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규네 : MUSIC'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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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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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산업과 음악사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상징성

때문에라도, 언젠가 다시 한번 진지하게 제대로 다뤄

드려야 합당하다고 고민해온 이 분을 올리겠다.



프로그레시브 락의 역사에서 뚜렷한 분기점을 제공한

예스 Yes의 영원한 프론트맨으로서 아방가르드 계열

보컬리스트 중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봉으로 오래도록

추앙을 받으실, 존 앤더슨 Jon Anderson 이야기이다.











*Roundabout. 90년대 초반 Union Tour 중.

- 라인업은 Anderson-Bruford-Wakeman-Howe

  + Squire-Rabin-Kaye-White = 무대 위 8인조.




1944년 스코틀랜드 출신 가계에서 맨체스터 북방의 랭커셔를

출생지로 태어난 존 로이 앤더슨. 넉넉치 못한 가정에서 축구

선수를 꿈꿨지만 일찍이 열 다섯 나이부터 학교를 그만 두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이런저런 초기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가 알바 뛰던 클럽 사장님 소개로 런던에서 크리스

스콰이어를 만나며 밴드 결성에 의기투합하게 된다. 68년.



앤더슨아트 가펑클의 전성기 보이스 텍스처와 상당히 유사한

면도 발견되거니와, 두 사람이 교집합으로 찾은 음악적 지향성은

놀랍게도 사이먼 앤 가펑클이었다. 그때는 팝씬 전체가 본능적인

포크 지향성을 가지고 있었으니 사실 당시를 살아 본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긴 하다.



15년에 작고하신 스콰이어는 락 음악 역사상 가장 뛰어난

베이시스트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분이다. 보통 훌륭한

베이스 주자가 핑거링플럭킹, 태핑 등 손가락을 주로 쓰는데

반해 피킹만으로도 후배들 기 팍팍 죽이는 테크닉과 음악성,

두 토끼를 다 잡는 공전절후의 전설이셨다. 디스토션 걸린 거친

톤에도 능하고 재즈 모드도 한 가닥 하는 등 전천후이신지라

상대적으로 기타가 소프트한 예스 사운드에서 핵심이신 분.






('America' from Yesterdays, 1975)

https://www.youtube.com/watch?v=3CACWj18ruk

*Simon & Garfunkel 원곡의 커버.

- 72년 싱글 발매 후 75년 컴필레이션 앨범에 수록.




예스의 1집이 포크 색깔을 조금 드러내며 팝 지향적 성향을 가진

것도 이해가 갈 만한 일일 터이다. 결성 초기 예스앤더슨

스콰이어 두 사람의 결탁으로 밴드를 리딩하고 나머지 사람이

하나 둘 규합한 형태였는데 이런 식으로 드럼빌 브루포드,

기타피터 뱅크스, 키보드토니 케이가 모여 들었다고.



그냥 팝 밴드였던 1집 Yes심포닉 락의 가능성을 보여준 2집

Time and a Word는 골수 팬을 제외하고 상업적으로 큰 의미를

찾기 어려우니 과감하게 생략하는 점 양해 바란다. 2집에서

대편성 관현악을 동원한 방법론에 뱅크스가 회의 어린 시각을

보였고 끝내 의견을 좁히지 못해 발매 직전에 탈퇴해 버린다.

대체 연주자로 한때 로버트 프립(!)의 영입을 시도했으나 결국

최종 낙점을 받은 사람은 스티브 하우였다.



폄하하긴 미안하지만 하우뱅크스보다 훨씬 다채로운 기법에

능하고 , 포크, 블루스, 컨트리 등 모든 장르를 아우를 줄 알며

일렉트릭어쿠스틱을 가리지 않는 방법론에 능하다는 점은

누가 봐도 자명했다. 앞선 두 앨범의 상업적 실패로 음반사에서

잔뜩 퇴진 압박을 받고 있던 차였기에 앤더슨스콰이어

새 진용으로 절치부심하고 창작에 몰두하였다.



 (The Yes Album)




71년 3집 The Yes Album이 결과물. 그들이 얻어낸 첫번째

상업적 성공작이다. 전작영국 차트에 처음 진입하긴 했으나

미미한 성적이었고 본작에 와서 앨범 차트 4위까지 오르고

미국 앨범 차트에선 40위까지 올랐다. 앨범의 대표 트랙인

I've Seen All Good People의 1부 파트곡 Your Move

싱글로 발매되어 핫100에서 탑40 오르기까지 한 것.



이번 포스팅 내내 그런 태도를 유지하겠지만 알려져 있다시피

이들은 싱글 중심의 상업성 모드로 활동하는 액트가 아니다.

주로 앨범 차트의 성적과 이를 뒷받침하는 팬덤 중심의 끈끈한

유대 관계와 프로모션 투어 실적이 주요한 수익원인 밴드이다.

그렇더라도 이따금 싱글 히트가 올라오면 앨범 전체를 알리는데

살짝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 기실 모든 프로그 씬의

아티스트들 수익 구조가 대동소이할 터이다.



밴드의 오랜 역사를 지탱하는 활동 구조가 The Yes Album

와서 비로소 정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작이 참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특히 전작 두 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커버 곡을 싹 없애고 본작부터 크게 맘먹고 자신들의 창작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나타난 결과이니 더욱 뿌듯한 것이다. 밴드

멤버들의 치열한 내부 토론을 통해 프로그레시브라는 장르적

지향성 역시 자연스럽게 결론으로 도출해낸 셈이기도 하고.



('Starship Trooper' from The Yes Album, 1971)



 (Portuguese 12-string Guitar)




그런 목표를 명징하게 구현해낸 본작 최고의 트랙은 뭐니뭐니

해도 Starship Trooper가 되겠다. SF장르인 로버트 하인라인

저명한 소설에 영향을 받은 가사이다. 작사는 물론 앤더슨

작품이고 스콰이어하우의 공동 작곡이다. Life Seeker -

Disillusion - Wuerm의 3부로 구성된 9분 여의 대작으로서

프로그레시브의 전성기 역사를 장식하는 명곡이다. 무엇보다

예스의 음악적 지향성을 규정하는데 밑거름이 된 작품이다.



그밖에 오프닝 트랙 Yours Is No Disgrace를 놓치지 않으

본작이 주는 느낌을 잡을 수 있을 테I've Seen All Good

People에서 하우포르투기즈 12현 기타를 멋드러지게 치는

부분도 캐치하시길. (물론 예나 지금이나 하우의 시그니처

기어는 ES-175지만서도..)



전반적으로 하우의 재기발랄한 솔로잉에 비해 키보드 파트가

뭔가 허전하게 들리는 앨범이기도. 케이는 스스로 아이덴티티를

오르가니스트로 규정한 뮤지션인지라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도입에 거부감이 있던 편이었고 이 점이 팀의 균열에 영향을

미쳐 결국 해고된다. 그의 대체자로서 데이빗 보위와 음악하던

릭 웨이크먼출현하며 드디어 역사가 다시 쓰여진다.



('I've Seen All Good People' from The Yes Album, 1971)

*73년 라이브 앨범 Yessongs에 실린 버젼.



('Yours Is No Disgrace' from The Yes Album, 1971)

*73년 라이브 앨범 Yessongs에 실린 버젼.




 (Fragile)




71년 하반기 내내 작업하여 연말에 낸 4집 Fragile. 예스 연대기

사상 최대의 히트를 기록했고 프로그레시브 최고의 명반으로

누구나 엄지 척하고 꼽는 세기의 걸작 앨범이 웨이크먼 영입과

함께 나와 버렸다. 락 음악의 역사가 새로 쓰여진 순간이었다.



제작이 이루어지던 당시 밴드의 사정은 여러 모로 어수선했다고.

지난 두 번의 앨범을 거치며 두 명의 주요 멤버를 잃었고 상업적

가능성은 그나마 희망의 불씨를 살렸지만 다 함께 계속 음악을

해나갈 수 있을까 불안해 하던 한창 20대 초중반의 젊은이들에

불과하니 그럴 수밖에. 앨범 타이틀은 언제든지 깨질지도 모를

밴드의 조직 상황과 멤버들의 심리를 상징하는 의미였다 한다.



희한하게도 밴드의 시대였던 70년대는 항상 그렇게 불안불안한

환경에서 최고의 역작이 양산되던 때였다. 미국 앨범 차트 4위,

영국 앨범 차트 7위, 발매 당시 미국 골드영국 실버 인증,

커트한 싱글핫100 차트 13위 등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밴드 커리어 최고 성적의 역사가 이 시기에 쓰여진 것이다.



('Roundabout' from Fragile, 1971)

*가사는 회전 교차로 위 유쾌한 드라이브 이야기.

- 의외로 심각한 가사는 아니다. 단순한 메세지도 명곡의 조건.



 (Gibson ES-175)




커트 싱글은 물론 프로그 최고의 명곡 Roundabout. 예스

시그니처 튠이라는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작품이다.

하우어쿠스틱 인트로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다가 베이스

다이나믹스의 교과서 같은 스콰이어의 유명한 리프

verse를 이끌고 가는 구조이다.



키보드 파트가 전작에 비해 훨씬 더 탄탄해졌음이 확연하게

드러나며 런던 왕립 음악원 출신으로 클래식 기본기가 강한

웨이크먼이 왜 불세출의 연주자인지 탄식하게 만들 터이다.

변칙 어프로치에도 중심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브루포드

jazzy한 프리 스타일에도 경탄을 자아내게 될 것이며...



70년대가 아니면 나오기 힘든 슈퍼그룹의 빈틈없는 합.

중심에 앤더슨의 미성이 자아내는 신비로움과 장중함의

고결한 합성 작용 같은 것이 있다. 평생에 걸친 예스 라이브

무대에서 이 곡은 오랜 팬덤의 애국가처럼 셋리스트의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는 앵콜 곡이었다. 전성기 예스를 상징하는

전형성을 간직하면서도 대중적 감성을 잃지 않은 명곡...

더 말해 무엇 하랴. 어떤 라이브든 찾아서 즐겨 보길.



 (Roundabout, single)




('Long Distance Runaround' from Fragile, 1971)

*dissolved into 'The Fish (Schindleria Praematurus)'.



총 9개 트랙 중 넷은 다섯 명의 합동 작업, 다섯은 개인이

창작한 곡으로 구성된다. 그룹 트랙 중 Long Distance

Runaround는 비록 앤더슨이 작곡을 주도하긴 했어도

멤버 전체의 팀워크가 빛나는 또 하나의 명곡이다. 역시

오래도록 무대에서 팬덤이 사랑해 마지 않는 시그니처 튠.

하우의 기타 리프와 스콰이어의 콤비네이션이 인상적이며

Roundabout의 싱글 B사이드에 실리기도 했다.



The Fish스콰이어의 솔로잉 곡인데 팬덤에서는 오랫동안

LDR의 2부 파트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LDR에서

트랙을 커트하지 않고 디졸브로 바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라이브에선 두 곡을 한 곡처럼 묶어 6분 짜리로 연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Heart of the Sunrise' from Fragile, 1971)



예스라이브 셋리스트에서 네번째로 빈번하게 연주된다는

Heart of the Sunrise브루포드스콰이어가 중심이

되는 트랙이다. 6/8, 3/4, 4/4 등 타임 시그니처를 이리저리

사정없이 옮겨가며 프레이징을 구성해 수많은 후배 밴드를

좌절시켰던ㅠ.. '따라올테면 따라와봐' 하는 느낌을 받을 듯.




('South Side of the Sky' from Fragile, 1971)



South Side of the Sky에선 하우헤비한 어프로치조차

능수능란하다는 것, 예스웨이크먼을 영입한 것 참 잘한

일이라는 것, 앤더슨스콰이어 등이 만들어내는 신비한

보컬 하모니예스 음악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라는 것 등

세 가지 매력을 발견하리라 확신한다.







최근까지 미국에서만 2백만 장이 팔려 더블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고 한다. - 영국에선 플래티넘. 구불구불 물결치는 듯

독특한 예스의 로고는 저명한 디자이너 로저 딘이 만든 건데

바로 본작에서부터 등장함을 알 수 있다.



Fragile 앨범을 듣고도 예스가 왜 최고의 밴드인지 모르겠다고?

그럼 요즘 세상의 쓰레기 음악에 지쳐서 귀가 썩었다는 뜻이니

귀청 정화의 시간을 급속하게 가지길 권유한다. 헤비메탈 씬에

딥 퍼플의 제2기가 있다면 프로그 씬에는 제3기가 있다...

이거슨 만고불변의 진리일지니.



('Roundabout' from Yessongs, 1973)

*73년 라이브 앨범 Yessongs에 실린 버젼.




 (Close to the Edge)




1972년. 음악 활동의 상업성 면에서 최고의 시기를 구가하던

다섯 명의 젊은 뮤지션들이 연초의 전작 투어를 마치고 다음

앨범 작업에 착수한다. 예술적 창의성에 있어 강한 자신감으로

무장해 있던 이들은 교만하다는 오해를 살 만큼 완성도 높은

대곡 셋으로 채운 작품을 주조해낸다. Close to the Edge.

다섯번째 앨범으로 예스 음악성의 정점을 찍었다는 앨범이다.



비교적 짧은 스코어로 상업적 코드를 맞춰 보려던 전작에 비해

정말 원없이 하고 싶은 것 다 질러버리고 전성기 멤버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역작이었다. 19분, 10분, 9분에 달하는 단

세 개의 대작 트랙으로만 앨범을 채워 음악적 자존감이 하늘을

찌른다는 부러움 섞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72년경 Wakeman의 gear set.

- Minimoog Model D

- Mellotron M400

- Hammond C-3

- RMI 368 Electra-piano

- Steinway Concert Grand





('Close to the Edge' from eponymous album, 1972)
*pipe organ 솔로잉은 12' 10"쯤.
- 13' 55"쯤의 무그 솔로잉도 매우 유명한 프레이즈.


음악가로서 실력과 에고의 정점을 찍던 사람은 단연 웨이크먼.
피아노해먼드무그, 멜로트론, RMI를 종횡무진 갈아타며
신들린 연주를 들려주었고 동료들은 그의 창의성에 매료되었다.
특히 타이틀 트랙 Close to the Edge의 3부 클라이맥스에선
하우의 조언으로 런던 바비컨 교회 파이프 오르간을 섭외해
종교적 순고함의 극치를 표현한 기념비적 연주를 구현해낸다.
(라이브에선 직접 표현하기가 힘들어 여러 모로 아쉽다.)


Close to the Edge클래식 악곡 구성의 영향을 반영해 마치
교향곡처럼 4개의 파트로 구성한 명실상부 예스의 대표 작품.
헤르만 헤세가 석가모니의 행적을 엮어 써낸 소설 싯다르타
내용을 앤더슨 가사로 풀어낸 것이다. 지금 와서 보면 너무
오리엔탈 판타지 같아 오글거리기도 하지만 70년대 초반임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용인할 법하지 않을까.
- 사실 헤세의 원작 소설이 지나치게 유럽 백인 관점에서
  지적 허영심을 부추긴다 비판 만하다.


1부의 과감한 불협화음 어프로치에서,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
함께 투어하며 터득한 당시 퓨전의 사조를, 예스 식으로 풀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물론 원류는 60년대 프리 재즈일 터. 전체
프레이징의 밑바닥에서 중심을 잡아가는 동력이 강력한 베이스
라인임을 깨닫게 된다면 스콰이어가 얼마나 무지막지한 파괴력을
가진 연주자인지 비로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걸 따라가며
자기 음악을 별도로 완성하고 있는 브루포드는 또 어떻고.



