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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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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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2.09
    브래드 델프 Brad Delp
  2. 2019.02.10
    스티브 페리 Steve Perry 1




그의 아름다운 음악을 찬양하는 일은 쉽지만 불행으로 끝난

그의 인생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전달하긴 쉽지 않겠다. 허나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밴드 보스턴 Boston과 함께 톰 숄츠

Tom Scholz를 언급하며 그를 건너뛰고 갈 수는 없으므로,

최대한 담백하게 논평해보겠다. 아메리칸 하드락 찬연히

빛났던 하이테너, 브래드 델프 Brad Delp 이야기이다...













*More Than a Feeling. 79년 뉴저지 라이브.



*Amanda. 87년 매사추세츠 라이브.



*Foreplay / Long Time. 79년 뉴저지 라이브.



*Rock & Roll Band. 87년 매사추세츠 라이브.



*A Man I'll Never Be. 79년 뉴저지 라이브.




보스턴의 시작과 끝은 탁월한 기타리스트이자 프로듀서,

엔지니어인 동시에 발명가 창업자인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박사 출신 톰 숄츠로 귀결된다. 사실인즉슨 밴드 보스턴

자체를 숄츠의 원맨 밴드로 정의해도 거의 할 말 없을

정도로 그의 존재감이 절대적이긴 하다. - 원래 숄즈라고

표기해야 옳긴 한데 관습적으로 숄츠가 더 널리 퍼져서...



MIT 석사 졸업 후 즉석 사진으로 유명한 폴라로이드 사

연구원으로 월급쟁이 생활을 하던 47년생 도널드 토머

숄츠가 자기 집에 녹음 스튜디오를 차리고 밴드 프로젝트를

시작한 시점이 일의 시작이었다. 기타리스트 배리 구드로,

베이시스트 프랜 쉬이 세션으로 불려왔을 때 매사추세츠

토박이 51년생 브래들리 에드워드 델프 역시 보컬 제의를

함께 받아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1970년경.



기타, 베이스, 키보드, 송라이팅, 프로듀싱 등 나머지 모든

파트를 맡아 북치고 장구치던 숄츠가 저 멤버들을 규합해

데모 테이프를 제작했고 레이블마다 퇴짜를 맞으면서도

혼자 고군분투하다가 약 5년만에 에픽 레코드와 계약을

성사시켜 데뷔 앨범 제작에 들어간다. 이때 데모에 들어간

곡들이 곧 전설적인 첫 앨범의 트랙으로 자리잡았다.




 (Boston)



('More Than a Feeling' from Boston, 1976)

*Boston은 뉴욕 데뷔 무대가 무려 매디슨 스퀘어 가든이었다.




76년, 미국 대중 음악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전설적

데뷔 앨범 Boston이 발매된다. 자그마치 1천 7백만 장의

판매고를 올려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았고 빌보드 200 차트

3위까지 기록하며 당연하다는 듯이 이듬해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신인상 후보 지명의 성과를 낸, 바로 그 앨범이다.



('Peace of Mind' from Boston, 1976)

- 핫100 차트 탑40에 오른 세번째 싱글.



*More Than a Feeling. studio album version.

https://www.youtube.com/watch?v=SSR6ZzjDZ94



1970년대 밴드 낭만의 시대를 상징하는 영원한 락 앤썸

More Than a Feeling이 수록된 앨범이기도 하다. Peace

of Mind, Foreplay / Long Time, Rock & Roll Band,

Smokin' 등 연이은 트랙들이 줄줄이 시그니처 트랙으로

자리잡아 버릴 곡이 없는 명반으로 기억되는 앨범이기도..



(Rolling Stone '04,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

https://web.archive.org/web/20061109103736/http://www.rollingstone.com:80/news/coverstory/500songs/page/5

- 이건 04년 archive. '10년 업데이트에선 랭크에 실패했다.

- 10년에 업데이트된 새 랭킹.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500-greatest-songs-of-all-time-151127



(The List of 'The Songs That Shaped Rock and Roll'

selected by the Rock and Roll Hall of Fame, '04)

https://www.infoplease.com/arts-entertainment/music/500-songs-shaped-rock



데뷔 싱글 More Than a Feeling핫100 차트 탑5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롤링 스톤 매거진이 04년에 집계한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곡 랭킹에도 당당히 오른, 70년대

시대 정신의 산물인 시그니처 트랙. 락앤롤 명예의 전당

'락앤롤 장르를 형성한 명곡'을 선정할 때도 당당히 올랐다.



('Foreplay / Long Time' from Boston, 1976)

*2' 25"까지 Foreplay. 키보드 솔로는 Hammond M-3로 연주.

**이 곡의 기타 솔로는 Barry Goudreau의 솜씨이다. 꽤 하지?



프로그의 영향을 받은 키보드 솔로잉이 작렬한 Foreplay

통상적인 하드락 모드의 Long Time이 접속한 3번 트랙은

본작을 상징할 대표 트랙이며 여느 신인 아티스트와 비교를

불허하는 숄츠/보스턴 만의 천재성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걸작일 터. 평단이 예스제플린이 결합했다고 칭송했고

핫100 차트 탑40에 올랐다. - 숄츠의 송라이팅은 야드버즈

킹크스에 클래식의 영향을 가미한 거라 한다.



('Rock & Roll Band' from Boston, 1976)

*이 트랙의 드러머는 Jim Masdea.

 - 이 곡을 제외한 전 트랙의 드러머는 Sib Hashian.

**Boston 공연은 대개 이 곡을 오프닝 트랙으로 해 시작한다.



완전한 무명의 신인 밴드로서 일찍이 존재한 적 없던 엄청난

성과를 거둔지라 Boston 앨범이 미국 음악계 전체에 끼친

영향력은 어마어마했고 9백만 장 판매 인증을 받은 80년대를

거쳐 9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그 여파가 진정되는 기미를

보일 정도였다. - 86년을 넘어서며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고

현재까지 판매고는 미국 1천 7백만 장, 세계 2천 5백만 장..!



('Smokin'' from Boston, 1976)

*이 곡의 Hammond 솔로잉도 꽤 유명하다. Tom Scholz.



블루스 기반의 메탈 원형질에 국한되던 아메리칸 하드락

제멋대로 70년대 격정적 흐름이, 정교한 주법과 기술적

지원에 힘입어 파워 팝 형태로 승화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앨범이라고 보통 평가한다. 일부 평단에선 Boston 앨범으로

인해 이후 락 음악이 야성미를 잃은 채 프로듀서 체제의 잘

다듬어진 상품으로 전락하게 만든 주범이라고 까기도 한다.



