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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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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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관계학의 주요한 이데올로기 흐름
  4. 2018.07.19
    사회 자유주의와 현대 한국의 정치 사상



Does Chinese Despotism Ever Understand

What the Press Is Supposed to Be About?








중국은 공식적으로 집단 지도 체제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란 문제를 민주 정치 국가에서 상정할 수 있는 만큼

궁극적인 사회 통합의 가치로 취급할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먼저 봉착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 중국 헌법에도 언론의 자유란 항목이 있기는 한 건가...

하는 의문이 들죠. 예, 있기는 있어요. 어디 그것 뿐인가요.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 오늘날 민주 국가의 기본 덕목으로 꼽는

요소는 다 갖고 있어요.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또 축자적으로는.



그러나 — 헌법학이나 정치학 일반 이론을 한 번이라도 공부해본

분들은 다 알겠지만 — 현대 헌법의 가치에서 중요한 것은 형식적

규정이 아니라 실질적 준수 여부와 그 온존의 수준입니다.



헌법전이 문자 몇 마디 박아놓는 것 정도는 사실 일도 아니에요.

그냥 좋은 말 갖다가 잘 써놓으면 그뿐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문자로 써놓은 내용이 가리키는 무형의 정신적 가치가 그 나라

정치 문화에 깊게 배어 생활의 수준에까지 다다를 정도로 눈에

보일 만큼 현실적 의의를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일 거에요.








최근의 홍콩 소요 사태를 관찰하신 분들은 이미 느끼시겠지만..

그런 관점에서 중국적 사회주의 정체가 인민의 대의를 반영하는

진정성을 가진 정치 이데올로기인가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현대 중국의 헌법 구조 및 구체적인 헌법

가치에 관해 홍콩 문제와 중국식 정치 이데올로기, 언론의

기능이란 면으로 고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편으로 관점을 돌려보면 근본적으로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하고 깨달을지 모릅니다. 중화 인민 공화국의 현대적 정체를

완성한 82년 덩샤오핑 헌법 이후, 현대 중국의 정치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개념으로서 일당제 집단 지도 체제에 의한 사회주의

공화국이란 것을 끄집어낼 수 있는데요.



근본이 사회주의에 있는데 인민의 풀뿌리 의사를 억압하고

박해한다..? 모름지기 폭력 혁명에 의해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세상에 태어난 이데올로기가 사회주의 아니었던가요? 우리가

역사를 거꾸로 알고 있는 겁니까?








물론 중국 공산당 당국은 여기에 일당 지도 체제의 단일 국가

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란 정치적 명분을 언제나

간편하게 대입해 왔습니다. 언뜻 넓은 영토에 연방적 자치를

추구하는 나라처럼 보이지만 사실 중국은 중앙 집권적 정치

논리에 충실한 사실상의 독재 국가이거든요.



자유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입장에서 매우 의아한 지점이지만,

사회주의 국가의 언론 기능이란 것도 양상이 참 기형적입니다.

권력을 통제하여 삼권 분립과 다른 제4의 견제균형을 제공하는

민주적 언론 기능과는 큰 차이가 있어요.



지난 3월에 독일 언론 DW(Deutsche Welle; 도이체 벨레)

대만 주재 특파원을 통해 기술한 현대 중국의 언론 양상에 관한

기사도 바로 이런 맹점을 짚었어요. 국경없는 기자회로부터

매년 언론 자유도 하위권을 기록하는 중국 언론의 사회적

효용이 중국을 넘어서서 세계 언론 지형을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한탄이었지요.



이 특파원 보도의 주요 골자는 이거에요. 중국의 언론이 과연

언론 기관인가, 아니면 공산당 선전 매체인가 구분이 안 가는

행태를 보여준다는 것이지요. 마치 히틀러 시절 괴벨스 정책에

버금가는 파시즘 독재 수단의 현대 버젼을 보고 있는 것 아냐,

하는 생각이 들 거란 말이에요. — 아, 괴벨스-파시즘 표현은

본 블로거의 주관적 해석입니다. 오해는 마시고.










