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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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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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 콜린스 Phil Coll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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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디 머큐리 Freddie Mercury




팝 음악의 역사에서 80년대애시당초 마이클 잭슨

시대 아닌가누가 뭐라 할 여지가 전혀 없지. 절대 왕정이

군림한 그 시대에 남성 팝가수로서 MJ의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당당한 업적을 거둔 뮤지션이 있었다.



어차피 지금 시대야, 저 안경 쓴 빠른 51년생 할아버지가

백설공주 릴리 콜린스 아빠래, 정도 밖에 관심은 두지도

않겠지만. 20년 전쯤 얘길 꺼냈다면 누가 진성 제네시스

팬덤이냐며 피터 가브리엘 진영과 찢어갈려 진정

쓰잘데기 없는 키보드 전쟁이 벌어졌을 걸.



왠지 음악 산업계에 만연한 숱한 오해와 루머의 희생양

이미지이신데.. 사실, 70~90년대를 당당하게 관통하며 총

판매고 1억 5천만 장이란 역대급 성공을 거둔, 한 사람의

위대한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 세션맨이셨다. 제네시스에서

음악을 시작해 한 시대를 호령한 명가수...!

필 콜린스 Phil Collins 이야기를 해볼까.









언제부턴가 캐릭터가 되어버린 원형 탈모에 속지 마시길

바라옵고, 이 분 원래 아역 배우 출신이시다. 올리버 같은

뮤지컬에도 출연하셨고 재미없기로 악명높은 비틀즈 영화

A Hard Day's Night에도 단역 출연하셨다. 80년대

에서 꽤 기본기 충실한 연기력을 보여준 데엔 다

그런 배경이 있었던 거다. 또 한때 영화 주연도 했고.



다섯 살 때부터 유아용 드럼 키트를 다루었고 본격적인

성인용 세트는 청소년이 되면서부터 썼다고. 링고 스타

버디 리치의 영향을 깊게 받아 빅밴드 재즈의 테크닉을

익숙하게 다루게 되었다지.



그래, 콜린스를 얘기하면서 훌륭한 드러머로서의 경력을

건너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애초에 음악가로서 시작을

드럼 치면서 시작한 분이니까.



 (Genesis)




현장에서 다른 뮤지션의 영향을 재빠르게 캐치하는 순발력

면에서는 아마도 최고일 것 같다. 숱한 히트곡을 들어봐도

알 수 있지만 여러 모로 영리한 뮤지션임에 틀림없을 듯.

특히 탄탄한 재즈 드러밍 기본기에서 비롯된 사이드 탐탐

컴비네이션은 드러머로서의 트레이드 마크일 것이다.

흡사 버디 리치의 재림을 보는 듯..



여기서 자주 언급하는 디지털 드림 도어 랭킹에서 현재

34위이시고 모던 드러머가 선정한 50대 연주자 랭킹에선

21위. 논란이 컸던 16년의 롤링 스톤 매거진 랭킹에선

43위를 차지하셨을 정도. (그래도 별다른 지표로 인용할

것이 없어 언급은 하겠다. 욕먹은 내용은 아래에 링크.)



(Digital Dream Door, 100 Greatest Rock Drummers)

https://digitaldreamdoor.com/pages/best_drummers.html


(Modern Drummer, 50 Greatest Drummers of All Time)

https://www.moderndrummer.com/article/march-2014-50-greatest-drummers-time/


(Rolling Stone '16, 100 Greatest Drummer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drummers-of-all-time-77933/phil-collins-2-142870/


- Consequence of Sound rebukes the Rolling Stone ranking.

https://consequenceofsound.net/2016/03/rolling-stone-releases-list-of-the-100-greatest-drummers-and-neil-peart-is-not-no-1/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미 50년생 고딩 동기들끼리 데뷔해

끈기있게 활동하고 있던 제네시스와의 인연도 드러머 공고

난 거 보고 오디션에 응하면서부터. 밴드의 창단 멤버 앤서니

필립스가 탈퇴하면서 드러머였던 존 메이휴를 내보내고 새

드러머 공고를 낸 것이 1970년의 일이었다.



저 테일러 아직 아무 것도 아닐 때여서 오디션 보러

오라는 제안을 받았었단다. 피터 가브리엘 부모님 집에서 치른

오디션. 기다리는 동안 앞의 경쟁자들 리듬 패턴을 모조리 외워

똑같이 카피해내 멤버들이 감탄했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든지

한 번은 들어봤을 유명한 일화. 여기에 기타 주법의 선구자

대접을 받는 명인 스티브 해킷이 이때 함께 영입되었다.



제네시스에서의 필 콜린스는 재기발랄한 fill-in을 넣을 줄

아는 데다 탄탄한 박자감을 가진 드러머이면서도 훌륭한

노래 실력도 겸비한 멤버였다. 테너-바리톤 음역대에 지성미

넘치는 카리스마와 연극적 스토리텔링강한 리드 보컬

피터 가브리엘에 비해 낭만적 감성을 표현할 줄 아는 하이

테너로서 가브리엘 위로 화음을 넣거나 한 옥타브 높이는

방식의 다채로운 연출이 콜린스로 인해서 가능해졌다.



보컬피터 가브리엘, 키보드토니 뱅크스, 베이스

마이크 러더포드, 기타스티브 해킷, 드럼필 콜린스.

이 멤버로 만든 최초의 앨범이 71년에 발표한 제네시스

3집 Nursery Cryme72년 Foxtrot, 73년 Selling

England by the Pound74년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등 정규 명반이 줄을 잇다가... 밴드보다

솔로 활동이 필요하다 느낀 가브리엘이 팀을 탈퇴한다.



('Supper's Ready' from Foxtrot, 1972)

*이건 스튜디오 버젼 오리지널.



 (Genesis Live)




가브리엘이 리드하던 제네시스 시절은 추후 다른 편에서

상술하는 편이 더 낫겠지...만, 이 시기 드러머 콜린스

활약상을 확인하고 싶다면 Supper's Ready를 비롯하여

In the CageThe Knife 같은 트랙을 추천한다.



Supper's Ready퀸텟 전성기의 제네시스에서 가장

중요한 걸작 대곡인지다섯 멤버 전부 엄청난 기여도를

보여주는 곡이다. 옆에서 뱅크스, 뒤에서 콜린스가 매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기에,

라이브를 감상하길 추천하고..



In the Cage는 스튜디오 버젼으로만 들어도 뱅크스-콜린스

-러더포드의 백킹 조합이 톱니바퀴 맞물리듯이 오밀조밀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 이 앨범은 대체로

가브리엘이 플롯과 작사에만 신경쓰느라 음악적인 작편곡

나머지 넷이 오롯이 책임졌고 특히 뱅크스가 빛을 발한다.



The Knife는 본래 콜린스가 들어오기 전 2집에 있던 곡인데

제네시스의 1973년 라이브 앨범 Genesis Live에서 콜린스

교체해 연주한 버젼이 원곡보다 낫다는 말이 많다. 이 앨범은

가브리엘-제네시스 시대의 유일한 라이브. 원래 정규 앨범에서

드러머는 존 메이휴다.



('In the Cage' from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1974)



('The Knife' from Genesis Live, 1973)



*The Knife의 스튜디오 버젼 오리지널.

https://www.youtube.com/watch?v=O-78TeJlq24







넷만 남게 된 제네시스리드 보컬 공고를 또 냈는데

수백 명 지원자보다 콜린스가 더 노래를 잘 했다네..?!

(이때 부른 노래가 제플린 Kashmir의 영향 하에 만든

Squonk였다고.) 앞으로 한 시대를 풍미할 보컬리스트

필 콜린스의 공식 탄생은 이렇게 소소한 일화로부터

시작했다. 75년경.



네 사람 체제에서는 76년에 A Trick of the Tail

Wind & Wuthering 두 장의 앨범을 냈다. 이 시기는

리듬 섹션 러더포드콜린스를 제외하고 해킷

뱅크스 사이에 작편곡의 주도권을 놓고 미묘한 신경전이

관찰되던 때이기도.



어느 밴드나 키보드를 메인 파트로 갖고 가면 기타와의

밸런스를 어떻게 맞출 건지가 창작 과정에서 논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도 그 의례를 피할 수 없었으니 앨범을

달랑 두 장만 내고 해킷이 떠난 이유가 이런 면이

아니었을까 추정할 수도 있겠다.



(A Trick of the Tail)



(Wind & Wuthering)



('Squonk' from A Trick of the Tail, 1976)




쿼텟 시기 콜린스는 아직 뮤지션으로서 100% 자아를

각성했다고 볼 순 없지만 무한한 포텐셜에 슬슬 예열 시동을

걸고 있었다. Robbery Assault and Battery 같은 곡에서

가브리엘과 전혀 다른 결로 풍자적 수사에 능한 콜린스

보컬 스타일이 움트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Los Endos는 아기자기한 잔 리듬에 강한 콜린스식 드러밍

폭발하는 팬덤의 인기 트랙이고, 재즈 퓨전의 영향을 받고 있던

의 색깔은 Wot Gorilla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뱅크스

Afterglow는 신비로운 질감의 백킹이 아름다운 발라드로서

시종일관 울려퍼지는 Moog Taurus의 이펙트가 매우 예뻐서

숨겨진 보석처럼 좋아하는 이 많다.



아닌 게 아니라 쿼텟 시대에 오히려 숨은 명곡이 많다는 평도

자자하다. 원래 제네시스의 특징이 파도 파도 새로운 좋은

노래가 끊임없이 나온다는 데 있다...고, 대다수 열성 팬들이

입을 모으곤 한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다지. 남은

셋과 해킷과의 관계 등, 쿼텟 시대 이야기는 나중에 다른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을 것 같다.



