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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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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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지 몇 해가 지났지만 이제사 이 분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음악을 중심으로 20세기

대중 문화예술의 중심적 페르소나였고 노래나 앨범 등

결과물 뿐 아니라 예술가 자신이 창조의 테마였던 인물.



지나간 세기 각종 논란의 핵이면서도 지금은 존경과 숭앙의

대상으로 변모한 아티스트.. 데이빗 보위 David Bowie이시다.

(데이비드 보위가 사실 옳은 표기이다..만.)











본명 데이비드 로버트 존스. 런던 근교에서 1947년에 태어나

음악, 무용, 미술, 디자인에 감각이 뛰어난 청소년으로 성장했다.

열 여섯 즈음에 직업 뮤지션으로 데뷔하여 겨우 스물 둘 된

나이에 히트 메이커가 되고 평생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아이콘으로 사신 분이다. 뮤지션이자 영화배우로서.



16년에 갑자기 유명을 달리 하기 전까지 세계적으로 1억

4천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린 메가톤급 스타였고 20대

시절 스타덤에 오른 이후 인생 내내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

스타로만 살아오셨다. 둘째 아내인 모델 이만도 평생 스타로

사신 분이고 자식들마저 이름값 하는 집안을 일구셨다.

아드님은 영화 소스 코드의 감독 던컨 존스. 오오.



영국 시장에서 1위에 오른 앨범을 11장, 플래티넘 이상의 히트

앨범을 10장 배출했으며, 미국 시장에선 탑텐을 6장, 플래티넘

5장, 골드 9장을 배출했다. 롤링 스톤 매거진이 선정한 시대를

초월한 100대 송라이터아티스트 부문서 각각 39위를

차지했고, 96년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주로 70년대 성과물에만 치중하여 살짝 아쉽긴 하지만

롤링 스톤 매거진보위를 매우 사랑하는 편이다. 03년에

처음 발표하고 12년에 업데이트한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반에서 그의 앨범 5장을, 04년에 처음 발표한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곡에서 그의 노래 4곡을 선정하였다.



(Rolling Stone '15, 100 Greatest Songwriter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interactive/lists-100-greatest-songwriters/#david-bowie


(Rolling Stone '10, 100 Greatest Artist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artists-147446/david-bowie-9-90254/


(Rolling Stone '04,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500-greatest-songs-of-all-time-151127/


(Rolling Stone '03, 500 Greatest Album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500-greatest-albums-of-all-time-156826/




사실 어찌 보면 보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기는 참 쉽다.

70년대로만 국한해서 그의 음악 세계를 조명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평생에 걸친 음악 세계가 얼마만큼 다채로운

파노라마를 펼치며 변화했는가 하는 추이를 죄다 좇아

추적해 보겠다면 결코 녹녹치 않은 문제이다.



보위를 가리켜 만만하게 봤다가 큰코 다치며 결코 분석이 

않은 음악가란 이미지를 덧씌우는 요인은 이런 특징일 게다.

미리 밝히지만 본 블로거가 보위의 전문가라 자처하기엔 여러

모로 민망한 수준이고 그래도 꽤 정확한 정보로 채워진 한글

인터넷 페이지도 넉넉한 편인지라 이 포스팅에선 중요한

요점 중심으로만 논평할 것임을 미리 밝힌다.



한 줄 요약. 깊게 들어갈 생각은 없다.

본시 이 블로그가 그리 깊진 않지 않은가.

그런데 그 뿐일지라도 참 화려할 터이다.




*"Heroes", Live Aid '85.






(David Bowie)




보위의 데뷔는 63년경. 첫 싱글은 64년에, 첫 앨범은 67년에

나왔다. 이 초창기 역사는 보위 자신도 지우고 싶어하는 흑역사.

공식적으로 음악사가들이 꼽는 보위의 첫 역사는 만장일치로

69년의 2집인 David Bowie이다. 명곡 Space Oddity

가끔 앨범 타이틀로 둔갑하기도 해 실린 바로 그 앨범.



아더티를 영미식으로 발음하면 Odyssey와 비슷하게 들리니

일부러 노리고 지은 제목이라는 것이 통설이지만, 그 모방의

대상이 스탠리 큐브릭이라고 보기는 좀 그렇고 아서 클라크

원작으로 보는 편이 옳지 않을까 한다. 가사의 내용도 큐브릭

영화의 플롯과는 뚜렷하게 궤적을 달리 한다. 훨씬 염세적.



그의 커리어 최초로 영국 싱글 차트 5위까지 오르고 앨범영미

양국에서 탑20까지 올랐다. 메이저 톰(톰 소령? 영국인데?)이란

우주 조종사 캐릭터가 중심이 되어 탐사 미션 중 교신이 끊기고

미아가 되는 비극을 가사의 플롯으로 한다는...

너무 유명한 바로 그 곡이다.



(The List of 'The Songs That Shaped Rock and Roll'

selected by the Rock and Roll Hall of Fame, '04)

https://www.infoplease.com/arts-entertainment/music/500-songs-shaped-rock


(VH1 '00, 100 Greatest Rock Songs)

http://www.rockonthenet.com/archive/2000/vh1rocksongs.htm


(New Musical Express '12, Greatest No.1 Singes in History)

http://www.rocklistmusic.co.uk/nme_singles.htm




04년 락앤롤 명예의 전당이 선정한 '락앤롤 장르를 형성한 명곡'

중 하나로 꼽혔고 NME, VH1, 채널4, 가디언 등 언론 선정 명곡

리스트에서도 어김없이 확인할 수 있는 명불허전의 작품이다.

세션 중에 무려 예스 가입 전 릭 웨이크먼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고 그는 Mellotron을 연주했다 한다.



본작에서 보위 음악관의 중요한 키워드 하나가 도출되는데 곧

아트락이다. 브리티쉬 포크의 영향도 꼽긴 하겠으나 그 당시

모든 팝 음악이 포크의 영향 하에 있었으니 그건 뭐... 아직

대단한 포텐셜이 터졌다고 하기는 부족했으나 이 신인의

미래에 뭔가 창창한 창의성이 아트팝의 영역에서 성을 쌓아

올릴지 모르겠구나 하는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베이시스트이면서 이후 프로듀싱에도 공동으로 참여하게 될

영혼의 동료 토니 비스콘티와 만남이 이루어진 앨범이기도.

음악계 전체가 그러했으니 비틀즈의 영향을 읽는 것도 어렵지

않은.. 전체 완성도는 중박 정도의 작품..? 영국서 골드..



('Space Oddity' from David Bowie, 1969)




(The Man Who Sold the World)




이듬해에 낸 3집 The Man Who Sold the World를 논

때 이젠 너바나를 빼놓고 할 수가 없다. 한국과 세계에 걸쳐

90년대에 본작이 재발견되는데 커트 코베인의 기여도는 가히

절대적이다.



보위하드락의 문법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작품이다. 기존

비스콘티에 기타 믹 론슨, 드럼 믹 우드맨시를 받아들여

백킹 밴드 체제를 출범시켰다. 초기 작법 체계를 일구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한 파트 멤버들이다.



포스트 펑크의 다크한 서브 장르에도 영향을 주기도 하는 등,

사실 알게 모르게 보위의 영향력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던

때였는데 아직 시기가 여물지는 않아 보였다.



('The Man Who Sold the World' from eponymous album, 1970)



('The Man Who Sold the World' by Nirvana, 1993)

https://www.youtube.com/watch?v=fregObNcHC8

*MTV unplugged live




(Hunky Dory)




71년 4집 Hunky Dory에 이르러 드디어 보위의 음악은

기틀을 잡아 활짝 꽃을 피운다. 물론 더 큰 상업적 성공은

이후 작품에서 나오지만 보위의 70년대 전반기를 책임질

글램락의 체계가 확립한 명반으로 보통 꼽힌다.



