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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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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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스이어 붙여서 이분 포스팅 안 하면 뭔가 허전하게

생각할 사람들 있을 거다. 그런데 일부 매니아들에 알려진 지적

명성에 비교해 한국 시장에서 그의 인지도는 낮아도 너무 낮다.

게다가 지극히 제한적인 경로로 얻을 수 있는 그에 대한 한글

정보는 매우 부정확하기까지 하다. 가끔 열받을 정도로.



이에 반해 유럽 중심 사회에서 20세기 후반을 통틀어 형성한

그의 사회적 이미지는 사뭇 진지하고 웅대하다. 20세기 대중

음악계에서 가장 지성적이고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인물로 보통

꼽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거둔 음악 산업에서의 객관적

성과와 업적도 결코 만만히 볼 만한 수준이 아니다.



하여 이제 약간은 한물 간 진보 대중 음악가를 다시 정확하게

해설하여 제대로 알고 넘어가자는 뜻으로, 작정하고 진중하게

접근해보려 한다. 제네시스에서 파생한 최고의 월드뮤직

아티스트, 피터 가브리엘 Peter Gabriel에게로 말이다.











('Firth of Fifth' from Selling England by the Pound, 1973)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from eponymous album, 1974)



('Solsbury Hill' from Peter Gabriel 1/Car, 1977)



('Sledgehammer' from So, 1986)

*뮤직 비디오 감독은 Stephen R. Johnson.




- 언젠가 표기에 대한 사회의 견해가 일치하면 게이브리얼
써야 옳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래도 성경 용어가 더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가브리엘로 부르는 편이 합당할 것 같다. -


이미 한번 썼듯이 가브리엘의 초창기는 제네시스 결성 무렵의
초반전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집이 제법 사는 50년생 사립 고교
동창생들 다섯으로 67년경에 모인 이들은 심각한 음악보다는
브리티쉬 포크나 접근이 용이한 팝락을 해보려 했다.


이들이 69년에 낸 1집 From Genesis to Revelation
좋아하는 사람도 간혹 보긴 했지만 아직 프로그로 여물었다고
보긴 상당히 애매했다. - 다만 아트락으로는 분류한다.


브리티쉬 포크에 기반한 프로그레시브 락으로의 전환은 70년
2집 Trespass 앨범에서 시작한다. 아직 상업적으로는 극히
미미했지만 벨기에에선 다소간 인기가 있었다. 마지막 트랙
The Knife는 킹 크림슨이나 핑크 플로이드에 견줄 만큼 충분히
공격적이고 진지한 연주력을 입증한 작품일 터. 이후 라이브의
셋리스트에도 자주 올라온 인기 트랙이다.


('Silent Sun' from From Genesis to Revelation, 1969)


(From Genesis to Revelation)



(Trespass)



('The Knife' from Trespass, 1970)







프로그 퀸텟으로서 제네시스 Genesis의 전성기는 화려한
연주력을 장착한 다섯 멤버 체제가 완성한 71년 3집부터.
원년 멤버인 보컬 피터 가브리엘, 키보드 토니 뱅크스, 베이스
마이크 러더포드기타 스티브 해킷드럼 필 콜린스가 새로
영입된 것. 흔히 일컫듯이 제네시스가 예술 음악하던 시절의
전성기 라인업이 바로 이들 다섯 사람이고 예스, 제플린,
플로이드 등 동시대 어떤 슈퍼그룹에도 밀리지 않는다.


원년 멤버로서 기타리스트앤서니 필립스였고 드러머
크리스 스튜어트였다. 음악계를 떠나 전직한 스튜어트
차치하고 포크락에 기반한 음악성을 지녔던 필립스의 진가에
관해선 지금도 기억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꽤 있다. 허나 너무
과대평가도 금물이다. 블루스가 아니라 포크에 기반해 발전한
초기 제네시스의 음악성을 예술로 이끌어 올린 공 결국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 해킷에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브리엘 생일 하루 전에 태어나신 동갑의 스티브 해킷
동시대 어느 연주자보다 혁신적인 기교와 진보적 음악성에
눈을 뜬 선구자이다. 에디 밴 헤일런 이전에 태핑 주법을
개척한 분이고 브라이언 메이알렉스 라이프슨 등 후배
연주자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초창기 몇몇 밴드를
거치다 제네시스에 합류한 시점이 1970년.



가브리엘은 밴드를 이끄는 리더로서 피아노플루트 연주
실력을 지녔으며 종교, 역사, 문학,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서
풍부한 지식과 통찰력을 기반으로 전통과 판타지를 융합하여
아름다운 가사의 창작 능력을 갖춘 뮤지션이다. 멀리 19세기경
영국 귀족 가계에까지 닿을 만큼 잉글랜드 상류층인지라 그는
항상 대외 활동의 사회적 책무에 민감한 편이었다.


('The Return of the Giant Hogweed' from Nursery Cryme, 1971)




 (Nursery Cryme)




어수선한 초기 혼란을 딛고 다섯 사람은 71년에 정규 3집
Nursery Cryme으로 새출발한다. 영국에서 반응은 썩 좋지
않았으나 유럽을 돌며 열정적으로 프로모션 투어에 나선다.
이탈리아에서 뜨거운 반응이 오기 시작하고 3년쯤 지나서
차트에 진입하는 등, 온갖 풍상을 다 겪은 앨범이다.


콜린스의 가세로 리듬 파트에 임팩트가 확 살아난 것만은
분명했다. 해킷은 끊임없이 뱅크스를 꼬셔서 Mellotron
사운드를 도입하도록 설득했다고. 앨범 커버는 크로켓
운동 기구로 어린아이 목이 댕강 날아간 괴담을 배경으로
한 것. 인류를 몰살할 잡초에 관한 유머스런 괴담도 한
축을 이루는 등, 가사의 상상력이 극에 달한다.


The Musical Box, The Return of the Giant Hogweed
등 두 곡은 제네시스 팬덤의 오랜 명곡. 해킷태핑 주법을
음악사상 최초로 도입한 곡으로도 유명하다. The Fountain
of Salmacis 역시 꾸준히 지지받아 온 트랙이고. 수십 년간
꾸준하게 팔려나가 13년에 영국에서 실버 인증을 받았단다.



('The Musical Box' from Nursery Cryme, 1971)

https://www.youtube.com/watch?v=9LlbYixG1GU



*73년 영국 라이브 중 - 앞에 1분간 가사의 목 댕강 스토리를 설명한다.



('The Fountain of Salmacis' from Nursery Cryme, 1971)

https://www.youtube.com/watch?v=In2fRySroH8




('Watcher of the Skies' from Foxtrot, 1972)




(Foxtrot)




눈물겨웠던 전작들 활동을 마치고 진정한 성공작을 만들기

위해 모든 멤버가 절치부심했다. 4집 준비를 위해 모이기

직전 어느 페스티벌에 참가했을 때 가브리엘이 느닷없이

메이크업 코스튬과 함께 등장했고 영국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얻었기에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72년 Foxtrot는 밴드 결성 후 최초로 영국 앨범 차트

진입하는 성공을 거둔 작품. 80~90년대 제네시스 역사를

아는 사람들이야 그게 뭐 대수냐 하겠지만, 눈물젖은 빵을

먹어본 그들에겐 의미있는 성과였다. 해킷이 열심히 꼬신

덕인지 첫 트랙 Watcher of the Skies의 인트로부터

뱅크스가 장엄하게 Mellotron Mk II를 쳐댔다.



다들 아시겠지만 앨범의 백미는 퀸텟 시절을 대표하는 프로그

장르의 걸작이며 22분이 넘는 대곡Supper's Ready. 와~

이 시절 다섯 멤버가 얼마나 치열한 예술적 감성으로 충만한

상태였는지, 오로지 한 곡으로 입증된다. 가브리엘의 가사가

으레 그렇듯이 난해한 내용이지만 과 현실이 섞여 약간

기독적인 일화와 연관이 있다고.. 가브리엘 아내가 겪은

영적 체험 관련설이란 떡밥도 존재.. 해석은 각자의 몫.



(Mellotron Mk II)


https://equipboard.com/pros/tony-banks/mellotron-mkii



('Supper's Ready from Foxtrot, 1972)

*팬덤에서 애니메이션으로 구성한 버젼.




Supper's Ready 소곡 구성 (스튜디오 버젼 기준):

i.    Lover's Leap [0:00~3:47]

ii.   The Guaranteed Eternal Sanctuary Man [3:48~5:43]

iii.  Ikhnaton and Itsacon and Their Band of Merry Men [5:44~9:42]

iv.  How Dare I Be So Beautiful? [9:43~11:04]

v.   Willow Farm [11:05~15:36]

vi.  Apocalypse in 9/8 [15:37~20:50]

    (Co-Starring the Delicious Talents of Gabble Ratchet)

vii. As Sure As Eggs Is Eggs [20:51~22:54]

    (Aching Men's Feet)




*studio album version

https://www.youtube.com/watch?v=szJq1lwnkNw&t=



*가장 유명한 74년 파리 방송 라이브 버젼.

- Supper's Ready 본곡은 6분 20초경부터.




무대를 주름잡가브리엘똘끼 충만 시절을 느끼려면

화질 안 좋은 예전 라이브 영상을 꼭 보시길. 7개 소곡으로

나뉘는 이 대작의 절정부라면 역시 5부 Willow Farm

6부 Apocalypse in 9/8. 커다란 가면을 쓴 그의 스틸

사진을 많이 구경했을 텐데 - 맨 위 사진 - 바로 5부에 나오

코스튬이다. 6부의 '9/8'은 8분의 9박자라는 뜻. 이런 파트를

들어보면 각 파트 멤버들의 연주 기본기가 얼마나 충실한지

깨달을 게다5부는 싱글로도 발매된 바 있다.



이밖에 Get 'Em Out by Friday는 곡 안에 서로 다른 세

캐릭터끼리 서사를 주고 받는 진정한 씨애트리컬 락으로서

가브리엘의 문학적 똘끼가 빛나는 곡. 해킷의 영향이 짙은

트랙으로 JS바하 무반주 첼로 조곡을 본뜬 Horizons

Can-Utility and the Coastliners를 꼽을 수 있다.



프로그레시브 락의 정수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필청의 음반일

것이다. 이 앨범으로 제네시스 다섯 사람은 1970년대 락밴드

시대의 중심 세력 중 하나로 급부상하게 되고 음악사에 길이

남을 이정표를 세운 셈. 장르가 너무 복잡해 귀찮다 싶어도

이 앨범만 들어보면 충분히 감이 올 듯...



('Get 'Em Out by Friday' from Genesis Live, 1973)



('Can-Utility and the Coastliners' from Foxtrot, 1972)



('Horizons' from Foxtrot, 1972)

https://www.youtube.com/watch?v=oHmjbwfYf-k




그 외에 프로그 장르의 발전사에 관해 굳이 더 큰 호기심이

동한다면 아래의 앨범들에 추천을 때린다. 시간 순서대로..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1969

('21st Century Schizoid Man' by King Crimson)

https://www.youtube.com/watch?v=MM_G0IRLEx4

- an excerpt from legendary Hyde Park Live


"Fragile", 1971

('Roundabout' by Yes)

https://www.youtube.com/watch?v=GWIEZQ63NhI

- a tour live in 1991


"The Dark Side of the Moon", 1973

('Money' by Pink Floyd)

https://www.youtube.com/watch?v=Kjgwjh4H7wg

- a concert live in London 2005


"Tubular Bells", 1973

('Tubular Bells' by Mike Oldfield)

https://www.youtube.com/watch?v=_86Gm9iclAg

- an excerpt from legendary Montreux Live in 1981


"Brain Salad Surgery", 1973

('Karn Evil 9' by Emerson Lake & Palmer)

https://www.youtube.com/watch?v=BugmeXR7_V8

- 1st Impression, Part 1 - studio album version


"2112", 1976

('2112' by Rush)

https://www.youtube.com/watch?v=RtdKhwhAcd4

- 2112 Overture / The Temples of Syrinx - studio single version




('Dancing with the Moonlit Knight' from Selling England by the Pound, 1973)




(Selling England by the Pound)




Foxtrot가 영국 시장에서 처음으로 스타덤을 안겨준 첫

성공작이라 한다면 73년의 5집은 자신감을 장착한 다섯

멤버의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영국 앨범 차트 3위까지 오르고

미국 차트에 처음으로 진입하여 전작의 성공을 확대 재생산

명반 Selling England by the Pound가 바로 그것.



전작의 창작 코드가 훨씬 더 정제되면서도 뭔가 한층 더

대중적인 어프로치를 통해 팬덤을 확대하는데 성공했다는

느낌을 주었다. 해킷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들어한 앨범이기도

하거니와, 명곡 반열에 오른 첫 트랙 Dancing with the

Moonlit Knight에서 그는 태핑스윕 피킹 주법을 통해

잉베이 말름스틴 같은 후배들에게 충격적 영향을 끼친다.



I Know What I Like는 유일하게 싱글로 커트되어 이들의

영국 탑30 히트를 기록한다. 유명한 뱅크스피아노

인트로로 시작하는 Firth of Fifth에서 해킷커리어 전체를

대표한다는 빼어난 솔로잉을 들려줘 곡 전체가 탁월한 음률

향연으로 가득하다. 이에 반해 The Cinema Show에서 ARP

Pro Soloist로 연주한 솔로 파트는 뱅크스 커리어 전체에서

가장 빼어나다고 극찬을 받는 프레이징.



데뷔 시절부터 기반한 브리티쉬 포크의 색깔을 지우고 미국

음악의 우산으로 옮겨간다는 뜻이 제목에 내포되어 있듯이,

영국식 껍데기를 벗고 진화한 제네시스의 변화가 산뜻하다는

팬덤의 찬사가 터져나왔다. 영국과 미국에서 골드를 기록했고

앨범의 전 트랙이 제네시스 라이브의 단골 연주곡으로 정착..



아울러 배트윙, 여우머리, 마곡으로 발전해온 가브리엘

코스튬 세계는 Dancing with the Moonlit Knight에서

로마시대 투구를 쓴 브리태니아 기사로, I Know What I

Like에서 소방수 헬멧을 장착한 잔디깎이로 변화해갔다.



