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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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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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분 이야기할 차례가 되었네. 사상 최초

내한 공연의 직관 준비는 하고들 계신지 몰겄다.

팝 음악 이야기를 하면서 이분들 스토리 제껴놓고

간다는 게 말이 되나... 매도 얼른 맞았어야 했건만.



80년대 이후 세계 락 음악사 전체를 상징하며 그 전설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레전더리 액트, 유투 U2의 네 멤버와

그들을 대표하는 프론트맨 보노 Bono의 이야기... 시작한다.












*Sunday Bloody Sunday from A Conspiracy of Hope

**86년 6월 Amnesty International 주관 콘서트.

 - Bono 보컬에 있어 궁극의 최대치를 확인할 수 있는 공연.

 - http://www.u2gigs.com/Conspiracy_Of_Hope.html




*Bad from Live Aid

**85년 7월 13일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

 - 7분경 관중을 막지 말라며 객석으로 몸소 난입하시는 Bono.

 - 9' 25"에 갑자기 삽입한 음률은 Rolling Stones가 원.

 - The Edge, 아직 모자 쓰시기 전..




팝 음악에 입문하여 청소년기를 보낸 시기가 이들의

전성기와 시절을 공유하기에 U2와 함께 성장한 세대의

일원이라 자부할 수 있겠는데.. 사실 한창 인기 있을 때

이들을 아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고 딱 인기있는

만큼만 바라본 것 같다.



누군가에게 U2를 설명할 때 기준점을 어디에 둬야 할까.

연주력? 멤버 모두 한 가닥씩 하는 프로듀서들임을 부인하긴

힘들지만 흔히 정통 락 성애자들이 선호하는 비르투오소 풍의

테크닉을 가진 연주자들이라고 하기보다... 개성으로 충만한,

스타일링에 능한 재주꾼들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장르? 포스트 펑크에서 실력을 갈고 닦아 출발한 점은

맞겠으나 초창기 몇 장의 앨범까지만 한정했을 때이다.

익스페리멘탈의 영향을 받은 80년대는 이노 중심이

이례적 시기였을 터이고... 얼터너티브의 기준을 제시한

90년대를 지나.. 결국 U2의 장구한 음악사는 특정한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이라는 보편적 줄거리 하나로

통일할 수 있을 터이다.



가사 및 메세지? 정치사회적인 주제를 빈번하게 드러내는

밴드임에 틀림없고 영미권의 비주류인 아일랜드 가톨릭의

정체성이 예술적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가들이겠지만...

그들의 모든 음악을 프로파간다나 저항 가요로 취급할

순 없는 노릇..



수상 경력? 2억 장에 가까운 판매고, 스물 두 개의 그래미

어워드 트로피, 락앤롤 명예의 전당 헌액 - 그것도 단번에,

롤링 스톤 선정 100대 아티스트 랭킹 등 숱한 영예의 기록을

남겼건만... 어디 그것만으로 충분히 정의 내릴 분들이던가.



투어 실적? 공연 성적에서 이들에 필적할 만한 액트가

롤링 스톤즈마돈나, 플로이드 정도 외에 없을 듯하니

세상에서 공연 가장 잘 하는 음악가로 소개할 만하지만,

단순히 상업적인 성공 이상을 상회하는 대중 문화 전체

아이콘으로서의 상징성을 제쳐놓고 설명할 수가 없다능.



결국 이 모든 요소를 합친 존재감... 대중적 락밴드 포맷

위에 독창적인 스타일을 가진 개성 만점의 네 캐릭터들이,

결성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게 사회를 진지하게

인식하는 세계관을 구축함으로써 음악 산업을 총체적으로

표징하는 심볼로 발전하니, 숱한 수상 기록과 기념비적인

투어 성적은 부수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었던... 락 음악

사상 최고의 아티스트 다섯 손가락에 능히 꼽힐 만큼

위대한 이름이 바로 U2가 아닐까 싶다.



본 포스팅에서 U2를 풀어냄에 있어 종전처럼 시간 순서대로

하는 방식은 다소간의 식상함도 있을 듯하고 논평하시는 다른

분들이 얼마든지 다른 데서 하시고 있는 듯하여.. 대략 하고

싶은 이야기를 주제별로 포인트만 줄줄 풀어보려고 한다.

글 솜씨가 궁하야 시대순에 가까운 서술이 되었지만서두..




- 글 싣는 순서 -

포스트 펑크와 릴리화이트 중심의 출발선

메세지에 눈을 뜨다: 아일랜드, 사회정치, 기독교

브라이언 이노와의 만남 - 조슈아 트리, 라누아

밴 모리슨의 영향과 아이리쉬 루츠 소울

얼터너티브의 새 기준, 90년대와 악퉁 베이비

월드 투어와 스타디움... 더 후를 꿈꾸며

기본으로 돌아오다 - 2000년대 이후

그래미가 사랑한 그들, 사회 활동가로서

U2/ 헤어 메탈과 글램이 아닌 것들의 여집합




 (Boy)



 (October)



 (War)



 (The Unforgettable Fire)



 (The Joshua Tree)



 (Rattle and Hum)



 (Achtung Baby)



 (Zooropa)



 (Pop)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



 (No Line on the Horizon)



 (Songs of Innocence)



 (Songs of Experience)






 포스트 펑크와 릴리화이트 중심의 출발선




('I Will Follow' from Boy, 1980)

*U2의 투어 셋리스트에서 한 번도 빠진 적 없는 가장 오랜 트랙.



('Fire' from October, 1981)




1~2집 무렵까지 U2가 밴드 포맷을 형성하는 데엔 포스트 펑크

장르의 기반과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으며, 이는 초기부터 평생

이들과 함께 사운드 메이킹의 궂은 일을 도맡아 온 프로듀서

스티브 릴리화이트가 분전한 덕택이다.



특히 텔레비전조이 디비전 등 70년대 액트의 영향이 컸다.

릴리화이트의 영향으로 수지 앤더 밴쉬스도 엄청 탐구했다고.

래리 뮬렌 주니어학생 게시판에 밴드 멤버 공고를 올렸을

때만 해도 형편없는 실력이었다던 이들은 릴리화이트를 만나

음악을 일구는 방법론을 터득하게 되었다능. 이들과 동시대

혹은 약간 앞서던 저 밴드들의 음악에서 힌트를 얻었다네.



더 클래쉬, 라몬즈, 패티 스미스를 위시한 정통 펑크 씬 선배들이

예술과 유흥의 적당한 중간 지점에서 음악적 자유를 추구하는

태도를 시발점으로 하였다 하며, 여기에 미니멀한 어프로치와

장르의 변형을 혼합하는 포스트 펑크의 기본 정신을 적절하게

배합함으로써 자신들만의 방법론을 확립하게 된다.



('Marquee Moon' by Television,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g4myghLPLZc



('Hong Kong Garden' by Siouxsie and the Banshees,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Y-l9GQJRl9Y

*공동 프로듀서가 Steve Lillywhite였다.



('Love Will Tear Us Apart' by Joy Division,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zuuObGsB0No




80년 1집 Boy 81년 2집 October는 그런 방법론이 너무나

선연하게 드러나 당황스럽기까지 한 초창기 작업물. 릴리화이트

중심의 프로듀싱 체제가 유지된 83년 3집 War에 이르기까지도

이런 성향은 줄곧 일관성을 가지고 이어져 간다.



BoyI Will FollowOctoberFire를 들어보면 솔직히

동시대 포스트 펑크와 별반 차이가 느껴지진 않는다. 어딘가

잠재한 가능성이 꿈틀대는 기미가 느껴지네, 까지는 알겠는데

아직은 가능성에만 머무르던 꿈많던 시절. 에 동시대 해당

장르를 이끌던 선배들의 음악과 비교하면 그 미세한 차이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I Will FollowFire 등에서 자신만의 스타일링을

완성해가는 디 에지 발견하는 일은 큰 기쁨이다. 이런 문법에

쉽게 동의가 어렵다면 어차피 U2와 친해진다는 건 어불성설이니.

