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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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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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y, the ally is never an issue now, stupid!




우리가 지금 자극적인 헤드카피에 일희일비할 때인가 싶음

https://www.theatlantic.com/international/archive/2018/05/moon-south-korea-us-alliance/560501/


디 애틀랜틱은 보스턴 소재의 월간지 정도에 해당합니다.

아주 월간은 아니고 연 10회 정도 발간한다고 하더군요.


심층 보도 전문 정론지 정도로 볼 수 있을 텐데

지역이 지역인 만큼 백인 보수층에 어필하는 기사가 많은 듯합니다.


문정인 교수님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세력이 창궐하네요.

전문 번역 보시고 판단하시길.


본건에 대한 분석은 5월 21일 뉴스 공장에 나오신

김종대 의원 논평을 참고하시면 거의 정확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m7AIfY4ln0


다만, 한 가지는 김종대 의원에 동의 안 하는데요.

본건을 왜곡하고 자극적 카피를 뽑은 주역은 미국인 기자 본인입니다.

조선일보는 충실하게 번역했을 뿐이죠. 맨 앞 두 단락만.


본 블로거는 그렇게 보네요.


헤드카피가 자극적이라 문제가 되고 있음을

언론사 자체적으로 알아차리기는 한 모양.


5월 21일 경에 ‘Get Rid Of’를 삭제하고

Questions’(동사)로 수정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5월 17일자의 원문으로 게재합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경우 삭제하겠습니다.






A Top Adviser to the South Korean President

Wants to 'Get Rid Of' the U.S. Alliance

대한민국 외교안보 특보, ‘한미 동맹 종식을 바라다’


북핵 협상에 참여한 주요 인사 문정인 특보가 대한민국 안보의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


우리 프리드먼 기자


2018년 5월 17일


대한민국 대통령의 특별 보좌관이 한미 동맹의 종결을 보고 싶다는 발언을 했다. 얼핏 트럼프 비슷하게도 들리는 어조로 문정인 외교안보 특보는 일반적인 국제 관계에서 동맹이란 것이 “아주 부자연스런 것”일 수 있다며 “개인적으로야 동맹을 종식하는 것이 최상책이라고 본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조국의 이해 관계에 더 부합하는 조정 과정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당분간은 “주한 미군의 지속적인 주둔”을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한다.


이는 당면한 북핵 협상에 결정적인 자문역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국측 고위 인사로부터 나온 발언치고는 상당히 주목할 만한 것이다. 한국이 1950년대 이후 북한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해 한미 동맹에 의존해온 것이 사실이며 북한이 오랫동안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해왔기에, 동맹의 존속 여부가 앞으로 있을 김정은 — 도널트 트럼프 북미 협상에서 상당한 논쟁의 여지를 남길 의제임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의 당국자들은 동맹이 협상의 거래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계속 못박아왔다. 여기에 오로지 사견일 뿐임을 전제로 하며 문 특보는 동맹 관계가 아시아 안보 지형의 미래에 논리적 의제로 떠오를 수 있지만 북핵 협상 테이블에 오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의제가 지속되어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제고하는 기회로 발전할 경우 동맹 관계에 대한 새로운 셈법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가능은 하다.


“중단기적으로 한국이 동맹에 의존함은 불가피한 일일 터이다.” 본지 기자가 최근 서울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 문 특보(연세대학교 석좌교수 겸임중)가 한 말이다. 이 말은 때마침 워싱턴의 핵 폐기 요구에 전면 취소로 협박해온 북한의 극적인 움직임이 금주에 나오기 전에 이루어진 논평이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지금의 동맹 체계를 일종의 상호 안보 협력 체제 같은 것으로 전환하는 일에도 희망을 걸어본다. 왜 우린 항상 서로를 잠재적인 주적 내지 준적으로만 다루어야 하겠는가?”


대중국 억제력으로 아시아에 동맹 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미국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이 가설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남한이 새로운 “동북아 안보 공동체”를 구성하는데 지지하고 나서는 상황을 가정해 보라며 문 특보는 말한다. “한국은 중국의 편을 들 필요도 없고 미국의 일방적 편을 들 이유도 없어진다. 우리 입장에서는 양 강대국에 우방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평화와 안정과 번영을 지속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문 특보는 — 일찍이 트럼프가 지적했듯이 — 동맹의 부담에 대해 얘기한다. 동맹 체계로부터 벗어날 경우 “한반도는 지정학적 멍에나 지정학적 함정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기자는 그가 한국이 갈등 상황 종식의 주체로 나서기 위해 군사 문제에서의 대미 의존도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던 몇 해 전 발언에 대해 질문했다. 문 특보는 일전에 미국을 안보 동맹으로, 중국을 교역 대상으로, 북한을 안보 위협으로 대하고 있는 남한의 상황에 개탄해 마지 않으며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일”이라고 표현한 바 있었다.


