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iano Pavarotti'에 해당되는 글 2건
- 2019.12.07
- 2019.03.15
드디어 이분 이야기할 차례가 되었네. 사상 최초
내한 공연의 직관 준비는 하고들 계신지 몰겄다.
팝 음악 이야기를 하면서 이분들 스토리 제껴놓고
간다는 게 말이 되나... 매도 얼른 맞았어야 했건만.
80년대 이후 세계 락 음악사 전체를 상징하며 그 전설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레전더리 액트, 유투 U2의 네 멤버와
그들을 대표하는 프론트맨 보노 Bono의 이야기... 시작한다.
*Sunday Bloody Sunday from A Conspiracy of Hope
**86년 6월 Amnesty International 주관 콘서트.
- Bono 보컬에 있어 궁극의 최대치를 확인할 수 있는 공연.
- http://www.u2gigs.com/Conspiracy_Of_Hope.html
*Bad from Live Aid
**85년 7월 13일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
- 7분경 관중을 막지 말라며 객석으로 몸소 난입하시는 Bono.
- 9' 25"에 갑자기 삽입한 음률은 Rolling Stones가 원곡.
- The Edge, 아직 모자 쓰시기 전..
팝 음악에 입문하여 청소년기를 보낸 시기가 이들의
전성기와 시절을 공유하기에 U2와 함께 성장한 세대의
일원이라 자부할 수 있겠는데.. 사실 한창 인기 있을 때
이들을 아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고 딱 인기있는
만큼만 바라본 것 같다.
누군가에게 U2를 설명할 때 기준점을 어디에 둬야 할까.
연주력? 멤버 모두 한 가닥씩 하는 프로듀서들임을 부인하긴
힘들지만 흔히 정통 락 성애자들이 선호하는 비르투오소 풍의
테크닉을 가진 연주자들이라고 하기보다... 개성으로 충만한,
스타일링에 능한 재주꾼들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장르? 포스트 펑크에서 실력을 갈고 닦아 출발한 점은
맞겠으나 초창기 몇 장의 앨범까지만 한정했을 때이다.
익스페리멘탈의 영향을 받은 80년대는 이노 중심이던
이례적 시기였을 터이고... 얼터너티브의 기준을 제시한
90년대를 지나.. 결국 U2의 장구한 음악사는 특정한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락이라는 보편적 줄거리 하나로
통일할 수 있을 터이다.
가사 및 메세지? 정치사회적인 주제를 빈번하게 드러내는
밴드임에 틀림없고 영미권의 비주류인 아일랜드 가톨릭의
정체성이 예술적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가들이겠지만...
그들의 모든 음악을 프로파간다나 저항 가요로 취급할
순 없는 노릇..
수상 경력? 2억 장에 가까운 판매고, 스물 두 개의 그래미
어워드 트로피, 락앤롤 명예의 전당 헌액 - 그것도 단번에,
롤링 스톤 선정 100대 아티스트 랭킹 등 숱한 영예의 기록을
남겼건만... 어디 그것만으로 충분히 정의 내릴 분들이던가.
투어 실적? 공연 성적에서 이들에 필적할 만한 액트가
롤링 스톤즈나 마돈나, 플로이드 정도 외에 없을 듯하니
세상에서 공연 가장 잘 하는 음악가로 소개할 만하지만,
단순히 상업적인 성공 이상을 상회하는 대중 문화 전체
아이콘으로서의 상징성을 제쳐놓고 설명할 수가 없다능.
결국 이 모든 요소를 합친 존재감... 대중적 락밴드 포맷
위에 독창적인 스타일을 가진 개성 만점의 네 캐릭터들이,
결성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게 사회를 진지하게
인식하는 세계관을 구축함으로써 음악 산업을 총체적으로
표징하는 심볼로 발전하니, 숱한 수상 기록과 기념비적인
투어 성적은 부수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었던... 락 음악
사상 최고의 아티스트 다섯 손가락에 능히 꼽힐 만큼
위대한 이름이 바로 U2가 아닐까 싶다.
본 포스팅에서 U2를 풀어냄에 있어 종전처럼 시간 순서대로
하는 방식은 다소간의 식상함도 있을 듯하고 논평하시는 다른
분들이 얼마든지 다른 데서 하시고 있는 듯하여.. 대략 하고
싶은 이야기를 주제별로 포인트만 줄줄 풀어보려고 한다.
글 솜씨가 궁하야 시대순에 가까운 서술이 되었지만서두..
- 글 싣는 순서 -
포스트 펑크와 릴리화이트 중심의 출발선
메세지에 눈을 뜨다: 아일랜드, 사회정치, 기독교
브라이언 이노와의 만남 - 조슈아 트리, 라누아
밴 모리슨의 영향과 아이리쉬 루츠 소울
얼터너티브의 새 기준, 90년대와 악퉁 베이비
월드 투어와 스타디움... 더 후를 꿈꾸며
기본으로 돌아오다 - 2000년대 이후
그래미가 사랑한 그들, 사회 활동가로서
U2/ 헤어 메탈과 글램이 아닌 것들의 여집합
(Boy)
(October)
(War)
(The Unforgettable Fire)
(The Joshua Tree)
(Rattle and Hum)
(Achtung Baby)
(Zooropa)
(Pop)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
(No Line on the Horizon)
(Songs of Innocence)
(Songs of Experience)
포스트 펑크와 릴리화이트 중심의 출발선
('I Will Follow' from Boy, 1980)
*U2의 투어 셋리스트에서 한 번도 빠진 적 없는 가장 오랜 트랙.
('Fire' from October, 1981)
1~2집 무렵까지 U2가 밴드 포맷을 형성하는 데엔 포스트 펑크
장르의 기반과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으며, 이는 초기부터 평생
이들과 함께 사운드 메이킹의 궂은 일을 도맡아 온 프로듀서
스티브 릴리화이트가 분전한 덕택이다.
특히 텔레비전과 조이 디비전 등 70년대 액트의 영향이 컸다.
릴리화이트의 영향으로 수지 앤더 밴쉬스도 엄청 탐구했다고.
래리 뮬렌 주니어가 학생 게시판에 밴드 멤버 공고를 올렸을
때만 해도 형편없는 실력이었다던 이들은 릴리화이트를 만나
음악을 일구는 방법론을 터득하게 되었다능. 이들과 동시대
혹은 약간 앞서던 저 밴드들의 음악에서 힌트를 얻었다네.
더 클래쉬, 라몬즈, 패티 스미스를 위시한 정통 펑크 씬 선배들이
예술과 유흥의 적당한 중간 지점에서 음악적 자유를 추구하는
태도를 시발점으로 하였다 하며, 여기에 미니멀한 어프로치와
장르의 변형을 혼합하는 포스트 펑크의 기본 정신을 적절하게
배합함으로써 자신들만의 방법론을 확립하게 된다.
('Marquee Moon' by Television,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g4myghLPLZc
('Hong Kong Garden' by Siouxsie and the Banshees,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Y-l9GQJRl9Y
*공동 프로듀서가 Steve Lillywhite였다.
('Love Will Tear Us Apart' by Joy Division,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zuuObGsB0No
80년 1집 Boy 및 81년 2집 October는 그런 방법론이 너무나
선연하게 드러나 당황스럽기까지 한 초창기 작업물. 릴리화이트
중심의 프로듀싱 체제가 유지된 83년 3집 War에 이르기까지도
이런 성향은 줄곧 일관성을 가지고 이어져 간다.
Boy의 I Will Follow나 October의 Fire를 들어보면 솔직히
동시대 포스트 펑크와 별반 차이가 느껴지진 않는다. 어딘가
잠재한 가능성이 꿈틀대는 기미가 느껴지네, 까지는 알겠는데
아직은 가능성에만 머무르던 꿈많던 시절. 위에 동시대 해당
장르를 이끌던 선배들의 음악과 비교하면 그 미세한 차이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I Will Follow 및 Fire 등에서 자신만의 스타일링을
완성해가는 디 에지를 발견하는 일은 큰 기쁨이다. 이런 문법에
쉽게 동의가 어렵다면 어차피 U2와 친해진다는 건 어불성설이니.
