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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나라가 화제는 화제이다.
시류의 화제에는 영합하지 않음을
본 블로깅의 원칙 같은 것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개봉작 소감 블로깅하는 일을 원래 잘 안 하는데
최근에 유일하게 한 작품이 닭낫이었던지라... 4년 전..
이미 숱하게 많은 블로거와 매니아와 크리틱들이
숱하게 많은 관점을 파헤친 작품인지라
이 3부작에 뭐 더 할 말이 있겠냐 싶기는 하다.
비교적 다른 평에서 보지 못했던 관점이 하나 생각나서
개인적으로 정리해 둔다.
왠지 다른 히어로 얘기를 하려니
원더우먼을 배신한 느낌이 든다. 우습군...
(스포일러는 전혀 없다.)
닭낫과 닭나라의 완성도 차이를 바라보는
관객 소평의 다양한 양상이 요즘 횡행하는 논란의
중심 화제인 것 같다. '더 나아졌냐' 하는 거겠지..
21세기 들어 상업영화 중에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가 이제 일반 관객이 보기에도
현저한지라 사람들의 집착이 참 심한 것 같다.
더군다나 SNS기반 'narrowcast' 문화의 바탕 위에
크리스토퍼 놀란을 필요 이상으로 신격화하는
군더더기 같은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는 형편이다.
필요 이상의 신격화는 불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냥 영화를 업으로 하는 사람의 하나이고
모든 작품을 완벽하게 만들지는 못하여
그냥 불완전한 인간의 예술성을 보여주는
한 사람의 훌륭한 영화감독이 그일 뿐이다.
본 블로거는 그의 작품 중에서
인썸니아가 분명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알 파치노와 로빈 윌리엄스와 힐러리 스웽크와...
재료의 조합만 보면 최상의 요리가 나와야 했지만
뭔가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나보다 하는 느낌으로
왠지 모를 균열과 불협화음이 포착되었었다.
데이빗 핀처의 세븐을 봤을 때 느꼈던
그런 기분좋은 균열이 아닌, 어딘지 통제되지 않은
재료의 불배합 같은 맛이었었다. 그래서 별로였다.
안 그런 감독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는 참 좋은 배우에의 탐욕이 큰 연출가에 해당한다.
가이 피어스, 조 판톨리아노 같은 명배우들도 거쳤다.
인썸니아의 출연진은 앞에 언급했고...
확실히 인썸니아까지의 그는 여러 배우의 조합을
이리저리 끼워 맞추며 헐리우드 시스템에의
개인적인 적응으로 부단히 노력한 모습이 보인다.
배우만을 얘기했지만 배우로 대표되는 제작현장의
모든 요소를 통제하려는 그의 부단한 실험이
딱 인썸니아까지 선을 그을 수 있지 않은가 싶다.
그러던 그에게 기회가 왔는데
왠걸 수퍼 히어로물이란다.
(본 블로거의 기억이 옳다면)
그 당시 그는 연출가 후보 1순위는 분명히 아니었다.
그보다 5년쯤 전에 광풍을 몰고 온 브라이언 싱어가
유사 장르의 연출가 중에선 단연 탑이었다.
브라이언 싱어가 각광받았던 이유는
조엘 슈마허가 밑바닥으로 내동댕이 쳐놓은 장르를
전혀 새로운 스타일과 드라마로 살려냈기 때문이다.
특히 드라마를 이끌어낸 능력이 칭찬을 받았다.
히어로물에서 유태인과 동성애의 코드를 끌어내다니...
당시 평단은 브라이언 싱어가 코믹스의 매니아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해당 장르에 대한 이해가 탁월하고
수퍼 히어로에 대해 아는 지식이 풍부하기 때문에
그러할 수 있었다는 공통된 견해를 개진했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최근 인터뷰에서 항상
'어릴 적 배트맨의 팬이었다'고 밝혀 왔지만
언론 플레이에서의 언사를 다 믿을 것은 아니고..
항상 궁금했었다. 놀란의 배트맨 이해도는 어느 정도일까?
DC 세계관에 대한 지식은 얼마나 깊을까...
브라이언 싱어와 조스 웨든은 비슷한 부류이다.
이른바 매니아형이고 코믹스 세계관의 이해에 탁월하다.
크리스토퍼 놀란과 샘 레이미와 잭 스나이더는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팀 버튼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이 다룰 수 있는 스토리 중 하나가 그것일 뿐이다.
이들 부류의 감독들은 자신만의 일관적 주제가 따로 있다.
샘 레이미의 질풍노도적 정서불안의 스릴..
잭 스나이더의 영상이 결합한 쌔끈한 스토리텔링..
팀 버튼의 동화적 공포와 광기..
그들이 원래부터 해왔던 스토리의 세계관에
코믹스의 캐릭터를 끌어와 변주해내는 것이 방식이다.
이런 유형의 감독이 약간 더 많은 것 같다.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일관적 주제는 아마도
한두 가지 심리적 센티멘트의 기반 위에
드라마와 스토리를 섞어내는 스타일의 구축일 것 같다.
흔히들 평자들이 비긴즈의 센티멘트를 공포,
닭낫을 혼돈+광기, 닭나라를 고통+절망(희망)...
뭐 이렇게 요새들 정리하는 그 얘기 말이다.
이러한 그에게 리부팅 프로젝트가 처음 주어졌을 때
('주어졌을' 것이다. 당시 그는 스스로 구할 위치는 아니었다.)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비록 감독이지만 헐리우드이니
아마도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지극히 능률적인 위치에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공식적으로 비긴즈의 예산은 1억 5천만 불..
