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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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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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지 몇 해가 지났지만 이제사 이 분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음악을 중심으로 20세기

대중 문화예술의 중심적 페르소나였고 노래나 앨범 등

결과물 뿐 아니라 예술가 자신이 창조의 테마였던 인물.



지나간 세기 각종 논란의 핵이면서도 지금은 존경과 숭앙의

대상으로 변모한 아티스트.. 데이빗 보위 David Bowie이시다.

(데이비드 보위가 사실 옳은 표기이다..만.)











본명 데이비드 로버트 존스. 런던 근교에서 1947년에 태어나

음악, 무용, 미술, 디자인에 감각이 뛰어난 청소년으로 성장했다.

열 여섯 즈음에 직업 뮤지션으로 데뷔하여 겨우 스물 둘 된

나이에 히트 메이커가 되고 평생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아이콘으로 사신 분이다. 뮤지션이자 영화배우로서.



16년에 갑자기 유명을 달리 하기 전까지 세계적으로 1억

4천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린 메가톤급 스타였고 20대

시절 스타덤에 오른 이후 인생 내내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

스타로만 살아오셨다. 둘째 아내인 모델 이만도 평생 스타로

사신 분이고 자식들마저 이름값 하는 집안을 일구셨다.

아드님은 영화 소스 코드의 감독 던컨 존스. 오오.



영국 시장에서 1위에 오른 앨범을 11장, 플래티넘 이상의 히트

앨범을 10장 배출했으며, 미국 시장에선 탑텐을 6장, 플래티넘

5장, 골드 9장을 배출했다. 롤링 스톤 매거진이 선정한 시대를

초월한 100대 송라이터아티스트 부문서 각각 39위를

차지했고, 96년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주로 70년대 성과물에만 치중하여 살짝 아쉽긴 하지만

롤링 스톤 매거진보위를 매우 사랑하는 편이다. 03년에

처음 발표하고 12년에 업데이트한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반에서 그의 앨범 5장을, 04년에 처음 발표한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곡에서 그의 노래 4곡을 선정하였다.



(Rolling Stone '15, 100 Greatest Songwriter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interactive/lists-100-greatest-songwriters/#david-bowie


(Rolling Stone '10, 100 Greatest Artist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artists-147446/david-bowie-9-90254/


(Rolling Stone '04,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500-greatest-songs-of-all-time-151127/


(Rolling Stone '03, 500 Greatest Album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500-greatest-albums-of-all-time-156826/




사실 어찌 보면 보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기는 참 쉽다.

70년대로만 국한해서 그의 음악 세계를 조명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평생에 걸친 음악 세계가 얼마만큼 다채로운

파노라마를 펼치며 변화했는가 하는 추이를 죄다 좇아

추적해 보겠다면 결코 녹녹치 않은 문제이다.



보위를 가리켜 만만하게 봤다가 큰코 다치며 결코 분석이 

않은 음악가란 이미지를 덧씌우는 요인은 이런 특징일 게다.

미리 밝히지만 본 블로거가 보위의 전문가라 자처하기엔 여러

모로 민망한 수준이고 그래도 꽤 정확한 정보로 채워진 한글

인터넷 페이지도 넉넉한 편인지라 이 포스팅에선 중요한

요점 중심으로만 논평할 것임을 미리 밝힌다.



한 줄 요약. 깊게 들어갈 생각은 없다.

본시 이 블로그가 그리 깊진 않지 않은가.

그런데 그 뿐일지라도 참 화려할 터이다.




*"Heroes", Live Aid '85.






(David Bowie)




보위의 데뷔는 63년경. 첫 싱글은 64년에, 첫 앨범은 67년에

나왔다. 이 초창기 역사는 보위 자신도 지우고 싶어하는 흑역사.

공식적으로 음악사가들이 꼽는 보위의 첫 역사는 만장일치로

69년의 2집인 David Bowie이다. 명곡 Space Oddity

가끔 앨범 타이틀로 둔갑하기도 해 실린 바로 그 앨범.



아더티를 영미식으로 발음하면 Odyssey와 비슷하게 들리니

일부러 노리고 지은 제목이라는 것이 통설이지만, 그 모방의

대상이 스탠리 큐브릭이라고 보기는 좀 그렇고 아서 클라크

원작으로 보는 편이 옳지 않을까 한다. 가사의 내용도 큐브릭

영화의 플롯과는 뚜렷하게 궤적을 달리 한다. 훨씬 염세적.



그의 커리어 최초로 영국 싱글 차트 5위까지 오르고 앨범영미

양국에서 탑20까지 올랐다. 메이저 톰(톰 소령? 영국인데?)이란

우주 조종사 캐릭터가 중심이 되어 탐사 미션 중 교신이 끊기고

미아가 되는 비극을 가사의 플롯으로 한다는...

너무 유명한 바로 그 곡이다.



(The List of 'The Songs That Shaped Rock and Roll'

selected by the Rock and Roll Hall of Fame, '04)

https://www.infoplease.com/arts-entertainment/music/500-songs-shaped-rock


(VH1 '00, 100 Greatest Rock Songs)

http://www.rockonthenet.com/archive/2000/vh1rocksongs.htm


(New Musical Express '12, Greatest No.1 Singes in History)

http://www.rocklistmusic.co.uk/nme_singles.htm




04년 락앤롤 명예의 전당이 선정한 '락앤롤 장르를 형성한 명곡'

중 하나로 꼽혔고 NME, VH1, 채널4, 가디언 등 언론 선정 명곡

리스트에서도 어김없이 확인할 수 있는 명불허전의 작품이다.

세션 중에 무려 예스 가입 전 릭 웨이크먼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고 그는 Mellotron을 연주했다 한다.



본작에서 보위 음악관의 중요한 키워드 하나가 도출되는데 곧

아트락이다. 브리티쉬 포크의 영향도 꼽긴 하겠으나 그 당시

모든 팝 음악이 포크의 영향 하에 있었으니 그건 뭐... 아직

대단한 포텐셜이 터졌다고 하기는 부족했으나 이 신인의

미래에 뭔가 창창한 창의성이 아트팝의 영역에서 성을 쌓아

올릴지 모르겠구나 하는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베이시스트이면서 이후 프로듀싱에도 공동으로 참여하게 될

영혼의 동료 토니 비스콘티와 만남이 이루어진 앨범이기도.

음악계 전체가 그러했으니 비틀즈의 영향을 읽는 것도 어렵지

않은.. 전체 완성도는 중박 정도의 작품..? 영국서 골드..



('Space Oddity' from David Bowie, 1969)




(The Man Who Sold the World)




이듬해에 낸 3집 The Man Who Sold the World를 논

때 이젠 너바나를 빼놓고 할 수가 없다. 한국과 세계에 걸쳐

90년대에 본작이 재발견되는데 커트 코베인의 기여도는 가히

절대적이다.



보위하드락의 문법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작품이다. 기존

비스콘티에 기타 믹 론슨, 드럼 믹 우드맨시를 받아들여

백킹 밴드 체제를 출범시켰다. 초기 작법 체계를 일구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한 파트 멤버들이다.



포스트 펑크의 다크한 서브 장르에도 영향을 주기도 하는 등,

사실 알게 모르게 보위의 영향력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던

때였는데 아직 시기가 여물지는 않아 보였다.



('The Man Who Sold the World' from eponymous album, 1970)



('The Man Who Sold the World' by Nirvana, 1993)

https://www.youtube.com/watch?v=fregObNcHC8

*MTV unplugged live




(Hunky Dory)




71년 4집 Hunky Dory에 이르러 드디어 보위의 음악은

기틀을 잡아 활짝 꽃을 피운다. 물론 더 큰 상업적 성공은

이후 작품에서 나오지만 보위의 70년대 전반기를 책임질

글램락의 체계가 확립한 명반으로 보통 꼽힌다.



롤링 스톤이 일찍이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반을 선정하며

108위에 올렸고, '10년에 타임 지가 시대를 초월한 100대

명반을 꼽을 때에도 포함시켰다. 롤링 스톤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곡 랭킹에선 본작의 최대 히트 싱글 Changes

128위로 올랐을 정도이다.



Changes보위의 70년대를 규정하는 시그니처 트랙

중 하나가 되었고 예스에 영입되기 직전까지 스파이더

멤버로 뛴 릭 웨이크먼에다 기타의 론슨, 드럼의 우드맨시,

베이스의 트레버 볼더가 맛나는 조합을 빚어낸다.



웨이크먼의 피아노 연주가 빛나는 Life on Mars영국

싱글 차트 3위까지 오르는 성공을 거둔다. 앨범은 영국

차트에서 3위까지 올라 82년에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사실 다음 앨범 성공에 힘입어 뒤늦게 팔리긴 한 거지만)

이제 그는 본격적인 성공 가도를 타게 된 것. 스타 탄생 직전.



('Changes' from Hunky Dory, 1971)

*73년 라이브 버젼.



('Life on Mars?' from Hunky Dory, 1971)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전작에서 확립한 음악적 지향성이 포텐을 터뜨린 것이 72년

5집.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라는 긴 제목의 명반이 나와 보위라는 이름을

희대의 트렌드 세터 반열에 올린다. 지기 스타더스트라는

페르소나의 작중 흥망성쇠를 그린 컨셉트 앨범인 셈.



지기는 외계인과의 중개자 역할인 양성애자의 뮤지션이라고.

이 컨셉으로 가사 전체의 스토리를 끌고 간 상상력의 산물인

거다. 양식있는 오늘날 네티즌에게 황당할지는 모르겠는데

희한하지만 하나의 문화 현상처럼 당시 영국의 음악 대중에게

잘 먹히던 설정 같은 거라고 이해하시길. 보위페르소나

개념은 무한도전 비슷해서 설정 깨닫고 잘 즐기면 그만이다.

(잘 못 깨닫겠다고? 그럼 딱 모르는 만큼만 즐겨라!)



론슨, 우드맨시, 볼더로 전작들부터 구성 백킹 밴드가 이제

스파이더 프롬 마스란 타이틀로 함께 코스튬 입고 무대 뛰는

태세로 전환한다. 이 멤버들의 연주는 천재적이진 못할 망정

대단히 재기발랄하고 맛깔나는 결과물을 빚어냈다.



('Starman' from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1972)




영국 앨범 차트 5위까지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기에 최초로

영국, 북미와 일본까지 월드 투어를 단행하기에 이른다. 롤링

스톤의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반 랭킹에서 무려 35위에

오르고 타이틀 트랙에 해당하는 Ziggy Stardust롤링

스톤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곡 랭킹 282위에 올랐다.



Starman영국 싱글 차트 탑텐, Rock 'n' Roll Suicide

탑30까지 오르는 성공을 거둔다. Suffragette City에선 ARP

2500의 솔로잉이, Moonage Daydream에선 헤비메탈

스타일이 등장하는 등 맛있는 어법으로 가득 찬 명반임을

마구마구 입증한 작품이다. 한 번만 들어봐도 왜 시대를

구가한 앨범인지 단박에 느낌이 올 게다.



심지어 앨범과 동명의 콘서트 필름까지 출시했을 정도로

당시 공연 문화 전반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밥 딜런,

앤디 워홀의 영향을 받은 전작에 이어 이기 팝, 루 리드,

마크 볼란, 지미 헨드릭스, 킹 크림슨 등 당대 최전선

아티스트들의 영향을 뾰족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최근까지

전세계 75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고 하고..

보위의 음악관을 논할 때 필청의 코스임은 분명하다.



('Ziggy Stardust' from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1972)

*73년 라이브 버젼.



('Suffragette City' from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1972)




('Rock 'n' Roll Suicide' from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1972)

https://www.youtube.com/watch?v=SOgVoxqKU7U



('Lady Stardust' from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1972)

https://www.youtube.com/watch?v=EcKZEOsgvdI



('Moonage Daydream' from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1972)

https://www.youtube.com/watch?v=ZEde35UbwUI

*끝내주는 노래라서 가오갤 믹스에 실린 거다. 믿으시라.