확실히 이 당시 디 에지를 보면 펑크의 정신을 따라가면서도 여느

포스트 펑크 기타리스트와 다른 캐릭터임이 또해지고 있었다.



릴리화이트의 절대적 영향력은 83년 3집 War까지 지속되었다.

War릴리화이트의 카리스마와 네 뮤지션들 스스로의 주체적

정체성 자각이 바톤을 교환하듯이 서서히 오버랩하는 모멘텀의

증거물이었다. 바야흐로 진짜 음악가가 되어가는 그들..






 메세지에 눈을 뜨다: 아일랜드, 사회정치, 기독교




('Sunday Bloody Sunday' from War, 1983)

* "This song is NOT a rebel song."

 - 세속의 정파적 이익을 좇으려 한 것이 아니라 비참하고

   슬픈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려 한 예술적 의도이니

   거기에만 주목해 달라는 메세지를 줄곧 설파하곤 했다.



('New Year's Day' from War, 1983)

*80년대 바웬사가 이끈 폴란드 자유노조 연대 이야기.



('Bad' from The Unforgettable Fire, 1984)

*당시 더블린에 만연하던 헤로인 중독 현상을 노래한 가사.




U2 멤버들이 뮤지션으로서 스스로 봉인을 깨는 계기는

사회와 정치 환경의 변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이들이 열 살을 갓 넘겼을 무렵 72년 1월말 북아일랜드

데리에서 벌어진 대사건은 여러 변화 가운데서도 가장

충격적인 것으로서 이들 넷의 본질적인 역린을 건드리고

만다. 아일랜드인으로서의 정체성, 바로 그것이었다.



피의 일요일 사건, 블러디 선데이라 명명된 사건은 5.18

광주의 아일랜드 버젼. 83년 3집 War의 가사를 작업하던

보노Sunday Bloody Sunday 걸작을 창작하기에

이르고 정치사회적 심볼로 급성장하는 밴드의 이미지는

시그니처 트랙을 기화점으로 하여 형성된다. -

그린그래스 감독의 02년 영화와 본작 가사를 동시에

음미하며 감상한다면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80년대 유럽과 북미는 부패한 기득권에 대항하는 저항적

사회 집단의 투쟁이 다양한 양상으로 터져나온 시기였고

보노는 세상의 뜨거운 이면에 눈을 뜬다. WarNew

Year's Day는 폴란드 바웬사가 이끈 자유노조 연대의

반독재 투쟁에 주목하였고, 84년 4집 The Unforgettable

Fire에 실린 Bad는 더블린의 사회 현상이 되어버린 마약

중독 소재를 다루었다.



4집의 Pride마틴 루터 킹 목사에 관한 책을 읽고 받은

느낌을 술회한 히트 트랙이었고, 87년 5집 The Joshua

Tree에 이르러 Mothers of the Disappeared는 중

엘살바도르 내전의 피해자들을 위무한 곡이다. 같은 앨범

Running to Stand Still에선 아일랜드인들의 마약 중독

문제를 다시 진지하게 다루기도 하였다.



애초부터 U2는 종교적 정신 세계를 가사로 쓰곤 했는데

작사가인 보노의 철학적 자의식이 성장함에 따라 외연이

더욱 확장한 셈이다. 원래 그가 즐겨 다룬 스토리로 가톨릭

문화를 기반으로 한 영성적 이미지가 한 축을 차지했는데

OctoberGloria 같은 트랙이 대표적이었다.



솔까말, Joshua Tree의 전체 컨셉 자체가 미국 투어 중에

경험한 영적 체험과 연관이 있다는 썰이... 제목부터 여호와

나무 아닌감. - 실은, 중앙 아메리카를 여행하며 미국 대외

정책의 폐해를 몸소 체험한 보노가 '위대한 아메리카의 정신이

이런 거냐!'고 통렬하게 일갈하는 메세지란 것이 정설이다.

레이건 시대 아니였겠냐.. 속 터지는.. 커버 아트에 담은

식물은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에 자생하는 희귀종이며

본작 이후 U2의 심볼로서 세계적인 이미지를 얻게 된다.



('Gloria' from October,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4X_45Yngey4

*83년 라이브 Under a Blood Red Sky 버젼.

 - 사실 이 곡의 진정한 백미는 Adam Clayton의 베이스 연주.



('Running to Stand Still' from The Joshua Tree, 1987)

https://www.youtube.com/watch?v=7OFmMDYTOt0

*아일랜드인들의 마약 중독 현상을 주제로 한 문제작.






 브라이언 이노와의 만남 - 조슈아 트리, 라누아




('Pride (in the Name of Love)' from The Unforgettable Fire, 1984)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주인공으로 한 스토리.



('With or Without You' from The Joshua Tree, 1987)

*전설의 시작. 뮤직 비디오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 심오한 어덜트 로맨스 가사이지만 중의적인 종교적 해석도 가능.

 - 인트로 프레이즈에서 드럼 머신 비트를 차. Yamaha DX-7.

 - 1절에 음을 무한정 sustain하는 infinite guitar 기술이 등장.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from The Joshua Tree, 1987)

*이 시기부터 가스펠과 소울의 기운이 움트기 시작했다.

**AFKN에서 이 영상 보는 일이 유일한 낙이었던 시절..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from The Joshua Tree, 1987)

*studio album version.

 - The Edge의 상징과도 같은 딜레이 이펙트가 작렬한다.




War를 끝내고 자아에 눈을 뜬 U2는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기

위해 그릇이 큰 프로듀서를 찾았고 이는 릴리화이트도 동의한

점이었다. 미팅 제의를 받은 브라이언 이노가 본인은 거절하고

대신 추천하기 위해 대니얼 라누아를 데리고 나갔는데, 이들의

잼 세션과 보노의 열정적인 설득에 그만 넘어가고 말았다네.



팝 음악 역사상 역대급의 대사변. U2이노를 만났다. 거기에

대니얼 라누아는 부록.. 릴리화이트를 내친 것도 아니다. 이노,

라누아, 릴리화이트. 이 세 분은 이후 평생에 걸쳐 U2 음악을

지원하는 든든한 프로듀서단으로 자리잡는다. - 이노, 이때

음악 커리어 때려치울까 하던 참이었다는데.. 인생 참 모른다..



브라이언 이노가 어느 정도 레벨의 음악가인지 모르는 사람도

간혹 있던데... 중상위급 히트를 기록한 록시 뮤직에서 기괴한

메이크업의 깡마른 무그 신디 연주자로 커리어를 시작하셨다.

프로그씬 3대 또라이 중 하나로 불리던 시기였다. 물론 앨범

두 장 내고 탈퇴했지만.



또라이 기질로 결코 뒤지지 않는 데이빗 보위피터 가브리엘,

로버트 프립 등의 70년대 앨범들 프로듀싱을 도맡으면서 음악계

최고 수준의 명성을 얻게 된다. 뭔가 아방가르드하고 익스페리멘탈

하면서 프로그레시브 같은데 일렉트로닉 스러운... 어딘지 묘한

실험적 전자음악 분위기 창출에 있어선, 70년대 후반 유럽권을

통틀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분이셨다.



앰비언트란 장르의 창시자이기도 하셨고. 뉴에이지의 조상인 게지..

음향 디자인에도 일가견이 있고 전파 망원경 설계에도 조력했으며

예술 창작 패러다임 전반에 철학적 영향을 끼친 분인지라 단순히

대중 음악가 한 가지 면으로 규정할 수가 없는 먼치킨 천재인 분.



