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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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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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음악의 역사에서 80년대애시당초 마이클 잭슨

시대 아닌가누가 뭐라 할 여지가 전혀 없지. 절대 왕정이

군림한 그 시대에 남성 팝가수로서 MJ의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당당한 업적을 거둔 뮤지션이 있었다.



어차피 지금 시대야, 저 안경 쓴 빠른 51년생 할아버지가

백설공주 릴리 콜린스 아빠래, 정도 밖에 관심은 두지도

않겠지만. 20년 전쯤 얘길 꺼냈다면 누가 진성 제네시스

팬덤이냐며 피터 가브리엘 진영과 찢어갈려 진정

쓰잘데기 없는 키보드 전쟁이 벌어졌을 걸.



왠지 음악 산업계에 만연한 숱한 오해와 루머의 희생양

이미지이신데.. 사실, 70~90년대를 당당하게 관통하며 총

판매고 1억 5천만 장이란 역대급 성공을 거둔, 한 사람의

위대한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 세션맨이셨다. 제네시스에서

음악을 시작해 한 시대를 호령한 명가수...!

필 콜린스 Phil Collins 이야기를 해볼까.









언제부턴가 캐릭터가 되어버린 원형 탈모에 속지 마시길

바라옵고, 이 분 원래 아역 배우 출신이시다. 올리버 같은

뮤지컬에도 출연하셨고 재미없기로 악명높은 비틀즈 영화

A Hard Day's Night에도 단역 출연하셨다. 80년대

에서 꽤 기본기 충실한 연기력을 보여준 데엔 다

그런 배경이 있었던 거다. 또 한때 영화 주연도 했고.



다섯 살 때부터 유아용 드럼 키트를 다루었고 본격적인

성인용 세트는 청소년이 되면서부터 썼다고. 링고 스타

버디 리치의 영향을 깊게 받아 빅밴드 재즈의 테크닉을

익숙하게 다루게 되었다지.



그래, 콜린스를 얘기하면서 훌륭한 드러머로서의 경력을

건너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애초에 음악가로서 시작을

드럼 치면서 시작한 분이니까.



 (Genesis)




현장에서 다른 뮤지션의 영향을 재빠르게 캐치하는 순발력

면에서는 아마도 최고일 것 같다. 숱한 히트곡을 들어봐도

알 수 있지만 여러 모로 영리한 뮤지션임에 틀림없을 듯.

특히 탄탄한 재즈 드러밍 기본기에서 비롯된 사이드 탐탐

컴비네이션은 드러머로서의 트레이드 마크일 것이다.

흡사 버디 리치의 재림을 보는 듯..



여기서 자주 언급하는 디지털 드림 도어 랭킹에서 현재

34위이시고 모던 드러머가 선정한 50대 연주자 랭킹에선

21위. 논란이 컸던 16년의 롤링 스톤 매거진 랭킹에선

43위를 차지하셨을 정도. (그래도 별다른 지표로 인용할

것이 없어 언급은 하겠다. 욕먹은 내용은 아래에 링크.)



(Digital Dream Door, 100 Greatest Rock Drummers)

https://digitaldreamdoor.com/pages/best_drummers.html


(Modern Drummer, 50 Greatest Drummers of All Time)

https://www.moderndrummer.com/article/march-2014-50-greatest-drummers-time/


(Rolling Stone '16, 100 Greatest Drummer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drummers-of-all-time-77933/phil-collins-2-142870/


- Consequence of Sound rebukes the Rolling Stone ranking.

https://consequenceofsound.net/2016/03/rolling-stone-releases-list-of-the-100-greatest-drummers-and-neil-peart-is-not-no-1/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미 50년생 고딩 동기들끼리 데뷔해

끈기있게 활동하고 있던 제네시스와의 인연도 드러머 공고

난 거 보고 오디션에 응하면서부터. 밴드의 창단 멤버 앤서니

필립스가 탈퇴하면서 드러머였던 존 메이휴를 내보내고 새

드러머 공고를 낸 것이 1970년의 일이었다.



저 테일러 아직 아무 것도 아닐 때여서 오디션 보러

오라는 제안을 받았었단다. 피터 가브리엘 부모님 집에서 치른

오디션. 기다리는 동안 앞의 경쟁자들 리듬 패턴을 모조리 외워

똑같이 카피해내 멤버들이 감탄했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든지

한 번은 들어봤을 유명한 일화. 여기에 기타 주법의 선구자

대접을 받는 명인 스티브 해킷이 이때 함께 영입되었다.



제네시스에서의 필 콜린스는 재기발랄한 fill-in을 넣을 줄

아는 데다 탄탄한 박자감을 가진 드러머이면서도 훌륭한

노래 실력도 겸비한 멤버였다. 테너-바리톤 음역대에 지성미

넘치는 카리스마와 연극적 스토리텔링강한 리드 보컬

피터 가브리엘에 비해 낭만적 감성을 표현할 줄 아는 하이

테너로서 가브리엘 위로 화음을 넣거나 한 옥타브 높이는

방식의 다채로운 연출이 콜린스로 인해서 가능해졌다.



보컬피터 가브리엘, 키보드토니 뱅크스, 베이스

마이크 러더포드, 기타스티브 해킷, 드럼필 콜린스.

이 멤버로 만든 최초의 앨범이 71년에 발표한 제네시스

3집 Nursery Cryme72년 Foxtrot, 73년 Selling

England by the Pound74년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등 정규 명반이 줄을 잇다가... 밴드보다

솔로 활동이 필요하다 느낀 가브리엘이 팀을 탈퇴한다.



('Supper's Ready' from Foxtrot, 1972)

*이건 스튜디오 버젼 오리지널.



 (Genesis Live)




가브리엘이 리드하던 제네시스 시절은 추후 다른 편에서

상술하는 편이 더 낫겠지...만, 이 시기 드러머 콜린스

활약상을 확인하고 싶다면 Supper's Ready를 비롯하여

In the CageThe Knife 같은 트랙을 추천한다.



Supper's Ready퀸텟 전성기의 제네시스에서 가장

중요한 걸작 대곡인지다섯 멤버 전부 엄청난 기여도를

보여주는 곡이다. 옆에서 뱅크스, 뒤에서 콜린스가 매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기에,

라이브를 감상하길 추천하고..



In the Cage는 스튜디오 버젼으로만 들어도 뱅크스-콜린스

-러더포드의 백킹 조합이 톱니바퀴 맞물리듯이 오밀조밀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 이 앨범은 대체로

가브리엘이 플롯과 작사에만 신경쓰느라 음악적인 작편곡

나머지 넷이 오롯이 책임졌고 특히 뱅크스가 빛을 발한다.



The Knife는 본래 콜린스가 들어오기 전 2집에 있던 곡인데

제네시스의 1973년 라이브 앨범 Genesis Live에서 콜린스

교체해 연주한 버젼이 원곡보다 낫다는 말이 많다. 이 앨범은

가브리엘-제네시스 시대의 유일한 라이브. 원래 정규 앨범에서

드러머는 존 메이휴다.



('In the Cage' from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1974)



('The Knife' from Genesis Live, 1973)



*The Knife의 스튜디오 버젼 오리지널.

https://www.youtube.com/watch?v=O-78TeJlq24







넷만 남게 된 제네시스리드 보컬 공고를 또 냈는데

수백 명 지원자보다 콜린스가 더 노래를 잘 했다네..?!

(이때 부른 노래가 제플린 Kashmir의 영향 하에 만든

Squonk였다고.) 앞으로 한 시대를 풍미할 보컬리스트

필 콜린스의 공식 탄생은 이렇게 소소한 일화로부터

시작했다. 75년경.



네 사람 체제에서는 76년에 A Trick of the Tail

Wind & Wuthering 두 장의 앨범을 냈다. 이 시기는

리듬 섹션 러더포드콜린스를 제외하고 해킷

뱅크스 사이에 작편곡의 주도권을 놓고 미묘한 신경전이

관찰되던 때이기도.



어느 밴드나 키보드를 메인 파트로 갖고 가면 기타와의

밸런스를 어떻게 맞출 건지가 창작 과정에서 논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도 그 의례를 피할 수 없었으니 앨범을

달랑 두 장만 내고 해킷이 떠난 이유가 이런 면이

아니었을까 추정할 수도 있겠다.



(A Trick of the Tail)



(Wind & Wuthering)



('Squonk' from A Trick of the Tail, 1976)




쿼텟 시기 콜린스는 아직 뮤지션으로서 100% 자아를

각성했다고 볼 순 없지만 무한한 포텐셜에 슬슬 예열 시동을

걸고 있었다. Robbery Assault and Battery 같은 곡에서

가브리엘과 전혀 다른 결로 풍자적 수사에 능한 콜린스

보컬 스타일이 움트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Los Endos는 아기자기한 잔 리듬에 강한 콜린스식 드러밍

폭발하는 팬덤의 인기 트랙이고, 재즈 퓨전의 영향을 받고 있던

의 색깔은 Wot Gorilla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뱅크스

Afterglow는 신비로운 질감의 백킹이 아름다운 발라드로서

시종일관 울려퍼지는 Moog Taurus의 이펙트가 매우 예뻐서

숨겨진 보석처럼 좋아하는 이 많다.



아닌 게 아니라 쿼텟 시대에 오히려 숨은 명곡이 많다는 평도

자자하다. 원래 제네시스의 특징이 파도 파도 새로운 좋은

노래가 끊임없이 나온다는 데 있다...고, 대다수 열성 팬들이

입을 모으곤 한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다지. 남은

셋과 해킷과의 관계 등, 쿼텟 시대 이야기는 나중에 다른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을 것 같다.



('Robbery Assault and Battery' from A Trick of the Tail, 1976)



('Los Endos' from A Trick of the Tail, 1976)



('Afterglow' from Wind & Wuthering, 1976)






지금까지 서술한 제네시스의 성과가 음악적인 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음에 눈치 채셨겠지만, 사실 퀸텟 쿼텟 시대의

상업적 성과가 메가히트 급은 아니었다. 공식 인증도 골드

전부였고 앨범 차트로만 영국 3위, 미국 30위권이 가장 높은

기록이며 싱글 히트곡은 거의 없다고 보면 정확하다. 물론

팬덤의 매니아적 충성도가 높고 당시 지지층이 현재 인터넷

시대에까지 이어지고 있음도 엄연한 사실이지만 말이다.



제네시스의 새로운 시대는 아마도 이 무렵부터 새 방점을

찍는 편이 옳지 않을까. 프로그레시브 기원으로부터 서서히

졸업하고 시대의 흐름을 좇아 포스트 펑크의 영향을 받은

프로그팝소프트락으로 변신한 트리오 제네시스. 그

옛날 한때만 하더라도 기존 팬덤으로부터 맹혹한 비난을

받아야 했던 그 변화는 멤버의 탈퇴에서 비롯된.



77년에 결국 기타리스트 이 탈퇴한다. 앨범 구성에

소외감을 느꼈고 밴드 일원으로서 더 이상 원하는 음악이

나오지 않음을 깨달으셨다고. - 본래 솔로 아티스트으니..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정신 차린 뱅크스, 러더포드, 콜린스

어덜트을 향해 일보전진하기로 마음먹고 뛰어난 연주력을

가진 투어 멤버를 보강한다. 물론 앨범 작업은 병행하고.



프랭크 자파드에서 연주한 재즈 드러머 체스터 톰슨,

장 뤽 폰티 그룹에서 연주한 재즈 기타리스트 대릴 스투

등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제네시스와 함께 한 정상급 세션

멤버가 이때 영입된다. - 전작 앨범들의 투어 땐 예스

킹 크림슨 출신 빌 브루포드(!)가 작업한 적도 있다.



우여곡절을 딛고 세 멤버가 새로 완성한 78년의 앨범

And Then There Were Three. 제목은 물론 애거서

크리스티의 저명한 소설에서 따왔겠지. 리드 기타

포지션을 바꾼 러더포드가 약간은 버벅댔뱅크스

신디가 전체 사운드를 메꿔 프로그라기보다 신스

더 가까운 색과 결을 선보인다.



본작은 영국 앨범 차트 3위, 독일 2위, 미국 14위 등

그때까지의 제네시스 앨범 중 최고의 성공을 거두

핫100 차트 23위까지 오른 최초의 싱글 히트까지 낸다.

소폭 히트한 Many Too Many 같은 발라드가 있었지만

지금도 트리오를 대표하는 어덜트 발라드 Follow You

Follow Me가 역시 세계적으로 히트한 대표곡일 게다.



러더포드가 인트로의 리듬 리프를 치고 뱅크스가 스트링

코드 시퀀스를 깔아주니 콜린스가 중심 선율을 부르는..

인터뷰에서도 인정했듯이 지나치게 긴 음악을 복잡하게

만들기 즐겼던 세 멤버에게 있어 스스로 새로운 음악에

눈뜨게 한 진일보의 프로세스가 이 노래에서 나온 거다.



물론 모든 트랙을 팝으로 채운 건 아니고 Down and Out,

Ballad of Big, Deep in the Motherlode, The Lady

Lies가 보여준 신스-프로그 정체성은 여전하다. 다만

히트 튠의 파급 효과가 너무 컸던 거겠지.



(And Then There Were Three)



('Follow You Follow Me' from And Then There Were Three, 1978)



('Many Too Many' from And Then There Were Three, 1978)



('Ballad of Big' from And Then There Were Three,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dlqn2_n9FW4


('Down and Out' from And Then There Were Three,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HeqFXo5xtcE




앨범 한 장만이면 해프닝으로 그칠 테지만 제네시스는 정말

변화하고 있었고 80년 10집 Duke는 시대의 엄혹한 흐름에

강력한 화룡점정을 찍어준 수작 앨범이다. 아트 락의 미약한

손아귀를 이제는 뿌리칠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래도 본작만

프로그레시브 정체성을 온몸으로 기억하는 이들의 마지막

결산 같은 성과였 할 만하다.



이들이 공식적으로 Duke Suite 칭하는 Behind the

Lines - Duchess - Guide Vocal - Turn It On Again -

Duke's Travels - Duke's End의 6곡 연작은 본작의 대표

트랙. 원래는 Supper's Ready처럼 30분짜리 대곡으로

묶으려 했지만 그냥 쪼개서 앨범 전체에 분산시켰다고.