('And You and I' from Close to the Edge, 1972)



시벨리우스, 바그너, 브루크너 등 19세기 후반 후기 낭만파
짙은 영향을 읽을 수 있는 And You and I싱글로도 커트해
핫100 42위에 올랐었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멜로트론
무그를 적정배합할 줄 아는 웨이크먼의 창조성이 빛을 발한다.



('Siberian Khatru' from Close to the Edge, 1972)


아랍어 방언에서 제목을 따온 Siberian Khatru는 대단히
역동적인 하우리프로 유명하다. 파트별 콤비네이션이 흡사
funk 장르를 떠올리게도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레드 핫 칠리
페퍼스존 프루시안테가 영향받은 트랙이라고 한다.


 (Rickenbacker 4001)




미국 앨범 차트 3위로 역대 최고의 성적을 세웠고 영국 차트에선

4위까지 올랐다. 최근까지 영미 양국과 캐나다 플래티넘 기록을

세운 디스코그래피 사상 최고의 완성도와 성적을 보여준 걸작.

프로그레시브 장르의 신기원을 이룩한 장르의 명작 앨범. 더는

올라갈 곳 없을 듯하던 이들에게도 위기가 오고 있었으니 제작

프로세스에 불만을 가지던 브루포드가 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Yessongs)




브루포드재즈아방가르드 성향이 꽤나 강한 뮤지션인지라

전작의 제작 과정에서 음악 취향 차이가 심해 고생했다고. 결국

킹 크림슨으로 이적하기 위해 Close to the Edge 녹음제작

끝내자마자 탈퇴를 단행한다. 이후 킹 크림슨에서 매우 활발한

활동을 보여줬으니 제자리를 찾아간 셈일까. 아쉽긴 하지만.



후임으로는 플라스틱 오노 밴드에서 존 레논의 세션을 담당하던

앨런 화이트가 낙점된다. 장르를 두루 거친 다양한 경험치에다가

당장 영입이 가능했던 운신의 폭이 영향을 미쳤던 듯. (후보 중엔

에인슬리 던바도 있었단다.) 단, 팬덤에 따라서는 스콰이어 -

하우 - 웨이크먼 - 브루포드 시절의 환상적 연주 합이 그리워

화이트를 폄하하는 경향도 일부 찾아볼 수 있다.




('Perpetual Change' from Yessongs, 1973)

*Bill Bruford on drums.

- original track belonging to The Yes Album, 1971

- 11' 30"쯤부터 브루포드의 솔로잉이 등장하는 소중한 트랙.



('Long Distance Runaround' from Yessongs, 1973)

*Bill Bruford on drums.

- The Fish가 왜 Squire의 곡인지, 수려한 솔로잉을 들어 보시라.




73년에 발매된 최초의 라이브 앨범 Yessongs는 과도기 시절의

질풍노도 같은 연주력 상승치를 담아낸 유일한 아카이브라서

팬덤이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작품이다. 트리플 앨범으로 대부분

화이트의 연주를 담고 있지만 Long Distance Runaround

일부 트랙은 브루포드의 연주를 담고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



동명의 콘서트 필름도 발매되어 정말 흔치 않은 당시 동영상도

구해볼 수 있다. 미국에서 플래티넘에 차트 12위까지 올랐고

영국에선 7위까지 올라 라이브 앨범 중 가장 히트한 성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창 물오른 전성기 시절의 기록이니까.




('Close to the Edge' from Yessongs, 1973)

*Alan White on drums.



('Starship Trooper' from Yessongs, 1973)

*Alan White on drums.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




73년 6집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에 대해선 어찌

논평해야 하나 퍽 망설여진다. 영국 앨범 차트에서 처음으로

을 찍고 미국에선 6위에 올랐으며 양국에서 골드 인증을 받아

상업적으로 실패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결과가

전작들의 성공에 기댄 것이 아니었나 하는 회의도 생긴다.



당시 힌두교 베다 철학에 심취해 있던 앤더슨이 산스크리트

경론서를 바탕으로 작사했고 주요 동기의 작곡은 하우

둘이서 전담한 방식으로 진행했다. 네 개의 전 트랙이 18~

22분에 달하는 대곡 구성이고 워낙 길어서 싱글 커트도 할

형편이 아니었다.



프로그 장르 미학의 정점을 찍는 것은 좋은데 너무 과하지 않나

싶은 느낌이랄까. 또 하우의 역량에 집중하는 것은 좋았으나

상대적으로 웨이크먼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듯했다. 이 과정에

불만을 품은 웨이크먼이 결국 밴드를 떠나는 결과도 초래했고.



네 사람 연주의 조합이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춘다는 점에서는

두번째 트랙 The Remembering을 들어볼 만하다. 웨이크먼

혹은 스콰이어의 연주력도 가장 만족스러운 편이다. 현재까지도

본작에 대한 평가는 팬덤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라 하겠다.



('The Remembering (High the Memory)' from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 1973)

https://www.youtube.com/watch?v=438-Ii_BueM




 (Relayer)




다소간 창작적 과욕을 부린 앤더슨의 패착으로 좋은 멤버를

잃은 상황이었다. 대체자로 반젤리스를 고집해보기도 했지만

밴드 포맷에 어울리는 뮤지션은 아니었다. 결국 로잔 음악원

출신으로 클래식재즈에 능한 패트릭 모라즈가 영입된다.



74년의 7집 Relayer는 영국에서 4위, 미국에서 5위까지

오르며 중흥과 쇄신을 향해 몸부림친 결과물이었다. 다소간

예전의 예술적 성과를 회복하는 듯했고 평단도 대체로 우호적

평가를 내렸다. 어찌 보면 문제가 이들 자신에게 있다기보다

프로그 장르의 인기가 서서히 사그러들고 있었다는 점 아닐까.



웨이크먼과 질감이 전혀 다른 모라즈의 연주는 잘 녹아들고

는데 어딘지 퓨전의 느낌도 묻어났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소재로 한 22분짜리 대곡 The Gates of Delirium

본작을 대표하는 트랙. 후반부 파트가 싱글로 커트되기도 했다.

싱글 차트 성적은 별로였지만.



('The Gates of Delirium' from Relayer, 1974)

https://www.youtube.com/watch?v=g8kLYZvVP7s




 (Yesterdays)



75년 발매된 첫 컴필레이션 앨범 Yesterdays는 1~2집의

트랙을 종합한 거라서 당시엔 반응이 좀 있었지만 요새는

상당한 희귀 음반이 되었을 게다. 로저 딘이 1970년대에

마지막으로 디자인한 커버라는 점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Going for the One)




77년 8집 Going for the One의 제작 구상 과정에서 앤더슨

다시 웨이크먼을 꼬시는데 성공하여 모라즈가 쫓겨난다.ㅠ 꽤

안타깝기는 하지만 웨이크먼의 재결합으로 모두가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지난 두 앨범의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 또

모라즈화이트 결합이 전체 균형에 어떤 균열을 가져왔는지.



욕먹을 각오하고 논평하지만 본 블로거는 디지털 드림 도어 같은

사이트에서 더 높게 평가한 TfTORelayer보다 Going for the

One이 훨씬 더 높은 완성도의 '' 앨범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 프로그란 장르에 한정해서는 DDD의 평가가 옳을지 모르지. 물론

이젠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서 이런 데 아무도 신경쓰지 않겠지만..



('Wonderous Stories' from Going for the One, 1977)

*이들이 발표한 최초의 공식 뮤직 비디오.




돌이켜보면 모라즈화이트는 의외로 플레이 스타일이 직선적이고

선이 굵은 편이었다. 아기자기하게 디테일을 살린 장식음을 잔뜩

먹인 어프로치에 그리 최적화한 연주자는 아닌 것. 문제는 이들의

단점이 곧 브루포드웨이크먼의 장점이라는데 있고 그런 특징이

예스의 최전성기 작품성을 일궈낸 동력원이라는 점. 브루포드

그렇다 치고 웨이크먼의 가세로 이런 점이 보완되니 작풍 자체가

수 년 전 전성기의 모드를 회복한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Going for the One' from eponymous album, 1977)

*이 곡의 Anderson은 왠지 후배 Geddy Lee를 연상케 한다.




상업적인 감각이 살아 있는 Wonderous Stories, 다이내믹한

락의 코드를 살린 타이틀 트랙 Going for the One, 15분여의

대곡으로 5집 시절 구성력을 되살린 Awaken, 평단의 극찬을

받은 신비주의 감성의 트랙 Turn of the Century 등 다섯 개의

알찬 트랙이 제각기 상이한 매력을 뽐내며 맛있는 조합을 보여

주었고 이는 팬덤으로 하여금 Fragile의 부활이란 연상 작용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고 힘주어 주장한다.



('Turn of the Century' from Going for the One,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g0k-Klq-FNA




즉 연주력 과잉의 오만한 군더더기를 없애고 음악적 풍미의

조합과 구성이란 본질에 충실하니 평단과 팬덤의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진 셈이다. 영국 앨범 차트에서 마지막으로

기록했고 미국에선 8위를 기록해 상업적 성과도 준수했다.

Wonderous Stories영국 싱글 차트 7위에 올라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 영국에서. 미국 최고 성적은 후에..



('Awaken' from Going for the One, 1977)

*Wakeman이 5집에 이어 church pipe organ을 다시 도입했다.

- 스위스 브베에 있는 교회에서라고.



(Digital Dream Door's 100 Greatest Progressive Rock Albums)

https://digitaldreamdoor.com/pages/best_albumsprog.html




 (Tormato)




78년 9집 Tormato는 밴드의 시대 후반기에 콘서트 투어의

티켓 판매고가 정점을 찍던 시절을 대변하는 앨범일 것이다.

예스의 스튜디오 앨범 중 가장 빠른 시간에 최고 판매고를

기록하여 미국에서 플래티넘, 영국에서 골드 인증을 받은,

당대 상업적 아레나 락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당시 언더그라운드를 점령한 punk rock

뮤지션들로부터는 집중적인 비토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허나

당시 예스의 공연은 어디 가나 매진의 연속이었고 돈을 제일

잘 벌던 시절이었는데 뭐.. 앨범 트랙들의 전반적인 경향도

대중성과 상당히 타협한 혐의가 짙었고.



('Don't Kill the Whale' from Tormato, 1978)




영국 싱글 차트 탑40까지 오른 Don't Kill the Whale이나

Release Release 같은 트랙을 들어보면 이 사람들 참 많이

달라졌구나 싶을 게다. 웨이크먼리드 기어를 Polymoog

갈아타던 때였는데 이 두 트랙에 나오는 솔로잉은 꽤 들어볼

만하다, 키보디스트 팬이라면. RR에 나오는 화이트의 드럼

솔로잉은 ADT란 녹음 기술로 구현한 것이라고. RR의 하이

노트는 꽤 버거워라이브에선 앤더슨이 늘 제외시켰단다.



*ADT = automatic double tracking.

- 믹싱 과정에서 테이프 딜레이 방식으로 원본 파형을 두 개

트랙으로 강화함으로써 인위적으로 소리를 두텁게 키우는 것.



('Release Release' from Tormato, 1978)




('Future Times / Rejoice' from Tormato,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Nt0w7upsRq4

*대체로 비중이 웨이크먼에 치우쳐 있다는 느낌적 느낌이랄까..



('Onward' from Tormato,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hbowD1NZ-zc

*Squire가 쓴 곡 중 가장 아름다운 음률인 듯.




성공적인 투어였지만 차기작을 위해 다시 모였을 때 예스

음악 방향성을 놓고 둘로 갈라져 있었다. 더 가볍고 판타지를

강조하는 쪽으로 가자는 앤더슨웨이크먼. 반면 하드하고

헤비한 어프로치를 원한 하우, 스콰이어, 화이트. 프로세스가

진척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고 결국 앤더슨

웨이크먼이 탈퇴를 선언하는 지경까지 가버린다. 아이고.



물론 역사가 스포일러라고 몇 년 후에 다시 뭉치긴 하는데 -

예스의 사운드에서 앤더슨의 보이스를 빼면 뭐가 남겠나. -

밴드와 떨어져 있던 몇 년 사이 앤더슨은 오래도록 꿈꿔온

개인 프로젝트 활동에 전념한다. 바로 반젤리스와의 협업.

야~ 신난다..






앤더슨은 두어 차례 그를 예스 액트에 끌어들이려 시도했다.

멤버나 제작진이 반대하기도 하고 반젤리스의 음악 패턴도

궁합이 안 맞기도 하여 한동안 입맛만 다시고 있었는데...

사실 75년에 그와의 첫 결합 기회가 찾아왔다.



이젠 희귀 명반으로 남은 반젤리스의 솔로 앨범 Heaven

and Hell이 75년에 발매되면서 가사가 들어간 트랙이 딱

하나 들어갔는데 여기에 앤더슨을 초빙한 것. So Long

Ago So Clear란 곡인데 신비로운 감수성을 가진 보컬과

연주자가 만나 궁극의 상생을 보여준다.



('So Long Ago, So Clear' by Vangelis feat. Jon Anderson, 1975)



('12 o'clock' by Vangelis, 1975)

https://www.youtube.com/watch?v=C6eFcCL-Ync

*익히 들어봤을 마성의 BGM. Heaven and Hell 앨범.




 (The Friends of Mr. Cairo)




존 앤 반젤리스로 명명하게 된 이들의 협업. 전성기는 80년대

초반까지인데 - 앤더슨이 예스로 복귀하기 전까지 - 81년에

영국 차트 6위까지 오르는 등 The Friends of Mr. Cairo

앨범의 반응이 가장 좋았다. I'll Find My Way Home이란

싱글 히트 튠까지 나왔더랬다. - 영국 차트 6위.



('I'll Find My Way Home' by Jon and Vangelis, 1981)



('The Friends of Mr. Cairo' by Jon and Vangelis, 1981)

*원곡은 12분짜리인데 이건 뮤비에 맞춘 짧은 버젼.

- 30~40년대 말타의 매 같은 느와르 필름의 경향을 표현.



이듬해 무려 디스코의 여왕 도나 섬머가 커버하시기도 한 State

of Independence는 원곡 반응은 시원치 않았지만 섬머

커버가 핫100에서 탑40에 근접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State of Independence' by Jon and Vangelis, 1981)



('State of Independence' by Donna Summer, 1982)

https://www.youtube.com/watch?v=cPlNrP9B2Zs

*심지어 프로듀싱은 바로 그 Quincy Jones.







그 사이 예스는 죽쑤고 있었냐고? 평론가들을 설득하는 데는

성공했는데 팬덤이 문제였다. 핵심 멤버 둘을 잃고 어수선한

가운데 급하게 낸 80년 10집 Drama의 초반 반응은 영국

차트 2위까지 오르는 등 괜찮았으나 팬들이 멤버 교체를

인지한 때문인지 뒷심이 받쳐주지 못했다. 투어 끝내고 그

싸늘함을 실감한 밴드는 결국 해체를 선언한다. 아이고2.



('Into the Lens' by Yes, 1980)

*MTV 시대인지라 많이들 준비한 것이 눈에 띈다.

- 교체 멤버는 Trevor Horn과 Geoff Downes.

- The Buggles 시즌2 및 Asia와 GTR 프리퀄.



('Machine Messiah' by Yes,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dXsFByRJsos

*Drama의 오프닝 트랙이자 가장 긴 대곡.

- Vocoder 혼합한 헤비메탈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극단적인 팬덤은 버글스의 아류 냄새가 너무 난다고 깐다.ㅜ

- 의외로 혼의 음색이 앤더슨 느낌을 꽤 풍긴다는 것이 함정.