존경받는 대선배와의 작업은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영감을 얻는

과정이었던 바, 이노는 일련의 즉흥 잼을 통해 보노디 에지

클레이튼 등이 스스로의 껍데기를 부수고 새로운 악상을 떠올릴

수 있도록 자신감을 북돋는 역할을 했다. 이노가 채 챙기지 못한

영역을 찾아 다니며 기술적 절차를 메꾸는 역할은 라누아가 큰

도움을 주었고 특히 뮬렌과 짝을 이뤄 드러밍이나 리듬 파트의

음향을 개선하고 혁신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래리 역시 이 시기 라누아의 도움으로 실력이 확 늘어났음을

지금까지도 흔쾌히 인정한다. 라누아애덤베이스 플레잉

테크닉에도 깊은 영향을 끼쳐 종전보다 훨씬 미묘한 뉘앙스를

표현할 수 있는 연주자로 변화시켰다고 한다.

https://www.atu2.com/news/the-larry-mullen-jr-interview.html



('Life During Wartime' by Talking Heads, 1979)

https://www.youtube.com/watch?v=jShMQw2H2cM

*excerpts from live '83 Los Angeles.

 - 보컬 David Byrne, 베이스 Tina Weymouth

 - 키보드 Jerry Harrison, 게스트 키보드 Bernie Worrell



('Once in a Lifetime' by Talking Heads,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TGofoH9RDEA

*excerpts from live '83 Los Angeles.




U2 멤버들은 특히 이노가 작업한 토킹 헤즈의 앨범들을 좋아했다.

하지만 새로운 작업은 기존 포스트 펑크에서 한두 차원 더 진보해

실험적인 전자 합성음을 도입하고 디 에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딜레이 등 다채로운 이펙트를 시험하거나 반대로 아메리칸 포크,

아이리쉬 루츠, 컨트리 블루스 등 전통적인 장르를 탐구하는 등

실로 광폭적인 범주까지 확장이 이루어졌다고.



마틴 루터 킹을 모티브로 한 Pride (in the Name of Love)

동명의 타이틀 트랙을 앞세운 84년 4집 The Unforgettable

Fire는 실험 정신의 첫 결과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들을 세계구급의 진짜 거물로 키운 진정한 대박 작품이 곧

기다리고 있었으니 87년 5집 The Joshua Tree였다. U2

빌보드 200 차트 첫 정상 앨범... 바야흐로 전설이 시작된 것.



With or Without You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U2의 커리어 전체를 상징하는 올타임 시그니처

트랙이 되었고 이들에게 유이한 핫100 차트 탑을 남긴 대박

히트를 선사한다. 뒤를 이은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수록 트랙 전곡이 평단과 대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버릴 곡 없는 명반이 탄생한 것. 대한민국이 민주화의

열망으로 뜨거웠던 1987년, 세계 음악계의 위너U2였다.



('The Unforgettable Fire' from eponymous album, 1984)

https://www.youtube.com/watch?v=oxRr3umJz5Y

*가사는 히로시마 원폭 참상에 대한 내용.






 밴 모리슨의 영향과 아이리쉬 루츠 소울




('Desire' from Rattle and Hum, 1988)



('Angel of Harlem' from Rattle and Hum, 1988)



('All I Want Is You' from Rattle and Hum, 1988)

*17년 U2 at the BBC 버젼.




밴 모리슨 이야기를 빼놓으면 안 되지 않을까. 아이리쉬

쇼밴드소울의 출발점은 60년대말 모리슨으로부터

잡아야 마땅하니까. 80년대 이후 보편화한 블루 아이드

소울의 아일랜드식 원형이던 그는 제임스 브라운, 윌슨

피켓, 팻츠 도미노, 재키 윌슨 등 오리지널 흑인풍과 또

다른 풍미와 그루브R&B 재창조한 선구자였다.



베이스 라인의 그루브 백킹을 중시하고 독자적인 기타

리프를 앞장세우는 작편곡 패턴이나, 흑인들의 감성에

일견 가까워 보이지만 뭔가 한 끝 차이로 미세한 조정을

가미한 보이싱 등 측면에서, 모리슨의 스타일링이 후대

음악가들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물론 70년대에 형성한 R&B의 패턴이 다 이

특별하다 평할 순 없다고 비판할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아일랜드라는 토양과 문화적 기반 위에서

모리슨이란 이름의 존재감은 폄하할 수 없을 것이다.



('Brown Eyed Girl' by Van Morrison, 1967)

https://www.youtube.com/watch?v=UfmkgQRmmeE

*줄리아 로버츠 생각나는 사람 많을 듯..



('Domino' by Van Morrison, 1970)

https://www.youtube.com/watch?v=yiDcPUOD-vY

*Fats Domino에게 헌정한 곡.



('Wild Night' by Van Morrison, 1971)

https://www.youtube.com/watch?v=bXoBnmJtqhY

*94년 John Mellencamp의 커버도 히트했다.



('Jackie Wilson Said' by Van Morrison, 1972)

https://www.youtube.com/watch?v=TY0_1VN7h8c

*당연하지만 Jackie Wilson에게 헌정한 곡.




80년대 내내 전미 투어를 돌며 보노디 에지 등이 모리슨,

스톤즈, 딜런 등 선배로부터 펑크 이전 시대의 음악에 관해

꾸준히 전수를 받곤 했는데 이 영향이 직접 드러난 작품이

88년 더블 앨범으로 나온 6집 Rattle and Hum이었다.

- 이 앨범에 대한 평가는 물론 호불호가 갈리긴 한다.



2005년 락앤롤 명예의 전당 헌액에 즈음하여 U2 멤버나

평단의 공통적인 평가로 밴 모리슨을 그들 음악의 원류로

이미 인정한 바 있다. 아래 링크에선 87년과 07년 각각의

인터뷰를 통해 보노디 에지가 어떤 술회를 고백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딴지 걸지 말자구..



*Los Angeles Times' interview with Bono, 1987

https://www.latimes.com/archives/la-xpm-1987-12-20-ca-30278-story.html


*ABC's interview with The Edge, 2007

https://abcnews.go.com/Nightline/Playlist/story?id=3440730&page=1




*아일랜드가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갖고 흑인 음악을

받아들여 50년대 이후 독창적 문화를 발전시킨 면은,

91년 앨런 파커 감독 영화 커미트먼츠 - 87년 출간된

동명의 로디 도일 소설 원작 - 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Try a Little Tenderness' from The Commitments OST, 1991)

https://www.youtube.com/watch?v=PKfHC5eY5CI

*Otis Redding이 커버한 66년 버젼이 유명하다. 원곡은 32년작.



('When Love Comes to Town' from Rattle and Hum, 1988)

https://www.youtube.com/watch?v=BpaAcIovUtk

*B.B. King과의 협연.
 - 앨범 전체가 아메리칸 루츠를 향한 음악 여행 컨셉이었다.





 얼터너티브의 새 기준, 90년대와 악퉁 베이비



('One' from Achtung Baby, 1991)


('The Fly' from Achtung Baby, 1991)



('Stay (Faraway, So Close!)' from Zooropa, 1993)



('Hold Me Thrill Me Kiss Me Kill Me'

from Batman Forever OST, 1995)

*PopMart Tour


('Discotheque' from Pop, 1997)




솔직히 전작에 대한 평가는 그닥 좋지 못했고 90년대가 되어

U2는 변화의 전기가 필요했다. 초창기 사운드로 돌아가자는

클레이튼뮬렌 vs 완전 새로운 것을 도입하자는 보노

에지. 이런 갈등 구도가 오히려 명곡을 탄생시켰는데 Achtung

BabyOne이 바로 그 곡. 아이러니이다.



91년 7집 Achtung Baby는 변화에 대한 욕구와 와신상담

끝에 나온 역작이다. 결국 보노디 에지의 창작 성향이 밴드

내에서 주도권을 얻는 모양새로 가게 된 바, U2는 당시 움트기

시작한 얼터너티브모던 락의 문법을 받아들이고 일렉트로닉

인더스트리얼의 새로운 조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모던

태동의 80년대 단초를 제공한 이들이 거꾸로 그 거센 흐름을

다시 자기들 것으로 융합한 셈..



