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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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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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루스 스프링스틴 Bruce Springs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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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브 페리 Steve Perry 1




현대 미국의 대중음악을 규정하는 시대의 보스.

대통령도 FBI국장도 연준위원장도 아이비리그

종신교수도 실리콘밸리 창업자도 아니지만 모든

미국인이 존경과 찬사를 보내는 극강의 존재.



한국으로 치면 송창식, 김현식, 김광석 정도로

치환할 수 있기에 국내 울타리에서 이분을 제대로

해석하고 접근해 즐기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비록 한국에서 지명도는 높지 않지만 음악사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분인지라 용감하게 포스팅하련다.

미국 대중음악의 보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Bruce Springsteen이시다. (1949~)











('Born in the U.S.A.' from eponymous album, 1984)



('Born to Run' from eponymous album, 1975)



('Hungry Heart' from the River, 1980)

*젊을 때만 해도 좀 잔망스런 스테이지 매너를 즐기셨다.



 (Born to Run)




송창식, 김현식, 김광석.. 이분들이 왜 훌륭한지

배경 지식 전혀 없는 외국인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걸 어떻게 말로 설명해.. 그냥 들어봐, 정도

멘트 말고는 별 말 안 나오지 않나.



보스라는 별명의 이분이 미국인에게 가지는 위상은 대략

이런 위치이다. 어느 순간 가슴 속에 절절하게 찾아든

존재감으로 말로 수식하지 않고 그냥 느끼는 존재..?



50년대 후반 이후 출생한 대부분 미국인들이 그의 영향력

하에 있다고 보면 대략 옳다. 아 물론, 내륙 중서부 러스트

벨트 백인들로 한정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딴지 거는

사람도 계시겠지만. 그의 성향 자체가 인종을 초월한

진보이기에 사실 딱히 그러하지도 않다고 본다만.



 (Darkness on the Edge of Town)



('Badlands' from Darkness on the Edge of Town, 1978)



('Dancing in the Dark' from Born in the U.S.A., 1984)



('Glory Days' from Born in the U.S.A., 1984)



(accordion)


(calliope)




보스가 설파하는 가사의 철학, 즉 저지 쇼어 지방의

토착 문화와 현지 서민 삶의 생생한 단편... 여기에다

그들의 삶에서 파생한 저지 쇼어 사운드란 서브장르...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출발점은 여기서부터 잡아야 한다.



Jersey Shore.. 뉴저지 주의 대서양 연안 해안가 지구

가리키고 놀이공원 등 관광 명소와 특히 유서깊은 라이브

음악 클럽이 위치한 곳인지라 이곳을 거쳐간 뮤지션들이

부지기수이며 그들을 통해 Jersey Shore Sound

서브장르가 꽤 오래 전부터 생성 발전하였다.



 (glockenspiel)




블루스소울 같은 대중음악 뿐 아니라 이탈리아계 이민자

집단의 근현대 속악에서 영향을 받아 발전한 서브장르 가리켜

저지 쇼어 사운드라 하는데, 쇼어지구 위락시설에서 아코디언,

글로켄슈필칼리오페 같은 악기로 연주되던 춤곡 형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E스트리트 밴드 스코어의 중심축이 키보디스트

명의 역할로 자리잡은 배경이 바로 이런 지역 음악 특성 때문.



*글로켄슈필을 라이브에서 연주할 땐 실로폰처럼 말렛을 들고

타악기 형태로 하지 않고 위와 같이 첼레스타 케이스에 넣어서

건반악기 형태를 채택했다. 그런 이유로 키보디스트들이 연주를

도맡아 한 것. 위 Badlands 라이브 비디오 중간에도 Hammond

오르간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The River)



('Brilliant Disguise' from Tunnel of Love, 1987)



('Streets of Philadelphia' from Philadelphia OST, 1993)



('Nebraska' from eponymous album, 1982)




 (Nebraska)




사실상 대개의 미국인들이 보스의 음악에 마음을 쏟는 요인은

음악의 형식보다 진심을 가득 담은 가사에 있는 것이라 하겠다.

가사의 중심 내용으로서 쇼어지구에서 성장한 언더독 세대의

소외감이나 좌절감 또는 낭만적 정서를 대단히 서정적으로

표현하는데 탁월한 점이야말로 보스의 엄청난 매력이다.



스프링스틴 가사의 특징으로 일정한 서사성을 갖춘 완결된

스토리텔링 구조를 빼놓을 수 없다. 어떤 노래를 듣든지간에

그 안에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완성된 이야기가 있어

소외된 평범한 미국 서민들에 공감할 구조를 제공하는 것.



 (Born in the U.S.A.)




Born to Run웬디, Thunder Road메리, Nebraska

살인마 찰스, Tenth Avenue Freeze-Out배드 스쿠터,

Badlands의 재수 옴붙은 남자, Rosalita로잘리타, The Ties

That Bind의 가련한 여인, Independence Day의 아버지와

아들, 4th of July Asbury Park샌디 등 미국 음악사상

유명한 캐릭터가 죄다 그의 음악에 나온 인물들이다.



이 중엔 보스 본인이 창조한 캐릭터도 있고 다른 이야기에서

끌어온 주인공도 있다. 공통점은 미국의 현대사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소수자들이란 점. 평범한 음악 팬들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소구점이 창작자의 이런 배려에 있는 셈이다.



 (Tunnel of Love)



('Tenth Avenue Freeze-Out' from Born to Run, 1975)



('Independence Day' from the River, 1980)



('The Ties That Bind' from the River, 1980)



(Human Touch)




항상 어깨에 Fender Telecaster를 들쳐매고 통기타

가득 찬 음악을 평생에 걸쳐 불러온 점은 전술한 한국의

가객들과 묘한 공통점이 있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몰라서

그렇지, 세 가객들 기타 솜씨는 가히 명불허전이다. 특히

한창 때 송창식 선생의 라이브 실력은 까무러칠 수준.)



