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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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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락헤비메탈의 역사를 논할 때 설명이 필요없는

레전드들이 몇 분 계신다. 45년생 브리티쉬 스크리밍

보컬의 살아있는 전설, 이언 길런 Ian Gillan도 그 중

한 분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신화 속의 대 밴드

딥 퍼플 Deep Purple의 제2기, 그 화려한 정점과 함께

하얗게 불타올랐던 위대한 이름을 만나자. 아, 길런...!










*Smoke on the Water. Made in Japan.

- 1972년 8월 17일 도쿄. 4'13"부터 후배들의 극찬 릴레이 인터뷰.



*Child in Time. Made in Japan.

- 1972년 8월 16일 오사카.







딥 퍼플을 모르고 락 음악이란 카테고리에 접근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하드락헤비메탈이라는 특정

장르의 발전사에서 정말 빼놓을 수 없이 핵심이고 중추를

형성하는 밴드가 대충 한 셋 정도 된다. 속칭 트로이카라고

할 텐데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 그리고 딥 퍼플이다.



간단히 말해 이들 세 팀이 없었다면 하드락이나 헤비메탈이란

장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에 대한 반발로 태동한 모던

내지 얼터너티브 역시 전혀 다른 방향의 역사가 쓰여졌을

란 말. 69년의 Led Zeppelin II, 70년의 Paranoid, 여기에

72년의 Machine Head 등 세 장의 앨범이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평론가들이 헤비메탈이란 장르의 본질과 속성을

정의 내리는 일이 가능했다..는 것이 오늘날의 정설이다.



('Whole Lotta Love' by Led Zeppelin, 1969)

https://www.youtube.com/watch?v=V3u5rWzmhFI

- live from How the West Was Won, 2003



('Paranoid' by Black Sabbath, 1970)

https://www.youtube.com/watch?v=pTHeY0-P4MY

- live from The End Tour, 2016



('Highway Star' by Deep Purple, 1972)

https://www.youtube.com/watch?v=Y2qZJ3BHzjY

- live from Come Hell or High Water, 1993




10년 여의 공식 활동 기간에 멤버 교체 없이 활동을 지속한

레드 제플린, 프론트맨 보컬 교체할 때마다 작품의 방향이

탄력적으로 변모한 블랙 사바스와 비교하여, 딥 퍼플은 10년

좀 안 되는 전성기 시절에 총 4기로 구분될 만큼 멤버 교체

양상이 변화무쌍했고 또 각 기수마다 격변하듯이 음악의 색

전혀 달리 뽑히는 특징을 보여준 밴드이다.



68~76년의 딥 퍼플 전성기 활동 기간 중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최정상이라고 누구나 인정하는 시기가 바로

제2기, Mk.II**의 멤버 구성이고 인기가 극에 달했던 이

2기 딥 퍼플을 이끈 리드 보컬리스트가 바로 이언 길런.

이분의 전성기 보컬 스타일링을 통해서 헤비메탈이라는

장르가 지향해야 할 음악성이 규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만큼 음악사에서 중요한 분인 셈..



**Mk.II = '마크 투'라고 읽는다. 코믹스의 아이언맨처럼..ㅎ

 - 멤버 교체 시기로 구분하는 밴드의 역사를 이렇게 mark/기수

형태로 표시하기 시작한 효시가 딥 퍼플이라고 한다.







딥 퍼플의 출발점은 다소 어수선한 모양새였다. 짝퉁 비틀즈계

머시비트 밴드인 서처스의 드러머 출신 크리스 커티스란 이가

자신을 프론트맨으로 기용하는 밴드를 조직하겠다고 투자할

돈줄을 끌어모으며 각 스튜디오 최고의 세션맨들을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다녔는데...



이 레이다에 맨 처음 키보디스트 존 로드가 걸려들었고 베이스의

닉 심퍼, 기타의 리치 블랙모어가 낚였다. 근데 정작 커티스가 약에

쩔어살던 불량품인지라 투자자들이 즉시 해고했고 이왕 모인 일급

세션들에 로드 에반스라는 보컬과 약관 18세의 드러머 이언 페이스

결합해 아예 새로운 밴드를 만들어낸다. 블랙모어의 제안으로 이름이

정해졌으니 바로 딥 퍼플. 68년의 1기 멤버들인 게다.



*Deep Purple.. 원래는 1930년대 올드팝 히트곡의 제목이라고..

https://www.youtube.com/watch?v=Wll9RSCzoAI




1기 딥 퍼플커버 트랙 중심으로 히트 팝을 지향하는 사실상의

락앤롤 밴드였으니 1집의 Hush, 2집의 Kentucky Woman

팝 차트 히트 넘버들이 모두 리메이크였다. 오늘날 익히 알려진

딥 퍼플과는 몇 광년쯤 멀리 있는 음악 색이었던 셈. 그나마도

소속사의 막장 운영으로 3집이 돈도 못 벌고 쪽박 차게 생기니

결국 로드, 블랙모어, 페이스 셋이 주도하여 새로운 전략 하에

승부수를 띄워야겠다고 결심했다지.



하드락 밴드로의 변모가 그 주된 골자. 이미 마음이 떠난 상태이던

에반스를 떠나 보내고 심퍼를 교체하기로 한다. 이때 신생 밴드에서

노래하던 런던 출신 이언 길런과 베이스 치는 로저 글로버가 눈에

들어오고 블랙모어가 주동하여 새로운 라인업에 시동을 건다.



('Hush' from Shades of Deep Purple, 1968)

https://www.youtube.com/watch?v=_4QBhC1uCP4

- Joe South 곡의 커버



('Kentucky Woman' from The Book of Taliesyn, 1968)

https://www.youtube.com/watch?v=YcgeAtrVHvA

- Neil Diamond 곡의 커버




이 시기 음악은 대체로 41년생으로 가장 연장자이던 존 로드

주도하는 모양새로 클래시컬 락 내지 프로그레시브의 원형질을

탐구하는 시기였다. 3집April이나 사이드 프로젝트였던 The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가 이런 성향을 대표한

작품들. 길런이나 동갑내기 블랙모어는 살짝 불만이었다고.



두 사람은 동시대에 더 후지미 헨드릭스, 크림레드 제플린

선수치고 있던 하드하고 헤비한 어프로치를 가미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하며, 바야흐로 2기의 완전체로 본격 진용을 갖춘

딥 퍼플이 슬슬 8기통 엔진에 시동을 걸며 강렬한 신세계를

막 열어 젖히려는 역사의 순간이었다.



 (Deep Purple III) (Deep Purple)



('April' from Deep Purple III, 1969)

https://www.youtube.com/watch?v=RaMmBH3pYxY

*사실상 프로그레시브 락에 가까운 형식이다.




 (The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



('The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 First Movement

- Moderato-Allegro' by Deep Purple with Malcolm Arnold

and the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1969)

https://www.youtube.com/watch?v=C6ay6BwgBS8

*실질적으로 Jon Lord의 솔로 프로젝트에 가까웠으나

공식적으론 라이브 앨범으로 분류한다.

 - 로드는 정통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은 분.



('Nights in White Satin' by Moody Blues, 1967)

https://www.youtube.com/watch?v=qbqxbGm9hBI

*Days of Future Passed 앨범.

 - 사실, 2년쯤 앞서던 이런 작품을 모방한 것..







하드락의 트렌드는 60년대 내내 꾸준하게 자가발전하고 있었다.

비틀즈롤링 스톤즈 등 1세대들이 원형을 제시하고 뒤를 이은

밴드들이 비르투오소 스타일 기교와 한층 헤비이펙트를 장착한

하드웨어의 구현에 힘입어, 서서히 그 작법을 체계화하고 있었다.



