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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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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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산업과 음악사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상징성

때문에라도, 언젠가 다시 한번 진지하게 제대로 다뤄

드려야 합당하다고 고민해온 이 분을 올리겠다.



프로그레시브 락의 역사에서 뚜렷한 분기점을 제공한

예스 Yes의 영원한 프론트맨으로서 아방가르드 계열

보컬리스트 중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봉으로 오래도록

추앙을 받으실, 존 앤더슨 Jon Anderson 이야기이다.











*Roundabout. 90년대 초반 Union Tour 중.

- 라인업은 Anderson-Bruford-Wakeman-Howe

  + Squire-Rabin-Kaye-White = 무대 위 8인조.




1944년 스코틀랜드 출신 가계에서 맨체스터 북방의 랭커셔를

출생지로 태어난 존 로이 앤더슨. 넉넉치 못한 가정에서 축구

선수를 꿈꿨지만 일찍이 열 다섯 나이부터 학교를 그만 두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이런저런 초기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가 알바 뛰던 클럽 사장님 소개로 런던에서 크리스

스콰이어를 만나며 밴드 결성에 의기투합하게 된다. 68년.



앤더슨아트 가펑클의 전성기 보이스 텍스처와 상당히 유사한

면도 발견되거니와, 두 사람이 교집합으로 찾은 음악적 지향성은

놀랍게도 사이먼 앤 가펑클이었다. 그때는 팝씬 전체가 본능적인

포크 지향성을 가지고 있었으니 사실 당시를 살아 본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긴 하다.



15년에 작고하신 스콰이어는 락 음악 역사상 가장 뛰어난

베이시스트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분이다. 보통 훌륭한

베이스 주자가 핑거링플럭킹, 태핑 등 손가락을 주로 쓰는데

반해 피킹만으로도 후배들 기 팍팍 죽이는 테크닉과 음악성,

두 토끼를 다 잡는 공전절후의 전설이셨다. 디스토션 걸린 거친

톤에도 능하고 재즈 모드도 한 가닥 하는 등 전천후이신지라

상대적으로 기타가 소프트한 예스 사운드에서 핵심이신 분.






('America' from Yesterdays, 1975)

https://www.youtube.com/watch?v=3CACWj18ruk

*Simon & Garfunkel 원곡의 커버.

- 72년 싱글 발매 후 75년 컴필레이션 앨범에 수록.




예스의 1집이 포크 색깔을 조금 드러내며 팝 지향적 성향을 가진

것도 이해가 갈 만한 일일 터이다. 결성 초기 예스앤더슨

스콰이어 두 사람의 결탁으로 밴드를 리딩하고 나머지 사람이

하나 둘 규합한 형태였는데 이런 식으로 드럼빌 브루포드,

기타피터 뱅크스, 키보드토니 케이가 모여 들었다고.



그냥 팝 밴드였던 1집 Yes심포닉 락의 가능성을 보여준 2집

Time and a Word는 골수 팬을 제외하고 상업적으로 큰 의미를

찾기 어려우니 과감하게 생략하는 점 양해 바란다. 2집에서

대편성 관현악을 동원한 방법론에 뱅크스가 회의 어린 시각을

보였고 끝내 의견을 좁히지 못해 발매 직전에 탈퇴해 버린다.

대체 연주자로 한때 로버트 프립(!)의 영입을 시도했으나 결국

최종 낙점을 받은 사람은 스티브 하우였다.



폄하하긴 미안하지만 하우뱅크스보다 훨씬 다채로운 기법에

능하고 , 포크, 블루스, 컨트리 등 모든 장르를 아우를 줄 알며

일렉트릭어쿠스틱을 가리지 않는 방법론에 능하다는 점은

누가 봐도 자명했다. 앞선 두 앨범의 상업적 실패로 음반사에서

잔뜩 퇴진 압박을 받고 있던 차였기에 앤더슨스콰이어

새 진용으로 절치부심하고 창작에 몰두하였다.



 (The Yes Album)




71년 3집 The Yes Album이 결과물. 그들이 얻어낸 첫번째

상업적 성공작이다. 전작영국 차트에 처음 진입하긴 했으나

미미한 성적이었고 본작에 와서 앨범 차트 4위까지 오르고

미국 앨범 차트에선 40위까지 올랐다. 앨범의 대표 트랙인

I've Seen All Good People의 1부 파트곡 Your Move

싱글로 발매되어 핫100에서 탑40 오르기까지 한 것.



이번 포스팅 내내 그런 태도를 유지하겠지만 알려져 있다시피

이들은 싱글 중심의 상업성 모드로 활동하는 액트가 아니다.

주로 앨범 차트의 성적과 이를 뒷받침하는 팬덤 중심의 끈끈한

유대 관계와 프로모션 투어 실적이 주요한 수익원인 밴드이다.

그렇더라도 이따금 싱글 히트가 올라오면 앨범 전체를 알리는데

살짝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 기실 모든 프로그 씬의

아티스트들 수익 구조가 대동소이할 터이다.



밴드의 오랜 역사를 지탱하는 활동 구조가 The Yes Album

와서 비로소 정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작이 참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특히 전작 두 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커버 곡을 싹 없애고 본작부터 크게 맘먹고 자신들의 창작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나타난 결과이니 더욱 뿌듯한 것이다. 밴드

멤버들의 치열한 내부 토론을 통해 프로그레시브라는 장르적

지향성 역시 자연스럽게 결론으로 도출해낸 셈이기도 하고.



('Starship Trooper' from The Yes Album, 1971)



 (Portuguese 12-string Guitar)




그런 목표를 명징하게 구현해낸 본작 최고의 트랙은 뭐니뭐니

해도 Starship Trooper가 되겠다. SF장르인 로버트 하인라인

저명한 소설에 영향을 받은 가사이다. 작사는 물론 앤더슨

작품이고 스콰이어하우의 공동 작곡이다. Life Seeker -

Disillusion - Wuerm의 3부로 구성된 9분 여의 대작으로서

프로그레시브의 전성기 역사를 장식하는 명곡이다. 무엇보다

예스의 음악적 지향성을 규정하는데 밑거름이 된 작품이다.



그밖에 오프닝 트랙 Yours Is No Disgrace를 놓치지 않으

본작이 주는 느낌을 잡을 수 있을 테I've Seen All Good

People에서 하우포르투기즈 12현 기타를 멋드러지게 치는

부분도 캐치하시길. (물론 예나 지금이나 하우의 시그니처

기어는 ES-175지만서도..)



전반적으로 하우의 재기발랄한 솔로잉에 비해 키보드 파트가

뭔가 허전하게 들리는 앨범이기도. 케이는 스스로 아이덴티티를

오르가니스트로 규정한 뮤지션인지라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도입에 거부감이 있던 편이었고 이 점이 팀의 균열에 영향을

미쳐 결국 해고된다. 그의 대체자로서 데이빗 보위와 음악하던

릭 웨이크먼출현하며 드디어 역사가 다시 쓰여진다.



('I've Seen All Good People' from The Yes Album, 1971)

*73년 라이브 앨범 Yessongs에 실린 버젼.



('Yours Is No Disgrace' from The Yes Album, 1971)

*73년 라이브 앨범 Yessongs에 실린 버젼.




 (Fragile)




71년 하반기 내내 작업하여 연말에 낸 4집 Fragile. 예스 연대기

사상 최대의 히트를 기록했고 프로그레시브 최고의 명반으로

누구나 엄지 척하고 꼽는 세기의 걸작 앨범이 웨이크먼 영입과

함께 나와 버렸다. 락 음악의 역사가 새로 쓰여진 순간이었다.



제작이 이루어지던 당시 밴드의 사정은 여러 모로 어수선했다고.

지난 두 번의 앨범을 거치며 두 명의 주요 멤버를 잃었고 상업적

가능성은 그나마 희망의 불씨를 살렸지만 다 함께 계속 음악을

해나갈 수 있을까 불안해 하던 한창 20대 초중반의 젊은이들에

불과하니 그럴 수밖에. 앨범 타이틀은 언제든지 깨질지도 모를

밴드의 조직 상황과 멤버들의 심리를 상징하는 의미였다 한다.



희한하게도 밴드의 시대였던 70년대는 항상 그렇게 불안불안한

환경에서 최고의 역작이 양산되던 때였다. 미국 앨범 차트 4위,

영국 앨범 차트 7위, 발매 당시 미국 골드영국 실버 인증,

커트한 싱글핫100 차트 13위 등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밴드 커리어 최고 성적의 역사가 이 시기에 쓰여진 것이다.



('Roundabout' from Fragile, 1971)

*가사는 회전 교차로 위 유쾌한 드라이브 이야기.

- 의외로 심각한 가사는 아니다. 단순한 메세지도 명곡의 조건.



 (Gibson ES-175)




커트 싱글은 물론 프로그 최고의 명곡 Roundabout. 예스

시그니처 튠이라는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작품이다.

하우어쿠스틱 인트로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다가 베이스

다이나믹스의 교과서 같은 스콰이어의 유명한 리프

verse를 이끌고 가는 구조이다.



키보드 파트가 전작에 비해 훨씬 더 탄탄해졌음이 확연하게

드러나며 런던 왕립 음악원 출신으로 클래식 기본기가 강한

웨이크먼이 왜 불세출의 연주자인지 탄식하게 만들 터이다.

변칙 어프로치에도 중심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브루포드

jazzy한 프리 스타일에도 경탄을 자아내게 될 것이며...



70년대가 아니면 나오기 힘든 슈퍼그룹의 빈틈없는 합.

중심에 앤더슨의 미성이 자아내는 신비로움과 장중함의

고결한 합성 작용 같은 것이 있다. 평생에 걸친 예스 라이브

무대에서 이 곡은 오랜 팬덤의 애국가처럼 셋리스트의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는 앵콜 곡이었다. 전성기 예스를 상징하는

전형성을 간직하면서도 대중적 감성을 잃지 않은 명곡...

더 말해 무엇 하랴. 어떤 라이브든 찾아서 즐겨 보길.



 (Roundabout, single)




('Long Distance Runaround' from Fragile, 1971)

*dissolved into 'The Fish (Schindleria Praematurus)'.



총 9개 트랙 중 넷은 다섯 명의 합동 작업, 다섯은 개인이

창작한 곡으로 구성된다. 그룹 트랙 중 Long Distance

Runaround는 비록 앤더슨이 작곡을 주도하긴 했어도

멤버 전체의 팀워크가 빛나는 또 하나의 명곡이다. 역시

오래도록 무대에서 팬덤이 사랑해 마지 않는 시그니처 튠.

하우의 기타 리프와 스콰이어의 콤비네이션이 인상적이며

Roundabout의 싱글 B사이드에 실리기도 했다.



The Fish스콰이어의 솔로잉 곡인데 팬덤에서는 오랫동안

LDR의 2부 파트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LDR에서

트랙을 커트하지 않고 디졸브로 바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라이브에선 두 곡을 한 곡처럼 묶어 6분 짜리로 연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Heart of the Sunrise' from Fragile, 1971)



예스라이브 셋리스트에서 네번째로 빈번하게 연주된다는

Heart of the Sunrise브루포드스콰이어가 중심이

되는 트랙이다. 6/8, 3/4, 4/4 등 타임 시그니처를 이리저리

사정없이 옮겨가며 프레이징을 구성해 수많은 후배 밴드를

좌절시켰던ㅠ.. '따라올테면 따라와봐' 하는 느낌을 받을 듯.




('South Side of the Sky' from Fragile, 1971)



South Side of the Sky에선 하우헤비한 어프로치조차

능수능란하다는 것, 예스웨이크먼을 영입한 것 참 잘한

일이라는 것, 앤더슨스콰이어 등이 만들어내는 신비한

보컬 하모니예스 음악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라는 것 등

세 가지 매력을 발견하리라 확신한다.







최근까지 미국에서만 2백만 장이 팔려 더블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고 한다. - 영국에선 플래티넘. 구불구불 물결치는 듯

독특한 예스의 로고는 저명한 디자이너 로저 딘이 만든 건데

바로 본작에서부터 등장함을 알 수 있다.



Fragile 앨범을 듣고도 예스가 왜 최고의 밴드인지 모르겠다고?

그럼 요즘 세상의 쓰레기 음악에 지쳐서 귀가 썩었다는 뜻이니

귀청 정화의 시간을 급속하게 가지길 권유한다. 헤비메탈 씬에

딥 퍼플의 제2기가 있다면 프로그 씬에는 제3기가 있다...

이거슨 만고불변의 진리일지니.



('Roundabout' from Yessongs, 1973)

*73년 라이브 앨범 Yessongs에 실린 버젼.




 (Close to the Edge)




1972년. 음악 활동의 상업성 면에서 최고의 시기를 구가하던

다섯 명의 젊은 뮤지션들이 연초의 전작 투어를 마치고 다음

앨범 작업에 착수한다. 예술적 창의성에 있어 강한 자신감으로

무장해 있던 이들은 교만하다는 오해를 살 만큼 완성도 높은

대곡 셋으로 채운 작품을 주조해낸다. Close to the Edge.

다섯번째 앨범으로 예스 음악성의 정점을 찍었다는 앨범이다.



비교적 짧은 스코어로 상업적 코드를 맞춰 보려던 전작에 비해

정말 원없이 하고 싶은 것 다 질러버리고 전성기 멤버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역작이었다. 19분, 10분, 9분에 달하는 단

세 개의 대작 트랙으로만 앨범을 채워 음악적 자존감이 하늘을

찌른다는 부러움 섞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72년경 Wakeman의 gear set.

- Minimoog Model D

- Mellotron M400

- Hammond C-3

- RMI 368 Electra-piano

- Steinway Concert Grand





('Close to the Edge' from eponymous album, 1972)
*pipe organ 솔로잉은 12' 10"쯤.
- 13' 55"쯤의 무그 솔로잉도 매우 유명한 프레이즈.


음악가로서 실력과 에고의 정점을 찍던 사람은 단연 웨이크먼.
피아노해먼드무그, 멜로트론, RMI를 종횡무진 갈아타며
신들린 연주를 들려주었고 동료들은 그의 창의성에 매료되었다.
특히 타이틀 트랙 Close to the Edge의 3부 클라이맥스에선
하우의 조언으로 런던 바비컨 교회 파이프 오르간을 섭외해
종교적 순고함의 극치를 표현한 기념비적 연주를 구현해낸다.
(라이브에선 직접 표현하기가 힘들어 여러 모로 아쉽다.)


Close to the Edge클래식 악곡 구성의 영향을 반영해 마치
교향곡처럼 4개의 파트로 구성한 명실상부 예스의 대표 작품.
헤르만 헤세가 석가모니의 행적을 엮어 써낸 소설 싯다르타
내용을 앤더슨 가사로 풀어낸 것이다. 지금 와서 보면 너무
오리엔탈 판타지 같아 오글거리기도 하지만 70년대 초반임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용인할 법하지 않을까.
- 사실 헤세의 원작 소설이 지나치게 유럽 백인 관점에서
  지적 허영심을 부추긴다 비판 만하다.


1부의 과감한 불협화음 어프로치에서,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
함께 투어하며 터득한 당시 퓨전의 사조를, 예스 식으로 풀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물론 원류는 60년대 프리 재즈일 터. 전체
프레이징의 밑바닥에서 중심을 잡아가는 동력이 강력한 베이스
라인임을 깨닫게 된다면 스콰이어가 얼마나 무지막지한 파괴력을
가진 연주자인지 비로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걸 따라가며
자기 음악을 별도로 완성하고 있는 브루포드는 또 어떻고.



('And You and I' from Close to the Edge, 1972)



시벨리우스, 바그너, 브루크너 등 19세기 후반 후기 낭만파
짙은 영향을 읽을 수 있는 And You and I싱글로도 커트해
핫100 42위에 올랐었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멜로트론
무그를 적정배합할 줄 아는 웨이크먼의 창조성이 빛을 발한다.



('Siberian Khatru' from Close to the Edge, 1972)


아랍어 방언에서 제목을 따온 Siberian Khatru는 대단히
역동적인 하우리프로 유명하다. 파트별 콤비네이션이 흡사
funk 장르를 떠올리게도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레드 핫 칠리
페퍼스존 프루시안테가 영향받은 트랙이라고 한다.


 (Rickenbacker 4001)




미국 앨범 차트 3위로 역대 최고의 성적을 세웠고 영국 차트에선

4위까지 올랐다. 최근까지 영미 양국과 캐나다 플래티넘 기록을

세운 디스코그래피 사상 최고의 완성도와 성적을 보여준 걸작.

프로그레시브 장르의 신기원을 이룩한 장르의 명작 앨범. 더는

올라갈 곳 없을 듯하던 이들에게도 위기가 오고 있었으니 제작

프로세스에 불만을 가지던 브루포드가 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Yessongs)




브루포드재즈아방가르드 성향이 꽤나 강한 뮤지션인지라

전작의 제작 과정에서 음악 취향 차이가 심해 고생했다고. 결국

킹 크림슨으로 이적하기 위해 Close to the Edge 녹음제작

끝내자마자 탈퇴를 단행한다. 이후 킹 크림슨에서 매우 활발한

활동을 보여줬으니 제자리를 찾아간 셈일까. 아쉽긴 하지만.