롤링 스톤이 일찍이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반을 선정하며

108위에 올렸고, '10년에 타임 지가 시대를 초월한 100대

명반을 꼽을 때에도 포함시켰다. 롤링 스톤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곡 랭킹에선 본작의 최대 히트 싱글 Changes

128위로 올랐을 정도이다.



Changes보위의 70년대를 규정하는 시그니처 트랙

중 하나가 되었고 예스에 영입되기 직전까지 스파이더

멤버로 뛴 릭 웨이크먼에다 기타의 론슨, 드럼의 우드맨시,

베이스의 트레버 볼더가 맛나는 조합을 빚어낸다.



웨이크먼의 피아노 연주가 빛나는 Life on Mars영국

싱글 차트 3위까지 오르는 성공을 거둔다. 앨범은 영국

차트에서 3위까지 올라 82년에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사실 다음 앨범 성공에 힘입어 뒤늦게 팔리긴 한 거지만)

이제 그는 본격적인 성공 가도를 타게 된 것. 스타 탄생 직전.



('Changes' from Hunky Dory, 1971)

*73년 라이브 버젼.



('Life on Mars?' from Hunky Dory, 1971)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전작에서 확립한 음악적 지향성이 포텐을 터뜨린 것이 72년

5집.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라는 긴 제목의 명반이 나와 보위라는 이름을

희대의 트렌드 세터 반열에 올린다. 지기 스타더스트라는

페르소나의 작중 흥망성쇠를 그린 컨셉트 앨범인 셈.



지기는 외계인과의 중개자 역할인 양성애자의 뮤지션이라고.

이 컨셉으로 가사 전체의 스토리를 끌고 간 상상력의 산물인

거다. 양식있는 오늘날 네티즌에게 황당할지는 모르겠는데

희한하지만 하나의 문화 현상처럼 당시 영국의 음악 대중에게

잘 먹히던 설정 같은 거라고 이해하시길. 보위페르소나

개념은 무한도전 비슷해서 설정 깨닫고 잘 즐기면 그만이다.

(잘 못 깨닫겠다고? 그럼 딱 모르는 만큼만 즐겨라!)



론슨, 우드맨시, 볼더로 전작들부터 구성 백킹 밴드가 이제

스파이더 프롬 마스란 타이틀로 함께 코스튬 입고 무대 뛰는

태세로 전환한다. 이 멤버들의 연주는 천재적이진 못할 망정

대단히 재기발랄하고 맛깔나는 결과물을 빚어냈다.



('Starman' from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1972)




영국 앨범 차트 5위까지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기에 최초로

영국, 북미와 일본까지 월드 투어를 단행하기에 이른다. 롤링

스톤의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반 랭킹에서 무려 35위에

오르고 타이틀 트랙에 해당하는 Ziggy Stardust롤링

스톤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곡 랭킹 282위에 올랐다.



Starman영국 싱글 차트 탑텐, Rock 'n' Roll Suicide

탑30까지 오르는 성공을 거둔다. Suffragette City에선 ARP

2500의 솔로잉이, Moonage Daydream에선 헤비메탈

스타일이 등장하는 등 맛있는 어법으로 가득 찬 명반임을

마구마구 입증한 작품이다. 한 번만 들어봐도 왜 시대를

구가한 앨범인지 단박에 느낌이 올 게다.



심지어 앨범과 동명의 콘서트 필름까지 출시했을 정도로

당시 공연 문화 전반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밥 딜런,

앤디 워홀의 영향을 받은 전작에 이어 이기 팝, 루 리드,

마크 볼란, 지미 헨드릭스, 킹 크림슨 등 당대 최전선

아티스트들의 영향을 뾰족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최근까지

전세계 75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고 하고..

보위의 음악관을 논할 때 필청의 코스임은 분명하다.



('Ziggy Stardust' from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1972)

*73년 라이브 버젼.



('Suffragette City' from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1972)




('Rock 'n' Roll Suicide' from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1972)

https://www.youtube.com/watch?v=SOgVoxqKU7U



('Lady Stardust' from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1972)

https://www.youtube.com/watch?v=EcKZEOsgvdI



('Moonage Daydream' from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1972)

https://www.youtube.com/watch?v=ZEde35UbwUI

*끝내주는 노래라서 가오갤 믹스에 실린 거다. 믿으시라.




(Aladdin Sane)




73년 6집 Aladdin Sane은 본래 a lad insane을 멋대로

발음한 제목. 보위가 조현병을 앓고 있던 의붓 형과 각별한

사이였던지라 그 직접적 영향을 개진한 앨범이다. 덕분에

글램락아방가르드 재즈와 결합하여 짐짓 일부러 혼돈의

카오스 같은 모드를 꾸며낸 분위기가 팍팍 난다.



그런 분위기를 가꾸는데 정통 재즈 피아니스트 출신의 세션

마이크 가슨이 큰 일조를 했다. 유명한 세션 색소포니스트

데이빗 샌본의 역할도 컸다. 보위가 유년 시절 처음 배우기

시작한 악기가 색소폰이었다능. 쇤베르크힌데미트

atonal한 영향력을 읽어내는 팬덤도 일부 존재한다.



본작의 커버 아트에 번개 모양 페이스 페인팅을 한 채로 그가

등장하는데 이후 모든 공연에서 팬덤이 따라하기 시작했다나.

전반적으로 한 템포 쉬어가는 듯 예술 지향성의 앨범이었지만

팬덤의 충성도를 한층 더 깊게 제고하는 역할도 수행했다고.



영국 싱글 차트 2위까지 오른 The Jean Genie나 3위까지

오른 Drive-In Saturday의 히트도 계속 이어졌다. 영국

앨범 차트에서 처음으로 을 찍어봤고 롤링 스톤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반 랭킹에선 279위를 기록하는 등, 확실히

이때 보위는 상업적 전성기였다.



('The Jean Genie' from Aladdin Sane, 1973)



('Aladdin Sane' from eponymous album, 1973)

*부제: (1913-1938-197?)

- 이 숫자는 1차-2차 대전 발발 직전 연도라고. 3차는?



('Drive-In Saturday from Aladdin Sane, 1973)

https://www.youtube.com/watch?v=WABWNOEwC9A




 (Pin Ups)




73년 7집 Pin Ups는 최초의 커버 모음 앨범이다. 남의

곡 리메이크만 녹음했다는 말. 야드버즈, 핑크 플로이드,

더 후킹크스의 곡들을 커버했고 인슬리 던바

드러머로 이름을 올리기도.



머지스의 곡을 커버한 Sorrow가 영국에서 3위까지 올랐다.

킹크스 오리지널인 Where Have All the Good Times

Gone도 들을 만하다.



('Sorrow' from Pin Ups, 1973)

https://www.youtube.com/watch?v=RmQ2OJgzkMg


('Where Have All the Good Times Gone from Pin Ups, 1973)

https://www.youtube.com/watch?v=TcLxjL28fZk




 (Diamond Dogs)




74년 8집 Diamond Dogs에서 영국 활동 기간 마지막

대박이 터진다. 조지 오웰 1984를 포스트 아포칼립스

형식으로 보위 페르소나에 믹스한 컨셉이었는데, 글램

서서히 결별하고 펑크프로토타입 쪽으로 이행하는

음악적 변화를 확인할 수작이다.



미국 앨범 차트에서 최초로 탑텐에 진입해 5위까지 오르고

영국에선 당연하다는 듯이 을 찍는다. - 연속 세 장째.

영국 싱글 차트 5위까지 오른 시그니처 튠 Rebel Rebel

히트를 이끌었고 유럽에선 타이틀 트랙도 괜찮은 반응을

얻었다. 파워 발라드 Rock 'n' Roll with Me도 좋았다고.



Sweet Thing Suite라고 팬덤이 받드는 일련의 트릴로지선

보위의 선굵은 초저음의 매력이 터졌다. 1984에선 이후

그가 발전시킬 소울 모드의 초기 경향을 읽을 수 있다. 물론

당시 왠만한 가수가 아이작 헤이스의 영향은 다 받았고.



