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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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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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1.11
    유럽 근세사 훑어보기 V : 근대 철학
  2. 2018.09.30
    NEP: 소련 수립 초기 레닌의 신경제 정책이란




History of Europe in Early Modern Times V

Rise of Western Modern Philosophers




오늘날 정치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압도적으로 유럽 출신

백인들의 시각과 사고를 반영하고 있는 것은 다들 아실테죠.


그래서 서유럽 주요 국가의 근세사를 따라가보는 것이 종종

큰 의미가 있답니다. 하여 근세를 열어젖힌 몇 가지 트렌드를

시리즈처럼 훑어보는 시간을 마련해 볼까요.




V. 근대 철학 Modern Philosophy 



모든 학문은 철학으로부터 파생되어 가지를 치고 생장합니다.

철학은 정치경제 등 사회 현상 전반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고요.

유럽 역사에서 근대 철학의 태동이란 현상은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현대 문화의 바탕을 형성하죠.


인문주의의 부활, 무역 항로의 개척, 프로테스탄트의 발호,

자연 철학의 과학화 등 지금까지 상술한 각 현상들이 서로

밀접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점차 사회가 생동하고 변화하는데,

이를 설명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철학자들이 맡은 거죠.


16~17세기를 살며 새로운 움직임을 포착한 초기 철학자들이

선각자로서의 사명을 찾았습니다. 중세를 지배한 스콜라 철학

극복하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정신을 되살려 그네들이 살던

현재의 시간에 적합한 시대적 사상 체계를 완성하는 것이죠.


초기 선구자들을 지역과 성향에 따라 분류할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를 아우르는 서유럽 대륙에선 합리주의,

rationalism으로, 영국에선 경험주의, empiricism으로 부르며

각자 독자적 체계를 조성했어요.


이성과 경험으로 나뉘는 흐름을 당시에 인지한 건 아니고 정작

후대에 이 일을 한 사람은 칸트입니다. 현대 철학의 하위 분과를

구분하면 인식론, 형이상학, 존재론, 윤리학, 논리학, 미학, 정치

철학 등인데 대륙과 영국의 논쟁은 인식론에서 출발하였죠.


합리주의는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초월적 절대 진리를 찾아 인식의

근본으로 삼자는 생각입니다. 30년 전쟁 참전 중 신비한 꿈을 꾸고

학문의 길에 들어선 르네 데카르트가 선구자로서, 그는 철학, 수학,

광학, 천문학 등 방대한 연구를 한 대학자이자 철학의 아버지에요.


1637년에 출간한 방법서설에서 그는 이른바 방법적 회의

반복하여 종국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를

의심할 수 없는 제1원리로 제시했어요. 이로부터 시작하는

연역적 추론을 통해 신과 사물의 존재를 증명하자는 거죠.


경험주의는 사물의 현상에 대한 인식의 출발점을 사유자가

직접 경험한 지점으로 잡자는 생각으로서, 평생 법관으로 산

프란시스 베이컨이 데카르트보다 수십 년 앞서 늘그막에

실험과 저작에 몰두하며 새로운 생각을 집대성했어요.


그가 죽기 여섯 해 전 1620년에 집필한 신기관은 그리스

이래 과학 연구론의 체계를 장악한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에

의문을 품고 귀납적 실증으로 진리에 접근할 것을 주문했고

(아는 것이 힘이다..란 명제) 우상론에서 - 종족, 동굴, 시장,

극장 - 인간의 보편적 편견을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대륙의 합리론을 계승한 이는 네덜란드의 바뤼흐 스피노자와 독일의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였어요. 둘은 데카르트와 함께 3대 거장으로

꼽힙니다. 스피노자는 1674년 에티카를, 라이프니츠는 1710년

신정론을 출간하여 인간 이성의 탐구를 이어갑니다.


에티카는 스피노자 필생의 역작으로서 살려는 본능적 의지,

코나투스가 지배하는 감정을 통제하려면 오직 이성에 기댈 수

있을 뿐이라 썼죠. 라이프니츠는 신정론에서 철학과 신학이

서로 모순되지 않아 양자 모두 신의 섭리일 뿐이라고 설파해요.


영국의 경험론은 존 로크가 계승하고 데이빗 흄이 발전시켜

후대로 넘어갑니다. 1690년에 로크가 출간한 인간오성론

백지 상태의 인간이 경험으로 지식을 축적한다고 봤지요.

(빈 서판 같은 백지 상태, 라틴어로 타뷸라 라사라고..)


한편 계몽주의가 발전한 사회계약론이 주류를 형성하여 공화주의

정치 사상으로 또 하나의 줄거리를 이룹니다. 토머스 홉스가 단초를

풀기 시작하죠. 1651년 명저 리바이어던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과 같은 자연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계약을 맺고

국가를 세운다는, 현대적 이데올로기의 출발점을 제시합니다.


존 로크는 왕당파가 왕권신수설을 부활하려는데 반발해 1688년

통치론에서 그해에 일어난 명예혁명을 옹호하고 인간의 자연권,

피치자로서의 저항권, 선거제와 권력 분립의 원리, 노동 가치설

등의 주제로 미국과 프랑스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어요.


