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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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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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RK-US Summit 2018:

Look How Careful And Prudent Both Are




http://jangyune.tistory.com/entry/문정인특보-애틀랜틱-전문




역사적인 북미 회담이 있었고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본 블로거에겐 두 가지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첫째, 의외로 너무 정중한 트럼프의 태도, 놀랐고요.

특히 이 점이 여러 측면에서 다양하게 관측이 됐습니다.

둘째, 4.27 때보다 한층 더 긴장하는 김정은 위원장.


신중함과 정중함으로 완연하게 무장하고 나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인상적이었음을 강조해요.


만나자마자 멱살 잡으려고 별러 대던 1년 전의

그 사람들이 맞는가 싶었죠? 파이어 앤 퓨어리..ㅎ

역시 정치는 말 뿐이야 싶기도 하고.


햄버거는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등장했다면 당장

전쟁이라도 났겠죠. 파트너를 조롱하는 뜻이니까.


오히려 동서양을 조합한 메뉴가 등장했어요.

이것도 역시 또 하나의 정중함이었어요.


특히 오후 기자 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2천 8백만이 넘는 서울 인구가 전쟁 위험에 처한다’

(선제 공격이 말이 되느냐..는 꾸지람 섞인 멘트)


이 분이 미국 대통령이 맞나, 한국 대통령 수준의

발언 아닌가.. 눈물 날 뻔 했네요. 농담이 아니라 이 정도

원숙한 인식이라면 충분히 노벨상 자격 있다 싶어요.


물론 가만히 있으면 그런 인식이 만들어지겠습니까.

문재인 대통령의 가이드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어요.

한국은 훌륭한 드라이버이고 일본은 패싱합니다.


미국 대통령께서 또한 한미 연합 훈련 중단과

주한 미군 철수를 논하셨어요.


한 달 전 문정인 특보 인터뷰에 득달같이 달려들던

그 쓰레기들 다 어디 갔나요. 문정인 교수는 만만하고

이제 미국 대통령까지 언급하는데 말씀들 해보시죠.


물론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통상적인 군사 훈련은 정기적으로 운용할 겁니다.

안 할 거면 한미 동맹은 뭐하러 유지하겠어요.


트럼프 말대로 돈이 많이 드는 이른바

전략 자산 투입은 앞으로 자제할 거에요.

정말로 돈이 많이 들고 그 부담은 우리도 지니까요.


주한 미군 철수는 대통령 혼자서 결정하는 일 아닙니다.

우리 입장에서도 결코 플러스될 일 없는 일이고요.


남북 경제 협력 지구 단계 정도까지 가는데 짧게 10년,

길면 20년 잡고.. 15~20년 정도 후에는 정치 공동체

통합의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할 거에요.


실질적인 융합 통일로 가기 위한 실제적 정치 작용은

적어도 한 세대가 지난 30~40년이 흐른 후에야

눈에 띄는 움직임이 출현할 겁니다. 멀었다고요.


이 기간 동안 남북 교류는 경제와 문화가 중심일 거에요.

북한에 중진국 수준 정도까지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고

남한의 정체된 성장률과 고령화를 서서히 해결하고..


돈이 오가고 사람이 오가고 정보가 오가는 동안

남북의 문화적 이질감 격차가 줄어드는 특이점에 점점

가까워집니다. ‘이제 우리 안 합치냐?’ 얘기도 슬슬 나오고.


…… 자자, 이런 시간이 앞으로 다가온다고요.

그 기간 동안에 미국 정권과 의회와 미군은 가만 있냐고요.

여기에 반응하는 중국은 가만히 있냐고요. 러시아는요.


‘저쪽 평화 분위기인데 미군은 저기서 뭐 하는 거지?’

한반도를 바라보는 평범하고 상식적인 미국인들 입에서

이런 말이 슬슬 나온다고요. 평범하고 상식적인.


평범하고 상식적인, 아주 진보적이거나 똑똑하지는 않지만

미국 어디 가도 널려 있는 서민 백인층.. 이들을 대변하는

현재의 정치인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입니다.


정치 고단수는 아니지만 자국 우선주의 경향을 가진

트럼프는 지금 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판단을 하는 겁니다.


‘자, 평화를 만들어 가고 있쟎아. 미군이 왜 필요해?

미군은 저 골치 아픈 중동에 더 보내야 하는 것 아니야?’ 하고.


저 앞에 포스팅 다시 한 번 읽어 보세요.

문정인 교수님 인터뷰 내용의 골자가 이거에요.

미국의 여론이 철수를 요구할지도 모른다는 것.


이상한 제목으로 논지를 비틀어 왜곡할 일이 아니라고요.

멍청한 번역으로 무쓸모한 딴지 여론을 만들 일도 아니고요.


그러나 이런 일은 일어날 가능성이 높지 않아요.

주한 미군은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주한 미군은 한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니까요.


어쩌면 주한 미군이 북한의 안정에 도움될지도 몰라요.

중국이 저렇게 예민하게 나오는 거 보면 모르겠어요.


트럼프 대통령의 견해는 말 그대로 사견일 뿐.

사견이 전부 정책이 된다면 미국이 왕조 국가입니까.


주사파도 아닌데 보수 기성 언론이 미군 철수

노래를 하는 거 보면 웃기지도 않죠. 안 그래요?


어쨌든 결론, 문재인 정부의 노고에 감사 드립니다.

우리는 좋은 운전자를 뽑았습니다. 오늘도 잘 뽑으시고.


사족. 데니스 로드맨께서 너무 안 돼 보이기도 하고

아참 웃으면 안 되는데 싶기도 하고 해서 링크 답니다.







and



남북미 대화의 진짜 주인공, 서훈 국정원장

https://www.wsj.com/articles/a-look-at-south-koreas-top-spy-and-negotiator-with-north-1520358409




미국 최대 일간지이자 경제지인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서훈 국정원장을 조명한 기사를 3월에 발표했었습니다.


왠만한 내용은 우리 인터넷을 뒤져도 능히 나오는 거지만

해외의 주목이 이채롭기도 하고 최소한의 내용만 잘 추렸네요.

원 저자의 동의를 얻어 번역을 공개합니다.


서훈 원장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많이 참조하세요.

역사적인 북미 회담 기념 포스팅..






A Look at South Korea’s

Top Spy and Negotiator With North

대한민국 최정예 첩보원이자 대북 협상가인 이 사람, 그를 주목하라


Suh Hoon has played a central role

in behind-the-scenes diplomatic outreach to Pyongyang

서훈 원장은 그간 평양과의 외교전에서

막후 실력자로서 활약해왔다



Jonathan Cheng and Andrew Jeong

jonathan.cheng@wsj.com / andrew.jeong@wsj.com


2018년 3월 6일



서울 — 지난 3월 한국의 대북 특사를 환영하는 김정은 위원장 주재 만찬에서 안경을 쓴 한 남측 관계자가 활짝 웃는 김 위원장에게 밀착하여 대화하고 있다. 이 장면을 담은 사진이 북한의 대표 기관지에 대문짝 만하게 실린 바 있다.


