는, 기본적인 개념은 있었답니다.



그들이 천동설을 보편적 정설로 교육한 이유는 간단명료해요.

중세인의 과학적 지식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그 당시 기술로

증명할 수 있는 더 보편적인 진실이 천동설이었기 때문이죠.



이말인즉슨 당시 사회의 평균적 상식과 믿음을 대변해야 할 책임이

국정 체제를 대행한 교회에 있었기 때문에, (교회 내부적으로는

천동설과 지동설 두 가지 가능성 모두를 열어놓고 연구했음에도)

대중에 설파하는 내용은 보편적인 천동설일 수밖에 없었던 거에요.



*이쯤 읽으시고.. 얘 개독이구나.. 창조 과학 믿나보다.. 하시는

분들 있을 텐데, 현대인이 잘못 믿고 있을지 모를 역사의 편견을

경계하자는 것 뿐이며 모든 주장은 과학사의 근거가 있다고요.

또한 본 블로거, 불교 믿습니다요.ㅎ










여기까지 이해하셨으면 하나의 중간 결론에 도달하셨을 텐데…

네, 그 당시 사람들은 종교에 기반한 맹목적 믿음으로 천동설을

추종한 것이 결코 아니에요. 그들 나름 최선의 결과로 얻은 측정

값에 의해 입증 가능한 가설이 바로 천동설이었으니까 믿은 거죠.



심지어 그 측정치는 프톨레마이오스 때부터 문헌에 등장해요.

고대 그리스 시대에 지구의 외형 규격을 오차 범위로 근접시켜

이미 계산했던 것 아시죠.



중세에 자연 철학(지금의 과학) 연구는 주로 수도원에서 행했는데

그들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당시로서 가장 발달한 측정 기술로써

프톨레마이오스 이론을 수백 년간 실증한 겁니다. 이런 반복

실험과 관측의 결과로 천동설에 대한 믿음이 쌓인 거에요.



그들이 얻은 관측 값은 당시로서는 큰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만큼 정확했어요. 단지 문제는… 천체 현상이란 것이 중세의

계산 능력으로 감당 못할 만큼 거대한 수치나 세밀한 오차를

요한다는 사실 뿐..



즉, 그들은 그들대로 최선의 값을 얻었지만 그 값의 오차가

중세인의 상상보다 훨씬 어마어마했던 거죠. 현대적 컴퓨터라면

쉽게 잡아낼 수 있겠지만. 희한하게도 부정확한 값이 천동설의

가정에는 더 잘 부합하는 결과가 나왔다니 믿을 수밖에요.








그렇게 깊고 두껍게 굳은 믿음에 처음으로 균열을 가한 일대

사건이 바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1532년에 완성하여

죽기 직전 1543년에 출간한 저서 천구회전론의 출현이었어요.



코페르니쿠스가 20대 시절에 볼로냐, 로마, 파도바 등지에서

유학을 했거든요. 이때 전술한 아리스타코스의 문헌을 접해요.

하지만 그의 가설은 단순히 직관에 의존한 것일 뿐 실험이나

관측을 통한 것이 아닌지라 그닥 과학적이지는 못했죠.

(지식인 사회를 술렁이게 할 정도 역할은 했어요.)



이 무렵 덴마크에 티코 브라헤라는 점성술사 겸 천문학자가

활동했는데 점성술로 몇 가지 사건을 예측한 당시 스타였어요.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2세의 배려로 작은 섬에 대형 천문대를

갖추고 오랜 세월 엄청난 관측 데이터를 남겼는데요.



정작 이 데이터로 인류사에 족적을 남긴 사람은 프라하에서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점성술사로 살아가던 천체 역학 분야의

창시자, 요하네스 케플러였어요.










케플러는 지동설의 진정한 진일보를 가져온 사람이라 할 만해요.

브라헤의 천문대 조수로 잠시 일했던 그는 물려받은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것 뿐만 아니라 행성

천체의 궤도가 타원형을 그린다는 대원리, 케플러의 법칙

1609년 저서 신천문학을 통해 발표하는 업적을 거두죠.



과학 시간에 한 번쯤은 들어 보셨죠. 심지어 공식도 기억날 걸요.

케플러의 법칙은 세 가지인데 행성이 타원형 궤도로 공전한다는

것, 태양에 가까울 때와 멀 때 공전 속도가 다르다는 것, 공전

주기의 제곱이 궤도 장반경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이에요.



제1법칙이 신천문학을 통해 공개가 되고 큰 파장을 몰고 와요.

