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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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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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8.09.01
    통일은 대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 추정액 9천 조




Major Incidents from European History over

International Relations Realm




국제 관계학의 역사에서 시대별 맥락을 짚을 때 반드시

검토하고 분석하는 몇 가지 역사적 사건이 있어요.


그 역사와 시기를 보면 15세기에서 20세기까지 백여 년

언저리의 간격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여 매우 흥미롭죠.


오늘은 이런 국제적 사건과 국가간 조약

역사를 요약하여 정리해 볼까요.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Fall of Constantinople 



1453년이 중세를 끝장 낸 연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해 서양 중세사 최고의 사건인즉슨.. 비잔틴 제국, 즉

(동)로마 제국이 오스만 제국의 공격으로 멸망한 일일테죠.

무려 2200년을 이어온 제국이 멸망한 사건이니까요.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 통치의 절정을 찍고 6백 년 넘게

존속한데다 폐쇄적 기독교 문화 속에 골골하던 유럽을

아득히 초월했던 14~17세기 세계의 패권국이자

동시대 유럽 군주들 공공의 적이었습니다.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의 나비 효과로 지중해 동쪽 항로가

막혀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대서양 일주 항로를 개척했으니

역사의 거대한 새옹지마이자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죠.

(동양의 신비… 후추를 어디서 수입하냐고?!)


이베리아 반도의 대항해 시대, 피렌체 등 도시 국가들의

르네상스 인문 혁명, 거기에 북독일의 종교 개혁이 바야흐로

적정 혼배합하여 유럽의 근대를 열어 젖히는 찰나였어요.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 Peace of Augsburg 



1517년에 95개조 반박문으로 촉발된 종교 개혁

일단락된 사건이자 루터교를 공인하여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신교를 인정한 계기의 바로 그 사건입니다.


16세기 중반 합스부르크 황제 카를 5세에 맞서 전쟁하던

신교 영방국들이 페르디난트 1세와의 극적인 합의를 통해

루터교 종파를 공인한 군주간 합의 사건이라 볼 수 있어요.

(페르디난트는 카를의 동생이자 독일 대리 통치자..)


페르디난트는 당시 선제후와 농민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져간 교세를 꺾기보다 상호 협력하여 자치를 인정하는

개혁 성향으로 독일권 제후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사람..


화의 내용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개별 제후의 종교 통치권을

황제나 교황과 분리하여 최초로 인정했다는 바로 그 점입니다.

해당 영지의 종교를 제후가 택한 종파로 정한다는 내용이죠.


허나 루터교는 인정 받았는데 당시 더 진보적 성향이던 칼뱅

장로교 제후국들이 제외된 문제가 여전히 잔존한 상황이었죠.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Peace of Westphalia 



상호 경쟁하던 국가의 군주들이 독일 뮌스터와

오스나브뤼크에 모여 30년 전쟁의 종식을 선언한

바로 그 조약입니다. 오늘날 국제법의 효시라 하죠.

(요샌 웨스트팔리아로 부르기 시작하기도..)


1618년에 시작한 종교 전쟁 후반부 중요한 변곡점이자

네덜란드 독립 전쟁과도 맞물린 17세기 최대의 사건이

바로 30년 전쟁입니다. 근대 최초의 국제전이라고 하죠.


루터와 칼뱅에서 시작한 투쟁이 130년 만에 여기까지 이른

겁니다만, 프로테스탄트 전쟁을 단순한 종교 문제로 보면

부족하고 교황과 황제 중심 거대한 국정 체계 패러다임이

새로운 시대로 전환하는 용트림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신교 투쟁의 결과물이 결국 개별 제후가 다스리는 봉토의

자치 주권을 인정하는 내용인 것에서 알 수 있죠. 이제 황제의

통치를 받는 제후의 시대가 아니라 독자적 군주가 된 겁니다.


주권, sovereignty의 개념이 본격화하고 이로 인해 절대

왕정 및 왕권 신수설이 대두되는 발판을 마련하지만 동시에

자유주의의 맹아가 싹트는 동인도 마련되기 시작하는 거죠.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 Peace of Utrecht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끝내고 체결한 조약입니다.

생소한 전쟁일텐데 유럽 왕가 간 세력 균형전으로 이해해요..


스페인과 오스트리아를 다스리던 ‘지는 해’ 합스부르크

프랑스를 다스리는 ‘뜨는 해’ 부르봉 왕가가 주인공인데요.

(부르봉 킹이 바로 ‘태양왕’ 루이 14세. 확장욕 쩌는 분..)


스페인 왕위 계승전에 루이 14세 손자인 앙주 공 필리프가

선순위로 떠오르는 상황을 오스트리아와 영국과 네덜란드가

막아서며 발발한 전쟁입니다. 부르봉이 스페인과 프랑스를

병합하면 견제 불가능한 거대 국가가 탄생하기 때문이죠.


의외로 (그때까지 약체로 분류되던) 영국의 견제가 제대로

먹혀 부르봉이 스페인을 계승하되 프랑스 왕위는 포기하는

조건으로 협상이 타결됩니다. — 루이 14세, 야욕 좌절…


유럽 영토에서 어느 한 나라가 잘 나가 바보짓을 벌이면

엇비슷한 국력의 나라들이 합심하여 다구리를 먹이는…

현재도 이어지는 불문률이 여기서부터 시작된 겁니다.

주권에 영토 개념을 넣는 법리도 형성되었고요.




1815년, 빈 회의 Congress of Vienna 



나폴레옹 전쟁을 끝내고 프랑스를 패자로 공인하며

이후 전 유럽에 불어닥칠 자유주의 바람에 제동을 걸고

왕정 복귀를 천명한, 보수 반동의 대명사격 사건입니다.

오스트리아 재상 메테르니히가 주재한 걸로 유명하죠.


프랑스 대혁명 후 집권한 나폴레옹은 황제로서(!) 유럽

각국에 전쟁을 벌였는데요. 역설적으로 유럽 전역에 퍼진

것은 혁명이 낳은 프랑스의 정신이었어요. 자유, 평등, 박애.


회의 대표자는 힘센 나라의 왕과 귀족이었죠.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그리고 프랑스. 자국에 혁명이 수입되면

꼼짝없이 목이 날아가는 분들.. 국경선과 전리품 배당을 놓고

혈안이 되어 똥고집을 부리며 진척이 더디던 중이었는데요.


보나파르트가 유배지를 탈출해 파리로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에

다들 화들짝 놀라 협정서에 조인을 했다고 해요. 쌩 코메디..

(메테르니히의 댄스 파티도 찾아 보세요. 배꼽을 잡을 듯..)


이른바 유럽 협조 체제, Concert of Europe이란 국가간

공조가 명문화하여 등장한 거에요. 핵심은 위 위트레흐트 때

다구리.. 와 대동소이하고 이 시스템이 40여 년을 유지했죠.


그러나 한번 불씨를 당긴 자유주의의 대세는 거스를 수 없어요.

30년 7월 혁명(‘레미제라블’ 배경), 32년 영국 선거법 대개혁,

1848 연쇄 혁명과 공산당 선언… 이미 불길은 타오른 거죠.




1919년, 베르사유 조약 Treaty of Versailles 



제1차 세계 대전을 종식하고 독일의 패배를 선언하며

막대한 배상금 조건으로 두번째 전쟁의 빌미를 제공한,

독일 제국과 연합군 승전국들 사이의 조약입니다.


빈 회의로 패전국 프랑스가 실질적으로 잃은 것이 없던 데 비해

베르사유 조약의 결과는 독일인들에게 참담한 치욕이었어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배상금으로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닥쳤고

바이마르 공화국은 몰락했으며 히틀러 집권의 계기가 되었죠.

일찍이 경제학자 케인스가 이 비극을 예견했다는 거 아시죠.

(이때 협상 대표단 중 일원이었다가 참다 못해 사퇴..)


특히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뻘짓은 어마어마했어요. 그의

하이라이트는 이렇다 할 강제력을 갖지 못한 국제 연맹 창설로

‘마치 무언가 해결된 듯한’ 국제 관계의 판타지를 조장한 점이죠.


장렬한 뻘짓의 대행진이 전간기 20년의 나날을 채워요.

바야흐로 한스 모겐소가 현실주의로 스타가 될 조건이 형성..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는 시대로 흘러가고 있었죠.


거기에 세상은 대공황의 광풍에 휩싸이고 있었고요.

이런 악조건에 어떻게 전쟁이 또 안 날 수 있겠어요.




1945년, 얄타 회담 Yalta Conference 



제2차 세계 대전을 끝내고 루스벨트와 스탈린과 처칠이

모여 깡패처럼 전후 국제 질서를 결정지은 그 회담입니다.

우리나라는 여기 놀아난 직접 피해 당사자국… 아시죠?


베르사유 조약이 종전 직후 전쟁 문제를 처리하는 성격인데

반해 얄타 회담은 종전이 임박한 시점에 전후 문제를 미리

조율하는 강대국 슈퍼 파워들의 미래 회의 같은 거였죠.


이 사건의 가장 큰 상징성은 팍스 브리태니카의 레짐이 이미

저물었다는 것, 그리고 미국의 대항마로 소련이 등장하여

냉전 시대의 시작을 알린 실질적 계기라는 점이에요.

(실제 미국은 소련의 태평양 전쟁 참전을 이끌어냄.)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한반도가 둘로 갈라져 지금까지도

폐해를 입어야 하는 원인을 만들었죠. 도대체 왜 때문에?!