(ARP Pro Soloist)



(70년대 초반 크스 장비 도해)



('I Know What I Like' from Selling England by the Pound, 1973)



('The Cinema Show' from Selling England by the Pound, 1973)

*후반부 1분 30초는 앨범 마지막 트랙인 'Aisle of Plenty'.

- 컨셉트 앨범의 대미이므로 두 곡을 접속해서 듣는 것이 옳다.

**ARP Pro Soloist로 연주한 시그니처 솔로는 7분경부터 등장.






('Carpet Crawlers' from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1974)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from eponymous album, 1974)

*탈퇴 직전 마지막 투어 라이브.



*Phil Collins joins Peter Gabriel's concert in 1979.

https://www.youtube.com/watch?v=-1dJbdSTmDs




필경 이 무렵부터 가브리엘 솔로 활동에 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세간에 호사가들 말처럼 콜린스를 포함한

다른 멤버들이 쫓아낸 것은 결코 아니다. 단독으로 활동할 수

있을 만큼 음악 산업에서 자신의 가치를 정확하게 가늠하고 있던

가브리엘의 전략적 판단이 가장 큰 결정 요인이라고 추측다.



이 시기까지 가브리엘제네시스의 관계는 일곱 살 앞서는 선배

짐 모리슨도어즈의 관계와 유사했다. 밴드의 브랜드 가치보다

프론트맨의 대중적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다른 멤버들을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밴드 안에서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다. 상당한

역량을 가진 멤버들끼리 적당한 긴장감은 늘상 있었다.



6집을 녹음할 때는 이상하게 그 긴장이 서로 극에 달한 상황이

되었다. 앨범의 스토리텔링을 위해 영화감독과도 교류하는 등

안팎의 사정으로 늘 바쁘고 어수선한데다 가브리엘이 이제 막

결혼해 첫 아이를 출산할 때가 다가왔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한

뱅크스러더포드 등과 신경전을 벌이곤 했다.



신작 앨범은 그런 난장판 속에 탄생했다. 가브리엘이 작사만

맡을 뿐 모든 작곡은 네 명 멤버들이 전담했는데, 정작 팬덤이

가브리엘-제네시스 시대의 최고 명작이라고 열광하는 상황..

- 뭐, 이런 아이러니가... 74년 11월 앨범 발매를 기점으로

투어를 개시하기 전, 그는 밴드 전체에 탈퇴 의사를 알렸으며

공식 발표는 투어 마치고 이루어졌다.



('In the Cage' from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1974)

*Brian Eno가 보컬에 Enossification 효과를 입혀주었다.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Back in N.Y.C.' from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1974)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가브리엘 시대

제네시스의 마지막 걸작인 더블 앨범이다. 현대인의 결핍된

심리와 병리적 환상을 결합하여 자신만의 온전한 세계관을

구축해온 가브리엘의 창의성이 극에 달해 만들었다고 하는

바로 그 전설의 명반이다.



본작에서 토니 뱅크스는 발군하다. 스티브 해킷도 이에 못지

않다. 두 사람 사이에서 묘한 경쟁과 반목을 관찰했다는 말도

몇몇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리듬 섹션의 두 사람도 실로

창의적이다. 연주를 맡은 네 멤버의 조화는 더없이 아름답다.

개인적으로 꼽는 최고의 키보디스트뱅크스인데, 순전히

이 앨범만 듣고 평가를 내려도 충분하다고 믿을 정도이다.

여러 모로 제네시스와 밀접한 관계였던 브라이언 이노 역시

Enossification이란 사운드 이펙트를 접목시켜 주었다.



곡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접근할지 막연한 분이 많을 터.

보통 팬덤에서는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함께 In the Cage, Back in N.Y.C., Carpet Crawlers,

Fly on a Windshield, The Lamia 등등으로 서서히 애호의

범위를 넓히는 쪽을 추천한다. 페트 크롤러Counting Out

Time싱글로도 커트되었으니 참고하면 된다.



잘 알려져 있듯이 가브리엘 자신이 꿈으로 본 기묘한 이야기를

푸에르토리코 소년 라엘이란 캐릭터가 뉴욕에서 겪는 초현실에

빗대어 플롯을 구성했다. 즉 남의 꿈 얘기를 들여다보는 셈. 사실

그의 가사가 대부분 해석이 안 되는 원인인즉슨 해몽이 안 되기

때문이다. 대략 그러려니 하고 물 흐르듯이 느끼고 즐기는 쪽이

제일인 법. 남의 꿈을 못 읽어냈다 해서 큰일나는 거 아니쟎.

요샌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낸 영상도 있으니 도움이 될 것이다.



('Counting Out Time' from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1974)



('Fly on a Windshield' from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1974)

https://www.youtube.com/watch?v=k9X2QtzCvBQ


('The Lamia' from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1974)

https://www.youtube.com/watch?v=g09mTchpOPU




사실 찬찬히 들어보면 의외로 음률이 대중적이다. 난해하다고

잔뜩 어려운 말로 속물처럼 갈긴 평만 읽고 실제로 음악을 듣는

데 주저하진 말라. 이미 수십 년 지난 음악이며 그 사이 수많은

팬이 즐기며 자신만의 문화를 구축해왔다. 이 음악을 만든 이는

좀 사는 나라의 제법 사는 집 출신으로 약간의 음악적 훈련에

온갖 상상력을 섞는데 성공한 스물 몇 살 청년들에 불과하다.



너무 난해해서 정신과 의사급만 알아 듣는다는 해석글이

여러 사이트에 돌아 다니던데 그런 거 없고, 그냥 들을 수

있는 만큼만 듣고 즐기면 그뿐이다. - 이런 뻘소리는 본

블로거 어렸을 때도 있던, 팬덤이 지은 2차 창작 같은 건데

아직도 돌아다니다니.. 제발 이상한 뻘글 좀 퍼담거나

싸질러 놓지 말라고들. 인터넷 공해다. 무릇 음악이란,

듣고 즐길 수 있으면 그뿐이다. 경전이 아니지 않은가.



이 세상에 난해한 음악이 얼마나 많은데 수십 년 전 대중 가요

정도가 뭐 얼마나 어려울까. 본작일본과 한국 바보들에게

어렵게 다가오는 건 단 한 가지, 영어로 쓴 가사를 해석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단순히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영시문학

어느 정도 즐기는 훈련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까,

영어가 안 되요 하는 소린 할 수 있을지언정 - 현재 영미권을

사는 사람들도 어려워하니 쪽팔린 일도 아니니까 - 음악이

난해하다는 한 마디로 퉁치고 제껴놓지 말자고들.



선입견을 제거하고 들어보면 멋진 앨범이다. 어떻게 40년 전

컴퓨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이런 악상을 떠올렸을까 싶은,

젊디 젊은 재능으로 충만한 멜로디와 패턴이 군데군데 숨어

있으니 귀한 보물을 잘 찾아 보시길. 마지막 불꽃을 활활

태운 후 75년 8월, 제네시스피터 가브리엘의 탈퇴를

공식 발표한다. 팬덤은 난리가 났고.



*가브리엘-제네시스 시대 9대 코스튬에 관하여

- 탈퇴하면서 이제 그만의 독창적 무대의상 시대는 끝난 거다.

https://www.musicalbrick.com/top-9-peter-gabriel-costumes-1972-1975/



*animated illustration created by fan artists (side 1)

- Enossification은 20'14"부터 나오는 트랙에서 더 두드러진다.

 ('The Grand Parade of Lifeless Packaging')



*animated illustration created by fan artists (side 2)







쿼텟이 된 제네시스이미 다른 포스팅에서 썼듯이 콜린스

보컬의 소임을 맡는다. 그는 의외로 잘 해낸다. 그도 그럴 것이

역사가 스포일러이지만 80~90년대를 주름잡은 가수 아닌가.



네 사람 체제에서는 76년에 A Trick of the Tail 및 Wind

Wuthering 두 장의 앨범을 냈는데, 사실 두 작품이 퀸텟

시절 제네시스의 잔상을 지우기가 쉽지는 않아서, 여전히

프로그레시브 팝락의 어딘가 복잡미묘한 위치에서 조금씩

새로운 음악의 시대를 향해 변화를 품고 있었다. - 근데 판매

실적은 퀸텟 시대보다 더 좋아졌다는 것이 함정..ㅜ 제네시스

판매고 1억 장은 사실 대개 가브리엘 나간 후에 거둔 거라능.



이 중엔 A Trick of the Tail, Dance on a VolcanoSquonk

같은 트랙들이 프로그레시브 성향을 견지하는 팬덤에서 꾸준히

지지를 받고 있어 들어볼 만하다. Los Endos는 아기자기한 잔

리듬에 강한 콜린스식 드러밍이 폭발하는 또 다른 인기 트랙.

뱅크스가 작곡한 Afterglow는 신비로운 질감의 백킹이 어여쁜

발라드. 시종일관 울려퍼지는 Moog Taurus의 이펙트가 매우

예쁜 소리를 빚어내 팬덤의 지지가 높다.



이외에도 Eleventh Earl of Mar, Entangled, Your Own

Special Way, Mad Man Moon, One for the Vine

곡이 팬덤과 평단의 꾸준한 지지를 받았다. 두 장의 앨범을

내고 해킷이 탈퇴하여 솔로 아티스트로서 활동을 이어간다.

사실 그는 원래 솔로였다가 제네시스에 영입된 것이니 본디

독립 의지가 강한 입장이었다. 자존감도 강한 분이시고.



('Dance on a Volcano' by Genesis, 1976)

https://www.youtube.com/watch?v=2JGK6Q8rbRU


('A Trick of the Tail' by Genesis, 1976)

https://www.youtube.com/watch?v=ZXqSEw3H_PI


('Eleventh Earl of Mar' by Genesis, 1976)

https://www.youtube.com/watch?v=vmp6mUlguyQ




('When the Heart Rules the Mind' by GTR, 1986)



('Toe the Line' by GTR, 1986)

https://www.youtube.com/watch?v=uUtZkaMAPLw




제네시스라이브 앨범은 크게 네 시기로 나누어 접근하면 된다.

가브리엘 시대 라이브는 유일하게 73년 앨범 Genesis Live에서

들을 수 있고, 쿼텟 시대 라이브는 77년 Seconds Out을 통해

접할 수 있다. 82년 Three Sides Live와 92/93년 The Way

We Walk Vol.I&II트리오 시대 라이브이다.



제네시스 재적 중인 75년에 솔로 앨범 Voyage of the Acolyte

낸 전적이 있는 스티브 해킷은 탈퇴 후엔 철저하게 프로그 장르를

추구하는 예술적 대중 음악을 다룬다. 예스 출신 기타리스트로서

해당 장르에서 쌍벽을 이루는 스티브 하우와 슈퍼그룹 GTR

결성하여 86년에 셀프 타이틀 앨범을 내기도 했다. 딱히 프로그

성향 앨범은 아니지만 매니아들로부터 각광받은 작품이다. 싱글

히트곡으로 When the Heart Rules the Mind 배출했다.



트리오 제네시스 멤버들은 되레 과거 프로그 시대 히트 튠에서

거리를 두려는 경향을 보여왔다. 70년대 히트 트랙을 공연에서

꾸준히 선보인 사람은 오히려 해킷. 90년대 중반 이후 Genesis

Revisited라는 공연 프로젝트를 통해 게스트 멤버를 규합하여

프로그 시대 제네시스 음악을 무대에서 꾸준히 재현해오고 있다.



*Firth of Fifth의 가브리엘 퀸텟 시대 라이브. 74년.



*Firth of Fifth의 Genesis Revisited 공연 라이브. 13년 로열 앨버트 홀.



*The Cinema Show의 Genesis Revisited 공연 라이브. 15.



*The Cinema Show 후반부의 쿼텟 제네시스 시대 라이브. 76.

https://www.youtube.com/watch?v=Zhvq0XZGOSE

- Phil Collins와 Bill Bruford가 트윈 드러밍을 보여준다. 오오.




(Seconds Out)



(Voyage of the Acolyte)



(GTR)



(Genesis Revisited, poster)




*'Solsbury Hill'의 03년 Growing Up 투어 공연 모습.

- 03년 라이브 무렵부터 머리를 삭발하고 등장하신다.



*78, 87, 93, 03, 11, 13년 투어를 몽타주로 구성한 공식 아카이브.
- 노래는 'Solsbury Hill'. Tony Levin이 찰떡처럼 항상 붙어 있다.






(Solsbury Hill, single)



(Games Without Frontiers, single)




피터 가브리엘의 솔로 앨범 초기 네 장은 독특한 구성을

취한다. 앨범 타이틀이 없이 네 장 모두 Peter Gabriel

명명했고 자신의 얼굴을 일부 왜곡시키는 효과를 앨범의

커버 아트로 채택한 것. 보통 팬덤은 1, 2, 3, 4의 숫자를

붙이거나 커버 아트에서 착안하여 Car, Scratch, Melt,

Security로 따로 부른다. 각 77년, 78년, 80년, 82년작.



세밀한 온도차는 있지만 앞의 두 장 앨범제네시스 시절

프로그 아티스트 같은 모습이 아직 채 씻기지 않은 음악을

들려주고, 뒤의 두 장 앨범포스트 펑크일렉트로닉

광범위하게 받아 들이면서도 월드뮤직로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는 변신 과정을 보여준다는 차이가 있다.



('Games Without Frontiers' from Peter Gabriel 3/Melt, 1980)

*제목을 불어로 노래 후크 파트는 Kate Bush의 백킹 보컬. 꽤 유명하다.



('Waiting for the Big One' from Peter Gabriel 1/Car, 1977)



('Down the Dolce Vita' & 'Here Comes the Flood' from 1/Car, 1977)


*77년 뉴저지에서 가진 솔로 초창기 라이브. 1집의 왠만한 곡이 다 등장.



(Peter Gabriel 1) (Car)




77년 Peter Gabriel 1/Car밥 에즈린 프로듀서로서

작업을 마친 작품. 앨리스 쿠퍼의 70년대 성공작 작업물로

유명한 프로듀서이다. 진지하고 명석하지만 뭔가 재미없는

우울함으로 가득해 보이던 가브리엘의 음악적 이미지를

정겹고 산뜻한 옷으로 갈아입히려 애썼다.