60년대 초반까지 락앤롤이던 팝 음악의 조류가 하드락이란 서브

장르로 분화하면서 3~5명 규모 밴드 포맷에서 중심 권한이 픽업

장착한 일렉트릭 기타리스트 쪽으로 넘어다. 여기에 보컬리스트,

베이시스트, 드러머, 리듬 기타리스트, 키보디스트 등의 각 멤버별

책임 영역이 독자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단순히 픽업을 통해서 나는 이른바 기타의 '생소리'는 카랑카랑하고

얇다란 편인데, 반전 히피 문화에 뿌리를 둔 사이키델릭애시드

요소에 영향을 받으면서, 픽업의 시그널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변형한

각종 이펙트 - 이를테면 distortion, overdrive, phasing, feedback,

vibrato 등 - 를 덧입히게 되니 하드락을 규정하는 필수요소가 된다.



창작 방법론 면에선 기타 리프라는 개념이 돌출하였으니 해당 곡의

성격을 단번에 규정하는 상징적인 악절이나 동기를 가리킨다. 이

리프를 얼마나 창의적으로 작곡할 수 있는지가 기타리스트의 역량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어 버리고 리듬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등 보조

파트가 리프의 패턴이나 코드를 백업하는 형태로 반주가 진화한다.



(WatchMojo.com '14, Top 10 Guitar Riffs of All Time)

https://www.youtube.com/watch?v=vt8Q8L_I1pw

- 단, 이분들 집계가 다 그렇듯이 순위는 염두에 두지 말자.

- 음악사상 꼭 기억해야 할 리프 몇 가지 알아놓는 의의 정도..




여기에 드러머가 킥 베이스와 스네어를 교차하며 강약의 패턴을

반복하는, 이른바 - 심장 박동과 유사하게 들리는 - 백 비트를 더욱

강조하는 쪽으로 리듬을 받쳐주고, 베이시스트가 이 리듬 섹션에

동참하는 동시에 기타 리프의 패턴을 복사하며, 때때로 리듬 기타

또는 키보드가 한꺼풀 더 가미되는 식으로 곡을 구성하는 것이다.



하드락보컬리스트에게 요구되는 테크닉은 기존 팝 장르의 달달한

목소리와 여러 모로 다를 뿐 아니라 훨씬 고난도의 숙성과 장기간의

훈련을 요구했으니 shout, scream, growl, wail, vibrate, rasp 같은

공격적인 것들이었다. 대체로 남성 테너 음역을 넘어서는 고음역을

필수요소로 하게 되었고 때때로 팔세토나 이와 유사한 high register

영역이 보편화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각 파트별로 정착하고 발전해간 하드락 장르의 방법론이 더욱

공격적으로 진화한 형태를 헤비메탈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고 60년대

말에 태동한 트로이카 밴드가 이를 주도한 장본인들이다. 딥 퍼플

그 한 축이자 태풍의 눈이었던 아티스트들. 구체적으로 하드락 진화

역사에 더 큰 관심이 생긴다면 아래의 음악을 좇아가길 권한다.



"Kinks", 1964

('You Really Got Me' by The Kinks)

https://www.youtube.com/watch?v=fTTsY-oz6Go

- studio album version


"My Generation", 1965

('My Generation' by The Who)

https://www.youtube.com/watch?v=qN5zw04WxCc

- studio album version


Single "Hey Joe / Stone Free", 1966

('Hey Joe' by The Jimi Hendrix Experience)

https://www.youtube.com/watch?v=rXwMrBb2x1Q

- studio single version


"Disraeli Gears", 1967

('Sunshine of Your Love' by Cream)

https://www.youtube.com/watch?v=f3y8jf01UY8

- studio album version


"Led Zeppelin", 1969

('Babe I'm Gonna Leave You' by Led Zeppelin)

https://www.youtube.com/watch?v=UyOg0mt2R2k

- studio album version


"Fire and Water", 1970

('All Right Now' by Free)

https://www.youtube.com/watch?v=5wiF6b4rxno

- studio single version, Paul Rodgers on vocals.







레이블의 삽질로 전작에서 거의 수익을 얻지 못한 딥 퍼플

2기 진용. 여러 프로젝트를 전전하고 돈벌기 위한 투어를

병행하며 틈틈이 새 앨범 녹음을 진행한다. 클래식 음악에

바탕을 둔 고상한 로드식 어프로치로 절대 답이 없다고 여긴

블랙모어의 반강제적 결단으로 제플린을 좇아가는 헤비

작법에 집중했고 길런글로버도 이에 적극 동의했다.



 (Deep Purple in Rock) (In Rock)




70년에 발매한 정규 4집 Deep Purple in Rock은 이렇게

전투적인 자세로 얻은 인고의 산물이자 참신한 상상력의

빛나는 결정체였다. 뒤에 나올 후속 앨범으로 해당 장르

정점을 찍기 이전에는 헤비 사운드의 나아갈 길을 제시한

걸작이라고 평단의 찬사를 얻었던 작품이다.






당시 반응도 폭발적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평단과 언론이

더 깊이 평가하는 앨범인 듯하다. 영국의 하드락헤비메탈

전문 매거진 케랑!이 89년에 시대를 초월하는 100대 헤비메탈

명반을 집계하며 15위에, 05년에 최고의 100대 브리티쉬락

명반을 집계하며 56위에 올려놓은 바 있다.



(Kerrang! '89, 100 Greatest Heavy Metal Albums of All Time)

- 텍스트 아카이브: http://www.rocklistmusic.co.uk/kerrang_p2.htm

- 그래픽 아카이브:

  https://www.listchallenges.com/kerrang-the-100-greatest-heavy-metal-albums-of



(Kerrang! '05, 100 Best British Rock Albums Ever)

- 영국 아카이브:

  http://www.rocklistmusic.co.uk/kerrang_p2.htm#British%20Rock%20Albums

- 네덜란드 아카이브: http://www.muzieklijstjes.nl/Kerrang100British.htm




영국 Q 매거진도 98년에 최고의 50대 70년대 명반을 집계하며

48위로 평가했고, 클래식  매거진의 06년 100대 브리티쉬

명반 집계에선 13위를 차지했다. 이외에 05년 출간된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에도 물론 수록되는 등, 찬사가 줄을 이었다.



(Q Magazine '98, 50 Best Albums of The '70's)

http://www.rocklistmusic.co.uk/qlistspage2.html#70’s



(Classic Rock '06, 100 Greatest British Rock Albums Ever)

http://www.muzieklijstjes.nl/Classicrock100GreatestBritish.htm



(Robert Dimery '05, 1001 Albums You Must Hear Before You Die)

http://www.rocklistmusic.co.uk/steveparker/1001albums.htm




시작부터 강렬해 완전히 달라진 그들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낸

오프닝 트랙 Speed King. 이언 길런이라는 위대한 목소리가

폭발의 갈증에 목말라 하던 세상 만물에 완연히 현신하던 바로

 순간. 왜 보컬리스트를 바꿨는지, 블랙모어는 왜 그토록

헤비에 목숨 걸었는지, 세상 모든 사람이 본능적으로 수긍할

밖에 도리 없는 모멘텀이 도래한 것이다. 솔로잉 끝부분에 나온

길런의 초고음 스크리밍에서 가공할 전율을 느낄 터이다.



('Speed King' from In Rock, 1970)

*original studio album version

 - 잼 같은 인트로 50초를 지나 Hammond 전주 등장.

 - 3'27" 지나 더블 트랙 녹음한 guitar soloing.

 - 4'07" 무렵부터 vocal screaming.