앨범 타이틀을 딴 74년 월드 투어는 당시 최대 규모였다고.

이 실황이 그의 첫 라이브 앨범 David Live로 발매되기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미국 시장 활동의 간을 보고 있었다.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가 13년에 선정한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반 랭킹에서 447위를 차지한 수작이다.



('Rebel Rebel' from Diamond Dogs, 1974)

*03년 A Reality Tour 중에서. 미중년 꽃간지.



('Diamond Dogs' from eponymous album, 1974)




 (David Live)



('Rock 'n' Roll with Me' from Diamond Dogs, 1974)

https://www.youtube.com/watch?v=6js_R4A41p4


('Sweet Thing Suite' from Diamond Dogs, 1974)

https://www.youtube.com/watch?v=IvJnF5JRDAs


('1984' from Diamond Dogs, 1974)

https://www.youtube.com/watch?v=KByxC7B9WH0




 (Young Americans)




75년 9집 Young Americans. 플라스틱 소울이라 스스로

칭한 보위소울 funk R&B를 본격화한 작품이며 미국 시장

진출이란 대의를 표방하여 이에 걸맞는 성공을 거둔 앨범이다.

70년대 보위 음악 세계의 주요한 변곡점 중 손에 꼽는다고

하는 음악적 성과물일 것이다. - 서브 장르로선 필라델피아

소울로 분류하며 비틀즈 앨범 타이틀과 관련이 있다고..



 보위 백킹 체제에서 핵심 세션으로 활동하는 기타리스트

카를로스 알로마가 본작부터 그와 인연을 맺었다. 소울 보위

상징하는 시그니처 튠 Young Americans - 영국 싱글 차트

탑20, 미국 탑30, 롤링 스톤 선정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곡

486위 - 에선 무려 커리어 초기의 루서 밴드로스백킹 보컬

편곡을 지휘하였다.



거기에 존 레논... 플라스틱 소울의 상징곡 Fame알로마

함께 기타 백킹 리프를 주조해낸 공신 역할을 해낸다. 슬라이

패밀리 스톤 출신 드러머 앤디 뉴마크샌본까지... 당대

최강의 뮤지션들이 공동의 창작적 책임을 연대한 최고의

결과물, 그것이 본작이다. 미국 앨범 차트 탑텐에 오르고

영국에선 2위까지 오르는 성공을 거둔다.



전작의 미국 투어 중에 계속 체류하며 비스콘티보위

레코딩에 몰두한 결과이기도 했고 이후 보위는 줄곧 미국에서

머물게 된다. 미국 시장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기는 하나

마약 중독으로 개인의 삶은 파괴되어 가는 와중이기도 했다.

- 깡마른 이유가 음식을 먹지 않고 약물에만 의존해서라고ㅠ



('Young Americans' from eponymous album, 1975)

*중간에 비틀즈 노래 멜로디가 나오는 걸로 유명하다.

**83년 Serious Moonlight Tour 중 라이브인데, David Bowie의 콘서트

 중 가장 빼어나다고 역대급 평가를 받는 투어가 이것이다.



('Fame' from Young Americans, 1975)




 (Station to Station)




76년 10집 Station to Station. 보통 보위글램 시대가

끝났음을 선언한 앨범이라고 규정한다. 이후 그의 음악은

본격 아트락에 이따금 소울 양념을 섞는 요리로 논평할 수

있을 듯. 다음 앨범부터가 또 하나의 변곡점인데 그 변화로

가기 위한 과도기로서 또 하나의 역작이 나왔다고 논한다.



알로마를 주축으로 베이스에 조지 머레이드럼에 데니스

데이비스의 새 트리오가 진용을 꾸린 작품. 피아노는 가슨

대신 E스트리트로이 비턴이 초빙되었다. 일찍이 롤링

스톤 매거진이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반 랭킹에서 본작을

324위에 올린 바 있다.



영미 양국 앨범 차트에서 탑5를 기록했고 본작을 대표한

싱글 Golden Years가 양국 싱글 차트 탑텐에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싱글의 히트는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



확실히 이부터 신디이펙트의 프로세싱이 두드러지는

성향을 보여주고 이것이 페르소나 Thin White Duke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의 변화가 멋을 풍기다'.

가사의 세계는 신화와 종교, 철학에까지 손대고..



('Golden Years' from Station to Station, 1976)



('Station to Station' from eponymous album, 1976)

- 향후 음악적 변화의 전초전 격인 10분짜리 대곡.



('TVC 15' from Station to Station, 1976)

https://www.youtube.com/watch?v=Dh8RDktOdnc

- 본격 이기 팝이랑 약빨고 만든 환각 노래







 (Low)




미국에서 한창 약빨고 건강을 해치니 안 되겠다 싶어 결국

유럽으로 이주를 결정한다. 마음 다잡고 브라이언 이노

진지한 창작 작업으로 심기일전하니 팬덤이 꼽는 최고의

분기점, 베를린 3부작이란 작품으로 화답한다. 토니

비스콘티 역시 공동 프로듀싱에 기여했고.



이노의 영향으로 일렉트로닉, 앰비언트, 아방가르드,

뉴웨이브, 크라우트락, 월드뮤직 장르로 천착하여 만든

본격 아트락 연작 앨범을 베를린 3부작이라 정의한다.

그때까지 살짝살짝 맛보기로 들락날락 하던 영역을

이제 대놓고 들이파겠다는 뜻. 그러고 보면 글램락

아트락의 먼 방계가 맞긴 맞나 보다.. (그런가?)



 ("Heroes")




77년 11집 Low, 77년 12집 "Heroes", 79년 13집 Lodger..

이 세 앨범이 연작으로 묶인다. Low롤링 스톤 선정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반 랭킹 251위에 올랐고, "Heroes"의 가장

유명한 시그니처 타이틀 트랙롤링 스톤 선정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곡 랭킹서 무려 46위에 올랐다. 설명이 필요 없지.



Low - "Heroes" - Lodger 이어지며 영국 앨범 차트 각 2위,

3위, 4위에 올라 골드 인증을 받았다. 미국 성적은 탑20, 탑40,

탑20로 상대적으로 약하긴 하나 평단의 반응만은 뜨거웠다.

앨범을 꽉 채운 다크 모드의 보위인스트루멘탈 트랙들에

특히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Minimoog, ARPEMS Synthi

등 첨단의 신스 기어들을 두루 기용했다. - 이노니까.



 (Lodger)




이 시기를 대표하는 트랙은 단연 "Heroes". 동서로 분단된

과거 베를린의 통합을 염원하는 정치 연대의 주제가처럼

불린 바로 그 노래이다. 통일 직전 87년 6월 베를린 장벽 옆

무대에서 동쪽을 향해 보위가 이 곡을 열정적으로 불러제낀

콘서트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된 것이다. 체제 장벽을

사랑으로 극복하려던 평범한 연인들을 영웅으로 노래한 것.

87년, 베를린도 서울도 용기있는 사람들이 나서던 그 시절..



Sound and Vision, Warszawa, V-2 Schneider, DJ,

Look Back in Anger, Yassassin 등 세 앨범의 곳곳을

차지하는 예술적 대중 음악의 지극한 향연을 음미해 보길

권장한다. 보위는 건강과 음악성, 두 토끼를 되찾게 된다.




('"Heroes"' from eponymous album, 1977)

*기타 솔로잉을 로버트 프립이.. 오오오...





*The moment when Bowie was singing to appraise

 brave lovers towards the wall...

https://www.vox.com/2016/1/11/10749546/david-bowie-berlin-wall-heroes

- 87년 6월 6일: 6.10 나흘 전.. 장벽 철거는 90년 6월 13일.



('Sound and Vision' from Low,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WoDamvrfUbQ

- 영국 싱글 차트 3위까지 오른 히트 튠.



('Warszawa' from Low,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EAD1j32TiiY

- 조이 디비전의 초기 밴드 이름이 여기서 영향 받았다.



('V-2 Schneider' from "Heroes",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Li8T0lcgbh0

- 크라프트베르크 리더에게 바치는 노래.