미국이 아시아나 유럽이나 북미에 맺고 있는 동맹 관계를 훼방하는 주역은 보통 트럼프라고 인식된다. 한국에 대한 FTA 재협상, 미군 주둔 비용 인상에 대한 압박과 함께 북한에 대한 초강경 공세는 모두 한국 내 여론을 크게 뒤흔들어 놓았다. 하지만 문 특보의 논평에 따르자면 한국 대통령을 위시한 주요 관계자가, 특히 남북미 평화 협상을 체결할 때 이에 대한 반대 급부로 북한이 단계적으로 수 년 내 취할 핵 폐기 수순이 가시화할 경우에, 동맹의 현실적 효용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맹의 미래란 것이 워낙 첨예한 사안인지라 언급만으로도 최근 한미 양국에 상당한 잡음을 일으킨 바 있다. 이번 달 초 트럼프가 — 앞서 제임스 매티스 국방 장관이 한미 동맹 및 북한 문제 관련하여 언급하기도 했던 — 28,500명 주한 미군 중 일부의 철수 가능성을 알아보라고 국방성에 요청했음이 뉴욕 타임스 보도로 알려지자, 존 볼턴 보좌관이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일”이라 일축하였고 한국 정부 역시 국민들에게 사태를 진정시키는 발언을 긴급 공표한 것이다. (2016년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중 70퍼센트가 현 주한 미군 체제 유지에 찬성하였으며, 2018년 여론 조사에서는 한국인 중 무려 96퍼센트가 반드시 한미 동맹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북핵 협상의 중대성으로 익명을 요구한 한 한국 관료는 최근 밝히기를 북한조차도 주한 미군 철수를 “절대로 요구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관료의 표현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미국을 일종의 동아시아의 “균형자”로 인식한다고 하며 “한반도 안보 및 번영을 위한 기반이 바로 미국”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햇볕 정책 실행 계획의 진보적 입안자이기도 한 문 특보를 만났을 때 그는 한미 동맹을 조국 안보의 필수 불가결 요소로 생각하는 한국 보수층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받고 있던 중이었다. 그들 보수층의 심기를 건드린 부분은 문 특보가 포린 어페어 기사에서 평화 협정 체결시 현재와 같은 주한 미군 유지를 “정당화할 이유를 찾기가 힘들지도 모른다”고 언급한 점이다.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고 (문 특보가 한 편으로는 보좌관이지만 또 한 쪽으로는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학자라며) 평화 협정과 주한 미군 지위의 직접적인 연계 가능성을 부인하였다.


그러나 문 특보는 계속해서 — 구체적 일정은 빼고 — 남북 통일의 장기 시나리오 청사진을 제시해본다. “통일이 되면 우리 앞에는 아주 힘들고 어려운 선택지가 놓이게 된다. — 계속해서 미국의 편을 들며 중국을 적대시하는 균형 블록에 편입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중국과의 시류에 편승하며 대미 관계를 그대로 둘 것인가. (그게 아니면) 아예 홀로서기로 독자 노선을 걸을 것인가.” 그의 개인적 선호는 분명하다. “북한과 같은 공동의 적이 사라진다고 가정한다면, 동북아 공동의 상호 안보 체계를 구축하는데 훨씬 더 주체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게 된다.” (한국 내 여론은 중국보다 미국을 더 우호적인 나라로 인식하고 있고 한국인 상당수가 통일 한국에 가장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나라를 중국이라고 본다.)


문 특보는 그를 비난한 사람들이 포린 어페어 기사에서 자신이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했다는 오독을 저질렀다고 한다. 그는 단순히 분석적인 관점을 제시한 것이었다. 김정은이 평화 협정의 조건으로 주한 미군 체제 종식을 요구해올 경우 “사실 문제는 철수 이후에 올 것이다”는 점이다. “낡은 시대의 적국이 사라질 경우” 필연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질 쪽은 오히려 미국인들인 것이다. 바로 “북한이 없어졌는데 한국에서 미군은 뭘 하고 있는 것인가?”란 질문이 그것이다. 문 특보는 설명한다. “한국의 진보층 중 일부가 같은 질문을 던진다. 평화로운 한국에서 외국 군대가 왜 필요한 것인가? 트럼프가 재선되면, 아니 재선되기 전이라도 또 따지고 들 것이다. 봐라. 평화가 왔지만 미군은 여전히 한국에 있다, 한국은 주둔 비용을 더 대야 한다고. — 미군이 주둔하는데 드는 비용 중 이제는 전체 다 부담해야 할 때가 온 것이라고. 이렇게 되면 한국에서는 아주 새로운 국면의 논의가 벌어진다. 통일 후 주한 미군의 지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내 입장은 분명하다. 북한에서 별다른 반대 의견이 없다면, 평화 협정 이후에도 주한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자는 것이다. 주한 미군이 “동북아에서 집단 안보상의 이익”을 제공함이 분명하므로 한국 내 여론이 지나치게 갈라지는 것도 피할 수 있다고 문 특보는 설명한다. 그러나 “평화시 주한 미군의 주둔 목적, 역할, 규모”는 변화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당장 북한에 대한 남한 영토의 보호라는 명분이 사라지고 지역 안정을 유지하는 것으로 당면 과제가 이동할 터이다.


만약 북한이 끝내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한다면? “그럼 아주 큰 문제이다”라고 그는 대답한다. “그렇게 되면 평화 협정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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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lton, Another Name of Bannon




매파 네오콘 존 볼턴에게 시시각각 닥치고 있는 운명의 다른 이름, 스티브 배넌

https://www.independent.co.uk/voices/john-bolton-north-korea-donald-trump-libya-kim-jong-un-bannon-pompeo-a8354206.html






네오콘의 발악이 마지막까지 화려하게 꽃피고 있습니다.

마지막 불춤을 추는 나방들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지난 5월 16일 영국 진보 일간지 인디펜던트 기사에서는

존 볼턴이 결국 스티브 배넌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아예 악담을 퍼부었습니다. 킴 센굽타 기자..


트럼프 선거 캠프의 일등 공신이었다가

트럼프 행정부 내 계파 싸움에서 밀려 얼마 전 쫓겨난

인물이 스티브 배넌입니다. 홍보 전문가죠. 이 분.




(트럼프에 줄선 계파는 기존 공화당 노선과 궤적이 다릅니다.

나중에 한 번 들이파보죠.)