패전국 일제가 아닌 우리가 분단되어야 하는 거죠?!


그렇게 냉전이 시작하여 1989년 동유럽 혁명까지 존속해요.

하지만 이 땅의 냉전 파편은 아직도 진행 중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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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Categories of the Political Science

What Do They Study Mostly Today?







정치학political science라고 하고요.

왜 사이언스가 붙냐면 현대 정치학 연구물이 숫자와

통계를 써대며 거의 계량화해 버렸기 때문이에요.



(미국의 정치학 연구 문화이죠. 미국은 정치도

주도하고 정치학도 주도하고 있답니다. 참 쉽죠?)



유럽은 아직도 politics라는 단어를 쓰기도 합니다.

특히 영국. 옥스브릿지나 LSE, UoL을 보면 알 수 있죠.



경제학을 미시와 거시, 계량으로…

법학을 민사, 형사, 공법, 소송으로 나눌 수 있듯이

정치학의 서브 장르, 하위 분과 학문을 나눠보면요.



학교의 전통에 따라 여러 관점이 혼재하여

살짝 머리 아프지만 본 블로거의 주관으로는..



정치 사상사, 정치 이론, 비교 정치, 공법, 행정,

정치 경제, 국제 정치의 일곱 분과가 맞다고 봅니다.

원래는요. 원래는, 오리지널리.



그러나 한국의 정외과 교육 풍토에서는 보통

공법행정정치경제는 과감하게 생략하는,

무겁도록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그도 그럴 것이 각각 법학과, 행정학과, 경제학과에서

열심히들 가르치고 있으니 정치외교학과가 저거 다 가르치면

딴 과는 뭐 먹고 사냐는 논리가 굳어온 때문인 듯해요.



그런데 근대 학문의 발전 역사를 주욱 살펴보면 나오지만

철학의 정치 사상이 굵은 줄거리를 형성하고 거기에서

우리가 아는 사회과학이 모두 갈라져 나왔지요.



철학에서 자유주의와 민주 정치의 연구가 터져 나왔고

중간에 경제학이 나왔는데 원래는 정치 경제, political

economy라는 서브 장르의 외양으로 등장한 거죠.



정치학이 독립 학문으로 인식된 시점은 대략 19세기

후반이고, 20세기 전반기에 행정학이, 20세기 중반에

정책학이 갈라져 나왔어요.



사실 오늘날 주류로 인식되는 사회과학이 죄다

철학과 정치학의 본류에서 새어나온 지류들인 셈이죠.



우리 식의 교육 풍토가 주류라고 볼 수는 없을 듯하고요.

미국의 정치학 전공자들은 앞에서 분류한 일곱 가지를

그래도 조금씩은 훑는다고 해요. 아예 생까진 않고.



미국 학제에서 politics라고 하면 미국식 민주주의와 헌법론,

정부 이론(즉 행정학), IR, 국제경제, 국제법을 다 조금씩

커버하는 편이죠. 한국식 정외과 커리큘럼과 차이가 있음..



우리는 또 정치’외교’학이라고, 외교를 강조하쟎아요.

근데 이건 솔직히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현상이에요.



외교학이란 것이 사실 별다르게 존재하는지 의문이죠. 저 위

일곱 가지 중 국제 정치학, 즉 국제 관계학 밑에 또 세부적인

여러 각론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외교 이론일 뿐이에요.



*미국 4년제 대학교 학부 수준에서 제공하는 커리큘럼 훑


(Harvard MA)

https://gov.harvard.edu/gov-courses


(Northridge CSU CA)

https://catalog.csun.edu/academics/pols/programs/ba-political-science-i/politics-and-government/


(Grambling State LA)

http://www.gram.edu/academics/majors/arts-and-sciences/poli-sci/curriculum/political%20science.php


(Hampton VA)

http://libarts.hamptonu.edu/page/Curriculum-7


(Jackson State MS)

http://www.jsums.edu/polisci/undergraduate-courses-offered/




정치 사상사는 철학사에서 정치 파트를 빼온 식이에요.

보통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공맹, 카우틸랴에서부터

고대 정치 사상을 풀어나가죠.



그리고 민주 정치 역사에서 많이 들어본 마키아벨리,

홉스, 루소, 몽테스키외, 밀, 마르크스의 이야기가…



현대에 정치학이 독립한 이후의 사상가로는 모겐소,

아렌트, 달, 사이먼, 롤스, 애로우, 키신저, 헌팅턴, 나이

등등이 등장하여 어려운 이야기를 풀어가는 거죠.



(이 중 로버트 달은 민주 정치의 이론화에 공이 크고

본 블로그 좌상단 작은 이미지로 등장한 할아버지가

바로 이분이랍니다. 좋아해서요.)



정치 이론 파트는 추상적 개념을 파고드는 난해한 분야고

보수, 자유, 사회 등 이데올로기와 권력론, 국가론 같은

현대 정치 현상의 구성 요소를 철학적으로 푸는 겁니다.



여기까지 분야는 오늘날 정치학에서도 종사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고 극소수 철학적 천재들만이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해요. 비주류란 말이죠.



현대 정치학의 주류 분야는 크게 비교 정치와 국제 관계,

이 둘로 나뉩니다. 대학원 이상의 정치학 전공자가 다들

뭐 연구해서 먹고 사냐 할 때 죄다 이 둘에 몰려 있지요.



비교 정치 파트에서 본격적인 민주 정치의 제도가 나와요.

대의제부터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등..

삼권 분립에서 입법, 행정, 사법의 역할.. 정당과 이익

단체, NGO, 커뮤니케이션 같은 사회 집단까지..



하지만 오늘날 비교 정치 연구 소재 중 정수는 바로 선거죠.

선거를 통해 권력이 창출되기도 하고 통계 분석을 도입하여

논문 뽑아내기 좋기 때문에 정말 많은 사람이 연구합니다.



요즘 핫한 선호 투표제, 비례 대표제, 연동형/권역별 등등

주제가 최근에 가장 빈번한 연구 사례들입니다. 정말

다양한 연구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요.



공법 연구의 핵심이자 출발점은 헌법입니다. 연구 대상이나

소재를 보면 법대의 헌법학과 사실상 큰 차이가 없어요.



하지만 (본 블로거 개인 감상인지는 몰라도) 법학 전공자가

쓴 헌법학 연구물과 정치학 전공자의 공법 연구물은 많이

달라요.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 논조, 어법 등등에서…



원래 헌법학을 먼저 공부하고 정치학으로 빠졌는데

법대생 세계에서 관용적으로 쓰는 공통 어구를 잘 쓰지

않아 정치학 이론서를 읽는데 고생했던 적이 있어요.



법학 전공자의 어법이 다소 딱딱하고 정형화되어 있다면

정치학 전공자는 꽤 리버럴한 철학적 사유의 방식으로

정치와 헌법의 소재를 풀어간다고 할까…



설명하긴 어렵지만 정외과에서 공법 연구를 배제해온

수십년 한국 풍토만의 특유한 문화가 아닐까 합니다.



행정 이론은 행정학과에서 배우는 그대로입니다.

개론, 조직, 인사, 재무 등을 거쳐 정책학까지 연결되는

구조를 가지죠. 일부 각론은 경영학과 많이 겹칩니다.



인사 행정은 그대로 경영학의 인사 관리와 유사합니다.

공공의 경영이 행정이고 사기업 행정이 경영이니까요.



정책학이란 분야가 따로 떨어져 나왔으니 행정학에서

다소 이질적인 분야처럼 보이기도 해요. 어떤 정책의 성과를

과학적으로 측정하자고 달려드는 실증 중심 분야랍니다.



경제학이 원래 18세기 정치 경제학에서 출발했다고 했죠.

그래서 지금도 정치학과 경제학은 겹치는 영역이 꽤 크고

때로 오버랩되어 콜라보하는 연구를 많이 합니다.



경제학에서 산업 조직론게임 이론을 공부하던 분들은

모든 이론이 정치학 교과서 속에서 동어 반복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거에요.



국내에 개론서로 나온 책 중에 ‘세계 정치론’을 읽어 보시면

특히 경제학 이론이 정치학자의 변주를 거쳐 해석된 글을

경험하실 수 있어요. 로체스터 학파의 특징이라네요.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교수 원저의 세계 정치론)



선거나 투표, 정책 결정 과정에서 행위자 간의 머리 싸움을

어떻게 과학적인 방법으로 실증할 수 있을 것인가…

주로 이런 연구라고 보시면 됩니다.



국제 정치학, 즉 국제 관계학, 곧 IR은 정치학의 하위

분과이기도 하면서 약간은 독립 학문처럼 분화하고

있기도 해요. 국제학이란 학제 분야로 발전한다고도 하죠.



국제 외교와 파워 게임, 교류 관계 형성 같은 것들이

주요 연구 소재입니다. 해외 토픽 시사 뉴스 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국제 관계학의 서브 장르로 공부해야 할 필수 각론을

역사, 사상, 한반도, 강대국, 외교, UN, EU, 안보, 국제법,

국제경제, 민족, 인권, 젠더, 환경, 종교/테러의 열 다섯

분야 정도라고 보면 대략 틀리지 않을 거에요.



앞에 얘기했듯이 오늘날 정치학 연구를 둘로 나눠

반은 비교 정치의 선거, 나머지 반은 IR의 지역학..

양적으로 대략 이렇게 보면 거의 맞습니다.



