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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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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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상스의 길을 열어준 중세 시대 세계 최고의 도서관
  2. 2018.11.28
    프레디 머큐리 0 - 보랩




The House of Wisdom, the Greatest Library of Baghdad

During Islamic Golden Age in Medieval Times










세계 어디를 가든 그 나라 역사 최고의 전성기를 꼽을 수 있어요.

정치의 양상이야 각기 제각각이지만 한 국가가 전성기를 달리고

있을 때 역사와 문화에서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지요.



현명한 통치자가 신분에 상관 없이 능력에 따라 사람을 끌어모으고

그들의 능력을 바탕으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운다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조선 세종 및 영정조, 잉글랜드 엘리자베스 1세,

프랑스 루이 14세 등… 쉽게 감이 오시죠?



5~15세기 유럽이 암흑기를 맞고 있을 때 세계사의 전성기는

어느 지역 어느 나라에서 꽃피고 있었을까요. 즉 중세 시대

정치 문화적 최강국을 어디로 볼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죠.



(일단 중국의 거대한 경제 규모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이슬람 제국을 상정하고 싶습니다. 서로마 제국의 패러다임이

붕괴하고 동로마와 인도, 중국을 잇는 허브로서 교역과 치세의

정점을 찍었거든요. 배경에는 종교의 뒷받침이 있었고요.



이슬람 제국의 황금 시대는 우리가 주로 관심을 갖는 유럽의

근대사와 간접적 연속성이 성립하기 때문에 또한 중요해요.

르네상스의 개혁은 사실 이슬람으로부터 온 것이었거든요.



이 주장의 근거 중 하나를 여기에 제시할 수 있어요.

중세 당시 세계 최고의 학술원이자 도서관이 바로

이슬람 제국의 수도 바그다드에 있었거든요.



House of Wisdom, Bayt al-Hikma, بيت الحكمة …

지혜의 집 또는 지혜의 전당으로 불리던 바로 그곳이에요.










이슬람 제국의 전성기는 아바스 왕조의 흥망성쇠와 운명을

같이 합니다. 8세기 중반 우마이야 왕조를 전복하고 성립한

두번째 칼리파 왕조로서 아랍인 중심 정치에 치중했던 전대에

비해 출신 배경을 초월해 보편적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흔히

이슬람의 황금 시대라 하면 아바스 왕조 치세를 가리키죠.



칼리파란 기독교의 교황과 황제를 합한 위치입니다. 종교와

정치를 통합한 최고 통치자를 뜻하죠. 이슬람교 발흥 초기만

하더라도 제정 일치를 이루어내지만 아바스 조 후반에

가서 정치 실권의 힘이 빠지게 되죠.



아바스 조 2대 군주 알 만수르는 바그다드로 천도한 후

7세기 초에 망한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요. 엄청난 양의 중세 서적이 쏟아져 들어오자

사산 조의 전례를 본따 궁정 도서관을 설립해요.



도서관만으로는 충분치 않았고 지식의 보고가 대중에게 널리

퍼질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필요했어요. (인쇄술..은 훨씬

나중 시대 얘기고) 도서를 필사해서 보급할 수 있을 텐데

종이가 충분했을까요..



8세기 중반까지 서아시아의 기록 매체는 양피지였어요.

(유럽은 11~12세기까지도..) 종이보다 더 두껍고 잘

찢기고.. 당시 제지 기술은 전 세계에서 중국 등

동아시아 권역에서만 보유하고 있었거든요.



751년에 호재가 있었어요. 탈라스 전투… 역사상 최초로

이슬람 제국과 중국 정권이 전쟁을 벌였어요. 문명의 충돌!

당나라가 약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팽창하고 있었고

이슬람이 이에 적정한 제동을 건 거에요.



지금의 카자흐스탄 쪽에서 양국 지방 장군들끼리 맞붙었는데

이슬람이 이기고…는 별 의미없고, 중요한 건 이때 당군 포로

중에 제지 기술자가 섞여 드디어 이슬람으로 넘어온 거에요.