(Robert Dimery '05, 1001 Albums You Must Hear Before You Die)

http://www.rocklistmusic.co.uk/steveparker/1001albums.htm



완벽주의 성향의 톰 숄츠란 거인, 그리고 그를 도운 브래드 델프

재능있는 뮤지션들이 결합하여 빚어낸 시너지가 음악사의 물줄기를

틀어버린 것이다. 05년에 출간된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

중 하나로도 선정되었다고. 어떤 경로든지, 한 번은 꼭 들어 보시라.



*Smokin'. 77년 캘리포니아 라이브.

https://www.youtube.com/watch?v=kumK8yor1ow




 (Don't Look Back)



('Don't Look Back' from eponymous album, 1978)

- 풍요와 낭만에 가득 찬 미국의 70년대가 보이는가...



본래 Boston 앨범을 준비할 때 소속 레이블인 에픽 레코드

자신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스튜디오에서 음악을 제작할

것을 조건으로 했지만 숄츠는 과감하게 이를 생까고(..) 자기 집에

만든 스튜디오에서만 작업했다. 두번째 앨범에서도 숄츠는 이런

프로세스를 고집하여 그만의 페이스에 따라 제작에 들어갔는데...



('A Man I'll Never Be' from Don't Look Back, 1978)

*Brad Delp, 피아노도 함께 연주하시고 Scholz는 무대에서 파이프 오르간을...

 - Delp 관점에선 이때가 보컬의 최전성기인 것 같다.



78년에 발매한 2집 Don't Look Back숄츠가 최대한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천천히 제작해보려 레이블과 신경전을 거듭한

끝에 나온 수작 앨범이었으나 숄츠 입장에선 군데군데 여전히

불만인 채로 작업을 끝낸 셈이었다고.



*Don't Look Back. studio album version.

https://www.youtube.com/watch?v=AzNL-4sz95I



하지만 동명의 타이틀 트랙 Don't Look Back핫100 차트

탑5에 오르고 발라드 A Man I'll Never Be와 하드락 넘버

Feelin' Satisfied가 후속 싱글로 히트하며 전작의 성공을

이어가기에 충분한 결과를 선사해주었다.



*A Man I'll Never Be. studio album version.

https://www.youtube.com/watch?v=PqsHWnDBS0Q



전반적으로는 Boston의 작법을 그대로 이어가며 파워 팝

사조를 더욱 굳히는 듯한 모양새의 앨범이었다. 상업적으로는

전작의 성과 절반 정도 판매고에 불과했지만 전작이 워낙

괴물같은 성공이었으며 최종적으로 7x플래티넘 인증까지

기록했고 빌보드 200 차트 탑까지 찍었으니 외려 실패가

아닌 성공임이 분명했다. 보스턴은 이제 공연을 선도하는

거물 투어 액트로 훌쩍 성장해 있었다.



('Feelin' Satisfied' from Don't Look Back, 1978)



본작의 진짜 숨은 의미는 따로 있었다. 제작 과정에 불만을

품게 된 숄츠에픽 레코드의 지리한 신경전이 극에 달해

급기야 향후 몇 년에 걸쳐 법정 소송전까지 가는 상황으로

악화일로를 걷는 시발점이 바로 DLB 앨범이란 점이다.



('Party' from Don't Look Back, 1978)

*라이브에서 팬덤이 매우 열광하는 히든 트랙이다.




 (Barry Goudreau)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DLB 앨범 전미 투어를 종료한 후 79년부터

숄츠가 다음 앨범 준비에 들어갔다. 근데 에픽 레코드 및 모회사인

CBS가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물론 숄츠와 레이블 간의 까다로운

신경전은 앞에 썼듯이 DLB 앨범 때부터 시작한 오래 된 문제였다.

제작에 시간 좀 걸리겠다 판단한 숄츠델프 등 멤버들을 모아놓고

'계약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은 다른 돈벌이 해라' 하는 나름 대범한

조처를 취해준다.



배리 구드로시브 헤이쉬과 함께 브래드 델프 등, 오리지널

보스턴 라인업의 멤버들이 80년 구드로의 솔로 앨범 프로젝트로

모인다. 누가 봐도 보스턴과 판박이인 구성인지라 팬덤에선

사실상 보스턴 아류로 인식하지만 물론 숄츠 본인은 정통성을

승인하진 않는다.



('Dreams' from Barry Goudreau, 1980)

*Brad Delp (vocals), Barry Goudreau (guitars), Sib Hashian (drums).

당최 이게 보스턴이지 원..



그리하여 80년에 Barry Goudreau 앨범이 발매되고 소폭의

마이너한 히트로 매니아 팬덤을 형성한다. 누가 들어도 앨범의

사운드 퀄리티는 보스턴 사운드의 재판이었다. 델프 말고도

먼 훗날 보스턴에 가담하게 되는 프랜 코즈모가 보컬리스트로

참여했다. 델프가 보컬을 맡은 Dreams가 소폭 히트하였다.



그 사이 숄츠는 여러 모로 머리 아팠다. 레이블과의 분쟁이

급기야 소송으로 비화하고 숄츠 vs CBS의 저작권 및 제작권

법정 공방이 개시해 지리한 몇 년을 소모했다. 먹고 살 방편

때문인지 (취미 생활이기도 하고) 숄츠기타 이펙트 개발

전문 회사를 설립하여 자신의 발명품을 출시하기에 이른다.

소위 Rockman amplifier.. 인기 제품이다.



 (Rockman Amplifier)




 (Orion the Hunter)



구드로의 솔로 앨범을 그럭저럭 마무리하고 보스턴의 3집

준비가 아직 더딘 상황이라 델프는 동료들과 또 다른 사이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구드로 중심으로 뭉친 프로젝트 그룹

명의의 84년 앨범 Orion the Hunter가 그것.



이번에도 큰 히트는 기록하지 못하고 소규모 매니아 팬덤을

형성하는데 그치지만 델프의 목소리가 여전히 현장과 무대를

장식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미국 시장에서 So You Ran,

한국에서 Joanne이란 곡이 소폭 히트하였다.



('Joanne' from Orion the Hunter, 1984)




 (Third Stage)



소송은 숄츠의 승소로 매듭지어져 정식으로 레이블을 옮긴다.

이미 몇 년에 걸쳐 찬찬히 준비해오던 데모 버젼들을 정리하여

86년에 드디어 3집을 발매한다. Third Stage.. 보스턴

숄츠에게 사상 최초로 핫100 차트 탑을 선사한 시그니처 트랙

Amanda를 수록한 바로 그 앨범이다. 아만다~



('Amanda' from Third Stage, 1986)

*첫 싱글이고 대표 트랙인데공식 뮤직 비디오를 찍지 않는 등

당시 트렌드를 따르지 않고 히트한, 이례적 기록을 남겼다.

