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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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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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3.31
    인류 역사상 최고의 지성, 그는 대기만성의 시간강사
  2. 2019.03.15
    스팅 Sting
  3. 2019.03.02
    2차 북미 정상 회담, 원인과 전망




Immanuel Kant: the Highest-Esteemed

Intellectual Ever in Mankind History






어렵지만 이마누엘 칸트 이야기를 해봅시다.

얘기를 풀기도 어렵고 받아들이기도 어렵겠지만요.



고매한 철학의 언어로만 풀지 말고 이 분이 대중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고 싶어졌어요.

문득. 여러 모로 매력이 있는 삶이었거든요.



칸트가 태어난 곳은 당시엔 쾨닉스베르크였고 프러시아 땅인데

독일이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훗날 러시아로 넘긴 지역인지라

지금은 러시아 땅의 칼리닌그라드로 불려요.



칸트가 평생을 쾨닉스베르크 대학에서 강의하고 연구하며

지냈는데 이 대학은 지금도 있습니다. 러시아 발틱연방대학이죠.

‘이마누엘 칸트’의 이름을 딴 별칭으로 운영 중이에요.

좋은 학교입니다.










1724년에 당시 전형적인 상업 도시에서 마구 수공업자인

부친 밑에서 태어나요. 놀랍게도 할아버지 대까진 프러시아

아닌 스코틀랜드 사람이었다 해요. 이민 3세대인 셈..



원래 독일어식으로 에마누엘이란 이름이었는데 히브리어를

공부한 후 이마누엘로 스스로 개명했다고 해요.



그의 가정은 경건한 청교도 가풍으로 엄격하고 검소했다네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칸트의 이미지와 왠지 어울리죠.

가정 환경이 중요합니다.



16세에 쾨닉스베르크 대학에 입학했고 6년 후엔 석사 논문과

함께 졸업했는데 이때 부친이 돌아가셔서 생계가 어려워졌대요.



그래서 지방 귀족의 가정 교사 노릇으로 생활하며 꾸준히

학문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평생 자기 동네를

떠나지 않았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대체로 옳지만 이 시기

만큼은 교사 일 때문에 인근 지역을 여행했다고 하네요.



그의 평생 삶은 가르치고 연구하고 토론하고.. 의 규칙성을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그의 일과를 보고 시계를 맞추었다는

이야기는 진짜로 전해지는 사실이래요.



그는 철학의 전 영역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둔 대철학자이지만

정치학, 신학, 물리학, 천문학, 수학, 지질학, 지리학, 교육학,

인류학, 역사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괴물급 학자였어요.



1754년엔 천문학 연구 성과로 베를린 학회장상 1등상을

받았고 이듬해 4월에 논문 ‘일반 자연사와 천체 이론’을

발표했는데 놀랍게도 우주 기원론을 밝힌 내용이에요.



우주와 태양계가 성운의 분자 덩어리로 생겨났다는 오늘날의

가설을 처음 제시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세요? 바로

칸트입니다. 바로 이 논문에서요.



55년 9월에 ‘형이상학적 인식의 으뜸가는 명제의 새로운

해명’이란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 강사 자격을

얻었다 해요. 논리학, 물리학, 자연법, 자연 신학, 윤리학

등 강의 과목은 실로 방대했다고 전합니다.



이듬해 은사님이 돌아가시며 그 자리로 교수직을 노렸지만

좌절되었다 하고 몇 해 후 문학 교수 자리를 제안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해요. 철학 교수직을 꼭 원했기 때문에요.



1764년에 미학 논문으로 베를린 학회장상 2등상을 받는데

1등상은 역시 당시 출중한 학자였던 모제스 멘델스존에게

돌아갔다고 해요. (이 사람도 꽤 유명한 유대교 철학자..)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왕립 도서관 사서로 몇 년 일한 적도

있지만, 1770년에는 드디어 바라던 철학 교수로 임용되요.



칸트가 박사를 딴 지 너무 오래 되어 이때 논문을 하나 더

심사 받아야 했는데 ‘감성계와 지성계의 형식과 원리들’이라고..

향후 전개되는 비판 철학의 골격을 엿볼 수 있는 저작이래요.



이후 칸트는 소위 일컫는 침잠 기간에 들어가요. 그때까지

왕성하게 발표하던 논문도 끊고 대외 활동이 없었다고 하는데,

이런 분이 설마 놀았겠어요.



학자들의 유추 연구에 따르면 이때 영국에서 데이빗 흄

출간한 '인간본성론'을 입수해서 읽고 큰 충격을 받아 사상

체계를 완전히 뜯어 고치는 작업을 하느라고 늦어졌다고 해요.



점포 인테리어 공사 하느라 개점 휴업을 오래 한 거죠.

그러나 그 사이 엄청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에 몰두하여

침묵을 완전히 만회할 눈부신 저작이 십여 년 후 탄생해요.



근대 철학의 흐름을 바꾸고 인간 역사 최고의 철학서로 부른다는

‘순수이성비판’이 1781년에 출간되어요. 두두둥.



희한하게도 초판 반응은 대단히 싸늘했다고 해요. (사람들이

이해를 못한 건가..) 하도 썰렁해서 칸트 자신이 친절하게

요약서를 2년 후 추가 출간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추종자인 카를 라인홀트가 1780년대 후반 철학계에

유행하던 치열한 범신론 논쟁에 순수이성비판을 거론하며

‘이 책 읽어보면 답이 다 나옴’ 하면서 사람들 반응이

180도 바뀌었다고 해요. 역주행한 거죠.



순수이성비판이 놀라운 저작인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한 인간의 인생을 놓고 볼 때 그 전까지 유지했던 생각을

완전히 다 뜯어 고치고 새로 만들어낸 생각을 담았다는

그 하나 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고 봐요.



칸트주의 철학 체계, 즉 독일 관념론비판 철학

‘순수이성비판’을 기점으로 1788년 ‘실천이상비판’,

1790년 ‘판단력비판’을 차례로 출간하며 완성되어가요.



철학의 각론 가운데 순수이성비판형이상학인식론,

실천이성비판윤리학, 판단력비판미학의 내용을

각각 담은 건데, 철학의 전 영역을 탐구했다는 것은

여기서 알 수 있답니다.



여기에 1786년의 과학 철학서, 1793년의 종교 철학서,

1795년의 정치 철학서까지 합하여 전 영역에 걸친

칸트 비판 철학이 완성되는 거에요. 맙소사.