스프링스틴의 음악은 어쿠스틱 기타 또는 피아노백킹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full편성 밴드가 연주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인지하며 듣지만 왠지 머리 속으로 밴드를 지우고

기타 스트러밍을 치환하여 연상케 하는 작용을 한다고 할까.



(Fender Telecaster)




아마도 그의 철학이 구상하는 하트랜드 락이란 장르의 기본

밑그림이 어쿠스틱 악기의 심플한 백킹을 바탕으로 초기 락앤롤,

블루스컨트리, 포크, 소울의 정신을 구현하는데 있었던 듯.



밥 시거,  페티, 존 멜런캠프, 존 포거티, 멜리사 에쓰리지

등 같은 장르를 다져온 선후배들이 그러했듯이.. 하트랜드

말엔 내륙이나 중심지 말고도 미국인의 진심에 다가선다는

뉘앙스도 있을 터이니. - 모두 한국에서 지명도가 떨어지는

가수들이란 공통점도 공유하는군.



('My Hometown' from Born in the U.S.A., 1984)




또한 밴드 음악을 접근하는 그의 독특한 어프로치와 관련도

다. 스튜디오 레코딩에서 메기타는 항상 보스 자신이

친다.. - 이거 깨닫지 못한 사람이 은근 많지만. 기본적인

리프어프로치는 본인이 작곡을 통해 창조하는 것이다.

리더로서의 기본 소임이랄까.



하지만 기타리스트로서의 에고를 지나치게 고집하지 않고

나머지 상당 부분 어프로치를 세션 밴드 멤버들에게 넉넉히

일임한다는 점이 다른 일반적 리더들과의 차이점인 것 같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50~90% 이상 지분을 차지하며 그의

음악을 채워온 오랜 동반자는 그 유명한 E스트리트 밴드.



('The River' from eponymous album, 1980)




계에서 가장 유명한 백킹 밴드의 구심점은 음악사에 길이

빛나는 몇몇 연주자들. 키보디스트 로이 비턴 대니 페데리치,

드러머 맥스 와인버그, 색소포니스트 클레런스 클레먼스 등이다.

베이시스트 게리 탤렌트 기타리스트 닐스 로프그렌까지도.



나중에 연기를 겸업하신 기타리스트프로듀서 스티븐 밴 잰트

(소프라노스에 나오신 그분)에, 이스라엘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수키 라하브, 초기엔 키보디스트 데이빗 생셔스 계셨지. 물론

보스의 아내가 되신 보컬리스트 패티 스캘퍼도 잊으면 안 된다.

어떻게 이런 보석같은 멤버들을 다 끌어모을 수 있었을까.



('Cover Me' from Born in the U.S.A., 1984)



('Atlantic City' from Nebraska, 1982)




(Bittan & Federici)




세션 멤버들 중 버팀목 역할을 하는 사람은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한 49년생 로이 비턴. 비턴페데리치 두 분프레이징

사운드를 채우는 형식론이야말로 보스 음악의 핵심적 어프로치

기법이다. 본래 70년대 초반까지 저명한 데이빗 생셔스 그

역할을 수행하다 대체 멤버로 뿌리를 내린 연주자가 비턴이다.



디지털 드림 도어 키보디스트 랭킹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는 로이

비턴그렉 올맨, 맥스 미들턴, 니키 홉킨스, 척 리벨, 빌리 파웰,

이언 맥레건 등 동시대 컨트리-블루스 연주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뿐 아니라 루츠 음악에 뿌리를 둔 어프로치를 몇 세대에 걸쳐

꾸준히 발전시켜온 동종업계의 명인으로 높게 평가받는다.



(Yamaha Concert Grand)



특유의 맑고 깔끔한 톤 때문에 라이브에서 로이 비턴Yamaha

Concert Grand를 즐겨 사용하는 것은 이젠 널리 알려진 뒷얘기.

글로켄슈필이란 악기로 독특한 뉴저지 사운드를 메이킹하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다.


(Digital Dream Door's ranking on 100 Rock Keyboardists)

https://digitaldreamdoor.com/pages/best_keyboard.html


(Top 10 Roy Bittan & Bruce Springsteen tracks)

http://ultimateclassicrock.com/roy-bittan-bruce-springsteen-songs/



('She's the One' from Born to Run, 1975)



 (Weinberg)




라이브마다 무대 정중앙에 보스의 등뒤로 이글거리는 눈빛을

쏘며 한치의 오차없는 비트를 공급하는 51년생 맥스 와인버그

역시 밴드의 심장처럼 중한 멤버이다. 99년 락앤롤 명예의 전당

헌액 연설에서도 보스가 가장 신임하는 동료로 극찬하였다.



롤링 스톤 매거진의 드러머 랭킹에서 55위, 디지털 드림 도어

락드러머 랭킹에서 46위를 차지할 정도로 와인버그에 대한

객관적 평가도 넘쳐난다. Born in the U.S.A. 트랙 인트로

청자의 심장에 바로 내리꽂는 스네어 파운딩 비트는 최고의

상징적 업적으로 음악사에 영원히 빛나리라 의심치 않는다.



코난 오브라이언투나잇쇼에서 열심히 추임새 음악 넣던

바로 그분 맞다. E스트리트 밴드 활동과 죽 겸업하셨다고.

덕분에 미국 젊은 층에게도 인지도가 높으시다네.


(Rolling Stone Magazine's 100 Greatest Drummers)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drummers-of-all-time-77933/max-weinberg-142591/


(Digital Dream Door's ranking on 100 Rock Drummers)



('Prove It All Night' from Darkness on the Edge of Town, 1978)



(Clemons)




영원한 '빅맨' 42년생 클레런스 클레먼스E스트리트 밴드

같은 연주자이다. 덩치도 남산 만한 다 큰 어른께 마스코트

..라 칭하기는 좀 그렇지만 주로 테너 색소폰으로 드라마틱한

선율을 뽑아 리드하는 그의 솔로 프레이징보스 음악의

시그니처 톤이 아니라 할 수 없다.