(근데 놀랍게도 1법칙을 2법칙 후에 발견했다고도 하네요.)



제2법칙은 다른 표현이 있어요. 타원 장반경과 단반경 각각

구간에서 공전 속도는 서로 다르지만 동일 시간 내 이동한

궤적으로 생긴 부채꼴의 면적은 서로 같다는 법칙이에요.

아마 이 내용으로 외운 분이 더 많을 걸요. (아래 그림)









고등학교 때 제3법칙을 공식으로 달달 외우신 분들이 꽤

많을 거에요. 이건 1619년에 세계의 조화라는 책 말미에

별도로 발표되었죠. 복잡하니 공식은 아래에…









자연 철학의 사변, 말싸움에만 머물던 천문학의 연구 방법이

케플러를 만나 비로소 수리 물리학으로 발전한 거에요. 그를

천체 역학의 창시자로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죠.



후대의 뉴턴 역학 공식은 사실 케플러의 법칙을 직접 계승하거나

더 높은 차원에서 다시 고찰한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죠.



꽤 유능한 점성술사였다고도 하니 역사가들이 그를 가리켜

‘마지막 점성술사이자 동시에 최초의 천문학자’라고 부른다죠.

17세기초 처음 등장한 망원경을 개량한 기술자이기도 해요.










망원경 개량과 천문 토론은 멀리 피렌체에 살던 한 수학자 겸

군사 기술자와 서신 교환의 방법으로 열심히 했는데, 그가

바로 동시대에 살던 갈릴레오 갈릴레이였어요.



갈릴레이는 사실 수학자로서 미적분 발전에 한 획을 그었

그 결과를 포병 기술 등 군사 분야에 활용했으며 몇몇 저명한

물리학 실험으로 훗날 지대한 영향을 끼친 데다가 유능한 관측

천문학자로서 갈릴레이 위성을 발견한 업적이 매우 훌륭해요.



그러나 지동설의 발전 역사에서 천문 원리를 천체 물리학으로

발전시킨 사람이 갈릴레이라는 오해를 가끔 받아요. 그 업적은

케플러의 공이죠. 우린 이미 교과서에서 제3법칙을 만났쟎아요.



갈릴레이를 지동설의 유명 인사로 만든 건 아마도 우르바노 8세

교황일 걸요. 갈릴레이는 1632년 천문대화를 출간하며 교황청

검열까지 통과한 상황이었지만 보수 진영의 공격을 받아 이단

심판을 위한 종교 재판정에 회부될 수밖에 없었어요.



우르바노 8세가 갈릴레이와 친분도 있거니와 교황청은 원래

그에게 호의적이었는데 하필 30년 전쟁으로 종교 전쟁

정점을 찍던 때인지라 극우 가톨릭 인사들의 공격이

이어지니 재판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이긴 했어요.



세간에선 이 사건이 길이길이 알려지며 갈릴레이를 지동설의

순교자처럼 인식하지만… 사실 고문이나 물리적 박해를 받은

것도 아니고 다소 불편하긴 해도 말년에 잘 살다 가셨어요.

‘그래도 지구는 돈다’가 정말 한 말인지 절대 알 수 없고요.










1687년에 프린키피아를 출간하며 아이작 뉴턴은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이가 연루된 지동설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단순히 지구가 움직인다는 차원을 벗어나 천체 전체의 역학

원리를 만유인력이라는 개념으로 승화하여 고전 물리학과

뉴턴 역학의 체계를 완성하게 되요.



중력의 법칙을 세우며 케플러가 경험적 사유를 통해 획득한

원리를 계승하고 상위 차원으로 발전시킨 작업인 것이죠.



이로써 인류는 수천 년을 이어온 천동설을 폐기하고 (단순히

지동설이 우세하니 마니 하는 소모적 논쟁이 아니라) 물리학의

세계를 열어젖혀 자연의 힘을 활용할 바탕을 갖추게 됩니다.



중세인의 사고 체계를 뒤집었다고 오해받기도 하는 지동설의

역사에서 코페르니쿠스적 발상과 갈릴레이 종교 심판이 가장

유명한 미신이 형성되어 왔지만 진정 학술적 토대를 구축한

적자는 케플러였다는 사실, 이제부터 기억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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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Do They Study Mostly Today?







정치학political science라고 하고요.

왜 사이언스가 붙냐면 현대 정치학 연구물이 숫자와

통계를 써대며 거의 계량화해 버렸기 때문이에요.



(미국의 정치학 연구 문화이죠. 미국은 정치도

주도하고 정치학도 주도하고 있답니다. 참 쉽죠?)



