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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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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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1.10
    데니스 드영 Dennis DeYoung
  2. 2019.02.10
    스티브 페리 Steve Perry 1




대중 음악사의 흐름을 바꿀 만큼 거창한 의의를 갖진 않지만

퍼포머 및 프로듀서로서 남긴 독창적 캐릭터를 되새겨볼 때

분명히 눈여겨볼 만한 한 획을 그었다고 인정하기 충분한

아티스트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음악가가 이 분 아닌가 한다. 미국의 팝락

밴드 스틱스 Styx의 70~80년대 전성기를 이끌고 청아한

고음 창법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보컬리스트, 키보디스트

겸 송라이터, 데니스 드영 Dennis DeYoung이시다.









*Caught in the Act 버젼.

 - 인트로는 State Street Sadie란 곡.



*Caught in the Act 버젼.



*Caught in the Act 버젼.




*Caught in the Act의 영상물 버젼. 07년 DVD로 출시.




스틱스의 결성은 파노조 형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카고 지역 토박이로 각각 베이스와 드럼을 연마하던

파노조존 파노조 쌍둥이가, 한 살 많은 지나가던 동네

형(...) 47년생 데니스 드영과 트리오로 결합한 밴드...

이것이 바로 오늘날 널리 알려진 스틱스의 원형이란다.



60년대 내내 동네 파티란 파티는 죄다 쓸고 다녔다고.

축하 연주 백밴드로서. 69년에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존 설루스키가 가담해 초창기 포크 비슷한 사운드에

기여했고, 이듬해엔 하드락 기타리스트 제임스

들어와 기본 5인조 구성이 갖춰진다.



이 시기 드영은 창립 멤버이면서 리더이고 리드 보컬과

작편곡 등 모든 면에서 밴드를 이끄는 입장. 스틱스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기 전엔, 교육대학으로 유명한

시카고 주립대 졸업해서 초등학교 음악 교사로 일하랴

밴드 겸업하며 레이블과 계약하랴 눈코뜰새 없으셨다.






72년에 밴드 이름을 스틱스로 개칭하고 데뷔 앨범을 내지만

그닥 반응은 없었고 여전히 시카고 로컬 밴드에 불과하였다.

초기엔 프로그레시브의 영향을 받아 직선적인 락 컨셉을

융합하려 했으나 4집까지도 주류 진입엔 실패한 때였다.




 (Styx II)



다만 73년 2집 Styx II 파워 발라드 곡 Lady가 시카고

지역 방송국 전파를 슬슬 타기 시작하여 앨범 발매 2년이나

지난 75년 초엽에 핫100 차트 탑텐에 오르게 되니 이 시기

이들의 거의 유일한 성과였다.



('Lady' from Styx II, 1973)



*95년 컴필레이션 앨범 수록 재녹음 버젼

https://www.youtube.com/watch?v=eU_MoPHeG2A




 (Equinox)



스틱스의 메인스트림 진입은 75년 5집 Equinox부터 기점을

잡아야 한다. 핫100 차트 탑40까지 오른 Lorelei가 소폭의

히트를 기록했고 AOR 계열 앤썸인 Suite Madame Blue

전국적인 매니아 팬덤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전미 단위의

투어가 갑자기 잡히기 시작하자 가족에게로 돌아오려고 탈퇴를

희망한 설루스키마지막으로 참여한 앨범이기도.



('Lorelei' from Equinox, 1975)

https://www.youtube.com/watch?v=Oo8apevCeAY



('Suite Madame Blue' from Equinox, 1975)

*Caught in the Act 버젼.



당장 투어 뛰기 위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드영의 앞에 여섯 살

아래 앳되고 재기발랄한 기타리스트가 등장하니, 스틱스 변혁의

큰 엔진으로 급성장할 토미 쇼였다. 노래도 잘 하고 연주력에

송라이팅 실력도 겸비한 재주꾼이다. (이때까진 참 좋았는데..)




 (Crystal Ball)



76년 6집 Crystal Ball은 새 멤버를 소개하기 위한 드영

배려가 돋보인 앨범. 의 달란트를 썩히지 않고 작곡과 리드

보컬에 적극적으로 참여시켰고 핫100 탑40를 기록한

작곡의 Mademoiselle이나 타이틀 트랙이 소폭의 히트를

기록할 수 있었다. 두 곡 모두 의 리드 보컬..



('Mademoiselle' from Crystal Ball, 1976)

https://www.youtube.com/watch?v=G3WlNZb0Jv4



('Crystal Ball' from eponymous album, 1976)

https://www.youtube.com/watch?v=j5M1x_SAGsw




 (The Grand Illusion)



진정한 스틱스의 전성기는 77년 7월 7일에 발매한 7집 The

Grand Illusion과 함께 달아올랐다. 미국 시장에서 현재까지

트리플 플래티넘을 찍은 올타임 히트 앨범. 드영이 주도한

Come Sail Away가 리드한 Fooling Yourself (The

Angry Young Man), 두 히트곡을 배출한 수작이다.



('Come Sail Away' from The Grand Illusion, 1977)



('Fooling Yourself (The Angry Young Man)' from

The Grand Illusion, 1977)

*Caught in the Act 버젼.



드영의 리드로 일구는 키보드락의 전체적인 모양새가 상당히

여물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앨범이었다. 의 안정적인

트윈 기타 체제도 점점 자리를 잡아서 스틱스를 규정하는 또

하나의 캐릭터로 슬슬 발현하고 있었다. Come Sail Away

핫100 탑텐에 들고 Fooling Yourself가 탑40로 히트했다.



('The Grand Illusion' from eponymous album,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aIuCdQtNBgg



('Miss America' from The Grand Illusion,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mzrgbsLDiK8

*James Young의 작곡과 리드 보컬.




 (Pieces of Eight)



78년 8집 Pieces of Eight은 전작의 성공을 그대로 계승하여

연속 히트를 기록하면서도 의 창작 역량이 한층 더 전면에서

부각되는 계기를 마련한 앨범. (상대적으로 드영의 기세는 다소

물러난 듯이 보여 이때부터 미세한 균열이 포착되기도 했다.)