논리학 책이 없는데 그건 1800년에 제자가 쓰는 책을

지도하며 하나 내요. 일종의 논리 교과서인데 난해한

칸트 책을 읽을 때 많은 도움이 된답니다.

고틀로프 예쉐라는 사람의 ‘논리학’..



1804년에 평소의 삶처럼 정확히 여든 살을 살고

‘그만하면 괜찮다’는 유언을 남기며, 역사상 최고의

지성인이 돌아가셨습니다.



쾨닉스베르크 시민 전체가 휴업하고 애도를 표하며

동향의 거인이 가는 길을 배웅했다고 해요.





Immanuel Kant (1724~1804, Prussia)






칸트의 철학이 난해하지만 순수이성비판부터 출발하면 되요.

지식을 받아들이는 방법론에 대한 인식론과 세계를 구성하는

원리를 논한 형이상학에서 큰 논제를 던지고 있어요.



그도 대륙에 속한 사람이었기에 합리론에 기반한 이성 중심의

인식론에 경도되어 있었는데 흄의 책을 읽고 경험의 요소를

일부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거에요.



그를 가리켜 합리론과 경험론을 결합하여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을 한 대학자라고 칭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인 거죠.



인간의 이성이 한계가 있으므로 인식의 과정에는

선험적 형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요지에요.



그는 감각이 수용한 지식이성의 작용을 통해 인식되므로

감성지성의 연합에 의해서만 중심의 자아가 주체적으로

지식을 형성할 수 있다고 설파했어요.



이런 관점에서 감각이 수용할 수 없는 대상(, 불사, 자유)을

사유하려 한 기존 형이상학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며 이런

대상은 도덕적 실천의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고 했죠.



순수이성’이 도대체 뭔데? 하시는 분도 있을 텐데, 말하자면

작가의 캐릭터 설정 같은 거에요. 인간 이성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칸트 책 안에서만 가정하는 철학 주체인 거죠.



*슈퍼맨의 팬티는 절대 찢어지거나 불타지 않쟎아요..

트레키 세계에서 클링온 언어는 실재하는 거고.. 뭐 이런 거.



순수이성비판의 말미에는 칸트 비판 철학의 3대 질문이

등장하는데 칸트 세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요.

순수이성이 골몰해야 할 세 가지 질문인즉슨...



첫째,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What Can I Know?

둘째,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What Should I Do?

셋째,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What May I Hope?



첫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둘째는 실천이성비판에서,

셋째는 1793년에 나온 종교 철학서 ‘순수이성 한계

안에서의 종교’에서 각각 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죠?



3대 비판서와 달리 이 책도 상당한 문제작이에요.

얌전한 칸트에게 생애 최초로 검열과 제재를 받게 한

책이거든요. 당시가 프랑스 대혁명 직후인지라 군주제

집권층에서는 상당히 긴장할 수밖에 없었대요.



실천이성비판 1장에는 가장 유명한 칸트의 다음

경구가 정언 명령의 제1 수칙으로서 소개됩니다.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 Act in such a way that the maxim of

your will could always hold at the same time as

a principle of a universal legislation… 멋지죠?



1786년의 과학 철학서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기초’는

19세기 독일어권 과학자들에게 성경처럼 영향을 미친

책이라고 하고요.



1795년에 나온 정치 철학서 ‘영구평화론’에 등장한, 시대를

수백 년 앞선 선견지명 앞에서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요.



국제법과 평화 조약, 전쟁과 군비 감축, 국제 연맹 체계 구축,

국가간 상호 독립성과 내정 간섭 배제… 자그마치 이런 내용이.



20세기에 나온 국제 정치학 책이라 해도 믿겠는데요.

왠지 우드로 윌슨이 되게 좋아할 것 같은… 쿨럭.



능력의 한계로 본 블로거가 할 수 있는 요약 설명에 한계가 있으니

칸트나 다른 철학의 최신 상세 설명을 이후에도 접하고 싶다면



스탠포드 철학 백과사전도 좋겠고...

https://plato.stanford.edu




테네시 대학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철학 백과사전

좋아요. 개인적으론 여기서 많은 도움을 얻었어요.

엄청 쉬운 영어로 어려운 뜻을 풀어주니 놀랍더라고요.

https://www.iep.utm.edu




이 포스팅을 읽는 (특히 청소년) 네티즌에게 강조하고픈

이마누엘 칸트의 일생 중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처음부터 천재가 아닌 대기만성형의 대학자란 점이죠.

날 때부터 천재라던 데이빗 흄과 참 비교되죠.

칸트가 흄의 책을 읽고 좌절하기도 했거니와..



대략 40대 중반까지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살던 시간 강사는

정교수 자리에 올라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만끽하나, 정작

그때까지 자신이 해오던 방향이 틀렸음을 깨닫게 되요.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십여 년을 침묵하며 방향을 수정한 후

인생의 후반기를 인류 최고의 지성으로서 칭송받으며 산 거죠.



범접하기 힘든 철학자 칸트보다 굽힐 줄 모르는 의지와

산처럼 묵묵한 성실성을 가진 인간 이마누엘에 주목한다면…

여러분도 철학의 길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아래 개인 동영상은 쓸데없이 현학적이지 않아 퍼와요.

주로 의무론적 정언 명령을 설명하고 있군요.









"공감을 눌러 주시면 큰 힘을 얻습니다"


and




이 분이 노래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참 신기하기도

하고 대단하다고 경탄을 금할 수 없다. 데뷔 이후

일체의 바이브레이션 없는 직선적 고음을 한결같이

유지해오신, 영원한 펑크punk 스타 스팅.



슈퍼 트리오 폴리스베이시스트이며 Every Breath

You Take 단 한 곡으로도 영원히 기억되는 미노년의

거물 락커 스팅 Sting이 이번 포스팅의 주인공이시다.









('Every Breath You Take' from Synchronicity, 1983)



('Fields of Gold' from Ten Summoner's Tales, 1993)




스팅은 왜 이름이 스팅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한때는

좀 있었는데, 꿀벌 티셔츠를 즐겨 입으시던 이 분의 20대

시절 별명이었단다. sting에는 벌침이란 뜻도 있거든.

물론 본명 아니고 1951년에 고든 매튜 토머스 섬너

긴 이름으로 태어나셨다. 잉글랜드.