한국에서 인지도는 안습이지만 Born to Run색소폰

솔로 파트는 미국 등 전세계에서 수십 년간 초대박 인기로

대중의 기억에 오래 각인된 히트 선율이다. 한국으로 치면

Careless Whisper 급인 건데 외국에선 제리 래퍼티

Baker Street와 함께 색소폰 하면 떠오르는 명곡이라고.

그 유명한 파트 연주를 하신 분이 바로 클레먼스인 것.



안타깝게도 11년에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신지라 이제 더

이상 클레먼스의 시원한 연주를 들을 수 없다. RIP..


(Top 10 Clarence Clemons & Bruce Springsteen tracks)



('Baker Street' by Gerry Rafferty,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Fo6aKnRnBxM


('Careless Whisper' by George Michael, 1984)

https://www.youtube.com/watch?v=xQ9KuQQDEow



('Jungleland' from Born to Run, 1975)



('The Promised Land' from Darkness on the Edge of Town, 1978)



('I'm on Fire' from Born in the U.S.A., 1984)



('I'm Goin' Down' from Born in the U.S.A., 1984)




 (Greetings from Asbury Park, N.J.)


 (The Wild, the Innocent & the E Street Shuffle)




그가 처음부터 보스는 아니었고 73년 1~2집까지는 무한한

포텐셜만 인정될 뿐 상업적 성공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도

몇몇 트랙은 평론가들로 하여금 파릇파릇한 신인의 음악성이

만만히 볼 수준이 아님을 강조하기엔 충분했다.


('Blinded by the Light' from Greetings, 1973)

https://www.youtube.com/watch?v=j9Kl3HvJ7os


('4th of July, Asbury Park - Sandy' from the Wild the Innocent, 1973)

https://www.youtube.com/watch?v=PttLzg-z7Qk


('Rosalita - Come Out Tonight' from the Wild the Innocent, 1973)

https://www.youtube.com/watch?v=nOE_fJGWjVA




드디어 75년 Born to Run 앨범이 북미 전역을 강타하여

그를 메인스트림의 주인공으로 격상시킨다. 발매 1년 전

보스턴의 음악 평론가 존 랜도가 새파란 신인의 공연을 보고

'락앤롤의 미래를 보았으며 그 이름은 스프링스틴이다'며

기고한 일은 이젠 너무 유명한 이야기. 심지어 랜도는 이후

하던 일 때려치고 극찬한 그 신인의 프로듀서로 전업했다지.



타이틀 트랙을 포함해 Tenth Avenue Freeze-Out,

She's the One, Thunder Road, Jungleland

히트 트랙이 줄지어 터져나왔다. 멀티 플래티넘을 찍은

앨범이 빌보드 차트 3위까지 올랐고 3집의 거의 모든

트랙이 아직까지도 각광받는 단골 셋리스트 대상이다.



('Tunnel of Love' from eponymous album, 1987)




앨범의 성공으로 투어에 매진하고 있던 차 법률 소송 문제에

휘말려 3년간 스튜디오 작업을 못한다. 78년 가서야 Darkness

on the Edge of Town 앨범을 발매. 트리플 플래티넘 기록을

이어가며 평단과 팬덤의 열광적 지지를 얻었고 Badlands,

Prove It All Night, The Promised Land히트시킨다.



최초로 그를 그래미 후보로 올린 80년 더블 앨범 The River.

존 랜도스티븐 밴 잰트가 공동 프로듀스하여 처음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밟은 성공작이다. 그의 시그니처

이 된 메가히트곡 Hungry Heart를 비롯, 앨범의 진중한

정서를 대표하는 The River, Independence Day 등이

팬덤의 고른 성원을 얻는데 성공한다.



82년 발표한 Nebraska포크 구성이 전반을 지배하며

스프링스틴 혼자서 4트랙 홈레코딩으로 작업한 작품으로

전작에서 이어진 무겁고 어두운 정서가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작이다. Nebraska와 Atlantic City

등 주요곡이 대체로 범죄자들 이야기를 담고 있어 작사의

철학과 세계관이 한층 깊어지고 있음을 반증한다.



('Human Touch' from eponymous album, 1992)




84년 Born in the U.S.A.에 이르러 그전부터 관심 두던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의 사회 부적응 문제를 본격적으로

터뜨렸으며 본작은 아시다시피 보스 앨범 중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남는다. 판매고만 1천 5백만이 넘어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고 85년 그래미 올해의 앨범 후보로 오르며

발매한 7개 싱글 모두 차트 탑텐에 올린 초대박 성공작.



Born in the U.S.A., Dancing in the Dark, Glory

Days, Cover Me, My Hometown, I'm on Fire, I'm

Goin' Down 등 그냥 수록된 전 트랙이 미국 대중음악사

명곡으로 남았다고 이해하면 쉽다. 한국으로 치면 유재하

앨범 정도에 해당할까.. 한 마디로 버릴 곡이 없는 명반.

꼭 들어보시라. 두 번 들으시라.



아 글고.. Born in the U.S.A.는 '나도 미국 놈이라고~

(근데 대접이 왜 이 모양이야)' 하는 시니컬푸념조의

가사이니까 선거 캠페인 송으로 절대 쓰지 말라고들..

특히 공화당. 보스가 깜놀하신다.



86년에 나온 Live 1975-85제플린으로 치면 Song

Remains~급의 최전성기 라이브 앨범으로서 자그마치

13x 플래티넘을 찍은 또 하나의 초대박 작품. 이 앨범과

95년 Greatest Hits보스가 가장 전성기일 때 최고의

활동 기록을 담고 있어 스튜디오 앨범이 아님에도 팬덤이

은 최고의 아카이브 작품들이라고 하겠다.