스틱스 시대를 대표하며 그의 음악 커리어를 상징하는

시그니처 트랙 Blue Collar Man (Long Nights)... 바로

본작에 수록되어 핫100 20위권 직전까지 히트를 쳤다.

Renegade, Sing for the Day가 주도하고 노래한

후속곡까지 연이어 반응을 얻어 거의 온전하게 토미 쇼

위주의 앨범이라 할 만했다.



('Blue Collar Man (Long Nights)' from Pieces of Eight, 1978)

*studio album version.



Renegade 핫100 탑20에 진입하는 행운까지 겹쳤다.

거친 상남자들의 스토리와 사운드를 갈구하는 듯한

창작 성향은 확실히 드영과 뚜렷한 차별점을 제공한 데다

트윈 기타의 또 다른 축인 과의 궁합도 묘하게 잘 맞았다.



('Renegade' from Pieces of Eight, 1978)

*기타 솔로는 James "JY" Young.



('Sing for the Day' from Pieces of Eight,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aglWbPkl-QM




 (Cornerstone)



프로그포크의 중첩적인 영향 하에서 자신들만의 아레나락

전략을 도모하던 스틱스. 79년 9집 Cornerstone은 70년대

밴드의 시대 낭만을 간직한 이들 경력의 정점이자 활화산의

끝물 같은 것이었다.



 (Babe, single)



('Babe' from Cornerstone, 1979)

*official video archive. 79~80년경으로 추정.



스틱스의 유일한 핫100 차트 탑 히트의 싱글 Babe가 수록된

바로 그 앨범이다. 전작의 트리플에 이어 더블 플래티넘으로

상업적인 성과를 이어갔고 탑40에 오른 Why Me를 비롯해

Borrowed Time, Lights 등 팬덤에게 선물같은 트랙들이

줄을 이었다.



('Borrowed Time' from Cornerstone, 1979)

https://www.youtube.com/watch?v=J4QqmeMaqBw



('Lights' from Cornerstone, 1979)

https://www.youtube.com/watch?v=YraWuJxPcyU



전작의 에 뒤질세라 자신의 소프트한 성향을 더 가열차게

밀어붙인 드영의 창작성이 돋보였으나 그 와중에도 Boat

on the River 같은 히트 트랙에서 의 재능은 빛이 났다.



('Boat on the River' from Cornerstone, 1979)

*유럽과 일본에서 인기가 좋았다. 한국에서도..

 - 원래 밴드 초창기에 드영은 아코디언을 연주했었다.



본격 긴장 국면이 펼쳐진다. First Time의 싱글 발매 여부를

두고 드영가 대놓고 대립했고 창립 멤버인 드영이 무려

해고까지 당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일대 참사가 벌어지는 등,

커리어의 정점에서 복잡한 내부 요인이 폭발하고 있었다.



('First Time' from Cornerstone, 1979)

*너무 드영스러운 말랑말랑한 발라드에 쇼가 질려 버렸다고...ㅠ



('Why Me' from Cornerstone, 1979)

*First Time이 반대에 봉착해 대신 타협한 트랙이 이 곡.



어쨌든 세간의 반응은 좋았다. 앨범이 빌보드 200 차트

2위까지 올랐고 최초로 그래미 어워드 후보로도 지명이

되었다. 갤럽 여론 조사로 80년에 가장 인기있는 밴드로도

뽑히고 피플스 초이스 어워드도 받았다...만.




 (Paradise Theatre)



81년 10집 Paradise Theatre스틱스가 유일하게 빌보드

200 차트 탑을 찍어본 앨범. 핫100 차트 탑텐 히트 싱글도

이나 나왔으니 The Best of Times Too Much Time

on My Hands. 각각 드영 작품이다. 둘 사이에

여전히 신경전이 지속 중이었다. 으이그.



('The Best of Times' from Paradise Theatre, 1981)

*Dennis DeYoung on leading vocals.



스틱스 최초의 컨셉트 앨범으로서 하나의 스토리텔링 구조를

가지고 가사가 연결되는 방식이었다. 이런 구상은 아이디어가

나름 풍부했던 드영이 제안한 것. 70년대 프로그에서 벗어나

새로운 80년대를 준비한다는 마음가짐이 다양한 시도를

가능케 한 요인인 듯하다.



('Too Much Time on My Hands' from Paradise Theatre, 1981)

*Tommy Shaw on leading vocals.



Rockin' the Paradise는 80년대 투어마다 오프닝을 장식한

트랙으로 팬덤이 좋아하고 락 트랙 차트에서 반응이 뜨거웠다.

Nothing Ever Goes as Planned이 주도한 Snowblind

등의 반응도 괜찮았다.



('Rockin' the Paradise' from Paradise Theatre, 1981)

*Caught in the Act 버젼.



('Nothing Ever Goes as Planned' from Paradise Theatre,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OOR5abTAiMI



('Snowblind' from Paradise Theatre,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piUt0PdC-3o




 (Kilroy Was Here)



83년 11집 Kilroy Was Here에 이르러 드영은 아예 한술 더

락 오페라 컨셉트 앨범을 시도한다. 음악의 절정기가 바로

지금이라고 판단한 때문인지 하고 싶은 거 다 하시고 계셨다.



('Pinball Wizard' from The Who's Tommy, 1969)

https://www.youtube.com/watch?v=joxyFDmh_LY



('Superstar' from Jesus Christ Superstar OST, 1973)

https://www.youtube.com/watch?v=LBB26xe01XM



더 후의 69년작 Tommy나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70년작

Jesus Christ Superstar를 동종의 기원 작품으로 꼽는다.

다소 한물 간 장르인 줄 알았는데 MTV 시대에 락 오페라?

상당히 이례적이란 반응이었고 스토리도 그닥 재미는 없는

듯했으나 드영은 뚝심있게 밀어붙였다.



락 음악이 종교적 죄악으로 터부시되는 근미래의 세상에

킬로이란 뮤지션이 억울하게 옥살이를 살고 간수는 일제

로봇이며 후배 뮤지션이 그의 해방을 위해 싸운다...는 뭐

그런 스토리란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시고..ㅠ



('Mr. Roboto' from Kilroy Was Here, 1983)



앨범이 빌보드 200 차트 2위까지 오르고 핫100 차트 탑텐

싱글이 둘이나 나왔다. Mr. RobotoDon't Let It End..