그의 솔로 아티스트로서 전성기가 한국 음악 시장에서

해외 음악이 활발하게 수입되고 정보가 유입한 홍수기와

대략 일치하기 때문에 솔로 경력은 그래도 비교적 알려져

있는 것 같다. 굳이 설명할 필요 있을까 싶을 만큼.

그래도 약간 언급은 하겠지만서도.



한국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시기는 그의 밴드 시절이

아닌가 싶네. 폴리스 The Police. 슈퍼 락스타 스팅

시작점을 제공한, 역사상 최강의 락 트리오 중 하나인

그들. 이름이 폴리스인 이유는 멤버 한 분 아버지가

정보 기관에 근무하셨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https://www.etonline.com/music/166153_7_things_you_never_knew_about_sting_the_police





(The Police)




 (Outlandos d'Amour)




베이스보컬스팅, 기타앤디 서머스, 드럼스튜어트

코플랜드.. 이렇게 세 사람으로 1978년에 데뷔 앨범을 내고

다섯 장까지 정규 앨범을 낸 뒤 84년쯤 활동을 정리한 3인조

구성의 영국 밴드가 폴리스이다.



80년대 포스트 펑크뉴웨이브에 기반을 두고 재즈레게,

스카아프리칸 등 다양한 장르를 복합한 음악을 단 셋만의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한 편성으로 엮어낸, 락 음악사상

가장 탄탄한 음악성을 지닌 슈퍼 트리오라고 불렸다. 소위

일컫는 80년대 제2차 브리티쉬 인베이전의 일원이기도.



78, 79, 80, 81, 83년에 각각 발표한 정규 앨범이 죄다 영국

차트 탑텐에 올랐고 이 중 3-4-5집은 미국에서도 탑텐

기록했다. 다섯 장 중 넉 장은 롤링 스톤 지가 발표한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반에 당당히 선정될 정도. 앨범의 전 세계

판매고가 8천만 장에 달하고 여섯 차례 그래미 어워드

수상했으며 브릿 어워드도 두 번 받았다. 2003년에 이미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Summers)



(Copeland)



 (Regatta de Blanc)



(Zenyatta Mondatta)




4집까지 음악성도 탄탄하여 성공했지만 83년 Synchronicity

앨범과 싱글 Every Breath You Take의 초대박 메가히트는

너무나 유명한 전설이다. 앨범과 싱글 쌍끌이로 미국 시장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찍었다.



스팅이 아내와 불화가 있던 시절 스토가 된 심정으로 어디

얼마나 잘 사나 지켜보자고 쓴 가사인데 끈적한 사랑 노래로

오해하는 사람 참 많다. -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 현상.

가사를 쓴 그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고. 결혼식서 부르지 말자.



다 필요없고 폴리스스팅을 대표하는 시그니처송 아니겠냐.

생략하고 갈 수 없으니 먼저 듣고 시작하자. 원곡도 훌륭하고

아래에 2008년 재결합 투어 중 도쿄돔 라이브 버젼도 좋다.



 (Every Breath You Take, single)



*2008 Reunion Tour 중 Every Breath You Take.




서머스가 창조한 저 기타 리프는 모르는 이 없이 역사상

가장 유명한 프레이즈. 82년 로버트 프립과 듀오 앨범

I Advance Masked를 낼 때 벨라 바르톡을 연구했는데

거기서 착안했다지.



얼핏 듣기로는 쉬운데 막상 치려면 손가락 찢어진다고

악명높은 악마의 리프라지... 무려 캘리포니아 주립대

음대서 클래식 기타를 전공한 분이니 핑거 난이도

쯤이야 이미 아득히 초월한 수준 아니겠남.



https://www.youtube.com/watch?v=dOJjxL82X2Q&t=275s

(왜 어려운 리프인지.. 4분 35초 경부터)




주변에 폴리스의 라이브를 들려줄 때 나오는 반응 중

열에 여덟 아홉은 그렇다. 스팅만 알고 들어갔는데 나올

서머스코플랜드의 팬이 되어 버린다고. 하나의

온전한 밴드를 얘기할 때 두 분은 스타인 스팅보다

더 중요할지 모르는 것이 사실일 거다.



(앤디 서머스 1987년 인터뷰. 기타 사운드의 디자인에 대해..)

https://www.youtube.com/watch?v=RS87DCFfzxU


(스튜어트 코플랜드 드러밍에 대한 설명. 어느 드럼 강사..)

https://www.youtube.com/watch?v=Mwojr-12xK4




42년생으로 이미 60년대 중반부터 블루스사이키델릭

연주자로 각광받은 앤디 서머스. 실력파 밴드 소프트 머신에서

투어 연주자로 뛰었고 저명한 애니멀스에서 정규 멤버인 적도

있었으니, 적어도 실력에 있어 누가 딴지 걸 만한 짭밥은 아닌

폴리스에 참여한 분이다.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데뷔 무렵 세 분 중에선 멀찍이 앞서던 멤버인 셈다.



때려부수는 파괴 주법이 아닌 스티브 해킷, 스티브 하우,

알렉스 라이프슨, 로버트 프립처럼 이펙트 중시하는

분석적 어프로치로 프레이징을 펼친다 하여 흔히 두뇌파

분류되는 기타리스트동시대 U2디 에지와도 유사한 면이

있고, 중심 접근 자체가 포스트 펑크의 트레이드 마크일 듯.



폴리스의 라이브나 앨범 트랙을 골고루 들으면 금방 알 수

있지만 사운드 메이킹에서 서머스어프로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작곡 크레딧을 대부분 스팅이 가져간다는

단순한 이유로 따질 수 없는, 분명한 자기 생태계를 구축하는

밴드메이트인 것이다. 폴리스 이전 서머스의 플레이를 느끼기

원하는 사람에겐 애니멀스 시절 4분이 넘는 솔로잉을 펼친

트랙 Coloured Rain을 보통 추천하곤 한다.



('Colored Rain' by Eric Burdon and The Animals, 1968)

- 애니멀스 시절 앤디 서머스. 솔로 파트는 2' 20" ~ 6' 40" 정도에..



(폴리스가 과연 punk 밴드였는지 의심이 든다면 아래 영상을...)

https://www.youtube.com/watch?v=rPNQyyLglSQ



(Fender Telecaster)



('So Lonely' from Outlandos d'Amour, 1978)

*2분 25초쯤 이후 솔로잉도 꽤 괜찮은 편이다.



('De Do Do Do De Da Da Da' from Zenyatta Mondatta, 1980)

*이 곡에선 기타 이펙트로 리버브와 에코를 적절히 섞었다.



