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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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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언 길런 Ian Gillan
  2. 2019.12.07
    보노 Bono




하드락헤비메탈의 역사를 논할 때 설명이 필요없는

레전드들이 몇 분 계신다. 45년생 브리티쉬 스크리밍

보컬의 살아있는 전설, 이언 길런 Ian Gillan도 그 중

한 분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신화 속의 대 밴드

딥 퍼플 Deep Purple의 제2기, 그 화려한 정점과 함께

하얗게 불타올랐던 위대한 이름을 만나자. 아, 길런...!










*Smoke on the Water. Made in Japan.

- 1972년 8월 17일 도쿄. 4'13"부터 후배들의 극찬 릴레이 인터뷰.



*Child in Time. Made in Japan.

- 1972년 8월 16일 오사카.







딥 퍼플을 모르고 락 음악이란 카테고리에 접근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하드락헤비메탈이라는 특정

장르의 발전사에서 정말 빼놓을 수 없이 핵심이고 중추를

형성하는 밴드가 대충 한 셋 정도 된다. 속칭 트로이카라고

할 텐데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 그리고 딥 퍼플이다.



간단히 말해 이들 세 팀이 없었다면 하드락이나 헤비메탈이란

장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에 대한 반발로 태동한 모던

내지 얼터너티브 역시 전혀 다른 방향의 역사가 쓰여졌을

란 말. 69년의 Led Zeppelin II, 70년의 Paranoid, 여기에

72년의 Machine Head 등 세 장의 앨범이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평론가들이 헤비메탈이란 장르의 본질과 속성을

정의 내리는 일이 가능했다..는 것이 오늘날의 정설이다.



('Whole Lotta Love' by Led Zeppelin, 1969)

https://www.youtube.com/watch?v=V3u5rWzmhFI

- live from How the West Was Won, 2003



('Paranoid' by Black Sabbath, 1970)

https://www.youtube.com/watch?v=pTHeY0-P4MY

- live from The End Tour, 2016



('Highway Star' by Deep Purple, 1972)

https://www.youtube.com/watch?v=Y2qZJ3BHzjY

- live from Come Hell or High Water, 1993




10년 여의 공식 활동 기간에 멤버 교체 없이 활동을 지속한

레드 제플린, 프론트맨 보컬 교체할 때마다 작품의 방향이

탄력적으로 변모한 블랙 사바스와 비교하여, 딥 퍼플은 10년

좀 안 되는 전성기 시절에 총 4기로 구분될 만큼 멤버 교체

양상이 변화무쌍했고 또 각 기수마다 격변하듯이 음악의 색

전혀 달리 뽑히는 특징을 보여준 밴드이다.



68~76년의 딥 퍼플 전성기 활동 기간 중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최정상이라고 누구나 인정하는 시기가 바로

제2기, Mk.II**의 멤버 구성이고 인기가 극에 달했던 이

2기 딥 퍼플을 이끈 리드 보컬리스트가 바로 이언 길런.

이분의 전성기 보컬 스타일링을 통해서 헤비메탈이라는

장르가 지향해야 할 음악성이 규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만큼 음악사에서 중요한 분인 셈..



**Mk.II = '마크 투'라고 읽는다. 코믹스의 아이언맨처럼..ㅎ

 - 멤버 교체 시기로 구분하는 밴드의 역사를 이렇게 mark/기수

형태로 표시하기 시작한 효시가 딥 퍼플이라고 한다.







딥 퍼플의 출발점은 다소 어수선한 모양새였다. 짝퉁 비틀즈계

머시비트 밴드인 서처스의 드러머 출신 크리스 커티스란 이가

자신을 프론트맨으로 기용하는 밴드를 조직하겠다고 투자할

돈줄을 끌어모으며 각 스튜디오 최고의 세션맨들을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다녔는데...



이 레이다에 맨 처음 키보디스트 존 로드가 걸려들었고 베이스의

닉 심퍼, 기타의 리치 블랙모어가 낚였다. 근데 정작 커티스가 약에

쩔어살던 불량품인지라 투자자들이 즉시 해고했고 이왕 모인 일급

세션들에 로드 에반스라는 보컬과 약관 18세의 드러머 이언 페이스

결합해 아예 새로운 밴드를 만들어낸다. 블랙모어의 제안으로 이름이

정해졌으니 바로 딥 퍼플. 68년의 1기 멤버들인 게다.



*Deep Purple.. 원래는 1930년대 올드팝 히트곡의 제목이라고..

https://www.youtube.com/watch?v=Wll9RSCzoAI




1기 딥 퍼플커버 트랙 중심으로 히트 팝을 지향하는 사실상의

락앤롤 밴드였으니 1집의 Hush, 2집의 Kentucky Woman

팝 차트 히트 넘버들이 모두 리메이크였다. 오늘날 익히 알려진

딥 퍼플과는 몇 광년쯤 멀리 있는 음악 색이었던 셈. 그나마도

소속사의 막장 운영으로 3집이 돈도 못 벌고 쪽박 차게 생기니

결국 로드, 블랙모어, 페이스 셋이 주도하여 새로운 전략 하에

승부수를 띄워야겠다고 결심했다지.



하드락 밴드로의 변모가 그 주된 골자. 이미 마음이 떠난 상태이던

에반스를 떠나 보내고 심퍼를 교체하기로 한다. 이때 신생 밴드에서

노래하던 런던 출신 이언 길런과 베이스 치는 로저 글로버가 눈에

들어오고 블랙모어가 주동하여 새로운 라인업에 시동을 건다.



('Hush' from Shades of Deep Purple, 1968)

https://www.youtube.com/watch?v=_4QBhC1uCP4

- Joe South 곡의 커버



('Kentucky Woman' from The Book of Taliesyn, 1968)

https://www.youtube.com/watch?v=YcgeAtrVHvA

- Neil Diamond 곡의 커버




이 시기 음악은 대체로 41년생으로 가장 연장자이던 존 로드

주도하는 모양새로 클래시컬 락 내지 프로그레시브의 원형질을

탐구하는 시기였다. 3집April이나 사이드 프로젝트였던 The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가 이런 성향을 대표한

작품들. 길런이나 동갑내기 블랙모어는 살짝 불만이었다고.



두 사람은 동시대에 더 후지미 헨드릭스, 크림레드 제플린

선수치고 있던 하드하고 헤비한 어프로치를 가미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하며, 바야흐로 2기의 완전체로 본격 진용을 갖춘

딥 퍼플이 슬슬 8기통 엔진에 시동을 걸며 강렬한 신세계를

막 열어 젖히려는 역사의 순간이었다.



 (Deep Purple III) (Deep Purple)



('April' from Deep Purple III, 1969)

https://www.youtube.com/watch?v=RaMmBH3pYxY

*사실상 프로그레시브 락에 가까운 형식이다.




 (The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



('The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 First Movement

- Moderato-Allegro' by Deep Purple with Malcolm Arnold

and the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1969)

https://www.youtube.com/watch?v=C6ay6BwgBS8

*실질적으로 Jon Lord의 솔로 프로젝트에 가까웠으나

공식적으론 라이브 앨범으로 분류한다.

 - 로드는 정통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은 분.



('Nights in White Satin' by Moody Blues, 1967)

https://www.youtube.com/watch?v=qbqxbGm9hBI

*Days of Future Passed 앨범.

 - 사실, 2년쯤 앞서던 이런 작품을 모방한 것..







하드락의 트렌드는 60년대 내내 꾸준하게 자가발전하고 있었다.

비틀즈롤링 스톤즈 등 1세대들이 원형을 제시하고 뒤를 이은

밴드들이 비르투오소 스타일 기교와 한층 헤비이펙트를 장착한

하드웨어의 구현에 힘입어, 서서히 그 작법을 체계화하고 있었다.



60년대 초반까지 락앤롤이던 팝 음악의 조류가 하드락이란 서브

장르로 분화하면서 3~5명 규모 밴드 포맷에서 중심 권한이 픽업

장착한 일렉트릭 기타리스트 쪽으로 넘어다. 여기에 보컬리스트,

베이시스트, 드러머, 리듬 기타리스트, 키보디스트 등의 각 멤버별

책임 영역이 독자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단순히 픽업을 통해서 나는 이른바 기타의 '생소리'는 카랑카랑하고

얇다란 편인데, 반전 히피 문화에 뿌리를 둔 사이키델릭애시드

요소에 영향을 받으면서, 픽업의 시그널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변형한

각종 이펙트 - 이를테면 distortion, overdrive, phasing, feedback,

vibrato 등 - 를 덧입히게 되니 하드락을 규정하는 필수요소가 된다.



창작 방법론 면에선 기타 리프라는 개념이 돌출하였으니 해당 곡의

성격을 단번에 규정하는 상징적인 악절이나 동기를 가리킨다. 이

리프를 얼마나 창의적으로 작곡할 수 있는지가 기타리스트의 역량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어 버리고 리듬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등 보조

파트가 리프의 패턴이나 코드를 백업하는 형태로 반주가 진화한다.



(WatchMojo.com '14, Top 10 Guitar Riffs of All Time)

https://www.youtube.com/watch?v=vt8Q8L_I1pw

- 단, 이분들 집계가 다 그렇듯이 순위는 염두에 두지 말자.

- 음악사상 꼭 기억해야 할 리프 몇 가지 알아놓는 의의 정도..




여기에 드러머가 킥 베이스와 스네어를 교차하며 강약의 패턴을

반복하는, 이른바 - 심장 박동과 유사하게 들리는 - 백 비트를 더욱

강조하는 쪽으로 리듬을 받쳐주고, 베이시스트가 이 리듬 섹션에

동참하는 동시에 기타 리프의 패턴을 복사하며, 때때로 리듬 기타

또는 키보드가 한꺼풀 더 가미되는 식으로 곡을 구성하는 것이다.



하드락보컬리스트에게 요구되는 테크닉은 기존 팝 장르의 달달한

목소리와 여러 모로 다를 뿐 아니라 훨씬 고난도의 숙성과 장기간의

훈련을 요구했으니 shout, scream, growl, wail, vibrate, rasp 같은

공격적인 것들이었다. 대체로 남성 테너 음역을 넘어서는 고음역을

필수요소로 하게 되었고 때때로 팔세토나 이와 유사한 high register

영역이 보편화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각 파트별로 정착하고 발전해간 하드락 장르의 방법론이 더욱

공격적으로 진화한 형태를 헤비메탈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고 60년대

말에 태동한 트로이카 밴드가 이를 주도한 장본인들이다. 딥 퍼플

그 한 축이자 태풍의 눈이었던 아티스트들. 구체적으로 하드락 진화

역사에 더 큰 관심이 생긴다면 아래의 음악을 좇아가길 권한다.



"Kinks", 1964

('You Really Got Me' by The Kinks)

https://www.youtube.com/watch?v=fTTsY-oz6Go

- studio album version


"My Generation", 1965

('My Generation' by The Who)

https://www.youtube.com/watch?v=qN5zw04WxCc

- studio album version


Single "Hey Joe / Stone Free", 1966

('Hey Joe' by The Jimi Hendrix Experience)

https://www.youtube.com/watch?v=rXwMrBb2x1Q

- studio single version


"Disraeli Gears", 1967

('Sunshine of Your Love' by Cream)

https://www.youtube.com/watch?v=f3y8jf01UY8

- studio album version


"Led Zeppelin", 1969

('Babe I'm Gonna Leave You' by Led Zeppelin)

https://www.youtube.com/watch?v=UyOg0mt2R2k

- studio album version


"Fire and Water", 1970

('All Right Now' by Free)

https://www.youtube.com/watch?v=5wiF6b4rxno

- studio single version, Paul Rodgers on vocals.







레이블의 삽질로 전작에서 거의 수익을 얻지 못한 딥 퍼플

2기 진용. 여러 프로젝트를 전전하고 돈벌기 위한 투어를

병행하며 틈틈이 새 앨범 녹음을 진행한다. 클래식 음악에

바탕을 둔 고상한 로드식 어프로치로 절대 답이 없다고 여긴

블랙모어의 반강제적 결단으로 제플린을 좇아가는 헤비

작법에 집중했고 길런글로버도 이에 적극 동의했다.



 (Deep Purple in Rock) (In Rock)




70년에 발매한 정규 4집 Deep Purple in Rock은 이렇게

전투적인 자세로 얻은 인고의 산물이자 참신한 상상력의

빛나는 결정체였다. 뒤에 나올 후속 앨범으로 해당 장르

정점을 찍기 이전에는 헤비 사운드의 나아갈 길을 제시한

걸작이라고 평단의 찬사를 얻었던 작품이다.






당시 반응도 폭발적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평단과 언론이

더 깊이 평가하는 앨범인 듯하다. 영국의 하드락헤비메탈

전문 매거진 케랑!이 89년에 시대를 초월하는 100대 헤비메탈

명반을 집계하며 15위에, 05년에 최고의 100대 브리티쉬락

명반을 집계하며 56위에 올려놓은 바 있다.