각종 대북 방첩 작전과 잠재적 위협에 관한 정보 분석에 잔뼈가 굵은 이 사람이 바로 한국의 최정예 첩보원이기도 한 서훈 원장이다. 수년 간 그는 김씨 왕조 평양과의 외교전에서 막후 실력자로서 활약해왔다.


올해 예순 셋의 정보 관료로서 그는 지난 2000년과 2007년의 두 차례 남북 정상 회담을 가능케 한 백채널 가동에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두 번의 회담 관련해서는 현 김정은 위원장의 작고한 부친 김정일 위원장과 만남을 가진 바도 있었다.


북한의 진정성 있는 의도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일고 있는 시점인 바, 평양과의 대화를 주도해온 서훈 원장은 곧 워싱턴에서 미 행정부 관계자를 만나 남북 회담에서 체험한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설명할 예정이다.


또한 그는 한미 동맹을 열렬히 지지한다며 지난 해 국회 청문회에선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한다 할지라도 주한 미군 철수 주장은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오랫동안 대화 국면이 전개될 때마다 정보 관료들이 남북을 오가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은 한국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을 평양에 급파하며 얻은 결과였다.


1953년 한국 전쟁 휴전 단 몇 달 후에 출생한 서훈 원장은 온 일생을 남북간 체제 경쟁에 관한 직무 수행에 바쳤다. 1979년에 당시 중앙정보부에 입직한 후 28년간 차근차근 고위직으로 경력을 다져왔다.


1997년 7월에는 한국 관료 가운데 처음으로 북한 파견 근무라는 명을 받아 1994년 북미간 핵동결 협상의 일환이던 경수로 건설 사업단의 일원으로 북으로 갔다.


서훈 원장은 동해 연안의 신포시에서 2년이나 살았다. 그의 2008년 저서를 보면 당시 북측 당사자를 상대하기가 꽤 힘겨웠다고 전한다.


“주변 식당에 걸어갈 자유, 동네 해변가를 산책하는 일, 개인 신변잡기 같은 아주 사소한 일 하나하나가 북측과는 협상의 거리였다. 이런 사소한 협상도 쉽지 않았다.”


서훈 원장은 이후 남북 정상 회담을 기획하게 되면 더 광범위한 경험을 하였으며, 특히 이 과정에서 현 위원장의 부친이자 북한 최고 지도자였던 김정일 위원장과 꽤 오랜 시간을 함께 하게 되었다.


“김정일 위원장이 서 원장을 신임했다.”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였으며 2005년에 서훈 원장과 방북한 정동영 의원은 말한다. 당시 회담의 목표가 북한을 다시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일이었는데 서훈 원장과 김정일 위원장이 다섯 시간을 연이어 회의를 했다고 한다.


“서훈 원장이라면 김정은 위원장과 할 수 있는 한 많이 사소한 부분까지도 대화할 것 같다. 또한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이야기하며 분위기를 풀 수도 있다.” 정동영 의원은 말한다.


2008년 서훈 원장은 북한의 핵 전력 체제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냈으니 핵 개발의 목적이 북미 협상에서 체제 안전을 담보로 하기 위한 것이란 내용을 담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북한의 핵 전술 추구가 결코 항구적인 전략일 수 없음은 자명하다.” 이후 별도 단행본으로 발매한 박사 논문을 서훈 원장은 역설한다. “왜냐하면 외교 전략을 그런 식으로 펴봤자 궁극적으로는 북한의 성장에 제도적 한계로 작용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and



The Hundred Years’ War, England and France




백년 전쟁 이야기에요. 1337~1453년 사이 116년 동안

잉글랜드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전쟁입니다. 영국 아님.


월드컵이나 유로에서 봤죠? 오늘날 잉글랜드인과 프랑스인 사이에

남아 있는 묘한 경쟁심은 이 시기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이 때 죽어라고 싸워댔으니까요.


왜 싸웠남. 샤를 4세가 죽고 나서 왕위 계승 문제가 대두합니다.

원래는 플랜태저넷 왕가의 에드워드 3세에게 우선권이 있는데

발루아 왕가의 필리프 6세와 대립하게 됩니다.


또한 이때까지 잉글랜드 왕이 프랑스 왕의 제후로서

프랑스 일부를 봉토로 가지고 있었는데 프랑스 왕 입장에서

이를 쫓아내고 영토 지배를 확장하려는 의도도 있었고요.


더 복잡하게 하자면 할 순 있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면

왕가 사이의 헤게모니 쟁탈전입니다. 여기에 가스코뉴나

플랑드르 같은 봉토의 실효 지배권 문제가 걸렸고요.


가스코뉴는 지금의 프랑스 남서부 지방.

포도와 와이너리가 넘쳐나는 곳이고 이 지역 세금 수입만

당시 잉글랜드 전체 세수와 맞먹었다고 하죠.


당시 국력은 프랑스가 잉글랜드의 서너 배 정도..?

객관적 전력은 프랑스가 앞설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전쟁 전반기 전세에선 잉글랜드가 의외로 앞섭니다.

특히 아쟁쿠르 전투 등에서 엄청난 전과를 올리죠.


전쟁 후반기에 잔 다르크 같은 인물이 사기를 올리며

결국 프랑스가 승리합니다. 잉글랜드는 프랑스 봉토 대부분을

상실하고 브리튼 섬에만 머물게 되는 시기가 시작하는 거죠.


(즉, 이 전쟁에서 프랑스가 졌다고 가정해보면 오늘날

프랑스 영토 중간에 영국 땅이 드문드문 섞여 있는

현상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였을 것이란 말씀..)


백년 전쟁이 유럽사에서 중요한 의의가 몇 가지 있어요.

귀족의 기병전에서 시작하였으나 애초에 양국 국민에게 없던

민족 개념이란 것이 싹트는 계기가 되죠. (민족주의는 아님)


출발은 왕가의 헤게모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고 평민이나

농노들이야 심정적으로 딱히 감정이입할 필요가 없었는데

어느 순간에 국민 전쟁으로 발전했다는 뜻입니다.


(아 물론, 아직 민족 국가 개념이 나오려면 멀었어요.

30년 전쟁, 베스트팔렌 조약은 이삼백 년 쯤 지나야…)


또한 전쟁의 패배로 인한 나비 효과가 잉글랜드 왕가 간

알력 다툼으로 이어져 30년간 장미 전쟁이 터졌습니다.