결과는 성공. 일생에 걸쳐 가브리엘을 대표하는 싱글 히트곡

Solsbury Hill이 터져 영국 차트 탑20에 들고 미국 차트에도

진입한다. 4분의 7박자에 목가적인 따뜻함을 실은 이 곡은

가브리엘제네시스를 떠나며 모든 것을 놓아버려야 했던

경험을 술회한 내용이라고.



스티브 헌터가 유명한 어쿠스틱 기타 리프를 맡았고 군데군데

기타 프레이징을 킹 크림슨로버트 프립이 도왔다. 베이시스트

토니 레빈, 키보디스트 래리 패스트, 드러머 앨런 슈워츠버그 

향후 가브리엘 밴드의 단골 세션이 모두 참여한 명곡이다.

Down the Dolce VitaHere Comes the Flood에서

오케스트라 파트는 런던 심포니가 초빙되었다.



강렬한 인트로Moribund the Burgermeister, 싱글로 커트한

Modern Love, 블루스 색이 짙게 배어나오는 Waiting for the

Big One, 헌터의 백킹이 인상적인 Slowburn 역시 매우 인상적인

트랙들로서 공연마다 팬덤이 열광해왔다. 가브리엘 자신은 Here

Comes the Flood의 관현악 편성이 과하다고 여겨, 이후 공연에선

자신이 직접 키보드 백킹을 치는 식으로 이를 대체해왔다. - 그는

기타보다 키보드로 작곡하는 스타일의 뮤지션이며 솜씨도 수준급.



영국 앨범 차트 탑텐골드 인증과 미국 앨범 차트 탑40 등,

기록도 준수했고 솔로 아티스트로서 자리 잡는데 매우 성공적인

발판을 제공한 앨범이다. 클래식, 포크, 블루스, 락앤롤 등 모든

장르의 균형이 골고루 잡힌 수작. 그의 작곡 실력은 출중하다.



('Modern Love' from Peter Gabriel 1/Car, 1977)



('Here Comes the Flood' from Peter Gabriel 1/Car, 1977)

*1979년 TV 라이브 중. 미니멀한 피아노 백킹 버젼이다.



('Moribund the Burgermeister' from Peter Gabriel 1/Car,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oqkqxvxla4w


('Slowburn' from Peter Gabriel 1/Car,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VTgYKNZM9KM




('Exposure' from Peter Gabriel 2/Scratch, 1978)




(Peter Gabriel 2) (Scratch)




78년 Peter Gabriel 2/Scratch는 전작에서 호흡을 맞춘

로버트 프립이 프로듀서로 나섰는데 익스페리멘탈 경향이

강한 프립의 에고가 지나치게 전면에 나서서 여러 모로 좀

과하다는 인상을 준 듯. 가브리엘 자신도 이 점은 인정하는

모양이긴 하나, Frippertronics를 아는 사람은 알듯이 독특한

사운드메이킹 만큼은 인정 안 할 수 없다는 매니아도 많다.



Frippertronics프립의 전매특허인 사운드 이펙트 기술로

테이프 루프이용하는 방식이고 8번 트랙 Exposure에서

들을 수 있다. On the Air, White Shadow, Perspective

등 트랙에서 프립의 연주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토니 레빈 역시 앨범 전반에 걸쳐 일렉트릭 베이스채프먼

스틱을 넘나들며 예의 넘사벽 연주력을 제공한다.



E스트리트 밴드의 저명한 피아니스트 로이 비턴도 참여했다.

다양한 이펙트가 지배하는 모드이다 보니 돋보이지는 않는다.

드럼 제리 마로타, 기타 시드 맥기니스, 색소폰 팀 카펠로

참여한 첫 앨범이기도 하다. 싱글로 발매된 4분의 5박자

D.I.Y.는 독창적이지만 뭔가 씹어먹는 카리스마가 부족해 차트

진입엔 실패했다. 차라리 On the Air나 Animal Magic

커트했어야 옳지 않았나 싶은..



음악성 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많이 받았고 Indigo 같은 곡에서

보인 실험성은 매니아를 양산했다. 하지만 상업적인 성공이라

평가하기엔 부족했다. 그리하여 가브리엘 다음 앨범부터

프립의 비중을 줄이기로 작정했다..나... 흠.



(Chapman Stick)



('On the Air' from Peter Gabriel 2/Scratch, 1978)



('D.I.Y.' from Peter Gabriel 2/Scratch, 1978)




('No Self Control' from Peter Gabriel 3/Melt, 1980)

*영국의 인기 TV쇼 Top of the Pops 출연분.



('I Don't Remember' from Peter Gabriel 3/Melt, 1980)

*인트로 리프에 쓰인 악기가 바로 Chapman Stick.




(Peter Gabriel 3) (Melt)



(Rolling Stone Magazine's 100 Best Albums of the 1980s, 1989)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best-albums-of-the-eighties-150477/peter-gabriel-peter-gabriel-67748/




80년 Peter Gabriel 3/Melt로부터 피터 가브리엘이란 세계적

스타가 탄생했다고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Hipgnosis

전위적인 커버 아트로 유명한 본작은 영미 양국에서 동시에 골드

인증을 받고 영국 차트 탑, 미국 차트 22위에 오른 성공작이다.

롤링 스톤 매거진이 1989년에 선정한 80년대의 100대 명반에도

올랐고 영국 싱글 차트 탑텐에 처음으로 든 히트곡을 배출한다.

- Games Without Frontiers.. 4위까지 올랐다.



가브리엘의 열성팬이라면 라이브에서 숱하게 접했을 명곡들이

이 앨범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Games Without Frontiers,

No Self Control, Biko, I Don't Remember, Intruder,

Family Snapshot 등.. And Through the WireNot

One of Us 같은 곡도 인기가 높다.



Intruder필 콜린스가 드럼 세션을 맡으면서 gated reverb

기술을 도입한 기념비적 트랙. No Self Control미니멀리즘

작곡가 스티브 라이히에게 영감을 얻었으며 콜린스, 프립에다

케이트 부쉬까지 세션에 참여한 곡이고. 채프먼 스틱이란 악기가

뭔지 궁금하다면 I Don't Remember인트로를 들어보시길.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가 극에 달하던 잔혹한 정세 속에서

77년 9월에 목숨을 잃은 저항 운동가 스티븐 비코를 위해 쓴

진혼곡, Biko는 유럽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아울러

가브리엘이 서서히 아프리카 월드비트에 눈을 뜨고 있음을

입증하는 음악이기도 했다.



가브리엘의 최고 디스코그래피를 논할 때 반드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명반이다. 한 곡 한 곡에 깃든 완성도가 결코 만만치

않다. 이것저것 귀찮을 때 이 앨범부터 가브리엘을 영접해보는

것도 초심자들에겐 괜찮은 선택지일 수 있다.



('Biko' from Peter Gabriel 3/Melt, 1980)

*라이브 아카이브와 87년 영화 Cry Freedom의 장면을 결합.

- 덴젤 워싱턴 주연 이 영화가 스티븐 비코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



('Intruder' from Peter Gabriel 3/Melt, 1980)

*드럼에 Phil Collins. gated reverb 기술로 녹음했다.



('Family Snapshot' from Peter Gabriel 3/Melt,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XFDgBSk1ghM


('Not One of Us' from Peter Gabriel 3/Melt,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dbwQ0Wy3ljQ




('San Jacinto' from Peter Gabriel 4/Security, 1982)

*가사는 아메리카 인디언 원주민 공동체의 고통에 관한 것.



('The Family and the Fishing Net' from Peter Gabriel 4/Security, 1982)

https://www.youtube.com/watch?v=obtgGtrpPJM




(Peter Gabriel 4) (Security)




82년 Peter Gabriel 4/Security시대가 시대이니만큼 포스트

펑크의 색이 짙게 배어나온 앨범인데 관점에 따라서 전작에 비해

휼륭하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관행대로 제목 없이 가려 했는데

음반사 쪽에서 하도 불평이 많아서 미국에서만 제목을 붙였다고.

영미 양국에서 골드를 기록하고 영국 차트 탑텐에 든 성공작.



가브리엘생의 셋리스트를 채울 명곡들이 여기서도 많이 나온다.

싱글로 커트된 Shock the MonkeyI Have the Touch는 그

대표작. 오랜만에 메이크업하고 뮤직 비디오를 찍은 Shock the

Monkey질투욕망 같은 심리를 풍자적으로 풀어내 최초로

핫100 차트 탑30에 든 수작이다. - 메인스트림 락 차트에선 1위.



Fairlight CMI 등 샘플러를 십분 활용하며 리듬 시퀀싱에 관한

레시피가 더 맛있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월드비트 장르나

아프리카계 전통 음악에서 받아온 영향이 곳곳에 드러났다. 토니

레빈, 제리 마로타래리 패스트 등 호흡을 맞춰온 세션들이 힘

더하고 기타리스트 데이빗 로즈가 새롭게 가담하였다.



The Rhythm of the Heat, San Jacinto, The Family and

the Fishing Net, Wallflower 등에서 세계의 다양한 민족과

인종 삶과 이야기에 폭넓은 이해와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월드뮤직 음악가로서의 현신이 바로 이 시기부터 시작한 것.



본작의 공동 프로듀서인 데이빗 로드는 여러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난봉꾼 같은 인물. 가브리엘의 첫 아내 과 불륜을 저질러 피터

하여금 오랜 시간 정신과 치료에 매달리도록 했으며, 최근에는 아예

대놓고 매춘업소를 운영하다가 적발되었다고. 맙소사.


https://www.dailymail.co.uk/news/article-3284933/Music-producer-ran-brothel-550-000-home-Bath.html




('Shock the Monkey' from Peter Gabriel 4/Security, 1982)

*그는 동시대 Genesis나 Phil Collins보다 영상 메세지에 능숙했다.



('I Have the Touch' from Peter Gabriel 4/Security, 1982)

*영상은 오리지널 뮤비는 아닌 듯하고 방송사에서 제작한 판본으로 추정.



('Wallflower' from Peter Gabriel 4/Security, 1982)

https://www.youtube.com/watch?v=YeI-FtSayS4




(Fairlight CMI)



*Peter Gabriel on South Bank Show, 1982 UK

https://www.youtube.com/watch?v=scmYG1Pv1_Q&t

- 16분경부터 Fairlight CMI의 샘플링 기능을 설명




(Rockpalast 1978, poster)



아마도 보컬리스트로서 능력만 따져본다면 77~85년 시기가

가브리엘의 절정이 아니었을까 싶어 개인적으론 이 시간대

라이브를 가장 좋아한다. 2/Scratch3/Melt 사이 78~80년

투어는 독일에서 열린 Rockpalast 공연 실황이 가장 상태가

좋은 것 같다. 레빈, 맥기니스, 카펠로, 마로타, 패스트의 다섯

세션들 실력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Rockpalast TV performance in 1978 (Essen, Germany)

https://www.youtube.com/watch?v=amxDkP_0gxs&t=

https://www.genesisfan.net/peter-gabriel/articles-2017/peter-gabriel-rockpalast-tv-performance-1978




(Six of the Best, poster)



80년 3/Melt 이후 줄곧 그의 관심은 월드뮤직에 있었다.

오늘날 이 장르에 대한 현대적 정의는 각국 민족이 가진

고유한 전통 음악(우리로 치면 국악)을 뜻하지만 당시 유럽

사회에선 아프리칸 월드비트에 국한하여 해석했다. 80년에

페스티벌인 WOMAD를 출범시켰는데 빚더미에 앉아야

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제네시스 다섯 멤버와 다시 뭉쳐

Six of the Best콘서트로 기금을 모으기도 했다.


('Solsbury Hill' from Six of the Best bootleg archives, 1982)

https://www.youtube.com/watch?v=4rxSDBzFRU0

*1982년 10월 2일. 마이크 러더포드의 생일이기도 했다.




(Plays Live)



83년엔 첫 라이브 앨범 Plays Live를 냈는데 4/Security

및 3/Melt 트랙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82년 투어

아카이브를 발췌한 거고 성대가 가장 팔팔할 때 활동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만 아쉽게도 동영상은 없다. 여기서 기타

세션은 데이빗 로즈로 바뀌었다.


*full tracks from Plays Live, 1983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Up2NMQv0VIex_dG6paxzUjH8eTui4naa




(Birdy)



84년 연말엔 앨런 파커 감독의 영화 Birdy가 개봉하고 OST

앨범을 가브리엘이 만들어 발표하는데 새로운 트랙들과 기존

발표곡의 변주를 혼합하여 각광받았다. Family Snapshot,

Not One of Us, The Rhythm of the Heat, Wallflower,

San Jacinto 등 분위기가 유사한 곡들을 엄선한 작업이었다.


('Under Lock and Key' from Birdy, 1985)

https://www.youtube.com/watch?v=h7E-tnn_uOs

*잘 들어보면 4/Security의 트랙 Wallflower와 같은 곡임.




('Red Rain' from So, 1986)



(So)




이때까지 피터 가브리엘이 받은 상업적 성공과 언론의 평가가

그리 박하진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초대형 스타라고 부르기엔

왠지 뭔가 한 방이 부족했다. 물론 본인이야 그런 성공에 목말라

하는 속물도 아니었지만. 그저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음악적 지향점을 향해 묵묵히 길을 걷던 그 와중에,

그의 커리어 최정점의 순간이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다.



86년작 앨범 So. 롤링 스톤 매거진 선정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반 랭킹에서 당당하게 187위를 차지한 80년대 최고의 명반.

물론 전술한 80년대의 100대 명반 랭킹에서도 무려 14위에

올랐다. - 3/Melt는 46위. 드디어 이 작품 얘기를.. 와 신난다..



(Rolling Stone Magazine's 500 Greatest Album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500-greatest-albums-of-all-time-156826/peter-gabriel-so-34304/


(Rolling Stone Magazine's 100 Best Albums of the 1980s)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best-albums-of-the-eighties-150477/peter-gabriel-so-2-160373/




77년부터 90년대 초반까지 1~6집을 발매하면서 홀수 순번

앨범은 다소 상업적으로, 짝수는 다소 개인적인 예술성으로

프로듀싱해온 편이었는데, So자신만의 독창성을 상업적

흐름에 최적화하여 균형을 잡을 줄 아는 그의 천재성이 일체

여지를 두지 않고 남김없이 발현한 결실이었다. 아프리카

브라질 전통 음악의 배경이 살아 숨쉬고 있어 월드뮤직

창작으로 한창 물이 올라 있음을 입증하고도 남았다.