(Live 1975-85)



(Greatest Hits)




87년 8집 Tunnel of Love는 상대적으로 E스트리트 밴드

색깔을 많이 뺀 지극히 개인적인 작품으로 타이틀 트랙

Brilliant Disguise 등 히트곡을 냈고 실패한 첫 결혼 등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낸 앨범이다. 본작으로 88년에

그래미 상도 탄다. (첫 그래미는 85년에 수상.)



이밖에 90년대엔 Human Touch를 히트시킨 동명의 9집

앨범이나 94년 탐 행크스 주연 영화 필라델피아의 주제가로

오스카 상을 수상한 Streets of Philadelphia 등 작품으로

여전한 인기를 이어간다. 96년엔 숀 펜 주연 영화의 사형수

스토리로 Dean Man Walkin'을 히트시키기도.



95년 앨범 The Ghost of Tom Joad는 오랜만에 포크

을 불러와 건재함을 알린 앨범이며, 02년 The Rising

10년간 떨어져 있다 99년에 E스트리트 밴드와 재결합하여

18년만에 맞은 앨범 성공작이기도 하다.



('Dead Man Walkin'' from eponymous OST, 1996)

*96년 68회 아카데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직접 부른 버젼이다.



('Secret Garden' from Greatest Hits, 1995)




한편 70년대 후반에 소송으로 앨범 작업을 못할 때쯤

보스는 다른 가수와 협업하는 유명 히트곡 작곡가로도

활동했다. 그 중 펑크의 대모 패티 스미스 선사한 곡이

가장 유명하고 맨프레드 맨s 얼쓰 밴드포인터 시스터즈

등과의 협업도 선풍적 인기를 끌어온 바 있다.



Blinded by the Light는 사실 스프링스틴데뷔 앨범

실린 트랙인데. 본인은 히트 못 시키고 실력파 키보디스트

맨프레드 맨에게 주어 빛을 보았다. 쩝.


('Blinded by the Light' by Manfred Mann's Earth Band,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lcWVL4B-4pI


('Fire' by the Pointer Sisters, 1979)

https://www.youtube.com/watch?v=cCOBp1Lrlf4


('Because the Night' by Patti Smith,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6OjW1TDANxk



*락앤롤 명예의 전당 25주년 기념 공연에서 U2 및 패티 스미스와 공연했다.




*Dancing in the Dark, studio version



*Badlands, studio version



*Hungry Heart, studio version



*Born to Run, studio version



*Born in the U.S.A., studio version






반복하지만 한국에서는 지지리도 인기가 없는 분이다.

가사와 정서가 중요한 가수이니 한국인이 공감할 만한

요소가 거의 없어 인기가 있는 것이 이상할 터. 하지만

오래 전부터 이름은 유명한 분인데 왜 그토록 대단한지

이해를 새롭게 하는 계기만 만들었다면, 뭐 만족한다.

그래도 이 분의 세계 음반 시장 실적이 자그마치 1억

4천만 장에 달한다는 사실은 기억해달라..



본 블로거가 가장 좋아하는 트랙을 하나만 꼽으려니 참

망설여지는데 역시 Born to Run 앨범에서 가장 혁신적인

작편곡 구성으로 뒤통수 맞는 듯한 기분을 느꼈던 이 곡이

가장 좋을 것 같다. 롤링 스톤 매거진대를 초월한

500대 명곡 중 86위로 집계한 Thunder Road.



(Rolling Stone Magazine's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500-greatest-songs-of-all-time-151127/bruce-springsteen-thunder-road-44121/



잘 들어보면 유행가의 전형적 양식인 verse-chorus

구조를 한창 벗어난 변칙 구성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딱히 후렴구라 할 만한 악절이 없음에도 텐션을 고조시켜

코다로 넘어가는 작편곡 기법이라니.. 브루스 스프링스틴

이름값이 고스톱 쳐서 딴 거 아님을 여실히 느낄 수 있을 터.



여담이지만 "네가 안 예진 몰라도 난 괜찮아"란 가사에 젊은

시절 줄리아 로버츠가 엄청난 감동과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가사 내용이 뭐냐고? 갓 학교 마친 뉴저지 젊은 남녀의 흔한

"시골 너무 깝깝해. 오빠 믿지? 서울 가자." 스토리이다.

멋진 곡을 강추로 띄우며 포스팅을 마친다.



('Thunder Road' from Born to Run, 1975)

*Thunder Road, studio version



*미니멀라이징한 75년 런던 라이브 버젼. 피아노에 Roy Bittan. CP-70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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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음악은 할 얘기 많으니까...

몇 분의 보컬리스트들 이야기를 개시한 김에 음악

카테고리를 부활시키려 하고, 이제 이 분을 얘기하겠다.



한국과 일본 등지 락 씬에 80년대 이후로 큰 영향을

미쳤고 음악의 성향이 메탈이 아님에도 이상하게

메탈 키드들의 반향을 불러 일으킨 분.



노래를 잘 하는 흉성의 표본이 뭐냐 하는 질문에

묵묵히 이 분의 레코딩이 답으로 제시되던 때도 한때는

있었다. 저니프론트맨으로 영원토록 기억될 그 이름,

스티브 페리 Steve Perry이다.









저니 Journey, 아메리칸 하드락의 상징.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운드를 구사해온 인기 밴드이며 Open Arms

Don't Stop Believin' 등 시그니처 송 연속 7장에 달하는

멀티 플래티넘 앨범의 성과를 자랑하는 기념비적 아티스트들.



빌보드 탑40 싱글이 무려 18곡인 데다 미국 내 판매고만 5천만

장에 달하고 세계적으로는 8천만 장 가까이 팔아치운 괴수급

스테디셀러이기도. 2005년 유력 일간지 USA투데이가 집계

역대 가장 사랑받는 미국 락밴드 5걸 중 하나로서, 2017년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이들... 이 모든 것이 저니

거둔 성과이고 그 중심엔 이 분, 스티브 페리가 있었다.