 - 고로 현재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영상물은 모두 팬덤이 제작한

비공식 뮤비들이다.



3집을 얻기 위해 소송이다 뭐다 해서 고생한 여파 때문인지 새

앨범이 종전보다는 사뭇 진지해지고 다소 침울해졌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숄츠 본인이 70년대에 방법론을

확립한 파워 팝의 연장선상에 있었으며 우주 탐사 로켓 이야기를

하나의 틀 안에서 연결한 컨셉트 앨범이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빌보드 200 차트 탑을 찍었고 최종적으로 4x플래티넘을 기록한다.



('We're Ready' from Third Stage, 1986)



파워 발라드 Amanda는 본래 80년대초 2집 투어 마치자 마자

작곡해둔 곡인데 뒤늦게 빛을 보게 되어 보스턴 하면 떠오르는

대표곡이 되었다. 또 핫100 차트 탑텐에 오른 We're Ready,

메인스트림 락 차트 상위에 랭크된 Cool the Engines, 탑40를

기록한 Can'tcha Say (You Believe in Me) / Still in Love,

앨범의 마지막 트랙 Hollyann, 팬덤이 특별한 애정을 보여준

I Think I Like It 등 줄지어 많은 곡이 사랑을 받았다.



('The Launch' from Third Stage, 1986)

*로켓 발사 및 3단 분리를 음악으로 형상화한 연주곡.

 - 앞뒤의 We're Ready 및 Cool the Engines와 이어져

우주 개발이란 컨셉트 스토리를 완성하는 것..



전작들만큼은 아니어도 명실상부한 80년대의 히트 앨범임에는

틀림없다. 구드로는 공식적으로 제작 과정에 전혀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나오고 쉬언헤이쉬언도 제작 초기 단계에만 참여한

걸로 되어 있어, 전작에서부터 이어지는 멤버는 델프가 유일하다.

거의 전곡의 드러머로 짐 매즈디어가 다시 연주해줬고, 다른

기타리스트로 새미 헤이 투어 연주자 게리 필이 참여했다.



('Cool the Engines' from Third Stage, 1986)



완벽주의 성향과 그밖의 잡다한 문제들이 얽혀, 스튜디오 앨범

사이 제작 주기 간극이 엄청나게 벌어지기 시작한 신호탄의

작품이기도. 전작의 8년이 지나 발매되었는데 차기작도 그

정도 시간이 걸리게 되고, 이런 점은 그냥 숄츠/보스턴

전매특허 전통으로 자리잡게 된다.



('I Think I Like It' from Third Stage, 1986)

https://www.youtube.com/watch?v=3tD2Id2T4jU

*Gary Pihl on guitars.



('To Be a Man' from Third Stage, 1986)

https://www.youtube.com/watch?v=CLkuXEeQNrE

*88년 뉴욕 라이브.




 (Return to Zero)



Third Stage Tour를 끝내고 4집 준비에 착수하던 숄츠. 델프

갑자기 나타나 다른 프로젝트가 잡혀서 잠시 탈퇴를 선언한다.

선선히 그러라 하고 - 그래봤자 어디 가는지 뻔히 알겠고 왠

느낌상 다시 돌아올 것 같으니까 - 그를 대신할 보컬리스트로

예전에 배리 구드로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찌르는 샤우팅에 능한

프랜 코즈모를 영입하시는 숄츠.



델프는 좋게 보자면 담백하고 우직한 분이셨고 쉽게 말해 마당발은

아니셨다. 아는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 뻔할 뻔 자로, 지금까지 쓴

내용으로 짐작하셨겠지만 델프를 꼬셔낼 만한 프로젝트를 들고

올 사람은 구드로 및 옛 보스턴 멤버들 정도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 아직 뜨지 못한 - 구드로가 노래 잘 하는 델프를 구슬른 것.



RTZ란 프로젝트 그룹으로 다시 돌아와 91년에 Return to Zero,

곧 그룹명의 앨범을 내는 그들. 구드로는 꽤 재능있는 연주자이긴

하지만 숄츠만큼의 독창성을 가진 아티스트는 아니었는지, 이번

작품도 소소한 마이너 히트에 그쳤다. 델프 보컬의 호소력이 담뿍

드러난 파워 발라드 Until Your Love Comes Back Around

정도는 한때 히트했다.



('Until Your Love Comes Back Around' from Return to Zero, 1991)

*Brad Delp가 관여한 곡의 뮤비 중에 완성도가 가장 높을 듯.




 (Walk On)



물론 숄츠델프 사이에 묘한 마찰과 긴장이 올라와서 델프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시각도 있긴 하다. (녹음 스튜디오에 가끔

놀러와서 일부 곡에 자기 흔적도 남긴 거 봐선 낭설 같지만...)

어쨌든 코즈모를 데리고 제작을 시작해 94년에 4집 Walk On

발매를 밀어붙인다.



('I Need Your Love' from Walk On, 1994)



보컬이 바뀌어서인지 얼터너티브 시대에 뒤떨어져서인지, 앨범

전체 성과는 그저 그랬다. 플래티넘을 기록하는데 그쳤고 탑40

이상 가는 히트 싱글을 만들지 못했다. 그나마 I Need Your

Love Livin' for You 정도 트랙이 주목을 받았을 뿐이었다.

결국 이듬해 투어 시작 전에 델프가 복귀한다.



('Livin' for You' from Walk On, 1994)

https://www.youtube.com/watch?v=WaU0n3MLtlw




 (Greatest Hits)



다음 앨범 들어가기 전 97년에 첫 컴필레이션 앨범 Boston:

Greatest Hits를 발매하는데 라이브를 주름잡아 팬덤의 트랙

충성도가 높으니 컴필레이션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모양이다.

무려 더블 플래티넘의 판매고를 기록한다.



('The Star-Spangled Banner / 4th of July Reprise'

from Greatest Hits, 1997)

https://www.youtube.com/watch?v=u8QkNJ8B-JU



미국을 대표하는 밴드이니만큼 약간 국뽕 캐릭터도 있어서

라이브에서 국가를 하드락 버젼으로 자주 연주하던 차, 본

앨범에서 그 인스트루멘탈을 정식 트랙으로 수록하여 꽤

눈길을 끌기도 했다.




 (Corporate America)



02년엔 다시 돌아온 델프와 다른 후배 보컬리스트 등을 규합해

5집 Corporate America로 돌아온 숄츠/보스턴. 상업적인

성과는 이전에 비해선 극히 미미해 별다른 히트곡을 양산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닥칠 불행한 미래로 인해 델프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규 앨범이란 의의는 갖는다.