(Aladdin Sane)




73년 6집 Aladdin Sane은 본래 a lad insane을 멋대로

발음한 제목. 보위가 조현병을 앓고 있던 의붓 형과 각별한

사이였던지라 그 직접적 영향을 개진한 앨범이다. 덕분에

글램락아방가르드 재즈와 결합하여 짐짓 일부러 혼돈의

카오스 같은 모드를 꾸며낸 분위기가 팍팍 난다.



그런 분위기를 가꾸는데 정통 재즈 피아니스트 출신의 세션

마이크 가슨이 큰 일조를 했다. 유명한 세션 색소포니스트

데이빗 샌본의 역할도 컸다. 보위가 유년 시절 처음 배우기

시작한 악기가 색소폰이었다능. 쇤베르크힌데미트

atonal한 영향력을 읽어내는 팬덤도 일부 존재한다.



본작의 커버 아트에 번개 모양 페이스 페인팅을 한 채로 그가

등장하는데 이후 모든 공연에서 팬덤이 따라하기 시작했다나.

전반적으로 한 템포 쉬어가는 듯 예술 지향성의 앨범이었지만

팬덤의 충성도를 한층 더 깊게 제고하는 역할도 수행했다고.



영국 싱글 차트 2위까지 오른 The Jean Genie나 3위까지

오른 Drive-In Saturday의 히트도 계속 이어졌다. 영국

앨범 차트에서 처음으로 을 찍어봤고 롤링 스톤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반 랭킹에선 279위를 기록하는 등, 확실히

이때 보위는 상업적 전성기였다.



('The Jean Genie' from Aladdin Sane, 1973)



('Aladdin Sane' from eponymous album, 1973)

*부제: (1913-1938-197?)

- 이 숫자는 1차-2차 대전 발발 직전 연도라고. 3차는?



('Drive-In Saturday from Aladdin Sane, 1973)

https://www.youtube.com/watch?v=WABWNOEwC9A




 (Pin Ups)




73년 7집 Pin Ups는 최초의 커버 모음 앨범이다. 남의

곡 리메이크만 녹음했다는 말. 야드버즈, 핑크 플로이드,

더 후킹크스의 곡들을 커버했고 인슬리 던바

드러머로 이름을 올리기도.



머지스의 곡을 커버한 Sorrow가 영국에서 3위까지 올랐다.

킹크스 오리지널인 Where Have All the Good Times

Gone도 들을 만하다.



('Sorrow' from Pin Ups, 1973)

https://www.youtube.com/watch?v=RmQ2OJgzkMg


('Where Have All the Good Times Gone from Pin Ups, 1973)

https://www.youtube.com/watch?v=TcLxjL28fZk




 (Diamond Dogs)




74년 8집 Diamond Dogs에서 영국 활동 기간 마지막

대박이 터진다. 조지 오웰 1984를 포스트 아포칼립스

형식으로 보위 페르소나에 믹스한 컨셉이었는데, 글램

서서히 결별하고 펑크프로토타입 쪽으로 이행하는

음악적 변화를 확인할 수작이다.



미국 앨범 차트에서 최초로 탑텐에 진입해 5위까지 오르고

영국에선 당연하다는 듯이 을 찍는다. - 연속 세 장째.

영국 싱글 차트 5위까지 오른 시그니처 튠 Rebel Rebel

히트를 이끌었고 유럽에선 타이틀 트랙도 괜찮은 반응을

얻었다. 파워 발라드 Rock 'n' Roll with Me도 좋았다고.



Sweet Thing Suite라고 팬덤이 받드는 일련의 트릴로지선

보위의 선굵은 초저음의 매력이 터졌다. 1984에선 이후

그가 발전시킬 소울 모드의 초기 경향을 읽을 수 있다. 물론

당시 왠만한 가수가 아이작 헤이스의 영향은 다 받았고.



앨범 타이틀을 딴 74년 월드 투어는 당시 최대 규모였다고.

이 실황이 그의 첫 라이브 앨범 David Live로 발매되기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미국 시장 활동의 간을 보고 있었다.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가 13년에 선정한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반 랭킹에서 447위를 차지한 수작이다.



('Rebel Rebel' from Diamond Dogs, 1974)

*03년 A Reality Tour 중에서. 미중년 꽃간지.



('Diamond Dogs' from eponymous album, 1974)




 (David Live)



('Rock 'n' Roll with Me' from Diamond Dogs, 1974)

https://www.youtube.com/watch?v=6js_R4A41p4


('Sweet Thing Suite' from Diamond Dogs, 1974)

https://www.youtube.com/watch?v=IvJnF5JRDAs


('1984' from Diamond Dogs, 1974)

https://www.youtube.com/watch?v=KByxC7B9WH0




 (Young Americans)




75년 9집 Young Americans. 플라스틱 소울이라 스스로

칭한 보위소울 funk R&B를 본격화한 작품이며 미국 시장

진출이란 대의를 표방하여 이에 걸맞는 성공을 거둔 앨범이다.

70년대 보위 음악 세계의 주요한 변곡점 중 손에 꼽는다고

하는 음악적 성과물일 것이다. - 서브 장르로선 필라델피아

소울로 분류하며 비틀즈 앨범 타이틀과 관련이 있다고..



 보위 백킹 체제에서 핵심 세션으로 활동하는 기타리스트

카를로스 알로마가 본작부터 그와 인연을 맺었다. 소울 보위

상징하는 시그니처 튠 Young Americans - 영국 싱글 차트

탑20, 미국 탑30, 롤링 스톤 선정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곡

486위 - 에선 무려 커리어 초기의 루서 밴드로스백킹 보컬

편곡을 지휘하였다.



거기에 존 레논... 플라스틱 소울의 상징곡 Fame알로마

함께 기타 백킹 리프를 주조해낸 공신 역할을 해낸다. 슬라이

패밀리 스톤 출신 드러머 앤디 뉴마크샌본까지... 당대

최강의 뮤지션들이 공동의 창작적 책임을 연대한 최고의

결과물, 그것이 본작이다. 미국 앨범 차트 탑텐에 오르고

영국에선 2위까지 오르는 성공을 거둔다.



전작의 미국 투어 중에 계속 체류하며 비스콘티보위

레코딩에 몰두한 결과이기도 했고 이후 보위는 줄곧 미국에서

머물게 된다. 미국 시장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기는 하나

마약 중독으로 개인의 삶은 파괴되어 가는 와중이기도 했다.

- 깡마른 이유가 음식을 먹지 않고 약물에만 의존해서라고ㅠ



('Young Americans' from eponymous album, 1975)

*중간에 비틀즈 노래 멜로디가 나오는 걸로 유명하다.

**83년 Serious Moonlight Tour 중 라이브인데, David Bowie의 콘서트

 중 가장 빼어나다고 역대급 평가를 받는 투어가 이것이다.



('Fame' from Young Americans, 1975)




 (Station to Station)




76년 10집 Station to Station. 보통 보위글램 시대가

끝났음을 선언한 앨범이라고 규정한다. 이후 그의 음악은

본격 아트락에 이따금 소울 양념을 섞는 요리로 논평할 수

있을 듯. 다음 앨범부터가 또 하나의 변곡점인데 그 변화로

가기 위한 과도기로서 또 하나의 역작이 나왔다고 논한다.



알로마를 주축으로 베이스에 조지 머레이드럼에 데니스

데이비스의 새 트리오가 진용을 꾸린 작품. 피아노는 가슨

대신 E스트리트로이 비턴이 초빙되었다. 일찍이 롤링

스톤 매거진이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반 랭킹에서 본작을

324위에 올린 바 있다.



영미 양국 앨범 차트에서 탑5를 기록했고 본작을 대표한

싱글 Golden Years가 양국 싱글 차트 탑텐에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싱글의 히트는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



확실히 이부터 신디이펙트의 프로세싱이 두드러지는

성향을 보여주고 이것이 페르소나 Thin White Duke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의 변화가 멋을 풍기다'.

가사의 세계는 신화와 종교, 철학에까지 손대고..



('Golden Years' from Station to Station, 1976)



('Station to Station' from eponymous album, 1976)

- 향후 음악적 변화의 전초전 격인 10분짜리 대곡.



('TVC 15' from Station to Station, 1976)

https://www.youtube.com/watch?v=Dh8RDktOdnc

- 본격 이기 팝이랑 약빨고 만든 환각 노래







 (Low)




미국에서 한창 약빨고 건강을 해치니 안 되겠다 싶어 결국

유럽으로 이주를 결정한다. 마음 다잡고 브라이언 이노

진지한 창작 작업으로 심기일전하니 팬덤이 꼽는 최고의

분기점, 베를린 3부작이란 작품으로 화답한다. 토니

비스콘티 역시 공동 프로듀싱에 기여했고.



이노의 영향으로 일렉트로닉, 앰비언트, 아방가르드,

뉴웨이브, 크라우트락, 월드뮤직 장르로 천착하여 만든

본격 아트락 연작 앨범을 베를린 3부작이라 정의한다.

그때까지 살짝살짝 맛보기로 들락날락 하던 영역을

이제 대놓고 들이파겠다는 뜻. 그러고 보면 글램락

아트락의 먼 방계가 맞긴 맞나 보다.. (그런가?)



 ("Heroes")




77년 11집 Low, 77년 12집 "Heroes", 79년 13집 Lodger..

이 세 앨범이 연작으로 묶인다. Low롤링 스톤 선정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반 랭킹 251위에 올랐고, "Heroes"의 가장

유명한 시그니처 타이틀 트랙롤링 스톤 선정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곡 랭킹서 무려 46위에 올랐다. 설명이 필요 없지.



Low - "Heroes" - Lodger 이어지며 영국 앨범 차트 각 2위,

3위, 4위에 올라 골드 인증을 받았다. 미국 성적은 탑20, 탑40,

탑20로 상대적으로 약하긴 하나 평단의 반응만은 뜨거웠다.

앨범을 꽉 채운 다크 모드의 보위인스트루멘탈 트랙들에

특히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Minimoog, ARPEMS Synthi

등 첨단의 신스 기어들을 두루 기용했다. - 이노니까.



 (Lodger)




이 시기를 대표하는 트랙은 단연 "Heroes". 동서로 분단된

과거 베를린의 통합을 염원하는 정치 연대의 주제가처럼

불린 바로 그 노래이다. 통일 직전 87년 6월 베를린 장벽 옆

무대에서 동쪽을 향해 보위가 이 곡을 열정적으로 불러제낀

콘서트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된 것이다. 체제 장벽을

사랑으로 극복하려던 평범한 연인들을 영웅으로 노래한 것.

87년, 베를린도 서울도 용기있는 사람들이 나서던 그 시절..



Sound and Vision, Warszawa, V-2 Schneider, DJ,

Look Back in Anger, Yassassin 등 세 앨범의 곳곳을

차지하는 예술적 대중 음악의 지극한 향연을 음미해 보길

권장한다. 보위는 건강과 음악성, 두 토끼를 되찾게 된다.




('"Heroes"' from eponymous album, 1977)

*기타 솔로잉을 로버트 프립이.. 오오오...





*The moment when Bowie was singing to appraise

 brave lovers towards the wall...

https://www.vox.com/2016/1/11/10749546/david-bowie-berlin-wall-heroes

- 87년 6월 6일: 6.10 나흘 전.. 장벽 철거는 90년 6월 13일.



('Sound and Vision' from Low,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WoDamvrfUbQ

- 영국 싱글 차트 3위까지 오른 히트 튠.



('Warszawa' from Low,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EAD1j32TiiY

- 조이 디비전의 초기 밴드 이름이 여기서 영향 받았다.



('V-2 Schneider' from "Heroes",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Li8T0lcgbh0

- 크라프트베르크 리더에게 바치는 노래.



('DJ' from Lodger, 1979)

https://www.youtube.com/watch?v=MRRmU_pOXnk

- 기타는 에이드리안 벨류. 보위가 토킹 헤즈를 모방한 거라고.