('Open Arms' from Escape, 1981)

(두 곡이 대표곡인 것은 미국이나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


('Don't Stop Believin'' from Escape, 1981)



80~90년대 이후 한국에도 등장하기 시작한

스쿨 밴드의 내노라 하는 보컬들은 모두 이 분의

영향권 하에 있었다. Open Arms하이 노트

찍을 수 있나 없나가 오디션의 기준이던 때도 있었으니.



Don't Stop Believin'이 그 기준곡을 대신하기도 했다.

Don't Stop~키보디스트들의 리프 레퍼토리 확장에도

크게 기여한 바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드라마 글리나 영화

락 오브 에이지의 커버로만 접한 듯. 원곡은 이 분들이다.

1981년 명반 Escape에서 싱글 커트된 저니의 대표 트랙.

03년 영화 몬스터에서도 절절한 감정으로 삽입된 적 있다.



 (Escape)



(12년 락 오브 에이지. 메리 J 블라이지만 참 아깝네.. 왜 거기서 나와.)

저니의 멤버는 변화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주요한

포지션의 주요 멤버는 큰 변화 없이 음악의 색깔을

일관성 있게 유지해왔다고 할 수 있다. 보컬의 페리,

기타의 닐 숀, 키보드의 조나단 케인, 베이스의

로스 밸로리 등이 그들이다. 49년생 

밴드를 완전히 탈퇴한 것은 90년대 말경..



 (Schon)


 (Cain)


 (Valory)



(최전성기던 81년경 라이브)


('Separate Ways(Worlds Apart)' from Frontiers, 1983)

(아, 위 뮤비의 핸드싱크는 유명하니 즐감하시길. 뜬금없는 주피터8까지.)



(Roland Jupiter-8)


(조나단 케인의 신디 파트에 관해)

https://www.youtube.com/watch?v=HjNdXJP8QDo




저니의 초창기는 산타나 세션 멤버들의 사랑방 같은

분위기였다. 산타나의 히트 트랙에서 노래를 불렀고

Hammond B-3 오르간 연주력으로도 일찍이 정평이

나 있던 그렉 롤리보컬키보드를 겸했었는데

이때 음악이 지금과 상당히 달랐고 반응도 대략

그저 그런 수준이었음을 보면 차이가 확연하다.



('To Play Some Music' from Journey, 1975)

https://www.youtube.com/watch?v=iA1kGECadwQ

*프로그레시브 색이 짙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롤리 저니의 정규 6집과 1981년경까지 함께 했으니

상당한 기간 저니의 음악적 기초 완성에 기여했음은

자명하다. 아래 트랙을 들으면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페리+롤리 듀오 체제의 1~2기 시절 그들을 볼 수 있다.



롤리가 자의에 의해 밴드를 떠나며 베이비스 The Babys

에서 신디사이저를 다루던 조나단 케인을 추천했고 케인

신디가 롤리의 해먼드 대체하며 매우 산뜻하고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과 케인의 조합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밴드는 날개를 활짝 펼 수 있었던 것.



(나중에 왜 베이비스와 저니 출신들이 모여 프로젝트

따로 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Rolie)


 (Hammond B-3)



('Feeling That Way' from Infinity, 1978)



('Wheel in the Sky' from Infinity, 1978)



('Lights' from Infinity, 1978)




드럼은 꽤 변화가 있었는데 초반엔 에인슬리 던바

사운드의 기조를 갖추는데 기여했고 흔히 상업적으로

히트한 80~90년대와 현재엔 스티브 스미스가 활동했다.

90년대와 10년대 중반까진 빼어보컬 실력까지 갖춘

딘 카스트로노보가 출중한 파워 드럼을 뽐냈었다.



던바, 스미스, 카스트로노보의 드러밍에서 공통점을

꼽아볼 수 있듯이 복잡하지 않고 육중하게 선이 굵은

파워 드러머들이 저니의 사운드에서 전통적인 한 축을

맡아 왔다고 하겠다. 저니 사운드에서 뭔가 재즈스럽고

복잡한 리듬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근데

정작 스미스 버클리에서 전공이 재즈였다능..)



 (Dunbar)


 (Infinity)



 (Smith)


 (Evolution)




특히 금세기 초반 보컬리스트 체제가 본격적으로

갖추어지기 직전 간간히 리드 보을 겸하기도 했던

카스트로노보의 팀내 기여도는 꽤나 출중한 편이었다.

로저 테일러 및 돈 헨리 이후로... 그는 드러머 중 가장

탁월한 보컬 실력을 갖춘 뮤지션으로 기억되리라.

물론 파워 드러밍 역시 탁월하다.



사실 카스트로노보의 이런 음악적 기여도는 2천년대 초

저니의 음악적 여정에서 한 번도 겪지 못한 새로운 요소라서

저니의 보이스를 대변하는 페리가 떠난 후 보컬과 드럼을

동시에 갖춘 이 포지션 메이커를 놓고 어떻게 밴드 구성을

새롭게 가져갈지, 을 중심으로 상당히 고민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했다. 한때는, 정말 한때는...



 (Castronovo)


('Mother Father' from Escape, 1981)

(카스트로노보. 보컬과 드러밍 양쪽 모두 후덜덜한..)



('Still They Ride' from Escape, 1981)

(Escape 앨범의 트랙 중에서)




73년에 결성한 저니 75년에 데뷔 앨범을 냈으나 사실

3집까지는 음악 방향도 갈팡질팡에 별 볼 일이 없었다.

뭔가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77년에 페리가 새로

들어오면서부터. 78년의 Infinity 앨범에서 Wheel in

the Sky, Lights 등 트랙이 서서히 두각을 나타냈고

앨범은 20위 근처까지 상승한다.



