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블로그 이미지
recently working on music industry and history of rock music, with past history of writing on political science, international relations, world politics, political economy and development macroeconomics ...
잔규네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146)
political economics (76)
rock vocalists (23)
other stories (47)

Recent Post

Calendar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1. 2019.03.31
    인류 역사상 최고의 지성, 그는 대기만성의 시간강사
  2. 2018.10.10
    정치학과에서는 뭘 배우나.. 서브 장르는 무엇무엇
  3. 2018.07.22
    생디칼리즘과 정치 사상가 조르주 소렐




Immanuel Kant: the Highest-Esteemed

Intellectual Ever in Mankind History






어렵지만 이마누엘 칸트 이야기를 해봅시다.

얘기를 풀기도 어렵고 받아들이기도 어렵겠지만요.



고매한 철학의 언어로만 풀지 말고 이 분이 대중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고 싶어졌어요.

문득. 여러 모로 매력이 있는 삶이었거든요.



칸트가 태어난 곳은 당시엔 쾨닉스베르크였고 프러시아 땅인데

독일이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훗날 러시아로 넘긴 지역인지라

지금은 러시아 땅의 칼리닌그라드로 불려요.



칸트가 평생을 쾨닉스베르크 대학에서 강의하고 연구하며

지냈는데 이 대학은 지금도 있습니다. 러시아 발틱연방대학이죠.

‘이마누엘 칸트’의 이름을 딴 별칭으로 운영 중이에요.

좋은 학교입니다.










1724년에 당시 전형적인 상업 도시에서 마구 수공업자인

부친 밑에서 태어나요. 놀랍게도 할아버지 대까진 프러시아

아닌 스코틀랜드 사람이었다 해요. 이민 3세대인 셈..



원래 독일어식으로 에마누엘이란 이름이었는데 히브리어를

공부한 후 이마누엘로 스스로 개명했다고 해요.



그의 가정은 경건한 청교도 가풍으로 엄격하고 검소했다네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칸트의 이미지와 왠지 어울리죠.

가정 환경이 중요합니다.



16세에 쾨닉스베르크 대학에 입학했고 6년 후엔 석사 논문과

함께 졸업했는데 이때 부친이 돌아가셔서 생계가 어려워졌대요.



그래서 지방 귀족의 가정 교사 노릇으로 생활하며 꾸준히

학문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평생 자기 동네를

떠나지 않았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대체로 옳지만 이 시기

만큼은 교사 일 때문에 인근 지역을 여행했다고 하네요.



그의 평생 삶은 가르치고 연구하고 토론하고.. 의 규칙성을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그의 일과를 보고 시계를 맞추었다는

이야기는 진짜로 전해지는 사실이래요.



그는 철학의 전 영역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둔 대철학자이지만

정치학, 신학, 물리학, 천문학, 수학, 지질학, 지리학, 교육학,

인류학, 역사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괴물급 학자였어요.



1754년엔 천문학 연구 성과로 베를린 학회장상 1등상을

받았고 이듬해 4월에 논문 ‘일반 자연사와 천체 이론’을

발표했는데 놀랍게도 우주 기원론을 밝힌 내용이에요.



우주와 태양계가 성운의 분자 덩어리로 생겨났다는 오늘날의

가설을 처음 제시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세요? 바로

칸트입니다. 바로 이 논문에서요.



55년 9월에 ‘형이상학적 인식의 으뜸가는 명제의 새로운

해명’이란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 강사 자격을

얻었다 해요. 논리학, 물리학, 자연법, 자연 신학, 윤리학

등 강의 과목은 실로 방대했다고 전합니다.



이듬해 은사님이 돌아가시며 그 자리로 교수직을 노렸지만

좌절되었다 하고 몇 해 후 문학 교수 자리를 제안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해요. 철학 교수직을 꼭 원했기 때문에요.



1764년에 미학 논문으로 베를린 학회장상 2등상을 받는데

1등상은 역시 당시 출중한 학자였던 모제스 멘델스존에게

돌아갔다고 해요. (이 사람도 꽤 유명한 유대교 철학자..)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왕립 도서관 사서로 몇 년 일한 적도

있지만, 1770년에는 드디어 바라던 철학 교수로 임용되요.