('Look Back in Anger' from Lodger, 1979)

https://www.youtube.com/watch?v=5iI-ysibI-0

- 오아시스의 노래 제목이 여기서 따온 것.



('Yassassin' from Lodger, 1979)

https://www.youtube.com/watch?v=SSfFuNqy1q4

- 중근동 전통 음악과 레게를 혼합한 것.



 (Stage)



3부작 시기 퍼포먼스는 78년 두번째 라이브 앨범 Stage

들려준다. 영국골드를 받았지만 평단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Scary Monsters (and Super Creeps))




이후 보위의 음악성이 완벽하게 부활했음을 입증한 80년의

14집이 Scary Monsters (and Super Creeps). 뉴웨이브

포스트펑크로 완벽하게 갈아탄 모습을 구현해낸다. 이노

비스콘티의 영향도 벗어나 거의 개인적으로 프로듀싱

마친 결과였다.



영국 앨범 차트 탑을 찍었고 플래티넘을 기록했으며 미국

12위까지 올랐다. 영국 싱글 차트에서도 을 찍은 Ashes

to Ashes는 본작의 대표곡으로서 메이저 톰 캐릭터가

재언급되며 척 해머신스 기타 솔로잉이 유명하다.



영국 싱글 5위까지 오른 Fashion뮤직 비디오는 정치적

풍유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어 당시 유명했다. 이밖에 타이틀

트랙Teenage Wildlife, It's No Game을 들어볼 만하다.



('Ashes to Ashes' from Scary Monsters, 1980)



('Fashion' from Scary Monsters, 1980)




('Scary Monsters (and Super Creeps)' from eponymous album,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NHywdqH3F6Y

- 런던 방언이 등장한다고. 퍼커션 이펙트가 유명하다.



('Teenage Wildlife' from Scary Monsters,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1hIwB97p3r0

- 프립과 알로마에 척 해머, 3인의 기타 앙상블.



('It's No Game' from Scary Monsters,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24Ur_OdR7yo

- 일본어 대사가 등장하니 놀라지 마시길.




 (Under Pressure, single)




사실 보위 작업이 아니고 프로젝트에 초빙된 건데 81년

Under Pressure를 언급 안 하고 가면 화내는 팬이 많다.

별도 싱글로도 발매되었고 이 역대급으로 말아먹은 앨범

Hot Space에도 실려 있다.



머큐리가 사망한 후 보위 혼자서 라이브 뛰기 위해 90년대

이후 베이스 겸 보컬 게일 앤 도시와 협업을 많이 했는데

개인적으로 96년 암스테르담 TV 라이브를 좋아한다.



('Under Pressure' by Queen & David Bowie, 1981)

*TV Live feat. Gail Ann Dorsey in Amsterdam 1996




 (Let's Dance)




83년 15Let's Dance의 대성공은 솔직히 보위 자신이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그 자신도 생전에 인정한 듯하다.

정말 우연히 찾아든 대박. 3부작 등 예술 작업을 통해 꽤

탄탄한 창작 역량을 축적해 놓았고 십여 년 전부터 미국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건만, 정작 이렇게

대단한 성공이 예고도 없이 찾아든 상황이라니.



이게 다 동명의 타이틀 트랙 Let's Dance가 미국에서 너무

히트를 쳐버린 탓이다. 보위 커리어 최고의 히트 튠. 영국,

미국, 아일랜드,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에서

싱글 탑에 올랐고 호주, 독일, 오스트리아2위를 찍었다.

앨범? 미국에서 4위, 영국, 호주,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에

을 찍었고 독일, 오스트리아에선 2위를 찍었다. 거기에

영국, 미국캐나다, 네덜란드에서 플래티넘을 기록.. 오오오.



84년 당시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 후보로도 올랐으며 -

비록 수상은 Thriller에 밀렸어도 - 현재까지 1천 1백만 장이

팔렸다고. Young Americans 이후 제대로 작업해보자 해서

시크 출신 나일 로저스프로듀서로 영입해 미국 정통의 흑인

사운드를 접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세션

기타리스트조차 아직 무명이었던 스티비 레이 본.



('Let's Dance' from eponymous album, 1983)

*저 술집 씬의 엑스트라 분들은 당시 현지 주민들이시다.ㅎ

- 뮤직 비디오인지 뭔지 도통 모르셨다고. 정직한 리액션을 찍은 거다.




Let's Dance영국에서 싱글 데뷔를 5위로 했을 정도이며

호주에서 원주민 배우와 아마추어처럼 찍은 뮤직 비디오조차

당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고.. 싱글영국에서 실버 기록한

Modern LoveChina Girl은 후속 싱글로 차트 2위까지

올랐고 미국에서도 각각 탑20위, 10위까지 올랐을 정도이다.



보위OST에 참여했던 Cat People(Putting Out Fire)

조르지오 모로더 작곡의 원곡에 스티비 레이 본그루브

충만한 기타 솔로잉을 가미한 버젼으로 앨범에 실리기도 했다.

보위 자신은 타이틀 트랙에 대한 애정이 크지 않음을 분명히

하기도 했지만, 생애 최고의 메가히트임은 부인할 수 없겠다.



보통 이 정도로 대박을 쳐버리고 나면... 어떨까. 정답,

다음 작품 때문에 두려워지기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상하게 다음 앨범부터 그는 잘 안 풀리기 시작한다..ㅠ



('Modern Love' from Let's Dance, 1983)




('China Girl' from Let's Dance, 1983)



('Cat People (Putting Out Fire)' from Let's Dance, 1983)


*데이빗 보위의 Let's Dance 앨범 버젼 - 기타 Stevie Ray Vaughan

https://www.youtube.com/watch?v=6NUy1ZH6ViE


*영화 캣피플 OST 앨범 버젼 - 주연 Nastassja Kinski

https://www.youtube.com/watch?v=VpdHMaccjw4




 (Tonight)




84년 16집 Tonight영미 싱글 차트 탑텐에 든 Blue Jean

보유했지만 여러 모로 음악적 성과가 아쉬운 그냥저냥 상업적인

80년대 앨범에 불과했다. 앨범영국 차트 탑에 오르긴 했으나

누가 봐도 전작의 동력에 힘입은 결과였다.



('Blue Jean' from Tonight, 1984)




 (Dancing in the Street, single)




85년엔 우주 최강 스타로서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 올랐다.

재거와 듀엣으로 싱글 Dancing in the Street를 발매해 영국

차트 탑과 미국 차트 탑텐을 기록했다. 원래 라이브 에이드의

영미 양쪽 무대에서 부르려 했는데 기술이 따라주지 않아 실패.



('Dancing in the Street' by Mick Jagger & David Bowie, 1985)

*Marvin Gaye 작곡의 64년 소울 곡을 커버한 것.

- 성격상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원래 위 두 분은 절친이다.




 (This Is Not America, single)




같은 해 영화 주제가로 발표한 This Is Not America핫100

차트 탑40까지 오르는 중박을 기록했다. 팻 메스니의 도움으로.

87년 17집 Never Let Me Down의 어중간한 실험성과 상업

코드는 더욱 실망스러웠다. 앨범과 싱글 차트 성적도 별로였고.



('This Is Not America' by Pat Metheny Group & David Bowie, 1985)

*Sean Penn 맞다. John Schlesinger 감독의 스파이물 영화.

- 'The Falcon and the Snowman'이란 제목. 꽤 재밌다고..



('Absolute Beginners' from eponymous OST album, 1986)

https://www.youtube.com/watch?v=iCJLOXqnT2I

*또 하나의 주제가. 영화는 말아 먹었는데 노래만은 반응이 좋았다.

- 그가 직접 출연도 하신 음악 영화였다.




 (Tin Machine)




90년대에 돌파구로서 Tin Machine이란 4인조 하드락 밴드를

조직해 딴엔 70년대 초창기처럼 다른 멤버들과 대등하게 창작에

매진해 보려 했으나.. 이미 거물인데 그게 가능한감. 실패였다.



('Under the God' from Tin Machine, 1989)

*약간 칩트릭 류의 하드이 연상된다. 그래서 안 어울림..




92년엔 프레디 머큐리 헌정 공연에서 애니 레녹스와 좋은 무대를

선보였다. 직후에 소말리아 출신 탑 모델 이만과 결혼하셨고 향후

음악 노선은 일렉트로닉인더스트리얼 지향하여 이것저것

익스페리멘트.. 성과는 미미했다. 한물 갔다는 말도 나오고.



('All the Young Dudes' feat. David Bowie, 1972)

*Live from the Freddie Mercury Tribute Concert, 1992.

- 원래 보위가 72년에 Mott the Hoople에게 작곡해준 곡.




('Jump They Say' from Black Tie White Noise, 1993)

- 조현병으로 자살한 형 이야기



('Hallo Spaceboy' from 1. Outside, 1995)

- 근 20년 만에 Brian Eno와 다시 협업한 결과물



('Little Wonder' from Earthling, 1997)

- 가장 히트한 트랙인데 완벽한 인더스트리얼 장르이다



('Thursday's Child' from 'hours...', 1999)

- 앨범 전체가 원래 비디오게임의 OST 목적으로 제작된 것



('Slow Burn' from Heathen, 2002)

- Pete Townshend on guitars



('New Killer Star' from Reality, 2003)

- post-9/11 쪽으로 해석하는 설이 있다




투어에서는 여전히 셀링 파워가 강한 슈퍼스타셨는데, 04년에

오슬로에서 공연 도중 눈 부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고 심장에도

무리가 와서 이래저래 이후 공식 활동은 자제하고 계셨다...

그렇게 음악가로서 저물어 가는 줄, 알. 았. 는. 데.




 (The Next Day)




13년에 전격적으로 공식 24집 The Next Day를 발매하신다,

예순 여섯 생신일인 1월 8일에. 전세계 팬덤과 평단 양쪽에서

뜨겁게 호응하였고 영국 앨범 차트에선 으로, 미국에서는

2위로 데뷔를 끊었다. 영국에서 플래티넘을 기록하고.



('Where Are We Now' from The Next Day, 2013)

https://www.youtube.com/watch?v=QWtsV50_-p4



('The Next Day' from eponymous album, 2013)

*Gary Oldman은 그의 절친이시다.. 후덜덜한 캐스팅과 충공깽의 연출.

- 미성년자는 주의하기 바란다. 극보수적 기독교도 역시.



('The Stars (Are Out Tonight)' from The Next Day, 2013)

*Tilda Swinton 맞다. 미성년자는 주의하기 바란다.




 (Blackstar) (★)




16년 예순 아홉 생신일엔 공식 25집 Blackstar를 발매하셨

평단의 지지를 이끌어낸 후 이틀 지나 갑작스럽게 영면하셔서

세상은 슬픔에 잠겨 버렸다. 온 지구인의 친구 지기 스타더스트

우주로 훌쩍 날아가 버린 것이다. 영원히..ㅠㅠ



('Blackstar' from eponymous album, 2016)

*이미 암 선고를 받은 상태였기에 죽음의 암시가 곳곳에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Lazarus' from Blackstar, 2016)







한 사람의 당당한 창작자로서 삶을 열어졎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음악 창조에 인생을 갈아넣은 진정한 뮤지션.

평생 음악 산업과 예술 분야의 중심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오롯이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자아를 잃지 않으려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사표를 세워준 시대의 예술가.



그가 일찍이 페르소나 작법을 통한 상상력의 극치를 선물한

점은 혹자가 논평했듯이 전후 포스트 모던 사회의 폭압적인

성역할을 전복하고 젠더의 평등을 통해 진정한 자아의 해방을

구현하려 했던 그 자신만의 소통 어법이라고 정리하겠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는 죽은 것이 아니라 화성으로 돌아가

우주의 물질과 영혼을 위로하는 책무에 눈을 뜬 것이라고.

마치 그가 수십 년 전에 내놓은 작품에 가련한 수십 억의

지구인들이 아직까지도 마음의 위무를 기대고 있듯이.




('Pablo Picasso' from Reality, 2003)

- Modern Lovers의 76년 튠 커버.