후임으로는 플라스틱 오노 밴드에서 존 레논의 세션을 담당하던

앨런 화이트가 낙점된다. 장르를 두루 거친 다양한 경험치에다가

당장 영입이 가능했던 운신의 폭이 영향을 미쳤던 듯. (후보 중엔

에인슬리 던바도 있었단다.) 단, 팬덤에 따라서는 스콰이어 -

하우 - 웨이크먼 - 브루포드 시절의 환상적 연주 합이 그리워

화이트를 폄하하는 경향도 일부 찾아볼 수 있다.




('Perpetual Change' from Yessongs, 1973)

*Bill Bruford on drums.

- original track belonging to The Yes Album, 1971

- 11' 30"쯤부터 브루포드의 솔로잉이 등장하는 소중한 트랙.



('Long Distance Runaround' from Yessongs, 1973)

*Bill Bruford on drums.

- The Fish가 왜 Squire의 곡인지, 수려한 솔로잉을 들어 보시라.




73년에 발매된 최초의 라이브 앨범 Yessongs는 과도기 시절의

질풍노도 같은 연주력 상승치를 담아낸 유일한 아카이브라서

팬덤이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작품이다. 트리플 앨범으로 대부분

화이트의 연주를 담고 있지만 Long Distance Runaround

일부 트랙은 브루포드의 연주를 담고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



동명의 콘서트 필름도 발매되어 정말 흔치 않은 당시 동영상도

구해볼 수 있다. 미국에서 플래티넘에 차트 12위까지 올랐고

영국에선 7위까지 올라 라이브 앨범 중 가장 히트한 성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창 물오른 전성기 시절의 기록이니까.




('Close to the Edge' from Yessongs, 1973)

*Alan White on drums.



('Starship Trooper' from Yessongs, 1973)

*Alan White on drums.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




73년 6집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에 대해선 어찌

논평해야 하나 퍽 망설여진다. 영국 앨범 차트에서 처음으로

을 찍고 미국에선 6위에 올랐으며 양국에서 골드 인증을 받아

상업적으로 실패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결과가

전작들의 성공에 기댄 것이 아니었나 하는 회의도 생긴다.



당시 힌두교 베다 철학에 심취해 있던 앤더슨이 산스크리트

경론서를 바탕으로 작사했고 주요 동기의 작곡은 하우

둘이서 전담한 방식으로 진행했다. 네 개의 전 트랙이 18~

22분에 달하는 대곡 구성이고 워낙 길어서 싱글 커트도 할

형편이 아니었다.



프로그 장르 미학의 정점을 찍는 것은 좋은데 너무 과하지 않나

싶은 느낌이랄까. 또 하우의 역량에 집중하는 것은 좋았으나

상대적으로 웨이크먼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듯했다. 이 과정에

불만을 품은 웨이크먼이 결국 밴드를 떠나는 결과도 초래했고.



네 사람 연주의 조합이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춘다는 점에서는

두번째 트랙 The Remembering을 들어볼 만하다. 웨이크먼

혹은 스콰이어의 연주력도 가장 만족스러운 편이다. 현재까지도

본작에 대한 평가는 팬덤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라 하겠다.



('The Remembering (High the Memory)' from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 1973)

https://www.youtube.com/watch?v=438-Ii_BueM




 (Relayer)




다소간 창작적 과욕을 부린 앤더슨의 패착으로 좋은 멤버를

잃은 상황이었다. 대체자로 반젤리스를 고집해보기도 했지만

밴드 포맷에 어울리는 뮤지션은 아니었다. 결국 로잔 음악원

출신으로 클래식재즈에 능한 패트릭 모라즈가 영입된다.



74년의 7집 Relayer는 영국에서 4위, 미국에서 5위까지

오르며 중흥과 쇄신을 향해 몸부림친 결과물이었다. 다소간

예전의 예술적 성과를 회복하는 듯했고 평단도 대체로 우호적

평가를 내렸다. 어찌 보면 문제가 이들 자신에게 있다기보다

프로그 장르의 인기가 서서히 사그러들고 있었다는 점 아닐까.



웨이크먼과 질감이 전혀 다른 모라즈의 연주는 잘 녹아들고

는데 어딘지 퓨전의 느낌도 묻어났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소재로 한 22분짜리 대곡 The Gates of Delirium

본작을 대표하는 트랙. 후반부 파트가 싱글로 커트되기도 했다.

싱글 차트 성적은 별로였지만.



('The Gates of Delirium' from Relayer, 1974)

https://www.youtube.com/watch?v=g8kLYZvVP7s




 (Yesterdays)



75년 발매된 첫 컴필레이션 앨범 Yesterdays는 1~2집의

트랙을 종합한 거라서 당시엔 반응이 좀 있었지만 요새는

상당한 희귀 음반이 되었을 게다. 로저 딘이 1970년대에

마지막으로 디자인한 커버라는 점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Going for the One)




77년 8집 Going for the One의 제작 구상 과정에서 앤더슨

다시 웨이크먼을 꼬시는데 성공하여 모라즈가 쫓겨난다.ㅠ 꽤

안타깝기는 하지만 웨이크먼의 재결합으로 모두가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지난 두 앨범의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 또

모라즈화이트 결합이 전체 균형에 어떤 균열을 가져왔는지.



욕먹을 각오하고 논평하지만 본 블로거는 디지털 드림 도어 같은

사이트에서 더 높게 평가한 TfTORelayer보다 Going for the

One이 훨씬 더 높은 완성도의 '' 앨범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 프로그란 장르에 한정해서는 DDD의 평가가 옳을지 모르지. 물론

이젠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서 이런 데 아무도 신경쓰지 않겠지만..



('Wonderous Stories' from Going for the One, 1977)

*이들이 발표한 최초의 공식 뮤직 비디오.




돌이켜보면 모라즈화이트는 의외로 플레이 스타일이 직선적이고

선이 굵은 편이었다. 아기자기하게 디테일을 살린 장식음을 잔뜩

먹인 어프로치에 그리 최적화한 연주자는 아닌 것. 문제는 이들의

단점이 곧 브루포드웨이크먼의 장점이라는데 있고 그런 특징이

예스의 최전성기 작품성을 일궈낸 동력원이라는 점. 브루포드

그렇다 치고 웨이크먼의 가세로 이런 점이 보완되니 작풍 자체가

수 년 전 전성기의 모드를 회복한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Going for the One' from eponymous album, 1977)

*이 곡의 Anderson은 왠지 후배 Geddy Lee를 연상케 한다.




상업적인 감각이 살아 있는 Wonderous Stories, 다이내믹한

락의 코드를 살린 타이틀 트랙 Going for the One, 15분여의

대곡으로 5집 시절 구성력을 되살린 Awaken, 평단의 극찬을

받은 신비주의 감성의 트랙 Turn of the Century 등 다섯 개의

알찬 트랙이 제각기 상이한 매력을 뽐내며 맛있는 조합을 보여

주었고 이는 팬덤으로 하여금 Fragile의 부활이란 연상 작용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고 힘주어 주장한다.



('Turn of the Century' from Going for the One,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g0k-Klq-FNA




즉 연주력 과잉의 오만한 군더더기를 없애고 음악적 풍미의

조합과 구성이란 본질에 충실하니 평단과 팬덤의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진 셈이다. 영국 앨범 차트에서 마지막으로

기록했고 미국에선 8위를 기록해 상업적 성과도 준수했다.

Wonderous Stories영국 싱글 차트 7위에 올라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 영국에서. 미국 최고 성적은 후에..



('Awaken' from Going for the One, 1977)

*Wakeman이 5집에 이어 church pipe organ을 다시 도입했다.

- 스위스 브베에 있는 교회에서라고.



(Digital Dream Door's 100 Greatest Progressive Rock Albums)

https://digitaldreamdoor.com/pages/best_albumsprog.html




 (Tormato)




78년 9집 Tormato는 밴드의 시대 후반기에 콘서트 투어의

티켓 판매고가 정점을 찍던 시절을 대변하는 앨범일 것이다.

예스의 스튜디오 앨범 중 가장 빠른 시간에 최고 판매고를

기록하여 미국에서 플래티넘, 영국에서 골드 인증을 받은,

당대 상업적 아레나 락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당시 언더그라운드를 점령한 punk rock

뮤지션들로부터는 집중적인 비토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허나

당시 예스의 공연은 어디 가나 매진의 연속이었고 돈을 제일

잘 벌던 시절이었는데 뭐.. 앨범 트랙들의 전반적인 경향도

대중성과 상당히 타협한 혐의가 짙었고.



('Don't Kill the Whale' from Tormato, 1978)




영국 싱글 차트 탑40까지 오른 Don't Kill the Whale이나

Release Release 같은 트랙을 들어보면 이 사람들 참 많이

달라졌구나 싶을 게다. 웨이크먼리드 기어를 Polymoog

갈아타던 때였는데 이 두 트랙에 나오는 솔로잉은 꽤 들어볼

만하다, 키보디스트 팬이라면. RR에 나오는 화이트의 드럼

솔로잉은 ADT란 녹음 기술로 구현한 것이라고. RR의 하이

노트는 꽤 버거워라이브에선 앤더슨이 늘 제외시켰단다.



*ADT = automatic double tracking.

- 믹싱 과정에서 테이프 딜레이 방식으로 원본 파형을 두 개

트랙으로 강화함으로써 인위적으로 소리를 두텁게 키우는 것.



('Release Release' from Tormato, 1978)




('Future Times / Rejoice' from Tormato,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Nt0w7upsRq4

*대체로 비중이 웨이크먼에 치우쳐 있다는 느낌적 느낌이랄까..



('Onward' from Tormato,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hbowD1NZ-zc

*Squire가 쓴 곡 중 가장 아름다운 음률인 듯.




성공적인 투어였지만 차기작을 위해 다시 모였을 때 예스

음악 방향성을 놓고 둘로 갈라져 있었다. 더 가볍고 판타지를

강조하는 쪽으로 가자는 앤더슨웨이크먼. 반면 하드하고

헤비한 어프로치를 원한 하우, 스콰이어, 화이트. 프로세스가

진척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고 결국 앤더슨

웨이크먼이 탈퇴를 선언하는 지경까지 가버린다. 아이고.



물론 역사가 스포일러라고 몇 년 후에 다시 뭉치긴 하는데 -

예스의 사운드에서 앤더슨의 보이스를 빼면 뭐가 남겠나. -

밴드와 떨어져 있던 몇 년 사이 앤더슨은 오래도록 꿈꿔온

개인 프로젝트 활동에 전념한다. 바로 반젤리스와의 협업.

야~ 신난다..






앤더슨은 두어 차례 그를 예스 액트에 끌어들이려 시도했다.

멤버나 제작진이 반대하기도 하고 반젤리스의 음악 패턴도

궁합이 안 맞기도 하여 한동안 입맛만 다시고 있었는데...

사실 75년에 그와의 첫 결합 기회가 찾아왔다.



이젠 희귀 명반으로 남은 반젤리스의 솔로 앨범 Heaven

and Hell이 75년에 발매되면서 가사가 들어간 트랙이 딱

하나 들어갔는데 여기에 앤더슨을 초빙한 것. So Long

Ago So Clear란 곡인데 신비로운 감수성을 가진 보컬과

연주자가 만나 궁극의 상생을 보여준다.



('So Long Ago, So Clear' by Vangelis feat. Jon Anderson, 1975)



('12 o'clock' by Vangelis, 1975)

https://www.youtube.com/watch?v=C6eFcCL-Ync

*익히 들어봤을 마성의 BGM. Heaven and Hell 앨범.




 (The Friends of Mr. Cairo)




존 앤 반젤리스로 명명하게 된 이들의 협업. 전성기는 80년대

초반까지인데 - 앤더슨이 예스로 복귀하기 전까지 - 81년에

영국 차트 6위까지 오르는 등 The Friends of Mr. Cairo

앨범의 반응이 가장 좋았다. I'll Find My Way Home이란

싱글 히트 튠까지 나왔더랬다. - 영국 차트 6위.



('I'll Find My Way Home' by Jon and Vangelis, 1981)



('The Friends of Mr. Cairo' by Jon and Vangelis, 1981)

*원곡은 12분짜리인데 이건 뮤비에 맞춘 짧은 버젼.

- 30~40년대 말타의 매 같은 느와르 필름의 경향을 표현.



이듬해 무려 디스코의 여왕 도나 섬머가 커버하시기도 한 State

of Independence는 원곡 반응은 시원치 않았지만 섬머

커버가 핫100에서 탑40에 근접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State of Independence' by Jon and Vangelis, 1981)



('State of Independence' by Donna Summer, 1982)

https://www.youtube.com/watch?v=cPlNrP9B2Zs

*심지어 프로듀싱은 바로 그 Quincy Jones.







그 사이 예스는 죽쑤고 있었냐고? 평론가들을 설득하는 데는

성공했는데 팬덤이 문제였다. 핵심 멤버 둘을 잃고 어수선한

가운데 급하게 낸 80년 10집 Drama의 초반 반응은 영국

차트 2위까지 오르는 등 괜찮았으나 팬들이 멤버 교체를

인지한 때문인지 뒷심이 받쳐주지 못했다. 투어 끝내고 그

싸늘함을 실감한 밴드는 결국 해체를 선언한다. 아이고2.



('Into the Lens' by Yes, 1980)

*MTV 시대인지라 많이들 준비한 것이 눈에 띈다.

- 교체 멤버는 Trevor Horn과 Geoff Downes.

- The Buggles 시즌2 및 Asia와 GTR 프리퀄.



('Machine Messiah' by Yes,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dXsFByRJsos

*Drama의 오프닝 트랙이자 가장 긴 대곡.

- Vocoder 혼합한 헤비메탈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극단적인 팬덤은 버글스의 아류 냄새가 너무 난다고 깐다.ㅜ

- 의외로 혼의 음색이 앤더슨 느낌을 꽤 풍긴다는 것이 함정.







82년경이었나. 해체하고 어슬렁대던 스콰이어화이트에게

남아공 출신 기타리스트 트레버 래빈과 연결될 기회가 생긴다.

합이 잘 맞네, 싶어 토니 케이까지 끌어들여 밴드 새로 만들까

하는 궁리를 하던 차... 스콰이어가 파티에서 앤더슨을 만난다.

같이 해볼래? 제안을 덥썩 무는 그. 요상하게 전설적 밴드의

새 버젼 모양새가 되자 래빈은 내켜하지 않았다고.. 궁시렁..



 (90125)




그렇게 어영부영 몇 해 만에 예스는 다시 재결합한다. 83년에

새 앨범 90125를 들고. 프로그예스뉴웨이브 버젼으로

완전 변신하여 새로운 팬덤을 형성하지만 기존 프로그 팬에게

지대하게 욕쳐먹은... Owner of a Lonely Heart란 명곡을

배출한... 바로 그 앨범, 11집.



발매 당시 미국 빌보드200에서 5위, 영국 앨범 차트 16위까지

오르는 등 예전 전성기 정도의 성적을 회복하는 정도에 불과한

줄 알았는데.. 가장 시장이 큰 미국에서 판매고가 넘사벽 급으로서

현재까지 3백만 장을 넘기고 트리플 플래티넘을 기록하는 빼어난

결과를 얻어낸지라 본작이 중요한 것.



('Owner of a Lonely Heart' from 90125, 1983)

*앨범 타이틀에 큰 의미는 없고 그저 소속사의 카탈로그 일련번호.



('Cinema' from 90125,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qSRzlThuXmM




시그니처 히트 싱글 Owner of a Lonely Heart예스의 유일한

핫100 1위 곡. 인스트루멘탈 트랙 Cinema로 이들의 유일한 그래미

어워드까지 수상했을 정도였다. 개별적으로는 소소한 히트였으나

Leave It, It Can Happen, Hold On, Changes 등 후속

싱글도 줄을 이어 앨범의 판매를 도왔다.



본작의 성공에 힘입은 84~85년의 9012Live Tour예스의 역대

투어 중 최대 투자가 이루어져 최대 수익을 거둬들였다. 저명한 영화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의 연출로 9012Live콘서트 필름을 제작해

발매했고 당시 예산으로 1백만 불이 넘는 특수효과를 차용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단다.



('Leave It' from 90125, 1983)



('It Can Happen' from 90125, 1983)




래빈, 스콰이어, 화이트, 케이앤더슨 조합이 8기 예스를 구성한

멤버들. 당시에는 래빈의 스타일을 놓고 설왕설래,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팬덤에서. 또 뭔가 2프로 부족한 케이의 스타일 놓고도

웨이크먼 언제 복귀하냐, 반젤리스 가능성 없냐, 등등 온갖 썰이

난무했더랬지... 다 옛날 이야기다.



래빈은 본래 싱어송라이터로 커리어를 시작한 사람이라 넘사벽급

앤더슨의 존재감에 상당한 부담감을 가졌다는 후문. 또 신디 다루는

실력도 한 가닥 하는지 묘하게 반목하는 사이였던 케이가 잠시나마

탈퇴했다가 에디 잡슨이 메꾸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단다.

하긴 전체 방향성에 있어 래빈스콰이어가 다 만든 모양새

앤더슨은 숟가락만 얹은 느낌이 살짝 들기 시작한 것도 사실..



('Hold On' from 90125, 1983)



('Changes' from 90125, 1983)




 (Big Generator)




어쨌든 물들어올 때 노저으라고, 잘 팔리면 장땡이지.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86년부터 12집 제작에 착수한다. 프로듀서

맡던 트레버 혼래빈 사이에도 트러블이 생겨 아예 제작

전반을 래빈이 주도했단다. 그래서 이듬해 나온 것이 신작,

Big Generator.



이제 예스는 더 이상 프로그 아니에요, 선언한 듯한 앨범.