(이 과정을 확인할 수는 없으니 이슬람으로 전승된 계기가

탈라스 전투가 아닐 수도 있다는 반대 학설도 물론 있어요.)



사산 조가 망하면서 이슬람으로 넘어온 페르시아인 출신

유력 가문이 이슬람 최초의 제지소를 차렸다고 해요. 전문

필사가들이 고용되어 열심히 도서를 보급했고요.










아바스 조의 전성기는 5대 칼리프 하룬 알라시드가 다스린

8세기 말 ~ 9세기 초인데 천일야화에도 등장하는 왕이에요.

이 사람의 아들로 7대 칼리프 알 마문이 즉위하는데 궁정

도서관의 위용은 이 시기에 정점을 찍게 됩니다.



군주 입장에서 중요한 점은 자국어인 아랍어로 보편적 지식을

최대한 널리 보급하는 것이었어요. 번역가, 문필가, 필사가,

제지업자, 제책업자, 문구업자 등등의 직역이 필요한 일이죠.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 페르시아어, 산스크리트어로 된

철학, 수학, 천문학, 의학, 화학, 물리학, 지구과학, 약학, 생물학,

지리학의 서적들이 저 다양한 사람들 앞에 펼쳐졌어요. 그리스,

로마, 소아시아, 이집트, 아프리카, 페르시아, 중앙 아시아, 인도

등 당시 기준으로 온 세상에서 다 모인 지식의 총량인 거죠.



알 마문은 번역 작업한 종이 묶음의 무게를 달아 그만큼의 금화를

하사했다고 해요. 이 소문이 아라비아 전역에 퍼지니 어떤 일이

벌어졌겠어요? 아랍인, 시리아인, 유대인, 페르시아인, 터키인,

쿠르드인, 인도인 가릴 것 없이 구름떼처럼 인재가 모여든 거죠.

(나중에 가면 일부 동로마인이나 유럽인들까지 가세했죠.)



치사하게 아랍인만 우대한 전대 우마이야 조와 달리 아바스 조는

민족이나 배경으로 차별하지 않고 철저하게 능력을 중시했어요.

번역 결과만 있으면 보상한다는 원칙이 지켜졌죠.



번역… 이란 작업을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단순히 말대 말을

기계적으로 치환하는 작업이 아니에요. 언어에는 문화 배경이

녹아들게 마련이므로 상당수 작업에서는 어문의 학술 배경을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해졌어요. 곧 전문 번역이 가능한 각

분야의 학자 집단이 모여들고 양성될 조건이 형성된 거죠.



학자들이 모여 뭘 하겠어요. 아무 때나 그곳에 가면 누구도

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토론, 실험, 저술, 연구를 할 수 있는

거에요. 학회가 형성되고 도서관은 학술원이 되었죠. 나중엔

천문 관측대도 만들어줘요. 전쟁으로 갈 곳 잃은 학자들을

받아 피난처도 제공했다고 해요. 대단하죠?



이곳을 체험한 많지 않은 유럽인 학자의 기록에 따르면 오늘날

도서관과 유사하게 수학, 천문학, 의학 등 분야별로 각기 다른

방마다 수많은 책을 분류해 보관했다고 해요. 당시 유럽엔

그런 거 없었죠. 유럽인 학자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나요.

듣도 보도 못한 고금의 명저가 거기만 가면 다 있었으니..










이곳이 바로… 이슬람 제국 문화의 꽃, 지혜의 집이에요!

고대사의 불가사의 중 하나로 알렉산드리아도서관

꼽힌다는 것 아시죠. 고대에 알렉산드리아가 첨단 지식의

전당이었다면 중세엔 바그다드에 이곳이 있었던 거죠.

(알렉산드리아는 지금의 이집트 해안에 면한 곳..)



하지만 참으로 슬프게도 바그다드 지혜의 집은 지금 남아

있지 않아요. 1258년 원나라 몽골 군과 벌인 바그다드

공방전 때 불타 없어져요.ㅠ 아, 왜 저절로 탄식이…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로마 침입으로 없어졌다는 설이..)