오늘날 정치학의 트렌드라고 보시면 되겠고요.

여기에 한국의 특성을 고려하여 통일 이론이나

한국형 IR이 독자적으로 연구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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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bostonglobe.com/arts/music/2017/09/14/recalling-isang-yun-his-centenary/G2oZZHumeCdH0BSyA5mUZM/story.html




정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 사람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네요.

한국의 작곡가였던 윤이상입니다. 20여 년 전 돌아가셨죠.

해외에선 Isang Yun이란 이름으로 더 유명합니다.


1917년 9월 17일에 경상도에서 태어났고

1995년 11월 3일에 베를린에서 돌아가셨어요.


1967년에는 악명 높은 동베를린 간첩단 조작 사건

연루되어 중앙 정보부 요원들이 독일에서 강제 압송했고

고문과 허위 자백에 못 이겨 간첩 혐의로 투옥되었습니다.


(닉슨 데탕트 직전 냉전이 극에 달하던 박정희 정권 무렵인지라

당시 재판은 거의 반인권적 군사 법정에 가까왔다능…ㅜ)


유럽에서 유명했던 분인지라 음악계에서 완전 들고 일어났죠.

프란시스 트라비스라는 음악가를 중심으로 유럽을 순회하며

엄청난 음악가들이 공식 항의 연명부에 서명했어요.


얼마나 쟁쟁한 음악가들이냐고요? 이름 대볼까요?

-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 작곡가 루이지 달라피콜라

- 작곡가 한스 베르너 헨체

- 작곡가 겸 오보에 연주자 하인츠 홀리거

- 작곡가 마우리치오 카겔

- 지휘자 오토 클렘퍼러

-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

- 작곡가 페르 뇌고르

- 작곡가 칼하인츠 슈톡하우젠

- 작곡가 베른트 침머만

… 등등 포함 2백 명 정도였다네요. 상상이 가시죠?


당시 북한보다 경제력도 약간 뒤쳐지던 후진국인지라

박정희 정권이 앗뜨거라 싶어 69년에 국적 박탈 조건으로

석방했다고 해요. 이후엔 서독 국적으로 겨우 살아가요.


그리고 고국 땅을 한 번도 못 밟았죠. 노태우 정권

한 번 기회가 있었는데 정권이 ‘들어와서 정치 발언 하지

말라’는 생떼 조건을 들이미니 안 간다고 거절했다죠.


그래서 작년은 이 사람이 태어난 100주년이었어요.

보스턴에서도 소소한 기념 행사가 있었던 모양인데

보스턴 글로브에서 업적을 조명하는 기사를 냈네요.


작년 9월 기사입니다. 한 번은 짚고 가시란 뜻에서…

저작권 문제시 자진 삭제합니다.






A border-crossing Korean-born composer

경계선 위의 한국 출신 작곡가


매튜 게리에리 특파원


2017년 9월 15일


지난해 2017년 9월 17일 일요일은 윤이상(1917-95)의 탄생 100주년 기념일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난 이 작곡가는 종전 후 무조 음악에 기초한 포스트 모더니즘을 동양적 철학과 음악적 어법을 통해 재조명하면서 1950년대와 60년대에 명성을 얻은 바 있다. 그는 1967년 아내와 함께 박정희 정권의 정보 요원들에 납치 당해 유럽에서 한국으로 (2백 명 가까이 되는 다른 해외 거주자와 함께) 송환된 후 조작 냄새가 물씬 풍기던 간첩 혐의로 재판에 서야 했다. 그의 투옥 사태에 전 세계 음악가들(및 정치 활동가들)이 거세게 들고 일어나 조직적 국제 시위로 맞섰고 결국 2년 후 석방이란 결과를 얻었다. 작곡가 자신의 회고에 따르면 이런 가혹한 경험이 그로 하여금 남북 분단의 상황을 “한층 더 구조적인 음악 미학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작품 속에선 변용과 화해의 주제를 지속적으로 발견할 수 있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에 유년 시절을 보낸 윤이상의 첫 작품은 동네 무성 영화 극장의 배경 음악이었다. 이후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식 음악 수업을 받기 위해 오사카와 도쿄로 건너갔다. 당시에 태평양 전쟁이 한창인지라 항일 단체에 들어가 투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억류와 투옥을 경험하고 난 후 윤이상은 쫓기듯이 서울로 넘어왔다.


한국 전쟁 후에는 독일로 건너가 아방가르드 풍의 미묘한 불협화음 작풍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기회를 얻었다. 색채감과 장식 기교를 분명한 박자에 실어 개별 주요음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한국 및 아시아 음악의 전통적 어법에 영감을 받았던 바,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데 있어 한껏 늘여 연주하는 음의 연속성이나 난해한 기악적 기교, 화려한 피치의 풍부한 표현력 등의 요소를 주변 음향 환경에 녹이는 식의 작법을 채택한 것이다.


동베를린 간첩단 조작 사건을 기점으로 남한에서는 윤이상의 작품 연주가 금지되었으나, 북한 지도자 김일성은 손수 그를 직접 초청하여 그의 이름을 딴 음악 연구소를 세울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반면 한국에서의 과거사 복원 작업은 더디기만 해서 정권의 민주화가 진행된 후였음에도 한국 방문을 위해선 어떤 정치적 진술도 해선 안 된다는 모욕적 요구를 받고 결국 귀향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윤이상은 휴전선 양쪽에서 동시에 인정받은 희귀한 존재였다. 그는 스스로 쌓은 명성을 1980년대와 90년대의 한반도 통일 기원 기념 음악회를 조직하는데 슬기롭게 이용했고 남북한 양쪽에서 음악가들을 동원하기도 했다.


사실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는 미국 내 분위기가 다소 잠잠하기는 하다. (보스턴 한인 문예협회가 주최한 지난 9월 30일 리버스 스쿨 음악회가 지역의 유일한 행사였을 정도이다.) 음악회에서 그의 작품을 접하게 될 때 일반적인 반응은 사뭇 엇갈린다. 작품이 들려주는 압도적인 표현주의적 에너지에도 불구하고, 윤이상의 음악에서는 서양 음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윤이상 개인이 가진 도교적 성향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어, 어떤 기승전결을 창조하기보다 절제와 변화의 엔진을 통해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더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결점이나 대단원을 의도적으로 제거하는 작법을 통해 어떤 청중은 극심한 절망감을 찾아내기도 한다. (1980년대 이후 발표된 윤이상의 다섯 교향곡이 바로 이런 해석에 절묘하게 들어맞는 듯하다.)


윤이상은 소재가 명료한 표제적 음악도 썼으나 — 한국 현대사 속 민주화 항쟁의 처절한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가 대표곡 — 생전에 때로 자신은 정치와 무관하다고 항변한 바도 있다. 윤이상에게 휴전선이나 이데올로기는 어떤 지도 원리가 아니라 방해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보편적 인류애만이 그의 지속적 관심사였으며 한민족의 통합 — 어쩌면 전 지구인의 통합까지도 — 이 그의 창작 목표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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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P, the New Economic Policy

During Early Years of Lenin-Soviet Regime





소련 얘기에요. 없어진 국체의 나라이죠.

물론 정통성은 러시아 연방국이 잇습니다.

차르 푸틴두마의 나라…


1917년에 10월 혁명으로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집니다.

무능과 비효율과 선민 의식에 쩔던 러시아 제국이 사라지죠.


블라디미르 레닌(과 레프 트로츠키이오시프 스탈린)은

혁명 직후 국가의 기반 시설을 점령했지만 이에 반발한

왕조 추종 세력과 귀족 집단이 전쟁으로 대항합니다.


1921년까지 러시아 땅을 휩쓴 적백 내전의 광풍이 바야흐로

불어제끼기 시작한 거죠. (요즘은 러시아 내전으로 부른다죠.)


볼셰비키 적군에게 초기 전세는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나

지휘 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던 귀족 반동파 백군을

몰아붙여 전세를 뒤집어갑니다.


이기는 전쟁의 기본은 뭘까요. 딱 두 가지.

잘 훈련된 전투력, 그리고 군수 물자의 보급입니다.


레닌의 고민이 군량 조달에 있었기에 내전 초창기부터

할당량 징발을 근간으로 하는 정책으로 농민을 밀어붙여요.


그러나 계속된 전쟁과 징발식 경제 운용으로

나라의 총생산이 눈에 띄게 떨어집니다.

태세를 전환할 때가 되었구나, 결심하죠.


1921년쯤 되면 전황이 정리되는 단계였죠.

레닌이 오늘날 NEP라고 널리 불리는 유명한

신경제 정책 카드를 가지고 나옵니다.




사회주의 국가 경영의 기본 강령은 완전 국유화입니다.

사유 재산시장 기능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것이죠.

정부계획한 정책을 통해서만 자원을 분배합니다.


그런데 이 핵심을 건드리지 않고 경제가 도저히

살아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은 거에요.


그래서 기존 이데올로기를 수정한 뉴 버젼을 주창합니다.

국가 자본주의’라는 신제품이었죠. 사회주의 정부가 잘

통제할 수만 있다면 시장 일부를 도입해도 된다는 거에요.


극좌적 사상에 경도된 사회주의자들의 반발도 컸습니다.

그들 중 우두머리가 트로츠키였죠. 트로츠키와의 균열은

이 지점부터 조짐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거에요.


내부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레닌은 마르크스 자본론

기본 논리로 돌아간다는 방어 논리를 구축하는 방법으로

국가 자본주의의 정통성을 옹호하고 나섰어요.