(Supper~본래 7곡 소곡의 연작 형식.)



이후 제네시스에서 이런 대곡 구성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아,

팬덤은 72년 Foxtrot와 유사한 구조의 Duke를 소중한

마지막 마스터피스 급으로 취급한다. Suite에 속하지 않는

Misunderstanding도 별도 싱글로서 미국 차트 14위까지

오르고 Man of Our Times, Alone Tonight 등 트랙이

독자적인 인기를 누리는 등, 여러 면에서 수작 앨범이다.



수작일 뿐 아니라 상업적인 성공도 전작을 넘어서게 된다.

최초로 영국 앨범 차트 정상을 밟았고 미국에선 11위를

찍는다. Suite 6곡 중 가장 역동적인 Turn It On Again

싱글로 발매되어 영국 차트 탑텐에 든다. Duchess

인트로에서 Roland CR-78을 써서 밴드가 처음으로

드럼 머신을 적용한 곡으로 남게 된다.



분명 시대는 변하고 있었고 팬덤의 구성도 예전에 짐짓

진중한 프로그에 열광하던 남성 중심에서 짧은 어덜트

발라드에 반응하는 여성층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미

전작에서부터 이를 캐치한 세 멤버의 대담한 선택이

성공을 거둔 것이었으나 기존 팬덤과의 지리한 전쟁도

이제 막 시작한 셈이었다.



(Duke)



(Roland CR-78)

*아래 Duchess 뮤비 맨앞에 등장.



('Turn It On Again' from Duke, 1980)



('Misunderstanding' from Duke, 1980)



('Duchess' from Duke, 1980)



('Behind the Lines' from Duke, 1980)



('Alone Tonight' from Duke, 1980)



*Duke Suite 80년 런던 라이브 편집본

https://www.youtube.com/watch?v=VUr1dcg-PEw&t=1115s






아마도 79~81년 기간은 갓 서른 언저리의 젊은 감각을

날카롭게 유지하던 세 멤버들 모두에게 도전과 갈등의

시기였을 것이다. 첫 결혼에 위기가 닥쳐 밴드에서 잠시

멀어져야 했던 콜린스를 위해 뱅크스러더포드는 활동

잠정 중단을 용인하고 각자의 첫 솔로 앨범을 발매했다.



끝내 콜린스이혼에 이르게 되고 이는 젊은 음악가로

하여금 정신적으로 성숙해질 기회를 부여하게 되었으니

이런 질풍노도의 내적 변화가 81년에 발표한 콜린스

첫 솔로 앨범에 그대로 반영된다. 혁신적 사운드 레코딩

기술을 담은 히트작 Face Value 앨범이었다.



형해화한 부부 관계의 종말에서 겪은 상실감을 처절하게

묘사한 In the Air Tonight이 앨범의 대표곡이다. 영국

싱글 차트 2위, 미국 차트 탑20까지 오른 성공을 거두고

앨범이 거둔 성공 - 영국 정상미국 탑텐 - 을 리드했다.

80년대 콜린스어덜트 컨템포러리 명곡의 출발점이자

신호탄인 거다.



이 곡의 드럼 녹음 방식이 그를 상징하는 혁신적 기술이다.

gated reverb라고, 악기의 주음을 잡는 마이크와 방음벽

등에 부딪혀 잔상으로 돌아오는 부차적 음을 잡는 마이크를

항상 한 쌍으로 갖춰 집음하는 기술이다. 80년대 필 콜린스

드럼 사운드라 하면 누구나 다 기억할 만한 소리가 바로 이

방식으로 만든 것. 특히 탐탐이 가진 풍부한 팀버 질감을

손실없이 담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가 여전히 친하게 지내던 동료 피터 가브리엘의 솔로 앨범

곡 중 Intruder의 드럼을 쳐주다가 엔지니어 팻검이 개발한

방법이다. - 자기들끼리는 이렇게 동료애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팬덤이란 명분으로 괜한 싸움 좀 붙이지 말자.



(Face Value)



('In the Air Tonight' from Face Value, 1981)

*이 뮤직 비디오도 꽤 화제였다. 제네시스 드러머 맞냐며.



('Intruder' by Peter Gabriel,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xvAmj3k3Imc


*gater reverb 기술에 대한 설명

https://www.youtube.com/watch?v=cTo75yjL9R4




81년 11집 Abacab에 이르면 제네시스가 더 이상

프로그레시브 락과 상관이 없음을 모두가 깨닫게 된다.

그만큼 이 앨범의 팝락 성향은 신선했지만 프로그

좋아하던 기존 팬덤은 충격과 공포에 부들부들 떨고..

- 왜인지 콜린스더 큰 욕을 먹는다. 왜 그가?



프로그에서 비롯된 역사적 배경 없이 순수하게 즐기면

매우 훌륭한 대중음악 앨범이다. 당시 뉴웨이브의 패턴을

완벽하게 체화한 세 사람의 작편곡 감각이 눈부시고 특히

신디사이저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토니 뱅크스의 솜씨는

괄목할 만하다. 본작쯤에 이르게 되면 묻혀 있던 마이크

러더포드의 내공조차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싱글로 발매한 Abacab, No Reply at All, Keep It

Dark, Man on the Corner 모두 탁월한 대중적 감각을

자랑하며 탑40급의 성공을 거두었다앨범이 최초로

더블 플래티넘에 이르렀고. 콜린스보컬 실력은 이때

절정기를 맞고 있었다.



참고로 abacab이란 존재하지 않는 단어이다. 악절 구성을

A-B-A-C-A-B 형식으로 가져가려던 초기 아이디어가 그냥

제목으로 굳은 것. No Reply at All에 등장하는 멋들어진

브라스는 얼쓰 윈드 앤 파이어혼 섹션 주자들이 결성한

피닉스 혼즈연주. 이들은 이후 필 콜린스제네시스

앨범 및 투어에서 세션으로 자리를 잡아가신다.



(Abacab)



('Abacab' from eponymous album, 1981)

*백킹 보컬은 Tony Banks와 Mike Rutherford의 실제 목소리.



('No Reply at All' from Abacab, 1981)

*뮤비 속 브라스 연기자들은 물론 Phenix Horns가 아니라 멤버들.



('Keep It Dark' from Abacab,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gQkiqQ7zZBQ


('Man on the Corner' from Abacab,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hUMti7b41yw




82년엔 Paperlate 등 세 을 담은 EP 3X3를 발매하고,

연이어 다음 달엔 포스트 펑크 시대 제네시스의 기념비적

라이브 앨범Three Sides Live - 같은 제목의 콘서트

필름도 포함 - 를 발표해 팬의 지지를 얻었다.



같은 해 10월 2일, 러더포드의 생일이기도 한 날 비내리던

토요일 저녁 잉글랜드 버킹엄셔에서는 경천동지할 일회성

콘서트가 열렸다. Six of the Best. 사실상 탈퇴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브리엘해킷이 남은 세 사람과 재결합하여

70년대 히트 트랙을 연주한 초유의 사건.. 기존 팬과 신규

팬이 모두 대동 단결하는 신기한 현상이 목격되었다. - 이날

기타대릴 스투머, 드럼체스터 톰슨이 메인이었다.



이 무렵 피터 가브리엘은 솔로 활동의 성공에 힘입어 월드

뮤직 페스티벌 WOMAD를 막 출범시킨 시점이었는데

축제 초창기 막대한 빚을 청산하기 위해 이런 이벤트를

벌였다고. 덕분에 깔끔하게 빚갚고 오늘날 세계인이 아는

워마드 음악제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 페미니즘 단체와

상관없는 축제 말하는 거임. 세계적으론 이쪽이 더 유명.



이후에도 이들이 이렇게 재결합하는 일이 거의 없었고

또 이 시기가 뮤지션으로서 기량이 전성기였던 때인지라

여러 모로 중요한 공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애석하게도

아카이브 레코딩이 남아 있지 않다! 지금 들어보려면 당시

관객이 소장해온 부틀렉 말고 방법이 없다. 아..ㅠㅠ



그리고 이런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피터 가브리엘 진영과

스티브 해킷 진영과 제네시스 세 사람 사이 인간적인 친분은

아무런 문제 없었다고, 여러 번 반복한다. 아, 왜 '식스'냐고?

뱅크스, 러더포드, 콜린스, 투머, 톰슨 + 가브리엘이니까.

원래 해킷은 스케줄이 안 되어 못 오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부랴부랴 달려와 끝내기 두 곡 연주하고 가셨다고.



(3X3)



(Three Sides Live)



('Paperlate' from 3X3, 1982)

https://www.youtube.com/watch?v=8AhBJwARAes



Six of the Best 셋리스트:

Back in N.Y.C.

Dancing with the Moonlit Knight

The Carpet Crawlers

Firth of Fifth

The Musical Box

Solsbury Hill - 피터 가브리엘(!) 솔로 히트곡

Turn It On Again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Fly on a Windshield

Broadway Melody of 1974

In the Cage

Supper's Ready

(encore) I Know What I Like

(encore) The Knife



*당시 관객들이 녹음한 부틀렉 아카이브

https://www.youtube.com/watch?v=KPdEPC2AsB8

https://www.youtube.com/watch?v=o3e3w48rZrw&t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kvNP54Usc1On51kHceanFKhw-P9ysmWG




그로부터 한 달 여 후, 82년 11월에 콜린스는 그의 솔로 2집

Hello I Must Be Going을 발표한다. 데뷔 앨범에서 촉발한

우울 결혼 생활 백서의 분위기가 이어지는 작품이었다. 더블

플래티넘을 넘고 영미 앨범 차트 탑텐에 들었지만 전작의 In

the Air Tonight만큼 임팩트 강한 싱글이 없었다.



그래도 Don't Let Him Steal Your Heart AwayWhy

Can't It Wait 'Til Morning처럼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발라드가 전체 트랙의 완성도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과거

슈프림즈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You Can't Hurry Love

이르면 그모타운R&B 작법에서 받은 영향을 느낄 수

있고 영국 차트 탑에 오르는 등 가장 크게 히트친 싱글이 된다.



히트와 상관없이 팬덤과 평단이 극찬한 트랙은 I Don't Care

Anymore. In the Air Tonight에서 연결되는 정서가 강한

비트에 실려 폭발한 수작 싱글이었다. 이 노래로 솔로 아티스트

자격으로는 생애 최초로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지명되었다.



(Hello, I Must Be Going!)



('You Can't Hurry Love' from Hello I Must Be Going, 1982)

*약간 깨방정이신데 이건 60년대 슈프림즈를 따라 한 것.



('I Don't Care Anymore' from Hello I Must Be Going, 1982)

*베이시스트 Mo Foster가 Moog Taurus를 손으로 연주한다.



('Don't Let Him Steal Your Heart Away' from Hello I Must Be Going, 1982)

https://www.youtube.com/watch?v=b2W-lxDq4-Y


('Why Can't It Wait 'Til Morning' from Hello I Must Be Going, 1982)

https://www.youtube.com/watch?v=1sjkge59ndw




이들은 83년에 열두번째 정규 앨범 Genesis로 돌아온다.

그렇다.. 그때까지 데뷔 앨범에서도 셀프 타이틀을 쓴 적이

없었는데, 이는 수록한 전 트랙을 멤버들이 공동 작곡으로

만들었음을 시사하는 의도였지만, 평론가들은 이제 이들이

본격적인 팝락 밴드로서 재도약한다는 뜻이라고 우겼다.



전작의 성공을 또 뛰어넘은 앨범이었다. 영국과 독일의 앨범

차트에서 을 찍고 유럽 4개국에선 2위를, 미국 차트에선

9위를 기록한다. 그때까지 가장 큰 싱글 히트이던 Follow

You Follow Me를 뛰어넘어, Mama라는 세계구급 히트

싱글이 영국 등 9개국에서 탑텐에 들었고 미국의 핫100

차트에선 That's All이 최초로 탑텐에 드는 성공이었다.



이밖에 Home by the Sea, Illegal Alien, Taking It

All Too Hard가 싱글로 커트되어 현재까지 스테디셀러

인기를 누리고 있다. (물론 한국 시장이 이 성공을

좇아가는 데엔 아직 시간이 걸리고 있었지만.)



밴드가 자체 보유한 스튜디오에서 창작과 녹음 전체를

편안하게 진행한 첫 앨범으로서 라디오 친화적인 대중적

소프트락으로 채워진 작품이었다.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거부감 없는 이들인지라 Linn LM-1, Simmons SDS-V,

ARP Quadra, Sequential Circuits Prophet-10E-mu

Emulator 등 첨단 장비를 적극적으로 선보였다. 콜린스

이제 드러밍보다 드럼 머신에 더 재미를 들여가고 있었고.



(Genesis)



('Mama' from Genesis, 1983)

*당시 Tony Banks가 쓰던 악기를 샅샅이 살필 수 있다.



('That's All' from Genesis, 1983)



('Home by the Sea' from Genesis, 1983)



('Illegal Alien' from Genesis,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pKWyJOz1rUU


('Taking It All Too Hard' from Genesis,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l-dSgRGFVYU



(Linn LM-1)



(Simmons SDS-V)

*물론 세트 뒤 연주자는 빌 브루포드.



*이 시기 Tony Banks의 gear set.




84~86년 기간은 지금까지 상술한 제네시스고 뭐고 모든

활동 성과를 갈아엎어 역사를 새로 쓸 만큼 명실상부한

콜린스의 최전성기였고 그는 원탑이었다. 대등한 경쟁자

해봐야 마이클 잭슨이나 프린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정도?

그 외엔 다 쩌리 취급 받던 초대박 호시절이었지.



84년 3월테일러 핵포드가 연출하고 제프 브리지스

레이첼 워가 주연한 어덜트 스릴러 영화가 개봉하는데

래리 칼튼미셸 콜롱비에가 주도한 사운드트랙의 전체

스코어와 상관없이 몇몇 가수가 삽입곡 작업에 참여했다.

이 중 필 콜린스가 자작곡 발라드를 제공하는데... 두둥..



Against All Odds (Take a Look at Me Now).. 80년대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팝 음악의 고전이 되어버린 명 발라드가

이렇게 탄생해 버린다. 콜린는 생애 최초로 핫100 차트 탑

오르고 싱글골드를 기록하며 인생 첫 그래미 상을 이 곡으로

받게 된다. 말이 필요 없다. 듣고 가자.