유형의 문화재는 사라졌지만 무형의 지식은 형태를 달리 하여

영원히 살아남아요. 특히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서적이 정작

본고장 유럽에선 실전된지 오래였어요. 지혜의 집에는 남아

있었어요. 아랍어 번역본이 다시 라틴어로 재번역되어 다시

유럽으로 넘어가니, 르네상스의 지적 원동력이 바로 이거에요.



지혜의 집에서 형성된 담대한 학풍은 역사에 이름을 떨친 많은

대학자를 길러내기도 했어요. 너무나 많지만 대표적 인물들은…



페르시아, 바빌로니아, 그리스, 인도의 수학을 집대성한 9세기

대수학의 아버지 알 콰리즈미, 그리스와 아랍의 철학과 의학을

종합해 유럽 중세 의학의 기초를 세운 11세기의 이븐 시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서에 주해를 제공해 르네상스 사상에

다리를 놓은 12세기 이베리아의 철학자 이븐 루시드 등이죠.



이븐 루시드가 정립한 사상은 단테 알리기에리에게도 영향을

미쳤어요. 신곡에 그를 회상하며 극찬한 구절도 등장하죠.










르네상스의 역사를 피상적으로만 훑으며 유럽 중심 사관을

벗어나지 못한 채 단테나 다 빈치 정도 끄적거리는 것으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한 듯이 만족해 하는 실수를,

우리가 흔히 저지르고는 하쟎아요.



조금만 시각을 넓혀 시간과 공간을 확장하여 애정을 갖고 역사를

바라보면 현대사의 흐름을 결정 지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어느

특정 지역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권 모든

사람들이 전 지구적으로 노력하고 영향을 주고 받은 끝에

이루어낸 결과임을 깨달을 수 있답니다.



지혜의 집에 보존된 고대 철학의 보고가 유럽으로 전달되어

중세 후반 스콜라 철학의 마지막 불을 활활 태웠듯이, 단테는

루시드의 철학서로 소양을 쌓고 코페르니쿠스가 바그다드에서

넘어온 천문서로 지동설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



현대인들이 흔히 접하고 있는 동서양 문화의 증폭 합성은 이미

천 년도 더 전에 바그다드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일이랍니다.



아래는 지혜의 집에 대해서 더 알아볼 수 있는 동영상이에요.

아랍 역사 문화를 잘 아는 사람이 만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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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파록 불사라 포스팅은 정말 망설여 왔는데

보랩 영화를 봐버렸다. 보지 말걸. 안 할 수 없네.

여기선 영화 얘기만 하고 본격 보컬 스토리는

나중에 할 때가 오겠지..



매우 큰 히트를 치고 있음은 자명하지만

해외 평이 정확해 보이네. 딱 반쪽짜리 작품이다.

아울러 국내 영화 평론가들의 음악적 소양에

다시 한번 절망하기도 하며...



오랜 팬임을 자처하며 평가질 해대는 꼰대

어디 본 블로거 혼자이겠냐마는... 그래도 할 말은

혀야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드러날 터인데.





반쪽 짜리가 정말 딱 적당한 말이네.

전기 영화로서의 함량, 음악 영화로서의 완성도,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해석.. 뭐 여러 가지 관점

다 따져도 반쪽만 익히다 만 것임에 틀림 없겠으나..



특히 다른 곳에서 이야기하지 않는 한 가지는 꼭

짚고 싶을 따름이오니.. 라미 말렉의 연기를 100%

극찬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점이다.






100% 싱크로율을 자랑한다고 평가받는 역대 연기를

꼽아볼 수 있다. 링컨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 대처의

메릴 스트립이 최근 대표적 사례이겠고 음악가를

다룬 예로는 톰 헐스가 여전히 독보적일 것이다.

세월이 30년 넘게 흘렀음에도...



이쯤 되면 싱크로율이란 개념에 대해 현대의 대중이

어떻게 접근하는지 깊게 고찰해볼 만하다. 단순히

똑같이 재연한다면 그것이 100% 싱크로일까?