Mr. Roboto는 가상의 일제 로봇 얘기인데 일본어 가사도

등장하고 보코더 이펙트도 이채롭다. 뭐, 당시엔 참신한

사운드였으니까.. 왜색이 짙어 한때 한국선 금지곡...



('Don't Let It End' from Kilroy Was Here, 1983)



본작의 진정한 백미는 파워 발라드 Don't Let It End인데

반드시 아래에서 설명할 라이브 앨범 버젼으로 들어보실

것을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이외에 제임스 영 색깔이

확 드러나는 Heavy Metal Poisoning도 들을 만하다.



('Heavy Metal Poisoning' from Kilroy Was Here, 1983)



('High Time' from Kilroy Was Here,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6vGE-FM-BDg



결국 토미 쇼의 임계점을 넘어선 모양이다. 본작 프로모션

목적의 전미 투어가 끝나자 마자 밴드 탈퇴를 단행하시고

결국 스틱스는 해체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ㅠㅠ




 (Caught in the Act)



해체가 결정되고 나서 스틱스 최전성기 아카이브를 담은

유일한 라이브 앨범 Caught in the Act가 발매된다. 가장

실력이 팔팔한 젊은 시절의 유일한 아카이브이기 때문에

팬덤이 매우 중시하는 앨범이다. 음반과 동영상 두 가지

경로로 출시되었다. 84년.



본 블로거가 스틱스를 최초로 접신한 앨범도 실은 이 라이브

앨범부터였다. 사운드 퀄리티야 90년대 이후 재결성 녹음이

더 좋겠지만 전성기 실력이란 면에선 비교를 불허하는

가치를 지닌다.



본작엔 단 한 곡의 스튜디오 버젼 신곡이 있다. 핫100 차트

탑40 히트를 기록한 Music Time. 아직 저작권 개념이 없던

90년대에 모 대학에서 무단으로 번안해 응원가로 쓰기도

했던 곡이니 의외로 익숙할지도...



('Music Time' from Caught in the Act, 1984)




 (Desert Moon)



찢어지고 나서 멤버들은 각자도생해야 했고 드영는 각각

솔로 앨범을 낸다. 이 대결 구도에선 드영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었다. 84년 솔로 데뷔 앨범 Desert Moon에서 동명의 타이틀

트랙핫100 차트 탑텐에 오르는 성과를 냈다. 80년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꽤 들을 만한 노래..



('Desert Moon' from eponymous album, 1984)




 (Damn Yankees)



의 솔로 커리어 정점은 80년대말 퍼그룹 이합집산의

유행 속에 찾아왔다. 테드 뉴젠트 및 잭 블레이즈 등과 함께

댐 양키스를 창단하여 데뷔 앨범으로 무려 더블 플래티넘

기록하는 성공을 거둔 것. 대표 싱글인 High Enough

핫100 차트 탑텐 기록하기도 했다.



('High Enough' by Damn Yankees, 1990)




 (Edge of the Century)



90년에 댐 양키스 활동으로 일본까지 와서 투어 도는 등

돈 버느라 바쁘던 상황. 만 빼고 전성기 스틱스 멤버가 다시

재결성에 이른다. 같은 해 12집 Edge of the Century

발매하고 대표 싱글로 Show Me the Way를 발표하는데

이 곡이 핫100 차트 탑텐에 오르는 성과를 거둔다.



('Show Me the Way' from Edge of the Century, 1990)

*걸프전 시기인지라 운때가 맞아 히트했다는 말도 들었다.

**Tommy Shaw의 빈 자리를 메꾼 연주자는 Glen Burtnik.



그러나 전반적으로 드영은 시대 감각에 둔한 상황이었다. 세상의

음악은 이미 그런지 락으로 바뀌어가고 있거늘.. 결국 15년 넘게

인연을 맺었던 레이블로부터 방출 당하고 스틱스는 또 다시

쓸쓸하게 해산하였다.



('Love at First Sight' from Edge of the Century, 1990)

https://www.youtube.com/watch?v=xmmymL5zsFU




 (Greatest Hits)



95년에 컴필레이션 Styx Greatest Hits를 발매하기 위해

왕년의 멤버들이 다시 뭉쳤다. 이번엔 토미 쇼를 포함해서.

존 파노조가 빠졌다. 알콜 중독 습관으로 간에 이상이 왔고

그는 결국 이듬해 사망한다.



*컴필레이션 홍보를 위해 이때 미국 아침마당 같은 TV쇼에

드영, , 셋만 출연해 주요 히트곡의 간단한 축약 버젼을

들려주는데 이때 호흡이 기가 막혀 좋아한 팬이 많았다.





 (Return to Paradise)



96년에 오랜만에 뭉쳐 출발한 전미 투어는 성공적이었다.

이 실황을 모아 두번째 라이브 앨범 Return to Paradise

내는데 골드까지 인증받는 등 나름대로 깜짝 성공이라 할

만했다. 97년.



2년 후엔 신보 앨범 좀 내보자고 뭉쳐 보았으나 드영, ,

세 사람의 음악적 견해 차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음을 확인할 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드영의 안구

건강 문제가 겹쳐 자연스럽게 또 다시 방출 수순을 탔고

드영을 대체할 로렌스 고완을 섭외하여 나머지 멤버들만

투어를 감행하는 단계까지 가버린다.



이때 틀어진 관계는 아직까지 복원이 안 된 상태.

두 사람이 여전히 올드팬을 위한 투어 중심으로 스틱스

이끌고 있으며 드영의 빈 자리는 그럭저럭 고완이 메꾸고

있다. 드영은 상표권 소송에서 패소하여 스틱스란 이름을

대놓고는 못 쓰고 소규모 라이브 및 이벤트 중심으로 예전

팬덤을 만나고 있다고. 아이고...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75~84년 10년간의 전성기를

뒤로 한 채 스틱스의 스토리는 아마도 여기서 끝을 맺을 것

같다. 현재는 + 중심의 스틱스드영의 솔로 이벤트

양쪽으로 갈라져 올드팬 중심의 무대에들 서고 계시다고.