(Kerrang! '89, 100 Greatest Heavy Metal Albums of All Time)

- 텍스트 아카이브: http://www.rocklistmusic.co.uk/kerrang_p2.htm

- 그래픽 아카이브:

  https://www.listchallenges.com/kerrang-the-100-greatest-heavy-metal-albums-of



(Kerrang! '05, 100 Best British Rock Albums Ever)

- 영국 아카이브:

  http://www.rocklistmusic.co.uk/kerrang_p2.htm#British%20Rock%20Albums

- 네덜란드 아카이브: http://www.muzieklijstjes.nl/Kerrang100British.htm




영국 Q 매거진도 98년에 최고의 50대 70년대 명반을 집계하며

48위로 평가했고, 클래식  매거진의 06년 100대 브리티쉬

명반 집계에선 13위를 차지했다. 이외에 05년 출간된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에도 물론 수록되는 등, 찬사가 줄을 이었다.



(Q Magazine '98, 50 Best Albums of The '70's)

http://www.rocklistmusic.co.uk/qlistspage2.html#70’s



(Classic Rock '06, 100 Greatest British Rock Albums Ever)

http://www.muzieklijstjes.nl/Classicrock100GreatestBritish.htm



(Robert Dimery '05, 1001 Albums You Must Hear Before You Die)

http://www.rocklistmusic.co.uk/steveparker/1001albums.htm




시작부터 강렬해 완전히 달라진 그들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낸

오프닝 트랙 Speed King. 이언 길런이라는 위대한 목소리가

폭발의 갈증에 목말라 하던 세상 만물에 완연히 현신하던 바로

 순간. 왜 보컬리스트를 바꿨는지, 블랙모어는 왜 그토록

헤비에 목숨 걸었는지, 세상 모든 사람이 본능적으로 수긍할

밖에 도리 없는 모멘텀이 도래한 것이다. 솔로잉 끝부분에 나온

길런의 초고음 스크리밍에서 가공할 전율을 느낄 터이다.



('Speed King' from In Rock, 1970)

*original studio album version

 - 잼 같은 인트로 50초를 지나 Hammond 전주 등장.

 - 3'27" 지나 더블 트랙 녹음한 guitar soloing.

 - 4'07" 무렵부터 vocal screaming.




2위까지 올라 딥 퍼플의 역대 영국 싱글 차트 최고 기록을 달성한

Black Night는 앨범과 거의 동시에 발매한 리드 싱글이다. 본래

앨범에는 수록되지 않았으나 팬덤이 기억하는 전성기 딥 퍼플

거의 초창기 히트곡이다. 글로버에 따르면 거쉬인 커버곡의 반주

베이스라인에서 힌트를 얻은 튠이라고.



('Black Night' from a single Black Night / Speed King, 1970)

- 다음 링크를 들어가면 어디서 모티브를 땄는지 알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tsMj0JD8N8




Child in Time. In Rock의 야수적 음악성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트랙은 사실 이 곡 아니겠는가. 보컬 재현 자체가 너무 어려워서

길런 자신이 이미 수십 년 전에 라이브를 그만 둔 곡이기도 하다.

사회적 가사가 많지 않은 딥 퍼플 음악사에서 반전과 베트남전을

소재로 다룬 흔치 않은 트랙이다. 소이탄 피해로 전신 화상을 입은

소녀를 촬영한 종군 보도 사진과 연계해 상상해보클라이맥스

스크리밍이 무엇을 표현한 건지 나름 감이 올 것이다.



*Nick Ut, The Terror of War (1972)

 - Pulitzer Prize Winner in 1973



('Child in Time' from In Rock, 1970)

*영국 TV쇼의 라이브 버젼. 전성기 전설적 실황.

 - Blackmore가 Gibson ES-335로 녹음한 마지막 트랙.



*studio album version

https://www.youtube.com/watch?v=UEjAaLu8Dhs




의외로 자유로운 그루브에 의존하지 않고 클래식처럼 정교하게

파트를 구분하던 블랙모어로드의 성향을 읽을 수 있다. 해먼드

오르간레슬리 스피커, 마샬 앰프존 로드 전매 특허 사운드의

상징이 된다. 블랙모어는 이 무렵부터 깁슨 버리고 스트랫으로

완전히 갈아탄다.



 (Lord)



 (Blackmore)




영국 앨범 차트에서 4위에 올랐고 독일, 호주, 오스트리아에선

을 찍었으며 발매 당시에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골드를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현재까지 전세계 판매고

4백만 장을 넘어 명실상부한 성공작이다. 딥 퍼플은 이제야

확고부동한 스타덤에 오른 것이다.



('Into the Fire' from In Rock, 1970)

https://www.youtube.com/watch?v=gMbY45kFs7w



('Hard Lovin' Man' from In Rock, 1970)

https://www.youtube.com/watch?v=ziISNxMCC3M




(Glover, Blackmore, Gillan, Lord, Paice)




71년 공식 5집이자 2기 라인업의 두번째 앨범 Fireball

길런을 제외하고 블랙모어로드 등 나머지 멤버들에게는

다소 아쉬운 작품이고 흥행 성적도 전작에 미치지는 못했다.

이리저리 투어 끌고 다니는 소속사 장단 맞추느라 스튜디오

작업에 할애할 여유가 없었다고.



 (Fireball)




그래도 영국 앨범 차트 최초의 1위 기록을 포함해 독일,

스웨덴, 벨기에 등 8개국 차트 정상을 석권했고 프랑스,

호주 등 5개국 탑텐에 들어 미국 시장을 제외하고 세계적

지지를 얻은 성공작임은 분명했다. 세계 판매고는 3백만

장이 넘었고 미국에서 골드까지 기록했다.



('Strange Kind of Woman' from Fireball, 1971)

https://www.youtube.com/watch?v=awGv_Go-smI

*studio album version

 - 가사의 내용은 영 좋지 않다. 매춘부 연심을 품은 소년의 성장기.

 - boogie-woogie란 본래 20년대부터 인기를 끈 블루스의 서브장르.




Strange Kind of Woman은 전작의 Black Night처럼

앨범에 수록되지 않고 리드 싱글로 미리 발매된 케이스.

(미국, 캐나다, 일본에선 앨범에 수록되었다.) 영국 싱글

차트 탑텐에 올라 앨범에 대한 기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잘 수행한 곡이고 블루스의 서브장르인 부기우기 모드를

맛깔나게 표현했다. 라이브에서 길런블랙모어가 주고

받는 애드립으로도 유명한 트랙이다.



*Strange Kind of Woman.

 - 73년 뉴욕 라이브 버젼.

 - 주고 받는 애드립은 3'40" 지나서 나온다.




타이틀 트랙 Fireball은 특이하게 에어컨 가동음으로 시작하여

로드가 극찬한 페이스투베이스 킥킹 패턴이 비트를 지배한다.

(아직 더블 페달이 나오기 전 시절이다.) 이들 음악 중 특이하게

기타 솔로 없이 베이스 및 키보드 솔로가 연이어 등장한다.



('Fireball' from eponymous album, 1971)

*studio album version audio + 'hand-sync' promo video clip

 - 꽤 화제를 모았던 프로모션 영상인데 죄다 립싱크+핸드싱크...

 - 제작 당시를 설명하는 Lord의 인터뷰가 덤으로 앞뒤에.. 돌아가시기 전.

 - 세밀하게 보면 손과 음이 따로 논다는 걸 알 수 있고, 심지어 4분 55초쯤

Blackmore기타를 뒤집어 드는 만행을...ㅋ




라이브에서 페이스드럼 솔로와 이어지는 걸로 유명한 트랙

The Mule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은 가사임이 정설이지만 악마 루시퍼에 관한 이야기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길런 본인이 코멘트한 바 있다. - 별 중요친 않다.



('The Mule' from Fireball, 1971)




Strange Kind of Woman이 영국 싱글 차트 탑텐까지 올라

기록을 이어나갔으나, 일부러 끈적한 그루브를 제거한 프로듀싱

스타일이 안 먹히는 탓인지 미국 시장 반응은 아직 그저 그러한

편이었다. 미국 빼고 유럽 반응은 물론 폭발적이었고. 일본도..

- 전 세계 판매고 1억 장이 넘는 딥 퍼플의 소비 시장 분포는

묘하게도 과 비슷한 편이다.



('Demon's Eye' from Fireball, 1971)

*71년 서독 TV쇼 라이브

 - 인트로에 등장한 Lord의 악기는 RMI 368X Electra-Piano.







일정이 촉박했던 전작에 비해 이번엔 한 달 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길런이 투어 중 간염에 걸리고 하는 소동으로 스케줄이

약간 꼬였었거든. 그동안 심기일전하여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며

블랙모어는 다양한 창작의 모티브를 구상하게 된다. 가끔 다급한

중에 나오기도 하지만 무릇 명반이란 여유 속에 탄생해야 하는 법.





 (Montreux, Switzerland)




요양할 필요도 있겠다, 기분 전환도 필요하겠다, 겸사겸사 밴드

전체가 스위스 몽트뢰로 출장을 떠났다.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유명한 고장. 이제 신보 녹음해야지. 카지노에 자리를 잡고 롤링

스톤즈의 이동식 녹음 스튜디오에 시동을 걸 준비를 했다. 프랭크

자파마더즈 오브 인벤션 공연이 끝나길 기다려 들어가려 했다.



          




어느 얼빵한 관객놈이 천정에 조명탄을 쏴버려 카지노 건물에 그만

불이 나버렸네. 난리가 났지만 제네바 호수 표면에 비친 화재 풍광은

또 한편의 장관이기도. 할 수 없이 옆에 임시 막사로 옮겨 녹음 좀

하려는데 소음이 너무 시끄럽다고 주민 신고가 들어온다네. 맙소사,

어찌어찌 하여 폐건물 호텔을 빌려 겨우 녹음을 진행했다.



- Smoke on the Water, Fire in the Sky.. Montreux.. 1971.

- 호텔 창밖으로 대략 이런 풍경을 감상하며 악상을 떠올리셨다고.



*Smoke on the Water. lyrics.

https://genius.com/Deep-purple-smoke-on-the-water-lyrics




새옹지마라 했던가. 일이 잘 되려면 사고 좀 나줘야 하고 예로부터

녹음할 때 귀신 나오면 그 노래 대박친다 했다. 락 역사상 공전절후의

명곡 Smoke on the Water는 대략 이런 뒷이야기를 가사로 구성한

밴드 모험담의 풍자적 송가였던 것이다. 기타 샵에서 제발 이 곡 좀

그만 쳐라, 영원불멸의 1위에 빛나는 바로 그 노래... 수록된 절대

명반, 72년 6집 Machine Head. 캬~~



 (Machine Head)






(Classic Rock '06, 100 Greatest British Rock Albums Ever)

http://www.muzieklijstjes.nl/Classicrock100GreatestBritish.htm




전술했지만 본작으로 비로소 헤비메탈이란 장르가 독립하여

폭발적으로 시장 형성을 시작한다. 클래식 락 매거진의 06년

100대 브리티쉬락 명반 집계에서 26위를 차지하고, Q 매거진

01년 시대를 초월한 50대 헤비 명반 및 04년 30대 클래식

명반 집계에 선정된 이유가 바로 이것.



(Q Magazine '01, 50 Heaviest Albums of All Time)



(Q Magazine '04, 30 Greatest Classic Rock Albums Ever)

http://www.rocklistmusic.co.uk/q_mojo_se.htm#Classic%20Rock




그뿐인가. 케랑! 매거진은 89년에 시대를 초월하는 100대 헤비메탈

명반을 집계하며 35위에, 05년에 최고의 100대 브리티쉬락 명반

집계하며 34위에, 본작을 선정했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

07년에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1000장의 앨범 중 하나로 뽑기도.




(Kerrang! '89, 100 Greatest Heavy Metal Albums of All Time)

http://www.rocklistmusic.co.uk/kerrang_p2.htm



(Kerrang! '05, 100 Best British Rock Albums Ever)

http://www.muzieklijstjes.nl/Kerrang100British.htm



(The Guardian '07, 1000 Albums to Hear Before You Die)

http://www.rocklistmusic.co.uk/guardian100.htm#1000%20Albums




완전 4 음정인 파워 코드의 대명사로 왕년에 기타 만져봤다는

초짜들은 다 한번씩 쳐보는 리프... (점원의 정신 건강을 위해 제발

낙원동 가서 그만 좀 치라고들..Smoke on the Water리프

하나 만으로도 음악사에 길이 남을 게다. Q 매거진이 05년에

100대 기타 트랙 명곡 랭킹에서 12위에 올린 바 있다.



- the legendary riff that you would already know by heart..