현대인들이 링컨의 생전 모습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과연 우리가 목격한 명연기가 싱크로가

맞기는 한 건지 되짚어볼 수 있다. 결국 단순한 재연이란

개념이 얼마나 허상에 가까운 것인지 알 수 있지 않나.



재연이라면 대상의 외양을 피상적으로 구현해내는 데

집착한다는 말이리라. 명연기라고 기억하는 링컨이나

대처는 외양 이전에 인물의 심리와 철학을 분석하여

표현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한 것이었음을 이해하시라.



적어도 현재까지 외신으로 접한 수준의 보도로 보면

라미 말렉의 곁은 무브먼트 코치가 지켜온 듯하다.

공연 중 보여준 프레디의 스테이지 모션이 너무

독창적이기에 나온 결정인 것 같긴 하다.






그런데 결국 거기까지만 보여주고 용두사미처럼

끝나 버린 것 아닌가 싶다. 몸짓을 복사하는 것까지만.

프레디란 사람을 이해하는데 있어 약간 패션모델 비슷하

몸의 선을 중시하는 무브먼트, 그것이 다는 아니지 않은가.



프레디의 정체성과 카리스마, 그리고 그것과 복잡하게

한몸처럼 엮여 있는 컴플렉스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페르시아 민족 계열 이민자 출신의 영국 아웃사이더란 것이

하나, 또 하나는 다들 알다시피 바이 양성애자란 것이다.






그에게 어린 시절의 컴플렉스를 선사한 이국적 두상과

용모는 사실 그의 민족 정체성인 파르시 종족의 특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전통을 중시하는

가부장적 페르시아 아버지 세대와의 갈등이 청소년기

억압적 가치관 형성에 기여했을 터이고.



여기에다가 유년기 어느 시점부터 스스로 자각해온,

뭔가 다른 성적 정체성이 화학적 결합을 일으킨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완벽한 재현으로 해석되는

(아버지를 죽였다고 어머니께 고백하는 첫 소절..)

보랩의 가사와 프레디의 철학은 이렇게 형성된 것.



바이 영국 이민자라는 아이덴티티가 곧 프레디인 셈.

단순 무브먼트에 치중한 듯한 디렉션이 뭔가 의아하고

쉽게 와닿지 않는다고 느끼는 요점이 이것이다.





무브먼트 자체도 그렇다. 프레디의 독창적 몸짓을

응원단 치어리딩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탄탄한 발레 기본기에서 나온 거란 점...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라미의 저 액션이 그냥 투박한 치어리딩에서 온 것인가

발레의 기본기에서 나온 것인가, 되게 고민고민하면서

본 장면이 사실 많았다. 도대체 정체가 뭐지..?

꽤 의아-궁금했음이 솔직한 심정..






흔히 프레디의 배나온 중년 콧수염 아저씨 시절로

기억되는 80년대 초중반 몸매도 발레 레슨에서 나온

산물임을 상기한다면, 그의 무브먼트에 대해 깊이를

갖고 접근한 것인지 한번쯤 회의적인 시각을 들이댈

수밖에 없을 터이다.



(80년대의 프레디는 발레와 오페라 레슨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많은 사람이 모르지만.

그만큼 감각을 갈고 닦기 위해 노력했다.)



아래는 역대 가장 기이한 코스튬 사이로 비집고 나온

프레디의 육덕진 몸매를 적나라하게 감상할 수 있는

대표적 뮤직 비디오.. 1984년 The Works 앨범에서..






프레디는 사실 원래부터 육체의 곡선을 드러내는데

실로 열성적인 집착을 보여준 아티스트인 것이다.

인간의 육체에 대한 탐미적 기호랄까.



또 하나의 기벽을 폭발시킨 뮤직 비디오

(무려 멤버 전원의 성별을 역전시킨..)

I Want to Break Free.. 같은 앨범..






라미와 프레디의 체형이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다는

건 알겠는데, 살짝 통통한 80년대 몸매로 세밀하게

다잡고 나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크다.