*Blue Collar Man. '15년.



*The Best of Times. '14년.



*Too Much Time on My Hands. '16년경 추정.



*Babe. '04년경.



*Come Sail Away. with Lawrence Gowan on leading vocals.






데니스 드영스틱스의 오랜 팬으로서 영원히 둘로 갈라진

현재의 모습은 여러 모로 안타깝다. 예전 포스팅의 다른 액트

사례에서도 종종 다루었듯이 이런 문제는 어느 한쪽 편의

손을 들어주기 애매한 경우가 많아 논평하기 쉽진 않다.



드영은 과연 훌륭한 리더였는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부터

해야 하지 않나 싶다. 객관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뮤지션으로서, 락 음악사에 한 획을 긋는 10년의 전성기를

일군 제1의 원동력을 그에게서 찾아야 함은 지당하겠지만,

80년대 초중반 후반기 활동의 모습은 꽤 의아한 면이 있다.



그의 가장 큰 문제는 음악사의 시대 흐름을 읽어내는 눈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자신의 창작 성향이 70년대

밴드 시대의 낭만 끝물을 움켜잡고 있는 면이 강하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80년대엔 이미 한물 간 것으로 평가받던

오페라 컨셉트나 10대 어린이에게나 통할 꿈과 희망 타령의

스토리텔링이, 상대적으로 세련된 자신 혹은 멤버들의 작곡

및 연주 능력에 심대하게 못 미치는 균열을 보인다는 것이다.



90년대 재결성 시점에 음악의 대세인 그런지 락의 유행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사례를 통해, 드영이 음악사를 읽는 감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또 한 번 입증이 된다. 70년대에 초등

교사 하던 시절의 감각으로 영원히 간다고 하면 오산인데...



대중 음악이란 결국 대중을 향한 메세지의 싸움이다. 바로

앞 포스팅의 U2 만큼은 아닐지언정 최소한 시대 정신이나

대중의 기호 흐름을 따라갈 각오는 되어야 도태되지 않는

것이다. 청소년 시절엔 쉽고 감동적인 그의 가사에 격하게

공감하기도 했지만 사회인이 된 이후 잘 듣지 않게 된 것이

곧 '세상은 이렇게 천연색의 낭만으로만 가득 차 있지 않아'

하는 점을 청자 스스로가 깨닫고 각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유치하고 조악한 경향은 당장 같은 진영의 멤버인

토미 쇼조차도 설득하는데 실패한 것 아닌가. 나름대로

반골 및 아웃사이더 경향이 강하고 개성이 뚜렷한

제임스 영을 포용하지 못하고 솔로 프로젝트로나 추진할

소재를 지나치게 강요한 책임은 결국 드영에게 있다.



역시 노래 잘 하는 랜디 로즈 같은 이미지로 더 성장할

수도 있었던 뮤지션인데 힘들고 어려웠던 청년기에 자신을

발탁해준 드영이나 스틱스 조금 더 이해하고 다가서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80년대의 헤어 메탈 시대가 약간 그런 성향이 강하긴 했지만

청바지에 가죽 재킷을 휘날리며 허세와 야성을 좇는 상남자의

삶은 결코 오래 갈 수가 없다. 환갑을 넘긴 나이까지도

그렇게 살고 계신지는 알 길이 없으나 길지도 않은 인생에

젊은 전성기 기억을 공유하는 인연이 소중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고 인간적으로 잘 좀 풀었으면 한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 드영이 눈 때문에 아파서 투어 연기하면

안 되겠냐고 솔직히 나왔을 때 단칼에 거절한 싸가지 없음은

전적으로 의 잘못이 분명하다. 힘들고 배고팠을 때 서로

보듬어주던 기억은 싹 달아나 버린 거냐. 지들 가사는 꿈과

희망 식으로 쓰면서 왜 실천들은 못하고 사시는지 원...



어쨌든 포스팅의 주인공이신 데니스 드영은 미국 시장에서

2천만에 달하는 판매고를 올리시는 등 음악사에 한 획을

긋는 실적을 올린 아티스트임은 분명하고 음악적 능력에

관해선 아래와 같은 매체의 평가로도 입증할 수 있다.



훌륭한 키보디스트로서, 그의 음악을 카피하며 아마추어

밴드메이트 생활을 한 본 블로거를 포함해 수많은 후진들

지대한 영향을 끼치신 바, 일흔이 넘은 지금도 전성기에

버금가는 음역(!)을 유지하며 팔팔하게 현역으로 뛰고

계신다고 한다. 노익장에 경의를 표한다.




(Digital Dream Door's 100 Greatest Rock Vocalists)

https://digitaldreamdoor.com/pages/best_vocalists.html



(Digital Dream Door's 100 Greatest Rock Keyboardists)

https://digitaldreamdoor.com/pages/best_keyboard.html



*Dennis DeYoung gear:

https://equipboard.com/pros/dennis-deyoung



*critique on Dennis DeYoung soloing:

https://www.keyboardmag.com/lessons/the-art-of-synth-soloing-dennis-deyoung-of-styx






본 블로거가 좋아하는 데니스 드영스틱스의 노래는 다양한데

그 중 Don't Let It End를 최우선으로 꼽고 싶다. 특히 84년

Caught in the Act 라이브는 인생 앨범 중 하나로 밴드 음악의

편성을 어떻게 하면 찰지게 구성할 수 있는가 하는 하나의 모범

답안으로 받아들여왔다. 들국화 등 80년대 기억을 공유하는

한국의 음악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들었다.



Don't Let It End를 처음 들은 앨범이 Caught in the Act라서

이 버젼을 가장 좋아한다. 거의 동기나 악절 단위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외울 만큼. 70년대 밴드의 시대 끝자락의 낭만적 작법과

80년대스런 감성 같은 것이 묘하게 어우러진, 떠나간 연인을 향한

애절함이 느껴지는 파워 발라드이다. 추천하며 포스팅을 마친다.



('Don't Let It End' from Caught in the Act, 1984)




*Caught in the Act의 영상물 버젼. 07년 DVD로 출시.

https://www.youtube.com/watch?v=UOqeuupZndg



*studio album version.

https://www.youtube.com/watch?v=oKUOy-Tam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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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음악은 할 얘기 많으니까...