82년경이었나. 해체하고 어슬렁대던 스콰이어화이트에게

남아공 출신 기타리스트 트레버 래빈과 연결될 기회가 생긴다.

합이 잘 맞네, 싶어 토니 케이까지 끌어들여 밴드 새로 만들까

하는 궁리를 하던 차... 스콰이어가 파티에서 앤더슨을 만난다.

같이 해볼래? 제안을 덥썩 무는 그. 요상하게 전설적 밴드의

새 버젼 모양새가 되자 래빈은 내켜하지 않았다고.. 궁시렁..



 (90125)




그렇게 어영부영 몇 해 만에 예스는 다시 재결합한다. 83년에

새 앨범 90125를 들고. 프로그예스뉴웨이브 버젼으로

완전 변신하여 새로운 팬덤을 형성하지만 기존 프로그 팬에게

지대하게 욕쳐먹은... Owner of a Lonely Heart란 명곡을

배출한... 바로 그 앨범, 11집.



발매 당시 미국 빌보드200에서 5위, 영국 앨범 차트 16위까지

오르는 등 예전 전성기 정도의 성적을 회복하는 정도에 불과한

줄 알았는데.. 가장 시장이 큰 미국에서 판매고가 넘사벽 급으로서

현재까지 3백만 장을 넘기고 트리플 플래티넘을 기록하는 빼어난

결과를 얻어낸지라 본작이 중요한 것.



('Owner of a Lonely Heart' from 90125, 1983)

*앨범 타이틀에 큰 의미는 없고 그저 소속사의 카탈로그 일련번호.



('Cinema' from 90125,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qSRzlThuXmM




시그니처 히트 싱글 Owner of a Lonely Heart예스의 유일한

핫100 1위 곡. 인스트루멘탈 트랙 Cinema로 이들의 유일한 그래미

어워드까지 수상했을 정도였다. 개별적으로는 소소한 히트였으나

Leave It, It Can Happen, Hold On, Changes 등 후속

싱글도 줄을 이어 앨범의 판매를 도왔다.



본작의 성공에 힘입은 84~85년의 9012Live Tour예스의 역대

투어 중 최대 투자가 이루어져 최대 수익을 거둬들였다. 저명한 영화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의 연출로 9012Live콘서트 필름을 제작해

발매했고 당시 예산으로 1백만 불이 넘는 특수효과를 차용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단다.



('Leave It' from 90125, 1983)



('It Can Happen' from 90125, 1983)




래빈, 스콰이어, 화이트, 케이앤더슨 조합이 8기 예스를 구성한

멤버들. 당시에는 래빈의 스타일을 놓고 설왕설래,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팬덤에서. 또 뭔가 2프로 부족한 케이의 스타일 놓고도

웨이크먼 언제 복귀하냐, 반젤리스 가능성 없냐, 등등 온갖 썰이

난무했더랬지... 다 옛날 이야기다.



래빈은 본래 싱어송라이터로 커리어를 시작한 사람이라 넘사벽급

앤더슨의 존재감에 상당한 부담감을 가졌다는 후문. 또 신디 다루는

실력도 한 가닥 하는지 묘하게 반목하는 사이였던 케이가 잠시나마

탈퇴했다가 에디 잡슨이 메꾸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단다.

하긴 전체 방향성에 있어 래빈스콰이어가 다 만든 모양새

앤더슨은 숟가락만 얹은 느낌이 살짝 들기 시작한 것도 사실..



('Hold On' from 90125, 1983)



('Changes' from 90125, 1983)




 (Big Generator)




어쨌든 물들어올 때 노저으라고, 잘 팔리면 장땡이지.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86년부터 12집 제작에 착수한다. 프로듀서

맡던 트레버 혼래빈 사이에도 트러블이 생겨 아예 제작

전반을 래빈이 주도했단다. 그래서 이듬해 나온 것이 신작,

Big Generator.



이제 예스는 더 이상 프로그 아니에요, 선언한 듯한 앨범.

래빈의 입김이 정말 센 앨범이었다. 미국 앨범 차트 15위,

영국 17위에, 미국 시장 인증은 플래티넘까지 받는 등...

상업성과 예술성 양쪽에서 꽤 어중간한 평가를 받았다.



앤더슨은 여전히 붕뜬 분위기에서 넘사벽급 보컬 실력만

자랑하는 모양새랄까. 어쨌든 그래미 어워드 후보 지명도

받고 (마지막) 핫100 탑40 히트 싱글도 둘이나 나오는 등

선방은 했다...만. 앤더슨의 위상이 뭔가 물과 기름인 것..



('Love Will Find a Way' from Big Generator, 1987)

*미국 싱글 차트 Hot 100 30위, 메인스트림 락 차트 탑 기록.



('Rhythm of Love' from Big Generator, 1987)

*미국 싱글 차트 Hot 100 40위, 메인스트림 락 차트 2위.



('Shoot High Aim Low' from Big Generator, 1987)

https://www.youtube.com/watch?v=CNnKau1OLp4

*미 메인스트림 락 차트 11위.




 (Anderson Bruford Wakeman Howe)




으악. 80년대 말은 온갖 슈퍼그룹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밴드의 시대 마지막 광채를 휘날리던 때였는데, 옛 예스

앤더슨이 이 기회를 놓칠소냐. 앤더슨이 붕뜬다고 했잖나.

결국 가장 잘 나갔던 3기 멤버들 - 스콰이어 빼고 - 그들을

다시 소환하여 슈퍼그룹을 결성하고 만다. ABWH. 두둥.



Anderson Bruford Wakeman Howe. 커버 디자인도

로저 딘이 컴백하시고 누가 봐도 예스 앨범인데 예스를

예스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사태의 원인은 스콰이어..

상표권을 그가 독점 소유하고 있었거덩. 이그. - 베이스

누가 쳤냐고? 전가의 보도, 토니 레빈께서..



사이드 프로젝트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진성 팬덤은 누구든

본작의 가치를 알아봤기에 영국 앨범 차트 14위, 미국 30위

등 성적도 준수한 편이었다. 가사 연속성에서 예스 시절과

연결되는 Quartet, 싱글로도 나온 Order of the Universe

등 대곡 트랙들에 진정한 매력이 있다고 하겠다. 특히나

디지털 신디사이저의 시대를 맞아 웨이크먼의 표현력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듯하다.



('Quartet' from Anderson Bruford Wakeman Howe, 1989)



('Order of the Universe' from ABWH, 1989)




뭐 이렇게 이합집산이 심하냐 싶은 이분들, 결국 스콰이어

예스 네 명과 ABWH 네 명이 합쳐 새롭게 예스를 결성한다.

- 8인조. 이쯤되면 팬덤 고문이다. 90년대 초반 이렇게 뭉쳐

앨범도 내고 여덟 명이서 사이좋게 투어 다니면서 연주력의

정점을 세계 만방에 자랑하셨더랬다.



이후엔 여전히 여러 멤버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지금까지도

투어를 이끌며 잘 살고들 계신다. 금세기까지도 예스라이브

아카이브가 여러 버젼 남아 있지만 개인적으론 90년대 초중반

시기가 가장 반짝반짝 하지 않나 싶다. 그 이후엔 아무래도

나이가 있어서, 특히 앤더슨의 기량은 많이 떨어져 보인다.



마지막까지 예스에서 탈퇴하지 않아 상표권을 움켜쥐고 계셨던

크리스 스콰이어는 15년에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만다. RIP...

안타깝게도 그가 돌아가신 후 17년에 락앤롤 명예의 전당

헌액되어 원년 멤버 중 그만 빼고 다 모여 자축하기도 했다.

(이때 공연에서 베이스게디 리가 쳐줬다.)




*Roundabout. 01년 네덜란드 Symphonic Live; Magnification Tour.

- 무대 난입해 춤추는 분들은 오케스트라 단원들. 피날레 곡이라서..

- 라인업은 Anderson-Squire-Howe-White.

- 키보드에 투어 세션 Tom Brislin.



*Starship Trooper. 84년 독일 공연, 9012Live Tour.

- 라인업은 Anderson-Squire-Rabin-Kaye-White.



*Long Distance Runaround. 04년 스위스 공연, Lugano Festival.

- 라인업은 Anderson-Squire-Howe-Wakeman-White.



*Close to the Edge. 75년 영국 공연, Relayer Tour.

- 라인업은 Anderson-Squire-Howe-White-Moraz.



*Heart of the Sunrise. 89년 ABWH로서 공연.

- 베이스에 투어 세션 Jeff Berlin.






전성기 시절 천사처럼 하늘에서 강림한 듯한, 천상의 목소리를

자랑하신 존 앤더슨. 보컬리스트로서 프로그레시브라는 서브

장르에서 길고 굵게 한 획을 당당히 그은 그 발자취는 대단히

존경스러운 것이며, 영미 시장 합계 총 1천 5백만 장에 달하는

판매고의 예스 디스코그래피 전체에서 이를 관통하는 신비주의

정서의 가사 철학은 분명히 그의 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솔로 아티스트로서 또는 하나의

자립한 음악가로서의 존재감이 그다지 크진 않다. 이 분의 솔로

앨범을 들어보면 창법이 작곡을 삼켜 버린다고나 할까, 독창적

음역과 보이스의 질감이 오히려 운신의 폭을 좁혀 어떤 음악을

들어도 존 앤더슨임이 드러나지만 반대로 보컬리스트로서

다채로운 변화의 폭을 표현하는 데에는 큰 한계가 있다.



본인의 공식 웹사이트에도 올려 놓았지만 하도 음역이 높아서

팔세토 창법을 구사하는 남성 카운터테너란 오해를 많이 받으신

모양인데, 아니라고 명명백백히 밝히셨다. 남성의 테너와 여성의

알토 사이엔 세부적으로 여러 유형이 존재하는데 굳이 분류하면

본인은 알토 테너 - 콘트라알토나 카운터테너보다 낮고 보통

테너보다 높은 - 에 해당한다고... 참고하시길.




*Roundabout. 17년 헌액식 공연 중. 베이스 Geddy Lee.

- 자기 관리에 철저하여 노년에도 기량이 딸리지 않는 점만은 존경스럽다.



*Owner of a Lonely Heart. 17년 영국 공연.

- Yes feat. Jon Anderson, Trevor Rabin, Rick Wakeman이란

  액트로 2010년 이후 최근 노년까지도 활발하게 투어를 열고 사신다.

- Wakeman과 Rabin이 원곡에 없는 솔로잉을 어떻게 더 연장했는가..

  4' 25"쯤 이후. 이런 점이 노장들 라이브의 묘미이다.






 (Polonaise, single?)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존 앤더슨의 곡은 의외의 작품인데

한국의 중장년층에겐 흘러간 팝송일 테고 전세계 팬덤에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존 앤 반젤리스의 숨은 명곡으로 꼽힌다.

바로 83년 Private Collection 앨범의 네번째 트랙 Polonaise.



곡명이 폴로네이즈인 이유는 첫째, 반젤리스가 시작하고 2분 40초

지나서 프리데릭 쇼팽이 쓴 A플랫 장조 작품 53번 피아노 독주곡의

유명한 악절을 차용했기 때문이며, 둘째, 앤더슨이 가사의 배경으로서

- 1981~83년에 걸친 공산당 독재 정권의 계엄령 공세에 맞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항거와 투쟁을 벌였던 - 평범한 폴란드 국민들의

이야기를 끌어와 그 정신을 기렸기 때문이다.



음악 이야기 포스팅하면서 웬만하면 가사 해석 안 하려고 하는데

이 곡의 가사는 역사 배경도 있거니와 작사 능력 출중한 앤더슨

작품 중에서도 특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 예외적으로 공개한다.

노랫말과 뒷이야기에 한층 더 집중하면서 슬프고도 아름다운 옛

음악을 즐기길 바라 마지 않고, 80년 광주 및 83년 바르샤바의

못내 이룬 '연대'의 회한을 반추하며... 금번 포스팅을 마치련다.




https://genius.com/Jon-and-vangelis-polonaise-lyrics




('Polonaise' by Jon and Vangelis,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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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음악의 역사에서 80년대애시당초 마이클 잭슨

시대 아닌가누가 뭐라 할 여지가 전혀 없지. 절대 왕정이

군림한 그 시대에 남성 팝가수로서 MJ의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당당한 업적을 거둔 뮤지션이 있었다.



어차피 지금 시대야, 저 안경 쓴 빠른 51년생 할아버지가

백설공주 릴리 콜린스 아빠래, 정도 밖에 관심은 두지도

않겠지만. 20년 전쯤 얘길 꺼냈다면 누가 진성 제네시스

팬덤이냐며 피터 가브리엘 진영과 찢어갈려 진정

쓰잘데기 없는 키보드 전쟁이 벌어졌을 걸.



왠지 음악 산업계에 만연한 숱한 오해와 루머의 희생양

이미지이신데.. 사실, 70~90년대를 당당하게 관통하며 총

판매고 1억 5천만 장이란 역대급 성공을 거둔, 한 사람의

위대한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 세션맨이셨다. 제네시스에서

음악을 시작해 한 시대를 호령한 명가수...!

필 콜린스 Phil Collins 이야기를 해볼까.









언제부턴가 캐릭터가 되어버린 원형 탈모에 속지 마시길

바라옵고, 이 분 원래 아역 배우 출신이시다. 올리버 같은

뮤지컬에도 출연하셨고 재미없기로 악명높은 비틀즈 영화

A Hard Day's Night에도 단역 출연하셨다. 80년대

에서 꽤 기본기 충실한 연기력을 보여준 데엔 다

그런 배경이 있었던 거다. 또 한때 영화 주연도 했고.



다섯 살 때부터 유아용 드럼 키트를 다루었고 본격적인

성인용 세트는 청소년이 되면서부터 썼다고. 링고 스타

버디 리치의 영향을 깊게 받아 빅밴드 재즈의 테크닉을

익숙하게 다루게 되었다지.



그래, 콜린스를 얘기하면서 훌륭한 드러머로서의 경력을

건너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애초에 음악가로서 시작을

드럼 치면서 시작한 분이니까.



 (Genesis)




현장에서 다른 뮤지션의 영향을 재빠르게 캐치하는 순발력

면에서는 아마도 최고일 것 같다. 숱한 히트곡을 들어봐도

알 수 있지만 여러 모로 영리한 뮤지션임에 틀림없을 듯.

특히 탄탄한 재즈 드러밍 기본기에서 비롯된 사이드 탐탐

컴비네이션은 드러머로서의 트레이드 마크일 것이다.

흡사 버디 리치의 재림을 보는 듯..



여기서 자주 언급하는 디지털 드림 도어 랭킹에서 현재

34위이시고 모던 드러머가 선정한 50대 연주자 랭킹에선

21위. 논란이 컸던 16년의 롤링 스톤 매거진 랭킹에선

43위를 차지하셨을 정도. (그래도 별다른 지표로 인용할

것이 없어 언급은 하겠다. 욕먹은 내용은 아래에 링크.)



(Digital Dream Door, 100 Greatest Rock Drummers)

https://digitaldreamdoor.com/pages/best_drummers.html


(Modern Drummer, 50 Greatest Drummers of All Time)

https://www.moderndrummer.com/article/march-2014-50-greatest-drummers-time/


(Rolling Stone '16, 100 Greatest Drummer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drummers-of-all-time-77933/phil-collins-2-142870/


- Consequence of Sound rebukes the Rolling Stone ranking.

https://consequenceofsound.net/2016/03/rolling-stone-releases-list-of-the-100-greatest-drummers-and-neil-peart-is-not-no-1/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미 50년생 고딩 동기들끼리 데뷔해

끈기있게 활동하고 있던 제네시스와의 인연도 드러머 공고

난 거 보고 오디션에 응하면서부터. 밴드의 창단 멤버 앤서니

필립스가 탈퇴하면서 드러머였던 존 메이휴를 내보내고 새

드러머 공고를 낸 것이 1970년의 일이었다.