('Robbery Assault and Battery' from A Trick of the Tail, 1976)



('Los Endos' from A Trick of the Tail, 1976)



('Afterglow' from Wind & Wuthering, 1976)






지금까지 서술한 제네시스의 성과가 음악적인 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음에 눈치 채셨겠지만, 사실 퀸텟 쿼텟 시대의

상업적 성과가 메가히트 급은 아니었다. 공식 인증도 골드

전부였고 앨범 차트로만 영국 3위, 미국 30위권이 가장 높은

기록이며 싱글 히트곡은 거의 없다고 보면 정확하다. 물론

팬덤의 매니아적 충성도가 높고 당시 지지층이 현재 인터넷

시대에까지 이어지고 있음도 엄연한 사실이지만 말이다.



제네시스의 새로운 시대는 아마도 이 무렵부터 새 방점을

찍는 편이 옳지 않을까. 프로그레시브 기원으로부터 서서히

졸업하고 시대의 흐름을 좇아 포스트 펑크의 영향을 받은

프로그팝소프트락으로 변신한 트리오 제네시스. 그

옛날 한때만 하더라도 기존 팬덤으로부터 맹혹한 비난을

받아야 했던 그 변화는 멤버의 탈퇴에서 비롯된.



77년에 결국 기타리스트 이 탈퇴한다. 앨범 구성에

소외감을 느꼈고 밴드 일원으로서 더 이상 원하는 음악이

나오지 않음을 깨달으셨다고. - 본래 솔로 아티스트으니..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정신 차린 뱅크스, 러더포드, 콜린스

어덜트을 향해 일보전진하기로 마음먹고 뛰어난 연주력을

가진 투어 멤버를 보강한다. 물론 앨범 작업은 병행하고.



프랭크 자파드에서 연주한 재즈 드러머 체스터 톰슨,

장 뤽 폰티 그룹에서 연주한 재즈 기타리스트 대릴 스투

등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제네시스와 함께 한 정상급 세션

멤버가 이때 영입된다. - 전작 앨범들의 투어 땐 예스

킹 크림슨 출신 빌 브루포드(!)가 작업한 적도 있다.



우여곡절을 딛고 세 멤버가 새로 완성한 78년의 앨범

And Then There Were Three. 제목은 물론 애거서

크리스티의 저명한 소설에서 따왔겠지. 리드 기타

포지션을 바꾼 러더포드가 약간은 버벅댔뱅크스

신디가 전체 사운드를 메꿔 프로그라기보다 신스

더 가까운 색과 결을 선보인다.



본작은 영국 앨범 차트 3위, 독일 2위, 미국 14위 등

그때까지의 제네시스 앨범 중 최고의 성공을 거두

핫100 차트 23위까지 오른 최초의 싱글 히트까지 낸다.

소폭 히트한 Many Too Many 같은 발라드가 있었지만

지금도 트리오를 대표하는 어덜트 발라드 Follow You

Follow Me가 역시 세계적으로 히트한 대표곡일 게다.



러더포드가 인트로의 리듬 리프를 치고 뱅크스가 스트링

코드 시퀀스를 깔아주니 콜린스가 중심 선율을 부르는..

인터뷰에서도 인정했듯이 지나치게 긴 음악을 복잡하게

만들기 즐겼던 세 멤버에게 있어 스스로 새로운 음악에

눈뜨게 한 진일보의 프로세스가 이 노래에서 나온 거다.



물론 모든 트랙을 팝으로 채운 건 아니고 Down and Out,

Ballad of Big, Deep in the Motherlode, The Lady

Lies가 보여준 신스-프로그 정체성은 여전하다. 다만

히트 튠의 파급 효과가 너무 컸던 거겠지.



(And Then There Were Three)



('Follow You Follow Me' from And Then There Were Three, 1978)



('Many Too Many' from And Then There Were Three, 1978)



('Ballad of Big' from And Then There Were Three,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dlqn2_n9FW4


('Down and Out' from And Then There Were Three,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HeqFXo5xtcE




앨범 한 장만이면 해프닝으로 그칠 테지만 제네시스는 정말

변화하고 있었고 80년 10집 Duke는 시대의 엄혹한 흐름에

강력한 화룡점정을 찍어준 수작 앨범이다. 아트 락의 미약한

손아귀를 이제는 뿌리칠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래도 본작만

프로그레시브 정체성을 온몸으로 기억하는 이들의 마지막

결산 같은 성과였 할 만하다.



이들이 공식적으로 Duke Suite 칭하는 Behind the

Lines - Duchess - Guide Vocal - Turn It On Again -

Duke's Travels - Duke's End의 6곡 연작은 본작의 대표

트랙. 원래는 Supper's Ready처럼 30분짜리 대곡으로

묶으려 했지만 그냥 쪼개서 앨범 전체에 분산시켰다고.

(Supper~본래 7곡 소곡의 연작 형식.)



이후 제네시스에서 이런 대곡 구성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아,

팬덤은 72년 Foxtrot와 유사한 구조의 Duke를 소중한

마지막 마스터피스 급으로 취급한다. Suite에 속하지 않는

Misunderstanding도 별도 싱글로서 미국 차트 14위까지

오르고 Man of Our Times, Alone Tonight 등 트랙이

독자적인 인기를 누리는 등, 여러 면에서 수작 앨범이다.



수작일 뿐 아니라 상업적인 성공도 전작을 넘어서게 된다.

최초로 영국 앨범 차트 정상을 밟았고 미국에선 11위를

찍는다. Suite 6곡 중 가장 역동적인 Turn It On Again

싱글로 발매되어 영국 차트 탑텐에 든다. Duchess

인트로에서 Roland CR-78을 써서 밴드가 처음으로

드럼 머신을 적용한 곡으로 남게 된다.



분명 시대는 변하고 있었고 팬덤의 구성도 예전에 짐짓

진중한 프로그에 열광하던 남성 중심에서 짧은 어덜트

발라드에 반응하는 여성층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미

전작에서부터 이를 캐치한 세 멤버의 대담한 선택이

성공을 거둔 것이었으나 기존 팬덤과의 지리한 전쟁도

이제 막 시작한 셈이었다.



(Duke)



(Roland CR-78)

*아래 Duchess 뮤비 맨앞에 등장.



('Turn It On Again' from Duke, 1980)



('Misunderstanding' from Duke, 1980)



('Duchess' from Duke, 1980)



('Behind the Lines' from Duke, 1980)



('Alone Tonight' from Duke, 1980)



*Duke Suite 80년 런던 라이브 편집본

https://www.youtube.com/watch?v=VUr1dcg-PEw&t=1115s






아마도 79~81년 기간은 갓 서른 언저리의 젊은 감각을

날카롭게 유지하던 세 멤버들 모두에게 도전과 갈등의

시기였을 것이다. 첫 결혼에 위기가 닥쳐 밴드에서 잠시

멀어져야 했던 콜린스를 위해 뱅크스러더포드는 활동

잠정 중단을 용인하고 각자의 첫 솔로 앨범을 발매했다.



끝내 콜린스이혼에 이르게 되고 이는 젊은 음악가로

하여금 정신적으로 성숙해질 기회를 부여하게 되었으니

이런 질풍노도의 내적 변화가 81년에 발표한 콜린스

첫 솔로 앨범에 그대로 반영된다. 혁신적 사운드 레코딩

기술을 담은 히트작 Face Value 앨범이었다.



형해화한 부부 관계의 종말에서 겪은 상실감을 처절하게

묘사한 In the Air Tonight이 앨범의 대표곡이다. 영국

싱글 차트 2위, 미국 차트 탑20까지 오른 성공을 거두고

앨범이 거둔 성공 - 영국 정상미국 탑텐 - 을 리드했다.

80년대 콜린스어덜트 컨템포러리 명곡의 출발점이자

신호탄인 거다.



이 곡의 드럼 녹음 방식이 그를 상징하는 혁신적 기술이다.

gated reverb라고, 악기의 주음을 잡는 마이크와 방음벽

등에 부딪혀 잔상으로 돌아오는 부차적 음을 잡는 마이크를

항상 한 쌍으로 갖춰 집음하는 기술이다. 80년대 필 콜린스

드럼 사운드라 하면 누구나 다 기억할 만한 소리가 바로 이

방식으로 만든 것. 특히 탐탐이 가진 풍부한 팀버 질감을

손실없이 담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가 여전히 친하게 지내던 동료 피터 가브리엘의 솔로 앨범

곡 중 Intruder의 드럼을 쳐주다가 엔지니어 팻검이 개발한

방법이다. - 자기들끼리는 이렇게 동료애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팬덤이란 명분으로 괜한 싸움 좀 붙이지 말자.



(Face Value)



('In the Air Tonight' from Face Value, 1981)

*이 뮤직 비디오도 꽤 화제였다. 제네시스 드러머 맞냐며.



('Intruder' by Peter Gabriel,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xvAmj3k3Imc


*gater reverb 기술에 대한 설명

https://www.youtube.com/watch?v=cTo75yjL9R4




81년 11집 Abacab에 이르면 제네시스가 더 이상

프로그레시브 락과 상관이 없음을 모두가 깨닫게 된다.

그만큼 이 앨범의 팝락 성향은 신선했지만 프로그

좋아하던 기존 팬덤은 충격과 공포에 부들부들 떨고..

- 왜인지 콜린스더 큰 욕을 먹는다. 왜 그가?