몇 분의 보컬리스트들 이야기를 개시한 김에 음악

카테고리를 부활시키려 하고, 이제 이 분을 얘기하겠다.



한국과 일본 등지 락 씬에 80년대 이후로 큰 영향을

미쳤고 음악의 성향이 메탈이 아님에도 이상하게

메탈 키드들의 반향을 불러 일으킨 분.



노래를 잘 하는 흉성의 표본이 뭐냐 하는 질문에

묵묵히 이 분의 레코딩이 답으로 제시되던 때도 한때는

있었다. 저니프론트맨으로 영원토록 기억될 그 이름,

스티브 페리 Steve Perry이다.









저니 Journey, 아메리칸 하드락의 상징.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운드를 구사해온 인기 밴드이며 Open Arms

Don't Stop Believin' 등 시그니처 송 연속 7장에 달하는

멀티 플래티넘 앨범의 성과를 자랑하는 기념비적 아티스트들.



빌보드 탑40 싱글이 무려 18곡인 데다 미국 내 판매고만 5천만

장에 달하고 세계적으로는 8천만 장 가까이 팔아치운 괴수급

스테디셀러이기도. 2005년 유력 일간지 USA투데이가 집계

역대 가장 사랑받는 미국 락밴드 5걸 중 하나로서, 2017년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이들... 이 모든 것이 저니

거둔 성과이고 그 중심엔 이 분, 스티브 페리가 있었다.





('Open Arms' from Escape, 1981)

(두 곡이 대표곡인 것은 미국이나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


('Don't Stop Believin'' from Escape, 1981)



80~90년대 이후 한국에도 등장하기 시작한

스쿨 밴드의 내노라 하는 보컬들은 모두 이 분의

영향권 하에 있었다. Open Arms하이 노트

찍을 수 있나 없나가 오디션의 기준이던 때도 있었으니.



Don't Stop Believin'이 그 기준곡을 대신하기도 했다.

Don't Stop~키보디스트들의 리프 레퍼토리 확장에도

크게 기여한 바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드라마 글리나 영화

락 오브 에이지의 커버로만 접한 듯. 원곡은 이 분들이다.

1981년 명반 Escape에서 싱글 커트된 저니의 대표 트랙.

03년 영화 몬스터에서도 절절한 감정으로 삽입된 적 있다.



 (Escape)



(12년 락 오브 에이지. 메리 J 블라이지만 참 아깝네.. 왜 거기서 나와.)

저니의 멤버는 변화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주요한

포지션의 주요 멤버는 큰 변화 없이 음악의 색깔을

일관성 있게 유지해왔다고 할 수 있다. 보컬의 페리,

기타의 닐 숀, 키보드의 조나단 케인, 베이스의

로스 밸로리 등이 그들이다. 49년생 

밴드를 완전히 탈퇴한 것은 90년대 말경..



 (Schon)


 (Cain)


 (Valory)



(최전성기던 81년경 라이브)


('Separate Ways(Worlds Apart)' from Frontiers, 1983)

(아, 위 뮤비의 핸드싱크는 유명하니 즐감하시길. 뜬금없는 주피터8까지.)



(Roland Jupiter-8)


(조나단 케인의 신디 파트에 관해)

https://www.youtube.com/watch?v=HjNdXJP8QDo




저니의 초창기는 산타나 세션 멤버들의 사랑방 같은

분위기였다. 산타나의 히트 트랙에서 노래를 불렀고

Hammond B-3 오르간 연주력으로도 일찍이 정평이

나 있던 그렉 롤리보컬키보드를 겸했었는데

이때 음악이 지금과 상당히 달랐고 반응도 대략

그저 그런 수준이었음을 보면 차이가 확연하다.



('To Play Some Music' from Journey, 1975)

https://www.youtube.com/watch?v=iA1kGECadwQ

*프로그레시브 색이 짙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롤리 저니의 정규 6집과 1981년경까지 함께 했으니

상당한 기간 저니의 음악적 기초 완성에 기여했음은

자명하다. 아래 트랙을 들으면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페리+롤리 듀오 체제의 1~2기 시절 그들을 볼 수 있다.



롤리가 자의에 의해 밴드를 떠나며 베이비스 The Babys

에서 신디사이저를 다루던 조나단 케인을 추천했고 케인

신디가 롤리의 해먼드 대체하며 매우 산뜻하고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과 케인의 조합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밴드는 날개를 활짝 펼 수 있었던 것.



(나중에 왜 베이비스와 저니 출신들이 모여 프로젝트

따로 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Rolie)


 (Hammond B-3)



('Feeling That Way' from Infinity, 1978)



('Wheel in the Sky' from Infinity, 1978)



('Lights' from Infinity, 1978)




드럼은 꽤 변화가 있었는데 초반엔 에인슬리 던바

사운드의 기조를 갖추는데 기여했고 흔히 상업적으로

히트한 80~90년대와 현재엔 스티브 스미스가 활동했다.

90년대와 10년대 중반까진 빼어보컬 실력까지 갖춘

딘 카스트로노보가 출중한 파워 드럼을 뽐냈었다.



던바, 스미스, 카스트로노보의 드러밍에서 공통점을

꼽아볼 수 있듯이 복잡하지 않고 육중하게 선이 굵은

파워 드러머들이 저니의 사운드에서 전통적인 한 축을

맡아 왔다고 하겠다. 저니 사운드에서 뭔가 재즈스럽고

복잡한 리듬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근데

정작 스미스 버클리에서 전공이 재즈였다능..)



 (Dunbar)


 (Infinity)



 (Smith)


 (Evolution)




특히 금세기 초반 보컬리스트 체제가 본격적으로

갖추어지기 직전 간간히 리드 보을 겸하기도 했던

카스트로노보의 팀내 기여도는 꽤나 출중한 편이었다.

로저 테일러 및 돈 헨리 이후로... 그는 드러머 중 가장

탁월한 보컬 실력을 갖춘 뮤지션으로 기억되리라.

물론 파워 드러밍 역시 탁월하다.