('Demolition Man' from Ghost in the Machine, 1981)

*앨범 버젼에서 기타 솔로잉을 만끽할 수 있다. 버젼이 여러가지라..



('Demolition Man' by Manfred Mann's Earth Band, 1982)

- 데몰리션 맨 맨프레드 맨s 얼쓰 밴드가 커버했는데 꽤 잘 뽑혔다.




폴리스의 히트곡 가운데 서머스 이펙트의 진가를 보여줄

트랙으로는 1집 Outlandos d'Amour에서 So Lonely,

2집 Regatta de Blanc에서 Message in a Bottle, 3집

Zenyatta Mondatta에서 De Do Do Do De Da Da Da,

4집 Ghost in the Machine에서 Demolition Man 등을

추천할 만하다.



특히 Message in a Bottle1집에서 Roxanne이 크게

히트했음에도 실질적으로 폴리스 음악의 기초를 세웠다고

평가받는 명곡이다. 롤링 스톤 지가 시대를 초월한 기타

(가 중심이 되는) 노래 100곡을 선정할 때 65를 차지할

정도로 스트랫 선상의 리프또렷하고 청량하다.



(Rolling Stone Magazine's 100 Greatest Guitar Songs of All Time)

https://www.stereogum.com/10114/rolling_stones_100_greatest_guitar_songs_of_all_ti/franchises/list/



('Message in a Bottle' from Reggatta de Blanc, 1979)

*최고의 리프. 가사는 병 속에 편지를 넣어 띄워보낸 사람 이야기..


('Roxanne' from Outlandos d'Amour, 1978)

*록산은 파리의 매춘부를 가리킨다. 신호등과 상관없다능.




52년생 스튜어트 코플랜드는 개별 악기 능력에 있어선

세 멤버 중 평가가 가장 높다. 16년 롤링 스톤 지 선정

시대를 초월한 드러머 100명 중 무려 10위, 05년 모던

드러머 및 13년 클래식 드러머 명예의 전당 헌액 등등..



특히 트래디셔널 그립으로 스틱하이해트, 을 다루는

테크닉은 동시대 최강이며 많은 후배들에게 영향을 줬다.

사운드의 여백을 책임감있게 메꿀 정도의 능력치는 존 본햄,

닐 피어트칼 팔머동급이라는 것이 중평이라 하겠다.



정작 본인은 미치 미첼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다 하고

진저 베이커도 자주 언급했다. - 세 분 모두 락 트리오

멤버들.. 왜인지, 버디 리치 스타일 재즈 긱은 싫어한다고.



(Rolling Stone '100 Greatest Drummers of All Time', 2016)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drummers-of-all-time-77933/stewart-copeland-33775/


(Modern Drummer Reader Pole, 2005)

https://www.moderndrummer.com/modern-drummers-readers-poll-archive/#_


(Classic Drummer Hall of Fame, 2017)

https://www.classicdrummerhalloffame.com/stewart-copeland



(traditional grip of a left hand)




어린 시절 한동안 가족이 중동에서 지낸 탓인지 레게 

스카를 포괄한 다채로운 전통 리듬에 익숙하여 폴리스

음악에 크게 기여한다. 때때로 클래식 퍼커셔니스트마냥

광범위한 진폭의 다이내믹스 능한 것도 이 때문일 듯.

꽉 찬 그루브의 재즈적 필인 또한 지나칠 수 없는 요소.



이들에게 하나의 루틴 패턴인데, 스팅이 베이스로 중심을

잡으며 가사를 읊는 뼈대 위에 서머스가 다양한 이펙트

변용하여 사운드를 채워주고 코플랜드가 그 위로 리듬

운용하는 자유분방함... 3집까지 레게펑크punk

고수하던 폴리스의 음악은 대략 이런 양상이었다.



('Don't Stand So Close to Me' from Zenyatta Mondatta, 1980)

*80년 앨범 원곡 버젼. 스팅은 실제로 교사였던 적이 있다고.



*86년 재녹음 버젼. 이 앨범 하나면 왠만한 히트곡 다 들을 수 있다.




1집 Roxanne을 쓸 때 스팅은 당초 보사노바 리듬을

구상했지만 코플랜드의 조언에 의해 탱고로 바꿨다고.

서머스 여러 모로 이들에게 중요한 2집 Message in a

Bottle 코플랜드 플레이가 역대 최고였다고 극찬했다.



3집Don't Stand So Close to Me는 여학생이 선생님에

품은 감정을 다룬 영국 차트 1위 곡인데 기타 신디사이저

등장한다. 해산 후 86년에 히트곡 모음집인 Every Breath

You Take: The Singles를 발매할 땐 '86 버젼으로 재녹음

중이었는데 마침 코플랜드가 부상 중이라 워크스테이션 명기

Fairlight CMI드럼 프로그래밍을 직접 했다고.



*아랜 86년 The Singles의 95년 재발매판 커버.

 (EBYT: The Classics)



*아랜 97년 또다른 모음집. 이들은 베스트 앨범이 잘 팔리는 편.

(The Very Best of Sting & the Police)




('The Bed's Too Big Without You' from Reggatta de Blanc, 1979)

*80년 독일 라이브. 코플랜드의 스네어 드러밍에 주목.




2집 The Bed's Too Big Without You세 멤버가

고루 우수한 가운데 특히 평단이 코플랜드의 물수제비 뜨는

듯한 스네어 드러밍을 콕 집어 칭찬한 바 있다. 3집의 숨은

진주 Driven to Tears싱코페이션 가득한 레게 리듬을

무리없이 소화해낸 코플랜드와 함께 서머스의 여덟 마디

솔로잉이 격찬을 이끌어내기도.



3집 중 엄청난 길이의 제목을 가진 When the World Is

Running Down, You Make the Best of What's Still

Around.. 이 트랙에서 보여준 funky-groove 베이스

드럼의 조화 역시 대단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5집Murder by Numbers

코플랜드의 재즈식 테크닉을 진짜 매력있게 들려준다고도..



('Murder by Numbers' from Synchronicity,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1Wp-SZSBkjk




('Driven to Tears' & 'When the World Is Running Down, You Make

the Best of What's Still Around' from Zenyatta Mondatta, 1980)

- Zenyatta Mondatta의 두 트랙을 이어붙임..