무슨 말이냐면 원래 자본론이란 것이 자본주의를 무정부

상태처럼 부인하는 것은 아니에요. 자본주의가 극에 달하다가

어느 순간에 무너져 공산주의 세상이 된다는 판타지이죠.


그러니까 체제 과도기에는 어느 정도 자본주의 성향을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시장 기능을 일부 용인하고 있지만

나중에 결국 완전한 사회주의로 갈 거니까 걱정 없단 말에요..


어째 논리에 오류가 가득한 게 현대인들의 눈에 어쩔 수 없이

보이지만 논리의 과학성보다 권력 관계의 현실이 실제 정치에선

더 중요하쟎아요. 레닌이 권력자였으니 누가 뭐라 했겠어요.




그래서 21년부터 28년까지 신경제 정책으로 NEP의 시대가

도래한 겁니다. 당시 소련 경제의 주축 세력은 농민이에요.


할당량에 따라 무조건 징발 당하던 농민들이 이제 일정하게

고시한 비율에 따라 현물세금납부하는 때가 된 거죠.


왜 현물 납부였냐 하면 이때 제국 멸망과 전쟁으로 엄청난

초초초 인플레를 겪고 있었거든요. 화폐 가치가 휴지 조각이니

돈으로 세금을 낼 수 없었죠. (24년부턴 현금 납부 시작합니다.)


정책의 성과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죠.


첫째, 1차 대전과 적백 내전 등 전쟁의 상흔을 딛고

빠른 시간 안에 국가 체제를 회복할 수 있었어요.


둘째, GDP 상승에 즉효를 보여 농민의 삶이 안정되었어요.

NEP-men이라고 이때 부유해진 사회 계층을 가리키는

용어가 따로 존재할 정도이니 상상이 가죠.


셋째, 통화 가치가 안정화하여 하이퍼 인플레이션

극복하고 정상적인 금융 경제로 복귀하였어요.




28년까지 정책이 시행되다 끝났는데 실제로는 1924년쯤에

이미 정책 효과가 시들시들해지고 있었어요. 왜냐고요?


1924년은 소련 및 러시아인들에게는 중요한 해였거든요.

국부 레닌이 사망한 해랍니다. 이후 스탈린이 집권했어요.


트로츠키의 반대 입장을 전술했쟎아요. 스탈린은 오히려

우파적이어서 수정 자본주의적 정책 도입에 적극적이었어요.

결국 정책 성과에 힘입어 집권할 수 있었다고 보기도 하죠.


그리고 집권과 동시에 스탈린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스타트..! 개시하게 됩니다. 이후 역사에서 등장한 수많은

나라들이 이 패턴을 모방하게 된 거죠. 한국도 역시.


사실 현대 한국사에 큰 영향을 준 소련의 집권기는 스탈린

체제였죠. 레닌보다 집권기가 더 길었으니까. 오래 사셨음.


스탈린 체제 이전 소련은 참 답이 안 나오는 저개발 국가에다

안팎으로 외세의 개입으로 누란지위의 형국이었어요.

20세기 초 대한 제국이나 비슷했을 걸요.


하지만 인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먼저 해결한 정책 수정

효과에 힘입어 국가 초창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고

그 중심에는 바로 NEP이라는 역사가 있었답니다.


소련의 뉴딜 정책이라고 볼 수 있겠죠.

레닌 죽고 스탈린이 집산화로 말아먹기 전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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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books Story in Korea for

International Relations and Politics




이쯤 되면 눈치 채셨겠지만 본 블로거,

미친 듯이 신나게 국제 관계학을 디비파고 있지요.

정치학 본류부터 시작하여.. 요즘 사는 낙인데요.


한국 풍토의 정치학 교육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식으로 얘기해볼 때인 것 같아요.


본 블로거 수준이 워낙 떨어지는지라 깊은 분석은 못하고

그간 여러 책을 섭렵하며 느꼈던 소소한 정회랄까…

서비스 소비자의 후기 내지 푸념 같은 거겠죠.


정치학을 공부하다 보니 많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회 과학 전체에서 원류나 본좌처럼 흔히 인식되는

분야인데도, 인기있는 교과서는 딱히 생각나지 않죠.


미시의 이준구, 거시의 맨큐, 국경의 크루그먼,

헌법의 정회철, 민법의 김준호, 형법의 신호진..

뭐 이런 라임 돋는 말을 들은 적이 없는 듯해요.


본 블로거가 처한 무식한 환경 때문이겠죠 물론.

그런데 한 편으로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한 것이…


신림-노량진 수험가 문화에서 한참 벗어난 과목이

정치학이나 국제 관계학 아니었나 싶기도 해요.


행시 정치학과 외시 국제정치 수험자를 긁어모아도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닐 거 같다는 느낌적 느낌이

공연히 들기도 하고요.


또 행시 일행직의 정치학이 필수이긴 해도

수험가 일타 강사들이 특정 교과서를 바이블화하기보다

자기 강의 노트를 편저 교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게다가 정답이 똑 떨어지는 사안 성향이 아닌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법학이나 경제학 문제와는 다르쟎아요.


나중에 길게 썰 풀 일 있겠지만 정치학이 포괄하는 범위가

법학은 모르겠는데 경제학에 비해서는 너무 넓은 관계로

그 넓이를 다 감싸안는 교과서를 쓰기가 참 힘들다고 봐요.


결국 우리 대학가에서 어느 순간 정치학이 천덕꾸러기처럼

대세에서 밀려난 느낌이 들어 서글퍼지긴 하네요.


당장 경제학과 비교하면 큰 차이를 알 수 있어요. 꽤 오래 전에

나온 거지만 경제학에는 심지어 이런 문화까지 있으니까요.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economy&no=51391



하지만 우리 정치학 교육 분야에도 좋은 책들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고 몇 권 언급도 하고 싶어요.


수험가의 동향과 상관없이 학문의 상아탑을 지켜가는 교수,

학자, 연구원 집단이 좋은 저작물을 꾸준히 내고 있으니까요.


서연고이경한외를 이 분야 상아탑의 메이저 세븐이라고 볼 때

수십 개의 서로 다른 세부 장르에서 앞서가는 석학들이 이

학교들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배출되고 있기도 하고요.


양질의 기본서를 직접 저술하거나 외국 교과서를 번역하여

보급하는 등의 활동을 주로 많이 하시는 교수님들을 꼽자면…


얼마 전 은퇴하셨는데 서울대 하영선 교수님이 생각나고

연세대 등 주요 기관에서 엄청나게 활약해오신 김계동

교수님을 꼽을 수 있겠어요.


경희대 유현석 교수님도 훌륭한 저작물과 세련된 강의로

이 분야 초심자들을 신실하게 계도하고 계십니다.


특히 유현석 교수님이 쓰신 ‘국제 정세의 이해’는

본 블로거를 국제 관계학의 세계로 이끌어준

보물 상자 마스터키 같은 걸작이랍니다.




김계동 교수님은 이론서 번역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세요.

앤드류 헤이우드, 필립스 쉬블리, 로드 헤이그, 마가렌 칸스

스타 학자들의 베스트셀러들을 꾸준히 번역해주셨어요.


다른 교수님들 모아서 대표 편저자로 책 내는 작업을 자주 하시는

분인데 정치학 개론’, ‘비교 정부와 정치’, ‘국제 관계와 세계 정치

(이건 단독 번역) 세 권은 번역과 문장이 특히 빼어납니다.

한 번들 꼭 보세요. 두 번 읽으세요. 아니 세 번 봐요.


하영선 교수님이 남궁곤 교수님과 공저하신

변환의 세계 정치’는 한국 정치학 교육사에

빛나는 명저가 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정치학이 어떤 학문인지 기본 중 기본에 눈을 뜨고 싶다면

이극찬 교수님의 ‘정치학’을 읽어야 제대로 읽은 거죠.


상당히 올드한 제본과 문체인지라 요즘 독자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이극찬 정치학을 한 번 독파해봐야

정치학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주장하는 1인이 여기 있어요.


아시는 분 아시겠지만 이극찬 교수님은 돌아가셨어요.ㅜ

그래서 개정판은 더 이상 나올 수 없다는 점도 아시고요.

도서관에서 빛 바랜 걸작을 얼마든지 만나볼 수 있어요.


지면에 한계가 있으니 각 저서의 특장점에 대해선

나중에 따로 설명할 기회를 만들어 보겠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국내외 정치와 국제 관계를 자유롭게

토론해가며 이런 좋은 가이드의 혜택을 입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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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totype Growth Theory: Harrod - Domar Model




2018년 기준으로 경제 성장론에서 통설적인 모형이 뭐냐고

묻는다면, 솔로우-스완 모델이나 로머의 내생 성장 모형을

보통 가리킨다고 생각하는 편이 일반적일 겁니다. 동의하죠?


1956년에 나온 솔로우-스완 모델…

1986년경에 나온 로머의 내생 모형…


우리가 지금 책과 강의실에서 줄줄 읊어대는 경제 성장론이란

이런 굵은 줄거리가 이어져온 것인데요.


아무런 전례 없이 이런 이론이 뚝딱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겠죠. 1940년대에 케인즈 학파로부터 이미

고전적인 모형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해로드 도마 모형이라는 것인데, 이 모델이 오늘날 관점에선

오류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특히 한국) 교실에선

언급도 안 하고 지나가 버리네요.


