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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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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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추, 바로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침략한 목적
  2. 2018.11.28
    프레디 머큐리 0 - 보랩




The Way Pepper Drove Europeans to

Go Crazy Over Maritime Expedition






Age of Exploration 또는 Age of Discovery..

15~17세기 유럽.. http://swco.ttu.edu/medieval/aexpedition.html



이 현상을 부르는 말은 대항해 시대, 지리상 발견, 신항로 개척..

등등의 표현이 쓰이는데 가장 중립적 표현은 ‘신항로’,

가장 서양 중심적 표현은 ‘지리상’인 것 같습니다.



여기선 ‘대항해’로 낙점. 별다른 이유는 없고 지난 수십 년의

경험으로 가장 흔하게 통용되는 표현을 고르자는 것이

본 블로그의 표기 원칙이라면 원칙이걸랑요.



또 실제로 유럽인들이 대항해의 기술을 창안한 것이기도 하니까.

(물론 폴리네시아인, 중국인, 아랍인.. 등 근대 이전 무역의

역사와 인류학적 현상을 조사하면 상당한 논란이 있겠지만…)



유럽인들은 그렇게 해야만 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었어요.

그 이유란…? 놀랍지만 바로 향신료후추랍니다.

pepper.. 필요는 발견의 어머니인 거죠.



여러분들이 아시는 새까만 가루의 양념 맞습니다.

인도가 원산지라고 하죠. 후추가 왜 중요할까요?



오늘날의 후추는 단순히 향미를 더하는 양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만, 현대인의 시각을 거두고 냉장 기술이 없던 옛날을

가정해 보세요. 도대체 육류를 어떻게 저장할 수 있었을까요?



도축이 이루어진 후 보통 3~5일이 지나면 변색과 분해가 시작할

수밖에 없어요. 썩는다는 말이죠. 이 경우 도축 즉시 갓 신선한

분량을 어느 정도 소화하고 남는 잉여 분량이 있었을 겁니다.



가장 흔한 보관 방법은 건조겠죠. 약한 불에 살살 말려 물기를

빼는 열 건조도 있고 서늘한 곳에서 시간을 두고 자연 건조하는

방식도 있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건조로 숙성시키더라도

뭐든 기본 양념을 뿌려줘야 누린내를 잡지 않겠어요?



음식을 저장하려는 인류에게 자연 상태의 두 가지 재료가

있었다 해요. 소금… 소금은 그렇다 치고 웬 꿀?

요즘 식으로 청이나 잼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거에요.

설탕과 비교해 꿀은 잘 밀봉하면 항균 효과도 있었다네요.



소금으로 저장 보관하는 음식은 스팸을 생각하면 됩니다.

하지만 현대의 스팸보다 두세 배 정도 더 짜게 염도를 높여

만드는 것이 상례였어요. 염장한 고기를 맨입엔 못 먹고

물에 풀어 스튜나 수프처럼 먹는 방식이 일반적일 만큼.








염장을 위해 쓸 소금은 다소 불편함이 있어도 내륙의 암염이나

해안가의 천일염으로 유럽 내에서 자체 생산은 가능했어요.



(후추보다야 낫지만 소금의 값이 싼 건 아니었어요. 각국

역사에 소금 중개상으로 부를 축적하는 세력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만 봐도.. 천일염 산지였던 베네치아가 대표적..)



그런데 후추는요? 생산 자체가 전혀 불가능해서 문제인

거죠. 대량 생산이 보편화한 오늘날에는 (기후가 유사한)

동남아와 아프리카에서 확대 재배하지만 중세 시절엔…



오늘날 소금과 후추를 쌍으로 묶어 전 세계 어딜 가도 흔한

양념의 대명사로 분류하지만 중세 유럽에선 특히 후추가

말도 못하는 사치재였던 거지요.



대부분을 차지하는 평민들이야 비싸긴 해도 암염의 형태로

생산 후 수입되는 소금으로 음식을 염장하여 생활했어요.

누린내를 잡을 재료는 로즈마리나 타임 등 허브가 있었고..



영지의 부를 독점한 중세 유럽의 귀족들은 유일하게 후추를

쓸 수 있었죠. 식도락 용도보다는 베블렌 효과마냥 과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후추를 썼다는 해석도 있어요.



후추의 주산지인 인도와 유럽 사이… 멀고 먼 길이죠.

하지만 수요가 형성된 사치재가 있고 이를 구매할 소비자가

존재하니 시대를 막론하고 상거래와 무역은 이루어지는 거죠.