('Smoke on the Water' from Machine Head, 1972)

https://www.youtube.com/watch?v=OSXkTm1iRQQ

*original studio album version



(Q Magazine '05, 100 Greatest Guitar Tracks Ever)

http://www.rocklistmusic.co.uk/qlistspage3.htm#Guitar%20Tracks




원래는 계획에 없었는데 이 곡이 세계적으로 왕대박을 쳐버리

이듬해 개별 싱글로 발매하여 핫100 차트 4위까지 치고 올랐다.

롤링 스톤 매거진이 04년에 선정한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곡

랭킹에선 당당 434위를 차지했고. 기록도 풍년이로세.. 얼쑤~



 (Smoke on the Water, single)



(Rolling Stone Magazine '04,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500-greatest-songs-of-all-time-151127/deep-purple-smoke-on-the-water-165096/




이와 함께 본작을 대변하는 시그니처 트랙으로 Highway Star

역시 빼놓을 수가 없다. 로드+블랙모어듀얼 솔로잉 전성기

극강의 연주력을 상징하고 일찍이 요한 세바스찬 바하가 제시한

후기 바로크 화성악 스타일의 프레이징으로 유명한, 70년대식

밴드 연주력 측정기인 바로 그 명곡...!



('Highway Star' from Machine Head, 1972)

*original studio album version

 - 오리지널은 박자가 느린 편이고 라이브에선 BPM을 높인다.



**네오클래시컬 메탈

 - 일본과 한국 바보들이 한때 바로크 메탈 어쩌구로 불렀었으나 영어권

표현으로 neoclassical metal 정확한 용어이다. 신고전파..

 - 제팽글리쉬로 보이는 바로크 메탈이란, 존재하지 않는 말. 쓰지 마라.

뭐 이런 것까지 일본 바보들을 따라 해야 하남.

 - 어쨌든 멀리 JS바하를 시조로 받드는 해당 서브장르가 이 곡을 효시로

한다는 점은 사실이다. 파생 상품 업자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스웨덴의

Yngwie Malmsteen다.




오버드라이브 잔뜩 걸어준 로드해먼드 인트로블랙모어

넘어가는 Lazy는 7분여의 대곡이었는데 80년대엔 줄여서 짧은

버젼으로 라이브를 소화하곤 했다. 블루스 필이 강하고 길런

하모니카 연주를 선보인다.



('Lazy' from Machine Head, 1972)




사이키델릭 냄새가 강한 Space Truckin'은 우주 여행 모험담을

풀어낸 노래. 로드ARP 신디 초기형을 도입해 링 모듈레이션

합성 방식의 프레이징을 인트로에서 선보였다.



('Space Truckin'' from Machine Head, 1972)




싱글로도 발매해 영국 차트 탑40의 준수한 성적을 거둔 Never

Before는 라이브 셋리스트에 희한하게 잘 올라오지 않는지라

오히려 팬덤이 희귀 넘버로 찾아다니는 트랙. 2기 이전 초창기

딥 퍼플 냄새가 살짝 나기도 한다.



('Never Before' from Machine Head, 1972)




현재까지 이 앨범의 세계 판매고는 7백만 장을 넘어섰고 발매

당시 빌보드 200 차트 7위에 올랐으며 현재는 미국에서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영불독 및 캐나다, 호주 등 9개국 앨범

차트 을 찍었고 이탈리아, 일본 포함 다섯 나라 탑텐에 든다.

딥 퍼플 타이틀 하의 커리어를 통틀어 이때가 최절정기였다.



('When a Blind Man Cries' from Machine Head, 1972)

https://www.youtube.com/watch?v=ZLJ8XO7pBu4

- Soldier of Fortune 분위기를 미리 뽑아낸 숨겨진 발라드.

- 원래는 Never Before 싱글의 B면 트랙이었다.




(Blackmore, Gillan, Glover, Lord, Paice)




숱한 라이브에서 각기 다른 버젼의 애드립 프레이징을 창조하며

매번 색깔이 전혀 다른 무대를 만들어온 제2기 딥 퍼플이었지만

의외로 라이브 앨범에는 인색한 편이었다. 스스로가 만든 무대

사운드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



('Sympathy for the Devil' by Rolling Stones, 1968)

https://www.youtube.com/watch?v=qmppOF0_DHE

*live version from Get Yer Ya-Ya's Out!, 1970




하지만 음향 기술도 진보하고 있었다. 70년에 발매된 더 후

롤링 스톤즈의 라이브 명반 같은 경우 특히 이들이 가진 부정적

편견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작업물이었다. 72년 8월에 일본

투어로 세 차례 공연이 잡혔는데 이때 연주 버젼을 녹음하여

결국 그들의 실질적인 첫번째 라이브 앨범을 출시한다.



('My Generation' by The Who, 1965)

https://www.youtube.com/watch?v=PoHCjHtHrVo

*live version from Live at Leeds, 1970




72년 Made in Japan. 롤링 스톤 매거진의 12년 독자 투표

시대를 초월한 10대 라이브 명반 중 6위에 오른, Mk.II 전성기

최고의 기록을 담고 있다는 그 전설의 작품이다. 얼마나 대단한지,

딥 퍼플 디스코그래피에서 개별 판매고가 가장 높은 앨범이 다른

정규 음반 다 제치고 바로 이 작품일 정도. 8백만 장이 넘었단다.



 (Made in Japan)



(Rolling Stone Magazine '12, Readers' Poll:

The 10 Best Live Album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readers-poll-the-10-best-live-albums-of-all-time-18920/6-deep-purple-made-in-japan-132257/




본작은 레드 제플린The Song Remains the Same과 여러

면에서 비교될 수밖에 없었는데 동종 장르에서 라이벌 구도이기

때문에 그런 점도 있지만 라이브를 대하는 근본 자세에서 두 팀이

전혀 다른 접근법을 취하기 때문이다. 라이브 준비는 개인 연습이

알아서 하는 것이고 실제 무대에선 즉흥적인 합으로 맞추는 것이

진짜 음악이라고 생각한 제플린에 비해, 딥 퍼플은 라이브의 합도

서로 칼같이 약속하고 연습한 플레이만 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



*Smoke on the Water. Made in Japan.

- 1972년 8월 15일 오사카. (유신 직전 광복절이군..)




Made in Japan은 그런 음악적 신조를 배경으로, 실력 면에서

최정점을 찍고 있던 2기 멤버들이 어쩌면 스튜디오 레코딩보다도

훨씬 더 정교할지 모를 연주 합을 들려주었기 때문에,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모든 음악팬이 인정하는 최고의 라이브 앨범으로 거듭

재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 제플린 라이브에 대한 평가는 사실

그닥 좋지 못하다. 완성도 면에서 다소 성의 없다고... 퍼플 완승.



*Highway Star. Made in Japan.

- 1972년 8월 16일 오사카.

**Highway Star는 이후 라이브에서 하도 변칙 해석이 난무하여

원곡 버젼 연주를 듣기가 오히려 더 힘든 곡인데, 오리지널 버젼

연주를 스튜디오처럼 충실히 재연한 거의 유일한 아카이브이다.



*Strange Kind of Woman. Made in Japan.

- 1972년 8월 16일 오사카.




(Blackmore, Lord, Glover, Paice, Gillan)




한창 잘 나가던 딥 퍼플. 안타깝지만 균열의 조짐이 슬슬 나타났고

근본적 원흉은 돈벌이에 급급했던 소속사 매니지먼트였다. 휴가도

없이 투어와 레코딩으로 몇 년을 달리다 보니 다른 파트보다 몸이

악기인 보컬리스트에게 가장 큰 여파가 왔다. 길런의 육체 피로와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고 오늘날까지 문제가 되는 블랙모어와의

신경전도 이때 서로 싸우다 보니 싹이 트게 된 것이다.



 (Who Do We Think We Are)




2기 황금 라인업의 마지막 작품 73년 7집 Who Do We Think

We Are는 그런 스트레스 전쟁의 산물. 이거 녹음할 때쯤 이미

길런은 탈퇴로 마음의 가닥을 잡은 상황이었다. 73년 6월 일본

투어가 끝나자마자 탈퇴서를 남기고 길런이 아예 음악계 은퇴를

선언했으며, 글로버는 직후에 해고 당했다. (제발로 걸어 나갔단

설도 있긴 하다.)



*'13 interview with Ian Gillan and Deep Purple.

https://www.rhino.com/article/stay-tuned-by-stan-cornyn-loudest-purple

 - 2기 전성기가 오래 가진 못할 거라며 뿌리까지 뽑아 먹으려던 그들.

 - 길런, 내가 매니저라 "암것두 하지 말고 한 석 달 쉬어"라 했을 걸?




Woman from Tokyo는 본작이 남긴 거의 유일한 히트곡. 앨범

판매도 준수했고 차트 성적도 괜찮았지만 마치 혼이 나가듯이 곡

하나하나에 기백이 없어 멤버들이나 팬덤 모두 본작의 수록곡을

그닥 좋아하진 않는 듯하다. 황금의 Mk.II 라인업은 이렇게 역사

속 뒤안길로 사라진다.



('Woman from Tokyo' from Who Do We Think We Are, 1973)




('Rat Bat Blue' from Who Do We Think We Are, 1973)

https://www.youtube.com/watch?v=6mQTDlQQ5RE

- 그나마 본작에서 이 곡 정도 건질 만하다는 평을 듣곤 했다.







몸도 마음도 지쳤거니와 길런은 한동안 음악계를 떠나 지냈다.

호텔이나 모터사이클 등 몇 군데 사업 투자를 해보았지만 뜻대로

잘 되진 못했다. 다시 음악을 시작했는데 난데없이 재즈락으로

장르를 바꿔 이언 길런 밴드를 조직한다. 3장의 앨범을 냈지만

사실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punk시대에 재즈를 들고 나왔으니.



('Child in Time' by Ian Gillan Band, 1976)

https://www.youtube.com/watch?v=pwkJo9_c3fM

*재즈 퓨전 스타일로 리메이크한 Gillan 자신만의 버젼.

 - 부르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도 있고 상당히 끈적하게 바꿔 놓았다.




딥 퍼플은 보컬에 데이빗 커버데일, 베이스 및 보컬에 글렌 휴즈

받아들여 제3기 라인업을 가동하고 있었다. 블루스funk, 소울

더 가깝게 다가간 3기 라인업, 사실 꽤 괜찮았다. 동명의 앨범에서

걸작 트랙 Burn이나 또 다른 타이틀 트랙 Stormbringer 등, 수작

정도로는 평가할 만큼, 곡도 충실하게 잘 뽑혀 나왔었다.



('Burn' from eponymous album, 1974)



('Stormbringer' from eponymous album, 1974)




블랙모어 입장에선 새 멤버들로 채워진 funk 및 소울 분위기가 영

별로였다. 탈퇴하고 나와 로니 제임스 디오레인보우를 결성한다.

또 다른 당대 최강의 보컬리스트가 가세한 블랙모어 사운드는 한층

고강하고 고결해져 Man on the Silver Mountain Stargazer

같은 수작 트랙이 양산된다. 판매고가 살짝 아쉬운 수준이긴 했다.



('Man on the Silver Mountain' from

Ritchie Blackmore's Rainbow, 1975)



('Stargazer' from Rising, 1976)




블랙모어가 없는 딥 퍼플은 - 나중에야 다들 깨닫지만 - 등뼈

큰 조각이 빠진 듯한 모양새였다. 토미 볼린을 영입하여 신작

앨범을 내지만 결국 전성기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만다. 볼린

휴즈마약에 빠져 밴드 분위기를 해치는 것이 큰 원인이었다.

76년 투어를 끝내고 딥 퍼플은 공식 해체를 발표한다. (볼린

과대평가하는 일부 평자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 결국 팀을 깨뜨린 불성실 약쟁이일 뿐이다.)




(Paice, Hughes, Coverdale, Blackmore, Lord)




블랙모어는 그럭저럭 디오와 잘 하고 있었는데 예술적으로 워낙

변덕이 죽끓듯하는 사람이라 음악의 방향성을 놓고 디오와 의견

대립이 생기니 결국 멤버를 싹 다 갈아치운다. 1978년. 길런

그 대체자로 영입할까 고려한 적도 한때 있었지만, 솔로 활동에

미련이 컸던지라 길런이 거절했다고. 아까비~ - 아이러니이지만

레인보우는 이후 교체 멤버로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다.



 (Dio, Blackmore)




길런도 생각 잘 한 거였다. 다시 전공인 헤비메탈로 복귀하여

길런이란 밴드 타이틀로 앨범 작업을 시작하는데 영국 골드

실버 수준의 성공을 거둔 것. 일본에서 반응도 좋았다 한다.

78~82년에 6장의 앨범을 내고 그럭저럭 짭짤한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단, 82년에 성대 결절로 갑자기 활동을

접어야 했던 흑역사도 겪는다.