('Against All Odds' from eponymous soundtrack, 1984)



이 정도 명곡이라면 예상들 하겠지만 그 해 아카데미 어워드

당연히 주제가상 후보로 올랐다. 그런데 담당PD 왈, 콜린스

그렇게 대단한 가수인지 몰랐다네. 하여 본인 섭외 안 하고 왠

뮤지컬하던 여자 연예인에게 립싱를 시키는 엄청난 무대를

만들고 만다. 역대 최악의 주제가상 공연으로 지금도 악명이

높았던 해프닝.. 노래라도 잘 했으면 또 몰라..



한국 시장에서 필 콜린스라는 가수를 처음으로 인지하기

시작한 곡으로 기억하며 지금까지 대표 히트곡이기도..



*Against All Odds at Oscar Ceremony, 1985



(Against All Odds, single)



*영화 속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노래.


('Against All Odds' by Mariah Carey, 2000)

https://www.youtube.com/watch?v=Dc3YAINjlyE




앞에서도 서술했지만 콜린스얼쓰 윈드 앤 파이어

인연이 깊다. EWF 출신 명 보컬리스트필립 베일리

84년 11월에 자신의 솔로 앨범 Chinese Wall을 들고

나왔는데, 여기에 콜린스와 함께 한 듀오 튠을 싱글로 낸다.



R&B 돋는 또 하나의 명곡 Easy Lover. 본래 EWF

당연하고 콜린스 역시 R&B로 한가닥 하는 양반인지라

두 사람의 조합은 완벽했다. 콜린스드럼 세션은 덤.

한국엔 이 앨범이 정식 발매되지 못해서 당시에 라디오

방송 녹음해서 듣고 다니던 팬이 참 많았다고..



11월 25일엔 밥 겔도프 도우러 바쁘게 달려와서 Do They

Know It's Christmas드럼 파트를 도맡아 연주했다.

참고로 이 곡 베이스듀란듀란존 테일러 솜씨. 저명한

싱글은 12월초에 발매되어 라이브 에이드로 이어진다.



(Easy Lover, single)



('Easy Lover' by Philip Bailey & Phil Collins, 1984)




(Do They Know It's Christmas, single)



('Do They Know It's Christmas' by Band Aid, 1984)




이 시기 사실 콜린스도 세번째 솔로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고

85년 1월에 발매한다. 역사상 가장 히트한 앨범 중 하나로

기록된 80년대 명반 중 하나, No Jacket Required. 두둥.

그래머 어워드의 4개 최고 수상 부문 중 명실상부한 대상은

역시 올해의 앨범상, Album of the Year일텐데 86년도

그래미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된 작품이 바로 이 앨범.



전세계 누적 판매고가 무려 2천 5백만 장에 달해 미국 시장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았고 영국, 미국, 캐나다 등 9개국에서

차트 탑을 찍었으며 SussudioOne More Night미국

핫100 차트 탑에 오른 두 싱글은 각각 골드를 기록했다. 객관

지표를 대략만 훑어도 이 정도..



본 앨범의 진정한 가치는 뉴웨이브, R&B, 어덜트 컨템포러리

등 80년대를 대표하는 모든 음악적 요소를 집대성한 명작이란

점. 그래미에서 경쟁도 했거니와 이 정도 완성도의 동년 발매

경쟁작Brothers in Arms, We Are the World, Whitney

Houston, Born in the U.S.A. 정도 꼽을 수 있을 뿐이다.



본 블로그에서 계속 쓰는 표현이지만 버릴 곡이 없는 앨범

몇 차례 짚은 적 있고 본작도 마찬가지이다. 전술한 메가히트

두 싱글 뿐 아니라 Don't Lose My Number, Take Me Home

등 추가 싱글에 Long Long Way to Go, Who Said I Would,

Inside Out 등 다른 많은 트랙들도 평단으로부터 골고루 극찬을

들은 바 있다.



콜린스와 오랜 시간 함께 할 세션들도 대거 등장한다. 전곡의

기타는 대릴 스투머가 쳤고 One More Night코다 색소폰

파트는 돈 마이릭의 솜씨이다. Take Me Home에서 백킹

보컬은 무려 스팅피터 가브리엘(!)이 손수 도와줬다.



한 가지 더.. 신디 로퍼가 86년에 마돈나트루 경쟁을 벌일

때 8월에 낸 싱글 True Colors엔 누구나 들으면 알아차릴

드럼 머신시그니처 프레이즈가 등장하는데, 이 작업에

콜린스가 도움을 줬다 한다. 이 시절 드럼 머신 프로그래밍

있어서는 당대 최고였던 것 같다.



(No Jacket Required)



('Sussudio'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제목 단어는 뜻 없이 지어낸 말. Prince의 1999과 유사하단 비판도 받았다.



('One More Night'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멋진 색소폰은 Phenix Horns 출신 Don Myrick의 솜씨.



('Take Me Home'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Don't Lose My Number'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Who Said I Would'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90년 베를린 투어. 백킹 밴드 실력이 가장 빵빵할 때의 라이브이다.



('Long Long Way to Go'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https://www.youtube.com/watch?v=M-7LOzT73PU


('Inside Out'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https://www.youtube.com/watch?v=QiwGEWmpUuQ




('True Colors' by Cyndi Lauper, 1986)

*86년 핫100 차트에서 2주간 탑을 찍었다.



(True Colors, single)




본래 마이크 러더포드는 80년과 82년에 자신의 솔로 앨범

낸 적 있다. 그냥 냈다는 의미 정도 부여할 수 있을 뿐, 사실상

성과는 그저 그랬음이 사실이다. 왜일까. 그는 스스로 깊게

고민을 거듭하여 자신이 개인 작업보다 밴드 안에서 타인과

교감하는 과정에서 더 효율적인 뮤지션임을 깨닫는다. 하여

제네시스와는 다른 궤도선상의 사이드 프로젝트 밴드를 따로

결성하니, 곧 마이크 앤 더 미케닉스M+TM 출현하게 된다.



제네시스 뿌리에서 파생한 또 하나의 성공적 액트, Mike +

The Mechanics. 85년 10월에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

내놓는데 러더포드의 솔로 앨범과 비교도 안 되는 성공을

거둔다. All I Need Is a Miracle, Silent Running

두 곡의 핫100 탑텐에, 미국 탑40 히트곡 Taken In까지

배출하며 앨범 자체는 골드를 기록한다.



All I Need~폴 캐랙, Silent Running폴 영이 각각

보컬을 맡았는데 M+TM목소리를 두 명으로 이끌고

가는 특이한 체제이다. 가볍고 대중적인 곡은 캐랙이, 더

헤비하고 진중한 곡은 이 부르는 구성이라고. - 여기서

말하는 폴 영은 유명한 56년생 가수와는 동명이인이다.

Every Time You Go Away 아니라고..



필 콜린스도 85년 솔로 투어를 마치는 와중에 영화 White

Nights, 백야의 사운드트랙을 녹음하여 Separate Lives

제목으로 11월에 발표했는데 미국 핫100 차트 에 오르는

성공을 거둔다. 음색이 매력적이며 나중에 데이빗 포스터와도

작업을 한 미국 여가수 마릴린 마틴의 듀엣이었다.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제네시스 사운드 메이킹의 핵심인

멤버가 사실 토니 뱅크스임에도, 희한하게 그는 모든 멤버를

통틀어 솔로 프로젝트 성적이 가장 신통치 않았다. 80년대

중반엔 주로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작업하곤 했는데 몇몇 곡을

모아 86년 3월에 앨범을 내기도 했다. Soundtracks.



(Mike + The Mechanics)



(Soundtracks)



 (White Nights)



('All I Need Is a Miracle' by Mike + The Mechanics, 1985)



('Silent Running' by Mike + The Mechanics, 1985)




멤버들이 솔로 활동에 열을 올리면 밴드 전체 작업엔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 일반적일 텐데, 제네시스 이상하게

그 반대라고. 밖에서 받은 음악적 자극이 안으로 모여 새롭게

융합하고 폭발한 것. 그 증거가 86년 6월에 발표한 정규

13집 앨범 Invisible Touch였다. 또 두둥.



세 사람이 다 함께 스튜디오에서 잼 세션을 통해 프레이징

발전시키는 작업 방식이 전작에서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두었는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외부 환경에서 받은 다양한 음악적인

센스가 최고조에 달해 있던 이 자신만만한 뮤지션들은, 6x

플래티넘영국 차트 탑 및 미국 차트 3위의 앨범을 빚어낸다.



버릴 곡 없는 앨범이 한 장 더 나온 셈이었다. 타이틀 트랙

Invisible Touch가 밴드 디스코그래피 사상 최초로 핫100 차트

에 올랐고 Throwing It All Away가 4위, In Too Deep이 3위,

Land of Confusion이 4위, Tonight Tonight Tonight이 3위에

오르는 등 초대박이었다. 70년대 대곡 시절을 떠올리게 할 만한

Domino는 유난히 팬덤이 열광하는 트랙이었고.



바야흐로 제네시스의 전성기, 커리어의 절정이었다. 음악이 너무

상업적이고 필 콜린스 솔로 앨범과 차이가 뭐냐는 비판도 있긴

했으나 그래미 어워드 수상 등 호재도 함께 찾아오고 있었다.

80년대 최고의 앨범 중 하나로서, 이러니 저러니 해도 꼭 한 번

들어보면 결코 밑지는 장사 아닐 게다. 86년 9월에 시작해 87년

7월에 끝난 월드 투어는 역대 최대 규모였고, 이후 이들은 약

5년간 동면에 들어간다.



(Invisible Touch)



('Invisible Touch' from eponymous album, 1986)



('Throwing It All Away' from Invisible Touch, 1986)



('In Too Deep' from Invisible Touch, 1986)



('Land of Confusion' from Invisible Touch, 1986)

*캐리커처 퍼펫이 등장하는 뮤비가 당시 엄청난 화제였다. 서구에서..



('Tonight Tonight Tonight' from Invisible Touch, 1986)



('Domino' from Invisible Touch, 1986)

https://www.youtube.com/watch?v=uFXY7Et6pQ4




이미 언급했지만 이 분 원래 배우 출신이다. 어떤 대본을

들이대도 기본기는 하는 연기자란 뜻. 88년말에 느닷없이

버스터라는 범죄물 코미디 영화에 주연으로 등장하셨을

때 놀란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건 80년대 이후 뒤늦게 팬이

된 때문일 거고.



그해 9월에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발매되는데 여기서도

싱글 히트를 두 곡이나 기록한다. Two Hearts는 미국

핫100 탑그래미골든글러브 어워드를 수상했고

65년 곡을 커버한 발라드 Groovy Kind of Love

역시 핫100 탑영국 차트 2위를 찍는다.



빌리 엘리어트맘마 미아로 유명하신 영국의 좋은

배우 줄리 월터스와 공연하셔서 연기도 괜찮았다고.

이땐 정말 뭘 해도 다 되는 마이더스 터치의 시대셨다.



한 달 정도 앞서 러더포드M+TM의 가장 큰 싱글 히트

The Living Years를 발표해 핫100 차트 탑을 기록하는

깜짝 성공을 거두기도. 두 사람의 프로젝트가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듯했다. 폴 캐랙이 리드 보컬을 맡았다.



(Buster)



('Two Hearts' from Buster, 1988)



('A Groovy Kind of Love' from Buster, 1988)



('The Living Years' by Mike + The Mechanics, 1988)

*가사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화해를 이루지 못한 아들의 풍수지탄.



전작의 대성공 후 약 5년이 좀 못 되어 솔로 4집으로 더

성숙해진 ...But Seriously가 89년 11월에 발매되고

필 콜린스의 명성이 90년대까지 이어지는 데에 탄탄한

발판으로 작용한다. 영미를 포함 15개국 앨범 차트에서

을 기록한 또 하나의 역작.



일렉트로닉에서 조금 거리를 두어 어쿠스틱소울

방향타를 바꾼 흐름은 이 앨범부터 시작된다. Hang in

Long Enough, Something Happened on the Way

to Heaven 등 트랙이 R&B재즈의 뿌리에 천착하는

그의 여전한 성향을 보여준다.



Do You Remember, That's Just the Way It Is 같은

트랙은 그만의 어덜트 컨템포러리가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가 보여준 수작이었는데 다소 자기 복제 되어가지

않나 하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에릭 클랩튼이 세션에 참가한 I Wish It Would

Rain Down이나 핫100 차트 에 오르고 그래미 올해의

레코드를 수상한 Another Day in Paradise의 성숙한

음률에는 모두가 공감했다.



Colours - 남아공, Another Day~ - 미국, That's Just

the Way~ - 북아일랜드 등 각국 정치 상황을 고찰하는

트랙이 유난히 많은 앨범이다. 하지만 보수당 지지자라는

오해도 받아왔거니와 그의 성찰적 시각엔 한계가 뚜렷하다는

비판에 또한 직면했다. 무엇보다 팬덤이 그에게 기대하는

것이 이런 면이라 볼 수 있을까. 피터 아니잖.



(...But Seriously)



('Another Day in Paradise' from But Seriously, 1989)

*워싱턴DC 뒷골목의 노숙자 문제를 다룬 가사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I Wish It Would Rain Down' from But Seriously, 1989)

*에릭 클랩튼이 출연하셔서 대사에 연기까지...



('Something Happened on the Way to Heaven' from But Seriously, 1989)

*어느 개 한 마리의 시점으로 구성한 재미있는 뮤비이다.



('Do You Remember' from But Seriously, 1989)



('Hang in Long Enough' from But Seriously, 1989)

*타이타닉 영화를 패러디했는데 이땐 카메론 작품이 나오기 전이다.


('That's Just the Way It Is' from But Seriously, 1989)

https://www.youtube.com/watch?v=zP7pgInSybI




91년이 되어 제네시스로 다시 돌아온 콜린스와 그들. 14집

We Can't Dance4x 플래티넘을 기록하고 영국 차트 탑,

미국 차트 4위를 기록하는 제네시스의 여전한 브랜드

파워를 입증했지만 전작만한 성공작은 결코 아니었다. 락

씬의 지형이 바뀌어 더 이상 첨단의 감각이라고 인정받을

만한 상황이 아닌 거다.