 (Delp)



 (Scholz)



*사망 당시 현장 정황에 대한 보도.

https://www.guitarworld.com/news/brad-delp-details-emerge-about-his-tragic-suicide



*숄츠와 언론의 소송전, 그리고 불편한 진상에 관한 보도.

https://ultimateclassicrock.com/brad-delp-suicide-lawsuit/




07년 3월 9일 뉴햄프셔 주의 작은 마을에서 비보가 날아든다.

브래드 델프가 사망했다는 것. 그것도 일산화탄소 중독에 의한

사인에다 외부 침입 흔적이 없다고 한다. 즉 바베큐용 숯불을

피워놓고 자살했다는 말...ㅠㅠ



이미 자살 규명에 대해선 사법 당국의 수사가 완료하여 다른

가능성을 전혀 따질 수 없으니 문제는 무엇이 그를 자살로

몰았는가 하는 쪽으로 세간의 이목이 전환된다. 유족과 일부

언론이 지저분하게 얽혀 억측 기사가 난무하니 각종 폭로전

및 명예훼손 소송으로 사건이 발전하기까지 한다.



유족 일부는 한때 제기된 델프숄츠 사이의 반목이 원인이라

지목했고 이를 보도한 언론과 유족을 상대로 숄츠는 정식으로

명예훼손 제소를 건다. 물론 불법행위 혐의가 드러나진 않는 걸

대법원이 최종 각하하여 마무리는 되었으나... 그럼 도대체 자살

원인이 뭐냐고 대중이 반문하던 차에...



놀라운 곳에서 은밀한 내막이 드러난다. 약혼녀의 언니가

객식구 성격으로 델프와 한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사망 몇 일

전에 언니 방에 몰래 카메라가 설치되었음을 발견했고 언니

남자친구가 델프를 추궁하니 잘못을 시인했다는 것. 아이고.



아마도 몇 일 후에 약혼녀를 직접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하려

했지만 그 잠깐 동안 정신적으로 무너져버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내린 것으로... 현재 입장에서 드러난 최종 결론은

이러하며 이 이상 더 파봤자 망자의 명예만 더 깎일 뿐이니

대충 여기서 접자는 것이 미국의 일반적인 여론 추세이다.



몰래 카메라 설치 이유에 대해선 약혼녀가 바람 피우는 정황을

잡기 위해서란 설이 있는가 하면 흔히 할 수 있는 지저분한

상상 그대로 변태 성욕 때문이란 설까지 난무하지만... 바로

그 진실을 밝힐 주인공인 약혼녀와 만남이 이루어지기 직전에

델프가 사망했으니 사실 확인할 길은 요원할 따름이다.



어찌 되었든 40년 가까이 밴드 보스턴의 목소리로서 건강하고

아름다운 미국적 하드락의 보이스를 대변해온 브래드 델프...!

그의 독창적 하이테너 목소리는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점만이 중요할 터... R.I.P..



*I Think I Like It. 87년 매사추세츠 라이브.



*We're Ready. 87년 매사추세츠 라이브.



*Cool the Engines. 87년 매사추세츠 라이브.



*Don't Look Back. 79년 뉴저지 라이브.



*Peace of Mind. 79년 뉴저지 라이브.




*Giants Stadium Concert NJ. June 17, 1979

https://www.youtube.com/watch?v=7SSrZjSoRj4

 - full version (video)



*The Centrum Concert MA. August 13, 1987

https://www.youtube.com/watch?v=E9bhmgiVjNM

 - full version (audio)



*Hamilton Ontario Concert (Canada). 1988

https://www.youtube.com/watch?v=zcbNNuEzH2M

 - full version (bootleg video)









톰 숄츠 중심의 밴드 보스턴아메리칸 하드락의 트렌드를

바꾸었고 기념비적인 데뷔 앨범 성적을 거두기는 했다만 절대

과대평가는 금물이다. 보스턴의 팬덤 베이스는 미국과 캐나다

정도가 고작이고 북미 경계를 벗어나서 세계구급 히트를 누린

대형 액트라 보기는 어렵다. 미국과 캐나다를 합한 역대 판매

성적이 3천만 장을 살짝 웃도는 정도..



그런 와중에 실질적으로 보스턴의 사운드 중 절반을 차지할

만큼 상징적인 보이스 컬러의 브래드 델프가 가진 위상은 리더

숄츠의 절대적 카리스마에도 불구하고 결코 간과할 수 없음이다.

디지털 드림 도어 랭킹에서도 델프의 가치를 꽤 높게 쳐주는

편이고 상대적으로 기타리스트 숄츠보다 더 높은 편이기도.



(Digital Dream Door's 100 Greatest Rock Vocalists)

https://digitaldreamdoor.com/pages/best_vocalists.html



팔세토나 카운터테너라고 오해를 많이 사는 델프의 보컬 스타일에

관해선, 하이 테너와 알토 테너의 중간 위치에 하드락에 흔치 않게

가성이 많이 섞인 깨끗한 소리라고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런 목소리들은 30대 중반을 넘어서며 체력 저하로 급격하게

파워가 딸리게 마련인지라, 델프 보컬의 진면목을 확인하려면

80년대말 이전 라이브에 집중하는 것이 사실 좋다.



보통 흉성과 반가성의 거친 소리를 선호하는 미국 락씬에서도

델프의 캐릭터는 상당히 독특한 매력이 있다는 데에 대부분의

음악 팬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아왔고 보스턴 파워 팝이 지닌

대중적 음률 및 70년대 정신과 극강의 조화를 이루어 일정한

연령대 이상 세대에게 상당히 향수를 자극하는 이미지가

지금까지도 강하게 굳어온 듯하다.



사운드 메이킹에 일가견이 있는 톰 숄츠의 음악 실력에 관해선

한때 상당한 과대평가가 섞여 갖가지 루머를 양산한 적도 있긴

했다만, 전반적으로는 이펙트 뽑아내는 기술력에 비해 주법의

특이성이나 특히 리프를 빚어내는 창조성에 있어선 여느 연주자에

비해 다소 밀린다고 보는 편이 정설에 가까운 것 같다. 보스턴

음악을 떠올릴 때 특별히 귀에 남는 리프는 딱히 없지 않나...

(아, More Than a Feeling은 예외..)



갑자기 델프를 잃은 숄츠는 이후에 예전에도 그랬듯이

프랜 코즈모스트라이퍼 출신 마이클 스위트 등 다른

보컬리스트를 번갈아 기용하며 올드팬과 만나는 공연

스케줄을 이어오고 있다 한다. 델프 이외에 딱히 한 사람

지정된 보컬에 꽂히진 않은 듯하다.