The Fly 이런 새 경향을 대표하는 트랙. Mysterious Ways

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이 들려준 참신한

모드 역시 90년대다운 사운드의 산물이었다. 어딘가 변화의

전기를 마련한 본작의 혁신적 성향은 평단과 대중의 즉각적인

찬사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93년 8집 Zooropa 및 97년 9집 Pop 역시 Achtung Baby

출산의 연장선상에 있음이 뚜렷했다. 하지만 워낙 변화의 물결이

거셌던 세기말의 90년대인지라 두 장 앨범의 끝물쯤 와서는

일부 팬덤이 피로감을 호소하는 역효과를 감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포스트 펑크 액트가 아님을 여실히

증명한 90년대식 U2 음악을 확인할 필요는 있다. Zooropa에서

Stay (Faraway, So Close!), Lemon, Numb 등을, Pop에서

Discotheque, Staring at the Sun 정도는 체크할 만하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를 넘어서며 U2는 바야흐로

음악 산업을 통틀어 역대급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거물 중의

거물로 몸집이 커지고 있었다.



('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 from Achtung Baby, 1991)

https://www.youtube.com/watch?v=Y4AX2CGYl7Q

*The Fly보다 이 곡을 우위에 두는 팬도 많다.



('Mysterious Ways' from Achtung Baby, 1991)


('Lemon' from Zooropa, 1993)

https://www.youtube.com/watch?v=9YoAQ50BK74



('Numb' from Zooropa, 1993)

https://www.youtube.com/watch?v=sfYcqzQ2PaQ

*단조로운 톤의 만트라 랩을 시전하시는 분은 The Edge.



('Staring at the Sun' from Pop, 1997)

https://www.youtube.com/watch?v=q4Gr8Lf2Bzo



('Sweetest Thing' from The Best of 1980-1990, 1998)

https://www.youtube.com/watch?v=ikUpmvPjN0I






 월드 투어와 스타디움... 더 후를 꿈꾸며




*Pride (in the Name of Love) from Zoo TV Tour



*One from PopMart Tour



*Stay (Faraway, So Close!) from Elevation Tour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from Vertigo Tour



*With or Without You from U2 360° Tour




U2 멤버들이 유년 시절부터 받은 영향을 따져 본다면

더 후와의 상당한 유사점이 발견됨을 알 수 있다. 같은

편성의 밴드를 운영하고 있고 기타리스트의 캐릭터가

중요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이미지의 리드 보컬, 각각의

독자적 노선을 추구하는 리듬 섹션 두 멤버의 위치 등

측면에서 꽤나 비슷하다.



무엇보다 아레나 또는 스타디움 환경에서 대규모의 군중을

휘어잡는 음악적 폭발력이 스튜디오 앨범과 또 다른 형질의

매력을 형성한다는 측면에서, U2를 가리켜 80~90년대의

더 후라고 새롭게 규정할 수 있을 터이다. (앨범으로 듣는

음악과 현장에서의 사운드, 둘 사이에 서로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대표적인 두 밴드일 게다.)



Joshua Tree의 대성공 이후 자신들의 위상과 외부적인 음악

산업 지형의 변화를 체감하면서, 투어 현장의 분위기가 왠지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느낌을 네 분이 공통으로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Achtung Baby 지원을 위한 92~93년 Zoo TV

Tour부터 U2는 공연 문화의 일대 혁명을 시도한다.



이전까지 이들 투어의 무대는 일반적인 아레나 패턴을

좇는 간소함 뿐이었는데, 투어 컨셉트 디자인을 전담하는

전문가를 선임하고 대규모 조명과 세트 디자인, 대형 스크린,

뉴 미디어를 과감하게 투자하여 스타일리쉬한 비디오형

투어 - 오늘날 U2 공연 하면 떠오르는 예의 이미지 - 를,

Zoo TV를 전환점으로 하여 구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Zoo TV가 그래서 이들 음악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건

것이며 Zoo TV 이후 U2의 공연 실적이 음악 산업 전체의

역사를 다시 쓰기 시작해 오늘날 U2 하면 떠오르는 투어

황제로서의 위상을 제고하는데 시발점이 된 것이다.

- 즉 세계 공연 수익을 싹쓸이해 갔다는 말이다...

이에 견줄 만한 상대론 솔직히 스톤즈엔 없다..



*U2 월드 투어 연혁 - 공연 회수 및 매출:

 - Zoo TV Tour (1992~93; 157회, 1.5억불)

 - PopMart Tour (1997~98; 93회, 1.7억불)

 - Elevation Tour (2001; 113회, 1.4억불)

 - Vertigo Tour (2005~06; 131회, 3.8억불)

 - U2 360° Tour (2009~11; 110회, 7.3억불)

 - Innocence + Experience Tour (2015; 76회, 1.5억불)

 - The Joshua Tree Tour '17 (2017; 51회, 3.1억불)

 - Experience + Innocence Tour (2018; 60회, 1.2억불)

 - The Joshua Tree Tour '19 (2019; 14회 예정)




('Pinball Wizard' by The Who, 1969)

https://www.youtube.com/watch?v=-J03yCE15rg



('Won't Get Fooled Again' by The Who, 1971)

https://www.youtube.com/watch?v=x1_69AAX-OY



*Beautiful Day from Glastonbury Festival '11



*Vertigo from Innocence + Experience Tour






 기본으로 돌아오다 - 2000년대 이후




('Beautiful Day' from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2000)



('Walk On' from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2000)

*아웅산 수찌에 관한 가사지만 미국에선 9.11에 대한 위로의 뜻을 담기도.



('Vertigo' from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 2004)



('Sometimes You Can't Make It on Your Own from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 2004)

*가사의 주제는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감정.




90년대 후반의 앨범들 반응을 읽고 있던 멤버들이 또 한 번

태세를 전환하여 음악적 방향을 바꾼 역작을 내놓기에 이른다.

2000년 10집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및 04년

11집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이 그것. U2

음악적 생명력이야말로 실로 마르지 않는 샘물 아니겠는가.



이른바 back-to-basic, 기본으로 돌아온 본연의 정신이라

세간의 평단이 일제히 환영과 찬사를 보낸 바, 포스트 펑크

얼터너티브의 다양한 실험을 거쳐 마치 그 옛날 전성기 시절

더 후의 영광을 재현하듯이 콘서트형 정통 하드락의 계보를

충실히 잇는 히트 트랙을 줄줄이 내놓는다.



ATYCLB에서 Beautiful Day, HtDaAB에서 Vertigo

이 시기를 대표하는 금세기의 걸작 히트곡. 디스토션 걸린

디 에지의 기타가 불을 뿜어 쿨함이 작렬하는 넘버들이다.

그 해 그래미 즉각 화답한 Walk On이나 Sometimes

You Can't Make It on Your Own 역시 빼놓을 수 없고.



연이어 09~11년의 U2 360° Tour는 역사상 최고의 매출을

기록한 공연 투어로 수위를 다투는 대기록을 세우며 이들의

이름을 다시 드높인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해 환산하면 무려

미화 8억 2천만 달러.. 한화 9천억 원의 돈방석에 오르셨다.

실질적으로 역대 매출 최정상이라지... 1위라고.



이후 현재까지 09년 12집 No Line on the Horizon, 14년

13집 Songs of Innocence, 17년 14집 Songs of Experience

등 정규 앨범을 통해 여전히 정상의 자리에서 노래하U2...!

이들이 앞으로 걸어나갈 한 걸음 한 걸음이 곧바로 음악사의

새로운 장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 모두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대중 음악계의 전설을 목격하고 있는 셈인 게지...




('Stuck in a Moment You Can't Get Out Of' from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2000)

https://www.youtube.com/watch?v=1sn3bJ5Ya-A



('Elevation' from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2000)

https://www.youtube.com/watch?v=xbyjeHKSn-E



('Electrical Storm' from The Best of 1990-2000, 2002)

https://www.youtube.com/watch?v=anhRKfOkBSY



('City of Blinding Lights' from

How to Dismantle and Atomic Bomb, 2004)

https://www.youtube.com/watch?v=Fg4MfA3BCyI



('Get On Your Boots' from No Line on the Horizon, 2009)

https://www.youtube.com/watch?v=JcDNilZbZg8

*쿨한 90년대 분위기로 잠시 복귀한 듯..