*Space Oddity, Serious Moonlight Tour '83.



*"Heroes", live '04 (The Isle of Wight Festival).



*Ziggy Stardust, the Motion Picture '70s.



*Under Pressure, Mercury Tribute '92 feat. Annie Lennox.






과거를 회상해보면 아무래도 세대가 세대인지라 당시 그토록

욕을 먹었던 80~90년대 일렉트로닉 보위곡들에  정

주었던 것 같다. 엄청 욕먹었는데 사실 그때 그 곡들 지금

들어보면 하나같이 상당한 역량의 음악이다. 그만큼 요즘

음악가들이 쳐지지 않은가 싶은...



Life on Mars, Aladdin Sane, Station to Station,

Teenage Wildlife 등 애정하는 보위 들이 많이 있지만..

본 블로거는 Fame을 75년 원곡이 아니라 Fame '90라고

90년 리믹스 버젼으로 먼저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더랬다.

(영화 귀여운 여인 OST 앨범으로 기억한다.)



특히 구스 반 산트 감독이 만든 뮤직 비디오에 데이빗 보위

함께 캐나다 현대 무용수 루이스 르카발리에가 출연하시는데,

가뜩이나 완성도가 높은 보위 영상물 중에서도 단연 최고라고

여긴다. 하여 강력한 추천을 때리며 이번 포스팅을 마무리한다.



('Fame '90' from Changesbowie, 1990)

*연출 Gus Van Sant, 안무 Louise Lecaval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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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롤링 스톤즈제프 벡과 동기로 음악을

시작했는데 여전히 팔팔한 현역으로 정력적인

성과를 현재 진행형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분.



허스키 비음 섞여 할퀴듯이 귀청을 는 = raspy

특유의 보이스 텍스처로 유명하여, 한 번도 못 들어본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한 번 듣고 누군지 못 알아채는

사람은 절대 없는 독창적 캐릭터의 소유자.



이렇게 대단함에도 수십 년간 한국에서의 인지도가

고작 히트곡 한둘에 그쳐 많은 관계자를 까무러치

만드는 분... 이번 포스팅의 주인공은 45년생 영국의

락 싱어 로드 스튜어트 Rod Stewart올시다.











그의 영국 내 차트 성적은 놀랍다. 앨범 차트 정상 기록을

연속으로 여섯 앨범에 걸쳐 거두었62개 싱글 히트

31곡은 탑텐에, 6곡은 탑을 찍었다. 미국 핫100 차트에선

16개 탑텐 싱글을 기록해 그 중 4곡이 정상에 오른 것.



롤링 스톤 선정 대를 초월하는 100명의 위대한 가수들

59위, 영국 Q 매거진의 07년 랭킹에선 33위에 올랐고,

94년 미국 락앤롤 명예의 전당 헌액, 06년 영국 음악 명예의

전당 헌액에다 70년대 소속 밴드 페이시즈 이름으로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 12년 다시 한 번 헌액되었으며, 16년에는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서임받기까지 했다.



(롤링 스톤 매거진)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singers-of-all-time-147019/rod-stewart-3-45919/


(Q 매거진)

http://www.rocklistmusic.co.uk/qlistspage3.htm





스코틀랜드 혈통 부계와 잉글랜드 혈통 모계 사이에서

태어나 런던 중류층 신문 매점집 늦둥이 막내로 큰 그는

3부 리그 입단 테스트도 받을 만큼 한때는 가수가 될지

축구선수가 될지 정말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네.



아버지와 가족들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EPL 아스날 FC

서포터였고 지금도 공연마다 멋진 킥으로 관객에게 공을 뻥뻥

차날리는 퍼포먼스로 유명하다. 성인이 된 후엔 셀틱 FC

스코틀랜드 A매치 대표팀으로 갈아탔다고.



리틀 리처드, 빌 헤일리, 에디 코크란을 들으며 락앤롤

눈을 떴고 청소년기에 우디 거스리밥 딜런 및 브리티쉬

포크 음악을 들으며 깊게 영향을 받았기에 이런 흔적이

70년대 초중반 히트 튠에 짙게 배어있다.



('Reason to Believe' from Every Picture Tells a Story, 1971)

*히트 싱글의 B사이드로 영미 양국 싱글 차트 탑에 올랐다.



('You Wear It Well' from Never a Dull Moment, 1972)

*영국 싱글 차트 탑, 미국 핫100 차트 탑20까지 올랐다.




청소년기인 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반은 영국 전역에

비트닉이나 모드 같은 서브컬처가 젊은 세대를 지배하던

때였다. 스튜어트도 여기에 적극 동참했고 껄렁껄렁 좌파

시위대 쫓아다니다가 여자애 임신시킨 흑역사도 있었다.ㅜ



또 이때부터 포크 그룹을 전전하며 하모니카와 노래를

겸하는 버스킹에 열을 올렸고 많은 뮤지션들과 교류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대에서 오티스 레딩이 노래하는 모습에

뻑가버려 샘 쿡 등 당대의 소울R&B 장르에 매료되고

후일 블루스 바탕의 음악성이 형성되는 계기가 된다.



('Twistin' the Night Away' from Never a Dull Moment, 1972)


*샘 쿡의 오리지널과 비교

https://www.youtube.com/watch?v=zTArYTvpLZA



('Angel' from Never a Dull Moment, 1972)

*지미 헨드릭스 유작을 커버하여 핫100 탑40까지 올랐다.


**지미 헨드릭스의 오리지널과 비교

https://www.youtube.com/watch?v=EaRFxrDAR-A




20대 초반에 이후 평생 친구로 남은 롱 존 볼드리 같은 블루스

뮤지션과 교류하며 처음으로 돈을 버는 뮤지션의 길을 걷는다.

볼드리 등과 엮여 스팀패킷이란 밴드를 거쳤고 후에 플리트우트

을 결성한 믹 플리트우드피터 그린과는 샷건 익스프레스

밴드로 짧게 만났으나 성공적이진 못했다. 그래도 64년 최초의

솔로 싱글 레코딩을 출시하는 성과는 있었다. 흥행은 별로였다.



67년초에 야드버즈에서 쫓겨나 독자적 밴드를 모색하고 있던

한 살 위 제프 벡을 만나며 커리어의 전환점을 맞는다. 전설로

남은 제프 벡 그룹보컬리스트로 발탁된 것. 당시 베이스 치던

로니 우드, 키보드니키 홉킨스와, 드럼믹 월러 함께.

얼핏 봐도 후덜덜한 멤버들이다.



JBG 경험은 그에게 크게 세 가지를 남겼다. 첫째 제프 벡

경쟁 아닌 경쟁 같은 플레이를 펼치며 향상된 보컬 프레이징,

둘째 평단의 긍정적 평가와 미국 시장에서 향상된 인지도,

셋째 로니 우드라는 평생의 친구이자 동료가 그것이다.

(롤링 스톤즈의 그 분 맞다.)



이들의 미국 시장 앨범 성적은 그럭저럭 중박은 되었지만 정작 

리더인 과 뭔가 궁합이 안 맞는 느낌이 들어 탈퇴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경험이란 자산을 얻은 채라 희망이 보였다.



('I've Been Drinking' by the Jeff Beck Group, 1968)

*JBG 활동시 싱글로 발매한 곡. R&B 영향이 짙다.



('You Shook Me' by the Jeff Beck Group, 1968)

*윌리 딕슨의 고전을 커버한 것


**레드 제플린의 커버 버젼과 비교하면 재미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S1Tz6dzcjU



('All Shook Up' by the Jeff Beck Group, 1969)


*원곡은 유명한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

https://www.youtube.com/watch?v=3rQEbQJx5Bo




68년, JBG 활동을 지켜보던 관계자에게 픽업되어 솔로

앨범 계약을 처음으로 맺었는데 여차저차하여 녹음 진행이

더뎌지는 사이 페이시즈의 새 라인업에 친구 로니 우드

가담한다 하자 이에 동참한다. 보컬스튜어트, 우드

기타, 키보드이언 맥레건, 드럼케니 존스까지..

JBG만큼 훌륭한 멤버 구성이었다.



70년대 중반까지는 솔로페이시즈 활동을 병행하는

구조였는데 솔로 2집까지는 밴드에서 성적이 상대적으로

더 나은 편이었다. 페이시즈는 수 년 후 브리티쉬 펑크락

형성에 중요한 기여를 하는 밴드로서 롤링 스톤즈처럼

블루스에 기반을 둔 탄탄한 사운드가 일품이었다.



점차 스튜어트의 진가가 대중들에게 발견되자 페이시즈

활동의 비중이 줄어가게 되고 75년경 우드롤링 스톤즈

기타로 옮겨가게 되자 결국 해체 수순을 밟는다. (맥레건

스톤즈세션으로 갈아타서 한창 유명세를 떨쳤다.)



페이시즈에서 그의 활약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해산 무렵인 74년 런던 공연 실황을 참조..

https://www.youtube.com/watch?v=rK_wPCQCVRY

*여기 등장하는 동양인 베이시스트는 일본 분 Testu Yamauchi.



('Stay with Me' by Faces, 1971)

*미국 핫100 탑20, 영국 차트 탑텐까지 올랐다.




오늘날의 로드 스튜어트를 만들어내는 데 디딤돌을 괸

역작은 71년 3집 Every Picture Tells a Story 앨범.

비로소 그의 인지도가 세계적으로 퍼지는 계기가 된다.

동명의 타이틀 트랙도 괜찮았지만 영미 양국에서 싱글

에 오른 대박 히트곡 Maggie May의 역할이 컸다.



흘러간 팝송으로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인데

한국에도 처음 이 노래로 알려졌다. 연상녀와의 뜨거운 관계

끝에 남는 것 하나도 없더라는, 다분히 자전적인 연애담이

내용이고, 메기 메이란 제목 자체는 대항해 시대 영국 민속

음악에 전승되던, 선원들 등쳐먹는 창녀 이름에서 따왔다고.



오늘날까지도 스튜어트시그니처 송이며 롤링 스톤 선정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곡 중 당당히 131위를 차지했다.



(Every Picture Tells a Story)



('Every Picture Tells a Story' from eponymous album, 1971)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 by the Rolling Stone Magazin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500-greatest-songs-of-all-time-151127/rod-stewart-maggie-may-70210/



('Maggie May' from Every Picture Tells a Story, 1971)

*Faces 멤버들 여기 다 나온다. Ronnie Wood에 Ian McLagan까지.



(14년 비냐델마르 페스티벌 중. 무서우리만치 정정하시군.)

*만돌린을 연주하는 세션 멤버는 J'Anna Jacoby.




75년 6집 Atlantic Crossing 앨범도 괜찮은 성적과 평가를

받았고 무엇보다 오늘날까지 셋리스트에 빠짐없이 올라오는

그의 히트 트랙 두 곡이 나온다. 바로 I Don't Want to Talk

About ItSailing.



두 곡 다 커버곡이다. 이쯤 되면 눈치 챘겠지만 그냥저냥 묻힐

만한 어중간한 곡을 발굴해 자신만의 프로듀싱을 입혀 새로

재해석하고 히트 튠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그의 주특기이다.



특히 세일링은 오늘날까지도 한국에서 로드 스튜어트 하면

떠오르는 거의 유일한ㅠ 대표곡이기도. 이 곡이 한국에서만

인기있다고 오해하는 사람을 가끔 봤는데 그렇지 않다. 영국

싱글 차트 탑에 올랐고 유럽과 중남미에서도 인기가 높다.



(Atlantic Crossing)



('I Don't Want to Talk About It' from Atlantic Crossing, 1975)

*옆에 여가수는 글래스고 출신 후배로서 이 곡을 커버한 적 있는 Amy Belle.


**젊었을 적 라이브는 아래에.

https://www.youtube.com/watch?v=esUHMBHJsn8



('Sailing' from Atlantic Crossing, 1975)




76년 7집 A Night on the Town은 그때까지 가장 큰 성공을

가져다준 앨범이다. 미국 앨범 차트 2위까지 올랐고 싱글 차트

을 찍은 Tonight's the Night (Gonna Be Alright)

배출했으며 첫 플래티넘 기록 앨범이 된 것.



