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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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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락헤비메탈의 역사를 논할 때 설명이 필요없는

레전드들이 몇 분 계신다. 45년생 브리티쉬 스크리밍

보컬의 살아있는 전설, 이언 길런 Ian Gillan도 그 중

한 분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신화 속의 대 밴드

딥 퍼플 Deep Purple의 제2기, 그 화려한 정점과 함께

하얗게 불타올랐던 위대한 이름을 만나자. 아, 길런...!










*Smoke on the Water. Made in Japan.

- 1972년 8월 17일 도쿄. 4'13"부터 후배들의 극찬 릴레이 인터뷰.



*Child in Time. Made in Japan.

- 1972년 8월 16일 오사카.







딥 퍼플을 모르고 락 음악이란 카테고리에 접근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하드락헤비메탈이라는 특정

장르의 발전사에서 정말 빼놓을 수 없이 핵심이고 중추를

형성하는 밴드가 대충 한 셋 정도 된다. 속칭 트로이카라고

할 텐데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 그리고 딥 퍼플이다.



간단히 말해 이들 세 팀이 없었다면 하드락이나 헤비메탈이란

장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에 대한 반발로 태동한 모던

내지 얼터너티브 역시 전혀 다른 방향의 역사가 쓰여졌을

란 말. 69년의 Led Zeppelin II, 70년의 Paranoid, 여기에

72년의 Machine Head 등 세 장의 앨범이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평론가들이 헤비메탈이란 장르의 본질과 속성을

정의 내리는 일이 가능했다..는 것이 오늘날의 정설이다.



('Whole Lotta Love' by Led Zeppelin, 1969)

https://www.youtube.com/watch?v=V3u5rWzmhFI

- live from How the West Was Won, 2003



('Paranoid' by Black Sabbath, 1970)

https://www.youtube.com/watch?v=pTHeY0-P4MY

- live from The End Tour, 2016



('Highway Star' by Deep Purple, 1972)

https://www.youtube.com/watch?v=Y2qZJ3BHzjY

- live from Come Hell or High Water, 1993




10년 여의 공식 활동 기간에 멤버 교체 없이 활동을 지속한

레드 제플린, 프론트맨 보컬 교체할 때마다 작품의 방향이

탄력적으로 변모한 블랙 사바스와 비교하여, 딥 퍼플은 10년

좀 안 되는 전성기 시절에 총 4기로 구분될 만큼 멤버 교체

양상이 변화무쌍했고 또 각 기수마다 격변하듯이 음악의 색

전혀 달리 뽑히는 특징을 보여준 밴드이다.



68~76년의 딥 퍼플 전성기 활동 기간 중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최정상이라고 누구나 인정하는 시기가 바로

제2기, Mk.II**의 멤버 구성이고 인기가 극에 달했던 이

2기 딥 퍼플을 이끈 리드 보컬리스트가 바로 이언 길런.

이분의 전성기 보컬 스타일링을 통해서 헤비메탈이라는

장르가 지향해야 할 음악성이 규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만큼 음악사에서 중요한 분인 셈..



**Mk.II = '마크 투'라고 읽는다. 코믹스의 아이언맨처럼..ㅎ

 - 멤버 교체 시기로 구분하는 밴드의 역사를 이렇게 mark/기수

형태로 표시하기 시작한 효시가 딥 퍼플이라고 한다.







딥 퍼플의 출발점은 다소 어수선한 모양새였다. 짝퉁 비틀즈계

머시비트 밴드인 서처스의 드러머 출신 크리스 커티스란 이가

자신을 프론트맨으로 기용하는 밴드를 조직하겠다고 투자할

돈줄을 끌어모으며 각 스튜디오 최고의 세션맨들을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다녔는데...



이 레이다에 맨 처음 키보디스트 존 로드가 걸려들었고 베이스의

닉 심퍼, 기타의 리치 블랙모어가 낚였다. 근데 정작 커티스가 약에

쩔어살던 불량품인지라 투자자들이 즉시 해고했고 이왕 모인 일급

세션들에 로드 에반스라는 보컬과 약관 18세의 드러머 이언 페이스

결합해 아예 새로운 밴드를 만들어낸다. 블랙모어의 제안으로 이름이

정해졌으니 바로 딥 퍼플. 68년의 1기 멤버들인 게다.



*Deep Purple.. 원래는 1930년대 올드팝 히트곡의 제목이라고..

https://www.youtube.com/watch?v=Wll9RSCzoAI




1기 딥 퍼플커버 트랙 중심으로 히트 팝을 지향하는 사실상의

락앤롤 밴드였으니 1집의 Hush, 2집의 Kentucky Woman

팝 차트 히트 넘버들이 모두 리메이크였다. 오늘날 익히 알려진

딥 퍼플과는 몇 광년쯤 멀리 있는 음악 색이었던 셈. 그나마도

소속사의 막장 운영으로 3집이 돈도 못 벌고 쪽박 차게 생기니

결국 로드, 블랙모어, 페이스 셋이 주도하여 새로운 전략 하에

승부수를 띄워야겠다고 결심했다지.



하드락 밴드로의 변모가 그 주된 골자. 이미 마음이 떠난 상태이던

에반스를 떠나 보내고 심퍼를 교체하기로 한다. 이때 신생 밴드에서

노래하던 런던 출신 이언 길런과 베이스 치는 로저 글로버가 눈에

들어오고 블랙모어가 주동하여 새로운 라인업에 시동을 건다.



('Hush' from Shades of Deep Purple, 1968)

https://www.youtube.com/watch?v=_4QBhC1uCP4

- Joe South 곡의 커버



('Kentucky Woman' from The Book of Taliesyn, 1968)

https://www.youtube.com/watch?v=YcgeAtrVHvA

- Neil Diamond 곡의 커버




이 시기 음악은 대체로 41년생으로 가장 연장자이던 존 로드

주도하는 모양새로 클래시컬 락 내지 프로그레시브의 원형질을

탐구하는 시기였다. 3집April이나 사이드 프로젝트였던 The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가 이런 성향을 대표한

작품들. 길런이나 동갑내기 블랙모어는 살짝 불만이었다고.



두 사람은 동시대에 더 후지미 헨드릭스, 크림레드 제플린

선수치고 있던 하드하고 헤비한 어프로치를 가미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하며, 바야흐로 2기의 완전체로 본격 진용을 갖춘

딥 퍼플이 슬슬 8기통 엔진에 시동을 걸며 강렬한 신세계를

막 열어 젖히려는 역사의 순간이었다.



 (Deep Purple III) (Deep Purple)



('April' from Deep Purple III, 1969)

https://www.youtube.com/watch?v=RaMmBH3pYxY

*사실상 프로그레시브 락에 가까운 형식이다.




 (The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



('The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 First Movement

- Moderato-Allegro' by Deep Purple with Malcolm Arnold

and the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1969)

https://www.youtube.com/watch?v=C6ay6BwgBS8

*실질적으로 Jon Lord의 솔로 프로젝트에 가까웠으나

공식적으론 라이브 앨범으로 분류한다.

 - 로드는 정통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은 분.



('Nights in White Satin' by Moody Blues, 1967)

https://www.youtube.com/watch?v=qbqxbGm9hBI

*Days of Future Passed 앨범.

 - 사실, 2년쯤 앞서던 이런 작품을 모방한 것..







하드락의 트렌드는 60년대 내내 꾸준하게 자가발전하고 있었다.

비틀즈롤링 스톤즈 등 1세대들이 원형을 제시하고 뒤를 이은

밴드들이 비르투오소 스타일 기교와 한층 헤비이펙트를 장착한

하드웨어의 구현에 힘입어, 서서히 그 작법을 체계화하고 있었다.



60년대 초반까지 락앤롤이던 팝 음악의 조류가 하드락이란 서브

장르로 분화하면서 3~5명 규모 밴드 포맷에서 중심 권한이 픽업

장착한 일렉트릭 기타리스트 쪽으로 넘어다. 여기에 보컬리스트,

베이시스트, 드러머, 리듬 기타리스트, 키보디스트 등의 각 멤버별

책임 영역이 독자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단순히 픽업을 통해서 나는 이른바 기타의 '생소리'는 카랑카랑하고

얇다란 편인데, 반전 히피 문화에 뿌리를 둔 사이키델릭애시드

요소에 영향을 받으면서, 픽업의 시그널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변형한

각종 이펙트 - 이를테면 distortion, overdrive, phasing, feedback,

vibrato 등 - 를 덧입히게 되니 하드락을 규정하는 필수요소가 된다.



창작 방법론 면에선 기타 리프라는 개념이 돌출하였으니 해당 곡의

성격을 단번에 규정하는 상징적인 악절이나 동기를 가리킨다. 이

리프를 얼마나 창의적으로 작곡할 수 있는지가 기타리스트의 역량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어 버리고 리듬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등 보조

파트가 리프의 패턴이나 코드를 백업하는 형태로 반주가 진화한다.



(WatchMojo.com '14, Top 10 Guitar Riffs of All Time)

https://www.youtube.com/watch?v=vt8Q8L_I1pw

- 단, 이분들 집계가 다 그렇듯이 순위는 염두에 두지 말자.

- 음악사상 꼭 기억해야 할 리프 몇 가지 알아놓는 의의 정도..




여기에 드러머가 킥 베이스와 스네어를 교차하며 강약의 패턴을

반복하는, 이른바 - 심장 박동과 유사하게 들리는 - 백 비트를 더욱

강조하는 쪽으로 리듬을 받쳐주고, 베이시스트가 이 리듬 섹션에

동참하는 동시에 기타 리프의 패턴을 복사하며, 때때로 리듬 기타

또는 키보드가 한꺼풀 더 가미되는 식으로 곡을 구성하는 것이다.



하드락보컬리스트에게 요구되는 테크닉은 기존 팝 장르의 달달한

목소리와 여러 모로 다를 뿐 아니라 훨씬 고난도의 숙성과 장기간의

훈련을 요구했으니 shout, scream, growl, wail, vibrate, rasp 같은

공격적인 것들이었다. 대체로 남성 테너 음역을 넘어서는 고음역을

필수요소로 하게 되었고 때때로 팔세토나 이와 유사한 high register

영역이 보편화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각 파트별로 정착하고 발전해간 하드락 장르의 방법론이 더욱

공격적으로 진화한 형태를 헤비메탈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고 60년대

말에 태동한 트로이카 밴드가 이를 주도한 장본인들이다. 딥 퍼플

그 한 축이자 태풍의 눈이었던 아티스트들. 구체적으로 하드락 진화

역사에 더 큰 관심이 생긴다면 아래의 음악을 좇아가길 권한다.



"Kinks", 1964

('You Really Got Me' by The Kinks)

https://www.youtube.com/watch?v=fTTsY-oz6Go

- studio album version


"My Generation", 1965

('My Generation' by The Who)

https://www.youtube.com/watch?v=qN5zw04WxCc

- studio album version


Single "Hey Joe / Stone Free", 1966

('Hey Joe' by The Jimi Hendrix Experience)

https://www.youtube.com/watch?v=rXwMrBb2x1Q

- studio single version


"Disraeli Gears", 1967

('Sunshine of Your Love' by Cream)

https://www.youtube.com/watch?v=f3y8jf01UY8

- studio album version


"Led Zeppelin", 1969

('Babe I'm Gonna Leave You' by Led Zeppelin)

https://www.youtube.com/watch?v=UyOg0mt2R2k

- studio album version


"Fire and Water", 1970

('All Right Now' by Free)

https://www.youtube.com/watch?v=5wiF6b4rxno

- studio single version, Paul Rodgers on vocals.







레이블의 삽질로 전작에서 거의 수익을 얻지 못한 딥 퍼플

2기 진용. 여러 프로젝트를 전전하고 돈벌기 위한 투어를

병행하며 틈틈이 새 앨범 녹음을 진행한다. 클래식 음악에

바탕을 둔 고상한 로드식 어프로치로 절대 답이 없다고 여긴

블랙모어의 반강제적 결단으로 제플린을 좇아가는 헤비

작법에 집중했고 길런글로버도 이에 적극 동의했다.



 (Deep Purple in Rock) (In Rock)




70년에 발매한 정규 4집 Deep Purple in Rock은 이렇게

전투적인 자세로 얻은 인고의 산물이자 참신한 상상력의

빛나는 결정체였다. 뒤에 나올 후속 앨범으로 해당 장르

정점을 찍기 이전에는 헤비 사운드의 나아갈 길을 제시한

걸작이라고 평단의 찬사를 얻었던 작품이다.






당시 반응도 폭발적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평단과 언론이

더 깊이 평가하는 앨범인 듯하다. 영국의 하드락헤비메탈

전문 매거진 케랑!이 89년에 시대를 초월하는 100대 헤비메탈

명반을 집계하며 15위에, 05년에 최고의 100대 브리티쉬락

명반을 집계하며 56위에 올려놓은 바 있다.



(Kerrang! '89, 100 Greatest Heavy Metal Albums of All Time)

- 텍스트 아카이브: http://www.rocklistmusic.co.uk/kerrang_p2.htm

- 그래픽 아카이브:

  https://www.listchallenges.com/kerrang-the-100-greatest-heavy-metal-albums-of



(Kerrang! '05, 100 Best British Rock Albums Ever)

- 영국 아카이브:

  http://www.rocklistmusic.co.uk/kerrang_p2.htm#British%20Rock%20Albums

- 네덜란드 아카이브: http://www.muzieklijstjes.nl/Kerrang100British.htm




영국 Q 매거진도 98년에 최고의 50대 70년대 명반을 집계하며

48위로 평가했고, 클래식  매거진의 06년 100대 브리티쉬

명반 집계에선 13위를 차지했다. 이외에 05년 출간된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에도 물론 수록되는 등, 찬사가 줄을 이었다.