Birdy에서 한 번 가브리엘과 함께 했고 이후 브라이언 이노

U2의 앨범을 프로듀싱할 운명이던 대니얼 라누아가 공동으로

프로듀싱을 맡았다. 베이스 레빈, 기타 로즈, 드럼 마로타

여전히 참여했고 본작부터 드러머 마뉘 가 세션 조력을

시작했다. 일부 곡의 하이해트 스튜어트 코플랜드가 쳤고

브라스 섹션은 60년대 소울의 시대부터 경력을 일궈온

트럼페터 웨인 잭슨을 중심으로 사운드를 만들었다.



*86년경 So Tour 중.




완벽하게 대중적인 섹드립 노래 Sledgehammer는 그의 경력

전체를 대표하는 초대박 싱글이다. 그에게 유일하게 핫100 차트

이란 기록을 선사했고 영국 싱글 차트는 4위까지 오른다.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를 포함하여 최초의 그래미 후보로서 영예를

누린다. 진짜 압권은 클레이메이션과 스톱모션을 아방가르드하게

혼합한 뮤직 비디오.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이 작품으로

MTV 어워드 9개 부문에서 수상했는데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는

기록이라네. - 가사는 제플린레몬송처럼 남녀간 정사 이야기.



케이트 부쉬피처링을 담당한 Don't Give Up. 그의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발라드이다. 직접 시퀀싱한 리듬 패턴

삶의 고단함에 지친 남녀가 서로를 위로하는 가사를 쌓아올렸다.

신자유주의의 미친 정책을 앞장세운 대처리즘 시대, 만연하던

살인적인 실업률과 빈부 격차를 정면으로 비판하기 위해 쓴 가사.

가브리엘부쉬가 부둥켜 안고 피를 토하듯이 목놓아 연기한

뮤비도 꽤 화제를 모았다. 꼭 동영상으로 감상해 보시라.



('Don't Give Up' from So, 1986)

*가사를 몰라서 에로틱하게 해석하는 무식자들 많았다. 그러지 말자.




가브리엘 최고의 연가 꼽히는 In Your Eyes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내용. 세네갈 출신

월드뮤직 보컬리스트 유수 은두르가 코다 파트를 장식하여

화제를 모았다. 80년대 여피족들의 물질 만능주의를 풍자한

Big Time은 그가 제임스 브라운이나 오티스 레딩funk

soul 장르에 큰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신스 베이스

시퀀싱한 베이스라인이 압권인데 라이브에서 재현하기 힘든

난이도로 악명이 높은 나머지, 공연에서 듣기가 어렵다고.



코플랜드인트로 연주에 참가한 Red Rain은 팬덤 최고의

명곡 중 하나로서 가브리엘이 꿈에서 본 환상을 엮은 이야기.

많은 평론가가 핵전쟁에이즈에의 대중적 공포가 일반화한

80년대 사회상을 읽어내려 애썼다. 그가 직접 Fairlight CMI

시퀀싱한 이외 모든 트랙도 결코 만만치 않음은 물론. 한 곡 한

곡에 풍부한 스토리와 창의성을 품고 있어 버릴 곡이 없는 또

하나의 명반이다.



미국 앨범 차트 2위를 비롯하여 영국, 캐나다, 이탈리아 등 6개국

앨범 차트에서 정상에 올랐다. 메가히트 싱글 Sledgehammer

포함하여 Big Time이 미국에서, Don't Give Up이 유럽에서

연이어 폭발하며 상업적 측면에서 명실상부한 호시절이었다.

슬레지해머는 하필 제네시스Invisible Touch를 밀어내고

핫100 탑에 올라 호사가들 신나게 만들었다. - 걍 우연이라고,

이 사람들아. - 그의 디스코그래피 중 유일한 미국 시장 멀티

플래티넘 앨범이 본작이다.



('Big Time' from So, 1986)



('In Your Eyes' from So, 1986)




('Mercy Street' from So, 1986)

https://www.youtube.com/watch?v=Ej6NGrZ0iUM

*영국의 시인 앤 섹스튼을 기린 내용. 브라질 전통 음악을 결합했다.



('That Voice Again' from So, 1986)

https://www.youtube.com/watch?v=aukeZxt-FDM

*종교적 양심과 마음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관한 성찰적 내용이다.




(Passion)






86년 앨범 발매 후 So Tour를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이

리얼월드 레코드라는 자체 레이블을 설립한다. 본격적으로

월드뮤직을 탐구하겠다는 뜻이며 이 회사는 현재까지도 그와

관련한 모든 콘텐츠를 공급할 책임을 갖는다. 이 시기 그는

WOMAD의 운영 책임은 내려놓고 고문으로 물러난 상황.



88년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문제작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

OST 작업으로 참여한다. 이듬해에 리얼월드를 통해 더 세심하게

다듬은 사운드트랙을 앨범 발매했는데 그때까지 서구 팝음악계가

한 번도 조명한 적 없던 제3세계 전통 음률을 고결하게 빚어낸

월드뮤직 명반이었다. 결국 이 작업의 결과로 90년에 생애 최초로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하게 된다. 골든 글로브 후보에도 오르고.



('Zaar' from Passion, 1989)

https://www.youtube.com/watch?v=zk1jHVkLEZs&index=9&t=0s&list=PLAC5905D15E1BB425

*오늘날엔 오히려 보편적인 음률. 이 시기부터 그가 개척한 결과이다.






(Shaking the Tree)



90년엔 첫 공식 컴필레이션 앨범 Shaking the Tree: Sixteen

Golden Greats를 발매한다. 정규 음반이 아님에도 판매량이

의외로 쏠쏠하여 영미 양국에서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한다. 첫

컴필레이션이니 개업빨이 먹힌 듯.



1/Car, 3/Melt, 4/Security, So, Passion2/Scratch

Birdy를 제외하고 그때까지 모든 솔로 앨범의 트랙을 총망라하여

팬덤이 반응할 만하다. 타이틀을 제공한 Shaking the Tree

유수 은두르의 원곡을 조금 바꾼 것. 1/Car에서 뽑은 Here Comes

the Flood는 과한 편성을 톤다운하여 재녹음한 버젼이라능.



('Shaking the Tree' from eponymous album, 1990)

https://www.youtube.com/watch?v=jDsr54YBmdk




('Blood of Eden' from Us, 1992)



(Us)




92년에 그는 6집 Us를 발매한다. 실패한 첫번째 결혼, 소원해진

첫딸과의 관계 등, 개인적인 주제에 더 천착한 결과물이었다. 영미

앨범 차트 각 2위에 오르고 미국 시장에서 플래티넘을 기록하지만

전작만큼 대박은 아닌...



메인스트림 락 차트 탑에 오른 첫 싱글 Digging in the Dirt

아내의 불륜 때문에 숱하게 받은 심리치료 이야기. 미국 싱글 차트

탑40에 오른 Steam슬레지해머의 방법론을 계승했고 컴퓨터

그래픽과 외설적인 콜라주를 앞세운 예술적 뮤직 비디오로 화제를

모았다. 시네이드 오코너케이트 부쉬처럼 피처링 맡은

Blood of Eden의 뮤비도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Digging in the Dirt' from Us, 1992)



('Steam' from Us, 1992)

*노골적이진 않지만 정사를 암시한 표현이 많아 미성년자는 주의하기 바란다.



('Kiss That Frog' from Us, 1992)

https://www.youtube.com/watch?v=S4Ah2dxTcWw

*개구리 왕자 동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이야기.



('Secret World' from Us, 1992)

https://www.youtube.com/watch?v=amoyq8FRurg

*앨범 발매 직후 투어의 타이틀로 사용된 트랙.



('Come Talk to Me' from Us, 1992)

https://www.youtube.com/watch?v=cnC5RMkkd7M

*Sinead O'Connor가 피처링을 맡았다.



*앨범의 제작 배경을 직접 설명하는 다큐멘터리. 미성년자 주의.

https://www.youtube.com/watch?v=Cs7lxCG_sug

- 실은 앨범 커버 촬영 장면에 전라의 모델이 등장한다.




 (Revisited)



 컴필레이션에서 제외시킨 2/Scratch 1/Car의 대표 트랙을

묶어서 92년엔 Peter Gabriel Revisited란 독특한 컴필레이션

앨범을 낸다. 1집서 7곡, 2집서 8곡을 발췌한 버젼인지라 정규

음반을 이미 갖고 있는 팬에겐 거의 쓸모없는 앨범이긴 하다. 단,

초기 앨범을 구하기 어려운 사람에겐 꽤 좋은 선택지이니 참고..




*Steam의 라이브로는 역대 최고라고 소문난 Secret World Tour 중.

**Tony Levin, David Rhodes, Manu Katche, Paula Cole.. 아름다운 조합.



(Secret World Live)



94년엔 두번째 라이브 앨범 Secret World Live를 발매한다.

SoUs 앨범 트랙을 중심으로만 편집되어 평단의 반응은

시큰둥했지만, 사실 90년대 초중반이 가브리엘 라이브 보컬

능력의 최전성기였다는 팬덤의 평이 많아서 진정한 가브리엘

무대를 즐기려면 이 앨범이 필수라고 한다.



이 라이브와 투어에는 97년 스타덤에 오르기 전 폴라 콜

백킹 보컬로 참여하여 엄청난 노래를 들려줬다. 그는 98년에

무려 그래미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할 운명의 실력자시거든.

마뉘 캇셰드러밍 팬덤의 극찬을 받았다.



('Where Have All the Cowboys Gone' by Paula Cole, 1997)

https://www.youtube.com/watch?v=JPR108kwNo4



*Secret World Tour 중에 부른 Don't Give Up.




(OVO)



1999년 12월 31일 뉴밀레니엄을 맞이할 마지막 밤에 영국에서

매우 뜻깊은 이벤트가 있었다. 런던 동부 그리니치 강둑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의 복합 컨벤션 건축물 밀레니엄 돔이 이날 개장했는데

미래를 바라보는 영국의 발전을 상징하기 위해 내노라 하는 아티스트를

초청하여 개장 기념 초대형 콘서트를 열었고 그 사운드트랙을 당대

영국 최고의 대중 음악가 피터 가브리엘에게 위촉한 것이다.



여기에 사용된 사운드트랙이 2000년에 OVO란 앨범으로 발매된다.

순수한 예술성보다 선전 목적의 음악임을 감안하더라도 당대 첨단의

공연 기술을 추구한 가브리엘 사단의 창의성을 남김없이 확인할 수

있다. 인생 말년의 아버지 랄프 파튼 가브리엘과의 관계를 담담하게

술회한 Father Son이 팬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곡 뮤비를 첫딸

애나 마리 가브리엘이 연출하는 등, 이 무렵부터 가브리엘 사단이

본격 가족형 창작 집단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Father Son' from OVO, 2000)

https://www.youtube.com/watch?v=EQH6qu2pHT8

- 뮤비 감독이 Anna-Marie Gabriel.




('More Than This' from Up, 2002)



(Up)



5~7집은 각각 So, Us, Up.. 알파벳 두 글자로 된 심플한

타이틀로 유명하다. 02년 Up 앨범은 가브리엘에게 있어

실질적으로 마지막 창작 음반이라고 한다. 10년 Scratch

My Back 및 11년 New Blood다른 가수 및 자신의

곡을 커버한 작품에 그치기 때문이다.



황혼을 바라보는 커리어인 만큼 예전만큼 상업적 성과가

시원시원하진 못했다만. The Barry Williams Show

및 More Than This 등 커트한 싱글을 통해 이제 원숙한

단계로 접어드는 백전노장의 내공을 느낄 수도 있다.



('The Barry Williams Show' from Up, 2002)

*00년 넘어서면서 그는 삭발 스타일로 등장하신다. 나이도 드셨고.

- 시청률만 높은 자극적인 TV프로 까는 내용. Sean Penn 연출.



('Growing Up' from Up, 2002)

https://www.youtube.com/watch?v=tn2VPj1R76U




(Hit)



03년 컴필레이션 앨범 Hit는 80~90년대 트랙에 중점을 둔

구성이다. 아쉽게도 초창기 명곡들은 빠져 있지만 대중적

스타가 된 가브리엘에만 관심을 두고자 하는 팬은 가볍게

스타터로 고려해볼 만하다. 영국에서 골드를 기록했다.




(Scratch My Back)



(New Blood)




아직 은퇴하신 분도 아니고 여전히 경력이 이어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아티스트 피터 가브리엘.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긴 경력 중 제네시스 챕터는 고작 몇 년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 짧은 시간에 찰나처럼 얽힌 관계를 죽은 아들 뭐

만지듯이 붙잡고 늘어지는 추한 팬덤에 동참하지 마시길.



마이클 잭슨 같은 초대형 팝스타가 아닐진 몰라도 또 다른

관점에서 음악사를 해체해보면 그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를

독창적 위상을 가진 뮤지션임에 틀림없는 분이다. 한국에서

잘 아는 사람도 없다는 점은 이해한다만, 모모 사이트들에

사실을 왜곡해 휘갈겨 기록된 쓰레기 정보 정도는 최소한

정확하게 바로잡고 이해를 새롭게 할 줄 아는 성숙한

네티즌이 되었으면 한다. 모르면 쓰지를 말라고 제발.



*02년경 Growing Up Tour 중 Sledgehammer.

- 백킹 보컬에 차녀 Melanie Gabriel이 참여했다.



*Sinead O'Connor와 함께 부른 Don't Give Up. 90년.






피터 가브리엘의 장구한 디스코그래피 중에서 본 블로거는

특히 리듬 패턴이나 다이나믹스 맛깔나게 어레인지한

트랙들을 좋아라 하는 편이다. SoBig Time이 이런

계열의 대표곡인데 UsSteam도 역시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4/Security의 숨은 보석으로서 프린스1999

필 콜린스Sussudio를 연상케 하는 Kiss of Life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세 곡 중 가장 먼저 나온

것이 이 곡이다.) 마지막으로 강력하게 추천을 때리며 이번

포스팅을 마치련다. 특별히 이번 편은 읽어 주셔서 감사하고

싶다. 이 나라에 결코 흔치 않은 PG 열성 팬인지라..



('Kiss of Life' from Peter Gabriel 4/Security, 1982)



*Kiss of Life의 82년경 라이브.