78년에 라이벌 제퍼슨 스타쉽가담한 일로 드러머

던바가 짤리고 스미스가 들어온다. 79년 Evolution

앨범에서 싱글 차트 첫 탑20 진입곡 Lovin' Touchin'

Squeezin'을 만들어낸다. 80년 Departure 앨범은

차트 8위까지 오르는 쾌거에다 Any Way You Want

It이 히트하기까지. 그런데 계속된 투어에 지친 롤리

탈퇴하고 케인이 자리를 대체하게 된다.



메인 스트림에서 만개하기 직전 페리의 진가를 알 수

있는 대표적 트랙은 역시 Departure 앨범에서 크게

히트한 Any Way You Want It일 것이다. 보컬과 작곡

양면에서 출중한 기량을 확인할 수 있다. 쥬크 박스

뮤지컬에서도 리메이크된 바 있어 익숙하리라. 그의

능력은 일찌감치 남달라서 LightsLovin' Touchin'

Squeezin' 역시 그가 만든 트랙들.



 (Departure)



('Any Way You Want It' from Departure, 1980)



(전성기 1981년 Escape Tour 시절)


https://www.youtube.com/watch?v=b9EukP0QsXU

(꽤나 당혹스러웠던 영화 락 오브 에이지 버젼)



('Lovin' Touchin' Squeezin'' from Evolution, 1979)




1981년 Escape, 1983년 Frontiers 앨범에 이르는

시기가 저니 디스코그래피의 최전성기이다. 이땐 시쳇말로

미국 국민 밴드 내지 세계구급 스타가 되어 버린다. 월드

투어로 따지면 80~85년 무렵 정도 된다. 월드라 해도

한국은 절대 온 적 없다... 한국엔 17년에야 겨우 오셨다.

물론 스티브 페리 없이. 궁시렁..



Escape 앨범에서는 지금도 귀에 선연한 매우 많은 히트

트랙을 쏟아냈다. Open Arms, Don't Stop Believin',

Who's Crying Now, Still They Ride, Stone in Love,

Keep on Runnin', Mother Father... 도대체가 버릴

곡이 없다는 표현은 이런 데다 쓰는 말일 것. 솔직히 말할까.

현재의 저니조차도 사실 이 때 히트 우려먹으면서 먹고

살고 있다고 해도 뭐라 할 사람 없을 걸.



이분들 히트곡이 이거 밖에 없냐 뭐라 할까 싶어 반복적인

언급을 자제하지만 Open Arms는 당시 세계적으로 대박

친 히트곡이었다. 싱글 핫100 차트에서 6주나 2위에만

머물다가 하락했는데 정상 등극이 가능할 수도 있었기에

안타깝기도. J 게일스 밴드 Centerfold  조운 제트 앤

블랙 하츠 I Love Rock 'n' Roll이 가로막고 있었다고.

그럴 만두 하다 싶네..



('Centerfold' by the J. Geils Band,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BqDjMZKf-wg


('I Love Rock 'n' Roll' by Joan Jett and the Blackhearts,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f2W2HexpXg4




많은 평론가들이 80년대 하드락을 대표하는 앨범으로 첫

손에 꼽았고 별 네 개 또는 네 개 반을 선사한다. 공격적인

어프로치를 드러내기에 헤비 메탈로 분류하는 매체도 많다.

드디어 이들을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서게 했고 현재까지

9x 플래티넘의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핫100 탑텐 싱글 셋

포함하여 정말 많은 수록곡차트셋리스트를 휩쓸었다.



('Who's Crying Now' from Escape, 1981)



('Stone in Love' from Escape, 1981)



('Lay It Down' from Escape, 1981)

(가장 높은 초고음 샤우팅이 아마 이 트랙에서 나올 걸)




 (Frontiers)




전작이 워낙 초대박인지라 상대적으로 약했다 뿐이지 1983년

Frontiers 앨범 역시 대박이었다. 6x 플래티넘을 기록한 앨범이

차트 2위까지 올랐고 싱글에서 탑텐 하나, 탑20 언저리에 세 곡이

나왔다. 영국 앨범 차트에선 역대 최고 성적인 6위까지 오르기도.



오늘날까지 이들 음악을 규정하는 좋은 곡들이 뽑혀 나왔다.

Separate Ways (Worlds Apart), Send Her My Love,

After the Fall, 또한 Faithfully까지... Separate Ways

싱글 8위까지 올랐다. 버릴 트랙이 없는 전작의 완성도가 주욱

여기까지 이어져 찬사를 받았었다. 속된 말로 돈을 갈퀴로 쓸어

담던 호시절.. 단 너무 상업적이라고 욕도 먹었고. 전작이 헤비

메탈이라면 본작은 왠 어덜트 컨템포러리였다. 저런.



Ask the LonelyOnly the Young 등 두 곡은 앨범 발매

직전에 빠져서 영화 OST로 팔려 나갔다. 특히 후자는 좋은 곡

많기로 소문난 비전 퀘스트에 삽입되어 싱글 탑텐에도 오른다.

대신 두 곡은 컴필레이션으로선 이례적으로 88년 차트 10위에

오른 Greatest Hits에 들어간다. Chain Reaction 역시

라디오 방송 신청이 높아 고른 지지를 얻었다.



 (Greatest Hits)



('After the Fall' from Frontiers, 1983)



('Send Her My Love' from Frontiers, 1983)



('Chain Reaction' from Frontiers, 1983)



('Only the Young' from Vision Quest OST, 1985)



('Ask the Lonely' from Two of a Kind OST, 1983)




83~87년 시기는 월드 투어에 성공한 밴드로서 저니의 커리어

상 최정점이자 동시에 리스크도 떠안고 지낸 시기였다. 뭐 아주

특별한 위험은 아니고 어느 밴드에나 있을 법한 문제, 즉 멤버들

솔로 활동 관련한 것이지. 특히 프론트맨의 문제가 심한 거고.