다양한 장르 배경을 가지면서도 희한하게도 블루스 계열

영향이 빈약한 제네시스였는데 I Can't Dance는 희미한

흔적을 남기며 영미 싱글 차트 탑텐까지 오른다. No Son

of Mine영국 차트 탑텐에, Hold on My Heart,

Never a TimeJesus He Knows Me 등 싱글이

그밖에 각광을 받았다.



(We Can't Dance)



('I Can't Dance' from We Can't Dance, 1991)



('No Son of Mine' from We Can't Dance, 1991)



('Hold on My Heart' from We Can't Dance, 1991)

https://www.youtube.com/watch?v=V4pLqznEe3I


('Never a Time' from We Can't Dance, 1991)

https://www.youtube.com/watch?v=21Zw22g36JI

*팬이 만든 헌정 동영상으로 추정된다.


('Jesus He Knows Me' from We Can't Dance, 1991)

https://www.youtube.com/watch?v=35K6vQRt67g



솔로 앨범 전작들이 모두 영미 차트 탑텐을 벗어난 적이

없었으니 미국 차트 13위까지 오른 것이 최고 기록인

93년 11월의 5집 Both Sides는 확실히 그의 하락세를

방증하는 결과일 거다. - 영국과 독일 등지에선 그래도

여전히 앨범 차트 탑에 올랐다. 그래도 필 콜린스니까

이렇게 폄하라도 할 만한 거겠지.



하지만 성숙한 소프트락 일변도의 본작에서 예전에 보던

재기발랄한 젊은 감각이 들리지 않는다는 점만은 진실에

가까워 보인다. 성숙하지만 어딘가 진부하게 들린다는..

그도 이제 나이를 먹었음을 Both Sides of the Story,

Everyday, We Wait and We Wonder 등 트랙에서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그러나 명심하시라. 그는 필 콜린스이다. 신곡의 행보가

예전만 못 하다는 것일 뿐 전작들의 성과가 누적되어 한껏

폭발하는 종합 성적표는 결국 투어의 성패에 달려 있으며

80년대부터 90년대에 걸쳐 여전히 그는 음악계 정상급의

공연 아티스트이다. 티켓 파워는 여전하고 거듭 말하지만

그를 능가할 만한 가수는 많지 않다.



그리하여 솔로 투어에 더 집중하기 위해 96년 3월 결국

그가 제네시스를 탈퇴한다. 뱅크스러더포드는 새롭게

레이 윌슨을 발탁하여 15집 Calling All Stations

발매하지만... 대차게 말아먹는다. 사람들은 바야흐로

깨달았다. 제네시스는 여기까지로구나 하고..



점점 나이를 먹은 콜린스의 솔로 작업도 투어가 여전한

흥행일 뿐 신보는 그저 그런 단계로 접어들어간다. 단,

99년에 디즈니 애니메이션 타잔의 주제가로 발표한

You'll Be in My Heart의 성공은 눈여겨볼 만하다.

2000년 아카데미에서 그에게 유일한 오스카를 안긴다.

사람들이 모두 라이온킹에서 엘튼 존이 해낸 역할을

기대하고 있었고 그는 이에 부응한 것.



(Both Sides)



('Both Sides of the Story' from Both Sides, 1993)



('You'll Be in My Heart' from Tarzan, 1999)



('Everyday' from Both Sides, 1993)

https://www.youtube.com/watch?v=xQpsXA36uq4


('We Wait and We Wonder' from Both Sides, 1993)

https://www.youtube.com/watch?v=52NbxxVUGzk



(Calling All Stations)




본 블로거가 필 콜린스제네시스의 오랜 광팬이기도 하고

제네시스의 음악사가 워낙 광대한 변화와 끊임없는 발견이

응집된 총체인지라 이번 포스팅은 할 이야기가 참 많았다.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부득이하게 줄이고 삭제한 내용이

꽤 많았음을 살짝 밝힌다.



앞에도 언급했지만 솔로 활동에서 별 재미를 못 본 토니

뱅크스야말로 역설적으로 제네시스 사운드의 코어라고 본다.

마이크 러더포드콜린스의 솔로 커리어만 훑어 보더라도

얼마나 재능있는 뮤지션들이 오랫동안 뭉치고 엮여 창의적인

시간을 함께 했는지 느낄 수 있으리라 본다.



장대한 인생의 여정에서 다섯 사람이 서로 독립적인 결정을

내리고 각자의 길을 걸어오기도 했으나 그들 서로가 느껴온

신뢰감은 근본적으로 변한 적이 없다. 아래 링크에서 다시

한 번 그 점을 확인하고 오해들 풀기 바란다.



연예계에 만연한 여러 풍문과 몰이해의 중심에 휩싸이기도

했던 콜린스의 인생과 음악이었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가수, 작곡가, 프로듀서, 연주자로서 그의 가치는

많은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라고 믿는다.



*피터 가브리엘이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 불참한 이유

- 새 앨범 리허설 때문에 바빠서. 서로 사이는 괜찮다.

https://www.billboard.com/articles/news/959216/genesis-says-peter-gabriel-missing-rock-hall-induction-is-no-snub


*명예의 전당 운영진의 공식 입장:

https://www.rockhall.com/inductees/genesis



(ARP Quadra)


(Sequential Circuits Prophet-10)


(E-mu Emulator)






(Separate Lives, single)




본 블로거는 너무나 많은 필 콜린스의 작업물들을 일생에

걸쳐 접해왔다. 추천할 트랙이 참 많지만 인생 노래라고

생각하는 Separate Lives를 빼놓고는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덜트 컨템포러리 프로듀서로서 콜린스의 재능이

극에 달하던 때 나온 최고의 히트곡이며 투어에서도 여러

다양한 버젼으로 많은 백킹 보컬리스트들과 연주해왔다.



원곡을 소화한 마릴린 마틴은 80년대 중반에 솔로로 나서

일본 프로모션도 소화하는 등 불타 올랐었지만 그뿐이었고

지금은 음악계에서 은퇴하여 공인 중개사로 사신다 한다.

Stealing Home이라고 컬트적 인기를 누려온 88년 영화

주제가로 많은 매니아 팬을 거느려 오기도. 추억의 첫사랑.



('Separate Lives' by Marilyn Martin & Phil Collins, 1985)

https://www.youtube.com/watch?v=vmMinSOWKQk

*공식 뮤직 비디오는 이쪽. 화질음질 좀 업글해 달라..



('And When She Danced' by Marilyn Martin & David Foster, 1988)

https://www.youtube.com/watch?v=JzEB_V8qg04

https://www.youtube.com/watch?v=1f4HaTgcfQ8




이 곡의 가사는 헤어진 연인 또는 이혼한 부부 사이 이야기.

남자의 호텔 방에 여자가 전화 와서 새로 연애를 시작했다고

전하며 애틋한 옛 감정을 토로하는 내용이다. 여러 아름다운

버젼이 있는데 팬덤에서 가장 충성도가 높은 두 가지 라이브

아카이브를 아래에 강추로 링크하며 금번 포스팅을 마친다.




('Separate Lives' from White Nights, 1985)

*작곡은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Stephen Bishop.



*90년경 투어. 유명한 백킹 보컬리스트 Bridgette Bryant와 함께.

**원곡에 대한 새 해석이 시작된 버젼이라 하며 팬덤의 인기가 높다.



*97년 파리 투어에서 Amy Keys 및 Arnold McCuller와 함께.

**원곡 가수를 왠지 쩌리 만들어 버린 어마무시한 두 백킹 보컬리스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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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이 분이 노래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참 신기하기도

하고 대단하다고 경탄을 금할 수 없다. 데뷔 이후

일체의 바이브레이션 없는 직선적 고음을 한결같이

유지해오신, 영원한 펑크punk 스타 스팅.



슈퍼 트리오 폴리스베이시스트이며 Every Breath

You Take 단 한 곡으로도 영원히 기억되는 미노년의

거물 락커 스팅 Sting이 이번 포스팅의 주인공이시다.









('Every Breath You Take' from Synchronicity, 1983)



('Fields of Gold' from Ten Summoner's Tales, 1993)




스팅은 왜 이름이 스팅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한때는

좀 있었는데, 꿀벌 티셔츠를 즐겨 입으시던 이 분의 20대

시절 별명이었단다. sting에는 벌침이란 뜻도 있거든.

물론 본명 아니고 1951년에 고든 매튜 토머스 섬너

긴 이름으로 태어나셨다. 잉글랜드.



그의 솔로 아티스트로서 전성기가 한국 음악 시장에서

해외 음악이 활발하게 수입되고 정보가 유입한 홍수기와

대략 일치하기 때문에 솔로 경력은 그래도 비교적 알려져

있는 것 같다. 굳이 설명할 필요 있을까 싶을 만큼.

그래도 약간 언급은 하겠지만서도.



한국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시기는 그의 밴드 시절이

아닌가 싶네. 폴리스 The Police. 슈퍼 락스타 스팅

시작점을 제공한, 역사상 최강의 락 트리오 중 하나인

그들. 이름이 폴리스인 이유는 멤버 한 분 아버지가

정보 기관에 근무하셨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https://www.etonline.com/music/166153_7_things_you_never_knew_about_sting_the_police





(The Police)




 (Outlandos d'Amour)




베이스보컬스팅, 기타앤디 서머스, 드럼스튜어트

코플랜드.. 이렇게 세 사람으로 1978년에 데뷔 앨범을 내고

다섯 장까지 정규 앨범을 낸 뒤 84년쯤 활동을 정리한 3인조

구성의 영국 밴드가 폴리스이다.



80년대 포스트 펑크뉴웨이브에 기반을 두고 재즈레게,

스카아프리칸 등 다양한 장르를 복합한 음악을 단 셋만의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한 편성으로 엮어낸, 락 음악사상

가장 탄탄한 음악성을 지닌 슈퍼 트리오라고 불렸다. 소위

일컫는 80년대 제2차 브리티쉬 인베이전의 일원이기도.



78, 79, 80, 81, 83년에 각각 발표한 정규 앨범이 죄다 영국

차트 탑텐에 올랐고 이 중 3-4-5집은 미국에서도 탑텐

기록했다. 다섯 장 중 넉 장은 롤링 스톤 지가 발표한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반에 당당히 선정될 정도. 앨범의 전 세계

판매고가 8천만 장에 달하고 여섯 차례 그래미 어워드

수상했으며 브릿 어워드도 두 번 받았다. 2003년에 이미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Summers)



(Copeland)



 (Regatta de Blanc)



(Zenyatta Mondatta)




4집까지 음악성도 탄탄하여 성공했지만 83년 Synchronicity

앨범과 싱글 Every Breath You Take의 초대박 메가히트는

너무나 유명한 전설이다. 앨범과 싱글 쌍끌이로 미국 시장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찍었다.



스팅이 아내와 불화가 있던 시절 스토가 된 심정으로 어디

얼마나 잘 사나 지켜보자고 쓴 가사인데 끈적한 사랑 노래로

오해하는 사람 참 많다. -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 현상.

가사를 쓴 그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고. 결혼식서 부르지 말자.



다 필요없고 폴리스스팅을 대표하는 시그니처송 아니겠냐.

생략하고 갈 수 없으니 먼저 듣고 시작하자. 원곡도 훌륭하고

아래에 2008년 재결합 투어 중 도쿄돔 라이브 버젼도 좋다.



 (Every Breath You Take, single)



*2008 Reunion Tour 중 Every Breath You Take.




서머스가 창조한 저 기타 리프는 모르는 이 없이 역사상

가장 유명한 프레이즈. 82년 로버트 프립과 듀오 앨범

I Advance Masked를 낼 때 벨라 바르톡을 연구했는데

거기서 착안했다지.



얼핏 듣기로는 쉬운데 막상 치려면 손가락 찢어진다고

악명높은 악마의 리프라지... 무려 캘리포니아 주립대

음대서 클래식 기타를 전공한 분이니 핑거 난이도

쯤이야 이미 아득히 초월한 수준 아니겠남.



https://www.youtube.com/watch?v=dOJjxL82X2Q&t=275s

(왜 어려운 리프인지.. 4분 35초 경부터)




주변에 폴리스의 라이브를 들려줄 때 나오는 반응 중

열에 여덟 아홉은 그렇다. 스팅만 알고 들어갔는데 나올

서머스코플랜드의 팬이 되어 버린다고. 하나의

온전한 밴드를 얘기할 때 두 분은 스타인 스팅보다

더 중요할지 모르는 것이 사실일 거다.



(앤디 서머스 1987년 인터뷰. 기타 사운드의 디자인에 대해..)

https://www.youtube.com/watch?v=RS87DCFfzxU


(스튜어트 코플랜드 드러밍에 대한 설명. 어느 드럼 강사..)

https://www.youtube.com/watch?v=Mwojr-12xK4




42년생으로 이미 60년대 중반부터 블루스사이키델릭

연주자로 각광받은 앤디 서머스. 실력파 밴드 소프트 머신에서

투어 연주자로 뛰었고 저명한 애니멀스에서 정규 멤버인 적도

있었으니, 적어도 실력에 있어 누가 딴지 걸 만한 짭밥은 아닌

폴리스에 참여한 분이다.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데뷔 무렵 세 분 중에선 멀찍이 앞서던 멤버인 셈다.



때려부수는 파괴 주법이 아닌 스티브 해킷, 스티브 하우,

알렉스 라이프슨, 로버트 프립처럼 이펙트 중시하는

분석적 어프로치로 프레이징을 펼친다 하여 흔히 두뇌파

분류되는 기타리스트동시대 U2디 에지와도 유사한 면이

있고, 중심 접근 자체가 포스트 펑크의 트레이드 마크일 듯.



폴리스의 라이브나 앨범 트랙을 골고루 들으면 금방 알 수

있지만 사운드 메이킹에서 서머스어프로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작곡 크레딧을 대부분 스팅이 가져간다는

단순한 이유로 따질 수 없는, 분명한 자기 생태계를 구축하는

밴드메이트인 것이다. 폴리스 이전 서머스의 플레이를 느끼기

원하는 사람에겐 애니멀스 시절 4분이 넘는 솔로잉을 펼친

트랙 Coloured Rain을 보통 추천하곤 한다.



('Colored Rain' by Eric Burdon and The Animals, 1968)

- 애니멀스 시절 앤디 서머스. 솔로 파트는 2' 20" ~ 6' 40" 정도에..