 그래미가 사랑한 그들, 사회 활동가로서




('Theme from Mission: Impossible by

Adam Clayton and Larry Mullen Jr., 1996)




76년 결성 후 그 상업적인 성과 만큼 U2에 관한 예술적 평가

역시 당대에나 후대에나 찬사 일색이다. 특히 그래미 어워드

이들을 후하게 아낀다고 널리 알려져 있고 19년 현재까지 46회

후보 지명되어 이 중 무려 22회의 수상 기록을 남겼다.



최초의 후보 지명이 Joshua Tree 앨범부터인데 지명된 첫

해 88년에 실질적 대상인 올해의 앨범 상을 안기 전무후무한

결과를 기록하는 등, 그래미의 편애는 일찍부터 시작하였다.



Achtung Baby 시기엔 올해의 앨범 후보 지명으로 그쳤다가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때는 Beautiful Day

01년 올해의 레코드올해의 노래 두 개 트로피를 안겼고,

거기에 같은 앨범에서 2년 연속으로 이듬해 Walk On

올해의 레코드 트로피를 선사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06년 시상식에서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

올해의 앨범 상을, 여기 수록된 Sometimes You Can't Make

It on Your Own올해의 노래 상을 시상함으로써 명실공히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에 또 하나의 명예를 추가해줬다.



이들이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추천 자격이 주어지는 첫 해 2005년에 단번에 헌액을 받아

U2가 괜히 U2가 아니구나 하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헌액식에서 서훈 수여자는 바로 브루스 스프링스틴..



(Rock and Roll Hall of Fame, official archive)

https://www.rockhall.com/inductees/u2


(U2 fans' web archive)

https://www.atu2.com/events/05/rockhall/




2010년에 롤링 스톤 매거진시대를 초월한 100대 아티스트

랭킹을 발표했던 바, 여기서 U2브루스 스프링스틴프린스,

마이클 잭슨, 마돈나 등 동시대에 호각을 다투고 자웅을 겨루던

선후배 음악가들을 제치고 비틀즈, 밥 딜런, 롤링 스톤즈스티비

원더 등 선각자들의 뒤를 이어 당당히 22위로 평가를 받았다.

- 강조하지만, 이거 엄청 높은 거다...



(Rolling Stone '10, 100 Greatest Artist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artists-147446/u2-10-92368/




돈 많이 버는 졸부로서의 의무감이 아니라 진정성을 가지고

사회와 세상에 메세지를 전달하는 성숙한 성인으로서, U2

언제나 범진보적인 사회 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해왔다.

80년대 Band AidLive Aid 참가쯤이야 너무 유명하니

생략해도 될 것 같고 국제 앰네스티, 그린피스, 월드비전,

주빌리 2000 이 주관하는 행사와 공연에 협력해왔다.



86년엔 앰네스티 주관의 A Conspiracy of Hope 공연에

올랐고 보스니아 내전 중 행사 경험을 바탕으로 95년에

파바로티와 친구들 프로젝트를 통해 Miss Sarajevo

노래를 발표했다. 이듬해 굿 프라이데이 협약을 앞두고

벨파스트 무대에 올라 노래했고 지우마 호세프, 아웅산 수찌,

넬슨 만델라 등 세계 지도자들과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어왔다.



보노 개인적으로는 80년대 니카라과 및 엘살바도르 내전

종식을 위한 평화 활동에 참여한다거나 아프리카 및 제3

세계 국가 채무 청산을 위해 무하마드 알리밥 겔도프

연대 모금 활동에 분주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03년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07년에 영국

여왕의 명예 훈장을 받은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이밖에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보노 및 멤버들의 사회

운동 이력은 차고 넘치며 하나같이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진짜배기 활동 내용이다. 매년 발표되는 노벨 평화상 후보자

명단에 보노U2가 괜히 단골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다.



('Mothers of the Disappeared' from The Joshua Tree, 1987)

https://www.youtube.com/watch?v=kjuIAuSzGbc

*엘살바도르 내전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을 위한 노래.

**Brian Eno의 드럼 루프 이펙트가 매우 독특하다.



('Miss Sarajevo' by U2 and Brian Eno, 1995)

https://www.youtube.com/watch?v=PVl2lluR_Tw

*보스니아 내전의 참상을 알린 곡. ft. Luciano Pavarotti.



('The Hands That Built America' from Gangs of New York OST, 2002)

https://www.youtube.com/watch?v=uUzixzRufbk

*마틴 스콜세지 영화 갱스 오브 뉴욕에 수록된 곡.



('Ordinary Love' by U2, 2013)

https://www.youtube.com/watch?v=XC3ahd6Di3M

*넬슨 만델라 추모 영화의 OST로 발매된 싱글.






 U2/ 헤어 메탈과 글램이 아닌 것들의 여집합










U2가 데뷔한 80년대로 시계를 돌려볼까? 의외로 백인 비주류
아일랜드계 락밴드가 구사할 수 있는 음악의 종류가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세상에선 단 세 종류의 음악을 할 따름이었다.
헤어 메탈이거나 뉴웨이브 댄스팝이거나 이도 저도 아닌 포스트
펑크의 제3지대로 헤쳐모여 하거나. (아님 블루 아이드 소울..ㅋ)


MTV 극상업주의와 레이거노믹스 우경화의 거친 파도 아래서
헤비메탈을 하기 싫은 비주류 코카서스 락커의 선택지는 왠
모를 오합지졸 모드에 사회의 찌끄레기 집하장 같은 짠함을
마구 풍기고 있었다. 블론디처럼 용감하게 주류로 돌진하다
참렬하게 부서진 세력, 소닉 유스처럼 여전히 외골수로 CBGB
실험에 몰두하며 내일만 바라보는 세력, R.E.M.처럼 캠퍼스를
순회하며 쟁글쟁글거리는 포크의 얼을 즐기는 세력... 등등..


그리고 글램이나 디스토션이나 슈레딩이나 샤우팅이나 태핑
아닌, 의 찌꺼기를 바닥까지 긁어 제3지대로 융합한 그 지점
거적때기를 걸치고 MTV 시대 화신으로 우뚝 선 존재... 그것이
바로 U2였다. 화끈한 시대 아닌가. 많은 사람이 91년에 생겼
알고 있던 얼터너티브의 원형질을, 실은 U2가 대서양 건너편
절대 음악의 그늘에서 조용히 빚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말인즉슨 90년대 의 단초는 처음부터 U2였고 그런 그들이
Achtung 이후 다시 시대와의 소통을 통해 의 미래 비전을
제시한 셈이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어 80년대부터 이 세상의
음악은 U2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고 표현하면, 너무
용비어천가일까. (근그래미 상 주는 사람들은 정말 일케
생각하는 모양인데...? ㅎㅎ)


60~61년생 동급생 넷으로 시작한 스쿨 밴드. 둘은 아일랜드
토박이, 둘은 태어나긴 잉글랜드에서 났다. 대학 갈 엄두도 못
냈고 적당하게 음악으로 먹고 살며 그럭저럭 매니저도 생겨
어찌어찌 음악 만드는 법도 배워가고 있었다. 음악을 가르쳐줄
좋은 선배들이 있었고 세상을 여행하며 더 큰 삶에 눈을 떠
음악에 자신을 투영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보노란 예명을 지은 폴 데이비드 휴슨은 오페라처럼 다양한
표현력을 정열적인 창법에 실을 줄 아는 철학가 시인이었고,
보노에게 디 에지란 예명을 선물받은 데이비드 하웰 에반스
슈레드나 태핑 가득한 솔로잉보다 이펙트신디사이징
주조하여 모드를 창출하는데 관심이 더 큰 별종이었다. 다소
허세끼도 있던 애덤 클레이튼은 기타가 채우지 않은 구석만
찾아 다니며 사운드를 메꾸는데 탁월한 친구였고, 어려서
군악대 북치기로 출발한 래리 뮬렌 주니어, 로렌스는 생소함
가득한 킥 드럼과 탐탐의 컴비네이션에서 생경한 텍스처를
만들 줄 알았다.