*Big Time의 87년 필라델피아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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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음악의 역사에서 80년대애시당초 마이클 잭슨

시대 아닌가누가 뭐라 할 여지가 전혀 없지. 절대 왕정이

군림한 그 시대에 남성 팝가수로서 MJ의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당당한 업적을 거둔 뮤지션이 있었다.



어차피 지금 시대야, 저 안경 쓴 빠른 51년생 할아버지가

백설공주 릴리 콜린스 아빠래, 정도 밖에 관심은 두지도

않겠지만. 20년 전쯤 얘길 꺼냈다면 누가 진성 제네시스

팬덤이냐며 피터 가브리엘 진영과 찢어갈려 진정

쓰잘데기 없는 키보드 전쟁이 벌어졌을 걸.



왠지 음악 산업계에 만연한 숱한 오해와 루머의 희생양

이미지이신데.. 사실, 70~90년대를 당당하게 관통하며 총

판매고 1억 5천만 장이란 역대급 성공을 거둔, 한 사람의

위대한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 세션맨이셨다. 제네시스에서

음악을 시작해 한 시대를 호령한 명가수...!

필 콜린스 Phil Collins 이야기를 해볼까.









언제부턴가 캐릭터가 되어버린 원형 탈모에 속지 마시길

바라옵고, 이 분 원래 아역 배우 출신이시다. 올리버 같은

뮤지컬에도 출연하셨고 재미없기로 악명높은 비틀즈 영화

A Hard Day's Night에도 단역 출연하셨다. 80년대

에서 꽤 기본기 충실한 연기력을 보여준 데엔 다

그런 배경이 있었던 거다. 또 한때 영화 주연도 했고.



다섯 살 때부터 유아용 드럼 키트를 다루었고 본격적인

성인용 세트는 청소년이 되면서부터 썼다고. 링고 스타

버디 리치의 영향을 깊게 받아 빅밴드 재즈의 테크닉을

익숙하게 다루게 되었다지.



그래, 콜린스를 얘기하면서 훌륭한 드러머로서의 경력을

건너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애초에 음악가로서 시작을

드럼 치면서 시작한 분이니까.



 (Genesis)




현장에서 다른 뮤지션의 영향을 재빠르게 캐치하는 순발력

면에서는 아마도 최고일 것 같다. 숱한 히트곡을 들어봐도

알 수 있지만 여러 모로 영리한 뮤지션임에 틀림없을 듯.

특히 탄탄한 재즈 드러밍 기본기에서 비롯된 사이드 탐탐

컴비네이션은 드러머로서의 트레이드 마크일 것이다.

흡사 버디 리치의 재림을 보는 듯..



여기서 자주 언급하는 디지털 드림 도어 랭킹에서 현재

34위이시고 모던 드러머가 선정한 50대 연주자 랭킹에선

21위. 논란이 컸던 16년의 롤링 스톤 매거진 랭킹에선

43위를 차지하셨을 정도. (그래도 별다른 지표로 인용할

것이 없어 언급은 하겠다. 욕먹은 내용은 아래에 링크.)



(Digital Dream Door, 100 Greatest Rock Drummers)

https://digitaldreamdoor.com/pages/best_drummers.html


(Modern Drummer, 50 Greatest Drummers of All Time)

https://www.moderndrummer.com/article/march-2014-50-greatest-drummers-time/


(Rolling Stone '16, 100 Greatest Drummer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drummers-of-all-time-77933/phil-collins-2-142870/


- Consequence of Sound rebukes the Rolling Stone ranking.

https://consequenceofsound.net/2016/03/rolling-stone-releases-list-of-the-100-greatest-drummers-and-neil-peart-is-not-no-1/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미 50년생 고딩 동기들끼리 데뷔해

끈기있게 활동하고 있던 제네시스와의 인연도 드러머 공고

난 거 보고 오디션에 응하면서부터. 밴드의 창단 멤버 앤서니

필립스가 탈퇴하면서 드러머였던 존 메이휴를 내보내고 새

드러머 공고를 낸 것이 1970년의 일이었다.



저 테일러 아직 아무 것도 아닐 때여서 오디션 보러

오라는 제안을 받았었단다. 피터 가브리엘 부모님 집에서 치른

오디션. 기다리는 동안 앞의 경쟁자들 리듬 패턴을 모조리 외워

똑같이 카피해내 멤버들이 감탄했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든지

한 번은 들어봤을 유명한 일화. 여기에 기타 주법의 선구자

대접을 받는 명인 스티브 해킷이 이때 함께 영입되었다.



제네시스에서의 필 콜린스는 재기발랄한 fill-in을 넣을 줄

아는 데다 탄탄한 박자감을 가진 드러머이면서도 훌륭한

노래 실력도 겸비한 멤버였다. 테너-바리톤 음역대에 지성미

넘치는 카리스마와 연극적 스토리텔링강한 리드 보컬

피터 가브리엘에 비해 낭만적 감성을 표현할 줄 아는 하이

테너로서 가브리엘 위로 화음을 넣거나 한 옥타브 높이는

방식의 다채로운 연출이 콜린스로 인해서 가능해졌다.



보컬피터 가브리엘, 키보드토니 뱅크스, 베이스

마이크 러더포드, 기타스티브 해킷, 드럼필 콜린스.

이 멤버로 만든 최초의 앨범이 71년에 발표한 제네시스

3집 Nursery Cryme72년 Foxtrot, 73년 Selling

England by the Pound74년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등 정규 명반이 줄을 잇다가... 밴드보다

솔로 활동이 필요하다 느낀 가브리엘이 팀을 탈퇴한다.



('Supper's Ready' from Foxtrot, 1972)

*이건 스튜디오 버젼 오리지널.



 (Genesis Live)




가브리엘이 리드하던 제네시스 시절은 추후 다른 편에서

상술하는 편이 더 낫겠지...만, 이 시기 드러머 콜린스

활약상을 확인하고 싶다면 Supper's Ready를 비롯하여

In the CageThe Knife 같은 트랙을 추천한다.



Supper's Ready퀸텟 전성기의 제네시스에서 가장

중요한 걸작 대곡인지다섯 멤버 전부 엄청난 기여도를

보여주는 곡이다. 옆에서 뱅크스, 뒤에서 콜린스가 매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기에,

라이브를 감상하길 추천하고..



In the Cage는 스튜디오 버젼으로만 들어도 뱅크스-콜린스

-러더포드의 백킹 조합이 톱니바퀴 맞물리듯이 오밀조밀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 이 앨범은 대체로

가브리엘이 플롯과 작사에만 신경쓰느라 음악적인 작편곡

나머지 넷이 오롯이 책임졌고 특히 뱅크스가 빛을 발한다.



The Knife는 본래 콜린스가 들어오기 전 2집에 있던 곡인데

제네시스의 1973년 라이브 앨범 Genesis Live에서 콜린스

교체해 연주한 버젼이 원곡보다 낫다는 말이 많다. 이 앨범은

가브리엘-제네시스 시대의 유일한 라이브. 원래 정규 앨범에서

드러머는 존 메이휴다.



('In the Cage' from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1974)



('The Knife' from Genesis Live, 1973)



*The Knife의 스튜디오 버젼 오리지널.

https://www.youtube.com/watch?v=O-78TeJlq24







넷만 남게 된 제네시스리드 보컬 공고를 또 냈는데

수백 명 지원자보다 콜린스가 더 노래를 잘 했다네..?!

(이때 부른 노래가 제플린 Kashmir의 영향 하에 만든

Squonk였다고.) 앞으로 한 시대를 풍미할 보컬리스트

필 콜린스의 공식 탄생은 이렇게 소소한 일화로부터

시작했다. 75년경.



네 사람 체제에서는 76년에 A Trick of the Tail

Wind & Wuthering 두 장의 앨범을 냈다. 이 시기는

리듬 섹션 러더포드콜린스를 제외하고 해킷

뱅크스 사이에 작편곡의 주도권을 놓고 미묘한 신경전이

관찰되던 때이기도.



어느 밴드나 키보드를 메인 파트로 갖고 가면 기타와의

밸런스를 어떻게 맞출 건지가 창작 과정에서 논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도 그 의례를 피할 수 없었으니 앨범을

달랑 두 장만 내고 해킷이 떠난 이유가 이런 면이

아니었을까 추정할 수도 있겠다.



(A Trick of the Tail)



(Wind & Wuthering)



('Squonk' from A Trick of the Tail, 1976)




쿼텟 시기 콜린스는 아직 뮤지션으로서 100% 자아를

각성했다고 볼 순 없지만 무한한 포텐셜에 슬슬 예열 시동을

걸고 있었다. Robbery Assault and Battery 같은 곡에서

가브리엘과 전혀 다른 결로 풍자적 수사에 능한 콜린스

보컬 스타일이 움트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Los Endos는 아기자기한 잔 리듬에 강한 콜린스식 드러밍

폭발하는 팬덤의 인기 트랙이고, 재즈 퓨전의 영향을 받고 있던

의 색깔은 Wot Gorilla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뱅크스

Afterglow는 신비로운 질감의 백킹이 아름다운 발라드로서

시종일관 울려퍼지는 Moog Taurus의 이펙트가 매우 예뻐서

숨겨진 보석처럼 좋아하는 이 많다.



아닌 게 아니라 쿼텟 시대에 오히려 숨은 명곡이 많다는 평도

자자하다. 원래 제네시스의 특징이 파도 파도 새로운 좋은

노래가 끊임없이 나온다는 데 있다...고, 대다수 열성 팬들이

입을 모으곤 한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다지. 남은

셋과 해킷과의 관계 등, 쿼텟 시대 이야기는 나중에 다른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을 것 같다.



('Robbery Assault and Battery' from A Trick of the Tail, 1976)



('Los Endos' from A Trick of the Tail, 1976)



('Afterglow' from Wind & Wuthering, 1976)






지금까지 서술한 제네시스의 성과가 음악적인 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음에 눈치 채셨겠지만, 사실 퀸텟 쿼텟 시대의

상업적 성과가 메가히트 급은 아니었다. 공식 인증도 골드

전부였고 앨범 차트로만 영국 3위, 미국 30위권이 가장 높은

기록이며 싱글 히트곡은 거의 없다고 보면 정확하다. 물론

팬덤의 매니아적 충성도가 높고 당시 지지층이 현재 인터넷

시대에까지 이어지고 있음도 엄연한 사실이지만 말이다.



제네시스의 새로운 시대는 아마도 이 무렵부터 새 방점을

찍는 편이 옳지 않을까. 프로그레시브 기원으로부터 서서히

졸업하고 시대의 흐름을 좇아 포스트 펑크의 영향을 받은

프로그팝소프트락으로 변신한 트리오 제네시스. 그

옛날 한때만 하더라도 기존 팬덤으로부터 맹혹한 비난을

받아야 했던 그 변화는 멤버의 탈퇴에서 비롯된.



77년에 결국 기타리스트 이 탈퇴한다. 앨범 구성에

소외감을 느꼈고 밴드 일원으로서 더 이상 원하는 음악이

나오지 않음을 깨달으셨다고. - 본래 솔로 아티스트으니..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정신 차린 뱅크스, 러더포드, 콜린스

어덜트을 향해 일보전진하기로 마음먹고 뛰어난 연주력을

가진 투어 멤버를 보강한다. 물론 앨범 작업은 병행하고.



프랭크 자파드에서 연주한 재즈 드러머 체스터 톰슨,

장 뤽 폰티 그룹에서 연주한 재즈 기타리스트 대릴 스투

등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제네시스와 함께 한 정상급 세션

멤버가 이때 영입된다. - 전작 앨범들의 투어 땐 예스

킹 크림슨 출신 빌 브루포드(!)가 작업한 적도 있다.



우여곡절을 딛고 세 멤버가 새로 완성한 78년의 앨범

And Then There Were Three. 제목은 물론 애거서

크리스티의 저명한 소설에서 따왔겠지. 리드 기타

포지션을 바꾼 러더포드가 약간은 버벅댔뱅크스

신디가 전체 사운드를 메꿔 프로그라기보다 신스

더 가까운 색과 결을 선보인다.



본작은 영국 앨범 차트 3위, 독일 2위, 미국 14위 등

그때까지의 제네시스 앨범 중 최고의 성공을 거두

핫100 차트 23위까지 오른 최초의 싱글 히트까지 낸다.

소폭 히트한 Many Too Many 같은 발라드가 있었지만

지금도 트리오를 대표하는 어덜트 발라드 Follow You

Follow Me가 역시 세계적으로 히트한 대표곡일 게다.



러더포드가 인트로의 리듬 리프를 치고 뱅크스가 스트링

코드 시퀀스를 깔아주니 콜린스가 중심 선율을 부르는..

인터뷰에서도 인정했듯이 지나치게 긴 음악을 복잡하게

만들기 즐겼던 세 멤버에게 있어 스스로 새로운 음악에

눈뜨게 한 진일보의 프로세스가 이 노래에서 나온 거다.



물론 모든 트랙을 팝으로 채운 건 아니고 Down and Out,

Ballad of Big, Deep in the Motherlode, The Lady

Lies가 보여준 신스-프로그 정체성은 여전하다. 다만

히트 튠의 파급 효과가 너무 컸던 거겠지.



(And Then There Were Three)



('Follow You Follow Me' from And Then There Were Three, 1978)



('Many Too Many' from And Then There Were Three, 1978)



('Ballad of Big' from And Then There Were Three,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dlqn2_n9FW4


('Down and Out' from And Then There Were Three,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HeqFXo5xtcE




앨범 한 장만이면 해프닝으로 그칠 테지만 제네시스는 정말

변화하고 있었고 80년 10집 Duke는 시대의 엄혹한 흐름에

강력한 화룡점정을 찍어준 수작 앨범이다. 아트 락의 미약한

손아귀를 이제는 뿌리칠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래도 본작만

프로그레시브 정체성을 온몸으로 기억하는 이들의 마지막

결산 같은 성과였 할 만하다.



이들이 공식적으로 Duke Suite 칭하는 Behind the

Lines - Duchess - Guide Vocal - Turn It On Again -

Duke's Travels - Duke's End의 6곡 연작은 본작의 대표

트랙. 원래는 Supper's Ready처럼 30분짜리 대곡으로

묶으려 했지만 그냥 쪼개서 앨범 전체에 분산시켰다고.