(폴리스가 과연 punk 밴드였는지 의심이 든다면 아래 영상을...)

https://www.youtube.com/watch?v=rPNQyyLglSQ



(Fender Telecaster)



('So Lonely' from Outlandos d'Amour, 1978)

*2분 25초쯤 이후 솔로잉도 꽤 괜찮은 편이다.



('De Do Do Do De Da Da Da' from Zenyatta Mondatta, 1980)

*이 곡에선 기타 이펙트로 리버브와 에코를 적절히 섞었다.



('Demolition Man' from Ghost in the Machine, 1981)

*앨범 버젼에서 기타 솔로잉을 만끽할 수 있다. 버젼이 여러가지라..



('Demolition Man' by Manfred Mann's Earth Band, 1982)

- 데몰리션 맨 맨프레드 맨s 얼쓰 밴드가 커버했는데 꽤 잘 뽑혔다.




폴리스의 히트곡 가운데 서머스 이펙트의 진가를 보여줄

트랙으로는 1집 Outlandos d'Amour에서 So Lonely,

2집 Regatta de Blanc에서 Message in a Bottle, 3집

Zenyatta Mondatta에서 De Do Do Do De Da Da Da,

4집 Ghost in the Machine에서 Demolition Man 등을

추천할 만하다.



특히 Message in a Bottle1집에서 Roxanne이 크게

히트했음에도 실질적으로 폴리스 음악의 기초를 세웠다고

평가받는 명곡이다. 롤링 스톤 지가 시대를 초월한 기타

(가 중심이 되는) 노래 100곡을 선정할 때 65를 차지할

정도로 스트랫 선상의 리프또렷하고 청량하다.



(Rolling Stone Magazine's 100 Greatest Guitar Songs of All Time)

https://www.stereogum.com/10114/rolling_stones_100_greatest_guitar_songs_of_all_ti/franchises/list/



('Message in a Bottle' from Reggatta de Blanc, 1979)

*최고의 리프. 가사는 병 속에 편지를 넣어 띄워보낸 사람 이야기..


('Roxanne' from Outlandos d'Amour, 1978)

*록산은 파리의 매춘부를 가리킨다. 신호등과 상관없다능.




52년생 스튜어트 코플랜드는 개별 악기 능력에 있어선

세 멤버 중 평가가 가장 높다. 16년 롤링 스톤 지 선정

시대를 초월한 드러머 100명 중 무려 10위, 05년 모던

드러머 및 13년 클래식 드러머 명예의 전당 헌액 등등..



특히 트래디셔널 그립으로 스틱하이해트, 을 다루는

테크닉은 동시대 최강이며 많은 후배들에게 영향을 줬다.

사운드의 여백을 책임감있게 메꿀 정도의 능력치는 존 본햄,

닐 피어트칼 팔머동급이라는 것이 중평이라 하겠다.



정작 본인은 미치 미첼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다 하고

진저 베이커도 자주 언급했다. - 세 분 모두 락 트리오

멤버들.. 왜인지, 버디 리치 스타일 재즈 긱은 싫어한다고.



(Rolling Stone '100 Greatest Drummers of All Time', 2016)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drummers-of-all-time-77933/stewart-copeland-33775/


(Modern Drummer Reader Pole, 2005)

https://www.moderndrummer.com/modern-drummers-readers-poll-archive/#_


(Classic Drummer Hall of Fame, 2017)

https://www.classicdrummerhalloffame.com/stewart-copeland



(traditional grip of a left hand)




어린 시절 한동안 가족이 중동에서 지낸 탓인지 레게 

스카를 포괄한 다채로운 전통 리듬에 익숙하여 폴리스

음악에 크게 기여한다. 때때로 클래식 퍼커셔니스트마냥

광범위한 진폭의 다이내믹스 능한 것도 이 때문일 듯.

꽉 찬 그루브의 재즈적 필인 또한 지나칠 수 없는 요소.



이들에게 하나의 루틴 패턴인데, 스팅이 베이스로 중심을

잡으며 가사를 읊는 뼈대 위에 서머스가 다양한 이펙트

변용하여 사운드를 채워주고 코플랜드가 그 위로 리듬

운용하는 자유분방함... 3집까지 레게펑크punk

고수하던 폴리스의 음악은 대략 이런 양상이었다.



('Don't Stand So Close to Me' from Zenyatta Mondatta, 1980)

*80년 앨범 원곡 버젼. 스팅은 실제로 교사였던 적이 있다고.



*86년 재녹음 버젼. 이 앨범 하나면 왠만한 히트곡 다 들을 수 있다.




1집 Roxanne을 쓸 때 스팅은 당초 보사노바 리듬을

구상했지만 코플랜드의 조언에 의해 탱고로 바꿨다고.

서머스 여러 모로 이들에게 중요한 2집 Message in a

Bottle 코플랜드 플레이가 역대 최고였다고 극찬했다.



3집Don't Stand So Close to Me는 여학생이 선생님에

품은 감정을 다룬 영국 차트 1위 곡인데 기타 신디사이저

등장한다. 해산 후 86년에 히트곡 모음집인 Every Breath

You Take: The Singles를 발매할 땐 '86 버젼으로 재녹음

중이었는데 마침 코플랜드가 부상 중이라 워크스테이션 명기

Fairlight CMI드럼 프로그래밍을 직접 했다고.



*아랜 86년 The Singles의 95년 재발매판 커버.

 (EBYT: The Classics)



*아랜 97년 또다른 모음집. 이들은 베스트 앨범이 잘 팔리는 편.

(The Very Best of Sting & the Police)




('The Bed's Too Big Without You' from Reggatta de Blanc, 1979)

*80년 독일 라이브. 코플랜드의 스네어 드러밍에 주목.




2집 The Bed's Too Big Without You세 멤버가

고루 우수한 가운데 특히 평단이 코플랜드의 물수제비 뜨는

듯한 스네어 드러밍을 콕 집어 칭찬한 바 있다. 3집의 숨은

진주 Driven to Tears싱코페이션 가득한 레게 리듬을

무리없이 소화해낸 코플랜드와 함께 서머스의 여덟 마디

솔로잉이 격찬을 이끌어내기도.



3집 중 엄청난 길이의 제목을 가진 When the World Is

Running Down, You Make the Best of What's Still

Around.. 이 트랙에서 보여준 funky-groove 베이스

드럼의 조화 역시 대단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5집Murder by Numbers

코플랜드의 재즈식 테크닉을 진짜 매력있게 들려준다고도..



('Murder by Numbers' from Synchronicity,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1Wp-SZSBkjk




('Driven to Tears' & 'When the World Is Running Down, You Make

the Best of What's Still Around' from Zenyatta Mondatta, 1980)

- Zenyatta Mondatta의 두 트랙을 이어붙임..




 (Ghost in the Machine)




4집 Ghost in the Machine이나 5집 Synchronicity

쯤 가면 스팅뉴웨이브신디사이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이전까지 사운드를 채워주던 서머스

여러 모로 부딪히게 된다. 밴드 스코신디가 설치기

시작할 때 기타리스트의 운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는 법.



4집Every Little Thing She Does Is Magic이나

Spirits in the Material World 같은 히트곡을 만들 때

스팅서머스의 갈등이 점입가경이었다고. 신디 톤

점령해 들어오면서 펜더 소리 듣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음은 그냥 대충만 들어봐도 뭐..



아래에 4집 내고 공연 중.. Moog Taurus pedals 쓴다고

엄청나게 스팅 까는 댓글은 덤이다.


*Sting playing Moog Taurus pedals, 1982.

https://www.youtube.com/watch?v=nYFjTPAQ6G0



 (Moog Taurus)



('Every Little Thing She Does Is Magic'

from Ghost in the Machine, 1981)



('Spirits in the Material World' from Ghost in the Machine, 1981)




 (Synchronicity)




가뜩이나 멤버들 간에 신경이 곤두서 있던 차에 제작사

압력으로 녹음에 들어간 Synchronicity. 서로 모이지도

않고 따로 자기 파트를 녹음했다는 후문. 그런 앨범이

역대 최고의 성과를 거둔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말다니.



스팅의 가사는 결코 쉽지 않다. 교대 나와 교사로 일한 적

있는 엘리트인지라 어려운 표현 투성이에다 가끔 스노비즘

쩌는 반쯤 허세 같은 작품도 심심찮게 나온다. 본작 가사가

그러한데 아서 쾨슬러란 문필가가 72년에 낸 유사 심리학

계열 저서에 등장한 synchronicity, 흔히 공시성이라고

일컫는 현학적 개념을 풀어낸 가사로 범벅을 했다.



그게 뭐냐고? 전혀 상관이 없는 두 개 이상의 사건이

우연히 겹쳐 발생한 데에서 초감각적 의의를 찾는 약간

초능력 비스무그리한 거라고... Synchronicity II

가사를 조용히 음미해 보시면 알 수도 있을 듯.



(Synchronicity II 가사 속 중의적 해석을 설명한 곳)

https://genius.com/3199809



('Synchronicity I' from Synchronicity, 1983)



('Synchronicity II' from Synchronicity, 1983)



*포스트 아포칼립스 사이버 펑크 문화의 절정을 보여주는 뮤직 비디오.



*질주하는 텔리는 서머스의 상징이다. 애틀랜타에서 83년 마지막 투어.




판매고만도 9백만 장을 넘기고 영국미국 양쪽 앨범

차트 정상에 오르며 84년 그래미 어워드본상 3개

부문을 포함 다섯 부문 후보에 올라 세 부문 - 올해의

노래 포함 - 수상을 기록하는 등. 83~84년의 폴리스

성과와 기록의 절정기를 맞고 있었다.



그럼 뭐하나, 밴드는 해체 수순을 밟고 있었는데. 대부분

곡을 쓰고 팀의 중심이던 스팅솔로 프로젝트로 가기

위해 잔뜩 바람이 들어 있던 상황이었으니. (심지어 이

시기 그는 꽤 연기도 잘 하는 영화배우였다.)



84년 3월 투어를 끝내자마자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각

멤버들은 찢어져 솔로 활동에 들어간다. 2007년에 잠시

재결합하여 투어를 갖기 전까지는 장장 23년간 휴지기가

지속했고 08년 이후 재결합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2008 Reunion Tour 중 Message in a Bottle.



*2008 Reunion Tour 중 Synchronicity II.



*03년 락앤롤 명예의 전당 헌액 공연 중 Roxanne.




짧고 굵게 음악계를 평정한 폴리스의 음악에 아직도 갈증이

남는다면 아래의 히트 트랙들을 더 참고하시길.



('Fall Out', non-album single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4Av29Jp8Ryk


('Can't Stand Losing You' from Outlandos d'Amour,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nH0vjLwMyc4


('Walking on the Moon' from Reggatta de Blanc, 1979)

https://www.youtube.com/watch?v=zPwMdZOlPo8


('Behind My Camel' from Zenyatta Mondatta,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XaP2h7ZP5D0


('Invisible Sun' from Ghost in the Machine,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1VuDjJ9KIxM


('King of Pain' from Synchronicity,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yuOPRfq-q6U


('Wrapped Around Your Finger' from Synchronicity,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svWINSRhQU0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




물론 그 사이 가장 잘 나간 스타는 스팅이다. 기존 팬덤 중

솔로 활동이 망하기 바랬을 사람도 있었겠으나 이 양반이

어디 그리 썩힐 달란트이던감. 85년에 발표한 첫 솔로 앨범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는 전반적으로 재즈

짙은 영향을 뽐낸 멀티 플래티넘의 수작이라 할 만하다.



브랜포드 마살리스를 위시하여 대릴 존스, 케니 커클랜드,

오마르 하킴재즈 씬세션들을 대거 투입하여 안정된

사운드를 들려준다. 핫100 차트 3위까지 오른 데뷔 싱글

If You Love Somebody Set Them Free는 발군의

추천 트랙이며 스팅 솔로 커리어 대표곡으로 자리매김한다.



('If You Love Somebody Set Them Free'

from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 1985)

*전술한 세션들이 다 함께 출연하시는 뮤직 비디오.




84년 겨울엔 당시 영국 음악계를 쥐락펴락 하던 최고의

가수들이 다 모여 밥 겔도프 주도로 밴드 에이드라는

프로젝트 하에 Do They Know It's Christmas 싱글을

녹음하고 있었다. 스팅이 빠질 수 있겠나. 비중은 적지만.



('Do They Know It's Christmas' by Band Aid, 1984)

*1분 14초 경에 등장하심.



85년은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전성기이기도 해서 스팅

마크 노플러가 이들 최고의 히트곡 Money for Nothing

공동 작곡하고 스팅백킹 보컬로 찬조 출연한다. 이런

그림은 라이브 에이드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I want

my MTV~'의 라인은 시대가 낳은 락 앤썸인 셈.





*참고로.. 역사를 새로 쓴 Money for Nothing의 뮤직 비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wTP2RUD_cL0

('Money for Nothing' by Dire Straits, 1985)



(...Nothing Like the Sun)




87년에 낸 ...Nothing Like the Sun 앨범은 진득한

어덜트 컨템포러리로 가득 찬 또 다른 멀티 플래티넘 수작.

앤디 서머스를 비롯, 에릭 클랩튼, 마크 노플러 등 동료

기타리스트가 대거 참여하여 화제가 되었다.



모친상 겹친 때문일까, 한층 깊어진 우울한 정서에

평단이 찬사를 보냈다. 반군에 희생당한 민간인에 바친

싱글 Fragile에서 깊은 쓸쓸함을 확인할 수 있다. 많이

알려진 Englishman in New York성 소수자로서

외롭게 투쟁하던 선배 인사에게 바친 곡이다. Be Still

My Beating Heart는 모친께 바친 곡.



('Fragile' from ...Nothing Like the Sun, 1987)

*클래식 기타 연주가 빼어난 16년 노벨평화상 기념 공연.



('Be Still My Beating Heart' from ...Nothing Like the Sun, 1987)

https://www.youtube.com/watch?v=Ng4P6FWVdcE




(The Soul Cages)




88년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음악극 병사의 이야기

낭독 파트의 녹음에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이언 맥켈런

켄트 나가노가 지휘하는 런던 신포니에타와 함께 참여했다.



91년 앨범 The Soul Cages 땐 부친을 여의었음에도

역설적으로 밝게 그린 All This Time이 좋은 평가를

얻어낸다. 동명의 타이틀 트랙으론 그래미 상을 받았고.