사실 카스트로노보의 이런 음악적 기여도는 2천년대 초

저니의 음악적 여정에서 한 번도 겪지 못한 새로운 요소라서

저니의 보이스를 대변하는 페리가 떠난 후 보컬과 드럼을

동시에 갖춘 이 포지션 메이커를 놓고 어떻게 밴드 구성을

새롭게 가져갈지, 을 중심으로 상당히 고민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했다. 한때는, 정말 한때는...



 (Castronovo)


('Mother Father' from Escape, 1981)

(카스트로노보. 보컬과 드러밍 양쪽 모두 후덜덜한..)



('Still They Ride' from Escape, 1981)

(Escape 앨범의 트랙 중에서)




73년에 결성한 저니 75년에 데뷔 앨범을 냈으나 사실

3집까지는 음악 방향도 갈팡질팡에 별 볼 일이 없었다.

뭔가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77년에 페리가 새로

들어오면서부터. 78년의 Infinity 앨범에서 Wheel in

the Sky, Lights 등 트랙이 서서히 두각을 나타냈고

앨범은 20위 근처까지 상승한다.



78년에 라이벌 제퍼슨 스타쉽가담한 일로 드러머

던바가 짤리고 스미스가 들어온다. 79년 Evolution

앨범에서 싱글 차트 첫 탑20 진입곡 Lovin' Touchin'

Squeezin'을 만들어낸다. 80년 Departure 앨범은

차트 8위까지 오르는 쾌거에다 Any Way You Want

It이 히트하기까지. 그런데 계속된 투어에 지친 롤리

탈퇴하고 케인이 자리를 대체하게 된다.



메인 스트림에서 만개하기 직전 페리의 진가를 알 수

있는 대표적 트랙은 역시 Departure 앨범에서 크게

히트한 Any Way You Want It일 것이다. 보컬과 작곡

양면에서 출중한 기량을 확인할 수 있다. 쥬크 박스

뮤지컬에서도 리메이크된 바 있어 익숙하리라. 그의

능력은 일찌감치 남달라서 LightsLovin' Touchin'

Squeezin' 역시 그가 만든 트랙들.



 (Departure)



('Any Way You Want It' from Departure, 1980)



(전성기 1981년 Escape Tour 시절)


https://www.youtube.com/watch?v=b9EukP0QsXU

(꽤나 당혹스러웠던 영화 락 오브 에이지 버젼)



('Lovin' Touchin' Squeezin'' from Evolution, 1979)




1981년 Escape, 1983년 Frontiers 앨범에 이르는

시기가 저니 디스코그래피의 최전성기이다. 이땐 시쳇말로

미국 국민 밴드 내지 세계구급 스타가 되어 버린다. 월드

투어로 따지면 80~85년 무렵 정도 된다. 월드라 해도

한국은 절대 온 적 없다... 한국엔 17년에야 겨우 오셨다.

물론 스티브 페리 없이. 궁시렁..



Escape 앨범에서는 지금도 귀에 선연한 매우 많은 히트

트랙을 쏟아냈다. Open Arms, Don't Stop Believin',

Who's Crying Now, Still They Ride, Stone in Love,

Keep on Runnin', Mother Father... 도대체가 버릴

곡이 없다는 표현은 이런 데다 쓰는 말일 것. 솔직히 말할까.

현재의 저니조차도 사실 이 때 히트 우려먹으면서 먹고

살고 있다고 해도 뭐라 할 사람 없을 걸.



이분들 히트곡이 이거 밖에 없냐 뭐라 할까 싶어 반복적인

언급을 자제하지만 Open Arms는 당시 세계적으로 대박

친 히트곡이었다. 싱글 핫100 차트에서 6주나 2위에만

머물다가 하락했는데 정상 등극이 가능할 수도 있었기에

안타깝기도. J 게일스 밴드 Centerfold  조운 제트 앤

블랙 하츠 I Love Rock 'n' Roll이 가로막고 있었다고.

그럴 만두 하다 싶네..



('Centerfold' by the J. Geils Band,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BqDjMZKf-wg


('I Love Rock 'n' Roll' by Joan Jett and the Blackhearts,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f2W2HexpXg4




많은 평론가들이 80년대 하드락을 대표하는 앨범으로 첫

손에 꼽았고 별 네 개 또는 네 개 반을 선사한다. 공격적인

어프로치를 드러내기에 헤비 메탈로 분류하는 매체도 많다.

드디어 이들을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서게 했고 현재까지

9x 플래티넘의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핫100 탑텐 싱글 셋

포함하여 정말 많은 수록곡차트셋리스트를 휩쓸었다.



('Who's Crying Now' from Escape, 1981)



('Stone in Love' from Escape, 1981)



('Lay It Down' from Escape, 1981)

(가장 높은 초고음 샤우팅이 아마 이 트랙에서 나올 걸)




 (Frontiers)




전작이 워낙 초대박인지라 상대적으로 약했다 뿐이지 1983년

Frontiers 앨범 역시 대박이었다. 6x 플래티넘을 기록한 앨범이

차트 2위까지 올랐고 싱글에서 탑텐 하나, 탑20 언저리에 세 곡이

나왔다. 영국 앨범 차트에선 역대 최고 성적인 6위까지 오르기도.



오늘날까지 이들 음악을 규정하는 좋은 곡들이 뽑혀 나왔다.

Separate Ways (Worlds Apart), Send Her My Love,

After the Fall, 또한 Faithfully까지... Separate Ways

싱글 8위까지 올랐다. 버릴 트랙이 없는 전작의 완성도가 주욱

여기까지 이어져 찬사를 받았었다. 속된 말로 돈을 갈퀴로 쓸어

담던 호시절.. 단 너무 상업적이라고 욕도 먹었고. 전작이 헤비

메탈이라면 본작은 왠 어덜트 컨템포러리였다. 저런.



Ask the LonelyOnly the Young 등 두 곡은 앨범 발매

직전에 빠져서 영화 OST로 팔려 나갔다. 특히 후자는 좋은 곡

많기로 소문난 비전 퀘스트에 삽입되어 싱글 탑텐에도 오른다.

대신 두 곡은 컴필레이션으로선 이례적으로 88년 차트 10위에

오른 Greatest Hits에 들어간다. Chain Reaction 역시

라디오 방송 신청이 높아 고른 지지를 얻었다.