프로그에서 비롯된 역사적 배경 없이 순수하게 즐기면

매우 훌륭한 대중음악 앨범이다. 당시 뉴웨이브의 패턴을

완벽하게 체화한 세 사람의 작편곡 감각이 눈부시고 특히

신디사이저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토니 뱅크스의 솜씨는

괄목할 만하다. 본작쯤에 이르게 되면 묻혀 있던 마이크

러더포드의 내공조차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싱글로 발매한 Abacab, No Reply at All, Keep It

Dark, Man on the Corner 모두 탁월한 대중적 감각을

자랑하며 탑40급의 성공을 거두었다앨범이 최초로

더블 플래티넘에 이르렀고. 콜린스보컬 실력은 이때

절정기를 맞고 있었다.



참고로 abacab이란 존재하지 않는 단어이다. 악절 구성을

A-B-A-C-A-B 형식으로 가져가려던 초기 아이디어가 그냥

제목으로 굳은 것. No Reply at All에 등장하는 멋들어진

브라스는 얼쓰 윈드 앤 파이어혼 섹션 주자들이 결성한

피닉스 혼즈연주. 이들은 이후 필 콜린스제네시스

앨범 및 투어에서 세션으로 자리를 잡아가신다.



(Abacab)



('Abacab' from eponymous album, 1981)

*백킹 보컬은 Tony Banks와 Mike Rutherford의 실제 목소리.



('No Reply at All' from Abacab, 1981)

*뮤비 속 브라스 연기자들은 물론 Phenix Horns가 아니라 멤버들.



('Keep It Dark' from Abacab,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gQkiqQ7zZBQ


('Man on the Corner' from Abacab,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hUMti7b41yw




82년엔 Paperlate 등 세 을 담은 EP 3X3를 발매하고,

연이어 다음 달엔 포스트 펑크 시대 제네시스의 기념비적

라이브 앨범Three Sides Live - 같은 제목의 콘서트

필름도 포함 - 를 발표해 팬의 지지를 얻었다.



같은 해 10월 2일, 러더포드의 생일이기도 한 날 비내리던

토요일 저녁 잉글랜드 버킹엄셔에서는 경천동지할 일회성

콘서트가 열렸다. Six of the Best. 사실상 탈퇴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브리엘해킷이 남은 세 사람과 재결합하여

70년대 히트 트랙을 연주한 초유의 사건.. 기존 팬과 신규

팬이 모두 대동 단결하는 신기한 현상이 목격되었다. - 이날

기타대릴 스투머, 드럼체스터 톰슨이 메인이었다.



이 무렵 피터 가브리엘은 솔로 활동의 성공에 힘입어 월드

뮤직 페스티벌 WOMAD를 막 출범시킨 시점이었는데

축제 초창기 막대한 빚을 청산하기 위해 이런 이벤트를

벌였다고. 덕분에 깔끔하게 빚갚고 오늘날 세계인이 아는

워마드 음악제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 페미니즘 단체와

상관없는 축제 말하는 거임. 세계적으론 이쪽이 더 유명.



이후에도 이들이 이렇게 재결합하는 일이 거의 없었고

또 이 시기가 뮤지션으로서 기량이 전성기였던 때인지라

여러 모로 중요한 공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애석하게도

아카이브 레코딩이 남아 있지 않다! 지금 들어보려면 당시

관객이 소장해온 부틀렉 말고 방법이 없다. 아..ㅠㅠ



그리고 이런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피터 가브리엘 진영과

스티브 해킷 진영과 제네시스 세 사람 사이 인간적인 친분은

아무런 문제 없었다고, 여러 번 반복한다. 아, 왜 '식스'냐고?

뱅크스, 러더포드, 콜린스, 투머, 톰슨 + 가브리엘이니까.

원래 해킷은 스케줄이 안 되어 못 오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부랴부랴 달려와 끝내기 두 곡 연주하고 가셨다고.



(3X3)



(Three Sides Live)



('Paperlate' from 3X3, 1982)

https://www.youtube.com/watch?v=8AhBJwARAes



Six of the Best 셋리스트:

Back in N.Y.C.

Dancing with the Moonlit Knight

The Carpet Crawlers

Firth of Fifth

The Musical Box

Solsbury Hill - 피터 가브리엘(!) 솔로 히트곡

Turn It On Again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Fly on a Windshield

Broadway Melody of 1974

In the Cage

Supper's Ready

(encore) I Know What I Like

(encore) The Knife



*당시 관객들이 녹음한 부틀렉 아카이브

https://www.youtube.com/watch?v=KPdEPC2AsB8

https://www.youtube.com/watch?v=o3e3w48rZrw&t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kvNP54Usc1On51kHceanFKhw-P9ysmWG




그로부터 한 달 여 후, 82년 11월에 콜린스는 그의 솔로 2집

Hello I Must Be Going을 발표한다. 데뷔 앨범에서 촉발한

우울 결혼 생활 백서의 분위기가 이어지는 작품이었다. 더블

플래티넘을 넘고 영미 앨범 차트 탑텐에 들었지만 전작의 In

the Air Tonight만큼 임팩트 강한 싱글이 없었다.



그래도 Don't Let Him Steal Your Heart AwayWhy

Can't It Wait 'Til Morning처럼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발라드가 전체 트랙의 완성도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과거

슈프림즈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You Can't Hurry Love

이르면 그모타운R&B 작법에서 받은 영향을 느낄 수

있고 영국 차트 탑에 오르는 등 가장 크게 히트친 싱글이 된다.



히트와 상관없이 팬덤과 평단이 극찬한 트랙은 I Don't Care

Anymore. In the Air Tonight에서 연결되는 정서가 강한

비트에 실려 폭발한 수작 싱글이었다. 이 노래로 솔로 아티스트

자격으로는 생애 최초로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지명되었다.



(Hello, I Must Be Going!)



('You Can't Hurry Love' from Hello I Must Be Going, 1982)

*약간 깨방정이신데 이건 60년대 슈프림즈를 따라 한 것.



('I Don't Care Anymore' from Hello I Must Be Going, 1982)

*베이시스트 Mo Foster가 Moog Taurus를 손으로 연주한다.



('Don't Let Him Steal Your Heart Away' from Hello I Must Be Going, 1982)

https://www.youtube.com/watch?v=b2W-lxDq4-Y


('Why Can't It Wait 'Til Morning' from Hello I Must Be Going, 1982)

https://www.youtube.com/watch?v=1sjkge59ndw




이들은 83년에 열두번째 정규 앨범 Genesis로 돌아온다.

그렇다.. 그때까지 데뷔 앨범에서도 셀프 타이틀을 쓴 적이

없었는데, 이는 수록한 전 트랙을 멤버들이 공동 작곡으로

만들었음을 시사하는 의도였지만, 평론가들은 이제 이들이

본격적인 팝락 밴드로서 재도약한다는 뜻이라고 우겼다.



전작의 성공을 또 뛰어넘은 앨범이었다. 영국과 독일의 앨범

차트에서 을 찍고 유럽 4개국에선 2위를, 미국 차트에선

9위를 기록한다. 그때까지 가장 큰 싱글 히트이던 Follow

You Follow Me를 뛰어넘어, Mama라는 세계구급 히트

싱글이 영국 등 9개국에서 탑텐에 들었고 미국의 핫100

차트에선 That's All이 최초로 탑텐에 드는 성공이었다.



이밖에 Home by the Sea, Illegal Alien, Taking It

All Too Hard가 싱글로 커트되어 현재까지 스테디셀러

인기를 누리고 있다. (물론 한국 시장이 이 성공을

좇아가는 데엔 아직 시간이 걸리고 있었지만.)



밴드가 자체 보유한 스튜디오에서 창작과 녹음 전체를

편안하게 진행한 첫 앨범으로서 라디오 친화적인 대중적

소프트락으로 채워진 작품이었다.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거부감 없는 이들인지라 Linn LM-1, Simmons SDS-V,

ARP Quadra, Sequential Circuits Prophet-10E-mu

Emulator 등 첨단 장비를 적극적으로 선보였다. 콜린스

이제 드러밍보다 드럼 머신에 더 재미를 들여가고 있었고.



(Genesis)



('Mama' from Genesis, 1983)

*당시 Tony Banks가 쓰던 악기를 샅샅이 살필 수 있다.



('That's All' from Genesis, 1983)



('Home by the Sea' from Genesis, 1983)



('Illegal Alien' from Genesis,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pKWyJOz1rUU


('Taking It All Too Hard' from Genesis,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l-dSgRGFVYU



(Linn LM-1)



(Simmons SDS-V)

*물론 세트 뒤 연주자는 빌 브루포드.



*이 시기 Tony Banks의 gear set.




84~86년 기간은 지금까지 상술한 제네시스고 뭐고 모든

활동 성과를 갈아엎어 역사를 새로 쓸 만큼 명실상부한

콜린스의 최전성기였고 그는 원탑이었다. 대등한 경쟁자

해봐야 마이클 잭슨이나 프린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정도?

그 외엔 다 쩌리 취급 받던 초대박 호시절이었지.



84년 3월테일러 핵포드가 연출하고 제프 브리지스

레이첼 워가 주연한 어덜트 스릴러 영화가 개봉하는데

래리 칼튼미셸 콜롱비에가 주도한 사운드트랙의 전체

스코어와 상관없이 몇몇 가수가 삽입곡 작업에 참여했다.

이 중 필 콜린스가 자작곡 발라드를 제공하는데... 두둥..