전통적으로 로마와 한나라를 잇던 무역 경로는 셋입니다.

초원길, 사막길(비단길), 바닷길(향료길).










초원길은 중앙 아시아 북쪽 스텝, steppe 지대를 관통하여

몽골, 신장 위구르, 카자흐스탄으로 이동하는 경로에요.

선사 시대부터 개척되었다 하고 기원전 2세기경 흉노가

중개 수입을 독점하자 한 무제 때 새 길을 개척하죠.



사막길은 그렇게 열리게 된 경로에요. 타클라마칸 사막을 잘

피하고 파미르 고원을 관통해 중앙 아시아 건조 지형을 뚫고

가는 거죠. 여기로 로마 사자가 한나라에 당도했다고 해요.

딱 한 번이지만. 한의 비단이 로마에 최초로 전해진 경로죠.

(그래서 비단길 또는 오아시스길로도 불려요.)



바닷길은 1세기쯤 개척되었고 중국과 인도를 연안 항해로

지나 홍해를 통과해서 지중해로 진출하는 거죠. 인도를

직접 거쳐 향신료가 들어오므로 향료길이라고도 불려요.



세 경로의 공통점이 보이죠. 결국 모든 길이

아랍 - 소아시아 - 발칸 반도 - 지중해로 이어지는

중심 지역에 모일 수밖에 없는 구조란 점이에요.



지중해에서 물자가 풀리지 않으면 유럽 경제가 마비되는,

약간 과장하자면 그렇고 그 물류가 분배되는 중심 지역이

보스포루스 해협발칸 반도인 거에요.



그런 점에서 1453년에 지금 그리스와 터키 위치인

비잔틴 제국이 오스만에게 무너졌을 때 상거래에

얼마나 큰 여파가 전해졌겠어요.



후추 값의 폭등을 넘어서 금처럼 화폐로 쓸 수 있을 정도로

가치가 급상승했다고 해요. 후추 몇 알 받는 것이 금화 수십

냥보다 더 가치가 높은 보수였다고 하니까요.



발칸 반도와 소아시아가 넘어갔음은 동지중해 해상 무역로가

막혔음을 의미하고 그때까지 제노바와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지중해 안에서만 놀던 무역의 판도가 바뀌어야 함을 뜻하죠.



이런 때 (지중해 무역에서 다소 변방으로 소외되었던)

이베리아 반도의 왕국들이 전면에 나서게 된 거에요.



포르투갈과 (이제 막 한 나라로 통일될 무렵인) 스페인은

지중해 문화의 변방으로 아프리카를 통한 바닷길 개척의

가능성을 전부터 눈여겨 보던 나라였어요.



이에 지중해 각지에서 한다 하는 항해가들이 두 나라로

꾸역꾸역 모여 새로운 항로 개척에 자금 및 인력 지원을

호소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구름떼 같이 몰렸다 하죠.



그 중 군계일학으로 새로운 땅을 발견한 자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아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랍니다.



콜럼버스가 실제 발견한 것은 인도가 아니라 서인도 제도

그의 측량치가 엄청난 오차 범위를 자랑했기에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해요. 그는 죽을 때까지 인도인 줄 알았고…



그 덕분에 아메리카 원주민은 학살 당했으나 세계사에

편입되는 결과를 낳기도… 이게 좋은 일인지는 영..



나비 효과이긴 하지만 후추로 시작한 (유럽인 입장의)

대탐험, 그 결과는 세계사의 거대한 변화랍니다.



아래 동영상은 비슷한 이야기..

양념으로 인한 역사의 변화를 언급하네요.

당시 인도와 영국의 후추 가격차가 5백 배가 넘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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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파록 불사라 포스팅은 정말 망설여 왔는데

보랩 영화를 봐버렸다. 보지 말걸. 안 할 수 없네.

여기선 영화 얘기만 하고 본격 보컬 스토리는

나중에 할 때가 오겠지..



매우 큰 히트를 치고 있음은 자명하지만

해외 평이 정확해 보이네. 딱 반쪽짜리 작품이다.

아울러 국내 영화 평론가들의 음악적 소양에

다시 한번 절망하기도 하며...



오랜 팬임을 자처하며 평가질 해대는 꼰대

어디 본 블로거 혼자이겠냐마는... 그래도 할 말은

혀야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드러날 터인데.





반쪽 짜리가 정말 딱 적당한 말이네.