('Mr. Universe' by Gillan, 1979)

https://www.youtube.com/watch?v=3KvCAmPXwD4



('Future Shock' by Gillan,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C2mvWIByJ2A




1980년에  소동이 하나 있었는데 돈벌이에 환장하던 어느

기획사가 1기 보컬 로드 에반스를 꼬드겨 대충 세션을 붙이고

딥 퍼플 재결성이란 제호에 공연을 추진한 것. 당연히 2~3기

멤버들 중심으로 소송전에 들어갔고 에반스는 거의 70만 불에

달하는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했다고. 피해를 볼 팬들을 위해

진짜 멤버들이 '우리 안 나옴' 하고 신문에 광고까지 냈단다.



          

- Bogus Deep Purple & Real Ad..




3기 보컬이자 또 한 명의 레전드 커버데일딥 퍼플 해체 후

78년에 화이트스네이크를 결성해 80년 무렵부터 서서히 히트

동력을 높이고 있었다. 일찍이 로드페이스도 멤버로 참여해

힘을 모았으니 포스트 퍼플 프로젝트로 중요한 밴드였던 차...

(정작 이들의 전성기는 84년에 로드+페이스 나가고 난 직후

찾아오고 있었으니..ㅎ)



(Murray, Lord, Marsden, Moody, Paice, Coverdale)



('Here I Go Again' from Saints & Sinners, 1982)

*87년에 대박 친 버젼의 82년 오리지널 트랙이다.




앞서 78년에 레인보우를 떠난 디오블랙 사바스에 합류해

검은 안식일 제2의 전성기를 빚어내고 있었다. 토니 아이오미,

기저 버틀러의 프레이징에 동기화시키는데 최적화되어 있던

오지 오스본에 비해 디오는 다른 멤버의 백킹을 가로질러 뚫고

나오는 스타일이라 전혀 다른 헤비의 미학을 창조하고 있었다.

- 이 시기 명곡 Heaven and Hell디오, 아이오미, 버틀러,

그리고 빌 워드에 의해 멋드러진 향취로 주조되었다.



('Heaven and Hell' from eponymous album, 1980)




이렇게 괜찮았는데 다음 앨범 준비하면서 디오아이오미

사이가 틀어지고 만다. 디오사바스와 솔로 프로젝트를 동시

진행하면서 스튜디오를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것. 디오가 떠나

버리고 후임으로 솔로 활동을 접고 있던 길런이 선임된다. 와..



*이때 길런을 사바스로 끌어들인 매니저가 돈 아든이라고, 이

무렵 오지 오스본 장인이 된 분이다.. 즉 샤론 오스본의 부친..

이 가족 이야기는 복잡하니 훗날 기회 있을 때...




(Butler, Gillan, Ward, Iommi)




 (Born Again)




또 하나 역사에 남을 슈퍼그룹이 될 수도 있었던 이 프로젝트.

83년 블랙 사바스 공식 11집 Born Again 앨범으로 결실을

맺는다. 블루지하고 자유분방한 길런의 스타일이 사바스

아이오미 식 패턴과 맞지 않는다고 평단이 깠고 - 멤버들도

그렇게 느꼈지만 - 팬덤의 반응은 좋았다. 영국 앨범 차트

4위까지 가는 성공을 거둔다.



('Trashed' from Born Again, 1983)



('Hot Line' from Born Again, 1983)




여기까진 그래도 들어줄 만한데 아래 트랙들 들어보면 음울하고

짐짓 답답스런 사바스 정서가 낭만이나 자유로운 미학을 추구하던

길런 스타일과 확실히 어울리진 않음을 알 수 있다.



('Zero the Hero' from Born Again,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7i3URNHQuFo



('Keep It Warm' from Born Again,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MrGja48pfAY




여담이지만, 투어 돌면서 블랙 사바스 예전 트랙들 가사 외우는

데에도 된통 애를 먹었다고. 뭐든 다 잘 할 것처럼 보이는 전설의

보컬리스트 최대 약점은 가사 암기였다...ㅎ 딥 퍼플 때도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줄줄이 나올 정도..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서

중간에 까먹으셔도 팬들이 그러려니 하고 웃으며 넘어간다고.ㅋ



*Highway Star. 독일 TV쇼 '72. 전설의 가사 까먹기.




그런데 암기와는 별개로, 희한하게 작사는 즉흥적인 느낌을 좇아

또 기가 막히게 하시는 스타일... 사바스에서 작사 담당이던 베이스

버틀러와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아이오미가 짐짓 놀라셨다 한다.

사람의 두뇌에서 창작과 암기는 확실히 다른 영역의 기능인가 보다.





*15년 회고 기사, '사바스가 퍼플로 다시 태어났을 때'

https://metalinvader.net/the-old-enough-the-unnoticed-and-the-devils-soundtrack-when-sabbath-were-born-again-purple/







헤비메탈 팬덤에게 83-84 시즌의 사바스/길런 조합이 크나큰

선물이었다면, 84-85 시즌에는 경천동지할 더 뜻깊은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MTV시대 헤어 메탈에 열광하던 미국의

새로운 하이틴 팬들에게 더욱 그러했으니, 전설적인 2기 라인업

딥 퍼플의 재결성이었다. 두두둥.




(Glover, Blackmore, Lord, Gillan, Paice)




예전처럼 닥달하던 사람들 말고 새로운 매니저 및 폴리그램과

재결성+신보 계약을 맺었다. 사바스고 자시고 간에 길런이 이

프로젝트로 득달같이 달려갈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2기 퍼플

길런의 화려한 젊은 시절이자 마음의 고향이니까. 84년 공식

11집을 발매하는 그들. Perfect Strangers였다.



*각자 어디서 뭐 하다 달려들 오셨나...

 - Ian Gillan : 별로 안 어울리던 Black Sabbath 3기 보컬 접고..

 - Ritchie Blackmore : 판매 부진하던 Rainbow 막 해산시키고..

 - Jon Lord : 잘 나가던 Whitesnake 때려치우고.. - 2기에 대한 애정.

 - Roger Glover : Blackmore랑 Rainbow 하다 접고..

 - Ian Paice : Gary Moore 밴드 접고.. - 거기보단 퍼플이 낫지.




 (Perfect Strangers)




솔직히 앨범 자체는 크게 기대할 것이 못 된다. Knocking at

Your Back Door타이틀 트랙 Perfect Strangers, 두

곡이 라이브의 고정 레퍼토리로 정착하긴 하나 그 이외 트랙

정직하게 영 아니올시다 평가도 받았다. 그냥 전설들이 다시

뭉쳤구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의의를 둘 수 있을 뿐.



('Knocking at Your Back Door' from Perfect Strangers, 1984)




그런데 Reunion Tour는 사정이 달랐다. 시쳇말로 84~85년

당시 세계 공연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대사건 중 하나였다. 이에

필적할 만한 사건은 브루스 스프링스틴 대박 친 것 하나 말고

꼽을 수가 없을 정도.. (Born in the U.S.A.시절)



('Perfect Strangers' from eponymous album, 1984)




호주에서 투어를 개시해 북미와 유럽을 거쳐 남미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는데 특히 유럽 레그의 정점을 Knebworth Festival

찍어 버렸고 문자 그대로 현지 언론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한다.

- 물론 당시 한국에선 몰랐지만... 이때 딥 퍼플의 수익은 앨범

판매보다는 투어에 전적으로 기댔다고. 돈이 중요친 않았지만..



*Deep Purple: 'Surprise of the Year', Billboard Magazine; May 1985.

https://books.google.co.kr/books?id=HCUEAAAAMBAJ&lpg=PA219&ots=_VAMzrnxoY&dq=deep%20purple%201985%20billboard%20surprise%20of%20the%20year&pg=PA219#v=onepage&q=deep%20purple%201985%20billboard%20surprise%20of%20the%20year&f=false

 - 얼마나 뜨거운 반응이었는가, 당시 빌보드 지 기사 아카이브.

 - 원래 하루 공연으로 그칠 계획이었는데 연이어 매진을 기록하니

  추가로 공연일 잡느라 진땀 뺐다는 행복한 뒷이야기.. 미국에서.

 - 넵워쓰에선 폭우가 쏟아지는데도 8만 관중이 운집하여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퍼플도 이에 열정적 퍼포먼스로 화답했다는...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반까지는 길런블랙모어의 앙숙

관계가 주된 화두였다. 길런이 쫓겨나면 블랙모어가 남고

(89년), 길런이 복귀하면 블랙모어가 나가 버리고(93년)..

팬덤은 뭐하는 짓거리냐며 성화고... 결국 블랙모어는 다시

돌아오지 않조 새트리아니를 거쳐 스티브 모스가 줄곧

원만하게 활동하며 투어 중심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때

한국에도 공연을 오셨더랬다. 본 블로거, 현장에 있었고..)




*Highway Star, live in Seoul

 - 1995년 3월 18일




(Deepest Purple: The Very Best of Deep Purple)




88년에 당시 소련이던 아르메니아에서 대지진이 발생해 많은

사상자가 나니 길런을 포함한 락 뮤지션들이 자선 프로젝트로

뭉쳤다. 이때 Smoke on the Water를 커버했는데 상당한

화제가 되었다.



('Smoke on the Water' by Rock Aid Armenia, 1989)

- (v) Ian Gillan, Bruce Dickinson, Paul Rodgers, Bryan Adams

- (g) Tony Iommi, David Gilmour, Brian May, Alex Lifeson,

       and Ritchie Blackmore

- (k) Geoff Downes, Keith Emerson

- (b) Chris Squire

- (d) Roger Taylor

- etc. Jon Lord, John Paul Jones







이때 맺어진 길런아르메니아의 인연은 훗날 다양한 프로젝트로

결실을 이어나간다. Rock Aid Armenia 20주년을 기념해 09년에

아르메니아에서 토니 아이오미제프 다운즈와 함께 공로 훈장을

서훈받았다. 이 조합에 2년 후 존 로드를 포함하여 제이슨 뉴스테드,

니코 맥브레인이 가세한 슈퍼그룹이 결성되니 후케어즈였다. 그는

아르메니아 자선 프로젝트에 지속적으로 참여했고 이 멤버 그대로

공연도 이어나갔다.



('Out of My Mind' by WhoCares, 2011)




93년에 길런/퍼플에서 갈라져 나온 블랙모어. 안타깝지만

이후엔 딥 퍼플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고 앞으로도 복귀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현재는 아내 캔디스 나이트

포크락(!) 밴드 블랙모어s 나이트를 결성해 루츠 음악에 더

근접한 활동을 지속해오고 계신 실정... 아쉽긴 하다.



 (Blackmore's Night)




68년 결성 후 페이스와 함께 줄곧 밴드를 지탱하며 실질적인

리더로 믿음직스러운 맏형이었던 로드. 멤버들과 많게는 열 살

가까이 나이 차가 지는지라 현역에서 물러나는 순서도 이 분을

기점으로 시작되었고 02년에는 스스로 딥 퍼플에서 탈퇴하여

돈 에어리에게 후임 자리를 물려주셨다. 장비 일체 포함...



          




해먼드 C-3레슬리 스피커, 마샬 앰프로 구성하는 로드만의

시그니처 톤은 그 자체로 하드락의 역사가 되었고 로드 자신을

키스 에머슨이나 릭 웨이크먼 같은 동시대 경쟁자들과 확연하게

구분 짓는 강한 차별화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피아노의 그것과

전혀 다른 오르간 만의 레가토 주법이 중요하다는 점을 항상

강조하던 존 로드... 12년에 지병인 췌장암으로 별세하셨다.





*Perfect Strangers.

 - Jon Lord 추모 콘서트




93년부터 추천 요건이 되었지만 딥 퍼플락앤롤 명예의 전당

자격 심사에서 매번 탈락하는 일은 큰 논란거리였다. 키스, 러쉬,

메탈리카, 건즈 앤 로지스 등 까마득한 후배들이 작심하고 비판을

쏟아냈고, 결국 늦었지만 16년에 드디어 딥 퍼플이 헌액 무대에

오른다. 길런, 블랙모어, 로드, 글로버, 페이스, 휴즈, 커버데일,

에반스... 여덟 명에게 영예가 주어졌다.



*Hush & Smoke on the Water. R&R Hall of Fame Induction.

 - Jon Lord가 돌아가신지 4년 후.

 - 키보드에 Don Airey, 기타에 Steve Morse.

 - 현재 라인업을 존중하기 위해 Blackmore는 불참했다고.

 - 멤버들 볼 면이 안 서는 Evans는 (당연히) 불참.







락 음악사상 가장 쿨하고 남성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하드락

헤비메탈의 장르 존립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밴드, 딥 퍼플...

보컬, 기타, 키보드, 베이스, 드럼 각 파트마다 멤버 각자가 후배

뮤지션들에게 미친 영향력은 일일이 다 언급하기가 불가능할

만큼 어마어마하다.