(Q Magazine '98, 50 Best Albums of The '70's)

http://www.rocklistmusic.co.uk/qlistspage2.html#70’s



(Classic Rock '06, 100 Greatest British Rock Albums Ever)

http://www.muzieklijstjes.nl/Classicrock100GreatestBritish.htm



(Robert Dimery '05, 1001 Albums You Must Hear Before You Die)

http://www.rocklistmusic.co.uk/steveparker/1001albums.htm




시작부터 강렬해 완전히 달라진 그들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낸

오프닝 트랙 Speed King. 이언 길런이라는 위대한 목소리가

폭발의 갈증에 목말라 하던 세상 만물에 완연히 현신하던 바로

 순간. 왜 보컬리스트를 바꿨는지, 블랙모어는 왜 그토록

헤비에 목숨 걸었는지, 세상 모든 사람이 본능적으로 수긍할

밖에 도리 없는 모멘텀이 도래한 것이다. 솔로잉 끝부분에 나온

길런의 초고음 스크리밍에서 가공할 전율을 느낄 터이다.



('Speed King' from In Rock, 1970)

*original studio album version

 - 잼 같은 인트로 50초를 지나 Hammond 전주 등장.

 - 3'27" 지나 더블 트랙 녹음한 guitar soloing.

 - 4'07" 무렵부터 vocal screaming.




2위까지 올라 딥 퍼플의 역대 영국 싱글 차트 최고 기록을 달성한

Black Night는 앨범과 거의 동시에 발매한 리드 싱글이다. 본래

앨범에는 수록되지 않았으나 팬덤이 기억하는 전성기 딥 퍼플

거의 초창기 히트곡이다. 글로버에 따르면 거쉬인 커버곡의 반주

베이스라인에서 힌트를 얻은 튠이라고.



('Black Night' from a single Black Night / Speed King, 1970)

- 다음 링크를 들어가면 어디서 모티브를 땄는지 알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tsMj0JD8N8




Child in Time. In Rock의 야수적 음악성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트랙은 사실 이 곡 아니겠는가. 보컬 재현 자체가 너무 어려워서

길런 자신이 이미 수십 년 전에 라이브를 그만 둔 곡이기도 하다.

사회적 가사가 많지 않은 딥 퍼플 음악사에서 반전과 베트남전을

소재로 다룬 흔치 않은 트랙이다. 소이탄 피해로 전신 화상을 입은

소녀를 촬영한 종군 보도 사진과 연계해 상상해보클라이맥스

스크리밍이 무엇을 표현한 건지 나름 감이 올 것이다.



*Nick Ut, The Terror of War (1972)

 - Pulitzer Prize Winner in 1973



('Child in Time' from In Rock, 1970)

*영국 TV쇼의 라이브 버젼. 전성기 전설적 실황.

 - Blackmore가 Gibson ES-335로 녹음한 마지막 트랙.



*studio album version

https://www.youtube.com/watch?v=UEjAaLu8Dhs




의외로 자유로운 그루브에 의존하지 않고 클래식처럼 정교하게

파트를 구분하던 블랙모어로드의 성향을 읽을 수 있다. 해먼드

오르간레슬리 스피커, 마샬 앰프존 로드 전매 특허 사운드의

상징이 된다. 블랙모어는 이 무렵부터 깁슨 버리고 스트랫으로

완전히 갈아탄다.



 (Lord)



 (Blackmore)




영국 앨범 차트에서 4위에 올랐고 독일, 호주, 오스트리아에선

을 찍었으며 발매 당시에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골드를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현재까지 전세계 판매고

4백만 장을 넘어 명실상부한 성공작이다. 딥 퍼플은 이제야

확고부동한 스타덤에 오른 것이다.



('Into the Fire' from In Rock, 1970)

https://www.youtube.com/watch?v=gMbY45kFs7w



('Hard Lovin' Man' from In Rock, 1970)

https://www.youtube.com/watch?v=ziISNxMCC3M




(Glover, Blackmore, Gillan, Lord, Paice)




71년 공식 5집이자 2기 라인업의 두번째 앨범 Fireball

길런을 제외하고 블랙모어로드 등 나머지 멤버들에게는

다소 아쉬운 작품이고 흥행 성적도 전작에 미치지는 못했다.

이리저리 투어 끌고 다니는 소속사 장단 맞추느라 스튜디오

작업에 할애할 여유가 없었다고.



 (Fireball)




그래도 영국 앨범 차트 최초의 1위 기록을 포함해 독일,

스웨덴, 벨기에 등 8개국 차트 정상을 석권했고 프랑스,

호주 등 5개국 탑텐에 들어 미국 시장을 제외하고 세계적

지지를 얻은 성공작임은 분명했다. 세계 판매고는 3백만

장이 넘었고 미국에서 골드까지 기록했다.



('Strange Kind of Woman' from Fireball, 1971)

https://www.youtube.com/watch?v=awGv_Go-smI

*studio album version

 - 가사의 내용은 영 좋지 않다. 매춘부 연심을 품은 소년의 성장기.

 - boogie-woogie란 본래 20년대부터 인기를 끈 블루스의 서브장르.




Strange Kind of Woman은 전작의 Black Night처럼

앨범에 수록되지 않고 리드 싱글로 미리 발매된 케이스.

(미국, 캐나다, 일본에선 앨범에 수록되었다.) 영국 싱글

차트 탑텐에 올라 앨범에 대한 기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잘 수행한 곡이고 블루스의 서브장르인 부기우기 모드를

맛깔나게 표현했다. 라이브에서 길런블랙모어가 주고

받는 애드립으로도 유명한 트랙이다.



*Strange Kind of Woman.

 - 73년 뉴욕 라이브 버젼.

 - 주고 받는 애드립은 3'40" 지나서 나온다.




타이틀 트랙 Fireball은 특이하게 에어컨 가동음으로 시작하여

로드가 극찬한 페이스투베이스 킥킹 패턴이 비트를 지배한다.

(아직 더블 페달이 나오기 전 시절이다.) 이들 음악 중 특이하게

기타 솔로 없이 베이스 및 키보드 솔로가 연이어 등장한다.



('Fireball' from eponymous album, 1971)

*studio album version audio + 'hand-sync' promo video clip

 - 꽤 화제를 모았던 프로모션 영상인데 죄다 립싱크+핸드싱크...

 - 제작 당시를 설명하는 Lord의 인터뷰가 덤으로 앞뒤에.. 돌아가시기 전.

 - 세밀하게 보면 손과 음이 따로 논다는 걸 알 수 있고, 심지어 4분 55초쯤

Blackmore기타를 뒤집어 드는 만행을...ㅋ




라이브에서 페이스드럼 솔로와 이어지는 걸로 유명한 트랙

The Mule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은 가사임이 정설이지만 악마 루시퍼에 관한 이야기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길런 본인이 코멘트한 바 있다. - 별 중요친 않다.



('The Mule' from Fireball, 1971)




Strange Kind of Woman이 영국 싱글 차트 탑텐까지 올라

기록을 이어나갔으나, 일부러 끈적한 그루브를 제거한 프로듀싱

스타일이 안 먹히는 탓인지 미국 시장 반응은 아직 그저 그러한

편이었다. 미국 빼고 유럽 반응은 물론 폭발적이었고. 일본도..

- 전 세계 판매고 1억 장이 넘는 딥 퍼플의 소비 시장 분포는

묘하게도 과 비슷한 편이다.



('Demon's Eye' from Fireball, 1971)

*71년 서독 TV쇼 라이브

 - 인트로에 등장한 Lord의 악기는 RMI 368X Electra-Piano.







일정이 촉박했던 전작에 비해 이번엔 한 달 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길런이 투어 중 간염에 걸리고 하는 소동으로 스케줄이

약간 꼬였었거든. 그동안 심기일전하여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며

블랙모어는 다양한 창작의 모티브를 구상하게 된다. 가끔 다급한

중에 나오기도 하지만 무릇 명반이란 여유 속에 탄생해야 하는 법.





 (Montreux, Switzerland)




요양할 필요도 있겠다, 기분 전환도 필요하겠다, 겸사겸사 밴드

전체가 스위스 몽트뢰로 출장을 떠났다.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유명한 고장. 이제 신보 녹음해야지. 카지노에 자리를 잡고 롤링

스톤즈의 이동식 녹음 스튜디오에 시동을 걸 준비를 했다. 프랭크

자파마더즈 오브 인벤션 공연이 끝나길 기다려 들어가려 했다.



          




어느 얼빵한 관객놈이 천정에 조명탄을 쏴버려 카지노 건물에 그만

불이 나버렸네. 난리가 났지만 제네바 호수 표면에 비친 화재 풍광은

또 한편의 장관이기도. 할 수 없이 옆에 임시 막사로 옮겨 녹음 좀

하려는데 소음이 너무 시끄럽다고 주민 신고가 들어온다네. 맙소사,

어찌어찌 하여 폐건물 호텔을 빌려 겨우 녹음을 진행했다.



- Smoke on the Water, Fire in the Sky.. Montreux.. 1971.

- 호텔 창밖으로 대략 이런 풍경을 감상하며 악상을 떠올리셨다고.



*Smoke on the Water. lyrics.

https://genius.com/Deep-purple-smoke-on-the-water-lyrics




새옹지마라 했던가. 일이 잘 되려면 사고 좀 나줘야 하고 예로부터

녹음할 때 귀신 나오면 그 노래 대박친다 했다. 락 역사상 공전절후의

명곡 Smoke on the Water는 대략 이런 뒷이야기를 가사로 구성한

밴드 모험담의 풍자적 송가였던 것이다. 기타 샵에서 제발 이 곡 좀

그만 쳐라, 영원불멸의 1위에 빛나는 바로 그 노래... 수록된 절대

명반, 72년 6집 Machine Head. 캬~~



 (Machine Head)






(Classic Rock '06, 100 Greatest British Rock Albums Ever)

http://www.muzieklijstjes.nl/Classicrock100GreatestBritish.htm




전술했지만 본작으로 비로소 헤비메탈이란 장르가 독립하여

폭발적으로 시장 형성을 시작한다. 클래식 락 매거진의 06년

100대 브리티쉬락 명반 집계에서 26위를 차지하고, Q 매거진

01년 시대를 초월한 50대 헤비 명반 및 04년 30대 클래식

명반 집계에 선정된 이유가 바로 이것.



(Q Magazine '01, 50 Heaviest Albums of All Time)



(Q Magazine '04, 30 Greatest Classic Rock Albums Ever)

http://www.rocklistmusic.co.uk/q_mojo_se.htm#Classic%20Rock




그뿐인가. 케랑! 매거진은 89년에 시대를 초월하는 100대 헤비메탈

명반을 집계하며 35위에, 05년에 최고의 100대 브리티쉬락 명반

집계하며 34위에, 본작을 선정했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

07년에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1000장의 앨범 중 하나로 뽑기도.




(Kerrang! '89, 100 Greatest Heavy Metal Albums of All Time)

http://www.rocklistmusic.co.uk/kerrang_p2.htm



(Kerrang! '05, 100 Best British Rock Albums Ever)

http://www.muzieklijstjes.nl/Kerrang100British.htm



(The Guardian '07, 1000 Albums to Hear Before You Die)

http://www.rocklistmusic.co.uk/guardian100.htm#1000%20Albums




완전 4 음정인 파워 코드의 대명사로 왕년에 기타 만져봤다는

초짜들은 다 한번씩 쳐보는 리프... (점원의 정신 건강을 위해 제발

낙원동 가서 그만 좀 치라고들..Smoke on the Water리프

하나 만으로도 음악사에 길이 남을 게다. Q 매거진이 05년에

100대 기타 트랙 명곡 랭킹에서 12위에 올린 바 있다.



- the legendary riff that you would already know by heart..



('Smoke on the Water' from Machine Head, 1972)

https://www.youtube.com/watch?v=OSXkTm1iRQQ

*original studio album version



(Q Magazine '05, 100 Greatest Guitar Tracks Ever)

http://www.rocklistmusic.co.uk/qlistspage3.htm#Guitar%20Tracks




원래는 계획에 없었는데 이 곡이 세계적으로 왕대박을 쳐버리

이듬해 개별 싱글로 발매하여 핫100 차트 4위까지 치고 올랐다.

롤링 스톤 매거진이 04년에 선정한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곡

랭킹에선 당당 434위를 차지했고. 기록도 풍년이로세.. 얼쑤~



 (Smoke on the Water, single)



(Rolling Stone Magazine '04,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500-greatest-songs-of-all-time-151127/deep-purple-smoke-on-the-water-165096/




이와 함께 본작을 대변하는 시그니처 트랙으로 Highway Star

역시 빼놓을 수가 없다. 로드+블랙모어듀얼 솔로잉 전성기

극강의 연주력을 상징하고 일찍이 요한 세바스찬 바하가 제시한

후기 바로크 화성악 스타일의 프레이징으로 유명한, 70년대식

밴드 연주력 측정기인 바로 그 명곡...!



('Highway Star' from Machine Head, 1972)

*original studio album version

 - 오리지널은 박자가 느린 편이고 라이브에선 BPM을 높인다.



**네오클래시컬 메탈

 - 일본과 한국 바보들이 한때 바로크 메탈 어쩌구로 불렀었으나 영어권

표현으로 neoclassical metal 정확한 용어이다. 신고전파..

 - 제팽글리쉬로 보이는 바로크 메탈이란, 존재하지 않는 말. 쓰지 마라.

뭐 이런 것까지 일본 바보들을 따라 해야 하남.

 - 어쨌든 멀리 JS바하를 시조로 받드는 해당 서브장르가 이 곡을 효시로

한다는 점은 사실이다. 파생 상품 업자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스웨덴의

Yngwie Malmsteen다.




오버드라이브 잔뜩 걸어준 로드해먼드 인트로블랙모어

넘어가는 Lazy는 7분여의 대곡이었는데 80년대엔 줄여서 짧은

버젼으로 라이브를 소화하곤 했다. 블루스 필이 강하고 길런

하모니카 연주를 선보인다.



('Lazy' from Machine Head, 1972)




사이키델릭 냄새가 강한 Space Truckin'은 우주 여행 모험담을

풀어낸 노래. 로드ARP 신디 초기형을 도입해 링 모듈레이션

합성 방식의 프레이징을 인트로에서 선보였다.