Against All Odds (Take a Look at Me Now).. 80년대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팝 음악의 고전이 되어버린 명 발라드가

이렇게 탄생해 버린다. 콜린는 생애 최초로 핫100 차트 탑

오르고 싱글골드를 기록하며 인생 첫 그래미 상을 이 곡으로

받게 된다. 말이 필요 없다. 듣고 가자.



('Against All Odds' from eponymous soundtrack, 1984)



이 정도 명곡이라면 예상들 하겠지만 그 해 아카데미 어워드

당연히 주제가상 후보로 올랐다. 그런데 담당PD 왈, 콜린스

그렇게 대단한 가수인지 몰랐다네. 하여 본인 섭외 안 하고 왠

뮤지컬하던 여자 연예인에게 립싱를 시키는 엄청난 무대를

만들고 만다. 역대 최악의 주제가상 공연으로 지금도 악명이

높았던 해프닝.. 노래라도 잘 했으면 또 몰라..



한국 시장에서 필 콜린스라는 가수를 처음으로 인지하기

시작한 곡으로 기억하며 지금까지 대표 히트곡이기도..



*Against All Odds at Oscar Ceremony, 1985



(Against All Odds, single)



*영화 속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노래.


('Against All Odds' by Mariah Carey, 2000)

https://www.youtube.com/watch?v=Dc3YAINjlyE




앞에서도 서술했지만 콜린스얼쓰 윈드 앤 파이어

인연이 깊다. EWF 출신 명 보컬리스트필립 베일리

84년 11월에 자신의 솔로 앨범 Chinese Wall을 들고

나왔는데, 여기에 콜린스와 함께 한 듀오 튠을 싱글로 낸다.



R&B 돋는 또 하나의 명곡 Easy Lover. 본래 EWF

당연하고 콜린스 역시 R&B로 한가닥 하는 양반인지라

두 사람의 조합은 완벽했다. 콜린스드럼 세션은 덤.

한국엔 이 앨범이 정식 발매되지 못해서 당시에 라디오

방송 녹음해서 듣고 다니던 팬이 참 많았다고..



11월 25일엔 밥 겔도프 도우러 바쁘게 달려와서 Do They

Know It's Christmas드럼 파트를 도맡아 연주했다.

참고로 이 곡 베이스듀란듀란존 테일러 솜씨. 저명한

싱글은 12월초에 발매되어 라이브 에이드로 이어진다.



(Easy Lover, single)



('Easy Lover' by Philip Bailey & Phil Collins, 1984)




(Do They Know It's Christmas, single)



('Do They Know It's Christmas' by Band Aid, 1984)




이 시기 사실 콜린스도 세번째 솔로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고

85년 1월에 발매한다. 역사상 가장 히트한 앨범 중 하나로

기록된 80년대 명반 중 하나, No Jacket Required. 두둥.

그래머 어워드의 4개 최고 수상 부문 중 명실상부한 대상은

역시 올해의 앨범상, Album of the Year일텐데 86년도

그래미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된 작품이 바로 이 앨범.



전세계 누적 판매고가 무려 2천 5백만 장에 달해 미국 시장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았고 영국, 미국, 캐나다 등 9개국에서

차트 탑을 찍었으며 SussudioOne More Night미국

핫100 차트 탑에 오른 두 싱글은 각각 골드를 기록했다. 객관

지표를 대략만 훑어도 이 정도..



본 앨범의 진정한 가치는 뉴웨이브, R&B, 어덜트 컨템포러리

등 80년대를 대표하는 모든 음악적 요소를 집대성한 명작이란

점. 그래미에서 경쟁도 했거니와 이 정도 완성도의 동년 발매

경쟁작Brothers in Arms, We Are the World, Whitney

Houston, Born in the U.S.A. 정도 꼽을 수 있을 뿐이다.



본 블로그에서 계속 쓰는 표현이지만 버릴 곡이 없는 앨범

몇 차례 짚은 적 있고 본작도 마찬가지이다. 전술한 메가히트

두 싱글 뿐 아니라 Don't Lose My Number, Take Me Home

등 추가 싱글에 Long Long Way to Go, Who Said I Would,

Inside Out 등 다른 많은 트랙들도 평단으로부터 골고루 극찬을

들은 바 있다.



콜린스와 오랜 시간 함께 할 세션들도 대거 등장한다. 전곡의

기타는 대릴 스투머가 쳤고 One More Night코다 색소폰

파트는 돈 마이릭의 솜씨이다. Take Me Home에서 백킹

보컬은 무려 스팅피터 가브리엘(!)이 손수 도와줬다.



한 가지 더.. 신디 로퍼가 86년에 마돈나트루 경쟁을 벌일

때 8월에 낸 싱글 True Colors엔 누구나 들으면 알아차릴

드럼 머신시그니처 프레이즈가 등장하는데, 이 작업에

콜린스가 도움을 줬다 한다. 이 시절 드럼 머신 프로그래밍

있어서는 당대 최고였던 것 같다.



(No Jacket Required)



('Sussudio'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제목 단어는 뜻 없이 지어낸 말. Prince의 1999과 유사하단 비판도 받았다.



('One More Night'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멋진 색소폰은 Phenix Horns 출신 Don Myrick의 솜씨.



('Take Me Home'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Don't Lose My Number'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Who Said I Would'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90년 베를린 투어. 백킹 밴드 실력이 가장 빵빵할 때의 라이브이다.



('Long Long Way to Go'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https://www.youtube.com/watch?v=M-7LOzT73PU


('Inside Out'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https://www.youtube.com/watch?v=QiwGEWmpUuQ




('True Colors' by Cyndi Lauper, 1986)

*86년 핫100 차트에서 2주간 탑을 찍었다.



(True Colors, single)




본래 마이크 러더포드는 80년과 82년에 자신의 솔로 앨범

낸 적 있다. 그냥 냈다는 의미 정도 부여할 수 있을 뿐, 사실상

성과는 그저 그랬음이 사실이다. 왜일까. 그는 스스로 깊게

고민을 거듭하여 자신이 개인 작업보다 밴드 안에서 타인과

교감하는 과정에서 더 효율적인 뮤지션임을 깨닫는다. 하여

제네시스와는 다른 궤도선상의 사이드 프로젝트 밴드를 따로

결성하니, 곧 마이크 앤 더 미케닉스M+TM 출현하게 된다.



제네시스 뿌리에서 파생한 또 하나의 성공적 액트, Mike +

The Mechanics. 85년 10월에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

내놓는데 러더포드의 솔로 앨범과 비교도 안 되는 성공을

거둔다. All I Need Is a Miracle, Silent Running

두 곡의 핫100 탑텐에, 미국 탑40 히트곡 Taken In까지

배출하며 앨범 자체는 골드를 기록한다.



All I Need~폴 캐랙, Silent Running폴 영이 각각

보컬을 맡았는데 M+TM목소리를 두 명으로 이끌고

가는 특이한 체제이다. 가볍고 대중적인 곡은 캐랙이, 더

헤비하고 진중한 곡은 이 부르는 구성이라고. - 여기서

말하는 폴 영은 유명한 56년생 가수와는 동명이인이다.

Every Time You Go Away 아니라고..



필 콜린스도 85년 솔로 투어를 마치는 와중에 영화 White

Nights, 백야의 사운드트랙을 녹음하여 Separate Lives

제목으로 11월에 발표했는데 미국 핫100 차트 에 오르는

성공을 거둔다. 음색이 매력적이며 나중에 데이빗 포스터와도

작업을 한 미국 여가수 마릴린 마틴의 듀엣이었다.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제네시스 사운드 메이킹의 핵심인

멤버가 사실 토니 뱅크스임에도, 희한하게 그는 모든 멤버를

통틀어 솔로 프로젝트 성적이 가장 신통치 않았다. 80년대

중반엔 주로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작업하곤 했는데 몇몇 곡을

모아 86년 3월에 앨범을 내기도 했다. Soundtracks.



(Mike + The Mechanics)



(Soundtracks)



 (White Nights)



('All I Need Is a Miracle' by Mike + The Mechanics, 1985)



('Silent Running' by Mike + The Mechanics, 1985)




멤버들이 솔로 활동에 열을 올리면 밴드 전체 작업엔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 일반적일 텐데, 제네시스 이상하게

그 반대라고. 밖에서 받은 음악적 자극이 안으로 모여 새롭게

융합하고 폭발한 것. 그 증거가 86년 6월에 발표한 정규

13집 앨범 Invisible Touch였다. 또 두둥.



세 사람이 다 함께 스튜디오에서 잼 세션을 통해 프레이징

발전시키는 작업 방식이 전작에서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두었는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외부 환경에서 받은 다양한 음악적인

센스가 최고조에 달해 있던 이 자신만만한 뮤지션들은, 6x

플래티넘영국 차트 탑 및 미국 차트 3위의 앨범을 빚어낸다.



버릴 곡 없는 앨범이 한 장 더 나온 셈이었다. 타이틀 트랙

Invisible Touch가 밴드 디스코그래피 사상 최초로 핫100 차트

에 올랐고 Throwing It All Away가 4위, In Too Deep이 3위,

Land of Confusion이 4위, Tonight Tonight Tonight이 3위에

오르는 등 초대박이었다. 70년대 대곡 시절을 떠올리게 할 만한

Domino는 유난히 팬덤이 열광하는 트랙이었고.



바야흐로 제네시스의 전성기, 커리어의 절정이었다. 음악이 너무

상업적이고 필 콜린스 솔로 앨범과 차이가 뭐냐는 비판도 있긴

했으나 그래미 어워드 수상 등 호재도 함께 찾아오고 있었다.