래빈의 입김이 정말 센 앨범이었다. 미국 앨범 차트 15위,

영국 17위에, 미국 시장 인증은 플래티넘까지 받는 등...

상업성과 예술성 양쪽에서 꽤 어중간한 평가를 받았다.



앤더슨은 여전히 붕뜬 분위기에서 넘사벽급 보컬 실력만

자랑하는 모양새랄까. 어쨌든 그래미 어워드 후보 지명도

받고 (마지막) 핫100 탑40 히트 싱글도 둘이나 나오는 등

선방은 했다...만. 앤더슨의 위상이 뭔가 물과 기름인 것..



('Love Will Find a Way' from Big Generator, 1987)

*미국 싱글 차트 Hot 100 30위, 메인스트림 락 차트 탑 기록.



('Rhythm of Love' from Big Generator, 1987)

*미국 싱글 차트 Hot 100 40위, 메인스트림 락 차트 2위.



('Shoot High Aim Low' from Big Generator, 1987)

https://www.youtube.com/watch?v=CNnKau1OLp4

*미 메인스트림 락 차트 11위.




 (Anderson Bruford Wakeman Howe)




으악. 80년대 말은 온갖 슈퍼그룹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밴드의 시대 마지막 광채를 휘날리던 때였는데, 옛 예스

앤더슨이 이 기회를 놓칠소냐. 앤더슨이 붕뜬다고 했잖나.

결국 가장 잘 나갔던 3기 멤버들 - 스콰이어 빼고 - 그들을

다시 소환하여 슈퍼그룹을 결성하고 만다. ABWH. 두둥.



Anderson Bruford Wakeman Howe. 커버 디자인도

로저 딘이 컴백하시고 누가 봐도 예스 앨범인데 예스를

예스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사태의 원인은 스콰이어..

상표권을 그가 독점 소유하고 있었거덩. 이그. - 베이스

누가 쳤냐고? 전가의 보도, 토니 레빈께서..



사이드 프로젝트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진성 팬덤은 누구든

본작의 가치를 알아봤기에 영국 앨범 차트 14위, 미국 30위

등 성적도 준수한 편이었다. 가사 연속성에서 예스 시절과

연결되는 Quartet, 싱글로도 나온 Order of the Universe

등 대곡 트랙들에 진정한 매력이 있다고 하겠다. 특히나

디지털 신디사이저의 시대를 맞아 웨이크먼의 표현력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듯하다.



('Quartet' from Anderson Bruford Wakeman Howe, 1989)



('Order of the Universe' from ABWH, 1989)




뭐 이렇게 이합집산이 심하냐 싶은 이분들, 결국 스콰이어

예스 네 명과 ABWH 네 명이 합쳐 새롭게 예스를 결성한다.

- 8인조. 이쯤되면 팬덤 고문이다. 90년대 초반 이렇게 뭉쳐

앨범도 내고 여덟 명이서 사이좋게 투어 다니면서 연주력의

정점을 세계 만방에 자랑하셨더랬다.



이후엔 여전히 여러 멤버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지금까지도

투어를 이끌며 잘 살고들 계신다. 금세기까지도 예스라이브

아카이브가 여러 버젼 남아 있지만 개인적으론 90년대 초중반

시기가 가장 반짝반짝 하지 않나 싶다. 그 이후엔 아무래도

나이가 있어서, 특히 앤더슨의 기량은 많이 떨어져 보인다.



마지막까지 예스에서 탈퇴하지 않아 상표권을 움켜쥐고 계셨던

크리스 스콰이어는 15년에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만다. RIP...

안타깝게도 그가 돌아가신 후 17년에 락앤롤 명예의 전당

헌액되어 원년 멤버 중 그만 빼고 다 모여 자축하기도 했다.

(이때 공연에서 베이스게디 리가 쳐줬다.)




*Roundabout. 01년 네덜란드 Symphonic Live; Magnification Tour.

- 무대 난입해 춤추는 분들은 오케스트라 단원들. 피날레 곡이라서..

- 라인업은 Anderson-Squire-Howe-White.

- 키보드에 투어 세션 Tom Brislin.



*Starship Trooper. 84년 독일 공연, 9012Live Tour.

- 라인업은 Anderson-Squire-Rabin-Kaye-White.



*Long Distance Runaround. 04년 스위스 공연, Lugano Festival.

- 라인업은 Anderson-Squire-Howe-Wakeman-White.



*Close to the Edge. 75년 영국 공연, Relayer Tour.

- 라인업은 Anderson-Squire-Howe-White-Moraz.



*Heart of the Sunrise. 89년 ABWH로서 공연.

- 베이스에 투어 세션 Jeff Berlin.






전성기 시절 천사처럼 하늘에서 강림한 듯한, 천상의 목소리를

자랑하신 존 앤더슨. 보컬리스트로서 프로그레시브라는 서브

장르에서 길고 굵게 한 획을 당당히 그은 그 발자취는 대단히

존경스러운 것이며, 영미 시장 합계 총 1천 5백만 장에 달하는

판매고의 예스 디스코그래피 전체에서 이를 관통하는 신비주의

정서의 가사 철학은 분명히 그의 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솔로 아티스트로서 또는 하나의

자립한 음악가로서의 존재감이 그다지 크진 않다. 이 분의 솔로

앨범을 들어보면 창법이 작곡을 삼켜 버린다고나 할까, 독창적

음역과 보이스의 질감이 오히려 운신의 폭을 좁혀 어떤 음악을

들어도 존 앤더슨임이 드러나지만 반대로 보컬리스트로서

다채로운 변화의 폭을 표현하는 데에는 큰 한계가 있다.



본인의 공식 웹사이트에도 올려 놓았지만 하도 음역이 높아서

팔세토 창법을 구사하는 남성 카운터테너란 오해를 많이 받으신

모양인데, 아니라고 명명백백히 밝히셨다. 남성의 테너와 여성의

알토 사이엔 세부적으로 여러 유형이 존재하는데 굳이 분류하면

본인은 알토 테너 - 콘트라알토나 카운터테너보다 낮고 보통

테너보다 높은 - 에 해당한다고... 참고하시길.




*Roundabout. 17년 헌액식 공연 중. 베이스 Geddy Lee.

- 자기 관리에 철저하여 노년에도 기량이 딸리지 않는 점만은 존경스럽다.



*Owner of a Lonely Heart. 17년 영국 공연.

- Yes feat. Jon Anderson, Trevor Rabin, Rick Wakeman이란

  액트로 2010년 이후 최근 노년까지도 활발하게 투어를 열고 사신다.

- Wakeman과 Rabin이 원곡에 없는 솔로잉을 어떻게 더 연장했는가..

  4' 25"쯤 이후. 이런 점이 노장들 라이브의 묘미이다.






 (Polonaise, single?)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존 앤더슨의 곡은 의외의 작품인데

한국의 중장년층에겐 흘러간 팝송일 테고 전세계 팬덤에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존 앤 반젤리스의 숨은 명곡으로 꼽힌다.

바로 83년 Private Collection 앨범의 네번째 트랙 Polonaise.



곡명이 폴로네이즈인 이유는 첫째, 반젤리스가 시작하고 2분 40초

지나서 프리데릭 쇼팽이 쓴 A플랫 장조 작품 53번 피아노 독주곡의

유명한 악절을 차용했기 때문이며, 둘째, 앤더슨이 가사의 배경으로서

- 1981~83년에 걸친 공산당 독재 정권의 계엄령 공세에 맞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항거와 투쟁을 벌였던 - 평범한 폴란드 국민들의

이야기를 끌어와 그 정신을 기렸기 때문이다.



음악 이야기 포스팅하면서 웬만하면 가사 해석 안 하려고 하는데

이 곡의 가사는 역사 배경도 있거니와 작사 능력 출중한 앤더슨

작품 중에서도 특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 예외적으로 공개한다.

노랫말과 뒷이야기에 한층 더 집중하면서 슬프고도 아름다운 옛

음악을 즐기길 바라 마지 않고, 80년 광주 및 83년 바르샤바의

못내 이룬 '연대'의 회한을 반추하며... 금번 포스팅을 마치련다.




https://genius.com/Jon-and-vangelis-polonaise-lyrics




('Polonaise' by Jon and Vangelis,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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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스이어 붙여서 이분 포스팅 안 하면 뭔가 허전하게

생각할 사람들 있을 거다. 그런데 일부 매니아들에 알려진 지적

명성에 비교해 한국 시장에서 그의 인지도는 낮아도 너무 낮다.

게다가 지극히 제한적인 경로로 얻을 수 있는 그에 대한 한글

정보는 매우 부정확하기까지 하다. 가끔 열받을 정도로.



이에 반해 유럽 중심 사회에서 20세기 후반을 통틀어 형성한

그의 사회적 이미지는 사뭇 진지하고 웅대하다. 20세기 대중

음악계에서 가장 지성적이고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인물로 보통

꼽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거둔 음악 산업에서의 객관적

성과와 업적도 결코 만만히 볼 만한 수준이 아니다.



하여 이제 약간은 한물 간 진보 대중 음악가를 다시 정확하게

해설하여 제대로 알고 넘어가자는 뜻으로, 작정하고 진중하게

접근해보려 한다. 제네시스에서 파생한 최고의 월드뮤직

아티스트, 피터 가브리엘 Peter Gabriel에게로 말이다.











('Firth of Fifth' from Selling England by the Pound, 1973)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from eponymous album, 1974)



('Solsbury Hill' from Peter Gabriel 1/Car, 1977)



('Sledgehammer' from So, 1986)

*뮤직 비디오 감독은 Stephen R. Johnson.




- 언젠가 표기에 대한 사회의 견해가 일치하면 게이브리얼
써야 옳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래도 성경 용어가 더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가브리엘로 부르는 편이 합당할 것 같다. -


이미 한번 썼듯이 가브리엘의 초창기는 제네시스 결성 무렵의
초반전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집이 제법 사는 50년생 사립 고교
동창생들 다섯으로 67년경에 모인 이들은 심각한 음악보다는
브리티쉬 포크나 접근이 용이한 팝락을 해보려 했다.


이들이 69년에 낸 1집 From Genesis to Revelation
좋아하는 사람도 간혹 보긴 했지만 아직 프로그로 여물었다고
보긴 상당히 애매했다. - 다만 아트락으로는 분류한다.


브리티쉬 포크에 기반한 프로그레시브 락으로의 전환은 70년
2집 Trespass 앨범에서 시작한다. 아직 상업적으로는 극히
미미했지만 벨기에에선 다소간 인기가 있었다. 마지막 트랙
The Knife는 킹 크림슨이나 핑크 플로이드에 견줄 만큼 충분히
공격적이고 진지한 연주력을 입증한 작품일 터. 이후 라이브의
셋리스트에도 자주 올라온 인기 트랙이다.


('Silent Sun' from From Genesis to Revelation, 1969)


(From Genesis to Revelation)



(Trespass)



('The Knife' from Trespass, 1970)







프로그 퀸텟으로서 제네시스 Genesis의 전성기는 화려한
연주력을 장착한 다섯 멤버 체제가 완성한 71년 3집부터.
원년 멤버인 보컬 피터 가브리엘, 키보드 토니 뱅크스, 베이스
마이크 러더포드기타 스티브 해킷드럼 필 콜린스가 새로
영입된 것. 흔히 일컫듯이 제네시스가 예술 음악하던 시절의
전성기 라인업이 바로 이들 다섯 사람이고 예스, 제플린,
플로이드 등 동시대 어떤 슈퍼그룹에도 밀리지 않는다.


원년 멤버로서 기타리스트앤서니 필립스였고 드러머
크리스 스튜어트였다. 음악계를 떠나 전직한 스튜어트
차치하고 포크락에 기반한 음악성을 지녔던 필립스의 진가에
관해선 지금도 기억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꽤 있다. 허나 너무
과대평가도 금물이다. 블루스가 아니라 포크에 기반해 발전한
초기 제네시스의 음악성을 예술로 이끌어 올린 공 결국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 해킷에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브리엘 생일 하루 전에 태어나신 동갑의 스티브 해킷
동시대 어느 연주자보다 혁신적인 기교와 진보적 음악성에
눈을 뜬 선구자이다. 에디 밴 헤일런 이전에 태핑 주법을
개척한 분이고 브라이언 메이알렉스 라이프슨 등 후배
연주자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초창기 몇몇 밴드를
거치다 제네시스에 합류한 시점이 1970년.



가브리엘은 밴드를 이끄는 리더로서 피아노플루트 연주
실력을 지녔으며 종교, 역사, 문학,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서
풍부한 지식과 통찰력을 기반으로 전통과 판타지를 융합하여
아름다운 가사의 창작 능력을 갖춘 뮤지션이다. 멀리 19세기경
영국 귀족 가계에까지 닿을 만큼 잉글랜드 상류층인지라 그는
항상 대외 활동의 사회적 책무에 민감한 편이었다.


('The Return of the Giant Hogweed' from Nursery Cryme, 1971)




 (Nursery Cryme)




어수선한 초기 혼란을 딛고 다섯 사람은 71년에 정규 3집
Nursery Cryme으로 새출발한다. 영국에서 반응은 썩 좋지
않았으나 유럽을 돌며 열정적으로 프로모션 투어에 나선다.
이탈리아에서 뜨거운 반응이 오기 시작하고 3년쯤 지나서
차트에 진입하는 등, 온갖 풍상을 다 겪은 앨범이다.


콜린스의 가세로 리듬 파트에 임팩트가 확 살아난 것만은
분명했다. 해킷은 끊임없이 뱅크스를 꼬셔서 Mellotron
사운드를 도입하도록 설득했다고. 앨범 커버는 크로켓
운동 기구로 어린아이 목이 댕강 날아간 괴담을 배경으로
한 것. 인류를 몰살할 잡초에 관한 유머스런 괴담도 한
축을 이루는 등, 가사의 상상력이 극에 달한다.


The Musical Box, The Return of the Giant Hogweed
등 두 곡은 제네시스 팬덤의 오랜 명곡. 해킷태핑 주법을
음악사상 최초로 도입한 곡으로도 유명하다. The Fountain
of Salmacis 역시 꾸준히 지지받아 온 트랙이고. 수십 년간
꾸준하게 팔려나가 13년에 영국에서 실버 인증을 받았단다.



('The Musical Box' from Nursery Cryme, 1971)

https://www.youtube.com/watch?v=9LlbYixG1GU



*73년 영국 라이브 중 - 앞에 1분간 가사의 목 댕강 스토리를 설명한다.



('The Fountain of Salmacis' from Nursery Cryme, 1971)

https://www.youtube.com/watch?v=In2fRySroH8




('Watcher of the Skies' from Foxtrot, 1972)




(Foxtrot)




눈물겨웠던 전작들 활동을 마치고 진정한 성공작을 만들기

위해 모든 멤버가 절치부심했다. 4집 준비를 위해 모이기

직전 어느 페스티벌에 참가했을 때 가브리엘이 느닷없이

메이크업 코스튬과 함께 등장했고 영국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얻었기에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72년 Foxtrot는 밴드 결성 후 최초로 영국 앨범 차트

진입하는 성공을 거둔 작품. 80~90년대 제네시스 역사를

아는 사람들이야 그게 뭐 대수냐 하겠지만, 눈물젖은 빵을

먹어본 그들에겐 의미있는 성과였다. 해킷이 열심히 꼬신

덕인지 첫 트랙 Watcher of the Skies의 인트로부터

뱅크스가 장엄하게 Mellotron Mk II를 쳐댔다.



다들 아시겠지만 앨범의 백미는 퀸텟 시절을 대표하는 프로그

장르의 걸작이며 22분이 넘는 대곡Supper's Ready. 와~

이 시절 다섯 멤버가 얼마나 치열한 예술적 감성으로 충만한

상태였는지, 오로지 한 곡으로 입증된다. 가브리엘의 가사가

으레 그렇듯이 난해한 내용이지만 과 현실이 섞여 약간

기독적인 일화와 연관이 있다고.. 가브리엘 아내가 겪은

영적 체험 관련설이란 떡밥도 존재.. 해석은 각자의 몫.



(Mellotron Mk II)


https://equipboard.com/pros/tony-banks/mellotron-mkii



('Supper's Ready from Foxtrot, 1972)

*팬덤에서 애니메이션으로 구성한 버젼.




Supper's Ready 소곡 구성 (스튜디오 버젼 기준):

i.    Lover's Leap [0:00~3:47]

ii.   The Guaranteed Eternal Sanctuary Man [3:48~5:43]

iii.  Ikhnaton and Itsacon and Their Band of Merry Men [5:44~9:42]

iv.  How Dare I Be So Beautiful? [9:43~11:04]

v.   Willow Farm [11:05~15:36]

vi.  Apocalypse in 9/8 [15:37~20:50]

    (Co-Starring the Delicious Talents of Gabble Ratchet)

vii. As Sure As Eggs Is Eggs [20:51~22:54]

    (Aching Men's Feet)




*studio album version

https://www.youtube.com/watch?v=szJq1lwnkNw&t=



*가장 유명한 74년 파리 방송 라이브 버젼.

- Supper's Ready 본곡은 6분 20초경부터.