볼턴은 베트남전 당시 병역 기피자나 다름없던 것은

또다른 깨알 팁… (단, 주방위군으로 복무는 했었어요.)

— 하지만 주방위군 후방 복무는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빼박

병역 기피로 간주했다..고 미국인들이 전합니다. 내 말 아님.


아, 그리고 읽다 보니.. 의외로 마이크 폼페오 일 잘 하네요.

취임할 때 약간 걱정했는데. 볼턴 옆에 있으니 왠지 비교됨.


폼페오의 건재와 볼턴의 해고를 기원하며

기사의 주요 부분을 발췌합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경우 삭제하겠습니다.






김정은이 트럼프와 협상 취소를 위협하는 상황이라면

존 볼턴의 운명은 스티브 배넌과 같을지도


Kim Sengupta 저


… 국가간 합의 이행에 신뢰를 보여주지 못한 미 행정부의 노선을 놓고 핵 협상 재개에 의문을 표한 북한의 입장이 별로 놀라울 일은 아닌 것이다.


… 북한은 과거부터 리비아가 핵 무기를 유지했다면 서방 세계로부터 공격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견지해왔다. 가다피 부자의 시신이 미스라타 정육 창고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광경을 보았다면 김정은이 똑같은 상황이 들이닥칠지 모를 운명을 왜 한사코 거부하는지 이해할 것이라는 말이다.


… 평양은 그간 취할 수 있는 모든 양보 제스처는 다 취했다고 여긴다. 남북 회담 이후 미사일 실험을 유예했고 세계 언론의 참관 하에 핵 실험장 해체 장면을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대화의 협상력을 제공하는 동인이 핵 무기임을 북한 스스로가 잘 알고 있으며 즉시 폐기 입장을 고수하는 미국에 접고 들어가지 않을 것임도 분명하다.


북한의 이런 움직임에 미 행정부가 적잖이 당황했다고 전해지며 어찌 되었든 정상 회담 준비는 차질 없이 진행할 것이라 한다. 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이 스포트라이트가 존 볼턴에 모이고 있다.


국가 안보 보좌관은 일찍이 트럼프가 충분히 공격적이지 못하다고 평한 맥매스터 중장을 대체하며 등장했다. 볼턴의 사생활은 맥매스터와는 달리 행동파는 아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병역 기피자인 것은 트럼프와 똑같은데 그러면서도 다른 국민들 참전에는 예민하게 반응해왔다. 볼턴은 — 이미 상상 속의 대량 학살 병기로 판명난 일을 두고도 — 이라크 전쟁의 명분을 옹호하고 있고  이란과 북한에 대한 군사적 타격을 공공연하게 주장한 바 있다.


… 트럼프가 이란 핵 협정을 파기하기 수 일 전, (트럼프가 역시 너무 신중하다고 여긴) 렉스 틸러슨을 대체하며 등장한 또 다른 강경파 마이크 폼페오 국무 장관이 아직 해볼 만한 여지가 남아 있다고 했었다. 유럽의 협정 당사자국이 이란으로부터 한층 더 양보를 이끌어내던 중이었고 폼페오 자신이 서방 외교관들에게 몇 일 여유가 더 있다면 트럼프를 설득하여 협정 이행을 유도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는 것이다.


… 볼턴의 야망은 미국의 스벵갈리가 되어 자신만의 세계관을 주조해내고 나아가 궁극적으로 백악관 전 수석 전략가 스티브 배넌처럼 “그림자 대통령”으로 행세하고 싶을지 모를 일이다.


… 혹자는 국제 문제에 직면한 트럼프의 노선과 볼턴의 입장은 같은 궤적에 있는 것 아닌가 의심할지 모른다. 하지만 대통령과 그다지도 쿵짝이 맞았던 배넌은 미국의 고립주의 노선 지지자였다. 반면 볼턴은 미국의 간섭주의 조선을 따르고.


… 싱가폴 회담은 김정은과 개인적 친분을 돈독히 해온 그 자신의 공으로 돌아갈 텐데 폼페오 장관 입장에서 지금 산통 깨지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향후 북한과의 미래 로드맵을 놓고 이미 폼페오는 볼턴과 입장 차를 보인 적이 있다. 미국이 북한 내 인프라 건설, 농업 육성 및 빈곤 구제를 위한 대규모 투자를 조성할 것이란 청사진을 그린 폼페오에 반하여, “우리에게서 경제 원조는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 볼턴의 입장이다.


… 보좌관에 기대지 않고도 점점 대통령 직무에 충실해지고 있다는데 대해 트럼프의 자신감이 더 커지고 있다고 한다. 이란 관련 결정도 장관 등 고위 관료와 상의 없이 단독으로 내린 것으로 보이고 늘 그렇듯이 그 직후에는 트위터로 날렸다. 볼턴은 그 트위터를 확인한 유럽 관료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을 뿐이라 한다.


트럼프는 북핵 협상의 결과가 정말로 노벨 평화상을 안겨다줄 것이라고 순수하게 믿고 있다. 평양의 수뇌부도 이 점을 인식하고 있는 듯 이렇게 전하고 있다. “볼턴식 해법이 협상을 가라앉힌다면 전례에 없던 성공을 바라는 당초 바램과는 달리 트럼프가 전임자보다 훨씬 안타깝게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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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선언을 바라보는 주한 미군 출신 정치학자의 최근 뉴욕 타임스 기고

https://www.nytimes.com/2018/05/10/opinion/end-korean-war.html



미국의 대표적 진보 언론 뉴욕 타임스의 노선은

가끔 한반도 평화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주한 미군 경험도 있다는 어느 정치학 교수님의 기고는

비교적 기계적 중립을 지키고 있고 때때로 한반도에 대한

애정도 살짝 엿볼 수 있어서 본인 허락을 얻어 번역본을 포스팅해요.