전기 영화로서의 함량, 음악 영화로서의 완성도,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해석.. 뭐 여러 가지 관점

다 따져도 반쪽만 익히다 만 것임에 틀림 없겠으나..



특히 다른 곳에서 이야기하지 않는 한 가지는 꼭

짚고 싶을 따름이오니.. 라미 말렉의 연기를 100%

극찬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점이다.






100% 싱크로율을 자랑한다고 평가받는 역대 연기를

꼽아볼 수 있다. 링컨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 대처의

메릴 스트립이 최근 대표적 사례이겠고 음악가를

다룬 예로는 톰 헐스가 여전히 독보적일 것이다.

세월이 30년 넘게 흘렀음에도...



이쯤 되면 싱크로율이란 개념에 대해 현대의 대중이

어떻게 접근하는지 깊게 고찰해볼 만하다. 단순히

똑같이 재연한다면 그것이 100% 싱크로일까?








현대인들이 링컨의 생전 모습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과연 우리가 목격한 명연기가 싱크로가

맞기는 한 건지 되짚어볼 수 있다. 결국 단순한 재연이란

개념이 얼마나 허상에 가까운 것인지 알 수 있지 않나.



재연이라면 대상의 외양을 피상적으로 구현해내는 데

집착한다는 말이리라. 명연기라고 기억하는 링컨이나

대처는 외양 이전에 인물의 심리와 철학을 분석하여

표현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한 것이었음을 이해하시라.



적어도 현재까지 외신으로 접한 수준의 보도로 보면

라미 말렉의 곁은 무브먼트 코치가 지켜온 듯하다.

공연 중 보여준 프레디의 스테이지 모션이 너무

독창적이기에 나온 결정인 것 같긴 하다.






그런데 결국 거기까지만 보여주고 용두사미처럼

끝나 버린 것 아닌가 싶다. 몸짓을 복사하는 것까지만.

프레디란 사람을 이해하는데 있어 약간 패션모델 비슷하

몸의 선을 중시하는 무브먼트, 그것이 다는 아니지 않은가.



프레디의 정체성과 카리스마, 그리고 그것과 복잡하게

한몸처럼 엮여 있는 컴플렉스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페르시아 민족 계열 이민자 출신의 영국 아웃사이더란 것이

하나, 또 하나는 다들 알다시피 바이 양성애자란 것이다.






그에게 어린 시절의 컴플렉스를 선사한 이국적 두상과

용모는 사실 그의 민족 정체성인 파르시 종족의 특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전통을 중시하는

가부장적 페르시아 아버지 세대와의 갈등이 청소년기

억압적 가치관 형성에 기여했을 터이고.



여기에다가 유년기 어느 시점부터 스스로 자각해온,

뭔가 다른 성적 정체성이 화학적 결합을 일으킨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완벽한 재현으로 해석되는

(아버지를 죽였다고 어머니께 고백하는 첫 소절..)

보랩의 가사와 프레디의 철학은 이렇게 형성된 것.



바이 영국 이민자라는 아이덴티티가 곧 프레디인 셈.

단순 무브먼트에 치중한 듯한 디렉션이 뭔가 의아하고

쉽게 와닿지 않는다고 느끼는 요점이 이것이다.





무브먼트 자체도 그렇다. 프레디의 독창적 몸짓을

응원단 치어리딩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탄탄한 발레 기본기에서 나온 거란 점...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라미의 저 액션이 그냥 투박한 치어리딩에서 온 것인가

발레의 기본기에서 나온 것인가, 되게 고민고민하면서

본 장면이 사실 많았다. 도대체 정체가 뭐지..?

꽤 의아-궁금했음이 솔직한 심정..






흔히 프레디의 배나온 중년 콧수염 아저씨 시절로

기억되는 80년대 초중반 몸매도 발레 레슨에서 나온

산물임을 상기한다면, 그의 무브먼트에 대해 깊이를

갖고 접근한 것인지 한번쯤 회의적인 시각을 들이댈

수밖에 없을 터이다.



(80년대의 프레디는 발레와 오페라 레슨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많은 사람이 모르지만.

그만큼 감각을 갈고 닦기 위해 노력했다.)



아래는 역대 가장 기이한 코스튬 사이로 비집고 나온

프레디의 육덕진 몸매를 적나라하게 감상할 수 있는

대표적 뮤직 비디오.. 1984년 The Works 앨범에서..






프레디는 사실 원래부터 육체의 곡선을 드러내는데

실로 열성적인 집착을 보여준 아티스트인 것이다.