('DJ' from Lodger, 1979)

https://www.youtube.com/watch?v=MRRmU_pOXnk

- 기타는 에이드리안 벨류. 보위가 토킹 헤즈를 모방한 거라고.



('Look Back in Anger' from Lodger, 1979)

https://www.youtube.com/watch?v=5iI-ysibI-0

- 오아시스의 노래 제목이 여기서 따온 것.



('Yassassin' from Lodger, 1979)

https://www.youtube.com/watch?v=SSfFuNqy1q4

- 중근동 전통 음악과 레게를 혼합한 것.



 (Stage)



3부작 시기 퍼포먼스는 78년 두번째 라이브 앨범 Stage

들려준다. 영국골드를 받았지만 평단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Scary Monsters (and Super Creeps))




이후 보위의 음악성이 완벽하게 부활했음을 입증한 80년의

14집이 Scary Monsters (and Super Creeps). 뉴웨이브

포스트펑크로 완벽하게 갈아탄 모습을 구현해낸다. 이노

비스콘티의 영향도 벗어나 거의 개인적으로 프로듀싱

마친 결과였다.



영국 앨범 차트 탑을 찍었고 플래티넘을 기록했으며 미국

12위까지 올랐다. 영국 싱글 차트에서도 을 찍은 Ashes

to Ashes는 본작의 대표곡으로서 메이저 톰 캐릭터가

재언급되며 척 해머신스 기타 솔로잉이 유명하다.



영국 싱글 5위까지 오른 Fashion뮤직 비디오는 정치적

풍유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어 당시 유명했다. 이밖에 타이틀

트랙Teenage Wildlife, It's No Game을 들어볼 만하다.



('Ashes to Ashes' from Scary Monsters, 1980)



('Fashion' from Scary Monsters, 1980)




('Scary Monsters (and Super Creeps)' from eponymous album,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NHywdqH3F6Y

- 런던 방언이 등장한다고. 퍼커션 이펙트가 유명하다.



('Teenage Wildlife' from Scary Monsters,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1hIwB97p3r0

- 프립과 알로마에 척 해머, 3인의 기타 앙상블.



('It's No Game' from Scary Monsters,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24Ur_OdR7yo

- 일본어 대사가 등장하니 놀라지 마시길.




 (Under Pressure, single)




사실 보위 작업이 아니고 프로젝트에 초빙된 건데 81년

Under Pressure를 언급 안 하고 가면 화내는 팬이 많다.

별도 싱글로도 발매되었고 이 역대급으로 말아먹은 앨범

Hot Space에도 실려 있다.



머큐리가 사망한 후 보위 혼자서 라이브 뛰기 위해 90년대

이후 베이스 겸 보컬 게일 앤 도시와 협업을 많이 했는데

개인적으로 96년 암스테르담 TV 라이브를 좋아한다.



('Under Pressure' by Queen & David Bowie, 1981)

*TV Live feat. Gail Ann Dorsey in Amsterdam 1996




 (Let's Dance)




83년 15Let's Dance의 대성공은 솔직히 보위 자신이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그 자신도 생전에 인정한 듯하다.

정말 우연히 찾아든 대박. 3부작 등 예술 작업을 통해 꽤

탄탄한 창작 역량을 축적해 놓았고 십여 년 전부터 미국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건만, 정작 이렇게

대단한 성공이 예고도 없이 찾아든 상황이라니.



이게 다 동명의 타이틀 트랙 Let's Dance가 미국에서 너무

히트를 쳐버린 탓이다. 보위 커리어 최고의 히트 튠. 영국,

미국, 아일랜드,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에서

싱글 탑에 올랐고 호주, 독일, 오스트리아2위를 찍었다.

앨범? 미국에서 4위, 영국, 호주,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에

을 찍었고 독일, 오스트리아에선 2위를 찍었다. 거기에

영국, 미국캐나다, 네덜란드에서 플래티넘을 기록.. 오오오.



84년 당시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 후보로도 올랐으며 -

비록 수상은 Thriller에 밀렸어도 - 현재까지 1천 1백만 장이

팔렸다고. Young Americans 이후 제대로 작업해보자 해서

시크 출신 나일 로저스프로듀서로 영입해 미국 정통의 흑인

사운드를 접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세션

기타리스트조차 아직 무명이었던 스티비 레이 본.



('Let's Dance' from eponymous album, 1983)

*저 술집 씬의 엑스트라 분들은 당시 현지 주민들이시다.ㅎ

- 뮤직 비디오인지 뭔지 도통 모르셨다고. 정직한 리액션을 찍은 거다.




Let's Dance영국에서 싱글 데뷔를 5위로 했을 정도이며

호주에서 원주민 배우와 아마추어처럼 찍은 뮤직 비디오조차

당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고.. 싱글영국에서 실버 기록한

Modern LoveChina Girl은 후속 싱글로 차트 2위까지

올랐고 미국에서도 각각 탑20위, 10위까지 올랐을 정도이다.



보위OST에 참여했던 Cat People(Putting Out Fire)

조르지오 모로더 작곡의 원곡에 스티비 레이 본그루브

충만한 기타 솔로잉을 가미한 버젼으로 앨범에 실리기도 했다.

보위 자신은 타이틀 트랙에 대한 애정이 크지 않음을 분명히

하기도 했지만, 생애 최고의 메가히트임은 부인할 수 없겠다.



보통 이 정도로 대박을 쳐버리고 나면... 어떨까. 정답,

다음 작품 때문에 두려워지기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상하게 다음 앨범부터 그는 잘 안 풀리기 시작한다..ㅠ



('Modern Love' from Let's Dance, 1983)




('China Girl' from Let's Dance, 1983)



('Cat People (Putting Out Fire)' from Let's Dance, 1983)


*데이빗 보위의 Let's Dance 앨범 버젼 - 기타 Stevie Ray Vaughan

https://www.youtube.com/watch?v=6NUy1ZH6ViE


*영화 캣피플 OST 앨범 버젼 - 주연 Nastassja Kinski

https://www.youtube.com/watch?v=VpdHMaccjw4




 (Tonight)




84년 16집 Tonight영미 싱글 차트 탑텐에 든 Blue Jean

보유했지만 여러 모로 음악적 성과가 아쉬운 그냥저냥 상업적인

80년대 앨범에 불과했다. 앨범영국 차트 탑에 오르긴 했으나

누가 봐도 전작의 동력에 힘입은 결과였다.



('Blue Jean' from Tonight, 1984)




 (Dancing in the Street, single)




85년엔 우주 최강 스타로서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 올랐다.

재거와 듀엣으로 싱글 Dancing in the Street를 발매해 영국

차트 탑과 미국 차트 탑텐을 기록했다. 원래 라이브 에이드의

영미 양쪽 무대에서 부르려 했는데 기술이 따라주지 않아 실패.



('Dancing in the Street' by Mick Jagger & David Bowie, 1985)

*Marvin Gaye 작곡의 64년 소울 곡을 커버한 것.

- 성격상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원래 위 두 분은 절친이다.




 (This Is Not America, single)




같은 해 영화 주제가로 발표한 This Is Not America핫100

차트 탑40까지 오르는 중박을 기록했다. 팻 메스니의 도움으로.

87년 17집 Never Let Me Down의 어중간한 실험성과 상업

코드는 더욱 실망스러웠다. 앨범과 싱글 차트 성적도 별로였고.



('This Is Not America' by Pat Metheny Group & David Bowie, 1985)

*Sean Penn 맞다. John Schlesinger 감독의 스파이물 영화.

- 'The Falcon and the Snowman'이란 제목. 꽤 재밌다고..



('Absolute Beginners' from eponymous OST album, 1986)

https://www.youtube.com/watch?v=iCJLOXqnT2I

*또 하나의 주제가. 영화는 말아 먹었는데 노래만은 반응이 좋았다.

- 그가 직접 출연도 하신 음악 영화였다.