What It Would Mean to End the Korean War

한국 전쟁 종전이 의미하는 것


  Elizabeth A. Stanley


  엘리자베스 스탠리는 조지타운 대학교 우드로 윌슨 연구센터 선임 연구원이자 안보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육군 정보 장교 출신으로 주한 미군 재직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전을 포함한 국내 정치 갈등의 양상에 대한 저서 ‘평화로 가는 길: 국내 연대의 이동, 종전과 한국전’을 쓴 저자이기도 하다.


2018년 5월 10일




미안하지만 한국 전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1953년 휴전 협정으로 전쟁 행위는 끝났을지 몰라도 평화 협정으로 옮겨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 남한 대통령 문재인이 지난 정상 회담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뿐만 아니라 종전 선언을 공식 천명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이 천명한 내용의 이행을 위해 정확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상당히 모호한 채로 남겨져 있고, 과거에도 뭔가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었다가 용두사미가 된 적이 있기에 이 외교사의 서막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는 분석 전문가도 많다. 하지만 분명 이번만은 다른 것 같다. 최소한 한 가지 점에서는.


두 정상의 지난 달 공동 선언에는 비교적 주목받지 못한 의미심장한 문구가 들어가 있는데,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다’는 부분이 그것이다. 2000년 공동 선언에도 비슷한 문구가 있었으니 완전히 새로운 문장은 아니다. 그러나 남북간 화해 뿐만 아니라 미중 양국처럼 한국전에 직접 관여한 당사자 국가, 여기에 광역 안보 차원에서 나머지 전 세계까지 함께 포괄하는 함의를 강조하고 있다. 한반도의 문제가 곧 남북 양국이 주인공으로 떠올라야 하는 사안임이 중요한 대목이다.


한국전이라는 신기한 역사를 이해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분인데, 남북한 모두 냉전 시대 양 진영 강대국에 휘둘려 협상의 단역으로 물러난 경험을 공유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회담이 몇 주 후에 예정된 가운데 미 행정부 관료들이 이 점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어제 5월 9일자로 북한 정부가 억류된 미국인 세 명을 석방하기로 공표한 바 있으니 북한이 미국을 향해 직접 제스처를 취하는 단계까지 다다랐음이 중요하다.


1950년 6월 남한을 침공한 북한은 유엔의 다국적 연합군을 밀어붙이며 거의 반도에서 몰아내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그해 11월에 연합군은 거의 북중 국경선까지 밀려났다. 1951년 1월 극적으로 중공군이 개입하며 공산당이 다시 서울을 탈환하였다. 그 해 6월에 전선은 38도선 인근에서 고착 상황을 맞고 있었다. 휴전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 시점에서 남과 북 어느 쪽도 전쟁 중지를 원치 않았지만 냉전기 후원국의 등쌀에 떠밀려 억지로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했던 것이다. 미국이 유엔 연합군을 대표했고 중국이 공산 세력을 대표했다. 남북한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장신구 처지에 불과했다.


트루먼 행정부는 문제 해결의 양상을 과시하고도 싶었지만 동시에 유럽에서 나토군이 소련과의 전면전을 위해 체재 정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즉각적인 정전이 필요하기도 했다. 중국과 소련은 3차 대전 발발을 원치 않으면서도 의도적으로 협상을 질질 끌고 싶어했다. 마오 쩌 둥 말대로 ‘전쟁과 협상을 병행하는’ 전략이야말로 이 목표의 달성을 위해 가장 값싼 방법으로 보였다. 공산권이 원한 것은 스스로 산업화와 방어 체제를 구축하는 동안 미국의 시야를 한반도에 묶어두고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개전 아이디어 자체는 북한이 기획한 것이지만 이후 공산권 군사외교 전략 체제에서 그들은 철저하게 소외되어 갔다. 기밀 인가가 해제된 당시 공산국 전문 기록을 보면 1952년 초반까지 적화 전쟁을 완수할 자신이 있었던 북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의 피해와 기록적인 홍수로 인해 지방이 황폐화하고 지독한 기근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련과 중국은 평양의 요구를 끝내 일축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하여 전선 장기화라는 옵션을 선택하고 만다.


1952년 여름에 있던 정권 연대가 변화를 겪으면서 중국의 입장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새 지도부가 자국 경제의 재건 및 산업화를 목표로 설정함에 따라 중국이 한반도에서 치르고 있는 막대한 비용을 절감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 해 8월까지 전쟁을 해결할 의사가 중국에게는 있었지만 그들이 의존하던 소련 역시 이를 원하는지 알 수 없는 딜레마에 봉착하였다. 당시까지 휴전 협상을 지지부진하게 했던 지독한 악재에 대한 공산권의 양보가 1953년 3월 5일 스탈린 서거 후 3주가 지나서야 정체를 드러냈다. 바로 전쟁 포로의 본국 송환 문제였다.


전쟁 완결을 바라는 북한의 간청이 공산권에선 무시 당한 데 반해, 전쟁 재개를 원한 남한의 노력은 미국이 거듭 고삐를 틀어쥐고 있었다. 대한민국 당국은 한반도 재통일을 가시화하지 않고 섣불리 갈등이 종식되는 상황을 원치 않았으며 다양한 대중 시위를 통해 휴전 협상을 반대하였다. 한국 국회가 몇 차례 만장일치의 결의안을 통과시킬 정도였다. 1951년에 ‘해방된 통일 조국’을 위한 전쟁 재개 결의안이, 1953년 4월에는 한반도 통일을 전제로 하지 않는 휴전을 반대하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미국과 중국의 협상 관료들은 비무장 지대 주변으로 반도의 분단을 유지존속하기로 이미 1951년 말에 합의한 바 있었다. 이런 이유로 1953년 5월 미국이 연합군 측의 최종안을 제시할 때 이승만의 반대를 우려하여 남한 당국에는 이를 공개하지 않는다. 이를 간파한 이승만 대통령은 귀환을 원치 않는 2만 5천 명 북측 포로의 석방 조처를 취해 버렸다. 싸움이 다시 시작되고 수만 명의 다른 희생자가 양산되어 휴전 협상은 연기되고 만다.