('All This Time' from The Soul Cages, 1991)

https://www.youtube.com/watch?v=4LdUme7QZLY

*뮤직 비디오에서 장례식에 대한 암시를 읽을 수 있다.



(Ten Summoner's Tales)




93년 앨범 Ten Summoner's Tales는 큰 성공을

안겨준다. 그래미 올해의 앨범머큐리 음악상 후보로

오르게 되었고 If I Ever Lose My Faith in You

36회 그래미 최우수 남성 팝 가수 상을 수상한다.



발매 1년여 만에 트리플 플래티넘을 기록하고 If I Ever~

뿐 아니라 Fields of Gold, Shape of My Heart

히트곡이 줄줄이 터져나왔다. 리썰 웨폰 3탄 OST에도

수록된 It's Probably Me 에릭 클랩튼이 기타를 쳤다.



('If I Ever Lose My Faith in You' from Ten Summoner's Tales, 1993)

*보컬 기량으로서는 이 때가 절정기였다.



('Shape of My Heart' from Ten Summoner's Tales, 1993)

*세션 기타리스트는 공동 작곡자이기도 한 Dominic Miller.



('It's Probably Me' from Ten Summoner's Tales, 1993)

https://www.youtube.com/watch?v=SUYI7kIR0S4

*album version. 여러 버젼이 존재함.




93년엔 영화 주제가 작업이 많았다. 실베스터 스탤론

웨슬리 스나입스의 영화 데몰리션 맨을 위해 과거

트랙을 재녹음하여 OST에 수록했고, 찰리 쉰키퍼

서덜랜드삼총사를 위해 All for Love브라이언

애덤스로드 스튜어트와 녹음했는데, 그에게 이 곡은

솔로로서 아직까지 유일한 싱글 핫100  트랙이다.



('Demolition Man' from eponymous soundtrack, 1993)

https://www.youtube.com/watch?v=G3QWnqpHrEI



('All for Love' by Bryan Adams, Rod Stewart & Sting, 1993)




95년엔 니콜라스 케이지엘리자베스 슈의 영화 라스

베가스를 떠나며 OST 앨범에 참여하여 세 곡의 재즈

스탠다드를 녹음한다.



('Angel Eyes' from Leaving Las Vegas OST, 1995)

https://www.youtube.com/watch?v=eaWd0pNHDes

*한국에선 이 곡이 소폭 히트함.




97년에 그의 최고 작품 Every Breath You Take

미국의 흑인 랩퍼 퍼프 대디와 싱어 페이스 에반스

의해 커버되어 무려 핫100 차트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비극적으로 사망한 동료 노터리어스 BIG

기리는 뜻에서 비롯되었으니 물론 개사하여 I'll Be

Missing You란 제목으로 발표한 것.



('I'll Be Missing You' by Puff Daddy & Faith Evans, 1997)

https://www.youtube.com/watch?v=NKMtZm2YuBE




최근까지도 차트에서 두각을 보이는 앨범을 꾸준히 내고

있지만 창작자로서 좋은 평가는 99년 Brand New Day

앨범 이후론 멈춘 듯하기도. 본작에서 알제리 민속 음악인

라이 양식을 빌려 알제리 가수 체브 마미와 함께 한 싱글

Desert Rose로 2000년 그래미 상을 받는다.



02년엔 영국 작곡가에게 주는 이보 노벨로 음악상 수상자로

선정된다. 03년에 니콜 키드먼주드 로르네 젤위거의 영화

콜드 마운틴 OSTYou Will Be My Ain True Love

앨리슨 크라우스와 녹음하고 이듬해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로 올라 시상식 무대에서 공연한다.



('You Will Be My Ain True Love' by Sting & Alison Krauss, 2003)

*연주하고 있는 건 드론 베이스란 전통 악기.




07~08년엔 전술했듯이 폴리스의 멤버와 재결합하여

전 세계 투어를 돌았다. 09년엔 락앤롤 명예의 전당

25주년 기념 공연에 출연했고, 17년엔 스웨덴 왕립

음악 협회가 주관하는 폴라 음악상 수상자로 추대된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의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어떤 업적이나 성과가 나올지 사실 예측하기는 힘들다.

평생에 걸쳐 정열적으로 새로운 음악을 발굴하기 위해

애쓴 예술가로서의 공은 세상 모든 사람이 인정하리라.



(92년 파바로티와 친구들 공연 중)




스팅의 보컬 스타일은 흥미롭고 또 경이롭다. 왠만해서

비브라토를 거의 넣지 않고 넓은 음역을 소화하는 점,

그러면서도 동시에 음정이 정확하다는 점, 중저음역과

고음역의 각 음역대를 요하는 트랙 양쪽에서 표현력이

출중하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재즈에 기반을 둔 - 재즈 밴드의 베이시스트로서

뮤지션 경력을 시작 - 독창적 리듬 감각을 지적인 가사

속 단어의 운율에 묘하게 결합시키는 스팅만의 기법은

동시대 어떤 뮤지션도 따라 할 수 없는 능력일 것이다.



폴리스 시절 젊었을 땐 신랄하게 기득권을 비판하고

조롱하는데 능한 목소리인데 반해 부모님이 돌아가신

30대 후반 이후엔 진중하게 세상을 관조하는 무게감을

키워나간 점 또한 놀라운 면이다. 이런 능력이 지성미

넘치는 창의적 작사 조화를 이룬 상태... - 이것이 바로

인텔리전트한 송라이터 스팅의 참모습일 것이다.



(Fender Precision Bass)






본 블로거가 생각하는 스팅의 최고 작품은 여럿이다. 밴드

시절엔 Synchronicity II의 음악적 완성도가 가장 높았고,

솔로 커리어에선 아직 자신만만함의 갑옷을 벗지 않은 시절

첫 앨범에서 If You Love Somebody~가 들려 눈부신

광채와 실력의 정점이 최고였다고 믿는다.



*If You Love Somebody~ 라이브의 변화 비교:


(1980년대 팔팔하던 시절)

https://www.youtube.com/watch?v=6XUaDJm0ac8


(환갑 기념 공연. 이 때가 무려 60세. 옆에 브랜포드 마살리스.)

https://www.youtube.com/watch?v=jI8XLZUladY




완성도를 제외하고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솔로 때 발표해

한국인들에게도 사랑받아온 Englishman in New York.

2011년 칠레 비냐델마르 페스티벌에서 풀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완주한 버젼이 괜찮아 추천하며 마치련다.


(album version / official music video)

https://www.youtube.com/watch?v=d27gTrPPAyk



본래 브랜포드 마살리스소프라노 색소폰으로 솔로를

넣었는데 이 버젼에선 음역이 같은 클라리넷이 등장한다.

백킹 보컬의 여성은 호주 출신 재즈 보컬리스트 조 로리.

소외받는 이에게 스팅이 바치는 헌사가 여운을 드리운다.


"누가 뭐라 하든 네 자신이 되는 거야"








"공감을 눌러 주시면 큰 힘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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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락 보컬은 이 분이 등장하기 전과 등장한 후로 나뉜다.

그리고 모든 락 음악은 이들 이전과 이후로 나뉘기도 하고.

오늘날 락 음악에 종사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예술 세계에

영향을 주고 10년 여의 활동 기간을 뒤로 한 채 활활 불태우고

홀연히 떠나간 비행선 같은 전설의 뮤지션들...



락 보컬의 원형을 제시한 로버트 플랜트 Robert Plant

(1948~).. 그리고 여기에 레드 제플린에 대한 이야기이다.









객관적 평가의 이야기를 해볼까. 프레디 머큐리를 18위에

올려놓은 롤링 스톤 지의 시대를 초월하는 위대한 가수들

100명 랭킹에서 플랜트는 15위를 차지했다. 영국 방송사

플래닛 락의 2009년 조사에서 그는 락 음악계 가장 위대한

보이스로 선정되었고, 미국 방송사 NPR의 2010년

조사에선 50명의 위대한 목소리 중 하나로 뽑혔다.



헤비메탈 전문 매거진 히트 퍼레이더가 2006년에 발표한

100명의 위대한 남성 메탈 보컬리스트 랭킹에서 그는 당당히

1위이다. 재미있는 건 그에게 영향을 받은 동료와 후배들이 이

랭킹의 하단에 줄줄이 위치한다는 점. 2위의 롭 핼포드, 3위의

스티븐 타일러, 6위의 프레디 머큐리, 13위의 게디 리 등등.



여러분들이 인식하고 있을 법한 명가수나 보컬리스트들이

자신들이 영향을 받았다고 한 번 쯤은 언급한 전설이 바로

이 분인 것. 그 프레디 머큐리마저도. (데뷔와 히트 연도로

치면 5년 정도 앞서니 선배 맞다.) 멀리 갈 거 없이 이 분

그냥 별명이 락앤롤의 신이란다. 뭐 더 설명이 필요한지.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singers-of-all-time-147019/robert-plant-5-225584/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은 락 음악과 하드락 역사에

분수령이자 분기점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60년대말 락앤롤

장르가 블루스사이키델릭에서 변화하는 시점이 늦춰졌을

것이고 70년대에 헤비메탈이 분화하는 데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심지어 프로그레시브 장르에도 여파가 미쳤을 거다.

포크에도 어느 정도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거다. 한

마디로 비틀즈와 작별한 음악계의 다음 정착지였던 셈이다.



리더이자 구심점은 흔히 바보들의 3대 기타리스트로 꼽히는

지미 페이지. 그 셋을 배출했다는 야드버즈가 사실상 와해된

야드버즈를 결성하려고 멤버를 끌어모으던 중 가장

먼저 리쿠르트한 인물이 보컬리스트 로버트 플랜트였다.

'이렇게 뛰어난데 왜 아직 묻혀 있었지' 라고 생각했단다.



밴드 오브 조이란 데서 노래하던 플랜트야드버즈 후신

성격의 프로젝트를 수락하고 동료인 존 본햄을 드러머로

추천한다. 제프 벡과의 레코딩 협업을 통해 페이지가 원래

알고 지내던 존 폴 존스를 영입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전설의 진용은 이렇게 완성된다. 1968년 8월쯤. 처음

잼을 맞추며 서로 불꽃이 튀었고 성공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겠다는 확신이 섰다고...



신인이면서도 이미 음악계의 주목을 받고 있던 이들은

68년 9월초 당장 덴마크 클럽에 섰고 그 달 말엔 9일간

후다닥 첫 앨범을 녹음해 버린다. 즉 69년 1월 발매로

알려진 역사적 데뷔 앨범은 사실 전년도에 이미 만들어

놓은 것. 젊고 뜨기 전이지만 이미 음악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로 소문이 자자했던 그들. 만나자 마자

서로를 알아보고 화학 반응을 일으킨 것 아니겠는가.



 (Led Zeppelin)



 (Led Zeppelin)




역사상 가장 위대한 데뷔 앨범으로 꼽히는 Led Zeppelin.

이렇게 나온 결실이다. 밴드 이름을 정하는 데는 더 후

키스 문이 팁을 줬다는 소문도 있었다. - 페이지 친구. 앨범

커버에는 1937년에 미국 뉴저지에서 폭발한 독일식 LZ

129 힌덴부르크 비행선의 사고 사진을 실었다. 그리고

비행선이 폭발했듯이, 앨범은 대박으로 폭발해버린다.



I의 전반적 장르는 블루스락 또는 헤비블루로 요약된다.

발표 후 세상을 놀래킨 대곡 Dazed and Confused

보여준 끈적한 중량감이 입증한다. (69년 기준) 일찍이

블루스가 이토록 무거운 공격성을 보여준 적이 있었던가.

플랜트의 야성적 팔세토와 페이지의 창조적 솔로잉, 이

한 세트가 음악사의 브랜드가 될 것임은 앨범 하나로도

충분히 알 만한 일이었다. 페이지가 현악기 활로 기타에

보윙을 시도하는데 즐거운 해프닝 같은 것이었



Good Times Bad Times Communication

Breakdown 같은 곡에서 페이지의 프로듀싱 능력과

밴드의 상업적 표현성이 심상치 않음을 드러내기도.

히트할 튠을 조율하는 감각에 있어 당시 일정한 절정에

근접하고 있는 네 사람의 발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

Babe I'm Gonna Leave You는 이후 앨범에서

계속 등장할 서정적 작품군의 프렐류드 같기도.





('Dazed and Confused' from Led Zeppelin, 1969)



('Communication Breakdown' from Led Zeppelin, 1969)


('Good Times Bad Times' from Led Zeppelin, 1969)



 (Led Zeppelin II)




음악을 듣다 보면 그런 게 있다. 이 앨범, 도대체 버릴 노래가

있긴 한 건가. 그때 우린 명반이란 말을 떠올린다. 모든 트랙이

필청이란 말씀. 투어와 스튜디오를 왕복하며 1년쯤 준비해

10월에 낸 Led Zeppelin II가 딱 그런 경우였다. 아니, 솔직히

I은 블루스 안 내키는 사람도 있을 테니 그렇다 치자. 이제부터

나오는 그들의 앨범은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음악사를 새로

쓰기 시작한 것. 비틀즈스톤즈 이후 이런 일이 있었던가.



아 물론, 저작권 개념이 흐릿한 페이지의 표절 시비가 있긴

하다. 허나 하나의 완성된 트랙을 만들어 앨범 전체의 일관된

톤을 프로듀싱하는 능력에 있어, 레드 제플린을 폄하할 수

있겠는가 싶다. 평론가와 언론이 종종 이들의 최고 작품으로

꼽으며 가장 유명한 기타 리프를 가진 Whole Lotta Love

들으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게 마련. 2012년에 롤링 스톤 지가

들 최고의 명곡 40곡을 엄선한 때도 이 곡이 '당연히' 1위..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도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the-40-greatest-led-zeppelin-songs-of-all-time-154694/whole-lotta-love-1969-170042/



본작에선 역대급의 세션으로서 리듬 파트를 탄탄하게 받쳐

라이브를 살아있는 활어로 만드는 존스본햄의 진가가 특히

두드러진다. 톨킨반지의 제왕 노래한 Ramble On

리드밍 커플 조화가 매력적으로 두드러지는 트랙이며

특히 팬덤에서 인기가 높다.