유럽은 아직도 politics라는 단어를 쓰기도 합니다.

특히 영국. 옥스브릿지나 LSE, UoL을 보면 알 수 있죠.



경제학을 미시와 거시, 계량으로…

법학을 민사, 형사, 공법, 소송으로 나눌 수 있듯이

정치학의 서브 장르, 하위 분과 학문을 나눠보면요.



학교의 전통에 따라 여러 관점이 혼재하여

살짝 머리 아프지만 본 블로거의 주관으로는..



정치 사상사, 정치 이론, 비교 정치, 공법, 행정,

정치 경제, 국제 정치의 일곱 분과가 맞다고 봅니다.

원래는요. 원래는, 오리지널리.



그러나 한국의 정외과 교육 풍토에서는 보통

공법행정정치경제는 과감하게 생략하는,

무겁도록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그도 그럴 것이 각각 법학과, 행정학과, 경제학과에서

열심히들 가르치고 있으니 정치외교학과가 저거 다 가르치면

딴 과는 뭐 먹고 사냐는 논리가 굳어온 때문인 듯해요.



그런데 근대 학문의 발전 역사를 주욱 살펴보면 나오지만

철학의 정치 사상이 굵은 줄거리를 형성하고 거기에서

우리가 아는 사회과학이 모두 갈라져 나왔지요.



철학에서 자유주의와 민주 정치의 연구가 터져 나왔고

중간에 경제학이 나왔는데 원래는 정치 경제, political

economy라는 서브 장르의 외양으로 등장한 거죠.



정치학이 독립 학문으로 인식된 시점은 대략 19세기

후반이고, 20세기 전반기에 행정학이, 20세기 중반에

정책학이 갈라져 나왔어요.



사실 오늘날 주류로 인식되는 사회과학이 죄다

철학과 정치학의 본류에서 새어나온 지류들인 셈이죠.



우리 식의 교육 풍토가 주류라고 볼 수는 없을 듯하고요.

미국의 정치학 전공자들은 앞에서 분류한 일곱 가지를

그래도 조금씩은 훑는다고 해요. 아예 생까진 않고.



미국 학제에서 politics라고 하면 미국식 민주주의와 헌법론,

정부 이론(즉 행정학), IR, 국제경제, 국제법을 다 조금씩

커버하는 편이죠. 한국식 정외과 커리큘럼과 차이가 있음..



우리는 또 정치’외교’학이라고, 외교를 강조하쟎아요.

근데 이건 솔직히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현상이에요.



외교학이란 것이 사실 별다르게 존재하는지 의문이죠. 저 위

일곱 가지 중 국제 정치학, 즉 국제 관계학 밑에 또 세부적인

여러 각론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외교 이론일 뿐이에요.



*미국 4년제 대학교 학부 수준에서 제공하는 커리큘럼 훑


(Harvard MA)

https://gov.harvard.edu/gov-courses


(Northridge CSU CA)

https://catalog.csun.edu/academics/pols/programs/ba-political-science-i/politics-and-government/


(Grambling State LA)

http://www.gram.edu/academics/majors/arts-and-sciences/poli-sci/curriculum/political%20science.php


(Hampton VA)

http://libarts.hamptonu.edu/page/Curriculum-7


(Jackson State MS)

http://www.jsums.edu/polisci/undergraduate-courses-offered/




정치 사상사는 철학사에서 정치 파트를 빼온 식이에요.

보통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공맹, 카우틸랴에서부터

고대 정치 사상을 풀어나가죠.



그리고 민주 정치 역사에서 많이 들어본 마키아벨리,

홉스, 루소, 몽테스키외, 밀, 마르크스의 이야기가…



현대에 정치학이 독립한 이후의 사상가로는 모겐소,

아렌트, 달, 사이먼, 롤스, 애로우, 키신저, 헌팅턴, 나이

등등이 등장하여 어려운 이야기를 풀어가는 거죠.



(이 중 로버트 달은 민주 정치의 이론화에 공이 크고

본 블로그 좌상단 작은 이미지로 등장한 할아버지가

바로 이분이랍니다. 좋아해서요.)



정치 이론 파트는 추상적 개념을 파고드는 난해한 분야고

보수, 자유, 사회 등 이데올로기와 권력론, 국가론 같은

현대 정치 현상의 구성 요소를 철학적으로 푸는 겁니다.



여기까지 분야는 오늘날 정치학에서도 종사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고 극소수 철학적 천재들만이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해요. 비주류란 말이죠.