음악적 창의성과 테크닉과 상업성을 갖춘 보컬리스트이니

솔로 제의가 안 들어오면 이상한 일. Frontiers 발매 이듬해

페리의 첫 솔로 앨범인 Street Talk가 발매되고 그냥저냥

정도가 아닌 더블 플래티넘 급의 대박을 쳐버린다. 싱글의

기록도 빼어났다.



Oh Sherrie 싱글이 핫100 차트에서 무려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꽤 히트했으니 듣고 기억하는 분도 있을 듯.

이 곡은 여러 모로 저니의 컬러와 판박이 성격이 강하고

밴드 멤버들도 이를 인정하여 함께 협연도 했다 한다.

뮤직 비디오 앞부분에 스티브의 어색한 연기 파트도

나오니 스킵을 원하는 분들은 2분경부터 보면 된다.



(Street Talk)



('Oh Sherrie' from Street Talk, 1984)




이 시기 저니는 정말 잘 나갔다. 닐 숀 로니 제임스 디오

불러모은 Hear N' Aid 프로젝트에 초청되셨고 스티브 페리

그 유명한 USA for Africa에서 당당히 2부의 한 소절을

불러 제끼셨다. 평소 친한 케니 로긴스 다음으로...

We Are the World 뒷부분은 다른 아티스트

중심이니 2분 30초 경 앞부분만 보면 된다.



(Stars 중 닐 숀 파트만)



(We Are the World 중 스티브 페리 파트만)



 (Raised on Radio)




85~86년경 다시 스튜디오 앨범을 위해 뭉쳤을 때는 정말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밸로리 스미스가 음악적 견해 차로

무려 잘리기까지 했고. 전문 세션맨 랜디 잭슨이 대체 멤버로

투입되었고 드러머는 공석에 투어 세션으로 떼운 시절. 잭슨

하면 아메리칸 아이돌 평가위원으로 유명한 그 분 맞다.



혼돈의 86년, Raised on Radio 앨범이 발매된다. 더블

플래티넘탑20 싱글 4곡의 달성엔 성공하나 전작에 의존

결과임은 자명했다. (Be Good to Yourself, I'll Be Alright

Without You, Girl Can't Help It, Suzanne이 그 네 곡.)

결국 87년 저니는 한 차례 활동 중단의 수순을 밟게 된다.



(Jackson)



('Girl Can't Help It' from Raised on Radio, 1986)



('Be Good to Yourself' from Raised on Radio, 1986)

(이래 뵈도 핫100 9위까지 오른 곡)



80년대 후반이 되어 각자의 길을 가게 된 페리 , 케인.

페리는 솔로 아티스트로서,  케인은 당시 유행하던

슈퍼 그룹을 결성하여 살 길을 모색하는 식으로 변화한다.

배드 잉글리쉬가 이때 결성된 반은 프로젝트 성격인 밴드로서

페리 케인 베이비스 출신 존 웨이트 리키 필립스,

여기에 딘 카스트로노보가 가담한다.



배드 잉글리쉬는 얼핏 들어도 참 저니스러운 사운드를 구사했다.

팬덤에서까지 저니 창작성의 연장선에서 이해하고 있을 정도..

몇몇 트랙은 중박 정도의 싱글 히트를 기록했다. 명작곡가

다이앤 워렌이 쓴 When I See You Smile 싱글 차트

1위까지 올랐을 만큼.



('When I See You Smile' by Bad English, 1989)




 (Trial by Fire)




87년 중단 후 8년간 서로 떨어져 솔로 활동에만 매진하다
95년에 잠깐 다시 뭉쳐 Trial by Fire 앨범을 낸다. 빌보드
12위까지 오르는 싱글도 내지만 페리가 운동 중 부상을
당하여 수술 일정이 잡힌 관계로 투어가 불가능했다. 이때
페리는 나머지 멤버들로부터 무언의 압력 같은 것을 느껴
불편했다 하고 영원히 저니를 떠날 것을 공표한다. 결국
20세기 마지막 플래티넘을 기록한 앨범을 남기고 말이다.


*이 시기 페리의 심리 상태에 대해선 다른 견해도 존재한다.
전혀 다른 해석과 분석은 아래 링크를 참조.



다시 저니라는 정체성을 찾는 작업이 중요함을  케인
중심으로 깨닫게 되지만 비어 있는 보컬리스트의 자리가 문제.
페리의 존재감은 재적해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커진 것 같았다.

딴에는 여러 가지 방도를 시도했다. 전술한 카스트로노보

겸직 사례도 있고.. 특히 98~06년 동안 함께 한 보컬리스트

스티브 오임팩트 나름대로 컸다고 본다.



전에 즐겨 보던 제리의 한창 때 라이브 동영상이 있었는데

새 인물이 자리잡은 이후 내린 모양이다. 없어졌네. 아래는

그런 대로 오디오만으로 확인하실 수 있는 링크.. 제리

탈퇴 사유는 곡이 가진 극강 난이도가 보컬리스트 당사자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 복합적인 것으로 추정된다.



(Augeri)





(04년경 오제리와 카스트로노보가 모두 출연. Keep on Runnin'..)

https://www.youtube.com/watch?v=3wZgP-qhj_E




저니 셋리스트가 가진 부담이란 것이 그 정도인 거다..

특히 밴드의 상징과도 같은 Separate Ways 같은 트랙의

난이도는 정말.. 왜 키를 낮추지 않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인터넷의 댓글도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케인의 독단적 밴드 운영을 성토하는 일부 팬도 있지..)



제리가 건강상 이유로 하차한 후 약 1년여 동안 제프

스캇 소토도 재적했다. 잉베이 말름스틴과 활동으로 꽤

유명하고 검증된 보컬리스트였으나 기존 멤버와의 성향

차이가 심해서 거의 쫓겨나고 만다.