장미 전쟁의 여파로 튜더 왕조가 개창하고

잉글랜드의 계급 및 권력 구조가 변동하는 등…

이후 청교도 혁명과 명예 혁명까지 이어지죠.


군사적으로는 귀족, 영주, 기사, 향사 등 지배 계급이

전쟁을 주도하는 양상이 퇴화하고 평민과 농노 중심으로

급료를 받는 용병 및 상비군 개념이 새롭게 대두됩니다.


전술 측면에서 궁병의 중요성이 기술적으로 극대화하기도.

석궁과 장궁이 역사상 가장 중요한 무기로 떠오른 시대이죠.

크레시 전투, 푸아티에 전투, 아쟁쿠르 전투까지..


군사 및 병기 이야기는 시작하면 길어지니

나중에 주요 전투를 중심으로 논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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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Coke: A True Democratic Judiciary

Who Enacted the Petition of Right, 17th Century




에드워드 코크라는 영국인이 있었습니다.

(원래 발음은 ‘쿠크’에 가깝다고 하네요)

500년 전에 활동하시던 판사이신데요.


이 분의 행적을 보면 요즘 사법 거래 파동과

여러 모로 비교를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네요.


1552년에 태어나 1634년에 돌아가셨으니

법관으로서는 주로 엘리자베스 1세제임스 1세

시대에 활동했고 말기에 찰스 1세를 거친 거죠.







Rule of Law라고 ‘법의 지배’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우리 같은 대륙법 국가에서는 법치주의에 대응되는데

보통법 국가들 법률의 기초적 구성 원리입니다.


(물론 법치주의와 법의 지배는 정의에 경미한 차이가 있어요.

법치주의는 보통 ‘모든 행위는 법의 규정에 의해 해야 한다’고

법의 지배는 ‘개인과 사회를 규율하는 법의 권위와 정통성’..

살짝 뉘앙스가 다르죠? 그냥 그런가보다 하시고.)


영국이나 미국 같은 보통법 국가에서 법의 지배 원리를

바로 세우고 시대에 맞게 해석하기 위해 안 보이는 데서

애쓰신 정말 위대한 법관이나 법학자들이 많습니다.


에드워드 코크가 그런 분 중의 하나이죠.

크게 두 가지 공적으로 유명하신 분이에요.


첫째, 본햄 판결을 통해 사법 심사의 개념을 개척하셨으며,

둘째, 1628년 권리 청원의 조문을 기초하셨답니다.


사법 심사, 즉 judicial review란 권력 분립 구도에서

행정부의 행정 행위나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이 헌법에

합치하는가를 심사하는 사법부의 견제 권한을 뜻합니다.


뭔가 비슷한 게 떠오르죠? 예, 우리 같은 대륙법 국가에서

헌법 재판이라고 부르는 절차가 곧 사법 심사입니다.


우리는 헌법 재판을 담당하는 기관이 독립해서 존재합니다.

이건 독일의 헌법 재판소나 프랑스의 헌법 평의회를 본따서

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독립 재판소가 아니라 최고 법원, 즉 대법원이 헌법 재판을

담당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미국의 연방 대법원이 그러하죠.


역사상 사법 심사는 행정부 견제 이전에 입법부의 입법권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먼저 발달했더랬습니다.


보통법 국가를 예로 들어 미국에서는 ‘마베리 대 매디슨’

사건(1801)이 사법 심사의 첫 판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헌법학 교과서에서도 자주 소개된 적 있죠?


영국의 사법 심사는 역사가 훨씬 길어 200년을 앞서가요.

1610년의 ‘닥터 본햄’ 사건이 첫번째 사례이고 이 판결을

내린 선구적 법관이 바로 에드워드 코크 경이었어요.


본햄 사건을 짧게 설명하면 의료 면허하고 관련이 있어요.

의회가 입법 절차를 통해 잉글랜드 내과의사 협회를

출범시켰는데 이 단체가 갑질이 좀 심했습니다.


전국의 내과의사 회원 숫자를 딱 24명으로 제한해 놓고

결원이 생기지 않는 한 대기 번호만 줄 뿐 절대로 면허를

허용하지 않았어요.


그냥 면허증 교부만 안 하는 수준이면 다행일텐데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은 심지어 구속하고 벌금을 때릴

수 있는 권한까지 행사한 거에요.


토마스 본햄이라는 용감한 외과의사가 여기에 반기를 들고

자신은 외과의사 면허도 있는 사람이니 내과의 면허 역시

확대해야 한다고 소송을 제기했죠.


(당시엔 외과의사와 이발사가 동종 업종으로 분류되고

내과의사는 이보다 상류 계급으로 거들먹거리던 시절ㅠ)


내과 협회는 이에 반발하여 본햄에 징역형을 때리고(!)

벌금을 대폭 인상하여 부과하는 등 갖가지 봉건적

패악질을 서슴지 않았는데…


에드워드 코크 판사는 애초에 협회에 이런 관습적 전권을

부여한 의회의 제정 법률 자체가 자유민의 천부인권을

침해하고 마그나 카르타의 정신에 위배된다 판결했죠.


그래서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의회의 입법권을

사법부 재판관이 견제하는 사례를 기록하게 됩니다.


그 후 이러한 적극적 해석의 정신이 미국에도 영향을 미쳐

마베리 대 매디슨 사건을 맡은 존 마샬 연방 대법원장이

건국 이후 최초의 사법 심사를 단행합니다.


에드워드 코크 경은 이후에도 존경받는 법관으로 남아

1628년에 왕당파와 의회파가 한 판 붙은 역사의 현장,

권리 청원의 조문을 기초한 판사로 한 몫을 톡톡히 합니다.


보셨죠? 애초에 사법 심사니 헌법 재판이니 하는 것들은

법관으로 하여금 정치적 이해 관계에 휘둘리지 말고

의회와 정부를 견제하라고 개발한 제도입니다.


썩은 대통령의 정치적 입김에 맞춰 판결을 거래하라고

만들어준 권한이 아니란 말입니다.


통치자의 똥구녘이나 핥으라고 판결을 거래하는 판사

나부랭이들이 사법부의 독립 씩이나 외친다고요?

재판관의 독립이라고라고요…


당신들 죽어서 에드워드 코크 같은 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나 있겠습니까, 판사님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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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회담에 어깃장 놓은 훼방꾼, 볼턴

https://www.youtube.com/watch?v=k1TpU4fWKQg




오늘 보도된 특종 기사 전문을 공개합니다.


어제 날짜 CNN 단독에다 다른 매체도 이미 보도해서

이미 알고 계신 분도 많을 텐데요.