 (Tin Machine)




90년대에 돌파구로서 Tin Machine이란 4인조 하드락 밴드를

조직해 딴엔 70년대 초창기처럼 다른 멤버들과 대등하게 창작에

매진해 보려 했으나.. 이미 거물인데 그게 가능한감. 실패였다.



('Under the God' from Tin Machine, 1989)

*약간 칩트릭 류의 하드이 연상된다. 그래서 안 어울림..




92년엔 프레디 머큐리 헌정 공연에서 애니 레녹스와 좋은 무대를

선보였다. 직후에 소말리아 출신 탑 모델 이만과 결혼하셨고 향후

음악 노선은 일렉트로닉인더스트리얼 지향하여 이것저것

익스페리멘트.. 성과는 미미했다. 한물 갔다는 말도 나오고.



('All the Young Dudes' feat. David Bowie, 1972)

*Live from the Freddie Mercury Tribute Concert, 1992.

- 원래 보위가 72년에 Mott the Hoople에게 작곡해준 곡.




('Jump They Say' from Black Tie White Noise, 1993)

- 조현병으로 자살한 형 이야기



('Hallo Spaceboy' from 1. Outside, 1995)

- 근 20년 만에 Brian Eno와 다시 협업한 결과물



('Little Wonder' from Earthling, 1997)

- 가장 히트한 트랙인데 완벽한 인더스트리얼 장르이다



('Thursday's Child' from 'hours...', 1999)

- 앨범 전체가 원래 비디오게임의 OST 목적으로 제작된 것



('Slow Burn' from Heathen, 2002)

- Pete Townshend on guitars



('New Killer Star' from Reality, 2003)

- post-9/11 쪽으로 해석하는 설이 있다




투어에서는 여전히 셀링 파워가 강한 슈퍼스타셨는데, 04년에

오슬로에서 공연 도중 눈 부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고 심장에도

무리가 와서 이래저래 이후 공식 활동은 자제하고 계셨다...

그렇게 음악가로서 저물어 가는 줄, 알. 았. 는. 데.




 (The Next Day)




13년에 전격적으로 공식 24집 The Next Day를 발매하신다,

예순 여섯 생신일인 1월 8일에. 전세계 팬덤과 평단 양쪽에서

뜨겁게 호응하였고 영국 앨범 차트에선 으로, 미국에서는

2위로 데뷔를 끊었다. 영국에서 플래티넘을 기록하고.



('Where Are We Now' from The Next Day, 2013)

https://www.youtube.com/watch?v=QWtsV50_-p4



('The Next Day' from eponymous album, 2013)

*Gary Oldman은 그의 절친이시다.. 후덜덜한 캐스팅과 충공깽의 연출.

- 미성년자는 주의하기 바란다. 극보수적 기독교도 역시.



('The Stars (Are Out Tonight)' from The Next Day, 2013)

*Tilda Swinton 맞다. 미성년자는 주의하기 바란다.




 (Blackstar) (★)




16년 예순 아홉 생신일엔 공식 25집 Blackstar를 발매하셨

평단의 지지를 이끌어낸 후 이틀 지나 갑작스럽게 영면하셔서

세상은 슬픔에 잠겨 버렸다. 온 지구인의 친구 지기 스타더스트

우주로 훌쩍 날아가 버린 것이다. 영원히..ㅠㅠ



('Blackstar' from eponymous album, 2016)

*이미 암 선고를 받은 상태였기에 죽음의 암시가 곳곳에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Lazarus' from Blackstar, 2016)







한 사람의 당당한 창작자로서 삶을 열어졎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음악 창조에 인생을 갈아넣은 진정한 뮤지션.

평생 음악 산업과 예술 분야의 중심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오롯이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자아를 잃지 않으려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사표를 세워준 시대의 예술가.



그가 일찍이 페르소나 작법을 통한 상상력의 극치를 선물한

점은 혹자가 논평했듯이 전후 포스트 모던 사회의 폭압적인

성역할을 전복하고 젠더의 평등을 통해 진정한 자아의 해방을

구현하려 했던 그 자신만의 소통 어법이라고 정리하겠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는 죽은 것이 아니라 화성으로 돌아가

우주의 물질과 영혼을 위로하는 책무에 눈을 뜬 것이라고.

마치 그가 수십 년 전에 내놓은 작품에 가련한 수십 억의

지구인들이 아직까지도 마음의 위무를 기대고 있듯이.




('Pablo Picasso' from Reality, 2003)

- Modern Lovers의 76년 튠 커버.



*Space Oddity, Serious Moonlight Tour '83.



*"Heroes", live '04 (The Isle of Wight Festival).



*Ziggy Stardust, the Motion Picture '70s.



*Under Pressure, Mercury Tribute '92 feat. Annie Lennox.






과거를 회상해보면 아무래도 세대가 세대인지라 당시 그토록

욕을 먹었던 80~90년대 일렉트로닉 보위곡들에  정

주었던 것 같다. 엄청 욕먹었는데 사실 그때 그 곡들 지금

들어보면 하나같이 상당한 역량의 음악이다. 그만큼 요즘

음악가들이 쳐지지 않은가 싶은...



Life on Mars, Aladdin Sane, Station to Station,

Teenage Wildlife 등 애정하는 보위 들이 많이 있지만..

본 블로거는 Fame을 75년 원곡이 아니라 Fame '90라고

90년 리믹스 버젼으로 먼저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더랬다.

(영화 귀여운 여인 OST 앨범으로 기억한다.)



특히 구스 반 산트 감독이 만든 뮤직 비디오에 데이빗 보위

함께 캐나다 현대 무용수 루이스 르카발리에가 출연하시는데,

가뜩이나 완성도가 높은 보위 영상물 중에서도 단연 최고라고

여긴다. 하여 강력한 추천을 때리며 이번 포스팅을 마무리한다.



('Fame '90' from Changesbowie, 1990)

*연출 Gus Van Sant, 안무 Louise Lecaval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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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머큐리 Freddie Mercury ..

1946년에 태어나 91년, 겨우 마흔 다섯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 하신 이 분은 20세기 음악사에

어마어마한 족적을 남긴 대중 예술가이다.






 (Montreux, Switzerland)




디지털 드림 도어 닷컴이라는 대중 문화 랭킹 전문

사이트가 있는데, 남성 락 보컬리스트 부문 랭킹에서

머큐리는 항상 1위였다. 본 블로거 기억으로 이 랭킹이

십여 년에 이른 것 같은데 한 번도 내려온 적이 없었다.



같은 사이트의 락 보컬 퍼포먼스 부문에서도

보헤미안 랩소디가 현재 1위이다. 락 에픽, 곧 서사적 락

음악곡 부문에서도 이 노랜 1위. 락 앤썸이라고, 공연에서

떼창 유도할 수 있는 상징적 트랙에선 위윌락유가 1위.

락 밴드 최고의 프론트맨 랭킹에서 그는 현재 5위이다.






생소한 사이트가 마음에 안 드신다면 좀 더 미국 친화적인

롤링 스톤 매거진이 있다. 약 10년 주기로 업뎃하는 이곳의

랭킹에서 시대를 초월하는 위대한 가수들 100명 중 그가

18위를 차지한 바 있다. 최근 2008년 집계 결과였다.

18위가 별 건 아니네, 하시는 분들은 그 위쪽 순위에

어떤 분들이 있는지는 보고 얘기했으면 한다.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singers-of-all-time-147019/freddie-mercury-5-225069/



대략만 읊어도 이 정도. 이 분이 왜 위대한 락 보컬리스트로

불리우는지, 누구나 다 깨닫고 있지만 말로 일일히 설명하기도

참 쉽지 않다. 이처럼 전설적인 아티스트에 대한 포스팅이

망설여지는 이유일 것이다. 겨우 이 정도 필력으로 제대로

표현이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그는 오늘날 탄자니아 영토에 속한 아프리카의 잔지바르에서

파르시는 페르시아계 조로아스터 교도 가정에서 태어났고

이후 여기서 쫓겨나 유년 시절을 인도에서 성장하기도 했다.