80년대 최고의 앨범 중 하나로서, 이러니 저러니 해도 꼭 한 번

들어보면 결코 밑지는 장사 아닐 게다. 86년 9월에 시작해 87년

7월에 끝난 월드 투어는 역대 최대 규모였고, 이후 이들은 약

5년간 동면에 들어간다.



(Invisible Touch)



('Invisible Touch' from eponymous album, 1986)



('Throwing It All Away' from Invisible Touch, 1986)



('In Too Deep' from Invisible Touch, 1986)



('Land of Confusion' from Invisible Touch, 1986)

*캐리커처 퍼펫이 등장하는 뮤비가 당시 엄청난 화제였다. 서구에서..



('Tonight Tonight Tonight' from Invisible Touch, 1986)



('Domino' from Invisible Touch, 1986)

https://www.youtube.com/watch?v=uFXY7Et6pQ4




이미 언급했지만 이 분 원래 배우 출신이다. 어떤 대본을

들이대도 기본기는 하는 연기자란 뜻. 88년말에 느닷없이

버스터라는 범죄물 코미디 영화에 주연으로 등장하셨을

때 놀란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건 80년대 이후 뒤늦게 팬이

된 때문일 거고.



그해 9월에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발매되는데 여기서도

싱글 히트를 두 곡이나 기록한다. Two Hearts는 미국

핫100 탑그래미골든글러브 어워드를 수상했고

65년 곡을 커버한 발라드 Groovy Kind of Love

역시 핫100 탑영국 차트 2위를 찍는다.



빌리 엘리어트맘마 미아로 유명하신 영국의 좋은

배우 줄리 월터스와 공연하셔서 연기도 괜찮았다고.

이땐 정말 뭘 해도 다 되는 마이더스 터치의 시대셨다.



한 달 정도 앞서 러더포드M+TM의 가장 큰 싱글 히트

The Living Years를 발표해 핫100 차트 탑을 기록하는

깜짝 성공을 거두기도. 두 사람의 프로젝트가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듯했다. 폴 캐랙이 리드 보컬을 맡았다.



(Buster)



('Two Hearts' from Buster, 1988)



('A Groovy Kind of Love' from Buster, 1988)



('The Living Years' by Mike + The Mechanics, 1988)

*가사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화해를 이루지 못한 아들의 풍수지탄.



전작의 대성공 후 약 5년이 좀 못 되어 솔로 4집으로 더

성숙해진 ...But Seriously가 89년 11월에 발매되고

필 콜린스의 명성이 90년대까지 이어지는 데에 탄탄한

발판으로 작용한다. 영미를 포함 15개국 앨범 차트에서

을 기록한 또 하나의 역작.



일렉트로닉에서 조금 거리를 두어 어쿠스틱소울

방향타를 바꾼 흐름은 이 앨범부터 시작된다. Hang in

Long Enough, Something Happened on the Way

to Heaven 등 트랙이 R&B재즈의 뿌리에 천착하는

그의 여전한 성향을 보여준다.



Do You Remember, That's Just the Way It Is 같은

트랙은 그만의 어덜트 컨템포러리가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가 보여준 수작이었는데 다소 자기 복제 되어가지

않나 하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에릭 클랩튼이 세션에 참가한 I Wish It Would

Rain Down이나 핫100 차트 에 오르고 그래미 올해의

레코드를 수상한 Another Day in Paradise의 성숙한

음률에는 모두가 공감했다.



Colours - 남아공, Another Day~ - 미국, That's Just

the Way~ - 북아일랜드 등 각국 정치 상황을 고찰하는

트랙이 유난히 많은 앨범이다. 하지만 보수당 지지자라는

오해도 받아왔거니와 그의 성찰적 시각엔 한계가 뚜렷하다는

비판에 또한 직면했다. 무엇보다 팬덤이 그에게 기대하는

것이 이런 면이라 볼 수 있을까. 피터 아니잖.



(...But Seriously)



('Another Day in Paradise' from But Seriously, 1989)

*워싱턴DC 뒷골목의 노숙자 문제를 다룬 가사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I Wish It Would Rain Down' from But Seriously, 1989)

*에릭 클랩튼이 출연하셔서 대사에 연기까지...



('Something Happened on the Way to Heaven' from But Seriously, 1989)

*어느 개 한 마리의 시점으로 구성한 재미있는 뮤비이다.



('Do You Remember' from But Seriously, 1989)



('Hang in Long Enough' from But Seriously, 1989)

*타이타닉 영화를 패러디했는데 이땐 카메론 작품이 나오기 전이다.


('That's Just the Way It Is' from But Seriously, 1989)

https://www.youtube.com/watch?v=zP7pgInSybI




91년이 되어 제네시스로 다시 돌아온 콜린스와 그들. 14집

We Can't Dance4x 플래티넘을 기록하고 영국 차트 탑,

미국 차트 4위를 기록하는 제네시스의 여전한 브랜드

파워를 입증했지만 전작만한 성공작은 결코 아니었다. 락

씬의 지형이 바뀌어 더 이상 첨단의 감각이라고 인정받을

만한 상황이 아닌 거다.



다양한 장르 배경을 가지면서도 희한하게도 블루스 계열

영향이 빈약한 제네시스였는데 I Can't Dance는 희미한

흔적을 남기며 영미 싱글 차트 탑텐까지 오른다. No Son

of Mine영국 차트 탑텐에, Hold on My Heart,

Never a TimeJesus He Knows Me 등 싱글이

그밖에 각광을 받았다.



(We Can't Dance)



('I Can't Dance' from We Can't Dance, 1991)



('No Son of Mine' from We Can't Dance, 1991)



('Hold on My Heart' from We Can't Dance, 1991)

https://www.youtube.com/watch?v=V4pLqznEe3I


('Never a Time' from We Can't Dance, 1991)

https://www.youtube.com/watch?v=21Zw22g36JI

*팬이 만든 헌정 동영상으로 추정된다.


('Jesus He Knows Me' from We Can't Dance, 1991)

https://www.youtube.com/watch?v=35K6vQRt67g



솔로 앨범 전작들이 모두 영미 차트 탑텐을 벗어난 적이

없었으니 미국 차트 13위까지 오른 것이 최고 기록인

93년 11월의 5집 Both Sides는 확실히 그의 하락세를

방증하는 결과일 거다. - 영국과 독일 등지에선 그래도

여전히 앨범 차트 탑에 올랐다. 그래도 필 콜린스니까

이렇게 폄하라도 할 만한 거겠지.



하지만 성숙한 소프트락 일변도의 본작에서 예전에 보던

재기발랄한 젊은 감각이 들리지 않는다는 점만은 진실에

가까워 보인다. 성숙하지만 어딘가 진부하게 들린다는..

그도 이제 나이를 먹었음을 Both Sides of the Story,

Everyday, We Wait and We Wonder 등 트랙에서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그러나 명심하시라. 그는 필 콜린스이다. 신곡의 행보가

예전만 못 하다는 것일 뿐 전작들의 성과가 누적되어 한껏

폭발하는 종합 성적표는 결국 투어의 성패에 달려 있으며

80년대부터 90년대에 걸쳐 여전히 그는 음악계 정상급의

공연 아티스트이다. 티켓 파워는 여전하고 거듭 말하지만

그를 능가할 만한 가수는 많지 않다.



그리하여 솔로 투어에 더 집중하기 위해 96년 3월 결국

그가 제네시스를 탈퇴한다. 뱅크스러더포드는 새롭게

레이 윌슨을 발탁하여 15집 Calling All Stations

발매하지만... 대차게 말아먹는다. 사람들은 바야흐로

깨달았다. 제네시스는 여기까지로구나 하고..



점점 나이를 먹은 콜린스의 솔로 작업도 투어가 여전한

흥행일 뿐 신보는 그저 그런 단계로 접어들어간다. 단,

99년에 디즈니 애니메이션 타잔의 주제가로 발표한

You'll Be in My Heart의 성공은 눈여겨볼 만하다.

2000년 아카데미에서 그에게 유일한 오스카를 안긴다.

사람들이 모두 라이온킹에서 엘튼 존이 해낸 역할을

기대하고 있었고 그는 이에 부응한 것.



(Both Sides)



('Both Sides of the Story' from Both Sides, 1993)



('You'll Be in My Heart' from Tarzan, 1999)



('Everyday' from Both Sides, 1993)

https://www.youtube.com/watch?v=xQpsXA36uq4


('We Wait and We Wonder' from Both Sides, 1993)

https://www.youtube.com/watch?v=52NbxxVUGzk



(Calling All Stations)




본 블로거가 필 콜린스제네시스의 오랜 광팬이기도 하고

제네시스의 음악사가 워낙 광대한 변화와 끊임없는 발견이

응집된 총체인지라 이번 포스팅은 할 이야기가 참 많았다.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부득이하게 줄이고 삭제한 내용이

꽤 많았음을 살짝 밝힌다.



앞에도 언급했지만 솔로 활동에서 별 재미를 못 본 토니

뱅크스야말로 역설적으로 제네시스 사운드의 코어라고 본다.

마이크 러더포드콜린스의 솔로 커리어만 훑어 보더라도

얼마나 재능있는 뮤지션들이 오랫동안 뭉치고 엮여 창의적인

시간을 함께 했는지 느낄 수 있으리라 본다.



장대한 인생의 여정에서 다섯 사람이 서로 독립적인 결정을

내리고 각자의 길을 걸어오기도 했으나 그들 서로가 느껴온

신뢰감은 근본적으로 변한 적이 없다. 아래 링크에서 다시

한 번 그 점을 확인하고 오해들 풀기 바란다.