저 테일러 아직 아무 것도 아닐 때여서 오디션 보러

오라는 제안을 받았었단다. 피터 가브리엘 부모님 집에서 치른

오디션. 기다리는 동안 앞의 경쟁자들 리듬 패턴을 모조리 외워

똑같이 카피해내 멤버들이 감탄했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든지

한 번은 들어봤을 유명한 일화. 여기에 기타 주법의 선구자

대접을 받는 명인 스티브 해킷이 이때 함께 영입되었다.



제네시스에서의 필 콜린스는 재기발랄한 fill-in을 넣을 줄

아는 데다 탄탄한 박자감을 가진 드러머이면서도 훌륭한

노래 실력도 겸비한 멤버였다. 테너-바리톤 음역대에 지성미

넘치는 카리스마와 연극적 스토리텔링강한 리드 보컬

피터 가브리엘에 비해 낭만적 감성을 표현할 줄 아는 하이

테너로서 가브리엘 위로 화음을 넣거나 한 옥타브 높이는

방식의 다채로운 연출이 콜린스로 인해서 가능해졌다.



보컬피터 가브리엘, 키보드토니 뱅크스, 베이스

마이크 러더포드, 기타스티브 해킷, 드럼필 콜린스.

이 멤버로 만든 최초의 앨범이 71년에 발표한 제네시스

3집 Nursery Cryme72년 Foxtrot, 73년 Selling

England by the Pound74년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등 정규 명반이 줄을 잇다가... 밴드보다

솔로 활동이 필요하다 느낀 가브리엘이 팀을 탈퇴한다.



('Supper's Ready' from Foxtrot, 1972)

*이건 스튜디오 버젼 오리지널.



 (Genesis Live)




가브리엘이 리드하던 제네시스 시절은 추후 다른 편에서

상술하는 편이 더 낫겠지...만, 이 시기 드러머 콜린스

활약상을 확인하고 싶다면 Supper's Ready를 비롯하여

In the CageThe Knife 같은 트랙을 추천한다.



Supper's Ready퀸텟 전성기의 제네시스에서 가장

중요한 걸작 대곡인지다섯 멤버 전부 엄청난 기여도를

보여주는 곡이다. 옆에서 뱅크스, 뒤에서 콜린스가 매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기에,

라이브를 감상하길 추천하고..



In the Cage는 스튜디오 버젼으로만 들어도 뱅크스-콜린스

-러더포드의 백킹 조합이 톱니바퀴 맞물리듯이 오밀조밀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 이 앨범은 대체로

가브리엘이 플롯과 작사에만 신경쓰느라 음악적인 작편곡

나머지 넷이 오롯이 책임졌고 특히 뱅크스가 빛을 발한다.



The Knife는 본래 콜린스가 들어오기 전 2집에 있던 곡인데

제네시스의 1973년 라이브 앨범 Genesis Live에서 콜린스

교체해 연주한 버젼이 원곡보다 낫다는 말이 많다. 이 앨범은

가브리엘-제네시스 시대의 유일한 라이브. 원래 정규 앨범에서

드러머는 존 메이휴다.



('In the Cage' from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1974)



('The Knife' from Genesis Live, 1973)



*The Knife의 스튜디오 버젼 오리지널.

https://www.youtube.com/watch?v=O-78TeJlq24







넷만 남게 된 제네시스리드 보컬 공고를 또 냈는데

수백 명 지원자보다 콜린스가 더 노래를 잘 했다네..?!

(이때 부른 노래가 제플린 Kashmir의 영향 하에 만든

Squonk였다고.) 앞으로 한 시대를 풍미할 보컬리스트

필 콜린스의 공식 탄생은 이렇게 소소한 일화로부터

시작했다. 75년경.



네 사람 체제에서는 76년에 A Trick of the Tail

Wind & Wuthering 두 장의 앨범을 냈다. 이 시기는

리듬 섹션 러더포드콜린스를 제외하고 해킷

뱅크스 사이에 작편곡의 주도권을 놓고 미묘한 신경전이

관찰되던 때이기도.



어느 밴드나 키보드를 메인 파트로 갖고 가면 기타와의

밸런스를 어떻게 맞출 건지가 창작 과정에서 논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도 그 의례를 피할 수 없었으니 앨범을

달랑 두 장만 내고 해킷이 떠난 이유가 이런 면이

아니었을까 추정할 수도 있겠다.



(A Trick of the Tail)



(Wind & Wuthering)



('Squonk' from A Trick of the Tail, 1976)




쿼텟 시기 콜린스는 아직 뮤지션으로서 100% 자아를

각성했다고 볼 순 없지만 무한한 포텐셜에 슬슬 예열 시동을

걸고 있었다. Robbery Assault and Battery 같은 곡에서

가브리엘과 전혀 다른 결로 풍자적 수사에 능한 콜린스

보컬 스타일이 움트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Los Endos는 아기자기한 잔 리듬에 강한 콜린스식 드러밍

폭발하는 팬덤의 인기 트랙이고, 재즈 퓨전의 영향을 받고 있던

의 색깔은 Wot Gorilla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뱅크스

Afterglow는 신비로운 질감의 백킹이 아름다운 발라드로서

시종일관 울려퍼지는 Moog Taurus의 이펙트가 매우 예뻐서

숨겨진 보석처럼 좋아하는 이 많다.



아닌 게 아니라 쿼텟 시대에 오히려 숨은 명곡이 많다는 평도

자자하다. 원래 제네시스의 특징이 파도 파도 새로운 좋은

노래가 끊임없이 나온다는 데 있다...고, 대다수 열성 팬들이

입을 모으곤 한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다지. 남은

셋과 해킷과의 관계 등, 쿼텟 시대 이야기는 나중에 다른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을 것 같다.



('Robbery Assault and Battery' from A Trick of the Tail, 1976)



('Los Endos' from A Trick of the Tail, 1976)



('Afterglow' from Wind & Wuthering, 1976)






지금까지 서술한 제네시스의 성과가 음악적인 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음에 눈치 채셨겠지만, 사실 퀸텟 쿼텟 시대의

상업적 성과가 메가히트 급은 아니었다. 공식 인증도 골드

전부였고 앨범 차트로만 영국 3위, 미국 30위권이 가장 높은

기록이며 싱글 히트곡은 거의 없다고 보면 정확하다. 물론

팬덤의 매니아적 충성도가 높고 당시 지지층이 현재 인터넷

시대에까지 이어지고 있음도 엄연한 사실이지만 말이다.



제네시스의 새로운 시대는 아마도 이 무렵부터 새 방점을

찍는 편이 옳지 않을까. 프로그레시브 기원으로부터 서서히

졸업하고 시대의 흐름을 좇아 포스트 펑크의 영향을 받은

프로그팝소프트락으로 변신한 트리오 제네시스. 그

옛날 한때만 하더라도 기존 팬덤으로부터 맹혹한 비난을

받아야 했던 그 변화는 멤버의 탈퇴에서 비롯된.



77년에 결국 기타리스트 이 탈퇴한다. 앨범 구성에

소외감을 느꼈고 밴드 일원으로서 더 이상 원하는 음악이

나오지 않음을 깨달으셨다고. - 본래 솔로 아티스트으니..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정신 차린 뱅크스, 러더포드, 콜린스

어덜트을 향해 일보전진하기로 마음먹고 뛰어난 연주력을

가진 투어 멤버를 보강한다. 물론 앨범 작업은 병행하고.



프랭크 자파드에서 연주한 재즈 드러머 체스터 톰슨,

장 뤽 폰티 그룹에서 연주한 재즈 기타리스트 대릴 스투

등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제네시스와 함께 한 정상급 세션

멤버가 이때 영입된다. - 전작 앨범들의 투어 땐 예스

킹 크림슨 출신 빌 브루포드(!)가 작업한 적도 있다.



우여곡절을 딛고 세 멤버가 새로 완성한 78년의 앨범

And Then There Were Three. 제목은 물론 애거서

크리스티의 저명한 소설에서 따왔겠지. 리드 기타

포지션을 바꾼 러더포드가 약간은 버벅댔뱅크스

신디가 전체 사운드를 메꿔 프로그라기보다 신스

더 가까운 색과 결을 선보인다.



본작은 영국 앨범 차트 3위, 독일 2위, 미국 14위 등

그때까지의 제네시스 앨범 중 최고의 성공을 거두

핫100 차트 23위까지 오른 최초의 싱글 히트까지 낸다.

소폭 히트한 Many Too Many 같은 발라드가 있었지만

지금도 트리오를 대표하는 어덜트 발라드 Follow You

Follow Me가 역시 세계적으로 히트한 대표곡일 게다.



러더포드가 인트로의 리듬 리프를 치고 뱅크스가 스트링

코드 시퀀스를 깔아주니 콜린스가 중심 선율을 부르는..

인터뷰에서도 인정했듯이 지나치게 긴 음악을 복잡하게

만들기 즐겼던 세 멤버에게 있어 스스로 새로운 음악에

눈뜨게 한 진일보의 프로세스가 이 노래에서 나온 거다.



물론 모든 트랙을 팝으로 채운 건 아니고 Down and Out,

Ballad of Big, Deep in the Motherlode, The Lady

Lies가 보여준 신스-프로그 정체성은 여전하다. 다만

히트 튠의 파급 효과가 너무 컸던 거겠지.



(And Then There Were Three)



('Follow You Follow Me' from And Then There Were Three, 1978)



('Many Too Many' from And Then There Were Three, 1978)



('Ballad of Big' from And Then There Were Three,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dlqn2_n9FW4


('Down and Out' from And Then There Were Three,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HeqFXo5xtcE




앨범 한 장만이면 해프닝으로 그칠 테지만 제네시스는 정말

변화하고 있었고 80년 10집 Duke는 시대의 엄혹한 흐름에

강력한 화룡점정을 찍어준 수작 앨범이다. 아트 락의 미약한

손아귀를 이제는 뿌리칠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래도 본작만

프로그레시브 정체성을 온몸으로 기억하는 이들의 마지막

결산 같은 성과였 할 만하다.



이들이 공식적으로 Duke Suite 칭하는 Behind the

Lines - Duchess - Guide Vocal - Turn It On Again -

Duke's Travels - Duke's End의 6곡 연작은 본작의 대표

트랙. 원래는 Supper's Ready처럼 30분짜리 대곡으로

묶으려 했지만 그냥 쪼개서 앨범 전체에 분산시켰다고.

(Supper~본래 7곡 소곡의 연작 형식.)



이후 제네시스에서 이런 대곡 구성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아,

팬덤은 72년 Foxtrot와 유사한 구조의 Duke를 소중한

마지막 마스터피스 급으로 취급한다. Suite에 속하지 않는

Misunderstanding도 별도 싱글로서 미국 차트 14위까지

오르고 Man of Our Times, Alone Tonight 등 트랙이

독자적인 인기를 누리는 등, 여러 면에서 수작 앨범이다.



수작일 뿐 아니라 상업적인 성공도 전작을 넘어서게 된다.

최초로 영국 앨범 차트 정상을 밟았고 미국에선 11위를

찍는다. Suite 6곡 중 가장 역동적인 Turn It On Again

싱글로 발매되어 영국 차트 탑텐에 든다. Duchess

인트로에서 Roland CR-78을 써서 밴드가 처음으로

드럼 머신을 적용한 곡으로 남게 된다.



분명 시대는 변하고 있었고 팬덤의 구성도 예전에 짐짓

진중한 프로그에 열광하던 남성 중심에서 짧은 어덜트

발라드에 반응하는 여성층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미

전작에서부터 이를 캐치한 세 멤버의 대담한 선택이

성공을 거둔 것이었으나 기존 팬덤과의 지리한 전쟁도

이제 막 시작한 셈이었다.



(Duke)



(Roland CR-78)

*아래 Duchess 뮤비 맨앞에 등장.



('Turn It On Again' from Duke, 1980)



('Misunderstanding' from Duke, 1980)



('Duchess' from Duke, 1980)



('Behind the Lines' from Duke, 1980)



('Alone Tonight' from Duke, 1980)



*Duke Suite 80년 런던 라이브 편집본

https://www.youtube.com/watch?v=VUr1dcg-PEw&t=1115s






아마도 79~81년 기간은 갓 서른 언저리의 젊은 감각을

날카롭게 유지하던 세 멤버들 모두에게 도전과 갈등의

시기였을 것이다. 첫 결혼에 위기가 닥쳐 밴드에서 잠시

멀어져야 했던 콜린스를 위해 뱅크스러더포드는 활동

잠정 중단을 용인하고 각자의 첫 솔로 앨범을 발매했다.



끝내 콜린스이혼에 이르게 되고 이는 젊은 음악가로

하여금 정신적으로 성숙해질 기회를 부여하게 되었으니

이런 질풍노도의 내적 변화가 81년에 발표한 콜린스

첫 솔로 앨범에 그대로 반영된다. 혁신적 사운드 레코딩

기술을 담은 히트작 Face Value 앨범이었다.



형해화한 부부 관계의 종말에서 겪은 상실감을 처절하게

묘사한 In the Air Tonight이 앨범의 대표곡이다. 영국

싱글 차트 2위, 미국 차트 탑20까지 오른 성공을 거두고

앨범이 거둔 성공 - 영국 정상미국 탑텐 - 을 리드했다.

80년대 콜린스어덜트 컨템포러리 명곡의 출발점이자

신호탄인 거다.



이 곡의 드럼 녹음 방식이 그를 상징하는 혁신적 기술이다.

gated reverb라고, 악기의 주음을 잡는 마이크와 방음벽

등에 부딪혀 잔상으로 돌아오는 부차적 음을 잡는 마이크를

항상 한 쌍으로 갖춰 집음하는 기술이다. 80년대 필 콜린스

드럼 사운드라 하면 누구나 다 기억할 만한 소리가 바로 이

방식으로 만든 것. 특히 탐탐이 가진 풍부한 팀버 질감을

손실없이 담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가 여전히 친하게 지내던 동료 피터 가브리엘의 솔로 앨범

곡 중 Intruder의 드럼을 쳐주다가 엔지니어 팻검이 개발한

방법이다. - 자기들끼리는 이렇게 동료애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팬덤이란 명분으로 괜한 싸움 좀 붙이지 말자.



(Face Value)



('In the Air Tonight' from Face Value, 1981)

*이 뮤직 비디오도 꽤 화제였다. 제네시스 드러머 맞냐며.



('Intruder' by Peter Gabriel, 1980)

https://www.youtube.com/watch?v=xvAmj3k3Imc


*gater reverb 기술에 대한 설명

https://www.youtube.com/watch?v=cTo75yjL9R4




81년 11집 Abacab에 이르면 제네시스가 더 이상

프로그레시브 락과 상관이 없음을 모두가 깨닫게 된다.

그만큼 이 앨범의 팝락 성향은 신선했지만 프로그

좋아하던 기존 팬덤은 충격과 공포에 부들부들 떨고..

- 왜인지 콜린스더 큰 욕을 먹는다. 왜 그가?