2위까지 올라 딥 퍼플의 역대 영국 싱글 차트 최고 기록을 달성한

Black Night는 앨범과 거의 동시에 발매한 리드 싱글이다. 본래

앨범에는 수록되지 않았으나 팬덤이 기억하는 전성기 딥 퍼플

거의 초창기 히트곡이다. 글로버에 따르면 거쉬인 커버곡의 반주

베이스라인에서 힌트를 얻은 튠이라고.



('Black Night' from a single Black Night / Speed King, 1970)

- 다음 링크를 들어가면 어디서 모티브를 땄는지 알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tsMj0JD8N8




Child in Time. In Rock의 야수적 음악성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트랙은 사실 이 곡 아니겠는가. 보컬 재현 자체가 너무 어려워서

길런 자신이 이미 수십 년 전에 라이브를 그만 둔 곡이기도 하다.

사회적 가사가 많지 않은 딥 퍼플 음악사에서 반전과 베트남전을

소재로 다룬 흔치 않은 트랙이다. 소이탄 피해로 전신 화상을 입은

소녀를 촬영한 종군 보도 사진과 연계해 상상해보클라이맥스

스크리밍이 무엇을 표현한 건지 나름 감이 올 것이다.



*Nick Ut, The Terror of War (1972)

 - Pulitzer Prize Winner in 1973



('Child in Time' from In Rock, 1970)

*영국 TV쇼의 라이브 버젼. 전성기 전설적 실황.

 - Blackmore가 Gibson ES-335로 녹음한 마지막 트랙.



*studio album version

https://www.youtube.com/watch?v=UEjAaLu8Dhs




의외로 자유로운 그루브에 의존하지 않고 클래식처럼 정교하게

파트를 구분하던 블랙모어로드의 성향을 읽을 수 있다. 해먼드

오르간레슬리 스피커, 마샬 앰프존 로드 전매 특허 사운드의

상징이 된다. 블랙모어는 이 무렵부터 깁슨 버리고 스트랫으로

완전히 갈아탄다.



 (Lord)



 (Blackmore)




영국 앨범 차트에서 4위에 올랐고 독일, 호주, 오스트리아에선

을 찍었으며 발매 당시에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골드를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현재까지 전세계 판매고

4백만 장을 넘어 명실상부한 성공작이다. 딥 퍼플은 이제야

확고부동한 스타덤에 오른 것이다.



('Into the Fire' from In Rock, 1970)

https://www.youtube.com/watch?v=gMbY45kFs7w



('Hard Lovin' Man' from In Rock, 1970)

https://www.youtube.com/watch?v=ziISNxMCC3M




(Glover, Blackmore, Gillan, Lord, Paice)




71년 공식 5집이자 2기 라인업의 두번째 앨범 Fireball

길런을 제외하고 블랙모어로드 등 나머지 멤버들에게는

다소 아쉬운 작품이고 흥행 성적도 전작에 미치지는 못했다.

이리저리 투어 끌고 다니는 소속사 장단 맞추느라 스튜디오

작업에 할애할 여유가 없었다고.



 (Fireball)




그래도 영국 앨범 차트 최초의 1위 기록을 포함해 독일,

스웨덴, 벨기에 등 8개국 차트 정상을 석권했고 프랑스,

호주 등 5개국 탑텐에 들어 미국 시장을 제외하고 세계적

지지를 얻은 성공작임은 분명했다. 세계 판매고는 3백만

장이 넘었고 미국에서 골드까지 기록했다.



('Strange Kind of Woman' from Fireball, 1971)

https://www.youtube.com/watch?v=awGv_Go-smI

*studio album version

 - 가사의 내용은 영 좋지 않다. 매춘부 연심을 품은 소년의 성장기.

 - boogie-woogie란 본래 20년대부터 인기를 끈 블루스의 서브장르.




Strange Kind of Woman은 전작의 Black Night처럼

앨범에 수록되지 않고 리드 싱글로 미리 발매된 케이스.

(미국, 캐나다, 일본에선 앨범에 수록되었다.) 영국 싱글

차트 탑텐에 올라 앨범에 대한 기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잘 수행한 곡이고 블루스의 서브장르인 부기우기 모드를

맛깔나게 표현했다. 라이브에서 길런블랙모어가 주고

받는 애드립으로도 유명한 트랙이다.



*Strange Kind of Woman.

 - 73년 뉴욕 라이브 버젼.

 - 주고 받는 애드립은 3'40" 지나서 나온다.




타이틀 트랙 Fireball은 특이하게 에어컨 가동음으로 시작하여

로드가 극찬한 페이스투베이스 킥킹 패턴이 비트를 지배한다.

(아직 더블 페달이 나오기 전 시절이다.) 이들 음악 중 특이하게

기타 솔로 없이 베이스 및 키보드 솔로가 연이어 등장한다.



('Fireball' from eponymous album, 1971)

*studio album version audio + 'hand-sync' promo video clip

 - 꽤 화제를 모았던 프로모션 영상인데 죄다 립싱크+핸드싱크...

 - 제작 당시를 설명하는 Lord의 인터뷰가 덤으로 앞뒤에.. 돌아가시기 전.

 - 세밀하게 보면 손과 음이 따로 논다는 걸 알 수 있고, 심지어 4분 55초쯤

Blackmore기타를 뒤집어 드는 만행을...ㅋ




라이브에서 페이스드럼 솔로와 이어지는 걸로 유명한 트랙

The Mule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은 가사임이 정설이지만 악마 루시퍼에 관한 이야기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길런 본인이 코멘트한 바 있다. - 별 중요친 않다.



('The Mule' from Fireball, 1971)




Strange Kind of Woman이 영국 싱글 차트 탑텐까지 올라

기록을 이어나갔으나, 일부러 끈적한 그루브를 제거한 프로듀싱

스타일이 안 먹히는 탓인지 미국 시장 반응은 아직 그저 그러한

편이었다. 미국 빼고 유럽 반응은 물론 폭발적이었고. 일본도..

- 전 세계 판매고 1억 장이 넘는 딥 퍼플의 소비 시장 분포는

묘하게도 과 비슷한 편이다.



('Demon's Eye' from Fireball, 1971)

*71년 서독 TV쇼 라이브

 - 인트로에 등장한 Lord의 악기는 RMI 368X Electra-Piano.







일정이 촉박했던 전작에 비해 이번엔 한 달 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길런이 투어 중 간염에 걸리고 하는 소동으로 스케줄이

약간 꼬였었거든. 그동안 심기일전하여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며

블랙모어는 다양한 창작의 모티브를 구상하게 된다. 가끔 다급한

중에 나오기도 하지만 무릇 명반이란 여유 속에 탄생해야 하는 법.





 (Montreux, Switzerland)




요양할 필요도 있겠다, 기분 전환도 필요하겠다, 겸사겸사 밴드

전체가 스위스 몽트뢰로 출장을 떠났다.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유명한 고장. 이제 신보 녹음해야지. 카지노에 자리를 잡고 롤링

스톤즈의 이동식 녹음 스튜디오에 시동을 걸 준비를 했다. 프랭크

자파마더즈 오브 인벤션 공연이 끝나길 기다려 들어가려 했다.



          




어느 얼빵한 관객놈이 천정에 조명탄을 쏴버려 카지노 건물에 그만

불이 나버렸네. 난리가 났지만 제네바 호수 표면에 비친 화재 풍광은

또 한편의 장관이기도. 할 수 없이 옆에 임시 막사로 옮겨 녹음 좀

하려는데 소음이 너무 시끄럽다고 주민 신고가 들어온다네. 맙소사,

어찌어찌 하여 폐건물 호텔을 빌려 겨우 녹음을 진행했다.