무대를 주름잡가브리엘똘끼 충만 시절을 느끼려면

화질 안 좋은 예전 라이브 영상을 꼭 보시길. 7개 소곡으로

나뉘는 이 대작의 절정부라면 역시 5부 Willow Farm

6부 Apocalypse in 9/8. 커다란 가면을 쓴 그의 스틸

사진을 많이 구경했을 텐데 - 맨 위 사진 - 바로 5부에 나오

코스튬이다. 6부의 '9/8'은 8분의 9박자라는 뜻. 이런 파트를

들어보면 각 파트 멤버들의 연주 기본기가 얼마나 충실한지

깨달을 게다5부는 싱글로도 발매된 바 있다.



이밖에 Get 'Em Out by Friday는 곡 안에 서로 다른 세

캐릭터끼리 서사를 주고 받는 진정한 씨애트리컬 락으로서

가브리엘의 문학적 똘끼가 빛나는 곡. 해킷의 영향이 짙은

트랙으로 JS바하 무반주 첼로 조곡을 본뜬 Horizons

Can-Utility and the Coastliners를 꼽을 수 있다.



프로그레시브 락의 정수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필청의 음반일

것이다. 이 앨범으로 제네시스 다섯 사람은 1970년대 락밴드

시대의 중심 세력 중 하나로 급부상하게 되고 음악사에 길이

남을 이정표를 세운 셈. 장르가 너무 복잡해 귀찮다 싶어도

이 앨범만 들어보면 충분히 감이 올 듯...



('Get 'Em Out by Friday' from Genesis Live, 1973)



('Can-Utility and the Coastliners' from Foxtrot, 1972)



('Horizons' from Foxtrot, 1972)

https://www.youtube.com/watch?v=oHmjbwfYf-k




그 외에 프로그 장르의 발전사에 관해 굳이 더 큰 호기심이

동한다면 아래의 앨범들에 추천을 때린다. 시간 순서대로..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1969

('21st Century Schizoid Man' by King Crimson)

https://www.youtube.com/watch?v=MM_G0IRLEx4

- an excerpt from legendary Hyde Park Live


"Fragile", 1971

('Roundabout' by Yes)

https://www.youtube.com/watch?v=GWIEZQ63NhI

- a tour live in 1991


"The Dark Side of the Moon", 1973

('Money' by Pink Floyd)

https://www.youtube.com/watch?v=Kjgwjh4H7wg

- a concert live in London 2005


"Tubular Bells", 1973

('Tubular Bells' by Mike Oldfield)

https://www.youtube.com/watch?v=_86Gm9iclAg

- an excerpt from legendary Montreux Live in 1981


"Brain Salad Surgery", 1973

('Karn Evil 9' by Emerson Lake & Palmer)

https://www.youtube.com/watch?v=BugmeXR7_V8

- 1st Impression, Part 1 - studio album version


"2112", 1976

('2112' by Rush)

https://www.youtube.com/watch?v=RtdKhwhAcd4

- 2112 Overture / The Temples of Syrinx - studio single version




('Dancing with the Moonlit Knight' from Selling England by the Pound, 1973)




(Selling England by the Pound)




Foxtrot가 영국 시장에서 처음으로 스타덤을 안겨준 첫

성공작이라 한다면 73년의 5집은 자신감을 장착한 다섯

멤버의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영국 앨범 차트 3위까지 오르고

미국 차트에 처음으로 진입하여 전작의 성공을 확대 재생산

명반 Selling England by the Pound가 바로 그것.



전작의 창작 코드가 훨씬 더 정제되면서도 뭔가 한층 더

대중적인 어프로치를 통해 팬덤을 확대하는데 성공했다는

느낌을 주었다. 해킷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들어한 앨범이기도

하거니와, 명곡 반열에 오른 첫 트랙 Dancing with the

Moonlit Knight에서 그는 태핑스윕 피킹 주법을 통해

잉베이 말름스틴 같은 후배들에게 충격적 영향을 끼친다.



I Know What I Like는 유일하게 싱글로 커트되어 이들의

영국 탑30 히트를 기록한다. 유명한 뱅크스피아노

인트로로 시작하는 Firth of Fifth에서 해킷커리어 전체를

대표한다는 빼어난 솔로잉을 들려줘 곡 전체가 탁월한 음률

향연으로 가득하다. 이에 반해 The Cinema Show에서 ARP

Pro Soloist로 연주한 솔로 파트는 뱅크스 커리어 전체에서

가장 빼어나다고 극찬을 받는 프레이징.



데뷔 시절부터 기반한 브리티쉬 포크의 색깔을 지우고 미국

음악의 우산으로 옮겨간다는 뜻이 제목에 내포되어 있듯이,

영국식 껍데기를 벗고 진화한 제네시스의 변화가 산뜻하다는

팬덤의 찬사가 터져나왔다. 영국과 미국에서 골드를 기록했고

앨범의 전 트랙이 제네시스 라이브의 단골 연주곡으로 정착..



아울러 배트윙, 여우머리, 마곡으로 발전해온 가브리엘

코스튬 세계는 Dancing with the Moonlit Knight에서

로마시대 투구를 쓴 브리태니아 기사로, I Know What I

Like에서 소방수 헬멧을 장착한 잔디깎이로 변화해갔다.



(ARP Pro Soloist)



(70년대 초반 크스 장비 도해)



('I Know What I Like' from Selling England by the Pound, 1973)



('The Cinema Show' from Selling England by the Pound, 1973)

*후반부 1분 30초는 앨범 마지막 트랙인 'Aisle of Plenty'.

- 컨셉트 앨범의 대미이므로 두 곡을 접속해서 듣는 것이 옳다.

**ARP Pro Soloist로 연주한 시그니처 솔로는 7분경부터 등장.






('Carpet Crawlers' from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1974)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from eponymous album, 1974)

*탈퇴 직전 마지막 투어 라이브.



*Phil Collins joins Peter Gabriel's concert in 1979.

https://www.youtube.com/watch?v=-1dJbdSTmDs




필경 이 무렵부터 가브리엘 솔로 활동에 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세간에 호사가들 말처럼 콜린스를 포함한

다른 멤버들이 쫓아낸 것은 결코 아니다. 단독으로 활동할 수

있을 만큼 음악 산업에서 자신의 가치를 정확하게 가늠하고 있던

가브리엘의 전략적 판단이 가장 큰 결정 요인이라고 추측다.



이 시기까지 가브리엘제네시스의 관계는 일곱 살 앞서는 선배

짐 모리슨도어즈의 관계와 유사했다. 밴드의 브랜드 가치보다

프론트맨의 대중적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다른 멤버들을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밴드 안에서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다. 상당한

역량을 가진 멤버들끼리 적당한 긴장감은 늘상 있었다.



6집을 녹음할 때는 이상하게 그 긴장이 서로 극에 달한 상황이

되었다. 앨범의 스토리텔링을 위해 영화감독과도 교류하는 등

안팎의 사정으로 늘 바쁘고 어수선한데다 가브리엘이 이제 막

결혼해 첫 아이를 출산할 때가 다가왔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한

뱅크스러더포드 등과 신경전을 벌이곤 했다.



신작 앨범은 그런 난장판 속에 탄생했다. 가브리엘이 작사만

맡을 뿐 모든 작곡은 네 명 멤버들이 전담했는데, 정작 팬덤이

가브리엘-제네시스 시대의 최고 명작이라고 열광하는 상황..

- 뭐, 이런 아이러니가... 74년 11월 앨범 발매를 기점으로

투어를 개시하기 전, 그는 밴드 전체에 탈퇴 의사를 알렸으며

공식 발표는 투어 마치고 이루어졌다.



('In the Cage' from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1974)

*Brian Eno가 보컬에 Enossification 효과를 입혀주었다.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Back in N.Y.C.' from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1974)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가브리엘 시대

제네시스의 마지막 걸작인 더블 앨범이다. 현대인의 결핍된

심리와 병리적 환상을 결합하여 자신만의 온전한 세계관을

구축해온 가브리엘의 창의성이 극에 달해 만들었다고 하는

바로 그 전설의 명반이다.



본작에서 토니 뱅크스는 발군하다. 스티브 해킷도 이에 못지

않다. 두 사람 사이에서 묘한 경쟁과 반목을 관찰했다는 말도

몇몇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리듬 섹션의 두 사람도 실로

창의적이다. 연주를 맡은 네 멤버의 조화는 더없이 아름답다.

개인적으로 꼽는 최고의 키보디스트뱅크스인데, 순전히

이 앨범만 듣고 평가를 내려도 충분하다고 믿을 정도이다.

여러 모로 제네시스와 밀접한 관계였던 브라이언 이노 역시

Enossification이란 사운드 이펙트를 접목시켜 주었다.



곡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접근할지 막연한 분이 많을 터.

보통 팬덤에서는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함께 In the Cage, Back in N.Y.C., Carpet Crawlers,

Fly on a Windshield, The Lamia 등등으로 서서히 애호의

범위를 넓히는 쪽을 추천한다. 페트 크롤러Counting Out

Time싱글로도 커트되었으니 참고하면 된다.



잘 알려져 있듯이 가브리엘 자신이 꿈으로 본 기묘한 이야기를

푸에르토리코 소년 라엘이란 캐릭터가 뉴욕에서 겪는 초현실에

빗대어 플롯을 구성했다. 즉 남의 꿈 얘기를 들여다보는 셈. 사실

그의 가사가 대부분 해석이 안 되는 원인인즉슨 해몽이 안 되기

때문이다. 대략 그러려니 하고 물 흐르듯이 느끼고 즐기는 쪽이

제일인 법. 남의 꿈을 못 읽어냈다 해서 큰일나는 거 아니쟎.

요샌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낸 영상도 있으니 도움이 될 것이다.



('Counting Out Time' from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1974)



('Fly on a Windshield' from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1974)

https://www.youtube.com/watch?v=k9X2QtzCvBQ


('The Lamia' from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1974)

https://www.youtube.com/watch?v=g09mTchpOPU




사실 찬찬히 들어보면 의외로 음률이 대중적이다. 난해하다고

잔뜩 어려운 말로 속물처럼 갈긴 평만 읽고 실제로 음악을 듣는

데 주저하진 말라. 이미 수십 년 지난 음악이며 그 사이 수많은

팬이 즐기며 자신만의 문화를 구축해왔다. 이 음악을 만든 이는

좀 사는 나라의 제법 사는 집 출신으로 약간의 음악적 훈련에

온갖 상상력을 섞는데 성공한 스물 몇 살 청년들에 불과하다.



너무 난해해서 정신과 의사급만 알아 듣는다는 해석글이

여러 사이트에 돌아 다니던데 그런 거 없고, 그냥 들을 수

있는 만큼만 듣고 즐기면 그뿐이다. - 이런 뻘소리는 본

블로거 어렸을 때도 있던, 팬덤이 지은 2차 창작 같은 건데

아직도 돌아다니다니.. 제발 이상한 뻘글 좀 퍼담거나

싸질러 놓지 말라고들. 인터넷 공해다. 무릇 음악이란,

듣고 즐길 수 있으면 그뿐이다. 경전이 아니지 않은가.



이 세상에 난해한 음악이 얼마나 많은데 수십 년 전 대중 가요

정도가 뭐 얼마나 어려울까. 본작일본과 한국 바보들에게

어렵게 다가오는 건 단 한 가지, 영어로 쓴 가사를 해석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단순히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영시문학

어느 정도 즐기는 훈련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까,

영어가 안 되요 하는 소린 할 수 있을지언정 - 현재 영미권을

사는 사람들도 어려워하니 쪽팔린 일도 아니니까 - 음악이

난해하다는 한 마디로 퉁치고 제껴놓지 말자고들.



선입견을 제거하고 들어보면 멋진 앨범이다. 어떻게 40년 전

컴퓨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이런 악상을 떠올렸을까 싶은,

젊디 젊은 재능으로 충만한 멜로디와 패턴이 군데군데 숨어

있으니 귀한 보물을 잘 찾아 보시길. 마지막 불꽃을 활활

태운 후 75년 8월, 제네시스피터 가브리엘의 탈퇴를

공식 발표한다. 팬덤은 난리가 났고.



*가브리엘-제네시스 시대 9대 코스튬에 관하여

- 탈퇴하면서 이제 그만의 독창적 무대의상 시대는 끝난 거다.

https://www.musicalbrick.com/top-9-peter-gabriel-costumes-1972-1975/



*animated illustration created by fan artists (side 1)

- Enossification은 20'14"부터 나오는 트랙에서 더 두드러진다.

 ('The Grand Parade of Lifeless Packaging')



*animated illustration created by fan artists (side 2)







쿼텟이 된 제네시스이미 다른 포스팅에서 썼듯이 콜린스

보컬의 소임을 맡는다. 그는 의외로 잘 해낸다. 그도 그럴 것이

역사가 스포일러이지만 80~90년대를 주름잡은 가수 아닌가.



네 사람 체제에서는 76년에 A Trick of the Tail 및 Wind

Wuthering 두 장의 앨범을 냈는데, 사실 두 작품이 퀸텟

시절 제네시스의 잔상을 지우기가 쉽지는 않아서, 여전히

프로그레시브 팝락의 어딘가 복잡미묘한 위치에서 조금씩

새로운 음악의 시대를 향해 변화를 품고 있었다. - 근데 판매

실적은 퀸텟 시대보다 더 좋아졌다는 것이 함정..ㅜ 제네시스

판매고 1억 장은 사실 대개 가브리엘 나간 후에 거둔 거라능.



이 중엔 A Trick of the Tail, Dance on a VolcanoSquonk

같은 트랙들이 프로그레시브 성향을 견지하는 팬덤에서 꾸준히

지지를 받고 있어 들어볼 만하다. Los Endos는 아기자기한 잔

리듬에 강한 콜린스식 드러밍이 폭발하는 또 다른 인기 트랙.

뱅크스가 작곡한 Afterglow는 신비로운 질감의 백킹이 어여쁜

발라드. 시종일관 울려퍼지는 Moog Taurus의 이펙트가 매우

예쁜 소리를 빚어내 팬덤의 지지가 높다.



이외에도 Eleventh Earl of Mar, Entangled, Your Own

Special Way, Mad Man Moon, One for the Vine

곡이 팬덤과 평단의 꾸준한 지지를 받았다. 두 장의 앨범을

내고 해킷이 탈퇴하여 솔로 아티스트로서 활동을 이어간다.

사실 그는 원래 솔로였다가 제네시스에 영입된 것이니 본디

독립 의지가 강한 입장이었다. 자존감도 강한 분이시고.



('Dance on a Volcano' by Genesis, 1976)

https://www.youtube.com/watch?v=2JGK6Q8rbRU


('A Trick of the Tail' by Genesis, 1976)

https://www.youtube.com/watch?v=ZXqSEw3H_PI


('Eleventh Earl of Mar' by Genesis, 1976)

https://www.youtube.com/watch?v=vmp6mUlguyQ




('When the Heart Rules the Mind' by GTR, 1986)



('Toe the Line' by GTR, 1986)

https://www.youtube.com/watch?v=uUtZkaMAPLw




제네시스라이브 앨범은 크게 네 시기로 나누어 접근하면 된다.

가브리엘 시대 라이브는 유일하게 73년 앨범 Genesis Live에서

들을 수 있고, 쿼텟 시대 라이브는 77년 Seconds Out을 통해

접할 수 있다. 82년 Three Sides Live와 92/93년 The Way

We Walk Vol.I&II트리오 시대 라이브이다.



제네시스 재적 중인 75년에 솔로 앨범 Voyage of the Acolyte

낸 전적이 있는 스티브 해킷은 탈퇴 후엔 철저하게 프로그 장르를

추구하는 예술적 대중 음악을 다룬다. 예스 출신 기타리스트로서

해당 장르에서 쌍벽을 이루는 스티브 하우와 슈퍼그룹 GTR

결성하여 86년에 셀프 타이틀 앨범을 내기도 했다. 딱히 프로그

성향 앨범은 아니지만 매니아들로부터 각광받은 작품이다. 싱글

히트곡으로 When the Heart Rules the Mind 배출했다.



트리오 제네시스 멤버들은 되레 과거 프로그 시대 히트 튠에서

거리를 두려는 경향을 보여왔다. 70년대 히트 트랙을 공연에서

꾸준히 선보인 사람은 오히려 해킷. 90년대 중반 이후 Genesis

Revisited라는 공연 프로젝트를 통해 게스트 멤버를 규합하여

프로그 시대 제네시스 음악을 무대에서 꾸준히 재현해오고 있다.



*Firth of Fifth의 가브리엘 퀸텟 시대 라이브. 74년.



*Firth of Fifth의 Genesis Revisited 공연 라이브. 13년 로열 앨버트 홀.



*The Cinema Show의 Genesis Revisited 공연 라이브. 15.



*The Cinema Show 후반부의 쿼텟 제네시스 시대 라이브. 76.

https://www.youtube.com/watch?v=Zhvq0XZGOSE

- Phil Collins와 Bill Bruford가 트윈 드러밍을 보여준다. 오오.




(Seconds Out)



(Voyage of the Acolyte)



(GTR)



(Genesis Revisited, poster)




*'Solsbury Hill'의 03년 Growing Up 투어 공연 모습.

- 03년 라이브 무렵부터 머리를 삭발하고 등장하신다.



*78, 87, 93, 03, 11, 13년 투어를 몽타주로 구성한 공식 아카이브.
- 노래는 'Solsbury Hill'. Tony Levin이 찰떡처럼 항상 붙어 있다.