('Space Truckin'' from Machine Head, 1972)




싱글로도 발매해 영국 차트 탑40의 준수한 성적을 거둔 Never

Before는 라이브 셋리스트에 희한하게 잘 올라오지 않는지라

오히려 팬덤이 희귀 넘버로 찾아다니는 트랙. 2기 이전 초창기

딥 퍼플 냄새가 살짝 나기도 한다.



('Never Before' from Machine Head, 1972)




현재까지 이 앨범의 세계 판매고는 7백만 장을 넘어섰고 발매

당시 빌보드 200 차트 7위에 올랐으며 현재는 미국에서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영불독 및 캐나다, 호주 등 9개국 앨범

차트 을 찍었고 이탈리아, 일본 포함 다섯 나라 탑텐에 든다.

딥 퍼플 타이틀 하의 커리어를 통틀어 이때가 최절정기였다.



('When a Blind Man Cries' from Machine Head, 1972)

https://www.youtube.com/watch?v=ZLJ8XO7pBu4

- Soldier of Fortune 분위기를 미리 뽑아낸 숨겨진 발라드.

- 원래는 Never Before 싱글의 B면 트랙이었다.




(Blackmore, Gillan, Glover, Lord, Paice)




숱한 라이브에서 각기 다른 버젼의 애드립 프레이징을 창조하며

매번 색깔이 전혀 다른 무대를 만들어온 제2기 딥 퍼플이었지만

의외로 라이브 앨범에는 인색한 편이었다. 스스로가 만든 무대

사운드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



('Sympathy for the Devil' by Rolling Stones, 1968)

https://www.youtube.com/watch?v=qmppOF0_DHE

*live version from Get Yer Ya-Ya's Out!, 1970




하지만 음향 기술도 진보하고 있었다. 70년에 발매된 더 후

롤링 스톤즈의 라이브 명반 같은 경우 특히 이들이 가진 부정적

편견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작업물이었다. 72년 8월에 일본

투어로 세 차례 공연이 잡혔는데 이때 연주 버젼을 녹음하여

결국 그들의 실질적인 첫번째 라이브 앨범을 출시한다.



('My Generation' by The Who, 1965)

https://www.youtube.com/watch?v=PoHCjHtHrVo

*live version from Live at Leeds, 1970




72년 Made in Japan. 롤링 스톤 매거진의 12년 독자 투표

시대를 초월한 10대 라이브 명반 중 6위에 오른, Mk.II 전성기

최고의 기록을 담고 있다는 그 전설의 작품이다. 얼마나 대단한지,

딥 퍼플 디스코그래피에서 개별 판매고가 가장 높은 앨범이 다른

정규 음반 다 제치고 바로 이 작품일 정도. 8백만 장이 넘었단다.



 (Made in Japan)



(Rolling Stone Magazine '12, Readers' Poll:

The 10 Best Live Album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readers-poll-the-10-best-live-albums-of-all-time-18920/6-deep-purple-made-in-japan-132257/




본작은 레드 제플린The Song Remains the Same과 여러

면에서 비교될 수밖에 없었는데 동종 장르에서 라이벌 구도이기

때문에 그런 점도 있지만 라이브를 대하는 근본 자세에서 두 팀이

전혀 다른 접근법을 취하기 때문이다. 라이브 준비는 개인 연습이

알아서 하는 것이고 실제 무대에선 즉흥적인 합으로 맞추는 것이

진짜 음악이라고 생각한 제플린에 비해, 딥 퍼플은 라이브의 합도

서로 칼같이 약속하고 연습한 플레이만 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



*Smoke on the Water. Made in Japan.

- 1972년 8월 15일 오사카. (유신 직전 광복절이군..)




Made in Japan은 그런 음악적 신조를 배경으로, 실력 면에서

최정점을 찍고 있던 2기 멤버들이 어쩌면 스튜디오 레코딩보다도

훨씬 더 정교할지 모를 연주 합을 들려주었기 때문에,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모든 음악팬이 인정하는 최고의 라이브 앨범으로 거듭

재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 제플린 라이브에 대한 평가는 사실

그닥 좋지 못하다. 완성도 면에서 다소 성의 없다고... 퍼플 완승.



*Highway Star. Made in Japan.

- 1972년 8월 16일 오사카.

**Highway Star는 이후 라이브에서 하도 변칙 해석이 난무하여

원곡 버젼 연주를 듣기가 오히려 더 힘든 곡인데, 오리지널 버젼

연주를 스튜디오처럼 충실히 재연한 거의 유일한 아카이브이다.



*Strange Kind of Woman. Made in Japan.

- 1972년 8월 16일 오사카.




(Blackmore, Lord, Glover, Paice, Gillan)




한창 잘 나가던 딥 퍼플. 안타깝지만 균열의 조짐이 슬슬 나타났고

근본적 원흉은 돈벌이에 급급했던 소속사 매니지먼트였다. 휴가도

없이 투어와 레코딩으로 몇 년을 달리다 보니 다른 파트보다 몸이

악기인 보컬리스트에게 가장 큰 여파가 왔다. 길런의 육체 피로와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고 오늘날까지 문제가 되는 블랙모어와의

신경전도 이때 서로 싸우다 보니 싹이 트게 된 것이다.



 (Who Do We Think We Are)




2기 황금 라인업의 마지막 작품 73년 7집 Who Do We Think

We Are는 그런 스트레스 전쟁의 산물. 이거 녹음할 때쯤 이미

길런은 탈퇴로 마음의 가닥을 잡은 상황이었다. 73년 6월 일본

투어가 끝나자마자 탈퇴서를 남기고 길런이 아예 음악계 은퇴를

선언했으며, 글로버는 직후에 해고 당했다. (제발로 걸어 나갔단

설도 있긴 하다.)



*'13 interview with Ian Gillan and Deep Purple.

https://www.rhino.com/article/stay-tuned-by-stan-cornyn-loudest-purple

 - 2기 전성기가 오래 가진 못할 거라며 뿌리까지 뽑아 먹으려던 그들.

 - 길런, 내가 매니저라 "암것두 하지 말고 한 석 달 쉬어"라 했을 걸?




Woman from Tokyo는 본작이 남긴 거의 유일한 히트곡. 앨범

판매도 준수했고 차트 성적도 괜찮았지만 마치 혼이 나가듯이 곡

하나하나에 기백이 없어 멤버들이나 팬덤 모두 본작의 수록곡을

그닥 좋아하진 않는 듯하다. 황금의 Mk.II 라인업은 이렇게 역사

속 뒤안길로 사라진다.



('Woman from Tokyo' from Who Do We Think We Are, 1973)




('Rat Bat Blue' from Who Do We Think We Are, 1973)

https://www.youtube.com/watch?v=6mQTDlQQ5RE

- 그나마 본작에서 이 곡 정도 건질 만하다는 평을 듣곤 했다.







몸도 마음도 지쳤거니와 길런은 한동안 음악계를 떠나 지냈다.

호텔이나 모터사이클 등 몇 군데 사업 투자를 해보았지만 뜻대로

잘 되진 못했다. 다시 음악을 시작했는데 난데없이 재즈락으로

장르를 바꿔 이언 길런 밴드를 조직한다. 3장의 앨범을 냈지만

사실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punk시대에 재즈를 들고 나왔으니.



('Child in Time' by Ian Gillan Band, 1976)

https://www.youtube.com/watch?v=pwkJo9_c3fM

*재즈 퓨전 스타일로 리메이크한 Gillan 자신만의 버젼.

 - 부르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도 있고 상당히 끈적하게 바꿔 놓았다.




딥 퍼플은 보컬에 데이빗 커버데일, 베이스 및 보컬에 글렌 휴즈

받아들여 제3기 라인업을 가동하고 있었다. 블루스funk, 소울

더 가깝게 다가간 3기 라인업, 사실 꽤 괜찮았다. 동명의 앨범에서

걸작 트랙 Burn이나 또 다른 타이틀 트랙 Stormbringer 등, 수작

정도로는 평가할 만큼, 곡도 충실하게 잘 뽑혀 나왔었다.



('Burn' from eponymous album, 1974)



('Stormbringer' from eponymous album, 1974)




블랙모어 입장에선 새 멤버들로 채워진 funk 및 소울 분위기가 영

별로였다. 탈퇴하고 나와 로니 제임스 디오레인보우를 결성한다.

또 다른 당대 최강의 보컬리스트가 가세한 블랙모어 사운드는 한층

고강하고 고결해져 Man on the Silver Mountain Stargazer

같은 수작 트랙이 양산된다. 판매고가 살짝 아쉬운 수준이긴 했다.



('Man on the Silver Mountain' from

Ritchie Blackmore's Rainbow, 1975)



('Stargazer' from Rising, 1976)




블랙모어가 없는 딥 퍼플은 - 나중에야 다들 깨닫지만 - 등뼈

큰 조각이 빠진 듯한 모양새였다. 토미 볼린을 영입하여 신작

앨범을 내지만 결국 전성기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만다. 볼린

휴즈마약에 빠져 밴드 분위기를 해치는 것이 큰 원인이었다.

76년 투어를 끝내고 딥 퍼플은 공식 해체를 발표한다. (볼린

과대평가하는 일부 평자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 결국 팀을 깨뜨린 불성실 약쟁이일 뿐이다.)




(Paice, Hughes, Coverdale, Blackmore, Lord)




블랙모어는 그럭저럭 디오와 잘 하고 있었는데 예술적으로 워낙

변덕이 죽끓듯하는 사람이라 음악의 방향성을 놓고 디오와 의견

대립이 생기니 결국 멤버를 싹 다 갈아치운다. 1978년. 길런

그 대체자로 영입할까 고려한 적도 한때 있었지만, 솔로 활동에

미련이 컸던지라 길런이 거절했다고. 아까비~ - 아이러니이지만

레인보우는 이후 교체 멤버로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다.



 (Dio, Blackmore)




길런도 생각 잘 한 거였다. 다시 전공인 헤비메탈로 복귀하여

길런이란 밴드 타이틀로 앨범 작업을 시작하는데 영국 골드

실버 수준의 성공을 거둔 것. 일본에서 반응도 좋았다 한다.

78~82년에 6장의 앨범을 내고 그럭저럭 짭짤한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단, 82년에 성대 결절로 갑자기 활동을

접어야 했던 흑역사도 겪는다.






('Mr. Universe' by Gillan, 1979)

https://www.youtube.com/watch?v=3KvCAmPXwD4



('Future Shock' by Gillan,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C2mvWIByJ2A




1980년에  소동이 하나 있었는데 돈벌이에 환장하던 어느

기획사가 1기 보컬 로드 에반스를 꼬드겨 대충 세션을 붙이고

딥 퍼플 재결성이란 제호에 공연을 추진한 것. 당연히 2~3기

멤버들 중심으로 소송전에 들어갔고 에반스는 거의 70만 불에

달하는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했다고. 피해를 볼 팬들을 위해

진짜 멤버들이 '우리 안 나옴' 하고 신문에 광고까지 냈단다.



          

- Bogus Deep Purple & Real Ad..




3기 보컬이자 또 한 명의 레전드 커버데일딥 퍼플 해체 후

78년에 화이트스네이크를 결성해 80년 무렵부터 서서히 히트

동력을 높이고 있었다. 일찍이 로드페이스도 멤버로 참여해

힘을 모았으니 포스트 퍼플 프로젝트로 중요한 밴드였던 차...

(정작 이들의 전성기는 84년에 로드+페이스 나가고 난 직후

찾아오고 있었으니..ㅎ)



(Murray, Lord, Marsden, Moody, Paice, Coverdale)



('Here I Go Again' from Saints & Sinners, 1982)

*87년에 대박 친 버젼의 82년 오리지널 트랙이다.




앞서 78년에 레인보우를 떠난 디오블랙 사바스에 합류해

검은 안식일 제2의 전성기를 빚어내고 있었다. 토니 아이오미,

기저 버틀러의 프레이징에 동기화시키는데 최적화되어 있던

오지 오스본에 비해 디오는 다른 멤버의 백킹을 가로질러 뚫고

나오는 스타일이라 전혀 다른 헤비의 미학을 창조하고 있었다.

- 이 시기 명곡 Heaven and Hell디오, 아이오미, 버틀러,

그리고 빌 워드에 의해 멋드러진 향취로 주조되었다.



('Heaven and Hell' from eponymous album, 1980)




이렇게 괜찮았는데 다음 앨범 준비하면서 디오아이오미

사이가 틀어지고 만다. 디오사바스와 솔로 프로젝트를 동시

진행하면서 스튜디오를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것. 디오가 떠나

버리고 후임으로 솔로 활동을 접고 있던 길런이 선임된다. 와..



*이때 길런을 사바스로 끌어들인 매니저가 돈 아든이라고, 이

무렵 오지 오스본 장인이 된 분이다.. 즉 샤론 오스본의 부친..

이 가족 이야기는 복잡하니 훗날 기회 있을 때...




(Butler, Gillan, Ward, Iommi)




 (Born Again)




또 하나 역사에 남을 슈퍼그룹이 될 수도 있었던 이 프로젝트.

83년 블랙 사바스 공식 11집 Born Again 앨범으로 결실을

맺는다. 블루지하고 자유분방한 길런의 스타일이 사바스

아이오미 식 패턴과 맞지 않는다고 평단이 깠고 - 멤버들도

그렇게 느꼈지만 - 팬덤의 반응은 좋았다. 영국 앨범 차트

4위까지 가는 성공을 거둔다.



('Trashed' from Born Again, 1983)



('Hot Line' from Born Again, 1983)




여기까진 그래도 들어줄 만한데 아래 트랙들 들어보면 음울하고

짐짓 답답스런 사바스 정서가 낭만이나 자유로운 미학을 추구하던

길런 스타일과 확실히 어울리진 않음을 알 수 있다.



('Zero the Hero' from Born Again,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7i3URNHQuFo



('Keep It Warm' from Born Again,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MrGja48pfAY




여담이지만, 투어 돌면서 블랙 사바스 예전 트랙들 가사 외우는

데에도 된통 애를 먹었다고. 뭐든 다 잘 할 것처럼 보이는 전설의

보컬리스트 최대 약점은 가사 암기였다...ㅎ 딥 퍼플 때도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줄줄이 나올 정도..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서

중간에 까먹으셔도 팬들이 그러려니 하고 웃으며 넘어간다고.ㅋ



*Highway Star. 독일 TV쇼 '72. 전설의 가사 까먹기.