연예계에 만연한 여러 풍문과 몰이해의 중심에 휩싸이기도

했던 콜린스의 인생과 음악이었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가수, 작곡가, 프로듀서, 연주자로서 그의 가치는

많은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라고 믿는다.



*피터 가브리엘이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 불참한 이유

- 새 앨범 리허설 때문에 바빠서. 서로 사이는 괜찮다.

https://www.billboard.com/articles/news/959216/genesis-says-peter-gabriel-missing-rock-hall-induction-is-no-snub


*명예의 전당 운영진의 공식 입장:

https://www.rockhall.com/inductees/genesis



(ARP Quadra)


(Sequential Circuits Prophet-10)


(E-mu Emulator)






(Separate Lives, single)




본 블로거는 너무나 많은 필 콜린스의 작업물들을 일생에

걸쳐 접해왔다. 추천할 트랙이 참 많지만 인생 노래라고

생각하는 Separate Lives를 빼놓고는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덜트 컨템포러리 프로듀서로서 콜린스의 재능이

극에 달하던 때 나온 최고의 히트곡이며 투어에서도 여러

다양한 버젼으로 많은 백킹 보컬리스트들과 연주해왔다.



원곡을 소화한 마릴린 마틴은 80년대 중반에 솔로로 나서

일본 프로모션도 소화하는 등 불타 올랐었지만 그뿐이었고

지금은 음악계에서 은퇴하여 공인 중개사로 사신다 한다.

Stealing Home이라고 컬트적 인기를 누려온 88년 영화

주제가로 많은 매니아 팬을 거느려 오기도. 추억의 첫사랑.



('Separate Lives' by Marilyn Martin & Phil Collins, 1985)

https://www.youtube.com/watch?v=vmMinSOWKQk

*공식 뮤직 비디오는 이쪽. 화질음질 좀 업글해 달라..



('And When She Danced' by Marilyn Martin & David Foster, 1988)

https://www.youtube.com/watch?v=JzEB_V8qg04

https://www.youtube.com/watch?v=1f4HaTgcfQ8




이 곡의 가사는 헤어진 연인 또는 이혼한 부부 사이 이야기.

남자의 호텔 방에 여자가 전화 와서 새로 연애를 시작했다고

전하며 애틋한 옛 감정을 토로하는 내용이다. 여러 아름다운

버젼이 있는데 팬덤에서 가장 충성도가 높은 두 가지 라이브

아카이브를 아래에 강추로 링크하며 금번 포스팅을 마친다.




('Separate Lives' from White Nights, 1985)

*작곡은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Stephen Bishop.



*90년경 투어. 유명한 백킹 보컬리스트 Bridgette Bryant와 함께.

**원곡에 대한 새 해석이 시작된 버젼이라 하며 팬덤의 인기가 높다.



*97년 파리 투어에서 Amy Keys 및 Arnold McCuller와 함께.

**원곡 가수를 왠지 쩌리 만들어 버린 어마무시한 두 백킹 보컬리스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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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머큐리 Freddie Mercury ..

1946년에 태어나 91년, 겨우 마흔 다섯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 하신 이 분은 20세기 음악사에

어마어마한 족적을 남긴 대중 예술가이다.






 (Montreux, Switzerland)




디지털 드림 도어 닷컴이라는 대중 문화 랭킹 전문

사이트가 있는데, 남성 락 보컬리스트 부문 랭킹에서

머큐리는 항상 1위였다. 본 블로거 기억으로 이 랭킹이

십여 년에 이른 것 같은데 한 번도 내려온 적이 없었다.



같은 사이트의 락 보컬 퍼포먼스 부문에서도

보헤미안 랩소디가 현재 1위이다. 락 에픽, 곧 서사적 락

음악곡 부문에서도 이 노랜 1위. 락 앤썸이라고, 공연에서

떼창 유도할 수 있는 상징적 트랙에선 위윌락유가 1위.

락 밴드 최고의 프론트맨 랭킹에서 그는 현재 5위이다.






생소한 사이트가 마음에 안 드신다면 좀 더 미국 친화적인

롤링 스톤 매거진이 있다. 약 10년 주기로 업뎃하는 이곳의

랭킹에서 시대를 초월하는 위대한 가수들 100명 중 그가

18위를 차지한 바 있다. 최근 2008년 집계 결과였다.

18위가 별 건 아니네, 하시는 분들은 그 위쪽 순위에

어떤 분들이 있는지는 보고 얘기했으면 한다.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singers-of-all-time-147019/freddie-mercury-5-225069/



대략만 읊어도 이 정도. 이 분이 왜 위대한 락 보컬리스트로

불리우는지, 누구나 다 깨닫고 있지만 말로 일일히 설명하기도

참 쉽지 않다. 이처럼 전설적인 아티스트에 대한 포스팅이

망설여지는 이유일 것이다. 겨우 이 정도 필력으로 제대로

표현이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그는 오늘날 탄자니아 영토에 속한 아프리카의 잔지바르에서

파르시는 페르시아계 조로아스터 교도 가정에서 태어났고

이후 여기서 쫓겨나 유년 시절을 인도에서 성장하기도 했다.

청소년기에 와서야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다.

흔하디 흔한 기독교계 앵글로 색슨이 주류인 영미권 음악계

전체를 볼 때 참 특이한 배경이 아닐 수 없고, 그가 보여준

독창적 캐릭터와도 깊은 연관이 있겠다 싶다.



브라이언 메이로저 테일러가 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스마일에서 먼저 합을 맞추고 있었을 때 그는 약간 로디

비슷하게 곁을 맴돌다가 두 사람에게 합류한다. 1970년.

밴드 이름을 퀸 Queen으로 바꾸었고 이는 누가 봐도

머큐리의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queen에는 속어로

퀴어의 의미가 숨어 있으니..)



밴드 이름과 같은 동명의 데뷔 앨범은 73년에 가서야 늦게

낼 수 있었고, 녹음 두어 해 전 전기공학 전공으로 넷 중 가장

어린 존 디콘이 합류했다고 전해진다. 우리가 아는 네 명의

전설적 진용이 다 갖춰진 것이 이 무렵인 셈. 1973년 경.

이듬해 이들은 Queen II 앨범을 발매했다.



 (Queen)




이렇듯 1집과 2집에서 Keep Yourself Alive, Liar,

Seven Seas of Rhye 등 오늘날까지 알려졌고 밴드

역시 콘서트에서 즐겨 연주한 트랙들이 생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성공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신디를

쓰지 않고 보컬이 피아노를 겸하는 피아노 락앤롤 정도로

박한 평가를 받았음이 사실이다.



Sheer Heart Attack 앨범에서 Killer Queen이란 대박

싱글이 나오고 나서야 밴드는 세계구급으로 올라선다. 이

곡은 머큐리가 작곡했다. 본 앨범에 이르러서야 클래식과

락앤롤에 바탕을 둔 밴드 음악성의 아이덴티티가 이제

막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74년..



아울러 Brighton Rock, Now I'm Here, In the Lap of

the Gods, Stone Cold Crazy 등 유명한 트랙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브라이튼 락에서 선보이는 딜레이 테크닉은

그대로 메이의 전매특허가 되었고, 스톤 콜드 크레이지

쓰래쉬한 파괴성은 이후 후배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Sheer Heart Attack)



 (A Night at the Opera)




스튜디오와의 불화로 밴드 멤버들은 여전히 곤궁했고 돈

한 푼 손에 쥐는 일 없었다. 절치부심하여 75년 넉 달 동안

녹음실에 틀어박혔고 창작적 전성기의 시발점이 된 명반

A Night at the Opera를 같은 해에 발매한다. 그렇.

Bohemian Rhapsody가 실린 그 앨범이다.



보랩으로 불린 트랙은 머큐리 온전하게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Love of My Life, You're My Best

Friend, God Save the Queen, '39, I'm in Love with

My Car 등 명곡이 쏟아져 나왔지만 결국 평가는 보랩

곡에 주목할 수밖에 없음을 멤버 모두가 인정했다고 한다.



('Bohemian Rhapsody' from A Night at the Opera, 1975)



('Love of My Life' from A Night at the Opera, 1975)




 (A Day at the Races)




이듬해 1976년엔 A Day at the Races 앨범이 나와

Somebody to Love를 필두로 Tie Your Mother Down,

Good Old-Fashioned Lover Boy 등 트랙을 쏟아냈다.

전성기가 이어진 것이고 본작은 여러 모로 전작의 동

반복 같은 위치였지만 팬덤은 신경쓰지 않았다.

(4집5집의 트랙 구성은 놀랍도록 유사하다고..)



반면 언론과 평단은 여전히 냉담하고 냉소적이었다.

은, 대체로 평론가의 칭찬을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고

보면 된다. 심지어 이런 현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



('Somebody to Love' from A Day at the Races, 1976)




 (News of the World)




77년 News of the World 역시 창작적 상승가의 연장선에

있던 명반일 거다. 드디어 메이We Will Rock You

선보였고 We Are the Champions는 이 곡의 제2부인

것 마냥 항상 어서 라디오 전파를 타곤 했다. Sheer

Heart Attack, Spread Your Wings 등 정통 락

트랙들도 매력이 있다.



위윌락유의 가사는 의외로 음악과 상관이 없는 이야기다.

훌리건 패싸움 스토리에 더 가깝다. '락유~'는 문자 그대로

'부셔버릴거야' 정도의 뉘앙스란 뜻. 원곡이 재해석의 여지가

커서 라이브에서 다양한 버젼을 골라볼 수 있는 재미를 주는

곡이기도 하다. 79년 발매된 Live Killers 속 패스트 버젼이

가장 인기가 있는 편인 것 같아 아래에 붙인다.