공산 국가의 선전 선동 방책에 대해, 나이가 어느 정도 되는

시민들은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기에, 감이 오실

겁니다. 북한, 소련, 중공, 동독 등 과거의 사회주의 세력들

모두 이런 정책을 썼고 (일부는 지금도 쓰고 있으며) 현대적

관점에서 이런 것들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이고 구태의연한

인상을 주는지 능히 상상이 가능할 거에요.



그런데 21세기까지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사회주의 국가로서

중국의 현대적 정책상은 매우 기이한 모습입니다. 언론이란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거든요. 언론이라 쓰고 선전이라

읽는 식인 거죠.



냉전이 종식한 상황에서 과거처럼 자본주의보다 우월하다느니

하는 일차원적 노선을 걷진 않습니다. 덩샤오핑 이후 중국은

이미 자본주의로의 개방을 받아들인 수정 사회주의의 길을

걸어왔어요. 78년 이후 벌써 40년이 넘었네요.



대신 지금의 중국은 일대일로 같은 대외 슬로건을 표방하며

‘하나 된 중국’의 통일된 중앙집권적 국력을 광고하는 데에

집중하는 형국입니다. 즉, 시진핑 시대 G2 중국의 정치 노선

일체는 일대일로 하나의 개념으로 통일하여 설명할 수 있어요.








현대판 실크로드를 표방하며 중국 경제권의 해외 시장 정복

목적으로 시진핑 리더쉽 시스템이 추진하는 정책적 전략 체계를

가리켜 일대일로, 一带一路 = Belt and Road Initiative /

One Belt One Road(OBOR) ..로 칭합니다. Yídài Yílù..



주로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를 표적으로 삼아

그 나라 산업 인프라 시설의 대규모 기간 공사를 수주해 중국

기업에 몰아주고, 건설 자금의 융통은 AIIB,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 같은 중국 중심 금융 인프라와 그 나라 정부를 이어주는

식으로 사업이 이루어지고요. 표적이 되는 국가들이 주로 예전

실크로드 비슷한 모양새로 군집을 형성하는 특징이 있죠.



쉬운 말로요? 중국 기업이 미국 등 서방 제치고 세계를 양분해

먹어 치우게끔 이끄는 시진핑 황제의 전략인 거에요. G2로서

기득권을 철저하게 보전하고 2049년(중국 건국 100주년)까지

중국의 먹고 살 길을 확보하고자 하는 초국가적 범지역적 경제

계획인 셈이에요, 시진핑 정치 집단이 구상하고 시행하는…



사실 실상을 까보면 오로지 중국이 먹고 살기 위한 방편

불과해요. 과거에 미국이나 소련이 주도했듯이 우호 진영을

위해 호혜적 성격으로 펼치는 경제 구호책.. 마셜 플랜 같은

것..? — 이런 거 아니에요. 착각하면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반중파들이 있죠.








문제는 중국이 일대일로를 현대적 마셜 플랜인 듯이 둔갑하여

선전하고 있다는 거에요. 그리고 거기에 자본주의 언론 시장

복잡성 지형도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 또 다른 문제이죠.

예의 도이체 벨레 기사가 잘 분석해 주었는데요.



중국은 대부분 국영인 그네들 언론사를 서방 자본주의 시장에

꽤나 전략적으로 풀어 놓았어요, 서구 광고 수익 시장에서의

엄청난 큰손으로 활약하는 새로운 위상과 함께. 뭔 말이냐고요?

현재 세계 언론계 광고 시장의 가장 큰손 중 하나가 바로 중국

공산당이란 말이에요.



서방의 언론사 중 상당 지분이 중국 광고주의 영향 하에 있다고,

많은 비평가와 연구자들이 나름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어요.

물론 기사의 내용을 입맛대로 좌지우지 한다거나 중국 국내에서

하듯이 장난치는 구도를 만들 수는 없어요. 하지만 여러 변수를

통해서 중국의 중앙 정책에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게 진실에 가깝다는 주장인 거죠.