- Smoke on the Water, Fire in the Sky.. Montreux.. 1971.

- 호텔 창밖으로 대략 이런 풍경을 감상하며 악상을 떠올리셨다고.



*Smoke on the Water. lyrics.

https://genius.com/Deep-purple-smoke-on-the-water-lyrics




새옹지마라 했던가. 일이 잘 되려면 사고 좀 나줘야 하고 예로부터

녹음할 때 귀신 나오면 그 노래 대박친다 했다. 락 역사상 공전절후의

명곡 Smoke on the Water는 대략 이런 뒷이야기를 가사로 구성한

밴드 모험담의 풍자적 송가였던 것이다. 기타 샵에서 제발 이 곡 좀

그만 쳐라, 영원불멸의 1위에 빛나는 바로 그 노래... 수록된 절대

명반, 72년 6집 Machine Head. 캬~~



 (Machine Head)






(Classic Rock '06, 100 Greatest British Rock Albums Ever)

http://www.muzieklijstjes.nl/Classicrock100GreatestBritish.htm




전술했지만 본작으로 비로소 헤비메탈이란 장르가 독립하여

폭발적으로 시장 형성을 시작한다. 클래식 락 매거진의 06년

100대 브리티쉬락 명반 집계에서 26위를 차지하고, Q 매거진

01년 시대를 초월한 50대 헤비 명반 및 04년 30대 클래식

명반 집계에 선정된 이유가 바로 이것.



(Q Magazine '01, 50 Heaviest Albums of All Time)



(Q Magazine '04, 30 Greatest Classic Rock Albums Ever)

http://www.rocklistmusic.co.uk/q_mojo_se.htm#Classic%20Rock




그뿐인가. 케랑! 매거진은 89년에 시대를 초월하는 100대 헤비메탈

명반을 집계하며 35위에, 05년에 최고의 100대 브리티쉬락 명반

집계하며 34위에, 본작을 선정했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

07년에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1000장의 앨범 중 하나로 뽑기도.




(Kerrang! '89, 100 Greatest Heavy Metal Albums of All Time)

http://www.rocklistmusic.co.uk/kerrang_p2.htm



(Kerrang! '05, 100 Best British Rock Albums Ever)

http://www.muzieklijstjes.nl/Kerrang100British.htm



(The Guardian '07, 1000 Albums to Hear Before You Die)

http://www.rocklistmusic.co.uk/guardian100.htm#1000%20Albums




완전 4 음정인 파워 코드의 대명사로 왕년에 기타 만져봤다는

초짜들은 다 한번씩 쳐보는 리프... (점원의 정신 건강을 위해 제발

낙원동 가서 그만 좀 치라고들..Smoke on the Water리프

하나 만으로도 음악사에 길이 남을 게다. Q 매거진이 05년에

100대 기타 트랙 명곡 랭킹에서 12위에 올린 바 있다.



- the legendary riff that you would already know by heart..



('Smoke on the Water' from Machine Head, 1972)

https://www.youtube.com/watch?v=OSXkTm1iRQQ

*original studio album version



(Q Magazine '05, 100 Greatest Guitar Tracks Ever)

http://www.rocklistmusic.co.uk/qlistspage3.htm#Guitar%20Tracks




원래는 계획에 없었는데 이 곡이 세계적으로 왕대박을 쳐버리

이듬해 개별 싱글로 발매하여 핫100 차트 4위까지 치고 올랐다.

롤링 스톤 매거진이 04년에 선정한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곡

랭킹에선 당당 434위를 차지했고. 기록도 풍년이로세.. 얼쑤~



 (Smoke on the Water, single)



(Rolling Stone Magazine '04,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500-greatest-songs-of-all-time-151127/deep-purple-smoke-on-the-water-165096/




이와 함께 본작을 대변하는 시그니처 트랙으로 Highway Star

역시 빼놓을 수가 없다. 로드+블랙모어듀얼 솔로잉 전성기

극강의 연주력을 상징하고 일찍이 요한 세바스찬 바하가 제시한

후기 바로크 화성악 스타일의 프레이징으로 유명한, 70년대식

밴드 연주력 측정기인 바로 그 명곡...!



('Highway Star' from Machine Head, 1972)

*original studio album version

 - 오리지널은 박자가 느린 편이고 라이브에선 BPM을 높인다.



**네오클래시컬 메탈

 - 일본과 한국 바보들이 한때 바로크 메탈 어쩌구로 불렀었으나 영어권

표현으로 neoclassical metal 정확한 용어이다. 신고전파..

 - 제팽글리쉬로 보이는 바로크 메탈이란, 존재하지 않는 말. 쓰지 마라.

뭐 이런 것까지 일본 바보들을 따라 해야 하남.

 - 어쨌든 멀리 JS바하를 시조로 받드는 해당 서브장르가 이 곡을 효시로

한다는 점은 사실이다. 파생 상품 업자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스웨덴의

Yngwie Malmsteen다.




오버드라이브 잔뜩 걸어준 로드해먼드 인트로블랙모어

넘어가는 Lazy는 7분여의 대곡이었는데 80년대엔 줄여서 짧은

버젼으로 라이브를 소화하곤 했다. 블루스 필이 강하고 길런

하모니카 연주를 선보인다.



('Lazy' from Machine Head, 1972)




사이키델릭 냄새가 강한 Space Truckin'은 우주 여행 모험담을

풀어낸 노래. 로드ARP 신디 초기형을 도입해 링 모듈레이션

합성 방식의 프레이징을 인트로에서 선보였다.



('Space Truckin'' from Machine Head, 1972)




싱글로도 발매해 영국 차트 탑40의 준수한 성적을 거둔 Never

Before는 라이브 셋리스트에 희한하게 잘 올라오지 않는지라

오히려 팬덤이 희귀 넘버로 찾아다니는 트랙. 2기 이전 초창기

딥 퍼플 냄새가 살짝 나기도 한다.



('Never Before' from Machine Head, 1972)




현재까지 이 앨범의 세계 판매고는 7백만 장을 넘어섰고 발매

당시 빌보드 200 차트 7위에 올랐으며 현재는 미국에서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영불독 및 캐나다, 호주 등 9개국 앨범

차트 을 찍었고 이탈리아, 일본 포함 다섯 나라 탑텐에 든다.

딥 퍼플 타이틀 하의 커리어를 통틀어 이때가 최절정기였다.



('When a Blind Man Cries' from Machine Head, 1972)

https://www.youtube.com/watch?v=ZLJ8XO7pBu4

- Soldier of Fortune 분위기를 미리 뽑아낸 숨겨진 발라드.

- 원래는 Never Before 싱글의 B면 트랙이었다.




(Blackmore, Gillan, Glover, Lord, Paice)




숱한 라이브에서 각기 다른 버젼의 애드립 프레이징을 창조하며

매번 색깔이 전혀 다른 무대를 만들어온 제2기 딥 퍼플이었지만

의외로 라이브 앨범에는 인색한 편이었다. 스스로가 만든 무대

사운드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



('Sympathy for the Devil' by Rolling Stones, 1968)

https://www.youtube.com/watch?v=qmppOF0_DHE

*live version from Get Yer Ya-Ya's Out!, 1970




하지만 음향 기술도 진보하고 있었다. 70년에 발매된 더 후

롤링 스톤즈의 라이브 명반 같은 경우 특히 이들이 가진 부정적

편견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작업물이었다. 72년 8월에 일본

투어로 세 차례 공연이 잡혔는데 이때 연주 버젼을 녹음하여

결국 그들의 실질적인 첫번째 라이브 앨범을 출시한다.