칸트가 박사를 딴 지 너무 오래 되어 이때 논문을 하나 더

심사 받아야 했는데 ‘감성계와 지성계의 형식과 원리들’이라고..

향후 전개되는 비판 철학의 골격을 엿볼 수 있는 저작이래요.



이후 칸트는 소위 일컫는 침잠 기간에 들어가요. 그때까지

왕성하게 발표하던 논문도 끊고 대외 활동이 없었다고 하는데,

이런 분이 설마 놀았겠어요.



학자들의 유추 연구에 따르면 이때 영국에서 데이빗 흄

출간한 '인간본성론'을 입수해서 읽고 큰 충격을 받아 사상

체계를 완전히 뜯어 고치는 작업을 하느라고 늦어졌다고 해요.



점포 인테리어 공사 하느라 개점 휴업을 오래 한 거죠.

그러나 그 사이 엄청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에 몰두하여

침묵을 완전히 만회할 눈부신 저작이 십여 년 후 탄생해요.



근대 철학의 흐름을 바꾸고 인간 역사 최고의 철학서로 부른다는

‘순수이성비판’이 1781년에 출간되어요. 두두둥.



희한하게도 초판 반응은 대단히 싸늘했다고 해요. (사람들이

이해를 못한 건가..) 하도 썰렁해서 칸트 자신이 친절하게

요약서를 2년 후 추가 출간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추종자인 카를 라인홀트가 1780년대 후반 철학계에

유행하던 치열한 범신론 논쟁에 순수이성비판을 거론하며

‘이 책 읽어보면 답이 다 나옴’ 하면서 사람들 반응이

180도 바뀌었다고 해요. 역주행한 거죠.



순수이성비판이 놀라운 저작인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한 인간의 인생을 놓고 볼 때 그 전까지 유지했던 생각을

완전히 다 뜯어 고치고 새로 만들어낸 생각을 담았다는

그 하나 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고 봐요.



칸트주의 철학 체계, 즉 독일 관념론비판 철학

‘순수이성비판’을 기점으로 1788년 ‘실천이상비판’,

1790년 ‘판단력비판’을 차례로 출간하며 완성되어가요.



철학의 각론 가운데 순수이성비판형이상학인식론,

실천이성비판윤리학, 판단력비판미학의 내용을

각각 담은 건데, 철학의 전 영역을 탐구했다는 것은

여기서 알 수 있답니다.



여기에 1786년의 과학 철학서, 1793년의 종교 철학서,

1795년의 정치 철학서까지 합하여 전 영역에 걸친

칸트 비판 철학이 완성되는 거에요. 맙소사.



논리학 책이 없는데 그건 1800년에 제자가 쓰는 책을

지도하며 하나 내요. 일종의 논리 교과서인데 난해한

칸트 책을 읽을 때 많은 도움이 된답니다.

고틀로프 예쉐라는 사람의 ‘논리학’..



1804년에 평소의 삶처럼 정확히 여든 살을 살고

‘그만하면 괜찮다’는 유언을 남기며, 역사상 최고의

지성인이 돌아가셨습니다.



쾨닉스베르크 시민 전체가 휴업하고 애도를 표하며

동향의 거인이 가는 길을 배웅했다고 해요.





Immanuel Kant (1724~1804, Prussia)






칸트의 철학이 난해하지만 순수이성비판부터 출발하면 되요.

지식을 받아들이는 방법론에 대한 인식론과 세계를 구성하는

원리를 논한 형이상학에서 큰 논제를 던지고 있어요.



그도 대륙에 속한 사람이었기에 합리론에 기반한 이성 중심의

인식론에 경도되어 있었는데 흄의 책을 읽고 경험의 요소를

일부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거에요.



그를 가리켜 합리론과 경험론을 결합하여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을 한 대학자라고 칭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인 거죠.



인간의 이성이 한계가 있으므로 인식의 과정에는

선험적 형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요지에요.



그는 감각이 수용한 지식이성의 작용을 통해 인식되므로

감성지성의 연합에 의해서만 중심의 자아가 주체적으로

지식을 형성할 수 있다고 설파했어요.



이런 관점에서 감각이 수용할 수 없는 대상(, 불사, 자유)을

사유하려 한 기존 형이상학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며 이런

대상은 도덕적 실천의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고 했죠.