77~79년 무렵 질풍노도의 끝물을 겪으며 이 꿈많고 겁없는
촌놈 젊은이 넷이 앞으로 세상의 음악을 짊어지고 갈 운명임을
짐작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었을까. 새로운 세기를 벌써
20년 가까이 보낸 지금, 세상은 U2 네 사람의 것이 되었다.











본 블로거가 가장 좋아하는 U2의 음악은 역시 Joshua Tree
수록 트랙이다. 한동안 셋리스트의 오프닝 곡으로 각광받던
가장 대중적인 넘버,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스튜디오 버젼도 물론 좋지만 87년 공개 당시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던 뮤직 비디오엔 환장할 수밖에 없다. 거의 현장 사고
수준 환경에서 제작할 밖에 도리 없던 당시 아카이브에서 풍긴,
긴장감과 열정이 묘하게 섞여 충돌하던 분위기.. 작살이다..


수상 내역이 중요하겠냐만은 그래미 어워드 뮤직 비디오 부문서
이들에게 생애 최초의 트로피를 안긴 작품이고 당시 최첨단에
최고의 제작 스탭이 달려들어 제작한 영상물이다. 로스 앤젤레스
한복판 후줄근한 골목 상점 옥상을 빌려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고단한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삶의 무게를 잊게 해주고 싶단
작은 생각이, 이런 종군 르포물 같은 결과로 나왔단다.


아니나 다를까, 현장 통제와 치안 유지를 위해 날카롭게 날이 선
경찰 및 공무원 관계자의 리액션이나, 3만 명이 넘게 모였다는
저 많은 사람들... 모두 동원한 엑스트라가 아니라 실제 거리의
실제 상황, 실제 군중이다. 레알이라고. 이렇게 전쟁같은 뮤비를
찍을 수 있는 음악가가 과연 지금 시대에 몇이나 나올 수 있을까?


사는 곳으로 사람의 계급이 나뉘고 자기 소개가 대신 되어 버리는
세태를 날카롭게 꼬집고 싶다는 가사.. 도곡동 팰리스 살아요~~
이딴 소리가 안 나오는 세상을 꿈꾼, U2만이 할 수 있는 그 시절
그 세상의 이상주의인 것이다. 강추하며 이번 포스팅을 마친다.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from The Joshua Tree, 1987)

*official music video

**네 분 모두 참 젊고 멋지며 섹시한... good-old day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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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국의 대중음악을 규정하는 시대의 보스.

대통령도 FBI국장도 연준위원장도 아이비리그

종신교수도 실리콘밸리 창업자도 아니지만 모든

미국인이 존경과 찬사를 보내는 극강의 존재.



한국으로 치면 송창식, 김현식, 김광석 정도로

치환할 수 있기에 국내 울타리에서 이분을 제대로

해석하고 접근해 즐기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비록 한국에서 지명도는 높지 않지만 음악사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분인지라 용감하게 포스팅하련다.

미국 대중음악의 보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Bruce Springsteen이시다. (1949~)











('Born in the U.S.A.' from eponymous album, 1984)



('Born to Run' from eponymous album, 1975)



('Hungry Heart' from the River, 1980)

*젊을 때만 해도 좀 잔망스런 스테이지 매너를 즐기셨다.



 (Born to Run)




송창식, 김현식, 김광석.. 이분들이 왜 훌륭한지

배경 지식 전혀 없는 외국인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걸 어떻게 말로 설명해.. 그냥 들어봐, 정도

멘트 말고는 별 말 안 나오지 않나.



보스라는 별명의 이분이 미국인에게 가지는 위상은 대략

이런 위치이다. 어느 순간 가슴 속에 절절하게 찾아든

존재감으로 말로 수식하지 않고 그냥 느끼는 존재..?



50년대 후반 이후 출생한 대부분 미국인들이 그의 영향력

하에 있다고 보면 대략 옳다. 아 물론, 내륙 중서부 러스트

벨트 백인들로 한정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딴지 거는

사람도 계시겠지만. 그의 성향 자체가 인종을 초월한

진보이기에 사실 딱히 그러하지도 않다고 본다만.



 (Darkness on the Edge of Town)



('Badlands' from Darkness on the Edge of Town, 1978)



('Dancing in the Dark' from Born in the U.S.A., 1984)



('Glory Days' from Born in the U.S.A., 1984)



(accordion)


(calliope)




보스가 설파하는 가사의 철학, 즉 저지 쇼어 지방의

토착 문화와 현지 서민 삶의 생생한 단편... 여기에다

그들의 삶에서 파생한 저지 쇼어 사운드란 서브장르...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출발점은 여기서부터 잡아야 한다.



Jersey Shore.. 뉴저지 주의 대서양 연안 해안가 지구

가리키고 놀이공원 등 관광 명소와 특히 유서깊은 라이브

음악 클럽이 위치한 곳인지라 이곳을 거쳐간 뮤지션들이

부지기수이며 그들을 통해 Jersey Shore Sound

서브장르가 꽤 오래 전부터 생성 발전하였다.



 (glockenspiel)




블루스소울 같은 대중음악 뿐 아니라 이탈리아계 이민자

집단의 근현대 속악에서 영향을 받아 발전한 서브장르 가리켜

저지 쇼어 사운드라 하는데, 쇼어지구 위락시설에서 아코디언,

글로켄슈필칼리오페 같은 악기로 연주되던 춤곡 형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E스트리트 밴드 스코어의 중심축이 키보디스트

명의 역할로 자리잡은 배경이 바로 이런 지역 음악 특성 때문.



*글로켄슈필을 라이브에서 연주할 땐 실로폰처럼 말렛을 들고

타악기 형태로 하지 않고 위와 같이 첼레스타 케이스에 넣어서

건반악기 형태를 채택했다. 그런 이유로 키보디스트들이 연주를

도맡아 한 것. 위 Badlands 라이브 비디오 중간에도 Hammond

오르간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The River)



('Brilliant Disguise' from Tunnel of Love, 1987)



('Streets of Philadelphia' from Philadelphia OST, 1993)



('Nebraska' from eponymous album, 1982)




 (Nebraska)




사실상 대개의 미국인들이 보스의 음악에 마음을 쏟는 요인은

음악의 형식보다 진심을 가득 담은 가사에 있는 것이라 하겠다.

가사의 중심 내용으로서 쇼어지구에서 성장한 언더독 세대의

소외감이나 좌절감 또는 낭만적 정서를 대단히 서정적으로

표현하는데 탁월한 점이야말로 보스의 엄청난 매력이다.



스프링스틴 가사의 특징으로 일정한 서사성을 갖춘 완결된

스토리텔링 구조를 빼놓을 수 없다. 어떤 노래를 듣든지간에

그 안에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완성된 이야기가 있어

소외된 평범한 미국 서민들에 공감할 구조를 제공하는 것.



 (Born in the U.S.A.)




Born to Run웬디, Thunder Road메리, Nebraska

살인마 찰스, Tenth Avenue Freeze-Out배드 스쿠터,

Badlands의 재수 옴붙은 남자, Rosalita로잘리타, The Ties

That Bind의 가련한 여인, Independence Day의 아버지와

아들, 4th of July Asbury Park샌디 등 미국 음악사상

유명한 캐릭터가 죄다 그의 음악에 나온 인물들이다.



이 중엔 보스 본인이 창조한 캐릭터도 있고 다른 이야기에서

끌어온 주인공도 있다. 공통점은 미국의 현대사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소수자들이란 점. 평범한 음악 팬들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소구점이 창작자의 이런 배려에 있는 셈이다.



 (Tunnel of Love)



('Tenth Avenue Freeze-Out' from Born to Run, 1975)



('Independence Day' from the River, 1980)



('The Ties That Bind' from the River, 1980)



(Human Touch)




항상 어깨에 Fender Telecaster를 들쳐매고 통기타

가득 찬 음악을 평생에 걸쳐 불러온 점은 전술한 한국의

가객들과 묘한 공통점이 있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몰라서

그렇지, 세 가객들 기타 솜씨는 가히 명불허전이다. 특히

한창 때 송창식 선생의 라이브 실력은 까무러칠 수준.)