물론 이들에게도 비판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결국 70년대

전성기의 짧은 스타덤에 기대어 나머지 일생의 투어 수익을 올리는

올드보이들 아니냐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럼 비틀즈조차도 10년을

넘기지 못했는데 실질적인 상업적 전성기가 20년 이상 가는 대중

음악가가 과연 몇 팀이나 되냐고 반문하고 싶다. 30년 넘겨 히트작을

생산하는 아티스트는 딸딸 털어도 롤링 스톤즈, 폴 매카트니, 엘튼 존,

U2, 마돈나 고는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음악 산업의 가치 사슬이나

경기 순환 주기란 것이 그만큼 짧고 지속 가능 못한 것이 현실이니까.



1억 장이 넘는다는 딥 퍼플 디스코그래피의 세계 판매고 숫자가

몇몇 지표에서 드러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이것은 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 산업 측정 지표란 것이 빅 데이터 통계량으로 체계화하기

시작한 시점이 80년대 이후인지라, 절반 이상의 판매고가 70년대에

몰려 있는 이들 상업 실적의 상당수 통계량 오늘날 추적이 불가능한

상태로 사실상 소멸해버렸기 때문이다. 다이애나 로스, 클리프 리처드,

스콜피온즈, 오지 오스본, 톰 존스, 잭슨 파이브 등 70년대 이전 실적

지분이 큰 다른 아티스트도 같은 이유로 판매고 집계에서 상당히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전언이다.



어찌 되었든 실적 데이터에 관한 것 말고 음악적 기여도에 있어선

왠만해서 딥 퍼플을 까내리려 시도하는 용자가 많지 않을 것이다.

앞에서 했던 찬사를 반복하는 건 의미가 없겠고 그 시간에 멋진

음악이라도 하나 더 소개하는 편이 훨씬 현명하므로, 앞서 72년

Machine Head 앨범에서 각 파트별 밸런스가 어떻게 이렇게 딱

맛깔나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숨겨진 보석 같은 사례로서,

Pictures of Home을 추가로 제시하며 설명을 대신하고자 한다.

장담컨대 이렇게 멋진 음악을 제시할 수 있는 락 밴드, 예나

지금이나 결코 흔하지 않다.



('Pictures of Home' from Machine Head, 1972)

 - Jon Lord 및 모든 멤버의 솔로잉이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특유의 screamshriek 텍스처가 본연의 선굵은 마초 캐릭터와

어우러져 이언 길런이란 불세출의 보컬리스트가 탄생하게 되었고

후배 보컬리스트들에게 끼친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

나이를 먹으며 스크리밍 음역은 점점 딸리는 것이 어쩔 수가 없을

테지만, 중후한 블루스 필로 채운 그 자유분방한 리릭 어프로치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평단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지점은 작사가로서의 능력. 그는 평생 작품에서

비속어를 딱 한 번 썼을 만큼 건강한 시적 언어를 강조하는 편이고

흔히 헤비메탈 장르에 대해 대중이 가질 편견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창작자이다. 모든 가사에서 시어의 선택 자체가 퍼커션을 조율하듯이

음악성을 근간으로 해야 한다는 지론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생각해보면 70~73년 겨우 서너 해 남짓 한 극전성기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서서히 하강 그래프를 그려간 뮤지션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냉정한 평가도 내리고 싶다. 하지만 그 몇

해의 성과 만으로도 평생을 평가받기에 충분할 만큼의 족적을 남긴

셈이니 전성기 활동의 질적 완성도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분..



브루스 디킨슨, 롭 핼포드, 폴 스탠리제임스 헷필드, 제프 테이트,

크리스 코넬, 에디 베더 등... 당장 보컬리스트로서 그의 직속 후임

계보에 들어갈만한 이름을 생각나는 대로 대충만 읊어도 이 정도다.

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겠느뇨...



*Highway Star. Perfect Strangers World Tour.

 - 라이브 실력으로 완벽하게 끗발 날리던 피크 시절의 멤버들.

 - Reunion Tour로 왜 공연계 돈을 쓸어담고 다녔는지 이해가 갈 게다.

 - 4'33".. 한때 이렇게 애틋한 시절도 있었건만...ㅜ









이언 길런하드락의 울타리에서만 머무른 것은 아니다. 후대

인류 문화사에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고

여기는 특이 지점은 69년말 매우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작업하던

시절. 존 로드의 클래식 협주곡 프로젝트가 이래저래 지겹고

한가롭던 차, 당시 성공의 열망에 부풀어 있던 젊은 뮤지컬

작곡가로부터 호출을 받아 스튜디오에 가봤는데...



아직 정규 딥 퍼플 음반이 나오기 전이었지만 어느 홀을 빌려

샤우팅 질러대며 리허설에 열중하던 길런을 멀찍이서 눈여겨

보고 있었단다. 저런 하이 노트가 가능한 보컬리스트가 있었군,

하면서. 악보를 건네며 일종의 카덴차, 즉 애드립으로 할 수 있는

구간이 여기까지라고 친절히 안내해주니, 길런은 그런가 보다

하고 원래 하던 대로 냅다 질러댔다. 성경 이야기의 무슨 컨셉트

앨범인 모양인데 내년 정도에 앨범이 나온다나 어쨌다나... 암튼.



젊은 작곡가의 이름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 이듬해에 발매한 그

희한한 컨셉트 앨범은 바로 이런 제목이었다. Jesus Christ

Superstar... 그렇다. 웨버 뮤지컬의 전성기를 열어제낀 대박

히트작의 출발선이 바로 이 시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설의

시작, 가공할 샤우팅 노트로 후대 뮤지컬 배우들을 무던히도

괴롭힌 악마적 프레이즈가 바로 그렇게 탄생한 것. 세상에..



 (Jesus Christ Superstar)




뮤덕들 사이에서 하이G 겟세마네 불리우는, Gethsemane

(I Only Want to Say). 로마군에게 체포되기 직전 예수의 최후

심경을 강렬한 하드락 비트에 실어 절규처럼 토한 마스터피스.

오늘날 모든 뮤지컬 배우를 멘붕에 빠뜨리는 초고음 샤우팅이

바로 이 트랙에서 등장한다. 평범한 성악 트레이닝에 익숙할

배우들이 당황할 수밖에. 오리지널이 헤비메탈의 조상 격인

보컬리스트셨는데.. 급 불쌍해지는 우리의 배우들..



본 블로거 생각하기에, 이미 한물 간 헤비메탈 어쩌구 차치하고

이 프로젝트길런이 남긴 문화적 유산이 아마 딥 퍼플 노래보다

훨씬 더 장구하게 인류사에 남지 않겠는가 전망한다. 오늘날의

문화 산업에서 헤비메탈뮤지컬교집합 규모도 작고 별로

연결될 것 없는, 딱히 상관없는 두 장르. 길런은 전혀 상관없는

두 개의 분야에 강렬하게 흔적을 남긴 음악가로 남는 셈이다.



후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걸작이 때때로 우연한 사고처럼

탄생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논할 때 길런웨버겟세마네

이야기를 반드시 언급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후에 그는 결코

뮤지컬 세계로 돌아간 적 없고 - 한창 영화 찍을 때 딥 퍼플 월드

투어 중이었으니까 - 웨버도 이후 다시 하드락 장르로 돌아온 적

없다. 두 창작 집단의 젊고 피끓던 시절, 우연한 교차점 부근에서

역대급 걸작이 그야말로 우발적으로 탄생한 셈이라 하겠다.



무릇 인생과 예술이란 그러한 것. 화려한 전성기 시절 울트라급

성대를 자랑하시던 길런의 젊은 아우라에 흠뻑 빠져 보시기를

권유하며, 강력한 추천과 함께 금번 포스팅을 마치고자 한다.

(가련한 후대 뮤지컬 배우들의 발성 비교 영상은 덤이다.)




('Gethsemane (I Only Want to Say)' from

Jesus Christ Superstar, 1970)

 - Ian Gillan on vocals



*Ted Neeley. 73년 영화에 길런 대신 출연하신 명배우.




*Jesus Christ Superstar

 - 앤드류 로이드 웨버 & 팀 라이스 콤비의 처녀 히트작.

 - 웨버-라이스 시대를 열어젖혀 공고한 초석을 다진 명작.

 - 70년 락 오페라 컨셉트 앨범을 먼저 발표. 성공.

 - 71년 웨스트엔드 뮤지컬 무대에 데뷔. 성공.

 - 73년 뮤지컬 필름으로 제작 상영. 성공.



**배우들 비교질 동영상 - 가볍게 보시라.

https://www.youtube.com/watch?v=yfHt2YfRdSs

 - 1'12" Ian Gillan, 70년 원곡 앨범의 가수. 원흉.

 - 0'20" Ted Neeley, 73년 오리지널 영화의 배우.

  -- 여기 두 분까지는 보통 언터처블 레전드로 분류되고..

 - 0'55" Gary Cherone, Extreme의 보컬. 근데 별로다..

 - 2'09" Sebastian Bach, Skid Row의 보컬. 더 별로다..

  -- 여기 없는데 뮤덕들이 꼽는 역대 최악은 John Legend라고..ㅜ

  -- 보통 Steve Balsamo는 현역 최고로 친다고.. 동의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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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분 이야기할 차례가 되었네. 사상 최초

내한 공연의 직관 준비는 하고들 계신지 몰겄다.

팝 음악 이야기를 하면서 이분들 스토리 제껴놓고

간다는 게 말이 되나... 매도 얼른 맞았어야 했건만.



80년대 이후 세계 락 음악사 전체를 상징하며 그 전설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레전더리 액트, 유투 U2의 네 멤버와

그들을 대표하는 프론트맨 보노 Bono의 이야기... 시작한다.












*Sunday Bloody Sunday from A Conspiracy of Hope

**86년 6월 Amnesty International 주관 콘서트.

 - Bono 보컬에 있어 궁극의 최대치를 확인할 수 있는 공연.

 - http://www.u2gigs.com/Conspiracy_Of_Hope.html




*Bad from Live Aid

**85년 7월 13일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

 - 7분경 관중을 막지 말라며 객석으로 몸소 난입하시는 Bono.

 - 9' 25"에 갑자기 삽입한 음률은 Rolling Stones가 원.

 - The Edge, 아직 모자 쓰시기 전..




팝 음악에 입문하여 청소년기를 보낸 시기가 이들의

전성기와 시절을 공유하기에 U2와 함께 성장한 세대의

일원이라 자부할 수 있겠는데.. 사실 한창 인기 있을 때

이들을 아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고 딱 인기있는

만큼만 바라본 것 같다.



누군가에게 U2를 설명할 때 기준점을 어디에 둬야 할까.

연주력? 멤버 모두 한 가닥씩 하는 프로듀서들임을 부인하긴

힘들지만 흔히 정통 락 성애자들이 선호하는 비르투오소 풍의

테크닉을 가진 연주자들이라고 하기보다... 개성으로 충만한,

스타일링에 능한 재주꾼들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장르? 포스트 펑크에서 실력을 갈고 닦아 출발한 점은

맞겠으나 초창기 몇 장의 앨범까지만 한정했을 때이다.

익스페리멘탈의 영향을 받은 80년대는 이노 중심이

이례적 시기였을 터이고... 얼터너티브의 기준을 제시한

90년대를 지나.. 결국 U2의 장구한 음악사는 특정한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이라는 보편적 줄거리 하나로

통일할 수 있을 터이다.



가사 및 메세지? 정치사회적인 주제를 빈번하게 드러내는

밴드임에 틀림없고 영미권의 비주류인 아일랜드 가톨릭의

정체성이 예술적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가들이겠지만...

그들의 모든 음악을 프로파간다나 저항 가요로 취급할

순 없는 노릇..



수상 경력? 2억 장에 가까운 판매고, 스물 두 개의 그래미

어워드 트로피, 락앤롤 명예의 전당 헌액 - 그것도 단번에,

롤링 스톤 선정 100대 아티스트 랭킹 등 숱한 영예의 기록을

남겼건만... 어디 그것만으로 충분히 정의 내릴 분들이던가.



투어 실적? 공연 성적에서 이들에 필적할 만한 액트가

롤링 스톤즈마돈나, 플로이드 정도 외에 없을 듯하니

세상에서 공연 가장 잘 하는 음악가로 소개할 만하지만,

단순히 상업적인 성공 이상을 상회하는 대중 문화 전체

아이콘으로서의 상징성을 제쳐놓고 설명할 수가 없다능.



결국 이 모든 요소를 합친 존재감... 대중적 락밴드 포맷

위에 독창적인 스타일을 가진 개성 만점의 네 캐릭터들이,

결성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게 사회를 진지하게

인식하는 세계관을 구축함으로써 음악 산업을 총체적으로

표징하는 심볼로 발전하니, 숱한 수상 기록과 기념비적인

투어 성적은 부수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었던... 락 음악

사상 최고의 아티스트 다섯 손가락에 능히 꼽힐 만큼

위대한 이름이 바로 U2가 아닐까 싶다.