 (Ghost in the Machine)




4집 Ghost in the Machine이나 5집 Synchronicity

쯤 가면 스팅뉴웨이브신디사이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이전까지 사운드를 채워주던 서머스

여러 모로 부딪히게 된다. 밴드 스코신디가 설치기

시작할 때 기타리스트의 운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는 법.



4집Every Little Thing She Does Is Magic이나

Spirits in the Material World 같은 히트곡을 만들 때

스팅서머스의 갈등이 점입가경이었다고. 신디 톤

점령해 들어오면서 펜더 소리 듣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음은 그냥 대충만 들어봐도 뭐..



아래에 4집 내고 공연 중.. Moog Taurus pedals 쓴다고

엄청나게 스팅 까는 댓글은 덤이다.


*Sting playing Moog Taurus pedals, 1982.

https://www.youtube.com/watch?v=nYFjTPAQ6G0



 (Moog Taurus)



('Every Little Thing She Does Is Magic'

from Ghost in the Machine, 1981)



('Spirits in the Material World' from Ghost in the Machine, 1981)




 (Synchronicity)




가뜩이나 멤버들 간에 신경이 곤두서 있던 차에 제작사

압력으로 녹음에 들어간 Synchronicity. 서로 모이지도

않고 따로 자기 파트를 녹음했다는 후문. 그런 앨범이

역대 최고의 성과를 거둔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말다니.



스팅의 가사는 결코 쉽지 않다. 교대 나와 교사로 일한 적

있는 엘리트인지라 어려운 표현 투성이에다 가끔 스노비즘

쩌는 반쯤 허세 같은 작품도 심심찮게 나온다. 본작 가사가

그러한데 아서 쾨슬러란 문필가가 72년에 낸 유사 심리학

계열 저서에 등장한 synchronicity, 흔히 공시성이라고

일컫는 현학적 개념을 풀어낸 가사로 범벅을 했다.



그게 뭐냐고? 전혀 상관이 없는 두 개 이상의 사건이

우연히 겹쳐 발생한 데에서 초감각적 의의를 찾는 약간

초능력 비스무그리한 거라고... Synchronicity II

가사를 조용히 음미해 보시면 알 수도 있을 듯.



(Synchronicity II 가사 속 중의적 해석을 설명한 곳)

https://genius.com/3199809



('Synchronicity I' from Synchronicity, 1983)



('Synchronicity II' from Synchronicity, 1983)



*포스트 아포칼립스 사이버 펑크 문화의 절정을 보여주는 뮤직 비디오.



*질주하는 텔리는 서머스의 상징이다. 애틀랜타에서 83년 마지막 투어.




판매고만도 9백만 장을 넘기고 영국미국 양쪽 앨범

차트 정상에 오르며 84년 그래미 어워드본상 3개

부문을 포함 다섯 부문 후보에 올라 세 부문 - 올해의

노래 포함 - 수상을 기록하는 등. 83~84년의 폴리스

성과와 기록의 절정기를 맞고 있었다.



그럼 뭐하나, 밴드는 해체 수순을 밟고 있었는데. 대부분

곡을 쓰고 팀의 중심이던 스팅솔로 프로젝트로 가기

위해 잔뜩 바람이 들어 있던 상황이었으니. (심지어 이

시기 그는 꽤 연기도 잘 하는 영화배우였다.)



84년 3월 투어를 끝내자마자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각

멤버들은 찢어져 솔로 활동에 들어간다. 2007년에 잠시

재결합하여 투어를 갖기 전까지는 장장 23년간 휴지기가

지속했고 08년 이후 재결합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2008 Reunion Tour 중 Message in a Bottle.



*2008 Reunion Tour 중 Synchronicity II.



*03년 락앤롤 명예의 전당 헌액 공연 중 Roxanne.




짧고 굵게 음악계를 평정한 폴리스의 음악에 아직도 갈증이

남는다면 아래의 히트 트랙들을 더 참고하시길.



('Fall Out', non-album single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4Av29Jp8Ryk


('Can't Stand Losing You' from Outlandos d'Amour,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nH0vjLwMyc4


('Walking on the Moon' from Reggatta de Blanc, 1979)

https://www.youtube.com/watch?v=zPwMdZOlPo8


('Behind My Camel' from Zenyatta Mondatta,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XaP2h7ZP5D0


('Invisible Sun' from Ghost in the Machine,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1VuDjJ9KIxM


('King of Pain' from Synchronicity,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yuOPRfq-q6U


('Wrapped Around Your Finger' from Synchronicity,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svWINSRhQU0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




물론 그 사이 가장 잘 나간 스타는 스팅이다. 기존 팬덤 중

솔로 활동이 망하기 바랬을 사람도 있었겠으나 이 양반이

어디 그리 썩힐 달란트이던감. 85년에 발표한 첫 솔로 앨범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는 전반적으로 재즈

짙은 영향을 뽐낸 멀티 플래티넘의 수작이라 할 만하다.



브랜포드 마살리스를 위시하여 대릴 존스, 케니 커클랜드,

오마르 하킴재즈 씬세션들을 대거 투입하여 안정된

사운드를 들려준다. 핫100 차트 3위까지 오른 데뷔 싱글

If You Love Somebody Set Them Free는 발군의

추천 트랙이며 스팅 솔로 커리어 대표곡으로 자리매김한다.



('If You Love Somebody Set Them Free'

from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 1985)

*전술한 세션들이 다 함께 출연하시는 뮤직 비디오.




84년 겨울엔 당시 영국 음악계를 쥐락펴락 하던 최고의

가수들이 다 모여 밥 겔도프 주도로 밴드 에이드라는

프로젝트 하에 Do They Know It's Christmas 싱글을

녹음하고 있었다. 스팅이 빠질 수 있겠나. 비중은 적지만.



('Do They Know It's Christmas' by Band Aid, 1984)

*1분 14초 경에 등장하심.



85년은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전성기이기도 해서 스팅

마크 노플러가 이들 최고의 히트곡 Money for Nothing

공동 작곡하고 스팅백킹 보컬로 찬조 출연한다. 이런

그림은 라이브 에이드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I want

my MTV~'의 라인은 시대가 낳은 락 앤썸인 셈.





*참고로.. 역사를 새로 쓴 Money for Nothing의 뮤직 비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wTP2RUD_cL0

('Money for Nothing' by Dire Straits, 1985)



(...Nothing Like the Sun)




87년에 낸 ...Nothing Like the Sun 앨범은 진득한

어덜트 컨템포러리로 가득 찬 또 다른 멀티 플래티넘 수작.