순수이성’이 도대체 뭔데? 하시는 분도 있을 텐데, 말하자면

작가의 캐릭터 설정 같은 거에요. 인간 이성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칸트 책 안에서만 가정하는 철학 주체인 거죠.



*슈퍼맨의 팬티는 절대 찢어지거나 불타지 않쟎아요..

트레키 세계에서 클링온 언어는 실재하는 거고.. 뭐 이런 거.



순수이성비판의 말미에는 칸트 비판 철학의 3대 질문이

등장하는데 칸트 세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요.

순수이성이 골몰해야 할 세 가지 질문인즉슨...



첫째,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What Can I Know?

둘째,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What Should I Do?

셋째,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What May I Hope?



첫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둘째는 실천이성비판에서,

셋째는 1793년에 나온 종교 철학서 ‘순수이성 한계

안에서의 종교’에서 각각 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죠?



3대 비판서와 달리 이 책도 상당한 문제작이에요.

얌전한 칸트에게 생애 최초로 검열과 제재를 받게 한

책이거든요. 당시가 프랑스 대혁명 직후인지라 군주제

집권층에서는 상당히 긴장할 수밖에 없었대요.



실천이성비판 1장에는 가장 유명한 칸트의 다음

경구가 정언 명령의 제1 수칙으로서 소개됩니다.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 Act in such a way that the maxim of

your will could always hold at the same time as

a principle of a universal legislation… 멋지죠?



1786년의 과학 철학서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기초’는

19세기 독일어권 과학자들에게 성경처럼 영향을 미친

책이라고 하고요.



1795년에 나온 정치 철학서 ‘영구평화론’에 등장한, 시대를

수백 년 앞선 선견지명 앞에서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요.



국제법과 평화 조약, 전쟁과 군비 감축, 국제 연맹 체계 구축,

국가간 상호 독립성과 내정 간섭 배제… 자그마치 이런 내용이.



20세기에 나온 국제 정치학 책이라 해도 믿겠는데요.

왠지 우드로 윌슨이 되게 좋아할 것 같은… 쿨럭.



능력의 한계로 본 블로거가 할 수 있는 요약 설명에 한계가 있으니

칸트나 다른 철학의 최신 상세 설명을 이후에도 접하고 싶다면



스탠포드 철학 백과사전도 좋겠고...

https://plato.stanford.edu




테네시 대학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철학 백과사전

좋아요. 개인적으론 여기서 많은 도움을 얻었어요.

엄청 쉬운 영어로 어려운 뜻을 풀어주니 놀랍더라고요.

https://www.iep.utm.edu




이 포스팅을 읽는 (특히 청소년) 네티즌에게 강조하고픈

이마누엘 칸트의 일생 중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처음부터 천재가 아닌 대기만성형의 대학자란 점이죠.

날 때부터 천재라던 데이빗 흄과 참 비교되죠.

칸트가 흄의 책을 읽고 좌절하기도 했거니와..



대략 40대 중반까지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살던 시간 강사는

정교수 자리에 올라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만끽하나, 정작

그때까지 자신이 해오던 방향이 틀렸음을 깨닫게 되요.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십여 년을 침묵하며 방향을 수정한 후

인생의 후반기를 인류 최고의 지성으로서 칭송받으며 산 거죠.



범접하기 힘든 철학자 칸트보다 굽힐 줄 모르는 의지와

산처럼 묵묵한 성실성을 가진 인간 이마누엘에 주목한다면…

여러분도 철학의 길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아래 개인 동영상은 쓸데없이 현학적이지 않아 퍼와요.

주로 의무론적 정언 명령을 설명하고 있군요.









"공감을 눌러 주시면 큰 힘을 얻습니다"


and




Sub-Categories of the Political Science

What Do They Study Mostly Today?







정치학political science라고 하고요.

왜 사이언스가 붙냐면 현대 정치학 연구물이 숫자와

통계를 써대며 거의 계량화해 버렸기 때문이에요.



(미국의 정치학 연구 문화이죠. 미국은 정치도

주도하고 정치학도 주도하고 있답니다. 참 쉽죠?)



유럽은 아직도 politics라는 단어를 쓰기도 합니다.

특히 영국. 옥스브릿지나 LSE, UoL을 보면 알 수 있죠.