 (Soto)



(제프 스캇 소토와.. I'll Be Alright Without You)

https://www.youtube.com/watch?v=zwFvx49OU2o




이렇게 그냥저냥 침몰할 뻔하다가 2007년 무렵 밴드는

기사회생한다. 잘 알려진 대로 필리핀에서 날아온 무명의

커버밴드 출신 보컬리스트를 영입한다는 동화 같은

스토리와 함께. 오오, 아넬 피네다가 등장한 것이다.



피네다의 등장은 괜찮은 마케팅 요소였다. 적절하게 감동적인

스토리와 오랜 무대 경험에서 오는 안정적 실력이 버무려진

결과였지. 하지만 67년 양띠인 이 형님도 너무 늦은 나이에

발탁된 거 아니냐, 진성 팬덤은 아직도 우려가 크다. 가뜩이나

난이도 높은 밴드의 트랙들을 풀타임으로 소화하기엔 정말...

외계인 고문, 아니 피네다 고문 아니냐고.



그리고 10년대 들어 그런 궁시렁 소리가 늘어나면 날수록

결국 종착점은, 스티브 페리가 얼마나 위대한 보컬리스트였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제리 피네다나 심지어 카스트로노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결국 그와의 비교를 피할 도리가 없으니.



 (Pineda)



(피네다와 재녹음한 오픈암스)

https://www.youtube.com/watch?v=I5_qNpALAOU



('After All These Years' from Revelation, 2008)

(피네다 영입 후 2008년의 첫 정규 앨범 중에서)




아레나 락 또는 AOR, album-oriented rock을 대변하는

아메리칸 하드락의 대표 주자가 저니였다. 대형 스타디움을

중심으로 대규모 페스티벌식 콘서트에 최적화한 밴드들이

70년대 중후반부터 영미권 시장에서 우후죽순 성장한 것..

그 중심에 저니가 있었다.



대형 PA에서 빵빵하게 터져 나오는 스타디움에서 청중을

사로잡는다는 뭐 그런 컨셉의 장르 아닌 장르인 건데...

청중의 떼창과 호응이 가능해야 하고 그러려면 귀에 쏙

박히는 후크성 강한 멜로디 라인을 가져야 했고 이런

음악은 필연적으로 라디오 친화적인 매니아 성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고... 뭐, 대략 이런 특성을 지닌다.



파워 발라드락 앤썸 등, 떼창이 가능한 육중한

음률을 뽑아내는 뮤지션의 기술이 중요한 때였다.

기타나 키보드의 리프를 매끈하게 만들어낼 줄 아는

것이 밴드 멤버로서의 큰 미덕으로 통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락 밴드의 투어 공연이란 것이 산업적인 규모로

커지기 시작해 오늘날 라이브 네이션 같은 기업형 모델로

발전한다. 롤링 스톤즈, 핑크 플로이드, , 킹크스시카고,

플리트우드 맥스틱스, 토토다이어 스트레이츠제네시스,

러쉬, U2, 보스턴, 밴 헤일런 등이 여기로 분류되었고

저니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헤드라이너 중 하나.



이런 밴드들에게 페리의 흉성이나 케인의 리프

처럼 선굵은 남성적 파워 사운드 요소는 장수의 생명줄

같은 것이었다. 페리는 대략 1980년 경부터 시작한

새로운 아레나 하드락 최강 밴드가 일군 사운드 성과의

핵심이었다.



('Faithfully' from Frontiers, 1983)




한국에선 Open Arms가 발매 당대부터 즉각적인 반응을

얻었고 약간의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Faithfully를 발견해내

현재의 인기에 다다른 걸로, 그렇게 기억한다. (그 약간의

시간이 얼마였냐에 대해선 사람의 기억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는 걸로 정리하자. 공식 기록이 없으니...)



여담으로, 81년 텍사스 휴스턴 라이브는 진리인 듯하다.

반복해서 시청하니 휴스턴에 있는 듯 착각이... 영 시간이

없는 분들은 검색어 잘 찾아서 이 라이브 한 번만 보면

스티브 페리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참고로 MTV가 제작한 것.






주지하다시피 이들 사운드의 핵심은 의 기타 및 케인
키보드가 가진 육중한 톤과 귀를 사로잡는 리프이다.
유명한 Gibson엔도시로서 56년형 Les Paul과 ES-335
들고 연주하는 모습이 대중에 각인되어 있다. 케인의 기어 중
가장 유명한 건 Roland Jupiter-8이겠지만 Separate Ways
작곡 당시엔 Oberheim OB-X를 썼을 거란 추정이 대세이다.


(Gibson Les Paul)



(Roland Jupiter-8)

https://www.youtube.com/watch?v=Xw4AV_BeE24

*Chain Reaction. 2분 5초경. 단체 발연기는 덤..




영원한 저니프론트맨 스티브 페리. 금세기엔 대외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지는 않아서 건강에 이상이 있지 않은지 염려도

된다. 그래도 17년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선 밴드 멤버들과

조우했고, 무엇보다 까마득한 후배로서 자신의 후임을 맡고

있으면서도 페리에 대한 존경을 숨기지 않는 아넬 피네다

따뜻하게 안아주고 격려해 선배로서 큰 귀감이 되었다 한다.


https://news.abs-cbn.com/entertainment/04/08/17/look-arnel-pineda-meets-journeys-steve-perry-for-first-time






페리가 90년대에 잠시 저니와 재결합하여 Trial by Fire

앨범을 낸 그 순간이 있었다. 마지막 불꽃이라고 할까. 여기서

싱글 커트된 When You Love a Woman이야말로, 페리

마지막 전성기를 확인할 수 있는 절정의 트랙이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강력하게 추천하며 이번 포스팅을 마친다.



('When You Love a Woman' from Trial by Fire,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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