그런데 암기와는 별개로, 희한하게 작사는 즉흥적인 느낌을 좇아

또 기가 막히게 하시는 스타일... 사바스에서 작사 담당이던 베이스

버틀러와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아이오미가 짐짓 놀라셨다 한다.

사람의 두뇌에서 창작과 암기는 확실히 다른 영역의 기능인가 보다.





*15년 회고 기사, '사바스가 퍼플로 다시 태어났을 때'

https://metalinvader.net/the-old-enough-the-unnoticed-and-the-devils-soundtrack-when-sabbath-were-born-again-purple/







헤비메탈 팬덤에게 83-84 시즌의 사바스/길런 조합이 크나큰

선물이었다면, 84-85 시즌에는 경천동지할 더 뜻깊은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MTV시대 헤어 메탈에 열광하던 미국의

새로운 하이틴 팬들에게 더욱 그러했으니, 전설적인 2기 라인업

딥 퍼플의 재결성이었다. 두두둥.




(Glover, Blackmore, Lord, Gillan, Paice)




예전처럼 닥달하던 사람들 말고 새로운 매니저 및 폴리그램과

재결성+신보 계약을 맺었다. 사바스고 자시고 간에 길런이 이

프로젝트로 득달같이 달려갈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2기 퍼플

길런의 화려한 젊은 시절이자 마음의 고향이니까. 84년 공식

11집을 발매하는 그들. Perfect Strangers였다.



*각자 어디서 뭐 하다 달려들 오셨나...

 - Ian Gillan : 별로 안 어울리던 Black Sabbath 3기 보컬 접고..

 - Ritchie Blackmore : 판매 부진하던 Rainbow 막 해산시키고..

 - Jon Lord : 잘 나가던 Whitesnake 때려치우고.. - 2기에 대한 애정.

 - Roger Glover : Blackmore랑 Rainbow 하다 접고..

 - Ian Paice : Gary Moore 밴드 접고.. - 거기보단 퍼플이 낫지.




 (Perfect Strangers)




솔직히 앨범 자체는 크게 기대할 것이 못 된다. Knocking at

Your Back Door타이틀 트랙 Perfect Strangers, 두

곡이 라이브의 고정 레퍼토리로 정착하긴 하나 그 이외 트랙

정직하게 영 아니올시다 평가도 받았다. 그냥 전설들이 다시

뭉쳤구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의의를 둘 수 있을 뿐.



('Knocking at Your Back Door' from Perfect Strangers, 1984)




그런데 Reunion Tour는 사정이 달랐다. 시쳇말로 84~85년

당시 세계 공연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대사건 중 하나였다. 이에

필적할 만한 사건은 브루스 스프링스틴 대박 친 것 하나 말고

꼽을 수가 없을 정도.. (Born in the U.S.A.시절)



('Perfect Strangers' from eponymous album, 1984)




호주에서 투어를 개시해 북미와 유럽을 거쳐 남미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는데 특히 유럽 레그의 정점을 Knebworth Festival

찍어 버렸고 문자 그대로 현지 언론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한다.

- 물론 당시 한국에선 몰랐지만... 이때 딥 퍼플의 수익은 앨범

판매보다는 투어에 전적으로 기댔다고. 돈이 중요친 않았지만..



*Deep Purple: 'Surprise of the Year', Billboard Magazine; May 1985.

https://books.google.co.kr/books?id=HCUEAAAAMBAJ&lpg=PA219&ots=_VAMzrnxoY&dq=deep%20purple%201985%20billboard%20surprise%20of%20the%20year&pg=PA219#v=onepage&q=deep%20purple%201985%20billboard%20surprise%20of%20the%20year&f=false

 - 얼마나 뜨거운 반응이었는가, 당시 빌보드 지 기사 아카이브.

 - 원래 하루 공연으로 그칠 계획이었는데 연이어 매진을 기록하니

  추가로 공연일 잡느라 진땀 뺐다는 행복한 뒷이야기.. 미국에서.

 - 넵워쓰에선 폭우가 쏟아지는데도 8만 관중이 운집하여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퍼플도 이에 열정적 퍼포먼스로 화답했다는...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반까지는 길런블랙모어의 앙숙

관계가 주된 화두였다. 길런이 쫓겨나면 블랙모어가 남고

(89년), 길런이 복귀하면 블랙모어가 나가 버리고(93년)..

팬덤은 뭐하는 짓거리냐며 성화고... 결국 블랙모어는 다시

돌아오지 않조 새트리아니를 거쳐 스티브 모스가 줄곧

원만하게 활동하며 투어 중심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때

한국에도 공연을 오셨더랬다. 본 블로거, 현장에 있었고..)




*Highway Star, live in Seoul

 - 1995년 3월 18일




(Deepest Purple: The Very Best of Deep Purple)




88년에 당시 소련이던 아르메니아에서 대지진이 발생해 많은

사상자가 나니 길런을 포함한 락 뮤지션들이 자선 프로젝트로

뭉쳤다. 이때 Smoke on the Water를 커버했는데 상당한

화제가 되었다.



('Smoke on the Water' by Rock Aid Armenia, 1989)

- (v) Ian Gillan, Bruce Dickinson, Paul Rodgers, Bryan Adams

- (g) Tony Iommi, David Gilmour, Brian May, Alex Lifeson,

       and Ritchie Blackmore

- (k) Geoff Downes, Keith Emerson

- (b) Chris Squire

- (d) Roger Taylor

- etc. Jon Lord, John Paul Jones







이때 맺어진 길런아르메니아의 인연은 훗날 다양한 프로젝트로

결실을 이어나간다. Rock Aid Armenia 20주년을 기념해 09년에

아르메니아에서 토니 아이오미제프 다운즈와 함께 공로 훈장을

서훈받았다. 이 조합에 2년 후 존 로드를 포함하여 제이슨 뉴스테드,

니코 맥브레인이 가세한 슈퍼그룹이 결성되니 후케어즈였다. 그는

아르메니아 자선 프로젝트에 지속적으로 참여했고 이 멤버 그대로

공연도 이어나갔다.



('Out of My Mind' by WhoCares, 2011)




93년에 길런/퍼플에서 갈라져 나온 블랙모어. 안타깝지만

이후엔 딥 퍼플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고 앞으로도 복귀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현재는 아내 캔디스 나이트

포크락(!) 밴드 블랙모어s 나이트를 결성해 루츠 음악에 더

근접한 활동을 지속해오고 계신 실정... 아쉽긴 하다.



 (Blackmore's Night)




68년 결성 후 페이스와 함께 줄곧 밴드를 지탱하며 실질적인

리더로 믿음직스러운 맏형이었던 로드. 멤버들과 많게는 열 살

가까이 나이 차가 지는지라 현역에서 물러나는 순서도 이 분을

기점으로 시작되었고 02년에는 스스로 딥 퍼플에서 탈퇴하여

돈 에어리에게 후임 자리를 물려주셨다. 장비 일체 포함...



          




해먼드 C-3레슬리 스피커, 마샬 앰프로 구성하는 로드만의

시그니처 톤은 그 자체로 하드락의 역사가 되었고 로드 자신을

키스 에머슨이나 릭 웨이크먼 같은 동시대 경쟁자들과 확연하게

구분 짓는 강한 차별화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피아노의 그것과

전혀 다른 오르간 만의 레가토 주법이 중요하다는 점을 항상

강조하던 존 로드... 12년에 지병인 췌장암으로 별세하셨다.





*Perfect Strangers.

 - Jon Lord 추모 콘서트




93년부터 추천 요건이 되었지만 딥 퍼플락앤롤 명예의 전당

자격 심사에서 매번 탈락하는 일은 큰 논란거리였다. 키스, 러쉬,

메탈리카, 건즈 앤 로지스 등 까마득한 후배들이 작심하고 비판을

쏟아냈고, 결국 늦었지만 16년에 드디어 딥 퍼플이 헌액 무대에

오른다. 길런, 블랙모어, 로드, 글로버, 페이스, 휴즈, 커버데일,

에반스... 여덟 명에게 영예가 주어졌다.



*Hush & Smoke on the Water. R&R Hall of Fame Induction.

 - Jon Lord가 돌아가신지 4년 후.

 - 키보드에 Don Airey, 기타에 Steve Morse.

 - 현재 라인업을 존중하기 위해 Blackmore는 불참했다고.

 - 멤버들 볼 면이 안 서는 Evans는 (당연히) 불참.







락 음악사상 가장 쿨하고 남성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하드락

헤비메탈의 장르 존립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밴드, 딥 퍼플...

보컬, 기타, 키보드, 베이스, 드럼 각 파트마다 멤버 각자가 후배

뮤지션들에게 미친 영향력은 일일이 다 언급하기가 불가능할

만큼 어마어마하다.



물론 이들에게도 비판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결국 70년대

전성기의 짧은 스타덤에 기대어 나머지 일생의 투어 수익을 올리는

올드보이들 아니냐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럼 비틀즈조차도 10년을

넘기지 못했는데 실질적인 상업적 전성기가 20년 이상 가는 대중

음악가가 과연 몇 팀이나 되냐고 반문하고 싶다. 30년 넘겨 히트작을

생산하는 아티스트는 딸딸 털어도 롤링 스톤즈, 폴 매카트니, 엘튼 존,

U2, 마돈나 고는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음악 산업의 가치 사슬이나

경기 순환 주기란 것이 그만큼 짧고 지속 가능 못한 것이 현실이니까.



1억 장이 넘는다는 딥 퍼플 디스코그래피의 세계 판매고 숫자가

몇몇 지표에서 드러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이것은 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 산업 측정 지표란 것이 빅 데이터 통계량으로 체계화하기

시작한 시점이 80년대 이후인지라, 절반 이상의 판매고가 70년대에

몰려 있는 이들 상업 실적의 상당수 통계량 오늘날 추적이 불가능한

상태로 사실상 소멸해버렸기 때문이다. 다이애나 로스, 클리프 리처드,

스콜피온즈, 오지 오스본, 톰 존스, 잭슨 파이브 등 70년대 이전 실적

지분이 큰 다른 아티스트도 같은 이유로 판매고 집계에서 상당히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전언이다.



어찌 되었든 실적 데이터에 관한 것 말고 음악적 기여도에 있어선

왠만해서 딥 퍼플을 까내리려 시도하는 용자가 많지 않을 것이다.

앞에서 했던 찬사를 반복하는 건 의미가 없겠고 그 시간에 멋진

음악이라도 하나 더 소개하는 편이 훨씬 현명하므로, 앞서 72년

Machine Head 앨범에서 각 파트별 밸런스가 어떻게 이렇게 딱

맛깔나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숨겨진 보석 같은 사례로서,

Pictures of Home을 추가로 제시하며 설명을 대신하고자 한다.

장담컨대 이렇게 멋진 음악을 제시할 수 있는 락 밴드, 예나

지금이나 결코 흔하지 않다.



('Pictures of Home' from Machine Head, 1972)

 - Jon Lord 및 모든 멤버의 솔로잉이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특유의 screamshriek 텍스처가 본연의 선굵은 마초 캐릭터와

어우러져 이언 길런이란 불세출의 보컬리스트가 탄생하게 되었고

후배 보컬리스트들에게 끼친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

나이를 먹으며 스크리밍 음역은 점점 딸리는 것이 어쩔 수가 없을

테지만, 중후한 블루스 필로 채운 그 자유분방한 리릭 어프로치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평단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지점은 작사가로서의 능력. 그는 평생 작품에서

비속어를 딱 한 번 썼을 만큼 건강한 시적 언어를 강조하는 편이고

흔히 헤비메탈 장르에 대해 대중이 가질 편견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창작자이다. 모든 가사에서 시어의 선택 자체가 퍼커션을 조율하듯이

음악성을 근간으로 해야 한다는 지론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생각해보면 70~73년 겨우 서너 해 남짓 한 극전성기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서서히 하강 그래프를 그려간 뮤지션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냉정한 평가도 내리고 싶다. 하지만 그 몇

해의 성과 만으로도 평생을 평가받기에 충분할 만큼의 족적을 남긴

셈이니 전성기 활동의 질적 완성도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분..



브루스 디킨슨, 롭 핼포드, 폴 스탠리제임스 헷필드, 제프 테이트,

크리스 코넬, 에디 베더 등... 당장 보컬리스트로서 그의 직속 후임

계보에 들어갈만한 이름을 생각나는 대로 대충만 읊어도 이 정도다.

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겠느뇨...



*Highway Star. Perfect Strangers World Tour.

 - 라이브 실력으로 완벽하게 끗발 날리던 피크 시절의 멤버들.

 - Reunion Tour로 왜 공연계 돈을 쓸어담고 다녔는지 이해가 갈 게다.

 - 4'33".. 한때 이렇게 애틋한 시절도 있었건만...ㅜ









이언 길런하드락의 울타리에서만 머무른 것은 아니다. 후대

인류 문화사에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고

여기는 특이 지점은 69년말 매우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작업하던

시절. 존 로드의 클래식 협주곡 프로젝트가 이래저래 지겹고

한가롭던 차, 당시 성공의 열망에 부풀어 있던 젊은 뮤지컬

작곡가로부터 호출을 받아 스튜디오에 가봤는데...



아직 정규 딥 퍼플 음반이 나오기 전이었지만 어느 홀을 빌려

샤우팅 질러대며 리허설에 열중하던 길런을 멀찍이서 눈여겨

보고 있었단다. 저런 하이 노트가 가능한 보컬리스트가 있었군,

하면서. 악보를 건네며 일종의 카덴차, 즉 애드립으로 할 수 있는

구간이 여기까지라고 친절히 안내해주니, 길런은 그런가 보다

하고 원래 하던 대로 냅다 질러댔다. 성경 이야기의 무슨 컨셉트

앨범인 모양인데 내년 정도에 앨범이 나온다나 어쨌다나... 암튼.