(Solsbury Hill, single)



(Games Without Frontiers, single)




피터 가브리엘의 솔로 앨범 초기 네 장은 독특한 구성을

취한다. 앨범 타이틀이 없이 네 장 모두 Peter Gabriel

명명했고 자신의 얼굴을 일부 왜곡시키는 효과를 앨범의

커버 아트로 채택한 것. 보통 팬덤은 1, 2, 3, 4의 숫자를

붙이거나 커버 아트에서 착안하여 Car, Scratch, Melt,

Security로 따로 부른다. 각 77년, 78년, 80년, 82년작.



세밀한 온도차는 있지만 앞의 두 장 앨범제네시스 시절

프로그 아티스트 같은 모습이 아직 채 씻기지 않은 음악을

들려주고, 뒤의 두 장 앨범포스트 펑크일렉트로닉

광범위하게 받아 들이면서도 월드뮤직로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는 변신 과정을 보여준다는 차이가 있다.



('Games Without Frontiers' from Peter Gabriel 3/Melt, 1980)

*제목을 불어로 노래 후크 파트는 Kate Bush의 백킹 보컬. 꽤 유명하다.



('Waiting for the Big One' from Peter Gabriel 1/Car, 1977)



('Down the Dolce Vita' & 'Here Comes the Flood' from 1/Car, 1977)


*77년 뉴저지에서 가진 솔로 초창기 라이브. 1집의 왠만한 곡이 다 등장.



(Peter Gabriel 1) (Car)




77년 Peter Gabriel 1/Car밥 에즈린 프로듀서로서

작업을 마친 작품. 앨리스 쿠퍼의 70년대 성공작 작업물로

유명한 프로듀서이다. 진지하고 명석하지만 뭔가 재미없는

우울함으로 가득해 보이던 가브리엘의 음악적 이미지를

정겹고 산뜻한 옷으로 갈아입히려 애썼다.



결과는 성공. 일생에 걸쳐 가브리엘을 대표하는 싱글 히트곡

Solsbury Hill이 터져 영국 차트 탑20에 들고 미국 차트에도

진입한다. 4분의 7박자에 목가적인 따뜻함을 실은 이 곡은

가브리엘제네시스를 떠나며 모든 것을 놓아버려야 했던

경험을 술회한 내용이라고.



스티브 헌터가 유명한 어쿠스틱 기타 리프를 맡았고 군데군데

기타 프레이징을 킹 크림슨로버트 프립이 도왔다. 베이시스트

토니 레빈, 키보디스트 래리 패스트, 드러머 앨런 슈워츠버그 

향후 가브리엘 밴드의 단골 세션이 모두 참여한 명곡이다.

Down the Dolce VitaHere Comes the Flood에서

오케스트라 파트는 런던 심포니가 초빙되었다.



강렬한 인트로Moribund the Burgermeister, 싱글로 커트한

Modern Love, 블루스 색이 짙게 배어나오는 Waiting for the

Big One, 헌터의 백킹이 인상적인 Slowburn 역시 매우 인상적인

트랙들로서 공연마다 팬덤이 열광해왔다. 가브리엘 자신은 Here

Comes the Flood의 관현악 편성이 과하다고 여겨, 이후 공연에선

자신이 직접 키보드 백킹을 치는 식으로 이를 대체해왔다. - 그는

기타보다 키보드로 작곡하는 스타일의 뮤지션이며 솜씨도 수준급.



영국 앨범 차트 탑텐골드 인증과 미국 앨범 차트 탑40 등,

기록도 준수했고 솔로 아티스트로서 자리 잡는데 매우 성공적인

발판을 제공한 앨범이다. 클래식, 포크, 블루스, 락앤롤 등 모든

장르의 균형이 골고루 잡힌 수작. 그의 작곡 실력은 출중하다.



('Modern Love' from Peter Gabriel 1/Car, 1977)



('Here Comes the Flood' from Peter Gabriel 1/Car, 1977)

*1979년 TV 라이브 중. 미니멀한 피아노 백킹 버젼이다.



('Moribund the Burgermeister' from Peter Gabriel 1/Car,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oqkqxvxla4w


('Slowburn' from Peter Gabriel 1/Car,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VTgYKNZM9KM




('Exposure' from Peter Gabriel 2/Scratch, 1978)




(Peter Gabriel 2) (Scratch)




78년 Peter Gabriel 2/Scratch는 전작에서 호흡을 맞춘

로버트 프립이 프로듀서로 나섰는데 익스페리멘탈 경향이

강한 프립의 에고가 지나치게 전면에 나서서 여러 모로 좀

과하다는 인상을 준 듯. 가브리엘 자신도 이 점은 인정하는

모양이긴 하나, Frippertronics를 아는 사람은 알듯이 독특한

사운드메이킹 만큼은 인정 안 할 수 없다는 매니아도 많다.



Frippertronics프립의 전매특허인 사운드 이펙트 기술로

테이프 루프이용하는 방식이고 8번 트랙 Exposure에서

들을 수 있다. On the Air, White Shadow, Perspective

등 트랙에서 프립의 연주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토니 레빈 역시 앨범 전반에 걸쳐 일렉트릭 베이스채프먼

스틱을 넘나들며 예의 넘사벽 연주력을 제공한다.



E스트리트 밴드의 저명한 피아니스트 로이 비턴도 참여했다.

다양한 이펙트가 지배하는 모드이다 보니 돋보이지는 않는다.

드럼 제리 마로타, 기타 시드 맥기니스, 색소폰 팀 카펠로

참여한 첫 앨범이기도 하다. 싱글로 발매된 4분의 5박자

D.I.Y.는 독창적이지만 뭔가 씹어먹는 카리스마가 부족해 차트

진입엔 실패했다. 차라리 On the Air나 Animal Magic

커트했어야 옳지 않았나 싶은..



음악성 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많이 받았고 Indigo 같은 곡에서

보인 실험성은 매니아를 양산했다. 하지만 상업적인 성공이라

평가하기엔 부족했다. 그리하여 가브리엘 다음 앨범부터

프립의 비중을 줄이기로 작정했다..나... 흠.



(Chapman Stick)



('On the Air' from Peter Gabriel 2/Scratch, 1978)



('D.I.Y.' from Peter Gabriel 2/Scratch, 1978)




('No Self Control' from Peter Gabriel 3/Melt, 1980)

*영국의 인기 TV쇼 Top of the Pops 출연분.



('I Don't Remember' from Peter Gabriel 3/Melt, 1980)

*인트로 리프에 쓰인 악기가 바로 Chapman Stick.




(Peter Gabriel 3) (Melt)



(Rolling Stone Magazine's 100 Best Albums of the 1980s, 1989)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best-albums-of-the-eighties-150477/peter-gabriel-peter-gabriel-67748/




80년 Peter Gabriel 3/Melt로부터 피터 가브리엘이란 세계적

스타가 탄생했다고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Hipgnosis

전위적인 커버 아트로 유명한 본작은 영미 양국에서 동시에 골드

인증을 받고 영국 차트 탑, 미국 차트 22위에 오른 성공작이다.

롤링 스톤 매거진이 1989년에 선정한 80년대의 100대 명반에도

올랐고 영국 싱글 차트 탑텐에 처음으로 든 히트곡을 배출한다.

- Games Without Frontiers.. 4위까지 올랐다.



가브리엘의 열성팬이라면 라이브에서 숱하게 접했을 명곡들이

이 앨범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Games Without Frontiers,

No Self Control, Biko, I Don't Remember, Intruder,

Family Snapshot 등.. And Through the WireNot

One of Us 같은 곡도 인기가 높다.



Intruder필 콜린스가 드럼 세션을 맡으면서 gated reverb

기술을 도입한 기념비적 트랙. No Self Control미니멀리즘

작곡가 스티브 라이히에게 영감을 얻었으며 콜린스, 프립에다

케이트 부쉬까지 세션에 참여한 곡이고. 채프먼 스틱이란 악기가

뭔지 궁금하다면 I Don't Remember인트로를 들어보시길.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가 극에 달하던 잔혹한 정세 속에서

77년 9월에 목숨을 잃은 저항 운동가 스티븐 비코를 위해 쓴

진혼곡, Biko는 유럽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아울러

가브리엘이 서서히 아프리카 월드비트에 눈을 뜨고 있음을

입증하는 음악이기도 했다.



가브리엘의 최고 디스코그래피를 논할 때 반드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명반이다. 한 곡 한 곡에 깃든 완성도가 결코 만만치

않다. 이것저것 귀찮을 때 이 앨범부터 가브리엘을 영접해보는

것도 초심자들에겐 괜찮은 선택지일 수 있다.



('Biko' from Peter Gabriel 3/Melt, 1980)

*라이브 아카이브와 87년 영화 Cry Freedom의 장면을 결합.

- 덴젤 워싱턴 주연 이 영화가 스티븐 비코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



('Intruder' from Peter Gabriel 3/Melt, 1980)

*드럼에 Phil Collins. gated reverb 기술로 녹음했다.



('Family Snapshot' from Peter Gabriel 3/Melt,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XFDgBSk1ghM


('Not One of Us' from Peter Gabriel 3/Melt,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dbwQ0Wy3ljQ




('San Jacinto' from Peter Gabriel 4/Security, 1982)

*가사는 아메리카 인디언 원주민 공동체의 고통에 관한 것.



('The Family and the Fishing Net' from Peter Gabriel 4/Security, 1982)

https://www.youtube.com/watch?v=obtgGtrpPJM




(Peter Gabriel 4) (Security)




82년 Peter Gabriel 4/Security시대가 시대이니만큼 포스트

펑크의 색이 짙게 배어나온 앨범인데 관점에 따라서 전작에 비해

휼륭하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관행대로 제목 없이 가려 했는데

음반사 쪽에서 하도 불평이 많아서 미국에서만 제목을 붙였다고.

영미 양국에서 골드를 기록하고 영국 차트 탑텐에 든 성공작.



가브리엘생의 셋리스트를 채울 명곡들이 여기서도 많이 나온다.

싱글로 커트된 Shock the MonkeyI Have the Touch는 그

대표작. 오랜만에 메이크업하고 뮤직 비디오를 찍은 Shock the

Monkey질투욕망 같은 심리를 풍자적으로 풀어내 최초로

핫100 차트 탑30에 든 수작이다. - 메인스트림 락 차트에선 1위.



Fairlight CMI 등 샘플러를 십분 활용하며 리듬 시퀀싱에 관한

레시피가 더 맛있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월드비트 장르나

아프리카계 전통 음악에서 받아온 영향이 곳곳에 드러났다. 토니

레빈, 제리 마로타래리 패스트 등 호흡을 맞춰온 세션들이 힘

더하고 기타리스트 데이빗 로즈가 새롭게 가담하였다.



The Rhythm of the Heat, San Jacinto, The Family and

the Fishing Net, Wallflower 등에서 세계의 다양한 민족과

인종 삶과 이야기에 폭넓은 이해와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월드뮤직 음악가로서의 현신이 바로 이 시기부터 시작한 것.



본작의 공동 프로듀서인 데이빗 로드는 여러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난봉꾼 같은 인물. 가브리엘의 첫 아내 과 불륜을 저질러 피터

하여금 오랜 시간 정신과 치료에 매달리도록 했으며, 최근에는 아예

대놓고 매춘업소를 운영하다가 적발되었다고. 맙소사.


https://www.dailymail.co.uk/news/article-3284933/Music-producer-ran-brothel-550-000-home-Bath.html




('Shock the Monkey' from Peter Gabriel 4/Security, 1982)

*그는 동시대 Genesis나 Phil Collins보다 영상 메세지에 능숙했다.



('I Have the Touch' from Peter Gabriel 4/Security, 1982)

*영상은 오리지널 뮤비는 아닌 듯하고 방송사에서 제작한 판본으로 추정.



('Wallflower' from Peter Gabriel 4/Security, 1982)

https://www.youtube.com/watch?v=YeI-FtSayS4




(Fairlight CMI)



*Peter Gabriel on South Bank Show, 1982 UK

https://www.youtube.com/watch?v=scmYG1Pv1_Q&t

- 16분경부터 Fairlight CMI의 샘플링 기능을 설명




(Rockpalast 1978, poster)



아마도 보컬리스트로서 능력만 따져본다면 77~85년 시기가

가브리엘의 절정이 아니었을까 싶어 개인적으론 이 시간대

라이브를 가장 좋아한다. 2/Scratch3/Melt 사이 78~80년

투어는 독일에서 열린 Rockpalast 공연 실황이 가장 상태가

좋은 것 같다. 레빈, 맥기니스, 카펠로, 마로타, 패스트의 다섯

세션들 실력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Rockpalast TV performance in 1978 (Essen, Germany)

https://www.youtube.com/watch?v=amxDkP_0gxs&t=

https://www.genesisfan.net/peter-gabriel/articles-2017/peter-gabriel-rockpalast-tv-performance-1978




(Six of the Best, poster)



80년 3/Melt 이후 줄곧 그의 관심은 월드뮤직에 있었다.

오늘날 이 장르에 대한 현대적 정의는 각국 민족이 가진

고유한 전통 음악(우리로 치면 국악)을 뜻하지만 당시 유럽

사회에선 아프리칸 월드비트에 국한하여 해석했다. 80년에

페스티벌인 WOMAD를 출범시켰는데 빚더미에 앉아야

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제네시스 다섯 멤버와 다시 뭉쳐

Six of the Best콘서트로 기금을 모으기도 했다.


('Solsbury Hill' from Six of the Best bootleg archives, 1982)

https://www.youtube.com/watch?v=4rxSDBzFRU0

*1982년 10월 2일. 마이크 러더포드의 생일이기도 했다.




(Plays Live)



83년엔 첫 라이브 앨범 Plays Live를 냈는데 4/Security

및 3/Melt 트랙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82년 투어

아카이브를 발췌한 거고 성대가 가장 팔팔할 때 활동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만 아쉽게도 동영상은 없다. 여기서 기타

세션은 데이빗 로즈로 바뀌었다.


*full tracks from Plays Live, 1983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Up2NMQv0VIex_dG6paxzUjH8eTui4naa




(Birdy)



84년 연말엔 앨런 파커 감독의 영화 Birdy가 개봉하고 OST

앨범을 가브리엘이 만들어 발표하는데 새로운 트랙들과 기존

발표곡의 변주를 혼합하여 각광받았다. Family Snapshot,

Not One of Us, The Rhythm of the Heat, Wallflower,

San Jacinto 등 분위기가 유사한 곡들을 엄선한 작업이었다.


('Under Lock and Key' from Birdy, 1985)

https://www.youtube.com/watch?v=h7E-tnn_uOs

*잘 들어보면 4/Security의 트랙 Wallflower와 같은 곡임.




('Red Rain' from So, 1986)



(So)




이때까지 피터 가브리엘이 받은 상업적 성공과 언론의 평가가

그리 박하진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초대형 스타라고 부르기엔

왠지 뭔가 한 방이 부족했다. 물론 본인이야 그런 성공에 목말라

하는 속물도 아니었지만. 그저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음악적 지향점을 향해 묵묵히 길을 걷던 그 와중에,

그의 커리어 최정점의 순간이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다.



86년작 앨범 So. 롤링 스톤 매거진 선정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반 랭킹에서 당당하게 187위를 차지한 80년대 최고의 명반.

물론 전술한 80년대의 100대 명반 랭킹에서도 무려 14위에

올랐다. - 3/Melt는 46위. 드디어 이 작품 얘기를.. 와 신난다..



(Rolling Stone Magazine's 500 Greatest Album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500-greatest-albums-of-all-time-156826/peter-gabriel-so-34304/


(Rolling Stone Magazine's 100 Best Albums of the 1980s)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best-albums-of-the-eighties-150477/peter-gabriel-so-2-160373/




77년부터 90년대 초반까지 1~6집을 발매하면서 홀수 순번

앨범은 다소 상업적으로, 짝수는 다소 개인적인 예술성으로

프로듀싱해온 편이었는데, So자신만의 독창성을 상업적

흐름에 최적화하여 균형을 잡을 줄 아는 그의 천재성이 일체

여지를 두지 않고 남김없이 발현한 결실이었다. 아프리카

브라질 전통 음악의 배경이 살아 숨쉬고 있어 월드뮤직

창작으로 한창 물이 올라 있음을 입증하고도 남았다.



Birdy에서 한 번 가브리엘과 함께 했고 이후 브라이언 이노

U2의 앨범을 프로듀싱할 운명이던 대니얼 라누아가 공동으로

프로듀싱을 맡았다. 베이스 레빈, 기타 로즈, 드럼 마로타

여전히 참여했고 본작부터 드러머 마뉘 가 세션 조력을

시작했다. 일부 곡의 하이해트 스튜어트 코플랜드가 쳤고

브라스 섹션은 60년대 소울의 시대부터 경력을 일궈온

트럼페터 웨인 잭슨을 중심으로 사운드를 만들었다.



*86년경 So Tour 중.




완벽하게 대중적인 섹드립 노래 Sledgehammer는 그의 경력

전체를 대표하는 초대박 싱글이다. 그에게 유일하게 핫100 차트

이란 기록을 선사했고 영국 싱글 차트는 4위까지 오른다.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를 포함하여 최초의 그래미 후보로서 영예를

누린다. 진짜 압권은 클레이메이션과 스톱모션을 아방가르드하게

혼합한 뮤직 비디오.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이 작품으로

MTV 어워드 9개 부문에서 수상했는데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는

기록이라네. - 가사는 제플린레몬송처럼 남녀간 정사 이야기.



케이트 부쉬피처링을 담당한 Don't Give Up. 그의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발라드이다. 직접 시퀀싱한 리듬 패턴

삶의 고단함에 지친 남녀가 서로를 위로하는 가사를 쌓아올렸다.