중국이 취하고 있는 방법은 다양한데 특기할 만한 양태 두 가지를

거론하자면... 첫째, 세미나 같은 국제 규모의 이벤트를 활용하고

있어요. 이동 및 체류 비용 전액을 공산당이 부담하여 전 세계의

언론인을 중국으로 초청하고 호화로운 접대와 교류, 취재의 환경을

제공하는 거죠. 물량 공세인 셈이에요.



둘째, 중국 국영 방송 중 가장 유명한 CGTN 같은 곳에서 현재도

지속 제작 중인 콘텐츠 중에 '차이나 워치'라고 있어요. 유튜브만

검색해봐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일종의 짧은 단편 꼭지용 TV포맷

콘텐츠인데요. 중국이 벌이고 있는 대내외 사업이나 경제 개발

현황을 철저하게 중국적 관점에서 묘사하고 설명하는 동영상

단편물 시리즈 정도로 보면 되요. China Watch..



세계 방송 네트워크에 이 시리즈를 대량으로 배포하며 무의식 중에

중국적 사고 방식이 공산당 수뇌부에서 서방 가정의 시청자 층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치밀한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는 거에요. 서구권

방송사 입장에서도 꽤 그림이 좋은 단편 꼭지 시리즈가 안정적으로

공급될 경우 마다할 이유는 없거든요. (정규 프로그램 사이 사이에

끼워 편성 메꾸기 딱 좋으니까) 아울러 적정하게 광고 수익도 올릴

수 있을 테고요. 바로 이 빈틈을 노린다는 거죠.








G1인 미국도 이런 작태를 보이지는 않아요. 미국이 취하는 소프트

파워 전략은 훨씬 덜 노골적이죠. 헐리우드 영화나 각종 씽크탱크

연구소의 리포트 같은 방법을 주로 쓰잖아요. (지난 반세기 동안

여기에 열심히 투자한 나라가 일본이고요.) 바야흐로 중국도 자기

나름의 소프트 파워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셈인데 그 양상이 훨씬

저열하고 노골적인지라, 뭐라 반응을 보여야 할지 난감하네요.



기사는 차이나 워치를 일종의 현대판 트로이 목마 같은 거라고

표현해요. 은연중에 중국 공산당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자본주의 국가 백인 주류 사회에 퍼질 거라는.. 뭐 그런

얘기이죠. 쉽게 수긍하긴 어렵지만.



과연 이런 전략이 먹힐까요? 한국의 주류 시민 사회만 하더라도

수천 년간 중국의 역사와 얽히고 부대낀 역사적 DNA로 인하여

일본 만큼이나 가깝고도 먼 나라처럼 느끼기에, 북미와 유럽이

우리가 느끼는 정도로 깊이있는 식견을 가질 수 있을까, 쉽사리

감이 오지는 않아요.








한국인은 중국의 생각에 동화되기에는 지나치게 중국을 잘 안다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죠. 오히려 우리와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나라는

베트남 정도에요. 북미나 유럽은 한국이나 베트남에 견줄 만치

역사적 경험의 깊이가 부족하고 되려 오리엔탈리즘 같은 편견성

동인으로 인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집단 의식이 변화할

변수가 크지 않을까, 하고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에요.



헐리우드 영화에 차이나 머니를 무식하게 투입해 되레 대중적인

역효과를 일으키고 다니는 것이 현재 중국 공산당식 소프트 파워

정책의 현주소이니, 또한 사회주의식 프로파간다의 한계가 너무

뚜렷하다는 점이 이미 역사의 반면교사 사례를 통해 입증이 되고도

남았으니, 괜한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도 듭니다만.



다만 가뜩이나 위축되어 가고 있는 기성 언론 시장의 지형에 중국

자본이 위력을 떨치고 있다는 점만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사에 취재원으로 나선 멜버른 대학교 루이자 림 교수 역시, —

프로파간다의 효과성이 입증된 것인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 광고

수익 자체에서 오는 중량감이 현장 언론인의 재갈을 물리는 암묵적

검열 수단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했어요.