*1980년대 브래드 델프와의 TV 인터뷰.

https://www.youtube.com/watch?v=FimeJJQVglQ



*Amanda. Michael Sweet & Tommy DeCarlo on vocals.

https://www.youtube.com/watch?v=CFRxqGOBGYM

 - Brad Delp 사후엔 이 두 분 중심으로 그럭저럭 하는 듯.



*Tommy DeCarlo story on TV.

https://www.youtube.com/watch?v=9rbX0xITFxA

 - DeCarlo는 보스턴의 아넬 피네다 같은 분. 아마추어였다가

인터넷으로 발탁되셨다 한다. 전엔 마트 매니저였다고..



('Honestly' by Stryper, 1986)

https://www.youtube.com/watch?v=w6IvUOZBZME

*Michael Sweet on vocals.

 - 마이클 스위트의 전직은 헤어 메탈 아티스트였다.






본 블로거가 꼽는 숄츠/보스턴 하의 델프 최고의 노래는 Third

Stage 앨범 중 Can'tcha Say (You Believe in Me) / Still

in Love이다. DLB 앨범의 A Man I'll Never Be에서 이어진

파워 팝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법이면서도 훨씬 세련되고 처연한

정서를 깊게 느낄 수 있어 항상 좋아하는 곡이다.



스튜디오 앨범 버젼과 함께 87년 Third Stage Tour

매사추세츠 주 워스터의 센트룸 아레나 공연 오디오 실황을

링크로 걸며 본 포스팅을 마치고자 한다. 브래드 델프

그리워하는 올드팬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Can'tcha Say (You Believe in Me) / Still in Love'

from Third Stage, 1986)

*studio album version.



*Can'tcha Say (You Believe in Me). 87년 매사추세츠 라이브.

- 원키 E flat에서 하나 낮춘 D major.

- 위아래 두 트랙을 연이어 들으면 앨범 버젼과 같다.



*Still in Love. 87년 매사추세츠 라이브.

- soundboard archive: 공연장에서 의무적으로 녹음하는 기록 보관용 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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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음악은 할 얘기 많으니까...

몇 분의 보컬리스트들 이야기를 개시한 김에 음악

카테고리를 부활시키려 하고, 이제 이 분을 얘기하겠다.



한국과 일본 등지 락 씬에 80년대 이후로 큰 영향을

미쳤고 음악의 성향이 메탈이 아님에도 이상하게

메탈 키드들의 반향을 불러 일으킨 분.



노래를 잘 하는 흉성의 표본이 뭐냐 하는 질문에

묵묵히 이 분의 레코딩이 답으로 제시되던 때도 한때는

있었다. 저니프론트맨으로 영원토록 기억될 그 이름,

스티브 페리 Steve Perry이다.









저니 Journey, 아메리칸 하드락의 상징.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운드를 구사해온 인기 밴드이며 Open Arms

Don't Stop Believin' 등 시그니처 송 연속 7장에 달하는

멀티 플래티넘 앨범의 성과를 자랑하는 기념비적 아티스트들.



빌보드 탑40 싱글이 무려 18곡인 데다 미국 내 판매고만 5천만

장에 달하고 세계적으로는 8천만 장 가까이 팔아치운 괴수급

스테디셀러이기도. 2005년 유력 일간지 USA투데이가 집계

역대 가장 사랑받는 미국 락밴드 5걸 중 하나로서, 2017년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이들... 이 모든 것이 저니

거둔 성과이고 그 중심엔 이 분, 스티브 페리가 있었다.





('Open Arms' from Escape, 1981)

(두 곡이 대표곡인 것은 미국이나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


('Don't Stop Believin'' from Escape, 1981)



80~90년대 이후 한국에도 등장하기 시작한

스쿨 밴드의 내노라 하는 보컬들은 모두 이 분의

영향권 하에 있었다. Open Arms하이 노트

찍을 수 있나 없나가 오디션의 기준이던 때도 있었으니.



Don't Stop Believin'이 그 기준곡을 대신하기도 했다.

Don't Stop~키보디스트들의 리프 레퍼토리 확장에도

크게 기여한 바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드라마 글리나 영화

락 오브 에이지의 커버로만 접한 듯. 원곡은 이 분들이다.

1981년 명반 Escape에서 싱글 커트된 저니의 대표 트랙.

03년 영화 몬스터에서도 절절한 감정으로 삽입된 적 있다.



 (Escape)



(12년 락 오브 에이지. 메리 J 블라이지만 참 아깝네.. 왜 거기서 나와.)

저니의 멤버는 변화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주요한

포지션의 주요 멤버는 큰 변화 없이 음악의 색깔을

일관성 있게 유지해왔다고 할 수 있다. 보컬의 페리,

기타의 닐 숀, 키보드의 조나단 케인, 베이스의

로스 밸로리 등이 그들이다. 49년생 

밴드를 완전히 탈퇴한 것은 90년대 말경..



 (Schon)


 (Cain)


 (Valory)



(최전성기던 81년경 라이브)


('Separate Ways(Worlds Apart)' from Frontiers, 1983)

(아, 위 뮤비의 핸드싱크는 유명하니 즐감하시길. 뜬금없는 주피터8까지.)



(Roland Jupiter-8)


(조나단 케인의 신디 파트에 관해)

https://www.youtube.com/watch?v=HjNdXJP8QDo




저니의 초창기는 산타나 세션 멤버들의 사랑방 같은

분위기였다. 산타나의 히트 트랙에서 노래를 불렀고

Hammond B-3 오르간 연주력으로도 일찍이 정평이

나 있던 그렉 롤리보컬키보드를 겸했었는데

이때 음악이 지금과 상당히 달랐고 반응도 대략

그저 그런 수준이었음을 보면 차이가 확연하다.



('To Play Some Music' from Journey, 1975)

https://www.youtube.com/watch?v=iA1kGECadwQ

*프로그레시브 색이 짙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롤리 저니의 정규 6집과 1981년경까지 함께 했으니

상당한 기간 저니의 음악적 기초 완성에 기여했음은

자명하다. 아래 트랙을 들으면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페리+롤리 듀오 체제의 1~2기 시절 그들을 볼 수 있다.



롤리가 자의에 의해 밴드를 떠나며 베이비스 The Babys

에서 신디사이저를 다루던 조나단 케인을 추천했고 케인

신디가 롤리의 해먼드 대체하며 매우 산뜻하고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과 케인의 조합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밴드는 날개를 활짝 펼 수 있었던 것.