본 포스팅에서 U2를 풀어냄에 있어 종전처럼 시간 순서대로

하는 방식은 다소간의 식상함도 있을 듯하고 논평하시는 다른

분들이 얼마든지 다른 데서 하시고 있는 듯하여.. 대략 하고

싶은 이야기를 주제별로 포인트만 줄줄 풀어보려고 한다.

글 솜씨가 궁하야 시대순에 가까운 서술이 되었지만서두..




- 글 싣는 순서 -

포스트 펑크와 릴리화이트 중심의 출발선

메세지에 눈을 뜨다: 아일랜드, 사회정치, 기독교

브라이언 이노와의 만남 - 조슈아 트리, 라누아

밴 모리슨의 영향과 아이리쉬 루츠 소울

얼터너티브의 새 기준, 90년대와 악퉁 베이비

월드 투어와 스타디움... 더 후를 꿈꾸며

기본으로 돌아오다 - 2000년대 이후

그래미가 사랑한 그들, 사회 활동가로서

U2/ 헤어 메탈과 글램이 아닌 것들의 여집합




 (Boy)



 (October)



 (War)



 (The Unforgettable Fire)



 (The Joshua Tree)



 (Rattle and Hum)



 (Achtung Baby)



 (Zooropa)



 (Pop)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



 (No Line on the Horizon)



 (Songs of Innocence)



 (Songs of Experience)






 포스트 펑크와 릴리화이트 중심의 출발선




('I Will Follow' from Boy, 1980)

*U2의 투어 셋리스트에서 한 번도 빠진 적 없는 가장 오랜 트랙.



('Fire' from October, 1981)




1~2집 무렵까지 U2가 밴드 포맷을 형성하는 데엔 포스트 펑크

장르의 기반과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으며, 이는 초기부터 평생

이들과 함께 사운드 메이킹의 궂은 일을 도맡아 온 프로듀서

스티브 릴리화이트가 분전한 덕택이다.



특히 텔레비전조이 디비전 등 70년대 액트의 영향이 컸다.

릴리화이트의 영향으로 수지 앤더 밴쉬스도 엄청 탐구했다고.

래리 뮬렌 주니어학생 게시판에 밴드 멤버 공고를 올렸을

때만 해도 형편없는 실력이었다던 이들은 릴리화이트를 만나

음악을 일구는 방법론을 터득하게 되었다능. 이들과 동시대

혹은 약간 앞서던 저 밴드들의 음악에서 힌트를 얻었다네.



더 클래쉬, 라몬즈, 패티 스미스를 위시한 정통 펑크 씬 선배들이

예술과 유흥의 적당한 중간 지점에서 음악적 자유를 추구하는

태도를 시발점으로 하였다 하며, 여기에 미니멀한 어프로치와

장르의 변형을 혼합하는 포스트 펑크의 기본 정신을 적절하게

배합함으로써 자신들만의 방법론을 확립하게 된다.



('Marquee Moon' by Television,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g4myghLPLZc



('Hong Kong Garden' by Siouxsie and the Banshees,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Y-l9GQJRl9Y

*공동 프로듀서가 Steve Lillywhite였다.



('Love Will Tear Us Apart' by Joy Division,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zuuObGsB0No




80년 1집 Boy 81년 2집 October는 그런 방법론이 너무나

선연하게 드러나 당황스럽기까지 한 초창기 작업물. 릴리화이트

중심의 프로듀싱 체제가 유지된 83년 3집 War에 이르기까지도

이런 성향은 줄곧 일관성을 가지고 이어져 간다.



BoyI Will FollowOctoberFire를 들어보면 솔직히

동시대 포스트 펑크와 별반 차이가 느껴지진 않는다. 어딘가

잠재한 가능성이 꿈틀대는 기미가 느껴지네, 까지는 알겠는데

아직은 가능성에만 머무르던 꿈많던 시절. 에 동시대 해당

장르를 이끌던 선배들의 음악과 비교하면 그 미세한 차이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I Will FollowFire 등에서 자신만의 스타일링을

완성해가는 디 에지 발견하는 일은 큰 기쁨이다. 이런 문법에

쉽게 동의가 어렵다면 어차피 U2와 친해진다는 건 어불성설이니.

확실히 이 당시 디 에지를 보면 펑크의 정신을 따라가면서도 여느

포스트 펑크 기타리스트와 다른 캐릭터임이 또해지고 있었다.



릴리화이트의 절대적 영향력은 83년 3집 War까지 지속되었다.

War릴리화이트의 카리스마와 네 뮤지션들 스스로의 주체적

정체성 자각이 바톤을 교환하듯이 서서히 오버랩하는 모멘텀의

증거물이었다. 바야흐로 진짜 음악가가 되어가는 그들..






 메세지에 눈을 뜨다: 아일랜드, 사회정치, 기독교




('Sunday Bloody Sunday' from War, 1983)

* "This song is NOT a rebel song."

 - 세속의 정파적 이익을 좇으려 한 것이 아니라 비참하고

   슬픈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려 한 예술적 의도이니

   거기에만 주목해 달라는 메세지를 줄곧 설파하곤 했다.



('New Year's Day' from War, 1983)

*80년대 바웬사가 이끈 폴란드 자유노조 연대 이야기.



('Bad' from The Unforgettable Fire, 1984)

*당시 더블린에 만연하던 헤로인 중독 현상을 노래한 가사.




U2 멤버들이 뮤지션으로서 스스로 봉인을 깨는 계기는

사회와 정치 환경의 변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이들이 열 살을 갓 넘겼을 무렵 72년 1월말 북아일랜드

데리에서 벌어진 대사건은 여러 변화 가운데서도 가장

충격적인 것으로서 이들 넷의 본질적인 역린을 건드리고

만다. 아일랜드인으로서의 정체성, 바로 그것이었다.



피의 일요일 사건, 블러디 선데이라 명명된 사건은 5.18

광주의 아일랜드 버젼. 83년 3집 War의 가사를 작업하던

보노Sunday Bloody Sunday 걸작을 창작하기에

이르고 정치사회적 심볼로 급성장하는 밴드의 이미지는

시그니처 트랙을 기화점으로 하여 형성된다. -

그린그래스 감독의 02년 영화와 본작 가사를 동시에

음미하며 감상한다면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80년대 유럽과 북미는 부패한 기득권에 대항하는 저항적

사회 집단의 투쟁이 다양한 양상으로 터져나온 시기였고

보노는 세상의 뜨거운 이면에 눈을 뜬다. WarNew

Year's Day는 폴란드 바웬사가 이끈 자유노조 연대의

반독재 투쟁에 주목하였고, 84년 4집 The Unforgettable

Fire에 실린 Bad는 더블린의 사회 현상이 되어버린 마약

중독 소재를 다루었다.



4집의 Pride마틴 루터 킹 목사에 관한 책을 읽고 받은

느낌을 술회한 히트 트랙이었고, 87년 5집 The Joshua

Tree에 이르러 Mothers of the Disappeared는 중

엘살바도르 내전의 피해자들을 위무한 곡이다. 같은 앨범

Running to Stand Still에선 아일랜드인들의 마약 중독

문제를 다시 진지하게 다루기도 하였다.



애초부터 U2는 종교적 정신 세계를 가사로 쓰곤 했는데

작사가인 보노의 철학적 자의식이 성장함에 따라 외연이

더욱 확장한 셈이다. 원래 그가 즐겨 다룬 스토리로 가톨릭

문화를 기반으로 한 영성적 이미지가 한 축을 차지했는데

OctoberGloria 같은 트랙이 대표적이었다.



솔까말, Joshua Tree의 전체 컨셉 자체가 미국 투어 중에

경험한 영적 체험과 연관이 있다는 썰이... 제목부터 여호와

나무 아닌감. - 실은, 중앙 아메리카를 여행하며 미국 대외

정책의 폐해를 몸소 체험한 보노가 '위대한 아메리카의 정신이

이런 거냐!'고 통렬하게 일갈하는 메세지란 것이 정설이다.

레이건 시대 아니였겠냐.. 속 터지는.. 커버 아트에 담은

식물은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에 자생하는 희귀종이며

본작 이후 U2의 심볼로서 세계적인 이미지를 얻게 된다.



('Gloria' from October,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4X_45Yngey4

*83년 라이브 Under a Blood Red Sky 버젼.

 - 사실 이 곡의 진정한 백미는 Adam Clayton의 베이스 연주.



('Running to Stand Still' from The Joshua Tree, 1987)

https://www.youtube.com/watch?v=7OFmMDYTOt0

*아일랜드인들의 마약 중독 현상을 주제로 한 문제작.






 브라이언 이노와의 만남 - 조슈아 트리, 라누아




('Pride (in the Name of Love)' from The Unforgettable Fire, 1984)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주인공으로 한 스토리.



('With or Without You' from The Joshua Tree, 1987)

*전설의 시작. 뮤직 비디오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 심오한 어덜트 로맨스 가사이지만 중의적인 종교적 해석도 가능.

 - 인트로 프레이즈에서 드럼 머신 비트를 차. Yamaha DX-7.

 - 1절에 음을 무한정 sustain하는 infinite guitar 기술이 등장.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from The Joshua Tree, 1987)

*이 시기부터 가스펠과 소울의 기운이 움트기 시작했다.

**AFKN에서 이 영상 보는 일이 유일한 낙이었던 시절..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from The Joshua Tree, 1987)

*studio album version.

 - The Edge의 상징과도 같은 딜레이 이펙트가 작렬한다.




War를 끝내고 자아에 눈을 뜬 U2는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기

위해 그릇이 큰 프로듀서를 찾았고 이는 릴리화이트도 동의한

점이었다. 미팅 제의를 받은 브라이언 이노가 본인은 거절하고

대신 추천하기 위해 대니얼 라누아를 데리고 나갔는데, 이들의

잼 세션과 보노의 열정적인 설득에 그만 넘어가고 말았다네.



팝 음악 역사상 역대급의 대사변. U2이노를 만났다. 거기에

대니얼 라누아는 부록.. 릴리화이트를 내친 것도 아니다. 이노,

라누아, 릴리화이트. 이 세 분은 이후 평생에 걸쳐 U2 음악을

지원하는 든든한 프로듀서단으로 자리잡는다. - 이노, 이때

음악 커리어 때려치울까 하던 참이었다는데.. 인생 참 모른다..



브라이언 이노가 어느 정도 레벨의 음악가인지 모르는 사람도

간혹 있던데... 중상위급 히트를 기록한 록시 뮤직에서 기괴한

메이크업의 깡마른 무그 신디 연주자로 커리어를 시작하셨다.

프로그씬 3대 또라이 중 하나로 불리던 시기였다. 물론 앨범

두 장 내고 탈퇴했지만.



또라이 기질로 결코 뒤지지 않는 데이빗 보위피터 가브리엘,

로버트 프립 등의 70년대 앨범들 프로듀싱을 도맡으면서 음악계

최고 수준의 명성을 얻게 된다. 뭔가 아방가르드하고 익스페리멘탈

하면서 프로그레시브 같은데 일렉트로닉 스러운... 어딘지 묘한

실험적 전자음악 분위기 창출에 있어선, 70년대 후반 유럽권을

통틀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분이셨다.



앰비언트란 장르의 창시자이기도 하셨고. 뉴에이지의 조상인 게지..

음향 디자인에도 일가견이 있고 전파 망원경 설계에도 조력했으며

예술 창작 패러다임 전반에 철학적 영향을 끼친 분인지라 단순히

대중 음악가 한 가지 면으로 규정할 수가 없는 먼치킨 천재인 분.



존경받는 대선배와의 작업은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영감을 얻는

과정이었던 바, 이노는 일련의 즉흥 잼을 통해 보노디 에지

클레이튼 등이 스스로의 껍데기를 부수고 새로운 악상을 떠올릴

수 있도록 자신감을 북돋는 역할을 했다. 이노가 채 챙기지 못한

영역을 찾아 다니며 기술적 절차를 메꾸는 역할은 라누아가 큰

도움을 주었고 특히 뮬렌과 짝을 이뤄 드러밍이나 리듬 파트의

음향을 개선하고 혁신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래리 역시 이 시기 라누아의 도움으로 실력이 확 늘어났음을

지금까지도 흔쾌히 인정한다. 라누아애덤베이스 플레잉

테크닉에도 깊은 영향을 끼쳐 종전보다 훨씬 미묘한 뉘앙스를

표현할 수 있는 연주자로 변화시켰다고 한다.

https://www.atu2.com/news/the-larry-mullen-jr-interview.html



('Life During Wartime' by Talking Heads, 1979)

https://www.youtube.com/watch?v=jShMQw2H2cM

*excerpts from live '83 Los Angeles.