섹드립 가사로 알려진 The Lemon Song에서 존스의 베이스

라인과 진저 베이커에 영향받은 Moby Dick의 본조 드러밍은

절정감을 선사할 게다. (본조본햄의 별명) Heartbreaker

흔히 헤비메탈 장르의 효시를 논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작품이고

플랜트의 불륜을 소재로 한 What Is and What Should

Never Be 역시 필청의 트랙이다.



물론 이미 수많은 음악이 나와 다양한 장르가 발전한 지금의

기준으로 본작이 대단하게 들리지 않을 수도. 하지만 한때는

락 음악과 헤비메탈이 음악의 대세였던 적도 있고 수많은 후배

음악가들의 작곡에 기준점을 제시한 앨범이란 점을 명심하시라.

앨범 차트 1위 및 플래티넘 기록 등 상업적인 성공도 전작보다

더 대단했고 여러 모로 레드 제플린 전체 디스코그래피에서

II는 복기할 만한 중요도를 가지는 걸작 앨범임에 틀림없다.



('Whole Lotta Love' from Led Zeppelin II, 1969)



('Ramble On' from Led Zeppelin II, 1969)



('Heartbreaker' from Led Zeppelin II, 1969)




 (Led Zeppelin III)




강렬한 Immigrant Song을 내세워 1년 후 70년 10월에

낸 Led Zeppelin III는 그들 음악의 또 다른 뿌리브리티쉬

포크의 색채가 강해 락 키즈를 적잖이 당황케 했다. 최근에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쓰여 슈퍼히어로와의 엄청난

싱크로를 자랑한 이 곡플랜트 보이스의 야수적 매력을

초극강으로 끌어올려 밴드메이트들에게 인기가 높......지만

샤우팅 난이도 땜에 아마추어들에겐 언감생심이기도.ㅋㅠ



전체적 평가가 초월적 완성도를 지닌 다른 앨범에 비해 약간

박한 편이지만 차트 1위 같은 상업적 성공은 여전했다. 헤비

블루스의 미학이란 면에서 Since I've Been Loving You

엄청난 트랙이 실려 아시아 등지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블루스

고전을 모던한 어쿠스틱 감성으로 뒤살린 Gallows Pole,

무그 이펙트에 연결한 기타 인트로가 인상적인 Celebration

Day도 팬덤의 성원을 얻기에는 충분했다.



('Immigrant Song' from Led Zeppelin III, 1970)



('Since I've Been Loving You' from Led Zeppelin III, 1970)

(흡사 레이 만자렉을 연상시키는 존스의 세션..)




 (Led Zeppelin IV) (untitled)




도대체 버릴 노래가 있긴 하나 싶은 앨범. 이런 작업을 해낼

기회는 절대 자주 오지 않는 법. 락 음악의 시대 70년대에

뮤지션 커리어의 전성기를 보낸 레드 제플린은 그런 기회가

몇 번씩이나 찾아온, 달란트와 행운이 넘치는 밴드였는데...



Led Zeppelin IV - 사실 제목이 없는 untitled라 칭해야

옳긴 한데 - 는 그런 앨범이면서 동시에 음악사상 가장

성공한 앨범이기도 하다. 때는 III가 나온 후 약 1년 지난

71년 11월쯤. Stairway to Heaven이 수록된 앨범이다. 뭘

모르는 사람은 이 곡 하나만의 인기로 잘 나갔다고 착각하기도.



I - 사이키델릭, II - 하드락, III - 포크, 그리고 전체 세계관에

공통 기반이 되는 블루스로서, 자신들 음악의 바탕을 규명한

거라면 IV는 세 가지 뿌리를 통합한 완전체라고나 할까.

프로그레시브에 가까운 스테어웨이 투헤븐만 들어봐도 여러

장르의 색깔이 드러나지 않는가. A마이너 키의 어쿠스틱

아르페지오가 오버더빙된 Mellotron M400과 어우러진

인트로.. 디스토션 걸린 기타와 본조의 드러밍 템포를

올리고 플랜트의 팔세토가 텐션의 정점을 찍는 구도.. 풍자에

신비주의가 배합된 가사까지.. 당대 락 음악의 정수인 것이다.



Gibson의 상징과도 같은 페이지는 다양한 톤을 동시에

구사하기 위해 라이브에선 더블넥 기타를 자주 사용했다.

보통 12현과 6현 넥이 결합한 EDS-1275를 썼다. 존스

샘플러는 주로 Mellotron이었다가 Yamaha GX-1 나오니

유행을 따라 엘렉톤을 차용하기도.



(Gibson EDS-1275)



(Mellotron M400)



('Stairway to Heaven' from Led Zeppelin IV, 1971)



(가장 유명한 73년 매디슨 스퀘어 가든 버젼)




근데 본작의 명곡이 이게 다가 아니란 것. 영원한 락 앤썸

Rock and Roll은 뭐 워낙 유명하니 그렇다 치자고. 진짜

놀라운 건 Black Dog 아니던가. 페이지의 리프가 아무리

날뛰고 놀아도 꿋꿋하게 rock-steady한 본햄의 드러밍이란.

이 곡의 하이노트는 난이도가 너무 높아 플랜트 본인도 녹음

때 말고 라이브에서 왠만해선 시도 안 한다며.



평단이 입이 마르도록 칭송하When the Levee Breaks.

(1927년 미시시피강 대홍수둑이 무너진 일이 배경이란다.)

컨트리와 블루스가 적정 배합하여 오묘한 이 분위기는 도대체

뭐란 말인지. 포크 미학의 함수 같은 Going to California

까지.. 가만 보면 숨어 있는 포크풍 트랙의 아름다움도 도무지

만만치가 않다.



IV.. 전 세계에서 3700만 장이 팔렸고 역대 미국 음악 시장

최고의 성공작 중 하나이다. 락 밴드의 디스코그래피에서 4집

쯤 와서 정점을 찍는다는 징크스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카더라.



('Black Dog' from Led Zeppelin IV, 1971)



('When the Levee Breaks' from Led Zeppelin IV, 1971)



('Rock and Roll' from Led Zeppelin IV, 1971)




 (Houses of the Holy)




IV에서 세계적 대폭발을 일으킨 레드 제플린 그들 커리어

최절정의 정점을 찍은 것은 사실이었다. 이제 하강할 일만

남았겠지만 실력있는 음악가의 저력은 하락 곡선의 낙폭을

얼마나 완만하게 조율해낼 수 있는가 여부에 달린 것. 73년

3월에 발표한 새 앨범은 신기하게 넘버링하던 패턴을 깨고

Houses of the Holy, 성스러운 행위의 장소란 제목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네 명의 전설이 적어도 음악적 완성도에선

아직도 할 이야기가 많음을 입증하는데 충분했다.



어찌 보면 전작의 몇 곡처럼 강렬한 임팩트가 부족해 보일진

모르나 그만큼 전작이 엄청났다는 것일 뿐. 곱씹어 감상한다면

한 곡 한 곡 충만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완성작임을 알 수

있을 터이다. 산뜻하고 강한 오프닝 트랙을 배치하는 전통을

좇는 The Song Remains the Same이나 어쿠스틱에

적당히 하드함을 섞은 Over the Hills and Far Away 등,

빈틈을 찾아볼 수 없는 트랙들이 지금까지 표현하지 않은

빈틈을 찾아들어와 팬덤을 만나고 있었다.



처음으로 레게를 끌어온 D'yer Mak'er(자메이카를 영국식

영어로 음차한 말)나 EMS VCS3Moog Taurus 다루는

존스의 영향력이 돋보인 No Quarter를 들으면, 팬덤 스스로

능동적으로 곡의 매력을 찾아 탐험할 필요가 있다고 호소하는

듯하다. 아마도 멤버들이 생각한 본작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The Ocean 아닐까 하는데, 치기어린 8분의 15박자 (15/8)

메인 리프가 안기는 청량감이 후대 아마추어 기타리스트 팬덤의

열광적 지지를 지금까지도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존 폴 존스의 장비에 관한 해설)

http://www.mixdownmag.com.au/gear-rundown-john-paul-jones



(EMS VCS3)



(Moog Taurus)




상업적 성공은 더 이상 관심거리도 아닌 거물이 되어버린지

오래. 본작도 판매 성과는 여전히 고공 행진이었고 발매 직후

단행한 북미 투어도 성공적이어서 그 기록을 훗날 라이브

앨범으로 남길 정도였다. 74년엔 스완송이란 자체 레이블을

설립한다. 본작 트랙에 대한 평가가 평단은 오버더힐스~,

팬덤은 오션 쪽으로 갈리는 듯하나 사실 두 곡 다 고른 지지

받는다. 완성도 충만한 트랙들로 전곡을 꽉꽉 채운, 오랜만에

감상한 거장의 수작이랄까... 한 마디로 본작을 정의한다면.



('The Song Remains the Same' from Houses of the Holy, 1973)



('Over the Hills and Far Away' from Houses of the Holy, 1973)



('The Ocean' from Houses of the Holy, 1973)




 (Physical Graffiti)




2년쯤 시간이 흐른 75년 2월 Physical Graffiti란 또다른

명반이 나온다. 무려 더블 앨범으로서 스완송 레이블 설립

직후 의욕으로 충만했던 듯하다. 준수한 완성도를 가진 곡을

두 배로 선물한 것. 일반 대중에게 명곡 Kashmir를 수록한

앨범으로 유명한 바로 그 작품. 흔히 그들식프로그레시브

불리는 대곡이고 아랍풍 음률을 차용한 폴리리듬의 리프가

대단히 유명하며 존스본햄의 탄탄한 백업이 다른 어떤

곡에서보다 더 두드러져 음악사에 길이 남을 걸작 트랙이다.



(백인의 락에 관심 두지 않는 자존심 강한 흑인 랩퍼들마저

샘플링하여 사용한 이야기.. 이젠 다들 아실 거다.)

*캐쉬미어의 폴리리듬에 대해선 아래 링크 동영상의

4분 50초경부터 보면 알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vOm2oZRQIk



점입가경은 본작의 대작이 하나가 아니란 것. 11분짜리 대곡

블루스 In My Time of Dying이나 9분에 약간 못 미치는

프로그레시브 In the Light에 이르면, 초창기 느린 대곡을

실험하던 정신으로 돌아가려는 이들의 초심을 읽을 수 있다.

The Rover, Houses of the Holy, The Wanton Song

등에선 페이지가 얼마나 빼어난 리프를 만드는 장인이었는지

깨닫고 다시 장탄식하게 될 거다. 기타 트랙 14개를 중첩한

오버더빙으로 촘촘하게 리프를 엮어낸 Ten Years Gone,

본조의 베이스 파운딩이 작렬하는 Sick Again.. 쉴 틈이 없네.



개인적으로 존 폴 존스가 가장 이상향의 뮤지션인데 그가 연신

Hohner Clavinet을 그루브하게 때려대는 미칠 듯한 매력의

트랙이 Trampled Under Foot이다. 72년에 크게 히트한

스티비 원더Superstition에서 영향받았다 하며 안 그래도

모타운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여기서 존스부커 T. 존스

빌리 프레스턴 같네. 이들이 선보인 흔치 않은 funk 곡이다.

75년 5월엔 본작의 엄청난 흥행에 힘입어 런던의 얼스코트

아레나에서 전석매진 공연을 5일간 벌여 인기를 입증하였다.



(Hohner Clavinet D6)



('Kashmir' from Physical Graffiti, 1975)



('The Wanton Song' from Physical Graffiti, 1975)

(앞부분에 다른 곡의 리프가 섞여 있다.)



('Trampled Under Foot' from Physical Graffiti, 1975)




 (Presence)




76년 3월에 발매한 Presence 앨범은 그들의 하락세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증거 같기도 하다. 존스-본햄 듀오의

리드미컬한 백킹이 10분 이상 이어지는 인상적 오프닝

Archilles Last Stand가 매력적이며, 오버더빙으로

겹겹이 쌓아올린 페이지의 차랑차랑한 리프가 여전히

독창적이지만, 약간의 자기 복제가 느껴져 예전 만큼의

파괴력이 두드러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세션 셋에 비해 플랜트의 역량이 뭔가 허전하다고

느꼈다면 정확히 들은 거다. 이때 교통사고로 약 1년간

휠체어 신세를 면치 못했고 앨범 녹음도 앉아서 진행했던

것. 이 덕에 전작처럼 진하게 블루지하게 는 진지함도,

5집의 Song Remains~처럼 날카롭게 찌르는 스킬

2프로쯤 부족해 보인다.



Song Remains~ 끝나기 직전에 선보인 찌르는 샤우팅

플랜트가 전성기에 선보인 초고음 중 거의 마지막이라고

보는 것이 보통 통설인 듯하다. 사고를 당했다고는 하나

아직 젊은 나이인데 몸 상태에 무리가 있다기보단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플랜트의 음악 성향이 중저음을 개발하는

쪽으로 변화해가고 있음을 읽을 수 있겠다.



밴드의 공연 투어는 여전히 잘 나가고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내외부의 음악 환경이 변화하고 있었다. 그래도 Nobody's

Fault But Mine 같은 트랙은 여전히 강하고 광채가 난다.

77년 4월의 미시간주 폰티악 실버돔 공연은 7만 6천이 넘는

유료 관객을 기록하여 기네스북에 올랐다. 지속된 성공 속에

악재가 끼기 시작했는데 본햄과 공연 스탭들이 폭행건으로

체포되기도 했고 77년 7월엔 플랜트의 다섯 살 된 아들이

질환으로 유명을 달리 하여 충격을 주기도 했다.



('Achilles Last Stand' from Presence, 1976)



('Nobody's Fault but Mine' from Presence, 1976)




 (The Song Remains the Same)




정규 앨범이 아님에도 76년 10월 현역 시기에 낸 유일한

라이브란 의의 때문에 The Song Remains the Same

레드 제플린을 탐구하는 사람들에게 필청의 음반이다. 녹음은

73년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을 담은 것이기 때문에

정말 전성기의 따끈따끈한 활동상을 거의 유일하게 저장한

앨범이다. 동명의 콘서트 영화도 있으니 플랜트의 전성기가

궁금한 분들은 반드시 참조할 만하다.