인간의 육체에 대한 탐미적 기호랄까.



또 하나의 기벽을 폭발시킨 뮤직 비디오

(무려 멤버 전원의 성별을 역전시킨..)

I Want to Break Free.. 같은 앨범..






라미와 프레디의 체형이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다는

건 알겠는데, 살짝 통통한 80년대 몸매로 세밀하게

다잡고 나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크다.



80년대는 프레디의 인생에서 참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앞둔 마지막 10년이었고 처음으로

에이즈 감염 사실을 확인하였기에 더더욱 섹스와

연애와 생에 집착한 복잡한 시절이었으니까...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라미의 목소리이다.

물론 말할 때 목소리. (극중 노래 목소리의 99%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프레디 본인의 아카이브와

마크 마텔을 적정 배합한 것이다.)



쉰 듯한 반가성을 많이 섞은 톤으로 해석의 기준을

잡았는데 이걸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해석이 뭐지? 성적으로 뭔가 모호한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캐릭터란 느낌을 주고 싶었나?



(상당히 남아 있는 프레디의 평소 대화 녹화분을

확인하면 쉽게 알 수 있지만 말할 때 목소리도

노래와 비슷하게 명료하고 또렷한 질감이었고

영화처럼 거칠고 투박한 팀버는 아니었다고.)







그런데 실제 프레디가 생의 절반을 넘기고도 아직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사람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는 확고부동한 주관을 가진

살짝 고집불통에 가까웠다. 패션이나 무용계의

까다로운 예술가 스테레오타입에 더 가까웠지..



물론 그의 삶은 섹스와 파티로 가득 차 있었다.

프레디의 실제 삶을 제대로 묘사한다면 여지없이

X등급을 받을 거라고 멤버들이 전했을 정도이니.

(단, 마약과의 연관성은 크지 않은 것 같고

그의 중독성은 술과 담배 쪽이었다고... 특히

담배는ㅠ.. 그의 대부분 삑사리가 흡연 때문..)



즉, 고민 따위는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거침없이

당당한 바이 섹슈얼의 사생활을 산 사람이었다.

라미의 목소리와 해석에, 불안한 미래를 꿈꾼

20대 시절 연기를 빼고 절반 밖에 동의가 안

되는 이유라고 하겠다.



http://ultimateclassicrock.com/bohemian-rhapsody-movie-hetwashing/




이쯤 되면 라미의 LGBT 해석 전체에 살짝 의문을

품게 된다. 생의 전반에 걸쳐 자신의 게이 라이프에

고민하는 예술가의 스테레오타입이라면 프레디보다

차이코프스키의 삶에 더 가까운 듯한데... 이러면

처음부터 방향이 잘못된 것 아닌감...



더구나 게이 브라이언 싱어가 이런 디렉션을 줬다고..?

이 부분에서 더더욱 의뭉스럽네. 싱어가 중간에 하차한

이유가 대략 어디서 발화했는지도 감이 오고.






브라이언 메이로저 테일러 같은 분은 연예계에서

거물이기에 동료 전기 영화의 묘사에 이러쿵저러쿵

참견했을 것 같고 아마도 싱어 같은 사람도 거부하기

힘든 상황이 여러 번 오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왜.. 예전부터 메이와 테일러는 프레디의 인생을

실제에 가깝도록 19금으로 묘사하는데 반대하지

않았던가.. 이런 의견을 갖고 있는 원로들이 이런

저런 의견으로 도움이랍시고 던지는 상황이라면,

방향 잡기가 참 혼란스러웠을 터...






그렇지.. 프레디는 엄청 '척' 하고 산 사람이다.

바이가 아닌 척, 이민 2세대가 아닌 척, 즉 진퉁

영국인인 척.. 사실 모두 알면서 쉬쉬한 거지만.

 노래, 그래서 나름 프레디의 인생곡이다.



아래는 프레디 솔로 프로젝트 중 최고라고

생각하는 타임.. 의외로 많이들 모르셔서.






네네... 길게 썼는데 두세 줄 요약..

라미 연기 이해 안 되고 영화는 반쪽 완성도.

연예인도 나이 들면 꼰대가 되야 하나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줘 감사해요.



역사상 전무후무한 보컬리스트라서

보컬 이야기하려면 큰 각오가 필요하다.

나중에 하자. 원 참, 황망스럽기는.



https://digitaldreamdoor.com/pages/best_vocalists.html


https://digitaldreamdoor.com/pages/best_vocalists-fe-rr.html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singers-of-all-time-147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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