외국은 그래도 언급은 하거나 한 페이지 정도 할애하여

설명하기도 하는데 말이죠. 너무 편협…ㅠ


그래서 특별히 인터넷 지면을 통해 간단히 설명해봅니다.

아마 한국 최초일 듯…ㅎ 이게 좋은 일인감…ㅠ


솔로우-스완 모델이 그렇듯이 각기 다른 두 명의 학자가

따로따로 동일한 모형을 수립한 사례입니다. 1939년

영국의 로이 해로드와 1946년 러시아의 에브시 도마..


Roy Harrod & Evsey Domar..

두 분은 보통 고전 케인즈 학파로 분류합니다.


1924년에 스웨덴의 구스타브 카셀이 먼저 원형을

제시했다는 이견도 있어 썰이 나뉘는 것 같기도…

Gustav Cassel..


신고전파로부터는 모형의 해법이 불명확하다고 엄청

까이기도 했고 까임에 까임을 반복하며 연구를 거듭한

결과 솔로우 모델이 탄생하기도 한… 배경이 있죠.


솔로우 모델의 정초적 원형을 제공했다고 보면

대략 정확한 이해일 겁니다. 방향성을 깔았다능…


이 모델은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중요한 가정을 전제합니다.

(사실 이 가정 없이는 도저히 해를 구할 수가 없다는 치명적

단점이… 이 점 때문에 엄청 까였던 거죠.)



Y = f ( K )


총생산을 자본을 변수로 하는 함수로 가정했고요…


dY / dK = c = Y / K


(이게 젤 중요) 자본의 한계 생산성이 상수로 일정하여

생산 함수의 수익률이 규모 경제에 비례한답니다.

- d는 물론 편미분.. 문자 입력이 구려 죄송..


또한 여기서, 일반적인 생산 함수 그래프를 상상해보면

한계 생산성과 평균 생산성이 같겠다는 유추를 할 수 있죠?

(자세한 건 경제 원론서의 생산 함수 챕터를 공부하세요.)


f (0) = 0


자본이 0일 때 총생산도 0이다… 이말인즉슨,

자본 없으면 총생산이고 성장이고 뭐고 없다는 뜻입죠.


sY = S = I


총저축을 저축률과 총생산의 곱으로 상정했어요.

노동 투입하여 번 소득 중 사는데 소비한 거 빼고 나머지

몽땅 무조건 저축한다는.. 무시무시한 가정인 거죠?


가계가 저축을 왜 하겠어요? 기업에 투자하기 위해서죠.

즉 총저축이 총투자라고 가정한 거랍니다. 화끈하네요.


∆K = I - ∂K


축적한 자본 총량.. capital stock이라고 하는데 이건

총투자에서 자본의 감가 상각분을 제한 나머지랍니다.

(이건 뭐 그냥 그런가보다…)




이런 가정으로 어떤 결론이 나오냐 하면…

(죄송한데 중간 과정은 생략하겠습니다. 문자 입력 오류ㅠ)


sc - ∂ = ∆Y / Y


마지막 결론은 자본의 한계 생산과 저축률을 곱한 값에서

감가 상각률을 제하면… 총생산의 변화에 도달한다능…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예, GDP성장이란 것이 총투자총저축으로

결정된다는 한 방의 논리입니다요.


즉 자본과 노동이 결합한 capital stock을 형성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경제가 성장한다는 말입죠.


자본과 노동은 어떻게 결합하는데요? 가정에서 설명했죠..

경제 활동 인구 전체가 사는데 꼭 필요한 소비만 빼고

소득 나머지를 무조건 저축하여 투자로 연결시키랍니다.


총저축이 총투자로 이어지게끔 하라…는 말씀.

약간의 자본 감가 상각은 걍 그런가보다 하시면 되고요.


어떤가요? 솔로우 모델에서 많이 들어보던 이야기죠?

왜 이 모형이 솔로우 모델의 프로토타입으로 평가받는지

여기까지 따라와보면 한 번에 이해가 가시죠?


결국, 경제 성장인구저축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함의를 역사상 최초로 이끌어낸 모형인 셈입니다.


이런 논리는 OECD급 저성장 고개발 국가라면 몰라도

아직 개발 도상국저개발 나라들에는 얼마든지 먹힐 만한

개발 철학을 제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실제로 전후 많은 후진국 경제 정책의 배경 논리로

여러 차례 활용이 되었고요. 한국도 마찬가지였겠죠.


인구가 곧 국력이고 돈 벌면 죄다 저축해야 해…

바로 이런 마인드가 한때 전 지구를 강타한 적이 있었죠.

한국 경제사의 60~80년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90년대의 초대박 성장과 IMF크리 이전에

이런 개발 논리가 있었고요. 해로드 도마 모형은

그런 생각의 정초를 제공한 케인즈 학파의 가설입니다.


또한 솔로우서부터 시작하는 현대 성장 통설의

효시격 연구였고요. 해로드와 도마, 두 분의 선행

연구가 없었다면 오늘날 통설이 성립했을까…?


솔로우 모델에 대해선 워낙 유명하니 나중에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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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봇물 터지는 공격들

https://www.washingtonpost.com/outlook/2018/09/06/i-too-am-part-resistance-inside-trump-administration/?noredirect=on&utm_term=.03aa5fa2c55f




지금 미국 정가가 발칵 뒤집힌 상황인데요.

(트럼프 집권 후 언제는 안 뒤집혔겠냐만은…)


트럼프 정권 내부자들이 잇따라 익명으로 폭로 기고를

내고 있고 그 시기가 중간 선거 전에 묘하게 봇물

터지듯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있답니다.


우리나라 일 아니니까 팝콘 각으로 구경하면 되겠습니다만

당장 중간 선거한반도 평화에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에

신경이 안 쓰일래야 안 쓰일 수가 없긴 하네요.


물론 문제가 많은 정치인이겠죠. 누가 아니랍니까.

단, 미국인 입장에서. 검은 머리 미국인 아니니까.


우리 입장에서 임기 끝날 때까지 최대한 빼먹을 거

빼먹으면 된다는 쿨한 의식으로 무장하면 어떨까요..


도덕책 천사표가 집권한다 한들 우리 외교 문제를 무슨 미국

대통령이 나서서 해결해주는 건 아니란 것, 오바마가 위안부

문제 배배 꼬아놓았을 때 이미 경험한 거 아니냐, 이거에요.


저들의 악마 지도자라도 좋다, 내 땅에 평화만 다오..

어차피 임기 끝나면 국물도 없는 사람이니 임기 내에만

잘 뽑아먹고 우리 챙길 거 챙기면 그뿐이라는, 뭐 그런…


적어도 지금 정부가 방향성을 거기에 정조준하여

움직이고 있다고, 본 블로거는 생각하고요.


조심스럽게 호응을 구하고 싶네요.

한번 판단해 보세요.


폭로의 도화선이 된 뉴욕 타임스 기사는 아래에서 들어가

보실 수 있고 번역문도 공개되어 있으니까요.


이번엔 곧바로 이어서 지난 주에 워싱턴 포스트가 터트린

후속 폭로에요. 일단은 서로 다른 사람 같아 보이긴 하는데..

(같은 사람이란 추측도 있죠.)


이 사건에 우려 섞인 시선으로 보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

번역문을 게재합니다. 저작권에…?! 본인이 신분 까지 않는 한

고소 당할 일은 없을 듯하지만, 그래도 문제시엔 삭제합니다.


아, 그리고 다른 때와 달리 주석이 많아 미안합니다. 왠만하면

안 달고 최대한 현지화한 의역으로 가려고 하는데 이 원문은

도저히 그렇게 안 되게끔 쓰셨네요. 미국 최적화한 로컬한

미국 문화 어법이 너무 많답니다. 양해 바랍니다.


당연한 소리지만 대니얼 드레즈너는

이 글 쓰신 분이 아니겠죠…?ㅎ







I, too, am part of the resistance

inside the Trump administration

나 역시 트럼프 정부 내 저항군이다



I should have been the first one out of the gate.

내가 누구보다 먼저 폭로했어야 하거늘



대니얼 드레즈너

 - 터프츠 대학교 국제 정치학과 교수, 포스트에브리씽의 단골 기고인


9월 6일



(대니얼 드레즈너: 다소 이채롭긴 하지만 오늘 비판적 논조의 특집 기사 하나를 공개하려 한다. 트럼프 행정부 내 고위 관료이자 본 기사가 나가지 않으면 향후 수입에도 타격을 받을, 익명을 요구한 “원 저자”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본 기사를 익명으로 게재하여 구독자 여러분께 더 담대한 고민의 기회를 드릴 수 있을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이전 지도자 누구도 직면한 적이 없던 유형의 중대한 기로에 설 것 같다. 지난 수요일 뉴욕 타임스를 통해 폭로한 익명의 고위 관료의 특집 기사가 굳이 아니라도 말이다.



*번역자 주석: 뉴욕 타임스 폭로 기고는 아래의 링크로 들어가면 확인할 수 있고 현재 진행 중인 트럼프 행정부 내부자 폭로의 진원지가 된 사건이다.

https://www.nytimes.com/2018/09/05/opinion/trump-white-house-anonymous-resistance.html?action=click&module=Top%20Stories&pgtype=Homepage



그가 처한 진퇴양난의 상황인즉슨 — 그나마 더 똑똑한 나는 대통령이 상황 파악조차 부족하단 점을 알고 있지만 — 다수의 관료들이 대통령의 정책과 그 고약한 성정을 좌초시키는데 업무의 방향을 두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나도 물론 안다. 내가 그런 관료 중 하나이니까. 바로 나란 말이다! 내가 직접 기억을 끌어모아 이 폭로 기사를 썼다고 주장하지 않는 한은 내가 누군지 추측도 못할 터이다.