스프링스틴의 음악은 어쿠스틱 기타 또는 피아노백킹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full편성 밴드가 연주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인지하며 듣지만 왠지 머리 속으로 밴드를 지우고

기타 스트러밍을 치환하여 연상케 하는 작용을 한다고 할까.



(Fender Telecaster)




아마도 그의 철학이 구상하는 하트랜드 락이란 장르의 기본

밑그림이 어쿠스틱 악기의 심플한 백킹을 바탕으로 초기 락앤롤,

블루스컨트리, 포크, 소울의 정신을 구현하는데 있었던 듯.



밥 시거,  페티, 존 멜런캠프, 존 포거티, 멜리사 에쓰리지

등 같은 장르를 다져온 선후배들이 그러했듯이.. 하트랜드

말엔 내륙이나 중심지 말고도 미국인의 진심에 다가선다는

뉘앙스도 있을 터이니. - 모두 한국에서 지명도가 떨어지는

가수들이란 공통점도 공유하는군.



('My Hometown' from Born in the U.S.A., 1984)




또한 밴드 음악을 접근하는 그의 독특한 어프로치와 관련도

다. 스튜디오 레코딩에서 메기타는 항상 보스 자신이

친다.. - 이거 깨닫지 못한 사람이 은근 많지만. 기본적인

리프어프로치는 본인이 작곡을 통해 창조하는 것이다.

리더로서의 기본 소임이랄까.



하지만 기타리스트로서의 에고를 지나치게 고집하지 않고

나머지 상당 부분 어프로치를 세션 밴드 멤버들에게 넉넉히

일임한다는 점이 다른 일반적 리더들과의 차이점인 것 같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50~90% 이상 지분을 차지하며 그의

음악을 채워온 오랜 동반자는 그 유명한 E스트리트 밴드.



('The River' from eponymous album, 1980)




계에서 가장 유명한 백킹 밴드의 구심점은 음악사에 길이

빛나는 몇몇 연주자들. 키보디스트 로이 비턴 대니 페데리치,

드러머 맥스 와인버그, 색소포니스트 클레런스 클레먼스 등이다.

베이시스트 게리 탤렌트 기타리스트 닐스 로프그렌까지도.



나중에 연기를 겸업하신 기타리스트프로듀서 스티븐 밴 잰트

(소프라노스에 나오신 그분)에, 이스라엘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수키 라하브, 초기엔 키보디스트 데이빗 생셔스 계셨지. 물론

보스의 아내가 되신 보컬리스트 패티 스캘퍼도 잊으면 안 된다.

어떻게 이런 보석같은 멤버들을 다 끌어모을 수 있었을까.



('Cover Me' from Born in the U.S.A., 1984)



('Atlantic City' from Nebraska, 1982)




(Bittan & Federici)




세션 멤버들 중 버팀목 역할을 하는 사람은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한 49년생 로이 비턴. 비턴페데리치 두 분프레이징

사운드를 채우는 형식론이야말로 보스 음악의 핵심적 어프로치

기법이다. 본래 70년대 초반까지 저명한 데이빗 생셔스 그

역할을 수행하다 대체 멤버로 뿌리를 내린 연주자가 비턴이다.



디지털 드림 도어 키보디스트 랭킹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는 로이

비턴그렉 올맨, 맥스 미들턴, 니키 홉킨스, 척 리벨, 빌리 파웰,

이언 맥레건 등 동시대 컨트리-블루스 연주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뿐 아니라 루츠 음악에 뿌리를 둔 어프로치를 몇 세대에 걸쳐

꾸준히 발전시켜온 동종업계의 명인으로 높게 평가받는다.



(Yamaha Concert Grand)



특유의 맑고 깔끔한 톤 때문에 라이브에서 로이 비턴Yamaha

Concert Grand를 즐겨 사용하는 것은 이젠 널리 알려진 뒷얘기.

글로켄슈필이란 악기로 독특한 뉴저지 사운드를 메이킹하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다.


(Digital Dream Door's ranking on 100 Rock Keyboardists)

https://digitaldreamdoor.com/pages/best_keyboard.html


(Top 10 Roy Bittan & Bruce Springsteen tracks)

http://ultimateclassicrock.com/roy-bittan-bruce-springsteen-songs/



('She's the One' from Born to Run, 1975)



 (Weinberg)




라이브마다 무대 정중앙에 보스의 등뒤로 이글거리는 눈빛을

쏘며 한치의 오차없는 비트를 공급하는 51년생 맥스 와인버그

역시 밴드의 심장처럼 중한 멤버이다. 99년 락앤롤 명예의 전당

헌액 연설에서도 보스가 가장 신임하는 동료로 극찬하였다.



롤링 스톤 매거진의 드러머 랭킹에서 55위, 디지털 드림 도어

락드러머 랭킹에서 46위를 차지할 정도로 와인버그에 대한

객관적 평가도 넘쳐난다. Born in the U.S.A. 트랙 인트로

청자의 심장에 바로 내리꽂는 스네어 파운딩 비트는 최고의

상징적 업적으로 음악사에 영원히 빛나리라 의심치 않는다.



코난 오브라이언투나잇쇼에서 열심히 추임새 음악 넣던

바로 그분 맞다. E스트리트 밴드 활동과 죽 겸업하셨다고.

덕분에 미국 젊은 층에게도 인지도가 높으시다네.


(Rolling Stone Magazine's 100 Greatest Drummers)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drummers-of-all-time-77933/max-weinberg-142591/


(Digital Dream Door's ranking on 100 Rock Drummers)



('Prove It All Night' from Darkness on the Edge of Town, 1978)



(Clemons)




영원한 '빅맨' 42년생 클레런스 클레먼스E스트리트 밴드

같은 연주자이다. 덩치도 남산 만한 다 큰 어른께 마스코트

..라 칭하기는 좀 그렇지만 주로 테너 색소폰으로 드라마틱한

선율을 뽑아 리드하는 그의 솔로 프레이징보스 음악의

시그니처 톤이 아니라 할 수 없다.



한국에서 인지도는 안습이지만 Born to Run색소폰

솔로 파트는 미국 등 전세계에서 수십 년간 초대박 인기로

대중의 기억에 오래 각인된 히트 선율이다. 한국으로 치면

Careless Whisper 급인 건데 외국에선 제리 래퍼티

Baker Street와 함께 색소폰 하면 떠오르는 명곡이라고.

그 유명한 파트 연주를 하신 분이 바로 클레먼스인 것.



안타깝게도 11년에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신지라 이제 더

이상 클레먼스의 시원한 연주를 들을 수 없다. RIP..


(Top 10 Clarence Clemons & Bruce Springsteen tracks)



('Baker Street' by Gerry Rafferty,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Fo6aKnRnBxM


('Careless Whisper' by George Michael, 1984)

https://www.youtube.com/watch?v=xQ9KuQQDEow



('Jungleland' from Born to Run, 1975)



('The Promised Land' from Darkness on the Edge of Town, 1978)



('I'm on Fire' from Born in the U.S.A., 1984)



('I'm Goin' Down' from Born in the U.S.A., 1984)




 (Greetings from Asbury Park, N.J.)


 (The Wild, the Innocent & the E Street Shuffle)




그가 처음부터 보스는 아니었고 73년 1~2집까지는 무한한

포텐셜만 인정될 뿐 상업적 성공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도

몇몇 트랙은 평론가들로 하여금 파릇파릇한 신인의 음악성이

만만히 볼 수준이 아님을 강조하기엔 충분했다.


('Blinded by the Light' from Greetings, 1973)

https://www.youtube.com/watch?v=j9Kl3HvJ7os


('4th of July, Asbury Park - Sandy' from the Wild the Innocent, 1973)

https://www.youtube.com/watch?v=PttLzg-z7Qk


('Rosalita - Come Out Tonight' from the Wild the Innocent, 1973)

https://www.youtube.com/watch?v=nOE_fJGWjVA




드디어 75년 Born to Run 앨범이 북미 전역을 강타하여

그를 메인스트림의 주인공으로 격상시킨다. 발매 1년 전

보스턴의 음악 평론가 존 랜도가 새파란 신인의 공연을 보고

'락앤롤의 미래를 보았으며 그 이름은 스프링스틴이다'며

기고한 일은 이젠 너무 유명한 이야기. 심지어 랜도는 이후

하던 일 때려치고 극찬한 그 신인의 프로듀서로 전업했다지.