76년 연말 집계 정상에도 오른 Tonight's the Night70년대식

낭만의 정수를 표현한 섹드립 송가인지라 미성년자는 가사에 주의..

The First Cut Is the Deepest는 포크 싱어 캣 스티븐스

곡을 커버해 인기를 끌었고 The Killing of Georgie는 실제

있었던 게이 배우의 비극적 죽음에 대한 가사이다.



(A Night on the Town)



('Tonight's the Night' from A Night on the Town, 1976)

*이 노랜 비디오도 19금. 미성년자 주의.



('The First Cut Is the Deepest' from A Night on the Town, 1976)

https://www.youtube.com/watch?v=c5NRH_DxWJE


(The Killing of Georgie from A Night on the Town, 1976)

https://www.youtube.com/watch?v=95zxtaKQBBc




77년 8집 Foot Loose & Fancy Free 앨범은 계속 자기

복제가 늘어가는 점 때문에 평가는 박했지만 히트 트랙을 많이

배출했다. 드럼카마인 어피스를 필두로 기타에 게리

그레인저짐 크리건, 베이스 필 첸 등 새로이 로드 스튜어트

그룹을 조직하여 하드락에서 funk, 발라드, 프로그레시브

다양한 사운드를 실험해내기도 했다.



강렬한 비트를 구성한 Hot Legs, 축구 팬심을 살짝 드러낸

You're in My Heart, 슈프림즈 곡을 커버한 바닐라 퍼지

대한 커버 You Keep Me Hanging On, 올타임 셋리스트

팬덤에서 인기가 높은 I Was Only Joking 등이 히트했다.



(Foot Loose & Fancy Free)



('I Was Only Joking' from Foot Loose & Fancy Free, 1977)

*90년대 언플러그드 버젼



('Hot Legs' from Foot Loose & Fancy Free, 1977)

*미성년자 주의


(또 하나의 전설 티나 터너와 81년에. 비틀즈의 Get Back 및 Hot Legs.)

https://www.youtube.com/watch?v=jQGGlMRBKHs



('You're in My Heart' from Foot Loose & Fancy Free,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Q6Ns2MCy9qE


('You Keep Me Hanging On' from Foot Loose & Fancy Free,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jK4iKWpgfyo




78년 9집 Blondes Have More Fun이 거둔 성과는

또 한 번 놀라웠다. 스튜어트 70년대 디스코그래피 중

최고의 히트 싱글이자 여전히 시그니처 튠Da Ya

Think I'm Sexy가 수록된 앨범이 바로 이것.



앨범은 미국 차트 탑을 포함해 7개국서 1~2위에 올랐고

트리플 플래티넘 기록에다 위 싱글만 별도로 플래티넘을

기록하며 영미 양국과 캐나다, 호주 등지차트 탑을 기록..



(Blondes Have More Fun)




세계구급 히트곡이 된 Da Ya Think I'm Sexy카마인

어피스의 제안으로 만들어낸 본격 디스코 튠. RSG 멤버

각각의 창작 능력이 일정한 궤도에 올랐고 이를 조율하는

스튜어트프로듀싱 감각이 물에 올랐음을 알 수 있다.



기존 블루스락을 외면하고 디스코 열풍에 편승한 죄 아닌

죄로 앨범에 대한 평가는 박했다. 더우기 Da Ya Think~

버스리프에서 표절 시비에도 휘말려 법정 합의까지 가는

수모도 겪었다고. 결국 판매 수익을 유니세프 기금으로

헌납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Da Ya Think I'm Sexy' from Blondes Have More Fun, 1978)

*Carmine Appice, Minimoog, CP-70 등 시대의 명물이 모두 등장..

** 여기 등장하는 동양인 베이시스트는 중국계 자메이카인 Phil Chen.



('Blondes' from eponymous album,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HCjPDonlvjA

*필첸 형님 방방 뛰어다니시던 그때 그 시절을 기억하십니까.


('Ain't Love a Bitch' from Blondes Have More Fun,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v-gs_8aPxuY

*전형적인 스튜어트식 발라드 문법의 곡



(Minimoog Model D)



(Yamaha CP-70)




80년대가 되어 모든 가수가 그러하듯 뉴웨이브의 파도를

피하지 않았다. 80년 10집 Foolish Behaviour, 81년 11집

Tonight I'm Yours의 두 앨범 모두 디스코에서 신스팝으로

넘어가는 시대적 흐름을 보여주었으나 평가나 흥행면에선

약간 뒤로 물러선 모양새였다.



10집에서 Passion은 여전한 싱글 차트 강세를 이어나가서

빌보드 핫100 5위를 비롯하여 각국 랭킹의 상단에 올랐고

11집 Young Turks신디사이저 리프를 앞세워 핫100

5위 등 비슷한 정도의 흥행을 기록했다. RSG의 주요 멤버

키보디스트 케빈 세비거가 이 무렵에 합류하기도.



('Passion' from Foolish Behaviour, 1980)



(Tonight I'm Yours)



('Young Turks' from Tonight I'm Yours, 1981)

*연출은 러셀 멀케이 감독. 젊은 Kevin Savigar도 등장.



('Tonight I'm Yours' from eponymous album,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TEy6vnHbgpo




83년 12집 Body Wishes, 84년 13집 Camouflage,

86년 14집 Every Beat of My Heart에 이르기까지 수

년의 기간은 꾸준하게 싱글 히트는 기록했어도 사실상

예전만큼의 앨범 완성도와 흥행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래도 12집에서 Baby Jane영국 싱글 차트 탑을,

13집에서 Infatuation미국 핫100 탑텐을, 14집

Love Touch핫100 탑텐을 각각 기록하며 선전했다.



이 시기의 수확이라면 현재까지도 꾸준하게 셋리스트

오르는 13집Some Guys Have All the Luck

얻어낸 것이 아닌가 싶다.



('Some Guys Have All the Luck' from Camouflage, 1984)



('Baby Jane' from Body Wishes,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dxl2r6GuL2w


('Infatuation' from Camouflage, 1984)

https://www.youtube.com/watch?v=GGKtqbmHSos

*오랜만에 조우한 Jeff Beck이 기타 세션을 해줬다.


('Love Touch' from Every Beat of My Heart, 1986)

https://www.youtube.com/watch?v=SCAJqv0nrbA




88년 15집 Out of Order 역시 공동 프로듀싱을 맡은

파워 스테이션의 색이 너무 짙다며 평은 좋지 않았다.

이 시기 스튜어트는 싱글 히트곡으로서 Forever

Young, My Heart Can't Tell You No, This Old

Heart of Mine, Downtown Train 등을 낸다.



('Forever Young' from Out of Order, 1988)



('Downtown Train' from Storyteller I, 1989)




90년대의 스튜어트는 91년 16집 Vagabond Heart 중

Rhythm of My Heart, 93년 라이브 앨범 Unplugged

... and Seated에서 밴 모리슨의 곡을 커버한 Have I

Told You Lately같은 해에 스팅브라이언 애덤스

함께 한 All for Love가 히트의 인연을 이어갔다.



Forever Young, Downtown Train, Rhythm of My Heart..

흥행 면에선 점점 어중간해지는 중년에 접어들고 있었으나

그럴수록 더 원숙한 감성이 잘 스며들어 팬덤의 마음을 보듬고

이런 곡들이 지금까지도 오랜 사랑을 받는 점 또한 사실이다.



('Rhythm of My Heart' from Vagabond Heart, 1991)



(Unplugged... and Seated)



('Have I Told You Lately' from Unplugged... and Seated, 1993)



('All for Love' by Rod Stewart, Sting and Bryan Adams, 1993)

https://www.youtube.com/watch?v=n-AB7RJpOjY




94년 브라질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열린 송년 공연에 자그마치

350만 명의 관객을 운집시켜 기네스북에도 오른다. 02년엔

전세계 누적 판매고 1억 돌파를 인증받기도. 이룰 것은 다

이룬 듯 황제처럼 안락해질 만도 한 그이지만..



2천년대에 스튜어트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Great

American Songbook이라 하여 20세기 전반기 대중음악

고전 스탠다드 노래를 재해석하여 몇 개의 시리즈 앨범

걸쳐 집대성하는 대장정에 돌입한 것. 그것도 환갑을 앞두고.



02, 03, 04, 05, 10년에 다섯 장의 스탠다드 송북 앨범

발표하고 06년엔 락 클래식 앨범, 09년엔 소울 스탠다드

앨범을 잇달아 발매한다. 시대를 풍미한 노장 음악가가 그간

바탕이 되온 음악 세계를 총결산하는 대작업을 수행한 것.

평단과 대중은 기립박수를 보낼 수밖에.



('The Way You Look Tonight' from It Had to Be You, 2002)




말년의 행보와 지금까지 기술한 내용을 읽으면 알겠지만
로드 스튜어트란 뮤지션을 구성하는 장르적 인자는 초기
락앤롤모타운 사운드에 기초한 소울R&B, 블루스
블루스락, 여기에 영국과 미국의 모던 포크 컨트리
블루스 등을 섞은 영역이라 하겠다.


비틀즈보단 거칠고 투박한 스톤즈에 더 가까운 성향이고 실제
롤링 스톤즈 진영으로 넘어가는 뮤지션들과의 교류가 전반적
음악 생활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 자신이 비르투오소적인
연주 능력을 갖춘 것은 아니기에 기교를 갖춘 세션 멤버들을
유기적으로 엮어 맛깔나는 음악으로 조율해내는 프로듀싱
능력에서 탁월한 강점을 보여왔다.


어찌 보면 창작 능력 자체도 평범한 정도에 불과한지 몰라서
자신의 단점을 보완해 공동 작곡에 참여하고 투어에 뛰어들
양질의 뮤지션들을 얼기설기 꾸려나가는 것이 커리어 전반에
걸쳐 핵심이었을 터이고 강한 인간적 친화력을 바탕으로
이런 점을 성공적으로 영위해온 셈이다.


극강의 테크닉을 가진 보컬리스트는 아닐지 몰라도 체력을
바탕으로 크게 기복이 없이 허스키고음역을 소화하고 꽤나
매력적인 스테이지 매너를 갖추었다는 면에서 한 시대를 능히
주름잡을 만한 싱어로서의 캐릭터를 구축하기엔 충분했다.


*Da Ya Think I'm Sexy

(14년 비냐델마르 페스티벌 중에서)



*Sailing

(04년 로열 알버트 홀 공연. One Night Only!란 라이브 앨범으로도 나왔다.)



*Young Turks

(81년 라이브. 키보드엔 Kevin Savigar.)



*Passion

(89년 아르헨티나 라이브. 색소폰에 Jimmy Roberts.)



*Forever Young

(89년 칠레 라이브)






본 블로거가 가장 높게 평가하는 로드 스튜어트의 시대는

카마인 어피스 같은 거장 세션들과 함께 한 70년대 후반 및

80년대 초반의 수 년 간이다. 당시 평론의 부정적 평가와는

달리 디스코와 funk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특히 드럼

베이스 등 리듬 섹션 멤버들과 이뤄낸 극강의 조화로운 튠은

그가 왜 존경받을 밴드메이트인지 입증한 것이었다고 본다.



한번도 차트에 오른 적 없고 팬덤에서의 인기도 이젠 좀

시들해졌으나 77년 Foot Loose & Fancy Free 앨범에

수록된 You're Insane은 숨겨진 진주처럼 번쩍 빛나는

최고의 트랙이라고 생각한다. 블루스에서 시작해 funk

넘어가던 RSG 튠이 조합해낸 최상의 정점이 아니었을까

싶어 강력하게 추천하며 이번 포스팅을 끝낸다.



('You're Insane' from Foot Loose & Fancy Free,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zVwfk1NlZc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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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락 보컬은 이 분이 등장하기 전과 등장한 후로 나뉜다.

그리고 모든 락 음악은 이들 이전과 이후로 나뉘기도 하고.