확실히 이 당시 디 에지를 보면 펑크의 정신을 따라가면서도 여느
포스트 펑크 기타리스트와 다른 캐릭터임이 또렷해지고 있었다.
릴리화이트의 절대적 영향력은 83년 3집 War까지 지속되었다.
War는 릴리화이트의 카리스마와 네 뮤지션들 스스로의 주체적
정체성 자각이 바톤을 교환하듯이 서서히 오버랩하는 모멘텀의
증거물이었다. 바야흐로 진짜 음악가가 되어가는 그들..
메세지에 눈을 뜨다: 아일랜드, 사회정치, 기독교
('Sunday Bloody Sunday' from War, 1983)
* "This song is NOT a rebel song."
- 세속의 정파적 이익을 좇으려 한 것이 아니라 비참하고
슬픈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려 한 예술적 의도이니
거기에만 주목해 달라는 메세지를 줄곧 설파하곤 했다.
('New Year's Day' from War, 1983)
*80년대 바웬사가 이끈 폴란드 자유노조 연대 이야기.
('Bad' from The Unforgettable Fire, 1984)
*당시 더블린에 만연하던 헤로인 중독 현상을 노래한 가사.
U2 멤버들이 뮤지션으로서 스스로 봉인을 깨는 계기는
사회와 정치 환경의 변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이들이 열 살을 갓 넘겼을 무렵 72년 1월말 북아일랜드
데리에서 벌어진 대사건은 여러 변화 가운데서도 가장
충격적인 것으로서 이들 넷의 본질적인 역린을 건드리고
만다. 아일랜드인으로서의 정체성, 바로 그것이었다.
피의 일요일 사건, 블러디 선데이라 명명된 사건은 5.18
광주의 아일랜드 버젼. 83년 3집 War의 가사를 작업하던
보노는 Sunday Bloody Sunday란 걸작을 창작하기에
이르고 정치사회적 심볼로 급성장하는 밴드의 이미지는
이 시그니처 트랙을 기화점으로 하여 형성된다. -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02년 영화와 본작 가사를 동시에
음미하며 감상한다면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80년대 유럽과 북미는 부패한 기득권에 대항하는 저항적
사회 집단의 투쟁이 다양한 양상으로 터져나온 시기였고
보노는 세상의 뜨거운 이면에 눈을 뜬다. War의 New
Year's Day는 폴란드 바웬사가 이끈 자유노조 연대의
반독재 투쟁에 주목하였고, 84년 4집 The Unforgettable
Fire에 실린 Bad는 더블린의 사회 현상이 되어버린 마약
중독 소재를 다루었다.
4집의 Pride는 마틴 루터 킹 목사에 관한 책을 읽고 받은
느낌을 술회한 히트 트랙이었고, 87년 5집 The Joshua
Tree에 이르러 Mothers of the Disappeared는 중미
엘살바도르 내전의 피해자들을 위무한 곡이다. 같은 앨범
Running to Stand Still에선 아일랜드인들의 마약 중독
문제를 다시 진지하게 다루기도 하였다.
애초부터 U2는 종교적 정신 세계를 가사로 쓰곤 했는데
작사가인 보노의 철학적 자의식이 성장함에 따라 외연이
더욱 확장한 셈이다. 원래 그가 즐겨 다룬 스토리로 가톨릭
문화를 기반으로 한 영성적 이미지가 한 축을 차지했는데
October의 Gloria 같은 트랙이 대표적이었다.
솔까말, Joshua Tree의 전체 컨셉 자체가 미국 투어 중에
경험한 영적 체험과 연관이 있다는 썰이... 제목부터 여호와
나무 아닌감. - 실은, 중앙 아메리카를 여행하며 미국 대외
정책의 폐해를 몸소 체험한 보노가 '위대한 아메리카의 정신이
이런 거냐!'고 통렬하게 일갈하는 메세지란 것이 정설이다.
레이건 시대 아니였겠냐.. 속 터지는.. 커버 아트에 담은
식물은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에 자생하는 희귀종이며
본작 이후 U2의 심볼로서 세계적인 이미지를 얻게 된다.
('Gloria' from October,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4X_45Yngey4
*83년 라이브 Under a Blood Red Sky 버젼.
- 사실 이 곡의 진정한 백미는 Adam Clayton의 베이스 연주.
('Running to Stand Still' from The Joshua Tree, 1987)
https://www.youtube.com/watch?v=7OFmMDYTOt0
*아일랜드인들의 마약 중독 현상을 주제로 한 문제작.
브라이언 이노와의 만남 - 조슈아 트리, 라누아
('Pride (in the Name of Love)' from The Unforgettable Fire, 1984)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주인공으로 한 스토리.
('With or Without You' from The Joshua Tree, 1987)
*전설의 시작. 뮤직 비디오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 심오한 어덜트 로맨스 가사이지만 중의적인 종교적 해석도 가능.
- 인트로 프레이즈에서 드럼 머신 비트를 차용. Yamaha DX-7.
- 1절에 음을 무한정 sustain하는 infinite guitar 기술이 등장.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from The Joshua Tree, 1987)
*이 시기부터 가스펠과 소울의 기운이 움트기 시작했다.
**AFKN에서 이 영상 보는 일이 유일한 낙이었던 시절..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from The Joshua Tree, 1987)
- The Edge의 상징과도 같은 딜레이 이펙트가 작렬한다.
War를 끝내고 자아에 눈을 뜬 U2는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기
위해 그릇이 큰 프로듀서를 찾았고 이는 릴리화이트도 동의한
점이었다. 미팅 제의를 받은 브라이언 이노가 본인은 거절하고
대신 추천하기 위해 대니얼 라누아를 데리고 나갔는데, 이들의
잼 세션과 보노의 열정적인 설득에 그만 넘어가고 말았다네.
팝 음악 역사상 역대급의 대사변. U2가 이노를 만났다. 거기에
대니얼 라누아는 부록.. 릴리화이트를 내친 것도 아니다. 이노,
라누아, 릴리화이트. 이 세 분은 이후 평생에 걸쳐 U2 음악을
지원하는 든든한 프로듀서 사단으로 자리잡는다. - 이노, 이때
음악 커리어 때려치울까 하던 참이었다는데.. 인생 참 모른다..
브라이언 이노가 어느 정도 레벨의 음악가인지 모르는 사람도
간혹 있던데... 중상위급 히트를 기록한 록시 뮤직에서 기괴한
메이크업의 깡마른 무그 신디 연주자로 커리어를 시작하셨다.
프로그씬 3대 또라이 중 하나로 불리던 시기였다. 물론 앨범
두 장 내고 탈퇴했지만.
또라이 기질로 결코 뒤지지 않는 데이빗 보위나 피터 가브리엘,
로버트 프립 등의 70년대 앨범들 프로듀싱을 도맡으면서 음악계
최고 수준의 명성을 얻게 된다. 뭔가 아방가르드하고 익스페리멘탈
하면서 프로그레시브 같은데 일렉트로닉 스러운... 어딘지 묘한
실험적 전자음악 분위기 창출에 있어선, 70년대 후반 유럽권을
통틀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분이셨다.
앰비언트란 장르의 창시자이기도 하셨고. 뉴에이지의 조상인 게지..
음향 디자인에도 일가견이 있고 전파 망원경 설계에도 조력했으며
예술 창작 패러다임 전반에 철학적 영향을 끼친 분인지라 단순히
대중 음악가 한 가지 면으로 규정할 수가 없는 먼치킨 천재인 분.
존경받는 대선배와의 작업은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영감을 얻는
과정이었던 바, 이노는 일련의 즉흥 잼을 통해 보노와 디 에지와
클레이튼 등이 스스로의 껍데기를 부수고 새로운 악상을 떠올릴
수 있도록 자신감을 북돋는 역할을 했다. 이노가 채 챙기지 못한
영역을 찾아 다니며 기술적 절차를 메꾸는 역할은 라누아가 큰
도움을 주었고 특히 뮬렌과 짝을 이뤄 드러밍이나 리듬 파트의
음향을 개선하고 혁신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래리 역시 이 시기 라누아의 도움으로 실력이 확 늘어났음을
지금까지도 흔쾌히 인정한다. 라누아는 애덤의 베이스 플레잉
테크닉에도 깊은 영향을 끼쳐 종전보다 훨씬 미묘한 뉘앙스를
표현할 수 있는 연주자로 변화시켰다고 한다.
https://www.atu2.com/news/the-larry-mullen-jr-interview.html
('Life During Wartime' by Talking Heads, 1979)
https://www.youtube.com/watch?v=jShMQw2H2cM
*excerpts from live '83 Los Angeles.