경제학을 미시와 거시, 계량으로…

법학을 민사, 형사, 공법, 소송으로 나눌 수 있듯이

정치학의 서브 장르, 하위 분과 학문을 나눠보면요.



학교의 전통에 따라 여러 관점이 혼재하여

살짝 머리 아프지만 본 블로거의 주관으로는..



정치 사상사, 정치 이론, 비교 정치, 공법, 행정,

정치 경제, 국제 정치의 일곱 분과가 맞다고 봅니다.

원래는요. 원래는, 오리지널리.



그러나 한국의 정외과 교육 풍토에서는 보통

공법행정정치경제는 과감하게 생략하는,

무겁도록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그도 그럴 것이 각각 법학과, 행정학과, 경제학과에서

열심히들 가르치고 있으니 정치외교학과가 저거 다 가르치면

딴 과는 뭐 먹고 사냐는 논리가 굳어온 때문인 듯해요.



그런데 근대 학문의 발전 역사를 주욱 살펴보면 나오지만

철학의 정치 사상이 굵은 줄거리를 형성하고 거기에서

우리가 아는 사회과학이 모두 갈라져 나왔지요.



철학에서 자유주의와 민주 정치의 연구가 터져 나왔고

중간에 경제학이 나왔는데 원래는 정치 경제, political

economy라는 서브 장르의 외양으로 등장한 거죠.



정치학이 독립 학문으로 인식된 시점은 대략 19세기

후반이고, 20세기 전반기에 행정학이, 20세기 중반에

정책학이 갈라져 나왔어요.



사실 오늘날 주류로 인식되는 사회과학이 죄다

철학과 정치학의 본류에서 새어나온 지류들인 셈이죠.



우리 식의 교육 풍토가 주류라고 볼 수는 없을 듯하고요.

미국의 정치학 전공자들은 앞에서 분류한 일곱 가지를

그래도 조금씩은 훑는다고 해요. 아예 생까진 않고.



미국 학제에서 politics라고 하면 미국식 민주주의와 헌법론,

정부 이론(즉 행정학), IR, 국제경제, 국제법을 다 조금씩

커버하는 편이죠. 한국식 정외과 커리큘럼과 차이가 있음..



우리는 또 정치’외교’학이라고, 외교를 강조하쟎아요.

근데 이건 솔직히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현상이에요.



외교학이란 것이 사실 별다르게 존재하는지 의문이죠. 저 위

일곱 가지 중 국제 정치학, 즉 국제 관계학 밑에 또 세부적인

여러 각론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외교 이론일 뿐이에요.



*미국 4년제 대학교 학부 수준에서 제공하는 커리큘럼 훑


(Harvard MA)

https://gov.harvard.edu/gov-courses


(Northridge CSU CA)

https://catalog.csun.edu/academics/pols/programs/ba-political-science-i/politics-and-government/


(Grambling State LA)

http://www.gram.edu/academics/majors/arts-and-sciences/poli-sci/curriculum/political%20science.php


(Hampton VA)

http://libarts.hamptonu.edu/page/Curriculum-7


(Jackson State MS)

http://www.jsums.edu/polisci/undergraduate-courses-offered/




정치 사상사는 철학사에서 정치 파트를 빼온 식이에요.

보통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공맹, 카우틸랴에서부터

고대 정치 사상을 풀어나가죠.



그리고 민주 정치 역사에서 많이 들어본 마키아벨리,

홉스, 루소, 몽테스키외, 밀, 마르크스의 이야기가…



현대에 정치학이 독립한 이후의 사상가로는 모겐소,

아렌트, 달, 사이먼, 롤스, 애로우, 키신저, 헌팅턴, 나이

등등이 등장하여 어려운 이야기를 풀어가는 거죠.



(이 중 로버트 달은 민주 정치의 이론화에 공이 크고

본 블로그 좌상단 작은 이미지로 등장한 할아버지가

바로 이분이랍니다. 좋아해서요.)



정치 이론 파트는 추상적 개념을 파고드는 난해한 분야고

보수, 자유, 사회 등 이데올로기와 권력론, 국가론 같은

현대 정치 현상의 구성 요소를 철학적으로 푸는 겁니다.