575회나 대표단 회담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1953년 7월에 체결한 휴전 협정은 이미 연합군이 제시한 1951년 7월 안과 근본적인 차이가 없었다. 또한 이승만의 마지막 책략이 종전 합의를 포기하는 대가로 한국에 상당한 혜택을 허용하였던 바, 미국으로부터 한미 상호 방위 조약, 장기 경제 원조, 한국군 군비 증강 지원이라는 카드를 얻어낸 것이다. 불편한 진실은 여전히 남은 셈이다.


모든 갈등은 한반도 땅에서 벌어진 싸움의 결과였다.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하여 도합 570만 명의 사상자와 실종자가 발생했고 대부분은 남과 북의 동족들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어떻게 전개되고 어떻게 끝났는지, 그 처음부터 끝까지 남과 북 어느 당국도 주도적인 결정의 당사자가 아니었다. 요컨대 두 코리아는 그들 자신의 전쟁에서 철저하게 장기 말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모든 역사적 맥락을 고려할 때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 간 회담이 상징하는 바는 중차대하다. 두 지도자가 바로 대한민국 영토의 판문점에서 동맹국의 참석을 배제하고 만난 것이다. 대부분의 휴전 협상 회담이 열렸던 그 판문점에서 말이다.


두 코리아는 더 이상 냉전의 거미줄에 얽혀 찢기고 상처입은 손님들이 아니다. 오늘날 남한은 생동하는 민주 국가이며 세계 정상권의 경제를 구가한다. 북한이 여전히 고립되고 궁핍할지 모르지만 이미 핵 무력을 완성한 주요국이 되었다. 과거 둘의 전쟁이 스스로의 통제를 벗어나 벌어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부터 전개할 평화는 완벽하게 그들 자신이 만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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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Happened to North Korea the Other Day






이틀 전 남북 고위급 회담이 급작스럽게 취소되었죠.

이런 일이 있었다는 썰..


맥스 썬더 훈련은 작년부터 작전 계획이 수립되어 있던 상태.

작년만 해도 핵전쟁 분위기가 있었으니 사상 최초 규모로

전폭기, 폭격기 가릴 것 없이 사정없이 띄우기로 했었죠.


그런데 4월 27일 판문점 선언으로 분위기 급반전.


정상 국가의 정상적인 행정부라면

수뇌부 대외 정책과 국면의 전환이 세부적인 행정 계획에

즉각 자동적으로 업데이트가 되었어야 할 상황.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네요.

주한 미군 사령부와 대한민국 국방부 양자 모두.


(여기서 단순한 업무 현행화 미비나 이행 지체인지

소위 말하는 네오콘 합작 방해 공작이 들어갔는지

솔직히 알 수는 없어요. 아직 드러난 건 없는 것이 팩트.)


그냥 작년 작전 계획안대로 훈련 발동.

B-52 폭격기 1대만 해도 압박이 클 텐데

F-22 랩터가 여덟 대나 떴다 함. 여덟 대. 여덟 대. 개전하남?


작년 말싸움 잔치 기준으로 게으른 훈련을 자행한 셈.

신나게 출격하는 파일럿들 눈에 선함.


공식 발표 없으나 북한 영공을 침범 순회하는 훈련이었을 듯.

(실제로 이런 훈련 자주 한답니다.

북의 레이더 체계가 사실상 유명무실인지라.)


수뇌부 정밀 타격이 가능한 기체가 9대나, 그것도 스텔스로...

북한 관측병이 저고도에서 ‘육안으로’ 포착하고 긴급 타전.

왕 뒤집힌 수뇌부. 노발대발..


… 그랬다고 합니다.. 라는 썰피셜.


거 참 세금 받고 일 좀 똑바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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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briefing History of Ancient Greece




고대 그리스의 역사는 참 복잡하네요.

쉽게 한 판에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고대 그리스는 기원전 7~8세기를 시발점으로 보통 잡습니다.

7~8세기까지는 사람이 안 살다가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났다는 말? 아니죠.

남아 있는 기록이 이때까지 것밖에 안 남아 있다는 뜻이겠습죠.





트로이 전쟁 시기


신들의 전쟁에 신화의 영역으로만 남아 있다가

갑자기 유물과 유적이 갑툭튀하여 사람 당황시키는

트로이 전쟁 같은 사건도 있었지만요. (기원전 12세기)


트로이 전쟁은 신화였었었었었습니다.

(브래드 피트 주연 영화에 나온 그 스토리요.)

하인리히 슐리만이 등장하기 전까지는요.


트로이 유적 찾기를 평생의 사명으로 삼은 아주 특이한 인간이

바로 슐리만이었는데 이 사람이 결국 찾아낸 겁니다. 19세기 후반에.

그때부터 트로이는 역사의 영역으로 편입되었죠. 두둥. 학자들 충공깽.


이것만 알면 되요. 굳이 선을 긋은 이유가 엄연히 있어요.