더 명확히 하자면 잘 알려져 있는 좌파 “저항군”의 일원도 아니다. 2016년에 “트럼프만은 안 된다”며 거부한 적 있는 우파 저항군의 일원도 아니다. 대통령의 샬롯츠빌 발언으로 상처받을 교육받은 중산층 “저항군”도 아니다. 반이민 정책에 따른 아동 격리 조치로 분노할 교양있는 미국인도 아니다. 헬싱키 외교 참사가 거슬리는 국제 관계 열혈 지지자도 아니다. 대통령의 무역 전쟁에 질려버린 경제학 능력자도 아니다. 나는 작금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 힘을 보태며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한편 이 끔찍하고도 끔찍한 작자에 동조하고 선동하는 죄를 씻기 위해 이 익명의 기고를 쓰고 있는 조용한 저항군이다.



*번역자 주석: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에 샬롯츠빌에서 있었던 백인 우월주의자 집회에서 좌파 시위대와의 충돌로 폭동이 일어난 데 대해 쌍방 잘못으로 논평하여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은 급기야 한 가정의 부모와 아동을 격리하는 수준까지도 추진한 적이 있어 미국 내에서 상당한 윤리적 반발을 야기했다. 지난 7월에는 헬싱키 등지를 돌며 러시아 등 유럽 각국을 순방했는데 나토의 동맹국은 비방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겐 우호적인 발언을 하여 빈축을 샀다.



트럼프에게 임명장을 받은 다수의 관료는 그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날까지 미국의 민주 정치를 수호하고 그가 충동적으로 길을 잘못 들 때마다 나서서 훼방을 놓기로 이미 굳게 서약했다. 나도 익명 기고의 백악관 내 첫 타자가 될 뻔했는데 누군가 먼저 선수를 쳐버린 셈이다. 하지만 모두가 똘똘 뭉치고 있으니 기분이 나쁘진 않다. 이렇게 한층 더 강하게 트럼프를 코너로 몰수록 미국의 민주 정치는 결단코 훼손될 일이 없을 것이다.



선출된 국가 원수의 의사를 묵살하고 현명한 독자 제현께 우리가 움직이고 있음을 알리는 것보다 더 민주적인 길이 없음을, 뼈에 사무치도록 느끼고 있기에 이 기고를 쓴다.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답이 아니다. 남 탓 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조용한 저항군 활동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문제의 핵심은 대통령이 기본적인 윤리 의식을 갖추진 못한 사람이란 점이다. 그와 일하는 누구든, 어떤 명확한 우선 순위나 원칙이 있어도 거기에 제어가 안 되는 사람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들 중엔 확고부동한 원칙과 소신을 가진 이들이 있으며 후속 기고를 통해 이 점을 분명히 할 것이다. 내가 가장 먼저 폭로했어야 했는데 다른 익명의 누군가가 선수를 쳤다. 다 내 느린 필력 때문이니 날 비난하라!



오해는 하지 마시라. 연일 끝도 없이 현 정권을 때리는 언론 보도조차 잡아내지 못한 긍정적 업적도 있다. 세제 개혁이나 사법부 전면 물갈이나, 비선에서 물러나겠다는 사위와 딸의 선언 등. 아시겠지만 정말 멍청이들이다.



그런데 이 업적들은 다 조용한 저항군들이 벌인 일이다. 속이 뻔히 드러나 보일 만큼 성질 급하고 부정적인 데다 쪼잔하기까지 한 대통령의 리더쉽 스타일이 한 일이 아니라.



대통령과의 회의는 원래 주제를 벗어나 산으로 가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그가 하나마나 한 뻘소리를 거듭 장담하는 통에 채 설익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결론을 내기도 하며 심지어 결론도 없는 무모한 말잔치가 왕왕 끝도 없이 이어지면서 대화의 원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까먹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의 대통령은 어떤 지침을 일관성 있게 내줄 수준이 못 된다. 참말이다. 그 주변의 사람들이 도무지 정신 못 차리게 만드는 형국이니 그렇다는 말이다.



*번역자 주석: ‘어떤 상황에서도 올바른 지침을 줄 만한 일관성 있는 존재’라는 뜻으로 원 저자는 여기서 북극성, lodestar라는 말을 썼다. 통상적 영어권 시민이 자주 쓰지 않는 이 단어를 평소에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자주 쓴다는 이유로, 익명 기고자 중 하나가 부통령이라거나 또는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부통령 반대파가 기고했다는 등의 갑론을박과 추정이 현재 미국 정가를 강타하고 있는 난맥상이다. 참고적으로 대표적인 펜스 반대파이자 차기 대권 후보를 노리는 사람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이지만, 장관 측에서 기고가 나왔을지 모른다는 주장은 아직 입증된 적이 없다.



“변덕이 죽 끓듯 해서 언제 또 말을 바꿀지 알 수 없다니까. — 잠깐, 자네 왜 이렇게 가까이 서 있나? 녹음하는 것 아니야? 누구(오마로사)처럼 나 배신하려고?” 어느 고위 관료는 백악관 회의에서 자신의 배반을 의심하는 대통령에 관해 격앙된 반응으로 이렇게 불만을 전하기도 했다.



*번역자 주석: 오마로사는 트럼프 체제 유일한 흑인 행정관이었던 오마로사 매니골트 뉴먼을 일컫는다. 지난 12월에 사임하며 트럼프를 맹비난하는 폭로 저서를 출간하여 대통령과 거의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인물이다.



이 난장판에서 할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백악관에도 정상적인 성인이 몇 명은 있다는 사실에 미국인들이 위안을 삼았으면 한다. 우리는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여론 조사 동향도 지켜보고 있기에, 몇 년 간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 모든 사항을 적어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를 제쳐두고라도 우리는 매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고 연착륙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덕분에 그나마 체면치레라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현 체제를 이른바 투트랙으로 끌고 가야 마땅하다. 한쪽에서 조용한 저항군들은 주류 언론사 기자들이 쓰려고 하는 기사에 익명의 정보원으로서 웨스트윙 사태의 진실을 똑바로 전달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론 단행본 저자들과 특집 기고문들에 익명의 제보를 지속 공급해야 한다.



흔한 음모론 비슷하게 정부를 장악하는 엘리트들이 되잔 말이 아니다. 국가를 위한 존엄한 역할을 익명으로 하자는 것 뿐이다.



현재의 불안한 상황을 목도한 초창기 각료들 중에는 수정 헌법 25조를 들먹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헌정 초유의 위기 상황을 바랄 사람이 있겠는가. 우드워드 대기자의 저서 출간과 내 기고보다 나중에 나왔어야 할 (뉴욕 타임스) 폭로, 거기에 무수히 많은 자잘한 언론 제보가 줄을 잇는 방식이 훨씬 낫다. 이렇게 한들 갓난아기 징징거리듯 구는 대통령을 격분하게 할 수나 있으랴. 상황이 끝날 때까지, 또 원고료 끊길 때까지 우리는 정권의 올바른 방향을 위해 우리 할 수 있는 만큼 계속 흘리면 그만이다.



*번역자 주석: 1967년에 채택한 수정 헌법 제25조는 대통령이 직무가 규정하는 권한과 의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경우에 대비한 절차를 규정하였다. 여기엔 여태껏 한번도 발동된 적이 없는 경우의 수가 있는데 내각 과반수가 찬동할 경우 대통령이 비자발적으로 사퇴하고 부통령이 대통령의 직무를 대리하는 절차가 그것이다. 한편, 미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언론인이자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한 바 있는 밥 우드워드가 최근 자신의 저서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를 맹비판했는데 이 시기가 뉴욕 타임스 및 워싱턴 포스트의 익명 폭로 기고 시기와 우연찮게도 맞아 떨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더 큰 관심사는 트럼프가 대통령제에 끼친 해악 따위가 아니라 임기 끝나고 나는 어디 한직이라도 찾아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것 뿐이다. 어디 괜찮은 여름 임시직이라도 찾아낼 형편이 될까? 트럼프를 도운 모든 사람의 공통 문제일까, 아니면 몇몇 사람만 기소 당하고 끝날 것인가?



*번역자 주석: 최대한 한국 사정에 맞게 의역했으나 원문에는 Martha’s Vineyard 및 Alan Dershowitz라는 생소한 지명 및 인명이 등장한다. Martha’s Vineyard는 메사추세츠 주에 위치한 섬이며 많은 대통령들이 휴양지로 찾아 여름에만 임시 서비스직 일자리가 급증한다는 지역이다. 앨런 더쇼비츠는 하버드 대학교 형법학 교수이며 저명한 형사 변호사로서 사회적으로 반향이 큰 사건을 주로 수임한다 하여 미국 사법 체계의 마지막 보루로 불리는 인사이다. 더쇼비츠에 관해 더 궁금하면 아래 기사로 들어가볼 수 있다.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posteverything/wp/2018/07/05/this-column-is-not-about-alan-dershowitz/?utm_term=.9c69d90c007f



바야흐로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어 날아올 구인장에 대비해 친분 마일리지 쌓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 별로 조용하지도 않은 — 저항군들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정치를 넘어서서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시민들이 들고 일어설 때 비로소 진짜 차별점이 생기는 것일 터이다. — 그때 되서 신분이 밝혀지면 내가 비밀리에 벌인 좋은 일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사람들이 정부에 분노할 때 울타리를 넘어 쓸데없는 딱지를 떼어버린 건 우리들이다. 그건 내게도 이익인 행위이니까. 이 시점에서 여러분이 깨달아야 할 점이 있다면, 내게 이익인 일이 결국 미국에게도 좋은 일이란 점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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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연구 방법에 빈틈이 있었음을… 왜 인정하지 못하나

https://www.bloomberg.com/view/articles/2018-04-27/why-innovation-tends-to-bypass-mainstream-economics 






주류 경제학의 이상한 틈새나 오류 부스러기라도 보이면

화들짝 놀라 이상한 쉴드를 치려고 개떼처럼 달려드는

것이 한국의 주류 언론과 학계가 보여온 반응이었습니다.