회담 성공 직전에 지금까지 잘 쓰던 카드를 휴지통에

폐기 처분하는 액션 비슷하게도 보이고요.


볼턴은 뒤에 숨어 있는 파워를 대변하는 아바타에

불과할 뿐이다…는 느낌도 강하게 들긴 하지만.


어쨌든 보고 판단하시기를.

보도 내용 전문을 아래와 같이 싣습니다.







State Department Officials Say

Bolton Tried to Blow Up North Korea Talks

미 국무부, “볼턴이 북미 대화 날리려 했다”


Here’s what we have from the State Department. Officials believe that national security adviser John Bolton (who) made the Libya model remarks wanted to deliberately blow up those talks with North Korea. This is of course ahead of this June 12 Summit. According to sources, Bolton’s concern was that the talks would not go in the right direction for the United States. So we’re learning this was all on purpose. Michelle Kosinski is joining me now. Michelle, this is significant.

새로 들어온 소식입니다. 국무부 관계자 제보인데요. 리비아식 모델을 주장한 바 있는 국가 안보 보좌관 존 볼턴이 북미 대화에 고의적으로 훼방을 놓은 정황이 포착되었다는 소식입니다. 물론 6월 12일 예정된 정상 회담 전에 있었던 일이라고 하죠. 제보에 따르면 대화의 방향이 미국의 국익을 위한 쪽으로 흘러가지 않을 것 같다는 볼턴 보좌관의 염려가 반영된 일이었다고 하는데요. 결국 그간 경과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요. 본건을 취재한 미셸 코진스키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엄청난 뉴스네요.


Well, multiple sources are saying. There’s always been a question, when John Bolton the national security adviser brought up the comparison, “Let’s have North Korea denuclearize in the same way Libya did.” That was a quick denuclearization relatively. But everybody knows that North Koreans are infuriated by this model, because they’re not looking at the process of denuclearization so much as they’re seeing the end game, for Muammar Gaddafi was being killed years later by rebels backed by the United States.

예, 복수의 제보자를 통해 확인된 내용입니다. 사실 존 볼턴 국가 안보 보좌관이 리비아 비핵화 사례를 비교하며 ‘북한도 리비아 방식으로 추진하자’고 주장했을 때 이미 상당한 의문이 제기되었었죠. (리비아 방식은) 상대적으로 신속함을 요하는 식이니까요.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해 북한 측이 상당히 격앙된 반응을 보인 일을 모든 사람이 주목한 바 있는데, 북한은 비핵화의 방법이 무엇인가에 주목하기보다 비핵화 수순의 끝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가에 더 관심을 가진다는 분석이 있었고, 리비아식 해법의 결말로 가다피가 결국 미국의 지원을 받은 반군에 의해 처형 당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인다고 추정할 수 있었죠.


So when you hear John Bolton say this on television, and then the President picks up on it and repeats it, and then the Vice President picks up on it, and then they witness the blowback of this, knowing that it infuriated North Koreans and every one was angry about it. The question has been, “Why did Bolton bring this up in the first place?”

존 볼턴이 텔레비젼에 나와 이 말을 하고, 그 말을 다시 대통령이 받아치고, 또 다시 부통령이 이 말을 받아 인용하고, 이렇게 발언이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을 주욱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격노하는 모습을 지켜봤고 그래서 함께 분노를 표출했었는데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도대체 볼턴이 애초에 무슨 목적으로 이 발언을 끄집어낸 것인가’에 대해 항상 의문이 있었습니다.


Sources are saying that he too knew that this would have that kind of negative extreme reaction. But he wanted to throw this big monkey wrench into the works, possibly blow up the entire process of talks, because he thought that it wouldn’t end up in the US’s favor in the end. Whether that was because he felt like “North Korea wasn’t gonna play the game”, or he felt like “the US side wasn’t gonna be capable of getting everything they wanted, that is up for a debate among the sources.

제보자들은 볼턴 본인도 이렇게 극도로 부정적인 반응을 예상했다고 합니다. 대화 프로세스에 큰 장애물을 던져 버림으로써 훼방을 놓고 싶었다는 얘기인데요, 종국에 가서 회담의 결과물이 미국의 국익을 향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볼턴이 과연 ‘북한이 게임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고 본 것인지, ‘미국이 원하는 것을 얻어낼 능력이 안 될 것이다’고 여긴 것인지 여부, 둘 중 어느 쪽인지는 제보자 사이에서 의견이 나뉘고 있습니다.


But they feel that this was a deliberate attempt to shake things up. That then angered not only the President but the Secretary of State and the two of them then had a hidden conversation in the White House over this. This is why, according to one source, Bolton is now cut out of the process, cut out of the North Korea issue at least for now. And it’s really stunning to see, especially when he came in to make changes and to get things like this done.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판을 흔들기 위한 고의적 의도였다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합니다. 이런 면이 대통령 뿐만 아니라 국무 장관이 반발하게 만들었고 두 사람이 실제로 이에 대해 백악관에서 긴밀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죠. 제보자에 따르면 현재 북한 이슈에서 볼턴이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는 원인이라고 하네요, 적어도 현재까지 말이죠. 당초 볼턴이 어떤 변화를 주도하는 해결사로서 등장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참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Just wondering would be watching the relationship between Bolton and Trump after this moving forward. Michelle Kosinski, thank you very much.

볼턴과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가 이후에 어떻게 정립될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and




Ha-Joon Chang: Why You Should Know Economics




경제학자에게 속지 않기 위해, 정치와 정책은 곧 삶에 직결하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3pIFVYRYjks






역사적 제도주의, 네오 맑시즘, 포스트 케인지언, 개발 경제학 등

여러 학파로 분류가 가능한 케임브리지 대학의 장하준 교수님은

노벨상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평가받는 한국의 경제학자입니다.


물론 근접해 있다고만 할 뿐 실제로 받을지는 모르겠어요.

장하준의 업적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주류 경제학자들이

이쪽 사이드의 비주류 흐름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성향이 커서요.


장하준이나 토마 피케티가 받아야 한다면

70년대 말이나 80년대 초쯤 조앤 로빈슨도 이미 받았었겠죠.

(돌아가셨어요. 노벨상은 죽으면 안 줍니다.)


아, 물론 주류 경제학에 속하면서 수상 전망이 밝은

한국인도 얼마든지 계시죠. 미시의 조인구 교수님이라든가..


장하준 교수님이 몇 해 전 영국 왕립 예술 협회에서 강의한 서론 격인 모양인데

동영상 링크로 들어가면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으로 엮어 놓았습니다.