기사의 내용을 요약 정리하여 논평하자면 이와 같고요. 전문 해석을

게재하면 좋겠습니다만, 이 기사 역시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이 정도 선에서 에둘러 인용하고 마는 점을 양해해주기 바랍니다.

도이체 벨레 기사 전체에 제한이 걸린 것은 아직 아닙니다. 나머진

원문 기사를 그대로 정독하시길 권장합니다.




*DW: original link

https://www.dw.com/en/how-chinas-new-media-offensive-threatens-democracy-worldwide/a-48063437



How China's new media offensive threatens democracy worldwide

중국의 언론 공격은 어떤 방식으로 세계 민주 정치를 위협하고 있는가





덧붙여서, 중국 언론의 한심한 한계를 목도하며 홍콩의 현재 모습이

슬프게 오버랩되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정부 차원에서야 쉽사리

나설 수 없는 공식적 명분이 있지만, 개인과 시민 사회 차원에서야

어디 그러합니까, 사람 사는 세상인데. 특히 우리 80년과 87년 등

시절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는 시민들 반응이 많은 듯해요.

연대의 감성을 떠올려 보시길 조심스럽게 권유합니다.







*차이나 워치의 대략적 모습은 아래와 같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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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bostonglobe.com/arts/music/2017/09/14/recalling-isang-yun-his-centenary/G2oZZHumeCdH0BSyA5mUZM/story.html




정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 사람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네요.

한국의 작곡가였던 윤이상입니다. 20여 년 전 돌아가셨죠.

해외에선 Isang Yun이란 이름으로 더 유명합니다.


1917년 9월 17일에 경상도에서 태어났고

1995년 11월 3일에 베를린에서 돌아가셨어요.


1967년에는 악명 높은 동베를린 간첩단 조작 사건

연루되어 중앙 정보부 요원들이 독일에서 강제 압송했고

고문과 허위 자백에 못 이겨 간첩 혐의로 투옥되었습니다.


(닉슨 데탕트 직전 냉전이 극에 달하던 박정희 정권 무렵인지라

당시 재판은 거의 반인권적 군사 법정에 가까왔다능…ㅜ)


유럽에서 유명했던 분인지라 음악계에서 완전 들고 일어났죠.

프란시스 트라비스라는 음악가를 중심으로 유럽을 순회하며

엄청난 음악가들이 공식 항의 연명부에 서명했어요.


얼마나 쟁쟁한 음악가들이냐고요? 이름 대볼까요?

-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 작곡가 루이지 달라피콜라

- 작곡가 한스 베르너 헨체

- 작곡가 겸 오보에 연주자 하인츠 홀리거

- 작곡가 마우리치오 카겔

- 지휘자 오토 클렘퍼러

-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

- 작곡가 페르 뇌고르

- 작곡가 칼하인츠 슈톡하우젠

- 작곡가 베른트 침머만

… 등등 포함 2백 명 정도였다네요. 상상이 가시죠?


당시 북한보다 경제력도 약간 뒤쳐지던 후진국인지라

박정희 정권이 앗뜨거라 싶어 69년에 국적 박탈 조건으로

석방했다고 해요. 이후엔 서독 국적으로 겨우 살아가요.


그리고 고국 땅을 한 번도 못 밟았죠. 노태우 정권

한 번 기회가 있었는데 정권이 ‘들어와서 정치 발언 하지

말라’는 생떼 조건을 들이미니 안 간다고 거절했다죠.


그래서 작년은 이 사람이 태어난 100주년이었어요.

보스턴에서도 소소한 기념 행사가 있었던 모양인데

보스턴 글로브에서 업적을 조명하는 기사를 냈네요.


작년 9월 기사입니다. 한 번은 짚고 가시란 뜻에서…

저작권 문제시 자진 삭제합니다.