 (Greatest Hits)



('After the Fall' from Frontiers, 1983)



('Send Her My Love' from Frontiers, 1983)



('Chain Reaction' from Frontiers, 1983)



('Only the Young' from Vision Quest OST, 1985)



('Ask the Lonely' from Two of a Kind OST, 1983)




83~87년 시기는 월드 투어에 성공한 밴드로서 저니의 커리어

상 최정점이자 동시에 리스크도 떠안고 지낸 시기였다. 뭐 아주

특별한 위험은 아니고 어느 밴드에나 있을 법한 문제, 즉 멤버들

솔로 활동 관련한 것이지. 특히 프론트맨의 문제가 심한 거고.



음악적 창의성과 테크닉과 상업성을 갖춘 보컬리스트이니

솔로 제의가 안 들어오면 이상한 일. Frontiers 발매 이듬해

페리의 첫 솔로 앨범인 Street Talk가 발매되고 그냥저냥

정도가 아닌 더블 플래티넘 급의 대박을 쳐버린다. 싱글의

기록도 빼어났다.



Oh Sherrie 싱글이 핫100 차트에서 무려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꽤 히트했으니 듣고 기억하는 분도 있을 듯.

이 곡은 여러 모로 저니의 컬러와 판박이 성격이 강하고

밴드 멤버들도 이를 인정하여 함께 협연도 했다 한다.

뮤직 비디오 앞부분에 스티브의 어색한 연기 파트도

나오니 스킵을 원하는 분들은 2분경부터 보면 된다.



(Street Talk)



('Oh Sherrie' from Street Talk, 1984)




이 시기 저니는 정말 잘 나갔다. 닐 숀 로니 제임스 디오

불러모은 Hear N' Aid 프로젝트에 초청되셨고 스티브 페리

그 유명한 USA for Africa에서 당당히 2부의 한 소절을

불러 제끼셨다. 평소 친한 케니 로긴스 다음으로...

We Are the World 뒷부분은 다른 아티스트

중심이니 2분 30초 경 앞부분만 보면 된다.



(Stars 중 닐 숀 파트만)



(We Are the World 중 스티브 페리 파트만)



 (Raised on Radio)




85~86년경 다시 스튜디오 앨범을 위해 뭉쳤을 때는 정말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밸로리 스미스가 음악적 견해 차로

무려 잘리기까지 했고. 전문 세션맨 랜디 잭슨이 대체 멤버로

투입되었고 드러머는 공석에 투어 세션으로 떼운 시절. 잭슨

하면 아메리칸 아이돌 평가위원으로 유명한 그 분 맞다.



혼돈의 86년, Raised on Radio 앨범이 발매된다. 더블

플래티넘탑20 싱글 4곡의 달성엔 성공하나 전작에 의존

결과임은 자명했다. (Be Good to Yourself, I'll Be Alright

Without You, Girl Can't Help It, Suzanne이 그 네 곡.)

결국 87년 저니는 한 차례 활동 중단의 수순을 밟게 된다.



(Jackson)



('Girl Can't Help It' from Raised on Radio, 1986)



('Be Good to Yourself' from Raised on Radio, 1986)

(이래 뵈도 핫100 9위까지 오른 곡)



80년대 후반이 되어 각자의 길을 가게 된 페리 , 케인.

페리는 솔로 아티스트로서,  케인은 당시 유행하던

슈퍼 그룹을 결성하여 살 길을 모색하는 식으로 변화한다.

배드 잉글리쉬가 이때 결성된 반은 프로젝트 성격인 밴드로서

페리 케인 베이비스 출신 존 웨이트 리키 필립스,

여기에 딘 카스트로노보가 가담한다.



배드 잉글리쉬는 얼핏 들어도 참 저니스러운 사운드를 구사했다.

팬덤에서까지 저니 창작성의 연장선에서 이해하고 있을 정도..

몇몇 트랙은 중박 정도의 싱글 히트를 기록했다. 명작곡가

다이앤 워렌이 쓴 When I See You Smile 싱글 차트

1위까지 올랐을 만큼.



('When I See You Smile' by Bad English, 1989)




 (Trial by Fire)




87년 중단 후 8년간 서로 떨어져 솔로 활동에만 매진하다
95년에 잠깐 다시 뭉쳐 Trial by Fire 앨범을 낸다. 빌보드
12위까지 오르는 싱글도 내지만 페리가 운동 중 부상을
당하여 수술 일정이 잡힌 관계로 투어가 불가능했다. 이때
페리는 나머지 멤버들로부터 무언의 압력 같은 것을 느껴
불편했다 하고 영원히 저니를 떠날 것을 공표한다. 결국
20세기 마지막 플래티넘을 기록한 앨범을 남기고 말이다.


*이 시기 페리의 심리 상태에 대해선 다른 견해도 존재한다.
전혀 다른 해석과 분석은 아래 링크를 참조.



다시 저니라는 정체성을 찾는 작업이 중요함을  케인
중심으로 깨닫게 되지만 비어 있는 보컬리스트의 자리가 문제.
페리의 존재감은 재적해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커진 것 같았다.

딴에는 여러 가지 방도를 시도했다. 전술한 카스트로노보

겸직 사례도 있고.. 특히 98~06년 동안 함께 한 보컬리스트

스티브 오임팩트 나름대로 컸다고 본다.



전에 즐겨 보던 제리의 한창 때 라이브 동영상이 있었는데

새 인물이 자리잡은 이후 내린 모양이다. 없어졌네. 아래는

그런 대로 오디오만으로 확인하실 수 있는 링크.. 제리

탈퇴 사유는 곡이 가진 극강 난이도가 보컬리스트 당사자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 복합적인 것으로 추정된다.



(Augeri)





(04년경 오제리와 카스트로노보가 모두 출연. Keep on Runnin'..)

https://www.youtube.com/watch?v=3wZgP-qhj_E




저니 셋리스트가 가진 부담이란 것이 그 정도인 거다..

특히 밴드의 상징과도 같은 Separate Ways 같은 트랙의

난이도는 정말.. 왜 키를 낮추지 않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인터넷의 댓글도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케인의 독단적 밴드 운영을 성토하는 일부 팬도 있지..)