현대 정치학의 주류 분야는 크게 비교 정치와 국제 관계,

이 둘로 나뉩니다. 대학원 이상의 정치학 전공자가 다들

뭐 연구해서 먹고 사냐 할 때 죄다 이 둘에 몰려 있지요.



비교 정치 파트에서 본격적인 민주 정치의 제도가 나와요.

대의제부터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등..

삼권 분립에서 입법, 행정, 사법의 역할.. 정당과 이익

단체, NGO, 커뮤니케이션 같은 사회 집단까지..



하지만 오늘날 비교 정치 연구 소재 중 정수는 바로 선거죠.

선거를 통해 권력이 창출되기도 하고 통계 분석을 도입하여

논문 뽑아내기 좋기 때문에 정말 많은 사람이 연구합니다.



요즘 핫한 선호 투표제, 비례 대표제, 연동형/권역별 등등

주제가 최근에 가장 빈번한 연구 사례들입니다. 정말

다양한 연구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요.



공법 연구의 핵심이자 출발점은 헌법입니다. 연구 대상이나

소재를 보면 법대의 헌법학과 사실상 큰 차이가 없어요.



하지만 (본 블로거 개인 감상인지는 몰라도) 법학 전공자가

쓴 헌법학 연구물과 정치학 전공자의 공법 연구물은 많이

달라요.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 논조, 어법 등등에서…



원래 헌법학을 먼저 공부하고 정치학으로 빠졌는데

법대생 세계에서 관용적으로 쓰는 공통 어구를 잘 쓰지

않아 정치학 이론서를 읽는데 고생했던 적이 있어요.



법학 전공자의 어법이 다소 딱딱하고 정형화되어 있다면

정치학 전공자는 꽤 리버럴한 철학적 사유의 방식으로

정치와 헌법의 소재를 풀어간다고 할까…



설명하긴 어렵지만 정외과에서 공법 연구를 배제해온

수십년 한국 풍토만의 특유한 문화가 아닐까 합니다.



행정 이론은 행정학과에서 배우는 그대로입니다.

개론, 조직, 인사, 재무 등을 거쳐 정책학까지 연결되는

구조를 가지죠. 일부 각론은 경영학과 많이 겹칩니다.



인사 행정은 그대로 경영학의 인사 관리와 유사합니다.

공공의 경영이 행정이고 사기업 행정이 경영이니까요.



정책학이란 분야가 따로 떨어져 나왔으니 행정학에서

다소 이질적인 분야처럼 보이기도 해요. 어떤 정책의 성과를

과학적으로 측정하자고 달려드는 실증 중심 분야랍니다.



경제학이 원래 18세기 정치 경제학에서 출발했다고 했죠.

그래서 지금도 정치학과 경제학은 겹치는 영역이 꽤 크고

때로 오버랩되어 콜라보하는 연구를 많이 합니다.



경제학에서 산업 조직론게임 이론을 공부하던 분들은

모든 이론이 정치학 교과서 속에서 동어 반복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거에요.



국내에 개론서로 나온 책 중에 ‘세계 정치론’을 읽어 보시면

특히 경제학 이론이 정치학자의 변주를 거쳐 해석된 글을

경험하실 수 있어요. 로체스터 학파의 특징이라네요.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교수 원저의 세계 정치론)



선거나 투표, 정책 결정 과정에서 행위자 간의 머리 싸움을

어떻게 과학적인 방법으로 실증할 수 있을 것인가…

주로 이런 연구라고 보시면 됩니다.



국제 정치학, 즉 국제 관계학, 곧 IR은 정치학의 하위

분과이기도 하면서 약간은 독립 학문처럼 분화하고

있기도 해요. 국제학이란 학제 분야로 발전한다고도 하죠.



국제 외교와 파워 게임, 교류 관계 형성 같은 것들이

주요 연구 소재입니다. 해외 토픽 시사 뉴스 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국제 관계학의 서브 장르로 공부해야 할 필수 각론을

역사, 사상, 한반도, 강대국, 외교, UN, EU, 안보, 국제법,

국제경제, 민족, 인권, 젠더, 환경, 종교/테러의 열 다섯

분야 정도라고 보면 대략 틀리지 않을 거에요.



앞에 얘기했듯이 오늘날 정치학 연구를 둘로 나눠

반은 비교 정치의 선거, 나머지 반은 IR의 지역학..

양적으로 대략 이렇게 보면 거의 맞습니다.



오늘날 정치학의 트렌드라고 보시면 되겠고요.

여기에 한국의 특성을 고려하여 통일 이론이나

한국형 IR이 독자적으로 연구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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