트로이 전쟁 때 그 민족이 오늘날 고대 그리스라고 분류하는 시대의

그 민족과 같은 사람들인가.. 근거가 아직 약하다는 거에요. (현재 다수설)


심지어 트로이 전쟁 때 납치된 미녀의 남편인 메넬라오스가 바로바로

스파르타 왕이었는데 흔히 알려진 스파르타와 다른 사람들이었을지도..

뭐 이런 얘기가 있을 정도니까요.


영화 ‘트로이’에 배나온 브라이언 콕스 할배와 ‘300’의 식스팩

제라드 버틀러가 같은 민족.. 누가 봐도 말이 안 되죠.ㅎ

(물론 농담.. 다수설은 사실이고요.)





드디어 역사 시대, 아테네와 스파르타


이런 판타지 영화 같은 껀들은 제쳐두고

기원전 7~8세기 이후만 시작점으로 놓고 보는 거죠.

앞에 전제했듯이 기록의 맨 앞 지점이 이 시기이거든요.

우리가 아는 고대 그리스는 이때부터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고대의 대부분 국가가 그러했듯이 이들도 도시형 영토가 기반이었습니다.

도시 국가, 곧 폴리스라고 불렀죠. 많이 들어 보셨을 듯.

아테네, 스파르타, 테베 같은 폴리스가 있었습니다.

이들 중 중심 국가는 아테네스파르타.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서로 많이 달랐습니다.

아테네는 해상 무역, 스파르타는 농업이 밥벌이 산업이었어요.

아테네에선 상인들이 중상급 계층으로 두텁게 사회를 형성했고

스파르타는 계급 사회로 귀족을 중심으로 피라미드형이었죠.


평민 중에서 무역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목소리가 커지니까

공화정 같은 당시로서 아주 희한한 체제가 발전하기도 했던

나라가 아테네였던 셈이죠. 하필 왜 아테네에서 민주주의가 나왔지란

본질적 질문의 대답을 여기서 발견할 수 있겠어요.


스파르타는 발해 같은 나라를 떠올리면 비슷해요.

소수의 그리스계 귀족이 대부분의 피치자를 노예로 부리며

농업을 관장하여 살림을 이끌고 정치를 장악했습니다.

지배층이 소수였죠. 노예는 이민족이 많았어요.

그래서 위계 질서가 중요한 군벌적 문화가 필요했어요.





민주정의 시작, 아테네와 클레이스테네스


여차저차한 차이점이 있기에 그들의 정치는 많이 달랐네요.

인류 최초의 공화정이 아테네에서 출범한 이유가 있었던 거고요.

이때 민주정은 오늘날과 많이 다릅니다. 추후 얘기할 기회 있을 겁니다.


정치보다 선행해야 할 문제가 경제 기반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정치가 발전하죠.

기원전 6세기 초에 이를 해결한 사람이 유명한 집정관 솔론이었죠.

그저 그런 농업국에서 무역국으로 변화한 것이 이 시기.


민주정이 자리잡은 아테네의 시기를 보통 기원전 6세기 말로 잡아요.

이때 기틀을 마련한 지도자가 바로 클레이스테네스.

얘기하자면 복잡하지만 나중에 또 포스팅하는 걸로.


클레이스테네스란.. (엄청 중요한데 한국선 의외로 듣보잡)

https://en.wikipedia.org/wiki/Cleisthenes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


기원전 5세기가 되었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이 시기 가장 중요한 사건은

페르시아 전쟁 아니겠어요. 300의 시대가 왔어요.


300 영화 두 편 보시면 나오죠.

육상전은 스파르타, 해상전은 아테네가 활약했습니다.

스파르타에 레오니다스, 아테네에 테미스토클레스가 있었죠.

각각 지도자였습니다. 제라드 버틀러와 설리반 스테이플턴.


페르시아 전쟁이란 페르시아가 그리스에 쳐들어 왔다는 뜻입니다.

당시 페르시아는 아케메네스 왕조입니다. (이후 왕조가 교체)


키루스, 캄비세스, 다리우스, 크세르크세스 같은 황제가 나온 시기.

300 2편에 죽은 사람이 다리우스, 나는 관대하다는 분이 크세르크세스에요.

(실제로는 영화와 다릅니다. 헐리우드 믿지 마요 제발.)


그리스를 왜 쳐들어 왔을까요? 그야 강대국이니까요.

페르시아는, 즉 오늘날의 이란은 당시 중근동의 최강대국입니다.

오늘날 보면 상상이 안 되나요? 그것이야말로 현대인의 편견.


통상 루트를 통합하여 경제권을 확장할 필요가 있었죠.

에게 해 인근 올망졸망 중소국들이 못내 걸린 겁니다.

그래서 병합하여 세금도 받고 겸사겸사 이유로 침공한 거에요. 단순하죠.


굳이 건드릴 필요 없었어요. 그리스 국가들까지 통합 안 해도

페르시아 같은 큰 나라가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 없었죠.

실제로도 전쟁에서 졌다 하여 페르시아 망한 거 아니랍니다.


한 번 건드려본 중소 국가들의 단합이 의외로 단단했던 거죠.

테르모필레 협곡에서는 이겼고 (제라드 버틀러가 죽고)

아테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으로 깨집니다. 의외였죠. 엄청.





펠로폰네소스 전쟁, 그리스가 양분


페르시아 전투의 의외의 결과가 가져다준 나비 효과는?

그리스 국가들의 간땡이가 부어 오르게 됩니다.

(페르시아는 자기들끼리 잘 살아갑니다. 까짓 교역 안 하면 되죠 뭐.)


어느 나라나 간이 부으면 지들끼리 싸우게 되죠. 내분.

내분 구도의 중심에는 그리스의 양대 강국이 있습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두둥. 짜잔.