중간에 2014년에 출간한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에 대한

간략한 소개도 나옵니다. 원제는 Economics: The User’s Guide였죠.


https://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linkClass=130915&barcode=9788960514065

https://www.amazon.co.uk/Economics-Users-Guide-Pelican-Introduction/dp/0718197038


EU 디스하는 멘트가 나오는 것 보면 이 분의 좌파적 성향을

짐작할 수 있겠으나 다른 어떤 부분은 꽤 보수적이기도 하죠.


번역 자막은 동영상에 달려 있고

아래에는 연설 원문을 게재하니 많이 참고들 하세요.






I’ve tried my best to dispel this wide-spread perception that economics is too complicated for non-economists. Actually it sounds very strange because people have very strong opinions about everything. Iraq War, gay marriage, does God exist, global warming… You all have very strong views on these things, despite not having a degree in theology, not having a degree in energy economics, not having a degree in international relations.


But when it comes to economics, people say, oh yes, it’s for specialists, you know. I don’t know. But why? If you can have a very strong view on Iraq War or Afghanistan without a degree in international relations, you should have a strong view on government economic policy without a degree in economics.


I’d say that this is only because economists have been fantastically successful in making people believe that it is actually a lot more difficult than what it really is. So they will tell you, “Oh you know, I could explain it to you, but then you don’t understand.”


95 per cent of economics is common sense. Of course, it may look too difficult with the use of jargon and mathematics. And even the remaining 5 per cent can be understood at least, in its essence, if not in all technical details, thus if someone bothers to explain it to you in an accessible way.


For example, what is economics? I.e. the ethical foundations of economics, whether you can separate economics and politics, and how different ways of conceptualizing the economy affect the way we see the world, you know. For example, people think that today’s free market economics is a direct descendant of Adam Smith.


But this is not true. In Adam Smith and other so-called classical economists, the economy was conceptualized as being made of classes, not individuals. And the whole theory evolved around the way these different classes with different material interests behave and affect the way capital is accumulated, the economy grows, income is distributed, and so on.


Today in free market economics there are only individuals. When you’ve thought of ten people, oh, isn’t there a class? They say, no, that’s an old Marxists concept. If that’s the case, why do the marketing companies have all these class categories when they do marketing campaign strategy? They will look at groups, a, b, c… c1, c2, to target the advertising according to the type of people.


Now, many economists will tell you that economics is a science in which there is only one right theory. There are at least 9 different major schools of economics and several more if you count minor schools or split the major ones into sub-schools, each with its own unique strength and weaknesses.


And for free market economics alone, you have three different kinds; classical economics, neo-classical economics and Austrian economics. So actually there isn’t one right theory. And my contingent is that we need to all use that diverse approach to economics, in order to fully understand the economy, because they all make certain assumptions, they all have different underlying political and ethical values, they have all sources of different theories about how the economy grows, and so on.


And to make this point, I’ll give you the Singapore problem, or what I call, that life is stranger than fiction. If you read only the financial newspapers like Wall Street Journal or Economist Magazine, it’ll be only told that Singapore succeeded because of its free trade policy and its welcoming attitudes towards foreign investors.


This is partly true. I mean, they did have those things. But you will never be told that Singapore Government owns nearly 90 per cent of all the land. 85 per cent of housing is provided by government-owned housing corporation. And a staggering 22 per cent of GDP is produced by state-owned enterprises.


So in talking of Singapore, I always tell my student, “Look, give me one economic theory. Doesn’t matter what it is, Neo-Classical, Marxist, Austrian, Schumpeterian. Give me one economic theory that can explain Singapore.There isn’t. So you need to know these different theories to fully understand how a country like Singapore could succeed.


So in this regard my advice is that you should not be a man or a woman with a hammer by leaning only one kind of economic theory, because, whatever that theory is, once you believe that one theory is true, like the man with a hammer, you will start to see everything is a nail. So I’d say that you should get a Swiss knife.


In this dominant economic theory, i.e. up-to-date Neo-Classical theory, people are mainly conceptualized as consumers. And work is considered as, what these economists call, disutility that you have to put up with, so that you can earn money with which you consume goods and services and then derive pleasure or, what they call, utility. That’s your aim — deriving pleasure from consumption. But what happens in our workplace that fundamentally affects us, not just our immediate physical and psychological well-being, but also our identity, our sense of self-worth and our self-fulfillment?


This is why these days in many rich countries a lot of people are very unhappy compared to, say, a couple of decades ago, despite the fact that they have higher income. Why? Because work has become more stressful. But then economists tell you, “No, you should be happy. Britain today has twenty per cent higher income than, say, 1975. Why aren’t you happy?” My book is not just an explanation of economic theories and facts. It’s also a discussion about the role of economics in public life. And in this regard I have three sets of observations to make.


The first one is, “Never trust an economist,” and that includes me. You know, professional economists like to say, “ah, we know what is correct.” No, they don’t have the monopoly of the truth. I’ve already told you that there are 9 different kinds of economic theory. So the right conclusion depends on which economists you talk to.


And I argue that it is entirely possible for people who are not professional economists to have sound judgements on economic issues. I even argue that sometimes their judgements may even be better than those of professional economists, because they may be more rooted in reality and less narrowly focused.


And I argue that indeed the willingness on the part of ordinary citizens to challenge professional economists than other experts, is a foundation of democracy. If you really believe that all we have to do is to listen to the professional consensus of the experts, why do you need democracy? Yes, let self-elected elites appoint each other and run the world, you know. This is why a lot of people are unhappy with European Union.


The second point is the Latin phrase that is apparently written on the walls of the city hall of Gouda, the city in the Netherlands which is famous for cheese. I’m not even going to pretend to speak Latin, and so basically it says, “Listen even to the other side.”


And I argue that this is the attitude that you have to have in debating on the economic issues. I’m not suggesting that you should have no opinion of your own. What I’m trying to tell you is that, given the complexity of the world and given the necessarily partial nature of all economic theories, you should be humble about the validity of your own favorite theory and should keep an open mind about it.


Finally, even while I constantly make reform proposals, I emphasize, “How difficult it is to change the economic reality.” Sometimes the reason is obvious. People who benefit from the status quo want to throw the change by any means, lobbying, bribery, media propaganda and even violence.


The status quo often gets defended even without some people actively being evil. Because the thing about market system is that the rule is one dollar : one vote. So this means that the ability of those with less money to refuse undesirable options given to them is highly constrained.


Also we can be susceptible to beliefs that are against our own interests. The best example is what happened when Barack Obama tried to reform the American medical insurance system. There were all these pictures of all pensioners demonstrating against what they call Obamacare with placards saying things like, “Government, hands off my Medicare.”


Well, except that Medicare is the government programme. This is what the Marxists used to call ‘false consciousness,’ or also known as, the Matrix the movie.