젊은 작곡가의 이름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 이듬해에 발매한 그

희한한 컨셉트 앨범은 바로 이런 제목이었다. Jesus Christ

Superstar... 그렇다. 웨버 뮤지컬의 전성기를 열어제낀 대박

히트작의 출발선이 바로 이 시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설의

시작, 가공할 샤우팅 노트로 후대 뮤지컬 배우들을 무던히도

괴롭힌 악마적 프레이즈가 바로 그렇게 탄생한 것. 세상에..



 (Jesus Christ Superstar)




뮤덕들 사이에서 하이G 겟세마네 불리우는, Gethsemane

(I Only Want to Say). 로마군에게 체포되기 직전 예수의 최후

심경을 강렬한 하드락 비트에 실어 절규처럼 토한 마스터피스.

오늘날 모든 뮤지컬 배우를 멘붕에 빠뜨리는 초고음 샤우팅이

바로 이 트랙에서 등장한다. 평범한 성악 트레이닝에 익숙할

배우들이 당황할 수밖에. 오리지널이 헤비메탈의 조상 격인

보컬리스트셨는데.. 급 불쌍해지는 우리의 배우들..



본 블로거 생각하기에, 이미 한물 간 헤비메탈 어쩌구 차치하고

이 프로젝트길런이 남긴 문화적 유산이 아마 딥 퍼플 노래보다

훨씬 더 장구하게 인류사에 남지 않겠는가 전망한다. 오늘날의

문화 산업에서 헤비메탈뮤지컬교집합 규모도 작고 별로

연결될 것 없는, 딱히 상관없는 두 장르. 길런은 전혀 상관없는

두 개의 분야에 강렬하게 흔적을 남긴 음악가로 남는 셈이다.



후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걸작이 때때로 우연한 사고처럼

탄생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논할 때 길런웨버겟세마네

이야기를 반드시 언급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후에 그는 결코

뮤지컬 세계로 돌아간 적 없고 - 한창 영화 찍을 때 딥 퍼플 월드

투어 중이었으니까 - 웨버도 이후 다시 하드락 장르로 돌아온 적

없다. 두 창작 집단의 젊고 피끓던 시절, 우연한 교차점 부근에서

역대급 걸작이 그야말로 우발적으로 탄생한 셈이라 하겠다.



무릇 인생과 예술이란 그러한 것. 화려한 전성기 시절 울트라급

성대를 자랑하시던 길런의 젊은 아우라에 흠뻑 빠져 보시기를

권유하며, 강력한 추천과 함께 금번 포스팅을 마치고자 한다.

(가련한 후대 뮤지컬 배우들의 발성 비교 영상은 덤이다.)




('Gethsemane (I Only Want to Say)' from

Jesus Christ Superstar, 1970)

 - Ian Gillan on vocals



*Ted Neeley. 73년 영화에 길런 대신 출연하신 명배우.




*Jesus Christ Superstar

 - 앤드류 로이드 웨버 & 팀 라이스 콤비의 처녀 히트작.

 - 웨버-라이스 시대를 열어젖혀 공고한 초석을 다진 명작.

 - 70년 락 오페라 컨셉트 앨범을 먼저 발표. 성공.

 - 71년 웨스트엔드 뮤지컬 무대에 데뷔. 성공.

 - 73년 뮤지컬 필름으로 제작 상영. 성공.



**배우들 비교질 동영상 - 가볍게 보시라.

https://www.youtube.com/watch?v=yfHt2YfRdSs

 - 1'12" Ian Gillan, 70년 원곡 앨범의 가수. 원흉.

 - 0'20" Ted Neeley, 73년 오리지널 영화의 배우.

  -- 여기 두 분까지는 보통 언터처블 레전드로 분류되고..

 - 0'55" Gary Cherone, Extreme의 보컬. 근데 별로다..

 - 2'09" Sebastian Bach, Skid Row의 보컬. 더 별로다..

  -- 여기 없는데 뮤덕들이 꼽는 역대 최악은 John Legend라고..ㅜ

  -- 보통 Steve Balsamo는 현역 최고로 친다고.. 동의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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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이 노래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참 신기하기도

하고 대단하다고 경탄을 금할 수 없다. 데뷔 이후

일체의 바이브레이션 없는 직선적 고음을 한결같이

유지해오신, 영원한 펑크punk 스타 스팅.



슈퍼 트리오 폴리스베이시스트이며 Every Breath

You Take 단 한 곡으로도 영원히 기억되는 미노년의

거물 락커 스팅 Sting이 이번 포스팅의 주인공이시다.









('Every Breath You Take' from Synchronicity, 1983)



('Fields of Gold' from Ten Summoner's Tales, 1993)




스팅은 왜 이름이 스팅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한때는

좀 있었는데, 꿀벌 티셔츠를 즐겨 입으시던 이 분의 20대

시절 별명이었단다. sting에는 벌침이란 뜻도 있거든.

물론 본명 아니고 1951년에 고든 매튜 토머스 섬너

긴 이름으로 태어나셨다. 잉글랜드.



그의 솔로 아티스트로서 전성기가 한국 음악 시장에서

해외 음악이 활발하게 수입되고 정보가 유입한 홍수기와

대략 일치하기 때문에 솔로 경력은 그래도 비교적 알려져

있는 것 같다. 굳이 설명할 필요 있을까 싶을 만큼.

그래도 약간 언급은 하겠지만서도.



한국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시기는 그의 밴드 시절이

아닌가 싶네. 폴리스 The Police. 슈퍼 락스타 스팅

시작점을 제공한, 역사상 최강의 락 트리오 중 하나인

그들. 이름이 폴리스인 이유는 멤버 한 분 아버지가

정보 기관에 근무하셨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https://www.etonline.com/music/166153_7_things_you_never_knew_about_sting_the_police





(The Police)




 (Outlandos d'Amour)




베이스보컬스팅, 기타앤디 서머스, 드럼스튜어트

코플랜드.. 이렇게 세 사람으로 1978년에 데뷔 앨범을 내고

다섯 장까지 정규 앨범을 낸 뒤 84년쯤 활동을 정리한 3인조

구성의 영국 밴드가 폴리스이다.



80년대 포스트 펑크뉴웨이브에 기반을 두고 재즈레게,

스카아프리칸 등 다양한 장르를 복합한 음악을 단 셋만의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한 편성으로 엮어낸, 락 음악사상

가장 탄탄한 음악성을 지닌 슈퍼 트리오라고 불렸다. 소위

일컫는 80년대 제2차 브리티쉬 인베이전의 일원이기도.



78, 79, 80, 81, 83년에 각각 발표한 정규 앨범이 죄다 영국

차트 탑텐에 올랐고 이 중 3-4-5집은 미국에서도 탑텐

기록했다. 다섯 장 중 넉 장은 롤링 스톤 지가 발표한 시대를

초월한 500대 명반에 당당히 선정될 정도. 앨범의 전 세계

판매고가 8천만 장에 달하고 여섯 차례 그래미 어워드

수상했으며 브릿 어워드도 두 번 받았다. 2003년에 이미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Summers)



(Copeland)



 (Regatta de Blanc)



(Zenyatta Mondatta)




4집까지 음악성도 탄탄하여 성공했지만 83년 Synchronicity

앨범과 싱글 Every Breath You Take의 초대박 메가히트는

너무나 유명한 전설이다. 앨범과 싱글 쌍끌이로 미국 시장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찍었다.



스팅이 아내와 불화가 있던 시절 스토가 된 심정으로 어디

얼마나 잘 사나 지켜보자고 쓴 가사인데 끈적한 사랑 노래로

오해하는 사람 참 많다. -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 현상.

가사를 쓴 그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고. 결혼식서 부르지 말자.



다 필요없고 폴리스스팅을 대표하는 시그니처송 아니겠냐.

생략하고 갈 수 없으니 먼저 듣고 시작하자. 원곡도 훌륭하고

아래에 2008년 재결합 투어 중 도쿄돔 라이브 버젼도 좋다.



 (Every Breath You Take, single)



*2008 Reunion Tour 중 Every Breath You Take.




서머스가 창조한 저 기타 리프는 모르는 이 없이 역사상

가장 유명한 프레이즈. 82년 로버트 프립과 듀오 앨범

I Advance Masked를 낼 때 벨라 바르톡을 연구했는데

거기서 착안했다지.



얼핏 듣기로는 쉬운데 막상 치려면 손가락 찢어진다고

악명높은 악마의 리프라지... 무려 캘리포니아 주립대

음대서 클래식 기타를 전공한 분이니 핑거 난이도

쯤이야 이미 아득히 초월한 수준 아니겠남.



https://www.youtube.com/watch?v=dOJjxL82X2Q&t=275s

(왜 어려운 리프인지.. 4분 35초 경부터)




주변에 폴리스의 라이브를 들려줄 때 나오는 반응 중

열에 여덟 아홉은 그렇다. 스팅만 알고 들어갔는데 나올

서머스코플랜드의 팬이 되어 버린다고. 하나의

온전한 밴드를 얘기할 때 두 분은 스타인 스팅보다

더 중요할지 모르는 것이 사실일 거다.



(앤디 서머스 1987년 인터뷰. 기타 사운드의 디자인에 대해..)

https://www.youtube.com/watch?v=RS87DCFfzxU


(스튜어트 코플랜드 드러밍에 대한 설명. 어느 드럼 강사..)

https://www.youtube.com/watch?v=Mwojr-12xK4




42년생으로 이미 60년대 중반부터 블루스사이키델릭

연주자로 각광받은 앤디 서머스. 실력파 밴드 소프트 머신에서

투어 연주자로 뛰었고 저명한 애니멀스에서 정규 멤버인 적도

있었으니, 적어도 실력에 있어 누가 딴지 걸 만한 짭밥은 아닌

폴리스에 참여한 분이다.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데뷔 무렵 세 분 중에선 멀찍이 앞서던 멤버인 셈다.



때려부수는 파괴 주법이 아닌 스티브 해킷, 스티브 하우,

알렉스 라이프슨, 로버트 프립처럼 이펙트 중시하는

분석적 어프로치로 프레이징을 펼친다 하여 흔히 두뇌파

분류되는 기타리스트동시대 U2디 에지와도 유사한 면이

있고, 중심 접근 자체가 포스트 펑크의 트레이드 마크일 듯.



폴리스의 라이브나 앨범 트랙을 골고루 들으면 금방 알 수

있지만 사운드 메이킹에서 서머스어프로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작곡 크레딧을 대부분 스팅이 가져간다는

단순한 이유로 따질 수 없는, 분명한 자기 생태계를 구축하는

밴드메이트인 것이다. 폴리스 이전 서머스의 플레이를 느끼기

원하는 사람에겐 애니멀스 시절 4분이 넘는 솔로잉을 펼친

트랙 Coloured Rain을 보통 추천하곤 한다.



('Colored Rain' by Eric Burdon and The Animals, 1968)

- 애니멀스 시절 앤디 서머스. 솔로 파트는 2' 20" ~ 6' 40" 정도에..



(폴리스가 과연 punk 밴드였는지 의심이 든다면 아래 영상을...)

https://www.youtube.com/watch?v=rPNQyyLglSQ



(Fender Telecaster)



('So Lonely' from Outlandos d'Amour, 1978)

*2분 25초쯤 이후 솔로잉도 꽤 괜찮은 편이다.



('De Do Do Do De Da Da Da' from Zenyatta Mondatta, 1980)

*이 곡에선 기타 이펙트로 리버브와 에코를 적절히 섞었다.



('Demolition Man' from Ghost in the Machine, 1981)

*앨범 버젼에서 기타 솔로잉을 만끽할 수 있다. 버젼이 여러가지라..



('Demolition Man' by Manfred Mann's Earth Band, 1982)

- 데몰리션 맨 맨프레드 맨s 얼쓰 밴드가 커버했는데 꽤 잘 뽑혔다.




폴리스의 히트곡 가운데 서머스 이펙트의 진가를 보여줄

트랙으로는 1집 Outlandos d'Amour에서 So Lonely,

2집 Regatta de Blanc에서 Message in a Bottle, 3집

Zenyatta Mondatta에서 De Do Do Do De Da Da Da,

4집 Ghost in the Machine에서 Demolition Man 등을

추천할 만하다.



특히 Message in a Bottle1집에서 Roxanne이 크게

히트했음에도 실질적으로 폴리스 음악의 기초를 세웠다고

평가받는 명곡이다. 롤링 스톤 지가 시대를 초월한 기타

(가 중심이 되는) 노래 100곡을 선정할 때 65를 차지할

정도로 스트랫 선상의 리프또렷하고 청량하다.



(Rolling Stone Magazine's 100 Greatest Guitar Songs of All Time)

https://www.stereogum.com/10114/rolling_stones_100_greatest_guitar_songs_of_all_ti/franchises/list/



('Message in a Bottle' from Reggatta de Blanc, 1979)

*최고의 리프. 가사는 병 속에 편지를 넣어 띄워보낸 사람 이야기..


('Roxanne' from Outlandos d'Amour, 1978)

*록산은 파리의 매춘부를 가리킨다. 신호등과 상관없다능.




52년생 스튜어트 코플랜드는 개별 악기 능력에 있어선

세 멤버 중 평가가 가장 높다. 16년 롤링 스톤 지 선정

시대를 초월한 드러머 100명 중 무려 10위, 05년 모던

드러머 및 13년 클래식 드러머 명예의 전당 헌액 등등..



특히 트래디셔널 그립으로 스틱하이해트, 을 다루는

테크닉은 동시대 최강이며 많은 후배들에게 영향을 줬다.

사운드의 여백을 책임감있게 메꿀 정도의 능력치는 존 본햄,

닐 피어트칼 팔머동급이라는 것이 중평이라 하겠다.



정작 본인은 미치 미첼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다 하고

진저 베이커도 자주 언급했다. - 세 분 모두 락 트리오

멤버들.. 왜인지, 버디 리치 스타일 재즈 긱은 싫어한다고.