(Supper~본래 7곡 소곡의 연작 형식.)



이후 제네시스에서 이런 대곡 구성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아,

팬덤은 72년 Foxtrot와 유사한 구조의 Duke를 소중한

마지막 마스터피스 급으로 취급한다. Suite에 속하지 않는

Misunderstanding도 별도 싱글로서 미국 차트 14위까지

오르고 Man of Our Times, Alone Tonight 등 트랙이

독자적인 인기를 누리는 등, 여러 면에서 수작 앨범이다.



수작일 뿐 아니라 상업적인 성공도 전작을 넘어서게 된다.

최초로 영국 앨범 차트 정상을 밟았고 미국에선 11위를

찍는다. Suite 6곡 중 가장 역동적인 Turn It On Again

싱글로 발매되어 영국 차트 탑텐에 든다. Duchess

인트로에서 Roland CR-78을 써서 밴드가 처음으로

드럼 머신을 적용한 곡으로 남게 된다.



분명 시대는 변하고 있었고 팬덤의 구성도 예전에 짐짓

진중한 프로그에 열광하던 남성 중심에서 짧은 어덜트

발라드에 반응하는 여성층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미

전작에서부터 이를 캐치한 세 멤버의 대담한 선택이

성공을 거둔 것이었으나 기존 팬덤과의 지리한 전쟁도

이제 막 시작한 셈이었다.



(Duke)



(Roland CR-78)

*아래 Duchess 뮤비 맨앞에 등장.



('Turn It On Again' from Duke, 1980)



('Misunderstanding' from Duke, 1980)



('Duchess' from Duke, 1980)



('Behind the Lines' from Duke, 1980)



('Alone Tonight' from Duke, 1980)



*Duke Suite 80년 런던 라이브 편집본

https://www.youtube.com/watch?v=VUr1dcg-PEw&t=1115s






아마도 79~81년 기간은 갓 서른 언저리의 젊은 감각을

날카롭게 유지하던 세 멤버들 모두에게 도전과 갈등의

시기였을 것이다. 첫 결혼에 위기가 닥쳐 밴드에서 잠시

멀어져야 했던 콜린스를 위해 뱅크스러더포드는 활동

잠정 중단을 용인하고 각자의 첫 솔로 앨범을 발매했다.



끝내 콜린스이혼에 이르게 되고 이는 젊은 음악가로

하여금 정신적으로 성숙해질 기회를 부여하게 되었으니

이런 질풍노도의 내적 변화가 81년에 발표한 콜린스

첫 솔로 앨범에 그대로 반영된다. 혁신적 사운드 레코딩

기술을 담은 히트작 Face Value 앨범이었다.



형해화한 부부 관계의 종말에서 겪은 상실감을 처절하게

묘사한 In the Air Tonight이 앨범의 대표곡이다. 영국

싱글 차트 2위, 미국 차트 탑20까지 오른 성공을 거두고

앨범이 거둔 성공 - 영국 정상미국 탑텐 - 을 리드했다.

80년대 콜린스어덜트 컨템포러리 명곡의 출발점이자

신호탄인 거다.



이 곡의 드럼 녹음 방식이 그를 상징하는 혁신적 기술이다.

gated reverb라고, 악기의 주음을 잡는 마이크와 방음벽

등에 부딪혀 잔상으로 돌아오는 부차적 음을 잡는 마이크를

항상 한 쌍으로 갖춰 집음하는 기술이다. 80년대 필 콜린스

드럼 사운드라 하면 누구나 다 기억할 만한 소리가 바로 이

방식으로 만든 것. 특히 탐탐이 가진 풍부한 팀버 질감을

손실없이 담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가 여전히 친하게 지내던 동료 피터 가브리엘의 솔로 앨범

곡 중 Intruder의 드럼을 쳐주다가 엔지니어 팻검이 개발한

방법이다. - 자기들끼리는 이렇게 동료애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팬덤이란 명분으로 괜한 싸움 좀 붙이지 말자.



(Face Value)



('In the Air Tonight' from Face Value, 1981)

*이 뮤직 비디오도 꽤 화제였다. 제네시스 드러머 맞냐며.



('Intruder' by Peter Gabriel,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xvAmj3k3Imc


*gater reverb 기술에 대한 설명

https://www.youtube.com/watch?v=cTo75yjL9R4




81년 11집 Abacab에 이르면 제네시스가 더 이상

프로그레시브 락과 상관이 없음을 모두가 깨닫게 된다.

그만큼 이 앨범의 팝락 성향은 신선했지만 프로그

좋아하던 기존 팬덤은 충격과 공포에 부들부들 떨고..

- 왜인지 콜린스더 큰 욕을 먹는다. 왜 그가?



프로그에서 비롯된 역사적 배경 없이 순수하게 즐기면

매우 훌륭한 대중음악 앨범이다. 당시 뉴웨이브의 패턴을

완벽하게 체화한 세 사람의 작편곡 감각이 눈부시고 특히

신디사이저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토니 뱅크스의 솜씨는

괄목할 만하다. 본작쯤에 이르게 되면 묻혀 있던 마이크

러더포드의 내공조차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싱글로 발매한 Abacab, No Reply at All, Keep It

Dark, Man on the Corner 모두 탁월한 대중적 감각을

자랑하며 탑40급의 성공을 거두었다앨범이 최초로

더블 플래티넘에 이르렀고. 콜린스보컬 실력은 이때

절정기를 맞고 있었다.



참고로 abacab이란 존재하지 않는 단어이다. 악절 구성을

A-B-A-C-A-B 형식으로 가져가려던 초기 아이디어가 그냥

제목으로 굳은 것. No Reply at All에 등장하는 멋들어진

브라스는 얼쓰 윈드 앤 파이어혼 섹션 주자들이 결성한

피닉스 혼즈연주. 이들은 이후 필 콜린스제네시스

앨범 및 투어에서 세션으로 자리를 잡아가신다.



(Abacab)



('Abacab' from eponymous album, 1981)

*백킹 보컬은 Tony Banks와 Mike Rutherford의 실제 목소리.



('No Reply at All' from Abacab, 1981)

*뮤비 속 브라스 연기자들은 물론 Phenix Horns가 아니라 멤버들.



('Keep It Dark' from Abacab,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gQkiqQ7zZBQ


('Man on the Corner' from Abacab,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hUMti7b41yw




82년엔 Paperlate 등 세 을 담은 EP 3X3를 발매하고,

연이어 다음 달엔 포스트 펑크 시대 제네시스의 기념비적

라이브 앨범Three Sides Live - 같은 제목의 콘서트

필름도 포함 - 를 발표해 팬의 지지를 얻었다.



같은 해 10월 2일, 러더포드의 생일이기도 한 날 비내리던

토요일 저녁 잉글랜드 버킹엄셔에서는 경천동지할 일회성

콘서트가 열렸다. Six of the Best. 사실상 탈퇴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브리엘해킷이 남은 세 사람과 재결합하여

70년대 히트 트랙을 연주한 초유의 사건.. 기존 팬과 신규

팬이 모두 대동 단결하는 신기한 현상이 목격되었다. - 이날

기타대릴 스투머, 드럼체스터 톰슨이 메인이었다.



이 무렵 피터 가브리엘은 솔로 활동의 성공에 힘입어 월드

뮤직 페스티벌 WOMAD를 막 출범시킨 시점이었는데

축제 초창기 막대한 빚을 청산하기 위해 이런 이벤트를

벌였다고. 덕분에 깔끔하게 빚갚고 오늘날 세계인이 아는

워마드 음악제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 페미니즘 단체와

상관없는 축제 말하는 거임. 세계적으론 이쪽이 더 유명.



이후에도 이들이 이렇게 재결합하는 일이 거의 없었고

또 이 시기가 뮤지션으로서 기량이 전성기였던 때인지라

여러 모로 중요한 공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애석하게도

아카이브 레코딩이 남아 있지 않다! 지금 들어보려면 당시

관객이 소장해온 부틀렉 말고 방법이 없다. 아..ㅠㅠ



그리고 이런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피터 가브리엘 진영과

스티브 해킷 진영과 제네시스 세 사람 사이 인간적인 친분은

아무런 문제 없었다고, 여러 번 반복한다. 아, 왜 '식스'냐고?

뱅크스, 러더포드, 콜린스, 투머, 톰슨 + 가브리엘이니까.

원래 해킷은 스케줄이 안 되어 못 오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부랴부랴 달려와 끝내기 두 곡 연주하고 가셨다고.



(3X3)



(Three Sides Live)



('Paperlate' from 3X3, 1982)

https://www.youtube.com/watch?v=8AhBJwARAes



Six of the Best 셋리스트:

Back in N.Y.C.

Dancing with the Moonlit Knight

The Carpet Crawlers

Firth of Fifth

The Musical Box

Solsbury Hill - 피터 가브리엘(!) 솔로 히트곡

Turn It On Again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Fly on a Windshield

Broadway Melody of 1974

In the Cage

Supper's Ready

(encore) I Know What I Like

(encore) The Knife



*당시 관객들이 녹음한 부틀렉 아카이브

https://www.youtube.com/watch?v=KPdEPC2AsB8

https://www.youtube.com/watch?v=o3e3w48rZrw&t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kvNP54Usc1On51kHceanFKhw-P9ysmWG




그로부터 한 달 여 후, 82년 11월에 콜린스는 그의 솔로 2집

Hello I Must Be Going을 발표한다. 데뷔 앨범에서 촉발한

우울 결혼 생활 백서의 분위기가 이어지는 작품이었다. 더블

플래티넘을 넘고 영미 앨범 차트 탑텐에 들었지만 전작의 In

the Air Tonight만큼 임팩트 강한 싱글이 없었다.



그래도 Don't Let Him Steal Your Heart AwayWhy

Can't It Wait 'Til Morning처럼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발라드가 전체 트랙의 완성도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과거

슈프림즈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You Can't Hurry Love

이르면 그모타운R&B 작법에서 받은 영향을 느낄 수

있고 영국 차트 탑에 오르는 등 가장 크게 히트친 싱글이 된다.



히트와 상관없이 팬덤과 평단이 극찬한 트랙은 I Don't Care

Anymore. In the Air Tonight에서 연결되는 정서가 강한

비트에 실려 폭발한 수작 싱글이었다. 이 노래로 솔로 아티스트

자격으로는 생애 최초로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지명되었다.



(Hello, I Must Be Going!)



('You Can't Hurry Love' from Hello I Must Be Going, 1982)

*약간 깨방정이신데 이건 60년대 슈프림즈를 따라 한 것.



('I Don't Care Anymore' from Hello I Must Be Going, 1982)

*베이시스트 Mo Foster가 Moog Taurus를 손으로 연주한다.



('Don't Let Him Steal Your Heart Away' from Hello I Must Be Going, 1982)

https://www.youtube.com/watch?v=b2W-lxDq4-Y


('Why Can't It Wait 'Til Morning' from Hello I Must Be Going, 1982)

https://www.youtube.com/watch?v=1sjkge59ndw




이들은 83년에 열두번째 정규 앨범 Genesis로 돌아온다.

그렇다.. 그때까지 데뷔 앨범에서도 셀프 타이틀을 쓴 적이

없었는데, 이는 수록한 전 트랙을 멤버들이 공동 작곡으로

만들었음을 시사하는 의도였지만, 평론가들은 이제 이들이

본격적인 팝락 밴드로서 재도약한다는 뜻이라고 우겼다.



전작의 성공을 또 뛰어넘은 앨범이었다. 영국과 독일의 앨범

차트에서 을 찍고 유럽 4개국에선 2위를, 미국 차트에선

9위를 기록한다. 그때까지 가장 큰 싱글 히트이던 Follow

You Follow Me를 뛰어넘어, Mama라는 세계구급 히트

싱글이 영국 등 9개국에서 탑텐에 들었고 미국의 핫100

차트에선 That's All이 최초로 탑텐에 드는 성공이었다.



이밖에 Home by the Sea, Illegal Alien, Taking It

All Too Hard가 싱글로 커트되어 현재까지 스테디셀러

인기를 누리고 있다. (물론 한국 시장이 이 성공을

좇아가는 데엔 아직 시간이 걸리고 있었지만.)



밴드가 자체 보유한 스튜디오에서 창작과 녹음 전체를

편안하게 진행한 첫 앨범으로서 라디오 친화적인 대중적

소프트락으로 채워진 작품이었다.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거부감 없는 이들인지라 Linn LM-1, Simmons SDS-V,

ARP Quadra, Sequential Circuits Prophet-10E-mu

Emulator 등 첨단 장비를 적극적으로 선보였다. 콜린스

이제 드러밍보다 드럼 머신에 더 재미를 들여가고 있었고.



(Genesis)



('Mama' from Genesis, 1983)

*당시 Tony Banks가 쓰던 악기를 샅샅이 살필 수 있다.



('That's All' from Genesis, 1983)



('Home by the Sea' from Genesis, 1983)



('Illegal Alien' from Genesis,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pKWyJOz1rUU


('Taking It All Too Hard' from Genesis,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l-dSgRGFVYU



(Linn LM-1)



(Simmons SDS-V)

*물론 세트 뒤 연주자는 빌 브루포드.



*이 시기 Tony Banks의 gear set.




84~86년 기간은 지금까지 상술한 제네시스고 뭐고 모든

활동 성과를 갈아엎어 역사를 새로 쓸 만큼 명실상부한

콜린스의 최전성기였고 그는 원탑이었다. 대등한 경쟁자

해봐야 마이클 잭슨이나 프린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정도?

그 외엔 다 쩌리 취급 받던 초대박 호시절이었지.



84년 3월테일러 핵포드가 연출하고 제프 브리지스

레이첼 워가 주연한 어덜트 스릴러 영화가 개봉하는데

래리 칼튼미셸 콜롱비에가 주도한 사운드트랙의 전체

스코어와 상관없이 몇몇 가수가 삽입곡 작업에 참여했다.

이 중 필 콜린스가 자작곡 발라드를 제공하는데... 두둥..



Against All Odds (Take a Look at Me Now).. 80년대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팝 음악의 고전이 되어버린 명 발라드가

이렇게 탄생해 버린다. 콜린는 생애 최초로 핫100 차트 탑

오르고 싱글골드를 기록하며 인생 첫 그래미 상을 이 곡으로

받게 된다. 말이 필요 없다. 듣고 가자.