But acknowledging that the difficulty is involved in changing the economic status quo, should not make us give up the fight to create a better economy and better society. Yes, changes are difficult, but in the long run, if enough people fight for something hard enough, many impossible things can happen.


Don’t forget, 200 years ago, if you suggest America should abolish slavery, you’d be branded at least unrealistic and probably the luny. 100 years ago the British Government put women in prison for asking for vote. A lot of women actually said, “Why do we need vote? We have our husbands and brothers to represent our views.


Well, this is why I quote Antonio Gramsci, the Italian Marxist, who once said that we need to have pessimism of the intellect but optimism of the will. Yes, you have to accept difficulties of changing the status quo, but you have to believe that this can be done. And, finally, as Nelson Mandela used to say, it always seems impossible until it is done.






and




Edward Longshanks,

The Most Unsung King of Middle Age England






에드워드 1세는 영국인들 말고 외국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잉글랜드의 국왕인데요.


잉글랜드의 역사에서 의외로 중요한 사람이기에 소개해요.


이 왕의 재위 기간이 1272년에서 1307년인데

이렇게만 써놓으면 감이 잘 안 오죠.






중세 잉글랜드의 왕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

사자왕 리처드 1세이겠죠? Richard the Lionheart..

(요새는 사자심왕이란 표현도 퍼지고 있는 모양)


사자왕의 재위 기간은 고작 10년에 불과했지만

십자군 전쟁에서 눈부신 전쟁 기술로 살라딘과 자웅을 겨뤄

평민들에게서 엄청난 호응을 얻게 되었죠.


사자왕의 뒤를 이은 국왕이 존 왕인데 유명합니다.

나쁜 의미로. 바보짓을 많이 했죠.


절대 왕정 개념이 등장하기 전이니까

이 시절의 국왕은 명목만 있고 실권이 없었어요.

그냥 더 이름있는 영주라고 불러도 할 말 없는..


그런데 전쟁을 벌이겠다고 뻘짓을 한 거에요.

영주들에게 군사를 모아라, 세금을 걷겠다 하는… 헐.


영주들이 고분고분할 리가 없겠죠? 그래서 대꾸했대요.

“그래, 하라는 대로 할테니 여기 서명 좀 하실라우?”


그렇게 해서 서명한 계약서가 민주주의 최초의 문서라는

대헌장, 마그나 카르타… 역사상 최초로 왕권을 견제한 사건이고

오늘날 성문 헌법이 없는 영국의 불문 헌법 중 하나랍니다.


이 뻘짓 존 왕의 아들이 헨리 3세, 손자가 에드워드 1세입니다.

오늘날 영국인들은 Edward Longshanks라고 기억합니다.


롱다리 에드워드라는 뜻이에요.

키 188센티미터의 장신이었다 하죠.


에드워드의 정적은 시몽 드 몽포르라는 귀족이었어요.

몽포르가 귀족들을 규합하여 의회를 소집하고 내전을 벌였는데

에드워드와 아버지가 붙잡혀 수모를 당했다고 하죠.


이후 절치부심하여 몽포르를 죽이고 집권합니다.

집권 후에는 현명한 정책을 여러가지 펼쳤어요.


의회를 소집한 것은 몽포르였지만

에드워드는 현명하게도 의회 운영 방식을 그대로 계승하여

유연하고 원활하게 국정을 펼쳤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수많은 법령을 제정하고 정비하였다든가

양모나 양주 등 유치 산업을 장려하여 국부를 증대했다든가

스페인과 프랑스와의 외교전에서 활약하였다든가…


특히 모범적인 의회 운영으로 명성이 자자하죠.

영국 의회주의의 전통이 에드워드 1세 치세로부터

시작하였다고 보는 의견이 다수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영국의 역사가들은 에드워드 1세를

흔히 잉글랜드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로 부르곤 합니다.


지금의 잉글랜드라는 나라의 국체를

실질적으로 개창한 군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잉글랜드는 백년 전쟁과 장미 전쟁을 거쳐

튜더 왕조에서 전성기를 맞게 되요.

(이 시기는 아직 플랜태저넷 왕조)


에드워드 1세의 미디어 출연이 많지는 않은데

가장 유명한 작품이 공교롭게도 ‘브레이브하트’네요.


1995년작 멜 깁슨 감독 및 주연.

‘공교롭게도’라고 한 이유는 다들 아시죠.

이 영화가 엉망진창 고증으로 워낙 유명한 작품인지라…ㅠ


작품의 고증에 대해서는 나중에 깊게 따지고요.

여기서 에드워드는 패트릭 맥고한이라는 명배우가 열연했는데

음흉하고 정쟁에 능한 변태 늙은이 비슷하게 묘사가 되긴 해요.


너무 믿지는 마시고 특히 소피 마르소가 분한

이사벨라 왕자비 파트는 완전 픽션이니.. 그냥 잊으세요.

기억에서 걷어내시기 바랍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 입장에서 에드워드 1세를

폭군으로 인식하는 것은 팩트 맞습니다.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 입장에서 성군이고 명군인 것 역시 팩트입니다.


특히 의회 정치의 시작점이란 점이 중요합니다.

이 한 가지는 기억해 두시기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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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on Kuznets and National Accounts






국민 계정이라는 개념에 이르러 경제학사는 급기야

고전학파에서 케인스 경제학이 갈라져 나오는 순간을 맞습니다.


국민 계정은 엄청 종류가 다양하지만

여기서는 국내 총생산 한 가지로 단순화하겠어요.

여러 계정의 차이점에 대해선 나중에 기회 있을 때…






쿠즈네츠와 국내 총생산


국민 경제 전체의 지표를 객관화한 데이터를 통해

측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고전파 내에서도 들불처럼 일어났고

대공황과 케인스 혁명을 기점으로 새로운 개념이 탄생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국민 소득, NI이죠. national income.

사이먼 쿠즈네츠가 처음으로 도입했고 공식은 아래와 같아요.


GDP; Y = C + I + G + NX

  GDP 국내 총생산. 경제학에서는 보통 Y로 표현해요.

  C, consumption 소비 지출. 곧 가계의 경제를 가리키죠.

  I, investment 투자 지출. 곧 기업의 경제를 가리켜요.

  G, government 정부 지출. 곧 정부 부문의 경제.

  NX, net export 순수출 = (수출) — (수입).

   수출하고 수입받아 남은 것. 마이너스일 수도.


연습 문제 같은 데서 가정이나 계산의 편의를 위해

종종 순수출은 생략하기도 합니다.


이 정도는 외워도 좋을 듯해요.

Y가 C와 I와 G로 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포인트에요.