프로그에서 비롯된 역사적 배경 없이 순수하게 즐기면

매우 훌륭한 대중음악 앨범이다. 당시 뉴웨이브의 패턴을

완벽하게 체화한 세 사람의 작편곡 감각이 눈부시고 특히

신디사이저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토니 뱅크스의 솜씨는

괄목할 만하다. 본작쯤에 이르게 되면 묻혀 있던 마이크

러더포드의 내공조차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싱글로 발매한 Abacab, No Reply at All, Keep It

Dark, Man on the Corner 모두 탁월한 대중적 감각을

자랑하며 탑40급의 성공을 거두었다앨범이 최초로

더블 플래티넘에 이르렀고. 콜린스보컬 실력은 이때

절정기를 맞고 있었다.



참고로 abacab이란 존재하지 않는 단어이다. 악절 구성을

A-B-A-C-A-B 형식으로 가져가려던 초기 아이디어가 그냥

제목으로 굳은 것. No Reply at All에 등장하는 멋들어진

브라스는 얼쓰 윈드 앤 파이어혼 섹션 주자들이 결성한

피닉스 혼즈연주. 이들은 이후 필 콜린스제네시스

앨범 및 투어에서 세션으로 자리를 잡아가신다.



(Abacab)



('Abacab' from eponymous album, 1981)

*백킹 보컬은 Tony Banks와 Mike Rutherford의 실제 목소리.



('No Reply at All' from Abacab, 1981)

*뮤비 속 브라스 연기자들은 물론 Phenix Horns가 아니라 멤버들.



('Keep It Dark' from Abacab,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gQkiqQ7zZBQ


('Man on the Corner' from Abacab, 1981)

https://www.youtube.com/watch?v=hUMti7b41yw




82년엔 Paperlate 등 세 을 담은 EP 3X3를 발매하고,

연이어 다음 달엔 포스트 펑크 시대 제네시스의 기념비적

라이브 앨범Three Sides Live - 같은 제목의 콘서트

필름도 포함 - 를 발표해 팬의 지지를 얻었다.



같은 해 10월 2일, 러더포드의 생일이기도 한 날 비내리던

토요일 저녁 잉글랜드 버킹엄셔에서는 경천동지할 일회성

콘서트가 열렸다. Six of the Best. 사실상 탈퇴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브리엘해킷이 남은 세 사람과 재결합하여

70년대 히트 트랙을 연주한 초유의 사건.. 기존 팬과 신규

팬이 모두 대동 단결하는 신기한 현상이 목격되었다. - 이날

기타대릴 스투머, 드럼체스터 톰슨이 메인이었다.



이 무렵 피터 가브리엘은 솔로 활동의 성공에 힘입어 월드

뮤직 페스티벌 WOMAD를 막 출범시킨 시점이었는데

축제 초창기 막대한 빚을 청산하기 위해 이런 이벤트를

벌였다고. 덕분에 깔끔하게 빚갚고 오늘날 세계인이 아는

워마드 음악제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 페미니즘 단체와

상관없는 축제 말하는 거임. 세계적으론 이쪽이 더 유명.



이후에도 이들이 이렇게 재결합하는 일이 거의 없었고

또 이 시기가 뮤지션으로서 기량이 전성기였던 때인지라

여러 모로 중요한 공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애석하게도

아카이브 레코딩이 남아 있지 않다! 지금 들어보려면 당시

관객이 소장해온 부틀렉 말고 방법이 없다. 아..ㅠㅠ



그리고 이런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피터 가브리엘 진영과

스티브 해킷 진영과 제네시스 세 사람 사이 인간적인 친분은

아무런 문제 없었다고, 여러 번 반복한다. 아, 왜 '식스'냐고?

뱅크스, 러더포드, 콜린스, 투머, 톰슨 + 가브리엘이니까.

원래 해킷은 스케줄이 안 되어 못 오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부랴부랴 달려와 끝내기 두 곡 연주하고 가셨다고.



(3X3)



(Three Sides Live)



('Paperlate' from 3X3, 1982)

https://www.youtube.com/watch?v=8AhBJwARAes



Six of the Best 셋리스트:

Back in N.Y.C.

Dancing with the Moonlit Knight

The Carpet Crawlers

Firth of Fifth

The Musical Box

Solsbury Hill - 피터 가브리엘(!) 솔로 히트곡

Turn It On Again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Fly on a Windshield

Broadway Melody of 1974

In the Cage

Supper's Ready

(encore) I Know What I Like

(encore) The Knife



*당시 관객들이 녹음한 부틀렉 아카이브

https://www.youtube.com/watch?v=KPdEPC2AsB8

https://www.youtube.com/watch?v=o3e3w48rZrw&t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kvNP54Usc1On51kHceanFKhw-P9ysmWG




그로부터 한 달 여 후, 82년 11월에 콜린스는 그의 솔로 2집

Hello I Must Be Going을 발표한다. 데뷔 앨범에서 촉발한

우울 결혼 생활 백서의 분위기가 이어지는 작품이었다. 더블

플래티넘을 넘고 영미 앨범 차트 탑텐에 들었지만 전작의 In

the Air Tonight만큼 임팩트 강한 싱글이 없었다.



그래도 Don't Let Him Steal Your Heart AwayWhy

Can't It Wait 'Til Morning처럼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발라드가 전체 트랙의 완성도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과거

슈프림즈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You Can't Hurry Love

이르면 그모타운R&B 작법에서 받은 영향을 느낄 수

있고 영국 차트 탑에 오르는 등 가장 크게 히트친 싱글이 된다.



히트와 상관없이 팬덤과 평단이 극찬한 트랙은 I Don't Care

Anymore. In the Air Tonight에서 연결되는 정서가 강한

비트에 실려 폭발한 수작 싱글이었다. 이 노래로 솔로 아티스트

자격으로는 생애 최초로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지명되었다.



(Hello, I Must Be Going!)



('You Can't Hurry Love' from Hello I Must Be Going, 1982)

*약간 깨방정이신데 이건 60년대 슈프림즈를 따라 한 것.



('I Don't Care Anymore' from Hello I Must Be Going, 1982)

*베이시스트 Mo Foster가 Moog Taurus를 손으로 연주한다.



('Don't Let Him Steal Your Heart Away' from Hello I Must Be Going, 1982)

https://www.youtube.com/watch?v=b2W-lxDq4-Y


('Why Can't It Wait 'Til Morning' from Hello I Must Be Going, 1982)

https://www.youtube.com/watch?v=1sjkge59ndw




이들은 83년에 열두번째 정규 앨범 Genesis로 돌아온다.

그렇다.. 그때까지 데뷔 앨범에서도 셀프 타이틀을 쓴 적이

없었는데, 이는 수록한 전 트랙을 멤버들이 공동 작곡으로

만들었음을 시사하는 의도였지만, 평론가들은 이제 이들이

본격적인 팝락 밴드로서 재도약한다는 뜻이라고 우겼다.



전작의 성공을 또 뛰어넘은 앨범이었다. 영국과 독일의 앨범

차트에서 을 찍고 유럽 4개국에선 2위를, 미국 차트에선

9위를 기록한다. 그때까지 가장 큰 싱글 히트이던 Follow

You Follow Me를 뛰어넘어, Mama라는 세계구급 히트

싱글이 영국 등 9개국에서 탑텐에 들었고 미국의 핫100

차트에선 That's All이 최초로 탑텐에 드는 성공이었다.



이밖에 Home by the Sea, Illegal Alien, Taking It

All Too Hard가 싱글로 커트되어 현재까지 스테디셀러

인기를 누리고 있다. (물론 한국 시장이 이 성공을

좇아가는 데엔 아직 시간이 걸리고 있었지만.)



밴드가 자체 보유한 스튜디오에서 창작과 녹음 전체를

편안하게 진행한 첫 앨범으로서 라디오 친화적인 대중적

소프트락으로 채워진 작품이었다.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거부감 없는 이들인지라 Linn LM-1, Simmons SDS-V,

ARP Quadra, Sequential Circuits Prophet-10E-mu

Emulator 등 첨단 장비를 적극적으로 선보였다. 콜린스

이제 드러밍보다 드럼 머신에 더 재미를 들여가고 있었고.



(Genesis)



('Mama' from Genesis, 1983)

*당시 Tony Banks가 쓰던 악기를 샅샅이 살필 수 있다.



('That's All' from Genesis, 1983)



('Home by the Sea' from Genesis, 1983)



('Illegal Alien' from Genesis,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pKWyJOz1rUU


('Taking It All Too Hard' from Genesis,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l-dSgRGFVYU



(Linn LM-1)



(Simmons SDS-V)

*물론 세트 뒤 연주자는 빌 브루포드.



*이 시기 Tony Banks의 gear set.




84~86년 기간은 지금까지 상술한 제네시스고 뭐고 모든

활동 성과를 갈아엎어 역사를 새로 쓸 만큼 명실상부한

콜린스의 최전성기였고 그는 원탑이었다. 대등한 경쟁자

해봐야 마이클 잭슨이나 프린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정도?

그 외엔 다 쩌리 취급 받던 초대박 호시절이었지.



84년 3월테일러 핵포드가 연출하고 제프 브리지스

레이첼 워가 주연한 어덜트 스릴러 영화가 개봉하는데

래리 칼튼미셸 콜롱비에가 주도한 사운드트랙의 전체

스코어와 상관없이 몇몇 가수가 삽입곡 작업에 참여했다.

이 중 필 콜린스가 자작곡 발라드를 제공하는데... 두둥..



Against All Odds (Take a Look at Me Now).. 80년대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팝 음악의 고전이 되어버린 명 발라드가

이렇게 탄생해 버린다. 콜린는 생애 최초로 핫100 차트 탑

오르고 싱글골드를 기록하며 인생 첫 그래미 상을 이 곡으로

받게 된다. 말이 필요 없다. 듣고 가자.



('Against All Odds' from eponymous soundtrack, 1984)



이 정도 명곡이라면 예상들 하겠지만 그 해 아카데미 어워드

당연히 주제가상 후보로 올랐다. 그런데 담당PD 왈, 콜린스

그렇게 대단한 가수인지 몰랐다네. 하여 본인 섭외 안 하고 왠

뮤지컬하던 여자 연예인에게 립싱를 시키는 엄청난 무대를

만들고 만다. 역대 최악의 주제가상 공연으로 지금도 악명이

높았던 해프닝.. 노래라도 잘 했으면 또 몰라..



한국 시장에서 필 콜린스라는 가수를 처음으로 인지하기

시작한 곡으로 기억하며 지금까지 대표 히트곡이기도..



*Against All Odds at Oscar Ceremony, 1985



(Against All Odds, single)



*영화 속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노래.


('Against All Odds' by Mariah Carey, 2000)

https://www.youtube.com/watch?v=Dc3YAINjlyE




앞에서도 서술했지만 콜린스얼쓰 윈드 앤 파이어

인연이 깊다. EWF 출신 명 보컬리스트필립 베일리

84년 11월에 자신의 솔로 앨범 Chinese Wall을 들고

나왔는데, 여기에 콜린스와 함께 한 듀오 튠을 싱글로 낸다.



R&B 돋는 또 하나의 명곡 Easy Lover. 본래 EWF

당연하고 콜린스 역시 R&B로 한가닥 하는 양반인지라

두 사람의 조합은 완벽했다. 콜린스드럼 세션은 덤.

한국엔 이 앨범이 정식 발매되지 못해서 당시에 라디오

방송 녹음해서 듣고 다니던 팬이 참 많았다고..



11월 25일엔 밥 겔도프 도우러 바쁘게 달려와서 Do They

Know It's Christmas드럼 파트를 도맡아 연주했다.

참고로 이 곡 베이스듀란듀란존 테일러 솜씨. 저명한

싱글은 12월초에 발매되어 라이브 에이드로 이어진다.



(Easy Lover, single)



('Easy Lover' by Philip Bailey & Phil Collins, 1984)




(Do They Know It's Christmas, single)



('Do They Know It's Christmas' by Band Aid, 1984)




이 시기 사실 콜린스도 세번째 솔로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고

85년 1월에 발매한다. 역사상 가장 히트한 앨범 중 하나로

기록된 80년대 명반 중 하나, No Jacket Required. 두둥.

그래머 어워드의 4개 최고 수상 부문 중 명실상부한 대상은

역시 올해의 앨범상, Album of the Year일텐데 86년도

그래미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된 작품이 바로 이 앨범.



전세계 누적 판매고가 무려 2천 5백만 장에 달해 미국 시장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았고 영국, 미국, 캐나다 등 9개국에서

차트 탑을 찍었으며 SussudioOne More Night미국

핫100 차트 탑에 오른 두 싱글은 각각 골드를 기록했다. 객관

지표를 대략만 훑어도 이 정도..



본 앨범의 진정한 가치는 뉴웨이브, R&B, 어덜트 컨템포러리

등 80년대를 대표하는 모든 음악적 요소를 집대성한 명작이란

점. 그래미에서 경쟁도 했거니와 이 정도 완성도의 동년 발매

경쟁작Brothers in Arms, We Are the World, Whitney

Houston, Born in the U.S.A. 정도 꼽을 수 있을 뿐이다.



본 블로그에서 계속 쓰는 표현이지만 버릴 곡이 없는 앨범

몇 차례 짚은 적 있고 본작도 마찬가지이다. 전술한 메가히트

두 싱글 뿐 아니라 Don't Lose My Number, Take Me Home

등 추가 싱글에 Long Long Way to Go, Who Said I Would,

Inside Out 등 다른 많은 트랙들도 평단으로부터 골고루 극찬을

들은 바 있다.



콜린스와 오랜 시간 함께 할 세션들도 대거 등장한다. 전곡의

기타는 대릴 스투머가 쳤고 One More Night코다 색소폰

파트는 돈 마이릭의 솜씨이다. Take Me Home에서 백킹

보컬은 무려 스팅피터 가브리엘(!)이 손수 도와줬다.



한 가지 더.. 신디 로퍼가 86년에 마돈나트루 경쟁을 벌일

때 8월에 낸 싱글 True Colors엔 누구나 들으면 알아차릴

드럼 머신시그니처 프레이즈가 등장하는데, 이 작업에

콜린스가 도움을 줬다 한다. 이 시절 드럼 머신 프로그래밍

있어서는 당대 최고였던 것 같다.



(No Jacket Required)



('Sussudio'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제목 단어는 뜻 없이 지어낸 말. Prince의 1999과 유사하단 비판도 받았다.



('One More Night'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멋진 색소폰은 Phenix Horns 출신 Don Myrick의 솜씨.



('Take Me Home'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Don't Lose My Number'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Who Said I Would'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90년 베를린 투어. 백킹 밴드 실력이 가장 빵빵할 때의 라이브이다.



('Long Long Way to Go'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https://www.youtube.com/watch?v=M-7LOzT73PU


('Inside Out' from No Jacket Required, 1985)

https://www.youtube.com/watch?v=QiwGEWmpUuQ




('True Colors' by Cyndi Lauper, 1986)

*86년 핫100 차트에서 2주간 탑을 찍었다.



(True Colors, single)




본래 마이크 러더포드는 80년과 82년에 자신의 솔로 앨범

낸 적 있다. 그냥 냈다는 의미 정도 부여할 수 있을 뿐, 사실상

성과는 그저 그랬음이 사실이다. 왜일까. 그는 스스로 깊게

고민을 거듭하여 자신이 개인 작업보다 밴드 안에서 타인과

교감하는 과정에서 더 효율적인 뮤지션임을 깨닫는다. 하여

제네시스와는 다른 궤도선상의 사이드 프로젝트 밴드를 따로

결성하니, 곧 마이크 앤 더 미케닉스M+TM 출현하게 된다.