A border-crossing Korean-born composer

경계선 위의 한국 출신 작곡가


매튜 게리에리 특파원


2017년 9월 15일


지난해 2017년 9월 17일 일요일은 윤이상(1917-95)의 탄생 100주년 기념일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난 이 작곡가는 종전 후 무조 음악에 기초한 포스트 모더니즘을 동양적 철학과 음악적 어법을 통해 재조명하면서 1950년대와 60년대에 명성을 얻은 바 있다. 그는 1967년 아내와 함께 박정희 정권의 정보 요원들에 납치 당해 유럽에서 한국으로 (2백 명 가까이 되는 다른 해외 거주자와 함께) 송환된 후 조작 냄새가 물씬 풍기던 간첩 혐의로 재판에 서야 했다. 그의 투옥 사태에 전 세계 음악가들(및 정치 활동가들)이 거세게 들고 일어나 조직적 국제 시위로 맞섰고 결국 2년 후 석방이란 결과를 얻었다. 작곡가 자신의 회고에 따르면 이런 가혹한 경험이 그로 하여금 남북 분단의 상황을 “한층 더 구조적인 음악 미학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작품 속에선 변용과 화해의 주제를 지속적으로 발견할 수 있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에 유년 시절을 보낸 윤이상의 첫 작품은 동네 무성 영화 극장의 배경 음악이었다. 이후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식 음악 수업을 받기 위해 오사카와 도쿄로 건너갔다. 당시에 태평양 전쟁이 한창인지라 항일 단체에 들어가 투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억류와 투옥을 경험하고 난 후 윤이상은 쫓기듯이 서울로 넘어왔다.


한국 전쟁 후에는 독일로 건너가 아방가르드 풍의 미묘한 불협화음 작풍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기회를 얻었다. 색채감과 장식 기교를 분명한 박자에 실어 개별 주요음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한국 및 아시아 음악의 전통적 어법에 영감을 받았던 바,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데 있어 한껏 늘여 연주하는 음의 연속성이나 난해한 기악적 기교, 화려한 피치의 풍부한 표현력 등의 요소를 주변 음향 환경에 녹이는 식의 작법을 채택한 것이다.


동베를린 간첩단 조작 사건을 기점으로 남한에서는 윤이상의 작품 연주가 금지되었으나, 북한 지도자 김일성은 손수 그를 직접 초청하여 그의 이름을 딴 음악 연구소를 세울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반면 한국에서의 과거사 복원 작업은 더디기만 해서 정권의 민주화가 진행된 후였음에도 한국 방문을 위해선 어떤 정치적 진술도 해선 안 된다는 모욕적 요구를 받고 결국 귀향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윤이상은 휴전선 양쪽에서 동시에 인정받은 희귀한 존재였다. 그는 스스로 쌓은 명성을 1980년대와 90년대의 한반도 통일 기원 기념 음악회를 조직하는데 슬기롭게 이용했고 남북한 양쪽에서 음악가들을 동원하기도 했다.


사실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는 미국 내 분위기가 다소 잠잠하기는 하다. (보스턴 한인 문예협회가 주최한 지난 9월 30일 리버스 스쿨 음악회가 지역의 유일한 행사였을 정도이다.) 음악회에서 그의 작품을 접하게 될 때 일반적인 반응은 사뭇 엇갈린다. 작품이 들려주는 압도적인 표현주의적 에너지에도 불구하고, 윤이상의 음악에서는 서양 음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윤이상 개인이 가진 도교적 성향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어, 어떤 기승전결을 창조하기보다 절제와 변화의 엔진을 통해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더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결점이나 대단원을 의도적으로 제거하는 작법을 통해 어떤 청중은 극심한 절망감을 찾아내기도 한다. (1980년대 이후 발표된 윤이상의 다섯 교향곡이 바로 이런 해석에 절묘하게 들어맞는 듯하다.)