청소년기에 와서야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다.

흔하디 흔한 기독교계 앵글로 색슨이 주류인 영미권 음악계

전체를 볼 때 참 특이한 배경이 아닐 수 없고, 그가 보여준

독창적 캐릭터와도 깊은 연관이 있겠다 싶다.



브라이언 메이로저 테일러가 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스마일에서 먼저 합을 맞추고 있었을 때 그는 약간 로디

비슷하게 곁을 맴돌다가 두 사람에게 합류한다. 1970년.

밴드 이름을 퀸 Queen으로 바꾸었고 이는 누가 봐도

머큐리의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queen에는 속어로

퀴어의 의미가 숨어 있으니..)



밴드 이름과 같은 동명의 데뷔 앨범은 73년에 가서야 늦게

낼 수 있었고, 녹음 두어 해 전 전기공학 전공으로 넷 중 가장

어린 존 디콘이 합류했다고 전해진다. 우리가 아는 네 명의

전설적 진용이 다 갖춰진 것이 이 무렵인 셈. 1973년 경.

이듬해 이들은 Queen II 앨범을 발매했다.



 (Queen)




이렇듯 1집과 2집에서 Keep Yourself Alive, Liar,

Seven Seas of Rhye 등 오늘날까지 알려졌고 밴드

역시 콘서트에서 즐겨 연주한 트랙들이 생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성공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신디를

쓰지 않고 보컬이 피아노를 겸하는 피아노 락앤롤 정도로

박한 평가를 받았음이 사실이다.



Sheer Heart Attack 앨범에서 Killer Queen이란 대박

싱글이 나오고 나서야 밴드는 세계구급으로 올라선다. 이

곡은 머큐리가 작곡했다. 본 앨범에 이르러서야 클래식과

락앤롤에 바탕을 둔 밴드 음악성의 아이덴티티가 이제

막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74년..



아울러 Brighton Rock, Now I'm Here, In the Lap of

the Gods, Stone Cold Crazy 등 유명한 트랙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브라이튼 락에서 선보이는 딜레이 테크닉은

그대로 메이의 전매특허가 되었고, 스톤 콜드 크레이지

쓰래쉬한 파괴성은 이후 후배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Sheer Heart Attack)



 (A Night at the Opera)




스튜디오와의 불화로 밴드 멤버들은 여전히 곤궁했고 돈

한 푼 손에 쥐는 일 없었다. 절치부심하여 75년 넉 달 동안

녹음실에 틀어박혔고 창작적 전성기의 시발점이 된 명반

A Night at the Opera를 같은 해에 발매한다. 그렇.

Bohemian Rhapsody가 실린 그 앨범이다.



보랩으로 불린 트랙은 머큐리 온전하게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Love of My Life, You're My Best

Friend, God Save the Queen, '39, I'm in Love with

My Car 등 명곡이 쏟아져 나왔지만 결국 평가는 보랩

곡에 주목할 수밖에 없음을 멤버 모두가 인정했다고 한다.



('Bohemian Rhapsody' from A Night at the Opera, 1975)



('Love of My Life' from A Night at the Opera, 1975)




 (A Day at the Races)




이듬해 1976년엔 A Day at the Races 앨범이 나와

Somebody to Love를 필두로 Tie Your Mother Down,

Good Old-Fashioned Lover Boy 등 트랙을 쏟아냈다.

전성기가 이어진 것이고 본작은 여러 모로 전작의 동

반복 같은 위치였지만 팬덤은 신경쓰지 않았다.

(4집5집의 트랙 구성은 놀랍도록 유사하다고..)



반면 언론과 평단은 여전히 냉담하고 냉소적이었다.

은, 대체로 평론가의 칭찬을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고

보면 된다. 심지어 이런 현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



('Somebody to Love' from A Day at the Races, 1976)




 (News of the World)




77년 News of the World 역시 창작적 상승가의 연장선에

있던 명반일 거다. 드디어 메이We Will Rock You

선보였고 We Are the Champions는 이 곡의 제2부인

것 마냥 항상 어서 라디오 전파를 타곤 했다. Sheer

Heart Attack, Spread Your Wings 등 정통 락

트랙들도 매력이 있다.



위윌락유의 가사는 의외로 음악과 상관이 없는 이야기다.

훌리건 패싸움 스토리에 더 가깝다. '락유~'는 문자 그대로

'부셔버릴거야' 정도의 뉘앙스란 뜻. 원곡이 재해석의 여지가

커서 라이브에서 다양한 버젼을 골라볼 수 있는 재미를 주는

곡이기도 하다. 79년 발매된 Live Killers 속 패스트 버젼이

가장 인기가 있는 편인 것 같아 아래에 붙인다.



 (Live Killers)



('We Will Rock You' from News of the World, 1977)



('We Will Rock You' from Live Killers, 1979)




 (Jazz)




78년 7집 Jazz에 와서 연거푸 세 장의 앨범으로 달려온 음악적

지향성이 약간 지친 것 아닌가 싶은 느낌을 주게 된다. 여러 모로

전체 디스코그래피에서 약간 동떨어진 실험성이 돋보인 역작.

머큐리민족 정체성을 떠올리는 듯한 Mustapha부터 상당히

이채롭고 Fat Bottomed Girls에선 로커빌리의 영향을 읽을

수 있으며 Bicycle Race말랑말랑하고 벌레스크스러운

것이 누가 봐도 머큐리가 쓴 곡임을 알 수 있겠다.



무엇보다 본작엔 Don't Stop Me Now가 있다. 제임스 브라운

인가 싶은 정도의 섹드립도 등장하고 엄청나게 흥겨운 이 트랙은

진성 팬덤이 위윌락유보다도 더 앤썸처럼 친애해온 곡이기도...



단, 머큐리가 이슬람교 신자일 거란 오해는 금물이다. 조로아스터

교는 이슬람과 관련 없다. 그냥 이런저런 상업적 요소를 끌어들여

재미있는 노래 하나 만든 거라고 보면 된다. 어차피 서사

사회성은 딱 고만고만하게 적당한 정도만 구사하는 수준이다.



('Mustapha' from Jazz, 1978)



('Don't Stop Me Now' from Jazz, 1978)




 (The Game)




Jazz에서 약간 주춤하나 싶었던 그들은 The Game 앨범으로

다시 한 번 활짝 만개한다. 평단과의 불편한 관계를 전술했는데

하나 더, 이상하게 은 미국 시장에서 성공한 적이 별로 없다.

당대의 세계적인 팬덤은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전 세계라고 보면

대략 옳다. 특히 유럽, 남미, 일본은 그들의 밥줄이라고나 할까.



80년의 이 앨범 와서 결국 그들은 빌보드 앨범 및 싱글 차트 양쪽서

처음으로 1위를 찍는다. 엘비스 프레슬리 캐릭터 모방으로 유명한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은 그들의 유일한 1위 싱글이다.

Another One Bites the Dust는 무려 마이클 잭슨이 일찌감치

히트를 예감한 곡이다. 꽉찬 funky 비트에 그냥 지나칠 리 없었겠지.



Another One~ 가사 역시 동네 양아치들 패싸움 이야기이다.

'(싸우다) 또 하나 뒈졌군' 정도의 뉘앙스라고. 사회 비판적 가사가

비교적 많지 않은 그들에겐 이런 가사 스토리가 의외로 많다.

또한 방식으로 디스코를 받아들인 증거이기도 하다.



Play the GameSave Me 역시 들어볼 만한 트랙들이다.

키보디스트 아닌 사람들은 별 관심 없겠지만 의 디스코그래피

중 처음으로 신디사이저가 등장한 앨범이기도 하다. Oberheim

OB-X란 명기이다.


https://queenvinyls.com/articles/from-harspichord-to-synthesizer-and-beyond-an-introduction-to-queen-organology/



(Oberheim OB-X)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from the Game, 1980)



('Another One Bites the Dust' from the Game, 1980)




(Hot Space)




81년엔 Flash Gordon이란 영화의 사운드트랙 앨범을 만든다.