신자유주의의 미친 정책을 앞장세운 대처리즘 시대, 만연하던

살인적인 실업률과 빈부 격차를 정면으로 비판하기 위해 쓴 가사.

가브리엘부쉬가 부둥켜 안고 피를 토하듯이 목놓아 연기한

뮤비도 꽤 화제를 모았다. 꼭 동영상으로 감상해 보시라.



('Don't Give Up' from So, 1986)

*가사를 몰라서 에로틱하게 해석하는 무식자들 많았다. 그러지 말자.




가브리엘 최고의 연가 꼽히는 In Your Eyes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내용. 세네갈 출신

월드뮤직 보컬리스트 유수 은두르가 코다 파트를 장식하여

화제를 모았다. 80년대 여피족들의 물질 만능주의를 풍자한

Big Time은 그가 제임스 브라운이나 오티스 레딩funk

soul 장르에 큰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신스 베이스

시퀀싱한 베이스라인이 압권인데 라이브에서 재현하기 힘든

난이도로 악명이 높은 나머지, 공연에서 듣기가 어렵다고.



코플랜드인트로 연주에 참가한 Red Rain은 팬덤 최고의

명곡 중 하나로서 가브리엘이 꿈에서 본 환상을 엮은 이야기.

많은 평론가가 핵전쟁에이즈에의 대중적 공포가 일반화한

80년대 사회상을 읽어내려 애썼다. 그가 직접 Fairlight CMI

시퀀싱한 이외 모든 트랙도 결코 만만치 않음은 물론. 한 곡 한

곡에 풍부한 스토리와 창의성을 품고 있어 버릴 곡이 없는 또

하나의 명반이다.



미국 앨범 차트 2위를 비롯하여 영국, 캐나다, 이탈리아 등 6개국

앨범 차트에서 정상에 올랐다. 메가히트 싱글 Sledgehammer

포함하여 Big Time이 미국에서, Don't Give Up이 유럽에서

연이어 폭발하며 상업적 측면에서 명실상부한 호시절이었다.

슬레지해머는 하필 제네시스Invisible Touch를 밀어내고

핫100 탑에 올라 호사가들 신나게 만들었다. - 걍 우연이라고,

이 사람들아. - 그의 디스코그래피 중 유일한 미국 시장 멀티

플래티넘 앨범이 본작이다.



('Big Time' from So, 1986)



('In Your Eyes' from So, 1986)




('Mercy Street' from So, 1986)

https://www.youtube.com/watch?v=Ej6NGrZ0iUM

*영국의 시인 앤 섹스튼을 기린 내용. 브라질 전통 음악을 결합했다.



('That Voice Again' from So, 1986)

https://www.youtube.com/watch?v=aukeZxt-FDM

*종교적 양심과 마음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관한 성찰적 내용이다.




(Passion)






86년 앨범 발매 후 So Tour를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이

리얼월드 레코드라는 자체 레이블을 설립한다. 본격적으로

월드뮤직을 탐구하겠다는 뜻이며 이 회사는 현재까지도 그와

관련한 모든 콘텐츠를 공급할 책임을 갖는다. 이 시기 그는

WOMAD의 운영 책임은 내려놓고 고문으로 물러난 상황.



88년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문제작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

OST 작업으로 참여한다. 이듬해에 리얼월드를 통해 더 세심하게

다듬은 사운드트랙을 앨범 발매했는데 그때까지 서구 팝음악계가

한 번도 조명한 적 없던 제3세계 전통 음률을 고결하게 빚어낸

월드뮤직 명반이었다. 결국 이 작업의 결과로 90년에 생애 최초로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하게 된다. 골든 글로브 후보에도 오르고.



('Zaar' from Passion, 1989)

https://www.youtube.com/watch?v=zk1jHVkLEZs&index=9&t=0s&list=PLAC5905D15E1BB425

*오늘날엔 오히려 보편적인 음률. 이 시기부터 그가 개척한 결과이다.






(Shaking the Tree)



90년엔 첫 공식 컴필레이션 앨범 Shaking the Tree: Sixteen

Golden Greats를 발매한다. 정규 음반이 아님에도 판매량이

의외로 쏠쏠하여 영미 양국에서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한다. 첫

컴필레이션이니 개업빨이 먹힌 듯.



1/Car, 3/Melt, 4/Security, So, Passion2/Scratch

Birdy를 제외하고 그때까지 모든 솔로 앨범의 트랙을 총망라하여

팬덤이 반응할 만하다. 타이틀을 제공한 Shaking the Tree

유수 은두르의 원곡을 조금 바꾼 것. 1/Car에서 뽑은 Here Comes

the Flood는 과한 편성을 톤다운하여 재녹음한 버젼이라능.



('Shaking the Tree' from eponymous album, 1990)

https://www.youtube.com/watch?v=jDsr54YBmdk




('Blood of Eden' from Us, 1992)



(Us)




92년에 그는 6집 Us를 발매한다. 실패한 첫번째 결혼, 소원해진

첫딸과의 관계 등, 개인적인 주제에 더 천착한 결과물이었다. 영미

앨범 차트 각 2위에 오르고 미국 시장에서 플래티넘을 기록하지만

전작만큼 대박은 아닌...



메인스트림 락 차트 탑에 오른 첫 싱글 Digging in the Dirt

아내의 불륜 때문에 숱하게 받은 심리치료 이야기. 미국 싱글 차트

탑40에 오른 Steam슬레지해머의 방법론을 계승했고 컴퓨터

그래픽과 외설적인 콜라주를 앞세운 예술적 뮤직 비디오로 화제를

모았다. 시네이드 오코너케이트 부쉬처럼 피처링 맡은

Blood of Eden의 뮤비도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Digging in the Dirt' from Us, 1992)



('Steam' from Us, 1992)

*노골적이진 않지만 정사를 암시한 표현이 많아 미성년자는 주의하기 바란다.



('Kiss That Frog' from Us, 1992)

https://www.youtube.com/watch?v=S4Ah2dxTcWw

*개구리 왕자 동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이야기.



('Secret World' from Us, 1992)

https://www.youtube.com/watch?v=amoyq8FRurg

*앨범 발매 직후 투어의 타이틀로 사용된 트랙.



('Come Talk to Me' from Us, 1992)

https://www.youtube.com/watch?v=cnC5RMkkd7M

*Sinead O'Connor가 피처링을 맡았다.



*앨범의 제작 배경을 직접 설명하는 다큐멘터리. 미성년자 주의.

https://www.youtube.com/watch?v=Cs7lxCG_sug

- 실은 앨범 커버 촬영 장면에 전라의 모델이 등장한다.




 (Revisited)



 컴필레이션에서 제외시킨 2/Scratch 1/Car의 대표 트랙을

묶어서 92년엔 Peter Gabriel Revisited란 독특한 컴필레이션

앨범을 낸다. 1집서 7곡, 2집서 8곡을 발췌한 버젼인지라 정규

음반을 이미 갖고 있는 팬에겐 거의 쓸모없는 앨범이긴 하다. 단,

초기 앨범을 구하기 어려운 사람에겐 꽤 좋은 선택지이니 참고..




*Steam의 라이브로는 역대 최고라고 소문난 Secret World Tour 중.

**Tony Levin, David Rhodes, Manu Katche, Paula Cole.. 아름다운 조합.



(Secret World Live)



94년엔 두번째 라이브 앨범 Secret World Live를 발매한다.

SoUs 앨범 트랙을 중심으로만 편집되어 평단의 반응은

시큰둥했지만, 사실 90년대 초중반이 가브리엘 라이브 보컬

능력의 최전성기였다는 팬덤의 평이 많아서 진정한 가브리엘

무대를 즐기려면 이 앨범이 필수라고 한다.



이 라이브와 투어에는 97년 스타덤에 오르기 전 폴라 콜

백킹 보컬로 참여하여 엄청난 노래를 들려줬다. 그는 98년에

무려 그래미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할 운명의 실력자시거든.

마뉘 캇셰드러밍 팬덤의 극찬을 받았다.



('Where Have All the Cowboys Gone' by Paula Cole, 1997)

https://www.youtube.com/watch?v=JPR108kwNo4



*Secret World Tour 중에 부른 Don't Give Up.




(OVO)



1999년 12월 31일 뉴밀레니엄을 맞이할 마지막 밤에 영국에서

매우 뜻깊은 이벤트가 있었다. 런던 동부 그리니치 강둑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의 복합 컨벤션 건축물 밀레니엄 돔이 이날 개장했는데

미래를 바라보는 영국의 발전을 상징하기 위해 내노라 하는 아티스트를

초청하여 개장 기념 초대형 콘서트를 열었고 그 사운드트랙을 당대

영국 최고의 대중 음악가 피터 가브리엘에게 위촉한 것이다.



여기에 사용된 사운드트랙이 2000년에 OVO란 앨범으로 발매된다.

순수한 예술성보다 선전 목적의 음악임을 감안하더라도 당대 첨단의

공연 기술을 추구한 가브리엘 사단의 창의성을 남김없이 확인할 수

있다. 인생 말년의 아버지 랄프 파튼 가브리엘과의 관계를 담담하게

술회한 Father Son이 팬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곡 뮤비를 첫딸

애나 마리 가브리엘이 연출하는 등, 이 무렵부터 가브리엘 사단이

본격 가족형 창작 집단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Father Son' from OVO, 2000)

https://www.youtube.com/watch?v=EQH6qu2pHT8

- 뮤비 감독이 Anna-Marie Gabriel.




('More Than This' from Up, 2002)



(Up)



5~7집은 각각 So, Us, Up.. 알파벳 두 글자로 된 심플한

타이틀로 유명하다. 02년 Up 앨범은 가브리엘에게 있어

실질적으로 마지막 창작 음반이라고 한다. 10년 Scratch

My Back 및 11년 New Blood다른 가수 및 자신의

곡을 커버한 작품에 그치기 때문이다.



황혼을 바라보는 커리어인 만큼 예전만큼 상업적 성과가

시원시원하진 못했다만. The Barry Williams Show

및 More Than This 등 커트한 싱글을 통해 이제 원숙한

단계로 접어드는 백전노장의 내공을 느낄 수도 있다.



('The Barry Williams Show' from Up, 2002)

*00년 넘어서면서 그는 삭발 스타일로 등장하신다. 나이도 드셨고.

- 시청률만 높은 자극적인 TV프로 까는 내용. Sean Penn 연출.



('Growing Up' from Up, 2002)

https://www.youtube.com/watch?v=tn2VPj1R76U




(Hit)



03년 컴필레이션 앨범 Hit는 80~90년대 트랙에 중점을 둔

구성이다. 아쉽게도 초창기 명곡들은 빠져 있지만 대중적

스타가 된 가브리엘에만 관심을 두고자 하는 팬은 가볍게

스타터로 고려해볼 만하다. 영국에서 골드를 기록했다.




(Scratch My Back)



(New Blood)




아직 은퇴하신 분도 아니고 여전히 경력이 이어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아티스트 피터 가브리엘.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긴 경력 중 제네시스 챕터는 고작 몇 년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 짧은 시간에 찰나처럼 얽힌 관계를 죽은 아들 뭐

만지듯이 붙잡고 늘어지는 추한 팬덤에 동참하지 마시길.



마이클 잭슨 같은 초대형 팝스타가 아닐진 몰라도 또 다른

관점에서 음악사를 해체해보면 그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를

독창적 위상을 가진 뮤지션임에 틀림없는 분이다. 한국에서

잘 아는 사람도 없다는 점은 이해한다만, 모모 사이트들에

사실을 왜곡해 휘갈겨 기록된 쓰레기 정보 정도는 최소한

정확하게 바로잡고 이해를 새롭게 할 줄 아는 성숙한

네티즌이 되었으면 한다. 모르면 쓰지를 말라고 제발.



*02년경 Growing Up Tour 중 Sledgehammer.

- 백킹 보컬에 차녀 Melanie Gabriel이 참여했다.



*Sinead O'Connor와 함께 부른 Don't Give Up. 90년.






피터 가브리엘의 장구한 디스코그래피 중에서 본 블로거는

특히 리듬 패턴이나 다이나믹스 맛깔나게 어레인지한

트랙들을 좋아라 하는 편이다. SoBig Time이 이런

계열의 대표곡인데 UsSteam도 역시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4/Security의 숨은 보석으로서 프린스1999

필 콜린스Sussudio를 연상케 하는 Kiss of Life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세 곡 중 가장 먼저 나온

것이 이 곡이다.) 마지막으로 강력하게 추천을 때리며 이번

포스팅을 마치련다. 특별히 이번 편은 읽어 주셔서 감사하고

싶다. 이 나라에 결코 흔치 않은 PG 열성 팬인지라..



('Kiss of Life' from Peter Gabriel 4/Security, 1982)



*Kiss of Life의 82년경 라이브.



*Big Time의 87년 필라델피아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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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머큐리 Freddie Mercury ..

1946년에 태어나 91년, 겨우 마흔 다섯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 하신 이 분은 20세기 음악사에

어마어마한 족적을 남긴 대중 예술가이다.






 (Montreux, Switzerland)




디지털 드림 도어 닷컴이라는 대중 문화 랭킹 전문

사이트가 있는데, 남성 락 보컬리스트 부문 랭킹에서

머큐리는 항상 1위였다. 본 블로거 기억으로 이 랭킹이

십여 년에 이른 것 같은데 한 번도 내려온 적이 없었다.



같은 사이트의 락 보컬 퍼포먼스 부문에서도

보헤미안 랩소디가 현재 1위이다. 락 에픽, 곧 서사적 락

음악곡 부문에서도 이 노랜 1위. 락 앤썸이라고, 공연에서

떼창 유도할 수 있는 상징적 트랙에선 위윌락유가 1위.

락 밴드 최고의 프론트맨 랭킹에서 그는 현재 5위이다.






생소한 사이트가 마음에 안 드신다면 좀 더 미국 친화적인

롤링 스톤 매거진이 있다. 약 10년 주기로 업뎃하는 이곳의

랭킹에서 시대를 초월하는 위대한 가수들 100명 중 그가

18위를 차지한 바 있다. 최근 2008년 집계 결과였다.

18위가 별 건 아니네, 하시는 분들은 그 위쪽 순위에

어떤 분들이 있는지는 보고 얘기했으면 한다.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singers-of-all-time-147019/freddie-mercury-5-225069/



대략만 읊어도 이 정도. 이 분이 왜 위대한 락 보컬리스트로

불리우는지, 누구나 다 깨닫고 있지만 말로 일일히 설명하기도

참 쉽지 않다. 이처럼 전설적인 아티스트에 대한 포스팅이

망설여지는 이유일 것이다. 겨우 이 정도 필력으로 제대로

표현이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그는 오늘날 탄자니아 영토에 속한 아프리카의 잔지바르에서

파르시는 페르시아계 조로아스터 교도 가정에서 태어났고

이후 여기서 쫓겨나 유년 시절을 인도에서 성장하기도 했다.

청소년기에 와서야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다.

흔하디 흔한 기독교계 앵글로 색슨이 주류인 영미권 음악계

전체를 볼 때 참 특이한 배경이 아닐 수 없고, 그가 보여준

독창적 캐릭터와도 깊은 연관이 있겠다 싶다.



브라이언 메이로저 테일러가 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스마일에서 먼저 합을 맞추고 있었을 때 그는 약간 로디

비슷하게 곁을 맴돌다가 두 사람에게 합류한다. 1970년.

밴드 이름을 퀸 Queen으로 바꾸었고 이는 누가 봐도

머큐리의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queen에는 속어로

퀴어의 의미가 숨어 있으니..)



밴드 이름과 같은 동명의 데뷔 앨범은 73년에 가서야 늦게

낼 수 있었고, 녹음 두어 해 전 전기공학 전공으로 넷 중 가장

어린 존 디콘이 합류했다고 전해진다. 우리가 아는 네 명의

전설적 진용이 다 갖춰진 것이 이 무렵인 셈. 1973년 경.

이듬해 이들은 Queen II 앨범을 발매했다.



 (Queen)




이렇듯 1집과 2집에서 Keep Yourself Alive, Liar,

Seven Seas of Rhye 등 오늘날까지 알려졌고 밴드

역시 콘서트에서 즐겨 연주한 트랙들이 생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성공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신디를

쓰지 않고 보컬이 피아노를 겸하는 피아노 락앤롤 정도로

박한 평가를 받았음이 사실이다.



Sheer Heart Attack 앨범에서 Killer Queen이란 대박

싱글이 나오고 나서야 밴드는 세계구급으로 올라선다. 이

곡은 머큐리가 작곡했다. 본 앨범에 이르러서야 클래식과

락앤롤에 바탕을 둔 밴드 음악성의 아이덴티티가 이제

막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74년..



아울러 Brighton Rock, Now I'm Here, In the Lap of

the Gods, Stone Cold Crazy 등 유명한 트랙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브라이튼 락에서 선보이는 딜레이 테크닉은

그대로 메이의 전매특허가 되었고, 스톤 콜드 크레이지

쓰래쉬한 파괴성은 이후 후배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Sheer Heart Attack)



 (A Night at the Opera)




스튜디오와의 불화로 밴드 멤버들은 여전히 곤궁했고 돈

한 푼 손에 쥐는 일 없었다. 절치부심하여 75년 넉 달 동안

녹음실에 틀어박혔고 창작적 전성기의 시발점이 된 명반

A Night at the Opera를 같은 해에 발매한다. 그렇.

Bohemian Rhapsody가 실린 그 앨범이다.