쿠즈네츠는 소련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망명하신 분인데요.

통계 데이터 연구에 큰 영향을 받아 이런 업적을 남겼습니다.


진정한 거시 경제학이 케인스가 아닌 쿠즈네츠로부터

시작했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죠. 이해가 가죠?

(그럼 케인스는? 그는 혁명가니까…ㅎ)






국민 경제 삼면 등가의 법칙


삼면 등가의 법칙이란 것도 - 일본에만? - 있는데

생산지출분배 세 사이드에서 국민 소득을 바라보는 개념이고

각 사이드의 국민 소득 값 총액이 바로 GDP입니다.

생산의 NI, 지출의 NI, 분배의 NI 세 값은 서로 같답니다.


보통 정부에서 거시 경제 통계를 낼 때는

주로 납세 데이터를 기준으로 집산하면 편한데요.


생산의 NI란 제조업과 서비스업 기타 산업의

부가 가치를 총합산하면 되니까 부가 가치세 신고액을

기준으로 계산할 수 있을 겁니다.


분배의 NI는 임금, 이윤, 감가상각비 등으로 이루어지고

(근로)소득세나 법인세를 합산하면 접근할 수 있을 거에요.


가장 중요한 측면은 역시 지출의 NI이죠.

Y가 C와 I와 G와 NX로 구성되고 이 각 요소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 요인을 분석하는 것이 거시 경제의 관건이 되겠어요.






수출입과 소비를 결정하는 요인


C와 I와 G와 NX 중에서 G는 정부 지출인데

보통 단순화한 경제 분석에서는 상수로 놓고 제외하곤 합니다.

C와 I와 NX를 중심으로 주로 분석하죠. 소비투자수출입.


무엇이 한 나라의 수출과 수입에 영향을 미치느냐.

보통 세 가지 꼽아요. 상대국의 GDP(즉 교역량),

자국과 상대국의 물가, 자국과 상대국 사이 환율. (덤으로 기축 통화까지)


다음 무엇이 가계의 소비 지출에 영향을 미치느냐.

케인스 이후 대두된 중요한 요인은 보통 물가와 금리입니다.

그 외에 재산과 미래 소득을 보기도 하고요.


물가가 오르면 가처분 소득이 줄어드니 지출이 줄어들고

물가가 내리면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니 지출이 늘어나겠죠.


금리가 오르면 저축이 늘어나니 지출이 줄어들고

금리가 내리면 저축이 줄어드니 지출이 늘겠죠.


그런데 물가는 그렇다 쳐요.

금리가 내리면 저축이 줄어드는 거 맞아요?

은행 이자율 내렸다고 일반 소비자가 돈을 펑펑 쓴다고?


약간 이상하죠. 현대에 와서 이자율과 소비의 상관성은

크게 지지를 받지 못함이 통설인 것 같습니다.






투자 그리고 앞으로의 한반도 경제


금리가 내려가서 투자가 늘어난다, 그건 맞을 수도 있어요. (어쩌면)

금리는 투자 자산의 할인율에 직접 영향을 준다 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투자는 금리의 영향을 받긴 받는다… 이긴 할텐데

지금의 경제에 별로 들어맞지는 않는 것 같죠?


초이노믹스가 끝모르고 금리를 깎았다 하여

재벌의 사내 유보 자금이 공공에 풀렸냐고요.

주택 대출만 고삐 풀려 가계 부채가 산처럼 쌓였겠죠. 이상하죠?


기업의 투자 유인이 과연 금리나 할인률일까에 대해선

케인스 본인도 의구심을 품었고 이후 프리드먼도 동의했죠.

(물론 의미는 많이 다르겠습니다만.)


케인스는 유동성 함정 때문에 금리가 곧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다 했고

프리드먼은 금리가 아니라 통화량을 직접 통제해야 한다고 했고요.


케인스는 일찍이 기업가의 동물적 감각을 논했던 분입니다.

그게 뭔지는 이제 와서 별 중요치 않은 것 같고 속뜻만 알면 되는데

결국 유망한 투자처나 거시적 성장 기회를 보는 자본가의 전망 아닐까요.


도약할 수 있는 성장의 기회…

(한반도 대운하 이런 거 말고-.-)

남북 신경제 지도, H 벨트.. 뭐 이런 거. 괜찮겠죠?


인터넷 뒤지면 H 벨트 얘기가 많이 나올 겁니다.

미리미리 보세요.


역사상 최초로 임금 주도 성장론이

데이터로 실증되는 그 현장을

곧 라이브로 목격하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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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Economists Reacted to Recurring Depressions




경제학의 나이는 참 짧습니다.

국부론이 나온 1776년을 기준으로

이제 겨우 240살을 넘겼을 뿐이죠.


처음 나왔을 때 경제학은 고전파라고 불렀고

스미스는 경제학이라고 하지도 않았어요. 도덕 철학이라고 했죠.

마르크스 때만 해도 정치 경제학이었습니다.


240여 년을 숨가쁘게 달려왔지만

다른 학문에 비해선 엄청 짧은 역사이기에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역량이 있다고 속단할 순 없네요.


온 세상을 뒤흔드는 경제 문제가 불거질 때

갑론을박하는 경제학자들의 모습을 흔히 역사에서 볼 수 있어요.

경기 침체나 불황, 공황 같은 지구적 재앙일 경우 말이죠.






19세기 후반 장기 불황


1920년대까지 경제학이란 그랬어요.

이미 한 번의 장기 불황이란 것을 겪었더랬죠.

이른바 Long Depression.

1873년에서 1897년까지 장장 20여 년을 끌었었죠.


장기 불황의 시기는 크게 둘로 나뉩니다.

1873~1879년에 첫 불황이 영국 등 서유럽을 타격했고

1893~1897년에 두번째 불황은 미국과 남미를 타격했죠.


불황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서는 아직도 썰이 난무하는데

19세기 후반 2차 산업 혁명과 얽혀 철도 인프라의 과잉 공급에다가

독일 제국 대두 등 정치 지형 변화로 인해 통화량 변동에

유인이 발생한 점이 결정타인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 되었든. (장기 불황은 나중에 더 들이파보죠.)

고전학파 경제학이 뭐했냐 하는 자성과 비판이 일어났겠죠.






대공황과 1920년대 고전파


급기야 대공황이 터집니다. 곧 Great Depression.

저것들 도대체 뭐하는 거지? 이런 비판이 안 나올 수 없겠죠.


내 기억으로는 적어도 1920년대에 고전 경제학계 내에서

이래갖고는 안 되겠다 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많이 나왔어요.


1923년에 존 모리스 클라크가 발표한 논문은

케인스가 승수 효과를 끌고 오는 데 직접 영향을 줬고요.