 - 보컬 David Byrne, 베이스 Tina Weymouth

 - 키보드 Jerry Harrison, 게스트 키보드 Bernie Worrell



('Once in a Lifetime' by Talking Heads,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TGofoH9RDEA

*excerpts from live '83 Los Angeles.




U2 멤버들은 특히 이노가 작업한 토킹 헤즈의 앨범들을 좋아했다.

하지만 새로운 작업은 기존 포스트 펑크에서 한두 차원 더 진보해

실험적인 전자 합성음을 도입하고 디 에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딜레이 등 다채로운 이펙트를 시험하거나 반대로 아메리칸 포크,

아이리쉬 루츠, 컨트리 블루스 등 전통적인 장르를 탐구하는 등

실로 광폭적인 범주까지 확장이 이루어졌다고.



마틴 루터 킹을 모티브로 한 Pride (in the Name of Love)

동명의 타이틀 트랙을 앞세운 84년 4집 The Unforgettable

Fire는 실험 정신의 첫 결과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들을 세계구급의 진짜 거물로 키운 진정한 대박 작품이 곧

기다리고 있었으니 87년 5집 The Joshua Tree였다. U2

빌보드 200 차트 첫 정상 앨범... 바야흐로 전설이 시작된 것.



With or Without You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U2의 커리어 전체를 상징하는 올타임 시그니처

트랙이 되었고 이들에게 유이한 핫100 차트 탑을 남긴 대박

히트를 선사한다. 뒤를 이은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수록 트랙 전곡이 평단과 대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버릴 곡 없는 명반이 탄생한 것. 대한민국이 민주화의

열망으로 뜨거웠던 1987년, 세계 음악계의 위너U2였다.



('The Unforgettable Fire' from eponymous album, 1984)

https://www.youtube.com/watch?v=oxRr3umJz5Y

*가사는 히로시마 원폭 참상에 대한 내용.






 밴 모리슨의 영향과 아이리쉬 루츠 소울




('Desire' from Rattle and Hum, 1988)



('Angel of Harlem' from Rattle and Hum, 1988)



('All I Want Is You' from Rattle and Hum, 1988)

*17년 U2 at the BBC 버젼.




밴 모리슨 이야기를 빼놓으면 안 되지 않을까. 아이리쉬

쇼밴드소울의 출발점은 60년대말 모리슨으로부터

잡아야 마땅하니까. 80년대 이후 보편화한 블루 아이드

소울의 아일랜드식 원형이던 그는 제임스 브라운, 윌슨

피켓, 팻츠 도미노, 재키 윌슨 등 오리지널 흑인풍과 또

다른 풍미와 그루브R&B 재창조한 선구자였다.



베이스 라인의 그루브 백킹을 중시하고 독자적인 기타

리프를 앞장세우는 작편곡 패턴이나, 흑인들의 감성에

일견 가까워 보이지만 뭔가 한 끝 차이로 미세한 조정을

가미한 보이싱 등 측면에서, 모리슨의 스타일링이 후대

음악가들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물론 70년대에 형성한 R&B의 패턴이 다 이

특별하다 평할 순 없다고 비판할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아일랜드라는 토양과 문화적 기반 위에서

모리슨이란 이름의 존재감은 폄하할 수 없을 것이다.



('Brown Eyed Girl' by Van Morrison, 1967)

https://www.youtube.com/watch?v=UfmkgQRmmeE

*줄리아 로버츠 생각나는 사람 많을 듯..



('Domino' by Van Morrison, 1970)

https://www.youtube.com/watch?v=yiDcPUOD-vY

*Fats Domino에게 헌정한 곡.



('Wild Night' by Van Morrison, 1971)

https://www.youtube.com/watch?v=bXoBnmJtqhY

*94년 John Mellencamp의 커버도 히트했다.



('Jackie Wilson Said' by Van Morrison, 1972)

https://www.youtube.com/watch?v=TY0_1VN7h8c

*당연하지만 Jackie Wilson에게 헌정한 곡.




80년대 내내 전미 투어를 돌며 보노디 에지 등이 모리슨,

스톤즈, 딜런 등 선배로부터 펑크 이전 시대의 음악에 관해

꾸준히 전수를 받곤 했는데 이 영향이 직접 드러난 작품이

88년 더블 앨범으로 나온 6집 Rattle and Hum이었다.

- 이 앨범에 대한 평가는 물론 호불호가 갈리긴 한다.



2005년 락앤롤 명예의 전당 헌액에 즈음하여 U2 멤버나

평단의 공통적인 평가로 밴 모리슨을 그들 음악의 원류로

이미 인정한 바 있다. 아래 링크에선 87년과 07년 각각의

인터뷰를 통해 보노디 에지가 어떤 술회를 고백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딴지 걸지 말자구..



*Los Angeles Times' interview with Bono, 1987

https://www.latimes.com/archives/la-xpm-1987-12-20-ca-30278-story.html


*ABC's interview with The Edge, 2007

https://abcnews.go.com/Nightline/Playlist/story?id=3440730&page=1




*아일랜드가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갖고 흑인 음악을

받아들여 50년대 이후 독창적 문화를 발전시킨 면은,

91년 앨런 파커 감독 영화 커미트먼츠 - 87년 출간된

동명의 로디 도일 소설 원작 - 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Try a Little Tenderness' from The Commitments OST, 1991)

https://www.youtube.com/watch?v=PKfHC5eY5CI

*Otis Redding이 커버한 66년 버젼이 유명하다. 원곡은 32년작.



('When Love Comes to Town' from Rattle and Hum, 1988)

https://www.youtube.com/watch?v=BpaAcIovUtk

*B.B. King과의 협연.
 - 앨범 전체가 아메리칸 루츠를 향한 음악 여행 컨셉이었다.





 얼터너티브의 새 기준, 90년대와 악퉁 베이비



('One' from Achtung Baby, 1991)


('The Fly' from Achtung Baby, 1991)



('Stay (Faraway, So Close!)' from Zooropa, 1993)



('Hold Me Thrill Me Kiss Me Kill Me'

from Batman Forever OST, 1995)

*PopMart Tour


('Discotheque' from Pop, 1997)




솔직히 전작에 대한 평가는 그닥 좋지 못했고 90년대가 되어

U2는 변화의 전기가 필요했다. 초창기 사운드로 돌아가자는

클레이튼뮬렌 vs 완전 새로운 것을 도입하자는 보노

에지. 이런 갈등 구도가 오히려 명곡을 탄생시켰는데 Achtung

BabyOne이 바로 그 곡. 아이러니이다.



91년 7집 Achtung Baby는 변화에 대한 욕구와 와신상담

끝에 나온 역작이다. 결국 보노디 에지의 창작 성향이 밴드

내에서 주도권을 얻는 모양새로 가게 된 바, U2는 당시 움트기

시작한 얼터너티브모던 락의 문법을 받아들이고 일렉트로닉

인더스트리얼의 새로운 조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모던

태동의 80년대 단초를 제공한 이들이 거꾸로 그 거센 흐름을

다시 자기들 것으로 융합한 셈..



The Fly 이런 새 경향을 대표하는 트랙. Mysterious Ways

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이 들려준 참신한

모드 역시 90년대다운 사운드의 산물이었다. 어딘가 변화의

전기를 마련한 본작의 혁신적 성향은 평단과 대중의 즉각적인

찬사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93년 8집 Zooropa 및 97년 9집 Pop 역시 Achtung Baby

출산의 연장선상에 있음이 뚜렷했다. 하지만 워낙 변화의 물결이

거셌던 세기말의 90년대인지라 두 장 앨범의 끝물쯤 와서는

일부 팬덤이 피로감을 호소하는 역효과를 감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포스트 펑크 액트가 아님을 여실히

증명한 90년대식 U2 음악을 확인할 필요는 있다. Zooropa에서

Stay (Faraway, So Close!), Lemon, Numb 등을, Pop에서

Discotheque, Staring at the Sun 정도는 체크할 만하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를 넘어서며 U2는 바야흐로

음악 산업을 통틀어 역대급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거물 중의

거물로 몸집이 커지고 있었다.



('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 from Achtung Baby, 1991)

https://www.youtube.com/watch?v=Y4AX2CGYl7Q

*The Fly보다 이 곡을 우위에 두는 팬도 많다.



('Mysterious Ways' from Achtung Baby, 1991)


('Lemon' from Zooropa, 1993)

https://www.youtube.com/watch?v=9YoAQ50BK74



('Numb' from Zooropa, 1993)

https://www.youtube.com/watch?v=sfYcqzQ2PaQ

*단조로운 톤의 만트라 랩을 시전하시는 분은 The Edge.



('Staring at the Sun' from Pop, 1997)

https://www.youtube.com/watch?v=q4Gr8Lf2Bzo



('Sweetest Thing' from The Best of 1980-1990, 1998)

https://www.youtube.com/watch?v=ikUpmvPjN0I






 월드 투어와 스타디움... 더 후를 꿈꾸며




*Pride (in the Name of Love) from Zoo TV Tour



*One from PopMart Tour



*Stay (Faraway, So Close!) from Elevation Tour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from Vertigo Tour



*With or Without You from U2 360° Tour




U2 멤버들이 유년 시절부터 받은 영향을 따져 본다면

더 후와의 상당한 유사점이 발견됨을 알 수 있다. 같은

편성의 밴드를 운영하고 있고 기타리스트의 캐릭터가

중요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이미지의 리드 보컬, 각각의

독자적 노선을 추구하는 리듬 섹션 두 멤버의 위치 등

측면에서 꽤나 비슷하다.



무엇보다 아레나 또는 스타디움 환경에서 대규모의 군중을

휘어잡는 음악적 폭발력이 스튜디오 앨범과 또 다른 형질의

매력을 형성한다는 측면에서, U2를 가리켜 80~90년대의

더 후라고 새롭게 규정할 수 있을 터이다. (앨범으로 듣는

음악과 현장에서의 사운드, 둘 사이에 서로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대표적인 두 밴드일 게다.)



Joshua Tree의 대성공 이후 자신들의 위상과 외부적인 음악

산업 지형의 변화를 체감하면서, 투어 현장의 분위기가 왠지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느낌을 네 분이 공통으로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Achtung Baby 지원을 위한 92~93년 Zoo TV

Tour부터 U2는 공연 문화의 일대 혁명을 시도한다.



이전까지 이들 투어의 무대는 일반적인 아레나 패턴을

좇는 간소함 뿐이었는데, 투어 컨셉트 디자인을 전담하는

전문가를 선임하고 대규모 조명과 세트 디자인, 대형 스크린,

뉴 미디어를 과감하게 투자하여 스타일리쉬한 비디오형

투어 - 오늘날 U2 공연 하면 떠오르는 예의 이미지 - 를,

Zoo TV를 전환점으로 하여 구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Zoo TV가 그래서 이들 음악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건

것이며 Zoo TV 이후 U2의 공연 실적이 음악 산업 전체의

역사를 다시 쓰기 시작해 오늘날 U2 하면 떠오르는 투어

황제로서의 위상을 제고하는데 시발점이 된 것이다.

- 즉 세계 공연 수익을 싹쓸이해 갔다는 말이다...

이에 견줄 만한 상대론 솔직히 스톤즈엔 없다..



*U2 월드 투어 연혁 - 공연 회수 및 매출:

 - Zoo TV Tour (1992~93; 157회, 1.5억불)

 - PopMart Tour (1997~98; 93회, 1.7억불)

 - Elevation Tour (2001; 113회, 1.4억불)

 - Vertigo Tour (2005~06; 131회, 3.8억불)

 - U2 360° Tour (2009~11; 110회, 7.3억불)

 - Innocence + Experience Tour (2015; 76회, 1.5억불)

 - The Joshua Tree Tour '17 (2017; 51회, 3.1억불)

 - Experience + Innocence Tour (2018; 60회, 1.2억불)

 - The Joshua Tree Tour '19 (2019; 14회 예정)




('Pinball Wizard' by The Who, 1969)

https://www.youtube.com/watch?v=-J03yCE15rg



('Won't Get Fooled Again' by The Who, 1971)

https://www.youtube.com/watch?v=x1_69AAX-OY



*Beautiful Day from Glastonbury Festival '11



*Vertigo from Innocence + Experience Tour






 기본으로 돌아오다 - 2000년대 이후




('Beautiful Day' from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2000)



('Walk On' from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2000)

*아웅산 수찌에 관한 가사지만 미국에선 9.11에 대한 위로의 뜻을 담기도.



('Vertigo' from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 2004)



('Sometimes You Can't Make It on Your Own from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 2004)

*가사의 주제는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감정.




90년대 후반의 앨범들 반응을 읽고 있던 멤버들이 또 한 번

태세를 전환하여 음악적 방향을 바꾼 역작을 내놓기에 이른다.