제네시스 뿌리에서 파생한 또 하나의 성공적 액트, Mike +

The Mechanics. 85년 10월에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

내놓는데 러더포드의 솔로 앨범과 비교도 안 되는 성공을

거둔다. All I Need Is a Miracle, Silent Running

두 곡의 핫100 탑텐에, 미국 탑40 히트곡 Taken In까지

배출하며 앨범 자체는 골드를 기록한다.



All I Need~폴 캐랙, Silent Running폴 영이 각각

보컬을 맡았는데 M+TM목소리를 두 명으로 이끌고

가는 특이한 체제이다. 가볍고 대중적인 곡은 캐랙이, 더

헤비하고 진중한 곡은 이 부르는 구성이라고. - 여기서

말하는 폴 영은 유명한 56년생 가수와는 동명이인이다.

Every Time You Go Away 아니라고..



필 콜린스도 85년 솔로 투어를 마치는 와중에 영화 White

Nights, 백야의 사운드트랙을 녹음하여 Separate Lives

제목으로 11월에 발표했는데 미국 핫100 차트 에 오르는

성공을 거둔다. 음색이 매력적이며 나중에 데이빗 포스터와도

작업을 한 미국 여가수 마릴린 마틴의 듀엣이었다.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제네시스 사운드 메이킹의 핵심인

멤버가 사실 토니 뱅크스임에도, 희한하게 그는 모든 멤버를

통틀어 솔로 프로젝트 성적이 가장 신통치 않았다. 80년대

중반엔 주로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작업하곤 했는데 몇몇 곡을

모아 86년 3월에 앨범을 내기도 했다. Soundtracks.



(Mike + The Mechanics)



(Soundtracks)



 (White Nights)



('All I Need Is a Miracle' by Mike + The Mechanics, 1985)



('Silent Running' by Mike + The Mechanics, 1985)




멤버들이 솔로 활동에 열을 올리면 밴드 전체 작업엔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 일반적일 텐데, 제네시스 이상하게

그 반대라고. 밖에서 받은 음악적 자극이 안으로 모여 새롭게

융합하고 폭발한 것. 그 증거가 86년 6월에 발표한 정규

13집 앨범 Invisible Touch였다. 또 두둥.



세 사람이 다 함께 스튜디오에서 잼 세션을 통해 프레이징

발전시키는 작업 방식이 전작에서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두었는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외부 환경에서 받은 다양한 음악적인

센스가 최고조에 달해 있던 이 자신만만한 뮤지션들은, 6x

플래티넘영국 차트 탑 및 미국 차트 3위의 앨범을 빚어낸다.



버릴 곡 없는 앨범이 한 장 더 나온 셈이었다. 타이틀 트랙

Invisible Touch가 밴드 디스코그래피 사상 최초로 핫100 차트

에 올랐고 Throwing It All Away가 4위, In Too Deep이 3위,

Land of Confusion이 4위, Tonight Tonight Tonight이 3위에

오르는 등 초대박이었다. 70년대 대곡 시절을 떠올리게 할 만한

Domino는 유난히 팬덤이 열광하는 트랙이었고.



바야흐로 제네시스의 전성기, 커리어의 절정이었다. 음악이 너무

상업적이고 필 콜린스 솔로 앨범과 차이가 뭐냐는 비판도 있긴

했으나 그래미 어워드 수상 등 호재도 함께 찾아오고 있었다.

80년대 최고의 앨범 중 하나로서, 이러니 저러니 해도 꼭 한 번

들어보면 결코 밑지는 장사 아닐 게다. 86년 9월에 시작해 87년

7월에 끝난 월드 투어는 역대 최대 규모였고, 이후 이들은 약

5년간 동면에 들어간다.



(Invisible Touch)



('Invisible Touch' from eponymous album, 1986)



('Throwing It All Away' from Invisible Touch, 1986)



('In Too Deep' from Invisible Touch, 1986)



('Land of Confusion' from Invisible Touch, 1986)

*캐리커처 퍼펫이 등장하는 뮤비가 당시 엄청난 화제였다. 서구에서..



('Tonight Tonight Tonight' from Invisible Touch, 1986)



('Domino' from Invisible Touch, 1986)

https://www.youtube.com/watch?v=uFXY7Et6pQ4




이미 언급했지만 이 분 원래 배우 출신이다. 어떤 대본을

들이대도 기본기는 하는 연기자란 뜻. 88년말에 느닷없이

버스터라는 범죄물 코미디 영화에 주연으로 등장하셨을

때 놀란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건 80년대 이후 뒤늦게 팬이

된 때문일 거고.



그해 9월에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발매되는데 여기서도

싱글 히트를 두 곡이나 기록한다. Two Hearts는 미국

핫100 탑그래미골든글러브 어워드를 수상했고

65년 곡을 커버한 발라드 Groovy Kind of Love

역시 핫100 탑영국 차트 2위를 찍는다.



빌리 엘리어트맘마 미아로 유명하신 영국의 좋은

배우 줄리 월터스와 공연하셔서 연기도 괜찮았다고.

이땐 정말 뭘 해도 다 되는 마이더스 터치의 시대셨다.



한 달 정도 앞서 러더포드M+TM의 가장 큰 싱글 히트

The Living Years를 발표해 핫100 차트 탑을 기록하는

깜짝 성공을 거두기도. 두 사람의 프로젝트가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듯했다. 폴 캐랙이 리드 보컬을 맡았다.



(Buster)



('Two Hearts' from Buster, 1988)



('A Groovy Kind of Love' from Buster, 1988)



('The Living Years' by Mike + The Mechanics, 1988)

*가사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화해를 이루지 못한 아들의 풍수지탄.



전작의 대성공 후 약 5년이 좀 못 되어 솔로 4집으로 더

성숙해진 ...But Seriously가 89년 11월에 발매되고

필 콜린스의 명성이 90년대까지 이어지는 데에 탄탄한

발판으로 작용한다. 영미를 포함 15개국 앨범 차트에서

을 기록한 또 하나의 역작.



일렉트로닉에서 조금 거리를 두어 어쿠스틱소울

방향타를 바꾼 흐름은 이 앨범부터 시작된다. Hang in

Long Enough, Something Happened on the Way

to Heaven 등 트랙이 R&B재즈의 뿌리에 천착하는

그의 여전한 성향을 보여준다.



Do You Remember, That's Just the Way It Is 같은

트랙은 그만의 어덜트 컨템포러리가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가 보여준 수작이었는데 다소 자기 복제 되어가지

않나 하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에릭 클랩튼이 세션에 참가한 I Wish It Would

Rain Down이나 핫100 차트 에 오르고 그래미 올해의

레코드를 수상한 Another Day in Paradise의 성숙한

음률에는 모두가 공감했다.



Colours - 남아공, Another Day~ - 미국, That's Just

the Way~ - 북아일랜드 등 각국 정치 상황을 고찰하는

트랙이 유난히 많은 앨범이다. 하지만 보수당 지지자라는

오해도 받아왔거니와 그의 성찰적 시각엔 한계가 뚜렷하다는

비판에 또한 직면했다. 무엇보다 팬덤이 그에게 기대하는

것이 이런 면이라 볼 수 있을까. 피터 아니잖.



(...But Seriously)



('Another Day in Paradise' from But Seriously, 1989)

*워싱턴DC 뒷골목의 노숙자 문제를 다룬 가사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I Wish It Would Rain Down' from But Seriously, 1989)

*에릭 클랩튼이 출연하셔서 대사에 연기까지...



('Something Happened on the Way to Heaven' from But Seriously, 1989)

*어느 개 한 마리의 시점으로 구성한 재미있는 뮤비이다.



('Do You Remember' from But Seriously, 1989)



('Hang in Long Enough' from But Seriously, 1989)

*타이타닉 영화를 패러디했는데 이땐 카메론 작품이 나오기 전이다.


('That's Just the Way It Is' from But Seriously, 1989)

https://www.youtube.com/watch?v=zP7pgInSybI




91년이 되어 제네시스로 다시 돌아온 콜린스와 그들. 14집

We Can't Dance4x 플래티넘을 기록하고 영국 차트 탑,

미국 차트 4위를 기록하는 제네시스의 여전한 브랜드

파워를 입증했지만 전작만한 성공작은 결코 아니었다. 락

씬의 지형이 바뀌어 더 이상 첨단의 감각이라고 인정받을

만한 상황이 아닌 거다.



다양한 장르 배경을 가지면서도 희한하게도 블루스 계열

영향이 빈약한 제네시스였는데 I Can't Dance는 희미한

흔적을 남기며 영미 싱글 차트 탑텐까지 오른다. No Son

of Mine영국 차트 탑텐에, Hold on My Heart,

Never a TimeJesus He Knows Me 등 싱글이

그밖에 각광을 받았다.



(We Can't Dance)



('I Can't Dance' from We Can't Dance, 1991)



('No Son of Mine' from We Can't Dance, 1991)



('Hold on My Heart' from We Can't Dance, 1991)

https://www.youtube.com/watch?v=V4pLqznEe3I


('Never a Time' from We Can't Dance, 1991)

https://www.youtube.com/watch?v=21Zw22g36JI

*팬이 만든 헌정 동영상으로 추정된다.


('Jesus He Knows Me' from We Can't Dance, 1991)

https://www.youtube.com/watch?v=35K6vQRt67g



솔로 앨범 전작들이 모두 영미 차트 탑텐을 벗어난 적이

없었으니 미국 차트 13위까지 오른 것이 최고 기록인

93년 11월의 5집 Both Sides는 확실히 그의 하락세를

방증하는 결과일 거다. - 영국과 독일 등지에선 그래도

여전히 앨범 차트 탑에 올랐다. 그래도 필 콜린스니까

이렇게 폄하라도 할 만한 거겠지.



하지만 성숙한 소프트락 일변도의 본작에서 예전에 보던

재기발랄한 젊은 감각이 들리지 않는다는 점만은 진실에

가까워 보인다. 성숙하지만 어딘가 진부하게 들린다는..

그도 이제 나이를 먹었음을 Both Sides of the Story,

Everyday, We Wait and We Wonder 등 트랙에서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그러나 명심하시라. 그는 필 콜린스이다. 신곡의 행보가

예전만 못 하다는 것일 뿐 전작들의 성과가 누적되어 한껏

폭발하는 종합 성적표는 결국 투어의 성패에 달려 있으며

80년대부터 90년대에 걸쳐 여전히 그는 음악계 정상급의

공연 아티스트이다. 티켓 파워는 여전하고 거듭 말하지만

그를 능가할 만한 가수는 많지 않다.



그리하여 솔로 투어에 더 집중하기 위해 96년 3월 결국

그가 제네시스를 탈퇴한다. 뱅크스러더포드는 새롭게

레이 윌슨을 발탁하여 15집 Calling All Stations

발매하지만... 대차게 말아먹는다. 사람들은 바야흐로

깨달았다. 제네시스는 여기까지로구나 하고..



점점 나이를 먹은 콜린스의 솔로 작업도 투어가 여전한

흥행일 뿐 신보는 그저 그런 단계로 접어들어간다. 단,

99년에 디즈니 애니메이션 타잔의 주제가로 발표한

You'll Be in My Heart의 성공은 눈여겨볼 만하다.

2000년 아카데미에서 그에게 유일한 오스카를 안긴다.

사람들이 모두 라이온킹에서 엘튼 존이 해낸 역할을

기대하고 있었고 그는 이에 부응한 것.



(Both Sides)



('Both Sides of the Story' from Both Sides, 1993)



('You'll Be in My Heart' from Tarzan, 1999)



('Everyday' from Both Sides, 1993)

https://www.youtube.com/watch?v=xQpsXA36uq4


('We Wait and We Wonder' from Both Sides, 1993)

https://www.youtube.com/watch?v=52NbxxVUGzk



(Calling All Stations)




본 블로거가 필 콜린스제네시스의 오랜 광팬이기도 하고

제네시스의 음악사가 워낙 광대한 변화와 끊임없는 발견이

응집된 총체인지라 이번 포스팅은 할 이야기가 참 많았다.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부득이하게 줄이고 삭제한 내용이

꽤 많았음을 살짝 밝힌다.



앞에도 언급했지만 솔로 활동에서 별 재미를 못 본 토니

뱅크스야말로 역설적으로 제네시스 사운드의 코어라고 본다.

마이크 러더포드콜린스의 솔로 커리어만 훑어 보더라도

얼마나 재능있는 뮤지션들이 오랫동안 뭉치고 엮여 창의적인

시간을 함께 했는지 느낄 수 있으리라 본다.



장대한 인생의 여정에서 다섯 사람이 서로 독립적인 결정을

내리고 각자의 길을 걸어오기도 했으나 그들 서로가 느껴온

신뢰감은 근본적으로 변한 적이 없다. 아래 링크에서 다시

한 번 그 점을 확인하고 오해들 풀기 바란다.



연예계에 만연한 여러 풍문과 몰이해의 중심에 휩싸이기도

했던 콜린스의 인생과 음악이었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가수, 작곡가, 프로듀서, 연주자로서 그의 가치는

많은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라고 믿는다.



*피터 가브리엘이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 불참한 이유

- 새 앨범 리허설 때문에 바빠서. 서로 사이는 괜찮다.

https://www.billboard.com/articles/news/959216/genesis-says-peter-gabriel-missing-rock-hall-induction-is-no-snub


*명예의 전당 운영진의 공식 입장:

https://www.rockhall.com/inductees/genesis



(ARP Quadra)


(Sequential Circuits Prophet-10)


(E-mu Emulator)






(Separate Lives, single)




본 블로거는 너무나 많은 필 콜린스의 작업물들을 일생에

걸쳐 접해왔다. 추천할 트랙이 참 많지만 인생 노래라고

생각하는 Separate Lives를 빼놓고는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덜트 컨템포러리 프로듀서로서 콜린스의 재능이

극에 달하던 때 나온 최고의 히트곡이며 투어에서도 여러

다양한 버젼으로 많은 백킹 보컬리스트들과 연주해왔다.



원곡을 소화한 마릴린 마틴은 80년대 중반에 솔로로 나서

일본 프로모션도 소화하는 등 불타 올랐었지만 그뿐이었고

지금은 음악계에서 은퇴하여 공인 중개사로 사신다 한다.

Stealing Home이라고 컬트적 인기를 누려온 88년 영화

주제가로 많은 매니아 팬을 거느려 오기도. 추억의 첫사랑.



('Separate Lives' by Marilyn Martin & Phil Collins, 1985)

https://www.youtube.com/watch?v=vmMinSOWKQk

*공식 뮤직 비디오는 이쪽. 화질음질 좀 업글해 달라..



('And When She Danced' by Marilyn Martin & David Foster, 1988)

https://www.youtube.com/watch?v=JzEB_V8qg04

https://www.youtube.com/watch?v=1f4HaTgcfQ8




이 곡의 가사는 헤어진 연인 또는 이혼한 부부 사이 이야기.

남자의 호텔 방에 여자가 전화 와서 새로 연애를 시작했다고

전하며 애틋한 옛 감정을 토로하는 내용이다. 여러 아름다운

버젼이 있는데 팬덤에서 가장 충성도가 높은 두 가지 라이브

아카이브를 아래에 강추로 링크하며 금번 포스팅을 마친다.




('Separate Lives' from White Nights, 1985)

*작곡은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Stephen Bishop.



*90년경 투어. 유명한 백킹 보컬리스트 Bridgette Bryant와 함께.

**원곡에 대한 새 해석이 시작된 버젼이라 하며 팬덤의 인기가 높다.



*97년 파리 투어에서 Amy Keys 및 Arnold McCuller와 함께.

**원곡 가수를 왠지 쩌리 만들어 버린 어마무시한 두 백킹 보컬리스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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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현대 미국의 대중음악을 규정하는 시대의 보스.