장 자크 루소는 1762년 출간한 동명의 저서로 아예 사회계약론

완성한 사람이죠. 양도할 수 없는 국가의 주권은 오직 인민에게서만

나오며 자유의지와 사회계약으로 공공선을 추구한다고. 익숙하죠?

자유-평등-박애의 정신을 정립함으로써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

기반을 완성하지만… 본인은 혁명 발발 11년 전에 사망…ㅜ


이렇게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영국을 중심으로 맹렬하게 발전한

세 줄거리가 합하여 근대 철학이 집대성되는 전기를 맞습니다.

네, 이마누엘 칸트.. 지구상 역대 최고의 지성이 등장해요. 짠.


칸트가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에요. 첫째, 합리든 경험이든 계몽이든

그때까지 발전한 유럽의 모든 철학을 종합하여 인식론, 형이상학,

윤리학, 신학, 미학, 존재론, 정치학 등 전 영역을 집대성한 체계를

완성하고 수백 년 후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에요.


둘째, 이렇게 완성한 독일 관념론의 비판 철학이 제시한 모든 논제가

결국 선험적 이성이 주재하는 사상의 중심에 인간을 주체로 놓았고

이는 르네상스 이후 수백 년만에 유럽이 신의 그늘을 드디어 완전히

벗어나 인류가 최상위 존재로 올라섰음을 의미하는 거란 점이죠.


1781년 순수이성비판, 1788년 실천이성비판, 1790년 판단력비판

차례로 출간하며 그는 인류의 철학을 종합합니다. 전 영역에 걸쳐서요.

이성을 중시하나 경험론을 끌어와 a priori, 선험적 관념론을 세웠죠.


칸트 이후의 철학은 어떻게 그를 계승하여 발전시킬지가 관건이었죠.

게오르크 헤겔이 독일 관념론의 적통을 계승했습니다. 칸트 만큼이나

철학의 전 영역을 통찰하며 절대적 관념론변증법, 역사 철학

종합하여 수많은 헤겔주의 추종자를 낳았습니다.


18세기 공화주의를 일단락짓고 맞은 혁명의 시대에 사상의 조류는

자유주의로 흘러갑니다. 제레미 벤담은 1789년 저서 도덕입법원리

통해 공리주의를 확립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창했고

후대의 자유주의자에게 영감을 줬어요.


존 스튜어트 밀은 1859년 자유론으로 19세기 자유주의 정치 사상을

종합한 대가입니다. 이미 벌어진 정치 현상의 사변을 세운 것이 밀의

역할이었다면 카를 마르크스는 1867년 자본론으로 미래에 등장할

사회주의 정치 체제의 철학 기반을 제공하는데 앞장섰죠. 18세기

말엔 에드먼드 버크가 보수주의의 근간을 다진 적도 있었어요.




영화의 소재로는 철학자 자신보다 철학책 속 논쟁 주제가 더

알맞을 겁니다. 인식론이 와닿지 않는다면 매트릭스

숟가락 씬을 다시 한번 음미하는 것이 좋겠고요.



리들리 스코트해리슨 포드와 작업한 블레이드 러너

인간이란 누구인가에 대한 존재론을 탐구했었죠. 같은

감독의 프로메테우스는 신의 존재를 파고 들었고요.



인과론의 비극적 참상은 2004년작 나비효과

처절하리만치 극적으로 묘사했었고요.



욕망에 빠진 인간의 윤리적 모순에 대해선 작고하신 앨런 파큘라

감독이 노년에 작업한 1990년작 의혹(무죄추정)을 추천해요.

해리슨 포드가 여기에도… 출연진 면모와 연기가 엄청나죠.

(원제는 Presumed Innocent.. 미성년자 특히 주의)



자유-평등-박애의 정신은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이

돌아가시기 전 블루-화이트-레드 시리즈에서 다루었는데요.

이 연작의 프로토타입 작품을 잘 모르시더라고요.

1991년작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이렌느 야콥이 여기서 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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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P, the New Economic Policy

During Early Years of Lenin-Soviet Regime





소련 얘기에요. 없어진 국체의 나라이죠.

물론 정통성은 러시아 연방국이 잇습니다.

차르 푸틴두마의 나라…


1917년에 10월 혁명으로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집니다.

무능과 비효율과 선민 의식에 쩔던 러시아 제국이 사라지죠.


블라디미르 레닌(과 레프 트로츠키이오시프 스탈린)은

혁명 직후 국가의 기반 시설을 점령했지만 이에 반발한

왕조 추종 세력과 귀족 집단이 전쟁으로 대항합니다.


1921년까지 러시아 땅을 휩쓴 적백 내전의 광풍이 바야흐로

불어제끼기 시작한 거죠. (요즘은 러시아 내전으로 부른다죠.)


볼셰비키 적군에게 초기 전세는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나

지휘 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던 귀족 반동파 백군을

몰아붙여 전세를 뒤집어갑니다.