- 보컬 David Byrne, 베이스 Tina Weymouth
- 키보드 Jerry Harrison, 게스트 키보드 Bernie Worrell
('Once in a Lifetime' by Talking Heads,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TGofoH9RDEA
*excerpts from live '83 Los Angeles.
U2 멤버들은 특히 이노가 작업한 토킹 헤즈의 앨범들을 좋아했다.
하지만 새로운 작업은 기존 포스트 펑크에서 한두 차원 더 진보해
실험적인 전자 합성음을 도입하고 디 에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딜레이 등 다채로운 이펙트를 시험하거나 반대로 아메리칸 포크,
아이리쉬 루츠, 컨트리 블루스 등 전통적인 장르를 탐구하는 등
실로 광폭적인 범주까지 확장이 이루어졌다고.
마틴 루터 킹을 모티브로 한 Pride (in the Name of Love)나
동명의 타이틀 트랙을 앞세운 84년 4집 The Unforgettable
Fire는 실험 정신의 첫 결과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들을 세계구급의 진짜 거물로 키운 진정한 대박 작품이 곧
기다리고 있었으니 87년 5집 The Joshua Tree였다. U2의
빌보드 200 차트 첫 정상 앨범... 바야흐로 전설이 시작된 것.
With or Without You와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는 U2의 커리어 전체를 상징하는 올타임 시그니처
트랙이 되었고 이들에게 유이한 핫100 차트 탑을 남긴 대박
히트를 선사한다. 뒤를 이은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등 수록 트랙 전곡이 평단과 대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버릴 곡 없는 명반이 탄생한 것. 대한민국이 민주화의
열망으로 뜨거웠던 1987년, 세계 음악계의 위너는 U2였다.
('The Unforgettable Fire' from eponymous album, 1984)
https://www.youtube.com/watch?v=oxRr3umJz5Y
*가사는 히로시마 원폭 참상에 대한 내용.
밴 모리슨의 영향과 아이리쉬 루츠 소울
('Desire' from Rattle and Hum, 1988)
('Angel of Harlem' from Rattle and Hum, 1988)
('All I Want Is You' from Rattle and Hum, 1988)
*17년 U2 at the BBC 버젼.
밴 모리슨 이야기를 빼놓으면 안 되지 않을까. 아이리쉬
쇼밴드 및 소울의 출발점은 60년대말 모리슨으로부터
잡아야 마땅하니까. 80년대 이후 보편화한 블루 아이드
소울의 아일랜드식 원형이던 그는 제임스 브라운, 윌슨
피켓, 팻츠 도미노, 재키 윌슨 등 오리지널 흑인풍과 또
다른 풍미와 그루브로 R&B를 재창조한 선구자였다.
베이스 라인의 그루브 백킹을 중시하고 독자적인 기타
리프를 앞장세우는 작편곡 패턴이나, 흑인들의 감성에
일견 가까워 보이지만 뭔가 한 끝 차이로 미세한 조정을
가미한 보이싱 등 측면에서, 모리슨의 스타일링이 후대
음악가들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물론 70년대초에 형성한 R&B의 패턴이 다 이러니
특별하다 평할 순 없다고 비판할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아일랜드라는 토양과 문화적 기반 위에서 밴
모리슨이란 이름의 존재감은 폄하할 수 없을 것이다.
('Brown Eyed Girl' by Van Morrison, 1967)
https://www.youtube.com/watch?v=UfmkgQRmmeE
*줄리아 로버츠 생각나는 사람 많을 듯..
('Domino' by Van Morrison, 1970)
https://www.youtube.com/watch?v=yiDcPUOD-vY
*Fats Domino에게 헌정한 곡.
('Wild Night' by Van Morrison, 1971)
https://www.youtube.com/watch?v=bXoBnmJtqhY
*94년 John Mellencamp의 커버도 히트했다.
('Jackie Wilson Said' by Van Morrison, 1972)
https://www.youtube.com/watch?v=TY0_1VN7h8c
*당연하지만 Jackie Wilson에게 헌정한 곡.
80년대 내내 전미 투어를 돌며 보노와 디 에지 등이 모리슨,
스톤즈, 딜런 등 선배로부터 펑크 이전 시대의 음악에 관해
꾸준히 전수를 받곤 했는데 이 영향이 직접 드러난 작품이
88년 더블 앨범으로 나온 6집 Rattle and Hum이었다.
- 이 앨범에 대한 평가는 물론 호불호가 갈리긴 한다.
2005년 락앤롤 명예의 전당 헌액에 즈음하여 U2 멤버나
평단의 공통적인 평가로 밴 모리슨을 그들 음악의 원류로
이미 인정한 바 있다. 아래 링크에선 87년과 07년 각각의
인터뷰를 통해 보노와 디 에지가 어떤 술회를 고백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딴지 걸지 말자구..
*Los Angeles Times' interview with Bono, 1987
https://www.latimes.com/archives/la-xpm-1987-12-20-ca-30278-story.html
*ABC's interview with The Edge, 2007
https://abcnews.go.com/Nightline/Playlist/story?id=3440730&page=1
*아일랜드가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갖고 흑인 음악을
받아들여 50년대 이후 독창적 문화를 발전시킨 면은,
91년 앨런 파커 감독 영화 커미트먼츠 - 87년 출간된
동명의 로디 도일 소설 원작 - 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Try a Little Tenderness' from The Commitments OST, 1991)
https://www.youtube.com/watch?v=PKfHC5eY5CI
*Otis Redding이 커버한 66년 버젼이 유명하다. 원곡은 32년작.
('When Love Comes to Town' from Rattle and Hum, 1988)
https://www.youtube.com/watch?v=BpaAcIovUtk
('Stay (Faraway, So Close!)' from Zooropa, 1993)
('Hold Me Thrill Me Kiss Me Kill Me'
from Batman Forever OST, 1995)
('Discotheque' from Pop, 1997)
솔직히 전작에 대한 평가는 그닥 좋지 못했고 90년대가 되어
U2는 변화의 전기가 필요했다. 초창기 사운드로 돌아가자는
클레이튼 및 뮬렌 vs 완전 새로운 것을 도입하자는 보노 및 디
에지. 이런 갈등 구도가 오히려 명곡을 탄생시켰는데 Achtung
Baby의 One이 바로 그 곡. 아이러니이다.
91년 7집 Achtung Baby는 변화에 대한 욕구와 와신상담
끝에 나온 역작이다. 결국 보노와 디 에지의 창작 성향이 밴드
내에서 주도권을 얻는 모양새로 가게 된 바, U2는 당시 움트기
시작한 얼터너티브와 모던 락의 문법을 받아들이고 일렉트로닉
및 인더스트리얼의 새로운 조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모던
락 태동의 80년대 단초를 제공한 이들이 거꾸로 그 거센 흐름을
다시 자기들 것으로 융합한 셈..
The Fly가 이런 새 경향을 대표하는 트랙. Mysterious Ways
및 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이 들려준 참신한
모드 역시 90년대다운 사운드의 산물이었다. 어딘가 변화의
전기를 마련한 본작의 혁신적 성향은 평단과 대중의 즉각적인
찬사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93년 8집 Zooropa 및 97년 9집 Pop 역시 Achtung Baby
출산의 연장선상에 있음이 뚜렷했다. 하지만 워낙 변화의 물결이
거셌던 세기말의 90년대인지라 두 장 앨범의 끝물쯤 와서는
일부 팬덤이 피로감을 호소하는 역효과를 감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포스트 펑크 액트가 아님을 여실히
증명한 90년대식 U2 음악을 확인할 필요는 있다. Zooropa에서
Stay (Faraway, So Close!), Lemon, Numb 등을, Pop에서
Discotheque, Staring at the Sun 정도는 체크할 만하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를 넘어서며 U2는 바야흐로
음악 산업을 통틀어 역대급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거물 중의
거물로 몸집이 커지고 있었다.