('Against All Odds' from eponymous soundtrack, 1984)



이 정도 명곡이라면 예상들 하겠지만 그 해 아카데미 어워드

당연히 주제가상 후보로 올랐다. 그런데 담당PD 왈, 콜린스

그렇게 대단한 가수인지 몰랐다네. 하여 본인 섭외 안 하고 왠

뮤지컬하던 여자 연예인에게 립싱를 시키는 엄청난 무대를

만들고 만다. 역대 최악의 주제가상 공연으로 지금도 악명이

높았던 해프닝.. 노래라도 잘 했으면 또 몰라..



한국 시장에서 필 콜린스라는 가수를 처음으로 인지하기

시작한 곡으로 기억하며 지금까지 대표 히트곡이기도..



*Against All Odds at Oscar Ceremony, 1985



(Against All Odds, single)



*영화 속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노래.


('Against All Odds' by Mariah Carey, 2000)

https://www.youtube.com/watch?v=Dc3YAINjlyE




앞에서도 서술했지만 콜린스얼쓰 윈드 앤 파이어

인연이 깊다. EWF 출신 명 보컬리스트필립 베일리

84년 11월에 자신의 솔로 앨범 Chinese Wall을 들고

나왔는데, 여기에 콜린스와 함께 한 듀오 튠을 싱글로 낸다.



R&B 돋는 또 하나의 명곡 Easy Lover. 본래 EWF

당연하고 콜린스 역시 R&B로 한가닥 하는 양반인지라

두 사람의 조합은 완벽했다. 콜린스드럼 세션은 덤.

한국엔 이 앨범이 정식 발매되지 못해서 당시에 라디오

방송 녹음해서 듣고 다니던 팬이 참 많았다고..



11월 25일엔 밥 겔도프 도우러 바쁘게 달려와서 Do They

Know It's Christmas드럼 파트를 도맡아 연주했다.

참고로 이 곡 베이스듀란듀란존 테일러 솜씨. 저명한

싱글은 12월초에 발매되어 라이브 에이드로 이어진다.



(Easy Lover, single)



('Easy Lover' by Philip Bailey & Phil Collins, 1984)




(Do They Know It's Christmas, single)



('Do They Know It's Christmas' by Band Aid, 1984)




이 시기 사실 콜린스도 세번째 솔로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고

85년 1월에 발매한다. 역사상 가장 히트한 앨범 중 하나로

기록된 80년대 명반 중 하나, No Jacket Required. 두둥.

그래머 어워드의 4개 최고 수상 부문 중 명실상부한 대상은

역시 올해의 앨범상, Album of the Year일텐데 86년도

그래미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된 작품이 바로 이 앨범.



전세계 누적 판매고가 무려 2천 5백만 장에 달해 미국 시장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았고 영국, 미국, 캐나다 등 9개국에서

차트 탑을 찍었으며 SussudioOne More Night미국

핫100 차트 탑에 오른 두 싱글은 각각 골드를 기록했다. 객관

지표를 대략만 훑어도 이 정도..



본 앨범의 진정한 가치는 뉴웨이브, R&B, 어덜트 컨템포러리

등 80년대를 대표하는 모든 음악적 요소를 집대성한 명작이란

점. 그래미에서 경쟁도 했거니와 이 정도 완성도의 동년 발매

경쟁작Brothers in Arms, We Are the World, Whitney

Houston, Born in the U.S.A. 정도 꼽을 수 있을 뿐이다.



본 블로그에서 계속 쓰는 표현이지만 버릴 곡이 없는 앨범

몇 차례 짚은 적 있고 본작도 마찬가지이다. 전술한 메가히트

두 싱글 뿐 아니라 Don't Lose My Number, Take Me Home

등 추가 싱글에 Long Long Way to Go, Who Said I Would,

Inside Out 등 다른 많은 트랙들도 평단으로부터 골고루 극찬을

들은 바 있다.



콜린스와 오랜 시간 함께 할 세션들도 대거 등장한다. 전곡의

기타는 대릴 스투머가 쳤고 One More Night코다 색소폰

파트는 돈 마이릭의 솜씨이다. Take Me Home에서 백킹

보컬은 무려 스팅피터 가브리엘(!)이 손수 도와줬다.



한 가지 더.. 신디 로퍼가 86년에 마돈나트루 경쟁을 벌일

때 8월에 낸 싱글 True Colors엔 누구나 들으면 알아차릴

드럼 머신시그니처 프레이즈가 등장하는데, 이 작업에

콜린스가 도움을 줬다 한다. 이 시절 드럼 머신 프로그래밍

있어서는 당대 최고였던 것 같다.



(No Jacket Required)



('Sussudio'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제목 단어는 뜻 없이 지어낸 말. Prince의 1999과 유사하단 비판도 받았다.



('One More Night'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멋진 색소폰은 Phenix Horns 출신 Don Myrick의 솜씨.



('Take Me Home'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Don't Lose My Number'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Who Said I Would'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90년 베를린 투어. 백킹 밴드 실력이 가장 빵빵할 때의 라이브이다.



('Long Long Way to Go'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https://www.youtube.com/watch?v=M-7LOzT73PU


('Inside Out'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https://www.youtube.com/watch?v=QiwGEWmpUuQ




('True Colors' by Cyndi Lauper, 1986)

*86년 핫100 차트에서 2주간 탑을 찍었다.



(True Colors, single)




본래 마이크 러더포드는 80년과 82년에 자신의 솔로 앨범

낸 적 있다. 그냥 냈다는 의미 정도 부여할 수 있을 뿐, 사실상

성과는 그저 그랬음이 사실이다. 왜일까. 그는 스스로 깊게

고민을 거듭하여 자신이 개인 작업보다 밴드 안에서 타인과

교감하는 과정에서 더 효율적인 뮤지션임을 깨닫는다. 하여

제네시스와는 다른 궤도선상의 사이드 프로젝트 밴드를 따로

결성하니, 곧 마이크 앤 더 미케닉스M+TM 출현하게 된다.



제네시스 뿌리에서 파생한 또 하나의 성공적 액트, Mike +

The Mechanics. 85년 10월에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

내놓는데 러더포드의 솔로 앨범과 비교도 안 되는 성공을

거둔다. All I Need Is a Miracle, Silent Running

두 곡의 핫100 탑텐에, 미국 탑40 히트곡 Taken In까지

배출하며 앨범 자체는 골드를 기록한다.



All I Need~폴 캐랙, Silent Running폴 영이 각각

보컬을 맡았는데 M+TM목소리를 두 명으로 이끌고

가는 특이한 체제이다. 가볍고 대중적인 곡은 캐랙이, 더

헤비하고 진중한 곡은 이 부르는 구성이라고. - 여기서

말하는 폴 영은 유명한 56년생 가수와는 동명이인이다.

Every Time You Go Away 아니라고..



필 콜린스도 85년 솔로 투어를 마치는 와중에 영화 White

Nights, 백야의 사운드트랙을 녹음하여 Separate Lives

제목으로 11월에 발표했는데 미국 핫100 차트 에 오르는

성공을 거둔다. 음색이 매력적이며 나중에 데이빗 포스터와도

작업을 한 미국 여가수 마릴린 마틴의 듀엣이었다.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제네시스 사운드 메이킹의 핵심인

멤버가 사실 토니 뱅크스임에도, 희한하게 그는 모든 멤버를

통틀어 솔로 프로젝트 성적이 가장 신통치 않았다. 80년대

중반엔 주로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작업하곤 했는데 몇몇 곡을

모아 86년 3월에 앨범을 내기도 했다. Soundtracks.



(Mike + The Mechanics)



(Soundtracks)



 (White Nights)



('All I Need Is a Miracle' by Mike + The Mechanics, 1985)



('Silent Running' by Mike + The Mechanics, 1985)




멤버들이 솔로 활동에 열을 올리면 밴드 전체 작업엔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 일반적일 텐데, 제네시스 이상하게

그 반대라고. 밖에서 받은 음악적 자극이 안으로 모여 새롭게

융합하고 폭발한 것. 그 증거가 86년 6월에 발표한 정규

13집 앨범 Invisible Touch였다. 또 두둥.



세 사람이 다 함께 스튜디오에서 잼 세션을 통해 프레이징

발전시키는 작업 방식이 전작에서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두었는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외부 환경에서 받은 다양한 음악적인

센스가 최고조에 달해 있던 이 자신만만한 뮤지션들은, 6x

플래티넘영국 차트 탑 및 미국 차트 3위의 앨범을 빚어낸다.



버릴 곡 없는 앨범이 한 장 더 나온 셈이었다. 타이틀 트랙

Invisible Touch가 밴드 디스코그래피 사상 최초로 핫100 차트

에 올랐고 Throwing It All Away가 4위, In Too Deep이 3위,

Land of Confusion이 4위, Tonight Tonight Tonight이 3위에

오르는 등 초대박이었다. 70년대 대곡 시절을 떠올리게 할 만한

Domino는 유난히 팬덤이 열광하는 트랙이었고.



바야흐로 제네시스의 전성기, 커리어의 절정이었다. 음악이 너무

상업적이고 필 콜린스 솔로 앨범과 차이가 뭐냐는 비판도 있긴

했으나 그래미 어워드 수상 등 호재도 함께 찾아오고 있었다.

80년대 최고의 앨범 중 하나로서, 이러니 저러니 해도 꼭 한 번

들어보면 결코 밑지는 장사 아닐 게다. 86년 9월에 시작해 87년

7월에 끝난 월드 투어는 역대 최대 규모였고, 이후 이들은 약

5년간 동면에 들어간다.



(Invisible Touch)



('Invisible Touch' from eponymous album, 1986)



('Throwing It All Away' from Invisible Touch, 1986)



('In Too Deep' from Invisible Touch, 1986)



('Land of Confusion' from Invisible Touch, 1986)

*캐리커처 퍼펫이 등장하는 뮤비가 당시 엄청난 화제였다. 서구에서..



('Tonight Tonight Tonight' from Invisible Touch, 1986)



('Domino' from Invisible Touch, 1986)

https://www.youtube.com/watch?v=uFXY7Et6pQ4




이미 언급했지만 이 분 원래 배우 출신이다. 어떤 대본을

들이대도 기본기는 하는 연기자란 뜻. 88년말에 느닷없이

버스터라는 범죄물 코미디 영화에 주연으로 등장하셨을

때 놀란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건 80년대 이후 뒤늦게 팬이

된 때문일 거고.



그해 9월에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발매되는데 여기서도

싱글 히트를 두 곡이나 기록한다. Two Hearts는 미국

핫100 탑그래미골든글러브 어워드를 수상했고

65년 곡을 커버한 발라드 Groovy Kind of Love

역시 핫100 탑영국 차트 2위를 찍는다.



빌리 엘리어트맘마 미아로 유명하신 영국의 좋은

배우 줄리 월터스와 공연하셔서 연기도 괜찮았다고.

이땐 정말 뭘 해도 다 되는 마이더스 터치의 시대셨다.



한 달 정도 앞서 러더포드M+TM의 가장 큰 싱글 히트

The Living Years를 발표해 핫100 차트 탑을 기록하는

깜짝 성공을 거두기도. 두 사람의 프로젝트가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듯했다. 폴 캐랙이 리드 보컬을 맡았다.



(Buster)



('Two Hearts' from Buster, 1988)



('A Groovy Kind of Love' from Buster, 1988)



('The Living Years' by Mike + The Mechanics, 1988)

*가사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화해를 이루지 못한 아들의 풍수지탄.



전작의 대성공 후 약 5년이 좀 못 되어 솔로 4집으로 더

성숙해진 ...But Seriously가 89년 11월에 발매되고

필 콜린스의 명성이 90년대까지 이어지는 데에 탄탄한

발판으로 작용한다. 영미를 포함 15개국 앨범 차트에서

을 기록한 또 하나의 역작.



일렉트로닉에서 조금 거리를 두어 어쿠스틱소울

방향타를 바꾼 흐름은 이 앨범부터 시작된다. Hang in

Long Enough, Something Happened on the Way

to Heaven 등 트랙이 R&B재즈의 뿌리에 천착하는

그의 여전한 성향을 보여준다.



Do You Remember, That's Just the Way It Is 같은

트랙은 그만의 어덜트 컨템포러리가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가 보여준 수작이었는데 다소 자기 복제 되어가지

않나 하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에릭 클랩튼이 세션에 참가한 I Wish It Would

Rain Down이나 핫100 차트 에 오르고 그래미 올해의

레코드를 수상한 Another Day in Paradise의 성숙한

음률에는 모두가 공감했다.



Colours - 남아공, Another Day~ - 미국, That's Just

the Way~ - 북아일랜드 등 각국 정치 상황을 고찰하는

트랙이 유난히 많은 앨범이다. 하지만 보수당 지지자라는

오해도 받아왔거니와 그의 성찰적 시각엔 한계가 뚜렷하다는

비판에 또한 직면했다. 무엇보다 팬덤이 그에게 기대하는

것이 이런 면이라 볼 수 있을까. 피터 아니잖.



(...But Seriously)



('Another Day in Paradise' from But Seriously, 1989)

*워싱턴DC 뒷골목의 노숙자 문제를 다룬 가사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I Wish It Would Rain Down' from But Seriously, 1989)

*에릭 클랩튼이 출연하셔서 대사에 연기까지...



('Something Happened on the Way to Heaven' from But Seriously, 1989)

*어느 개 한 마리의 시점으로 구성한 재미있는 뮤비이다.



('Do You Remember' from But Seriously, 1989)



('Hang in Long Enough' from But Seriously, 1989)

*타이타닉 영화를 패러디했는데 이땐 카메론 작품이 나오기 전이다.


('That's Just the Way It Is' from But Seriously, 1989)

https://www.youtube.com/watch?v=zP7pgInSybI




91년이 되어 제네시스로 다시 돌아온 콜린스와 그들. 14집

We Can't Dance4x 플래티넘을 기록하고 영국 차트 탑,

미국 차트 4위를 기록하는 제네시스의 여전한 브랜드

파워를 입증했지만 전작만한 성공작은 결코 아니었다. 락

씬의 지형이 바뀌어 더 이상 첨단의 감각이라고 인정받을

만한 상황이 아닌 거다.