세계시장 수익은 3억 7천만 불이다. 대략 200%가 넘는 승률..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우월적 연출가의 지위는
사실 크리스토퍼 놀란 같은 신격화 피겨라 할지라도
비긴즈 이후에야 허락되기 시작한 셈이다.
이후 닭낫의 예산은 1억 8천만 불..
수익은 10억 불 수준으로 껑충 뛴다. 인생역전이지..
헐리우드에 보통 '마의 6억 불'이라는 말이 있단다.
5~6억 불 수익이 넘는 순간 뭔가 그때부터 작업에 참여한
감독과 배우 등등에게 대접이 시작된다는 뜻이겠다.
비긴즈와 닭낫을 비교하여 관람해 보면
이미 많은 네티즌과 평자들이 지적한 부분인데
확실히 두 작품의 때깔과 스타일이 다르다.
비긴즈는 철저하게 세트 그림만 눈에 띄는 작품이고
버튼과 스타일이 다를 뿐 히어로물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은.. 뭔가 예측가능한 오락영화이다.
놀란의(놀란표) 히어로 리얼리즘이란 스타일은 사실
닭낫이 아이맥스와 시카고 로케의 외피를 두르고 나왔을 때
비로소 완성되었음이 사실일 것이다.
더군다나 스토리는 전혀 예측 불가능한 플롯이 나와 버렸다.
물론 원작의 플롯이 있기는 하지만 어딜 봐서 같은 이야기인가.
소재는 따왔으되 캐릭터의 시점을 복합교배시켜 만들어낸
전혀 다른 이야기... (박 찬욱의 올드보이를 떠올리면 되겠다.)
생각해 보라. 요새 그토록 유행한다는 3D를 놀란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리얼리즘에 딱히 도움되지 않는 도구이니까...
비긴즈 이후 현장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을 때
그는 드디어 세트 촬영을 거부하기 시작하였다.
세트가 주는 비현실감과 만화스러움이 싫기 때문이겠지..
닭낫에서는 크레인과 와이어로 컨테이너를 뒤집었고
(2년 후 나 홍진은 드럼통 폭파로 컨테이너를 뒤집는다.)
닭나라에서는 더 배트조차도 요즘 세상에 시대착오적이라는
와이어 액션으로 찍었단다.. 상상이 되는가?
리얼리즘의 때깔을 위해서.. 라는 답안이 정답일 것 같다.
희안하게도 그가 통제의 왕좌에 완전하게 군림한 그 시점에
히스 레저의 포텐셜이 터졌고 매기 질렌할이 캐스팅되었고
동생과 데이빗 고이어가 위대하고도 신비한 대본을 완성하였다.
모든 요소를 종합하여.. 어찌 보면
비긴즈와 닭낫이 전혀 다른 영화가 된 것은 필연이었던 듯하다.
전형적 히어로 오락물의 1편과 히어로의 껍데기를 두른 느와르 2편..
영화 역사상 이런 조합의 시리즈물은 존재한 적이 없다.
그가 이런 요소를 통제할 수 있었을까?
투자대비 수익률의 흐름과 배우+작가의 시의적절한 포텐셜과
감독이 추구하는 개인적 주제와의 교접점을 통제하는 일...
헐리우드라는 시스템의 속성을 상정해 보면 불가능에 가까울 테다.
물론 많은 관객은 이런 불가능한 통제에 능수능란한
거장의 존재를 알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제임스 카메론 둘...
크리스토퍼 놀란은 분명히 이 둘에게 아직 미치지 않는 상태이고
그 둘에게 가능한 엄청난 작업을 손쉽게 체화할 만큼,
아주 그 정도까지 발달한 연출가는 아니다. 아직은...
유능하긴 하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닭나라에 대해 일부 관객이 보여주는 실망감은
그가 이만큼 전지전능한 수준에 이미 도달했다고
지레짐작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기대가 커서 실망이 크다는 쉬운 말이지...
생각해 보면 닭나라는 참 기묘한 모양새의 영화이다.
때깔과 스타일은 닭낫을 닮은 반면 스토리는 비긴즈로 회귀했다.
비긴즈에의 회귀에 염증과 실망을 드러내는 사람도 많지만
그 실망의 전제는 비긴즈가 망작일 것이라는 가정이고
비긴즈가 조엘 슈마허 망작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하면
닭나라는 딱 수퍼 히어로 오락물 딱 그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준
괜한 실망이 더 어이없어 보이는 순박한 수준의 영화일 뿐이다.
피터 잭슨의 경우 트릴로지의 완성도가 점진 상승하여
3편에서 최고점을 찍는 완벽한 그래프를 그리는 데 성공하였다.
그에 반해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그래프의 형성에는 실패했으나
그렇다고 회한과 실망을 자아낼 일은 아니지 않나 싶다.
애초부터 이 장르에 거는 기대감을 터무니없이 한껏 높여놓은
그 원죄 하나만이 인정될 뿐이겠지...
닭낫이, 참 낭중지추처럼 희안하게 완성도가 높기는 했다.
하지만 본 블로거는 완성도가 급상승하는 그 상황조차도
신기하지만 감독의 통제에서는 벗어나 있었다고 짐작한다.
우연.. 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지만
예측불가능.. 이란 표현으로 정리하였으면 하고
그가 조만간 통제와 예측가능에 유능한
전지적 작가가 될 것이라고 바라마지 않는다.
사족 1...
미셸 파이퍼와 히스 레저를 넘어서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사족 2...
지못미 매기 질렌할과 마리옹 코티아르...
그는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데 분명한 약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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