본 블로거,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이런 이상한 현상을 조금이라도

바꿔 보고자 블로깅을 하고 있고요.


이번에는 블룸버그 통신을 통해서 공개된 바 있는

어느 경제 전문가의 강연 내용입니다.


이 강연을 하신 분은 금융 기업 간부 출신으로 현재는

전문 컬럼니스트로 기고하시는 모양입니다.


전문 번역을 공개하고요.

저작권 문제시 자진 삭제합니다.






Why Innovation Tends to

Bypass Mainstream Economics

혁신은 왜 항상 주류 경제학을 비껴가는가



The discipline is divorced from real-world relevance

and has lost credibility.

현실 세계의 상관성과 결별하여 신뢰를 잃은 학문의 비애


Mohamed A. El-Erian

블룸버그 통신 컬럼니스트이며 알리안츠 상임 고문이자 그 계열사인 핌코의 전 대표이사



2018년 4월 27일




(본 기사는 인베스트먼트 뉴스 주최로 뉴욕에서 열린 "혁신 정상 회의"에서 원 저자가 "혁신 아이콘 대상"을 수상한 후 소감 연설문을 차용하여 게재합니다.)




주류 경제학이 최근 들어 잘 해내고 있지 못하며 사회에 엄청난 손실을 끼친 주요 동향의 예견에 실패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실패가 훨씬 더 일반적인 질문으로 귀결할 수밖에 없다. 어떤 분야의 활동은 어째서 혁신의 수혜를 입는데 주욱 실패한 것인가?



경제학이란 본래 가계와 기업, 정부의 경제 행태를 분석하며 사회 복지를 증진할 기회를 찾고 예측하는데 목표를 두게 마련이다. 이런 학문적 경향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벌어지는 집단적 상호 작용이 얼마나 복잡한가 하는 것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게 치러야 하는 대가의 범주에 대해서도 연구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연구한 광대한 범주의 관점과 예측이 정작 현장에서 충분히 개발한 진보상과 적정하게 부합해오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경제학 분야는 가끔 “지우개 학문"이라고 조롱 당하기도 한다. (신랄하게 예를 들어볼까. 경제학자에게 당신이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얘기해 보라. 그것만 쏙 빼고 하는 방법을 알려 줄 걸.) 또한 내부에서 실망한 관계자들조차 현 경제학의 실태를 "고위 사제들"이 장악하고 있다며 매일매일의 실생활이나 새로운 기회나 현장의 문제를 철저하게 외면하는 행태를 개탄해 마지 않는 형국이다.



설상가상으로 주류 경제학의 허울좋은 명성은 지난 10년간 큰 사고를 쳐 버렸다. 무수히 많은 경제학자들이 2008년 경제 위기 예측에 실패하여 수 년 간 경기 침체라는 선물을 세계 경제에 안겨 버렸다. 위기 이후 상황 예측에 실패한 것은 덤이고 말이다.



그들 대부분은 위기 국면이 경기 순환의 일시적 충격에 불과하다며 멋진 V자를 그리며 조만간 반등에 성공하리라는 치명적 실언을 내뱉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평균 곡선에 과도한 통계적 집착을 가진 환자들처럼 보인다. 재무 자산 배치가 심각하게 왜곡되어 성장에 치명타를 입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경제 활동이 다시 강력하게 번쩍 살아날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다.



V자는 커녕 선진국 경기 곡선이 그간 L자 곡선으로 "새로운 정규 분포"를 그리며 축축 쳐지고 있고 침체 일로의 성장 기간이 연장되고 있음은 이미 경험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이미 경기 침체의 지표 양상은 총생산 감소와 가계 복지 손실, 불안정성의 확대, 소득과 부와 기회 균등에서의 불평등도 심화 등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경제 실패가 분노의 정치를 촉발하여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기관 체제 전반에 관한 극도의 불신이 팽배해지는 상황이다.



결국 이 모든 현상이 경제학 자체의 신뢰에 대한 회의로 다가올 것은 불을 보는 뻔한 일이다. 마침 본인 주변의 많은 경제학도들도 자신들이 교육 받은 주류 경제학이 실생활과의 상관 관계를 저버린지 오래라고 불평한다. 각급 경제 연구소 재원에 씨가 마를 일은 이제 시간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모든 실패의 원인이 경제학이 가진 연구의 근본적 한계를 무시했다거나 뭔가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고갈되었기 때문으로 치부할 일은 결코 아니다.



다음은 주류 경제학의 예측과 통찰의 힘이 잠식 당한 원인을 몇 가지로 고찰해본 것이다.


- 경제학의 모형은 많은 경우 "과학화"라는 명분 하에 변수를 과도하게 단순화한 가정에 매달리는데, 이 단순화 과정에서 생략해 버린 변수들이 실생활에서는 오히려 각종 행동과 작용에 더 결정적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 재무 연계성 하에서 실행 비용이 얼마나 들지 충분히 고려도 하지 않고 쏟아내는 이론으로 인해 정책 예산의 체계가 불건전할 때 얼마나 경제가 망가질 수 있는가 간과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 많은 경우 경제학 이론은 행동 과학이 제시해온 여러 통찰력 깊은 관점을 마지 못해 채택하는 경향이 있으며 여러 학문을 연결한 학제간 통섭 연구를 시도할 때도 너무 주저하는 성향을 보인다.


- 불확실성이라는 큰 변수를 너무 단순화한 나머지 불확실성에 의한 경제 작용의 변화를 놓치고 만다.


- 모형의 균형을 이루는 조건이나 통계량의 평균치 회귀에 과도하게 집착하다 보면 시류가 새로운 방향으로 이동하거나 구조적으로 변화가 발생하는 등 중요한 특이점을 놓치고 지나갈 수 있다.



이렇게 많은 결점들은 앞으로의 혁신 과제 뿐 아니라 혁신의 방법에까지 영향을 미칠 기술 변화의 시대를 맞아 더욱 두드러질 것이며 이는 인공 지능, 빅 데이터, 머신 러닝, 모바일 등 분야에서 급속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본다.



참으로 역설적이지만 경제학의 이런 결점을 두드러지게 부각시킬 다른 분야의 지적인 성과에 폐쇄적인 것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행태 경제학 뿐만 아니라 시장 지표, 자본 급정거, 티핑 포인트, 게임 이론, 정치 기제 등등에 대하여 눈부신 학술적 성과가 있지 않았던가.



희한하게도 그러한 획기적 학술 실적들이 주류 경제학의 핵심을 관통하여 영향을 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대부분 경제학자들이 손쉽게 쓰는 학술 도구는 — 즉 그들이 학생들에게 직접 가르쳐 전수하는 연구 방법들은 — 참 이상하지만 한쪽에 치우치거나 어떤 때는 방향을 잘못 가리키는 쪽으로만 발전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경제학의 현실 설명력을 제고할 해결책이란 곧 연구하는 사람의 더 개방적인 마인드를 구축하는 것에 직결하며, 이는 의식 또는 무의식 속에 잠재한 학술적 편견을 양지로 끄집어내 해체와 재구성의 장을 마련한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고위 사제들"이 꽁꽁 숨겨놓은 폐쇄성을 세계 경제와 금융 시장의 현실 속으로 과감하게 노출하는 작업을 말하는 셈이다.



이 해결책은 또한 제도권 내의 프레임을 현대화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학제간 학술 연구를 할 수 있는 창구는 너무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열려 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당혹스럽게도 고등 경제 현상을 연구하는 기관들은 자신들의 커리큘럼을 현실에 맞게 합리적으로 구성할 능력조차 결여되어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문제의 해법은 아주 기초적인 경제 개념으로 돌아가 도출해야 한다. 발견과 혁신의 차이점 말이다.



발견이란 새롭고 기발한 이론이나 상품이나 접근 방법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혁신이란 기존 이론의 운용 모형이나 접근 마인드에 변화를 적용하는 것을 뜻한다.



지금까지 주류 경제학은 혁신이 아니라 발견에만 집착해왔다. 경제학이 새로운 것을 발견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니 편견이나, 맹점, 관성(뭔가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드는데 결국 똑같은 짓으로 끝나 버리는 일)이 범벅이 되어 결과로 치닫는 것이다. 지금의 경제학이 가진 취약점이 뭔가 발견해내야 한다는 필요성에 있다기보다 약점 자체를 받아들여 적응하는데 있다는 사실이, 실로 엄청나게 많은 경우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이런 마인드는 호기심과 개방성을 요하고, 이견에 경청하여 실험을 주저하지 않는 자세를 요구한다. 솔직한 토론을 거쳐 안전 지대를 구축하고 실패로부터 배우려는 자세인 셈이다.