제리가 건강상 이유로 하차한 후 약 1년여 동안 제프

스캇 소토도 재적했다. 잉베이 말름스틴과 활동으로 꽤

유명하고 검증된 보컬리스트였으나 기존 멤버와의 성향

차이가 심해서 거의 쫓겨나고 만다.



 (Soto)



(제프 스캇 소토와.. I'll Be Alright Without You)

https://www.youtube.com/watch?v=zwFvx49OU2o




이렇게 그냥저냥 침몰할 뻔하다가 2007년 무렵 밴드는

기사회생한다. 잘 알려진 대로 필리핀에서 날아온 무명의

커버밴드 출신 보컬리스트를 영입한다는 동화 같은

스토리와 함께. 오오, 아넬 피네다가 등장한 것이다.



피네다의 등장은 괜찮은 마케팅 요소였다. 적절하게 감동적인

스토리와 오랜 무대 경험에서 오는 안정적 실력이 버무려진

결과였지. 하지만 67년 양띠인 이 형님도 너무 늦은 나이에

발탁된 거 아니냐, 진성 팬덤은 아직도 우려가 크다. 가뜩이나

난이도 높은 밴드의 트랙들을 풀타임으로 소화하기엔 정말...

외계인 고문, 아니 피네다 고문 아니냐고.



그리고 10년대 들어 그런 궁시렁 소리가 늘어나면 날수록

결국 종착점은, 스티브 페리가 얼마나 위대한 보컬리스트였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제리 피네다나 심지어 카스트로노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결국 그와의 비교를 피할 도리가 없으니.



 (Pineda)



(피네다와 재녹음한 오픈암스)

https://www.youtube.com/watch?v=I5_qNpALAOU



('After All These Years' from Revelation, 2008)

(피네다 영입 후 2008년의 첫 정규 앨범 중에서)




아레나 락 또는 AOR, album-oriented rock을 대변하는

아메리칸 하드락의 대표 주자가 저니였다. 대형 스타디움을

중심으로 대규모 페스티벌식 콘서트에 최적화한 밴드들이

70년대 중후반부터 영미권 시장에서 우후죽순 성장한 것..

그 중심에 저니가 있었다.



대형 PA에서 빵빵하게 터져 나오는 스타디움에서 청중을

사로잡는다는 뭐 그런 컨셉의 장르 아닌 장르인 건데...

청중의 떼창과 호응이 가능해야 하고 그러려면 귀에 쏙

박히는 후크성 강한 멜로디 라인을 가져야 했고 이런

음악은 필연적으로 라디오 친화적인 매니아 성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고... 뭐, 대략 이런 특성을 지닌다.



파워 발라드락 앤썸 등, 떼창이 가능한 육중한

음률을 뽑아내는 뮤지션의 기술이 중요한 때였다.

기타나 키보드의 리프를 매끈하게 만들어낼 줄 아는

것이 밴드 멤버로서의 큰 미덕으로 통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락 밴드의 투어 공연이란 것이 산업적인 규모로

커지기 시작해 오늘날 라이브 네이션 같은 기업형 모델로

발전한다. 롤링 스톤즈, 핑크 플로이드, , 킹크스시카고,

플리트우드 맥스틱스, 토토다이어 스트레이츠제네시스,

러쉬, U2, 보스턴, 밴 헤일런 등이 여기로 분류되었고

저니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헤드라이너 중 하나.



이런 밴드들에게 페리의 흉성이나 케인의 리프

처럼 선굵은 남성적 파워 사운드 요소는 장수의 생명줄

같은 것이었다. 페리는 대략 1980년 경부터 시작한

새로운 아레나 하드락 최강 밴드가 일군 사운드 성과의

핵심이었다.



('Faithfully' from Frontiers, 1983)




한국에선 Open Arms가 발매 당대부터 즉각적인 반응을

얻었고 약간의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Faithfully를 발견해내

현재의 인기에 다다른 걸로, 그렇게 기억한다. (그 약간의

시간이 얼마였냐에 대해선 사람의 기억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는 걸로 정리하자. 공식 기록이 없으니...)



여담으로, 81년 텍사스 휴스턴 라이브는 진리인 듯하다.

반복해서 시청하니 휴스턴에 있는 듯 착각이... 영 시간이

없는 분들은 검색어 잘 찾아서 이 라이브 한 번만 보면

스티브 페리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참고로 MTV가 제작한 것.






주지하다시피 이들 사운드의 핵심은 의 기타 및 케인
키보드가 가진 육중한 톤과 귀를 사로잡는 리프이다.
유명한 Gibson엔도시로서 56년형 Les Paul과 ES-335
들고 연주하는 모습이 대중에 각인되어 있다. 케인의 기어 중
가장 유명한 건 Roland Jupiter-8이겠지만 Separate Ways
작곡 당시엔 Oberheim OB-X를 썼을 거란 추정이 대세이다.


(Gibson Les Paul)



(Roland Jupiter-8)

https://www.youtube.com/watch?v=Xw4AV_BeE24

*Chain Reaction. 2분 5초경. 단체 발연기는 덤..




영원한 저니프론트맨 스티브 페리. 금세기엔 대외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지는 않아서 건강에 이상이 있지 않은지 염려도

된다. 그래도 17년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선 밴드 멤버들과

조우했고, 무엇보다 까마득한 후배로서 자신의 후임을 맡고

있으면서도 페리에 대한 존경을 숨기지 않는 아넬 피네다

따뜻하게 안아주고 격려해 선배로서 큰 귀감이 되었다 한다.


https://news.abs-cbn.com/entertainment/04/08/17/look-arnel-pineda-meets-journeys-steve-perry-for-first-time






페리가 90년대에 잠시 저니와 재결합하여 Trial by Fire

앨범을 낸 그 순간이 있었다. 마지막 불꽃이라고 할까. 여기서

싱글 커트된 When You Love a Woman이야말로, 페리

마지막 전성기를 확인할 수 있는 절정의 트랙이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강력하게 추천하며 이번 포스팅을 마친다.



('When You Love a Woman' from Trial by Fire,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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