('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 from Achtung Baby, 1991)
https://www.youtube.com/watch?v=Y4AX2CGYl7Q
*The Fly보다 이 곡을 우위에 두는 팬도 많다.
('Lemon' from Zooropa, 1993)
https://www.youtube.com/watch?v=9YoAQ50BK74
('Numb' from Zooropa, 1993)
https://www.youtube.com/watch?v=sfYcqzQ2PaQ
*단조로운 톤의 만트라 랩을 시전하시는 분은 The Edge.
('Staring at the Sun' from Pop, 1997)
https://www.youtube.com/watch?v=q4Gr8Lf2Bzo
('Sweetest Thing' from The Best of 1980-1990, 1998)
https://www.youtube.com/watch?v=ikUpmvPjN0I
월드 투어와 스타디움... 더 후를 꿈꾸며
*Pride (in the Name of Love) from Zoo TV Tour
*One from PopMart Tour
*Stay (Faraway, So Close!) from Elevation Tour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from Vertigo Tour
*With or Without You from U2 360° Tour
U2 멤버들이 유년 시절부터 받은 영향을 따져 본다면
더 후와의 상당한 유사점이 발견됨을 알 수 있다. 같은
편성의 밴드를 운영하고 있고 기타리스트의 캐릭터가
중요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이미지의 리드 보컬, 각각의
독자적 노선을 추구하는 리듬 섹션 두 멤버의 위치 등
측면에서 꽤나 비슷하다.
무엇보다 아레나 또는 스타디움 환경에서 대규모의 군중을
휘어잡는 음악적 폭발력이 스튜디오 앨범과 또 다른 형질의
매력을 형성한다는 측면에서, U2를 가리켜 80~90년대의
더 후라고 새롭게 규정할 수 있을 터이다. (앨범으로 듣는
음악과 현장에서의 사운드, 둘 사이에 서로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대표적인 두 밴드일 게다.)
Joshua Tree의 대성공 이후 자신들의 위상과 외부적인 음악
산업 지형의 변화를 체감하면서, 투어 현장의 분위기가 왠지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느낌을 네 분이 공통으로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Achtung Baby 지원을 위한 92~93년 Zoo TV
Tour부터 U2는 공연 문화의 일대 혁명을 시도한다.
이전까지 이들 투어의 무대는 일반적인 아레나락 패턴을
좇는 간소함 뿐이었는데, 투어 컨셉트 디자인을 전담하는
전문가를 선임하고 대규모 조명과 세트 디자인, 대형 스크린,
뉴 미디어를 과감하게 투자하여 스타일리쉬한 비디오형
투어 - 오늘날 U2 공연 하면 떠오르는 예의 이미지 - 를,
Zoo TV를 전환점으로 하여 구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Zoo TV가 그래서 이들 음악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건인
것이며 Zoo TV 이후 U2의 공연 실적이 음악 산업 전체의
역사를 다시 쓰기 시작해 오늘날 U2 하면 떠오르는 투어
황제로서의 위상을 제고하는데 시발점이 된 것이다.
- 즉 세계 공연 수익을 싹쓸이해 갔다는 말이다...
이에 견줄 만한 상대론 솔직히 스톤즈 외엔 없다..
*U2 월드 투어 연혁 - 공연 회수 및 매출:
- Zoo TV Tour (1992~93; 157회, 1.5억불)
- PopMart Tour (1997~98; 93회, 1.7억불)
- Elevation Tour (2001; 113회, 1.4억불)
- Vertigo Tour (2005~06; 131회, 3.8억불)
- U2 360° Tour (2009~11; 110회, 7.3억불)
- Innocence + Experience Tour (2015; 76회, 1.5억불)
- The Joshua Tree Tour '17 (2017; 51회, 3.1억불)
- Experience + Innocence Tour (2018; 60회, 1.2억불)
- The Joshua Tree Tour '19 (2019; 14회 예정)
('Pinball Wizard' by The Who, 1969)
https://www.youtube.com/watch?v=-J03yCE15rg
('Won't Get Fooled Again' by The Who, 1971)
https://www.youtube.com/watch?v=x1_69AAX-OY
*Beautiful Day from Glastonbury Festival '11
*Vertigo from Innocence + Experience Tour
기본으로 돌아오다 - 2000년대 이후
('Beautiful Day' from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2000)
('Walk On' from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2000)
*아웅산 수찌에 관한 가사지만 미국에선 9.11에 대한 위로의 뜻을 담기도.
('Vertigo' from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 2004)
('Sometimes You Can't Make It on Your Own from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 2004)
*가사의 주제는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감정.
90년대 후반의 앨범들 반응을 읽고 있던 멤버들이 또 한 번
태세를 전환하여 음악적 방향을 바꾼 역작을 내놓기에 이른다.
2000년 10집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및 04년
11집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이 그것. U2의
음악적 생명력이야말로 실로 마르지 않는 샘물 아니겠는가.
이른바 back-to-basic, 기본으로 돌아온 락 본연의 정신이라
세간의 평단이 일제히 환영과 찬사를 보낸 바, 포스트 펑크와
얼터너티브의 다양한 실험을 거쳐 마치 그 옛날 전성기 시절
더 후의 영광을 재현하듯이 콘서트형 정통 하드락의 계보를
충실히 잇는 히트 트랙을 줄줄이 내놓는다.
ATYCLB에서 Beautiful Day, HtDaAB에서 Vertigo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금세기의 걸작 히트곡. 디스토션 걸린
디 에지의 기타가 불을 뿜어 쿨함이 작렬하는 넘버들이다.
그 해 그래미가 즉각 화답한 Walk On이나 Sometimes
You Can't Make It on Your Own 역시 빼놓을 수 없고.
연이어 09~11년의 U2 360° Tour는 역사상 최고의 매출을
기록한 공연 투어로 수위를 다투는 대기록을 세우며 이들의
이름을 다시 드높인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해 환산하면 무려
미화 8억 2천만 달러.. 한화 9천억 원의 돈방석에 오르셨다.
실질적으로 역대 매출 최정상이라지... 1위라고.
이후 현재까지 09년 12집 No Line on the Horizon, 14년
13집 Songs of Innocence, 17년 14집 Songs of Experience
등 정규 앨범을 통해 여전히 정상의 자리에서 노래하는 U2...!
이들이 앞으로 걸어나갈 한 걸음 한 걸음이 곧바로 음악사의
새로운 장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 모두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대중 음악계의 전설을 목격하고 있는 셈인 게지...
('Stuck in a Moment You Can't Get Out Of' from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2000)
https://www.youtube.com/watch?v=1sn3bJ5Ya-A
('Elevation' from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2000)
https://www.youtube.com/watch?v=xbyjeHKSn-E
('Electrical Storm' from The Best of 1990-2000, 2002)
https://www.youtube.com/watch?v=anhRKfOkBSY
('City of Blinding Lights' from
How to Dismantle and Atomic Bomb, 2004)
https://www.youtube.com/watch?v=Fg4MfA3BCyI
('Get On Your Boots' from No Line on the Horizon, 2009)
https://www.youtube.com/watch?v=JcDNilZbZg8
*쿨한 90년대 분위기로 잠시 복귀한 듯..
그래미가 사랑한 그들, 사회 활동가로서
('Theme from Mission: Impossible by
Adam Clayton and Larry Mullen Jr., 1996)
76년 결성 후 그 상업적인 성과 만큼 U2에 관한 예술적 평가
역시 당대에나 후대에나 찬사 일색이다. 특히 그래미 어워드가
이들을 후하게 아낀다고 널리 알려져 있고 19년 현재까지 46회
후보 지명되어 이 중 무려 22회의 수상 기록을 남겼다.
최초의 후보 지명이 Joshua Tree 앨범부터인데 지명된 첫
해 88년에 실질적 대상인 올해의 앨범 상을 안기는 전무후무한
결과를 기록하는 등, 그래미의 편애는 일찍부터 시작하였다.
Achtung Baby 시기엔 올해의 앨범 후보 지명으로 그쳤다가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때는 Beautiful Day에
01년 올해의 레코드 및 올해의 노래 두 개 트로피를 안겼고,
거기에 같은 앨범에서 2년 연속으로 이듬해 Walk On에
올해의 레코드 트로피를 선사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06년 시상식에서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에
올해의 앨범 상을, 여기 수록된 Sometimes You Can't Make
It on Your Own에 올해의 노래 상을 시상함으로써 명실공히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에 또 하나의 명예를 추가해줬다.