('My Generation' by The Who, 1965)

https://www.youtube.com/watch?v=PoHCjHtHrVo

*live version from Live at Leeds, 1970




72년 Made in Japan. 롤링 스톤 매거진의 12년 독자 투표

시대를 초월한 10대 라이브 명반 중 6위에 오른, Mk.II 전성기

최고의 기록을 담고 있다는 그 전설의 작품이다. 얼마나 대단한지,

딥 퍼플 디스코그래피에서 개별 판매고가 가장 높은 앨범이 다른

정규 음반 다 제치고 바로 이 작품일 정도. 8백만 장이 넘었단다.



 (Made in Japan)



(Rolling Stone Magazine '12, Readers' Poll:

The 10 Best Live Album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readers-poll-the-10-best-live-albums-of-all-time-18920/6-deep-purple-made-in-japan-132257/




본작은 레드 제플린The Song Remains the Same과 여러

면에서 비교될 수밖에 없었는데 동종 장르에서 라이벌 구도이기

때문에 그런 점도 있지만 라이브를 대하는 근본 자세에서 두 팀이

전혀 다른 접근법을 취하기 때문이다. 라이브 준비는 개인 연습이

알아서 하는 것이고 실제 무대에선 즉흥적인 합으로 맞추는 것이

진짜 음악이라고 생각한 제플린에 비해, 딥 퍼플은 라이브의 합도

서로 칼같이 약속하고 연습한 플레이만 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



*Smoke on the Water. Made in Japan.

- 1972년 8월 15일 오사카. (유신 직전 광복절이군..)




Made in Japan은 그런 음악적 신조를 배경으로, 실력 면에서

최정점을 찍고 있던 2기 멤버들이 어쩌면 스튜디오 레코딩보다도

훨씬 더 정교할지 모를 연주 합을 들려주었기 때문에,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모든 음악팬이 인정하는 최고의 라이브 앨범으로 거듭

재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 제플린 라이브에 대한 평가는 사실

그닥 좋지 못하다. 완성도 면에서 다소 성의 없다고... 퍼플 완승.



*Highway Star. Made in Japan.

- 1972년 8월 16일 오사카.

**Highway Star는 이후 라이브에서 하도 변칙 해석이 난무하여

원곡 버젼 연주를 듣기가 오히려 더 힘든 곡인데, 오리지널 버젼

연주를 스튜디오처럼 충실히 재연한 거의 유일한 아카이브이다.



*Strange Kind of Woman. Made in Japan.

- 1972년 8월 16일 오사카.




(Blackmore, Lord, Glover, Paice, Gillan)




한창 잘 나가던 딥 퍼플. 안타깝지만 균열의 조짐이 슬슬 나타났고

근본적 원흉은 돈벌이에 급급했던 소속사 매니지먼트였다. 휴가도

없이 투어와 레코딩으로 몇 년을 달리다 보니 다른 파트보다 몸이

악기인 보컬리스트에게 가장 큰 여파가 왔다. 길런의 육체 피로와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고 오늘날까지 문제가 되는 블랙모어와의

신경전도 이때 서로 싸우다 보니 싹이 트게 된 것이다.



 (Who Do We Think We Are)




2기 황금 라인업의 마지막 작품 73년 7집 Who Do We Think

We Are는 그런 스트레스 전쟁의 산물. 이거 녹음할 때쯤 이미

길런은 탈퇴로 마음의 가닥을 잡은 상황이었다. 73년 6월 일본

투어가 끝나자마자 탈퇴서를 남기고 길런이 아예 음악계 은퇴를

선언했으며, 글로버는 직후에 해고 당했다. (제발로 걸어 나갔단

설도 있긴 하다.)



*'13 interview with Ian Gillan and Deep Purple.

https://www.rhino.com/article/stay-tuned-by-stan-cornyn-loudest-purple

 - 2기 전성기가 오래 가진 못할 거라며 뿌리까지 뽑아 먹으려던 그들.

 - 길런, 내가 매니저라 "암것두 하지 말고 한 석 달 쉬어"라 했을 걸?




Woman from Tokyo는 본작이 남긴 거의 유일한 히트곡. 앨범

판매도 준수했고 차트 성적도 괜찮았지만 마치 혼이 나가듯이 곡

하나하나에 기백이 없어 멤버들이나 팬덤 모두 본작의 수록곡을

그닥 좋아하진 않는 듯하다. 황금의 Mk.II 라인업은 이렇게 역사

속 뒤안길로 사라진다.



('Woman from Tokyo' from Who Do We Think We Are, 1973)




('Rat Bat Blue' from Who Do We Think We Are, 1973)

https://www.youtube.com/watch?v=6mQTDlQQ5RE

- 그나마 본작에서 이 곡 정도 건질 만하다는 평을 듣곤 했다.







몸도 마음도 지쳤거니와 길런은 한동안 음악계를 떠나 지냈다.

호텔이나 모터사이클 등 몇 군데 사업 투자를 해보았지만 뜻대로

잘 되진 못했다. 다시 음악을 시작했는데 난데없이 재즈락으로

장르를 바꿔 이언 길런 밴드를 조직한다. 3장의 앨범을 냈지만

사실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punk시대에 재즈를 들고 나왔으니.



('Child in Time' by Ian Gillan Band, 1976)

https://www.youtube.com/watch?v=pwkJo9_c3fM

*재즈 퓨전 스타일로 리메이크한 Gillan 자신만의 버젼.

 - 부르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도 있고 상당히 끈적하게 바꿔 놓았다.




딥 퍼플은 보컬에 데이빗 커버데일, 베이스 및 보컬에 글렌 휴즈

받아들여 제3기 라인업을 가동하고 있었다. 블루스funk, 소울

더 가깝게 다가간 3기 라인업, 사실 꽤 괜찮았다. 동명의 앨범에서

걸작 트랙 Burn이나 또 다른 타이틀 트랙 Stormbringer 등, 수작

정도로는 평가할 만큼, 곡도 충실하게 잘 뽑혀 나왔었다.



('Burn' from eponymous album, 1974)



('Stormbringer' from eponymous album, 1974)




블랙모어 입장에선 새 멤버들로 채워진 funk 및 소울 분위기가 영

별로였다. 탈퇴하고 나와 로니 제임스 디오레인보우를 결성한다.

또 다른 당대 최강의 보컬리스트가 가세한 블랙모어 사운드는 한층

고강하고 고결해져 Man on the Silver Mountain Stargazer

같은 수작 트랙이 양산된다. 판매고가 살짝 아쉬운 수준이긴 했다.



('Man on the Silver Mountain' from

Ritchie Blackmore's Rainbow, 1975)



('Stargazer' from Rising, 1976)




블랙모어가 없는 딥 퍼플은 - 나중에야 다들 깨닫지만 - 등뼈

큰 조각이 빠진 듯한 모양새였다. 토미 볼린을 영입하여 신작

앨범을 내지만 결국 전성기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만다. 볼린

휴즈마약에 빠져 밴드 분위기를 해치는 것이 큰 원인이었다.

76년 투어를 끝내고 딥 퍼플은 공식 해체를 발표한다. (볼린

과대평가하는 일부 평자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 결국 팀을 깨뜨린 불성실 약쟁이일 뿐이다.)




(Paice, Hughes, Coverdale, Blackmore, Lord)




블랙모어는 그럭저럭 디오와 잘 하고 있었는데 예술적으로 워낙

변덕이 죽끓듯하는 사람이라 음악의 방향성을 놓고 디오와 의견

대립이 생기니 결국 멤버를 싹 다 갈아치운다. 1978년. 길런

그 대체자로 영입할까 고려한 적도 한때 있었지만, 솔로 활동에

미련이 컸던지라 길런이 거절했다고. 아까비~ - 아이러니이지만

레인보우는 이후 교체 멤버로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다.