윤이상은 소재가 명료한 표제적 음악도 썼으나 — 한국 현대사 속 민주화 항쟁의 처절한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가 대표곡 — 생전에 때로 자신은 정치와 무관하다고 항변한 바도 있다. 윤이상에게 휴전선이나 이데올로기는 어떤 지도 원리가 아니라 방해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보편적 인류애만이 그의 지속적 관심사였으며 한민족의 통합 — 어쩌면 전 지구인의 통합까지도 — 이 그의 창작 목표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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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ological History of International Relations




예전에 현대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일반적인 흐름으로

짚은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약간 포커스를 좁혀 볼까요.


국제 정치, 흔히 IR, 국제 관계학이라고 부르는

분야의 이데올로기 역사는 정치학 본류의 그것과는

약간 궤적을 달리 하여 발전해왔습니다.


원래 정치학의 연구 분야를 셋으로 구분하거든요.

정치 사상 및 이론, 비교 정치학, 국제 정치학…


이 중 국제 정치학에 해당하는 분야를 가리키죠.

요즘은 국제 관계학이라고 더 일반화되어 있는 듯해요.

international relations를 번역한 거니 이쪽이 더 맞남..


국제 관계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연구는 20세기부터

본격적으로 학자들이 제기하기 시작하였는데요.


여러 국가의 이전 투구가 부딪히는 현상의 원리를 찾아내려는

이른바 ‘현실에 대한 설명력’이란 논리로 이런 이즘이니 저런

이즘이니 하는 것들이 발전하기 시작한 겁니다.


멀리 보자면 군주론마키아벨리리바이어던홉스

사실 서양 정치학사에서 처음으로 현실주의를 들고 나온

사람들이니 이 분들을 원류로 봐야 하겠지만요.


교과서마다 분류 기준도 다르고 설명 체계도 다르지만

여기서는 깔끔하게 네 가지 사조로 정리하겠습니다.

자유주의, 현실주의, 구조주의, 구성주의입니다.


자유주의는 이상주의의 다른 표현이에요. 국가나 정치 현상에

도덕적 이상이나 지향점이 있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가

흘러간다는 생각인데요.


멀리 보자면 동양의 공자맹자 같은 유가의 사상이

이런 이상주의의 근간을 형성한 적이 있습니다.


자유주의 국제 정치의 사례로 가장 유명한 것이 흔히 우리가

국사 시간에 3.1운동 배우며 접한 바 있던 민족 자결주의라는

것인데 1910년대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주창했어요.


윌슨이 이런 주장을 하며 국제 연맹이란 것이 창설되잖아요.

국제 연맹이 제대로 돌아갔다면 2차 대전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란 점을 보면 자유주의 사조의 한계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이상적 도덕을 넘어서서 각 나라의 국익을 건드리는 안보

상황이 닥칠 경우 공권력 체계를 갖추지 못한 국제 기구는

유명 무실해질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래서 현대의 자유주의 국제 관계학 이론가들은

(국제 연맹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다자 안보 체계

주요한 관심 테마로 논리를 전개하는 편입니다.


이상주의를 비판하며 한스 모겐소가 주창한 사조가

현실주의입니다. Politics among Nations라는

저서로 유명하신 분인데요.


국가 간에 국익이라는 명분으로 힘의 균형을 이룰 수밖에

없는 구체적 현실을 인정하고 세력 균형에 전력투구해야

한다는 논리 체계를 마련하신 분이에요.


2차 대전이 끝난 후의 냉전이라는 구도를 완성한

사상가로 흔히 불리곤 하죠. NATO와 같은 군사 동맹

통해 세력 구도의 균형을 옹호한 논리입니다.


성선설 같은 자유주의에 비해 성악설 같은 색깔이 보이죠.

국익을 위해서 국가는 국방력을 총동원하여 실력 행사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호전적 논리 체계가 여기서 나왔어요.


냉전 시대에는 금과옥조처럼 받들던 사상이기는 하지만

70년대가 지나 오일 쇼크처럼 냉전 양극화 구도를 뒤흔드는

현상이 튀어나오고 유럽 경제 공동체처럼 국익 논리를

반박하는 움직임이 나오면서 퇴색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케네스 월츠 같은 학자를 통해 신현실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1979년 발표한

국제 정치 이론이란 저서로 이를 완성하였다 하죠.