보랩으로 불린 트랙은 머큐리 온전하게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Love of My Life, You're My Best

Friend, God Save the Queen, '39, I'm in Love with

My Car 등 명곡이 쏟아져 나왔지만 결국 평가는 보랩

곡에 주목할 수밖에 없음을 멤버 모두가 인정했다고 한다.



('Bohemian Rhapsody' from A Night at the Opera, 1975)



('Love of My Life' from A Night at the Opera, 1975)




 (A Day at the Races)




이듬해 1976년엔 A Day at the Races 앨범이 나와

Somebody to Love를 필두로 Tie Your Mother Down,

Good Old-Fashioned Lover Boy 등 트랙을 쏟아냈다.

전성기가 이어진 것이고 본작은 여러 모로 전작의 동

반복 같은 위치였지만 팬덤은 신경쓰지 않았다.

(4집5집의 트랙 구성은 놀랍도록 유사하다고..)



반면 언론과 평단은 여전히 냉담하고 냉소적이었다.

은, 대체로 평론가의 칭찬을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고

보면 된다. 심지어 이런 현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



('Somebody to Love' from A Day at the Races, 1976)




 (News of the World)




77년 News of the World 역시 창작적 상승가의 연장선에

있던 명반일 거다. 드디어 메이We Will Rock You

선보였고 We Are the Champions는 이 곡의 제2부인

것 마냥 항상 어서 라디오 전파를 타곤 했다. Sheer

Heart Attack, Spread Your Wings 등 정통 락

트랙들도 매력이 있다.



위윌락유의 가사는 의외로 음악과 상관이 없는 이야기다.

훌리건 패싸움 스토리에 더 가깝다. '락유~'는 문자 그대로

'부셔버릴거야' 정도의 뉘앙스란 뜻. 원곡이 재해석의 여지가

커서 라이브에서 다양한 버젼을 골라볼 수 있는 재미를 주는

곡이기도 하다. 79년 발매된 Live Killers 속 패스트 버젼이

가장 인기가 있는 편인 것 같아 아래에 붙인다.



 (Live Killers)



('We Will Rock You' from News of the World, 1977)



('We Will Rock You' from Live Killers, 1979)




 (Jazz)




78년 7집 Jazz에 와서 연거푸 세 장의 앨범으로 달려온 음악적

지향성이 약간 지친 것 아닌가 싶은 느낌을 주게 된다. 여러 모로

전체 디스코그래피에서 약간 동떨어진 실험성이 돋보인 역작.

머큐리민족 정체성을 떠올리는 듯한 Mustapha부터 상당히

이채롭고 Fat Bottomed Girls에선 로커빌리의 영향을 읽을

수 있으며 Bicycle Race말랑말랑하고 벌레스크스러운

것이 누가 봐도 머큐리가 쓴 곡임을 알 수 있겠다.



무엇보다 본작엔 Don't Stop Me Now가 있다. 제임스 브라운

인가 싶은 정도의 섹드립도 등장하고 엄청나게 흥겨운 이 트랙은

진성 팬덤이 위윌락유보다도 더 앤썸처럼 친애해온 곡이기도...



단, 머큐리가 이슬람교 신자일 거란 오해는 금물이다. 조로아스터

교는 이슬람과 관련 없다. 그냥 이런저런 상업적 요소를 끌어들여

재미있는 노래 하나 만든 거라고 보면 된다. 어차피 서사

사회성은 딱 고만고만하게 적당한 정도만 구사하는 수준이다.



('Mustapha' from Jazz, 1978)



('Don't Stop Me Now' from Jazz, 1978)




 (The Game)




Jazz에서 약간 주춤하나 싶었던 그들은 The Game 앨범으로

다시 한 번 활짝 만개한다. 평단과의 불편한 관계를 전술했는데

하나 더, 이상하게 은 미국 시장에서 성공한 적이 별로 없다.

당대의 세계적인 팬덤은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전 세계라고 보면

대략 옳다. 특히 유럽, 남미, 일본은 그들의 밥줄이라고나 할까.



80년의 이 앨범 와서 결국 그들은 빌보드 앨범 및 싱글 차트 양쪽서

처음으로 1위를 찍는다. 엘비스 프레슬리 캐릭터 모방으로 유명한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은 그들의 유일한 1위 싱글이다.

Another One Bites the Dust는 무려 마이클 잭슨이 일찌감치

히트를 예감한 곡이다. 꽉찬 funky 비트에 그냥 지나칠 리 없었겠지.



Another One~ 가사 역시 동네 양아치들 패싸움 이야기이다.

'(싸우다) 또 하나 뒈졌군' 정도의 뉘앙스라고. 사회 비판적 가사가

비교적 많지 않은 그들에겐 이런 가사 스토리가 의외로 많다.

또한 방식으로 디스코를 받아들인 증거이기도 하다.



Play the GameSave Me 역시 들어볼 만한 트랙들이다.

키보디스트 아닌 사람들은 별 관심 없겠지만 의 디스코그래피

중 처음으로 신디사이저가 등장한 앨범이기도 하다. Oberheim

OB-X란 명기이다.


https://queenvinyls.com/articles/from-harspichord-to-synthesizer-and-beyond-an-introduction-to-queen-organology/



(Oberheim OB-X)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from the Game, 1980)



('Another One Bites the Dust' from the Game, 1980)




(Hot Space)




81년엔 Flash Gordon이란 영화의 사운드트랙 앨범을 만든다.

여기서의 플래쉬는 DC의 그 히어로는 아니다. 한국에 개봉한

적이 없는 SF물이다.



이듬해 Hot Space 앨범을 내는데 비평과 흥행 양쪽에서 다

안 좋아 이후 2~3년간 멤버들이 붕뜬 상태로 솔로 활동에나

매진하게 된 계기를 제공한다. 하지만 데이빗 보위와 함께 한

Under Pressure는 여전히 훌륭한 작품으로 남아 있다.

사회성 짙은 가사로 영국병 걸린 경제 상황을 위무한

걸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정작 총리는 대처..ㅠ)



('Under Pressure' from Hot Space, 1982)




 (The Works)




영화에서 나타났듯이 밴드의 침체기는 결국 라이브 에이드

가서야 부활의 동력을 얻게 된다. 그 전 82년 5월에서 84년 2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 메이테일러디콘 솔로 작업을 열심히들

하셨다. 정작 머큐리는 다음 앨범이 나오고 난 후에 자신의 앨범을

냈다. 즉, 영화의 스토리는 사실과 다르다는 말.



라이브 에이드 전인 84년에 비교적 성과가 좋았던 The Works

앨범을 낸다. 신디사이저를 광폭적으로 받아들였음을 입증한

본작에서 Radio Ga Ga, It's a Hard Life, Hammer to Fall

그리고 I Want to Break Free 등 성공작이 쏟아져 나왔다.



멤버들을 전부 여장(!)시켜 찍은 ~Break Free의 뮤비는 매우

유명했고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밴드의 곡 중 흔치 않게

신디사이저 솔로가 등장하여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프레드

맨델이란 세션이 연주했다고 한다. Linn LM-1이란 드럼머신

사용도 괜찮았다.



레디오가가보코더로는 77년에 출시됐던 EMS 2000

쓰였단다. (희한하게도 은, 아날로그 신디 전성기인 70년대엔

단 한 번도 무그를 쓴 적이 없다. 모든 이펙트는 기타

몰아주려 했다나 뭐래나.)



(Linn LM-1)



(EMS Vocoder 2000)



('Radio Ga Ga' from the Works, 1984)



('I Want to Break Free' from the Works, 1984)

*다소 민망한 일본 라이브




(Mr. Bad Guy)




라이브 에이드에서 완전히 부활한 . 하지만 머큐리 자신은

이미 80년대 초반에 자신의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전한다. 멤버들에게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은 사망이 거의

임박한 훨씬 뒤였으나 이미 눈치들은 다 채고 있었다고.



85년엔 이미 예정되어 있던 첫 솔로 앨범 Mr. Bad Guy

발매한다. 그의 솔로 앨범은 두 장 뿐이고 두번째 앨범이 한창

오페라에 탐닉한 말년의 특이성을 보여준다고 본다면, 진정

대중적인 음악 앨범은 이것이 유일할지도 모른다.



신디사이저와 뉴웨이브 요소를 팍팍 쓴 미래 지향적 레트로

사운드의 본작은 마지막 전성기를 달리던 머큐리를 느껴볼

만한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라 할 수 있다. Made in Heaven,

I Was Born to Love You, Living on My Own

양질의 곡들을 수록하였다. 메이드 인 헤븐은 추후 밴드가

재녹음하여 수록한 그 곡의 원곡이다.



('I Was Born to Love You' from Mr. Bad Guy, 1985)




 (A Kind of Magic)




86년에 그들은 앨범 A Kind of Magic으로 돌아온다.
웸블리 이후 첫 공식작이자 발매 기념 월드 투어를 단행한
마지막 앨범이다. 또한 러셀 멀케이 감독의 SF액션 영화
하이랜더의 비공식 OST이기도 하다. (하이랜더 시리즈는
1편까진 괜찮게 봐줄 만하다.)


A Kind of Magic, One Vision, Friends Will Be Friends,
Who Wants to Live Forever, One Year of Love  히트
싱글을 배출했다. 특히 영화의 스토리 내용을 담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제 머큐리의 최후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Who Wants~를 들으면 괜시리 숙연해지게 마련이다.


('A Kind of Magic' from eponymous album, 1986)



('Who Wants to Live Forever' from A Kind of Magic, 1986)




대략 이 무렵부터 이제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머큐리의 건강이
나빠졌다고 한다. 하지만 멤버들과의 녹음이나 평소 받아오던
오페라 및 발레 레슨 등 일상적인 예술 작업에는 죽는 순간까지
열정적으로 임했다. 메이도 부부간 사생활에 문제가 생겨 여러
모로 밴드가 앨범 작업에 매진하기는 힘든 때였다고..


86년에는 영국의 프로듀서 데이브 클락의 뮤지컬 컨셉트 앨범
Time에 참여하여 동명의 트랙을 싱글로 발매하여 호평받았다.
87년엔 55년 발표된 플래터스의 R&B곡 The Great Pretender
리메이크 발표하여 원곡보다 훌륭한 해석이란 칭찬도 받게 된다.
(전에 한 번 썼듯이 이 두 곡은 그의 인생작이라고 생각한다.)


88년에 그는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대비하여 스페인 최고의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와 일종의 팝페라 앨범인 Barcelona
발표한다. 이때 함께 작업하던 사람들이 성악과 오페라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에 놀랐다는 풍문도 남아 있다.


그러던 와중 89년이 되어 The Miracle 앨범을 출시한다.
우여곡절 끝에 출시된 본작의 완성도는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다.
The Miracle, I Want It All, The Invisible Man, Breakthru
등 얼핏 들어도 생각나는 좋은 트랙들이 성공을 거두었다. 아래에
아원잇올의 뮤비, 잠깐만 봐도 그의 모습이 초췌해보여 착잡하다..


 (The Miracle)



('The Great Pretender', 1987)

*독일 방송에 출연하여 립싱크하시는...



('I Want It All' from the Miracle, 1989)




 (Innuendo)




거의 말년이 되어간 그의 삶은 조용하게 음악 작업하는 나날들로
채워진 듯하다. 마지막 연인이 된 짐 허튼과 함께. 91년에 드디어
그의 생전 마지막 앨범 Innuendo가 죽기 아홉 달 전에 발표된다.
마지막 불꽃을 화려하게 태우고 사라져가는 촛불처럼 머큐리
멤버들의 작업물은 놀라웠다.


타이틀 트랙 Innuendo는 80년대 내내 선보인 머큐리의 연극적
퍼포먼스를 음악으로 표현한 듯 드라마틱한 구성이 돋보였으며
예스의 기타리스트 스티브 하우가 특별히 초빙되어 어쿠스틱 기타
협연을 펼쳐 보였다. I'm Going Slightly Mad, Headlong,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 등 한 곡 한 곡이 예술가의
인생을 통째로 정리하는 듯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절정감은 The Show Must Go On에서 느낄 수 있었다. 프레디
머큐리 말고 이런 주제를 이토록 아름답게 그려낼 보컬리스트가
과연 또 있겠는가, 탄식하는 팬 투성이였다. (단, 작곡은 메이가..)
하지만, 롤링 스톤 지는 이번에도 더럽게 까댔다.


('Innuendo' from eponymous album, 1991)



('The Show Must Go On' from Innuendo, 1991)




마지막 불꽃을 화려하게 불사른지 아홉 달 후에 그는 숨을 거둔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 그를 보내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이듬해

92년 4월 20일에 대대적 규모의 헌정 공연 The Freddie Mercury

Tribute Concert가 개최된다.



아마도 대부분의 한국 음악 소비자가 팬덤화하는 과정에서 처음

접했을 법한 외국의 공연 문화였을 거다. 당시 영미권 음악계를

지배했던 주류 아티스트들이 쪽팔림도 무릅쓰고 머큐리의 음악을

따라 부르며 비교질 당하는 영예를 기꺼이 마다 하지 않았다. 한

음악가가 또 다른 음악가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헌사인 셈.



엘튼 존, 로버트 플랜트, 데이빗 보위, 로저 달트리, 토니 아이오미,

애니 레녹스, 폴 영건즈 앤 로지스, 데프 레파드, 메탈리카, 익스트림

등이 여기에 동참한 당시 탑클래스의 헤드라이너들. 지금 봐도 이런

사람들 어떻게 다시 모을까 싶다.



모두 쪽팔림을 감당하며 어려운 원곡을 쩔쩔 매고 소화하는 성의를

보여주었는데, 단 한 사람만은 왠지 '어쩌면 원곡만큼 매력적일지도'

하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당대 최고의 블루 아이드 소울 보컬리스트

조지 마이클이었고 그가 의 세 멤버 및 합창단과 함께 한

Somebody to Love는 그해 최고의 인기곡이 되었다.



이 공연 두 달 전에는 음악을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 웨인스월드

개봉해 Bohemian Rhapsody를 삽입했고 영화 속 헤드뱅잉

인기 덕분에 원곡을 역주행시켜 빌보드 핫100 2위에 재진입시킨

엄청난 흥행몰이를 가져오기도 했다.





('Somebody to Love' by Queen ft. George Michael, 1992)




 (Made in Heaven)




머큐리의 목소리를 담은 마지막 정규 앨범 Made in Heaven

95년에 발매된다. 그의 솔로 앨범에 실렸던 Made in Heaven,

I Was Born to Love You 등에 멤버들이 어레인지를 추가해

포함시켰고 Too Much Love Will Kill You, Heaven for

Everyone 같은 새로운 트랙과 생전 마지막 육성 녹음을

조합하여 만들어낸 헌정 앨범의 연장선이었다.



메이가 다른 작곡가들과 만든 Too Much Love~는 밴드의

앨범에 수록된 것과 메이의 솔로 앨범에 실린 것, 두 가지

버젼이 존재한다. 테일러는 그렇다 치고 메이도 참 노래 잘

하는구나, 하는 점을 모든 사람에게 각인시킨 곡이었다.



('Too Much Love Will Kill You' from Made in Heaven, 1995)



('Too Much Love Will Kill You' by Brian May, 1995)




97년에 존 디콘은 영원히 음악계에서 은퇴한다. 본래부터

내성적이고 머큐리의 카리스마적 퍼포먼스를 존경했던

밴드의 막내였기에 남은 두 사람도 존중한 결정이었다.

04년부터 09년까지 나머지 두 사람은 의 이름으로 역시

전설적 보컬리스트인 폴 로저스와 투어를 돌기도 했다.



70년대 전설적 블루스락 밴드 프리배드 컴퍼니의 탁월한

보컬리스트였던 폴 로저스. 뭔가 새로운 창작 활동이 생기나

기대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저 예전 곡들을 불러주는 것에

그쳤고 반응도 아주 뜨거웠다고 보기는 애매했다고 본다.



다만 생전에 머큐리가 보여주고 가지 못하고 떠난 몇몇

트랙의 라이브를 구경할 수 있었다는 보람은 있었다고.

아래 아원잇올처럼. 이들 세 사람은 이 포맷으로 08년에

앨범도 한 장 냈지만 반응은 뜨뜨미지근한 수준에 그쳤다.






폴 로저스와의 작업을 통해 젊은 피 수혈이 필요하다고

느낀 모양이다. 메이테일러 두 사람은 신임 보컬리스트

수소문 작업을 벌였고 11년부터 아메리칸 아이돌 스타로

널리 알려진 애덤 램버트를 리투르트하여 투어 멤버로

기용하고 있다. (이 친구는 영화에도 카메오 등장했지.)



워낙 나이 차도 있고 램버트의 젊디 젊은 기량에서 오는

안정감이나 탄탄한 보컬 실력 덕도 있어, 대체로 기존

팬덤은 이렇게나마 들을 수 있다는 데에 감사하기도

하고 안도하기도 하는 듯하다......만, 누구도 프레디

대체할 수 없다는 여론도 만만치는 않다.



(왜 꼭 대체 보컬을 계속 구해야 하냐고? 그냥 그만 두면

안 되냐고? 이 분들의 직업이 계속 연주하고 투어를 도는

밴드 뮤지션인데 그렇게 반응을 보이면 좀 섭섭할지도...

어찌 되었든 지구상 어딘가에서 의 음악이 계속 현재

진행형으로 연주되고 있다면 만족스러운 일 아닐까.)



(하지만 비교가 되는 건 사실...)