앞에서부터 차이점을 가져 발전해온 두 나라가 드디어 반목합니다.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중심으로.

두 나라 옆에 다른 폴리스들이 더덕더덕 붙어 세력을 형성하죠.


뭔가 연상되는 비슷한 역사의 페이지가 있지 않나요?

딱 냉전 시기와 비슷하죠. 미소를 중심으로 세계가 반으로 갈렸잖아요.


펠로폰네소스 전쟁기 그리스의 역사를 써내려간 사가가 있었어요.

그 이름 투키디데스. 오늘날 현실주의 정치 사관의 원조라는 분입니다.


(역사상 최초의 사가인 헤로도토스는 ‘역사’를 썼는데

페르시아 전쟁을 소재로 했습니다. 약 1세기 전의 일이죠.)

https://en.wikipedia.org/wiki/Herodotus

https://en.wikipedia.org/wiki/Histories_(Herodotus)


투키디데스는 델로스와 펠로폰네소스,

두 진영이 서로에 대한 공포와 경쟁심, 이해 관계가 얽혀

엄청나게 폭주하여 결국 전쟁에 이르게 되었다고 분석했죠.


이런 양상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부릅니다.

Thucydides’ trap. 그래험 앨리슨이라고 40년생인 하버드

정치학자가 계세요. 이 분이 만들어낸 개념입니다. 작년이었나..

https://en.wikipedia.org/wiki/Thucydides

https://en.wikipedia.org/wiki/Graham_T._Allison


냉전은 결국 전쟁으로 치닫지 않았지만

그리스는 전쟁에 이르렀고 스파르타가 이겼습니다.


잘들 싸우더니만.

그리고 우둔한 군중이 소크라테스를 죽였습니다. 플라톤 지못미.





그리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헬레니즘


내분으로 시작한 전쟁이었으므로 그 끝이 찝찝했습니다.

스파르타가 완장을 차긴 했는데 우왕좌왕하다

테베에게 완장을 또 빼앗겼죠.


같은 시기에 마케도니아에서 무시무시한 세력이

스멀스멀 태세를 정비하고 있었습니다.


마케도니아 왕국을 그리스의 동족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선

상당히 설왕설래하는 모양인데요. 현재는 앞의 스파르타처럼

지배층이 그리스계인 것으로 정리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케도니아를 반열에 올린 것은 필리포스 2세였고

그리고 이어 그 아들 알렉산드로스 3세가 왕위에 오릅니다.

그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그리스 통합, 페르시아 폐퇴, 이집트 무혈입성…

아프가니스탄 진격, 파키스탄까지 진출. 대단하죠?

(그러나 실상은 페르시아 전성기보다 못하다는 의견도..)


알렉산드로스의 가장 큰 업적은 헬레니즘 전파입니다.

즉 고대 그리스 국가 체제가 각국에 이식이 되었단 말이죠.


그가 후계자 없이 죽어버려 휘하 장군들이 제국을 나눠갖고

각각의 방계 왕조를 발전시켜 2백년 가까이 발전합니다.

이것이 곧 헬레니즘 제국이죠.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바로 이들 중 하나입니다.

지배층을 장악하고 원주민의 통치 체제를 인정했다 하죠.





고대 그리스 역사란


고대 그리스를 몇 줄로 정리해 볼까요.


페르시아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 알렉산더 대왕..

이 순서를 꿰고 있으면 됩니다.


중심에 아테네와 스파르타 양대 폴리스가 있었다는 거죠.

양자의 차이를 이해하면 접근이 빠를 겁니다.


그리고 아테네가 발전시킨 원시적 공화정.

최초의 희한한 정체였다, 이런 정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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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Economists Drag President's Footsteps Out




이런 기사가 있었죠.


“교과서에도 없는 논리로 경제 실험하는 게 치명적 실책”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8051001070939176001






1년 지나니 경제 실적으로 흔들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이미 과거 두 분 대통령 시절에 다 겪어봤으니 새로울 것도 없죠.


주류 경제학자들은 정말 도움 안 되는 사람들이네요.

미국에는 스티글리츠나 크루그먼 같은 분들도 있는데

우리는 그런 인물이 나올 만한 토양이 안 되는 모양입니다. 아직.


소득 주도 성장론을 이끌고 있는 분이 부경대 교수 홍장표 수석인데요.

자유당 홍씨가 영수회담에서 자르라고 했던 그 분이죠.

그래서 더더욱 중요성이 부각되는 역효과 났네요. 역시 X맨.


홍장표 교수님은 흔히 포스트 케인지언으로 분류되는 이론을 이끌어왔죠.

우리나라 같은 환경에서는 흔치 않은 길을 걸은 분입니다.






아 물론, 포스트 케인지언들은 아직도 비주류입니다. 인정해요.

조앤 로빈슨 같은 분도 여성에 비주류라는 크리 두 개가 겹치면서

결국 노벨상 못 받고 돌아가셨어요.


이준구 교수님이 재작년 모 강의에서 엄청 비판했어요.

공이 큰 분인데 여성이라고 노벨상을 안 주다니 말이 되냐고.

아마 당분간도 주류들은 포스트 케인지언들을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https://www.huffingtonpost.kr/2015/01/22/story_n_6520884.html






어디서 들은 얘긴데 경제학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중

90~95퍼센트는 주류 경제학파 계열이라네요.


그들 사이의 주류—비주류 싸움이란 것이 그래요.

외부자가 보기엔 그냥 패거리 친목질 하는 걸로밖엔 안 보여요.


왜냐하면 주류 경제학 = 불변의 진리가 절대 아니거든요.