앤디 서머스를 비롯, 에릭 클랩튼, 마크 노플러 등 동료

기타리스트가 대거 참여하여 화제가 되었다.



모친상 겹친 때문일까, 한층 깊어진 우울한 정서에

평단이 찬사를 보냈다. 반군에 희생당한 민간인에 바친

싱글 Fragile에서 깊은 쓸쓸함을 확인할 수 있다. 많이

알려진 Englishman in New York성 소수자로서

외롭게 투쟁하던 선배 인사에게 바친 곡이다. Be Still

My Beating Heart는 모친께 바친 곡.



('Fragile' from ...Nothing Like the Sun, 1987)

*클래식 기타 연주가 빼어난 16년 노벨평화상 기념 공연.



('Be Still My Beating Heart' from ...Nothing Like the Sun, 1987)

https://www.youtube.com/watch?v=Ng4P6FWVdcE




(The Soul Cages)




88년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음악극 병사의 이야기

낭독 파트의 녹음에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이언 맥켈런

켄트 나가노가 지휘하는 런던 신포니에타와 함께 참여했다.



91년 앨범 The Soul Cages 땐 부친을 여의었음에도

역설적으로 밝게 그린 All This Time이 좋은 평가를

얻어낸다. 동명의 타이틀 트랙으론 그래미 상을 받았고.



('All This Time' from The Soul Cages, 1991)

https://www.youtube.com/watch?v=4LdUme7QZLY

*뮤직 비디오에서 장례식에 대한 암시를 읽을 수 있다.



(Ten Summoner's Tales)




93년 앨범 Ten Summoner's Tales는 큰 성공을

안겨준다. 그래미 올해의 앨범머큐리 음악상 후보로

오르게 되었고 If I Ever Lose My Faith in You

36회 그래미 최우수 남성 팝 가수 상을 수상한다.



발매 1년여 만에 트리플 플래티넘을 기록하고 If I Ever~

뿐 아니라 Fields of Gold, Shape of My Heart

히트곡이 줄줄이 터져나왔다. 리썰 웨폰 3탄 OST에도

수록된 It's Probably Me 에릭 클랩튼이 기타를 쳤다.



('If I Ever Lose My Faith in You' from Ten Summoner's Tales, 1993)

*보컬 기량으로서는 이 때가 절정기였다.



('Shape of My Heart' from Ten Summoner's Tales, 1993)

*세션 기타리스트는 공동 작곡자이기도 한 Dominic Miller.



('It's Probably Me' from Ten Summoner's Tales, 1993)

https://www.youtube.com/watch?v=SUYI7kIR0S4

*album version. 여러 버젼이 존재함.




93년엔 영화 주제가 작업이 많았다. 실베스터 스탤론

웨슬리 스나입스의 영화 데몰리션 맨을 위해 과거

트랙을 재녹음하여 OST에 수록했고, 찰리 쉰키퍼

서덜랜드삼총사를 위해 All for Love브라이언

애덤스로드 스튜어트와 녹음했는데, 그에게 이 곡은

솔로로서 아직까지 유일한 싱글 핫100  트랙이다.



('Demolition Man' from eponymous soundtrack, 1993)

https://www.youtube.com/watch?v=G3QWnqpHrEI



('All for Love' by Bryan Adams, Rod Stewart & Sting, 1993)




95년엔 니콜라스 케이지엘리자베스 슈의 영화 라스

베가스를 떠나며 OST 앨범에 참여하여 세 곡의 재즈

스탠다드를 녹음한다.



('Angel Eyes' from Leaving Las Vegas OST, 1995)

https://www.youtube.com/watch?v=eaWd0pNHDes

*한국에선 이 곡이 소폭 히트함.




97년에 그의 최고 작품 Every Breath You Take

미국의 흑인 랩퍼 퍼프 대디와 싱어 페이스 에반스

의해 커버되어 무려 핫100 차트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비극적으로 사망한 동료 노터리어스 BIG

기리는 뜻에서 비롯되었으니 물론 개사하여 I'll Be

Missing You란 제목으로 발표한 것.



('I'll Be Missing You' by Puff Daddy & Faith Evans, 1997)

https://www.youtube.com/watch?v=NKMtZm2YuBE




최근까지도 차트에서 두각을 보이는 앨범을 꾸준히 내고

있지만 창작자로서 좋은 평가는 99년 Brand New Day

앨범 이후론 멈춘 듯하기도. 본작에서 알제리 민속 음악인

라이 양식을 빌려 알제리 가수 체브 마미와 함께 한 싱글

Desert Rose로 2000년 그래미 상을 받는다.



02년엔 영국 작곡가에게 주는 이보 노벨로 음악상 수상자로

선정된다. 03년에 니콜 키드먼주드 로르네 젤위거의 영화

콜드 마운틴 OSTYou Will Be My Ain True Love

앨리슨 크라우스와 녹음하고 이듬해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로 올라 시상식 무대에서 공연한다.



('You Will Be My Ain True Love' by Sting & Alison Krauss, 2003)

*연주하고 있는 건 드론 베이스란 전통 악기.




07~08년엔 전술했듯이 폴리스의 멤버와 재결합하여

전 세계 투어를 돌았다. 09년엔 락앤롤 명예의 전당

25주년 기념 공연에 출연했고, 17년엔 스웨덴 왕립

음악 협회가 주관하는 폴라 음악상 수상자로 추대된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의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어떤 업적이나 성과가 나올지 사실 예측하기는 힘들다.

평생에 걸쳐 정열적으로 새로운 음악을 발굴하기 위해

애쓴 예술가로서의 공은 세상 모든 사람이 인정하리라.



(92년 파바로티와 친구들 공연 중)




스팅의 보컬 스타일은 흥미롭고 또 경이롭다. 왠만해서

비브라토를 거의 넣지 않고 넓은 음역을 소화하는 점,

그러면서도 동시에 음정이 정확하다는 점, 중저음역과

고음역의 각 음역대를 요하는 트랙 양쪽에서 표현력이

출중하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재즈에 기반을 둔 - 재즈 밴드의 베이시스트로서

뮤지션 경력을 시작 - 독창적 리듬 감각을 지적인 가사

속 단어의 운율에 묘하게 결합시키는 스팅만의 기법은

동시대 어떤 뮤지션도 따라 할 수 없는 능력일 것이다.