여기까지 분야는 오늘날 정치학에서도 종사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고 극소수 철학적 천재들만이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해요. 비주류란 말이죠.



현대 정치학의 주류 분야는 크게 비교 정치와 국제 관계,

이 둘로 나뉩니다. 대학원 이상의 정치학 전공자가 다들

뭐 연구해서 먹고 사냐 할 때 죄다 이 둘에 몰려 있지요.



비교 정치 파트에서 본격적인 민주 정치의 제도가 나와요.

대의제부터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등..

삼권 분립에서 입법, 행정, 사법의 역할.. 정당과 이익

단체, NGO, 커뮤니케이션 같은 사회 집단까지..



하지만 오늘날 비교 정치 연구 소재 중 정수는 바로 선거죠.

선거를 통해 권력이 창출되기도 하고 통계 분석을 도입하여

논문 뽑아내기 좋기 때문에 정말 많은 사람이 연구합니다.



요즘 핫한 선호 투표제, 비례 대표제, 연동형/권역별 등등

주제가 최근에 가장 빈번한 연구 사례들입니다. 정말

다양한 연구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요.



공법 연구의 핵심이자 출발점은 헌법입니다. 연구 대상이나

소재를 보면 법대의 헌법학과 사실상 큰 차이가 없어요.



하지만 (본 블로거 개인 감상인지는 몰라도) 법학 전공자가

쓴 헌법학 연구물과 정치학 전공자의 공법 연구물은 많이

달라요.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 논조, 어법 등등에서…



원래 헌법학을 먼저 공부하고 정치학으로 빠졌는데

법대생 세계에서 관용적으로 쓰는 공통 어구를 잘 쓰지

않아 정치학 이론서를 읽는데 고생했던 적이 있어요.



법학 전공자의 어법이 다소 딱딱하고 정형화되어 있다면

정치학 전공자는 꽤 리버럴한 철학적 사유의 방식으로

정치와 헌법의 소재를 풀어간다고 할까…



설명하긴 어렵지만 정외과에서 공법 연구를 배제해온

수십년 한국 풍토만의 특유한 문화가 아닐까 합니다.



행정 이론은 행정학과에서 배우는 그대로입니다.

개론, 조직, 인사, 재무 등을 거쳐 정책학까지 연결되는

구조를 가지죠. 일부 각론은 경영학과 많이 겹칩니다.



인사 행정은 그대로 경영학의 인사 관리와 유사합니다.

공공의 경영이 행정이고 사기업 행정이 경영이니까요.



정책학이란 분야가 따로 떨어져 나왔으니 행정학에서

다소 이질적인 분야처럼 보이기도 해요. 어떤 정책의 성과를

과학적으로 측정하자고 달려드는 실증 중심 분야랍니다.



경제학이 원래 18세기 정치 경제학에서 출발했다고 했죠.

그래서 지금도 정치학과 경제학은 겹치는 영역이 꽤 크고

때로 오버랩되어 콜라보하는 연구를 많이 합니다.



경제학에서 산업 조직론게임 이론을 공부하던 분들은

모든 이론이 정치학 교과서 속에서 동어 반복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거에요.



국내에 개론서로 나온 책 중에 ‘세계 정치론’을 읽어 보시면

특히 경제학 이론이 정치학자의 변주를 거쳐 해석된 글을

경험하실 수 있어요. 로체스터 학파의 특징이라네요.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교수 원저의 세계 정치론)



선거나 투표, 정책 결정 과정에서 행위자 간의 머리 싸움을

어떻게 과학적인 방법으로 실증할 수 있을 것인가…

주로 이런 연구라고 보시면 됩니다.



국제 정치학, 즉 국제 관계학, 곧 IR은 정치학의 하위

분과이기도 하면서 약간은 독립 학문처럼 분화하고

있기도 해요. 국제학이란 학제 분야로 발전한다고도 하죠.



국제 외교와 파워 게임, 교류 관계 형성 같은 것들이

주요 연구 소재입니다. 해외 토픽 시사 뉴스 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국제 관계학의 서브 장르로 공부해야 할 필수 각론을

역사, 사상, 한반도, 강대국, 외교, UN, EU, 안보, 국제법,

국제경제, 민족, 인권, 젠더, 환경, 종교/테러의 열 다섯

분야 정도라고 보면 대략 틀리지 않을 거에요.