1931년 저서는 직접 승수 개념을 공표한 바 있어요.


1926년에는 독점 기업을 사회적으로 통제 안 할 거냐,

이런 논문을 발표했죠. 요즘 시점으로 지극히 당연한..


어빙 피셔 같은 스타 경제학자가 뻘짓을 저질렀기에 더욱 돋보였죠.

피셔의 뻘짓이란… 1929년 대공황 9일 전 인터뷰에서 그랬대요.

“주가? 고원(high plateau)처럼 호황세를 지속할 걸.” 맙소사 이 양반아.


여전히 피셔 방정식을 쓰고 있지만

경제학자의 한줌 지식이 세상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음은 자명하지 않은가 조심스럽게 주장해요.


피셔의 평생 라이벌이었던 스웨덴 경제학자

크누트 빅셀은 케인스 등판 훨씬 전부터

재정 지출이 균등 분배에 기여해야 한다는

1세기 쯤 시대를 앞선 주장을 펼치기까지 했어요.


스웨덴식 복지, 북유럽식 경제..

말은 많이 하는데 사실 기원은 빅셀이었던 겁니다.

이후 군나르 뮈르달 같은 학자가 뒤를 잇게 되요. 장하준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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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New Point of No Return?




간밤에 전쟁 한 번 났다가

평화 협정까지 갔다 온 기분입니다.


사안의 결과에 따라 운명이 왔다갔다 할 처지에 있으면서도

기밀 정보에서는 소외되어 있는 한반도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좋을 만한 논점을 몇 개 적어 볼께요.


번째, 이번 일은 북미 양국의 수뇌부, 즉 정상이 아니라

서로를 혐오하는 강경파들이 한 번 붙은 사건인 것 같습니다.


트럼프와 김정은 두 사람이 맞붙은 일이 아니고요. (다행이죠?)

존 볼턴, 김계관, 최선희 모두 기존 외교 문법에 익숙한

구시대적 인물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수뇌부가 직접 나서서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여지가 아직 충분히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번째, 이번 일로 한 가지가 너무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정치권 내 입지가 엄청나게 좁다는 거죠.

좁은 정도가 사람들이 늘상 상상하는 범위를 초월할 정도로요.


특히 볼턴의 뒤에 도사리는 네오콘, 또한 공화당 주류로부터 오는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가 트럼프를 옥죄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 정도 선에서 저들의 원성을 한 번 들어주지 않으면 다음에

무슨 일이 터질지 알 수 없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나 해요.


또한 북한 내 기득권 강경파의 반발도 꽤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얼핏 지나가는 자막으로 비슷한 뉴스가 최근에 있었죠.

강경파가 김정은을 공격했다고… 설전이 있었던 모양이죠.


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를 믿고 갈 수 있겠는가…

공개 서한이 이례적으로 정중하게 톤 다운을 유지한 점을 볼 때

아직은 믿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거에요.


회담을 취소하는 것까지는 강경파의 손을 들어줄 수 있었지만

취소의 형식인 서한의 톤은 철저한 트럼프 어법이었다고 봅니다.


의외로 정중한 어법을 세심하게 배치한 것을 보고 솔직히 놀랬습니다.

편지의 어법만 놓고 보면 19세기 연애 편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간밤의 사건에서 놀랄 만한 지점은 실은 두 가지였죠.

갑자기 취소를 했고 그 형식으로 편지를 보냈다는 것,

또 하나, 그 편지의 어조가 엄청나게 정중했다는 것..


번째, 가장 논란 거리일 수도 있는데.. 조심스러운데요.

이런 충격 요법을 쓰기 직전에 만난 우리 대통령과

어떤 식으로든 의견 교환이 있지 않았겠는가… 예측합니다.


갑자기 취소 통보를 하면 어때요.. 이렇게 대놓고 묻진 않았겠죠.

그러나 북한을 대화 마당으로 끌어내는 큰 액션이 하나 필요하다는

기본적인 줄거리에는 우리 대통령이 합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왜냐하면 간밤 브리핑에서 폼페오 장관이 분명히 밝혔거든요.

북한이 싱가폴 회담 사전 소통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회담을 이행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당연히 국제 관례상

이런 절차에 응했어야 마땅한 건데 북한이 안 했다는 거죠.


이 불소통의 배경에 북한 강경파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나 하고

미국을 상대로 자존심 세우기 일변도의 기존 문법만 고집한

북한 기존 외교 라인이 오판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몰랐을까요. 천만에..

이에 대한 대응책을 의논하는 것이 엊그제 한미 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였을 것이고요.


다섯번째, 언론 보도로 드러나지 않은 의외의 걸림돌이 있는 듯하고

단둥 회담으로 드러난 새로운 북중 관계가 바로 그 복병인 것 같아요.


한미 회담 전 이례적인 기자 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맥락과 크게 상관 없는 몇 개의 언급을 해서 의아했어요.


이를테면 교역 문제를 언급했다는 거죠.

한미 관계에서는 교역 문제가 이미 일단락된 상황인데..

아, 저건 지금 진행 중인 미중 무역 전쟁을 뜻하는구나.. 생각했죠.


일반인에게 아직 드러나지 않은 정황일텐데

시진핑이 미국과의 무역 전쟁 구도를 한반도 문제에 끌어다

연결짓는 모종의 시도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추정합니다.


단둥에서 이와 관련한 제안을 북한에 했거나

아니면 미국이 그렇게 오해할 만한 정황을 연출했거나..


어쨌든 트럼프의 머리 속에는 지금 중국이라는 변수가

새롭게 등장하여 지끈지끈 두통을 일으키는 중인 듯합니다.


시진핑의 공작이 무엇인지 정보가 전혀 없어 모르겠는데요.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남북미 3자 관계로 종전 선언까지 극적으로 갈 수 있는

드라마틱한 그림을 깨버릴 정도로 파급 효과가 큰 무엇이라는 것.


시진핑의 머리 속에는, 트럼프 주도 하의 남북미 3자 구도를

깨버리지 않으면 향후 수십 년간 한반도 문제에 중국이 끼어들

여지가 사라져버린다..는 다급함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많은 전문가들이 지금까지 자제해왔던 대북 경제 원조일 거라고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만.. 글쎄요, 잘은 모르겠네요.


이상… 써놓고 보니 소설이 너무 많긴 하네요.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아,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듯이

이것이 트럼프 식 벼랑 끝 협상 전술이라고 본다면

이런 충격 요법으로 얻을 만한 대가가 있을 것인가.


있습니다. 6월 12일 판문점으로 바뀐다면

이보다 더 극적으로 미디어의 조명을 받을 수가 없는 거죠.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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