이들이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추천 자격이 주어지는 첫 해 2005년에 단번에 헌액을 받아
U2가 괜히 U2가 아니구나 하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헌액식에서 서훈 수여자는 바로 브루스 스프링스틴..
(Rock and Roll Hall of Fame, official archive)
https://www.rockhall.com/inductees/u2
(U2 fans' web archive)
https://www.atu2.com/events/05/rockhall/
2010년에 롤링 스톤 매거진이 시대를 초월한 100대 아티스트
랭킹을 발표했던 바, 여기서 U2는 브루스 스프링스틴, 프린스,
마이클 잭슨, 마돈나 등 동시대에 호각을 다투고 자웅을 겨루던
선후배 음악가들을 제치고 비틀즈, 밥 딜런, 롤링 스톤즈, 스티비
원더 등 선각자들의 뒤를 이어 당당히 22위로 평가를 받았다.
- 강조하지만, 이거 엄청 높은 거다...
(Rolling Stone '10, 100 Greatest Artist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artists-147446/u2-10-92368/
돈 많이 버는 졸부로서의 의무감이 아니라 진정성을 가지고
사회와 세상에 메세지를 전달하는 성숙한 성인으로서, U2는
언제나 범진보적인 사회 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해왔다.
80년대 Band Aid 및 Live Aid 참가쯤이야 너무 유명하니
생략해도 될 것 같고 국제 앰네스티, 그린피스, 월드비전,
주빌리 2000 등이 주관하는 행사와 공연에 협력해왔다.
86년엔 앰네스티 주관의 A Conspiracy of Hope 공연에
올랐고 보스니아 내전 중 행사 경험을 바탕으로 95년에
파바로티와 친구들 프로젝트를 통해 Miss Sarajevo란
노래를 발표했다. 이듬해 굿 프라이데이 협약을 앞두고
벨파스트 무대에 올라 노래했고 지우마 호세프, 아웅산 수찌,
넬슨 만델라 등 세계 지도자들과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어왔다.
보노 개인적으로는 80년대 니카라과 및 엘살바도르 내전
종식을 위한 평화 활동에 참여한다거나 아프리카 및 제3
세계 국가 채무 청산을 위해 무하마드 알리 및 밥 겔도프와
연대 모금 활동에 분주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03년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07년에 영국
여왕의 명예 훈장을 받은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이밖에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보노 및 멤버들의 사회
운동 이력은 차고 넘치며 하나같이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진짜배기 활동 내용이다. 매년 발표되는 노벨 평화상 후보자
명단에 보노나 U2가 괜히 단골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다.
('Mothers of the Disappeared' from The Joshua Tree, 1987)
https://www.youtube.com/watch?v=kjuIAuSzGbc
*엘살바도르 내전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을 위한 노래.
**Brian Eno의 드럼 루프 이펙트가 매우 독특하다.
('Miss Sarajevo' by U2 and Brian Eno, 1995)
https://www.youtube.com/watch?v=PVl2lluR_Tw
*보스니아 내전의 참상을 알린 곡. ft. Luciano Pavarotti.
('The Hands That Built America' from Gangs of New York OST, 2002)
https://www.youtube.com/watch?v=uUzixzRufbk
*마틴 스콜세지 영화 갱스 오브 뉴욕에 수록된 곡.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from The Joshua Tree, 1987)
*official music video
**네 분 모두 참 젊고 멋지며 섹시한... good-old dayz..
"공감을 눌러 주시면 큰 힘을 얻습니다"
브래드 델프 Brad Delp (0) | 2020.02.09 |
---|---|
데니스 드영 Dennis DeYoung (0) | 2020.01.10 |
게디 리 Geddy Lee (0) | 2019.11.09 |
존 앤더슨 Jon Anderson (0) | 2019.10.19 |
데이빗 보위 David Bowie (1) | 2019.09.22 |
이 분이 노래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참 신기하기도
하고 대단하다고 경탄을 금할 수 없다. 데뷔 이후
일체의 바이브레이션 없는 직선적 고음을 한결같이
유지해오신, 영원한 펑크punk 스타 스팅.
슈퍼 트리오 폴리스의 베이시스트이며 Every Breath
You Take 단 한 곡으로도 영원히 기억되는 미노년의
거물 락커 스팅 Sting이 이번 포스팅의 주인공이시다.
('Every Breath You Take' from Synchronicity, 1983)
('Fields of Gold' from Ten Summoner's Tales, 1993)
스팅은 왜 이름이 스팅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한때는
좀 있었는데, 꿀벌 티셔츠를 즐겨 입으시던 이 분의 20대
시절 별명이었단다. sting에는 벌침이란 뜻도 있거든.
물론 본명 아니고 1951년에 고든 매튜 토머스 섬너란
긴 이름으로 태어나셨다. 잉글랜드.
그의 솔로 아티스트로서 전성기가 한국 음악 시장에서
해외 음악이 활발하게 수입되고 정보가 유입한 홍수기와
대략 일치하기 때문에 솔로 경력은 그래도 비교적 알려져
있는 것 같다. 굳이 설명할 필요 있을까 싶을 만큼.
그래도 약간 언급은 하겠지만서도.
한국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시기는 그의 밴드 시절이
아닌가 싶네. 폴리스 The Police. 슈퍼 락스타 스팅의
시작점을 제공한, 역사상 최강의 락 트리오 중 하나인
그들. 이름이 폴리스인 이유는 멤버 한 분 아버지가
정보 기관에 근무하셨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https://www.etonline.com/music/166153_7_things_you_never_knew_about_sting_the_police
(The Police)
(Outlandos d'Amour)
베이스와 보컬의 스팅, 기타의 앤디 서머스, 드럼의 스튜어트
코플랜드.. 이렇게 세 사람으로 1978년에 데뷔 앨범을 내고
다섯 장까지 정규 앨범을 낸 뒤 84년쯤 활동을 정리한 3인조
구성의 영국 밴드가 폴리스이다.
80년대 포스트 펑크와 뉴웨이브에 기반을 두고 재즈, 레게,
스카, 아프리칸 등 다양한 장르를 복합한 음악을 단 셋만의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한 편성으로 엮어낸, 락 음악사상
가장 탄탄한 음악성을 지닌 슈퍼 트리오라고 불렸다. 소위
일컫는 80년대 제2차 브리티쉬 인베이전의 일원이기도.
78, 79, 80, 81, 83년에 각각 발표한 정규 앨범이 죄다 영국
차트 탑텐에 올랐고 이 중 3-4-5집은 미국에서도 탑텐을
기록했다. 다섯 장 중 넉 장은 롤링 스톤 지가 발표한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반에 당당히 선정될 정도. 앨범의 전 세계
판매고가 8천만 장에 달하고 여섯 차례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브릿 어워드도 두 번 받았다. 2003년에 이미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Summers)
(Copeland)
(Regatta de Blanc)
(Zenyatta Mondatta)
4집까지 음악성도 탄탄하여 성공했지만 83년 Synchronicity
앨범과 싱글 Every Breath You Take의 초대박 메가히트는
너무나 유명한 전설이다. 앨범과 싱글 쌍끌이로 미국 시장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찍었다.
스팅이 아내와 불화가 있던 시절 스토커가 된 심정으로 어디
얼마나 잘 사나 지켜보자고 쓴 가사인데 끈적한 사랑 노래로
오해하는 사람 참 많다. -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 현상.
가사를 쓴 그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고. 결혼식서 부르지 말자.
다 필요없고 폴리스와 스팅을 대표하는 시그니처송 아니겠냐.
생략하고 갈 수 없으니 먼저 듣고 시작하자. 원곡도 훌륭하고
아래에 2008년 재결합 투어 중 도쿄돔 라이브 버젼도 좋다.
(Every Breath You Take, single)
*2008 Reunion Tour 중 Every Breath You Take.