구조주의마르크스 사회주의에서 영향을 받은 체계입니다.

물론 교과서에 따라 사회주의와 구조주의를 구분하는 설명도

있죠. 급진주의라고 따로 표시하는 책도 있습니다.


서구 선진국의 자본가 계급이 개발 도상국이나 제3세계의

물적 자본을 착취하는 형태로 국가 관계가 발전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 구조를 취하고 있어요.


안토니오 그람시 같은 이론가가 이 계통의 대표적인 분이고

남미 제3세계 정치 구도에서 맹위를 떨친 종속 이론

실제로 국제 관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러나 남미의 일부 현상을 제외하고 냉전 구도 자체조차

설명이 안 되는 한계를 보이기도 하는지라 약간은 철 지난

생각으로 치부되기도 하는 듯합니다, 요즘엔요.


구성주의는 80~9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비교적 신박한

사상 체계인데요. 사회 구성주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social constructivism…


인간의 선악 본성이나 국가의 힘 같은 논리가 아니라

사회적 맥락이나 행위자의 정체성이 국제 관계 현상의

본질에 더 가깝다는 생각입니다.


때로는 감성이나 정서, 심리 같은 주관적 요소를 깊게

관찰하기 때문에 인종, 종교, 성별 같은 현대적 아젠다를

성찰하는 데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특히 이슬람 근본주의로 무장한 국제 테러가 뚜렷하게

아젠다로 부상한 21세기에 들어 더욱 설명력이 배가하고

있는 사상 체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알렉산더 웬트라는 58년생 정치학자가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이론가이고요. 전술한 케네스 월츠의 저서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99년에 국제 정치의 사회 이론이란

책을 통해 사회 구성주의를 화려하게 등장시켰답니다.


2018년 현재의 국제 관계학에서는 이런 사상 체계를 혼용하며

정치 현상의 설명력을 제고하기 위해 애쓰는 형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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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Liberals within Korean Politics




휴전 이후 한국의 사상 체계는 양분되어 왔어요.

진보와 보수의 좌우로 말이죠.


본래 많은 나라들의 사상 체계가 보수, 자유, 사회로

삼분하여 발전한 반면에 한국 등 동아시아는 사회주의

사상이 발전할 틈이 없었어요. 냉전의 폐해이죠.


1987년 체제 전까지 한국은 실질적으로 정치 사상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나라였는데 국가주의적 자유

민주주의가 제도권이 용인하는 유일한 체계였죠.


하지만 그런 개발 독재 사고를 굳건히 견지한 군부가

오히려 사상의 물꼬를 트는 병크를 저지르고 말았어요.

바로 80년 광주 민주화 항쟁이죠.


한국 땅에 사회주의 사상이 본격적으로 자생 발전하는

계기가 광주 항쟁이란 사실은 참 아이러니컬해요.


군부가 스스로의 모순을 드러내고 자멸하면서 시민과

운동권 스스로 대안적 정치 사상의 길을 모색하다 보니

사회주의 연구까지 가게 된 겁니다.


NL과 PD로 양분되는 한국 재야의 사회주의 사상은

그런 배경과 경로를 통해 형성되었답니다.


NL은 민족 노선을 강조하여 주사파나 종북으로 흘러갔고

PD는 계급 투쟁을 중시하여 노동자 파업이나 인권 운동

쪽의 방법을 취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어느 정도 옛일이죠.


그러나 어찌 되었든 사회주의는 한국 정치의 주류에는

절대로 오르지 못했어요. 87년 개헌 이후 사상계는

본류보다 여러 갈래를 혼합하여 발전합니다.


그 중 한국적 사회 자유주의의 원류는 돌아가신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영국 유학 시절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을 마음에 들어 하셨다죠.


IMF의 경제난을 딛고 집권한 민주당이었기에

김대중 본인도 자유 시장 경제를 옹호할 수밖에 없었고

오히려 중도보다 약간 더 오른쪽 노선을 취하게 되었죠.