사실 라이브 발매 당시인 70년대의 평가는 좋지 않았다. 특히

3년쯤 전에 발매된 딥 퍼플의 라이브 Made in Japan이 워낙

출중한 완성도로 명성이 자자했던지라 여러 모로 비교질을

당한 셈. 두 밴드의 합주 스타일에도 차이가 있었던 것이, 각자

개인 연습을 충실히 해서 서로 완벽하게 합을 맞추는 전략으로

임한 딥 퍼플에 비해 - 존 로드리치 블랙모어가 클래식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전통적인 어법으로 음악에 접근한 것 -,

개개인의 자유도를 중시하며 페이지의 리딩에 충실하게 따른

레드 제플린은 라이브에서 미스 노트가 잦다거나 레코딩과

너무 동떨어진 애드립으로 노는 경우가 꽤나 발견된 것이다.



이 라이브에서 백미는 역시 Dazed and Confused듯.

6분 30초 곡을 무려 27분 길이로 만들어 놓았다. 동명의

영화 사운드트랙이란 형식인지라 약간 생뚱맞은 연기 씬도

들어가 있어 나름 재미를 느낄 수도. 한창 전성기 젊고 고운

멤버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가치도 있다. (또한 보고 싶은

본조의 생전 모습 역시...) 스테어웨이 투헤븐의 가장 유명한

라이브 버젼이 수록되어 있단 이유로도 들어볼 만하겠다.

마지막 사이키델릭이라는 Whole Lotta Love도 스튜디오

버젼과 상당히 다른 이펙트가 있어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다.



(왜 들어갔는지 이해가 잘 안 되는 콘서트 영화의 초반 스토리 씬)





(앞부분Heartbreaker. 4분께부턴 Whole Lotta Love.)



(이건 동명의 트랙을 노년의 라이브에서 연주한 비디오)

(노년에 키를 낮춰 부르는지라 찌르는 샤우팅은 자제하신다는..)




 (In Through the Out Door)




78년 11월경 이들이 아바의 작업으로 유명한 스톡홀름의

폴라 스튜디오에 다시 모여 다음 앨범을 녹음하였고 이는

이듬해 8월에 발매된다. 레드 제플린 최후반 정규 앨범

In Through the Out Door. 디스코, 펑크, 뉴웨이브

등 대외 환경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감각을 받아들이려

노력했으나 역대 앨범 중 결과가 가장 좋지 못했다. 대체로

페이지보다 존스가 전면적으로 부각되어 작업을 진행했고

신디사이저 사용이 확대되며 블루스 일변도를 줄였지만

이채로울 뿐 생경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



멤버들 개개인이 겪은 인생의 부침과도 깊은 연관이 있었다.

특히 플랜트는 교통사고 당시 자신보다 아내가 더 큰 부상을

입었고 이후 어린 아들의 죽음을 겪으며 심리적으로 상당히

큰 변화를 겪은 것 같다. 그래도 그루브 넘치는 Fool in the

Rain아버지 플랜트로서의 따뜻한 목소리를 담은 발라드

All My Love는 체 디스코그래피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걸작이다. (이 곡은 특히 절대 흔치 않은 존스신스 솔로

파트가 압권이다.) 존스의 신디사이저가 시종일관 압도하는

Carouselambra 역시 취향과 기호에 따라...



('Fool in the Rain' from In Through the Out Door, 1979)



('All My Love' from In Through the Out Door, 1979)




 (Coda)




한편 존 본햄에겐 알콜이라는 오래 된 나쁜 친구가 있었다.

80년 9월 24일 공연 리허설 전 아침식사로 햄롤과 보드카를

들이킨 그는 오후 내내 술을 달고 있었고 그날 밤 페이지의

집에서 잠들었다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사인은 구토에

의한 질식사. 알콜 의존증이 의심되는 정황이었다.



70년대의 또 다른 전설 드러머들인 코지 파웰이나 카마인

어피스가 대체 멤버로 리쿠르트된다는 소문이 난무했으나,

80년 12월 4일 결국 나머지 셋은 밴드의 해체를 발표한다.

이로서 네 명의 전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다.



Coda는 해체 후 몇몇 라이브와 미발표 트랙을 긁어모아

82년 11월에 발표한 마지막 앨범이다. 락 역사상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준 전설적 드러머 본조를 기억하며 넣은

Bonzo's Montreux의 76년 라이브 아카이브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사모곡이라고 하겠다.



('Bonzo's Montreux' from Coda, 1980)




본햄과 밴드가 사라졌지만 나머지 셋, 특히 플랜트페이지

중심의 재결성 소식은 이후 수십 년간 팬덤에 희망 고문을

선사한 오래 된 떡밥이었다. 존스는 존스대로 두 사람에게

약간은 소외된 관계를 서운해 하기도 그리워 하기도 했고.

해체 후 그들이 다시 뭉친 건 85, 88, 94, 95, 07년으로

대략 다섯 차례 정도. 85년엔 라이브 에이드로 해체 후 처음

셋이 뭉쳤는데 컨디션 안 좋고 튜닝 안 맞는 기술적 사유로

인해 이래저래 욕먹은 결합이었다. 88년 회합도 마찬가지.



(대체로 상했던 라이브. 드럼 중 한 분은 무려 필 콜린스..)




94년엔 당시 유행하던 언플러그드 열풍을 좇아 페이지

플랜트 둘만 뭉쳐 No Quarter: Jimmy Page and Robert

Plant Unledded를 발표하는데 반응이나 평가도 좋았다...

존스가 소외되었단 점만 빼고. Gallows Pole은 중년이 된

플랜트가 더 원숙한 색채를 보여줬다고 인기도 있었으니

관심있으면 들어보시길. (Page and Plant는 98년에 아예

신곡으로 채워 신보를 냈으나 반응이 예전 같진 않았다고...)



('Gallows Pole' from No Quarter, 1994)




철저하게 소외되신 존스. 95년 로큰롤 명예의전당 헌액식

두 사람을 옆에 두고 '그래도 전화번호 안 까먹었다니 고맙네'

드립을 쳤그대로 전파를 타면서 소위 JPJ왕따설을 확정.ㅜ

사실 존스는 70년대에도 두 사람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도에

빈정 상해서 두어 차례 가출, 아니 탈퇴했다 돌아갔을 정도.

모두를 포용하지 못하고 소외되는 부분이 생기는 현상

결국 페이지리딩이나 플랜트의 엘리트주의가 애초부터

치명적 한계를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방증일 것.



(존스의 씁쓸한 멘트는 6분 20초 경부터..)



(연주한 곡은 IV의 When the Levee Breaks.. 드럼엔 제이슨 본햄!)




97년엔 레드 제플린 디스코그래피에서 두번째로 중요한

라이브 BBC Sessions가 발매된다. 69년과 71년, 한창

시절에 거침없이 불러제낀 내용의 아카이브인지라 해체

후 발매 앨범 중 첫손에 꼽을 만한 컬렉터블일 터. 이때만

해도 초창기 블루스 잼에도 주력할 때라 특히 30년대 델타

블루스의 기초를 세운 거장 로버트 존슨의 곡을 재해석한

Travelling Riverside Blues는 팬덤에서 꼽는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할 트랙임을 아셔야 한다. 이 밖에도 귀담아

들어볼 만한 고전이 많아 블루스에 탐닉하는 팬층은 훨씬

더 높게 평가하는 숨은 진주 앨범이라 하겠다.



('Travelling Riverside Blues' from BBC Sessions, 1997)




03년엔 72년의 LA실황을 담은 또 하나의 전성기 라이브 앨범

How the West Was Won이 발매되어 팬덤의 지갑을 털...

아니 지지를 받았고, 07년엔 24개 대표곡을 모은 컴필레이션

Mothership이 발매되어 최근 나온 앨범 중 가장 각광을 받은

컬렉션이 되었다. 마더쉽엔 본 포스팅이 추천하는 왠만한 걸작

트랙들이 거의 실려 있으니 입문용으로 꼭 하나의 앨범을

골라야 한다면 이 앨범부터 시작하는 것이 무난하다. LA실황

앨범은 페이지 스스로 추천사를 썼듯이 그들 활동 최절정기를

온전히 담은 사운드보드 레코딩이란 의미가 있을 것이다.



(How the West Was Won)



 (Mothership)




팬덤에서 경천동지할 일이 07년 12월에 일어나는데 노년에

접어든 세 멤버의 공연이 성사된 것이다. 런던 O2 아레나

공연으로 팬덤 사이에서 통칭되는 이벤트를 통해 어쩌면

그들이 죽기 전 마지막일지 모를 회합으로 노병들의 화려한

말년을 장식할 기념비적 아카이브가 남겨진 것이다. 95년

명예의전당 헌액 공연처럼 이번에도 제이슨 본햄이 스틱을

잡고 아버지의 혼을 담아 열정적으로 합을 맞추었다. (아들

제이슨도 이젠 알아주는 백전노장 드러머이다.) 본 라이브는

12년에 Celebration Day라는 앨범으로 발매되었다.



 (Celebration Day)



(명기와 명연주자. Korg Oasys를 연주하시는 존스 옹..)


(할로우바디 Les Paul의 둔중한 톤이인상적이다.)




솔로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역시 프론트맨이었던

플랜트. 해체 전부터 공격적인 튠보다 락앤롤 이전 원형적인

음악 형태에 관심을 보이던 그는 80년대 초반 솔로 음반에선

그가 청소년기에 동경하던 초기 락앤롤 가수들의 편곡에 꽤

가까운 중저음 팝락으로 각광을 받았다. Honeydrippers

프로젝트성 밴드에서 그는 지미 페이지제프 벡이란 양대

거성을 세션으로 초청하기도. 50년대 필 필립스의 히트곡

Sea of Love를 농담처럼 녹음하기도 했는데.. 왠걸 이 곡이

덜컥 싱글 차트 대박을 쳐버린다. 84~85년경.



사실 플랜트는 진지하게 녹음할 생각은 없었고 - 그 자신도

50년대 R&B를 좋아했지만 - 프로젝트를 주도한 애틀랜틱

레코드 사장 아흐메트 에르테군이 좋아하는 노래라고 약간은

선심성으로 녹음해줬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ㅎ 참고로

에르테군은 여러 뮤지션과 두루 친분이 있어서 07년 재결합

공연이 사실은 이 분 추모 이벤트 형식으로 뭉친 것이었다.



노년의 플랜트는 컨트리 블루스 계열의 루츠 장르로 돌아왔다.

한때 블루그래스 계열 음악을 하는 앨리슨 크라우스와 듀오로

공연을 자주 하셨다고.



('Sea of Love' by the Honeydrippers, 1984)




밴드 뮤지션으로서의 로버트 플랜트는 리더와 멤버들의

백킹에 완벽하게 조응하여 팔세토 테크닉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능력을 갖춘 보컬리스트이면서 마지막 히피로서

사이키델릭과 판타지를 결합하여 섹드립을 예술로 승화한

가사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줄 안 작사가였다.



개별 멤버들이 자신이 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책임지는 같은 밴드의 송라이팅 구조와 비교하여,

레드 제플린지미 페이지의 음악적 리딩을 철저하게

존중하는 구조였으므로 플랜트 같은 멤버들의 창작적

기여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하지만 프로듀싱 만렙의 기타리스트 페이지가 싸고 돌며

플랜트 중심으로 밴드를 운영한 것을 보면 단순히 몇 개의

노트를 창작했는가 수준을 초월하여 플랜트가 가진 유쾌한

상상력의 세계가 리더와 멤버들 전체에 상생하는 시너지를

제공했다고 능히 상상할 수 있겠다. 대체로 레논-맥카트니,

재거-리차드에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음악사상 완벽한 듀오

궁합을 자랑한 페이지-플랜트 조합이라고 하겠으나...



랜트페이지 사이도 사실 그리 원만하지는 못했다.

플랜트는 본래 유쾌하고 유머에 능하면서 낯가리지 않는

개방적 성격이고 약간 잘난 척하는 맛도 있는 인간성의

소유자라고 전한다. 잘난 맛에 살기는 페이지 자신도

만만치 않다고. (실제로 음악사에서 잘난 분들이시고.)



해체 전에야 서로 죽이 잘 맞았는데 중년과 노년 시절을

거치며 뭐가 그렇게 안 맞는지, 재결성을 막는 원인이라

말이 많았다. 전술하였듯이 이렇게 두 사람 중심으로만

흘러가는 밴드 구조가 다른 두 사람을 약간은 소외하는

방향으로 흐른 것 같아, 이런 점 역시 팬덤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지미 페이지는 표절 등

저작권 시비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고

여기에 로버트 플랜트 자신과 레드 제플린 전체꺼정

밀접하게 얽혀 있음이 사실이다. 비록 발빠른 대응으로

극단적 법정 소송은 대부분 회피하였다지만 창작의

정신이란 것이 소송 막았다고 다 끝나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70년대라는 음악사의 변환기를 거치면서 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음악 연출의 이상향을 종합적으로

전개하여 제시한 밴드 음악의 교과서인 동시에, 3억 장에

달하는 전 세계 판매고를 세운 음악 산업계 베스트 스테디

셀러로서, 레드 제플린의 가치를 결코 폄하할 수 없을 것이고

그 안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낸 로버트 플랜트는 영원히

위대한 보컬리스트로 남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바이다.




(Korg Oasys)



(Bonham)






개인적으로 본 블로거가 최애하는 그들의 작품은 바로

5집에 등장한 애절한 발라드 The Rain Song이다. 이

양반들이 레몬송에서 섹드립 날리던 그자들 맞나 싶을

정도로 일순간 돌변하여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오후의

햇살처럼 아련한 아른거림으로 노래하는 걸 듣고 있자면,

또 존경하는 뮤지션 존 폴 존스께서 그토록 아름다운

멜로트론 음률을 빚어내는 것을 듣자면, 표절 때문에

열받은 마음을 눈 녹이듯이 스르르 녹여내는 것만 같다.



끝으로 레드 제플린 디스코그래피 전체 중 슬픈 아름다움을

노래한 비장미로서의 절정을 갈구한 명곡, 레인송을 강력

추천하며 길었던 포스팅을 마친다. 본조의 육중한 베이스

파운딩 오늘도 성가마냥 천국에 울려 퍼져 저승길 가는

망자들의 가슴을 안온하게 감싸 두드리고 있으리라.



('The Rain Song' from Houses of the Holy, 1973)

- studio album version


- lyrics




*키를 한껏 높인 79년 라이브. 존스 옹의 악기는 Yamaha G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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