서머스가 창조한 저 기타 리프는 모르는 이 없이 역사상
가장 유명한 프레이즈. 82년 로버트 프립과 듀오 앨범
I Advance Masked를 낼 때 벨라 바르톡을 연구했는데
거기서 착안했다지.
얼핏 듣기로는 쉬운데 막상 치려면 손가락 찢어진다고
악명높은 악마의 리프라지... 무려 캘리포니아 주립대
음대서 클래식 기타를 전공한 분이니 핑거링 난이도
쯤이야 이미 아득히 초월한 수준 아니겠남.
https://www.youtube.com/watch?v=dOJjxL82X2Q&t=275s
(왜 어려운 리프인지.. 4분 35초 경부터)
주변에 폴리스의 라이브를 들려줄 때 나오는 반응 중
열에 여덟 아홉은 그렇다. 스팅만 알고 들어갔는데 나올
땐 서머스와 코플랜드의 팬이 되어 버린다고. 하나의
온전한 밴드를 얘기할 때 두 분은 스타인 스팅보다
더 중요할지 모르는 것이 사실일 거다.
(앤디 서머스 1987년 인터뷰. 기타 사운드의 디자인에 대해..)
https://www.youtube.com/watch?v=RS87DCFfzxU
(스튜어트 코플랜드 드러밍에 대한 설명. 어느 드럼 강사..)
https://www.youtube.com/watch?v=Mwojr-12xK4
42년생으로 이미 60년대 중반부터 블루스와 사이키델릭
연주자로 각광받은 앤디 서머스. 실력파 밴드 소프트 머신에서
투어 연주자로 뛰었고 저명한 애니멀스에서 정규 멤버인 적도
있었으니, 적어도 실력에 있어 누가 딴지 걸 만한 짭밥은 아닌
채로 폴리스에 참여한 분이다.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데뷔 무렵 세 분 중에선 멀찍이 앞서가던 멤버인 셈이다.
때려부수는 파괴적 주법이 아닌 스티브 해킷, 스티브 하우,
알렉스 라이프슨, 로버트 프립처럼 톤과 이펙트를 중시하는
분석적 어프로치로 프레이징을 펼친다 하여 흔히 두뇌파로
분류되는 기타리스트. 동시대 U2의 디 에지와도 유사한 면이
있고, 톤 중심 접근 자체가 포스트 펑크의 트레이드 마크일 듯.
폴리스의 라이브나 앨범 트랙을 골고루 들으면 금방 알 수
있지만 사운드 메이킹에서 서머스의 어프로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작곡 크레딧을 대부분 스팅이 가져간다는
단순한 이유로 따질 수 없는, 분명한 자기 생태계를 구축하는
밴드메이트인 것이다. 폴리스 이전 서머스의 플레이를 느끼기
원하는 사람에겐 애니멀스 시절 4분이 넘는 솔로잉을 펼친
트랙 Coloured Rain을 보통 추천하곤 한다.
('Colored Rain' by Eric Burdon and The Animals, 1968)
- 애니멀스 시절 앤디 서머스. 솔로 파트는 2' 20" ~ 6' 40" 정도에..
(폴리스가 과연 punk 밴드였는지 의심이 든다면 아래 영상을...)
https://www.youtube.com/watch?v=rPNQyyLglSQ
(Fender Telecaster)
('So Lonely' from Outlandos d'Amour, 1978)
*2분 25초쯤 이후 솔로잉도 꽤 괜찮은 편이다.
('De Do Do Do De Da Da Da' from Zenyatta Mondatta, 1980)
*이 곡에선 기타 이펙트로 리버브와 에코를 적절히 섞었다.
('Demolition Man' from Ghost in the Machine, 1981)
*앨범 버젼에서 기타 솔로잉을 만끽할 수 있다. 버젼이 여러가지라..
('Demolition Man' by Manfred Mann's Earth Band, 1982)
- 데몰리션 맨을 맨프레드 맨s 얼쓰 밴드가 커버했는데 꽤 잘 뽑혔다.
폴리스의 히트곡 가운데 서머스 이펙트의 진가를 보여줄
트랙으로는 1집 Outlandos d'Amour에서 So Lonely,
2집 Regatta de Blanc에서 Message in a Bottle, 3집
Zenyatta Mondatta에서 De Do Do Do De Da Da Da,
4집 Ghost in the Machine에서 Demolition Man 등을
추천할 만하다.
특히 Message in a Bottle은 1집에서 Roxanne이 크게
히트했음에도 실질적으로 폴리스 음악의 기초를 세웠다고
평가받는 명곡이다. 롤링 스톤 지가 시대를 초월한 기타
(가 중심이 되는) 노래 100곡을 선정할 때 65위를 차지할
정도로 스트랫 선상의 리프가 또렷하고 청량하다.
(Rolling Stone Magazine's 100 Greatest Guitar Songs of All Time)
https://www.stereogum.com/10114/rolling_stones_100_greatest_guitar_songs_of_all_ti/franchises/list/
('Message in a Bottle' from Reggatta de Blanc, 1979)
*록산은 파리의 매춘부를 가리킨다. 신호등과 상관없다능.
52년생 스튜어트 코플랜드는 개별 악기 능력에 있어선
세 멤버 중 평가가 가장 높다. 16년 롤링 스톤 지 선정
시대를 초월한 드러머 100명 중 무려 10위, 05년 모던
드러머 및 13년 클래식 드러머 명예의 전당 헌액 등등..
특히 트래디셔널 그립으로 스틱과 하이해트, 림을 다루는
테크닉은 동시대 최강이며 많은 후배들에게 영향을 줬다.
사운드의 여백을 책임감있게 메꿀 정도의 능력치는 존 본햄,
닐 피어트, 칼 팔머와 동급이라는 것이 중평이라 하겠다.
정작 본인은 미치 미첼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다 하고
진저 베이커도 자주 언급했다. - 세 분 모두 락 트리오의
멤버들.. 왜인지, 버디 리치 스타일 재즈 긱은 싫어한다고.
(Rolling Stone '100 Greatest Drummers of All Time', 2016)
(Modern Drummer Reader Pole, 2005)
https://www.moderndrummer.com/modern-drummers-readers-poll-archive/#_
(Classic Drummer Hall of Fame, 2017)
https://www.classicdrummerhalloffame.com/stewart-copeland
(traditional grip of a left hand)
어린 시절 한동안 가족이 중동에서 지낸 탓인지 레게 및
스카를 포괄한 다채로운 전통 리듬에 익숙하여 폴리스의
음악에 크게 기여한다. 때때로 클래식 퍼커셔니스트마냥
광범위한 진폭의 다이내믹스에 능한 것도 이 때문일 듯.
꽉 찬 그루브의 재즈적 필인 또한 지나칠 수 없는 요소.
이들에게 하나의 루틴 패턴인데, 스팅이 베이스로 중심을
잡으며 가사를 읊는 뼈대 위에 서머스가 다양한 이펙트를
변용하여 사운드를 채워주고 코플랜드가 그 위로 리듬을
운용하는 자유분방함... 3집까지 레게와 펑크punk를
고수하던 폴리스의 음악은 대략 이런 양상이었다.
('Don't Stand So Close to Me' from Zenyatta Mondatta, 1980)
*80년 앨범 원곡 버젼. 스팅은 실제로 교사였던 적이 있다고.
*86년 재녹음 버젼. 이 앨범 하나면 왠만한 히트곡 다 들을 수 있다.
1집의 Roxanne을 쓸 때 스팅은 당초 보사노바 리듬을
구상했지만 코플랜드의 조언에 의해 탱고로 바꿨다고.
서머스는 여러 모로 이들에게 중요한 2집 Message in a
Bottle의 코플랜드 플레이가 역대 최고였다고 극찬했다.
3집의 Don't Stand So Close to Me는 여학생이 선생님에
품은 감정을 다룬 영국 차트 1위 곡인데 기타 신디사이저가
등장한다. 해산 후 86년에 히트곡 모음집인 Every Breath
You Take: The Singles를 발매할 땐 '86 버젼으로 재녹음
중이었는데 마침 코플랜드가 부상 중이라 워크스테이션 명기
Fairlight CMI로 드럼 프로그래밍을 직접 했다고.
*아랜 86년 The Singles의 95년 재발매판 커버.