(나중에 왜 베이비스와 저니 출신들이 모여 프로젝트

따로 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Rolie)


 (Hammond B-3)



('Feeling That Way' from Infinity, 1978)



('Wheel in the Sky' from Infinity, 1978)



('Lights' from Infinity, 1978)




드럼은 꽤 변화가 있었는데 초반엔 에인슬리 던바

사운드의 기조를 갖추는데 기여했고 흔히 상업적으로

히트한 80~90년대와 현재엔 스티브 스미스가 활동했다.

90년대와 10년대 중반까진 빼어보컬 실력까지 갖춘

딘 카스트로노보가 출중한 파워 드럼을 뽐냈었다.



던바, 스미스, 카스트로노보의 드러밍에서 공통점을

꼽아볼 수 있듯이 복잡하지 않고 육중하게 선이 굵은

파워 드러머들이 저니의 사운드에서 전통적인 한 축을

맡아 왔다고 하겠다. 저니 사운드에서 뭔가 재즈스럽고

복잡한 리듬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근데

정작 스미스 버클리에서 전공이 재즈였다능..)



 (Dunbar)


 (Infinity)



 (Smith)


 (Evolution)




특히 금세기 초반 보컬리스트 체제가 본격적으로

갖추어지기 직전 간간히 리드 보을 겸하기도 했던

카스트로노보의 팀내 기여도는 꽤나 출중한 편이었다.

로저 테일러 및 돈 헨리 이후로... 그는 드러머 중 가장

탁월한 보컬 실력을 갖춘 뮤지션으로 기억되리라.

물론 파워 드러밍 역시 탁월하다.



사실 카스트로노보의 이런 음악적 기여도는 2천년대 초

저니의 음악적 여정에서 한 번도 겪지 못한 새로운 요소라서

저니의 보이스를 대변하는 페리가 떠난 후 보컬과 드럼을

동시에 갖춘 이 포지션 메이커를 놓고 어떻게 밴드 구성을

새롭게 가져갈지, 을 중심으로 상당히 고민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했다. 한때는, 정말 한때는...



 (Castronovo)


('Mother Father' from Escape, 1981)

(카스트로노보. 보컬과 드러밍 양쪽 모두 후덜덜한..)



('Still They Ride' from Escape, 1981)

(Escape 앨범의 트랙 중에서)




73년에 결성한 저니 75년에 데뷔 앨범을 냈으나 사실

3집까지는 음악 방향도 갈팡질팡에 별 볼 일이 없었다.

뭔가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77년에 페리가 새로

들어오면서부터. 78년의 Infinity 앨범에서 Wheel in

the Sky, Lights 등 트랙이 서서히 두각을 나타냈고

앨범은 20위 근처까지 상승한다.



78년에 라이벌 제퍼슨 스타쉽가담한 일로 드러머

던바가 짤리고 스미스가 들어온다. 79년 Evolution

앨범에서 싱글 차트 첫 탑20 진입곡 Lovin' Touchin'

Squeezin'을 만들어낸다. 80년 Departure 앨범은

차트 8위까지 오르는 쾌거에다 Any Way You Want

It이 히트하기까지. 그런데 계속된 투어에 지친 롤리

탈퇴하고 케인이 자리를 대체하게 된다.



메인 스트림에서 만개하기 직전 페리의 진가를 알 수

있는 대표적 트랙은 역시 Departure 앨범에서 크게

히트한 Any Way You Want It일 것이다. 보컬과 작곡

양면에서 출중한 기량을 확인할 수 있다. 쥬크 박스

뮤지컬에서도 리메이크된 바 있어 익숙하리라. 그의

능력은 일찌감치 남달라서 LightsLovin' Touchin'

Squeezin' 역시 그가 만든 트랙들.



 (Departure)



('Any Way You Want It' from Departure, 1980)



(전성기 1981년 Escape Tour 시절)


https://www.youtube.com/watch?v=b9EukP0QsXU

(꽤나 당혹스러웠던 영화 락 오브 에이지 버젼)



('Lovin' Touchin' Squeezin'' from Evolution, 1979)




1981년 Escape, 1983년 Frontiers 앨범에 이르는

시기가 저니 디스코그래피의 최전성기이다. 이땐 시쳇말로

미국 국민 밴드 내지 세계구급 스타가 되어 버린다. 월드

투어로 따지면 80~85년 무렵 정도 된다. 월드라 해도

한국은 절대 온 적 없다... 한국엔 17년에야 겨우 오셨다.

물론 스티브 페리 없이. 궁시렁..



Escape 앨범에서는 지금도 귀에 선연한 매우 많은 히트

트랙을 쏟아냈다. Open Arms, Don't Stop Believin',

Who's Crying Now, Still They Ride, Stone in Love,

Keep on Runnin', Mother Father... 도대체가 버릴

곡이 없다는 표현은 이런 데다 쓰는 말일 것. 솔직히 말할까.

현재의 저니조차도 사실 이 때 히트 우려먹으면서 먹고

살고 있다고 해도 뭐라 할 사람 없을 걸.



이분들 히트곡이 이거 밖에 없냐 뭐라 할까 싶어 반복적인

언급을 자제하지만 Open Arms는 당시 세계적으로 대박

친 히트곡이었다. 싱글 핫100 차트에서 6주나 2위에만

머물다가 하락했는데 정상 등극이 가능할 수도 있었기에

안타깝기도. J 게일스 밴드 Centerfold  조운 제트 앤

블랙 하츠 I Love Rock 'n' Roll이 가로막고 있었다고.

그럴 만두 하다 싶네..



('Centerfold' by the J. Geils Band,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BqDjMZKf-wg


('I Love Rock 'n' Roll' by Joan Jett and the Blackhearts,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f2W2HexpXg4




많은 평론가들이 80년대 하드락을 대표하는 앨범으로 첫

손에 꼽았고 별 네 개 또는 네 개 반을 선사한다. 공격적인

어프로치를 드러내기에 헤비 메탈로 분류하는 매체도 많다.

드디어 이들을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서게 했고 현재까지

9x 플래티넘의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핫100 탑텐 싱글 셋

포함하여 정말 많은 수록곡차트셋리스트를 휩쓸었다.



('Who's Crying Now' from Escape, 1981)



('Stone in Love' from Escape, 1981)



('Lay It Down' from Escape, 1981)

(가장 높은 초고음 샤우팅이 아마 이 트랙에서 나올 걸)




 (Frontiers)




전작이 워낙 초대박인지라 상대적으로 약했다 뿐이지 1983년

Frontiers 앨범 역시 대박이었다. 6x 플래티넘을 기록한 앨범이

차트 2위까지 올랐고 싱글에서 탑텐 하나, 탑20 언저리에 세 곡이

나왔다. 영국 앨범 차트에선 역대 최고 성적인 6위까지 오르기도.