 (Live Killers)



('We Will Rock You' from News of the World, 1977)



('We Will Rock You' from Live Killers, 1979)




 (Jazz)




78년 7집 Jazz에 와서 연거푸 세 장의 앨범으로 달려온 음악적

지향성이 약간 지친 것 아닌가 싶은 느낌을 주게 된다. 여러 모로

전체 디스코그래피에서 약간 동떨어진 실험성이 돋보인 역작.

머큐리민족 정체성을 떠올리는 듯한 Mustapha부터 상당히

이채롭고 Fat Bottomed Girls에선 로커빌리의 영향을 읽을

수 있으며 Bicycle Race말랑말랑하고 벌레스크스러운

것이 누가 봐도 머큐리가 쓴 곡임을 알 수 있겠다.



무엇보다 본작엔 Don't Stop Me Now가 있다. 제임스 브라운

인가 싶은 정도의 섹드립도 등장하고 엄청나게 흥겨운 이 트랙은

진성 팬덤이 위윌락유보다도 더 앤썸처럼 친애해온 곡이기도...



단, 머큐리가 이슬람교 신자일 거란 오해는 금물이다. 조로아스터

교는 이슬람과 관련 없다. 그냥 이런저런 상업적 요소를 끌어들여

재미있는 노래 하나 만든 거라고 보면 된다. 어차피 서사

사회성은 딱 고만고만하게 적당한 정도만 구사하는 수준이다.



('Mustapha' from Jazz, 1978)



('Don't Stop Me Now' from Jazz, 1978)




 (The Game)




Jazz에서 약간 주춤하나 싶었던 그들은 The Game 앨범으로

다시 한 번 활짝 만개한다. 평단과의 불편한 관계를 전술했는데

하나 더, 이상하게 은 미국 시장에서 성공한 적이 별로 없다.

당대의 세계적인 팬덤은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전 세계라고 보면

대략 옳다. 특히 유럽, 남미, 일본은 그들의 밥줄이라고나 할까.



80년의 이 앨범 와서 결국 그들은 빌보드 앨범 및 싱글 차트 양쪽서

처음으로 1위를 찍는다. 엘비스 프레슬리 캐릭터 모방으로 유명한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은 그들의 유일한 1위 싱글이다.

Another One Bites the Dust는 무려 마이클 잭슨이 일찌감치

히트를 예감한 곡이다. 꽉찬 funky 비트에 그냥 지나칠 리 없었겠지.



Another One~ 가사 역시 동네 양아치들 패싸움 이야기이다.

'(싸우다) 또 하나 뒈졌군' 정도의 뉘앙스라고. 사회 비판적 가사가

비교적 많지 않은 그들에겐 이런 가사 스토리가 의외로 많다.

또한 방식으로 디스코를 받아들인 증거이기도 하다.



Play the GameSave Me 역시 들어볼 만한 트랙들이다.

키보디스트 아닌 사람들은 별 관심 없겠지만 의 디스코그래피

중 처음으로 신디사이저가 등장한 앨범이기도 하다. Oberheim

OB-X란 명기이다.


https://queenvinyls.com/articles/from-harspichord-to-synthesizer-and-beyond-an-introduction-to-queen-organology/



(Oberheim OB-X)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from the Game, 1980)



('Another One Bites the Dust' from the Game, 1980)




(Hot Space)




81년엔 Flash Gordon이란 영화의 사운드트랙 앨범을 만든다.

여기서의 플래쉬는 DC의 그 히어로는 아니다. 한국에 개봉한

적이 없는 SF물이다.



이듬해 Hot Space 앨범을 내는데 비평과 흥행 양쪽에서 다

안 좋아 이후 2~3년간 멤버들이 붕뜬 상태로 솔로 활동에나

매진하게 된 계기를 제공한다. 하지만 데이빗 보위와 함께 한

Under Pressure는 여전히 훌륭한 작품으로 남아 있다.

사회성 짙은 가사로 영국병 걸린 경제 상황을 위무한

걸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정작 총리는 대처..ㅠ)



('Under Pressure' from Hot Space, 1982)




 (The Works)




영화에서 나타났듯이 밴드의 침체기는 결국 라이브 에이드

가서야 부활의 동력을 얻게 된다. 그 전 82년 5월에서 84년 2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 메이테일러디콘 솔로 작업을 열심히들

하셨다. 정작 머큐리는 다음 앨범이 나오고 난 후에 자신의 앨범을

냈다. 즉, 영화의 스토리는 사실과 다르다는 말.



라이브 에이드 전인 84년에 비교적 성과가 좋았던 The Works

앨범을 낸다. 신디사이저를 광폭적으로 받아들였음을 입증한

본작에서 Radio Ga Ga, It's a Hard Life, Hammer to Fall

그리고 I Want to Break Free 등 성공작이 쏟아져 나왔다.



멤버들을 전부 여장(!)시켜 찍은 ~Break Free의 뮤비는 매우

유명했고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밴드의 곡 중 흔치 않게

신디사이저 솔로가 등장하여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프레드

맨델이란 세션이 연주했다고 한다. Linn LM-1이란 드럼머신

사용도 괜찮았다.



레디오가가보코더로는 77년에 출시됐던 EMS 2000

쓰였단다. (희한하게도 은, 아날로그 신디 전성기인 70년대엔

단 한 번도 무그를 쓴 적이 없다. 모든 이펙트는 기타

몰아주려 했다나 뭐래나.)



(Linn LM-1)



(EMS Vocoder 2000)



('Radio Ga Ga' from the Works, 1984)



('I Want to Break Free' from the Works, 1984)

*다소 민망한 일본 라이브




(Mr. Bad Guy)




라이브 에이드에서 완전히 부활한 . 하지만 머큐리 자신은

이미 80년대 초반에 자신의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전한다. 멤버들에게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은 사망이 거의

임박한 훨씬 뒤였으나 이미 눈치들은 다 채고 있었다고.



85년엔 이미 예정되어 있던 첫 솔로 앨범 Mr. Bad Guy

발매한다. 그의 솔로 앨범은 두 장 뿐이고 두번째 앨범이 한창

오페라에 탐닉한 말년의 특이성을 보여준다고 본다면, 진정

대중적인 음악 앨범은 이것이 유일할지도 모른다.



신디사이저와 뉴웨이브 요소를 팍팍 쓴 미래 지향적 레트로

사운드의 본작은 마지막 전성기를 달리던 머큐리를 느껴볼

만한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라 할 수 있다. Made in Heaven,

I Was Born to Love You, Living on My Own

양질의 곡들을 수록하였다. 메이드 인 헤븐은 추후 밴드가

재녹음하여 수록한 그 곡의 원곡이다.



('I Was Born to Love You' from Mr. Bad Guy, 1985)




 (A Kind of Magic)




86년에 그들은 앨범 A Kind of Magic으로 돌아온다.
웸블리 이후 첫 공식작이자 발매 기념 월드 투어를 단행한
마지막 앨범이다. 또한 러셀 멀케이 감독의 SF액션 영화
하이랜더의 비공식 OST이기도 하다. (하이랜더 시리즈는
1편까진 괜찮게 봐줄 만하다.)


A Kind of Magic, One Vision, Friends Will Be Friends,
Who Wants to Live Forever, One Year of Love  히트
싱글을 배출했다. 특히 영화의 스토리 내용을 담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제 머큐리의 최후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Who Wants~를 들으면 괜시리 숙연해지게 마련이다.


('A Kind of Magic' from eponymous album, 1986)



('Who Wants to Live Forever' from A Kind of Magic, 1986)




대략 이 무렵부터 이제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머큐리의 건강이
나빠졌다고 한다. 하지만 멤버들과의 녹음이나 평소 받아오던
오페라 및 발레 레슨 등 일상적인 예술 작업에는 죽는 순간까지
열정적으로 임했다. 메이도 부부간 사생활에 문제가 생겨 여러
모로 밴드가 앨범 작업에 매진하기는 힘든 때였다고..


86년에는 영국의 프로듀서 데이브 클락의 뮤지컬 컨셉트 앨범
Time에 참여하여 동명의 트랙을 싱글로 발매하여 호평받았다.
87년엔 55년 발표된 플래터스의 R&B곡 The Great Pretender
리메이크 발표하여 원곡보다 훌륭한 해석이란 칭찬도 받게 된다.
(전에 한 번 썼듯이 이 두 곡은 그의 인생작이라고 생각한다.)


88년에 그는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대비하여 스페인 최고의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와 일종의 팝페라 앨범인 Barcelona
발표한다. 이때 함께 작업하던 사람들이 성악과 오페라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에 놀랐다는 풍문도 남아 있다.


그러던 와중 89년이 되어 The Miracle 앨범을 출시한다.
우여곡절 끝에 출시된 본작의 완성도는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다.
The Miracle, I Want It All, The Invisible Man, Breakthru
등 얼핏 들어도 생각나는 좋은 트랙들이 성공을 거두었다. 아래에
아원잇올의 뮤비, 잠깐만 봐도 그의 모습이 초췌해보여 착잡하다..


 (The Miracle)



('The Great Pretender', 1987)

*독일 방송에 출연하여 립싱크하시는...



('I Want It All' from the Miracle, 1989)




 (Innuendo)




거의 말년이 되어간 그의 삶은 조용하게 음악 작업하는 나날들로
채워진 듯하다. 마지막 연인이 된 짐 허튼과 함께. 91년에 드디어
그의 생전 마지막 앨범 Innuendo가 죽기 아홉 달 전에 발표된다.
마지막 불꽃을 화려하게 태우고 사라져가는 촛불처럼 머큐리
멤버들의 작업물은 놀라웠다.