 (Dio, Blackmore)




길런도 생각 잘 한 거였다. 다시 전공인 헤비메탈로 복귀하여

길런이란 밴드 타이틀로 앨범 작업을 시작하는데 영국 골드

실버 수준의 성공을 거둔 것. 일본에서 반응도 좋았다 한다.

78~82년에 6장의 앨범을 내고 그럭저럭 짭짤한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단, 82년에 성대 결절로 갑자기 활동을

접어야 했던 흑역사도 겪는다.






('Mr. Universe' by Gillan, 1979)

https://www.youtube.com/watch?v=3KvCAmPXwD4



('Future Shock' by Gillan,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C2mvWIByJ2A




1980년에  소동이 하나 있었는데 돈벌이에 환장하던 어느

기획사가 1기 보컬 로드 에반스를 꼬드겨 대충 세션을 붙이고

딥 퍼플 재결성이란 제호에 공연을 추진한 것. 당연히 2~3기

멤버들 중심으로 소송전에 들어갔고 에반스는 거의 70만 불에

달하는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했다고. 피해를 볼 팬들을 위해

진짜 멤버들이 '우리 안 나옴' 하고 신문에 광고까지 냈단다.



          

- Bogus Deep Purple & Real Ad..




3기 보컬이자 또 한 명의 레전드 커버데일딥 퍼플 해체 후

78년에 화이트스네이크를 결성해 80년 무렵부터 서서히 히트

동력을 높이고 있었다. 일찍이 로드페이스도 멤버로 참여해

힘을 모았으니 포스트 퍼플 프로젝트로 중요한 밴드였던 차...

(정작 이들의 전성기는 84년에 로드+페이스 나가고 난 직후

찾아오고 있었으니..ㅎ)



(Murray, Lord, Marsden, Moody, Paice, Coverdale)



('Here I Go Again' from Saints & Sinners, 1982)

*87년에 대박 친 버젼의 82년 오리지널 트랙이다.




앞서 78년에 레인보우를 떠난 디오블랙 사바스에 합류해

검은 안식일 제2의 전성기를 빚어내고 있었다. 토니 아이오미,

기저 버틀러의 프레이징에 동기화시키는데 최적화되어 있던

오지 오스본에 비해 디오는 다른 멤버의 백킹을 가로질러 뚫고

나오는 스타일이라 전혀 다른 헤비의 미학을 창조하고 있었다.

- 이 시기 명곡 Heaven and Hell디오, 아이오미, 버틀러,

그리고 빌 워드에 의해 멋드러진 향취로 주조되었다.



('Heaven and Hell' from eponymous album, 1980)




이렇게 괜찮았는데 다음 앨범 준비하면서 디오아이오미

사이가 틀어지고 만다. 디오사바스와 솔로 프로젝트를 동시

진행하면서 스튜디오를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것. 디오가 떠나

버리고 후임으로 솔로 활동을 접고 있던 길런이 선임된다. 와..



*이때 길런을 사바스로 끌어들인 매니저가 돈 아든이라고, 이

무렵 오지 오스본 장인이 된 분이다.. 즉 샤론 오스본의 부친..

이 가족 이야기는 복잡하니 훗날 기회 있을 때...




(Butler, Gillan, Ward, Iommi)




 (Born Again)




또 하나 역사에 남을 슈퍼그룹이 될 수도 있었던 이 프로젝트.

83년 블랙 사바스 공식 11집 Born Again 앨범으로 결실을

맺는다. 블루지하고 자유분방한 길런의 스타일이 사바스

아이오미 식 패턴과 맞지 않는다고 평단이 깠고 - 멤버들도

그렇게 느꼈지만 - 팬덤의 반응은 좋았다. 영국 앨범 차트

4위까지 가는 성공을 거둔다.



('Trashed' from Born Again, 1983)



('Hot Line' from Born Again, 1983)




여기까진 그래도 들어줄 만한데 아래 트랙들 들어보면 음울하고

짐짓 답답스런 사바스 정서가 낭만이나 자유로운 미학을 추구하던

길런 스타일과 확실히 어울리진 않음을 알 수 있다.



('Zero the Hero' from Born Again,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7i3URNHQuFo



('Keep It Warm' from Born Again,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MrGja48pfAY




여담이지만, 투어 돌면서 블랙 사바스 예전 트랙들 가사 외우는

데에도 된통 애를 먹었다고. 뭐든 다 잘 할 것처럼 보이는 전설의

보컬리스트 최대 약점은 가사 암기였다...ㅎ 딥 퍼플 때도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줄줄이 나올 정도..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서

중간에 까먹으셔도 팬들이 그러려니 하고 웃으며 넘어간다고.ㅋ



*Highway Star. 독일 TV쇼 '72. 전설의 가사 까먹기.




그런데 암기와는 별개로, 희한하게 작사는 즉흥적인 느낌을 좇아

또 기가 막히게 하시는 스타일... 사바스에서 작사 담당이던 베이스

버틀러와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아이오미가 짐짓 놀라셨다 한다.

사람의 두뇌에서 창작과 암기는 확실히 다른 영역의 기능인가 보다.





*15년 회고 기사, '사바스가 퍼플로 다시 태어났을 때'

https://metalinvader.net/the-old-enough-the-unnoticed-and-the-devils-soundtrack-when-sabbath-were-born-again-purple/







헤비메탈 팬덤에게 83-84 시즌의 사바스/길런 조합이 크나큰

선물이었다면, 84-85 시즌에는 경천동지할 더 뜻깊은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MTV시대 헤어 메탈에 열광하던 미국의

새로운 하이틴 팬들에게 더욱 그러했으니, 전설적인 2기 라인업

딥 퍼플의 재결성이었다. 두두둥.




(Glover, Blackmore, Lord, Gillan, Paice)




예전처럼 닥달하던 사람들 말고 새로운 매니저 및 폴리그램과

재결성+신보 계약을 맺었다. 사바스고 자시고 간에 길런이 이

프로젝트로 득달같이 달려갈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2기 퍼플

길런의 화려한 젊은 시절이자 마음의 고향이니까. 84년 공식

11집을 발매하는 그들. Perfect Strangers였다.



*각자 어디서 뭐 하다 달려들 오셨나...

 - Ian Gillan : 별로 안 어울리던 Black Sabbath 3기 보컬 접고..

 - Ritchie Blackmore : 판매 부진하던 Rainbow 막 해산시키고..

 - Jon Lord : 잘 나가던 Whitesnake 때려치우고.. - 2기에 대한 애정.

 - Roger Glover : Blackmore랑 Rainbow 하다 접고..

 - Ian Paice : Gary Moore 밴드 접고.. - 거기보단 퍼플이 낫지.




 (Perfect Strangers)




솔직히 앨범 자체는 크게 기대할 것이 못 된다. Knocking at

Your Back Door타이틀 트랙 Perfect Strangers, 두

곡이 라이브의 고정 레퍼토리로 정착하긴 하나 그 이외 트랙

정직하게 영 아니올시다 평가도 받았다. 그냥 전설들이 다시

뭉쳤구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의의를 둘 수 있을 뿐.



('Knocking at Your Back Door' from Perfect Strangers, 1984)




그런데 Reunion Tour는 사정이 달랐다. 시쳇말로 84~85년

당시 세계 공연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대사건 중 하나였다. 이에

필적할 만한 사건은 브루스 스프링스틴 대박 친 것 하나 말고

꼽을 수가 없을 정도.. (Born in the U.S.A.시절)



('Perfect Strangers' from eponymous album, 1984)




호주에서 투어를 개시해 북미와 유럽을 거쳐 남미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는데 특히 유럽 레그의 정점을 Knebworth Festival

찍어 버렸고 문자 그대로 현지 언론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한다.