이기는 전쟁의 기본은 뭘까요. 딱 두 가지.

잘 훈련된 전투력, 그리고 군수 물자의 보급입니다.


레닌의 고민이 군량 조달에 있었기에 내전 초창기부터

할당량 징발을 근간으로 하는 정책으로 농민을 밀어붙여요.


그러나 계속된 전쟁과 징발식 경제 운용으로

나라의 총생산이 눈에 띄게 떨어집니다.

태세를 전환할 때가 되었구나, 결심하죠.


1921년쯤 되면 전황이 정리되는 단계였죠.

레닌이 오늘날 NEP라고 널리 불리는 유명한

신경제 정책 카드를 가지고 나옵니다.




사회주의 국가 경영의 기본 강령은 완전 국유화입니다.

사유 재산시장 기능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것이죠.

정부계획한 정책을 통해서만 자원을 분배합니다.


그런데 이 핵심을 건드리지 않고 경제가 도저히

살아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은 거에요.


그래서 기존 이데올로기를 수정한 뉴 버젼을 주창합니다.

국가 자본주의’라는 신제품이었죠. 사회주의 정부가 잘

통제할 수만 있다면 시장 일부를 도입해도 된다는 거에요.


극좌적 사상에 경도된 사회주의자들의 반발도 컸습니다.

그들 중 우두머리가 트로츠키였죠. 트로츠키와의 균열은

이 지점부터 조짐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거에요.


내부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레닌은 마르크스 자본론

기본 논리로 돌아간다는 방어 논리를 구축하는 방법으로

국가 자본주의의 정통성을 옹호하고 나섰어요.


무슨 말이냐면 원래 자본론이란 것이 자본주의를 무정부

상태처럼 부인하는 것은 아니에요. 자본주의가 극에 달하다가

어느 순간에 무너져 공산주의 세상이 된다는 판타지이죠.


그러니까 체제 과도기에는 어느 정도 자본주의 성향을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시장 기능을 일부 용인하고 있지만

나중에 결국 완전한 사회주의로 갈 거니까 걱정 없단 말에요..


어째 논리에 오류가 가득한 게 현대인들의 눈에 어쩔 수 없이

보이지만 논리의 과학성보다 권력 관계의 현실이 실제 정치에선

더 중요하쟎아요. 레닌이 권력자였으니 누가 뭐라 했겠어요.




그래서 21년부터 28년까지 신경제 정책으로 NEP의 시대가

도래한 겁니다. 당시 소련 경제의 주축 세력은 농민이에요.


할당량에 따라 무조건 징발 당하던 농민들이 이제 일정하게

고시한 비율에 따라 현물세금납부하는 때가 된 거죠.


왜 현물 납부였냐 하면 이때 제국 멸망과 전쟁으로 엄청난

초초초 인플레를 겪고 있었거든요. 화폐 가치가 휴지 조각이니

돈으로 세금을 낼 수 없었죠. (24년부턴 현금 납부 시작합니다.)


정책의 성과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죠.


첫째, 1차 대전과 적백 내전 등 전쟁의 상흔을 딛고

빠른 시간 안에 국가 체제를 회복할 수 있었어요.


둘째, GDP 상승에 즉효를 보여 농민의 삶이 안정되었어요.

NEP-men이라고 이때 부유해진 사회 계층을 가리키는

용어가 따로 존재할 정도이니 상상이 가죠.


셋째, 통화 가치가 안정화하여 하이퍼 인플레이션

극복하고 정상적인 금융 경제로 복귀하였어요.




28년까지 정책이 시행되다 끝났는데 실제로는 1924년쯤에

이미 정책 효과가 시들시들해지고 있었어요. 왜냐고요?


1924년은 소련 및 러시아인들에게는 중요한 해였거든요.

국부 레닌이 사망한 해랍니다. 이후 스탈린이 집권했어요.


트로츠키의 반대 입장을 전술했쟎아요. 스탈린은 오히려

우파적이어서 수정 자본주의적 정책 도입에 적극적이었어요.

결국 정책 성과에 힘입어 집권할 수 있었다고 보기도 하죠.


그리고 집권과 동시에 스탈린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스타트..! 개시하게 됩니다. 이후 역사에서 등장한 수많은

나라들이 이 패턴을 모방하게 된 거죠. 한국도 역시.


사실 현대 한국사에 큰 영향을 준 소련의 집권기는 스탈린

체제였죠. 레닌보다 집권기가 더 길었으니까. 오래 사셨음.


스탈린 체제 이전 소련은 참 답이 안 나오는 저개발 국가에다

안팎으로 외세의 개입으로 누란지위의 형국이었어요.

20세기 초 대한 제국이나 비슷했을 걸요.


하지만 인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먼저 해결한 정책 수정

효과에 힘입어 국가 초창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고

그 중심에는 바로 NEP이라는 역사가 있었답니다.


소련의 뉴딜 정책이라고 볼 수 있겠죠.

레닌 죽고 스탈린이 집산화로 말아먹기 전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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