오늘날까지 이들 음악을 규정하는 좋은 곡들이 뽑혀 나왔다.

Separate Ways (Worlds Apart), Send Her My Love,

After the Fall, 또한 Faithfully까지... Separate Ways

싱글 8위까지 올랐다. 버릴 트랙이 없는 전작의 완성도가 주욱

여기까지 이어져 찬사를 받았었다. 속된 말로 돈을 갈퀴로 쓸어

담던 호시절.. 단 너무 상업적이라고 욕도 먹었고. 전작이 헤비

메탈이라면 본작은 왠 어덜트 컨템포러리였다. 저런.



Ask the LonelyOnly the Young 등 두 곡은 앨범 발매

직전에 빠져서 영화 OST로 팔려 나갔다. 특히 후자는 좋은 곡

많기로 소문난 비전 퀘스트에 삽입되어 싱글 탑텐에도 오른다.

대신 두 곡은 컴필레이션으로선 이례적으로 88년 차트 10위에

오른 Greatest Hits에 들어간다. Chain Reaction 역시

라디오 방송 신청이 높아 고른 지지를 얻었다.



 (Greatest Hits)



('After the Fall' from Frontiers, 1983)



('Send Her My Love' from Frontiers, 1983)



('Chain Reaction' from Frontiers, 1983)



('Only the Young' from Vision Quest OST, 1985)



('Ask the Lonely' from Two of a Kind OST, 1983)




83~87년 시기는 월드 투어에 성공한 밴드로서 저니의 커리어

상 최정점이자 동시에 리스크도 떠안고 지낸 시기였다. 뭐 아주

특별한 위험은 아니고 어느 밴드에나 있을 법한 문제, 즉 멤버들

솔로 활동 관련한 것이지. 특히 프론트맨의 문제가 심한 거고.



음악적 창의성과 테크닉과 상업성을 갖춘 보컬리스트이니

솔로 제의가 안 들어오면 이상한 일. Frontiers 발매 이듬해

페리의 첫 솔로 앨범인 Street Talk가 발매되고 그냥저냥

정도가 아닌 더블 플래티넘 급의 대박을 쳐버린다. 싱글의

기록도 빼어났다.



Oh Sherrie 싱글이 핫100 차트에서 무려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꽤 히트했으니 듣고 기억하는 분도 있을 듯.

이 곡은 여러 모로 저니의 컬러와 판박이 성격이 강하고

밴드 멤버들도 이를 인정하여 함께 협연도 했다 한다.

뮤직 비디오 앞부분에 스티브의 어색한 연기 파트도

나오니 스킵을 원하는 분들은 2분경부터 보면 된다.



(Street Talk)



('Oh Sherrie' from Street Talk, 1984)




이 시기 저니는 정말 잘 나갔다. 닐 숀 로니 제임스 디오

불러모은 Hear N' Aid 프로젝트에 초청되셨고 스티브 페리

그 유명한 USA for Africa에서 당당히 2부의 한 소절을

불러 제끼셨다. 평소 친한 케니 로긴스 다음으로...

We Are the World 뒷부분은 다른 아티스트

중심이니 2분 30초 경 앞부분만 보면 된다.



(Stars 중 닐 숀 파트만)



(We Are the World 중 스티브 페리 파트만)



 (Raised on Radio)




85~86년경 다시 스튜디오 앨범을 위해 뭉쳤을 때는 정말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밸로리 스미스가 음악적 견해 차로

무려 잘리기까지 했고. 전문 세션맨 랜디 잭슨이 대체 멤버로

투입되었고 드러머는 공석에 투어 세션으로 떼운 시절. 잭슨

하면 아메리칸 아이돌 평가위원으로 유명한 그 분 맞다.



혼돈의 86년, Raised on Radio 앨범이 발매된다. 더블

플래티넘탑20 싱글 4곡의 달성엔 성공하나 전작에 의존

결과임은 자명했다. (Be Good to Yourself, I'll Be Alright

Without You, Girl Can't Help It, Suzanne이 그 네 곡.)

결국 87년 저니는 한 차례 활동 중단의 수순을 밟게 된다.



(Jackson)



('Girl Can't Help It' from Raised on Radio, 1986)



('Be Good to Yourself' from Raised on Radio, 1986)

(이래 뵈도 핫100 9위까지 오른 곡)



80년대 후반이 되어 각자의 길을 가게 된 페리 , 케인.

페리는 솔로 아티스트로서,  케인은 당시 유행하던

슈퍼 그룹을 결성하여 살 길을 모색하는 식으로 변화한다.

배드 잉글리쉬가 이때 결성된 반은 프로젝트 성격인 밴드로서

페리 케인 베이비스 출신 존 웨이트 리키 필립스,

여기에 딘 카스트로노보가 가담한다.



배드 잉글리쉬는 얼핏 들어도 참 저니스러운 사운드를 구사했다.

팬덤에서까지 저니 창작성의 연장선에서 이해하고 있을 정도..

몇몇 트랙은 중박 정도의 싱글 히트를 기록했다. 명작곡가

다이앤 워렌이 쓴 When I See You Smile 싱글 차트

1위까지 올랐을 만큼.



('When I See You Smile' by Bad English, 1989)




 (Trial by Fire)




87년 중단 후 8년간 서로 떨어져 솔로 활동에만 매진하다
95년에 잠깐 다시 뭉쳐 Trial by Fire 앨범을 낸다. 빌보드
12위까지 오르는 싱글도 내지만 페리가 운동 중 부상을
당하여 수술 일정이 잡힌 관계로 투어가 불가능했다. 이때
페리는 나머지 멤버들로부터 무언의 압력 같은 것을 느껴
불편했다 하고 영원히 저니를 떠날 것을 공표한다. 결국
20세기 마지막 플래티넘을 기록한 앨범을 남기고 말이다.


*이 시기 페리의 심리 상태에 대해선 다른 견해도 존재한다.
전혀 다른 해석과 분석은 아래 링크를 참조.



다시 저니라는 정체성을 찾는 작업이 중요함을  케인
중심으로 깨닫게 되지만 비어 있는 보컬리스트의 자리가 문제.
페리의 존재감은 재적해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커진 것 같았다.

딴에는 여러 가지 방도를 시도했다. 전술한 카스트로노보

겸직 사례도 있고.. 특히 98~06년 동안 함께 한 보컬리스트

스티브 오임팩트 나름대로 컸다고 본다.



전에 즐겨 보던 제리의 한창 때 라이브 동영상이 있었는데

새 인물이 자리잡은 이후 내린 모양이다. 없어졌네. 아래는

그런 대로 오디오만으로 확인하실 수 있는 링크.. 제리

탈퇴 사유는 곡이 가진 극강 난이도가 보컬리스트 당사자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 복합적인 것으로 추정된다.