오늘날 락 음악에 종사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예술 세계에

영향을 주고 10년 여의 활동 기간을 뒤로 한 채 활활 불태우고

홀연히 떠나간 비행선 같은 전설의 뮤지션들...



락 보컬의 원형을 제시한 로버트 플랜트 Robert Plant

(1948~).. 그리고 여기에 레드 제플린에 대한 이야기이다.









객관적 평가의 이야기를 해볼까. 프레디 머큐리를 18위에

올려놓은 롤링 스톤 지의 시대를 초월하는 위대한 가수들

100명 랭킹에서 플랜트는 15위를 차지했다. 영국 방송사

플래닛 락의 2009년 조사에서 그는 락 음악계 가장 위대한

보이스로 선정되었고, 미국 방송사 NPR의 2010년

조사에선 50명의 위대한 목소리 중 하나로 뽑혔다.



헤비메탈 전문 매거진 히트 퍼레이더가 2006년에 발표한

100명의 위대한 남성 메탈 보컬리스트 랭킹에서 그는 당당히

1위이다. 재미있는 건 그에게 영향을 받은 동료와 후배들이 이

랭킹의 하단에 줄줄이 위치한다는 점. 2위의 롭 핼포드, 3위의

스티븐 타일러, 6위의 프레디 머큐리, 13위의 게디 리 등등.



여러분들이 인식하고 있을 법한 명가수나 보컬리스트들이

자신들이 영향을 받았다고 한 번 쯤은 언급한 전설이 바로

이 분인 것. 그 프레디 머큐리마저도. (데뷔와 히트 연도로

치면 5년 정도 앞서니 선배 맞다.) 멀리 갈 거 없이 이 분

그냥 별명이 락앤롤의 신이란다. 뭐 더 설명이 필요한지.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singers-of-all-time-147019/robert-plant-5-225584/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은 락 음악과 하드락 역사에

분수령이자 분기점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60년대말 락앤롤

장르가 블루스사이키델릭에서 변화하는 시점이 늦춰졌을

것이고 70년대에 헤비메탈이 분화하는 데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심지어 프로그레시브 장르에도 여파가 미쳤을 거다.

포크에도 어느 정도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거다. 한

마디로 비틀즈와 작별한 음악계의 다음 정착지였던 셈이다.



리더이자 구심점은 흔히 바보들의 3대 기타리스트로 꼽히는

지미 페이지. 그 셋을 배출했다는 야드버즈가 사실상 와해된

야드버즈를 결성하려고 멤버를 끌어모으던 중 가장

먼저 리쿠르트한 인물이 보컬리스트 로버트 플랜트였다.

'이렇게 뛰어난데 왜 아직 묻혀 있었지' 라고 생각했단다.



밴드 오브 조이란 데서 노래하던 플랜트야드버즈 후신

성격의 프로젝트를 수락하고 동료인 존 본햄을 드러머로

추천한다. 제프 벡과의 레코딩 협업을 통해 페이지가 원래

알고 지내던 존 폴 존스를 영입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전설의 진용은 이렇게 완성된다. 1968년 8월쯤. 처음

잼을 맞추며 서로 불꽃이 튀었고 성공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겠다는 확신이 섰다고...



신인이면서도 이미 음악계의 주목을 받고 있던 이들은

68년 9월초 당장 덴마크 클럽에 섰고 그 달 말엔 9일간

후다닥 첫 앨범을 녹음해 버린다. 즉 69년 1월 발매로

알려진 역사적 데뷔 앨범은 사실 전년도에 이미 만들어

놓은 것. 젊고 뜨기 전이지만 이미 음악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로 소문이 자자했던 그들. 만나자 마자

서로를 알아보고 화학 반응을 일으킨 것 아니겠는가.



 (Led Zeppelin)



 (Led Zeppelin)




역사상 가장 위대한 데뷔 앨범으로 꼽히는 Led Zeppelin.

이렇게 나온 결실이다. 밴드 이름을 정하는 데는 더 후

키스 문이 팁을 줬다는 소문도 있었다. - 페이지 친구. 앨범

커버에는 1937년에 미국 뉴저지에서 폭발한 독일식 LZ

129 힌덴부르크 비행선의 사고 사진을 실었다. 그리고

비행선이 폭발했듯이, 앨범은 대박으로 폭발해버린다.



I의 전반적 장르는 블루스락 또는 헤비블루로 요약된다.

발표 후 세상을 놀래킨 대곡 Dazed and Confused

보여준 끈적한 중량감이 입증한다. (69년 기준) 일찍이

블루스가 이토록 무거운 공격성을 보여준 적이 있었던가.

플랜트의 야성적 팔세토와 페이지의 창조적 솔로잉, 이

한 세트가 음악사의 브랜드가 될 것임은 앨범 하나로도

충분히 알 만한 일이었다. 페이지가 현악기 활로 기타에

보윙을 시도하는데 즐거운 해프닝 같은 것이었



Good Times Bad Times Communication

Breakdown 같은 곡에서 페이지의 프로듀싱 능력과

밴드의 상업적 표현성이 심상치 않음을 드러내기도.

히트할 튠을 조율하는 감각에 있어 당시 일정한 절정에

근접하고 있는 네 사람의 발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

Babe I'm Gonna Leave You는 이후 앨범에서

계속 등장할 서정적 작품군의 프렐류드 같기도.





('Dazed and Confused' from Led Zeppelin, 1969)



('Communication Breakdown' from Led Zeppelin, 1969)


('Good Times Bad Times' from Led Zeppelin, 1969)



 (Led Zeppelin II)




음악을 듣다 보면 그런 게 있다. 이 앨범, 도대체 버릴 노래가

있긴 한 건가. 그때 우린 명반이란 말을 떠올린다. 모든 트랙이

필청이란 말씀. 투어와 스튜디오를 왕복하며 1년쯤 준비해

10월에 낸 Led Zeppelin II가 딱 그런 경우였다. 아니, 솔직히

I은 블루스 안 내키는 사람도 있을 테니 그렇다 치자. 이제부터

나오는 그들의 앨범은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음악사를 새로

쓰기 시작한 것. 비틀즈스톤즈 이후 이런 일이 있었던가.



아 물론, 저작권 개념이 흐릿한 페이지의 표절 시비가 있긴

하다. 허나 하나의 완성된 트랙을 만들어 앨범 전체의 일관된

톤을 프로듀싱하는 능력에 있어, 레드 제플린을 폄하할 수

있겠는가 싶다. 평론가와 언론이 종종 이들의 최고 작품으로

꼽으며 가장 유명한 기타 리프를 가진 Whole Lotta Love

들으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게 마련. 2012년에 롤링 스톤 지가

들 최고의 명곡 40곡을 엄선한 때도 이 곡이 '당연히' 1위..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도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the-40-greatest-led-zeppelin-songs-of-all-time-154694/whole-lotta-love-1969-170042/



본작에선 역대급의 세션으로서 리듬 파트를 탄탄하게 받쳐

라이브를 살아있는 활어로 만드는 존스본햄의 진가가 특히

두드러진다. 톨킨반지의 제왕 노래한 Ramble On

리드밍 커플 조화가 매력적으로 두드러지는 트랙이며

특히 팬덤에서 인기가 높다.



섹드립 가사로 알려진 The Lemon Song에서 존스의 베이스

라인과 진저 베이커에 영향받은 Moby Dick의 본조 드러밍은

절정감을 선사할 게다. (본조본햄의 별명) Heartbreaker

흔히 헤비메탈 장르의 효시를 논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작품이고

플랜트의 불륜을 소재로 한 What Is and What Should

Never Be 역시 필청의 트랙이다.



물론 이미 수많은 음악이 나와 다양한 장르가 발전한 지금의

기준으로 본작이 대단하게 들리지 않을 수도. 하지만 한때는

락 음악과 헤비메탈이 음악의 대세였던 적도 있고 수많은 후배

음악가들의 작곡에 기준점을 제시한 앨범이란 점을 명심하시라.

앨범 차트 1위 및 플래티넘 기록 등 상업적인 성공도 전작보다

더 대단했고 여러 모로 레드 제플린 전체 디스코그래피에서

II는 복기할 만한 중요도를 가지는 걸작 앨범임에 틀림없다.



('Whole Lotta Love' from Led Zeppelin II, 1969)



('Ramble On' from Led Zeppelin II, 1969)



('Heartbreaker' from Led Zeppelin II, 1969)




 (Led Zeppelin III)




강렬한 Immigrant Song을 내세워 1년 후 70년 10월에

낸 Led Zeppelin III는 그들 음악의 또 다른 뿌리브리티쉬

포크의 색채가 강해 락 키즈를 적잖이 당황케 했다. 최근에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쓰여 슈퍼히어로와의 엄청난

싱크로를 자랑한 이 곡플랜트 보이스의 야수적 매력을

초극강으로 끌어올려 밴드메이트들에게 인기가 높......지만

샤우팅 난이도 땜에 아마추어들에겐 언감생심이기도.ㅋㅠ



전체적 평가가 초월적 완성도를 지닌 다른 앨범에 비해 약간

박한 편이지만 차트 1위 같은 상업적 성공은 여전했다. 헤비

블루스의 미학이란 면에서 Since I've Been Loving You

엄청난 트랙이 실려 아시아 등지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블루스

고전을 모던한 어쿠스틱 감성으로 뒤살린 Gallows Pole,

무그 이펙트에 연결한 기타 인트로가 인상적인 Celebration

Day도 팬덤의 성원을 얻기에는 충분했다.



('Immigrant Song' from Led Zeppelin III, 1970)



('Since I've Been Loving You' from Led Zeppelin III, 1970)

(흡사 레이 만자렉을 연상시키는 존스의 세션..)




 (Led Zeppelin IV) (untitled)




도대체 버릴 노래가 있긴 하나 싶은 앨범. 이런 작업을 해낼

기회는 절대 자주 오지 않는 법. 락 음악의 시대 70년대에

뮤지션 커리어의 전성기를 보낸 레드 제플린은 그런 기회가

몇 번씩이나 찾아온, 달란트와 행운이 넘치는 밴드였는데...



Led Zeppelin IV - 사실 제목이 없는 untitled라 칭해야

옳긴 한데 - 는 그런 앨범이면서 동시에 음악사상 가장

성공한 앨범이기도 하다. 때는 III가 나온 후 약 1년 지난

71년 11월쯤. Stairway to Heaven이 수록된 앨범이다. 뭘

모르는 사람은 이 곡 하나만의 인기로 잘 나갔다고 착각하기도.



I - 사이키델릭, II - 하드락, III - 포크, 그리고 전체 세계관에

공통 기반이 되는 블루스로서, 자신들 음악의 바탕을 규명한

거라면 IV는 세 가지 뿌리를 통합한 완전체라고나 할까.

프로그레시브에 가까운 스테어웨이 투헤븐만 들어봐도 여러

장르의 색깔이 드러나지 않는가. A마이너 키의 어쿠스틱

아르페지오가 오버더빙된 Mellotron M400과 어우러진

인트로.. 디스토션 걸린 기타와 본조의 드러밍 템포를

올리고 플랜트의 팔세토가 텐션의 정점을 찍는 구도.. 풍자에

신비주의가 배합된 가사까지.. 당대 락 음악의 정수인 것이다.



Gibson의 상징과도 같은 페이지는 다양한 톤을 동시에

구사하기 위해 라이브에선 더블넥 기타를 자주 사용했다.

보통 12현과 6현 넥이 결합한 EDS-1275를 썼다. 존스

샘플러는 주로 Mellotron이었다가 Yamaha GX-1 나오니

유행을 따라 엘렉톤을 차용하기도.



(Gibson EDS-1275)



(Mellotron M400)



('Stairway to Heaven' from Led Zeppelin IV, 1971)



(가장 유명한 73년 매디슨 스퀘어 가든 버젼)




근데 본작의 명곡이 이게 다가 아니란 것. 영원한 락 앤썸

Rock and Roll은 뭐 워낙 유명하니 그렇다 치자고. 진짜

놀라운 건 Black Dog 아니던가. 페이지의 리프가 아무리

날뛰고 놀아도 꿋꿋하게 rock-steady한 본햄의 드러밍이란.