- 물론 당시 한국에선 몰랐지만... 이때 딥 퍼플의 수익은 앨범

판매보다는 투어에 전적으로 기댔다고. 돈이 중요친 않았지만..



*Deep Purple: 'Surprise of the Year', Billboard Magazine; May 1985.

https://books.google.co.kr/books?id=HCUEAAAAMBAJ&lpg=PA219&ots=_VAMzrnxoY&dq=deep%20purple%201985%20billboard%20surprise%20of%20the%20year&pg=PA219#v=onepage&q=deep%20purple%201985%20billboard%20surprise%20of%20the%20year&f=false

 - 얼마나 뜨거운 반응이었는가, 당시 빌보드 지 기사 아카이브.

 - 원래 하루 공연으로 그칠 계획이었는데 연이어 매진을 기록하니

  추가로 공연일 잡느라 진땀 뺐다는 행복한 뒷이야기.. 미국에서.

 - 넵워쓰에선 폭우가 쏟아지는데도 8만 관중이 운집하여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퍼플도 이에 열정적 퍼포먼스로 화답했다는...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반까지는 길런블랙모어의 앙숙

관계가 주된 화두였다. 길런이 쫓겨나면 블랙모어가 남고

(89년), 길런이 복귀하면 블랙모어가 나가 버리고(93년)..

팬덤은 뭐하는 짓거리냐며 성화고... 결국 블랙모어는 다시

돌아오지 않조 새트리아니를 거쳐 스티브 모스가 줄곧

원만하게 활동하며 투어 중심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때

한국에도 공연을 오셨더랬다. 본 블로거, 현장에 있었고..)




*Highway Star, live in Seoul

 - 1995년 3월 18일




(Deepest Purple: The Very Best of Deep Purple)




88년에 당시 소련이던 아르메니아에서 대지진이 발생해 많은

사상자가 나니 길런을 포함한 락 뮤지션들이 자선 프로젝트로

뭉쳤다. 이때 Smoke on the Water를 커버했는데 상당한

화제가 되었다.



('Smoke on the Water' by Rock Aid Armenia, 1989)

- (v) Ian Gillan, Bruce Dickinson, Paul Rodgers, Bryan Adams

- (g) Tony Iommi, David Gilmour, Brian May, Alex Lifeson,

       and Ritchie Blackmore

- (k) Geoff Downes, Keith Emerson

- (b) Chris Squire

- (d) Roger Taylor

- etc. Jon Lord, John Paul Jones







이때 맺어진 길런아르메니아의 인연은 훗날 다양한 프로젝트로

결실을 이어나간다. Rock Aid Armenia 20주년을 기념해 09년에

아르메니아에서 토니 아이오미제프 다운즈와 함께 공로 훈장을

서훈받았다. 이 조합에 2년 후 존 로드를 포함하여 제이슨 뉴스테드,

니코 맥브레인이 가세한 슈퍼그룹이 결성되니 후케어즈였다. 그는

아르메니아 자선 프로젝트에 지속적으로 참여했고 이 멤버 그대로

공연도 이어나갔다.



('Out of My Mind' by WhoCares, 2011)




93년에 길런/퍼플에서 갈라져 나온 블랙모어. 안타깝지만

이후엔 딥 퍼플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고 앞으로도 복귀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현재는 아내 캔디스 나이트

포크락(!) 밴드 블랙모어s 나이트를 결성해 루츠 음악에 더

근접한 활동을 지속해오고 계신 실정... 아쉽긴 하다.



 (Blackmore's Night)




68년 결성 후 페이스와 함께 줄곧 밴드를 지탱하며 실질적인

리더로 믿음직스러운 맏형이었던 로드. 멤버들과 많게는 열 살

가까이 나이 차가 지는지라 현역에서 물러나는 순서도 이 분을

기점으로 시작되었고 02년에는 스스로 딥 퍼플에서 탈퇴하여

돈 에어리에게 후임 자리를 물려주셨다. 장비 일체 포함...



          




해먼드 C-3레슬리 스피커, 마샬 앰프로 구성하는 로드만의

시그니처 톤은 그 자체로 하드락의 역사가 되었고 로드 자신을

키스 에머슨이나 릭 웨이크먼 같은 동시대 경쟁자들과 확연하게

구분 짓는 강한 차별화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피아노의 그것과

전혀 다른 오르간 만의 레가토 주법이 중요하다는 점을 항상

강조하던 존 로드... 12년에 지병인 췌장암으로 별세하셨다.





*Perfect Strangers.

 - Jon Lord 추모 콘서트




93년부터 추천 요건이 되었지만 딥 퍼플락앤롤 명예의 전당

자격 심사에서 매번 탈락하는 일은 큰 논란거리였다. 키스, 러쉬,

메탈리카, 건즈 앤 로지스 등 까마득한 후배들이 작심하고 비판을

쏟아냈고, 결국 늦었지만 16년에 드디어 딥 퍼플이 헌액 무대에

오른다. 길런, 블랙모어, 로드, 글로버, 페이스, 휴즈, 커버데일,

에반스... 여덟 명에게 영예가 주어졌다.



*Hush & Smoke on the Water. R&R Hall of Fame Induction.

 - Jon Lord가 돌아가신지 4년 후.

 - 키보드에 Don Airey, 기타에 Steve Morse.

 - 현재 라인업을 존중하기 위해 Blackmore는 불참했다고.

 - 멤버들 볼 면이 안 서는 Evans는 (당연히) 불참.







락 음악사상 가장 쿨하고 남성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하드락

헤비메탈의 장르 존립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밴드, 딥 퍼플...

보컬, 기타, 키보드, 베이스, 드럼 각 파트마다 멤버 각자가 후배

뮤지션들에게 미친 영향력은 일일이 다 언급하기가 불가능할

만큼 어마어마하다.



물론 이들에게도 비판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결국 70년대

전성기의 짧은 스타덤에 기대어 나머지 일생의 투어 수익을 올리는

올드보이들 아니냐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럼 비틀즈조차도 10년을

넘기지 못했는데 실질적인 상업적 전성기가 20년 이상 가는 대중

음악가가 과연 몇 팀이나 되냐고 반문하고 싶다. 30년 넘겨 히트작을

생산하는 아티스트는 딸딸 털어도 롤링 스톤즈, 폴 매카트니, 엘튼 존,

U2, 마돈나 고는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음악 산업의 가치 사슬이나

경기 순환 주기란 것이 그만큼 짧고 지속 가능 못한 것이 현실이니까.



1억 장이 넘는다는 딥 퍼플 디스코그래피의 세계 판매고 숫자가

몇몇 지표에서 드러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이것은 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 산업 측정 지표란 것이 빅 데이터 통계량으로 체계화하기

시작한 시점이 80년대 이후인지라, 절반 이상의 판매고가 70년대에

몰려 있는 이들 상업 실적의 상당수 통계량 오늘날 추적이 불가능한

상태로 사실상 소멸해버렸기 때문이다. 다이애나 로스, 클리프 리처드,

스콜피온즈, 오지 오스본, 톰 존스, 잭슨 파이브 등 70년대 이전 실적

지분이 큰 다른 아티스트도 같은 이유로 판매고 집계에서 상당히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전언이다.



어찌 되었든 실적 데이터에 관한 것 말고 음악적 기여도에 있어선

왠만해서 딥 퍼플을 까내리려 시도하는 용자가 많지 않을 것이다.