(Augeri)





(04년경 오제리와 카스트로노보가 모두 출연. Keep on Runnin'..)

https://www.youtube.com/watch?v=3wZgP-qhj_E




저니 셋리스트가 가진 부담이란 것이 그 정도인 거다..

특히 밴드의 상징과도 같은 Separate Ways 같은 트랙의

난이도는 정말.. 왜 키를 낮추지 않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인터넷의 댓글도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케인의 독단적 밴드 운영을 성토하는 일부 팬도 있지..)



제리가 건강상 이유로 하차한 후 약 1년여 동안 제프

스캇 소토도 재적했다. 잉베이 말름스틴과 활동으로 꽤

유명하고 검증된 보컬리스트였으나 기존 멤버와의 성향

차이가 심해서 거의 쫓겨나고 만다.



 (Soto)



(제프 스캇 소토와.. I'll Be Alright Without You)

https://www.youtube.com/watch?v=zwFvx49OU2o




이렇게 그냥저냥 침몰할 뻔하다가 2007년 무렵 밴드는

기사회생한다. 잘 알려진 대로 필리핀에서 날아온 무명의

커버밴드 출신 보컬리스트를 영입한다는 동화 같은

스토리와 함께. 오오, 아넬 피네다가 등장한 것이다.



피네다의 등장은 괜찮은 마케팅 요소였다. 적절하게 감동적인

스토리와 오랜 무대 경험에서 오는 안정적 실력이 버무려진

결과였지. 하지만 67년 양띠인 이 형님도 너무 늦은 나이에

발탁된 거 아니냐, 진성 팬덤은 아직도 우려가 크다. 가뜩이나

난이도 높은 밴드의 트랙들을 풀타임으로 소화하기엔 정말...

외계인 고문, 아니 피네다 고문 아니냐고.



그리고 10년대 들어 그런 궁시렁 소리가 늘어나면 날수록

결국 종착점은, 스티브 페리가 얼마나 위대한 보컬리스트였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제리 피네다나 심지어 카스트로노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결국 그와의 비교를 피할 도리가 없으니.



 (Pineda)



(피네다와 재녹음한 오픈암스)

https://www.youtube.com/watch?v=I5_qNpALAOU



('After All These Years' from Revelation, 2008)

(피네다 영입 후 2008년의 첫 정규 앨범 중에서)




아레나 락 또는 AOR, album-oriented rock을 대변하는

아메리칸 하드락의 대표 주자가 저니였다. 대형 스타디움을

중심으로 대규모 페스티벌식 콘서트에 최적화한 밴드들이

70년대 중후반부터 영미권 시장에서 우후죽순 성장한 것..

그 중심에 저니가 있었다.



대형 PA에서 빵빵하게 터져 나오는 스타디움에서 청중을

사로잡는다는 뭐 그런 컨셉의 장르 아닌 장르인 건데...

청중의 떼창과 호응이 가능해야 하고 그러려면 귀에 쏙

박히는 후크성 강한 멜로디 라인을 가져야 했고 이런

음악은 필연적으로 라디오 친화적인 매니아 성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고... 뭐, 대략 이런 특성을 지닌다.



파워 발라드락 앤썸 등, 떼창이 가능한 육중한

음률을 뽑아내는 뮤지션의 기술이 중요한 때였다.

기타나 키보드의 리프를 매끈하게 만들어낼 줄 아는

것이 밴드 멤버로서의 큰 미덕으로 통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락 밴드의 투어 공연이란 것이 산업적인 규모로

커지기 시작해 오늘날 라이브 네이션 같은 기업형 모델로

발전한다. 롤링 스톤즈, 핑크 플로이드, , 킹크스시카고,

플리트우드 맥스틱스, 토토다이어 스트레이츠제네시스,

러쉬, U2, 보스턴, 밴 헤일런 등이 여기로 분류되었고

저니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헤드라이너 중 하나.



이런 밴드들에게 페리의 흉성이나 케인의 리프

처럼 선굵은 남성적 파워 사운드 요소는 장수의 생명줄

같은 것이었다. 페리는 대략 1980년 경부터 시작한

새로운 아레나 하드락 최강 밴드가 일군 사운드 성과의

핵심이었다.



('Faithfully' from Frontiers, 1983)




한국에선 Open Arms가 발매 당대부터 즉각적인 반응을

얻었고 약간의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Faithfully를 발견해내

현재의 인기에 다다른 걸로, 그렇게 기억한다. (그 약간의

시간이 얼마였냐에 대해선 사람의 기억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는 걸로 정리하자. 공식 기록이 없으니...)



여담으로, 81년 텍사스 휴스턴 라이브는 진리인 듯하다.

반복해서 시청하니 휴스턴에 있는 듯 착각이... 영 시간이

없는 분들은 검색어 잘 찾아서 이 라이브 한 번만 보면

스티브 페리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참고로 MTV가 제작한 것.






주지하다시피 이들 사운드의 핵심은 의 기타 및 케인
키보드가 가진 육중한 톤과 귀를 사로잡는 리프이다.
유명한 Gibson엔도시로서 56년형 Les Paul과 ES-335
들고 연주하는 모습이 대중에 각인되어 있다. 케인의 기어 중
가장 유명한 건 Roland Jupiter-8이겠지만 Separate Ways
작곡 당시엔 Oberheim OB-X를 썼을 거란 추정이 대세이다.


(Gibson Les Paul)



(Roland Jupiter-8)

https://www.youtube.com/watch?v=Xw4AV_BeE24

*Chain Reaction. 2분 5초경. 단체 발연기는 덤..




영원한 저니프론트맨 스티브 페리. 금세기엔 대외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지는 않아서 건강에 이상이 있지 않은지 염려도

된다. 그래도 17년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선 밴드 멤버들과

조우했고, 무엇보다 까마득한 후배로서 자신의 후임을 맡고

있으면서도 페리에 대한 존경을 숨기지 않는 아넬 피네다

따뜻하게 안아주고 격려해 선배로서 큰 귀감이 되었다 한다.


https://news.abs-cbn.com/entertainment/04/08/17/look-arnel-pineda-meets-journeys-steve-perry-for-first-time






페리가 90년대에 잠시 저니와 재결합하여 Trial by Fire

앨범을 낸 그 순간이 있었다. 마지막 불꽃이라고 할까. 여기서

싱글 커트된 When You Love a Woman이야말로, 페리

마지막 전성기를 확인할 수 있는 절정의 트랙이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강력하게 추천하며 이번 포스팅을 마친다.



('When You Love a Woman' from Trial by Fire,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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