(Rolling Stone '100 Greatest Drummers of All Time', 2016)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drummers-of-all-time-77933/stewart-copeland-33775/


(Modern Drummer Reader Pole, 2005)

https://www.moderndrummer.com/modern-drummers-readers-poll-archive/#_


(Classic Drummer Hall of Fame, 2017)

https://www.classicdrummerhalloffame.com/stewart-copeland



(traditional grip of a left hand)




어린 시절 한동안 가족이 중동에서 지낸 탓인지 레게 

스카를 포괄한 다채로운 전통 리듬에 익숙하여 폴리스

음악에 크게 기여한다. 때때로 클래식 퍼커셔니스트마냥

광범위한 진폭의 다이내믹스 능한 것도 이 때문일 듯.

꽉 찬 그루브의 재즈적 필인 또한 지나칠 수 없는 요소.



이들에게 하나의 루틴 패턴인데, 스팅이 베이스로 중심을

잡으며 가사를 읊는 뼈대 위에 서머스가 다양한 이펙트

변용하여 사운드를 채워주고 코플랜드가 그 위로 리듬

운용하는 자유분방함... 3집까지 레게펑크punk

고수하던 폴리스의 음악은 대략 이런 양상이었다.



('Don't Stand So Close to Me' from Zenyatta Mondatta, 1980)

*80년 앨범 원곡 버젼. 스팅은 실제로 교사였던 적이 있다고.



*86년 재녹음 버젼. 이 앨범 하나면 왠만한 히트곡 다 들을 수 있다.




1집 Roxanne을 쓸 때 스팅은 당초 보사노바 리듬을

구상했지만 코플랜드의 조언에 의해 탱고로 바꿨다고.

서머스 여러 모로 이들에게 중요한 2집 Message in a

Bottle 코플랜드 플레이가 역대 최고였다고 극찬했다.



3집Don't Stand So Close to Me는 여학생이 선생님에

품은 감정을 다룬 영국 차트 1위 곡인데 기타 신디사이저

등장한다. 해산 후 86년에 히트곡 모음집인 Every Breath

You Take: The Singles를 발매할 땐 '86 버젼으로 재녹음

중이었는데 마침 코플랜드가 부상 중이라 워크스테이션 명기

Fairlight CMI드럼 프로그래밍을 직접 했다고.



*아랜 86년 The Singles의 95년 재발매판 커버.

 (EBYT: The Classics)



*아랜 97년 또다른 모음집. 이들은 베스트 앨범이 잘 팔리는 편.

(The Very Best of Sting & the Police)




('The Bed's Too Big Without You' from Reggatta de Blanc, 1979)

*80년 독일 라이브. 코플랜드의 스네어 드러밍에 주목.




2집 The Bed's Too Big Without You세 멤버가

고루 우수한 가운데 특히 평단이 코플랜드의 물수제비 뜨는

듯한 스네어 드러밍을 콕 집어 칭찬한 바 있다. 3집의 숨은

진주 Driven to Tears싱코페이션 가득한 레게 리듬을

무리없이 소화해낸 코플랜드와 함께 서머스의 여덟 마디

솔로잉이 격찬을 이끌어내기도.



3집 중 엄청난 길이의 제목을 가진 When the World Is

Running Down, You Make the Best of What's Still

Around.. 이 트랙에서 보여준 funky-groove 베이스

드럼의 조화 역시 대단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5집Murder by Numbers

코플랜드의 재즈식 테크닉을 진짜 매력있게 들려준다고도..



('Murder by Numbers' from Synchronicity,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1Wp-SZSBkjk




('Driven to Tears' & 'When the World Is Running Down, You Make

the Best of What's Still Around' from Zenyatta Mondatta, 1980)

- Zenyatta Mondatta의 두 트랙을 이어붙임..




 (Ghost in the Machine)




4집 Ghost in the Machine이나 5집 Synchronicity

쯤 가면 스팅뉴웨이브신디사이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이전까지 사운드를 채워주던 서머스

여러 모로 부딪히게 된다. 밴드 스코신디가 설치기

시작할 때 기타리스트의 운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는 법.



4집Every Little Thing She Does Is Magic이나

Spirits in the Material World 같은 히트곡을 만들 때

스팅서머스의 갈등이 점입가경이었다고. 신디 톤

점령해 들어오면서 펜더 소리 듣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음은 그냥 대충만 들어봐도 뭐..



아래에 4집 내고 공연 중.. Moog Taurus pedals 쓴다고

엄청나게 스팅 까는 댓글은 덤이다.


*Sting playing Moog Taurus pedals, 1982.

https://www.youtube.com/watch?v=nYFjTPAQ6G0



 (Moog Taurus)



('Every Little Thing She Does Is Magic'

from Ghost in the Machine, 1981)



('Spirits in the Material World' from Ghost in the Machine, 1981)




 (Synchronicity)




가뜩이나 멤버들 간에 신경이 곤두서 있던 차에 제작사

압력으로 녹음에 들어간 Synchronicity. 서로 모이지도

않고 따로 자기 파트를 녹음했다는 후문. 그런 앨범이

역대 최고의 성과를 거둔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말다니.



스팅의 가사는 결코 쉽지 않다. 교대 나와 교사로 일한 적

있는 엘리트인지라 어려운 표현 투성이에다 가끔 스노비즘

쩌는 반쯤 허세 같은 작품도 심심찮게 나온다. 본작 가사가

그러한데 아서 쾨슬러란 문필가가 72년에 낸 유사 심리학

계열 저서에 등장한 synchronicity, 흔히 공시성이라고

일컫는 현학적 개념을 풀어낸 가사로 범벅을 했다.



그게 뭐냐고? 전혀 상관이 없는 두 개 이상의 사건이

우연히 겹쳐 발생한 데에서 초감각적 의의를 찾는 약간

초능력 비스무그리한 거라고... Synchronicity II

가사를 조용히 음미해 보시면 알 수도 있을 듯.



(Synchronicity II 가사 속 중의적 해석을 설명한 곳)

https://genius.com/3199809



('Synchronicity I' from Synchronicity, 1983)



('Synchronicity II' from Synchronicity, 1983)



*포스트 아포칼립스 사이버 펑크 문화의 절정을 보여주는 뮤직 비디오.



*질주하는 텔리는 서머스의 상징이다. 애틀랜타에서 83년 마지막 투어.




판매고만도 9백만 장을 넘기고 영국미국 양쪽 앨범

차트 정상에 오르며 84년 그래미 어워드본상 3개

부문을 포함 다섯 부문 후보에 올라 세 부문 - 올해의

노래 포함 - 수상을 기록하는 등. 83~84년의 폴리스

성과와 기록의 절정기를 맞고 있었다.



그럼 뭐하나, 밴드는 해체 수순을 밟고 있었는데. 대부분

곡을 쓰고 팀의 중심이던 스팅솔로 프로젝트로 가기

위해 잔뜩 바람이 들어 있던 상황이었으니. (심지어 이

시기 그는 꽤 연기도 잘 하는 영화배우였다.)



84년 3월 투어를 끝내자마자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각

멤버들은 찢어져 솔로 활동에 들어간다. 2007년에 잠시

재결합하여 투어를 갖기 전까지는 장장 23년간 휴지기가

지속했고 08년 이후 재결합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2008 Reunion Tour 중 Message in a Bottle.



*2008 Reunion Tour 중 Synchronicity II.



*03년 락앤롤 명예의 전당 헌액 공연 중 Roxanne.




짧고 굵게 음악계를 평정한 폴리스의 음악에 아직도 갈증이

남는다면 아래의 히트 트랙들을 더 참고하시길.



('Fall Out', non-album single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4Av29Jp8Ryk


('Can't Stand Losing You' from Outlandos d'Amour,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nH0vjLwMyc4


('Walking on the Moon' from Reggatta de Blanc, 1979)

https://www.youtube.com/watch?v=zPwMdZOlPo8


('Behind My Camel' from Zenyatta Mondatta,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XaP2h7ZP5D0


('Invisible Sun' from Ghost in the Machine,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1VuDjJ9KIxM


('King of Pain' from Synchronicity,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yuOPRfq-q6U


('Wrapped Around Your Finger' from Synchronicity,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svWINSRhQU0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




물론 그 사이 가장 잘 나간 스타는 스팅이다. 기존 팬덤 중

솔로 활동이 망하기 바랬을 사람도 있었겠으나 이 양반이

어디 그리 썩힐 달란트이던감. 85년에 발표한 첫 솔로 앨범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는 전반적으로 재즈

짙은 영향을 뽐낸 멀티 플래티넘의 수작이라 할 만하다.



브랜포드 마살리스를 위시하여 대릴 존스, 케니 커클랜드,

오마르 하킴재즈 씬세션들을 대거 투입하여 안정된

사운드를 들려준다. 핫100 차트 3위까지 오른 데뷔 싱글

If You Love Somebody Set Them Free는 발군의

추천 트랙이며 스팅 솔로 커리어 대표곡으로 자리매김한다.



('If You Love Somebody Set Them Free'

from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 1985)

*전술한 세션들이 다 함께 출연하시는 뮤직 비디오.




84년 겨울엔 당시 영국 음악계를 쥐락펴락 하던 최고의

가수들이 다 모여 밥 겔도프 주도로 밴드 에이드라는

프로젝트 하에 Do They Know It's Christmas 싱글을

녹음하고 있었다. 스팅이 빠질 수 있겠나. 비중은 적지만.



('Do They Know It's Christmas' by Band Aid, 1984)

*1분 14초 경에 등장하심.



85년은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전성기이기도 해서 스팅

마크 노플러가 이들 최고의 히트곡 Money for Nothing

공동 작곡하고 스팅백킹 보컬로 찬조 출연한다. 이런

그림은 라이브 에이드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I want

my MTV~'의 라인은 시대가 낳은 락 앤썸인 셈.





*참고로.. 역사를 새로 쓴 Money for Nothing의 뮤직 비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wTP2RUD_cL0

('Money for Nothing' by Dire Straits, 1985)



(...Nothing Like the Sun)




87년에 낸 ...Nothing Like the Sun 앨범은 진득한

어덜트 컨템포러리로 가득 찬 또 다른 멀티 플래티넘 수작.

앤디 서머스를 비롯, 에릭 클랩튼, 마크 노플러 등 동료

기타리스트가 대거 참여하여 화제가 되었다.



모친상 겹친 때문일까, 한층 깊어진 우울한 정서에

평단이 찬사를 보냈다. 반군에 희생당한 민간인에 바친

싱글 Fragile에서 깊은 쓸쓸함을 확인할 수 있다. 많이

알려진 Englishman in New York성 소수자로서

외롭게 투쟁하던 선배 인사에게 바친 곡이다. Be Still

My Beating Heart는 모친께 바친 곡.



('Fragile' from ...Nothing Like the Sun, 1987)

*클래식 기타 연주가 빼어난 16년 노벨평화상 기념 공연.



('Be Still My Beating Heart' from ...Nothing Like the Sun, 1987)

https://www.youtube.com/watch?v=Ng4P6FWVdcE




(The Soul Cages)




88년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음악극 병사의 이야기

낭독 파트의 녹음에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이언 맥켈런

켄트 나가노가 지휘하는 런던 신포니에타와 함께 참여했다.



91년 앨범 The Soul Cages 땐 부친을 여의었음에도

역설적으로 밝게 그린 All This Time이 좋은 평가를

얻어낸다. 동명의 타이틀 트랙으론 그래미 상을 받았고.



('All This Time' from The Soul Cages, 1991)

https://www.youtube.com/watch?v=4LdUme7QZLY

*뮤직 비디오에서 장례식에 대한 암시를 읽을 수 있다.



(Ten Summoner's Tales)




93년 앨범 Ten Summoner's Tales는 큰 성공을

안겨준다. 그래미 올해의 앨범머큐리 음악상 후보로

오르게 되었고 If I Ever Lose My Faith in You

36회 그래미 최우수 남성 팝 가수 상을 수상한다.



발매 1년여 만에 트리플 플래티넘을 기록하고 If I Ever~

뿐 아니라 Fields of Gold, Shape of My Heart

히트곡이 줄줄이 터져나왔다. 리썰 웨폰 3탄 OST에도

수록된 It's Probably Me 에릭 클랩튼이 기타를 쳤다.



('If I Ever Lose My Faith in You' from Ten Summoner's Tales, 1993)

*보컬 기량으로서는 이 때가 절정기였다.



('Shape of My Heart' from Ten Summoner's Tales, 1993)

*세션 기타리스트는 공동 작곡자이기도 한 Dominic Miller.



('It's Probably Me' from Ten Summoner's Tales, 1993)

https://www.youtube.com/watch?v=SUYI7kIR0S4

*album version. 여러 버젼이 존재함.




93년엔 영화 주제가 작업이 많았다. 실베스터 스탤론

웨슬리 스나입스의 영화 데몰리션 맨을 위해 과거

트랙을 재녹음하여 OST에 수록했고, 찰리 쉰키퍼

서덜랜드삼총사를 위해 All for Love브라이언

애덤스로드 스튜어트와 녹음했는데, 그에게 이 곡은

솔로로서 아직까지 유일한 싱글 핫100  트랙이다.



('Demolition Man' from eponymous soundtrack, 1993)

https://www.youtube.com/watch?v=G3QWnqpHrEI



('All for Love' by Bryan Adams, Rod Stewart & Sting, 1993)




95년엔 니콜라스 케이지엘리자베스 슈의 영화 라스

베가스를 떠나며 OST 앨범에 참여하여 세 곡의 재즈

스탠다드를 녹음한다.



('Angel Eyes' from Leaving Las Vegas OST, 1995)

https://www.youtube.com/watch?v=eaWd0pNHDes

*한국에선 이 곡이 소폭 히트함.




97년에 그의 최고 작품 Every Breath You Take

미국의 흑인 랩퍼 퍼프 대디와 싱어 페이스 에반스

의해 커버되어 무려 핫100 차트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비극적으로 사망한 동료 노터리어스 BIG

기리는 뜻에서 비롯되었으니 물론 개사하여 I'll Be

Missing You란 제목으로 발표한 것.