타이틀 트랙 Innuendo는 80년대 내내 선보인 머큐리의 연극적
퍼포먼스를 음악으로 표현한 듯 드라마틱한 구성이 돋보였으며
예스의 기타리스트 스티브 하우가 특별히 초빙되어 어쿠스틱 기타
협연을 펼쳐 보였다. I'm Going Slightly Mad, Headlong,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 등 한 곡 한 곡이 예술가의
인생을 통째로 정리하는 듯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절정감은 The Show Must Go On에서 느낄 수 있었다. 프레디
머큐리 말고 이런 주제를 이토록 아름답게 그려낼 보컬리스트가
과연 또 있겠는가, 탄식하는 팬 투성이였다. (단, 작곡은 메이가..)
하지만, 롤링 스톤 지는 이번에도 더럽게 까댔다.


('Innuendo' from eponymous album, 1991)



('The Show Must Go On' from Innuendo, 1991)




마지막 불꽃을 화려하게 불사른지 아홉 달 후에 그는 숨을 거둔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 그를 보내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이듬해

92년 4월 20일에 대대적 규모의 헌정 공연 The Freddie Mercury

Tribute Concert가 개최된다.



아마도 대부분의 한국 음악 소비자가 팬덤화하는 과정에서 처음

접했을 법한 외국의 공연 문화였을 거다. 당시 영미권 음악계를

지배했던 주류 아티스트들이 쪽팔림도 무릅쓰고 머큐리의 음악을

따라 부르며 비교질 당하는 영예를 기꺼이 마다 하지 않았다. 한

음악가가 또 다른 음악가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헌사인 셈.



엘튼 존, 로버트 플랜트, 데이빗 보위, 로저 달트리, 토니 아이오미,

애니 레녹스, 폴 영건즈 앤 로지스, 데프 레파드, 메탈리카, 익스트림

등이 여기에 동참한 당시 탑클래스의 헤드라이너들. 지금 봐도 이런

사람들 어떻게 다시 모을까 싶다.



모두 쪽팔림을 감당하며 어려운 원곡을 쩔쩔 매고 소화하는 성의를

보여주었는데, 단 한 사람만은 왠지 '어쩌면 원곡만큼 매력적일지도'

하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당대 최고의 블루 아이드 소울 보컬리스트

조지 마이클이었고 그가 의 세 멤버 및 합창단과 함께 한

Somebody to Love는 그해 최고의 인기곡이 되었다.



이 공연 두 달 전에는 음악을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 웨인스월드

개봉해 Bohemian Rhapsody를 삽입했고 영화 속 헤드뱅잉

인기 덕분에 원곡을 역주행시켜 빌보드 핫100 2위에 재진입시킨

엄청난 흥행몰이를 가져오기도 했다.





('Somebody to Love' by Queen ft. George Michael, 1992)




 (Made in Heaven)




머큐리의 목소리를 담은 마지막 정규 앨범 Made in Heaven

95년에 발매된다. 그의 솔로 앨범에 실렸던 Made in Heaven,

I Was Born to Love You 등에 멤버들이 어레인지를 추가해

포함시켰고 Too Much Love Will Kill You, Heaven for

Everyone 같은 새로운 트랙과 생전 마지막 육성 녹음을

조합하여 만들어낸 헌정 앨범의 연장선이었다.



메이가 다른 작곡가들과 만든 Too Much Love~는 밴드의

앨범에 수록된 것과 메이의 솔로 앨범에 실린 것, 두 가지

버젼이 존재한다. 테일러는 그렇다 치고 메이도 참 노래 잘

하는구나, 하는 점을 모든 사람에게 각인시킨 곡이었다.



('Too Much Love Will Kill You' from Made in Heaven, 1995)



('Too Much Love Will Kill You' by Brian May, 1995)




97년에 존 디콘은 영원히 음악계에서 은퇴한다. 본래부터

내성적이고 머큐리의 카리스마적 퍼포먼스를 존경했던

밴드의 막내였기에 남은 두 사람도 존중한 결정이었다.

04년부터 09년까지 나머지 두 사람은 의 이름으로 역시

전설적 보컬리스트인 폴 로저스와 투어를 돌기도 했다.



70년대 전설적 블루스락 밴드 프리배드 컴퍼니의 탁월한

보컬리스트였던 폴 로저스. 뭔가 새로운 창작 활동이 생기나

기대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저 예전 곡들을 불러주는 것에

그쳤고 반응도 아주 뜨거웠다고 보기는 애매했다고 본다.



다만 생전에 머큐리가 보여주고 가지 못하고 떠난 몇몇

트랙의 라이브를 구경할 수 있었다는 보람은 있었다고.

아래 아원잇올처럼. 이들 세 사람은 이 포맷으로 08년에

앨범도 한 장 냈지만 반응은 뜨뜨미지근한 수준에 그쳤다.






폴 로저스와의 작업을 통해 젊은 피 수혈이 필요하다고

느낀 모양이다. 메이테일러 두 사람은 신임 보컬리스트

수소문 작업을 벌였고 11년부터 아메리칸 아이돌 스타로

널리 알려진 애덤 램버트를 리투르트하여 투어 멤버로

기용하고 있다. (이 친구는 영화에도 카메오 등장했지.)



워낙 나이 차도 있고 램버트의 젊디 젊은 기량에서 오는

안정감이나 탄탄한 보컬 실력 덕도 있어, 대체로 기존

팬덤은 이렇게나마 들을 수 있다는 데에 감사하기도

하고 안도하기도 하는 듯하다......만, 누구도 프레디

대체할 수 없다는 여론도 만만치는 않다.



(왜 꼭 대체 보컬을 계속 구해야 하냐고? 그냥 그만 두면

안 되냐고? 이 분들의 직업이 계속 연주하고 투어를 도는

밴드 뮤지션인데 그렇게 반응을 보이면 좀 섭섭할지도...

어찌 되었든 지구상 어딘가에서 의 음악이 계속 현재

진행형으로 연주되고 있다면 만족스러운 일 아닐까.)



(하지만 비교가 되는 건 사실...)




프레디 머큐리의 너무 이른 죽음은 30년 가까이 지난

일임에도 당시 참 충격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민

2세대로서 사회 소수 계층의 설움을 동병상련했던 그의

존재감이나 이에 영향받아 형성된 예술적 자아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 건 세월이 한참 흐른 후였던 것 같다.



은, 참 미국 시장 주류와 인연이 없었다. 언론으로부터의

야박한 평가도 이와 연관이 있다고 믿는다. 미국 음악 시장의

메인스트림은 이른바 그래스루츠라고 하는 블루스 계열

코드에 있다. 이들 음악은 상대적으로 블루스의 영향이

약하다. 재즈나 컨트리, 포크와도 멀다. 아마도 이 때문이지

않겠나 조심스럽게 추정한다.



루츠가 채우지 않는 빈 자리를 머큐리디콘 멤버들이 클래식,

펑크funk, 뉴웨이브 등으로 메꾸어 드라마틱한 표현성을 중시한

작품을 만들어갔다. 미국에선 절대로 먹히지 못한 창작 문법이다.

대신 미국을 제외한 세상은 항상 프레디를 연호했다. 전 세계

판매고 2억 장이 어디 그냥 나올 기록이겠는가.



 (The Great Pretender, single)




포스팅의 주인공인 머큐리가 피아니스트이고 일렉트릭 피아노

싫어한 반면 신디사이저는 꽤 다룬 성향인지라 상세히 들고 파진

못했는데, 사실 사운드의 핵심적 매력은 메이가 연주한 특별한

일렉트릭 기타 레드 스페셜에 있다. Danelectro Shorthorn

비슷하게 생긴 기타는 참 특별한 것이, 메이가 음악을 시작할

무렵 무려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악기이기 때문이다.



http://www.queenconcerts.com/instruments/piano.html



독특한 보드와 픽업 디자인을 거친 탓인지 다른 기타리스트

누구보다 그의 톤은 특별하고 이채로워 음색 만으로도 그가

연주한 것임을 구분할 수 있다. 또한 탈 블루스 성향이면서도

클래식하고 글램스러운 의 사운드에 여지없이 어울리는

톤이기도 하다. 세간의 박한 평가의 이면에 뭔가 이질적인

기타 톤까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오버일까.



(Steinway Concert Grand)



(Red Special)






첫 히트작 킬러퀸이나 바이시클 레이스처럼 머큐리가 작곡한

트랙들을 보면 수십 년 전 벌레스크 쇼뮤직 홀 사운드를 듣는

홍키통크 피아노가 중심이 된 살롱 음악이 연상된다. 아마도

그가 겪은 유년 시절의 추억과 연관이 있을 터이다. 살롱의 낡은

피아노에 맞추어 화려한 가운을 흐느적거리며 끈적한 노래를

부르는 여가수의 모습. 그가 평생 꿈꾼 음악적 아이덴티티가

아니었나, 추측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굿올패션 러버보이 같은 트랙이야말로 전성기
프레디 머큐리의 섬세한 음악성을 대변할 만한 곡인 듯싶다.
개인적으로 최애하는 곡이기도 하고. 아껴 두었다가 링크를
걸며, 끝으로 그의 열정적 예술혼에 헌사를 바친다. 아름다운
음악을 남겨 많은 사람의 영혼을 구제한 공으로, 저 세상에선
멋쟁이 차림에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행복하게 노래하고 계시.


('Good Old-Fashioned Lover Boy' from A Day at the Races,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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