2000년 10집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및 04년

11집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이 그것. U2

음악적 생명력이야말로 실로 마르지 않는 샘물 아니겠는가.



이른바 back-to-basic, 기본으로 돌아온 본연의 정신이라

세간의 평단이 일제히 환영과 찬사를 보낸 바, 포스트 펑크

얼터너티브의 다양한 실험을 거쳐 마치 그 옛날 전성기 시절

더 후의 영광을 재현하듯이 콘서트형 정통 하드락의 계보를

충실히 잇는 히트 트랙을 줄줄이 내놓는다.



ATYCLB에서 Beautiful Day, HtDaAB에서 Vertigo

이 시기를 대표하는 금세기의 걸작 히트곡. 디스토션 걸린

디 에지의 기타가 불을 뿜어 쿨함이 작렬하는 넘버들이다.

그 해 그래미 즉각 화답한 Walk On이나 Sometimes

You Can't Make It on Your Own 역시 빼놓을 수 없고.



연이어 09~11년의 U2 360° Tour는 역사상 최고의 매출을

기록한 공연 투어로 수위를 다투는 대기록을 세우며 이들의

이름을 다시 드높인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해 환산하면 무려

미화 8억 2천만 달러.. 한화 9천억 원의 돈방석에 오르셨다.

실질적으로 역대 매출 최정상이라지... 1위라고.



이후 현재까지 09년 12집 No Line on the Horizon, 14년

13집 Songs of Innocence, 17년 14집 Songs of Experience

등 정규 앨범을 통해 여전히 정상의 자리에서 노래하U2...!

이들이 앞으로 걸어나갈 한 걸음 한 걸음이 곧바로 음악사의

새로운 장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 모두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대중 음악계의 전설을 목격하고 있는 셈인 게지...




('Stuck in a Moment You Can't Get Out Of' from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2000)

https://www.youtube.com/watch?v=1sn3bJ5Ya-A



('Elevation' from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2000)

https://www.youtube.com/watch?v=xbyjeHKSn-E



('Electrical Storm' from The Best of 1990-2000, 2002)

https://www.youtube.com/watch?v=anhRKfOkBSY



('City of Blinding Lights' from

How to Dismantle and Atomic Bomb, 2004)

https://www.youtube.com/watch?v=Fg4MfA3BCyI



('Get On Your Boots' from No Line on the Horizon, 2009)

https://www.youtube.com/watch?v=JcDNilZbZg8

*쿨한 90년대 분위기로 잠시 복귀한 듯..






 그래미가 사랑한 그들, 사회 활동가로서




('Theme from Mission: Impossible by

Adam Clayton and Larry Mullen Jr., 1996)




76년 결성 후 그 상업적인 성과 만큼 U2에 관한 예술적 평가

역시 당대에나 후대에나 찬사 일색이다. 특히 그래미 어워드

이들을 후하게 아낀다고 널리 알려져 있고 19년 현재까지 46회

후보 지명되어 이 중 무려 22회의 수상 기록을 남겼다.



최초의 후보 지명이 Joshua Tree 앨범부터인데 지명된 첫

해 88년에 실질적 대상인 올해의 앨범 상을 안기 전무후무한

결과를 기록하는 등, 그래미의 편애는 일찍부터 시작하였다.



Achtung Baby 시기엔 올해의 앨범 후보 지명으로 그쳤다가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때는 Beautiful Day

01년 올해의 레코드올해의 노래 두 개 트로피를 안겼고,

거기에 같은 앨범에서 2년 연속으로 이듬해 Walk On

올해의 레코드 트로피를 선사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06년 시상식에서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

올해의 앨범 상을, 여기 수록된 Sometimes You Can't Make

It on Your Own올해의 노래 상을 시상함으로써 명실공히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에 또 하나의 명예를 추가해줬다.



이들이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추천 자격이 주어지는 첫 해 2005년에 단번에 헌액을 받아

U2가 괜히 U2가 아니구나 하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헌액식에서 서훈 수여자는 바로 브루스 스프링스틴..



(Rock and Roll Hall of Fame, official archive)

https://www.rockhall.com/inductees/u2


(U2 fans' web archive)

https://www.atu2.com/events/05/rockhall/




2010년에 롤링 스톤 매거진시대를 초월한 100대 아티스트

랭킹을 발표했던 바, 여기서 U2브루스 스프링스틴프린스,

마이클 잭슨, 마돈나 등 동시대에 호각을 다투고 자웅을 겨루던

선후배 음악가들을 제치고 비틀즈, 밥 딜런, 롤링 스톤즈스티비

원더 등 선각자들의 뒤를 이어 당당히 22위로 평가를 받았다.

- 강조하지만, 이거 엄청 높은 거다...



(Rolling Stone '10, 100 Greatest Artist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artists-147446/u2-10-92368/




돈 많이 버는 졸부로서의 의무감이 아니라 진정성을 가지고

사회와 세상에 메세지를 전달하는 성숙한 성인으로서, U2

언제나 범진보적인 사회 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해왔다.

80년대 Band AidLive Aid 참가쯤이야 너무 유명하니

생략해도 될 것 같고 국제 앰네스티, 그린피스, 월드비전,

주빌리 2000 이 주관하는 행사와 공연에 협력해왔다.



86년엔 앰네스티 주관의 A Conspiracy of Hope 공연에

올랐고 보스니아 내전 중 행사 경험을 바탕으로 95년에

파바로티와 친구들 프로젝트를 통해 Miss Sarajevo

노래를 발표했다. 이듬해 굿 프라이데이 협약을 앞두고

벨파스트 무대에 올라 노래했고 지우마 호세프, 아웅산 수찌,

넬슨 만델라 등 세계 지도자들과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어왔다.



보노 개인적으로는 80년대 니카라과 및 엘살바도르 내전

종식을 위한 평화 활동에 참여한다거나 아프리카 및 제3

세계 국가 채무 청산을 위해 무하마드 알리밥 겔도프

연대 모금 활동에 분주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03년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07년에 영국

여왕의 명예 훈장을 받은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이밖에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보노 및 멤버들의 사회

운동 이력은 차고 넘치며 하나같이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진짜배기 활동 내용이다. 매년 발표되는 노벨 평화상 후보자

명단에 보노U2가 괜히 단골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다.



('Mothers of the Disappeared' from The Joshua Tree, 1987)

https://www.youtube.com/watch?v=kjuIAuSzGbc

*엘살바도르 내전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을 위한 노래.

**Brian Eno의 드럼 루프 이펙트가 매우 독특하다.



('Miss Sarajevo' by U2 and Brian Eno, 1995)

https://www.youtube.com/watch?v=PVl2lluR_Tw

*보스니아 내전의 참상을 알린 곡. ft. Luciano Pavarotti.



('The Hands That Built America' from Gangs of New York OST, 2002)

https://www.youtube.com/watch?v=uUzixzRufbk

*마틴 스콜세지 영화 갱스 오브 뉴욕에 수록된 곡.



('Ordinary Love' by U2, 2013)

https://www.youtube.com/watch?v=XC3ahd6Di3M

*넬슨 만델라 추모 영화의 OST로 발매된 싱글.






 U2/ 헤어 메탈과 글램이 아닌 것들의 여집합










U2가 데뷔한 80년대로 시계를 돌려볼까? 의외로 백인 비주류
아일랜드계 락밴드가 구사할 수 있는 음악의 종류가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세상에선 단 세 종류의 음악을 할 따름이었다.
헤어 메탈이거나 뉴웨이브 댄스팝이거나 이도 저도 아닌 포스트
펑크의 제3지대로 헤쳐모여 하거나. (아님 블루 아이드 소울..ㅋ)


MTV 극상업주의와 레이거노믹스 우경화의 거친 파도 아래서
헤비메탈을 하기 싫은 비주류 코카서스 락커의 선택지는 왠
모를 오합지졸 모드에 사회의 찌끄레기 집하장 같은 짠함을
마구 풍기고 있었다. 블론디처럼 용감하게 주류로 돌진하다
참렬하게 부서진 세력, 소닉 유스처럼 여전히 외골수로 CBGB
실험에 몰두하며 내일만 바라보는 세력, R.E.M.처럼 캠퍼스를
순회하며 쟁글쟁글거리는 포크의 얼을 즐기는 세력... 등등..


그리고 글램이나 디스토션이나 슈레딩이나 샤우팅이나 태핑
아닌, 의 찌꺼기를 바닥까지 긁어 제3지대로 융합한 그 지점
거적때기를 걸치고 MTV 시대 화신으로 우뚝 선 존재... 그것이
바로 U2였다. 화끈한 시대 아닌가. 많은 사람이 91년에 생겼
알고 있던 얼터너티브의 원형질을, 실은 U2가 대서양 건너편
절대 음악의 그늘에서 조용히 빚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말인즉슨 90년대 의 단초는 처음부터 U2였고 그런 그들이
Achtung 이후 다시 시대와의 소통을 통해 의 미래 비전을
제시한 셈이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어 80년대부터 이 세상의
음악은 U2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고 표현하면, 너무
용비어천가일까. (근그래미 상 주는 사람들은 정말 일케
생각하는 모양인데...? ㅎㅎ)


60~61년생 동급생 넷으로 시작한 스쿨 밴드. 둘은 아일랜드
토박이, 둘은 태어나긴 잉글랜드에서 났다. 대학 갈 엄두도 못
냈고 적당하게 음악으로 먹고 살며 그럭저럭 매니저도 생겨
어찌어찌 음악 만드는 법도 배워가고 있었다. 음악을 가르쳐줄
좋은 선배들이 있었고 세상을 여행하며 더 큰 삶에 눈을 떠
음악에 자신을 투영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보노란 예명을 지은 폴 데이비드 휴슨은 오페라처럼 다양한
표현력을 정열적인 창법에 실을 줄 아는 철학가 시인이었고,
보노에게 디 에지란 예명을 선물받은 데이비드 하웰 에반스
슈레드나 태핑 가득한 솔로잉보다 이펙트신디사이징
주조하여 모드를 창출하는데 관심이 더 큰 별종이었다. 다소
허세끼도 있던 애덤 클레이튼은 기타가 채우지 않은 구석만
찾아 다니며 사운드를 메꾸는데 탁월한 친구였고, 어려서
군악대 북치기로 출발한 래리 뮬렌 주니어, 로렌스는 생소함
가득한 킥 드럼과 탐탐의 컴비네이션에서 생경한 텍스처를
만들 줄 알았다.


77~79년 무렵 질풍노도의 끝물을 겪으며 이 꿈많고 겁없는
촌놈 젊은이 넷이 앞으로 세상의 음악을 짊어지고 갈 운명임을
짐작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었을까. 새로운 세기를 벌써
20년 가까이 보낸 지금, 세상은 U2 네 사람의 것이 되었다.











본 블로거가 가장 좋아하는 U2의 음악은 역시 Joshua Tree
수록 트랙이다. 한동안 셋리스트의 오프닝 곡으로 각광받던
가장 대중적인 넘버,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스튜디오 버젼도 물론 좋지만 87년 공개 당시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던 뮤직 비디오엔 환장할 수밖에 없다. 거의 현장 사고
수준 환경에서 제작할 밖에 도리 없던 당시 아카이브에서 풍긴,
긴장감과 열정이 묘하게 섞여 충돌하던 분위기.. 작살이다..


수상 내역이 중요하겠냐만은 그래미 어워드 뮤직 비디오 부문서
이들에게 생애 최초의 트로피를 안긴 작품이고 당시 최첨단에
최고의 제작 스탭이 달려들어 제작한 영상물이다. 로스 앤젤레스
한복판 후줄근한 골목 상점 옥상을 빌려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고단한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삶의 무게를 잊게 해주고 싶단
작은 생각이, 이런 종군 르포물 같은 결과로 나왔단다.


아니나 다를까, 현장 통제와 치안 유지를 위해 날카롭게 날이 선
경찰 및 공무원 관계자의 리액션이나, 3만 명이 넘게 모였다는
저 많은 사람들... 모두 동원한 엑스트라가 아니라 실제 거리의
실제 상황, 실제 군중이다. 레알이라고. 이렇게 전쟁같은 뮤비를
찍을 수 있는 음악가가 과연 지금 시대에 몇이나 나올 수 있을까?


사는 곳으로 사람의 계급이 나뉘고 자기 소개가 대신 되어 버리는
세태를 날카롭게 꼬집고 싶다는 가사.. 도곡동 팰리스 살아요~~
이딴 소리가 안 나오는 세상을 꿈꾼, U2만이 할 수 있는 그 시절
그 세상의 이상주의인 것이다. 강추하며 이번 포스팅을 마친다.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from The Joshua Tree, 1987)

*official music video

**네 분 모두 참 젊고 멋지며 섹시한... good-old day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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