80년대는 프레디의 인생에서 참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앞둔 마지막 10년이었고 처음으로

에이즈 감염 사실을 확인하였기에 더더욱 섹스와

연애와 생에 집착한 복잡한 시절이었으니까...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라미의 목소리이다.

물론 말할 때 목소리. (극중 노래 목소리의 99%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프레디 본인의 아카이브와

마크 마텔을 적정 배합한 것이다.)



쉰 듯한 반가성을 많이 섞은 톤으로 해석의 기준을

잡았는데 이걸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해석이 뭐지? 성적으로 뭔가 모호한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캐릭터란 느낌을 주고 싶었나?



(상당히 남아 있는 프레디의 평소 대화 녹화분을

확인하면 쉽게 알 수 있지만 말할 때 목소리도

노래와 비슷하게 명료하고 또렷한 질감이었고

영화처럼 거칠고 투박한 팀버는 아니었다고.)







그런데 실제 프레디가 생의 절반을 넘기고도 아직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사람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는 확고부동한 주관을 가진

살짝 고집불통에 가까웠다. 패션이나 무용계의

까다로운 예술가 스테레오타입에 더 가까웠지..



물론 그의 삶은 섹스와 파티로 가득 차 있었다.

프레디의 실제 삶을 제대로 묘사한다면 여지없이

X등급을 받을 거라고 멤버들이 전했을 정도이니.

(단, 마약과의 연관성은 크지 않은 것 같고

그의 중독성은 술과 담배 쪽이었다고... 특히

담배는ㅠ.. 그의 대부분 삑사리가 흡연 때문..)



즉, 고민 따위는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거침없이

당당한 바이 섹슈얼의 사생활을 산 사람이었다.

라미의 목소리와 해석에, 불안한 미래를 꿈꾼

20대 시절 연기를 빼고 절반 밖에 동의가 안

되는 이유라고 하겠다.



http://ultimateclassicrock.com/bohemian-rhapsody-movie-hetwashing/




이쯤 되면 라미의 LGBT 해석 전체에 살짝 의문을

품게 된다. 생의 전반에 걸쳐 자신의 게이 라이프에

고민하는 예술가의 스테레오타입이라면 프레디보다

차이코프스키의 삶에 더 가까운 듯한데... 이러면

처음부터 방향이 잘못된 것 아닌감...



더구나 게이 브라이언 싱어가 이런 디렉션을 줬다고..?

이 부분에서 더더욱 의뭉스럽네. 싱어가 중간에 하차한

이유가 대략 어디서 발화했는지도 감이 오고.






브라이언 메이로저 테일러 같은 분은 연예계에서

거물이기에 동료 전기 영화의 묘사에 이러쿵저러쿵

참견했을 것 같고 아마도 싱어 같은 사람도 거부하기

힘든 상황이 여러 번 오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왜.. 예전부터 메이와 테일러는 프레디의 인생을

실제에 가깝도록 19금으로 묘사하는데 반대하지

않았던가.. 이런 의견을 갖고 있는 원로들이 이런

저런 의견으로 도움이랍시고 던지는 상황이라면,

방향 잡기가 참 혼란스러웠을 터...






그렇지.. 프레디는 엄청 '척' 하고 산 사람이다.

바이가 아닌 척, 이민 2세대가 아닌 척, 즉 진퉁

영국인인 척.. 사실 모두 알면서 쉬쉬한 거지만.

 노래, 그래서 나름 프레디의 인생곡이다.



아래는 프레디 솔로 프로젝트 중 최고라고

생각하는 타임.. 의외로 많이들 모르셔서.






네네... 길게 썼는데 두세 줄 요약..

라미 연기 이해 안 되고 영화는 반쪽 완성도.

연예인도 나이 들면 꼰대가 되야 하나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줘 감사해요.



역사상 전무후무한 보컬리스트라서

보컬 이야기하려면 큰 각오가 필요하다.

나중에 하자. 원 참, 황망스럽기는.



https://digitaldreamdoor.com/pages/best_vocalists.html


https://digitaldreamdoor.com/pages/best_vocalists-fe-rr.html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singers-of-all-time-147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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