이 곡의 하이노트는 난이도가 너무 높아 플랜트 본인도 녹음

때 말고 라이브에서 왠만해선 시도 안 한다며.



평단이 입이 마르도록 칭송하When the Levee Breaks.

(1927년 미시시피강 대홍수둑이 무너진 일이 배경이란다.)

컨트리와 블루스가 적정 배합하여 오묘한 이 분위기는 도대체

뭐란 말인지. 포크 미학의 함수 같은 Going to California

까지.. 가만 보면 숨어 있는 포크풍 트랙의 아름다움도 도무지

만만치가 않다.



IV.. 전 세계에서 3700만 장이 팔렸고 역대 미국 음악 시장

최고의 성공작 중 하나이다. 락 밴드의 디스코그래피에서 4집

쯤 와서 정점을 찍는다는 징크스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카더라.



('Black Dog' from Led Zeppelin IV, 1971)



('When the Levee Breaks' from Led Zeppelin IV, 1971)



('Rock and Roll' from Led Zeppelin IV, 1971)




 (Houses of the Holy)




IV에서 세계적 대폭발을 일으킨 레드 제플린 그들 커리어

최절정의 정점을 찍은 것은 사실이었다. 이제 하강할 일만

남았겠지만 실력있는 음악가의 저력은 하락 곡선의 낙폭을

얼마나 완만하게 조율해낼 수 있는가 여부에 달린 것. 73년

3월에 발표한 새 앨범은 신기하게 넘버링하던 패턴을 깨고

Houses of the Holy, 성스러운 행위의 장소란 제목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네 명의 전설이 적어도 음악적 완성도에선

아직도 할 이야기가 많음을 입증하는데 충분했다.



어찌 보면 전작의 몇 곡처럼 강렬한 임팩트가 부족해 보일진

모르나 그만큼 전작이 엄청났다는 것일 뿐. 곱씹어 감상한다면

한 곡 한 곡 충만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완성작임을 알 수

있을 터이다. 산뜻하고 강한 오프닝 트랙을 배치하는 전통을

좇는 The Song Remains the Same이나 어쿠스틱에

적당히 하드함을 섞은 Over the Hills and Far Away 등,

빈틈을 찾아볼 수 없는 트랙들이 지금까지 표현하지 않은

빈틈을 찾아들어와 팬덤을 만나고 있었다.



처음으로 레게를 끌어온 D'yer Mak'er(자메이카를 영국식

영어로 음차한 말)나 EMS VCS3Moog Taurus 다루는

존스의 영향력이 돋보인 No Quarter를 들으면, 팬덤 스스로

능동적으로 곡의 매력을 찾아 탐험할 필요가 있다고 호소하는

듯하다. 아마도 멤버들이 생각한 본작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The Ocean 아닐까 하는데, 치기어린 8분의 15박자 (15/8)

메인 리프가 안기는 청량감이 후대 아마추어 기타리스트 팬덤의

열광적 지지를 지금까지도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존 폴 존스의 장비에 관한 해설)

http://www.mixdownmag.com.au/gear-rundown-john-paul-jones



(EMS VCS3)



(Moog Taurus)




상업적 성공은 더 이상 관심거리도 아닌 거물이 되어버린지

오래. 본작도 판매 성과는 여전히 고공 행진이었고 발매 직후

단행한 북미 투어도 성공적이어서 그 기록을 훗날 라이브

앨범으로 남길 정도였다. 74년엔 스완송이란 자체 레이블을

설립한다. 본작 트랙에 대한 평가가 평단은 오버더힐스~,

팬덤은 오션 쪽으로 갈리는 듯하나 사실 두 곡 다 고른 지지

받는다. 완성도 충만한 트랙들로 전곡을 꽉꽉 채운, 오랜만에

감상한 거장의 수작이랄까... 한 마디로 본작을 정의한다면.



('The Song Remains the Same' from Houses of the Holy, 1973)



('Over the Hills and Far Away' from Houses of the Holy, 1973)



('The Ocean' from Houses of the Holy, 1973)




 (Physical Graffiti)




2년쯤 시간이 흐른 75년 2월 Physical Graffiti란 또다른

명반이 나온다. 무려 더블 앨범으로서 스완송 레이블 설립

직후 의욕으로 충만했던 듯하다. 준수한 완성도를 가진 곡을

두 배로 선물한 것. 일반 대중에게 명곡 Kashmir를 수록한

앨범으로 유명한 바로 그 작품. 흔히 그들식프로그레시브

불리는 대곡이고 아랍풍 음률을 차용한 폴리리듬의 리프가

대단히 유명하며 존스본햄의 탄탄한 백업이 다른 어떤

곡에서보다 더 두드러져 음악사에 길이 남을 걸작 트랙이다.



(백인의 락에 관심 두지 않는 자존심 강한 흑인 랩퍼들마저

샘플링하여 사용한 이야기.. 이젠 다들 아실 거다.)

*캐쉬미어의 폴리리듬에 대해선 아래 링크 동영상의

4분 50초경부터 보면 알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vOm2oZRQIk



점입가경은 본작의 대작이 하나가 아니란 것. 11분짜리 대곡

블루스 In My Time of Dying이나 9분에 약간 못 미치는

프로그레시브 In the Light에 이르면, 초창기 느린 대곡을

실험하던 정신으로 돌아가려는 이들의 초심을 읽을 수 있다.

The Rover, Houses of the Holy, The Wanton Song

등에선 페이지가 얼마나 빼어난 리프를 만드는 장인이었는지

깨닫고 다시 장탄식하게 될 거다. 기타 트랙 14개를 중첩한

오버더빙으로 촘촘하게 리프를 엮어낸 Ten Years Gone,

본조의 베이스 파운딩이 작렬하는 Sick Again.. 쉴 틈이 없네.



개인적으로 존 폴 존스가 가장 이상향의 뮤지션인데 그가 연신

Hohner Clavinet을 그루브하게 때려대는 미칠 듯한 매력의

트랙이 Trampled Under Foot이다. 72년에 크게 히트한

스티비 원더Superstition에서 영향받았다 하며 안 그래도

모타운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여기서 존스부커 T. 존스

빌리 프레스턴 같네. 이들이 선보인 흔치 않은 funk 곡이다.

75년 5월엔 본작의 엄청난 흥행에 힘입어 런던의 얼스코트

아레나에서 전석매진 공연을 5일간 벌여 인기를 입증하였다.



(Hohner Clavinet D6)



('Kashmir' from Physical Graffiti, 1975)



('The Wanton Song' from Physical Graffiti, 1975)

(앞부분에 다른 곡의 리프가 섞여 있다.)



('Trampled Under Foot' from Physical Graffiti, 1975)




 (Presence)




76년 3월에 발매한 Presence 앨범은 그들의 하락세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증거 같기도 하다. 존스-본햄 듀오의

리드미컬한 백킹이 10분 이상 이어지는 인상적 오프닝

Archilles Last Stand가 매력적이며, 오버더빙으로

겹겹이 쌓아올린 페이지의 차랑차랑한 리프가 여전히

독창적이지만, 약간의 자기 복제가 느껴져 예전 만큼의

파괴력이 두드러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세션 셋에 비해 플랜트의 역량이 뭔가 허전하다고

느꼈다면 정확히 들은 거다. 이때 교통사고로 약 1년간

휠체어 신세를 면치 못했고 앨범 녹음도 앉아서 진행했던

것. 이 덕에 전작처럼 진하게 블루지하게 는 진지함도,

5집의 Song Remains~처럼 날카롭게 찌르는 스킬

2프로쯤 부족해 보인다.



Song Remains~ 끝나기 직전에 선보인 찌르는 샤우팅

플랜트가 전성기에 선보인 초고음 중 거의 마지막이라고

보는 것이 보통 통설인 듯하다. 사고를 당했다고는 하나

아직 젊은 나이인데 몸 상태에 무리가 있다기보단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플랜트의 음악 성향이 중저음을 개발하는

쪽으로 변화해가고 있음을 읽을 수 있겠다.



밴드의 공연 투어는 여전히 잘 나가고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내외부의 음악 환경이 변화하고 있었다. 그래도 Nobody's

Fault But Mine 같은 트랙은 여전히 강하고 광채가 난다.

77년 4월의 미시간주 폰티악 실버돔 공연은 7만 6천이 넘는

유료 관객을 기록하여 기네스북에 올랐다. 지속된 성공 속에

악재가 끼기 시작했는데 본햄과 공연 스탭들이 폭행건으로

체포되기도 했고 77년 7월엔 플랜트의 다섯 살 된 아들이

질환으로 유명을 달리 하여 충격을 주기도 했다.



('Achilles Last Stand' from Presence, 1976)



('Nobody's Fault but Mine' from Presence, 1976)




 (The Song Remains the Same)




정규 앨범이 아님에도 76년 10월 현역 시기에 낸 유일한

라이브란 의의 때문에 The Song Remains the Same

레드 제플린을 탐구하는 사람들에게 필청의 음반이다. 녹음은

73년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을 담은 것이기 때문에

정말 전성기의 따끈따끈한 활동상을 거의 유일하게 저장한

앨범이다. 동명의 콘서트 영화도 있으니 플랜트의 전성기가

궁금한 분들은 반드시 참조할 만하다.



사실 라이브 발매 당시인 70년대의 평가는 좋지 않았다. 특히

3년쯤 전에 발매된 딥 퍼플의 라이브 Made in Japan이 워낙

출중한 완성도로 명성이 자자했던지라 여러 모로 비교질을

당한 셈. 두 밴드의 합주 스타일에도 차이가 있었던 것이, 각자

개인 연습을 충실히 해서 서로 완벽하게 합을 맞추는 전략으로

임한 딥 퍼플에 비해 - 존 로드리치 블랙모어가 클래식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전통적인 어법으로 음악에 접근한 것 -,

개개인의 자유도를 중시하며 페이지의 리딩에 충실하게 따른

레드 제플린은 라이브에서 미스 노트가 잦다거나 레코딩과

너무 동떨어진 애드립으로 노는 경우가 꽤나 발견된 것이다.



이 라이브에서 백미는 역시 Dazed and Confused듯.

6분 30초 곡을 무려 27분 길이로 만들어 놓았다. 동명의

영화 사운드트랙이란 형식인지라 약간 생뚱맞은 연기 씬도

들어가 있어 나름 재미를 느낄 수도. 한창 전성기 젊고 고운

멤버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가치도 있다. (또한 보고 싶은

본조의 생전 모습 역시...) 스테어웨이 투헤븐의 가장 유명한

라이브 버젼이 수록되어 있단 이유로도 들어볼 만하겠다.

마지막 사이키델릭이라는 Whole Lotta Love도 스튜디오

버젼과 상당히 다른 이펙트가 있어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다.



(왜 들어갔는지 이해가 잘 안 되는 콘서트 영화의 초반 스토리 씬)





(앞부분Heartbreaker. 4분께부턴 Whole Lotta Love.)



(이건 동명의 트랙을 노년의 라이브에서 연주한 비디오)

(노년에 키를 낮춰 부르는지라 찌르는 샤우팅은 자제하신다는..)




 (In Through the Out Door)




78년 11월경 이들이 아바의 작업으로 유명한 스톡홀름의

폴라 스튜디오에 다시 모여 다음 앨범을 녹음하였고 이는

이듬해 8월에 발매된다. 레드 제플린 최후반 정규 앨범

In Through the Out Door. 디스코, 펑크, 뉴웨이브

등 대외 환경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감각을 받아들이려

노력했으나 역대 앨범 중 결과가 가장 좋지 못했다. 대체로

페이지보다 존스가 전면적으로 부각되어 작업을 진행했고

신디사이저 사용이 확대되며 블루스 일변도를 줄였지만

이채로울 뿐 생경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



멤버들 개개인이 겪은 인생의 부침과도 깊은 연관이 있었다.