앞에서 했던 찬사를 반복하는 건 의미가 없겠고 그 시간에 멋진

음악이라도 하나 더 소개하는 편이 훨씬 현명하므로, 앞서 72년

Machine Head 앨범에서 각 파트별 밸런스가 어떻게 이렇게 딱

맛깔나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숨겨진 보석 같은 사례로서,

Pictures of Home을 추가로 제시하며 설명을 대신하고자 한다.

장담컨대 이렇게 멋진 음악을 제시할 수 있는 락 밴드, 예나

지금이나 결코 흔하지 않다.



('Pictures of Home' from Machine Head, 1972)

 - Jon Lord 및 모든 멤버의 솔로잉이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특유의 screamshriek 텍스처가 본연의 선굵은 마초 캐릭터와

어우러져 이언 길런이란 불세출의 보컬리스트가 탄생하게 되었고

후배 보컬리스트들에게 끼친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

나이를 먹으며 스크리밍 음역은 점점 딸리는 것이 어쩔 수가 없을

테지만, 중후한 블루스 필로 채운 그 자유분방한 리릭 어프로치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평단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지점은 작사가로서의 능력. 그는 평생 작품에서

비속어를 딱 한 번 썼을 만큼 건강한 시적 언어를 강조하는 편이고

흔히 헤비메탈 장르에 대해 대중이 가질 편견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창작자이다. 모든 가사에서 시어의 선택 자체가 퍼커션을 조율하듯이

음악성을 근간으로 해야 한다는 지론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생각해보면 70~73년 겨우 서너 해 남짓 한 극전성기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서서히 하강 그래프를 그려간 뮤지션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냉정한 평가도 내리고 싶다. 하지만 그 몇

해의 성과 만으로도 평생을 평가받기에 충분할 만큼의 족적을 남긴

셈이니 전성기 활동의 질적 완성도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분..



브루스 디킨슨, 롭 핼포드, 폴 스탠리제임스 헷필드, 제프 테이트,

크리스 코넬, 에디 베더 등... 당장 보컬리스트로서 그의 직속 후임

계보에 들어갈만한 이름을 생각나는 대로 대충만 읊어도 이 정도다.

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겠느뇨...



*Highway Star. Perfect Strangers World Tour.

 - 라이브 실력으로 완벽하게 끗발 날리던 피크 시절의 멤버들.

 - Reunion Tour로 왜 공연계 돈을 쓸어담고 다녔는지 이해가 갈 게다.

 - 4'33".. 한때 이렇게 애틋한 시절도 있었건만...ㅜ









이언 길런하드락의 울타리에서만 머무른 것은 아니다. 후대

인류 문화사에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고

여기는 특이 지점은 69년말 매우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작업하던

시절. 존 로드의 클래식 협주곡 프로젝트가 이래저래 지겹고

한가롭던 차, 당시 성공의 열망에 부풀어 있던 젊은 뮤지컬

작곡가로부터 호출을 받아 스튜디오에 가봤는데...



아직 정규 딥 퍼플 음반이 나오기 전이었지만 어느 홀을 빌려

샤우팅 질러대며 리허설에 열중하던 길런을 멀찍이서 눈여겨

보고 있었단다. 저런 하이 노트가 가능한 보컬리스트가 있었군,

하면서. 악보를 건네며 일종의 카덴차, 즉 애드립으로 할 수 있는

구간이 여기까지라고 친절히 안내해주니, 길런은 그런가 보다

하고 원래 하던 대로 냅다 질러댔다. 성경 이야기의 무슨 컨셉트

앨범인 모양인데 내년 정도에 앨범이 나온다나 어쨌다나... 암튼.



젊은 작곡가의 이름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 이듬해에 발매한 그

희한한 컨셉트 앨범은 바로 이런 제목이었다. Jesus Christ

Superstar... 그렇다. 웨버 뮤지컬의 전성기를 열어제낀 대박

히트작의 출발선이 바로 이 시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설의

시작, 가공할 샤우팅 노트로 후대 뮤지컬 배우들을 무던히도

괴롭힌 악마적 프레이즈가 바로 그렇게 탄생한 것. 세상에..



 (Jesus Christ Superstar)




뮤덕들 사이에서 하이G 겟세마네 불리우는, Gethsemane

(I Only Want to Say). 로마군에게 체포되기 직전 예수의 최후

심경을 강렬한 하드락 비트에 실어 절규처럼 토한 마스터피스.

오늘날 모든 뮤지컬 배우를 멘붕에 빠뜨리는 초고음 샤우팅이

바로 이 트랙에서 등장한다. 평범한 성악 트레이닝에 익숙할

배우들이 당황할 수밖에. 오리지널이 헤비메탈의 조상 격인

보컬리스트셨는데.. 급 불쌍해지는 우리의 배우들..



본 블로거 생각하기에, 이미 한물 간 헤비메탈 어쩌구 차치하고

이 프로젝트길런이 남긴 문화적 유산이 아마 딥 퍼플 노래보다

훨씬 더 장구하게 인류사에 남지 않겠는가 전망한다. 오늘날의

문화 산업에서 헤비메탈뮤지컬교집합 규모도 작고 별로

연결될 것 없는, 딱히 상관없는 두 장르. 길런은 전혀 상관없는

두 개의 분야에 강렬하게 흔적을 남긴 음악가로 남는 셈이다.



후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걸작이 때때로 우연한 사고처럼

탄생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논할 때 길런웨버겟세마네

이야기를 반드시 언급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후에 그는 결코

뮤지컬 세계로 돌아간 적 없고 - 한창 영화 찍을 때 딥 퍼플 월드

투어 중이었으니까 - 웨버도 이후 다시 하드락 장르로 돌아온 적

없다. 두 창작 집단의 젊고 피끓던 시절, 우연한 교차점 부근에서

역대급 걸작이 그야말로 우발적으로 탄생한 셈이라 하겠다.



무릇 인생과 예술이란 그러한 것. 화려한 전성기 시절 울트라급

성대를 자랑하시던 길런의 젊은 아우라에 흠뻑 빠져 보시기를

권유하며, 강력한 추천과 함께 금번 포스팅을 마치고자 한다.

(가련한 후대 뮤지컬 배우들의 발성 비교 영상은 덤이다.)




('Gethsemane (I Only Want to Say)' from

Jesus Christ Superstar, 1970)

 - Ian Gillan on vocals



*Ted Neeley. 73년 영화에 길런 대신 출연하신 명배우.




*Jesus Christ Superstar

 - 앤드류 로이드 웨버 & 팀 라이스 콤비의 처녀 히트작.

 - 웨버-라이스 시대를 열어젖혀 공고한 초석을 다진 명작.

 - 70년 락 오페라 컨셉트 앨범을 먼저 발표. 성공.

 - 71년 웨스트엔드 뮤지컬 무대에 데뷔. 성공.

 - 73년 뮤지컬 필름으로 제작 상영. 성공.



**배우들 비교질 동영상 - 가볍게 보시라.

https://www.youtube.com/watch?v=yfHt2YfRdSs

 - 1'12" Ian Gillan, 70년 원곡 앨범의 가수. 원흉.

 - 0'20" Ted Neeley, 73년 오리지널 영화의 배우.

  -- 여기 두 분까지는 보통 언터처블 레전드로 분류되고..

 - 0'55" Gary Cherone, Extreme의 보컬. 근데 별로다..

 - 2'09" Sebastian Bach, Skid Row의 보컬. 더 별로다..

  -- 여기 없는데 뮤덕들이 꼽는 역대 최악은 John Legend라고..ㅜ

  -- 보통 Steve Balsamo는 현역 최고로 친다고.. 동의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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