(EBYT: The Classics)
*아랜 97년 또다른 모음집. 이들은 베스트 앨범이 잘 팔리는 편.
(The Very Best of Sting & the Police)
('The Bed's Too Big Without You' from Reggatta de Blanc, 1979)
2집의 The Bed's Too Big Without You는 세 멤버가
고루 우수한 가운데 특히 평단이 코플랜드의 물수제비 뜨는
듯한 스네어 드러밍을 콕 집어 칭찬한 바 있다. 3집의 숨은
진주 Driven to Tears는 싱코페이션 가득한 레게 리듬을
무리없이 소화해낸 코플랜드와 함께 서머스의 여덟 마디
솔로잉이 격찬을 이끌어내기도.
3집 중 엄청난 길이의 제목을 가진 When the World Is
Running Down, You Make the Best of What's Still
Around.. 이 트랙에서 보여준 funky-groove한 베이스와
드럼의 조화 역시 대단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5집의 Murder by Numbers가
코플랜드의 재즈식 테크닉을 진짜 매력있게 들려준다고도..
('Murder by Numbers' from Synchronicity,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1Wp-SZSBkjk
('Driven to Tears' & 'When the World Is Running Down, You Make
the Best of What's Still Around' from Zenyatta Mondatta, 1980)
- Zenyatta Mondatta의 두 트랙을 이어붙임..
(Ghost in the Machine)
4집 Ghost in the Machine이나 5집 Synchronicity
쯤 가면 스팅이 뉴웨이브와 신디사이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이전까지 사운드를 채워주던 서머스와
여러 모로 부딪히게 된다. 밴드 스코어에 신디가 설치기
시작할 때 기타리스트의 운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는 법.
4집의 Every Little Thing She Does Is Magic이나
Spirits in the Material World 같은 히트곡을 만들 때
스팅과 서머스의 갈등이 점입가경이었다고. 신디 톤이
점령해 들어오면서 펜더 소리 듣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음은 그냥 대충만 들어봐도 뭐..
아래에 4집 내고 공연 중.. Moog Taurus pedals 쓴다고
엄청나게 스팅 까는 댓글은 덤이다.
*Sting playing Moog Taurus pedals, 1982.
https://www.youtube.com/watch?v=nYFjTPAQ6G0
(Moog Taurus)
('Every Little Thing She Does Is Magic'
from Ghost in the Machine, 1981)
('Spirits in the Material World' from Ghost in the Machine, 1981)
(Synchronicity)
가뜩이나 멤버들 간에 신경이 곤두서 있던 차에 제작사
압력으로 녹음에 들어간 Synchronicity. 서로 모이지도
않고 따로 자기 파트를 녹음했다는 후문. 그런 앨범이
역대 최고의 성과를 거둔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말다니.
스팅의 가사는 결코 쉽지 않다. 교대 나와 교사로 일한 적
있는 엘리트인지라 어려운 표현 투성이에다 가끔 스노비즘
쩌는 반쯤 허세 같은 작품도 심심찮게 나온다. 본작 가사가
그러한데 아서 쾨슬러란 문필가가 72년에 낸 유사 심리학
계열 저서에 등장한 synchronicity, 흔히 공시성이라고
일컫는 현학적 개념을 풀어낸 가사로 범벅을 했다고.
그게 뭐냐고? 전혀 상관이 없는 두 개 이상의 사건이
우연히 겹쳐 발생한 데에서 초감각적 의의를 찾는 약간
초능력 비스무그리한 거라고... Synchronicity II의
가사를 조용히 음미해 보시면 알 수도 있을 듯.
(Synchronicity II 가사 속 중의적 해석을 설명한 곳)
('Synchronicity I' from Synchronicity, 1983)
('Synchronicity II' from Synchronicity, 1983)
*포스트 아포칼립스 사이버 펑크 문화의 절정을 보여주는 뮤직 비디오.
*질주하는 텔리는 서머스의 상징이다. 애틀랜타에서 83년 마지막 투어.
판매고만도 9백만 장을 넘기고 영국과 미국 양쪽 앨범
차트 정상에 오르며 84년 그래미 어워드의 본상 3개
부문을 포함 다섯 부문 후보에 올라 세 부문 - 올해의
노래 포함 - 수상을 기록하는 등. 83~84년의 폴리스는
성과와 기록의 절정기를 맞고 있었다.
그럼 뭐하나, 밴드는 해체 수순을 밟고 있었는데. 대부분
곡을 쓰고 팀의 중심이던 스팅이 솔로 프로젝트로 가기
위해 잔뜩 바람이 들어 있던 상황이었으니. (심지어 이
시기 그는 꽤 연기도 잘 하는 영화배우였다.)
84년 3월 투어를 끝내자마자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각
멤버들은 찢어져 솔로 활동에 들어간다. 2007년에 잠시
재결합하여 투어를 갖기 전까지는 장장 23년간 휴지기가
지속했고 08년 이후 재결합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2008 Reunion Tour 중 Message in a Bottle.
*2008 Reunion Tour 중 Synchronicity II.
*03년 락앤롤 명예의 전당 헌액 공연 중 Roxanne.
짧고 굵게 음악계를 평정한 폴리스의 음악에 아직도 갈증이
남는다면 아래의 히트 트랙들을 더 참고하시길.
('Fall Out', non-album single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4Av29Jp8Ryk
('Can't Stand Losing You' from Outlandos d'Amour,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nH0vjLwMyc4
('Walking on the Moon' from Reggatta de Blanc, 1979)
https://www.youtube.com/watch?v=zPwMdZOlPo8
('Behind My Camel' from Zenyatta Mondatta,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XaP2h7ZP5D0
('Invisible Sun' from Ghost in the Machine,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1VuDjJ9KIxM
('King of Pain' from Synchronicity,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yuOPRfq-q6U
('Wrapped Around Your Finger' from Synchronicity,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svWINSRhQU0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
물론 그 사이 가장 잘 나간 스타는 스팅이다. 기존 팬덤 중
솔로 활동이 망하기 바랬을 사람도 있었겠으나 이 양반이
어디 그리 썩힐 달란트이던감. 85년에 발표한 첫 솔로 앨범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는 전반적으로 재즈의
짙은 영향을 뽐낸 멀티 플래티넘의 수작이라 할 만하다.
브랜포드 마살리스를 위시하여 대릴 존스, 케니 커클랜드,
오마르 하킴 등 재즈 씬의 세션들을 대거 투입하여 안정된
사운드를 들려준다. 핫100 차트 3위까지 오른 데뷔 싱글
If You Love Somebody Set Them Free는 발군의
추천 트랙이며 스팅 솔로 커리어 대표곡으로 자리매김한다.
('If You Love Somebody Set Them Free'
from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 1985)
*전술한 세션들이 다 함께 출연하시는 뮤직 비디오.
84년 겨울엔 당시 영국 음악계를 쥐락펴락 하던 최고의
가수들이 다 모여 밥 겔도프 주도로 밴드 에이드라는
프로젝트 하에 Do They Know It's Christmas 싱글을
녹음하고 있었다. 스팅이 빠질 수 있겠나. 비중은 적지만.
('Do They Know It's Christmas' by Band Aid, 1984)
85년은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전성기이기도 해서 스팅과
마크 노플러가 이들 최고의 히트곡 Money for Nothing을
공동 작곡하고 스팅은 백킹 보컬로 찬조 출연한다. 이런
그림은 라이브 에이드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I want
my MTV~'의 라인은 시대가 낳은 락 앤썸인 셈.
*참고로.. 역사를 새로 쓴 Money for Nothing의 뮤직 비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wTP2RUD_cL0
('Money for Nothing' by Dire Straits, 1985)
(...Nothing Like the Sun)
87년에 낸 ...Nothing Like the Sun 앨범은 진득한
어덜트 컨템포러리로 가득 찬 또 다른 멀티 플래티넘 수작.
앤디 서머스를 비롯, 에릭 클랩튼, 마크 노플러 등 동료
기타리스트가 대거 참여하여 화제가 되었다.
모친상이 겹친 때문일까, 한층 깊어진 우울한 정서에
평단이 찬사를 보냈다. 반군에 희생당한 민간인에 바친
싱글 Fragile에서 깊은 쓸쓸함을 확인할 수 있다. 많이
알려진 Englishman in New York은 성 소수자로서
외롭게 투쟁하던 선배 인사에게 바친 곡이다. Be Still
My Beating Heart는 모친께 바친 곡.
