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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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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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먹는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이 사람을 지금 짚어내지 않으면 머리 속에서
사라질 것 같아 두려운 뮤지션을 기어코 소개해야겠다.


보컬의 비중이 그리 크지는 않은,
거의 100%에 가까운 연주型 프로그레시브 락밴드
킹 크림슨...


킹 크림슨에서 80년대부터 현재까지
함께 하고 있는 보컬리스트 겸 기타리스트...
에이드리안 벨류 Adrian Belew 이다.



발음이 어려운 그의 라스트 네임은
'Belew = 벨류'라고 쓰고 '벌루'와 '벌류'의
중간 정도 음가로 읽으면 된다.
'벌'도 사실은 '블'에 가깝다.


프로그레시브 락밴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이 카테고리를 통해
다루고 싶은 것이 본 블로거의 맘이긴 하지만...
쉽지는 않다. - 왜냐하면 의외로 이 장르의 세계에서
프로페셔널하고 또 데디케이티드한..
이른바 전업 보컬리스트가 적기 때문이다.


이미 다룬 바 있는 존 앤더슨 정도가
정말 흔치 않은 전업 보컬리스트 정도이고
여성으로서는 애니 헤이슬럼 정도가 꼽힌다.
연주를 중심으로 하는 장르의 특성 때문이리라.
아, 피터 가브리엘도 있겠다.


존 앤더슨..


애니 헤이슬럼..


피터 가브리엘..



이 장르의 음악은 그나마 보컬이 필요할 경우에는
그래서 연주자가 악기를 치면서 노래를 한다.
그러나 -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
악기를 연주하면서 동시에 노래한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노동이다.


에이드리안 벨류는 물론 보컬리스트 이전에
대단히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기타리스트이다.
그는 프랭크 자파, 데이빗 보위, 토킹 헤즈 등과 작업했다.
(대충 성향이 파악되지 않는가...)


벨류가 킹 크림슨과 함께 한 것은 1980년대 초부터였다.
이 시기는 밴드의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


80년대 4기 시절의 젊은 벨류...



잘 알려져 있다시피, 당시 킹 크림슨은 이미 로버트 프립
창작과 프로듀싱 전반에서 전권을 굳힌 단계였고
꾸준히 발표한 앨범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었으나
지나치게 크게 히트한 데뷔 앨범의 영향력을 벗지는 못하여
창작 과정에서 다소간의 난항에 봉착한 시점이었다.


또한 시대가 바뀌어 디스코나 펑크의 새로운 리듬
사람들의 귀 뿐만 아니라 시선을 사로잡던 시기였고
뉴웨이브나 뉴에이지의 새로운 창작적 트렌드는
전통적인 프로그레시브 뮤지션들에게 더 이상
'진보성(progressiveness)'이라는 영예를 허락하지 않았다.


킹 크림슨을 논하면서 로버트 프립을 빼놓을 수는 없는데
기실 프립의 플레이는 학구적이고 실험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카리스마는 0.2% 부족하여
데이빗 길모어스티브 하우 스타일은 될 수 없었다.
그는 다른 파트와 온전하게 혼연일체할 때에 빛이 발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어떤 게스트가 그와 함께 협연하는가
하는 문제가 밴드 운영의 첫머리에 늘 대두되곤 했다.


중년기의 로버트 프립...


연주모드 벨류...



그나마 이렇게 프립이 있는 듯 없는 듯한
카리스마로 밴드를 주도하며 라이브를 이끈 것도
70년대 후반까지만 통했던 것 같고
78~79년부터 불어닥친 새로운 음악의 흐름
킹 크림슨을 더 이상 그들답지 못하게 막았다.


그 시기는 디스코와 펑크에서 촉발된
클럽형 댄스음악이 주류로 급부상
하던 때였고
현대 대중음악의 뿌리가 되는 흑인음악 중에서도
극단적으로 상업적인 껍데기가 백인들에 의해
메이저 음악으로 둔갑
하던 시기였다.


흑인음악의 원류를 찾아 진솔하게 음악을 탐구하는
재즈 및 블루스 씬의 열정도 한풀 꺾이던 시기였고
클래식 음악에서 원류를 탐사해 보려던 프로그레시브
아티스트들의 노력도 약발이 떨어져 가던 시기였던 셈이다.


키스 에머슨이나 릭 웨이크만반젤리스 등 선구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탐구한 신디사이징 사운드의 진실도
80년대에는 단순화한 비트에 뉴웨이브 사운드의 광풍에
모래폭풍 닥친 듯이 묻혀버려야 했던 형국이다.
오죽하면 예스90125 같은 앨범을 냈겠는가...


고뇌하는 스타일의 프립...ㅋ


79년 무렵 벨류...



이런 시대상황... 다소 암울했던 것인데
로버트 프립은 나름 수퍼멤버의 기용을 통해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 했다.