대통령도 FBI국장도 연준위원장도 아이비리그

종신교수도 실리콘밸리 창업자도 아니지만 모든

미국인이 존경과 찬사를 보내는 극강의 존재.



한국으로 치면 송창식, 김현식, 김광석 정도로

치환할 수 있기에 국내 울타리에서 이분을 제대로

해석하고 접근해 즐기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비록 한국에서 지명도는 높지 않지만 음악사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분인지라 용감하게 포스팅하련다.

미국 대중음악의 보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Bruce Springsteen이시다. (1949~)











('Born in the U.S.A.' from eponymous album, 1984)



('Born to Run' from eponymous album, 1975)



('Hungry Heart' from the River, 1980)

*젊을 때만 해도 좀 잔망스런 스테이지 매너를 즐기셨다.



 (Born to Run)




송창식, 김현식, 김광석.. 이분들이 왜 훌륭한지

배경 지식 전혀 없는 외국인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걸 어떻게 말로 설명해.. 그냥 들어봐, 정도

멘트 말고는 별 말 안 나오지 않나.



보스라는 별명의 이분이 미국인에게 가지는 위상은 대략

이런 위치이다. 어느 순간 가슴 속에 절절하게 찾아든

존재감으로 말로 수식하지 않고 그냥 느끼는 존재..?



50년대 후반 이후 출생한 대부분 미국인들이 그의 영향력

하에 있다고 보면 대략 옳다. 아 물론, 내륙 중서부 러스트

벨트 백인들로 한정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딴지 거는

사람도 계시겠지만. 그의 성향 자체가 인종을 초월한

진보이기에 사실 딱히 그러하지도 않다고 본다만.



 (Darkness on the Edge of Town)



('Badlands' from Darkness on the Edge of Town, 1978)



('Dancing in the Dark' from Born in the U.S.A., 1984)



('Glory Days' from Born in the U.S.A., 1984)



(accordion)


(calliope)




보스가 설파하는 가사의 철학, 즉 저지 쇼어 지방의

토착 문화와 현지 서민 삶의 생생한 단편... 여기에다

그들의 삶에서 파생한 저지 쇼어 사운드란 서브장르...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출발점은 여기서부터 잡아야 한다.



Jersey Shore.. 뉴저지 주의 대서양 연안 해안가 지구

가리키고 놀이공원 등 관광 명소와 특히 유서깊은 라이브

음악 클럽이 위치한 곳인지라 이곳을 거쳐간 뮤지션들이

부지기수이며 그들을 통해 Jersey Shore Sound

서브장르가 꽤 오래 전부터 생성 발전하였다.



 (glockenspiel)




블루스소울 같은 대중음악 뿐 아니라 이탈리아계 이민자

집단의 근현대 속악에서 영향을 받아 발전한 서브장르 가리켜

저지 쇼어 사운드라 하는데, 쇼어지구 위락시설에서 아코디언,

글로켄슈필칼리오페 같은 악기로 연주되던 춤곡 형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E스트리트 밴드 스코어의 중심축이 키보디스트

명의 역할로 자리잡은 배경이 바로 이런 지역 음악 특성 때문.



*글로켄슈필을 라이브에서 연주할 땐 실로폰처럼 말렛을 들고

타악기 형태로 하지 않고 위와 같이 첼레스타 케이스에 넣어서

건반악기 형태를 채택했다. 그런 이유로 키보디스트들이 연주를

도맡아 한 것. 위 Badlands 라이브 비디오 중간에도 Hammond

오르간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The River)



('Brilliant Disguise' from Tunnel of Love, 1987)



('Streets of Philadelphia' from Philadelphia OST, 1993)



('Nebraska' from eponymous album, 1982)




 (Nebraska)




사실상 대개의 미국인들이 보스의 음악에 마음을 쏟는 요인은

음악의 형식보다 진심을 가득 담은 가사에 있는 것이라 하겠다.

가사의 중심 내용으로서 쇼어지구에서 성장한 언더독 세대의

소외감이나 좌절감 또는 낭만적 정서를 대단히 서정적으로

표현하는데 탁월한 점이야말로 보스의 엄청난 매력이다.



스프링스틴 가사의 특징으로 일정한 서사성을 갖춘 완결된

스토리텔링 구조를 빼놓을 수 없다. 어떤 노래를 듣든지간에

그 안에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완성된 이야기가 있어

소외된 평범한 미국 서민들에 공감할 구조를 제공하는 것.



 (Born in the U.S.A.)




Born to Run웬디, Thunder Road메리, Nebraska

살인마 찰스, Tenth Avenue Freeze-Out배드 스쿠터,

Badlands의 재수 옴붙은 남자, Rosalita로잘리타, The Ties

That Bind의 가련한 여인, Independence Day의 아버지와

아들, 4th of July Asbury Park샌디 등 미국 음악사상

유명한 캐릭터가 죄다 그의 음악에 나온 인물들이다.



이 중엔 보스 본인이 창조한 캐릭터도 있고 다른 이야기에서

끌어온 주인공도 있다. 공통점은 미국의 현대사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소수자들이란 점. 평범한 음악 팬들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소구점이 창작자의 이런 배려에 있는 셈이다.



 (Tunnel of Love)



('Tenth Avenue Freeze-Out' from Born to Run, 1975)



('Independence Day' from the River, 1980)



('The Ties That Bind' from the River, 1980)



(Human Touch)




항상 어깨에 Fender Telecaster를 들쳐매고 통기타

가득 찬 음악을 평생에 걸쳐 불러온 점은 전술한 한국의

가객들과 묘한 공통점이 있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몰라서

그렇지, 세 가객들 기타 솜씨는 가히 명불허전이다. 특히

한창 때 송창식 선생의 라이브 실력은 까무러칠 수준.)



스프링스틴의 음악은 어쿠스틱 기타 또는 피아노백킹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full편성 밴드가 연주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인지하며 듣지만 왠지 머리 속으로 밴드를 지우고

기타 스트러밍을 치환하여 연상케 하는 작용을 한다고 할까.



(Fender Telecaster)




아마도 그의 철학이 구상하는 하트랜드 락이란 장르의 기본

밑그림이 어쿠스틱 악기의 심플한 백킹을 바탕으로 초기 락앤롤,

블루스컨트리, 포크, 소울의 정신을 구현하는데 있었던 듯.



밥 시거,  페티, 존 멜런캠프, 존 포거티, 멜리사 에쓰리지

등 같은 장르를 다져온 선후배들이 그러했듯이.. 하트랜드

말엔 내륙이나 중심지 말고도 미국인의 진심에 다가선다는

뉘앙스도 있을 터이니. - 모두 한국에서 지명도가 떨어지는

가수들이란 공통점도 공유하는군.



('My Hometown' from Born in the U.S.A., 1984)




또한 밴드 음악을 접근하는 그의 독특한 어프로치와 관련도

다. 스튜디오 레코딩에서 메기타는 항상 보스 자신이

친다.. - 이거 깨닫지 못한 사람이 은근 많지만. 기본적인

리프어프로치는 본인이 작곡을 통해 창조하는 것이다.

리더로서의 기본 소임이랄까.



하지만 기타리스트로서의 에고를 지나치게 고집하지 않고

나머지 상당 부분 어프로치를 세션 밴드 멤버들에게 넉넉히

일임한다는 점이 다른 일반적 리더들과의 차이점인 것 같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50~90% 이상 지분을 차지하며 그의

음악을 채워온 오랜 동반자는 그 유명한 E스트리트 밴드.



('The River' from eponymous album, 1980)




계에서 가장 유명한 백킹 밴드의 구심점은 음악사에 길이

빛나는 몇몇 연주자들. 키보디스트 로이 비턴 대니 페데리치,

드러머 맥스 와인버그, 색소포니스트 클레런스 클레먼스 등이다.

베이시스트 게리 탤렌트 기타리스트 닐스 로프그렌까지도.



나중에 연기를 겸업하신 기타리스트프로듀서 스티븐 밴 잰트

(소프라노스에 나오신 그분)에, 이스라엘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수키 라하브, 초기엔 키보디스트 데이빗 생셔스 계셨지. 물론

보스의 아내가 되신 보컬리스트 패티 스캘퍼도 잊으면 안 된다.

어떻게 이런 보석같은 멤버들을 다 끌어모을 수 있었을까.



('Cover Me' from Born in the U.S.A., 1984)



('Atlantic City' from Nebraska, 1982)




(Bittan & Federici)




세션 멤버들 중 버팀목 역할을 하는 사람은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한 49년생 로이 비턴. 비턴페데리치 두 분프레이징

사운드를 채우는 형식론이야말로 보스 음악의 핵심적 어프로치

기법이다. 본래 70년대 초반까지 저명한 데이빗 생셔스 그

역할을 수행하다 대체 멤버로 뿌리를 내린 연주자가 비턴이다.



디지털 드림 도어 키보디스트 랭킹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는 로이

비턴그렉 올맨, 맥스 미들턴, 니키 홉킨스, 척 리벨, 빌리 파웰,

이언 맥레건 등 동시대 컨트리-블루스 연주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뿐 아니라 루츠 음악에 뿌리를 둔 어프로치를 몇 세대에 걸쳐

꾸준히 발전시켜온 동종업계의 명인으로 높게 평가받는다.



(Yamaha Concert Grand)



특유의 맑고 깔끔한 톤 때문에 라이브에서 로이 비턴Yamaha

Concert Grand를 즐겨 사용하는 것은 이젠 널리 알려진 뒷얘기.

글로켄슈필이란 악기로 독특한 뉴저지 사운드를 메이킹하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다.


(Digital Dream Door's ranking on 100 Rock Keyboardists)

https://digitaldreamdoor.com/pages/best_keyboard.html


(Top 10 Roy Bittan & Bruce Springsteen tracks)

http://ultimateclassicrock.com/roy-bittan-bruce-springsteen-songs/



('She's the One' from Born to Run, 1975)



 (Weinberg)




라이브마다 무대 정중앙에 보스의 등뒤로 이글거리는 눈빛을

쏘며 한치의 오차없는 비트를 공급하는 51년생 맥스 와인버그

역시 밴드의 심장처럼 중한 멤버이다. 99년 락앤롤 명예의 전당

헌액 연설에서도 보스가 가장 신임하는 동료로 극찬하였다.



롤링 스톤 매거진의 드러머 랭킹에서 55위, 디지털 드림 도어

락드러머 랭킹에서 46위를 차지할 정도로 와인버그에 대한

객관적 평가도 넘쳐난다. Born in the U.S.A. 트랙 인트로

청자의 심장에 바로 내리꽂는 스네어 파운딩 비트는 최고의

상징적 업적으로 음악사에 영원히 빛나리라 의심치 않는다.



코난 오브라이언투나잇쇼에서 열심히 추임새 음악 넣던

바로 그분 맞다. E스트리트 밴드 활동과 죽 겸업하셨다고.

덕분에 미국 젊은 층에게도 인지도가 높으시다네.


(Rolling Stone Magazine's 100 Greatest Drummers)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drummers-of-all-time-77933/max-weinberg-142591/


(Digital Dream Door's ranking on 100 Rock Drummers)



('Prove It All Night' from Darkness on the Edge of Town, 1978)



(Clemons)




영원한 '빅맨' 42년생 클레런스 클레먼스E스트리트 밴드

같은 연주자이다. 덩치도 남산 만한 다 큰 어른께 마스코트

..라 칭하기는 좀 그렇지만 주로 테너 색소폰으로 드라마틱한

선율을 뽑아 리드하는 그의 솔로 프레이징보스 음악의

시그니처 톤이 아니라 할 수 없다.



한국에서 인지도는 안습이지만 Born to Run색소폰

솔로 파트는 미국 등 전세계에서 수십 년간 초대박 인기로

대중의 기억에 오래 각인된 히트 선율이다. 한국으로 치면

Careless Whisper 급인 건데 외국에선 제리 래퍼티

Baker Street와 함께 색소폰 하면 떠오르는 명곡이라고.

그 유명한 파트 연주를 하신 분이 바로 클레먼스인 것.



안타깝게도 11년에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신지라 이제 더

이상 클레먼스의 시원한 연주를 들을 수 없다. RIP..


(Top 10 Clarence Clemons & Bruce Springsteen tracks)



('Baker Street' by Gerry Rafferty,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Fo6aKnRnBxM


('Careless Whisper' by George Michael, 1984)

https://www.youtube.com/watch?v=xQ9KuQQDEow



('Jungleland' from Born to Run, 1975)



('The Promised Land' from Darkness on the Edge of Town, 1978)



('I'm on Fire' from Born in the U.S.A., 1984)



('I'm Goin' Down' from Born in the U.S.A., 1984)




 (Greetings from Asbury Park, N.J.)


 (The Wild, the Innocent & the E Street Shuffle)




그가 처음부터 보스는 아니었고 73년 1~2집까지는 무한한

포텐셜만 인정될 뿐 상업적 성공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도

몇몇 트랙은 평론가들로 하여금 파릇파릇한 신인의 음악성이

만만히 볼 수준이 아님을 강조하기엔 충분했다.


('Blinded by the Light' from Greetings, 1973)

https://www.youtube.com/watch?v=j9Kl3HvJ7os


('4th of July, Asbury Park - Sandy' from the Wild the Innocent, 1973)

https://www.youtube.com/watch?v=PttLzg-z7Qk


('Rosalita - Come Out Tonight' from the Wild the Innocent, 1973)

https://www.youtube.com/watch?v=nOE_fJGWjVA




드디어 75년 Born to Run 앨범이 북미 전역을 강타하여

그를 메인스트림의 주인공으로 격상시킨다. 발매 1년 전

보스턴의 음악 평론가 존 랜도가 새파란 신인의 공연을 보고

'락앤롤의 미래를 보았으며 그 이름은 스프링스틴이다'며

기고한 일은 이젠 너무 유명한 이야기. 심지어 랜도는 이후

하던 일 때려치고 극찬한 그 신인의 프로듀서로 전업했다지.



타이틀 트랙을 포함해 Tenth Avenue Freeze-Out,

She's the One, Thunder Road, Jungleland

히트 트랙이 줄지어 터져나왔다. 멀티 플래티넘을 찍은

앨범이 빌보드 차트 3위까지 올랐고 3집의 거의 모든

트랙이 아직까지도 각광받는 단골 셋리스트 대상이다.



('Tunnel of Love' from eponymous album, 1987)




앨범의 성공으로 투어에 매진하고 있던 차 법률 소송 문제에

휘말려 3년간 스튜디오 작업을 못한다. 78년 가서야 Darkness

on the Edge of Town 앨범을 발매. 트리플 플래티넘 기록을

이어가며 평단과 팬덤의 열광적 지지를 얻었고 Badlands,

Prove It All Night, The Promised Land히트시킨다.



최초로 그를 그래미 후보로 올린 80년 더블 앨범 The River.

존 랜도스티븐 밴 잰트가 공동 프로듀스하여 처음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밟은 성공작이다. 그의 시그니처

이 된 메가히트곡 Hungry Heart를 비롯, 앨범의 진중한

정서를 대표하는 The River, Independence Day 등이

팬덤의 고른 성원을 얻는데 성공한다.



82년 발표한 Nebraska포크 구성이 전반을 지배하며

스프링스틴 혼자서 4트랙 홈레코딩으로 작업한 작품으로

전작에서 이어진 무겁고 어두운 정서가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작이다. Nebraska와 Atlantic City

등 주요곡이 대체로 범죄자들 이야기를 담고 있어 작사의

철학과 세계관이 한층 깊어지고 있음을 반증한다.