폴리스 시절 젊었을 땐 신랄하게 기득권을 비판하고

조롱하는데 능한 목소리인데 반해 부모님이 돌아가신

30대 후반 이후엔 진중하게 세상을 관조하는 무게감을

키워나간 점 또한 놀라운 면이다. 이런 능력이 지성미

넘치는 창의적 작사 조화를 이룬 상태... - 이것이 바로

인텔리전트한 송라이터 스팅의 참모습일 것이다.



(Fender Precision Bass)






본 블로거가 생각하는 스팅의 최고 작품은 여럿이다. 밴드

시절엔 Synchronicity II의 음악적 완성도가 가장 높았고,

솔로 커리어에선 아직 자신만만함의 갑옷을 벗지 않은 시절

첫 앨범에서 If You Love Somebody~가 들려 눈부신

광채와 실력의 정점이 최고였다고 믿는다.



*If You Love Somebody~ 라이브의 변화 비교:


(1980년대 팔팔하던 시절)

https://www.youtube.com/watch?v=6XUaDJm0ac8


(환갑 기념 공연. 이 때가 무려 60세. 옆에 브랜포드 마살리스.)

https://www.youtube.com/watch?v=jI8XLZUladY




완성도를 제외하고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솔로 때 발표해

한국인들에게도 사랑받아온 Englishman in New York.

2011년 칠레 비냐델마르 페스티벌에서 풀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완주한 버젼이 괜찮아 추천하며 마치련다.


(album version / official music video)

https://www.youtube.com/watch?v=d27gTrPPAyk



본래 브랜포드 마살리스소프라노 색소폰으로 솔로를

넣었는데 이 버젼에선 음역이 같은 클라리넷이 등장한다.

백킹 보컬의 여성은 호주 출신 재즈 보컬리스트 조 로리.

소외받는 이에게 스팅이 바치는 헌사가 여운을 드리운다.


"누가 뭐라 하든 네 자신이 되는 거야"








"공감을 눌러 주시면 큰 힘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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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oi Summit 2019 :

Why Did It Hold? Is the Game Over?




사실 다들 너무 들떠 있지 않나 싶기도 했어요.

보통 언론들이 이렇게 분위기 띄울 리가 없는데..

심지어 외신에서까지 방방 떠서 마음들이 다 콩밭에

벌써 가 있는 듯 했으며 Vox 보도가 정점을 찍었죠.


https://www.vox.com/world/2019/2/26/18239694/trump-north-korea-kim-jong-un-vietnam-summit




냉정하게 다시 상황을 복기해보면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입장에서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음을 깨달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그렇쟎아요. 민족적 감응도가 없는 양반이 반드시 19년 삼일절 전날

극적인 딜을 성사시켜줘야 할 이유가 없죠. 너무 감상적 접근입니다.



19년 상반기란 시간은 도널드 트럼프에게 좋은 타이밍이 아닙니다.

그에게 의미가 있는 최상의 타이밍은 20년 11월 재선이잖아요.

모두가 그것을 모르고 있지는 않쟎아요. 잠시 잊었을 뿐.



더군다나 다소간의 임팩트 있는 변수로서 코언 사태가 터졌어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지구 반대편에서 한창 뭐 하고 있던 중에.


https://www.theguardian.com/us-news/video/2019/feb/27/key-moments-from-michael-cohens-explosive-testimony-video




2월 27일 최대의 뉴스가 하노이였다고요? 한반도에 사는 사람

입장에서나 그러할 뿐, 적어도 미국민 입장에서는 결코 그러하지

못했답니다. 현직 대통령을 저격하는 엄청난 의회 청문회가 벌어지고

있었거든요. 탄핵까지 염두에 둘 만한 핵폭탄급 이벤트였던 거지요.

진짜 핵폭발은 정작 미국에 있었구먼..



그나마 급하지 않은 19년 상반기의 시간대를 의미있게 관리해온

공은 물론 문재인 정부에게 있을 겁니다. 북한 입장에서도 상당히

급한 것은 사실이에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1회차가 이미 18년에

종료했는데 아직 경제 제재조차도 풀지 못한 상황이니까요.



2월 27~28일로 날짜가 급확정되어 물밀듯이 스케줄이 잡혀 나가니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어요. 남북한 입장에서나 급할 뿐 이런 타이밍에서

살짝 비켜나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왜 이런 속도에 호응해줄까 살짝

의심이 들긴 했죠. 결국 작은 의심의 단초가 어제의 결과로 나온 것이

아닌가 하긴 하여 씁쓸하긴 하고요.



어제 오후 회담장 멤버로 존 볼턴이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아 뭔가

있겠다 싶은 불안한 마음이 있기도 했어요. 대북 대화 국면에서 볼턴이

그동안 옆으로 제쳐져 있는 포지션을 차지해온 것은 그의 강경 노선이

필요한 때가 아니라는 트럼프 본인의 전략이 항상 작용하고 있는 건데요.



그런 상황에서 왜 뜬금없이 볼턴이 재등장..? 그것도 실무자 협상이나

언플 인터뷰도 아니고 가장 중요한 정상 회담장에…? 아, 이번엔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실려 있구나 하는 의심이 들었죠. 트럼프의

전략에 의해 볼턴이 복귀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일 겁니다.



트럼프의 전략이란…? 이미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그대로에요. Vox

보도한 합의문 초안을 준비했으나 이번에는 서명하지 않았다..는 거죠.

(알고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의외로 솔직하고 거짓말 안 하는 성격이

강해요.) 그렇다면 왜? 왜 중단했는가가 중요하겠죠. — 합의 결렬이니

파토났다느니 극단적 표현은 좀 삼가면 안 될까요. 제안합니다.



북미 외교 전선에 급속한 냉각 기류가 생성한 것일까요? 그런 악재를

학수고대하는 정치 세력이 한반도 주변 도처에 암약하고 있겠죠. 허나

하노이에서 작별하며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 마지막 악수를 찍은 사진에서

엿본 밝은 표정을 보면 그런 시각에 결코 동의해줄 수 없어요.










27일 터진 코언 사태의 국내 정치 공학이 결정적 원인이라는 데에 많은

전문가의 의견이 모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천조국의 대통령도 결코 신이

아니에요. 국내 지지도와 여론 동향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트럼프가 오바마보다 천사라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대신 싸워주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는 힐러리나 오바마보다 외교 능력이 탁월한

지도자란 미국 내 평가에 굶주린 정치인이며 북핵 문제를 그 지렛대로

삼아 노벨상재선이란 목표를 향해 무섭도록 냉정하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에요.