80년대에는 유달리 수퍼밴드가 많았다.
앞에서 얘기한 이런저런 시장환경으로 인해
아티스트들이 멤버 간의 합종연횡을 통해
상업적 난관을 타개해 보려 애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80년대 버젼의 킹 크림슨 라인업은
그들 버젼의 수퍼밴드였던 셈이다.


이렇게 해서 프립의 곁은 전설의 드러머 빌 브루포드가 지켰고
무시무시한 실력을 가진 베이시스트 토니 레빈이 등장했으며
그리고 기타와 보컬을 겸하는 에이드리안 벨류가 합류했다.
이른바 킹 크림슨 4기... 환상의 라인업이란 이런 것인가...


레전드.. 빌 브루포드


공포의 엄지.. 토니 레빈



프립이 처음부터 킹 크림슨의 이름으로
이 새 출발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주요 목적은 브루포드를 꼬셔내는(ㅎ) 것이었고
디시플린이란 전혀 다른 프로젝트 밴드로 출범했다.
나중에 Discipline은 앨범과 트랙의 제목이 되기도 했다.


사실 킹 크림슨은, 곧 로버트 프립
한 번도 세컨드 기타를 밴드에 들여놓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퍼커셔니스트에 대한 욕심이 항상 컸던 것 같다.)
이는 당시의 달라진 환경에서 전혀 새로운 관점을 빌어
혁신적인 사운드를 구축해 보고자 했던
그의 욕망의 발현이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 새로운 사운드는 라이브에서 생소한 패턴으로
기존의 락음악을 해석하는 경향으로 나타났는데
브루포드레빈이 일렉트로닉한 베이스/리듬을
책임지면서 뉴웨이브를 방불케 하는 기본을 깔아주고
프립벨류전혀 트윈스럽지 않고 서로 완전히 이질적인
보이싱을 담아 패시지를 전개해 나간... 그런 패턴이었다.


일렉트릭을 많이 쓴 브루포드의 세팅...


또 하나의 화려한 세팅... ㅎㄷㄷ



이런 패턴의 셋업에서 네 개의 각 파트는
적정한 에코와 이펙트에 의해 맛깔나게 확성되어
키보드를 쓰지 않았음에도 모든 소리가 뉴웨이브스럽게
신디사이징되는 매우 80년대적인 효과를 낳았다고 본다.


실제로 Three of a Perfect Pair 앨범에서 가장 히트한
Sleepless 같은 트랙은 유리드믹스휴먼 리그를 생각나게 하는
매우 뉴웨이브스러운 몽환적 사운드로 가득차 있어 매력적이다.
특히 이 트랙에서 브루포드레빈이 만들어 내는
폴리리드믹한 베이스 비트는 대단히 환상적이다.


이런 사운드의 창조를 통해 킹 크림슨
그들 나름의 돌파구를 찾아낸 셈이었으며
두 대의 기타가 뿜어내는 이질적 앙상블은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이후 90년대 중반의 5기 라인업 때에는
두 대의 기타 + 두 대의 퍼커션 + 베이스와 채프먼 스틱이라는
파격적인 편성으로 이 패턴을 확대 재생산해 나갔다.


유리드믹스.. 90년대쯤일 거다..


휴먼 리그.. 80년대 전성기..



벨류다소 설익지만 관능적인 보이스 컬러
새롭게 창조한 모던한 판타지를 해석하는 데에
제격인 목소리와 가사를 제공하였다.
실제 라이브의 소리를 들어보면 어딘지
데이빗 보위의 냄새도 짙게 난다.
레빈과 들려주는 하모니도 썩 훌륭하다.


벨류의 보컬이 멋지게 등장하는 트랙으로는
Sleepless, Frame by Frame, Elephant Talk(랩?ㅋ),
Three of a Perfect Pair, Discipline 등이 있다.
이 중 Sleepless의 관능미와 Frame by Frame의 서정성이
Three of a Perfect Pair같은 경우 3박자의 이국적 프레이즈가
프립의 손끝에서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히트 트랙이다.
발라드처럼 달콤한 Matte Kudasai(일본말)도 괜찮다.


요즘의 벨류 모습..



이 모든 작품에서 프립은 키노트 플레이어로서
중심 프레이징의 시작과 끝을 스스로 책임져 왔다.
킹 크림슨의 모든 것은 그에게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꼭 그것이 정답이 아닌 경우도 허다했다.


특히 라이브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앉아서(!)
연주에 전념하는 로버트 프립의 빈 자리를 채워줄,
에이드리안 벨류와 같은 연주자의 자리는 크다고 하겠다.
전체적인 내용이 주로 프립과 연주 패턴에 치중하긴 했지만
본 포스트에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킹 크림슨의 화려한
시절을 함께 채워준 주변 연주자의 중요성이라고 하겠다.


데뷔 무렵의 프립..



요리하는 자가 있으면 설겆이하는 자가 있게 마련이고
받쳐주는 병사가 없으면 장군은 홀로 싸울 수 없다...는 것,
바로 그 점을 말하고 싶었다.


기회가 오면 70년대의 킹 크림슨에 대해서는
따로 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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