('Human Touch' from eponymous album, 1992)




84년 Born in the U.S.A.에 이르러 그전부터 관심 두던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의 사회 부적응 문제를 본격적으로

터뜨렸으며 본작은 아시다시피 보스 앨범 중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남는다. 판매고만 1천 5백만이 넘어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고 85년 그래미 올해의 앨범 후보로 오르며

발매한 7개 싱글 모두 차트 탑텐에 올린 초대박 성공작.



Born in the U.S.A., Dancing in the Dark, Glory

Days, Cover Me, My Hometown, I'm on Fire, I'm

Goin' Down 등 그냥 수록된 전 트랙이 미국 대중음악사

명곡으로 남았다고 이해하면 쉽다. 한국으로 치면 유재하

앨범 정도에 해당할까.. 한 마디로 버릴 곡이 없는 명반.

꼭 들어보시라. 두 번 들으시라.



아 글고.. Born in the U.S.A.는 '나도 미국 놈이라고~

(근데 대접이 왜 이 모양이야)' 하는 시니컬푸념조의

가사이니까 선거 캠페인 송으로 절대 쓰지 말라고들..

특히 공화당. 보스가 깜놀하신다.



86년에 나온 Live 1975-85제플린으로 치면 Song

Remains~급의 최전성기 라이브 앨범으로서 자그마치

13x 플래티넘을 찍은 또 하나의 초대박 작품. 이 앨범과

95년 Greatest Hits보스가 가장 전성기일 때 최고의

활동 기록을 담고 있어 스튜디오 앨범이 아님에도 팬덤이

은 최고의 아카이브 작품들이라고 하겠다.



(Live 1975-85)



(Greatest Hits)




87년 8집 Tunnel of Love는 상대적으로 E스트리트 밴드

색깔을 많이 뺀 지극히 개인적인 작품으로 타이틀 트랙

Brilliant Disguise 등 히트곡을 냈고 실패한 첫 결혼 등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낸 앨범이다. 본작으로 88년에

그래미 상도 탄다. (첫 그래미는 85년에 수상.)



이밖에 90년대엔 Human Touch를 히트시킨 동명의 9집

앨범이나 94년 탐 행크스 주연 영화 필라델피아의 주제가로

오스카 상을 수상한 Streets of Philadelphia 등 작품으로

여전한 인기를 이어간다. 96년엔 숀 펜 주연 영화의 사형수

스토리로 Dean Man Walkin'을 히트시키기도.



95년 앨범 The Ghost of Tom Joad는 오랜만에 포크

을 불러와 건재함을 알린 앨범이며, 02년 The Rising

10년간 떨어져 있다 99년에 E스트리트 밴드와 재결합하여

18년만에 맞은 앨범 성공작이기도 하다.



('Dead Man Walkin'' from eponymous OST, 1996)

*96년 68회 아카데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직접 부른 버젼이다.



('Secret Garden' from Greatest Hits, 1995)




한편 70년대 후반에 소송으로 앨범 작업을 못할 때쯤

보스는 다른 가수와 협업하는 유명 히트곡 작곡가로도

활동했다. 그 중 펑크의 대모 패티 스미스 선사한 곡이

가장 유명하고 맨프레드 맨s 얼쓰 밴드포인터 시스터즈

등과의 협업도 선풍적 인기를 끌어온 바 있다.



Blinded by the Light는 사실 스프링스틴데뷔 앨범

실린 트랙인데. 본인은 히트 못 시키고 실력파 키보디스트

맨프레드 맨에게 주어 빛을 보았다. 쩝.


('Blinded by the Light' by Manfred Mann's Earth Band, 1977)

https://www.youtube.com/watch?v=lcWVL4B-4pI


('Fire' by the Pointer Sisters, 1979)

https://www.youtube.com/watch?v=cCOBp1Lrlf4


('Because the Night' by Patti Smith, 1978)

https://www.youtube.com/watch?v=6OjW1TDANxk



*락앤롤 명예의 전당 25주년 기념 공연에서 U2 및 패티 스미스와 공연했다.




*Dancing in the Dark, studio version



*Badlands, studio version



*Hungry Heart, studio version



*Born to Run, studio version



*Born in the U.S.A., studio version






반복하지만 한국에서는 지지리도 인기가 없는 분이다.

가사와 정서가 중요한 가수이니 한국인이 공감할 만한

요소가 거의 없어 인기가 있는 것이 이상할 터. 하지만

오래 전부터 이름은 유명한 분인데 왜 그토록 대단한지

이해를 새롭게 하는 계기만 만들었다면, 뭐 만족한다.

그래도 이 분의 세계 음반 시장 실적이 자그마치 1억

4천만 장에 달한다는 사실은 기억해달라..



본 블로거가 가장 좋아하는 트랙을 하나만 꼽으려니 참

망설여지는데 역시 Born to Run 앨범에서 가장 혁신적인

작편곡 구성으로 뒤통수 맞는 듯한 기분을 느꼈던 이 곡이

가장 좋을 것 같다. 롤링 스톤 매거진대를 초월한

500대 명곡 중 86위로 집계한 Thunder Road.



(Rolling Stone Magazine's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500-greatest-songs-of-all-time-151127/bruce-springsteen-thunder-road-44121/



잘 들어보면 유행가의 전형적 양식인 verse-chorus

구조를 한창 벗어난 변칙 구성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딱히 후렴구라 할 만한 악절이 없음에도 텐션을 고조시켜

코다로 넘어가는 작편곡 기법이라니.. 브루스 스프링스틴

이름값이 고스톱 쳐서 딴 거 아님을 여실히 느낄 수 있을 터.



여담이지만 "네가 안 예진 몰라도 난 괜찮아"란 가사에 젊은

시절 줄리아 로버츠가 엄청난 감동과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가사 내용이 뭐냐고? 갓 학교 마친 뉴저지 젊은 남녀의 흔한

"시골 너무 깝깝해. 오빠 믿지? 서울 가자." 스토리이다.

멋진 곡을 강추로 띄우며 포스팅을 마친다.



('Thunder Road' from Born to Run, 1975)

*Thunder Road, studio version



*미니멀라이징한 75년 런던 라이브 버젼. 피아노에 Roy Bittan. CP-70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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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록 불사라 포스팅은 정말 망설여 왔는데

보랩 영화를 봐버렸다. 보지 말걸. 안 할 수 없네.

여기선 영화 얘기만 하고 본격 보컬 스토리는

나중에 할 때가 오겠지..



매우 큰 히트를 치고 있음은 자명하지만

해외 평이 정확해 보이네. 딱 반쪽짜리 작품이다.

아울러 국내 영화 평론가들의 음악적 소양에

다시 한번 절망하기도 하며...



오랜 팬임을 자처하며 평가질 해대는 꼰대

어디 본 블로거 혼자이겠냐마는... 그래도 할 말은

혀야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드러날 터인데.





반쪽 짜리가 정말 딱 적당한 말이네.

전기 영화로서의 함량, 음악 영화로서의 완성도,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해석.. 뭐 여러 가지 관점

다 따져도 반쪽만 익히다 만 것임에 틀림 없겠으나..



특히 다른 곳에서 이야기하지 않는 한 가지는 꼭

짚고 싶을 따름이오니.. 라미 말렉의 연기를 100%

극찬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점이다.






100% 싱크로율을 자랑한다고 평가받는 역대 연기를

꼽아볼 수 있다. 링컨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 대처의

메릴 스트립이 최근 대표적 사례이겠고 음악가를

다룬 예로는 톰 헐스가 여전히 독보적일 것이다.

세월이 30년 넘게 흘렀음에도...



이쯤 되면 싱크로율이란 개념에 대해 현대의 대중이

어떻게 접근하는지 깊게 고찰해볼 만하다. 단순히

똑같이 재연한다면 그것이 100% 싱크로일까?








현대인들이 링컨의 생전 모습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과연 우리가 목격한 명연기가 싱크로가

맞기는 한 건지 되짚어볼 수 있다. 결국 단순한 재연이란

개념이 얼마나 허상에 가까운 것인지 알 수 있지 않나.



재연이라면 대상의 외양을 피상적으로 구현해내는 데

집착한다는 말이리라. 명연기라고 기억하는 링컨이나

대처는 외양 이전에 인물의 심리와 철학을 분석하여

표현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한 것이었음을 이해하시라.



적어도 현재까지 외신으로 접한 수준의 보도로 보면

라미 말렉의 곁은 무브먼트 코치가 지켜온 듯하다.

공연 중 보여준 프레디의 스테이지 모션이 너무

독창적이기에 나온 결정인 것 같긴 하다.






그런데 결국 거기까지만 보여주고 용두사미처럼

끝나 버린 것 아닌가 싶다. 몸짓을 복사하는 것까지만.

프레디란 사람을 이해하는데 있어 약간 패션모델 비슷하

몸의 선을 중시하는 무브먼트, 그것이 다는 아니지 않은가.



프레디의 정체성과 카리스마, 그리고 그것과 복잡하게

한몸처럼 엮여 있는 컴플렉스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페르시아 민족 계열 이민자 출신의 영국 아웃사이더란 것이

하나, 또 하나는 다들 알다시피 바이 양성애자란 것이다.






그에게 어린 시절의 컴플렉스를 선사한 이국적 두상과

용모는 사실 그의 민족 정체성인 파르시 종족의 특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전통을 중시하는

가부장적 페르시아 아버지 세대와의 갈등이 청소년기

억압적 가치관 형성에 기여했을 터이고.



여기에다가 유년기 어느 시점부터 스스로 자각해온,

뭔가 다른 성적 정체성이 화학적 결합을 일으킨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완벽한 재현으로 해석되는

(아버지를 죽였다고 어머니께 고백하는 첫 소절..)

보랩의 가사와 프레디의 철학은 이렇게 형성된 것.



바이 영국 이민자라는 아이덴티티가 곧 프레디인 셈.

단순 무브먼트에 치중한 듯한 디렉션이 뭔가 의아하고

쉽게 와닿지 않는다고 느끼는 요점이 이것이다.





무브먼트 자체도 그렇다. 프레디의 독창적 몸짓을

응원단 치어리딩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탄탄한 발레 기본기에서 나온 거란 점...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라미의 저 액션이 그냥 투박한 치어리딩에서 온 것인가

발레의 기본기에서 나온 것인가, 되게 고민고민하면서

본 장면이 사실 많았다. 도대체 정체가 뭐지..?

꽤 의아-궁금했음이 솔직한 심정..






흔히 프레디의 배나온 중년 콧수염 아저씨 시절로

기억되는 80년대 초중반 몸매도 발레 레슨에서 나온

산물임을 상기한다면, 그의 무브먼트에 대해 깊이를

갖고 접근한 것인지 한번쯤 회의적인 시각을 들이댈

수밖에 없을 터이다.



(80년대의 프레디는 발레와 오페라 레슨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많은 사람이 모르지만.

그만큼 감각을 갈고 닦기 위해 노력했다.)



아래는 역대 가장 기이한 코스튬 사이로 비집고 나온

프레디의 육덕진 몸매를 적나라하게 감상할 수 있는

대표적 뮤직 비디오.. 1984년 The Works 앨범에서..






프레디는 사실 원래부터 육체의 곡선을 드러내는데

실로 열성적인 집착을 보여준 아티스트인 것이다.

인간의 육체에 대한 탐미적 기호랄까.



또 하나의 기벽을 폭발시킨 뮤직 비디오

(무려 멤버 전원의 성별을 역전시킨..)

I Want to Break Free.. 같은 앨범..






라미와 프레디의 체형이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다는

건 알겠는데, 살짝 통통한 80년대 몸매로 세밀하게

다잡고 나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크다.



80년대는 프레디의 인생에서 참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앞둔 마지막 10년이었고 처음으로

에이즈 감염 사실을 확인하였기에 더더욱 섹스와

연애와 생에 집착한 복잡한 시절이었으니까...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라미의 목소리이다.

물론 말할 때 목소리. (극중 노래 목소리의 99%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프레디 본인의 아카이브와

마크 마텔을 적정 배합한 것이다.)



쉰 듯한 반가성을 많이 섞은 톤으로 해석의 기준을

잡았는데 이걸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해석이 뭐지? 성적으로 뭔가 모호한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캐릭터란 느낌을 주고 싶었나?



(상당히 남아 있는 프레디의 평소 대화 녹화분을

확인하면 쉽게 알 수 있지만 말할 때 목소리도

노래와 비슷하게 명료하고 또렷한 질감이었고

영화처럼 거칠고 투박한 팀버는 아니었다고.)







그런데 실제 프레디가 생의 절반을 넘기고도 아직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사람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는 확고부동한 주관을 가진

살짝 고집불통에 가까웠다. 패션이나 무용계의

까다로운 예술가 스테레오타입에 더 가까웠지..



물론 그의 삶은 섹스와 파티로 가득 차 있었다.

프레디의 실제 삶을 제대로 묘사한다면 여지없이

X등급을 받을 거라고 멤버들이 전했을 정도이니.

(단, 마약과의 연관성은 크지 않은 것 같고

그의 중독성은 술과 담배 쪽이었다고... 특히

담배는ㅠ.. 그의 대부분 삑사리가 흡연 때문..)



즉, 고민 따위는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거침없이

당당한 바이 섹슈얼의 사생활을 산 사람이었다.

라미의 목소리와 해석에, 불안한 미래를 꿈꾼

20대 시절 연기를 빼고 절반 밖에 동의가 안

되는 이유라고 하겠다.



http://ultimateclassicrock.com/bohemian-rhapsody-movie-hetwashing/




이쯤 되면 라미의 LGBT 해석 전체에 살짝 의문을

품게 된다. 생의 전반에 걸쳐 자신의 게이 라이프에

고민하는 예술가의 스테레오타입이라면 프레디보다

차이코프스키의 삶에 더 가까운 듯한데... 이러면

처음부터 방향이 잘못된 것 아닌감...



더구나 게이 브라이언 싱어가 이런 디렉션을 줬다고..?

이 부분에서 더더욱 의뭉스럽네. 싱어가 중간에 하차한

이유가 대략 어디서 발화했는지도 감이 오고.






브라이언 메이로저 테일러 같은 분은 연예계에서

거물이기에 동료 전기 영화의 묘사에 이러쿵저러쿵

참견했을 것 같고 아마도 싱어 같은 사람도 거부하기

힘든 상황이 여러 번 오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왜.. 예전부터 메이와 테일러는 프레디의 인생을

실제에 가깝도록 19금으로 묘사하는데 반대하지

않았던가.. 이런 의견을 갖고 있는 원로들이 이런

저런 의견으로 도움이랍시고 던지는 상황이라면,

방향 잡기가 참 혼란스러웠을 터...






그렇지.. 프레디는 엄청 '척' 하고 산 사람이다.

바이가 아닌 척, 이민 2세대가 아닌 척, 즉 진퉁

영국인인 척.. 사실 모두 알면서 쉬쉬한 거지만.

 노래, 그래서 나름 프레디의 인생곡이다.



아래는 프레디 솔로 프로젝트 중 최고라고

생각하는 타임.. 의외로 많이들 모르셔서.






네네... 길게 썼는데 두세 줄 요약..

라미 연기 이해 안 되고 영화는 반쪽 완성도.

연예인도 나이 들면 꼰대가 되야 하나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줘 감사해요.



역사상 전무후무한 보컬리스트라서

보컬 이야기하려면 큰 각오가 필요하다.

나중에 하자. 원 참, 황망스럽기는.



https://digitaldreamdoor.com/pages/best_vocalists.html


https://digitaldreamdoor.com/pages/best_vocalists-fe-rr.html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singers-of-all-time-147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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