오히려 주류를 공격하는 비주류가 어딘가에서 등장하여

주류의 논리를 허물고 스스로 주류에 새롭게 편입하는 과정을

다른 어떤 분야보다 더 뚜렷하게 보여온 곳이 경제학계입니다.


마르크스도 케인스도 프리드먼도 루카스도 다 그렇게 등장했어요.

앞으로 경제학의 역사도 반드시 그렇게 흘러갈 겁니다.


경제학이 원래 그렇잖아요. 자연과학처럼 불변의 진리가 없으니까.

그냥 보는 관점을 논리로 세워 싸우고 입증하는 학문이니까요.

과학이지만 과학이 아니기도 한 분야이니까요. ‘사회’과학이고.






그리고 경제학자들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을 텐데

주류 경제학이 입증해낸 것보다 입증하지 못한 것이 훨씬 많아요.


예를 들까요. 경제학자들은 최적화라는 짓거리를 참 자주 해요.

어떤 경제 정책이 있는데 이것이 적합한가 아닌가 판단하는 거죠.


최적화의 기준은 무엇무엇이 있을까요. 효과성이나 공정성? 정의? 분배?

지난 2백여년간 경제학자들이 집착한 최적화 기준은 효율성 뿐입니다.


그들은 그거밖에 할 줄 몰라요. ‘수학화’가 안 된다는 핑계를 대죠.

(물론 수학화가 가능해야 과학으로 대접받는 건 사실이지만 여기선 생략ㅠ)

240살 겨우 지난 경제학의 능력이 그거밖에 안 된다는 인정은 안 하죠.






소득 주도 성장론… 즉 분수 효과… (반드시 같은 건 아니지만)

경제학은 분수 효과를 입증한 적이 없다… 아, 이것도 인정해요.

입증한 연구가 나온 적이 없는 건 엄연한 사실이죠.


그런데 그거 아세요? 낙수 효과 역시 입증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냥 신자유주의 찌끄레기를 유령처럼 끌어안고 사는 일부 사람만이

온갖 현혹성 데이터를 끌고 와 그럴 듯해 보인다고 조잘댈 뿐이죠.


지난 20여년간 김대중-노무현 정부 정책의 과실을 착실하게 따먹은

한국의 재벌이 그 막대한 사내 유보금을 국민소득 진작을 위해 투자했나요?

이거 말고도 낙수 효과가 허상이라는 증거는 차고 넘쳐요.






어떤 바다가 있다고 칩시다. 넓이가 한 100평 정도 되요.

우리가 지금까지 가본 곳은 10평도 채 안 되요. 대부분을 못 가봤어요.


열 평도 안 되는 고만고만한 구역에서만 고기 잡아 먹자..

저 바깥에 고기가 있는지 없는지는 아직 입증이 안 되어 있다는 그런 사람…


반대로 모두가 먹고 살려면 새로운 고기를 찾아나서야 하니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나머지 90평의 넓은 바다로 나가보자는 사람…


어느 쪽을 지지하시겠어요?

감히 정답을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생각은 다르니까요.






하지만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주류 경제학자들이 늘상 하는 짓이

첫번째 사람과 같은 행동이라는 건 분명해 보이네요.


그들은 항상 그런 식으로 뒷북을 치죠.

왜냐하면 자신들도 모르니까요.


어떻게 하면 경제가 성장하는지, 실업이 줄어드는지,

인플레이션이 좋은 영향을 줄지, 국민소득이 늘어날지,

미래 산업과 먹거리가 어디에 있는지, 심지어는

당장 다음 달 주가가 오를지 내릴지조차도…


주류 경제학을 연구한다는 사람들도 이런 건 모릅니다.

이런 걸 미리 알 수 있도록 가르치지도 않고.


점쟁이처럼 맞춰내는 경제학자는 없었어요.

역사상 딱 한 분 정도 예외가 있었다고는 하죠.


그냥 한 줌 알고 있는 주류라는 우물에 빠져

머리 위로 보이는 동그란 하늘을 평가한다고나 할까.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라 사실인지는 모르겠는데

대통령께서는 앞의 두번째 사람처럼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아직 안 가본 길이고 입증된 적도 없고 효과도 잘 모르겠고…

이거 다 이해하고 계신다고 봅니다.


그리고 분수 효과를 들고 나왔을 때

소득 주도 성장론을 정책으로 끌고 나갈 때

주류에서 어떤 식으로 비판하고 나올 것인가

대략의 가설도 교육받고 이해하고 계신 것 같아요.


Y = f ( x, Y ) 인데

종속 변수가 독립 변수로 들어가면

수식이 성립하겠냐 블라블라…






그리고 더더욱 중요한 점은

바로 경제 때문에 한반도 평화를 최우선으로 하신다는 거죠.


코리아 리스크를 없애 코스피 4천을 노리는

뭐 그런 MB스런 유아적 동기 말고요.


고령화와 후기 산업화 절벽에 부딪힌 한반도 경제의 돌파구가

남북한 공동 경제권 외에 별다른 답이 없다는 생각을 하신 거죠.


어디서 들었는데 북한도 고령화가 진행 중이라네요.

특히 북한은 고난의 행군 이후 세대의 집단 영양 부실까지 겹쳐

아주 특수하게 심각한 고령화 양상이라고 들었어요.


남에게도 북에게도 어쩌면 마지막 남은 기회일지도 몰라요.

대통령께서 누구보다도 이 관점의 이해가 깊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모든 경제학자들이 딴지 거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와 같은 의견도 있어요.


원로 경제학자의 일침,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 폄하해선 안돼”

http://www.viva100.com/main/view.php?key=20180426010009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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