국내외 기레기들이 프레임 짜놓았듯이, (비건과 김혁철 둘이서 기초한)

‘스몰딜’ 합의문을 그대로 갖고 미국으로 돌아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코언 사태를 파묻어 버리고 국면을 전환하여 지지율 상승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요? 스몰딜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조차 벌써 ‘스몰’

운운하며 온갖 디스가 터져 나오는 이런 판국에서 그게 가능했겠냐고요.



트럼프가 무서운 승부사라는 점이 여기서 입증이 되는 것 같습니다.

소소한 전공으로 난국을 뚫고 나가지 못할 바에야 아예 판을 깨버리고

강경한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코언이니 뭐니 하는 지저분한

국내 정치 판도를 확 뒤집어 버리겠다는 계산을 한 거에요.



정말로 그 계산대로 되었냐고요? 예, 지금 미국의 헤드라인은 코언

청문회에서 하노이 스탑으로 다시 180도 바뀌었답니다. 정말…

미국 대통령을 아무나 하는 건 아닌 것 같긴 해요.


https://edition.cnn.com/2019/02/28/politics/trump-kim-hanoi-summit-takeaways/index.html




그렇다면 이제 비핵화 대화는 물 건너 갔나요? 김정은 위원장의

작별 표정, 기자회견서 ‘수 주 후 다시’를 언급한 폼페이오 장관,

제재를 더 강화하지도 낮추지도 않고 현상을 유지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등등을 종합하면 여전히 협상의 현상 유지는 잠깐

중단했을 뿐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죠.



아직 미국 발언만 나왔고 북한 공식 의견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속단하긴 이릅니다만, 북한 입장에서 19년 상반기를 실기할 수 없다는

심리가 있겠고 한반도 신경제 구상의 조기 정착을 임기 내에 진행하고픈

우리 입장이 서로 맞물려 한두 달 이내로 다시 재개의 움직임이 있을

걸로 예상합니다. ‘수 주 후’ 멘트에 마음이 쓰이네요. 인지상정.



고로 한반도 운전자론의 위상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러니 상황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끈기있게 지켜보면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인내와 용기를 갖고 100주년의 의미를 조용하게 되새기며 말이죠.






포스팅하고 한숨 돌리는 사이에 간밤에 북한의 첫 기자회견이...ㅎ

이에 대한 반박 인터뷰도 미국에서 나왔죠. 뭔가 진실 공방 비슷하게

흐르는 모양새인데 어느 쪽이 옳은가는 부질없는 논쟁입니다.

거기에 힘빼지 마세요.



북한 발언은 대외 선전용, 미국의 반박은 철저하게 국내 정치용이니

애시당초 목적이 다른 두 가지 말잔치에 불과해요. 내용을 봐야죠.

11개 중 5개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을 보면 — 북한의 전통적인

대외 선전 전략하고는 크게 다른데 — 꽤 솔직하고 정확하게 들립니다.



lifting the sanctions라고 어디서부터 미국이 해석하기 시작했는지

진실 규명이 필요할 것 같기는 한데, 아마도 4대 3으로 불균형스러운

회담장에서 볼턴이 끼는 순간부터 해석과 주장에 대한 균열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정도야 누구나 다 쉽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봐야 할 큰 그림은, 오리발 내밀며 북한의 전통적 벼랑끝 전술

차용하는 미국의 새로운 외교 책략과, 의외로 전통적 자세를 버리고 꽤

솔직하게 다급하고 초조한 심경을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는 북한의

태도. 양자의 배경에 무엇이 있을까, 그림 그려봐야겠죠.



트럼프의 당면한 과제의 수순은 1) 코언 사태를 진정시키고, 2) 자신의

유일한 치적이자 이전 민주당계 정부와의 뚜렷한 차별점인 북핵 문제

해결을 통해, 3) (노벨상은 받으면 좋고 아니면 그만) 재선이라는 목표를

향해 걸어갈 타임라인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일 거에요. 지금이 1번 단계

초입이니 결국 중요한 발언은 국내 국면 전환용일 거라 추측할 수 있죠.



북한의 목표는 뚜렷합니다. 1) 비핵화에 회의적인 군부 강경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2) 18년 1회차가 끝난 국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시동을

뒤늦게라도 걸어야 하며, 3) 정상적인 외자 유치를 위한 최대의 걸림돌로

UN 제재를 일부 완화 또는 전부 해제하여 각 경제 특구의 총생산 증대란

성과를 거양하는 것이죠.



갈 길은 뻔히 정해져 있고 양자 모두 프로들이니 각자가 해야 할 역할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양쪽과 한국, 중국까지 — 때로는 일본

러시아까지도 — 너댓 개의 톱니바퀴를 이를 맞추는 운영의 묘이겠죠.



추측성 보도가 몇몇 나왔지만 이번에 깽판 친 장본인 트럼프 대통령께서

먼저 해법의 실마리를 제시할 것 같습니다. 시기는 ‘수 주 후’ 멘트를 계속

신뢰하여 한두 달 내로 예상하고 방법은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을

활용하는 식일 겁니다.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은 이전에도 충분히 작용했습니다만, 이번엔 다소

차이가 있을 겁니다. 전에는 한국 정부의 필요에 의해 트럼프를 살살 달랜

양태였죠. 이젠 파탄을 낸 트럼프 본인이 중재역을 필요로 하는 단계로

들어갔어요. 어쩌면 곧 있을 한미 정상 회담의 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방미할 수도 있어요. 깽판의 대가겠죠.



어찌 되었든 국면이 종료한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고 정상 회담은

결렬이 아니라 잠정 중단입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멘트를 종합해볼 때

대화 재개 시기는 곧 다가옵니다. 현재로서 분석 결론은 그러하네요.



일본과 민주당 등 친일 미국 정치인들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참고할 만한 의견인 듯합니다. 하지만 결국 일본

사주를 받은 인물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주도권은 결국 트럼프 본인이

쥐고 있고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재선으로

가는 국내 정치 상황의 전개 양상입니다.



걱정이 많이 되는 분들은, 고로 앞으로 한두 달 동안의 미국 국내 정치

뉴스에 끊임없이 주목하시길 바랍니다. 정말 중요한 뉴스인데 국내

기레기들이 절대 다루지 않는 내용이 있다면 포스팅을 추가로 올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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