다양한 장르 배경을 가지면서도 희한하게도 블루스 계열

영향이 빈약한 제네시스였는데 I Can't Dance는 희미한

흔적을 남기며 영미 싱글 차트 탑텐까지 오른다. No Son

of Mine영국 차트 탑텐에, Hold on My Heart,

Never a TimeJesus He Knows Me 등 싱글이

그밖에 각광을 받았다.



(We Can't Dance)



('I Can't Dance' from We Can't Dance, 1991)



('No Son of Mine' from We Can't Dance, 1991)



('Hold on My Heart' from We Can't Dance, 1991)

https://www.youtube.com/watch?v=V4pLqznEe3I


('Never a Time' from We Can't Dance, 1991)

https://www.youtube.com/watch?v=21Zw22g36JI

*팬이 만든 헌정 동영상으로 추정된다.


('Jesus He Knows Me' from We Can't Dance, 1991)

https://www.youtube.com/watch?v=35K6vQRt67g



솔로 앨범 전작들이 모두 영미 차트 탑텐을 벗어난 적이

없었으니 미국 차트 13위까지 오른 것이 최고 기록인

93년 11월의 5집 Both Sides는 확실히 그의 하락세를

방증하는 결과일 거다. - 영국과 독일 등지에선 그래도

여전히 앨범 차트 탑에 올랐다. 그래도 필 콜린스니까

이렇게 폄하라도 할 만한 거겠지.



하지만 성숙한 소프트락 일변도의 본작에서 예전에 보던

재기발랄한 젊은 감각이 들리지 않는다는 점만은 진실에

가까워 보인다. 성숙하지만 어딘가 진부하게 들린다는..

그도 이제 나이를 먹었음을 Both Sides of the Story,

Everyday, We Wait and We Wonder 등 트랙에서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그러나 명심하시라. 그는 필 콜린스이다. 신곡의 행보가

예전만 못 하다는 것일 뿐 전작들의 성과가 누적되어 한껏

폭발하는 종합 성적표는 결국 투어의 성패에 달려 있으며

80년대부터 90년대에 걸쳐 여전히 그는 음악계 정상급의

공연 아티스트이다. 티켓 파워는 여전하고 거듭 말하지만

그를 능가할 만한 가수는 많지 않다.



그리하여 솔로 투어에 더 집중하기 위해 96년 3월 결국

그가 제네시스를 탈퇴한다. 뱅크스러더포드는 새롭게

레이 윌슨을 발탁하여 15집 Calling All Stations

발매하지만... 대차게 말아먹는다. 사람들은 바야흐로

깨달았다. 제네시스는 여기까지로구나 하고..



점점 나이를 먹은 콜린스의 솔로 작업도 투어가 여전한

흥행일 뿐 신보는 그저 그런 단계로 접어들어간다. 단,

99년에 디즈니 애니메이션 타잔의 주제가로 발표한

You'll Be in My Heart의 성공은 눈여겨볼 만하다.

2000년 아카데미에서 그에게 유일한 오스카를 안긴다.

사람들이 모두 라이온킹에서 엘튼 존이 해낸 역할을

기대하고 있었고 그는 이에 부응한 것.



(Both Sides)



('Both Sides of the Story' from Both Sides, 1993)



('You'll Be in My Heart' from Tarzan, 1999)



('Everyday' from Both Sides, 1993)

https://www.youtube.com/watch?v=xQpsXA36uq4


('We Wait and We Wonder' from Both Sides, 1993)

https://www.youtube.com/watch?v=52NbxxVUGzk



(Calling All Stations)




본 블로거가 필 콜린스제네시스의 오랜 광팬이기도 하고

제네시스의 음악사가 워낙 광대한 변화와 끊임없는 발견이

응집된 총체인지라 이번 포스팅은 할 이야기가 참 많았다.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부득이하게 줄이고 삭제한 내용이

꽤 많았음을 살짝 밝힌다.



앞에도 언급했지만 솔로 활동에서 별 재미를 못 본 토니

뱅크스야말로 역설적으로 제네시스 사운드의 코어라고 본다.

마이크 러더포드콜린스의 솔로 커리어만 훑어 보더라도

얼마나 재능있는 뮤지션들이 오랫동안 뭉치고 엮여 창의적인

시간을 함께 했는지 느낄 수 있으리라 본다.



장대한 인생의 여정에서 다섯 사람이 서로 독립적인 결정을

내리고 각자의 길을 걸어오기도 했으나 그들 서로가 느껴온

신뢰감은 근본적으로 변한 적이 없다. 아래 링크에서 다시

한 번 그 점을 확인하고 오해들 풀기 바란다.



연예계에 만연한 여러 풍문과 몰이해의 중심에 휩싸이기도

했던 콜린스의 인생과 음악이었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가수, 작곡가, 프로듀서, 연주자로서 그의 가치는

많은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라고 믿는다.



*피터 가브리엘이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 불참한 이유

- 새 앨범 리허설 때문에 바빠서. 서로 사이는 괜찮다.

https://www.billboard.com/articles/news/959216/genesis-says-peter-gabriel-missing-rock-hall-induction-is-no-snub


*명예의 전당 운영진의 공식 입장:

https://www.rockhall.com/inductees/genesis



(ARP Quadra)


(Sequential Circuits Prophet-10)


(E-mu Emulator)






(Separate Lives, single)




본 블로거는 너무나 많은 필 콜린스의 작업물들을 일생에

걸쳐 접해왔다. 추천할 트랙이 참 많지만 인생 노래라고

생각하는 Separate Lives를 빼놓고는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덜트 컨템포러리 프로듀서로서 콜린스의 재능이

극에 달하던 때 나온 최고의 히트곡이며 투어에서도 여러

다양한 버젼으로 많은 백킹 보컬리스트들과 연주해왔다.



원곡을 소화한 마릴린 마틴은 80년대 중반에 솔로로 나서

일본 프로모션도 소화하는 등 불타 올랐었지만 그뿐이었고

지금은 음악계에서 은퇴하여 공인 중개사로 사신다 한다.

Stealing Home이라고 컬트적 인기를 누려온 88년 영화

주제가로 많은 매니아 팬을 거느려 오기도. 추억의 첫사랑.



('Separate Lives' by Marilyn Martin & Phil Collins, 1985)

https://www.youtube.com/watch?v=vmMinSOWKQk

*공식 뮤직 비디오는 이쪽. 화질음질 좀 업글해 달라..



('And When She Danced' by Marilyn Martin & David Foster, 1988)

https://www.youtube.com/watch?v=JzEB_V8qg04

https://www.youtube.com/watch?v=1f4HaTgcfQ8




이 곡의 가사는 헤어진 연인 또는 이혼한 부부 사이 이야기.

남자의 호텔 방에 여자가 전화 와서 새로 연애를 시작했다고

전하며 애틋한 옛 감정을 토로하는 내용이다. 여러 아름다운

버젼이 있는데 팬덤에서 가장 충성도가 높은 두 가지 라이브

아카이브를 아래에 강추로 링크하며 금번 포스팅을 마친다.




('Separate Lives' from White Nights, 1985)

*작곡은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Stephen Bishop.



*90년경 투어. 유명한 백킹 보컬리스트 Bridgette Bryant와 함께.

**원곡에 대한 새 해석이 시작된 버젼이라 하며 팬덤의 인기가 높다.



*97년 파리 투어에서 Amy Keys 및 Arnold McCuller와 함께.

**원곡 가수를 왠지 쩌리 만들어 버린 어마무시한 두 백킹 보컬리스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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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이 분야 포스트를 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가
오늘 한 곡의 청명한 트랙을 들으니 마음이 동한다.


When the Heart Rules the Mind인데... (이하 WHRM)
이 골드 앨범에 청명한 보컬을 제공한 보컬리스트..


맥스 베이컨 Max Bacon 되시겠다...



그는 모비 딕이나 나이트윙 같은 밴드에서 활약했다고
기록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사실 그의 유명세는 오직 한 밴드..
GTR에서 활동한 기록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GTR...
조용히 한 장의 앨범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 버린..
락 팬들에게 전설처럼 남아버린 그 밴드..


전설의 밴드가 남긴 전설의 명반...



'발끝을 맞춰서봐'라고 외치는 아름다운 발라드가
지금도 음악팬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주는 그 수려한 트랙들..
그것들을 만들어낸 80년대 중후반의 밴드 되시겠다.


GTR은 1986년에 가공할 기타리스트
두 명이 의기투합하면서 락 씬에 등장했는데...


스티브 하우 Steve Howe



스티브 해킷 Steve Hackett



두 스티브가 그들이다.
'가공할'이란 표현을 썼지만 당시엔 정말 가공할 일이었다.
한 밴드에서도 보기 힘든 걸출한 뮤지션들이
여러 명씩 의기투합하여 밴드를 만들다니...
그리고 그 앙상블이 매우 뛰어난 결과물을 빚어내다니...


그렇다. GTR은 80년대에 유행한 수퍼밴드 되시겠다.
수퍼밴드의 시작이 야드버즈요, 그 끝은 미스터빅이라고 했던가...
일반적으로 수퍼밴드는 걸출한 아티스트.. 보통은 기타리스트가
다른 핵심멤버를 규합하는(=꼬셔내는) 형태로 시작하고는 한다.


레인보우는 리치 블랙모어가 주동하였고
오지 오스본 밴드는 오지가 주동하였다.
배드 잉글리쉬는 닐 숀이 불러 모았고...


보통 어느 한 사람이 주동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던 데에 반해
GTR은 두 스티브가 비슷한 비중으로 합심하였다는 점이 다르다.
두 스티브.. 둘 다 프로그레시브 씬에서 한 가닥 하던 기타리스트이다 보니까
일렉트릭 기타의 새로운 영역을 실험하는 데에 팀컬러의 비중을 두게 되었다.


(물론 그 '새로운 영역'이란 에드워드 반 헤일런이나 닐 숀의
정확하게 정반대편에 위치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드락 기타가 표현할 수 있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


이름도 GTR.. guitar의 약어이다.
이들의 트랙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일렉기타가 이런 소리도 가능한가?' 하는 의문을 자아내는
사운드가 아주아주~ 즐비하다. 풍성한 gtr의 향연..


특히 WHRM에서 해킷이 연주한
synthesizer guitar의 사운드는 아주 유니크하고 unforgettable하다.
이들의 뮤직비디오를 못 본 사람들은 인트로에 등장하는 사운드가
키보드로 연주한 것일 거라고 지레짐작할 터이다. 그러나 기타였다 사실은..


해킷은 언제나 저 사진에 보이는 안정감 일백프로의 포스쳐로
조용하고 사색적으로 음미하듯이 기타를 연주하는데..
저 포즈로 조용하고도 박력있게 얼터네이트 피킹을 날려주시는..
바로 그 사운드가 WHRM의 인트로 프레이즈 되시겠다.
멋진 사운드 아닌가?


하우는.. 아시다시피..
클래시컬하고 스페니쉬한 프레이즈를 즐기는 연주자이고..
이 앨범에서는 그의 이런 특성이 그리 강하게 풍겨 나오지는 않는다.


기타의 새로운 사운드.. 라는 취지에 동감한다면
이 앨범은 하우보다 해킷의 지배력이 더 강한 앨범이었다..고
그렇게 평가하고 싶다.


밴드의 출신 배경이 이렇다 보니
너무 기타리스트 얘기만 했는데...
이런 그들의 '새로운 영역' 운운하는 사운드에
묘하게 합치하는 음색이 맥스 베이컨이었다.


혹자들은 그렇게 얘기한다.
"지티알이 왜 깨졌는지 알아?"
- "맥스의 '앵앵거리는' 소리가 짜증나서야!"


앵앵거린다... strident라고 정확하게 위키피디어에 표현되어 있다.
보컬리스트의 역량을 두고 이런 단어를 써가면서 폄하할 수 있는지 의문인데...
(나 참...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노래를 얼마나 잘 하길래?)


비록 맥스 베이컨이 GTR 실적 이외에 혁혁한 성과가 눈에 띄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뮤지션으로 살아온 사람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 앨범에서 보여준 유니즌과 싱크로는 최고였다고 말하고 싶다.


앨범의 성과가 이를 입증하지 않는가?
비록 한 장밖에 남기지 못했지만 GTR의 유일한 스튜디오 앨범은
앨범 차트 11위까지 올랐고 싱글로서 WHRM은 14위까지 올랐다고 한다.
어디 이런 성과가 두 스티브에게서만 비롯된 것이겠는가?
락큰롤은.. 종합무대예술이고 팀웍에 의한 결과물이다.


맥스의 사운드는, 물론.. 일반적으로 락 보컬리스트들이 지향하는
선굵은 보이스 컬러와는 정확하게 차별적인 무언가가 있다.
성대를 트레이닝하는 방법이 처음부터 달랐던 것 같고..
어쩌면 타고 난 자연음색이 변성기를 거쳐 안착한 경로가
다른 사람과는 달랐음에 틀림없다.


속된 말로, 락음악을 배우는 과정에서
보컬리스트들이 흔히 접어들게 되는 경로...
'목소리를 맨바닥에 갈아버리는' 트레이닝 코스... 그리고 득음하는...
맥스 베이컨은 바로 이 과정을 생략해 버린 것이다.


왜? - 그야, 타고난 자신의 음가에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자신만만하고 쿨한 태도인가?
한 아티스트의 당당한 애티튜드가 물씬 느껴지지 않는가?
그 애티튜드인즉슨.. WHRM의 테마를 장식하는 그 당당함.. 되시겠다.
"When the Heart~ Rules the Mind~" 얼마나 시원시원한가?


이와 비슷한 음색을 갖고 있는 보컬리스트는
피터 세테라, 피터 가브리엘, 제이슨 쉐프 정도...?
가브리엘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음에서 살짝 아슬아슬한
'목에서 나는' 소리를 즐기는 보컬리스트들 되시겠다.
덕분에 삑사리 확률이 가장 높은 이들이기도 하다. (가브리엘 빼고..)


Toe the Line을 듣고 그 애절함에 눈물지어 본 사람이라면...
적어도 맥스의 목소리를 두고 '앵앵거림(strident)' 운운은 안 했으면 한다.
어찌 되었든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한 절세가창의 보컬리스트였으니까...


자, WHRM에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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