이토록 기초적이고 — 또한 해법이 가능한 — 문제를 끄집어내 환하게 드러내는데 주류 경제학은 계속 실패해왔다. 발견과 혁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이 개인, 기업, 정부, 사회의 복지를 증진할 기회는 너무 많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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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ological History of International Relations




예전에 현대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일반적인 흐름으로

짚은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약간 포커스를 좁혀 볼까요.


국제 정치, 흔히 IR, 국제 관계학이라고 부르는

분야의 이데올로기 역사는 정치학 본류의 그것과는

약간 궤적을 달리 하여 발전해왔습니다.


원래 정치학의 연구 분야를 셋으로 구분하거든요.

정치 사상 및 이론, 비교 정치학, 국제 정치학…


이 중 국제 정치학에 해당하는 분야를 가리키죠.

요즘은 국제 관계학이라고 더 일반화되어 있는 듯해요.

international relations를 번역한 거니 이쪽이 더 맞남..


국제 관계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연구는 20세기부터

본격적으로 학자들이 제기하기 시작하였는데요.


여러 국가의 이전 투구가 부딪히는 현상의 원리를 찾아내려는

이른바 ‘현실에 대한 설명력’이란 논리로 이런 이즘이니 저런

이즘이니 하는 것들이 발전하기 시작한 겁니다.


멀리 보자면 군주론마키아벨리리바이어던홉스

사실 서양 정치학사에서 처음으로 현실주의를 들고 나온

사람들이니 이 분들을 원류로 봐야 하겠지만요.


교과서마다 분류 기준도 다르고 설명 체계도 다르지만

여기서는 깔끔하게 네 가지 사조로 정리하겠습니다.

자유주의, 현실주의, 구조주의, 구성주의입니다.


자유주의는 이상주의의 다른 표현이에요. 국가나 정치 현상에

도덕적 이상이나 지향점이 있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가

흘러간다는 생각인데요.


멀리 보자면 동양의 공자맹자 같은 유가의 사상이

이런 이상주의의 근간을 형성한 적이 있습니다.


자유주의 국제 정치의 사례로 가장 유명한 것이 흔히 우리가

국사 시간에 3.1운동 배우며 접한 바 있던 민족 자결주의라는

것인데 1910년대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주창했어요.


윌슨이 이런 주장을 하며 국제 연맹이란 것이 창설되잖아요.

국제 연맹이 제대로 돌아갔다면 2차 대전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란 점을 보면 자유주의 사조의 한계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이상적 도덕을 넘어서서 각 나라의 국익을 건드리는 안보

상황이 닥칠 경우 공권력 체계를 갖추지 못한 국제 기구는

유명 무실해질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래서 현대의 자유주의 국제 관계학 이론가들은

(국제 연맹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다자 안보 체계

주요한 관심 테마로 논리를 전개하는 편입니다.


이상주의를 비판하며 한스 모겐소가 주창한 사조가

현실주의입니다. Politics among Nations라는

저서로 유명하신 분인데요.


국가 간에 국익이라는 명분으로 힘의 균형을 이룰 수밖에

없는 구체적 현실을 인정하고 세력 균형에 전력투구해야

한다는 논리 체계를 마련하신 분이에요.


2차 대전이 끝난 후의 냉전이라는 구도를 완성한

사상가로 흔히 불리곤 하죠. NATO와 같은 군사 동맹

통해 세력 구도의 균형을 옹호한 논리입니다.


성선설 같은 자유주의에 비해 성악설 같은 색깔이 보이죠.

국익을 위해서 국가는 국방력을 총동원하여 실력 행사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호전적 논리 체계가 여기서 나왔어요.


냉전 시대에는 금과옥조처럼 받들던 사상이기는 하지만

70년대가 지나 오일 쇼크처럼 냉전 양극화 구도를 뒤흔드는

현상이 튀어나오고 유럽 경제 공동체처럼 국익 논리를

반박하는 움직임이 나오면서 퇴색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케네스 월츠 같은 학자를 통해 신현실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1979년 발표한

국제 정치 이론이란 저서로 이를 완성하였다 하죠.


구조주의마르크스 사회주의에서 영향을 받은 체계입니다.

물론 교과서에 따라 사회주의와 구조주의를 구분하는 설명도

있죠. 급진주의라고 따로 표시하는 책도 있습니다.


서구 선진국의 자본가 계급이 개발 도상국이나 제3세계의

물적 자본을 착취하는 형태로 국가 관계가 발전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 구조를 취하고 있어요.


안토니오 그람시 같은 이론가가 이 계통의 대표적인 분이고

남미 제3세계 정치 구도에서 맹위를 떨친 종속 이론

실제로 국제 관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러나 남미의 일부 현상을 제외하고 냉전 구도 자체조차

설명이 안 되는 한계를 보이기도 하는지라 약간은 철 지난

생각으로 치부되기도 하는 듯합니다, 요즘엔요.


구성주의는 80~9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비교적 신박한

사상 체계인데요. 사회 구성주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social constructivism…


인간의 선악 본성이나 국가의 힘 같은 논리가 아니라

사회적 맥락이나 행위자의 정체성이 국제 관계 현상의

본질에 더 가깝다는 생각입니다.


때로는 감성이나 정서, 심리 같은 주관적 요소를 깊게

관찰하기 때문에 인종, 종교, 성별 같은 현대적 아젠다를

성찰하는 데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특히 이슬람 근본주의로 무장한 국제 테러가 뚜렷하게

아젠다로 부상한 21세기에 들어 더욱 설명력이 배가하고

있는 사상 체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알렉산더 웬트라는 58년생 정치학자가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이론가이고요. 전술한 케네스 월츠의 저서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99년에 국제 정치의 사회 이론이란

책을 통해 사회 구성주의를 화려하게 등장시켰답니다.


2018년 현재의 국제 관계학에서는 이런 사상 체계를 혼용하며

정치 현상의 설명력을 제고하기 위해 애쓰는 형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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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unification Brings about Economic Jackpot




통일 한반도 경제는 8700조(원)에 달할 거라능

https://www.upi.com/Top_News/World-News/2015/10/28/Korea-unification-could-create-87T-economy-think-tank-says/5971446038799/



미국의 양대 뉴스 통신사는 AP와 UPI입니다.

이 중 UPI가 박근혜 정부 시절 기사 하나를 냈는데요.


통일 한반도의 경제 규모를 예상한 기획 기사였습니다.

이른바 통일 대박론의 검증 차원이었다고나 할까요.


이 때 추산한 숫자는 통일이 이루어진 한반도 경제권의

전체 국내 총생산 액수입니다. 9천 조 원, 9조 불이죠.

이 정도의 금액이 나온다고 제시하네요. 2055년에요.


물론 이 연구는 외국에서 나온 숫자는 아니고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뽑아낸 결과입니다.


앞서 포스팅한 신창민 교수님의 2007년 연구에서는

통일 비용을 1조 불 정도로 제시하고 있는데 단순히 보면

8조 불, 8천조 원 정도의 순편익을 얻는 겁니다.


구미가 당기죠? 간단한 전문 번역을 포스팅합니다.

저작권 문제시 자신 삭제하겠습니다.






Korea unification could create

$8.7T economy, think tank says

통일 한국의 경제 규모는 8조 7천억 불


엘리자베스 심 기자 | 2015년 10월 28일


한반도 통일의 경제적 잠정 가치는 어마어마하고 통일 한국의 경제 규모가 2055년까지 8조 7천억 달러에 달할 것이며 이는 비슷한 시기 분단 한국의 경제 추정치에 1.7배에 이른다고 한다.


지난 10월 21일 동아일보가 한국의 씽크 탱크 중 하나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발표한 통일 시나리오에 관한 보고를 보도한 바 있다. 통일된 한국이 세계 경제의 새로운 발전소가 될 것이고 인접 국가와의 교역량이 상당한 정도로 상승할 것이라고 한다.


연구 보고서는 5백억에서 6조 달러(55조에서 6천 6백 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 비용의 급격한 상승폭을 상쇄할 2단계 달성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2016~2035년 사이의 1단계에서 남북은 우선 상호 의존적 경제 환경을 조성하고 체질 개선 정책을 펼쳐 북한의 경제 성장을 밀어붙일 수 있게 된다.


2036~2055년 사이 2단계에서는 1단계가 구축한 통일 경제의 구조적 기반을 바탕으로 남북간 활발한 인적 교류를 촉진하여 두 체제 간 경제 통합을 완성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교류 증대로 야기될지 모를 인민 통제력 상실을 북한 당국이 거부할 가능성은 짚지 않았다.


통일이 가져올 편익에 대해서는 “통일은 대박”이라 선언한 바 있던 (2015년 당시) 한국 대통령 박근혜가 이미 긍정적 예견을 내린 적이 있다.


지난 21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2015년 당시) 한국의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가가 당면한 90퍼센트의 문제를 통일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도 했다.


“단일 민족 국가 가운데에 분단되어 있는 곳은 세계에서 한 군데 밖에 없다. 통일을 이루지 않고 미래를 조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강연에서 정 의장은 이렇게 언급하였다.


정 의장은 2014년 4월에 304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사고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한국 사회의 이기주의와 물질주의가 낳은 결과”라고 평하고 진정한 “이타주의”가 사회적 대안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중국, 일본, 인도에 이어) 네번째 크기의 경제 규모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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