프레디 머큐리의 너무 이른 죽음은 30년 가까이 지난

일임에도 당시 참 충격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민

2세대로서 사회 소수 계층의 설움을 동병상련했던 그의

존재감이나 이에 영향받아 형성된 예술적 자아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 건 세월이 한참 흐른 후였던 것 같다.



은, 참 미국 시장 주류와 인연이 없었다. 언론으로부터의

야박한 평가도 이와 연관이 있다고 믿는다. 미국 음악 시장의

메인스트림은 이른바 그래스루츠라고 하는 블루스 계열

코드에 있다. 이들 음악은 상대적으로 블루스의 영향이

약하다. 재즈나 컨트리, 포크와도 멀다. 아마도 이 때문이지

않겠나 조심스럽게 추정한다.



루츠가 채우지 않는 빈 자리를 머큐리디콘 멤버들이 클래식,

펑크funk, 뉴웨이브 등으로 메꾸어 드라마틱한 표현성을 중시한

작품을 만들어갔다. 미국에선 절대로 먹히지 못한 창작 문법이다.

대신 미국을 제외한 세상은 항상 프레디를 연호했다. 전 세계

판매고 2억 장이 어디 그냥 나올 기록이겠는가.



 (The Great Pretender, single)




포스팅의 주인공인 머큐리가 피아니스트이고 일렉트릭 피아노

싫어한 반면 신디사이저는 꽤 다룬 성향인지라 상세히 들고 파진

못했는데, 사실 사운드의 핵심적 매력은 메이가 연주한 특별한

일렉트릭 기타 레드 스페셜에 있다. Danelectro Shorthorn

비슷하게 생긴 기타는 참 특별한 것이, 메이가 음악을 시작할

무렵 무려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악기이기 때문이다.



http://www.queenconcerts.com/instruments/piano.html



독특한 보드와 픽업 디자인을 거친 탓인지 다른 기타리스트

누구보다 그의 톤은 특별하고 이채로워 음색 만으로도 그가

연주한 것임을 구분할 수 있다. 또한 탈 블루스 성향이면서도

클래식하고 글램스러운 의 사운드에 여지없이 어울리는

톤이기도 하다. 세간의 박한 평가의 이면에 뭔가 이질적인

기타 톤까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오버일까.



(Steinway Concert Grand)



(Red Special)






첫 히트작 킬러퀸이나 바이시클 레이스처럼 머큐리가 작곡한

트랙들을 보면 수십 년 전 벌레스크 쇼뮤직 홀 사운드를 듣는

홍키통크 피아노가 중심이 된 살롱 음악이 연상된다. 아마도

그가 겪은 유년 시절의 추억과 연관이 있을 터이다. 살롱의 낡은

피아노에 맞추어 화려한 가운을 흐느적거리며 끈적한 노래를

부르는 여가수의 모습. 그가 평생 꿈꾼 음악적 아이덴티티가

아니었나, 추측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굿올패션 러버보이 같은 트랙이야말로 전성기
프레디 머큐리의 섬세한 음악성을 대변할 만한 곡인 듯싶다.
개인적으로 최애하는 곡이기도 하고. 아껴 두었다가 링크를
걸며, 끝으로 그의 열정적 예술혼에 헌사를 바친다. 아름다운
음악을 남겨 많은 사람의 영혼을 구제한 공으로, 저 세상에선
멋쟁이 차림에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행복하게 노래하고 계시.


('Good Old-Fashioned Lover Boy' from A Day at the Races,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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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노래를 잘 한다.. 또는 노래 잘 함을 추구한다 할 때
클리셰처럼 쓰는 표현이 '천상의 목소리'이다.
(본 블로거가 아는 한 성악가는 예명이 skyvoice이다...ㅎㅎ)


천상의 목소리가 뭘까?
천사가 내는 목소리? - 들어본 사람이 없지 않은가?
들으면 천국이 열리는 목소리? - 안 열리면?ㅋ


뭔가 특별하게 정의가 내려질 법도 하건만
진정한 천상의 목소리란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 같다.
그냥 들었을 때에 딱 '아, 이것이구나' 하고 감이 오게끔
만드는 그런 목소리이어야 한다고나 할까?


위대한 보컬리스트의 이야기를 하려고 서론을 뽑았다.
존 앤더슨 Jon Anderson 이다. 아!!!



락 음악 역사상 위대한 보컬리스트 하면
누구요~ 누구 빠졌어요~ ... 하는 소모적 논쟁이 벌어질 텐데
거기에 동참하고픈 마음은 결단코 없고...
본 블로거는 그냥 앤더슨을 천상의 목소리로 밀련다.
아니, 내가 밀지 않아도 그는 이미 그러하다. 거럼...


예를 들어 로버트 플랜트를 보자.
기본적인 미성은 타고 나야만 하는 것이고
날카로운 쇳소리는 미성에 샤우트 창법이 합쳐져야 하는 것...
이따금씩 서정적이거나 연극적인 코드는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감성을 키워낸 것이다.
선천성과 후천성의 배합으로 따지자면
플랜트는 50% : 50% 정도...?


꽃미남 시절 플랜트.. 곱기도 하네..



이언 길런을 보자.
그는 원래 락을 할 수 있는 목소리를 타고나지 못했다.
늙어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순전히 노력에 의해 목소리를 만들어 냈다.
선천성과 후천성의 배합은 20% : 80% 정도...?


길런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더랬지..



존 앤더슨에게 선천성과 후천성의 배합을 따져 본다면?
90% : 10% 정도 아닐까 싶다. 모르긴 해도...


엄청나게 공격하는 분들 많겠지만 나름 근거는 있다.
본 블로거, 늙은 재결합 버젼 예스의 라이브를 많이 봤지만
단언컨대 앤더슨이 힘들어 하는 제스처를 본 기억이 없다.


별로 힘에 부치지 않고도
모든 트랙의 노트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짚어주는
촌철살인(응?) 카리스마적 해석능력... 그것이 앤더슨...
이런 철두철미함이 젊어서도 그러했고 늙어도 마찬가지이다.


젊은 레드 제플린의 라이브를 참 좋아하지만
이미 플랜트는 그 시절부터 한 키 내리는 모험을 감수키도 했다.
길런이야 워낙 소리가 어려우니 삑사리 부지기수였고...


노래를 잘 부른다 못 부른다의 이분법적 사고를 떠나서
앤더슨이 소리를 뽑아내는 자태를 보아하면
내심 무한정의 질투 에너지가 생성된다.
'저런 소리를 저렇게 힘들이지 않고...!'
실제로 해보면 결코 만만치 않은 노트들이다, 물론!


플랜트와 길런의 절창도 막상 따라 하려면 힘들지만
'뭐, 저들도 저렇게 힘들어 하니' 하는 위안이라도 느껴지는데
앤더슨에게서는.. '저렇게 힘들여서 音을 뽑아내고 있구나'
- 하는 인상을 절대로 읽어낼 수 없다는 것...
바로 이것이 이유 아닌 이유이다. 터무니 없는가?


그의 악기는 어쿠스틱 기타...
(그것 그렇고, 아유 참 어리네..)



또 한 가지, 앤더슨이 천상의 목소리인 이유...
그의 노트는 재현하기가 어렵다!
(응? 공책이 어렵다고? -.-)


그가 부르는 한 음 한 음은 이어 나가기가
결코 쉽지 않은 음렬이라는 말씀...
이건 아마도 왠만한 평론가와 식자층이
모두 인정할 것이다.


그의 노트들이 어렵다는 점은
그와 함께 한 연주자들이 어떤 성향의 인물이었는지만
대충 훑어 보아도 답은 나온다.


예스 시절엔 릭 웨이크만이 함께 했고...



스티브 하우도 있었다.



80년대는 반젤리스와 함께 했고...



마이크 올드필드와 함께 하기도 했다.



변화가 심한 음렬, 장조와 단조를 파고드는 화성,
변박과 재즈적 엇박자들, 몽환적인 사운드 톤...
뭐, 이들 서넛의 공통점만 꼽아봐도 대략... 난감이다.
'바보들의 어렵기만 한 작곡기법'..
백과사전 편찬하면 제1장에 언급될 사람들이다.


이런 바보들의 대표 트랙?
예스 시절엔 Roundabout을 빼고 얘기할 순 없을 것이고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Close to the Edge..
스티브 하우의 인트로가 인상적인 Long Distance Runaround..
아, 대곡에 명곡인 Starship Trooper까지... 빼놓을 곡이 없다!


존 & 반젤리스 시절에는 (한국서만 히트한) Polonaise 말고도
서양에서는 Friends of Mr. Cairo가 가장 히트곡일 것이다..
본 블로거는 Deborah를 쬐금 더 좋아하지만..
존 & 올드필드의 대표곡이라면 Shine일 것이고.. (Mr.빅 아님)
앤더슨이 솔로로 발표한 Hold on to Love도 참 좋다.


한 곡 한 곡 앤더슨만이 소화할 수 있는
고음역의 몽상적 사운드가 물씬.. 가득할 터..!
앤더슨의 멜로디 성향을 보면 그는 확실히
브리티쉬 포크의 영향을 짙게 받았음이 분명하다.
아메리칸 하드락의 블루~한 전통과는 달라요..


이들과 주욱 함께 수십 년을 함께 동고동락했고
이들이 한때 가장 신뢰했던 보컬리스트라면...
오히려 네임밸류에서 조금 앞선다는 그 어떤 다른
보컬리스트보다 좀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지 않은가..


이 핑게 저 핑게 모두 집어치우고..
최근에 Polonaise를 요모저모 다시 뜯어 들었지만
앤더슨의 보컬은 흉내내기가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어렵지 않은 듯 자연스레 고개를 젖히며
폐부를 가르는 흉성을 한풀이하듯 뽑아내는
그 절창의 재능이란... 참...


후배 보컬리스트들을 더욱 좌절케 만드는 일이 뭔지 아는가?
- 나이를 먹어서 저런 소리를 더 자연스럽게 뽑아낸다는 것!!
지천명의 앤더슨이 Roundabout을 오리지널 키로
뽑아내는 광경은 실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DVD로 확인하시라..


참 곱게도 늙어가시네요... ㅎㅎ



본 블로거, 개인적으로는
Polonaise는 삶이 무료하고 무기력해질 때 자주 듣는 트랙...
Roundabout은 새로운 활력소가 필요할 때 찾아듣는 트랙...
들로 나름 정의하여 인생을 함께 하고 있는데..


그가 내게 주는 활력은 바로 천국을 맛본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에너지, 그것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천상의 목소리란 본 블로거에게서
이렇게 정의가 내려지는 것인가? - 아마도...ㅋ


천상의 목소리, 존 앤더슨을 음미해 보라.
천국을 맛볼 수 있을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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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이 분야 포스트를 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가
오늘 한 곡의 청명한 트랙을 들으니 마음이 동한다.


When the Heart Rules the Mind인데... (이하 WHRM)
이 골드 앨범에 청명한 보컬을 제공한 보컬리스트..


맥스 베이컨 Max Bacon 되시겠다...



그는 모비 딕이나 나이트윙 같은 밴드에서 활약했다고
기록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사실 그의 유명세는 오직 한 밴드..
GTR에서 활동한 기록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GTR...
조용히 한 장의 앨범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 버린..
락 팬들에게 전설처럼 남아버린 그 밴드..


전설의 밴드가 남긴 전설의 명반...



'발끝을 맞춰서봐'라고 외치는 아름다운 발라드가
지금도 음악팬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주는 그 수려한 트랙들..
그것들을 만들어낸 80년대 중후반의 밴드 되시겠다.


GTR은 1986년에 가공할 기타리스트
두 명이 의기투합하면서 락 씬에 등장했는데...


스티브 하우 Steve Howe



스티브 해킷 Steve Hackett



두 스티브가 그들이다.
'가공할'이란 표현을 썼지만 당시엔 정말 가공할 일이었다.
한 밴드에서도 보기 힘든 걸출한 뮤지션들이
여러 명씩 의기투합하여 밴드를 만들다니...
그리고 그 앙상블이 매우 뛰어난 결과물을 빚어내다니...


그렇다. GTR은 80년대에 유행한 수퍼밴드 되시겠다.
수퍼밴드의 시작이 야드버즈요, 그 끝은 미스터빅이라고 했던가...
일반적으로 수퍼밴드는 걸출한 아티스트.. 보통은 기타리스트가
다른 핵심멤버를 규합하는(=꼬셔내는) 형태로 시작하고는 한다.


레인보우는 리치 블랙모어가 주동하였고
오지 오스본 밴드는 오지가 주동하였다.
배드 잉글리쉬는 닐 숀이 불러 모았고...


보통 어느 한 사람이 주동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던 데에 반해
GTR은 두 스티브가 비슷한 비중으로 합심하였다는 점이 다르다.
두 스티브.. 둘 다 프로그레시브 씬에서 한 가닥 하던 기타리스트이다 보니까
일렉트릭 기타의 새로운 영역을 실험하는 데에 팀컬러의 비중을 두게 되었다.


(물론 그 '새로운 영역'이란 에드워드 반 헤일런이나 닐 숀의
정확하게 정반대편에 위치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드락 기타가 표현할 수 있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


이름도 GTR.. guitar의 약어이다.
이들의 트랙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일렉기타가 이런 소리도 가능한가?' 하는 의문을 자아내는
사운드가 아주아주~ 즐비하다. 풍성한 gtr의 향연..


특히 WHRM에서 해킷이 연주한
synthesizer guitar의 사운드는 아주 유니크하고 unforgettable하다.
이들의 뮤직비디오를 못 본 사람들은 인트로에 등장하는 사운드가
키보드로 연주한 것일 거라고 지레짐작할 터이다. 그러나 기타였다 사실은..


해킷은 언제나 저 사진에 보이는 안정감 일백프로의 포스쳐로
조용하고 사색적으로 음미하듯이 기타를 연주하는데..
저 포즈로 조용하고도 박력있게 얼터네이트 피킹을 날려주시는..
바로 그 사운드가 WHRM의 인트로 프레이즈 되시겠다.
멋진 사운드 아닌가?


하우는.. 아시다시피..
클래시컬하고 스페니쉬한 프레이즈를 즐기는 연주자이고..
이 앨범에서는 그의 이런 특성이 그리 강하게 풍겨 나오지는 않는다.


기타의 새로운 사운드.. 라는 취지에 동감한다면
이 앨범은 하우보다 해킷의 지배력이 더 강한 앨범이었다..고
그렇게 평가하고 싶다.


밴드의 출신 배경이 이렇다 보니
너무 기타리스트 얘기만 했는데...
이런 그들의 '새로운 영역' 운운하는 사운드에
묘하게 합치하는 음색이 맥스 베이컨이었다.


혹자들은 그렇게 얘기한다.
"지티알이 왜 깨졌는지 알아?"
- "맥스의 '앵앵거리는' 소리가 짜증나서야!"


앵앵거린다... strident라고 정확하게 위키피디어에 표현되어 있다.
보컬리스트의 역량을 두고 이런 단어를 써가면서 폄하할 수 있는지 의문인데...
(나 참...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노래를 얼마나 잘 하길래?)


비록 맥스 베이컨이 GTR 실적 이외에 혁혁한 성과가 눈에 띄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뮤지션으로 살아온 사람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 앨범에서 보여준 유니즌과 싱크로는 최고였다고 말하고 싶다.


앨범의 성과가 이를 입증하지 않는가?
비록 한 장밖에 남기지 못했지만 GTR의 유일한 스튜디오 앨범은
앨범 차트 11위까지 올랐고 싱글로서 WHRM은 14위까지 올랐다고 한다.
어디 이런 성과가 두 스티브에게서만 비롯된 것이겠는가?
락큰롤은.. 종합무대예술이고 팀웍에 의한 결과물이다.


맥스의 사운드는, 물론.. 일반적으로 락 보컬리스트들이 지향하는
선굵은 보이스 컬러와는 정확하게 차별적인 무언가가 있다.
성대를 트레이닝하는 방법이 처음부터 달랐던 것 같고..
어쩌면 타고 난 자연음색이 변성기를 거쳐 안착한 경로가
다른 사람과는 달랐음에 틀림없다.


속된 말로, 락음악을 배우는 과정에서
보컬리스트들이 흔히 접어들게 되는 경로...
'목소리를 맨바닥에 갈아버리는' 트레이닝 코스... 그리고 득음하는...
맥스 베이컨은 바로 이 과정을 생략해 버린 것이다.


왜? - 그야, 타고난 자신의 음가에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자신만만하고 쿨한 태도인가?
한 아티스트의 당당한 애티튜드가 물씬 느껴지지 않는가?
그 애티튜드인즉슨.. WHRM의 테마를 장식하는 그 당당함.. 되시겠다.
"When the Heart~ Rules the Mind~" 얼마나 시원시원한가?


이와 비슷한 음색을 갖고 있는 보컬리스트는
피터 세테라, 피터 가브리엘, 제이슨 쉐프 정도...?
가브리엘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음에서 살짝 아슬아슬한
'목에서 나는' 소리를 즐기는 보컬리스트들 되시겠다.
덕분에 삑사리 확률이 가장 높은 이들이기도 하다. (가브리엘 빼고..)


Toe the Line을 듣고 그 애절함에 눈물지어 본 사람이라면...
적어도 맥스의 목소리를 두고 '앵앵거림(strident)' 운운은 안 했으면 한다.
어찌 되었든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한 절세가창의 보컬리스트였으니까...


자, WHRM에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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