뒤를 이어 집권한 故 노무현 대통령 역시 이런 체제적

한계를 떠안고 시작하셨어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친시장적 진보 정치는 좌우 양쪽에서 공격을 받았죠.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온갖 미친 짓을 겪고 난 지금에야

사람들이 비로소 지나간 이데올로기의 가치를 인정하는

모양새이고 문재인 정부가 그 연속점에서 출범했어요.


그래서 2018년 7월 현재 한국의 정치 지형을 지배하는

주류 이데올로기가 문재인 대통령더불어 민주당

중심으로 한 사회 자유주의로 자리잡게 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사회 자유주의는 자유주의적 민주

민주 질서 체제 위에 사회 정의와 분배 형평성을 첨가하는

이데올로기 및 정책 성향을 보입니다.


때문에 시장 친화적 자유 경쟁 기반을 깔고 기초적 복지를

통해 사회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을 폅니다. 시장의 자유를

부정할 의무가 있는 사회 민주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르죠.


최근 최저 임금법 개정을 앞두고 사민적 성향의 노동계와

충돌을 빚은 사상적 배경을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겠네요.


사회 자유주의 세력은 낙수 효과를 부정합니다. 대신

분수 효과를 들고 나와 가계 소비의 가처분 소득을 늘리고

사회 전체의 유효 수요를 증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죠.


그러나 단순히 재정 확대만으로 국민 계정을 늘리겠다는

생각은 대단히 위험할지 몰라요. 공무원을 늘려 국민을

먹여 살릴 거냐는 기레기 비난의 본질이 이거거든요.


정부 예산이 400조라면 국내 총생산은 1400조거든요.

단순 계산으로도 1000조의 차액은 결국 민간 기업이

투자를 주도하여 메꾸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경제는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도는 기업이 하고 정부는 가이드일 뿐이죠.

지금이 아직도 개발 독재 시대인가요.)


기업은 확실한 수익의 전기가 마련되었을 때에 투자를

결정합니다. 한반도 신경제권 구상이 그래서 나온 정책이죠.

남북미 대화의 물꼬가 터진 배경이 바로 이것입니다.


문재인 정부 소득 주도 성장론과 한반도 평화 정책의

배경에 이데올로기와 정책 간 함수 관계에는 바로

이런 특성이 내재해 있음을 알아야 한답니다.


원내 정당 중에서 정의당은 온건 성향의 사회 민주주의

분류됩니다. NL 전력이 있는 일부 계파와 PD 계열 사회

민주주의 인사들이 결합해 있죠.


유교적 가부장제를 한국 사회의 근본적 종교라고 본다면

자유한국당을 사회 보수주의로 볼 수도 있을지 몰라요.


그러나 현실의 그들은 수구 반동 체제 집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그래요.

2년 후 사멸의 길만이 유일한 선택지 아닐까요.


바른미래당의 정체성을 자유 보수주의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모호한 정체성은 여전히 실망스럽긴 해요.


정체성 모호하기는 민주평화당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요.

굳이 따진다면 사자와 지역주의 결합이라 볼 수 있을지도.

어쩌면 아닐지도..


80~90년대 이후 많은 나라들이 사회 자유주의와 사회

민주주의를 적정하게 혼합하여 정책을 펴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잘 나가는 나라들일수록 더욱 그러하고요.


기존의 불편한 색깔론과 자기 검열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이 때 불필요한 좌우 논쟁을 접어

시민 스스로 사상적 돌파구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지난 6.13 지방 선거촛불 혁명의 시민 계층이

뭔가 뚜렷한 움직임을 보여주면서 스스로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가고 있는 현상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우중한 백성의 시간은 저물고 바야흐로 정보 매체라는

무기를 들고 기존 정치권의 바스티유를 잠식해오는

집단 지성 스마트 시티즌의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지구상 마지막 냉전 지대의 낡은 이데올로기 바짓가락을

붙잡고 국민을 겁박하며 프레임을 덧씌우는 정치 세력에게

이제 더 이상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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