여기서의 플래쉬는 DC의 그 히어로는 아니다. 한국에 개봉한

적이 없는 SF물이다.



이듬해 Hot Space 앨범을 내는데 비평과 흥행 양쪽에서 다

안 좋아 이후 2~3년간 멤버들이 붕뜬 상태로 솔로 활동에나

매진하게 된 계기를 제공한다. 하지만 데이빗 보위와 함께 한

Under Pressure는 여전히 훌륭한 작품으로 남아 있다.

사회성 짙은 가사로 영국병 걸린 경제 상황을 위무한

걸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정작 총리는 대처..ㅠ)



('Under Pressure' from Hot Space, 1982)




 (The Works)




영화에서 나타났듯이 밴드의 침체기는 결국 라이브 에이드

가서야 부활의 동력을 얻게 된다. 그 전 82년 5월에서 84년 2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 메이테일러디콘 솔로 작업을 열심히들

하셨다. 정작 머큐리는 다음 앨범이 나오고 난 후에 자신의 앨범을

냈다. 즉, 영화의 스토리는 사실과 다르다는 말.



라이브 에이드 전인 84년에 비교적 성과가 좋았던 The Works

앨범을 낸다. 신디사이저를 광폭적으로 받아들였음을 입증한

본작에서 Radio Ga Ga, It's a Hard Life, Hammer to Fall

그리고 I Want to Break Free 등 성공작이 쏟아져 나왔다.



멤버들을 전부 여장(!)시켜 찍은 ~Break Free의 뮤비는 매우

유명했고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밴드의 곡 중 흔치 않게

신디사이저 솔로가 등장하여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프레드

맨델이란 세션이 연주했다고 한다. Linn LM-1이란 드럼머신

사용도 괜찮았다.



레디오가가보코더로는 77년에 출시됐던 EMS 2000

쓰였단다. (희한하게도 은, 아날로그 신디 전성기인 70년대엔

단 한 번도 무그를 쓴 적이 없다. 모든 이펙트는 기타

몰아주려 했다나 뭐래나.)



(Linn LM-1)



(EMS Vocoder 2000)



('Radio Ga Ga' from the Works, 1984)



('I Want to Break Free' from the Works, 1984)

*다소 민망한 일본 라이브




(Mr. Bad Guy)




라이브 에이드에서 완전히 부활한 . 하지만 머큐리 자신은

이미 80년대 초반에 자신의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전한다. 멤버들에게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은 사망이 거의

임박한 훨씬 뒤였으나 이미 눈치들은 다 채고 있었다고.



85년엔 이미 예정되어 있던 첫 솔로 앨범 Mr. Bad Guy

발매한다. 그의 솔로 앨범은 두 장 뿐이고 두번째 앨범이 한창

오페라에 탐닉한 말년의 특이성을 보여준다고 본다면, 진정

대중적인 음악 앨범은 이것이 유일할지도 모른다.



신디사이저와 뉴웨이브 요소를 팍팍 쓴 미래 지향적 레트로

사운드의 본작은 마지막 전성기를 달리던 머큐리를 느껴볼

만한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라 할 수 있다. Made in Heaven,

I Was Born to Love You, Living on My Own

양질의 곡들을 수록하였다. 메이드 인 헤븐은 추후 밴드가

재녹음하여 수록한 그 곡의 원곡이다.



('I Was Born to Love You' from Mr. Bad Guy, 1985)




 (A Kind of Magic)




86년에 그들은 앨범 A Kind of Magic으로 돌아온다.
웸블리 이후 첫 공식작이자 발매 기념 월드 투어를 단행한
마지막 앨범이다. 또한 러셀 멀케이 감독의 SF액션 영화
하이랜더의 비공식 OST이기도 하다. (하이랜더 시리즈는
1편까진 괜찮게 봐줄 만하다.)


A Kind of Magic, One Vision, Friends Will Be Friends,
Who Wants to Live Forever, One Year of Love  히트
싱글을 배출했다. 특히 영화의 스토리 내용을 담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제 머큐리의 최후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Who Wants~를 들으면 괜시리 숙연해지게 마련이다.


('A Kind of Magic' from eponymous album, 1986)



('Who Wants to Live Forever' from A Kind of Magic, 1986)




대략 이 무렵부터 이제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머큐리의 건강이
나빠졌다고 한다. 하지만 멤버들과의 녹음이나 평소 받아오던
오페라 및 발레 레슨 등 일상적인 예술 작업에는 죽는 순간까지
열정적으로 임했다. 메이도 부부간 사생활에 문제가 생겨 여러
모로 밴드가 앨범 작업에 매진하기는 힘든 때였다고..


86년에는 영국의 프로듀서 데이브 클락의 뮤지컬 컨셉트 앨범
Time에 참여하여 동명의 트랙을 싱글로 발매하여 호평받았다.
87년엔 55년 발표된 플래터스의 R&B곡 The Great Pretender
리메이크 발표하여 원곡보다 훌륭한 해석이란 칭찬도 받게 된다.
(전에 한 번 썼듯이 이 두 곡은 그의 인생작이라고 생각한다.)


88년에 그는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대비하여 스페인 최고의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와 일종의 팝페라 앨범인 Barcelona
발표한다. 이때 함께 작업하던 사람들이 성악과 오페라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에 놀랐다는 풍문도 남아 있다.


그러던 와중 89년이 되어 The Miracle 앨범을 출시한다.
우여곡절 끝에 출시된 본작의 완성도는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다.
The Miracle, I Want It All, The Invisible Man, Breakthru
등 얼핏 들어도 생각나는 좋은 트랙들이 성공을 거두었다. 아래에
아원잇올의 뮤비, 잠깐만 봐도 그의 모습이 초췌해보여 착잡하다..


 (The Miracle)



('The Great Pretender', 1987)

*독일 방송에 출연하여 립싱크하시는...



('I Want It All' from the Miracle, 1989)




 (Innuendo)




거의 말년이 되어간 그의 삶은 조용하게 음악 작업하는 나날들로
채워진 듯하다. 마지막 연인이 된 짐 허튼과 함께. 91년에 드디어
그의 생전 마지막 앨범 Innuendo가 죽기 아홉 달 전에 발표된다.
마지막 불꽃을 화려하게 태우고 사라져가는 촛불처럼 머큐리
멤버들의 작업물은 놀라웠다.


타이틀 트랙 Innuendo는 80년대 내내 선보인 머큐리의 연극적
퍼포먼스를 음악으로 표현한 듯 드라마틱한 구성이 돋보였으며
예스의 기타리스트 스티브 하우가 특별히 초빙되어 어쿠스틱 기타
협연을 펼쳐 보였다. I'm Going Slightly Mad, Headlong,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 등 한 곡 한 곡이 예술가의
인생을 통째로 정리하는 듯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절정감은 The Show Must Go On에서 느낄 수 있었다. 프레디
머큐리 말고 이런 주제를 이토록 아름답게 그려낼 보컬리스트가
과연 또 있겠는가, 탄식하는 팬 투성이였다. (단, 작곡은 메이가..)
하지만, 롤링 스톤 지는 이번에도 더럽게 까댔다.


('Innuendo' from eponymous album, 1991)



('The Show Must Go On' from Innuendo, 1991)




마지막 불꽃을 화려하게 불사른지 아홉 달 후에 그는 숨을 거둔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 그를 보내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이듬해

92년 4월 20일에 대대적 규모의 헌정 공연 The Freddie Mercury

Tribute Concert가 개최된다.



아마도 대부분의 한국 음악 소비자가 팬덤화하는 과정에서 처음

접했을 법한 외국의 공연 문화였을 거다. 당시 영미권 음악계를

지배했던 주류 아티스트들이 쪽팔림도 무릅쓰고 머큐리의 음악을

따라 부르며 비교질 당하는 영예를 기꺼이 마다 하지 않았다. 한

음악가가 또 다른 음악가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헌사인 셈.