앞에 얘기했듯이 오늘날 정치학 연구를 둘로 나눠

반은 비교 정치의 선거, 나머지 반은 IR의 지역학..

양적으로 대략 이렇게 보면 거의 맞습니다.



오늘날 정치학의 트렌드라고 보시면 되겠고요.

여기에 한국의 특성을 고려하여 통일 이론이나

한국형 IR이 독자적으로 연구되기도 합니다.








"공감을 눌러 주시면 큰 힘을 얻습니다"


and



Syndicalism and Georges Sorel






20세기 유럽의 정치 사상사에서 꽤 중요했지만

오늘날 (특히 한국에서) 다소 잊혀진 철학자입니다.


프랑스의 조르주 외젠 소렐이란 사상가이고요.

생디칼리즘 syndicalism의 창시자로 불리는 이에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한 사람입니다.


이 분의 일생에서 매우 이채로운 점이 있는데

좌우 사상의 양 극단을 왔다갔다 했다는 거에요.


젊어서는 마르크스 사상에 빠져 사회주의를 신봉했고

1908년 소렐 최고의 문제작 ‘폭력론’을 출간했으나

말년에는 수구적 왕당파를 자처했죠. 특이하죠?


폭력론은 ‘폭력에 대한 성찰’로 한국에 번역되어 있는데

2007년 번역물이 한국에선 역대 최초라고 해요.

그만큼 우리 사상계에서 알려지지 않았다는…






생디칼리즘은 사회주의의 한 분파입니다.

마르크스주의스탈린주의 중간 시기에 나온 것..


노동 공산주의라 하기도 하는데 용어 통일이 필요해요.

하긴 오늘날 거의 사라진 이데올로기이니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질 법하죠.


생디칼리즘 운동의 특징적인 개념은 신디케이트입니다.

syndicate의 본래 뜻은 이익을 위해 결합한 단체인데

여기선 국가 생산 체제를 소유한 노동 조합을 가리켜요.


코퍼러티즘이란 개념과도 비슷한데 협동 조합주의라고

번역하는 이 개념은 기업가와 노동자를 국가가 통제하는

체계를 뜻하는지라 약간 달라요.


코퍼러티즘의 핵심은 노사정 위원회. 기업, 노조, 정부를

상호 균등하게 취급한다는 뜻인데, 생디칼리즘의 노조는

국가의 생산 자원을 독점하는 식이니까 완전히 다르죠.


즉 노동자가 자본주의를 전복하여 국가 생산을 독점해야

한다는 사회주의 혁명 사상의 기본 줄거리를 따라가는 거죠.

생디칼리즘 자체는 사회주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아요.


(코퍼러티즘은 사회주의의 범위를 벗어나 민주주의의

한계 안에서만 움직인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존 마르크스주의와의 차이라면 폭력 혁명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총파업 등 노동 투쟁의 방법으로 자본

활동을 저지하는데 우선 순위를 둔다는 점 정도…?


19세기 후반 마르크스주의가 시간이 흘러

시대적 의미가 조금 변화한 형태라고 보면 될 거에요.


마르크스의 폭력 혁명 — 생디칼리즘의 총파업 활동이

등장한 후에 러시아에서 레닌-스탈린 정부가 등장한..

대충 이런 연대순입니다. 19세기 후반에서 1917년까지..


생디칼리즘은 사상 체계가 먼저 등장하여 정치를 이끈

형태가 아니라 먼저 실제적 활동이 등장한 후에 이를

뒷받침하는 사상이 나온 형태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사회 운동이 불거진 연후에 조르주 소렐

같은 사람이 정리하는 의미로 저서를 내어 사상 체계를

정리했답니다. 1908년의 폭력론은 그런 책입니다.


오늘날 사상계에 의의를 확장해야 할 시대성은 없는 것

같고 다만 공산당 선언에서 볼셰비키 혁명으로 가는 연대기

선상에서 중간자적 역할을 했다는 점을 기억하면 되요.


참고적으로 소렐은 정치 활동과 폭력 활동의 동기 부여를

위한 수단으로서 정치적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어요. 이채롭죠.








"공감을 눌러 주시면 큰 힘을 얻습니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