('I'll Be Missing You' by Puff Daddy & Faith Evans, 1997)

https://www.youtube.com/watch?v=NKMtZm2YuBE




최근까지도 차트에서 두각을 보이는 앨범을 꾸준히 내고

있지만 창작자로서 좋은 평가는 99년 Brand New Day

앨범 이후론 멈춘 듯하기도. 본작에서 알제리 민속 음악인

라이 양식을 빌려 알제리 가수 체브 마미와 함께 한 싱글

Desert Rose로 2000년 그래미 상을 받는다.



02년엔 영국 작곡가에게 주는 이보 노벨로 음악상 수상자로

선정된다. 03년에 니콜 키드먼주드 로르네 젤위거의 영화

콜드 마운틴 OSTYou Will Be My Ain True Love

앨리슨 크라우스와 녹음하고 이듬해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로 올라 시상식 무대에서 공연한다.



('You Will Be My Ain True Love' by Sting & Alison Krauss, 2003)

*연주하고 있는 건 드론 베이스란 전통 악기.




07~08년엔 전술했듯이 폴리스의 멤버와 재결합하여

전 세계 투어를 돌았다. 09년엔 락앤롤 명예의 전당

25주년 기념 공연에 출연했고, 17년엔 스웨덴 왕립

음악 협회가 주관하는 폴라 음악상 수상자로 추대된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의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어떤 업적이나 성과가 나올지 사실 예측하기는 힘들다.

평생에 걸쳐 정열적으로 새로운 음악을 발굴하기 위해

애쓴 예술가로서의 공은 세상 모든 사람이 인정하리라.



(92년 파바로티와 친구들 공연 중)




스팅의 보컬 스타일은 흥미롭고 또 경이롭다. 왠만해서

비브라토를 거의 넣지 않고 넓은 음역을 소화하는 점,

그러면서도 동시에 음정이 정확하다는 점, 중저음역과

고음역의 각 음역대를 요하는 트랙 양쪽에서 표현력이

출중하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재즈에 기반을 둔 - 재즈 밴드의 베이시스트로서

뮤지션 경력을 시작 - 독창적 리듬 감각을 지적인 가사

속 단어의 운율에 묘하게 결합시키는 스팅만의 기법은

동시대 어떤 뮤지션도 따라 할 수 없는 능력일 것이다.



폴리스 시절 젊었을 땐 신랄하게 기득권을 비판하고

조롱하는데 능한 목소리인데 반해 부모님이 돌아가신

30대 후반 이후엔 진중하게 세상을 관조하는 무게감을

키워나간 점 또한 놀라운 면이다. 이런 능력이 지성미

넘치는 창의적 작사 조화를 이룬 상태... - 이것이 바로

인텔리전트한 송라이터 스팅의 참모습일 것이다.



(Fender Precision Bass)






본 블로거가 생각하는 스팅의 최고 작품은 여럿이다. 밴드

시절엔 Synchronicity II의 음악적 완성도가 가장 높았고,

솔로 커리어에선 아직 자신만만함의 갑옷을 벗지 않은 시절

첫 앨범에서 If You Love Somebody~가 들려 눈부신

광채와 실력의 정점이 최고였다고 믿는다.



*If You Love Somebody~ 라이브의 변화 비교:


(1980년대 팔팔하던 시절)

https://www.youtube.com/watch?v=6XUaDJm0ac8


(환갑 기념 공연. 이 때가 무려 60세. 옆에 브랜포드 마살리스.)

https://www.youtube.com/watch?v=jI8XLZUladY




완성도를 제외하고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솔로 때 발표해

한국인들에게도 사랑받아온 Englishman in New York.

2011년 칠레 비냐델마르 페스티벌에서 풀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완주한 버젼이 괜찮아 추천하며 마치련다.


(album version / official music video)

https://www.youtube.com/watch?v=d27gTrPPAyk



본래 브랜포드 마살리스소프라노 색소폰으로 솔로를

넣었는데 이 버젼에선 음역이 같은 클라리넷이 등장한다.

백킹 보컬의 여성은 호주 출신 재즈 보컬리스트 조 로리.

소외받는 이에게 스팅이 바치는 헌사가 여운을 드리운다.


"누가 뭐라 하든 네 자신이 되는 거야"








"공감을 눌러 주시면 큰 힘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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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음악은 할 얘기 많으니까...

몇 분의 보컬리스트들 이야기를 개시한 김에 음악

카테고리를 부활시키려 하고, 이제 이 분을 얘기하겠다.



한국과 일본 등지 락 씬에 80년대 이후로 큰 영향을

미쳤고 음악의 성향이 메탈이 아님에도 이상하게

메탈 키드들의 반향을 불러 일으킨 분.



노래를 잘 하는 흉성의 표본이 뭐냐 하는 질문에

묵묵히 이 분의 레코딩이 답으로 제시되던 때도 한때는

있었다. 저니프론트맨으로 영원토록 기억될 그 이름,

스티브 페리 Steve Perry이다.









저니 Journey, 아메리칸 하드락의 상징.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운드를 구사해온 인기 밴드이며 Open Arms

Don't Stop Believin' 등 시그니처 송 연속 7장에 달하는

멀티 플래티넘 앨범의 성과를 자랑하는 기념비적 아티스트들.



빌보드 탑40 싱글이 무려 18곡인 데다 미국 내 판매고만 5천만

장에 달하고 세계적으로는 8천만 장 가까이 팔아치운 괴수급

스테디셀러이기도. 2005년 유력 일간지 USA투데이가 집계

역대 가장 사랑받는 미국 락밴드 5걸 중 하나로서, 2017년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이들... 이 모든 것이 저니

거둔 성과이고 그 중심엔 이 분, 스티브 페리가 있었다.





('Open Arms' from Escape, 1981)

(두 곡이 대표곡인 것은 미국이나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


('Don't Stop Believin'' from Escape, 1981)



80~90년대 이후 한국에도 등장하기 시작한

스쿨 밴드의 내노라 하는 보컬들은 모두 이 분의

영향권 하에 있었다. Open Arms하이 노트

찍을 수 있나 없나가 오디션의 기준이던 때도 있었으니.



Don't Stop Believin'이 그 기준곡을 대신하기도 했다.

Don't Stop~키보디스트들의 리프 레퍼토리 확장에도

크게 기여한 바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드라마 글리나 영화

락 오브 에이지의 커버로만 접한 듯. 원곡은 이 분들이다.

1981년 명반 Escape에서 싱글 커트된 저니의 대표 트랙.

03년 영화 몬스터에서도 절절한 감정으로 삽입된 적 있다.



 (Escape)



(12년 락 오브 에이지. 메리 J 블라이지만 참 아깝네.. 왜 거기서 나와.)

저니의 멤버는 변화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주요한

포지션의 주요 멤버는 큰 변화 없이 음악의 색깔을

일관성 있게 유지해왔다고 할 수 있다. 보컬의 페리,

기타의 닐 숀, 키보드의 조나단 케인, 베이스의

로스 밸로리 등이 그들이다. 49년생 

밴드를 완전히 탈퇴한 것은 90년대 말경..



 (Schon)


 (Cain)


 (Valory)



(최전성기던 81년경 라이브)


('Separate Ways(Worlds Apart)' from Frontiers, 1983)

(아, 위 뮤비의 핸드싱크는 유명하니 즐감하시길. 뜬금없는 주피터8까지.)



(Roland Jupiter-8)


(조나단 케인의 신디 파트에 관해)

https://www.youtube.com/watch?v=HjNdXJP8QDo




저니의 초창기는 산타나 세션 멤버들의 사랑방 같은

분위기였다. 산타나의 히트 트랙에서 노래를 불렀고

Hammond B-3 오르간 연주력으로도 일찍이 정평이

나 있던 그렉 롤리보컬키보드를 겸했었는데

이때 음악이 지금과 상당히 달랐고 반응도 대략

그저 그런 수준이었음을 보면 차이가 확연하다.



('To Play Some Music' from Journey, 1975)

https://www.youtube.com/watch?v=iA1kGECadwQ

*프로그레시브 색이 짙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롤리 저니의 정규 6집과 1981년경까지 함께 했으니

상당한 기간 저니의 음악적 기초 완성에 기여했음은

자명하다. 아래 트랙을 들으면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페리+롤리 듀오 체제의 1~2기 시절 그들을 볼 수 있다.



롤리가 자의에 의해 밴드를 떠나며 베이비스 The Babys

에서 신디사이저를 다루던 조나단 케인을 추천했고 케인

신디가 롤리의 해먼드 대체하며 매우 산뜻하고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과 케인의 조합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밴드는 날개를 활짝 펼 수 있었던 것.



(나중에 왜 베이비스와 저니 출신들이 모여 프로젝트

따로 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Rolie)


 (Hammond B-3)



('Feeling That Way' from Infinity, 1978)



('Wheel in the Sky' from Infinity, 1978)



('Lights' from Infinity, 1978)




드럼은 꽤 변화가 있었는데 초반엔 에인슬리 던바

사운드의 기조를 갖추는데 기여했고 흔히 상업적으로

히트한 80~90년대와 현재엔 스티브 스미스가 활동했다.

90년대와 10년대 중반까진 빼어보컬 실력까지 갖춘

딘 카스트로노보가 출중한 파워 드럼을 뽐냈었다.



던바, 스미스, 카스트로노보의 드러밍에서 공통점을

꼽아볼 수 있듯이 복잡하지 않고 육중하게 선이 굵은

파워 드러머들이 저니의 사운드에서 전통적인 한 축을

맡아 왔다고 하겠다. 저니 사운드에서 뭔가 재즈스럽고

복잡한 리듬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근데

정작 스미스 버클리에서 전공이 재즈였다능..)



 (Dunbar)


 (Infinity)



 (Smith)


 (Evolution)




특히 금세기 초반 보컬리스트 체제가 본격적으로

갖추어지기 직전 간간히 리드 보을 겸하기도 했던

카스트로노보의 팀내 기여도는 꽤나 출중한 편이었다.

로저 테일러 및 돈 헨리 이후로... 그는 드러머 중 가장

탁월한 보컬 실력을 갖춘 뮤지션으로 기억되리라.

물론 파워 드러밍 역시 탁월하다.



사실 카스트로노보의 이런 음악적 기여도는 2천년대 초

저니의 음악적 여정에서 한 번도 겪지 못한 새로운 요소라서

저니의 보이스를 대변하는 페리가 떠난 후 보컬과 드럼을

동시에 갖춘 이 포지션 메이커를 놓고 어떻게 밴드 구성을

새롭게 가져갈지, 을 중심으로 상당히 고민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했다. 한때는, 정말 한때는...



 (Castronovo)


('Mother Father' from Escape, 1981)

(카스트로노보. 보컬과 드러밍 양쪽 모두 후덜덜한..)



('Still They Ride' from Escape, 1981)

(Escape 앨범의 트랙 중에서)




73년에 결성한 저니 75년에 데뷔 앨범을 냈으나 사실

3집까지는 음악 방향도 갈팡질팡에 별 볼 일이 없었다.

뭔가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77년에 페리가 새로

들어오면서부터. 78년의 Infinity 앨범에서 Wheel in

the Sky, Lights 등 트랙이 서서히 두각을 나타냈고

앨범은 20위 근처까지 상승한다.



78년에 라이벌 제퍼슨 스타쉽가담한 일로 드러머

던바가 짤리고 스미스가 들어온다. 79년 Evolution

앨범에서 싱글 차트 첫 탑20 진입곡 Lovin' Touchin'

Squeezin'을 만들어낸다. 80년 Departure 앨범은

차트 8위까지 오르는 쾌거에다 Any Way You Want

It이 히트하기까지. 그런데 계속된 투어에 지친 롤리

탈퇴하고 케인이 자리를 대체하게 된다.



메인 스트림에서 만개하기 직전 페리의 진가를 알 수

있는 대표적 트랙은 역시 Departure 앨범에서 크게

히트한 Any Way You Want It일 것이다. 보컬과 작곡

양면에서 출중한 기량을 확인할 수 있다. 쥬크 박스

뮤지컬에서도 리메이크된 바 있어 익숙하리라. 그의

능력은 일찌감치 남달라서 LightsLovin' Touchin'

Squeezin' 역시 그가 만든 트랙들.



 (Departure)



('Any Way You Want It' from Departure, 1980)



(전성기 1981년 Escape Tour 시절)


https://www.youtube.com/watch?v=b9EukP0QsXU

(꽤나 당혹스러웠던 영화 락 오브 에이지 버젼)



('Lovin' Touchin' Squeezin'' from Evolution, 1979)




1981년 Escape, 1983년 Frontiers 앨범에 이르는

시기가 저니 디스코그래피의 최전성기이다. 이땐 시쳇말로

미국 국민 밴드 내지 세계구급 스타가 되어 버린다. 월드

투어로 따지면 80~85년 무렵 정도 된다. 월드라 해도

한국은 절대 온 적 없다... 한국엔 17년에야 겨우 오셨다.

물론 스티브 페리 없이. 궁시렁..



Escape 앨범에서는 지금도 귀에 선연한 매우 많은 히트

트랙을 쏟아냈다. Open Arms, Don't Stop Believin',

Who's Crying Now, Still They Ride, Stone in Love,

Keep on Runnin', Mother Father... 도대체가 버릴

곡이 없다는 표현은 이런 데다 쓰는 말일 것. 솔직히 말할까.

현재의 저니조차도 사실 이 때 히트 우려먹으면서 먹고

살고 있다고 해도 뭐라 할 사람 없을 걸.



이분들 히트곡이 이거 밖에 없냐 뭐라 할까 싶어 반복적인

언급을 자제하지만 Open Arms는 당시 세계적으로 대박

친 히트곡이었다. 싱글 핫100 차트에서 6주나 2위에만

머물다가 하락했는데 정상 등극이 가능할 수도 있었기에

안타깝기도. J 게일스 밴드 Centerfold  조운 제트 앤

블랙 하츠 I Love Rock 'n' Roll이 가로막고 있었다고.

그럴 만두 하다 싶네..



('Centerfold' by the J. Geils Band,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BqDjMZKf-wg


('I Love Rock 'n' Roll' by Joan Jett and the Blackhearts,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f2W2HexpXg4




많은 평론가들이 80년대 하드락을 대표하는 앨범으로 첫

손에 꼽았고 별 네 개 또는 네 개 반을 선사한다. 공격적인

어프로치를 드러내기에 헤비 메탈로 분류하는 매체도 많다.