엘튼 존, 로버트 플랜트, 데이빗 보위, 로저 달트리, 토니 아이오미,

애니 레녹스, 폴 영건즈 앤 로지스, 데프 레파드, 메탈리카, 익스트림

등이 여기에 동참한 당시 탑클래스의 헤드라이너들. 지금 봐도 이런

사람들 어떻게 다시 모을까 싶다.



모두 쪽팔림을 감당하며 어려운 원곡을 쩔쩔 매고 소화하는 성의를

보여주었는데, 단 한 사람만은 왠지 '어쩌면 원곡만큼 매력적일지도'

하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당대 최고의 블루 아이드 소울 보컬리스트

조지 마이클이었고 그가 의 세 멤버 및 합창단과 함께 한

Somebody to Love는 그해 최고의 인기곡이 되었다.



이 공연 두 달 전에는 음악을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 웨인스월드

개봉해 Bohemian Rhapsody를 삽입했고 영화 속 헤드뱅잉

인기 덕분에 원곡을 역주행시켜 빌보드 핫100 2위에 재진입시킨

엄청난 흥행몰이를 가져오기도 했다.





('Somebody to Love' by Queen ft. George Michael, 1992)




 (Made in Heaven)




머큐리의 목소리를 담은 마지막 정규 앨범 Made in Heaven

95년에 발매된다. 그의 솔로 앨범에 실렸던 Made in Heaven,

I Was Born to Love You 등에 멤버들이 어레인지를 추가해

포함시켰고 Too Much Love Will Kill You, Heaven for

Everyone 같은 새로운 트랙과 생전 마지막 육성 녹음을

조합하여 만들어낸 헌정 앨범의 연장선이었다.



메이가 다른 작곡가들과 만든 Too Much Love~는 밴드의

앨범에 수록된 것과 메이의 솔로 앨범에 실린 것, 두 가지

버젼이 존재한다. 테일러는 그렇다 치고 메이도 참 노래 잘

하는구나, 하는 점을 모든 사람에게 각인시킨 곡이었다.



('Too Much Love Will Kill You' from Made in Heaven, 1995)



('Too Much Love Will Kill You' by Brian May, 1995)




97년에 존 디콘은 영원히 음악계에서 은퇴한다. 본래부터

내성적이고 머큐리의 카리스마적 퍼포먼스를 존경했던

밴드의 막내였기에 남은 두 사람도 존중한 결정이었다.

04년부터 09년까지 나머지 두 사람은 의 이름으로 역시

전설적 보컬리스트인 폴 로저스와 투어를 돌기도 했다.



70년대 전설적 블루스락 밴드 프리배드 컴퍼니의 탁월한

보컬리스트였던 폴 로저스. 뭔가 새로운 창작 활동이 생기나

기대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저 예전 곡들을 불러주는 것에

그쳤고 반응도 아주 뜨거웠다고 보기는 애매했다고 본다.



다만 생전에 머큐리가 보여주고 가지 못하고 떠난 몇몇

트랙의 라이브를 구경할 수 있었다는 보람은 있었다고.

아래 아원잇올처럼. 이들 세 사람은 이 포맷으로 08년에

앨범도 한 장 냈지만 반응은 뜨뜨미지근한 수준에 그쳤다.






폴 로저스와의 작업을 통해 젊은 피 수혈이 필요하다고

느낀 모양이다. 메이테일러 두 사람은 신임 보컬리스트

수소문 작업을 벌였고 11년부터 아메리칸 아이돌 스타로

널리 알려진 애덤 램버트를 리투르트하여 투어 멤버로

기용하고 있다. (이 친구는 영화에도 카메오 등장했지.)



워낙 나이 차도 있고 램버트의 젊디 젊은 기량에서 오는

안정감이나 탄탄한 보컬 실력 덕도 있어, 대체로 기존

팬덤은 이렇게나마 들을 수 있다는 데에 감사하기도

하고 안도하기도 하는 듯하다......만, 누구도 프레디

대체할 수 없다는 여론도 만만치는 않다.



(왜 꼭 대체 보컬을 계속 구해야 하냐고? 그냥 그만 두면

안 되냐고? 이 분들의 직업이 계속 연주하고 투어를 도는

밴드 뮤지션인데 그렇게 반응을 보이면 좀 섭섭할지도...

어찌 되었든 지구상 어딘가에서 의 음악이 계속 현재

진행형으로 연주되고 있다면 만족스러운 일 아닐까.)



(하지만 비교가 되는 건 사실...)




프레디 머큐리의 너무 이른 죽음은 30년 가까이 지난

일임에도 당시 참 충격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민

2세대로서 사회 소수 계층의 설움을 동병상련했던 그의

존재감이나 이에 영향받아 형성된 예술적 자아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 건 세월이 한참 흐른 후였던 것 같다.



은, 참 미국 시장 주류와 인연이 없었다. 언론으로부터의

야박한 평가도 이와 연관이 있다고 믿는다. 미국 음악 시장의

메인스트림은 이른바 그래스루츠라고 하는 블루스 계열

코드에 있다. 이들 음악은 상대적으로 블루스의 영향이

약하다. 재즈나 컨트리, 포크와도 멀다. 아마도 이 때문이지

않겠나 조심스럽게 추정한다.



루츠가 채우지 않는 빈 자리를 머큐리디콘 멤버들이 클래식,

펑크funk, 뉴웨이브 등으로 메꾸어 드라마틱한 표현성을 중시한

작품을 만들어갔다. 미국에선 절대로 먹히지 못한 창작 문법이다.

대신 미국을 제외한 세상은 항상 프레디를 연호했다. 전 세계

판매고 2억 장이 어디 그냥 나올 기록이겠는가.



 (The Great Pretender, single)




포스팅의 주인공인 머큐리가 피아니스트이고 일렉트릭 피아노

싫어한 반면 신디사이저는 꽤 다룬 성향인지라 상세히 들고 파진

못했는데, 사실 사운드의 핵심적 매력은 메이가 연주한 특별한

일렉트릭 기타 레드 스페셜에 있다. Danelectro Shorthorn

비슷하게 생긴 기타는 참 특별한 것이, 메이가 음악을 시작할

무렵 무려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악기이기 때문이다.



http://www.queenconcerts.com/instruments/piano.html



독특한 보드와 픽업 디자인을 거친 탓인지 다른 기타리스트

누구보다 그의 톤은 특별하고 이채로워 음색 만으로도 그가

연주한 것임을 구분할 수 있다. 또한 탈 블루스 성향이면서도

클래식하고 글램스러운 의 사운드에 여지없이 어울리는

톤이기도 하다. 세간의 박한 평가의 이면에 뭔가 이질적인

기타 톤까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오버일까.



(Steinway Concert Grand)



(Red Special)






첫 히트작 킬러퀸이나 바이시클 레이스처럼 머큐리가 작곡한

트랙들을 보면 수십 년 전 벌레스크 쇼뮤직 홀 사운드를 듣는

홍키통크 피아노가 중심이 된 살롱 음악이 연상된다. 아마도

그가 겪은 유년 시절의 추억과 연관이 있을 터이다. 살롱의 낡은

피아노에 맞추어 화려한 가운을 흐느적거리며 끈적한 노래를

부르는 여가수의 모습. 그가 평생 꿈꾼 음악적 아이덴티티가

아니었나, 추측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굿올패션 러버보이 같은 트랙이야말로 전성기
프레디 머큐리의 섬세한 음악성을 대변할 만한 곡인 듯싶다.
개인적으로 최애하는 곡이기도 하고. 아껴 두었다가 링크를
걸며, 끝으로 그의 열정적 예술혼에 헌사를 바친다. 아름다운
음악을 남겨 많은 사람의 영혼을 구제한 공으로, 저 세상에선
멋쟁이 차림에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행복하게 노래하고 계시.


('Good Old-Fashioned Lover Boy' from A Day at the Races,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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