('Fragile' from ...Nothing Like the Sun, 1987)
*클래식 기타 연주가 빼어난 16년 노벨평화상 기념 공연.
('Be Still My Beating Heart' from ...Nothing Like the Sun, 1987)
https://www.youtube.com/watch?v=Ng4P6FWVdcE
(The Soul Cages)
88년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음악극 병사의 이야기 중
낭독 파트의 녹음에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이언 맥켈런 및
켄트 나가노가 지휘하는 런던 신포니에타와 함께 참여했다.
91년 앨범 The Soul Cages 땐 부친을 여의었음에도
역설적으로 밝게 그린 All This Time이 좋은 평가를
얻어낸다. 동명의 타이틀 트랙으론 그래미 상을 받았고.
('All This Time' from The Soul Cages, 1991)
https://www.youtube.com/watch?v=4LdUme7QZLY
*뮤직 비디오에서 장례식에 대한 암시를 읽을 수 있다.
(Ten Summoner's Tales)
93년 앨범 Ten Summoner's Tales는 큰 성공을
안겨준다. 그래미 올해의 앨범 및 머큐리 음악상 후보로
오르게 되었고 If I Ever Lose My Faith in You로
36회 그래미 최우수 남성 팝 가수 상을 수상한다.
발매 1년여 만에 트리플 플래티넘을 기록하고 If I Ever~
뿐 아니라 Fields of Gold, Shape of My Heart 등
히트곡이 줄줄이 터져나왔다. 리썰 웨폰 3탄 OST에도
수록된 It's Probably Me엔 에릭 클랩튼이 기타를 쳤다.
('If I Ever Lose My Faith in You' from Ten Summoner's Tales, 1993)
*보컬 기량으로서는 이 때가 절정기였다.
('Shape of My Heart' from Ten Summoner's Tales, 1993)
*세션 기타리스트는 공동 작곡자이기도 한 Dominic Miller.
('It's Probably Me' from Ten Summoner's Tales, 1993)
https://www.youtube.com/watch?v=SUYI7kIR0S4
*album version. 여러 버젼이 존재함.
93년엔 영화 주제가 작업이 많았다. 실베스터 스탤론
및 웨슬리 스나입스의 영화 데몰리션 맨을 위해 과거
트랙을 재녹음하여 OST에 수록했고, 찰리 쉰 및 키퍼
서덜랜드의 삼총사를 위해 All for Love를 브라이언
애덤스 및 로드 스튜어트와 녹음했는데, 그에게 이 곡은
솔로로서 아직까지 유일한 싱글 핫100 탑 트랙이다.
('Demolition Man' from eponymous soundtrack, 1993)
https://www.youtube.com/watch?v=G3QWnqpHrEI
('All for Love' by Bryan Adams, Rod Stewart & Sting, 1993)
95년엔 니콜라스 케이지와 엘리자베스 슈의 영화 라스
베가스를 떠나며 OST 앨범에 참여하여 세 곡의 재즈
스탠다드를 녹음한다.
('Angel Eyes' from Leaving Las Vegas OST, 1995)
https://www.youtube.com/watch?v=eaWd0pNHDes
*한국에선 이 곡이 소폭 히트함.
97년에 그의 최고 작품 Every Breath You Take가
미국의 흑인 랩퍼 퍼프 대디와 싱어 페이스 에반스에
의해 커버되어 무려 핫100 차트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비극적으로 사망한 동료 노터리어스 BIG를
기리는 뜻에서 비롯되었으니 물론 개사하여 I'll Be
Missing You란 제목으로 발표한 것.
('I'll Be Missing You' by Puff Daddy & Faith Evans, 1997)
https://www.youtube.com/watch?v=NKMtZm2YuBE
최근까지도 차트에서 두각을 보이는 앨범을 꾸준히 내고
있지만 창작자로서 좋은 평가는 99년 Brand New Day
앨범 이후론 멈춘 듯하기도. 본작에서 알제리 민속 음악인
라이 양식을 빌려 알제리 가수 체브 마미와 함께 한 싱글
Desert Rose로 2000년 그래미 상을 받는다.
02년엔 영국 작곡가에게 주는 이보 노벨로 음악상 수상자로
선정된다. 03년에 니콜 키드먼, 주드 로, 르네 젤위거의 영화
콜드 마운틴 OST로 You Will Be My Ain True Love를
앨리슨 크라우스와 녹음하고 이듬해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로 올라 시상식 무대에서 공연한다.
('You Will Be My Ain True Love' by Sting & Alison Krauss, 2003)
07~08년엔 전술했듯이 폴리스의 멤버와 재결합하여
전 세계 투어를 돌았다. 09년엔 락앤롤 명예의 전당
25주년 기념 공연에 출연했고, 17년엔 스웨덴 왕립
음악 협회가 주관하는 폴라 음악상 수상자로 추대된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의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어떤 업적이나 성과가 나올지 사실 예측하기는 힘들다.
평생에 걸쳐 정열적으로 새로운 음악을 발굴하기 위해
애쓴 예술가로서의 공은 세상 모든 사람이 인정하리라.
(92년 파바로티와 친구들 공연 중)
스팅의 보컬 스타일은 흥미롭고 또 경이롭다. 왠만해서
비브라토를 거의 넣지 않고 넓은 음역을 소화하는 점,
그러면서도 동시에 음정이 정확하다는 점, 중저음역과
고음역의 각 음역대를 요하는 트랙 양쪽에서 표현력이
출중하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재즈에 기반을 둔 - 재즈 밴드의 베이시스트로서
뮤지션 경력을 시작 - 독창적 리듬 감각을 지적인 가사
속 단어의 운율에 묘하게 결합시키는 스팅만의 기법은
동시대 어떤 뮤지션도 따라 할 수 없는 능력일 것이다.
폴리스 시절 젊었을 땐 신랄하게 기득권을 비판하고
조롱하는데 능한 목소리인데 반해 부모님이 돌아가신
30대 후반 이후엔 진중하게 세상을 관조하는 무게감을
키워나간 점 또한 놀라운 면면이다. 이런 능력이 지성미
넘치는 창의적 작사와 조화를 이룬 상태... - 이것이 바로
인텔리전트한 송라이터 스팅의 참모습일 것이다.
(Fender Precision Bass)
본 블로거가 생각하는 스팅의 최고 작품은 여럿이다. 밴드
시절엔 Synchronicity II의 음악적 완성도가 가장 높았고,
솔로 커리어에선 아직 자신만만함의 갑옷을 벗지 않은 시절
첫 앨범에서 If You Love Somebody~가 들려준 눈부신
광채와 실력의 정점이 최고였다고 믿는다.
*If You Love Somebody~ 라이브의 변화 비교:
(1980년대 팔팔하던 시절)
https://www.youtube.com/watch?v=6XUaDJm0ac8
(환갑 기념 공연. 이 때가 무려 60세. 옆에 브랜포드 마살리스.)
https://www.youtube.com/watch?v=jI8XLZUladY
완성도를 제외하고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솔로 때 발표해
한국인들에게도 사랑받아온 Englishman in New York.
2011년 칠레 비냐델마르 페스티벌에서 풀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완주한 버젼이 괜찮아 추천하며 마치련다.
(album version / official music video)
https://www.youtube.com/watch?v=d27gTrPPAyk
본래 브랜포드 마살리스가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솔로를
넣었는데 이 버젼에선 음역이 같은 클라리넷이 등장한다.
백킹 보컬의 여성은 호주 출신 재즈 보컬리스트 조 로리.
소외받는 이에게 스팅이 바치는 헌사가 여운을 드리운다.
"누가 뭐라 하든 네 자신이 되는 거야"
"공감을 눌러 주시면 큰 힘을 얻습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 Bruce Springsteen (0) | 2019.06.15 |
---|---|
로드 스튜어트 Rod Stewart (0) | 2019.05.15 |
스티브 페리 Steve Perry (1) | 2019.02.10 |
피터 세테라 Peter Cetera (1) | 2019.01.30 |
로버트 플랜트 Robert Plant (0) | 2019.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