특히 플랜트는 교통사고 당시 자신보다 아내가 더 큰 부상을

입었고 이후 어린 아들의 죽음을 겪으며 심리적으로 상당히

큰 변화를 겪은 것 같다. 그래도 그루브 넘치는 Fool in the

Rain아버지 플랜트로서의 따뜻한 목소리를 담은 발라드

All My Love는 체 디스코그래피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걸작이다. (이 곡은 특히 절대 흔치 않은 존스신스 솔로

파트가 압권이다.) 존스의 신디사이저가 시종일관 압도하는

Carouselambra 역시 취향과 기호에 따라...



('Fool in the Rain' from In Through the Out Door, 1979)



('All My Love' from In Through the Out Door, 1979)




 (Coda)




한편 존 본햄에겐 알콜이라는 오래 된 나쁜 친구가 있었다.

80년 9월 24일 공연 리허설 전 아침식사로 햄롤과 보드카를

들이킨 그는 오후 내내 술을 달고 있었고 그날 밤 페이지의

집에서 잠들었다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사인은 구토에

의한 질식사. 알콜 의존증이 의심되는 정황이었다.



70년대의 또 다른 전설 드러머들인 코지 파웰이나 카마인

어피스가 대체 멤버로 리쿠르트된다는 소문이 난무했으나,

80년 12월 4일 결국 나머지 셋은 밴드의 해체를 발표한다.

이로서 네 명의 전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다.



Coda는 해체 후 몇몇 라이브와 미발표 트랙을 긁어모아

82년 11월에 발표한 마지막 앨범이다. 락 역사상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준 전설적 드러머 본조를 기억하며 넣은

Bonzo's Montreux의 76년 라이브 아카이브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사모곡이라고 하겠다.



('Bonzo's Montreux' from Coda, 1980)




본햄과 밴드가 사라졌지만 나머지 셋, 특히 플랜트페이지

중심의 재결성 소식은 이후 수십 년간 팬덤에 희망 고문을

선사한 오래 된 떡밥이었다. 존스는 존스대로 두 사람에게

약간은 소외된 관계를 서운해 하기도 그리워 하기도 했고.

해체 후 그들이 다시 뭉친 건 85, 88, 94, 95, 07년으로

대략 다섯 차례 정도. 85년엔 라이브 에이드로 해체 후 처음

셋이 뭉쳤는데 컨디션 안 좋고 튜닝 안 맞는 기술적 사유로

인해 이래저래 욕먹은 결합이었다. 88년 회합도 마찬가지.



(대체로 상했던 라이브. 드럼 중 한 분은 무려 필 콜린스..)




94년엔 당시 유행하던 언플러그드 열풍을 좇아 페이지

플랜트 둘만 뭉쳐 No Quarter: Jimmy Page and Robert

Plant Unledded를 발표하는데 반응이나 평가도 좋았다...

존스가 소외되었단 점만 빼고. Gallows Pole은 중년이 된

플랜트가 더 원숙한 색채를 보여줬다고 인기도 있었으니

관심있으면 들어보시길. (Page and Plant는 98년에 아예

신곡으로 채워 신보를 냈으나 반응이 예전 같진 않았다고...)



('Gallows Pole' from No Quarter, 1994)




철저하게 소외되신 존스. 95년 로큰롤 명예의전당 헌액식

두 사람을 옆에 두고 '그래도 전화번호 안 까먹었다니 고맙네'

드립을 쳤그대로 전파를 타면서 소위 JPJ왕따설을 확정.ㅜ

사실 존스는 70년대에도 두 사람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도에

빈정 상해서 두어 차례 가출, 아니 탈퇴했다 돌아갔을 정도.

모두를 포용하지 못하고 소외되는 부분이 생기는 현상

결국 페이지리딩이나 플랜트의 엘리트주의가 애초부터

치명적 한계를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방증일 것.



(존스의 씁쓸한 멘트는 6분 20초 경부터..)



(연주한 곡은 IV의 When the Levee Breaks.. 드럼엔 제이슨 본햄!)




97년엔 레드 제플린 디스코그래피에서 두번째로 중요한

라이브 BBC Sessions가 발매된다. 69년과 71년, 한창

시절에 거침없이 불러제낀 내용의 아카이브인지라 해체

후 발매 앨범 중 첫손에 꼽을 만한 컬렉터블일 터. 이때만

해도 초창기 블루스 잼에도 주력할 때라 특히 30년대 델타

블루스의 기초를 세운 거장 로버트 존슨의 곡을 재해석한

Travelling Riverside Blues는 팬덤에서 꼽는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할 트랙임을 아셔야 한다. 이 밖에도 귀담아

들어볼 만한 고전이 많아 블루스에 탐닉하는 팬층은 훨씬

더 높게 평가하는 숨은 진주 앨범이라 하겠다.



('Travelling Riverside Blues' from BBC Sessions, 1997)




03년엔 72년의 LA실황을 담은 또 하나의 전성기 라이브 앨범

How the West Was Won이 발매되어 팬덤의 지갑을 털...

아니 지지를 받았고, 07년엔 24개 대표곡을 모은 컴필레이션

Mothership이 발매되어 최근 나온 앨범 중 가장 각광을 받은

컬렉션이 되었다. 마더쉽엔 본 포스팅이 추천하는 왠만한 걸작

트랙들이 거의 실려 있으니 입문용으로 꼭 하나의 앨범을

골라야 한다면 이 앨범부터 시작하는 것이 무난하다. LA실황

앨범은 페이지 스스로 추천사를 썼듯이 그들 활동 최절정기를

온전히 담은 사운드보드 레코딩이란 의미가 있을 것이다.



(How the West Was Won)



 (Mothership)




팬덤에서 경천동지할 일이 07년 12월에 일어나는데 노년에

접어든 세 멤버의 공연이 성사된 것이다. 런던 O2 아레나

공연으로 팬덤 사이에서 통칭되는 이벤트를 통해 어쩌면

그들이 죽기 전 마지막일지 모를 회합으로 노병들의 화려한

말년을 장식할 기념비적 아카이브가 남겨진 것이다. 95년

명예의전당 헌액 공연처럼 이번에도 제이슨 본햄이 스틱을

잡고 아버지의 혼을 담아 열정적으로 합을 맞추었다. (아들

제이슨도 이젠 알아주는 백전노장 드러머이다.) 본 라이브는

12년에 Celebration Day라는 앨범으로 발매되었다.



 (Celebration Day)



(명기와 명연주자. Korg Oasys를 연주하시는 존스 옹..)


(할로우바디 Les Paul의 둔중한 톤이인상적이다.)




솔로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역시 프론트맨이었던

플랜트. 해체 전부터 공격적인 튠보다 락앤롤 이전 원형적인

음악 형태에 관심을 보이던 그는 80년대 초반 솔로 음반에선

그가 청소년기에 동경하던 초기 락앤롤 가수들의 편곡에 꽤

가까운 중저음 팝락으로 각광을 받았다. Honeydrippers

프로젝트성 밴드에서 그는 지미 페이지제프 벡이란 양대

거성을 세션으로 초청하기도. 50년대 필 필립스의 히트곡

Sea of Love를 농담처럼 녹음하기도 했는데.. 왠걸 이 곡이

덜컥 싱글 차트 대박을 쳐버린다. 84~85년경.



사실 플랜트는 진지하게 녹음할 생각은 없었고 - 그 자신도

50년대 R&B를 좋아했지만 - 프로젝트를 주도한 애틀랜틱

레코드 사장 아흐메트 에르테군이 좋아하는 노래라고 약간은

선심성으로 녹음해줬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ㅎ 참고로

에르테군은 여러 뮤지션과 두루 친분이 있어서 07년 재결합

공연이 사실은 이 분 추모 이벤트 형식으로 뭉친 것이었다.



노년의 플랜트는 컨트리 블루스 계열의 루츠 장르로 돌아왔다.

한때 블루그래스 계열 음악을 하는 앨리슨 크라우스와 듀오로

공연을 자주 하셨다고.



('Sea of Love' by the Honeydrippers, 1984)




밴드 뮤지션으로서의 로버트 플랜트는 리더와 멤버들의

백킹에 완벽하게 조응하여 팔세토 테크닉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능력을 갖춘 보컬리스트이면서 마지막 히피로서

사이키델릭과 판타지를 결합하여 섹드립을 예술로 승화한

가사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줄 안 작사가였다.



개별 멤버들이 자신이 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책임지는 같은 밴드의 송라이팅 구조와 비교하여,

레드 제플린지미 페이지의 음악적 리딩을 철저하게

존중하는 구조였으므로 플랜트 같은 멤버들의 창작적

기여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하지만 프로듀싱 만렙의 기타리스트 페이지가 싸고 돌며

플랜트 중심으로 밴드를 운영한 것을 보면 단순히 몇 개의

노트를 창작했는가 수준을 초월하여 플랜트가 가진 유쾌한

상상력의 세계가 리더와 멤버들 전체에 상생하는 시너지를

제공했다고 능히 상상할 수 있겠다. 대체로 레논-맥카트니,

재거-리차드에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음악사상 완벽한 듀오

궁합을 자랑한 페이지-플랜트 조합이라고 하겠으나...



랜트페이지 사이도 사실 그리 원만하지는 못했다.

플랜트는 본래 유쾌하고 유머에 능하면서 낯가리지 않는

개방적 성격이고 약간 잘난 척하는 맛도 있는 인간성의

소유자라고 전한다. 잘난 맛에 살기는 페이지 자신도

만만치 않다고. (실제로 음악사에서 잘난 분들이시고.)



해체 전에야 서로 죽이 잘 맞았는데 중년과 노년 시절을

거치며 뭐가 그렇게 안 맞는지, 재결성을 막는 원인이라

말이 많았다. 전술하였듯이 이렇게 두 사람 중심으로만

흘러가는 밴드 구조가 다른 두 사람을 약간은 소외하는

방향으로 흐른 것 같아, 이런 점 역시 팬덤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지미 페이지는 표절 등

저작권 시비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고

여기에 로버트 플랜트 자신과 레드 제플린 전체꺼정

밀접하게 얽혀 있음이 사실이다. 비록 발빠른 대응으로

극단적 법정 소송은 대부분 회피하였다지만 창작의

정신이란 것이 소송 막았다고 다 끝나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70년대라는 음악사의 변환기를 거치면서 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음악 연출의 이상향을 종합적으로

전개하여 제시한 밴드 음악의 교과서인 동시에, 3억 장에

달하는 전 세계 판매고를 세운 음악 산업계 베스트 스테디

셀러로서, 레드 제플린의 가치를 결코 폄하할 수 없을 것이고

그 안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낸 로버트 플랜트는 영원히

위대한 보컬리스트로 남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바이다.




(Korg Oasys)



(Bonham)






개인적으로 본 블로거가 최애하는 그들의 작품은 바로

5집에 등장한 애절한 발라드 The Rain Song이다. 이

양반들이 레몬송에서 섹드립 날리던 그자들 맞나 싶을

정도로 일순간 돌변하여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오후의

햇살처럼 아련한 아른거림으로 노래하는 걸 듣고 있자면,

또 존경하는 뮤지션 존 폴 존스께서 그토록 아름다운

멜로트론 음률을 빚어내는 것을 듣자면, 표절 때문에

열받은 마음을 눈 녹이듯이 스르르 녹여내는 것만 같다.



끝으로 레드 제플린 디스코그래피 전체 중 슬픈 아름다움을

노래한 비장미로서의 절정을 갈구한 명곡, 레인송을 강력

추천하며 길었던 포스팅을 마친다. 본조의 육중한 베이스

파운딩 오늘도 성가마냥 천국에 울려 퍼져 저승길 가는

망자들의 가슴을 안온하게 감싸 두드리고 있으리라.



('The Rain Song' from Houses of the Holy, 1973)

- studio album version


- lyrics




*키를 한껏 높인 79년 라이브. 존스 옹의 악기는 Yamaha G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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