타이틀 트랙을 포함해 Tenth Avenue Freeze-Out,

She's the One, Thunder Road, Jungleland

히트 트랙이 줄지어 터져나왔다. 멀티 플래티넘을 찍은

앨범이 빌보드 차트 3위까지 올랐고 3집의 거의 모든

트랙이 아직까지도 각광받는 단골 셋리스트 대상이다.



('Tunnel of Love' from eponymous album, 1987)




앨범의 성공으로 투어에 매진하고 있던 차 법률 소송 문제에

휘말려 3년간 스튜디오 작업을 못한다. 78년 가서야 Darkness

on the Edge of Town 앨범을 발매. 트리플 플래티넘 기록을

이어가며 평단과 팬덤의 열광적 지지를 얻었고 Badlands,

Prove It All Night, The Promised Land히트시킨다.



최초로 그를 그래미 후보로 올린 80년 더블 앨범 The River.

존 랜도스티븐 밴 잰트가 공동 프로듀스하여 처음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밟은 성공작이다. 그의 시그니처

이 된 메가히트곡 Hungry Heart를 비롯, 앨범의 진중한

정서를 대표하는 The River, Independence Day 등이

팬덤의 고른 성원을 얻는데 성공한다.



82년 발표한 Nebraska포크 구성이 전반을 지배하며

스프링스틴 혼자서 4트랙 홈레코딩으로 작업한 작품으로

전작에서 이어진 무겁고 어두운 정서가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작이다. Nebraska와 Atlantic City

등 주요곡이 대체로 범죄자들 이야기를 담고 있어 작사의

철학과 세계관이 한층 깊어지고 있음을 반증한다.



('Human Touch' from eponymous album, 1992)




84년 Born in the U.S.A.에 이르러 그전부터 관심 두던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의 사회 부적응 문제를 본격적으로

터뜨렸으며 본작은 아시다시피 보스 앨범 중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남는다. 판매고만 1천 5백만이 넘어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고 85년 그래미 올해의 앨범 후보로 오르며

발매한 7개 싱글 모두 차트 탑텐에 올린 초대박 성공작.



Born in the U.S.A., Dancing in the Dark, Glory

Days, Cover Me, My Hometown, I'm on Fire, I'm

Goin' Down 등 그냥 수록된 전 트랙이 미국 대중음악사

명곡으로 남았다고 이해하면 쉽다. 한국으로 치면 유재하

앨범 정도에 해당할까.. 한 마디로 버릴 곡이 없는 명반.

꼭 들어보시라. 두 번 들으시라.



아 글고.. Born in the U.S.A.는 '나도 미국 놈이라고~

(근데 대접이 왜 이 모양이야)' 하는 시니컬푸념조의

가사이니까 선거 캠페인 송으로 절대 쓰지 말라고들..

특히 공화당. 보스가 깜놀하신다.



86년에 나온 Live 1975-85제플린으로 치면 Song

Remains~급의 최전성기 라이브 앨범으로서 자그마치

13x 플래티넘을 찍은 또 하나의 초대박 작품. 이 앨범과

95년 Greatest Hits보스가 가장 전성기일 때 최고의

활동 기록을 담고 있어 스튜디오 앨범이 아님에도 팬덤이

은 최고의 아카이브 작품들이라고 하겠다.



(Live 1975-85)



(Greatest Hits)




87년 8집 Tunnel of Love는 상대적으로 E스트리트 밴드

색깔을 많이 뺀 지극히 개인적인 작품으로 타이틀 트랙

Brilliant Disguise 등 히트곡을 냈고 실패한 첫 결혼 등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낸 앨범이다. 본작으로 88년에

그래미 상도 탄다. (첫 그래미는 85년에 수상.)



이밖에 90년대엔 Human Touch를 히트시킨 동명의 9집

앨범이나 94년 탐 행크스 주연 영화 필라델피아의 주제가로

오스카 상을 수상한 Streets of Philadelphia 등 작품으로

여전한 인기를 이어간다. 96년엔 숀 펜 주연 영화의 사형수

스토리로 Dean Man Walkin'을 히트시키기도.



95년 앨범 The Ghost of Tom Joad는 오랜만에 포크

을 불러와 건재함을 알린 앨범이며, 02년 The Rising

10년간 떨어져 있다 99년에 E스트리트 밴드와 재결합하여

18년만에 맞은 앨범 성공작이기도 하다.



('Dead Man Walkin'' from eponymous OST, 1996)

*96년 68회 아카데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직접 부른 버젼이다.



('Secret Garden' from Greatest Hits, 1995)




한편 70년대 후반에 소송으로 앨범 작업을 못할 때쯤

보스는 다른 가수와 협업하는 유명 히트곡 작곡가로도

활동했다. 그 중 펑크의 대모 패티 스미스 선사한 곡이

가장 유명하고 맨프레드 맨s 얼쓰 밴드포인터 시스터즈

등과의 협업도 선풍적 인기를 끌어온 바 있다.



Blinded by the Light는 사실 스프링스틴데뷔 앨범

실린 트랙인데. 본인은 히트 못 시키고 실력파 키보디스트

맨프레드 맨에게 주어 빛을 보았다. 쩝.


('Blinded by the Light' by Manfred Mann's Earth Band,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lcWVL4B-4pI


('Fire' by the Pointer Sisters, 1979)

https://www.youtube.com/watch?v=cCOBp1Lrlf4


('Because the Night' by Patti Smith,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6OjW1TDANxk



*락앤롤 명예의 전당 25주년 기념 공연에서 U2 및 패티 스미스와 공연했다.




*Dancing in the Dark, studio version



*Badlands, studio version



*Hungry Heart, studio version



*Born to Run, studio version



*Born in the U.S.A., studio version






반복하지만 한국에서는 지지리도 인기가 없는 분이다.

가사와 정서가 중요한 가수이니 한국인이 공감할 만한

요소가 거의 없어 인기가 있는 것이 이상할 터. 하지만

오래 전부터 이름은 유명한 분인데 왜 그토록 대단한지

이해를 새롭게 하는 계기만 만들었다면, 뭐 만족한다.

그래도 이 분의 세계 음반 시장 실적이 자그마치 1억

4천만 장에 달한다는 사실은 기억해달라..



본 블로거가 가장 좋아하는 트랙을 하나만 꼽으려니 참

망설여지는데 역시 Born to Run 앨범에서 가장 혁신적인

작편곡 구성으로 뒤통수 맞는 듯한 기분을 느꼈던 이 곡이

가장 좋을 것 같다. 롤링 스톤 매거진대를 초월한

500대 명곡 중 86위로 집계한 Thunder Road.



(Rolling Stone Magazine's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500-greatest-songs-of-all-time-151127/bruce-springsteen-thunder-road-44121/



잘 들어보면 유행가의 전형적 양식인 verse-chorus

구조를 한창 벗어난 변칙 구성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딱히 후렴구라 할 만한 악절이 없음에도 텐션을 고조시켜

코다로 넘어가는 작편곡 기법이라니.. 브루스 스프링스틴

이름값이 고스톱 쳐서 딴 거 아님을 여실히 느낄 수 있을 터.



여담이지만 "네가 안 예진 몰라도 난 괜찮아"란 가사에 젊은

시절 줄리아 로버츠가 엄청난 감동과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가사 내용이 뭐냐고? 갓 학교 마친 뉴저지 젊은 남녀의 흔한

"시골 너무 깝깝해. 오빠 믿지? 서울 가자." 스토리이다.

멋진 곡을 강추로 띄우며 포스팅을 마친다.



('Thunder Road' from Born to Run, 1975)

*Thunder Road, studio version



*미니멀라이징한 75년 런던 라이브 버젼. 피아노에 Roy Bittan. CP-70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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