드디어 이들을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서게 했고 현재까지

9x 플래티넘의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핫100 탑텐 싱글 셋

포함하여 정말 많은 수록곡차트셋리스트를 휩쓸었다.



('Who's Crying Now' from Escape, 1981)



('Stone in Love' from Escape, 1981)



('Lay It Down' from Escape, 1981)

(가장 높은 초고음 샤우팅이 아마 이 트랙에서 나올 걸)




 (Frontiers)




전작이 워낙 초대박인지라 상대적으로 약했다 뿐이지 1983년

Frontiers 앨범 역시 대박이었다. 6x 플래티넘을 기록한 앨범이

차트 2위까지 올랐고 싱글에서 탑텐 하나, 탑20 언저리에 세 곡이

나왔다. 영국 앨범 차트에선 역대 최고 성적인 6위까지 오르기도.



오늘날까지 이들 음악을 규정하는 좋은 곡들이 뽑혀 나왔다.

Separate Ways (Worlds Apart), Send Her My Love,

After the Fall, 또한 Faithfully까지... Separate Ways

싱글 8위까지 올랐다. 버릴 트랙이 없는 전작의 완성도가 주욱

여기까지 이어져 찬사를 받았었다. 속된 말로 돈을 갈퀴로 쓸어

담던 호시절.. 단 너무 상업적이라고 욕도 먹었고. 전작이 헤비

메탈이라면 본작은 왠 어덜트 컨템포러리였다. 저런.



Ask the LonelyOnly the Young 등 두 곡은 앨범 발매

직전에 빠져서 영화 OST로 팔려 나갔다. 특히 후자는 좋은 곡

많기로 소문난 비전 퀘스트에 삽입되어 싱글 탑텐에도 오른다.

대신 두 곡은 컴필레이션으로선 이례적으로 88년 차트 10위에

오른 Greatest Hits에 들어간다. Chain Reaction 역시

라디오 방송 신청이 높아 고른 지지를 얻었다.



 (Greatest Hits)



('After the Fall' from Frontiers, 1983)



('Send Her My Love' from Frontiers, 1983)



('Chain Reaction' from Frontiers, 1983)



('Only the Young' from Vision Quest OST, 1985)



('Ask the Lonely' from Two of a Kind OST, 1983)




83~87년 시기는 월드 투어에 성공한 밴드로서 저니의 커리어

상 최정점이자 동시에 리스크도 떠안고 지낸 시기였다. 뭐 아주

특별한 위험은 아니고 어느 밴드에나 있을 법한 문제, 즉 멤버들

솔로 활동 관련한 것이지. 특히 프론트맨의 문제가 심한 거고.



음악적 창의성과 테크닉과 상업성을 갖춘 보컬리스트이니

솔로 제의가 안 들어오면 이상한 일. Frontiers 발매 이듬해

페리의 첫 솔로 앨범인 Street Talk가 발매되고 그냥저냥

정도가 아닌 더블 플래티넘 급의 대박을 쳐버린다. 싱글의

기록도 빼어났다.



Oh Sherrie 싱글이 핫100 차트에서 무려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꽤 히트했으니 듣고 기억하는 분도 있을 듯.

이 곡은 여러 모로 저니의 컬러와 판박이 성격이 강하고

밴드 멤버들도 이를 인정하여 함께 협연도 했다 한다.

뮤직 비디오 앞부분에 스티브의 어색한 연기 파트도

나오니 스킵을 원하는 분들은 2분경부터 보면 된다.



(Street Talk)



('Oh Sherrie' from Street Talk, 1984)




이 시기 저니는 정말 잘 나갔다. 닐 숀 로니 제임스 디오

불러모은 Hear N' Aid 프로젝트에 초청되셨고 스티브 페리

그 유명한 USA for Africa에서 당당히 2부의 한 소절을

불러 제끼셨다. 평소 친한 케니 로긴스 다음으로...

We Are the World 뒷부분은 다른 아티스트

중심이니 2분 30초 경 앞부분만 보면 된다.



(Stars 중 닐 숀 파트만)



(We Are the World 중 스티브 페리 파트만)



 (Raised on Radio)




85~86년경 다시 스튜디오 앨범을 위해 뭉쳤을 때는 정말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밸로리 스미스가 음악적 견해 차로

무려 잘리기까지 했고. 전문 세션맨 랜디 잭슨이 대체 멤버로

투입되었고 드러머는 공석에 투어 세션으로 떼운 시절. 잭슨

하면 아메리칸 아이돌 평가위원으로 유명한 그 분 맞다.



혼돈의 86년, Raised on Radio 앨범이 발매된다. 더블

플래티넘탑20 싱글 4곡의 달성엔 성공하나 전작에 의존

결과임은 자명했다. (Be Good to Yourself, I'll Be Alright

Without You, Girl Can't Help It, Suzanne이 그 네 곡.)

결국 87년 저니는 한 차례 활동 중단의 수순을 밟게 된다.



(Jackson)



('Girl Can't Help It' from Raised on Radio, 1986)



('Be Good to Yourself' from Raised on Radio, 1986)

(이래 뵈도 핫100 9위까지 오른 곡)



80년대 후반이 되어 각자의 길을 가게 된 페리 , 케인.

페리는 솔로 아티스트로서,  케인은 당시 유행하던

슈퍼 그룹을 결성하여 살 길을 모색하는 식으로 변화한다.

배드 잉글리쉬가 이때 결성된 반은 프로젝트 성격인 밴드로서

페리 케인 베이비스 출신 존 웨이트 리키 필립스,

여기에 딘 카스트로노보가 가담한다.



배드 잉글리쉬는 얼핏 들어도 참 저니스러운 사운드를 구사했다.

팬덤에서까지 저니 창작성의 연장선에서 이해하고 있을 정도..

몇몇 트랙은 중박 정도의 싱글 히트를 기록했다. 명작곡가

다이앤 워렌이 쓴 When I See You Smile 싱글 차트

1위까지 올랐을 만큼.



('When I See You Smile' by Bad English, 1989)




 (Trial by Fire)




87년 중단 후 8년간 서로 떨어져 솔로 활동에만 매진하다
95년에 잠깐 다시 뭉쳐 Trial by Fire 앨범을 낸다. 빌보드
12위까지 오르는 싱글도 내지만 페리가 운동 중 부상을
당하여 수술 일정이 잡힌 관계로 투어가 불가능했다. 이때
페리는 나머지 멤버들로부터 무언의 압력 같은 것을 느껴
불편했다 하고 영원히 저니를 떠날 것을 공표한다. 결국
20세기 마지막 플래티넘을 기록한 앨범을 남기고 말이다.


*이 시기 페리의 심리 상태에 대해선 다른 견해도 존재한다.
전혀 다른 해석과 분석은 아래 링크를 참조.



다시 저니라는 정체성을 찾는 작업이 중요함을  케인
중심으로 깨닫게 되지만 비어 있는 보컬리스트의 자리가 문제.
페리의 존재감은 재적해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커진 것 같았다.

딴에는 여러 가지 방도를 시도했다. 전술한 카스트로노보

겸직 사례도 있고.. 특히 98~06년 동안 함께 한 보컬리스트

스티브 오임팩트 나름대로 컸다고 본다.



전에 즐겨 보던 제리의 한창 때 라이브 동영상이 있었는데

새 인물이 자리잡은 이후 내린 모양이다. 없어졌네. 아래는

그런 대로 오디오만으로 확인하실 수 있는 링크.. 제리

탈퇴 사유는 곡이 가진 극강 난이도가 보컬리스트 당사자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 복합적인 것으로 추정된다.



(Augeri)





(04년경 오제리와 카스트로노보가 모두 출연. Keep on Runnin'..)

https://www.youtube.com/watch?v=3wZgP-qhj_E




저니 셋리스트가 가진 부담이란 것이 그 정도인 거다..

특히 밴드의 상징과도 같은 Separate Ways 같은 트랙의

난이도는 정말.. 왜 키를 낮추지 않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인터넷의 댓글도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케인의 독단적 밴드 운영을 성토하는 일부 팬도 있지..)



제리가 건강상 이유로 하차한 후 약 1년여 동안 제프

스캇 소토도 재적했다. 잉베이 말름스틴과 활동으로 꽤

유명하고 검증된 보컬리스트였으나 기존 멤버와의 성향

차이가 심해서 거의 쫓겨나고 만다.



 (Soto)



(제프 스캇 소토와.. I'll Be Alright Without You)

https://www.youtube.com/watch?v=zwFvx49OU2o




이렇게 그냥저냥 침몰할 뻔하다가 2007년 무렵 밴드는

기사회생한다. 잘 알려진 대로 필리핀에서 날아온 무명의

커버밴드 출신 보컬리스트를 영입한다는 동화 같은

스토리와 함께. 오오, 아넬 피네다가 등장한 것이다.



피네다의 등장은 괜찮은 마케팅 요소였다. 적절하게 감동적인

스토리와 오랜 무대 경험에서 오는 안정적 실력이 버무려진

결과였지. 하지만 67년 양띠인 이 형님도 너무 늦은 나이에

발탁된 거 아니냐, 진성 팬덤은 아직도 우려가 크다. 가뜩이나

난이도 높은 밴드의 트랙들을 풀타임으로 소화하기엔 정말...

외계인 고문, 아니 피네다 고문 아니냐고.



그리고 10년대 들어 그런 궁시렁 소리가 늘어나면 날수록

결국 종착점은, 스티브 페리가 얼마나 위대한 보컬리스트였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제리 피네다나 심지어 카스트로노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결국 그와의 비교를 피할 도리가 없으니.



 (Pineda)



(피네다와 재녹음한 오픈암스)

https://www.youtube.com/watch?v=I5_qNpALAOU



('After All These Years' from Revelation, 2008)

(피네다 영입 후 2008년의 첫 정규 앨범 중에서)




아레나 락 또는 AOR, album-oriented rock을 대변하는

아메리칸 하드락의 대표 주자가 저니였다. 대형 스타디움을

중심으로 대규모 페스티벌식 콘서트에 최적화한 밴드들이

70년대 중후반부터 영미권 시장에서 우후죽순 성장한 것..

그 중심에 저니가 있었다.



대형 PA에서 빵빵하게 터져 나오는 스타디움에서 청중을

사로잡는다는 뭐 그런 컨셉의 장르 아닌 장르인 건데...

청중의 떼창과 호응이 가능해야 하고 그러려면 귀에 쏙

박히는 후크성 강한 멜로디 라인을 가져야 했고 이런

음악은 필연적으로 라디오 친화적인 매니아 성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고... 뭐, 대략 이런 특성을 지닌다.



파워 발라드락 앤썸 등, 떼창이 가능한 육중한

음률을 뽑아내는 뮤지션의 기술이 중요한 때였다.

기타나 키보드의 리프를 매끈하게 만들어낼 줄 아는

것이 밴드 멤버로서의 큰 미덕으로 통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락 밴드의 투어 공연이란 것이 산업적인 규모로

커지기 시작해 오늘날 라이브 네이션 같은 기업형 모델로

발전한다. 롤링 스톤즈, 핑크 플로이드, , 킹크스시카고,

플리트우드 맥스틱스, 토토다이어 스트레이츠제네시스,

러쉬, U2, 보스턴, 밴 헤일런 등이 여기로 분류되었고

저니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헤드라이너 중 하나.



이런 밴드들에게 페리의 흉성이나 케인의 리프

처럼 선굵은 남성적 파워 사운드 요소는 장수의 생명줄

같은 것이었다. 페리는 대략 1980년 경부터 시작한

새로운 아레나 하드락 최강 밴드가 일군 사운드 성과의

핵심이었다.



('Faithfully' from Frontiers, 1983)




한국에선 Open Arms가 발매 당대부터 즉각적인 반응을

얻었고 약간의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Faithfully를 발견해내

현재의 인기에 다다른 걸로, 그렇게 기억한다. (그 약간의

시간이 얼마였냐에 대해선 사람의 기억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는 걸로 정리하자. 공식 기록이 없으니...)



여담으로, 81년 텍사스 휴스턴 라이브는 진리인 듯하다.

반복해서 시청하니 휴스턴에 있는 듯 착각이... 영 시간이

없는 분들은 검색어 잘 찾아서 이 라이브 한 번만 보면

스티브 페리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참고로 MTV가 제작한 것.






주지하다시피 이들 사운드의 핵심은 의 기타 및 케인
키보드가 가진 육중한 톤과 귀를 사로잡는 리프이다.
유명한 Gibson엔도시로서 56년형 Les Paul과 ES-335
들고 연주하는 모습이 대중에 각인되어 있다. 케인의 기어 중
가장 유명한 건 Roland Jupiter-8이겠지만 Separate Ways
작곡 당시엔 Oberheim OB-X를 썼을 거란 추정이 대세이다.


(Gibson Les Paul)



(Roland Jupiter-8)

https://www.youtube.com/watch?v=Xw4AV_BeE24

*Chain Reaction. 2분 5초경. 단체 발연기는 덤..




영원한 저니프론트맨 스티브 페리. 금세기엔 대외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지는 않아서 건강에 이상이 있지 않은지 염려도

된다. 그래도 17년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선 밴드 멤버들과

조우했고, 무엇보다 까마득한 후배로서 자신의 후임을 맡고

있으면서도 페리에 대한 존경을 숨기지 않는 아넬 피네다

따뜻하게 안아주고 격려해 선배로서 큰 귀감이 되었다 한다.


https://news.abs-cbn.com/entertainment/04/08/17/look-arnel-pineda-meets-journeys-steve-perry-for-first-time






페리가 90년대에 잠시 저니와 재결합하여 Trial by Fire

앨범을 낸 그 순간이 있었다. 마지막 불꽃이라고 할까. 여기서

싱글 커트된 When You Love a Woman이야말로, 페리

마지막 전성기를 확인할 수 있는 절정의 트랙이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강력하게 추천하며 이번 포스팅을 마친다.



('When You Love a Woman' from Trial by Fire,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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